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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포스트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기획전을 통해 여러 가지 지역 문화콘텐츠들을 한 곳에 모아 보여줍니다.

격변의 조선을 살아간 의병의 삶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은 '의병의 날'입니다. 나라의 위기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외적에 침략에 맞선 의병, 이들 중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 2018년에 방영되어 인기를 끈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의 주요 소재로 다뤄지며, 의병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하였습니다. 전국에는 의병의 주요 봉기지와 활동지 등이 사적과 문화재로 지정하여, 의병의 숭고한 희생과 호국정신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6월에는 우리 지역의 의병 이야기를 찾아보며 의병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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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해남군

    호남의병 전투지 대흥사 심적암 터
    대흥사의 심적암은 1909년 7월 황준성·황두일·추기엽 등이 이끄는 의병이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크게 패한 곳으로 호남의병의 최후의 격전지이다. 황준성은 대한제국 군대의 참령으로 추기엽·황두일 등과 함께 의병 150여명을 모집하여 총으로 무장하고 완도·해남 일대에서 활약하다 1910년 4월 22일에 대구 고등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순국하였다.
  • 강원 >원주시

    원주 진위대 터 강원감영
    강원감영 터는 1907년 민긍호의 지휘 아래 의병을 일으킨 원주진위대의 본부가 있었던 곳이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관찰부가 있던 원주 관아로 1895년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폐지되고 지방 진위대가 주둔하는 본부로 사용되었다. 1907년 8월 5일 원주진위대 병사들은 특무정교 민긍호의 지휘 하에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확보한 다음 일제히 봉기하였다.
  • 경남 >하동군

    거창의병전투지 의신마을
    의신마을은 1908년 2월 2일 거창의병이 일본군 토벌대와 전투를 벌였던 곳으로 전투에서 순국한 의병들의 시신을 마을 사람들이 모아 산기슭에 매장한 곳이다. 1908년 2월 거창의병 50여명이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의신마을에 도착하였다. 의신마을에 의병이 나타났다는 정보를 들은 일제는 1908년 2월 2일 일본군 토벌대를 파견하여 거창의병과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 경기 >양평군

    양평출신 의병장들의 묘역
    양평의병장들의 묘역은 모두 양동면 출신으로서 이른바‘지평의병’을 대표하는 안승우, 이춘영, 김백선등이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분개하여 의병을 일으킨 후, 원주‧충주성 등을 점령하며 위세를 떨치고 장렬히 최후를 맞이한 의병장들의 묘소이다. 묘역 내에는 묘비 및 을미의병추모비, 그리고 의병장들의 어록비가 조성되어 있다.
  • 전북 >고창군

    기삼연의병 주둔지 문수사
    문수사는 기삼연의병장이 의병대원들에 의해 의병장으로 추대 받은 곳이자 의병들의 주둔지이며 일군과의 격전하여 크게 승리한 곳이다. 기삼연의병장은 을미의병기에 기우만과 의병을 일으켜 활동한 바 있고, 정미의병기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회맹소라 하였다. 기삼연은 전라도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순창에서 체포된 후 광주로 이송되어 순국하였다.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강원 >횡성군

    횡성 궐덕리에서 순국한 강림리의병총
    1908년 궐덕리전투에서 순국한 의병들의 묘로 강림면 일대에 산재해 있던 의병묘를 이장하여 의병총으로 조성한 곳이다. 권덕리전투는 민긍호 의병부대가 치악산 석경사로 이동하다가 숙영하던 마을에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치렀던 전투로 2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패하였다. 민긍호의병장 역시 체포되었다가 탈출하는 과정에서 적군의 총탄에 순국하였다.
  • 충남 >아산시

    이남규부자 순국지 외암리
    외암리는 이남규·이충구 부자가 일제에 의해 순국한 곳이다. 을사늑약 이후 1906년 홍주의병이 민종식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하고 결성되자, 이남규는 선봉장으로 참여하였다. 이남규는 서천, 남포, 보령 등 서해안 일대를 평정하고 홍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쳤으나 결국 체포되어 아들 이충구와 함께 온양 평촌 냇가에서 일제의 칼날에 순국하였다.
  • 경기 >가평군

    춘천의병 전투지 보납산
    보납산은 강원도 춘천시와 경기도 가평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길목에 있다. 1896년 1월 18일 새벽 봉기한 춘천의병은 2월 3일 보납산을 사이에 두고 관군과 맞닥뜨린 춘천의병은 관군의 우수한 화력에 맞서 대등하게 싸웠으나 비 때문에 화승총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차츰 열세에 몰리게 되어 끝내 패하여 후퇴하고 말았다.
  • 경남 >거창군

    월성의병 봉기지 월성서당 터
    월성서당은 을사의병기에 오일선을 중심으로 김성진·김현수·하거명·박화기 등 40여 명이 모여 월성의병을 결성하고 의병 봉기를 결의한 곳이다. 월성서당은 멸실되어 남아 있지 않지만 후대에 세운 정자와 기념비가 있다. 월성의병은 도총, 유격, 후군, 군수, 정보 등의 부서를 편성하고 문태수 의병장이 이끄는 호서의병에 합류하여 군수 물자를 공급하기도 하고 전투에도 참여하였다.

어느덧 어른, 성년의 날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은 만 19세가 된 젊은이들이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고 격려하는 날인 '성년의 날'입니다. 관혼상제의 '관'에 해당하는 성년례는 사대부가와 서민들의 방식에 차이가 있었는데요, 서민들은 대체로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사람들이 모여 힘겨루기 등을 하며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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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이 되어 내는 음식과 술, 진세턱
    일반적으로 16~20세가 된 사람들이 노동력을 인정받기 위해 마을에 있는 들돌을 들어올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명의 어른으로 인정을 받고 축하를 받으면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이를 진세턱이라고 한다. 충청도에서는 꽁배술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바쁜 농사일이 마무리되는 7월 칠석이나 백중에 이루어진다. 주로 논농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남부지역에서 이루어졌다.
  • 충남 >논산시

    논산시 들돌들기
    들돌들기는 마을의 남자들이 명절에 즐기는 놀이이자 통과의례이다. 어린 머슴들이나 두레의 막내인 소동들이 한 명의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마을 내에 당산나무 아래나 장자집 마당 등 1, 2개 많으면 7개까지 있으며, 평상시에도 힘을 기르기 위해 많이 이용한다. 충청남도 논산시에서는 백중날 이루어지며,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 널리 행해진다. 일반적으로는 사용되는 들돌은 완전한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무게는 쌀 한 가마니 정도이다.
  • 경기 >고양시

    상민의 성년식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성년식의 시련은 다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줄 새끼에 매달려야 했고, 양주 지방에서는 백운대 정상에 있는 낭떠러지를 뛰어 건너야 했다. 그리고 호남 지방에서는 무거운 들돌을 들어야 했고, 개성 지방에서는 바위를 안고 혹은 등지고 돌아야만 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성인이 갖추어야 할 힘과 담력, 용기와 인내 등을 시험한 것이다. 이러한 시련을 통과함으로써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성인의 자질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 경남 >진주시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 의식인 자관자례
    자관자례는 관례와 계례에서 마지막 단계에서 행해졌다. 주례자인 빈이 관자 혹은 계자에게 주는 자는 당사자들에게 그 자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자관자례는 성인이 되는 시점에 당사자들에게 새로운 호칭을 부여함으로써 기성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하는 통합의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전남 >화순군

    사대부가의 관례
    관례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례이다. 우리나라의 관례는 고려 말에 『주자가례』가 유입되면서 사대부 계층에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주자가례』 와 같은 예서에 따라 관례를 치렀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에서 행해진 관례의 절차는대체로 "택일- 준비-시가례-재가례-삼가례-초례-자관자례-현우사당" 순으로 진행되었다.
  • 강원 >홍천군

    여성의 성인의식 계례
    조선 시대에는 『가례(家禮)』의 영향으로 여자 나이 15세를 전후하여 쪽을 짓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했다. 계례는 혼인이 정해지면 하는 것이었으나, 만약 15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못하면 자기 집안의 제부 중에서 한 사람이 계례를 거행했다. 비록 계례를 행했더라도 결혼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처녀 때의 귀밑머리로 되돌아갔다. 실제 계례는 남자의 관례만큼 보편화되지 못한 듯하며, 계례는 혼례 속에 흡수되어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 제주 >제주시

    무거운 돌을 들어 힘을 겨루는 제주 뜽돌들기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로 남자들의 힘겨루기 놀이다. 뜽돌들기는 내륙에서의 들돌들기와 유사한 형식이라 성년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크고 무거운 돌을 얼마나 높이 드는지, 얼마나 오래 드는지, 얼마나 이동하는지에 따라 승부를 겨룬다. 1950년대 전후로 사라져 현재는 전승하는 마을이 없고, 다만 제주도의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활용되고 있다.
  • 농촌 마을의 성년식, 진새례
    진새례는 농가에서의 성년식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유두, 백중 등 한여름의 명절에 15~20세의 청년이 한 명의 일꾼으로 인정받는 자리이다. 힘을 측정하는 들돌들기가 이루어지고, 아들이 진새례에 참가하는 집안에서는 술과 음식을 대접해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여기서 들돌들기에 성공하면 이후부터 그 청년은 온전한 한 명 몫의 품삯을 받게 된다. 
  • 서울 >종로구

    조선 왕실의 관례
    조선시대 왕세자의 관례 의식은 보통 인정전에서 왕이 빈찬에게 관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면 시작된다. 동궁 정당(경현당, 시민당 등)에서 관례가 거행된 후 다시 인정전에서 하례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왕세자의 관례 절차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빈찬 명령-초가-재가-삼가-초례-명자례-회빈객-조알" 순으로 거행되었다.

우리 지역의 효(孝) 이야기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알아보는 지역의 효(孝)와 관련된 장소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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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장흥군

    효심으로 지어진 탐진강, 장흥 용호정
    정남진의 고장 장흥에는 탐진강을 따라 이름난 누정들이 들어서있다. 사인정, 부춘정, 용호정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용호정(龍湖亭)은 탐진강 상류 깊은 용소(龍沼)가 있는 암벽 위에 자리한다. 아래로는 맑은 탐진강이 휘돌아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는 우뚝 솟은 기역산이 탐진강과 조화를 이룬다. 용호정은 ‘용호정 원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호정은 최규문(崔奎文) 형제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1827년 지은 효심의 정자이다.
  • 경북 >영양군

    얼음 구멍으로 잉어가 날아 나온 영양 비릿골
    경북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에는 비릿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소문난 효자인 조금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병이 들어 누워있던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조금은 잉어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강물도 꽁꽁 얼어있었다. 조금이 잉어를 잡기 위해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얼음 구멍으로 잉어 한 마리가 날아오르듯 튀어 나왔다. 조금이 잡은 잉어를 먹은 아버지는 병이 싹 나았다. 이후 사람들은 조금이 살던 마을을 잉어가 날아오른 곳이라 하여 비리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충북 >음성군

    효자를 위해 잉어가 스스로 뛰쳐나온 음성 이양골
    충청북도 음성에 효자로 이름난 권국화가 살았다. 어느 해 부친의 약을 구하러 한밤중에 장호원을 가려고 하니 호랑이 태워다 줬다. 그리고 한 겨울에 부친이 잉어회를 먹고 싶다고 해 성미저수지에 가서 도끼로 얼음을 깨려 했으나 깨지지 않았다. 권국화는 무릎을 꿇어 하늘에 기도를 드렸고, 무릎의 체온에 얼음이 녹아 뚫힌 구멍으로 잉어가 뛰쳐나왔다. 덕분에 아버지는 잉어회를 먹고 천수를 누렸다. 권국화가 잉어를 잡았던 성미저수지가 있는 들판을 잉어가 올라온 곳이라 하여 이양골이라 불렀다.
  • 강원 >춘천시

    효자가 살았던 춘천시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孝子洞)과 거두리(擧頭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춘천의 지명에 효자동과 거두리와 대룡산이 있다.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는 이 지명이 생긴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효자는 조선조 때 춘천에 살던 반희언이라는 사람 이야기라고도 한다. 효자 반희언(潘希彦)은 임진왜란 때 용감했던 장군 반처량(潘處良)의 아들로서 희언은 1554년 5월 18일 춘천 퇴계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를 임진왜란에 잃고 홀로 어머니를 돌보면서 효자노릇을 했다. 그의 효성을 표창하여 나라에서 효자문을 내렸는데, 그 때문에 효자동이 생겼다고 한다.
  •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 경북 >포항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가 살았던 포항 효자동
    옛날 경북 포항 한 마을에 홀어머니와 효자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어 했다. 아들은 대구로 시집 간 누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밤중에 산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호랑이는 아들을 태워 순식간에 누나에게 데려다 주었다. 마침 누나의 집에 홍시가 있어 아들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후 효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경남 >거제시

    한겨울 숭어를 구해온 효자 이돌대, 거제시 효촌
    옛날 거제시 연초면에 이돌대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병든 어머니가 숭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이돌대는 숭어를 구하기 위해 통영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배에 올랐다. 그때 숭어 한 마리가 갑판에 떨어졌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돌대는 겨울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 숭어를 잡았다. 마침 배에 타고 있던 통제사가 이를 나라에 알려 이돌대에게는 벼슬이 내려졌으며 정려문도 세워졌다. 정려문이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효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 전북 >진안군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잡은 효자, 진안 범바위
    옛날 진안군 용담면 범바위 마을에 김효자가 살았다. 하루는 노모가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 개가 없는 김효자는 친구의 둔갑술 책을 빌려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왔다. 이후 노모가 개고기를 다 먹을 즈음이면 김효자는 어김없이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왔다. 이를 의심한 부인이 어느 날 밤 몰래 따라갔다가 김효자가 둔갑술 책을 보고 광에서 호랑이로 둔갑한 것을 봤다. 부인은 놀라서 김효자가 개를 잡으러 간 사이에 책을 불태웠다. 김효자는 책이 없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마을 주변을 맴돌다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범바위라 불렀다.
  • 전국

    충효
    충(忠)은 나라에 대한 윤리이지만 자기자신에게 충실한 것으로도 해석한다. 효에 관해서는 『논어』의 문답을 살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자하가 효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낯빛이 어려우니, 일이 있거든 자식이 수고롭게 일을 하고, 술과 음식이 있거든 부모에게 드린다. 일찍이 이런 것이 효가 될까?”하였다. 집안의 일을 하고, 끼니를 챙겨드리는 것만으로 효도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부모의 안색을 살피는 것이 어려운 것은 부모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고, 효도는 곧 부모의 마음을 살피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 울산 >동구

    오누이가 삼을 캐어 부모님의 병을 고쳤다는 울산 삼밭골
    옛날 울산의 어느 마을에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지만 부모님의 병은 깊어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탁발 온 스님이 오누이에게 산삼을 캐어 부모님께 드려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오누이는 눈 덮인 산에 올랐지만 산삼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를 캐서 부모님께 뭇국을 끓여드렸다. 그랬더니 부모님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알고보니 그것이 산삼이었다. 이후 오누이가 산삼을 캔 곳을 삼밭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우리마을이야기 전라도편

시민기록가와 함께하는 전라도지역 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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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꿈의 길을 내는 곳, 곡성 ‘길작은도서관’
    전라남도 곡성군 입면 서봉리에 있는 길작은도서관은 관장 김선자 씨의 작은 꿈에서 시작되었다. 교회 사택 한 편의 여덟 평 공간에 꾸린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되어 2011년 이웃 할머니의 집을 사서 수리하고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곳은 서봉 아이들의 놀이방이기도 하고, 길문학회 사람들의 모임방이기도 하고, 주경야독이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들을 모아 열었던 한글교실에서는 2016년에 『시집살이 詩집살이』라는 시집까지 냈다. 김막동, 김점순, 도귀례, 박점례, 안기임, 양양금, 윤금순, 조남순, 최영자 등 아홉 할매들의 삶이 낳은 시가 한데 담겨있다.
  • 전북 >전주시

    전주 바느질골목의 젊은 피, 바늘소녀공작소
    전주 남부시장 근처의 골목에 바느질 골목이 있다. ‘고물자 골목’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1950년대 전쟁 직후, 미군부대 구호물자 보급품들이 거래되고 미국에서 들어온 헌 옷을 팔고 사고 고쳐 입던 ‘구호물자 골목’이었고, 1960~70년대에는 군복염색 상가가 이어지고 푸대 같은 구제 청바지를 줄여주던 ‘청바지 골목’이었다. 1980~90년대에는 교복수선집들이 들어섰고, 경찰복, 교련복, 예비군복 등 단체복을 생산해 내던 곳이기도 했다. 현재는 수십 년 된 한복바느질집과 옷수선집이 명맥을 잇고 있다. 이 곳에 5년 전 '바늘소녀공작소'라는 가게가 들어섰다. 전주 바느질 골목의 젊은 피였다.
  • 전북 >부안군

    누구에게든 빛이 되어주고픈 부안 등대이발관
    전라북도 부안군 행안면 대초리에 있는 등대이발관은 류한열 씨가 20여년 전부터 운영하는 이발관이다. 1993년 읍내에서 개업한 '등대이발관'이라는 상호를 그대로 가져왔다. 누구에게든 빛을 드리는 존재가 되고픈 맘으로 내건 이름이라고 한다. 류한열 씨는 1973년 이용사 면허증을 땄다. 요즘도 영업을 하지만 어떤 주에는 손님이 한명도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수족이 떨릴 때까지 문을 열어놓을 생각이다. 자신이 문을 닫으면 요 근동 사람들은 더 멀리로 이발소를 찾아가야 하니까.
  • 전북 >군산시

    미곡집산지 군산의 카페 미곡창고
    군산의 카페 미곡창고는 1960년대에 지어진 농협 미곡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카페이다. 당시의 외관이 남아 있으면서도 인테리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카페이다. 창을 크게 내어 창고의 갑갑한 단점을 보완했고, 전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 맛도 일품이다. 유기농 밀로 직접 만든 빵도 맛있다. 군산역과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근처에 있어서 군산 근대거리를 관광한 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 전북 >군산시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 발원지에 세워진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군산은 호남지방 최초의 3·1만세운동 발원지이다. 세브란스 의전 학생이었던 김병수가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 장을 전달받아 1919년 3.1 운동 나흘 뒤 3월 5일 군산 구암동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총 28번의 만세운동에 3만 7천여 명이 참여했다. 군산의 3·5만세운동은 만세운동이 한강 이남 일대에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계기이자 도화선이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군산 3·1운동역사공원에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 그날을 재현하고 있다.
  •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근처의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창간된 최초의 순우리말 잡지이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성벽 외곽에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잡지를 비롯해 발행인 한창기 선생이 모은 6500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전시실들이 있고, 야외전시실에는 거문고 명인 김무규 선생의 고택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 전남 >나주시

    전세계 1700여대의 카메라를 만나는 동신대 카메라박물관
    전라남도 나주의 동신대에는 카메라 마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한 동신대 카메라박물관이 있다. 동신대 중앙도서관 5층에 있는 이 박물관은 원로 사진작가이자 생전에 동신대 사진예술학과 객원교수를 역임한 고(故) 이경모 교수가 기증한 카메라와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한때 종군기자로 활약하기도 했던 이경모 교수는 자신이 평생 수집한 세계 각국의 희귀카메라 1,516여대와 작품사진을 기증하여 1996년 11월 11일에 동신대 카메라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이곳은 단순히 카메라만 전시하는 게 아니라 시기별로 기획전을 열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전남 >나주시

    나주 영산포 홍어거리의 영산포역사갤러리
    전라남도 나주 영산포는 고려시대 세곡을 보관·수송하던 조창이 있었고, 조선 초기 남부 지방세를 집결하는 곳이었으며, 일제강점기엔 나주 쌀을 수탈하는 요충지였다. 오랜 시간 물류의 중심지였던 이곳에 1918년 조선식산은행이 설립되었다. 이 건물을 2012년에 나주시가 매입, 개조하여 영산포 역사갤러리로 개관했다. 역사갤러리에는 고려시대 흑산도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시작된 영산포의 역사부터 영산강의 발전과 영산포의 특산물인 홍어에 대한 설명 등을 볼 수 있다. 영산포 역사갤러리 주변은 근대 문화의 거리로, 일본식 목조 가옥, 정미소, 선창 등이 남아 있다.
  • 전북 >전주시

    전주시 덕진구 팔복예술공장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산업단지에는 '팔복예술공장'이 있다. 1979년 쏘렉스 공장으로 문을 열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만들던 곳이다. CD가 등장하며 쇠락하다가 1991년 폐업한 후 25년 동안 폐공장으로 남아있었다. 그러다 황순우 건축가가 참여하여 리모델링하여 2017년 10월에 새롭게 개관했다. 팔복예술공장은 전시 공간과 입주 작가 작업 공간, '써니'라 이름 붙인 카페 공간, 공장과 공장 사이 공터에 툭툭 던져 놓은 컨테이너에 담아 둔 책방과 만화방 등이 모여 있다. 공장 바로 옆에는 가끔 화물 열차가 지나는 기찻길도 있다.
  • 전북 >고창군

    책을 읽고 책을 만드는 고창 책마을해리
    전라북도 고창 해리면 월봉마을의 '고창 책마을해리'는 출판계에 몸 담았던 이대건 촌장이 나성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다. 나성초등학교는 1933년 광승 간이학교로 문을 열어 2001년에 폐교가 된 이후 2006년에 '고창 책마을 해리'로 다시 문을 열었다. 바람언덕(야외강연장), 암벽타기벽이 있는 동학평화도서관, 책숲 시간숲(마을신문과 지역책 도서관), 버들눈 도서관(어린이청소년 도서관), 직접 책을 찍어낼 수 있는 누리책공방 등 볼거리와 할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우리마을이야기 제주편

시민기록가와 함께하는 제주도 마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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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제주시

    제주 도심 속에 위치한 명품 힐링 공간 한라수목원
    제주의 복잡한 도심 노형동에 위치한 한라수목원은 공항에서도 가깝고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제주시민들이 더 사랑하는 공간이다. 주차장이 넓고 입구까지의 거리도 꽤 멀지만 많은 시민들이 걸어서 방문한다. 희귀식물이 많고 잘 가꾸어져 있는데다, 광이오름까지 오르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건강을 가꾸기에도, 마음의 쉼을 얻기에도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 제주 >제주시

    민둥산에서 친근한 숲길로 변한 제주시 오라 민오름
    제주시 오라동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는 민오름은 예전엔 민둥산이어서 민오름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지금은 나무가 울창한 자연숲으로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주민들이 운동하기에 좋도록 체력단련장이 있고,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전망도 근사하다. 꿈바당어린이도서관을 경유하여 오르는 길에 제주 공항, 한라산을 볼 수 있고, 정상에 서면 사라봉, 별도봉, 제주항 등 제주 시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 제주 >제주시

    자연과 책이 만나는 공간 꿈공작소! 제주 꿈바당어린이도서관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은 제주시 연동에 위치하여 책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힘차게 뛰어놀 수 있는 정원과 놀이터를 갖추고 있고, 정성어린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의 꿈과 비전을 키워나갈 수 있는 꿈공작소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까지 즐거워지는 곳, 남녀노소가 모여 책을 매개로 자연을 만나고 놀이와 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 제주 >제주시

    책밭서점,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에 가다
    제주도 이도1동에 자리잡고 있는 책밭서점은 40년 넘게 운영되고 있는 제주 도내에서 가장 오래된 헌책방이다. 빛바랜 헌책들이 뿜어내는 세월의 향기에 아직 많은 이들이 사랑하고 애용하는 곳으로 주인아저씨의 특별한 스토리가 담긴 가게이기도 하다.
  • 제주 >제주시

    조선 건국과 함께 만들어진 제주 최초의 교육시설, 제주향교
    제주향교는 용담동에 위치한 제주 최초의 학교로 조선시대 제주지역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국립교육기관이다. 현재도 정기적으로 제주도민을 대상으로 한문강의를 진행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며 교육기관으로써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제주향교 경내, 용방록, 대성전 등은 유형문화재와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제주 >제주시

    72만㎡ 드넓게 펼쳐진 제주 경마공원 - 렛츠런파크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에 있는 렛츠런파크는 경마장으로 개장해 경마공원이 되었다가 2014년에 이름이 바뀐 곳이다. 이곳은 끝없는 녹색평원이 펼쳐지고, 제주마를 체험할 수 있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하루종일 놀 수 있는 유원지이다. 주말마다, 특별한 시즌마다 축제같은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가 벌어져서 제주주민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 제주 >제주시

    제주 왕벚나무 거리의 50년된 원이조 설농탕
    전농로거리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도1동에 있는 왕벚나무 거리이다. 전농로 거리에 있는 원이조 설농탕은 50년 전통의 맛집으로, 김치를 직접 담그며, 설렁탕 안에 소면 대신 소바를 넣어준다. 모든 음식은 당일 만든 것만 판매하며, 저녁에 가면 재료가 떨어져 못 먹는 경우도 있다. 노부부의 뚝심이 묻어나는 오래된 가게다.
  • 제주 >제주시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관덕정
    보물 제322호인 관덕정은 제주시내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제주 현존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관덕정은 목관아 건물로 과거 제주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세종 30년 제주 목사 신숙청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지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처마가 잘려나가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현재는 제주의 중요 유적지일뿐 아니라 문화공연장이자 만남의 장소로 사랑받고 있다.
  • 제주 >제주시

    제주 바닷물과 한라산 계곡물이 만나는 월대천
    제주시 외도의 월대천은 바다와 한라산 계곡물이 만나는 특별한 곳으로 외도 주민들의 자랑이다. 화산암반으로 이루어진 제주에서 하천은 거의 말라있는 건천인데, 월대천은 사계절 맑고 시원한 물이 흘러 특히 여름철에 많은 시민들이 찾는다. 월대천 주변에는 270여년 된 해송과 팽나무가 물 위로 휘늘어져 선경(仙境)을 자아낸다.
  • 제주 >제주시

    도심과 가까운 몽돌해변, 제주 알작지해변
    제주시 내도동에 위치하고 있는 알작지는 흔한 모래사장 해변과 달리 동그란 돌들로 이루어진 몽돌해변이다. 알작지에 가면 돌들과 파도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아름답고 신비로운 소리를 들을 수 있고 노을이 지는 멋진 풍경과 벽화로 눈까지 즐거워진다. 내도동 주민들의 미술관이자 음악감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도로개발로 알작지 해변이 유실되어 있어 내도동 주민들의 시름이 깊다.

첫 보름달이 뜨는 날, 정월대보름

새해 들어 처음 만월이 되는 정월대보름은 예로부터 한 해의 생명력과 생산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로 여겼습니다. 대보름 아침에는 나이만큼 부럼을 깨서 액운을 쫒고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고, 마을사람들은 모여 달집태우기, 지신밟기 등의 놀이를 하며 풍년을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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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며 달집태우기
    일년 중 가장 먼저 만월이 떠오르는 날인 정월대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짚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움막을 만들어 달집을 만든다. 달집태우기는 이 달집을 불로 태움으로써 모든 부정과 근심을 함께 태워 없애는 대보름의 주술적 행위이다.
  • 강원 >강릉시

    강릉 사천하평 답교놀이
    강릉 사천하평 답교놀이는 매년 음력 2월 6일의 좀상날에 마을에 있는 다리를 밟으며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 형태이다. 원래 다리밟기는 사람의 다리가 튼튼하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정월대보름 전후에 이루어지는 세시풍속인데, 강릉은 시기와 목적이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이날 횃불놀이도 함께 이루어진다.
  • 경기 >광명시

    광명 아방리줄다리기
    아방리줄다리기는 경기도 광명시의 노온사동 아방리 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암줄과 수줄을 엮어서 서로 당기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였다. 이곳은 쌍줄이며, 남녀로 편을 나누고, 목적은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에 있다.
  •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놀이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마을굿(당굿)을 한 다음 각 집을 차례로 돌면서 풍물을 치며 집터 곳곳의 지신(地神)을 밟아서 달램으로써 한 해의 안녕과 복덕을 기원하는 마을 민속의례이다. 집터에 있는 지신을 말 그대로 밟는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신들이 있는 터에 들어가 풍물을 치며 놀면서 신을 즐겁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초에 가족과 집안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함을 빌며 한 해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올리는 제의이다.
  • 경남 >창원시

    창원 진동큰줄다리기
    진동큰줄다리기는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진동면 동촌 냇가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동서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세시성 집단놀이 형태이다. 줄은 암수줄로 구분하는 쌍줄 형태이며, 승부에 따라 상여를 만들고 상복을 입으며 곡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 전북 >고창군

    고창오거리 당산제
    고창군 고창 읍내에서 행해지는 오거리 당산제는 읍내에 자리한 여섯 곳의 당산에서 지내는 제의를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복합형태의 마을신앙이라 하겠다. 제의는 정월 대보름날 행해진다. 지역마다 각자의 당산제를 지낸 다음 읍내로 나와 동부와 서부로 나눠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이들 놀이가 끝나면 줄을 당산의 신체에 감아놓는다. 연등놀이도 함께 진행된다.
  • 광주 >남구

    광주 칠석동 당산제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은 상칠석과 하칠석으로 나뉘어 있는데 두 마을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각 마을에 모셔진 당산 신에게 제의를 지낸 다음 두 팀으로 나눠 고싸움놀이를 한다. 흔히 공주 칠석 고싸움놀이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이다.제관으로 선정이 되면 집마다 다니며 쌀을 걷는다. 화주는 제관에게 받은 쌀을 판 돈으로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 과정에 필요한 제물에는 과일, 고기, 채소 등이다. 본격적인 제의에 앞서 제의 당일 저녁 시간에 사돈 보기라는 행사를 한다. 사돈 보기가 끝나면 두 마을에서 뽑힌 제관들은 함께 상칠석의 당집을 찾아가 제의를 올린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의식이 마무리되면 두 마을주민들이 모두 참가하는 고싸움놀이를 한다. 동부(상칠석마을)와 서부(하칠석마을)로 나눠 진행되는데 승부를 겨룬다. 간혹 고싸움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고를 해체해 줄다리기하여 승패를 결정짓는다.
  • 경기 >포천시

    포천 틀무시 동홰세우기
    포천 틀무시동홰세우기는 경기도 포천시 틀무시마을에서 정월 16일에 수수깡과 나무를 세워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 형태이다. 이 놀이는 마을의 남녀가 같이 참여하는 집단놀이 형태로 정월대보름 세시놀이의 성격을 지닌다. 현재도 마을 단위로 전승이 지속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예부터 ‘동홰세운다’라고 말한다. 
  • 경기 >광주시

    광주 광지원해동화놀이
    광주 해동화놀이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중부면) 광지원리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 주민이 달맞이를 위해 해동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정초의 집단 놀이 형태이다. 해동화놀이는 지역에 따라 달집태우기(호남), 동화제(충남), 동홰놀이(경기도), 화옹이(경기도 여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 전국

    하루 아홉 번 먹는 오곡밥
    정월 대보름에 풍농을 기원하며 먹는 오곡밥은 다섯 가지 곡식, 쌀, 조, 수수, 팥, 콩 등을 섞어 지은 밥으로 보름밥이라고도 한다. 오곡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상 모든 곡식을 뜻한다는 말이고, 즉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 입춘(立春)

매년 양력 2월 4일 경은 24절기 중 첫번 째 절기인 입춘입니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봄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면서 봄을 맞을 준비 같이 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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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서울 >종로구

    봄을 알리고 단비를 기원하는, 창덕궁 보춘정
    보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창덕궁 내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이다. 보춘정 건물의 다른 면에 희우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누각은 봄이 옴을 알리고, 가뭄 때 단비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 전남 >영광군

    노비를 위해 만든 특별한 음식, 영광 모싯잎송편
    모싯잎송편은 뜨거운 물에 데친 모시 잎을 곱게 갈아서 물에 불린 쌀과 섞어 만든 떡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의 향토음식이다. 조선 시대에는 음력 2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 하여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주인이 노비들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 이날 노비들에게 먹인 떡이라 하여 ‘노비송편’으로도 불린다.
  • 전국

    눈으로 보는 꽃의 아름다움이 화려한 음식으로, 화전(花煎)
    화전은 잘 반죽한 찹쌀가루를 기름 두른 번철에 조그맣고 둥글 넓적하게 부쳐 계절을 대표하는 꽃을 더한 떡이다. 진달래꽃, 장미,국화 등을 고명처럼 얹는다. 다른 말로 꽃지지미 또는 꽃부꾸미라고 한다.
  • 제주 >제주시

    봄에 담가 먹는 제주도 전통 김치, 동지김치
    동지김치는 무나 배추의 꽃대 ‘동지’를 소금에 절인 다음 고춧가루와 마늘, 파 등으로 버무려 저장 발효시킨 음식이다. 제주의 봄을 알려주는 동지김치는 독특한 제주도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제주도 고유의 향토음식이다.
  • 충북 >충주시

    이름처럼 맑고 깨끗한 전통주, 청명주
    청명주는 충주 김해 김씨 문중에서 빚어왔던 가양주의 일종으로, 지금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위치한 중원당 청명주 양조장에서 생산한다.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에 술을 빚거나 마셔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청명주는 알코올 도수 17도의 맑고 부드러운 술로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전통주 중 하나이다. 1993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 경남 >거제시

    바다의 맛과 향을 비벼보자, 거제도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살짝 얼린 멍게젓갈에 밥과 함께 김 가루, 참기름, 야채 등을 넣어 비빈 요리로 경상남도 거제도의 향토음식이다. 주재료인 멍게젓은 멍게의 살로만 만드는데, 멍게 특유의 향과 단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는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첨가하지 않는다. 멍게젓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기도 하고 고추장이 멍게 특유의 향과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 >종로구

    모양은 작지만 큰 정성으로 만드는 고유의 떡, 쑥구리단자
    쑥구리단자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 식용 식물인 쑥을 이용한 전통 떡이다. ‘단자’는 찹쌀로 떡을 빚어 그 안에 팥소를 넣고, 곁에 꿀물을 바르고 고물을 묻혀 만든다.
  • 강원 >춘천시

    춘천 조양2리 전치곡치 마을성황제
    조양2리 마을주민들이 매년 음력 삼월삼짇날 지내는 마을 제의로 호랑이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시작된 춘천을 대표하는 마을 신앙이다. 아주 옛날 호랑이가 마을에 자주 내려와 짐승들을 잡아가고 농작물을 피해를 종종 끼쳤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의 아이가 없어진 일이 발생했다. 주민들이 모두 그 아이를 찾아 나섰는데 뒷산의 큰 바위 밑에서 아이의 옷만 발견했을 뿐 아이는 찾을 수 없었다. 마을주민들은 그 일이 있는 뒤에 서낭신에게 제의를 지냈다. 그러자 마을에 호랑이가 내려오지 않았고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전치곡치 마을의 성황제는 제물을 진설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제의 과정에서 별도로 기부금을 낸 사람에 한해서 제관이 소지를 올려주었다. 성황 제사의 축문도 별도로 있다. 축문의 내용에는 마을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부분도 있으며 주민 모두가 복을 많이 받기를 기원하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 경남 >통영시

    담백한 바다와 향긋한 육지의 찰떡궁합, 통영 도다리쑥국
    도다리쑥국은 봄철에 어획한 도다리와 초봄에 해풍을 맞으며 돋아난 쑥을 넣고 담백하게 끓인 생선국으로 경상남도 통영시의 봄철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이다. 일 년에 한 달에서 한 달 반 남짓, 쑥이 나기 시작하는 초봄에만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서울 이야기와 함께하는 봄 나들이

서울은 흔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대도시라고 합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고층빌딩 숲으로 둘러 싸여있지만, 그 안에는 600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로 겪은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궁궐,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탑골공원의 팔각정뿐만 아니라,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 가옥 등 예술가의 공간도 서울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용산 해방촌은 6·25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과 해외에서 돌아온 교포들의 임시거주지였다가 미국 군인들의 거주지로 바뀌었고, 지금은 젊은이들이 모여 북적거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봄, 내가 몰랐던 서울 여행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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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노원구

    뒤늦게 출발한 식민지 공학교육, 서울대학교 구 공과대학 본관과 교사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법의학부와 의학부로 출발했다. 조선총독부가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밀려 마지못해 식민지에도 대학을 세운 것이다. 농학부, 이학부, 공학부도 설치하겠다고 해놓고 비용 문제를 앞세워 계속 미루다가 1938년에야 이공학부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공학부는 1942년 교외 지역인 태릉에 들어섰다. 본관과 교사 2개 동으로 된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흡수되어 고등 공학 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현재는 국립 서울과학기술대학의 교사로 쓰인다.
  • 서울 >도봉구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 등 우리 민족이 위기와 고난에 처해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어려웠을 때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유산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형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만들어 어렵게 모은 문화재를 간직했다. 등록문화재 제 521호인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은 그의 민족혼이 배어있는 집이다. 간송이 생전에 머물렀던 가옥으로는 현재 이곳이 유일하다.
  • 서울 >종로구

    흥선대원군의 별서, 서울 석파정
    석파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 산16-1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6호이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의 별서 건물이다. 석파정은 조선시대 한양 도성의 창의문 밖에 있으면서 인왕산 동쪽의 돌산 중턱의 수려한 산수와 계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거대한 암석과 오래된 소나무들이 많아 예로부터 한양 도성의 경승지로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석파정을 소유하기 이전부터 이곳에는 조정만(1656~1739)이 세운 소수운렴암이 있었으며, 19세기에는 안동김씨 세도가 김흥근의 삼계동정사가 있었다. 고종 즉위 후 왕권을 강화하고 안동김씨의 세력을 약화시키고자 한 흥선대원군이 김흥근으로부터 그의 별장을 빼앗아 자신의 호를 따서 석파정이라 하였다. 현재 4채의 건물군이 남아 있으며, 예전에 이곳에 있던 건물이 1958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홍지동 125번지로 옮겨갔는데, ‘대원군별장’이라는 별도의 이름으로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석파정 별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 서울 >광진구

    개로왕이 굴욕을 겪은 아차산성
    해발 285m의 아차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퇴뫼식 석축산성으로 둘레 약 1,125m이다. 268년(책계왕 원년) 이를 수축하여 고구려의 침략에 대비하였으며 475년(개로왕 21) 9월 고구려 장수왕이 군사 3만명을 거느리고 백제에 침입하여 개로왕을 죽인 곳이다.
  • 서울 >종로구

    수많은 역사소설의 산실, 서울 평창동 박종화 가옥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역사소설 부문을 개척한 월탄 박종화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작가다. 월탄이 1920년 발간한 『장미촌』은 한국 최초의 시지[詩誌]이며, 23세[1923년]에 발표한 「목 매이는 여자」는 우리 현대문학사상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월탄은 3권의 시집, 17편의 장편소설, 12편의 단편소설, 2권의 수필과 평론집을 쓸 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들은 다수가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중에게 익숙하다. 서울 평창동 박종화 가옥에서 그는 『여인천하』, 『세종대왕』, 『양녕대군』, 『임진왜란』, 『월탄 삼국지』 등의 작품을 썼다.
  • 서울 >종로구

    한국 최초 서양화가가 후학 가르치던 곳, 서울 원서동 고희동 가옥
    한옥들이 좁은 골목을 끼고 오목조목 붙어 앉은 서울 북촌 원서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41년 간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창작 활동을 했던 집도 있다. 고희동은 우리나라 신미술 운동의 기수로서 서양화로 삽화를 처음 그린 근대화단의 선구자이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고희동의 유화작품은 단 3점에 불과하다. 하나는 일본 유학시절에 그린 자화상이고, 나머지 둘은 며느리가 원서동 가옥에서 옛날 짐보따리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나온 또 다른 자화상들이다. 고희동 가옥은 1918년 창덕궁 후원이 바라보이는 곳에 터를 잡아 지어졌다.
  • 서울 >성북구

    한국미 일깨운 그윽한 사랑채,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은 미술사학자인 혜곡 최순우가 인생의 황혼기를 지낸 곳이다. 최순우는 이곳에서 한국의 미에 대한 탁월한 안내서인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수필집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 등을 집필했다. 한국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은 그의 머릿속만이 아니라 그가 살았던 집에도 배어있다. 국립박물관장으로 한국 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최순우는 한국전쟁 때 목숨을 걸고 도난 위기에 놓였던 간송미술관 소장품을 지켜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최순우 가옥에는 그윽한 생활의 멋이 담뿍 담겨있다.
  • 서울 >성북구

    해방정국 정치1번가, 돈암장
    서울 돈암장은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이승만 전 대통령이 2년간 머문 곳이다. 미군정기의 혼란한 정국 속에서 이승만은 이곳에 머물며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다. 우남 이승만은 당시 ‘최고지도자’로 추앙받는 정치지도자였으므로 많은 정객이 그와 제휴하기 위해 돈암장을 찾았다. 또한, 우익이 주도했던 신탁통치반대운동도 돈암장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돈암장은 대목장 배희한이 지은 한옥인데 전통적 궁궐기법이라는 평가와 일본풍이 가미되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서울 >종로구

    청전이 없었다면 20세기 한국화는…, 서울 누하동 이상범 가옥과 화실
    경복궁 서쪽에 있는 한옥마을인 서촌에는 오래전부터 예술인들이 많이 살았다. 그중 누하동에는 한국 남종화의 새로운 방향을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는 청천 이상범의 집과 화실이 있다. 이상범은 동아일보 미술기자로 근무하며 ‘손기정 일장기말살사건’에 연루되어 고초를 겪는 등 민족주의적 성향을 지녔으나 결국 일본 군국주의의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친일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는 누하동의 작은 개량한옥에서 43년간 살며 많은 작품을 발표했으며 청전화숙이라고 불리던 그의 화실에서 배렴과 박노수 등의 탁월한 제자들을 배출했다.
  • 서울 >강서구

    김포평야의 첫 근대식 설비,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구 양천 수리조합은 1928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양천구 마곡동에 배수펌프장을 지었다. 1923년 설립된 양천 수리조합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큰 농경지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김포평야의 물을 한강으로 내보내는 시설이 절실했다. 당시 양천 수리조합의 몽리구역에 속했던 595정보는 모두 경기도 김포시에 소속된, 김포평야의 농경지였다. 배수펌프장은 근대의 동력인 전동기로 물을 퍼 흘려보내는 배수로와 배수갑문을 갖추었다. 배수갑문은 홍수 시 문을 닫아 한강이 역류하지 못하게 했다. 4m 높이의 콘크리트 기단 위에 목조로 지어진 배수장 건물은 김포평야가 도시화로 인해 사라진 현재도 근대 농업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한국의 서원

2019년 5월,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의 서원 9곳'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였습니다. 성리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9개 서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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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 경북 >안동시

    이황의 도산서당을 모체로 한 도산서원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이듬해인 1546년 이황은 병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한다. 이때부터 호를 물러날 퇴, 시냇물 계, 퇴계(退溪)라 하고 고향에서 살았다. 토계 인근에 정자와 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도덕과 예를 실천하고 가르치며 군자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도산서원은 이런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던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서원이었다.
  • 대구 >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 경남 >함양군

    함양의 유림이 뜻을 모아 세운 남계서원
    함양은 일두 정여창의 고향으로, 남계서원은 고을 사림들이 정여창을 흠모하여 세운 서원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자 글과 예를 숭상하는 풍속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들은 남계서원을 정몽주를 배향하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안향을 기리는 소수서원과 견줄 만큼 정여창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독락당에 세워진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안강은 이언적의 고향이다. 이언적은 을사사화로 유배 간 강계에서 죽음을 맞았고, 19년이 지난 후에 마을의 사림들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 그가 거처하던 독락당 근처에 덕행과 학업을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16세기 말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과 소장 유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 경북 >영주시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골에 자리한 소수서원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에 주세붕이 붙인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백운동(白雲洞)은 ‘흰 구름에 쌓인 골짜기’라는 뜻으로 서원의 입지와 관련이 깊다. 서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의 산자락 위로 흰 구름이 가득하고 옆으로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죽계천이 연못을 이루다 밑으로 흘러갔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죽계별곡」은 이곳 죽계천을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구름에 감싸인 소백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죽계천의 경치를 보면서 주세붕은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떠올렸고 이곳에 서원을 세워야겠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역사가 있는 교육기관

조선시대 서원에서부터 근대에 세워진 학교까지 역사가 살아숨쉬는 전국의 교육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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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노원구

    뒤늦게 출발한 식민지 공학교육, 서울대학교 구 공과대학 본관과 교사
    경성제국대학은 1924년 법의학부와 의학부로 출발했다. 조선총독부가 민립대학 설립 운동에 밀려 마지못해 식민지에도 대학을 세운 것이다. 농학부, 이학부, 공학부도 설치하겠다고 해놓고 비용 문제를 앞세워 계속 미루다가 1938년에야 이공학부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공학부는 1942년 교외 지역인 태릉에 들어섰다. 본관과 교사 2개 동으로 된 경성제대 이공학부는 해방 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으로 흡수되어 고등 공학 교육의 요람이 되었다. 현재는 국립 서울과학기술대학의 교사로 쓰인다.
  • 전남 >순천시

    선교사의 자녀들,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
    미국 남장로회 순천선교부는 1910년 설립이 결정되었다. 당시 순천선교부에는 선교사만 70명 이상이 오가며 활동했다. 순천선교부는 1913년부터 순천시 매곡동 일대 버려진 땅에 교회, 학교, 병원을 세우고, 사택을 지어 활동 근거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는 기혼 선교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회색 벽돌로 지은 건물이다. 낯 설고 물 설은 식민지 땅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자취를 짐작하게 해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는 순천시 순천선교부 거리의 등록문화재 5곳 가운데 한 곳이다.
  • 충북 >괴산군

    교육 열망이 낳은 “돌집”, 괴산중학교 구 본관
    해방 후 분출된 충청북도 괴산군민들의 교육 열망은 괴산중학교 설립으로 나타났다. 1946년 인가를 받은 괴산중학교는 이듬해인 1947년 당대 최고의 석조 건축 회사인 서울중앙산업에 학교 건축을 맡겼다. 석재는 괴산과 음성 경계 지점의 치마바위를 깨뜨려 운반했다. 석재를 다듬기 위해 석공 20명이 3년간 인근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괴산중학교 1호관은 1949년에, 잇달아 지어진 2호관은 1951년에 준공됐다. 괴산중학교 구 본관은 공사에만 4년여 세월과 정성이 들어간 건축물이다. 충청북도 내에서 석조 교사는 괴산중학교 구 본관이 유일하다.
  • 광주 >동구

    무등산 깃대봉의 민립대학,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무등산 깃대봉 중턱의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광주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다. 370m 길이에 19개 박공 건물이 늘어선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 19개 건물 가운데 초기에 세워진 5개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 94호다. 5개 동은 1947년부터 1955년까지 8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이어진 건물들은 후에 증축한 것이다. 조선대학은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진행된 민간 차원의 대학설립 운동이 결실을 맺은 최초의 사례다. 당시 호남 각지에서 7만2,000명이 조선대학 설립동지회에 가입해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이 설 수 있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광주 >동구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별관·체육관
    광주 서석초등학교는 광주광역시에 최초로 세워진 근대식 공립학교다. 1896년 소학 교령에 따라 공립소학교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 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30년 강당 겸 체육관[현재의 서석당]이 세워졌고, 1935년 본관, 1943년 별관이 건축되었다. 학교의 이름은 1938년 광주 서석 공립 심상소학교가 되어, 서석이라는 유서 깊은 이름을 붙였다. 서석은 무등산의 이칭이자, 광주의 옛 이름이 서석읍이다. 해방 후에도 서석이라는 교명은 계속 사용되었다. 광주 서석초등학교 본관과 강당, 별관은 정성 들여 지은 붉은 벽돌 건물이다.
  • 충북 >청주시

    선비의 정신을 갖춘 상업 인재를, 청주 대성고등학교 본관
    청주상업학교는 1930년대 청주 지역 학부모들의 염원과 청주 유지들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특히 청암 김원근과 석정 김영근 형제가 거금을 내놓아 학교 설립이 결실을 보았다. 붉은 벽돌 2층으로 지어진 학교 본관은 상업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해방 후 청주상업 고등학교가 되었으나 시대의 추세에 따라 2002년 인문계로 전환해 청주 대성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우암산 자락 인가 드문 뽕나무밭에 들어선 학교는 해방 후 청주대학교를 비롯해 학교 건물들이 잇따라 지어지고, 청주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번화한 거리로 변했다.
  •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조선 시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다.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 본관과 강당은 미국의 리차드슨 부인이 거금을 기부해 건립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아쉽게도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다행히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경남 >거창군

    물흐르듯 자연과 하나 되는, 거창 구연서원 관수루
    거창 구연서원 관수루는 천하의 절경에 세운 요수정과 거북바위 수승대와 마주한다. 관수루는 서원으로 출입하는 문루이다. 관수루가 들어선 자리, 그 모습, 그 이름, 모두가 예사롭지 않다. 자연석 암반 사이에 세워진 관수루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대표적인 누각이다. 요수정(樂水亭)과 관수루(觀水樓). 두 이름 모두 물과 관련된다. 흐르는 물과 같이 자연에 순응하며 살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경기 >수원시

    수원 교육 백년의 상징, 수원 삼일중학교 아담스 기념관
    수원의 삼일학교는 1903년 수원의 애국지사들이 주동이 되어 설립되었다. 삼일학교라는 교명은 기독교 교리의 삼위일체를 뜻한다. 아담스 기념관은 1923년 삼일학교의 새 교사로 지어졌다. ‘아담스’는 삼일학교 신축 교사를 지으라고 헌금을 모아 보내준 미국 교회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아담스 기념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지어진 붉은 벽돌 건물이다. 중국인 기술자가 현장 감독을 맡아 공사를 진행한 아담스 기념관은 세련된 균형미를 갖춘 건축물로 평가된다. 아담스 기념관은 현재도 옛 모습을 간직한 수원 교육사의 중요한 근대유산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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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소반을 만드는 소반장(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은 밥과 반찬 등의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작은 상, 소반을 만드는 일이나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말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궁중에선 소목장이 소반도 만들었는데, 1992년 11월 10일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로 소반장이 지정되었다. 소반 중에는 해주반, 나주반, 통영반이 유명하다. 최초의 기능보유자는 해주반으로 유명한 이인세(1928-2009), 그의 사후 2014년에 나주반의 김춘식과 통영반의 추용호가 소반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선비의 칼 낙죽장도를 만드는 낙죽장도장(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粧刀)는 몸에 지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을 말한다. 대나무로 만든 장도에 낙죽장식을 한 칼을 낙죽장도라고 한다. 낙죽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낙죽장도장(烙竹粧刀匠) 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2월 23일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으로 지정하여 기능을 보존 및 전승하고 있다. 낙죽장도장 기능보유자는 1993년 한병문이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그의 아들 한상봉이 2012년 등록되었다.
  • 전남 >담양군

    알록달록 대나무 상자를 만드는 채상장(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물들여 무늬가 배치되도록 짠 상자인 채상을 엮는 기능 혹은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채상은 문양과 색이 아름다워 주로 반짇고리, 채죽침, 상자 등으로 만들어졌다. 1975년 1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김동연, 서한규를 거쳐 현재는 서신정이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기능을 보존 및 전승하고 있다. 
  • 경북 >포항시

    화살 넣는 통을 만드는 전통장(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은 화살을 담는 화살통인 전통(箭筒)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기능 보유자는 김동학이 유일하다. 그의 증조부는 무인출신으로 화살통을 손수 만들어 썼다고 하며 4대째 화살통 만드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전국

    불교 목공예품을 조각하는 목조각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
    목조각장(木彫刻匠)은 불교 목조각의 전통 기술을 전수받아 불상이나 보살상 등을 만드는 장인 혹은 그 기능을 말한다. 전통 목조각에는 탈, 솟대, 장승 등의 목조각도 있지만 대부분이 불교사찰과 불상 조각에 치우쳐 있어 목조각장들은 불교 목조각 전통기술자들이다. 목조각장은 1996년 12월 3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8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는 박찬수, 전기만이 있다.
  • 경남 >통영시

    나전칠기를 만드는 나전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은 조개껍질을 다양한 형태로 잘라 기물의 표면에 붙여 장식한 공예품인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기능 혹은 그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1966년 6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끊음질과 줄음질 기법으로 나누어 나전칠기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다. 끊음질은 가는 선 모양으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드는 방식, 줄음질은 거북이나 매화 등의 모양을 오려서 문양을 만드는 기법이다. 
  • 경남 >통영시

    대나무 발을 만드는 장인, 염장(국가무형문화재 제114호)
    염장은 가리개의 일종인 발을 제작하는 기능 혹은 이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발은 햇빛을 가리고 바람을 통하게 하며 실내를 장식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2001년 6월 27일 국가무형문화제 제 114호로 지정되어 기능 보유자로는 조대용(趙大用)이 유일하게 인정되었다.
  • 인천 >강화군

    왕골을 엮어 생활기물을 만드는 완초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은 왕골로 돗자리, 방석, 합 등의 기물을 엮어 만드는 기능 혹은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강화지역의 왕골 공예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이곳은 기후 조건이 왕골의 생장에 알맞아 질 좋은 원료를 구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으로 등록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순천시

    대나무를 지져 문양을 만드는 낙죽장(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烙竹匠)은 대나무의 표면을 뜨거운 인두로 지져 글씨나 무늬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낙죽의 도구는 인두와 화로이고, 인두를 알맞게 달구는 것과 달구어진 인두가 식기 전에 한 문양과 한 글자를 끝내는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으로 지정되어 이동련, 국양문, 김기찬이 기능보유자로 활동하고 있다. 
  • 전국

    문, 창문,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은 나무로 건물의 문이나 창문, 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이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라고 하는데 대목장과 소목장으로 나눠진다. 대목장은 주로 궁궐·사찰·주택 등 건축물을 짓는 것을 담당하고, 소목장은 주로 건축물 실내로 들어가는 가구나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1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을 지정하여, 현재 박명배, 소병진, 엄태조가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조상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조상들의 사계절을 어떻게 지냈을까? 조상들의 사계절을 엿볼 수 있는 계절마다 이용했던 생활용품과 장소, 음식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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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전남 >영암군

    수석 같은 월출산을 사계절 즐기는, 영암 부춘정
    영암 부춘정(富春亭)은 호남의 명산 월출산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부춘정은 야트막한 부춘봉 자락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군자의 상징인 연꽃이 심겨진 연못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는 덕진천이 흐른다. 부춘정은 강한종이 낙향하여 1618년에 지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뒤쪽 4칸에 방을 만들고, 앞쪽 4칸에 마루를 놓았다. 10개의 기둥에 주련이 달렸고, ‘부춘정’ 편액과 기문·시판이 마루에 걸려있다.
  • 전북 >임실군

    여름날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임실 만취정
    임실 만취정(晩翠亭)은 김위(金偉 ; 1532∼1595)가 1572년(선조 5) 낙향하여 세운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김위의 호 ‘만취(晩翠)’에서 따온 것이다. ‘만취’는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초목의 푸른빛’이라는 의미이다. 김위는 재상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여러 고을의 수령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당대의 고봉 기대승·율곡 이이·백호 임제와 같은 인물과 교유하였다. 만취정에는 이들의 현판이 지금도 걸려있다.
  • 전국

    한여름 무더위에 껴안고 자는 죽부인
    죽부인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침구의 하나로 무더운 여름밤에 끼고 자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피서용 생활도구이다. 주로 남성들이 끼고 잤기 때문에 인격화하여 ‘죽부인’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생전 사용하셨던 죽부인도 모시고 같이 제사를 받게 하였다.
  • 여름을 즐겁게 해 주는 빙수
    빙수는 얼음을 갈아 설탕, 시럽, 단팥 등을 넣고 먹는 음식으로 더운 여름철에 인기있다. 빙수는 일제강점기에 판매음식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천연빙으로 만들다가 위생적인 문제로 제빙공장의 얼음을 사용하게 되면서 대중화되었다. 당시 빙수가게는 여름 한철 장사로 천막을 쳐 임시가게를 열었다. 밖에는 ‘빙설(氷雪)’이라고 쓴 긴 깃발을 높이 달고 붉은색으로 외면을 장식한 후 실내에는 만국기를 달았다. 빙수가게에 여점원이 많았는데 풍기문란으로 신문에서 지적받기도 하였다.
  • 전북 >익산시

    조상을 추모하는, 익산 망모당
    망모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356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1607년(선조 40)에 조선 중기의 문신 송영구(1556~1620)가 그의 거처 후원 구릉에 망모당을 짓고 누정 동쪽의 우산에 있는 선영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망모당이라는 정자 이름은 ‘사모하고 그리워한다.’라는 의미로, 송영구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만났던 인물이 후일에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나 지어준 편액이라고 한다.
  • 서울 >종로구

    봄을 알리고 단비를 기원하는, 창덕궁 보춘정
    보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창덕궁 내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이다. 보춘정 건물의 다른 면에 희우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누각은 봄이 옴을 알리고, 가뭄 때 단비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 충남 >공주시

    추운 겨울날 새벽까지 파는 군밤
    밤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먹은 과실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밤과 양주밤이 유명했는데 일제 강점기에도 명성이 이어졌다. 특히 평양밤은 당도가 높아 일본으로 많이 이출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밤장사의 수가 많아지는데 주로 도시에서 낮부터 새벽 2시까지 화로에 밤을 구워 팔았다. 가을부터 초봄까지가 군밤장수의 활동기였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백화점 근처에선 기계로 평양밤을 구워팔기도 했다. 어린 군밤장수는 10전의 군밤을 팔기위해 추운 겨울 낮부터 새벽까지 바깥에서 떨기도 하였다. 
  • 조상의 묘를 찾아뵙는 한식절사
    한식에는 과일과 떡 등을 차리고 조상의 묘소에서 차례를 지낸다. 이를 한식차례(寒食茶禮), 한식제사(寒食祭祀), 한식성묘(寒食省墓)라고 한다. 조상의 무덤이 헐었을 경우에 잔디를 다시 입히는 것을 일반적으로 한식에 한다.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