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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에서 찾는 교훈, 유교

역사문화유산

역사와 삶에서 찾는 교훈, 유교

유교는 옛날 중국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도덕 사상. 인 사상을 바탕으로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중시하는 사상이다. 우리나라의 훼손되지 않은 서원의 이야기를 통해 성리학 정신으로 살아간 주요 인물과 사건들을 알아 보고, 유학의 사상과 문화를 소개한다.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조선 유학의 아버지, 이이

    이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서, 자는 숙헌(叔獻)이고 호는 율곡(栗谷)이다. 이이는 지각설의 전통과 주자학의 자산을 완전히 소화해 낸 뒤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이 체계를 근간으로 하여 성립한 율곡학파는 이후 3백년간 지속되면서, 예송논쟁, 호락논변, 명덕주리주기논쟁 등을 벌이며 조선후기 유학을 이끌어갔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정읍시

    태산에 유풍을 일으킨 현자들의 발자취

    대부분의 서원이 민가와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지역민이 주축이 돼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태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수령으로 왔던 최치원과 신잠의 공덕을 기려 생사당을 지었고 둘을 함께 합사해 ‘태산사’라 이름하였다. 무성서원은 태산사가 지역민의 향학당 자리로 옮겨져 서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성서원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지역민과 수령들이 서원을 통해 어떻게 유교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안동시

    이황의 도산서당을 모체로 한 도산서원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이듬해인 1546년 이황은 병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한다. 이때부터 호를 물러날 퇴, 시냇물 계, 퇴계(退溪)라 하고 고향에서 살았다. 토계 인근에 정자와 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도덕과 예를 실천하고 가르치며 군자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도산서원은 이런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던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서원이었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함양군

    함양의 유림이 뜻을 모아 세운 남계서원

    함양은 일두 정여창의 고향으로, 남계서원은 고을 사림들이 정여창을 흠모하여 세운 서원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자 글과 예를 숭상하는 풍속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들은 남계서원을 정몽주를 배향하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안향을 기리는 소수서원과 견줄 만큼 정여창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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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 이황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그가 태어나고 7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황은 20세에 『주역』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주역』을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연구하였다. 또 이황은 고봉 기대승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학문적인 논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대승과 이황은 장장 12년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면서 학문을 논했는데, 특히 8년 동안 두 사람이 편지로 주고받은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유명하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에 퇴계학파(退溪學派)라는 줄기를 이루게 된다. 그의 사상은 후에 일본 근대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서원향교 배향인물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영주시

    서원의 가르침은 반드시 이곳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주세붕이 왜 이곳에 서원을 세웠는지 아는 이는 드물다. 이곳 풍기에는 ‘순흥’이라는 마을이 편입되어 있었는데, 송대 성리학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문성공 안향의 고향이었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이곳 풍기에 군수로 내려오면서 ‘유교의 가르침은 반드시 이곳에서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라는 생각에서 서원을 세우게 되었다. 소수서원에서 소수(紹修)는 “이미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 닦게 하다"라는 뜻이 있다. 소수서원을 시작으로 많은 서원이 세워지고 유학의 가르침은 다시 이어졌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훼철되지 않은 서원 >소수서원
    • 관련문화원 : 영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함양군

    산림처사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간 개암 강익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하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해 자기를 수양하는 것을 군자 됨의 하나로 여겼다.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을 은일지사 혹은 산림처사라 하는데, 이들은 관직을 얻어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마다하고 자신을 수향하는 위기지학에 몰두하였다. 개암 강익도 고향 함양에서 정여창의 도를 후대에 전하며 성리학에만 뜻을 두고 산림처사로 지냈다. 당시 영남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남명 조식이 은일지사로 지역의 학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강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훼철되지 않은 서원 >남계서원
    • 관련문화원 : 함양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의정부시

    박태보, 임금에게 도리를 간언하다

    박태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상소였다. 상소에 참여한 86명의 관료를 대표해 박태보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기록하였다. 비록 임금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리하면 아니 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임금의 명령을 반대하는 목숨을 건 상소였지만 임금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게 하지 않으려는 신하의 도리로 간언을 한 것이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훼철되지 않은 서원 >노강서원(의정부)
    • 관련문화원 : 의정부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훼철되지 않은 서원 >도동서원
    • 관련문화원 : 달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언변에 능통하나 게을렀던 제자, 재여

    공문십철 중 한 사람인 재여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아(子我)이다.  공자보다 29세가 어렸고 언변에 능했다. 일찍이 제나라에서 벼슬하여 임치 대부가 되었으나 그와 뜻을 같이 하지 않았던 원항에 의해 살해된다. 원항도 공자의 제자이다. 재여는 언변에는 능했지만 공자에게 낮잠으로 인해 꾸짖음을 받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학업에 매진하지 않고 낮잠을 자주 잤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자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 것에 재여의 능통한 언변의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서원향교 배향인물
  • 지역문화이야기

    명명덕 친민 지어지선, 삼강령

    삼강령은 대학에서 제시한 세 가지 강령이다. 명명덕, 친민, 지어지선이 그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각자 선천적으로 밝은 덕이 갖추어져 있는데 이것이 명덕(明德)이다. 스스로 갖추어진 명덕은 기품(氣稟)의 치우침이나 욕심 등 여러 가지 제약요소 때문에 스스로 발휘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약요소를 뛰어넘어 본래 각자 갖추어진 밝은 덕을 다시 밝히라는 것이 명명덕이다. 친민(親民)은 자기수양(自己修養)의 결과를 사회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은 지극히 선한 곳에 이르러 그친다는 의미이다. 인간사회에서 각자의 역할(業)과 그 역할에 걸맞는 덕(德)을 갖추는 일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 사상
  • 지역문화이야기

    송시열

    송시열의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자와 율곡이었다. 송시열은 율곡의 학문을 계승하기 위해 율곡을 정통으로 계승한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고, 이듬해 김장생이 죽자 그 아들 김집(金集)의 문하에 들어갔다. 정치적으로는 1635년 11월에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다. 송시열은 유학의 정맥이 윤휴등에 의하여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생각했고, 주자의 학설을 비판한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윤휴에 대한 송시열의 반감은 훗날 그가 총애하던 제자 윤증과 불화하는 이른바 회니시비라는 노소분당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이 일로 송시열은 정계에서 은퇴하여 청주 화양동으로 다시 은거하였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서원향교 배향인물
  • 지역문화이야기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으로 서주(西周) 초기부터 춘추(春秋) 중기까지의 약 500여 년간, 민간이나 사대부가 창작하였거나 궁중의 의식이나 제사에서 연주된 30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경』은 주로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를 채집한 국풍과, 통치자들이나 지배층에 의해 지어진 시들인 아(雅)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풍(國風)과 소아(小雅)ㆍ대아(大雅) 및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다. 풍은 민간가요라는 뜻인데 '풍'자에 국(國)자를 덧붙여 국풍(國風)이라 한 것은 전국 시대이후로 볼 수 있다. 아(雅)는 청아하다는 뜻과 바르다는 뜻을 지닌 글자인데, 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노래한 것으로 소아와 대아가 있다. 공자도 강조하였듯이 『시경』은 정서함양뿐 아니라 실정을 읊고 공감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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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역경

    역이란 말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문자이전의 시대에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원리를 이미 음양의 부호로 표현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역(易)은 글(經)이 있기 이전 음과 양의 부호인 괘효(卦爻)를 말하며 그 부호에 글을 매단 것이 바로 역경(易經)이라 할 수 있다. 괘효와 괘효사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역경인데 일반적으로 주역(周易)이라 할 때는 이 역경에 공자의 십익(十翼)을 포함해서 일컫는 명칭이다. 복희씨가 팔괘를 짓고 문왕(文王)이 복희씨의 괘를 연역해서 64괘의 괘사를 지었다. 그 후 주공(周公)이 384효의 효사를 지었으며 공자(孔子)가 십익(十翼)을 지어서 주역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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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측은 수오 사양 시비, 사단

    맹자에 의하면 사람은 본성(本性)을 깨닫고 완성할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곧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다. 이 4단(四端)의 마음을 확충시켜 나아갈 때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성을 완성하게 된다. 맹자의 사단설은 사회윤리적 측면으로 적용되어 인정(仁政)론의 기초가 되었다. 맹자의 성선설은 남송(南宋)의 주희(朱熹)에 의해 계승되었고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새로운 사상적 경향이 나타났다. 사단이 발현하는 문제를 이기론(理氣)론과 연관하여 심도 있게 논의했고, 사단이 칠정(七情)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논의했는데, 이를 사단칠정논쟁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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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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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례를 보급한 서인의 영수 김장생

    김장생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사계(沙溪)로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들이 김집(金集)이다. 송익필에게 사서(四書)를 배웠고, 20세 즈음에 율곡 이이의 문하에 들어갔다. 율곡 이이의 문인인 이귀(李貴)와 함께 인조 초반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국가적 의전이나 주요 행사가 있으면 그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그는 난세를 극복하고 유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가례(家禮)』를 보급하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의 예론(禮論)이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례의 규범이 되었다. 그의 문인으로 아들 김집을 비롯해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최명길(崔鳴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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