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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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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옹기돛단배가 남해안을 누비던 강진의 ‘봉황포구’
    전라남도 강진군 봉황리는 봉황포구에서 1988년까지 옹기를 구워 돛단배에 싣고 다녔다. 이 곳에서 생산한 옹기는 ‘칠량옹기’로, 장흥, 완도, 고흥, 여수 등과 제주도, 부산, 포항 등의 남해안 전역을 돌며 판매했다. 봉황마을 인근의 칠량면 삼흥리에서 고려 청자를 구웠는데 이 곳은 자기를 굽는 흙이 좋고, 주변에 숲이 많아 땔감 공급이 쉬웠다. 바다로 열려 있어 판로 개척이 용이했기 때문에 삼흥리 청자와 더불어 봉황리 옹기가 발달할 수 있었다. 봉황포구는 옹기를 실어 나르던 남해안의 대표 포구였다. 옹기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1988년을 마지막으로 옹기배는 사라졌지만 그 모습은 1995년까지 봉황포구에 남아 있었다. 2010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봉황마을에서 운용했던 웅기운반선을 복원했는데 그 배의 이름이 봉황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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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탐진이라 불린 강진의 강진나루와 마량항
    전라남도 강진군에는 강진나루가 있었다. 이 나루는 제주도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기에 탐라로 가는 나루라는 뜻에서 ‘탐진(耽津)’으로 불렸다. 제주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역선이 이곳을 거쳐 갔다. 제주와 연관된 여러 나루 중 마량항(馬糧港)은 제주에서 싣고 온 말이 처음 육지를 밟은 곳으로, 말에게 먹이를 먹인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량항에서 말들은 수개월에 걸친 뱃멀미에서 벗어나 원기를 회복하고, 전국 각지로 달려갔다. 조선 초기 태종(1417년)에는 마두진(馬頭鎭)을 설치해 만호절제도위가 관장하도록 했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시기에는 거북선 한 척을 상시 대기시키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만호성터가 남아 있고, 천연기념물 제172호인까막섬 소나무숲도 있으며, 항구 앞쪽으로는 고금도와 약산도의 두 섬이 풍랑을 막아주어 자연 피항지로서도 손색이 없다. 강진군의 유일한 항구로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는 남해안의 '미항(美港)'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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