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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발자취, 성과 옛 도로

역사문화유산

선조들의 발자취, 성과 옛 도로

성은 예전에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흙ㆍ돌 등으로 구축한 방어시설로 높이 쌓아 만든 담, 또는 그런 담으로 둘러싼 구역을 말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산지가 70%에 달하는 지형적 특징 때문에 산성의 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옛 도로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와 공공기관의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교통 통신 기관의 집합인 역도 등을 통해 각 지방의 특징을 소개한다. 성과 옛 도로 이야기를 통해 선조들의 삶과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강화군

    고려 왕조의 생명선,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고종 20)) 해안 방어를 위해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은평구

    한양에서 개풍까지 연결된 연서도(延曙道)

    영서도라 불리기도 하는 연서도는 조선 시대 경기도에 설치되었던 역도 가운데 하나로, 한양에서 개풍까지 이어지던 의주로에 속했다. 영서역이 연서역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역도의 이름도 변경되었다. 연서도에는 찰방역을 포함하여 벽제역·마산·동파역·청교역·산예역·중련역 등 모두 7개의 역이 있었다. 양재도 및 평구도와 더불어 전국의 모든 길이 한양으로 모여드는 중요한 통로였기 때문에, 역도를 관리하던 찰방을 임명할 때에도 매우 신중하게 선발해서 보냈다고 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함안군

    대량의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함안읍 가야읍 소재지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2.5km 떨어진 해발 139.4m의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 1.4km 정도의 삼국시대의 석축성이다. 조남산성(造南山城)이라고도 한다. 내․외벽은 모두 돌로 쌓은 협축식이고 신라산성의 특징을 보이는 외벽보강 구조물, 연화문막새 등의 기와류, 6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명문목간, 목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아라가야가 멸망한 직후 신라에 의해서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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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거제시

    왕들의 유배지, 거제 둔덕기성

    둔덕면과 사등면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우봉산 줄기 야산 해발 326m에 위치한 둔덕기성은 평면 타원형의 테뫼식산성으로 장축방향은 북동~남서향이다. 전체 규모는 남북 길이 약 200m, 동서 너비 약 125m로 산성의 전체 둘레는 약 526m이다. 둔덕기성(屯德岐城)은 7세기 신라시대 축조수법을 알려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산성의 나라 각 지방의 성곽
    • 관련문화원 : 거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강진군

    제주와 한양의 건널목이었던 강진과 해남

    육지와 제주도를 연결하던 바닷길은 여러 갈래가 있었다. 그 가운데 한양과 제주를 잇는 바닷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지금의 전라남도 강진군의 마량 포구에서 제주도로 이어지는 길과 전라남도 해남군의 관두포에서 제주도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는 강진의 마량 포구를 통해 사람과 물자가 이동했지만, 왜구가 출몰하면서 강진을 통하던 제주항로는 해남의 관두포로 이동했다. 관두포는 제주에서 파견된 관원이 근무했다. 이들 두 갈래 길은 제주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던 사람들이 이동한 길이기도 하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강진문화원 ,해남문화원 ,제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통영시

    한양에서 경상도 서부로 향하던 통영로(統營路)

    통영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한강을 지나 충청도 및 전라도를 경유하여 경상도 서부로 이어지던 간선도로로 통영별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의 문물이 통영으로 모이고 흩어지는 통로이기도 했다. 통영로의 종점인 통영은 임진왜란 이후 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수군을 관할하던 삼도수군통제영(三島水軍統制營)이 있던 수군의 본거지였다. 통제사가 새로 부임하거나 떠날 때 한양과 통제영을 오가던 길이라 하여 통제사길로 불리기도 했다.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은 이 옛길을 통해 서로 어울리고 함께 생활을 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
    • 관련문화원 : 통영문화원 ,남원문화원 ,함양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제주 >서귀포시

    제주도로 귀양간 김정희의 추사 유배길

    조선시대의 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는 윤상도의 상소에 연루되어 사형을 면하는 대신 제주도에서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전라남도 해남군의 관두포에서 뱃길을 이용해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의 화북포구로 도착한 후 80리 길을 걸어서 대정읍까지 이동했다. 제주도와 육지를 연결하는 뱃길은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의 마량포구를 주로 이용했지만, 관원들은 해남군 화산면에 있던 관두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주도 대정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김정희가 머물렀던 곳은 추사 적거지로 조성되었으며, 그 주변에는 3개 코스의 추사 유배길이 만들어져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서귀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제주 >제주시

    제주도로 귀양간 최익현의 면암 유배길

    조선시대의 지식인이자 선비인 면암 최익현은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득권층의 반대로 1873년 제주도에 유배되었다. 호남대로를 따라 전라도 해남의 관두포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을 건너 제주도의 조천 포구에 도착했다. 조천 포구에 내려 제주 관아 근처에서 유배 생활을 시작했다. 유배 생활이 끝나고 유배 생활을 하던 집에서 한라산으로 향하던 구간에서 첫 번째로 도착한 방선문 계곡에 이르는 5.5㎞ 구간은 2012년 면암 유배길로 재탄생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제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무안군

    한양에서 바다 건너 제주도 향하던 제주로(濟州路)

    제주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땅끝인 전라남도 해남군을 지나 제주도까지 연결되던 옛길이다. 호남로는 남도의 해양문화를 한양으로 옮기거나 왜구의 침략로로 이용되기도 했고, 때로는 제주도나 전라남도의 외딴 섬으로 귀양가는 유배길로 이용되기도 했다. 제주 사람들이 배를 타고 육지에 도착해 과거 시험을 보거나 물건을 팔기 위해 한양으로 향할 때에도 이 길을 이용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던 간선도로
    • 관련문화원 : 완주문화원 ,해남문화원 ,제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함안군

    대량의 목간이 출토된 성산산성

    함안읍 가야읍 소재지에서 남남동 방향으로 약 2.5km 떨어진 해발 139.4m의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있는 둘레 1.4km 정도의 삼국시대의 석축성이다. 조남산성(造南山城)이라고도 한다. 내․외벽은 모두 돌로 쌓은 협축식이고 신라산성의 특징을 보이는 외벽보강 구조물, 연화문막새 등의 기와류, 6세기 중반으로 추정되는 명문목간, 목제품 등이 출토되었다. 따라서 이 산성은 아라가야가 멸망한 직후 신라에 의해서 축성된 것으로 추정한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산성의 나라 각 지방의 성곽
    • 관련문화원 : 함안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봉화군

    퇴계 이황이 걸었던 낙동강 예던길

    경상북도 봉화군과 안동시의 낙동강변에 걸쳐 있는 예던길은 이황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숙부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지금의 청량정사)까지 낙동강변을 오르내리던 길이다. ‘퇴계오솔길’로 불리기도 한다.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봉화의 청량산까지 50리 길을 거닐었기 때문에, 예던길의 구간은 안동에서부터 낙동강을 따라 봉화의 청량산 자락까지 이어진다. 봉화군 명호면의 구간이 보통 낙동강 예던길로 알려져 있으며, 그보다 남쪽의 안동시 도산면 구간은 퇴계오솔길로 나뉘어 불리기도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낙동강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을 따라 옛 선비들이 걷던 예던길을 복원하여 낙동강의 생태경관 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체험 코스를 조성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봉화문화원 ,안동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임진왜란 이후 산성론과 읍성론의 대결

    16세기 말과 17세기 초 왜적과 청나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쟁경험에 기초하여 여러 가지 성건설 이론이 나왔다. 첫 번째는 ‘산성유익설’으로 대표적 주창자는 유성룡이다. 그는 산성의 이로움이 옛날에도 그러하였으며 권율의 행주 승첩도 먼저 산 위를 점거하였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하였다.

    그러나 실학자 유형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산성부당설’을 논증하면서 “대체로 성이란 지방의 읍에다 구축하는 것이 옳다”고 읍성론을 주장하였다. 이는 읍에 성을 짓고 군․관․민이 하나가 되어 항산하면서 적의 침략을 맞받아치는 전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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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성과 성곽 >성곽의 개념과 변천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청도군

    도적을 피해 8명의 행인이 서로 도우며 넘던 팔조령길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과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을 잇는 팔조령은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동래를 연결하는 가장 짧은 구간에 포함되었다. 고갯길이 험하고 도적이 많아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고갯길을 넘었으며, 화물은 소나 당나귀 등의 짐승을 이용해서 실어 날랐다. 팔조령 옛길의 동쪽으로 신작로가 개통되었고 1998년에는 팔조령을 관통하는 팔조령 터널이 개통되었다. 팔조령 옛길을 넘던 사람들은 팔조리 성황당에서 무사히 팔조령을 넘을 수 있도록 기원했다. 지금은 팔조령 옛길의 일부 구간이 단절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청도문화원 ,달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보은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남원시

    경상감영에서 전라감영으로 이동할 때 넘었던 팔량재길

    팔랑치로 더 잘 알려진 팔량재는 경상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에 자리한 고개이다. 이 고개를 넘는 길은 조선시대에 공공업무를 수행하던 역로인 오수도와 사근도의 경계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사람과 물자를 통제하는 팔량관이 설치되었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왜군이 경상도에서 전라도로 진출하기 위해 통과하고자 했던 길이다. 이 고개를 넘는 길은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서 지금의 전라남도로 이동할 때에 이용하던 구간이다. 지금은 국도 제24호선이 남원에서 여원재를 지나 운봉을 통과하여 팔량재를 넘어 함양으로 연결된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성과옛도로
    • 이야기주제 : 옛 도로 >사연을 품고 있는 옛길
    • 관련문화원 : 남원문화원 ,함양문화원 ,장수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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