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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서구 근대가 일제 강점기 식민지 근대, 해방기, 산업화 등의 굴절 과정을 거쳐 한국의 근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각 시기별로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과 음식, 사람들의 생활방식 등 시대별로 한국인에게 남긴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거제시

    일제강점기 대량생산된 마른멸치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화순군

    고택에서 움튼 예술혼, 화순 오지호 생가

    오지호 화백은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화가, 교육자, 미술이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한국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목이다. 그가 태어난 전라남도 화순의 고택은 1800년대에 지어졌다. 안채 사랑채, 화실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주의적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일본 총독부의 탄압을 받아 한때 고향 집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기도 했다. 생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2005년 개관한 오지호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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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충북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죽향초등학교는 1905년 사립 창명학교로 시작되었다. 범재 김규흥이 설립한 창명학교는 일제의 학교령에 따라 옥천공립보통학교가 되었고, 1941년 죽향초등학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는 보통학교 시절이던 1936년 건립되었다. 이후 이 건물은 나무 비늘판벽에 함석지붕을 올린 교실로 60년간 쓰였다. 현재 구 교사는 옥천교육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 ‘향수’를 쓴 정지용이 이 학교 4회 졸업생이고, 육영수가 27회 졸업생이다. 가수 김현식이 1960년대 4년간 죽향초등학교에 다녔다.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는 졸업생과 옥천 사람들에게 ‘차마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을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의 산실 학교
    • 관련문화원 : 옥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관세 자주권을 잃었던 아픈 역사, 인천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

    인천세관은 1883년 개항하던 해에 설치된, 한반도 최초의 세관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7년간 일본이 농간을 부리고 위협한 탓에 조선은 근대 관세 제도를 도입할 수 없었다. 청나라의 도움으로 세관을 설치하고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은 관세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일본은 1911년 식민지 인천에 화려한 세관 건물을 지었다. 이때 창고들도 들어섰다. 해방 후 관세 주권은 되찾았으나 일제가 세운 인천세관은 한국전쟁 때 불탔다. 창고 3동과 일부 부속동은 남았는데, 건립 100년쯤 된 시점에서 수인선 공사와 맞물려 철거 위기에 몰렸다. 창고 2개 동은 결국 철거되었고, 1개 동만 반대 여론에 밀려 40m 정도 옮겨 되살렸다. 인천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은 2013년 등록문화재 569호로 지정되어, 개항장 인천의 곡절을 되새겨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인천중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개항 이후 부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1가 구 대화조 사무소는 개항 이래 인천항 조선인 부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장소다.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인천항을 통해 쌀이 수출되고, 면직물 등 소비재가 대량 수입되었다. 당연히 화물을 싣고 내리는 노동자가 필요했고, 해운사와 화주 사이에서 이를 중개하는 업체가 등장했다. 대화조는 1892년부터 하역업체로 출발했는데, 항구 가까이에 사무소 겸 노동자 숙소로 건물을 지었다. 일본식 상가 겸 점포인 마치야 양식으로 지어진 대화조 건물은 3층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인천항 부두 노동자들은 1890년 두량꾼 파업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여러 차례 파업을 일으켰다.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다, 민족 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대화조 건물은 해방 후 일반 주택이었다가, 2011년 매입한 소유주가 고증을 거쳐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고쳐지었다. 인천의 근대와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장소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인천중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향토 문화를 지켜내는 구심점이 되다, 구 수원문화원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19 구 수원문화원 건물은 1920년대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대 기록에 현 위치에 조선중앙무진회사 수원지점이 있었다고 나오지만, 1930년대 주요 업체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정하고 섬세한 외양을 보이는 건물이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로 지어졌는지는 향후 밝혀져야 할 과제다. 건물이 진가를 발휘한 시점은 1960년대부터다. 수원문화원은 2007년까지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훗날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수원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향토 문화를 진작하는 데 주력했다. 현재는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보통사람들의 자취
    • 관련문화원 : 수원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사찰의 합장과 교회의 기도 그리고 문화,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전라남도 목포시 동본원사 목포별원 건물은 일본 불교 사찰에서 한국 사찰로, 다시 한국의 교회로, 문화센터로 운명이 바뀐 흔치 않은 사례다. 일본 정토진종의 동본원사는 목포 개항 이듬해인 1898년 목포에 지원을 설치했다. 목포지원은 곧 목포별원으로 승격했고, 1905년 현재의 위치에 목조 법당을 지었다가, 1930년대 초 석조 법당을 건립했다. 지붕이 높고, 일본 전통 사찰의 외양을 간직한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해방 후 정광사라는 한국 불교의 사찰이 되었다. 정광사는 정광중학교를 탄생시키는 등 교육 불사에 힘썼다. 목포역 인근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주요 법회가 열리는 공간의 구실도 했다. 1957년 정광사는 목포중앙교회에 넘어갔다. 불교 사찰이 기독교 예배당이 되는 희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목포중앙교회는 유신 시절부터 5·18,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목포 민주화 운동의 중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목포중앙교회가 2008년 이전한 뒤 2010년 지역의 문화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삶을 보듬은 종교 시설
    • 관련문화원 : 목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대학 설립의 꿈이 태동하다, 서북학회 회관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건립된 서북학회 회관은 한국 교육의 요람 가운데 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건국대, 단국대, 국민대 3개 대학이 서북학회 회관에서 태동했고,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는 몇 년간 강의실로 사용했다. 몇 곳의 중등교육 기관도 서북학회 회관을 터전으로 삼았다. 신민회의 대중 조직인 서북학회의 관계자들이 자체 출연해 지어진 회관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르네상스 절충 양식의 건물이었다. 1950년대 ‘낙원동 대학가’의 중심이었던 회관은 1977년 철거되었고, 1985년 외양은 본래 모습을 본떠 서울특별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교정에 다시 지어졌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한반도에 발을 딛다
    • 관련문화원 : 광진문화원 ,종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호남평야 농민들의 서러움을 잊지 말아라, 구 부안금융조합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구 부안금융조합 건물은 191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부안금융조합은 1907년 농민들을 위한 금융기관을 표방하며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동양척식회사-농공은행-금융조합으로 이어지는 금융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농촌을 수탈하는 말단 식민기구로 작동했다. 동진강 하구에 위치한 부안군은 호남평야의 일부를 이루는 곡창으로 꼽힌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대규모 간척사업과 관개시설 정비 등을 통해 쌀 증산에 진력했다. 금융조합은 식민지 자본의 첨병 역할을 맡았다. 부안금융조합은 해방 후 농협은행이 설립되면서 농협 건물이 되었고, 지금은 부안군청의 일부 과 사무실로 쓰인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부안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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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과학으로 날씨를 관측하다, 서울기상관측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는 1932년 경성측후소가 자리 잡은 이후 한국 기상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서울기상관측소에 비가 내리면 서울의 날씨는 비라고 기록되고, 맑으면 맑음이라고 통보된다. 서울기상관측소 마당의 나무가 꽃을 피우는 날이 서울의 개화기이기도 하다. 1907년 설치된 한성 측후지소의 맥을 이은 경성측후소는 해방 후 중앙기상대가 인천에서 이전해 오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기상의 중심지 구실을 했다. 모더니즘 양식으로 지어진 경성측후소 본관과 수동 방식으로 강우량을 재던 우량계실, 마당의 계절 관측용 나무가 심어진 지역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서울 관측소는 세계기상기구로부터 100년 관측소로 인정받았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한반도에 발을 딛다
    • 관련문화원 : 종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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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구국에 심혈 기울인 천석꾼 아버지와 아들, 정읍 영주정사와 영양사

    전라북도 정읍시의 영주정사와 영양사는 대한제국기에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영주정사는 창암 박만환이 1903년에 설립했고, 영양사는 1909년 지어졌다. 영주정사는 경학을 통해 국권 회복을 도모하려는 목적 아래 6년 동안 130명을 길러냈다. 당대 석학 간재 전우가 제자들을 지도했고, 창암은 사재를 털어 지원했다. 창암은 동학혁명에 이어 의병운동, 독립운동 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한 천석꾼이었다. 창암의 아들 금둔 박승규 역시 몸소 독립운동을 꾀했으며, 1919년 승동학원을 설립해 교육 구국에도 힘을 쏟았다. 영주정사와 승동학원은 대한제국기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를 상당수 길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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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한반도에 발을 딛다
    • 관련문화원 : 정읍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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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민지 근대’ 국가폭력의 맨얼굴, 구 서울구치소

    구 서울구치소의 최초 명칭은 경성감옥이다. 경성감옥은, 갑오개혁으로 사법과 행형 영역에도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정착되지는 못했던 1907년 짓기 시작해 1908년 운영을 시작했다. 정미년 의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성감옥의 제1호 사형수도 의병장 허위다.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500명 수용 규모로 지어진 감옥은 의병, 독립운동가 등의 수감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증축을 거듭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주로 사상범이 수감되었다. 서대문형무소는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고, ‘짐승 우리’를 방불케 하는 열악한 시설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도 국가폭력의 역사로 얼룩진 면모를 이어가다가, 1987년 폐쇄되었다. 1988년 일부 남은 시설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90년대에 서대문 독립공원이 되었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개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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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도도시 제천의 전성시대와 화물차, 대한통운 제천영업소

    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는 1941년 중앙선 철도의 개통과 동시에 제천역 앞에 건물을 짓고 제천지점을 설치했다. 화물자동차 영업은 철도 수송을 보조·보완하는 수단으로 중요했다. 대륙 침략의 목적으로 부설된 중앙선은 남한 동부지역의 지하자원을 채굴하여 운송하는 통로였다. 제천은 해방 후 철도도시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중앙선에 더해 태백선과 충북선이 놓이면서 무연탄, 시멘트, 비료를 수송하는 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제천지점은 고도성장의 산업화시기에 성장했다. 하지만 시멘트, 무연탄이 사양 산업이 되고, 도로 운송이 늘면서 철도도시 제천의 전성기는 지나갔다. 대한통운 제천지점은 제천영업소가 되었고, 택배 업무가 분리되면서, 전성기의 기능을 잃었다. 제천지점이 설치되던 1941년 화강석 쌓기로 지어진 제천영업소 건물은 제천의 전성기를 상기시키는 장소로 남아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산업화의 꿈이 영근 곳들
    • 관련문화원 : 제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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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석식 소주의 탄생

    전근대의 소주는 막걸리 등 발효주를 증류하여 만들었다. 때문에 생산량은 적고 가격이 비쌌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에 세운 소주 회사에서는 대만산 당밀을 수입해 누룩 등으로 발효하고 화학처리하여 함수 알코올을 만든 후 희석한 희석식 소주를 만들었다. 희석식 소주는 대량생산이 가능해 가격이 저렴해 전통적 증류 방식으로 소주를 만드는 조선인 양조업자들은 타격을 입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개항 이후 들어온 음식과 식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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