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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발자취, 성과 옛 도로

역사문화유산

선조들의 발자취, 성과 옛 도로

성은 예전에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ㆍ돌 등으로 구축한 방어시설로 높이 쌓아 만든 담, 또는 그런 담으로 둘러싼 구역을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지가 70%에 달하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산성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 도로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와 공공기관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교통 통신 기관의 집합인 역도 등을 통해 각 지방의 특징을 소개한다. 성과 옛 도로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삶과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경주시

    적을 방비하는 울타리, 신라 방어체계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중 유일하게 도성을 쌓지 않은 신라는 왕궁과 경주 중심부를 보호하기 위한 독자적인 방어체제를 확립하였다. 왕궁인 월성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에 도시가 형성되었을 것이므로 주변에 산재한 산지를 이용한 산성을 구축하여 방어의 거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리하여 시기를 달리하면서 남산토성, 명활산성, 양동리산성, 서형산성, 남산신성, 고허성, 북형산성, 부산성, 관문성 등을 쌓아 북방에서 쳐들어오는 적과 왜적을 방비하는 울타리로 도성 방어체계를 완성하였다.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양양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물자가 오가던 구룡령 옛길
    구룡령은 강원도의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길은 산세가 부드러워 옛날부터 영동지방 사람들이 내륙으로 갈 때 많이 이용하던 길이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은 물론, 지게꾼과 가마꾼도 구룡령 옛길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일제는 동해안의 물자를 빼앗아 가고자 1908년 새 도로를 개통하면서 신작로가 구룡령 옛길과 노선을 중복하지 않아 구룡령 옛길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조선 시대와 근현대의 자취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구룡령 옛길은 역사・문화와 자연경관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제천시

    경상도 총각과 충청도 처녀의 사랑을 간직한 박달재 옛길
    박달재는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면과 백운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제천과 충주를 연결하던 옛길이다. 박달재는 충청도 제천에서 한양으로 가던 관리들이 이용하던 길이었으며, 장사꾼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경상도 총각 박달과 충청도 처녀 금봉이의 애닲은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는 박달재 옛길은 길도 험하고 산짐승에 도적 떼까지 많아 옛날에는 박달재 너머로 시집가면 다시는 친정을 구경하기 힘들어 새색시들이 눈물을 쏟으며 넘었다고 한다. 2000년 12월에 박달재터널이 완전히 개통되면서 구불구불한 박달재를 넘을 일이 많지 않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광주시

    왕과 보부상들이 거닐었던 남한산성 옛길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를 마주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남한산성은 정기시장이 열리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관청을 드나들던 사람들도 자주 이용하던 경로였다. 남한산성을 통과하는 길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여주에 있는 왕릉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들이 이동하던 거둥길로도 이용되었다. 지방에서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도 남한산성 길을 이용했다.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길이다.

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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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광주시

    경안도의 중심 경안역
    경안역은 조선 시대 경기도 동남부의 역로를 관할하던 경안도의 중심이 되는 역이었다. 당시 경안도는 경안역을 중심으로 지금의 경기 동남부 일대의 교통로를 관할했다. 고려 시대에는 광주도(廣州道)에 속했다가 조선 시대에 경안도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말에는 공민왕이 신하들과 함께 경상도 안동으로 피신하다가 경안역에 머물렀으며, 조선 시대에는 이괄의 난이 발생한 후 이괄이 죽은 곳이기도 하다. 경안역의 위치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경기도 광주시 역동이며, 경안역 터 남쪽에는 경강선 전철의 경기 광주역이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역도를 관장하던 찰방역
    • 관련문화원 : 경기광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강릉시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잇던 대관령 옛길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4대 고개 가운데 하나이다. 고개가 너무 높아 고개 위 겨우 석 자가 하늘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높고 험준했다. 오래전부터 대관령은 영동지방 사람들이 내륙으로 드나드는 관문이었고, 대관령 옛길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이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잇는 교역로이자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새롭게 개통한 영동고속도로가 별도의 구간으로 개설되면서 도보로 이동하던 옛길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강원강릉문화원 ,강원평창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청주시

    청주의 옛이름을 단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7.5km에 청주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91.2m 상당산 위에 쌓은 포곡식 석성이다. 둘레가 4.2km, 높이 3~4m, 내부면적 220,000평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산성의 나라 각 지방의 성곽
    • 관련문화원 : 충북청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양양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물자가 오가던 구룡령 옛길
    구룡령은 강원도의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길은 산세가 부드러워 옛날부터 영동지방 사람들이 내륙으로 갈 때 많이 이용하던 길이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은 물론, 지게꾼과 가마꾼도 구룡령 옛길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일제는 동해안의 물자를 빼앗아 가고자 1908년 새 도로를 개통하면서 신작로가 구룡령 옛길과 노선을 중복하지 않아 구룡령 옛길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조선 시대와 근현대의 자취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구룡령 옛길은 역사・문화와 자연경관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강원양양문화원 ,강원홍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정읍시

    남도 사람들이 한양길을 시작하던 노령 옛길
    내장산의 서쪽에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 역할을 하는 노령은 지금의 전라남도 사람들이 한양으로 출발할 때 마주했던 첫 번째 길목이었다. 조선시대는 물론 현대의 사람들도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노령을 넘어야 한다. 노령 옛길은 고갯길을 걸어서 넘어가던 사람들이 만들었지만,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통되면서부터 자동차를 타고 고개를 넘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조선시대에 개통되었던 노령 옛길을 비롯해서, 신작로로 만들어진 장성갈재, 국도 제1호선, 호남선 철도, 호남고속도로, 고속철도 호남선 등이 통과하는 구간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전북정읍문화원 ,전남장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보은군

    신라의 방어 요새, 보은 삼년산성
    삼년산성은 보은읍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어암리와 대야리 및 성주리 사이의 해발 325.5m 오정산 위에 고로봉형으로 쌓은 둘레 약 1,800m의 석성이다. 신라 자비왕 13년(470)에 쌓았으며, 소지왕 8년(486)에 고쳐 세웠다. 『삼국사기』에는 성을 쌓는데 3년이 걸렸기 때문에 삼년산성이라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쪽에서 신라로 들어가는 목구멍의 위치에 있고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로 나아가 치는 거점이 되어 굳세고 단단한 군사적 방어요새였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산성의 나라 각 지방의 성곽
    • 관련문화원 : 충북보은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광주시

    세계가 인정한 산성도시,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672년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6년(인조 4)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임금과 조정이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였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하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 : Outstanding Universal Value)를 바탕으로 한 등재기준 중 기준(ii)과 기준(vi)에 부합하는 문화유산이다.남한산성은 다른 산성들과는 달리 산성 내에 마을과 종묘·사직을 갖추었다. 즉 조선의 임시수도로서 역할을 하였다. 남한산성은 자연지세, 건축구조,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성곽과 산성도시는 모두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비물질적인 전통에서 보면 읍치로서의 문화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민속들이 오늘까지 남아 있다. 민속 경관 요소에 해당하는 제례, 불교 의식, 전통 음식과 가양주, 비석, 누정, 자연환경 등은 주민들이 대대로 전승하여 오고 있고 전체적으로 보호책을 마련하고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세계문화유산
    • 관련문화원 : 경기광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광주시

    시대마다 유행타는 남한산성 축성 기술
    신라시대에 주장성(晝長城)으로 불린 남한산성은 672년(문무왕 12)에 쌓았으며 주위가 4천 3백 60보였다. 4,360보를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8km 정도 된다. 7세기 후반 신라의 발달된 축성기술이 총동원되었을 것이다.주장성을 쌓는데 사용된 석재는 현지에서 조달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운반하여 왔다. 성문은 여타의 신라 산성처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懸門式)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성내에는 발달된 축성기술에 걸맞는 병영과 창고 등 각종 건물이 건설되었다. 그중 하나가 행궁 발굴과정에서 확인된 통일신라시대의 대형건물지이다.조선시대에 들어 1624년(인조 2년) 수어사 이서(李曙)는 주장성의 옛터를 따라서 남한산성을 전면 수축하는 공사를 단행하였다. 병자호란 이후 1638년(인조16) 남한산성에 대한 대대적인 수축을 단행한다. 이후 숙종과 정조대에 대대적인 수축이 이루어진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세계문화유산
    • 관련문화원 : 경기광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수원시

    한양에서 부산으로 이어지던 동래로(東萊路)
    동래로는 조선시대에 수도인 한양에서 충청도를 지나 경상도 동래 지방으로 연결되던 간선도로로서, 영남지방으로 향하는 도로라는 데에서 영남대로라고 불리기도 한다.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내륙에 위치하여 전략상 중요한 교통로였으며 정치·군사적 기능도 함께 지니고 있었다. 이 길은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큰 꿈을 품고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지나던 ‘과거길’ 이었고, 다른 나라의 문물이 전파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
    • 관련문화원 : 부산동래문화원 ,충북충주문화원 ,경북상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수원시

    한양에서 수원 화성으로 향하던 수원로(水原路)
    수원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수원 화성을 거쳐 융릉(현륭원)으로 이어지던 간선도로이며, 수원별로(水原別路)라 불리기도 했다. 건릉과 융릉(현륭원)은 정조 및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무덤이다. 정조가 아버지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행차하던 도로가 바로 수원로이다. 한양에서 수원으로 이어지던 남태령-과천의 험한 구간을 이용하지 않고, 한강의 노들나루에서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과 안양을 거쳐 수원으로 향하는 다른 길을 새로 개통하였다. 일본이 1901년 경부선 철도 노선을 계획하면서 안양을 지나 지지대고개를 뚫고 팔달산 뒤쪽을 관통하는 옛 수원로를 따르는 노선을 구상했지만 수원의 주민들의 반대로 지금과 같은 노선을 따라 경부선이 통과하게 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
    • 관련문화원 : 경기수원문화원 ,경기의왕문화원 ,경기화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종로구

    한양에서 중국으로 뻗은 의주로(義州路)
    의주로는 조선 시대 간선도로로 한양에서 의주로 연결되던 중요한 도로였으며, 제1로에 해당했다. 조선 시대의 가장 중요한 교통로이며 교통 통신의 기능을 모두 지녔던 도로이다. 교통 통신의 기능이 강했던 의주로는 지방을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는 물론 국방상의 관점에서 보면 정치적 기능이나 군사적 기능이 더 강했던 도로이다. 의주로는 전쟁과 피난 등 민족의 애환이 서린 길이기도 하고, 남과 북을 하나로 이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
    • 관련문화원 : 서울중구문화원 ,경기고양문화원 ,경기파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광주시

    왕과 보부상들이 거닐었던 남한산성 옛길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를 마주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남한산성은 정기시장이 열리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관청을 드나들던 사람들도 자주 이용하던 경로였다. 남한산성을 통과하는 길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여주에 있는 왕릉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들이 이동하던 거둥길로도 이용되었다. 지방에서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도 남한산성 길을 이용했다.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길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경기광주문화원 ,경기성남문화원 ,경기하남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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