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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포스트

대중매체 속의 지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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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매체 속의 지역문화

신문에 소개된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 시대적 특징과 분위기를 나타내주는 노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대중매체 속 정보들을 살펴보자.

콘텐츠 목록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영등포구

    일제강점기 대중화된 빵

    빵은 곡식가루 반죽에 효모나 화학약품을 넣어 부풀린 것을 구운 음식이다. 빵은 개항기 이후 일제시기 본격적으로 조선 땅에 정착하였다. 조선 땅에 정착한 빵은 일본인이 받아들인 빵이 정착한 것이다. 그리하여 건빵, 단팥빵, 현미빵 등이 일제 강점기 조선의 인기있는 빵이 되었다. 단팥빵은 갈돕만두라는 제품으로 응요되어 주로 고학생들이 팔았다. 현미빵도 도시빈민인 행상들이 생계를 위해 파는 물건이었다. 고급빵은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제과점에서 팔았는데 1930년대 호주나 캐나다산 밀가루 수입이 통제되면서 식빵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 

  • 지역문화이야기

    설탕, 대중화가 시작되다.

    설탕은 전근대식 한국에서 중국을 통해 소량 들어오던 귀중품이었다. 1921년 평양에 제당 공장이 설립되면서 한국에도 설탕이 대중적으로 보급된다. 설탕의 제조원료는 대만에서 수입한 사탕수수와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재배한 사탕무였다. 일본인이 설립한 제당 회사는 설탕 판매 이익을 위하여 한국농민이 생산한 사탕무를 헐값에 사들여 원성을 샀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곡성군

    섬진강의 어살과 민물고기

    민물고기는 옛날부터 식생활에 이용되었는데 은어, 메기, 잉어, 참게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민물고기는 양식을 하거나 낚시로 잡는데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하천에 어살을 설치하여 많이 잡았다. 어살은 강 혹은 바다에 나무, 돌 등을 쌓아 물고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 후 잡는 함정어구의 일종이다. 어살은 강에 댐이 생기면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섬진강에 어살이 일부 남아있는데 고뱅이 어살과 살뿌리 어살이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광양시

    섬진강의 강굴

    강굴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지점의 바위 위에 서식한다. 현재 우리나라 강굴의 90%는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에서 채취된다. 강굴은 수심 10-15m에 주로 분포하고 껍질의 길이는 20-30cm에 이르는 대형종으로 성장이 다른 굴에 비하여 빠르고 저염분의 환경에서 잘 자란다. 강굴은 일제강점기부터 본격적으로 채취했는데 긴 대나무를 붙인 집게로 채취하다가 현재는 잠수기를 이용해 사람이 잠수해 채취하고 있다. 2013년에 약 87t정도의 강굴이 채취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채취한 강굴은 망덕포구 등지의 음식점에 판매되고 일부는 택배를 통해 전국적으로 팔려나간다.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성동구

    수돗물이 공급되다

    조선시대 후기 서울의 우물은 식수로 사용하기에 부적합하여 물장사가 식수를 공급했다. 수도가 만들어진 1907년이후에도 물장사는 계속 존재했다. 1907년 뚝섬 쪽에 수원지가 만들어지고 상수도가 생겼다. 수도가 생겼지만 집집마다 수도관을 설치하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었고 일정 구역에 공용수도가 설치되었다. 물장사는 공용수도의 물을 나르는 역할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수돗물은 공급이 부족하여 종종 단수되었다. 조선총독부는 물장사에게 공용수도의 관리를 맡겨서 공짜로 공용수도 쓰는 것을 차단하였다.

  • 지역문화이야기 충남 >논산시

    1960년대에 들어온 요구르트

    요구르트는 6.25 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되어 1969년 일본과의 합작으로 한국야구르트가 생산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1976년 해태유업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후 대일유업, 서울우유협동조합, 한국낙동, 삼양식품 등 많은 업체가 제품을 내놓았다. 이 시기의 요구르트는 탈지분유를 물로 희석하여 유산균을 발효시킨 것으로 우유의 비중이 굉장히 작았다. 마시는 음료에 가까웠던 요구르트가 걸쭉한 죽 형태로 변화된 것은 대일유업 즉, 지금의 빙그레에서 ‘요플레’를 내놓은 것이 시작이다. 대일유업은 1981년 10월 프랑스 농협 조합으로부터 기술도입 계약을 맺어 죽 형태의 요구르트인 요플레를 만들었다. 이후 요구르트는 죽 형태, 마시는 형태 등 다양화되었다.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강릉시

    지금은 사라진 주막

    조선시대까지 주막은 술과 음식을 팔면서 숙박을 제공하는 곳이었다. 술과 음식을 먹으면 숙박비를 받지 않았고, 따라서 숙박시설은 열악했다. 이사벨라 비숍, 릴리어스 언더우드 여사의 여행기에 주막에서 묵은 경험이 수록되어 있다. 개항기 서울지역에 여관이 생기면서 서울의 주막은 숙박기능을 잃고 선술집등 술집으로 변한다. 지방은 산간벽지까지 여관이 들어오지 않아 그때까지도 숙박기능을 겸했지만, 이후 철도나 도로가 놓이면서 주막거리는 쇠퇴했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안산시

    쇠고기를 위한 소사육

    소는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키워 온 가축이다. 조선시대까지 소는 농사를 짓는 가축이었으나 개항기 이후 고기를 먹는 가축으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엔 나라에서 소의 도살을 종종 금지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도축장에서 신고만 하면 소를 도살할 수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 농가에서 소의 사육을 권장했는데 일본에서 쇠고기와 쇠가죽의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조선 농가의 소 사육은 농가 1호당 0.5마리 정도였다. 농가 1호당 약 1마리 정도로 소를 많이 키운 곳은 남양반도의 섬들로, 이 곳에는 조선시대까지 말을 키우는 국영목장이 있었고, 그 목장이 폐쇄된 이후 소를 키우게 된 것이다.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인제군

    양봉기술의 새로운 도약, 꿀

    양봉은 벌을 길러 벌이 모은 꿀, 꽃가루, 로열젤리 등을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들은 양봉을 했는데 속이 빈 나무에 벌집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벌집은 개항기 이후 들어왔다. 개항기에 이태리산등 외국벌도 도입되어 근대적 양봉이 시작되었다. 벌은 큰 힘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부업으로 권장되었다. 오늘날에는 부업에서 나아가 전문적으로 양봉을 하기도 하는데 꽃이 피는 봄이 되면 전국의 꿀이 많은 곳을 찾아 벌집을 이동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6.25 전쟁 이후 D.D.T가 살포되면서 익충이 많이 죽었다. 정부에서는 구호자금으로 벌들을 공급했는데, 과일과 곡식이 수정을 위해서였다. 오늘날 강원도 인제군 등 산림지역은 양봉의 적지로 주목된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진도군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자연산 미역

    옛부터 우리는 자연산 미역을 먹어왔다. 바닷가 바위에 자란 미역을 해녀가 채취했고, 이를 말려 먹었다. 미역이 자라는 바위를 미역밭이라 하여 어민들이 바위를 닦는 등 관리해왔다. 그러다 1950-1960년대에 미역 양식기술이 보급되면서 1972년을 기점으로 양식산 미역의 생산량이 자연산 미역의 생산량을 앞지르게 되었다. 1999년에는 자연산 미역이 1이라면 양식산 미역은 177의 비율로 양식산 미역이 압도적인 생산량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출산 후 산후조리용 등으로 자연산은 여전히 판매되고 있으며 양식산 미역보다 비싼 값에 거래된다. 오늘날 자연산 미역으로 유명한 산지는 가거도, 만재도, 진도의 조도군도 등이다.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종로구

    육고기의 대량생산, 도축장

    조선시대까지 소의 도축은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일제시대에 들어서면 소의 도살을 국가가 금지하지 않는다. 대신 소나 돼지등 가축을 도살할 때 국가의 허락을 받고 도축장에서 도살하여야 했다. 물론 도축을 하려는 사람은 도축장에 돈을 내야 했다. 도축장에서 받는 돈이 경성부등 도축장을 설치한 도시의 큰 수입원이 되었다. 일제시대 서울에 있던 도축장은 신설리와 아현리에 경성부에서 운영하는 도축장이 있었다. 서대문 형무소 옆 경성도축장과 용산도축장은 민영이었는데, 경성부에서 1916년 차례로 매수한 후 신설리와 아현리의 부영 도축장을 페쇄하고 경성도축장으로 경성부의 도축업을 통일하였다. 1925년 말 신설리에 전기도축시설을 갖춘 건물을 신축하여 도축장을 그 곳으로 이전하였다.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영등포구

    일제강점기 대중화된 빵

    빵은 곡식가루 반죽에 효모나 화학약품을 넣어 부풀린 것을 구운 음식이다. 빵은 개항기 이후 일제시기 본격적으로 조선 땅에 정착하였다. 조선 땅에 정착한 빵은 일본인이 받아들인 빵이 정착한 것이다. 그리하여 건빵, 단팥빵, 현미빵 등이 일제 강점기 조선의 인기있는 빵이 되었다. 단팥빵은 갈돕만두라는 제품으로 응요되어 주로 고학생들이 팔았다. 현미빵도 도시빈민인 행상들이 생계를 위해 파는 물건이었다. 고급빵은 일본인들이 경영하는 제과점에서 팔았는데 1930년대 호주나 캐나다산 밀가루 수입이 통제되면서 식빵 품질이 떨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