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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삶에서 찾는 교훈, 유교

역사문화유산

역사와 삶에서 찾는 교훈, 유교

유교는 옛날 중국 공자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도덕 사상. 인 사상을 바탕으로 나라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도를 중시하는 사상이다. 우리나라의 훼손되지 않은 서원의 이야기를 통해 성리학 정신으로 살아간 주요 인물과 사건들을 알아 보고, 유학의 사상과 문화를 소개한다.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조선 성리학 첫 개념논쟁인 태극논쟁의 이언적

    경상북도 경주 출신이며, 본관은 여강[驪江, 여주(驪州)]. 초명은 이적(李迪)이었으나 중종의 명으로 언(彦)자를 더하였다. 그는 1517년 영남지방의 선배학자인 손숙돈(孫叔暾)과 조한보(曺漢輔) 사이에 토론되었던 성리학의 기본쟁점인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에 뛰어들었고, 주희의 주리론적 견해를 바탕으로 두 학자의 견해를 모두 비판하여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혔다. 그가 벌인 태극의 개념에 관한 논쟁은 조선조 성리학사에서 최초의 본격적인 개념 논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학』의 착간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여 『대학장구보유』와 『속대학혹문』을 남겼다.

  • 지역문화이야기

    조선 유학의 아버지, 이이

    이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서, 자는 숙헌(叔獻)이고 호는 율곡(栗谷)이다. 이이는 지각설의 전통과 주자학의 자산을 완전히 소화해 낸 뒤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재구성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철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이 체계를 근간으로 하여 성립한 율곡학파는 이후 3백년간 지속되면서, 예송논쟁, 호락논변, 명덕주리주기논쟁 등을 벌이며 조선후기 유학을 이끌어갔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함양군

    함양의 유림이 뜻을 모아 세운 남계서원

    함양은 일두 정여창의 고향으로, 남계서원은 고을 사림들이 정여창을 흠모하여 세운 서원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자 글과 예를 숭상하는 풍속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들은 남계서원을 정몽주를 배향하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안향을 기리는 소수서원과 견줄 만큼 정여창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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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언변에 능통하나 게을렀던 제자, 재여

    공문십철 중 한 사람인 재여는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아(子我)이다.  공자보다 29세가 어렸고 언변에 능했다. 일찍이 제나라에서 벼슬하여 임치 대부가 되었으나 그와 뜻을 같이 하지 않았던 원항에 의해 살해된다. 원항도 공자의 제자이다. 재여는 언변에는 능했지만 공자에게 낮잠으로 인해 꾸짖음을 받는 대목이 나오는 것을 보면 학업에 매진하지 않고 낮잠을 자주 잤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자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 것에 재여의 능통한 언변의 영향도 있다고 볼 수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서원향교 배향인물
  • 지역문화이야기

    명명덕 친민 지어지선, 삼강령

    삼강령은 대학에서 제시한 세 가지 강령이다. 명명덕, 친민, 지어지선이 그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각자 선천적으로 밝은 덕이 갖추어져 있는데 이것이 명덕(明德)이다. 스스로 갖추어진 명덕은 기품(氣稟)의 치우침이나 욕심 등 여러 가지 제약요소 때문에 스스로 발휘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약요소를 뛰어넘어 본래 각자 갖추어진 밝은 덕을 다시 밝히라는 것이 명명덕이다. 친민(親民)은 자기수양(自己修養)의 결과를 사회화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지어지선(止於至善)은 지극히 선한 곳에 이르러 그친다는 의미이다. 인간사회에서 각자의 역할(業)과 그 역할에 걸맞는 덕(德)을 갖추는 일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 사상
  • 지역문화이야기

    송시열

    송시열의 학문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주자와 율곡이었다. 송시열은 율곡의 학문을 계승하기 위해 율곡을 정통으로 계승한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고, 이듬해 김장생이 죽자 그 아들 김집(金集)의 문하에 들어갔다. 정치적으로는 1635년 11월에 훗날 효종이 되는 봉림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다. 송시열은 유학의 정맥이 윤휴등에 의하여 심하게 훼손되었다고 생각했고, 주자의 학설을 비판한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았다. 윤휴에 대한 송시열의 반감은 훗날 그가 총애하던 제자 윤증과 불화하는 이른바 회니시비라는 노소분당으로까지 비화되었다. 이 일로 송시열은 정계에서 은퇴하여 청주 화양동으로 다시 은거하였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서원향교 배향인물
  • 지역문화이야기

    중국 최초의 시가집, 시경

    『시경』은 중국 최초의 시가집으로 서주(西周) 초기부터 춘추(春秋) 중기까지의 약 500여 년간, 민간이나 사대부가 창작하였거나 궁중의 의식이나 제사에서 연주된 30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시경』은 주로 백성들이 부르던 노래를 채집한 국풍과, 통치자들이나 지배층에 의해 지어진 시들인 아(雅)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국풍(國風)과 소아(小雅)ㆍ대아(大雅) 및 송(頌)으로 이루어져 있다. 풍은 민간가요라는 뜻인데 '풍'자에 국(國)자를 덧붙여 국풍(國風)이라 한 것은 전국 시대이후로 볼 수 있다. 아(雅)는 청아하다는 뜻과 바르다는 뜻을 지닌 글자인데, 주로 국가의 흥망성쇠를 노래한 것으로 소아와 대아가 있다. 공자도 강조하였듯이 『시경』은 정서함양뿐 아니라 실정을 읊고 공감하면서 세상과 소통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책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교재
  • 지역문화이야기

    역경

    역이란 말은 변화한다는 뜻이다. 문자이전의 시대에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원리를 이미 음양의 부호로 표현했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역(易)은 글(經)이 있기 이전 음과 양의 부호인 괘효(卦爻)를 말하며 그 부호에 글을 매단 것이 바로 역경(易經)이라 할 수 있다. 괘효와 괘효사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역경인데 일반적으로 주역(周易)이라 할 때는 이 역경에 공자의 십익(十翼)을 포함해서 일컫는 명칭이다. 복희씨가 팔괘를 짓고 문왕(文王)이 복희씨의 괘를 연역해서 64괘의 괘사를 지었다. 그 후 주공(周公)이 384효의 효사를 지었으며 공자(孔子)가 십익(十翼)을 지어서 주역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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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교재
  • 지역문화이야기

    측은 수오 사양 시비, 사단

    맹자에 의하면 사람은 본성(本性)을 깨닫고 완성할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곧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다. 이 4단(四端)의 마음을 확충시켜 나아갈 때 ‘인의예지’의 네 가지 덕성을 완성하게 된다. 맹자의 사단설은 사회윤리적 측면으로 적용되어 인정(仁政)론의 기초가 되었다. 맹자의 성선설은 남송(南宋)의 주희(朱熹)에 의해 계승되었고 우리나라에 도입된 이후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져 새로운 사상적 경향이 나타났다. 사단이 발현하는 문제를 이기론(理氣)론과 연관하여 심도 있게 논의했고, 사단이 칠정(七情)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도 논의했는데, 이를 사단칠정논쟁이라고 부른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유교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 사상
  • 지역문화이야기

    가례를 보급한 서인의 영수 김장생

    김장생의 본관은 광산(光山) 호는 사계(沙溪)로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들이 김집(金集)이다. 송익필에게 사서(四書)를 배웠고, 20세 즈음에 율곡 이이의 문하에 들어갔다. 율곡 이이의 문인인 이귀(李貴)와 함께 인조 초반의 정국을 서인 중심으로 안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특히 예학(禮學)에 조예가 깊어 국가적 의전이나 주요 행사가 있으면 그에게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 그는 난세를 극복하고 유교 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가례(家禮)』를 보급하였다. 이같은 노력으로 그의 예론(禮論)이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는 모든 의례의 규범이 되었다. 그의 문인으로 아들 김집을 비롯해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최명길(崔鳴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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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예기

    『예기(禮記)』는 『주례(周禮)』, 『의례(儀禮)』와 함께 삼례(三禮)라 한다. 『예기』는 여러 사람이 잡다하게 기록한 것을 모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이 체계가 없으며 편차(編次)의 배열도 질서정연하지 않다. 예기(禮記)는 모두 49편(編)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大學)과 중용(中庸)도 이 가운데 한 편이다. 그 내용은 대체로 중국 고대사회의 생활 의식에 관한 기록이며 개인적 수신에서 국가적 제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우리나라에도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전해진 것으로 보이며 우리의 생활문화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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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유학의 기본교재
  • 지역문화이야기

    기호학파 예학의 체계를 완성한 김집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그는 사계 김장생을 학문적으로 계승하여 일상 속에서 예를 실천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성혼의 문하에서도 배웠으며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등에게 학문을 전하여 기호학파의 형성에 중대한 역할을 하였고, 그의 아버지인 김장생을 비롯해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등과 함께 기호 예학의 체계를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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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학이 관학으로 자리잡은 진한대의 유학

    진한대는 중앙집권적 관료제와 군현제 등 이후 중국 근대까지 이어져온 정치 제도의 골격이 이루어진 시기이다. 또한 유학이 관학이 되면서 이후 유학이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보편적 이념으로 자리하게 된 계기도 이 시기에 닦였다. 진나라에선 유학의 탄압이 이루어졌으나, 단기간에 멸망하면서 뒤를 이은 한나라에선 황노사상이 발달했다. 노자의 무위 정치를 주장하는 사상이다. 한무제(武帝)에 이르러 중앙집권화 되면서 유학이 새로운 국가 지도 이념이 되었고, 오경박사 등이 설치되며 유학이 새로운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부상하였다. 이 시기에 백가의 여러 이론을 흡수하면서 천인상관설과 음양오행설이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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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서원 ·향교의 이해를 위한 유학 개괄 >중국 유학의 시대적 전개
  • 지역문화이야기

    한국 유학을 대표하는 학자, 이황

    퇴계(退溪) 이황(李滉)은 그가 태어나고 7개월밖에 되지 않았을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황은 20세에 『주역』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후 『주역』을 손에서 놓지 않고 깊이 연구하였다. 또 이황은 고봉 기대승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학문적인 논쟁을 벌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기대승과 이황은 장장 12년에 걸쳐 편지를 교환하면서 학문을 논했는데, 특히 8년 동안 두 사람이 편지로 주고받은 사칠논변(四七論辨)은 유명하다.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에 퇴계학파(退溪學派)라는 줄기를 이루게 된다. 그의 사상은 후에 일본 근대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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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제자이자 정치가, 염구

    노나라 사람으로 자는 자유(子有)인데 ‘염유(冉有)’라고 더욱 잘 알려져 있다. 공자보다 29세 연하이다. 공자의 ‘구는 물러서려하므로 나아가게 하고 유는 사람을 이기려하는 고로 물러서게 한 말이다.’라는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신중한 성격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정사(政事)에 밝았으며 병부(兵賦)를 다스리는 일에 뛰어났다. 노나라가 제나라에게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가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 되었을 때 재정(財政)의 확충을 위해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여 공자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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