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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생활문화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우리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각 지명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도시에 똑같은 동 이름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한 인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마을을 지켜주던 나무 등 우리 마을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공간의 이야기를 모았다.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담양군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옛날 옛적 나주에 사는 정노인은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고을 원님이 불러 물어도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니 원님은 구슬을 선물로 주고, 뱃사공에게 부탁해 구슬을 잃어버리도록 일을 꾸몄다. 강에서 구슬을 잃어버린 정 영감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고, 걱정이 된 큰며느리 영산은 잉어를 사서 통구이를 해드렸다. 그런데 잉어 뱃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시인하고, 정노인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정 노인은 강변에 며느리의 이름을 딴 영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그때 부터 사람들이 강 이름을 서원이름에서 따 영산강이라 불렀다.
  • 지역문화이야기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 >동구

    왕건 대신 죽은 신숭겸을 기린 지묘사가 있던 대구 지묘동
    견훤의 군사가 경주를 함락하자 왕건이 군사를 끌고 출격하였다. 팔공산 동수 지역에서 둘 사이의 전투가 벌어졌다. 후백제군에 포위된 왕건은 목숨이 위태로웠다. 신숭겸이 왕건과 옷을 바꾸어 입고 왕건인 척 후백제군을 속였다. 결국 신숭겸은 전사했고, 목숨을 구한 왕건은 그의 죽음을 기려 지묘사라는 절을 세웠다.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은 지묘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 >남구

    왕건을 쫓아 견훤이 왔던 동네, 대구 안지랑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한 왕건이 안지렁이 골짜기의 안일암으로 몸을 숨겼다. 견훤이 쫓아와 잡으려고 하자 왕건은 안일암 뒤 큰 굴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 지렁이의 후손인 견훤이 다녀간 곳이라고 해서 ‘왕지렁이’로 불리다 ‘안지랑이’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는, 안지랑이 계곡의 물이 좋아 앉은뱅이도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해서 ‘안지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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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세종시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세종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 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경상북도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경북경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계양구

    부평계양문화권의 역사적 뿌리이자 산소탱크, 계양산
    인천 계양구의 계양산은 시대에 따라 수주악, 안남산, 아남산, 경명산이라고도 하였다. 한강 서부지역에서 가장 높은 계양산은 예로부터 계양산 자락의 마을에서 산신제나 마을 제례를 하며 신성시되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우리마을산책
    • 관련문화원 : 인천계양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성북구

    도심 속의 무릉도원 성북동
    서울성곽을 서쪽 울타리로 두고 있는 성북동의 이름은 도성의 북쪽, 도성의 북문 밖에 있는 골짜기였던 데에서 연유한다. 또 조선시대에 도성수비를 담당했던 어영청의 북둔이 1765년(영조 41)에 설치되어 동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도성 사대문 밖에는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성북동만이 성의 북쪽을 의미하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산수의 경치가 타 지역에 비해 빼어나 예로부터 도성민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서 손꼽혔기 때문일 것이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서울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서울성북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성북구

    서울 성북동 꿩의 바다마을
    서울 성북동에는 '꿩의 바다'라는 이름이 붙은 마을이 있다. 울창한 나무와 암석이 있어 꿩을 비롯해 산새, 까치 등이 많이 서식했던 것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지금은 고급 주택과 각 국의 대서관저가 밀집된 곳으로 변하였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서울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서울성북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평택시

    을미왜변의 영웅 한온이 태어난 평택 금암리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金岩里)는 을묘왜변(乙卯倭變)에 순국한 한온(1511~1555)의 충절에서 생긴 지명이다. 한온(韓蘊)은 을미왜변에서 죽은 뒤 충의(忠毅) 시호를 받고, 충신정문(忠臣旌門)을 받는다. 이 충신정문 현판에는 “철장석선 일심순국(鐵腸石膳 一心殉國)”라 쓰여 있다. 곧, '창자는 쇠붙이와 같고 쓸개는 돌과 같아라. 한 마음 나라에 바쳤도다.'는 뜻인데, 쇠 철자에서 금(金)을 따고, 돌 석(石)자에서 바위 암(岩)을 유추해서 지금의 금암리가 되었다고 한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경기도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경기평택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관문, 과천 관문동
    경기도 과천시 관문동(官門洞)은 과천고을의 관문이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삼남지방의 사람들이 한양으로 들어가려면 다섯번의 문세(門稅)를 내야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중 첫번째가 이 관문동에 있는 과천 동헌 앞이었다. 그 외에 남태령 고개, 노량진, 남대문, 육조에 이르기까지 불법적인 통과세를 거둬가는 자들이 많았다. 현재 관문동에는 정부 제2청사가 들어와 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경기도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경기과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서구

    의병장 조헌의 가족이 피난했던 인천 율도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 율도(栗島)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승병 영규 등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후율(後栗) 조헌(趙憲, 1544~1592)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조헌은 이율곡을 좋아해서 후율이란 호를 썼다고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몸종을 시켜 율도에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서 가족과 몸종의 처가를 피신시켰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섬을 율도라 이름 지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인천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인천서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부평구

    배 형국이라 우물을 파면 안되는 인천 항굴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개동(富開洞)에는 항굴(航窟)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항굴은 예전에 대정리와 구산리 사이에 있는 마을이었다. 마을의 형상이 배형국 또는 행주(行舟)형국이라는 명당이라 한다. 그래서 마을에 우물을 파면 배 바닥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아 마을이 가라앉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마을에서 떨어진 곳에 우물을 만들었으나 개화기가 시작되고 집집이 우물을 파기 시작하면서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인천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인천부평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광주시

    사찰이 천주교 성당으로 변한 경기도 광주시 천진암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우산리 천진암은 천주교 성지로 알려진 땅이름이다. 조선조 때 천진암(天眞庵)이란 암자가 있었는데, 조선 후기에 천주교도들이 박해를 피해 이 암자에 모여들었고, 여기서 기도를 올리고 천주교 관련 공부를 했다. 그 중에는 정약용 형제들도 있다. 스님들이 천주교인을 숨겨 주었다가 희생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현재는 천주교의 성지가 되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경기도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경기광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연수구

    사신 가는 임을 세 번 부르던 고개, 인천 삼호현
    인천시 남구 판교동 삼호현(三呼峴)은 옛날 백제 시대 중국에 사신으로 가는 임을 세 번 불렀던 고개라는 지명이다. 이 고개에 여신선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어떤 중이 이 고개를 넘다가 술을 먹고 싶다고 얘기하자 신선이 나타나 술을 주고 사라졌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인천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인천광역시문화원연합회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용인시

    몽고 장수 살리타이가 죽은 용인 살장(殺將)터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남사면 아곡리 살장(殺將)터는 몽고 장수 살리타이가 죽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고려 고종 19년 (1232) 12월 몽고군이 고려를 침략해 왔다. 몽고군은 용인시까지 침범했으나 우리 의병들이 몽고 장수 살리타이의 눈을 화살로 맞춰 전사시키고 몽고군을 물리쳤다.  
    • 테마 : 생활문화 >지명유래
    • 이야기주제 : 경기도 지역의 지명유래
    • 관련문화원 : 경기용인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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