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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국역) 계동선생문집

    출처 :대구광역시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대구 >수성구

    (국역) 계동선생문집
    대구가 배출한 대표적 문인인 계동 전경찬의 문헌을 번역 수록한 문집이다. 계동(溪東) 전경창(全慶昌, 1532~1585)은 대구지역 퇴계학의 계승자이면서 수성지역 성리학의 중심지인 연경서원을 창건했다. 미번역된 문집, 학계안(學稧案: 학업과 우애를 다지기 위해 만든 계의 명단과 운영 규정) 및 석채례(釋菜禮: 제례의 하나로 도에 대한 숭상과 공자에 대한 존경을 표현함)를 번역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광주 >광산구

    기대승, 이황과 사단칠정논쟁을 벌이다
    기대승(奇大升)은 1559년부터 1566년까지 퇴계 이황과 8년간에 걸쳐 사단칠정논쟁을 펼친다. 이 논쟁은 사단과 칠정 사이의 관계를 규명하면서 이기 문제와 심성 관계를 조명한 심성론 중심의 조선 성리학적 특성을 정착시켰다. 그리고 조선 사상계를 이끌었던 기호학파와 영남학파 형성에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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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 이황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그가 태어나고 7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황은 20세에 『주역』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주역』을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연구하였다. 또 이황은 고봉 기대승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학문적인 논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대승과 이황은 장장 12년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면서 학문을 논했는데, 특히 8년 동안 두 사람이 편지로 주고받은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유명하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에 퇴계학파(退溪學派)라는 줄기를 이루게 된다. 그의 사상은 후에 일본 근대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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