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댁 할머니는 벽계리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미제 상품을 구입하여 장사꾼들에게 되팔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군들의 옷을 빨아주기도 하고, 돈 되는 일을 물불 가리지 않고 일했다. 그 시절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억척같이 일하고 살림을 일궈 나갔다. 지금 옛 시절을 되돌아보면 꼭 꿈을 꾸는 것만 같다.
벽계리에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때아닌 건설 붐이 불어닥쳤다.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어 온 내국인들이 당장 거처할 숙소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군을 따라온 양색시들도 거처할 숙소가 부족했다. 벽계리 사람들은 이들에게 빈 방을 빌려주고 여유 공간에 방을 만들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농촌 마을 벽계리에 서양 사람이 처음 들어오면서 문화적인 충격과 갈등이 많았다. 흑인과 백인을 처음 보는 지역민도 많았으며, 미군들의 현대식 장비를 보면서 우리나라 현실과 너무 비교되었다. 유교적인 보수 성향의 옛 어른들과 서양의 개방된 문화가 만나며 갈등과 공존 과정을 겪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