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서구 근대가 일제 강점기 식민지 근대, 해방기, 산업화 등의 굴절 과정을 거쳐 한국의 근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각 시기별로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과 음식, 사람들의 생활방식 등 시대별로 한국인에게 남긴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추천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거제시

    일제강점기 대량생산된 마른멸치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중구

    외교관들의 영빈관 호텔이었던 손탁호텔
    손탁호텔은 현 이화여고의 이화백주년기념관에 있던 호텔이다. 마리 앙투아네트 손탁(Marie Antoinette Sontag, 1838-1922)이라는 여성이 1902년 설립하여 1909년 경영권을 프랑스인 보에르에게 넘겼다. 보에르가 운영한 손탁호텔은 1915년 문을 닫고, 1917년 건물부지가 이화학당 기숙사로 팔렸다. 손탁호텔은 1909년까지 조선왕실의 영빈관의 역할을 하는 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궁내부 소속의 특정호텔로 각 국의 외교사절과 귀빈 등 일부 예약 손님만 머물 수 있었다. 한국 정부가 주최하는 각종 리셉션이나 연회는 반드시 손탁호텔에서 개최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하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정부의 기능이 약화되자 손탁호텔의 기능도 사라졌다. 손탁여사는 1909년 7월 16일자로 궁내부를 사퇴한 후 프랑스 칸으로 돌아가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난다.

인기 테마이야기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중구

    개항 이후 부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1가 구 대화조 사무소는 개항 이래 인천항 조선인 부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장소다.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인천항을 통해 쌀이 수출되고, 면직물 등 소비재가 대량 수입되면서 화물을 싣고 내리는 노동자가 필요했다. 대화조는 1892년 하역업체로 출발했다. 항구 가까이에 사무소 겸 노동자 숙소로 건물을 지었다. 일본식 상가 겸 점포인 마치야 양식으로 지어진 대화조 건물은 3층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인천항 부두 노동자들은 1890년 두량꾼 파업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여러 차례 파업을 일으켰다.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다, 민족 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대화조 건물은 해방 후 일반 주택이었다가, 2011년 매입한 소유주가 고증을 거쳐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고쳐지었다. 인천의 근대와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장소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군산시

    ‘영원한 일본의 군산’을 꿈꾸었으나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구 히로쓰 가옥’으로 불리던 집이다. 히로쓰는 군산에서 재산을 불리고,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예전에는 1925년 저택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일본인 학자가 후손 인터뷰 등을 통해 1934년 신축을 주장해, 정확한 연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인 고급 주택가였던 치요다마치(현 월명동) 건너편 월명산 자락 신흥동에 지어진 이 집은 일본산 삼나무를 써서 일본식으로 건축되었다. 방 하나에 온돌을 설치해 한국식 주거문화를 일부 받아들인 흔적도 보인다. 넓은 터에 2층 본채와 객실체를 붙여지었고, 뒤뜰에는 별채를 두었다. 일본식 정원을 갖춘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의 근대역사 자취를 답사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수 코스로 꼽힌다. 영화 「장군의 아들」, 「타짜」에도 이 저택이 등장한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등록문화재 제183호다.

지역문화이야기

349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고성군

    적대의 상징에서 평화 협력의 상징으로 - 고성군 최동북단 감시초소
    강원도 고성군 수동면 덕산리 ‘고성군 최동북단 감시초소’는 휴전선 248㎞ 비무장지대 내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감시초소다. 북한의 감시초소와 58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고성군 최동북단 감시초소’는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북한군의 동태를 감시하던 장소다. 1개 소대 병력이 교대로 파견되어 약 2개월가량 머물면서 경계 근무를 섰다. 2018년 ‘9·19 군사합의’에 따라 남과 북이 각각 비무장지대 GP 11곳씩 철수하되, 1곳은 상징적 기념물로 남겨두기로 하였는데, 북에서는 중부전선 ‘까칠봉 GP’를, 남에서는 ‘고성군 최동북단 감시초소’를 선택했다. 2018년 11월 모든 병력과 화기가 ‘고성군 최동북단 감시초소’에서 철수했다. 남과 북이 평화를 위해 손을 맞잡은 사례인 ‘고성군 최동북단 감시초소’는 2019년 등록문화재 제752호로 인정받았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해방에서 전쟁까지
    • 관련문화원 : 강원고성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서대문구

    ‘식민지 근대’ 국가폭력의 맨얼굴, 구 서울구치소
    구 서울구치소의 최초 명칭은 경성감옥이다. 경성감옥은, 갑오개혁으로 사법과 행형 영역에도 근대적 제도가 도입되었으나, 정착되지는 못했던 1907년 짓기 시작해 1908년 운영을 시작했다. 정미년 의병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경성감옥의 제1호 사형수도 의병장 허위다.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바뀌었다. 500명 수용 규모로 지어진 감옥은 의병, 독립운동가 등의 수감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증축을 거듭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는 주로 사상범이 수감되었다. 서대문형무소는 고문으로 악명이 높았고, ‘짐승 우리’를 방불케 하는 열악한 시설로 운영되었다. 해방 후에도 국가폭력의 역사로 얼룩진 면모를 이어가다가, 1987년 폐쇄되었다. 1988년 일부 남은 시설이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1990년대에 서대문 독립공원이 되었고,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을 개관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한반도에 발을 딛다
    • 관련문화원 : 서울서대문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울진군

    변함없이 깜빡이는 희망의 빛 - 울진 죽변등대
    경상남도 울진군 죽변면 죽변항의 등대는 1910년 완공되었다. 원래는 러시아 함대를 견제하기 위한 군사적 목적이 있었으나, 그보다는 죽변항 고기잡이 배들을 비춰주는 역할을 1세기 넘게 감당하고 있다. 죽변등대는 16m 높이에 8각형 형태로 건설되었다. 죽변항은 동해안의 어업 전진기지로서 대게와 오징어잡이, 특산물 미역으로 유명한 항구다. 특히 울진 앞바다 대륙붕인 ‘왕돌짬’은 대게 서식지로 소문이 나 대게잡이 철에는 새벽부터 죽포항에서 출어하는 배들이 죽변등대의 불빛을 희망 삼아 출항한다. 죽변항은 오징어 성어기에는 하루 3,000t에 이르는 어획량을 자랑하는 포구이기도 하다. 죽변등대는 경상북도 지정기념물 154호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보통사람들의 자취
    • 관련문화원 : 경북울진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충남 >논산시

    한국 화교의 슬픈 역사 - 강경화교학교 교사와 사택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황산리 강경화교학교는 1947년 세워졌다. 1880년대부터 한반도에 정착하는 화교가 늘어남에 따라 1909년 한성화교학교를 비롯해 일제강점기 동안 전국 대 도회지를 중심으로 화교학교들이 설립되었으나, 강경은 이미 전성기를 지난 곳이어서 해방 후에나 화교학교를 열 수 있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강경화교학교 교사와 사택은 1956년 건립했다는 기록이 1982년 수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한 해 평균 6~7명의 학생만 졸업한 학교였지만 강경화교학교는 2000년대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교육을 중시하는 화교 사회의 전통이 학교를 존속시킨 힘이었다. 한국 화교들은 일제강점기에 제도화된 냉대와 차별을 버텨냈고, 해방 후 한국 정부조차도 1990년대 이전에는 다양한 불이익을 주었지만 자신들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등록문화재 제337호인 강경화교학교는 주변에 산재한 강경의 근대 유산과 연계해 들러볼만한 장소이자, 한국 화교의 역사를 상기시키는 장소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보통사람들의 자취
    • 관련문화원 : 충남논산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중구

    바다보다 역동적인 제물포의 근대 - 인천 개항장 근대역사문화지구
    제물포는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일본과 청나라,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각국이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각축을 벌인 지역이다. 일본이 가장 먼저 조계를 설정하자, 청과 다른 나라들이 뒤따랐다. 초기 모습은 청 조계지가 일본 쪽보다 나았다. 상권에서도 청 상인들이 우세한 편이었으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뒤로는 일본이 앞서기 시작했고, 1904년 러일전쟁을 거친 뒤에는 일본의 절대 우세가 확정되었다. 일본은 금융기관을 앞세워 해운업과 화물운송업을 장악했고, 인천은 일본 주도 아래 식민지 근대의 대도시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자유공원(만국공원)은 일본 조계지와 청국 조계지(훗날 인천 차이나타운)를 비롯해 개항 이후 인천 근현대사의 역동성을 답사하기 적당한 출발점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거리를 거닐다
    • 관련문화원 : 인천중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광주 >남구

    ‘서양촌’으로 들어온 근대 - 광주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식민지 근대가 도래하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의 계몽적 근대가 먼저 당도한 지역이다. 미국 남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광주 선교를 위해 양림동의 땅을 사들였다.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사택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양림동에 ‘서양촌’을 형성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들어 광주 중심부는 조선총독부의 계획 아래 근대 도시가 되었으나, 양림동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제중원 등 종교와 교육과 의료를 통해 근대를 접하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기독교 근대의 자취 외에도 전통 한옥이나 문화예술인들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고, 광주가 팽창하면서 양림동에 터 잡고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삶 또한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양림동을 한 바퀴 돌면서 다양한 근대의 의미 지층을 탐색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근현대사 산책일 것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거리를 거닐다
    • 관련문화원 : 광주남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충남 >공주시

    도청을 빼앗기고 대신 받은 다리 – 충남 공주 금강철교
    충청남도 공주는 조선 후기 강경, 청주 등지와 더불어 물산이 집결하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철도가 발달하게 되자 수운을 중심으로 한 공주의 번영은 서서히 막을 내렸다. 당초 조선총독부는 경부선과 호남선을 공주에 부설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철도는 대전으로 가고 말았다. 연이어 충남 도청마저 대전으로 이전하자 공주 사람들은 반대 시위에 나섰다. 일제는 분노한 공주 시민들에게 도청 이전에 대한 보상으로 공주에 금강철교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금강철교는 1932년 1월 2일에 착공하여 1933년 10월 23일에 준공되었다. 당시 철교는 대부분 철도교(鐵道橋)로 건설되었지만 금강철교는 도로교(道路橋)다. 당시로서는 최첨단 공법으로 건설되었다. 금강철교는 1950년 북한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교량의 2/3 가량이 파괴되었다. 1952년 복구공사에 들어가 1956년 9월에 준공하였다. 문화재청은 금강철교가 교량건설사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하여 2006년 3월 2일 등록문화재 제232호로 지정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를 떠받친 토목시설과 광산
    • 관련문화원 : 충남공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대전 >동구

    대전발 0시50분이 떠나기 전에 - 대전 원도심 근대문화탐방로
    대전광역시는 경부선(1905)와 호남선(1914)이 분기하는 철도의 도시다. 조그마한 한촌이었던 대전은 충청남도 도청이 1932년 충청남도 공주에서 옮겨옴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중심가는 충청남도 도청과 대전역을 잇는 도로(현재의 중앙로) 변으로 확장되었다. 대전의 원도심인 중구와 동구 일대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가지는 근대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대전시는 2010년대 들어 원도심 활성화에 적극적으로 나서, 2017년부터 근대문화예술 특구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특구 사업의 일환으로 5㎞가 넘는 근대문화탐방로를 지정했는데, 탐방로를 따라 9곳의 근현대 건축물을 둘러볼 수 있다. 탐방로가 아니더라도 대전 원도심 곳곳에서 근현대사를 배우고 성찰케 하는 근대문화유산들을 만날 수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거리를 거닐다
    • 관련문화원 : 대전동구문화원 ,대전중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제주 >서귀포시

    절경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 - 남제주 구 대정면사무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구 대정면사무소는 1955년에 완공된 2층 건물이다. 벽체의 재질이 제주 현무암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이 쌓는 방식을 사용하는 등 1950년대 제주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건축 모델은 1952년 지어진 옛 제주도 도청 청사다. 상모리는 1933년 면사무소가 이전해 오면서 대정면의 행정중심이었다. 상모리는 1930년대부터 계속 진행된 ‘알뜨르 비행장’ 건설과 확장공사,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조성 등 일제강점기의 수난을 직접 겪어낸 현장이다. 해방 후에도 ‘4·3사건’과 ‘섯알오름 학살’을 겪어냈다. 면사무소가 준공된 다음해(1956년) 대정면은 읍으로 승격했다. 읍사무소가 1980년 하모리로 옮겨간 후에는 보건지소로 쓰이다가 2014년부터 향토문화 자료 전시관(대정현 역사자료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5년 등록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됐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보통사람들의 자취
    • 관련문화원 : 제주서귀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예천군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숨진 28세 독립운동가 - 예천 윤우식 생가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남석 윤우식 선생의 생가는 16세기에 지어진 고택이다. 1922년 화재로 예전 집은 불탔고, 같은 자리에 규모를 줄여 지은 집이 현재 남아있는 기와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튼 입구 자로 배치되어 있고, 옆에는 사당(죽호당)이 있다. 윤우식은 1920년대 후반부터 농민운동을 벌였고, 1934년 ‘예천 무명당’이 결성될 때 참여하여 지보면의 조직을 책임졌다. ‘예천 무명당’은 농민을 넘어 각계각층의 조직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을 벌이려 했던 조직이다. 예천 무명당은 1934년 초 일경에 발각되어 무더기로 체포되었고, 윤우식은 지도부 11인으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국했다. 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윤우식 생가는 등록문화재 제571호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현대 인물들의 공간
    • 관련문화원 : 경북예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남양주시

    천년 고찰 속의 현대식 법당, 남양주 봉선사 큰법당
    경기도 남양주시 봉선사는 고려 광종 시기인 서기 697년에 창건된 운악사에서 비롯된 천년 고찰이다. 조선 예종 때 세조의 능인 광릉을 받드는 절로 중창되어 봉선사가 되었다. 봉선사는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전란으로 여러 차례 소실되었다가 중건됐다. 봉선사 큰법당은 운허 스님이 주지이던 1970년 지어졌다. 석가여래를 모신 전각인데도 운허 스님이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큰법당이라는 풀어 쓴 이름을 붙였다. 봉선사 큰법당은 철근 콘크리트로 전통 목조 사찰을 정교하게 재현해냈다. 큰법당의 기단과 앞 층계, 뒤편 화계는 조선시대 것이어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 탄생한 것이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삶을 보듬은 종교 시설
    • 관련문화원 : 경기남양주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안양시

    건축예술과 공장의 만남, 안양 유유산업 옛 공장(현 김중업건축박물관)
    경기도 안양시 석수동 옛 유유산업 공장 부지는 신라 시대 고찰 중초사와 고려 시대 대가람 안양사가 있던 자리다. 유유산업 유특한 회장은 1950년대 말 석수동에 의약품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고, 젊은 건축가 김중업에게 설계를 맡겼다. 프랑스 파리에서 르코르뷔지에로부터 건축과 도시를 배우고 1956년 돌아온 김중업은 유유산업의 건물 5개 동을 설계했다. 사무동, 생산동, 수위실, 굴뚝, 보일러실을 설계한 김중업은 ‘구축체계의 노출’과 ‘투명성’이라는 자신의 건축 정신을 건축물에 구현해 냈다. 유유산업 이전 후 공장 건물은 현재 김중업 건축박물관과 안양박물관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산업화의 꿈이 영근 곳들
    • 관련문화원 : 경기안양문화원

검색결과 필터

이야기 주제

지역 / 문화원

선택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