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호텔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인천의 전성기를 같이 한 중국요리집
    인천에 중국인들이 살 수 있는 조계지가 설치되면서 인천에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중국요리집이 많이 생긴다. 일제강점기 인천의 유명한 중국요리집으로 중화루, 공화춘, 동홍루, 평화각 등이 있었다. 이들 대형 중국요리집은 주로 중국 산동성에서 이주한 중국인들 몇십 명이 돈을 각자 출자하여 만든 것이었다. 일제강점기 인천의 중국요리집들은 장사가 잘 됐는데 이 시기 인천부청에서 작성한 과세자료에 의하면 중화루 40,000원, 동흥루 20,000원, 공화춘 9,000원의 세금을 징수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인천이 누렸던 각종 이점이 모두 서울로 이동되었다. 그에 따라 인천에 소재한 중국요리집들도 자연 그 수명을 다하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한국에서 일본인이 처음 만든 여관
    여관은 숙박료를 받고 손님을 재우는 숙박시설이다. 조선시대까지 한국에는 숙박료를 받는 투숙시설이 없었다. 주막은 음식값만 받고 손님을 숙박시켰는데 숙박시설이 형편없었다. 여관업은 일본인이 한국에서 시작하였다. 여관에서 장기숙박하는 것을 하숙이라 했다. 경성의 일본인들이 주로 남산 기슭에 거주했고,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근대식 여관도 이곳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조선인이 운영하는 여관도 일본식 여관이 자리잡은 후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15년 자료에는 조선식 여관 50곳이 조선인 거주지역인 북촌을 비롯하여 일본인 거류지인 남촌에도 소재하고 있었다. 조선식 여관은 시설이 일본식 여관에 비해 떨어지는 대신 싼 가격 덕분에 경쟁력이 있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인천 >중구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대불호텔
    대불호텔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이다. 지금 인천광역시 중앙동 1가 22번지 일대에 있는데 2018년 4월 기존 빈 터였던 곳에 고증을 거쳐 복원하였다. 복원된 대불호텔은 중국 생활사 전시관의 1관과 2관중 1관이다. 대불호텔은 1887년경 일본인 해운업자인 호리 히사타로(堀久太郞: ?~ 1898)에 의해 건립되고 운영되었다. 경인선이 개통되기 전 인천과 서울은 우마차로 1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인천을 통해 한양으로 가야하는 외국인은 인천에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고, 인천을 떠나 외국으로 가는 사람도 미리 인천에 와서 배편을 기다려야 했다. 덕분에 인천의 숙박업은 호황을 누렸다.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어 인천과 서울이 1시간 거리가 되면서 인천지역 숙박업은 쇠퇴하였다. 대불호텔은 1907년 무렵까지 영엽하다가 폐업한다. 그 후 1918년 대불호텔은 뢰소정(賴紹晶)을 비롯한 40여 명의 중국인들에게 인수되어 중국음식점인 ‘중화루(中華樓)’가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서울 >중구

    외교관들의 영빈관 호텔이었던 손탁호텔
    손탁호텔은 현 이화여고의 이화백주년기념관에 있던 호텔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 1838-1922)이라는 여성이 1902년 설립하여 1909년 경영권을 프랑스인 보에르에게 넘겼다. 보에르가 운영한 손탁호텔은 1915년 문을 닫고, 1917년 건물부지가 이화학당 기숙사로 팔렸다. 손탁호텔은 1909년까지 조선왕실의 영빈관의 역할을 하는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궁내부 소속의 특정호텔로 각 국의 외교사절과 귀빈 등 일부 예약 손님만 머물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각종 리셉션이나 연회는 반드시 손탁호텔에서 개최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정부의 기능이 약화되자 손탁호텔의 기능도 사라졌다. 손탁여사는 1909년 7월 16일자로 궁내부를 사퇴한 후 프랑스 칸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강원 >인제군

    일제강점기 예술인들이 모인 다방
    우리나라에서 다방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는데 국가기관으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1910년대에도 다방은 국가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1920년대부터 다방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서울에 많은 다방이 생겼다. 조선인을 상대로 하는 다방은 예술가들이 많이 개업했고, 그런만큼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낙랑팔라’는 화가 이순석의 아틀리에를 겸한 다방이었고, 시인 이상도 '제비' 등 여러 다방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다방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해방 후 196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