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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다, 한글날

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으로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부터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에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 시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많이 발전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물시계도 이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측우기 또한 세종 시기에 발명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농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세종은 법전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요, 악보의 역할을 하는 정간보를 창안하고 국가 의례를 위한 음악인 '여민락'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통해 우수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우리말을 좀 더 사용하는 하루가 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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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아산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충청남도 아산이 본관이다.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을 배우러 명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장영실이 귀국 후 세종은 그를 노비에서 해방시키고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지원과 신뢰하에 본인의 실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장영실은 최고의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와 해시계 앙부일구 등을 만들어내며 조선시대 과학기술 문화의 꽃을 피웠다.
  • 울산 >중구

    최현배를 기리고 한글사랑을 알리는 ‘외솔 한글 한마당’
    ‘외솔 한글 한마당’은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낸 최현배(1894~1970년) 선생을 기리고 한글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치러지는 인물축제이면서 한글 확산 목적축제이다.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는 울산에 있는 외솔 최현배의 기념관과 그 일대이다. 공식행사, 특별행사, 학술경연대회, 공연행사, 전시체험행사로 나누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해서 행해진다.
  • 전북 >정읍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 권승욱
    권승욱은 고창고보 스승인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문에 1년 옥고를 치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938년 6월부터 1957년 한글날까지 『조선말 큰사전』여섯 권이 발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조선어사전 편찬에 헌신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언어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는 한글운동을 창시했던 주시경(周時經)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國語硏究學會)에 기원을 둔 학술운동단체이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조선언문회(1911년), 한글모(1913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에는 조직을 정비하고 1949년 한글학회로 재탄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0~1930년대에는 한글날 제정·기관지 『한글』 창간·조선어강습회 개최 등의 활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및 한글맞춤법을 비롯한 표준말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0월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검거되어 옥중에서 2명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는 등 해방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 강원 >강릉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허균
    허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허균은 명문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다. 늦게 얻은 벼슬길에서 여러 죄명으로 좌천당하고 유배당하다 결국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이다.
  • 전남 >순천시

    국내 최초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발행자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K팝그룹 BTS의 음악에는 때로 국악장단과 ‘얼쑤’, ‘지화자좋다’와 같은 추임새가 어우러진다.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의 접점을 찾아 음악을 들려준다. 이처럼 현대의 팝그룹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발견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들 이전에 일찍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해온 이가 있다. 바로 잡지<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1936~1997년)이다. 그가 발간한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잡지이며 최초의 가로쓰기 잡지였다. <뿌리깊은나무>의 가치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 경남 >의령군

    조선어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이극로
    이극로는 영화 <말모이> 상영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본의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한글 운동을 하였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말과 철자를 통일하는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위장 친일행동을 하고, 이우식과 정세권 등에게 사전 편찬에 후원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는 등 오직 사전편찬만을 위해 헌신했다.
  • 충남 >공주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월인석보 목판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갑사(甲寺)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한글로 발간한 불경이다. 갑사에 소장된 이 목판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월인석보 목판으로서, 25권 중 21권 46매만 남아 있다. 15세기 국어 생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전국

    우리나라에 맞는 최초의 농사책, 『농사직설』
    『농사직설』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초와 변효문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책이다. 농사직설은 우리 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기존의 중국에서 들어온 농서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장조사에 의한 연구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사와 맞는 정보를 담고 있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과 함께하는 여주 한글시장
    여주제일시장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전통 5일장이 열리던 상설시장이다. 이곳이 2016년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한글을 테마로 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매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 때는 상설시장에 덧붙여 가판이 서면서 농수산물과 살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여주한글시장 안에는 세종대왕상, 한글빵 카페, 한글 벽화 등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추석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닌 추석은 순우리말로 한가위라 불리는데요.
오곡이 익는 계절 사이에 있는 명절인 만큼 풍요를 기리는 세시풍속도 행해진답니다.
추석에는 어떤 세시풍속이 행해지는지 알아볼까요?

추석은 농사를 마감한 한가한 시기이자 풍요를 자랑하는 때로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강강술래,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의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했는데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도 해 날이 쌀쌀해져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추석 때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했답니다.그리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기 위해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준비하며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손의 도리를 다합니다.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추석, 맑은 하늘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흥겨운 명절을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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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시

    어깨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는 팽성읍 와야골 마을에서 8월 추석에 수수깡으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놀았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이다. 거북 신앙에서 유래하며, 마을 주민의 안녕과 복을 비는 목적을 지니며 세시놀이로 전승되다가 중단되었으나, 근래에 다시 복원되었다.
  • 충남 >당진시

    볏가릿대를 세워 한 해의 풍년을 비는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
    당진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놀이다. 정월대보름에 대략 8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놀이다. 놀이는 총 여섯마당으로 진행된다. 볏가릿대는 벼, 보리, 조, 팥, 기장 등 오곡을 매달고 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대동샘 옆에 세우고, 2월 초하룻날 허물면서 한 해의 풍년을 점친다. 거북이도 만들어 그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동네를 돈다. 이 놀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고 장수를 기원하는 놀이이다.
  • 경기 >이천시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는 청소년들이 거북이 형상을 뒤집어쓰고 노는 놀이로 추석날 벌인다.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밭농사와 관련이 깊다. 아이들이 남의 집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집주인이 떡과 음식을 내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경북 >청도군

    청도의 색다른 볼거리, 청도소싸움놀이
    청도소싸움은 예전에 머슴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점차 마을간 집단적인 소싸움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는 현대식 소싸움경기장에서 상금을 걸고 체급별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동물 싸움 형태로는 유일하게 전통민속놀이로 인정받아 해마다 봄철에 청도소싸움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 전남 >진도군

    보름달 뜨는 밤 아낙들의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남서쪽 해안지역에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졌던 노래와 무용이 혼합된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다.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마을처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둥글게 그리고 돌며, 노래를 부른다. 이 놀이는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과식하게 되는 추석,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토란국
    추석상에 토란국은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土卵)을 넣고 끓인 국으로 토란탕, 또는 토란곰국이라고도 한다. 토란국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에도 추석음식으로 등장한다. 토란은 위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소화를 돕고 변비예방에 효과가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토란으로 만든 토란국은 다양하고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한 추석에 꼭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 전국

    명절을 즐기던 삼국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신라 유리왕대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새해가 되었을 때 떡을 해먹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해서 명절의 기원은 농경의례에서, 또 명절음식의 기원은 농사지은 곡물의 가공을 통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국기대부터 지내기 시작한 명절도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 전국

    햇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차례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추석차례라고 한다. 본래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차례상이 기제사와 같은 제사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신에 차례상에는 시절음식이 올라간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아직 곡식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벼 한줌을 베어서 밥 대신에 놓기도 했다. 햇곡식을 수확하지 못한 경우에는 추석 이후인 9월 9일(중구)에 차례를 지냈다.
  • 전국

    햇곡식 못 구한 추석에는 9월 9일 중구차례
    추석 무렵에도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경우, 차례를 지내는 날짜를 미루어 9월 9일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이를 중구차례라고 부른다. 어떤 지역에는 추석차례보다 큰 명절이었던 중구차례는 추석이 연휴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중구차례에는 후손이 없이 죽는 사람이나 객사한 사람, 기일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주로 지냈다.
  • 전국

    온가족이 함께 추석을 준비하는 벌초
    조상님의 묘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잘 정리하는 것을 벌초라 부른다. 벌초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묘를 돌보고 살피는 일을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행으로 인식하며, 벌초가 안된 묘는 자손이 없는 묘로 여겨지곤 했다.

경축 고조선 건국의 날, 개천절

개천절은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개천'은 하늘이 열렸다는 뜻으로,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나라를 세운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개천절은 단군조선의 건국과 문화민족으로의 새로운 탄생 모두를 아우르는 국가적 경축일이자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천절이 10월 3일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의 이념과 이치로 다스리는 세계라는 뜻의 '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음력 10월 3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개천절을 맞아 단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갈까요?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번째 임금입니다.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었을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단군을 마을신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개천절을 통해 한민족의 긴 역사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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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곡성 단군전
    곡성 단군전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당 신태윤이 1914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처음 건립했다. 백당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대에 곡성에 돌아와 오늘날의 단군전 자리에 새롭게 단군 사당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셔다 놓았다. 역사학자였던 백당은 가는 곳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단군전을 지었다.
  • 서울 >용산구

    마을신이 된 고조선의 건국 시조, 단군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이다. 단군에 관한 기록은 『위서(魏書)』,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전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데에서는 일치한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다.
  • 인천 >강화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 전북 >익산시

    고조선 기준왕의 전설이 깃든 익산 낭산산성
    익산 낭산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13호로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산48번지 해발 162m의 낭산산 정상에서 서쪽 골짜기 일부를 감싸고 축성된 테뫼식과 포곡식의 복합산성이다. 낭산산성은 마한성(馬韓城)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구성(舊城) 또는 북성(北城)으로도 불린다. 이 성이 마한시대에 축성된 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보아 백제 시기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전국

    하늘과 땅을 품고 고조선을 연 단군왕검
    단군왕검에 관한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고조선의 내력을 밝히는 건국신화이며,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이기도 하다. '단군신화'에는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라는 성스러운 땅에 내려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의 터전을 만들고, 그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했다고 나온다.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환인-환웅-단검으로 이어지는 부계 3대를 중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의 결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전국

    단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을까? 고조선 농업
    고조선은 BC 108년까지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존재한 한국 최초의 국가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신시와 고조선사회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고조선 시기에 농경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전남 >보성군

    나철, 대종교로 나라를 찾아라
    나철은 대종교를 다시 일으킨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다. 과거에 급제를 한 후 그는 관직에 나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귀향해 10년간 수행을 한다. 1904년 포츠머스조약, 러일전쟁, 을사조약 등이 일어나자 애국계몽운동, 민간외교운동, 을사오적 암살 시도 등을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는 애국계몽운동이나 매국노 암살로는 국권을 회복할 수 없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것, 즉 단군신앙으로 단결해서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종교운동만이 국권을 회복할 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종교를 중광한 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포교활동과 국학운동, 독립군 양성 등을 한다.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자 순교로서 항거한다.

가을의 시작, '추분'

'추분(秋分)'은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매년 9월 22~23일 경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다가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기점이 되고, 농촌에서는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이는 가을걷이를 합니다. 가을의 풍습과 음식 등 이야기를 읽으며, 가을을 맞이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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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이천시

    추수철 맛있는 이천 햅쌀 만나러 오세요! '이천쌀문화축제'
    이천쌀문화축제는 임금님께 쌀을 진상하던 이천에서 개최되는 잔치한마당이다. 이천쌀문화축제는 이천농업인축제로 시작하여 2004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천쌀문화축제는 풍년마당, 공연마당, 동화마당, 놀이마당, 농경마당, 햅쌀거리 등 11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알린다. 가마솥밥, 가래떡, 막걸리 등 쌀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고, 햅쌀을 구입할 수 있다
  • 전남 >목포시

    갈치조림과 갈치구이만 있다면 밥 한공기 꿀꺽!
    갈치는 가을을 대표하는 어종이다. 8월부터 12월까지가 갈치의 철이다. 제주도에서 낚시로 잡히는 것은 은갈치, 목포에서 인간망이나 유자망으로 잡히는 갈치는 먹갈치라고 부른다. 대량으로 잡기 때문에 갈치끼리 서로 부딪쳐 은비늘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몸통이 크고 굵은 갈치는 구이용으로 쓰고, 그보다 작은 것은 조림을 해 먹는다. 갈치 조림을 할 때는 쌀뜨물을 넣으면 비린내가 적어진다.
  • 전국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베기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더 이상 물을 대지 않고 논에 남아 있는 물도 빼서 논을 말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벼의 낱알이 마지막까지 잘 여물고 또 일정 부분은 마르게 하기 위함이다. 가을이 되어 벼가 고개를 숙이면, 곧 벼를 벤다. 벼베기는 수확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통사회에서는 낫을 이용하여 벼룰 거뒀다. 현재는 콤바인으로 수확을 하며,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만 낫을 이용하여 수확을 한다.
  • 전남 >영광군

    세계 최대 상사화 군락지에서 열리는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는 불갑산(516m)은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사시사철 아름다운 야생화가 핀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번갈아 피는 까닭에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전설이 전해지는 꽃이다. 영광군에서는 상사화군락지인 불갑산의 자연환경을 토대로 매년 9월 불갑사 관광지 일원에서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상사화 꽃길을 따라 걷고, 소원등을 달며, 상사화 화관 만들기, 상사화 캐리커처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 충남 >홍성군

    새우를 맛깔나게 즐기는 ‘홍성남당항대하축제’
    충청남도 홍성군 남당항은 천수만의 끝부분에 위치한 청정 어항으로 과거로부터 대하잡이로 유명세를 얻었다. 대하는 1960년대까지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으나, 그 후 국내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새우는 크기에 따라 대하, 중하, 세하로 구분되는데, 이중 대하는 크기가 크고 맛도 좋아 구워 먹는다. 가을철 대하가 생산되는 철이면 천수만에 남은 몇 안되는 포구인 남당항에서 축제판이 벌어진다. 해마다 9~10월경에 대하도 즐기고, 대하를 잡아 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강원 >양양군

    송이버섯 나는 계절엔 양양으로! '양양송이축제'
    양양송이축제는 양양송이를 주제로 한 체험형 축제이다. 송이버섯은 귀한 식재료라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은 '싯가'일 때가 많다. 양양송이축제에서는 버섯채취 체험과 강원도 산간사람들의 전통놀이였던 탁장사대회를 열고, 대중적인 버섯요리와 고급 송이요리를 선보인다. 대자연 속에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양양송이축제는 참살이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원 >양양군

    하늘이 내리고 신선이 먹는다는 송이버섯 본연의 맛, 송이밥
    송이버섯은 소나무 아래에서만 자라는 특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성장 조건이 까다로운 송이는 인공재배가 불가능하고 채취 기간도 일 년에 추석을 전후로 20일 정도에 불과한 고가의 식품이다. 강원도 양양은 송이버섯의 전국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다양한 송이 요리 중에서도 송이밥은 쌀과 찹쌀, 잡곡, 대추, 밤 등을 섞어 밥을 지은 후 송이를 넣고 잠시 뜸을 들여 먹는 음식으로 송이 본연의 향과 식감을 느끼기에 최고의 음식으로 손꼽힌다.

가을볕 받으며, 누정 산책

우리 지역 누정의 가을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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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철야대동계의 중심지, 나주 만호정
    만호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45호이다. 고려 초기에 원일정이 있던 자리에 조선 전기의 무신 서지(徐祉:1468~1537)가 무송정이라는 정자를 창건하였다. 이후에 정자명은 쾌심정으로 고쳐졌으며, 1601년(선조 34)에 임진왜란으로부터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영평정으로 개칭하였다. 1774년(영조 50년)에는 영산강의 조수를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만호정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호정을 중심으로 향약과 동규가 마련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 전남 >담양군

    천상의 화원, 담양 명옥헌
    담양 명옥헌은 배롱나무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에 아들 오이정이 아버지 오희도가 죽은 후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누정이다. 계곡 물소리가 ‘옥구슬이 부딪쳐 깨지는 듯 맑은 소리’ 같다는 의미의 명옥헌은 배롱나무꽃이 필 때쯤이면 천상의 화원이 된다. 담양의 다른 누정과 달리 관련된 문학 작품이 많지 않지만 자연 경관 만으로도 상쇄하고 남음이 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인간과 하늘이 교감하는 작은 우주,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 창건 당시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편전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작은 누각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누각은 기울어지고 너무 좁아서 실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경복궁 수리를 명하면서 경회루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412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경회루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돌기둥만이 남았다. 고종 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 경북 >영주시

    최초의 서원에 지어진, 영주 소수서원 경렴정
    경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 자리한다. 경렴정은 다른 서원의 누정과 다른 점이 많다. 경렴정은 용도나 양식을 볼 때 누각이 아니라 정자의 형태이고, 다른 서원의 누각과 달리 서원 밖에 세워져 있다. 정자에는 ‘경렴정’이라 쓴 두 개의 편액과 신재 주세붕과 퇴계 이황이 지은 시를 비롯한 여러 현판이 걸려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형제간의 우애가 느껴지는, 안동 백운정
    백운정(白雲亭)은 안동을 가로지르는 반변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졌다. 지금은 임하댐 건설로 임하호가 펼쳐져있다. 흰 구름이 머무는 정자. 강 건너로는 개호송 숲과 의성 김씨 동족마을의 고택이 보이는 수려한 곳이다. 일대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金守一)이 1568년 지은 정자이다. 김수일은 평생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백운정은 동생인 학봉 김성일(金誠一)에 의해 더 알려졌다. 김성일은 백운정에 머물며 많은 시를 남겼다. 미수 허목이 전서체로 쓴 ‘백운정(白雲亭)’ 편액이 정자의 기품을 더해준다.
  • 충북 >제천시

    벗들과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청풍 응청각
    청풍 응청각(凝淸閣)은 청풍 관아의 부속 건물로 공무로 내려온 관인이 머물던 객사였다. 응청각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였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응청각도 청풍 관아의 금병헌·한벽루·금남루 건물과 함께 현재의 자리로 사이좋게 이전되었다. 문루인 금남루에서 보면 동헌인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나란히 서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퇴계 이황과 같이 응청각에서 유숙하면 지은 시가 많이 있다.
  • 전남 >순천시

    신선들의 놀이터, 순천 선암사 강선루
    순천 선암사 강선루(降仙樓)는 다른 사찰과 달리 문루 기능이 큰 2층 누각이다. 강선루는 좁은 지류가 흐르는 다리 위에 지은 문루여서 다른 누각과 구조가 많이 다르다. 강선루 1층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맑고 깊은 계곡 옆의 강선루와 보물로 지정된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같이 있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선암사(仙巖寺), 강선루(降仙樓), 승선교(昇仙橋)’ 모두 신선과 연관된 이름이다. 온통 신선들의 놀이터다.
  • 전남 >완도군

    윤선도와 송시열의 엇갈린 운명,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는 1637년 이후 보길도에 부용동 원림인 ‘세연정 – 낙서재 – 동천석실’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 세연정(洗然亭)은 두 곳의 인공 연못 사이에 지은 정자이다. 사람의 손이 더해져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곳이 세연정이다. 대청마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멋진 액자 속의 명화이다. 보길도에는 남인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던 서인 송시열의 흔적이 함께 남아있다.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가다 풍랑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그는 보길도 끝 암벽에 죽음을 예감하듯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새겨놓고 그해 죽었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달콤한 뿌리, 지역을 잇는 고구마 문화 이야기

달콤한 뿌리, 지역을 잇는 고구마 문화 이야기 고구마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속에 스며든 귀한 뿌리작물입니다. 조선시대 일본에서 전해져 흉년의 굶주림을 덜어준 뒤, 각 고장마다 서로 다른 품종과 이야기를 품으며 전해져 왔습니다. 남도의 바람과 흙에서 자란 해남 고구마, 노랗게 익어 단맛을 더한 안면도의 호박고구마, 그리고 원주에서 조엄이 들여와 널리 퍼뜨린 고구마까지 땅과 역사, 풍토에 따라 고구마는 제각기 다른 맛과 전설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제떡, 고구마밥, 조침떡 같은 향토 음식으로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채우며, 세대를 이어온 지혜와 따뜻한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뿌리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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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난방도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던 쇠화로
    쇠화로는 숯불을 담아서 음식을 끓이거나 난방을 보조하는 생활 도구이지만 실제로는 용도가 다양하다. 화로는 과거 불씨가 귀할 때 불씨를 보존하는 역할도 했다. 이른 시기의 쇠화로는 춘천에서 출토되었던 신라의 쇠화로이다. 이 화로는 원통형의 동체에 넓은 원형의 전이 둘러져 있는 형태이다. 화로는 원래 화덕처럼 고정되어 있던 것이 점차 이동이 가능하도록 작은 그릇 형태로 변화했다. 불씨가 집안의 재운을 좌우한다고 믿어서 시어머니는 불씨를 담은 화로를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등 화로는 생활하는 데도 유용하지만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 전남 >해남군

    땅끝에서 전해오는 향기 해남 고구마
    전라남도 해남군에서는 지역 날씨와 온도, 그리고 해풍 및 토질의 조건에 맞추어서 고구마 생산을 특화하였다. 특히 해남 고구마가 달고 식감이 좋아서 한 번 구매한 사람은 다시 구매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해남 고구마는 해남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할 수 있었고, 해남군에서는 지리적 표시등록을 해서 고구마를 관리하고 있다. 고구마를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 개발도 해남 고구마가 특산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 충남 >태안군

    노란 꿀고구마 ‘안면도 호박고구마’ 먹어 보셨나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일원에서는 호박고구마를 생산하고 있다. 호박고구마는 호박처럼 노란색을 띠는 고구마이다. 일교차가 큰 태안군의 안면읍에서 해안가의 물 빠짐이 좋은 황토밭에서 주로 재배한다. 태안농업기술센터에서는 ‘안면종’으로 구분하여 꾸준히 신품종 개량과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고구마는 연작 피해가 크고, 병충해 피해도 커서 재배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안면도는 해양성 기후이므로 질병에 강하다. 서산에서 안면도로 들어가는 초입에 대규모 호박고구마 판매처가 있다. 겨울에는 토굴에 고구마를 저장했다가 연중 판매하고 있다.
  • 강원 >원주시

    역사로 남은 맛, 원주 조엄 고구마
    원주 고구마는 조선조 영조 때 원주 사람 조엄(1719~1777)이 일본통신사로 다녀오면서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온 사실에 바탕하여 유명해졌다. 조엄이 일본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해는 1763년이다. 이를 계기로 따뜻한 고장인 우리나라 남해 지방을 중심으로 고구마가 생산되어 백성들의 식량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원주에서는 조엄이 원주 출신이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고구마를 심었으며, 조엄의 기념관을 만들고, 축제를 여는 등 다각적으로 힘써서 원주 특산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제주 >제주시

    좁쌀가루에 고구마를 섞어 만드는 조침떡
    조침떡은 좁쌀 가루에 채를 썬 생고구마를 섞어 팥고물을 층층이 안쳐서 시루에 쪄서 만드는 제주도지역의 전통떡이다. 제주도의 지역특산물 중 조와 고구마를 활용한 향토색 짙은 떡이다. 제주도에서는 시루떡을 ‘침떡’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 말 현대식 떡류 가공업이 생겨나면서 쌀로 시루떡을 만들다 보니 좁쌀로 만든 시루떡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 경남 >창녕군

    고구마를 떡으로 빚어 먹다, 경상남도 감제떡
    감제떡은 썰어서 말린 고구마를 가루로 만든 후에 송편처럼 빚어서 찐 떡으로 경상남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감제’는 고구마의 한자 명칭인 ‘감저(甘藷)’의 별칭으로 경상도와 제주도에서 사용한다. 감제떡은 ‘빼대기떡’이라고도 부르는데, 빼대기는 수분이 많은 고구마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하여 썰어서 햇볕에 말린 것을 말한다.
  • 제주 >제주시

    곡식이 귀했던 제주도의 구황음식, 고구마밥
    고구마밥은 좁쌀이나 보리쌀과 같은 잡곡에 고구마를 썰어 넣고 지은 밥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의 향토음식이다. 1765년 무렵 동래부사 강필리가 전라도와 제주에 고구마를 보급하면서 제주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1794년 서영보가 제주도는 고구마농사의 적지이므로 널리 심을 것을 보고하였고 이듬해 제주목사 윤시동이 부임하면서부터 고구마를 밥에 넣어 먹는 조리법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구마밥은 제주방언으로 감저밥, 감제밥 등으로 불린다.
  • 전국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구마
    열대 아메리카 원산으로 전국에 식용으로 재배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덩이뿌리로 타원형이며, 홍자색이다. 줄기는 땅 위를 기며, 옆으로 뻗는다. 잎은 어긋나며, 밑은 심장형이고 가장자리는 1~3갈래로 갈라진다. 꽃은 7-8월에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긴 꽃대가 올라와 끝에 5~6송이씩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녹색이고 화관은 깔때기 모양이다.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다. 덩이뿌리는 식용, 알코올 제조용으로 쓰며, 잎자루는 식용, 사료용으로 이용한다. 조선시대 영조 39년(1763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조엄趙曮이 대마도에서 들여온 것이 처음이었다.

풍요와 나눔의 날, 백중 이야기

머슴의 날이라 불리던 백중날을 아시나요? 백중날(百中, 음력 7월 15일)은 예로부터 머슴과 농민들의 명절로 불리며, 풍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공동체가 화합하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이날에는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머슴들에게 새 옷과 음식, 술을 대접하며 한 해 동안의 땀 흘린 노고를 위로했습니다. 또한 농악놀이와 씨름, 마을 잔치가 열려 풍요와 즐거움이 가득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백중은 단순한 세시풍속을 넘어 노동의 가치와 보답, 나눔의 정신을 상징하는 날로서 오늘날에도 공동체 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백중날에 담긴 풍성한 이야기와 세시풍속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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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밀양시

    백중 무렵 열리는 시장과 밀양백중놀이
    음력 7월 15일을 백중이라고 한다. 백중 무렵이 되면 해당 지역의 소재지에서 백중장이 열렸다. 백중장이 열리면 인근 지역에서 많은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난장이 펼쳐졌다. 경상남도 밀양군에서는 ‘백중놀이’, ‘호미씻기’, ‘꼼배기참놀이’ 등으로 불리는 농군들(머슴들)만의 놀이를 한다.
  • 충남 >계룡시

    김국광(金國光)을 기리기 위한 연산 백중놀이
    연산 백중놀이는 조선 시대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을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 두레패별로 독립적으로 벌이는 다른 지역의 백중놀이와 달리, 이곳에서는 왕대리 마을을 중심으로 열두 두레가 함께 하는 합두레먹이로 진행된다.
  • 전국

    차례나 동제를 지내며 노는 명절 백중놀이
    백중놀이는 음력 7월 15일에 여름철 농사일을 정리하면서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에 천신하고 농사짓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말한다. 백중은 백종, 중원, 망혼일, 우란분절 등으로 불린다. 또한 백가지 곡식의 씨앗이라는 뜻으로 이 무렵에는 여러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오는 시기임을 말한다.
  • 경남 >밀양시

    '고된 일을 마쳤으니, 어디 한 번 놀아보세' 밀양 백중놀이
    밀양 백중놀이는 논농사에서 가장 힘든 작업인 김매기를 끝낸 후 벌이는 유희다. '머슴날'이라고도 불린다. 술과 음식을 풍족히 먹고 풍물을 앞세워 신나게 즐기는데, 이때 놀이에 필요한 경비는 양반과 부농 계층이 후원한다. 소작인들의 울분을 달래고 사회결속을 다지기 위함이다. 불교 문화인 백중과 김매기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백중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경남 >밀양시

    밀양 백중놀이의 신선이 된 하보경
    무형문화재 68호 밀양 백중놀이의 백미인 ‘범부춤’과 ‘양반춤’의 예능보유자였던 명인 하보경은 일찍이 굿판과 농악판의 풍물소리를 듣고 자라며 춤사위를 익혔고, 밀양 읍내 놀이계인 ‘보본계(報本契)’에 입단해 우리 춤의 장인으로 이력을 쌓았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춤은 삶에서 우러난 소박함과 흥겨움이 어우러진 무아지경 ‘신선’으로 명인을 변모시켰다.
  • 서울 >송파구

    "얼쑤~" 백중들의 신명나는 놀이판, 송파백중놀이
    송파백중놀이는 한강 유역에서 큰 장시로 유명한 송파장을 중심으로 백중날에 벌였던 각종 연희와 놀이 중심의 세시풍속을 말한다. 백중은 농촌에서 논매기의 세벌매기가 끝나는 시기로 실질적으로 농사가 마무리되어, 이 날은 머슴을 위하는 날이다. 백중날에 특별히 난장이 서는데, 송파에서는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 전문적 놀이패를 불러 큰 놀이판을 벌였다.
  • 충북 >괴산군

    김매기가 끝난 백중날 상머슴을 뽑는 괴산 백중놀이
    괴산백중놀이는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행해지는 놀이로, 고된 김매기가 끝난 뒤에 농민들이 하루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노는 날이다. 백중날, 머슴들이 멍석 등을 가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놀이에 필요한 술과 음식, 옷, 돈 등을 받아온다. 이것들이 준비되면 김매기에 참여했던 머슴 가운데서 가장 일을 잘한 사람을 상머슴으로 선정한 뒤, 얼굴에 분칠하고 관을 만들어 씌우고, 도롱이를 입혀 소에 태우고 돌아다닌다. 오늘날 괴산백중놀이는 지역의 축제와 결합하여 진행되고 있다.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칠월칠석

칠월칠석은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준 오작교 위에서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날로 칠석날로도 불리는데요. 칠월칠석에는 다양한 풍습이 행해집니다.

칠성단에 참기름으로 불을 켜 자손들의 장수를 빌기도 하고, 여인들은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는 걸교의식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신이 내려오는 날이라고 하여 아침 일찍 논에는 나가지도 않았답니다~ 신이 내려오는 날 인간이 돌아다니면 수확량이 떨어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는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로 나뉘는데요! 칠석날에는 만남의 기쁨으로 인한 눈물이고 다음날 내리는 비는 헤어져야 하는 슬픔으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합니다.

다가올 8월 29일(음력 7월 7일)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 설화를 떠올리며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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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진주시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이 서린 용다리
    옛날 진주 군수의 둘째 딸이 시집을 갔다가 얼마 후 남편이 죽어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군수의 집 머슴 돌쇠는 둘째 딸을 사랑하게 되었고 둘째 딸도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돌쇠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둘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고, 군수의 딸이 상사병을 앓다 죽었다. 그 소식에 돌쇠는 그만 미쳐버려 용다리 근처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그뒤로 용다리에 개구리 떼가 생겨 울기 시작했다. 부부가 용다리를 건너면 개구리 떼가 잠잠해졌고, 상사병 걸린 사람이 용다리를 두 번 왕복하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
  • 충남 >보령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탄생시킨 독수리바위
    충청남도 보령시 빙섬에 삼만이라는 총각이 부모님을 여의고 배를 빌려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어느 날 밤 배 주인의 딸이 찾아와 자신이 곧 시집을 가는데 가기 싫다면서 삼만이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로 여인과 삼만이는 자주 만남을 가지게 되었으나 배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삼만이를 배에 실어 바다에 버렸다. 열흘 뒤 삼만이가 탄 배가 갯벌에 멈추었는데 삼만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천둥번개가 치더니 배가 갯벌로 들어가고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솟아올랐다. 얼마 후 여인도 혼인을 하였으나 이틀 만에 죽고 말았다.
  • 충북 >옥천군

    웅인과 계화 공주의 비극적 사랑이 담긴 문바위
    충청북도 옥천군 청상면 한곡리에는 문같이 생긴 문바위가 있다. 옛날 옥황상제의 딸 계화 공주와 재상의 아들인 웅인은 서로 사랑했으나 권력 욕심이 있던 악독한 대신이 자기 아들과 계화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재상과 웅인을 모함하였고,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 살던 웅인은 괴물을 무찌를 결심하고, 옥황상제의 금기를 어긴다. 웅인은 괴물을 죽였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바위가 되고, 웅인을 보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계화 공주 역시 그의 곁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강원 >강릉시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이 깃든 매바위와 거북바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는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매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착한 부부는 거북이를 구해주었고, 남편은 죽을 위기에서 용왕에게 구조된다. 용궁에서 지내던 남편은 아내가 그리워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매바위가 되고 남편 또한 거북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경남 >하동군

    금오산을 붉게 물들인 별님과 달님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경상남도 하동군에는 금오산이 있다. 금오산 일대에는 금오산에 얽힌 별님과 달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별님과 달님의 사랑을 질투한 지신이 잡신을 시켜 별님을 죽이고, 그 모습을 본 달님도 자결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별님과 달님이 흘린 피가 물들어 금오산의 철쭉과 붉은 바위가 생기게 되었다는 내력을 밝히고 있다.
  • 경북 >경주시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에는 영지가 있다. 이 저수지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아사달은 불국사의 석가탑을 만들기 위해 신라로 오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불국사에 온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는 금기로 인해 아사녀는 영지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그리움에 지쳐 영지에 몸을 던진다. 아사달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불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 충남 >금산군

    견우와 직녀
    ‘아우 직녀 전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우 직녀는 옛날에 뱃사공들이 나무통을 째매서 타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견우와 직녀’이야기에서 견우와 직녀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별들이 함께 만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옛적에 신던 여름 신발, 나막신

'딸깍딸깍'

어? 무슨 소리죠? 아하, 나막신이 바닥과 부딪혀 나는 소리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나막신을 신어본 적이 있나요? 요즘 신발은 대부분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나막신처럼 나무로 만든 신발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의 영향으로 나막신은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리다 1940년대 전후로 사라졌거든요. 나막신은 원래 조선시대 말기에 짚신과 함께 대중적으로 신는 신발이었다고 해요. 가죽신이 비싸서, 비오는 날 진흙이 되어버린 땅에서 신기 위해 쓰였다고도 합니다.

나막신에 대해 알아보니 과거에 또 어떤 신발들을 신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삼국시대 이전에는 풀과 가죽으로 만든 이(履)와 화(靴)라는 신발을 신었다고 해요.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은 앞코와 뒤축이 장식된 낮은 높이의 신발인 당혜를 신었다고 합니다. 또 미투리라는 질 좋은 짚신이 있었는데요. 이는 삼이나 모시, 노끈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해요. 정말 다양한 신발들이 있었죠?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 혹은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여러분은 어떤 신발을 신으시나요? 신발 젖을 걱정 없는 장화나 통풍이 잘되는 샌들을 많이 신으실 텐데요. 장화와 샌들을 신을 때 과거 조상님들이 신었던 나막신도 한번 떠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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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비오는 날 신는 나막신
    나막신은 비 오는 날 진흙땅에서 신기 위해 한 덩어리의 목재를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발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가 올 때는 물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도 신었다. 1910년 이후 고무신이 등장하자 경쟁에서 밀려 1940년대를 전후하여 거의 사라졌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전국

    비 오는날 또는 진 땅에서 신는 신발, 나막신
    나막신은 비오는 날 진 땅에서 신기 위하여 통나무를 파서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이다. 나막신은 나무로 신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두껍고 큰 목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은행나무·오동나무·피나무·소나무·오리나무처럼 제작이 쉬운 나무를 파서 신과 굽을 통째로 만들었다. 목재의 겉이 마르지 않도록 기름을 칠하기도 했다. 나막신은 신분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신었다. 굽이 높아 비에 젖어 질어진 땅을 걸어다니 좋았으나, 무겁고 활동성이 떨어져 먼 길을 가거나 말을 탈 때는 착용하지 않았다. 맑은 날에도 많이 신었으며, 굽이 닳으면 새 굽을 바꿔 달았다고 한다. 나막신은 이처럼 널리 신겨지다가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으로 인해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려 1940년대를 전후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 전국

    구름무늬가 새겨진 신발, 운혜(雲鞋)
    운혜(雲鞋)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자가 신는 신으로 신코[신발 앞쪽의 뾰족한 곳]와 뒤축[발 뒤쪽의 둥그런 부분 중 두둑한 맨 뒤쪽의 가운데]에 다른 색의 무늬를 장식한 신발이다. 신발 바닥에 짐승 털로 만든 조각인 담(毯)을 깔아 따뜻하다는 의미에서 ‘온혜(溫鞋)’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신발의 앞쪽 모양이 제비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제비부리 신’이라고도 불린다. 운혜는 앞코에 죽엽문(竹葉紋)을, 뒤축에는 굼벵이 형태의 장식을 붙여서 마무리한다. 이러한 형태는 개화기 개발된 고무신에 그대로 반영되어 최근까지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운혜는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감과 날렵한 곡선 형태가 어우러져 한국적 미의 아름다운 외양을 나타내고 있다.
  • 전국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의 신발, 당혜
    당혜(唐鞋)는 조선시대 부녀자가 신던 가죽신으로, 당초문(唐草文)으로 앞코와 뒤축을 장식한 낮은 높이의 신발이다. 조선시대 여자의 신으로는 당혜⸱온혜(溫鞋) 등이 있었는데, 당혜는 좋은 집안인 양갓집 부녀자가 신었고 온혜는 일반 백성 집안의 부녀자가 신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무렵 들어와 조선시대 말엽까지 신었으며 ‘당혜’라는 명칭은 당초문(唐草紋) 장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혜의 일반적인 형태는 남자용 신발보다 앞코가 더 뾰족하게 올라가 있다. 또한 현대의 고무신처럼 신울의 간격이 좁아 오랫동안 신고 걷기는 불편하였다. 그리고 신발의 오른쪽, 왼쪽의 구별이 없었다. 당혜의 신코에서 뒤축으로 이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당혜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다른 나라의 신발과는 구별되는 조선시대 특유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화혜장
    화혜장은 전통 신발을 만드는 장인이다. 조선시대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가죽으로 만든 ‘갖신’을 신었다. 이러한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이 ‘화혜장’이다. 전통 신발 제작은 가죽을 주재료로 하여 수십 번의 제작공정을 거쳐 이루어질 만큼 고도의 기술과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요구된다.
  • 전국

    남방계와 북방계의 신발, 이(履)와 화(靴)
    이(履)는 신목이 짧은 신의 총칭으로 신발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남방족계의 신이며, 화(靴)는 장화와 같이 신목이 높이 달린 신으로 방한, 방침에 적당하여 무풍적인 북방계의 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두 종류의 신을 혼용하여 착용했기 때문에 먼저 생긴 신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고유 복식이 북방호복 계통이므로 고유의 신은 목이 긴 화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 이전에는 이미 풀과 가죽을 이용한 신을 신었으며, 부여의 초탑, 마한의 초갹, 초갹답, 초리 같은 다양한 신의 종류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의 신발이 발달하였다.

가을 정취가 가득 담긴 단풍명소

청명한 하늘과 쾌적한 날씨로 여행 가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푸르름을 자랑하던 풍경들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들어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고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산지 대부분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있어 단풍이 아름답기로 더욱 유명하답니다.
가을빛을 한가득 머금어 절경을 보여주는 단풍 명소를 지역N문화와 함께 알아볼까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내장산은 정읍에 위치한 명산이자
조선 8경 중 하나로 온 산이 붉게 물드는 모습을 일컫는 만산홍엽 그 자체를 보여줍니다.
내장산의 단풍 터널은 일주문에서 내장사까지 108주의 단풍나무로 우거져 있어 감탄을 자아냅니다.

다음은 산성을 따라 걸으며 붉게 물든 단풍으로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광주에 위치한 남한산성입니다.
자박자박 걸어가며 단풍으로 둘러싸인 산성과 그 내부의 유적까지 돌아보려면 하루가 짧을 듯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속초 설악산입니다. 설악산은 대청봉을 시작으로 옥녀탕까지 붉게 물든
단풍의 향연을 보여주며 기암괴석과 계곡이 함께 어우러져 장관이랍니다~
지금까지 전국의 단풍 명소를 알아보았는데요.
일 년에 한 번만 볼 수 있는 단풍, 올가을 제대로 즐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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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순천시

    송광사와 선암사를 품은 산, 순천의 조계산
    조계산(曹溪山)은 해발 887.3m로 순천시에 있는 산이다. 산에 오르면 남해의 산 특유의 풍광을 자랑하고 있다. 이 산은 산의 이름도 특이하지만 산을 끼고 있는 송광사와 선암사가 워낙 유명하다. 이 때문에 산의 이름을 대면 잘 몰라도 절 이름을 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아울러 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봄의 벚꽃과 철쭉, 동백 등이 있고, 여름에는 울창한 숲이 있으며, 가을에는 형형색색 단풍이 아름답다. 겨울에는 눈꽃과 서리꽃이 멋진 풍경을 만든다. 조계산을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보리밥을 먹는데 또 다른 먹거리 체험이라 할 수 있다.
  • 전북 >정읍시

    단풍이 유난히 몹시도 아름다운 정읍의 내장산
    내장산(內藏山)은 전라북도 정읍에 있는 해발 763.5m의 명산이다. 노령산맥의 중간에 솟아 있고, 내장9봉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계곡과 폭포가 조화를 이루고, 낙엽 활엽수가 골고루 분포해 있어 가을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다. 내장산에 있는 비자림과 굴거리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내장산에 있는 내장사는 그 역사도 깊지만 승려 희묵이 승군을 일으켜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경기 >광주시

    대동굿에서 시작된 호국문화제, 남한산성문화제
    경기도 남한산성도립공원은 백제의 도읍지이잔 병자호란 당시 국난 극복의 장소라는 역사성에 초점을 맞추어 개최되는 축제이다. 1996년에 시작하여 해마다 10월에 광주시 남한산성 유적지에서 열린다. 원래 마을의 대동굿이었던 것을 2001년도에 광주시의 축제로 승격시켰다. 출정식으로 시작되어 호국(護國)문화제의 성격이 강하지만, '아! 남한산성' 같은 창작뮤지컬을 발굴하기도 했다. 2019년 경기관광 대표축제로 선정되었다.
  • 전북 >정읍시

    내장산 단풍과 함께하는 정읍 전국민속소싸움대회
    정읍 전국민속소싸움 대회는 1996년 처음 시작되어 1998년 전국대회가 되었고, 2003년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되었다. 정읍 전국민속소싸움대회는 100여 마리의 싸움소가 체중에 따라 세 체급으로 나눠 토너먼트 경기를 벌인다. 내장산 단풍이 드는 10월말에 개최되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으며, 소싸움장 주변에 먹거리 장터를 열고 축산물을 할인판매 해 전통 우시장 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 강원 >속초시

    설악산을 올라보자! ‘설악문화제’
    설악문화제는 강원도 속초시 일원에서 1966년부터 지내온 설악산의 산악제를 계승한 종합축제이다. 가을철 설악산을 찾는 등산객과 관광객의 안전과 설악산 주변 마을 주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산신제와 등반행사도 함께 거행한다. 줄다리기, 민속경기 등의 전통을 경험하는 장인 동시에, 전국 규모의 등산대회를 함께 치름으로 많은 산악인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 전남 >장성군

    가을의 절정에서 단풍을 즐기는 장성백양단풍축제
    장성백양단풍축제는 전라남도 장성에 있는 백암산과 백양사의 아름다운 가을 단풍을 선보이는 축제다. 1996년부터 개최되었고, 단풍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를 택해 매년 10월 말 ~ 11월 초에 개최된다. 백암산은 내장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백양사는 백암산 동쪽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 때 세워졌는데, 백양사라고 불린 이유는 조선 숙종 때 환양선사가 설법하던 도중 백양 한 마리가 내려와 설법을 듣고 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성백양단풍축제는 가을의 절정에서 자연의 멋을 느낄 수 있는 축제이다.
  • 경기 >광주시

    48일간 버틴 요새 남한산성
    1636년(인조 15) 12월 14일 인조는 수구문(水溝門)을 통해 남한산성(南漢山城)으로 향해서 한밤중이 지나서 도착하였다. 19일에는 적병이 남쪽 성에 쳐들어왔으나 아군이 화포로 공격하여 물리쳤다. 22일에도 인조는 김류에게 결전할 것을 명하였다. 남한산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각처에서 올라온 구원병들은 대부분 전투에서 패하였다. 청나라는 회유와 군사적 방법을 모두 동원하여 남한산성을 에워쌌다. 성안에서 강화의 함락 소식을 들은 것은 26일이었다. 30일 임금이 산에서 내려가 자리를 펴고 앉아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였다.
  • 경기 >광주시

    문화재가 살아 숨쉬는 남한산성
    남한산성 내에는 성곽시설은 물론 산성의 중심 건물인 행궁을 비롯하여 사직, 관아, 옥, 객사, 사찰, 정자, 창고, 종각, 연못 등이 설치되었다. 4개의 장대 중 하나인 수어장대(서장대)는 인조 때 단층으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1751년(영조 27)에 2층으로 중건하였다. 인조 시기 축성 시작과 함께 성곽 쌓는 일을 주로 맡은 승병을 주둔시켜 수성에 필요한 훈련을 했다. 이때 승병 주둔을 위해 전부터 있던 망월, 옥정사 외 7개의 사찰이 새로 들어섰다. 이외에도 현절사, 청량당, 침괘정, 지수당, 연무관 등의 문화유적이 있다.
  • 경기 >광주시

    왕과 보부상들이 거닐었던 남한산성 옛길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를 마주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남한산성은 정기시장이 열리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관청을 드나들던 사람들도 자주 이용하던 경로였다. 남한산성을 통과하는 길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여주에 있는 왕릉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들이 이동하던 거둥길로도 이용되었다. 지방에서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도 남한산성 길을 이용했다.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길이다.
  • 전북 >정읍시

    자연과 역사가 어울린 관광지 정읍시의 정읍구경
    전라북도 정읍시에 ‘정읍구경’이 소재한다. 정읍구경은 정읍시가 관내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선정한 아홉 곳의 관광지이다. 정읍시의 동남부는 노령산맥의 산지이고, 대부분 지역은 평야 지대로 ‘김제평야’의 일부를 이룬다. 정읍시 관내에는 내장산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단풍 관광지는 물론 동학과 관련한 유적지 등 역사 관련 장소와 기념물 등이 산재해 있다. 현전하는 유일한 백제의 노래로 알려진 ‘정읍사’를 비롯해서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상춘곡’과 관련한 관광지도 있다. 자연과 역사, 문학 등이 어울린 정읍구경과 함께 다양한 주제로 관광할 수 있는 곳이 정읍이다.

서울도심에서 만나는 자연

한창 가을을 지나고 있는 요즘, 여유롭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푹 빠져보고 싶지 않으신가요? 어라 도심 속에 바쁘게 굴러가는 삶이라 자연에 빠지기 어려우시다고요?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도심 중 도심 서울의 도심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도심 속의 무릉도원이라는 성북동입니다. 성북동은 조선시대에도 아름다운 풍광이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특히나 북정마을 쪽의 한양도성을 걸으면 낮에는 뻥 뚫린 서울의 모습을 밤에는 화려한 야경을 즐길 수 있다고 해요.

다음은 북한산입니다. 북한산은 2,000년의 역사를 지닌 북한산성뿐 아니라 여러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고 합니다. 또한 도심의 '허파' 역할을 하며 수도권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줍니다. 감탄이 나오는 기암괴석들 사이로 '우이계곡', '북한산성계곡', '정릉계곡' 등 많은 계곡이 자리 잡고 있으니, 휴식처로 딱 맞겠죠~

오늘은 이렇게 서울 도심 속의 자연을 이야기해 봤는데요. 글 속에 나온 곳뿐 아니라 관악산, 도봉산, 마포나루 등 다양한 도심 속 자연이 있으니 지역N문화에서 확인해 보시고 자연을 즐기러 떠나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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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관악구

    바위가 마치 갓을 쓰고 있는 듯한 서울시 관악구의 관악산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과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 사이에 관악산이 소재해 있다. 관악산은 서울 중심부를 흐르는 한강 남쪽에 둘러있는 산이다. 관악산 뒤로는 청계산과 백운산, 광교산 등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이 지난다. 관악산은 ‘바위산’이다. 수십 개의 봉우리 능선마다 있는 기암괴석이 나무와 풀들과 함께 잘 어울린다. 한편 관악산은 강한 불의 기운을 가진 산으로 인식되어 ‘화산’이라고도 불렀다. 경복궁 앞에 서 있는 ‘해태’가 관악산의 불기운을 막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88년부터 철쭉 필 무렵에 ‘관악산 철쭉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벚꽃 필 무렵에는 화려한 벚꽃을 감상할 수 있다.
  • 서울 >마포구

    한양과 강화를 잇던 한강의 제일 관문, 양화나루
    양화나루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지역에 있던 나루터이다. ‘양화도(楊花渡)’라 불렀으며, 고려시대로부터 한강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로 한양에서 양천을 지나 강화로 가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조선 초기에는 한강 안쪽의 용산까지 조수가 밀려들어 용산이 중심 나루터였다. 염창의 모래언덕이 바닷물에 의해 쓰러지고, 한강에 토사가 쌓이면서 수위도 낮아지자 용산을 오가던 큰 배의 출입이 중단되었다. 양화나루는 용산 아래의 한강 하류에 있는 관문으로 중요한 입지를 갖게 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송파진(松坡鎭), 한강진(漢江鎭), 양화진(楊花津)이 한강변 요충지에 설치한 주요 관방(關防)으로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 이양선이 출몰하면서 그 책임을 지고 처형된 천주교도의 처형장이기도 하다.
  • 서울 >마포구

    소금창고가 즐비했던 마포나루
    서울특별시 마포구에 있던 마포나루는 서울의 서남부 저지대에 있는 강항(江港)으로, 내륙항의 관문이자 포구였다. ‘삼개나루’라고 불렸다. 조선 전기부터 해운의 요지였기에 삼남지역에서 조운을 운반하기도 했고, 소금이나 젓갈류, 물고기 등을 싣고 오는 상선이 드나들었다. 강바닥에 얼음이 어는 결빙기를 제외하고는 어염을 들여와 한양으로 공급했다. 주변에는 새우젓을 파는 사람이 많아 ‘마포 새우젓 장사’라는 명칭이 생겼다. 개항장으로 외부와 소통하는 한양의 관문이자 19세기에는 인천으로 가는 길목이었기에 증기선을 운행하기도 했다.
  • 서울 >성북구

    도심 속의 무릉도원 성북동
    서울성곽을 서쪽 울타리로 두고 있는 성북동의 이름은 도성의 북쪽, 도성의 북문 밖에 있는 골짜기였던 데에서 연유한다. 또 조선시대에 도성수비를 담당했던 어영청의 북둔이 1765년(영조 41)에 설치되어 동명이 붙여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 도성 사대문 밖에는 마을들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성북동만이 성의 북쪽을 의미하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산수의 경치가 다른 지역에 비해 빼어나 예로부터 도성민들이 이곳을 자주 찾아 심신의 휴식을 취하는 장소로서 손꼽혔기 때문일 것이다.
  • 서울 >도봉구

    기암괴석과 암벽등반으로 유명한 서울시 도봉구의 도봉산
    서울특별시 도봉구와 경기도 양주시, 의정부시 사이에 도봉산이 소재해 있다. 도봉산은 산 전체가 한 개의 ‘큰 바위’라고도 할 수 있으며, 자운봉을 비롯해서 만장봉과 선인봉, 주봉, 우이암과 서쪽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들이 줄지어 서 있다. 바위산인 도봉산의 능선에는 칼바위, 기차바위, 해골바위, 피바위 등 바위의 형상에 따라서 재미있는 유래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바위들이 도봉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준다. 도봉산 인근에는 60여 개의 사찰이 있고, 도봉서원 앞 계곡 입구에서부터 서원 위쪽까지 글씨가 새겨진 각석군(刻石群)이 있으며, 매년 가을에는 ‘도봉산페스티벌’이 열린다.
  • 서울 >영등포구

    한강, 한양을 수호하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
    한강은 태백산에서 발원하여 강원도·충청북도·경기도·서울특별시를 동서방향으로 물줄기가 흘러 황해로 들어가는 강이다. 본류의 길이는 514㎞로 전국에서 네 번째로 길며, 유역면적은 압록강과 두만강 다음으로 넓다. 신석기시대 유적지만 140여 곳으로 조사, 보고된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어망, 작살, 창 등의 유물을 통해 채집활동과 더불어 어로 활동이 일찍부터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태조 3년 한양 천도 이후 500년 동안 한양의 수원으로 기능했고, 풍부한 수량과 발달한 지류를 이용해 조운이나 수상교통이 발달했다. 한강변 나루마다 정부가 받은 세곡이나 고관대작이 거둔 소작료, 한양 사람들이 사용할 물건들이 들어왔고, 나루를 중심으로 상업이 발달해 용산·마포·서강 주변에는 상업도시가 만들어졌다.
  • 서울 >강북구

    '삼각산'이라 불리던, 한강 북쪽을 지키는 서울시 강북구의 북한산
    서울시 은평구, 성북구, 강북구, 도봉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시, 고양시 등 서울 북북 지역에 걸쳐서 북한산이 소재한다. 북한산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등이 솟아 있어서 ‘삼각산’이라고 부른다. 북한산의 정상부와 능선에서는 서울시와 경기도 일부 지역을 바라다 볼 수 있다. 또한 도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산에 해당한다. 북한산에는 북한산성을 비롯해서 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다. 또한 산지 전체가 도시에 둘러있어서 자연적으로는 고립된 섬과도 같지만, 허파와 같은 역할을 하며, 수도권 사람들에게 휴식처가 된다.

도자기의 역사 속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옛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상님들이 귀중하게 생각하며 지켜온 유물이 있기에 알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세계에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린 문화재로는 고려청자가 있답니다. 고려청자는 빼어난 색감과 음각, 양각 등 화려함이 돋보여 우리나라의 도예 문화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려청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시대를 거쳐오면서 도예 기술도 발전했을 텐데요. 이번 지역N 문화에서는 역사에 따라 형태와 용도가 달라진 도자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자기로서 최초로 만들어졌던 것은 토기로 그 기원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이라네요! 문명이 시작된 이후에는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등장했으며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형태의 도자기인 고려청자도 등장하게 됩니다.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도자기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체적으로도 생산하게 되었으며 송나라의 다양한 제조기법을 바탕으로 고려 도공들은 특유의 색, 상감기법, 문양 표현 등으로 세계 도자기사에 한 획을 남겼답니다~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고려청자에 대해 알고 나니 그 자태가 더욱 뛰어나 보이는데요. 귀중한 유물을 남겨준 조상님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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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강진군

    흙을 빚고 불을 피우는 체험 '강진청자축제'
    청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예술품으로, 한국문화예술사의 자랑이다. 강진청자축제는 약 500년간 청자문화를 꽃피운 강진군민의 자긍심을 널리 알리고 강진지역의 문화관광자원과 연계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의 축제이다. 청자축제에서는 가마에 불 지피기와 물레체험, 청자 빚기 등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으며, 30% 할인판매를 통해 고려청자의 대중화를 꾀한다.
  • 충남 >공주시

    충남 공주 출신으로 일본의 도자기의 신이 된 이삼평(李參平)
    신들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되는 대한민국 출신의 이삼평이다. 이삼평이 태어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655년에 사망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이다. 일본은 전쟁 과정에서 이삼평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도공을 일본으로 데려 갔다. 그 전까지 일본은 도자기 생산 기술이 그리 좋지 못하였는데 그들로 인해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발전하여 이들을 영웅 이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삼평은 이 지역에서 도자기의 시조라는 의미에서 도조(陶祖)로 모셔지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옹기마을에서 흙을 빚고 구워봐요! '울산옹기축제'
    울산옹기축제는 국내 유일의 ‘옹기’를 특화된 주제로 부각시킨 차별화된 축제이다. 옹기를 전통제작기술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축제가 개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 대표 특산물인 ‘옹기’를 홍보하고 생활옹기의 보급과 전통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장인들의 옹기만들기 시연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흙을 밟고, 흙장난을 치며 옹기를 만들고 구워볼 수 있다. 옹기마을의 현장성이 뛰어나 축제 방문객이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은 축제이다.
  • 서울 >용산구

    기법을 달리한 학무늬가 새겨진 철화 청자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여러 철화청자 중 덕수 4459번 청자 철화 구름 학 무늬 매병은 상감청자에 많이 등장하는 학 무늬(雲鶴文)도 기법을 달리하면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구나 싶은 유물이다. 철분 안료로 바탕을 칠하고 무늬 부분을 긁어낸 다음 붓으로 백토를 발라 표현했다. 상감기법과 퇴화기법에서 보이는 맛이 동시에 나타나 한층 활달한 느낌이며 운동감이 있다. 형태도 일반 청자매병과 달리 풍만한 몸통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길어지면서 좁아들었다.
  • 경기 >광주시

    왕실 백자를 만들던 분원리에서 펼쳐지는 ‘광주왕실도자기축제’
    경기도 광주시의 분원리는 조선시대 전 시기동안 왕실 도자기를 굽던 사옹원분원(司饔院分院·관영 사기제조장)이 있던 곳이다. 사옹원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던 백자와 달리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수준높은 백자만을 생산하던 중앙 관요(官窯)이다. 왕실 도자기 생산지라는 특별한 전통을 계승하고자 1998년부터 도자기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분원리 백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기 >이천시

    세계도자비엔날레와 함께 하는 이천도자기축제
    이천도자기축제는 1987년 설봉문화제의 단위행사로 처음 시작하였다. 지역이 특산물(쌀, 복숭아 등)과 연계하고 문화상품으로서의 도자기를 개발하여 우수한 이천 도자기를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다 독립적인 축제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2년에 한번씩 세계도자비엔날레도 같이 개최하고 있다. 이천은 2010년 공예와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유네스코 공예분야 창의도시 의장도시로 선정되었다.
  • 경기 >여주시

    1990년부터 열린 여주도자기 축제
    여주는 고려시대부터 백자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양질의 고령토와 가마불을 땔 소나무, 깨끗한 물이 있기에 도자기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 유통되는 생활도자기의 60%가 여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주도자기 축제는 1990년 시작된 도자기를 주제로 한 축제이다. 매년 4~5월에 개최되는 여주도자기 축제에서는 흙을 만지며 직접 도자기를 빚을 수도 있고, 도자접시 깨기 대회도 개최된다. 여주도자기 축제를 통해 도자기 문화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
  • 경남 >김해시

    국내 유일의 분청사기 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분청사기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이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만든 명칭으로, 백토로 분장하여 회청색을 띤 분청사기는 14세기 중엽~16세기 중엽에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김해는 가야토기의 명맥을 이어온 곳으로 조선시대 토산공물로 도자기를 생산하였고, 일본 분청사기의 원류도 김해로 본다. 1996년 시작된 김해분청도자기 축제는 김해군과 김해도예협회가 주최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고장 강진에서 만나는 '고려청자박물관'
    청자는 신비로운 색, 아름다운 선과 형태, 다양한 장식, 높은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우리 문화의 최고 자랑 중 하나다. 청자는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중국에서도 고려청자를 최고로 여겼다. 중국 남송(南宋) 태평노인(太平老人)이 쓴 《수중금》에서 고려청자에 대해 ‘고려비색(高麗秘色)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고 쓰고 있다. 강진은 청자요지와 고려청자에 대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1997년에 고려청자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볼 수 있으며, 직접 손으로 그릇을 빚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맑은 빛을 만들어낸 강진의 정수사 약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정수사(淨水寺)에 가면 맑은 샘이 물줄기를 강력하게 뿜어내고 있다. 이 물줄기는 자연약수라 일컫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러 오고, 이 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믿음까지 가지고 있다. 약수 주변은 돌담으로 잘 정비해 두었으며, 흘러내린 물이 고여서 흐르고 있을 정도다. 절 이름도 맑은 물을 뜻하는 정수사이고, 이 맑은 물이 고려청자를 구워냈던 물이라 한다. 바로 청자의 맑고 고운 빛깔을 만들어내던 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