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색
고급검색
관리번호
발행년도
시 대
연 대
선택조건
지역N문화 포털은 콘텐츠 생산자 및 연구자들을 위해 서지정보 내보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지관리 프로그램은 문헌 및 온라인 콘텐츠 등 자료를 관리하고 공유하는데 사용됩니다.
※ 해당 프로그램은 소속기관 또는 개인 가입이 필요할 수 있으며, 지역N문화 포털은 링크만 제공하고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관심지역 :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지역N문화 시작하기
마지막으로 로그인한 계정입니다.
지역N문화는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사용중인 SNS로로그인하여 간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과 거진읍에 걸쳐 있는 동해 연안의 석호 화진포를 소개하는 책자이다. 지역 내 명승지, 문화유적을 중심으로, 화진포의 지질학적 특성부터 관련 설화까지 폭넓은 내용을 수록했다.
인천개항장 문화재 야행은 2016년 ‘인천 개항장 밤마실’로 시작하였다. 인천은 1883년 조일수호조규로 인해 개항되면서 개항장과 조계지를 갖게 되었다. 이곳은 근대화의 관문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수탈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인천개항장 문화재 야행은 이런 근대 문화재를 밤문화로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인천 가치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2017년부터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개최되고 있다.
혜곡 최순우는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이다. 박물관 전시, 유물 수집과 보존처리, 조사, 연구는 물론 교육, 홍보, 박물관 외곽 단체의 활성화, 인재양성에 많은 노력과 애정을 기울였다. 또한 뛰어난 안목을 지닌 미술사학자로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지키며, 한국미술의 이해와 보존, 진흥에 크게 이바지했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수장가이다. 전형필은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연구와 전승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가 세운 ‘간송미술관’은 문화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신을 보호하고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예전에 제천의 큰 부잣집에 스님이 시주하러 갔는데, 부자가 거름을 퍼주며 돌아가라 하였다. 며느리가 나와 용서를 구하며 쌀을 갖다 주자, 스님은 며느리를 따라나오게 하였다. 스님은 며느리에게 절대로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고 경계한 뒤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들이 산을 올라가다가 뒤편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자 놀랍고 궁금했던 며느리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 순간 몸이 굳어 돌이 되어버렸고, 부잣집의 집터는 무너져 물에 잠기게 되었다.
세종대왕은 정무와 한글 창제에 몰두한 나머지 눈병을 심하게 앓았다. 청주의 초정 약수가 눈병에 효험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청주에 행궁을 지어 행차하였다. 초정 약수를 마시고, 눈을 약수에 담그며, 약수가 담긴 탕에서 목욕하니 차츰 눈이 맑아졌다. 일상은 물론 정무를 보고 한글을 연구하는 데에도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 세종대왕의 행차를 계기로 초정 약수의 효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는 애기바위가 있다. 최참판의 부인 정씨가 한 도사를 돕게 되자, 도사가 소원을 물었다. 정씨부인이 아들 하나 얻기를 바른다고 하자, 그 도사가 바위를 쪼아 여인의 형상을 만들면 자식이 생길 거라고 한다. 정씨부인은 온갖 고초 끝에 조각을 완성하고, 99일째 되던 날 꿈을 꾼다. 꿈에 두 도사가 나타나 각각 다른 말을 하는데, 부인은 올바른 판단을 하고 자식을 얻게 된다. 그 후로 사람들이 그 바위를 애기바위라 불렀고 바위에 돌을 던지며 자식이 생기기를 기도했다.
조륵은 충주 자린고비라 불리는 인색한 인물이다.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까워 따라가기도 하고, 조기를 매달아 놓고 쳐다보며 밥을 먹을 정도로 매우 절약하였다. 임금에게까지 조륵의 행동이 전해지자 임금은 어사를 보내어 알아오도록 하였다. 조륵은 환갑을 기점으로 해서 구두쇠 노릇을 중단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모아놓은 재산을 베풀었다. 어사가 이 사실을 알리자 임금은 조륵을 기특하게 여겨 벼슬을 주었다. 이웃 사람들은 조륵의 선행을 아름답게 여겨 자인고비(資仁考碑)를 세웠다고 한다.
최진사 집의 큰아들 혼사에 신부가 시댁으로 가마를 타고 갔다. 여우고개를 넘어갈 때 여우가 신부의 가마에 몰래 탔다. 첫날밤을 지내고 그 다음날이 되니 신방에 신부가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신부는 말투와 행동이 똑같아서 누가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친정에서 신부의 신체적 비밀을 말해주었으나 그마저도 똑같았다. 결국 한 아낙네가 고양이를 구해오라고 제안하여 고양이를 신방에 넣으니 하얀 여우가 뛰쳐나와 도망가 버리고 진짜 신부를 찾게 되었다.
세조 임금이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충북 보은 속리산에 행차하였다. 한 소나무 그늘 밑에서 쉬어가다 다시 수레에 오르려는데 나뭇가지가 걸릴 것 같았다. 세조가 가지가 걸릴 것 같다고 말하니 나뭇가지가 번쩍 들어올려져 지나가는 데 문제가 없었다. 또 세조가 서울로 돌아갈 때 소나무 밑에 이르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나무 덕분에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소나무를 기특하게 여긴 세조는 정이품이라는 벼슬을 내렸고 그후로부터 ‘정이품송’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선 중기에 한 소금장수가 비를 피하려 공암굴이라는 동굴에 들어갔다. 소금장수는 우연히 비를 피하러 들어온 한 여인을 만나 하룻밤을 지내고 마을을 떠났다. 이 여인은 잉태하여 서기를 낳게 되었다. 청년이 된 서기는 자신의 성도 모르고 아버지도 몰랐다.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공암굴 옆에서 사람들을 살펴보았다. 어느 소금장수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임을 확인하게 되고 다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고려 고종 때의 무신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이라는 냇가에서 세수를 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다 냇가를 건너려는 한 여인을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에 가야한다는 여인의 사정을 듣고 그 효성에 감동받은 임연은 용마를 타고 나타나 돌을 날라 농다리를 완성하였다. 여인은 임연이 놓아준 농다리를 통해 무사히 냇가를 건너갈 수 있었다.
태조 이성계는 왕자의 난을 보면서 넌덜머리를 내며 고향인 함흥으로 떠났다. 태종 이방원은 태조를 한양으로 모시고 오고 싶어 차사들을 보냈지만 태조는 오는 차사들을 모두 죽이고 돌아가지 않았다. 박순이 자진해서 차사가 되어 함흥에 가서 태조를 설득하였다. 태조는 박순에게 설득되어 돌아갈 결심을 하고, 박순을 돌려보냈지만 신하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박순은 신하들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었고 이 소식을 들은 부인 장흥 임씨도 자결했다고 한다. 훗날 태조는 서울로 돌아온다.
생활과 민속
지방의 역사
종교와 문화 / 문화예술
생활과 민속 / 민속
SNS에 공유해보세요.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QR코드를 스캔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