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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역사문화유산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서구 근대가 일제 강점기 식민지 근대, 해방기, 산업화 등의 굴절 과정을 거쳐 한국의 근대로 변화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각 시기별로 대표하는 근대문화유산과 음식, 사람들의 생활방식 등 시대별로 한국인에게 남긴 영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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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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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제주 >서귀포시

    평화로 덮어야 할 일제 군사 요새,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는 미군의 공습 시 지휘소 겸 통신시설로 건설되었다. 알뜨르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바다 건너 상하이, 난징 등을 폭격하기 위해 비행기들이 출격하던 장소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제는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미군의 제주도 점령을 결사적으로 막는다는 작전을 세웠다. 알뜨르비행장과 인접한 송악산 해안에 ‘인간 어뢰’ 공격을 위한 동굴 진지를 만드는 등 제주도 곳곳을 요새화했다.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를 비롯한 일제의 군사 시설 건립에는 제주도민들이 강제 동원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서귀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 >강서구

    조선왕실의 약선음식이었던 전약

    전약은 아교나 우무에 한약재와 꿀을 넣고 끓여 굳힌 음식이다. 고려시대부터 있던 음식으로, 조선시대엔 동지의 절식으로 궁궐에서 나눠주었다. 조선중기 전약은 비싼 한약재를 넣었지만 후기에 이르면 비싼 한약재의 수입이 어려워져 싼 한약재로 대체되었다. 넣는 재료가 싸지면서 민간에서도 전약을 만들게 되었다. 전약은 일제강점기 신문에도 제조법이 나오지만 오늘날은 잘 만들지 않는다. 약효는 적고 사탕이나 과자보다 맛이 없는 전약 대신 신문명의 상징인 과자와 사탕이 그 자리를 대체하였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전통 음식과 식재료의 변화
    • 관련문화원 : 강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 >강화군

    70년대까지 객주가 팔았던 강화도 새우젓

    새우젓이 대중적으로 소비된 것은 조선시대 19세기 무렵이다. 젓새우잡이 어업은 황해도 해주에서 광양만에 이르는 서해안 일대에서 발달하였다. 젓새우가 큰강 하구와 바다가 만나는 뻘 지역에 많이 살기 때문이다. 젓새우는 음력 3월부터 바다의 깊은 곳에 갔다가 8월 무렵 연안으로 회유하는 습성이 있다. 그리하여 가을 무렵 젓새우를 잡아 염장한다. 1960년대 이후 강화도 어장의 어민들이 젓새우 잡이에 관심을 가지면서 1970년대 중반 이후 강화도에서 젓새우잡이가 중심어업이 되었다. 1980년대 이후 한강지역의 오염, 간척사업, 영종도 국제공항의 건설 등으로 강화도 인근의 젓새우잡이는 위축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지구온난화로 젓새우가 강화도 지역에 많이 출현하면서 다시 왕성해졌다. 2005년 이후 매년 ‘강화새우젓축제’가 열리고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전통 음식과 식재료의 변화
    • 관련문화원 : 강화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부안군

    염장만큼 숙성이 중요한 젓갈

    젓갈은 어패류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킨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젓갈생산지역으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곰소만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섬이었던 곰소가 육지가 연결되고 그 부근의 갯벌은 염전이 되었다. 염전에서 천일염이 많이 생산되어 젓갈의 재료로 쓰였다. 곰소만에서 잡히는 어패류가 다양했으므로 곰소만의 젓갈은 다양하다. 젓갈은 신선한 해산물을 잡은 즉시 바로 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숙성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젓갈의 숙성은 곰소만의 객주들이 했는데 이들은 주로 충남의 광천굴, 폐광, 폐터널 등에서 젓갈을 숙성시켰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전통 음식과 식재료의 변화
    • 관련문화원 : 부안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전통배추를 밀어내고 김치의 원료가 된 결구배추

    배추김치의 주재료인 배추는 조선시대까지 한양과 개성에서 자란 것이 유명했다. 이 배추는 배추잎이 절반정도 뭉친 반결구종으로, 무게는 결구종보다 적고 생육기간도 길었다. 임오군란 이후 중국인들이 한국땅에 살고 중국과 왕래하면서 중국의 결구배추가 들어오게 된다. 결구배추는 배추잎이 서로 감싸 완전히 뭉친 것인데 생육기간이 짧고 크기도 컸다. 일제강점기 반결구배추가 병충해에 시달리면서 결구종 배추가 보급되어 오늘날 김치를 만드는 배추는 결구종배추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근대 신문으로 보는 음식 >전통 음식과 식재료의 변화
  • 지역문화이야기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충북 옥천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죽향초등학교는 1905년 사립 창명학교로 시작되었다. 범재 김규흥이 설립한 창명학교는 일제의 학교령에 따라 옥천공립보통학교가 되었고, 1941년 죽향초등학교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는 보통학교 시절이던 1936년 건립되었다. 이후 이 건물은 나무 비늘판벽에 함석지붕을 올린 교실로 60년간 쓰였다. 현재 구 교사는 옥천교육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시 ‘향수’를 쓴 정지용이 이 학교 4회 졸업생이고, 육영수가 27회 졸업생이다. 가수 김현식이 1960년대 4년간 죽향초등학교에 다녔다. 죽향초등학교 구 교사는 졸업생과 옥천 사람들에게 ‘차마 꿈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을 상징하는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의 산실 학교
    • 관련문화원 : 옥천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관세 자주권을 잃었던 아픈 역사, 인천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

    인천세관은 1883년 개항하던 해에 설치된, 한반도 최초의 세관이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7년간 일본이 농간을 부리고 위협한 탓에 조선은 근대 관세 제도를 도입할 수 없었다. 청나라의 도움으로 세관을 설치하고도 해방이 될 때까지 한국은 관세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했다. 일본은 1911년 식민지 인천에 화려한 세관 건물을 지었다. 이때 창고들도 들어섰다. 해방 후 관세 주권은 되찾았으나 일제가 세운 인천세관은 한국전쟁 때 불탔다. 창고 3동과 일부 부속동은 남았는데, 건립 100년쯤 된 시점에서 수인선 공사와 맞물려 철거 위기에 몰렸다. 창고 2개 동은 결국 철거되었고, 1개 동만 반대 여론에 밀려 40m 정도 옮겨 되살렸다. 인천세관 구 창고와 부속동은 2013년 등록문화재 569호로 지정되어, 개항장 인천의 곡절을 되새겨볼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인천중구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개항 이후 부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 인천 구 대화조 사무소

    인천광역시 중구 관동1가 구 대화조 사무소는 개항 이래 인천항 조선인 부두 노동자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는 장소다. 1883년 개항 직후부터 인천항을 통해 쌀이 수출되고, 면직물 등 소비재가 대량 수입되었다. 당연히 화물을 싣고 내리는 노동자가 필요했고, 해운사와 화주 사이에서 이를 중개하는 업체가 등장했다. 대화조는 1892년부터 하역업체로 출발했는데, 항구 가까이에 사무소 겸 노동자 숙소로 건물을 지었다. 일본식 상가 겸 점포인 마치야 양식으로 지어진 대화조 건물은 3층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인천항 부두 노동자들은 1890년 두량꾼 파업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동안 여러 차례 파업을 일으켰다.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데다, 민족 차별이 심했기 때문이다. 대화조 건물은 해방 후 일반 주택이었다가, 2011년 매입한 소유주가 고증을 거쳐 옛 모습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고쳐지었다. 인천의 근대와 노동의 역사를 돌아보게 하는 장소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인천중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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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토 문화를 지켜내는 구심점이 되다, 구 수원문화원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산로 119 구 수원문화원 건물은 1920년대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대 기록에 현 위치에 조선중앙무진회사 수원지점이 있었다고 나오지만, 1930년대 주요 업체 목록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단정하고 섬세한 외양을 보이는 건물이 정확히 언제 어떤 경로로 지어졌는지는 향후 밝혀져야 할 과제다. 건물이 진가를 발휘한 시점은 1960년대부터다. 수원문화원은 2007년까지 이 건물을 사용하면서, 훗날 세계문화유산이 되는 수원 화성과 화성행궁을 중심으로 수원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향토 문화를 진작하는 데 주력했다. 현재는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보통사람들의 자취
    • 관련문화원 : 수원문화원
  • 지역문화이야기

    사찰의 합장과 교회의 기도 그리고 문화, 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전라남도 목포시 동본원사 목포별원 건물은 일본 불교 사찰에서 한국 사찰로, 다시 한국의 교회로, 문화센터로 운명이 바뀐 흔치 않은 사례다. 일본 정토진종의 동본원사는 목포 개항 이듬해인 1898년 목포에 지원을 설치했다. 목포지원은 곧 목포별원으로 승격했고, 1905년 현재의 위치에 목조 법당을 지었다가, 1930년대 초 석조 법당을 건립했다. 지붕이 높고, 일본 전통 사찰의 외양을 간직한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해방 후 정광사라는 한국 불교의 사찰이 되었다. 정광사는 정광중학교를 탄생시키는 등 교육 불사에 힘썼다. 목포역 인근에 자리 잡았기 때문에 주요 법회가 열리는 공간의 구실도 했다. 1957년 정광사는 목포중앙교회에 넘어갔다. 불교 사찰이 기독교 예배당이 되는 희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목포중앙교회는 유신 시절부터 5·18,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목포 민주화 운동의 중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목포중앙교회가 2008년 이전한 뒤 2010년 지역의 문화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삶을 보듬은 종교 시설
    • 관련문화원 : 목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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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설립의 꿈이 태동하다, 서북학회 회관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건립된 서북학회 회관은 한국 교육의 요람 가운데 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건국대, 단국대, 국민대 3개 대학이 서북학회 회관에서 태동했고, 보성전문학교(고려대학교의 전신)는 몇 년간 강의실로 사용했다. 몇 곳의 중등교육 기관도 서북학회 회관을 터전으로 삼았다. 신민회의 대중 조직인 서북학회의 관계자들이 자체 출연해 지어진 회관은 당시로서는 최신식 르네상스 절충 양식의 건물이었다. 1950년대 ‘낙원동 대학가’의 중심이었던 회관은 1977년 철거되었고, 1985년 외양은 본래 모습을 본떠 서울특별시 광진구 건국대학교 교정에 다시 지어졌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근대, 한반도에 발을 딛다
    • 관련문화원 : 광진문화원 ,종로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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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평야 농민들의 서러움을 잊지 말아라, 구 부안금융조합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구 부안금융조합 건물은 1910년대에 건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부안금융조합은 1907년 농민들을 위한 금융기관을 표방하며 전국적으로 설립되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동양척식회사-농공은행-금융조합으로 이어지는 금융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 농촌을 수탈하는 말단 식민기구로 작동했다. 동진강 하구에 위치한 부안군은 호남평야의 일부를 이루는 곡창으로 꼽힌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대규모 간척사업과 관개시설 정비 등을 통해 쌀 증산에 진력했다. 금융조합은 식민지 자본의 첨병 역할을 맡았다. 부안금융조합은 해방 후 농협은행이 설립되면서 농협 건물이 되었고, 지금은 부안군청의 일부 과 사무실로 쓰인다.

    • 테마 : 역사문화유산 >근대문화유산
    • 이야기주제 : 공간으로 읽는 근대문화 역사유산 >빼앗긴 들, 뒤틀린 근대
    • 관련문화원 : 부안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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