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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발자취, 성과 옛 도로

역사문화유산

선조들의 발자취, 성과 옛 도로

성은 예전에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ㆍ돌 등으로 구축한 방어시설로 높이 쌓아 만든 담, 또는 그런 담으로 둘러싼 구역을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지가 70%에 달하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산성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 도로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와 공공기관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교통 통신 기관의 집합인 역도 등을 통해 각 지방의 특징을 소개한다. 성과 옛 도로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삶과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충남 >공주시

    이인도의 중심 이인역

    이인역은 조선시대에 충청도 공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이인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공주의 서남부 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이인역은 한양과 호남지방을 잇는 육로 교통의 요충지로 기능했으며 9개의 역을 관할했다.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었던 이인역은 1894년 동학 농민군이 관군 및 일본군과 맞서 싸웠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있던 역의 이름을 따서 근대에 면의 이름이 변경되었을 정도로, 과거 이인역의 기능과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은평구

    한양에서 개풍까지 연결된 연서도(延曙道)

    영서도라 불리기도 하는 연서도는 조선 시대 경기도에 설치되었던 역도 가운데 하나로, 한양에서 개풍까지 이어지던 의주로에 속했다. 영서역이 연서역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역도의 이름도 변경되었다. 연서도에는 찰방역을 포함하여 벽제역·마산·동파역·청교역·산예역·중련역 등 모두 7개의 역이 있었다. 양재도 및 평구도와 더불어 전국의 모든 길이 한양으로 모여드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역도를 관리하던 찰방을 임명할 때에도 매우 신중하게 선발해서 보냈다고 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함안군

    대량의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함안읍 가야읍 소재지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2.5km 떨어진 해발 139.4m의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 1.4km 정도의 삼국시대의 석축성이다. 조남산성(造南山城)이라고도 한다. 내․외벽은 모두 돌로 쌓은 협축식이고 신라산성의 특징을 보이는 외벽보강 구조물, 연화문막새 등의 기와류, 6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명문목간, 목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아라가야가 멸망한 직후 신라에 의해서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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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봉화군

    퇴계 이황이 걸었던 낙동강 예던길

    경상북도 봉화군과 안동시의 낙동강변에 걸쳐 있는 예던길은 이황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숙부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지금의 청량정사)까지 낙동강변을 오르내리던 길이다. ‘퇴계오솔길’로 불리기도 한다.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봉화의 청량산까지 50리 길을 거닐었기 때문에, 예던길의 구간은 안동에서부터 낙동강을 따라 봉화의 청량산 자락까지 이어진다. 봉화군 명호면의 구간이 보통 낙동강 예던길로 알려져 있으며, 그보다 남쪽의 안동시 도산면 구간은 퇴계오솔길로 나뉘어 불리기도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낙동강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을 따라 옛 선비들이 걷던 예던길을 복원하여 낙동강의 생태경관 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체험 코스를 조성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봉화문화원 ,안동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임진왜란 이후 산성론과 읍성론의 대결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왜적과 청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여러 가지 성건설 이론이 나왔다. 첫 번째는 ‘산성유익설’으로 대표적 주창자는 유성룡이다. 그는 산성의 이로움이 옛날에도 그러하였으며 권율의 행주 승첩도 먼저 산 위를 점거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실학자 유형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산성부당설’을 논증하면서 “대체로 성이란 지방의 읍에다 구축하는 것이 옳다”고 읍성론을 주장하였다. 이는 읍에 성을 짓고 군․관․민이 하나가 되어 항산하면서 적의 침략을 맞받아치는 전략이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성곽의 개념과 변천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청도군

    도적을 피해 8명의 행인이 서로 도우며 넘던 팔조령길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을 잇는 팔조령은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동래를 연결하는 가장 짧은 구간에 포함되었다. 고갯길이 험하고 도적이 많아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고갯길을 넘었으며, 화물은 소나 당나귀 등의 짐승을 이용해서 실어 날랐다. 팔조령 옛길의 동쪽으로 신작로가 개통되었고 1998년에는 팔조령을 관통하는 팔조령 터널이 개통되었다. 팔조령 옛길을 넘던 사람들은 팔조리 성황당에서 무사히 팔조령을 넘을 수 있도록 기원했다. 지금은 팔조령 옛길의 일부 구간이 단절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청도문화원 ,달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보은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남원시

    경상감영에서 전라감영으로 이동할 때 넘었던 팔량재길

    팔랑치로 더 잘 알려진 팔량재는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자리한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는 길은 조선시대에 공공업무를 수행하던 역로인 오수도와 사근도의 경계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과 물자를 통제하는 팔량관이 설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 통과하고자 했던 길이다. 이 고개를 넘는 길은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서 지금의 전라남도로 이동할 때에 이용하던 구간이다. 지금은 국도 제24호선이 남원에서 여원재를 지나 운봉을 통과하여 팔량재를 넘어 함양으로 연결된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남원문화원 ,함양문화원 ,장수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하동군

    지리산을 넘어 섬진강과 내륙을 연결하던 벽소령길

    지리산을 남북으로 통과하는 벽소령은 경상남도 하동군과 함양군의 경계이다. 내륙에 자리한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은 소금을 구하기 위해 남해안 소금이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하역되는 화개장이나 하동장에서 소금을 구입한 후 벽소령을 넘어 마천면으로 돌아왔다. 당시 소금을 지고 걷던 길은 소금길이라 불리며, 소금을 짊어진 사람들이 걷던 소금쟁이능선이라 불리는 구간도 있다. 경상남도 사람뿐만 아니라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사람들도 섬진강에서 소금을 구입하기 위해 벽소령 옛길을 넘어 다녔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하동문화원 ,함양문화원 ,남원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안양시

    환관이 덕을 베풀었다는 인덕원으로 향하던 인덕원길

    지금의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인덕원은 조선시대에 여행자들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원이 있던 곳이다. 숙박업소가 있었을 만큼 인덕원은 주변 지역으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잘 발달해 있었다. 특히 인덕원은 남쪽의 수원과 북쪽의 과천 및 한양으로 이어지던 길인 삼남길이 통과하던 지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정조가 화성에 있던 현륭원을 참배할 때에 자주 통과하던 길로 이용되기도 했다. 인덕원에 살던 사람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인덕원 옛길을 따라 한양에 와서 장작을 팔았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안양문화원 ,의왕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정선군

    비행기를 탄 것처럼 높은 비행기재와 성마령길

    비행기재는 예로부터 마전치 또는 마전령이라 불렸다. 강원도 평창군과 정선군을 연결해주는 고갯길이었다. 마전령의 북쪽에는 성마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성마령을 넘어 정선으로 드나들다가 조선 후기 들어 고도가 낮은 마전령을 이용하게 되었다. 마전령에 신작로가 개설되고 자동차 통행이 가능해지면서 성마령 옛길의 쓰임새는 줄었다. 마전령은 비행기재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험준한 고갯길을 대신해 고개의 아래로 비행기재 터널이 개통되었다. 정선과 평창 지방에서 널리 퍼진 아라리는 성마령을 넘던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였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정선문화원 ,평창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철원군

    강원도 원산에서 한양으로 북어가 이동하던 삼방간로

    조선시대에 한양과 강원도 북부의 해안가를 오가던 북어 장수들은 공용 도로인 철령을 넘는 것보다 빠르게 한양으로 물건을 옮길 수 있는 길을 개척했다. 그 길은 철령의 서쪽에 있던 삼방 고개를 넘는 길이었다. 한양에서 의정부와 포천을 지나 철원을 통과한 후 철령을 넘는 길이 대로였다면, 한양에서 연천을 지나 철원을 통과한 후 삼방 고개를 넘는 길은 간로였다. 삼방간로를 통한 통행량이 증가하면서 조선 정부에서도 삼방 고개에 관문을 설치했다. 골짜기와 평지로 이루어진 삼방간로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원산으로 이어지는 경원선 철로가 통과하는 구간이 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양주문화원 ,연천문화원 ,철원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진안군

    아흔아홉 굽이를 돌던 진안의 곰티재길

    남한의 지붕이라 불리는 진안고원은 주변 지역에 비해 해발고도가 높은 편이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진입하는 길은 급격한 경사를 올라야 한다. 전주와 진안을 잇는 곰티재는 조선시대에 평야지대와 산간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다. 서해의 수산물이 이동하는 구간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는 진안으로 진입한 일본군이 전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곰티재를 넘다가 우리나라의 군사들과 웅치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험준한 고갯길을 대신해 신작로가 개설되고 근대와 현대에 들어 또 다른 자동차 도로가 개통하면서 곰티재 옛길은 역사의 길로 남아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진안문화원 ,완주문화원 ,전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금천문화원 ,수원문화원 ,화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제각각 다른 사연을 간직한 옛길

    한 장소와 다른 장소를 연결시켜 주는 길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해주고, 부족한 물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준다. 우리나라의 길은 시간의 흐름속에서 다듬어지고 확장되어 이제는 자동차의 통행에도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걸어서 다니던 옛날에 선조들이 이용했던 길은 아무리 사소할 지라도 무언가 사연을 품고 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사연을 간직한 길을 걸으면서 현대와 과거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한다. 산지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사연을 간직한 옛길은 고갯길이 많고, 생필품을 운송하는데 사용되었던 옛길도 여럿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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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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