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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완전 영양식품, 바다의 소고기 굴

겨울에는 면역력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떨어져 감기에 걸리기 쉬운데요. 가족 중 한명만 걸려도 쉽게 전파되어 온 가족이 걸리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몸에 좋은 음식으로 몸보신을 하는 건 어떨까요? 지금부터 지역N문화에서는 완전 영양식품으로 겨울이 제철인 바다의 소고기, 굴을 보다 안전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굴은 겨울철에 영양가가 더 높고 부드러운 맛이 나며 무기질과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어 어린이부터 노인에게 좋은 식품 중 하나입니다. 몸에 좋은 굴은 초장과 함께 생식으로도 많이 소비되는데요. 굴은 잘못 먹게 될 경우 노로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있어 굴을 먹기 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살의 색이 밝고 선명하며 광택과 함께 유백색을 띠는 것이 신선한 굴로 윤기가 적고 노랗게 변색 된 굴을 피해야 합니다. 또한 싱싱한 굴은 2~3일 내로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굴을 생식으로 먹을 때는 불순물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한데요. 굴에 갈아낸 무를 부어준 다음 살살 섞어 물로 헹궈주면 빠른 불순물 제거가 가능하답니다~ 가족들의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굴을 안전하게 섭취하여 맛과 건강 둘 다 잡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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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통영시

    “덜큰한 바다 꿀 생각에 통영 박신장을 가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발음이 억센 탓도 있지만, 굴이 바다의 꿀이기 때문이다. 통영에선 굴껍질을 산처럼 모아놓았다가 4~5월이 되면 나일론 줄에 꿰어 바다에 넣어 채묘를 한다. 이렇게 자연 채묘되어 성장한 굴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확하여, 박신장, 즉 굴껍질 까는 공장에서 껍질이 까져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박신(剝身)은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아주머니들이 새벽 4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12시간 동안 서서 일한다.
  • 충남 >서산시

    밥도둑 인정, 서산 어리굴젓
    굴은 “바다에서 나는 우유”라고 불릴 만큼 영양가가 높다. 선사시대 유적지인 부산 동삼동이나 김해 회현리의 조개무지에서 조개와 굴 껍데기가 많이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우리 조상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굴을 먹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어리굴젓은 생굴과 소금, 고춧가루를 버무려 담근 젓갈로 고춧가루를 사용한다는 것이 다른 굴젓과 다른 점이다.
  • 인천 >중구

    자연산 굴과 까나리액젓으로 만든 김치의 깊은 맛, 짠지떡
    짠지떡에는 백령도에서 흔한 자연산 굴이 들어있다. 그리고 까나리액젓으로 만든 깔끔한 김치가 그 맛을 좌우한다. 짠지떡의 피는 만두처럼 얇지 않고 두껍고 쫀득하다. 두부나 채소 없이 굴과 삭은 김치 두 가지로 맛을 내고, 굴이 있어도 무르지 않고 먹기에 알맞다.
  • 전남 >고흥군

    고흥의 전통 음식 피굴
    고흥은 옛날부터 패류(貝類)가 다양하게 생산된 곳으로 유일하게 고흥 사람들만 즐겨 먹던 전통음식 중 피굴은 지금도 타지역에서 보기 드문 음식이다. 고흥의 전통음식 피굴은 자연산 석화가 많이 자생한 고흥 해안을 중심으로 즐겨 먹던 음식으로 석화 껍데기 자체를 삶아 석화 속에 담긴 알맹이와 물을 혼합하여 요리한 음식이다. 주로 석화가 생산되는 겨울철에 만들어 먹고 있다. 겨울철에 즐겨 먹기 때문에 설날 음식으로도 주목받고 있으며, 부재료는 김, 쪽파, 참기름을 첨가하면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피굴을 만들 때 굴의 짠 성분으로 인해 별도의 소금 간을 하지 않아도 된다.
  • 경남 >통영시

    ‘바다의 우유’로 만든 국밥, 통영 굴 국밥
    굴은 한자어로는 모려(牡蠣),석화(石花) 등으로 표기한다. 겨울이 제철인 굴은 각종 무기질과 비타민 함유량이 많아 바다의 우유라고도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굴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굴 산지 통영에서는 생굴을 비롯하여 굴전, 굴튀김, 굴 탕수육, 굴 두루치지와 같은 여러 형태의 굴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굴 국밥은 누구나 부담 없이 그윽한 굴의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이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국물에 탱글한 굴의 식감이 어우러지는 굴 국밥은 술안주는 물론 속 풀이용 해장국으로도 사랑받는 음식이다.
  • 충남 >서산시

    한 겨울 굴밭에서 채취한 굴로 만든 간월도 어리굴젓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는 천수만(淺水灣) 내안의 유일한 섬으로, 연륙 이전까지 간조에 넓은 갯벌이 드러나 어패류를 채취하기 최적의 공간이다.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하고 물살이 빨라 거친 물살을 견디며 자란 간월도 굴은 조직이 조밀하고, 굴알의 날감지가 여덟 겹으로 많아 영글고 맛이 좋다. 간월도에는 농지가 부족해 주민들은 마을 앞 갯벌에 크고 작은 돌을 깔아 굴밭을 조성해 굴을 채취했다. 고추도 귀하던 시절 고춧가루를 넣어 삭힌 어리굴젓은 명절에나 먹던 귀한 음식이었다. 생계 수단이었던 굴 풍년을 기원하며 굴부르기제사를 지냈다. 주민들은 추위를 막고자 거적을 쓰고, 조새로 굴 껍데기를 까고, 조새에 달린 쪼마귀로 굴알을 도려내 채취했다.
  • 충남 >보령시

    섬마을 여성들이 굴을 따면서 벌이는 등바루놀이
    등바루놀이는 충남 서해안의 섬마을 여성들이 굴을 따면서 벌이는 유희다. 누가 더 깨끗한 굴을 더 많이 캤는지 겨루는 놀이다. 해산물 채취 기술을 익히고 생산성을 높여, 어린 처녀들이 한 명의 어엿한 성인이 됐음을 인정받는 일종의 성년식이라고 할 수 있다.
  • 제주 >제주시

    겨울철 제주도 별미, 매생이굴전
    이탈리아에 피자와 와인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부침개와 막걸리가있다. 밀가루 반죽에 제철 식재료를 버무려 달군 프라이팬에 넓게 펴서 튀기듯 구워내면 고소한 향이 퍼지며 입맛을 돋우는 노르스름한 전이 완성된다. 여기서 핵심은 재료인데, 지역마다 가장 자신 있는 특산물을 넣어 차별화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가면 매생이와 굴을 넣은 매생이 굴전이라는 음식이 있다. 미역보다는 인지도가 떨어지는 탓에 비교적 덜 알려진 매생이는 실처럼 가늘고 부드러워서 밀가루 반죽에도 잘 섞여 호떡이나 전류에도 잘 사용되는 해조류다. 매생이로 전을 튀겨내면 특유의 향이 꽤나 많이 나는데, 밀가루의 풋내나 기름냄새까지 잡아주는 역할을 하여 음식 전반적으로 깔끔한 맛을 낸다.
  • 경남 >통영시

    어른 손바닥만한 삼배체 굴
    이제 통영의 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굴 산지로 입지를 단단히 굳힌 통영은 세계시장에서도 유명하지만, 더 좋은 품질을 얻기 위해 꾸준한 개발을 해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삼배체 굴이라고 하는 명품 굴이다. 삼배체 굴은 ‘씨 없는 수박’처럼 생식기능이 없는 굴이다. 그 결과 패류독소에서도 안전하고, 일 년 내내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크기가 어른 손바닥 만하다. 큼지막한 굴껍데기를 열어 한입 호로록! 먹으면 굴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 충남 >태안군

    동치미국물에 말아먹는 굴, 태안 깜장굴 물회
    깜장굴은 서해안에서 발견되는 굴의 품종으로, 조수간만의 차가 큰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의 갯바위들에 달라붙어 서식한다. 모양이 작고 까맣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향이 좋은 굴이다. 굴은 전체성분에서 수분이 80%를 차지하기 때문에 상온에서는 상하기가 쉽다. 그런 탓에 서양에서는 레몬을, 우리나라에서는 식초를 곁들여서 먹는다. 여기에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야채까지 곁들여 비벼 먹는 것이 깜장굴 물회인데, 그 맛을 한번 본 사람은 달콤새콤하면서도 뼛속까지 시원한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시간을 따라 걷는 원주 여행

시간은 어느덧 빠르게 흘러 1월 말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한 게 엊그제 같은데 야속하게도 시간은 흘러만갑니다. 흘러가는 시간을 고이 간직하고 싶으시다면 누군가에는 추억을 되새기는 곳이 되고 누군가에는 새로운 추억으로 남을 원주로 시간 여행을 떠나봅시다. 시간 여행 챕터 1. 원주레일파크, 구 간현역과 판대역을 오가는 레일파크는 코스 자체가 내리막 경사로로 멋진 자연경관을 한눈에 담을 수 있고 사랑 고백 터널과 스트레스를 날려주는 고함 터널 등 6개의 터널도 구성되어 있답니다. 기찻길, 산과 강 등 낭만이 가득한 곳에서 또 다른 추억을 서로에게 선물해보세요. 시간 여행 챕터2. 원도심 투어, 원주의 골목골목을 걸어볼 수 있는데요! 코스는 원주역급수탑-구 조선식산은행 원주지점-아카데미극장-원동식당 등으로 시간을 따라 잊혀져 가는 골목길에서 원주의 레트로 감성에 빠져봅시다~ 시간 여행 챕터3. SNS 핫플레이스, 골목의 감성에 맞춰 원주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반곡역은 더 이상 기차를 운행하지 않는 폐역이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광열차가 운행되며 평온함이 감도는 기찻길에서 인생 사진을 남겨볼 수 있답니다~ 올 한해 새로운 추억의 발자국 새기려 원주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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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원주시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의 안식처, 원주 흥업성당 대안리 공소
    원주 흥업 성당 대안리 공소는 박해를 피해 강원도 원주 지역으로 숨어들었던 천주교인들이 1900년대에 세운 한옥 공소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교우들은 공소이지만 ‘참 성당’이라 칭찬받는 정갈하고 아늑한 예배 처소를 건립했다. 당시 원주 일대에 존재했던 공소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막사에서 미군 구호품 배급소로 변전하는 역사의 무게를 이겨냈다.
  • 강원 >원주시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원주 원동성당
    강원도 원주시 원동성당은 1896년 원주 본당으로 시작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원동성당은 1913년 고딕 성당을 지었으나 한국전쟁 초기에 폭격으로 무너져 버렸다. 현재의 성당은 1954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가로 폭과 세로의 길이가 1:3.6이나 되는 긴 건축물로서, 전면에 4층 높이의 돔 형 지붕을 가진 종탑이 돋보인다. 1957년 성당 분리 때 원주성당이라는 명칭을 넘겨주고 원동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65년 원주교구가 독립하면서 주교가 머무르는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첫 주교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정신에 따라 1970년대부터 유신 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다. 원동성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시기에 중요한 중심 공간 역할을 했다.
  • 강원 >원주시

    원주 진위대 터 강원감영
    강원감영 터는 1907년 민긍호의 지휘 아래 의병을 일으킨 원주진위대의 본부가 있었던 곳이다. 강원감영은 조선시대 강원도관찰부가 있던 원주 관아로 1895년 지방제도가 개편되면서 폐지되고 지방 진위대가 주둔하는 본부로 사용되었다. 1907년 8월 5일 원주진위대 병사들은 특무정교 민긍호의 지휘하에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기를 확보한 다음 일제히 봉기하였다.
  • 강원 >원주시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전원형 박물관, 뮤지엄 산
    전세계적인 트렌드를 이끄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은 강원도 원주시 오크밸리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다. 웰컴센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제임스터렐관으로 이어지는 700m가 오밀조밀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강원도의 아름다운 산세와 어우러져 더없는 힐링을 경험하게 한다. 도시의 복잡함을 잠시 잊고 휴식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휴식과 관련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 강원 >원주시

    사리를 나누어 세운 부도탑, 영천사(영전사) 삼층석탑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세워져 영전사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는 2기의 석탑은 당초 강원도 원주시에서 반출된 나옹선사의 사리탑이다. 현재 좌우 2기의 삼층석탑을 세우고, 한 기의 석탑은 천수자지 삼층석탑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세워 두었는데, 1912년 세키노 타다시(關野貞)가 원주지역 조사과정에서 촬영된 사진을 통해 당초 3기의 3층 석탑이 함께 조성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나옹선사는 고려 말 불교계를 대표하는 고승으로 그의 스승은 지공(指空)이었고, 나옹의 법맥은 무학으로 계승된다. 현재 양주 회암사지에 지공-나옹-무학의 부도가 함께 세워져 있는 것 역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 강원 >원주시

    일평생을 오로지 '테일러(Taylor)'의 외길을 걷다, 원주 명양복점
    강원도 원주시 원주중앙시장에 있는 명양복점은 1982년 명효성 씨가 창업한 이래 40여 년에 가까운 세월을 한 자리에서 지금까지 영업하고 있는 오래된 가게이다. 명효성 씨는 1953년 16세의 나이로 양복 기술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 70년에 가까운 세월을 양복 만드는 ‘테일러’의 외길을 걷고 있다.
  • 강원 >원주시

    레일바이크가 들어선 간현역과 간현유원지
    강원도 원주 간현유원지는 1970~90년대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올 수 있었다. 2011년 중앙선 간현역이 폐쇄되면서 2013년 간현역에서 판대역까지의 6.5Km에 레일바이크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간현관광지 내 소금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소금산 출렁다리를 건널 수 있다. 섬강 위 100m 상공에 설치되어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다리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명소 100선에 선정되었다.
  • 강원 >원주시

    강원도 원주시 성남리 성황림제
    강원도 원주시 성남리에는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준다고 여겨지는 당숲이 있다. 이 당숲은 1962년에 천연기념물 제 93호로 지정되었다. 성남리에서는 이 당숲에서 성남리 성황제가 이루어진다. 이를 성황림제라고 한다. 성황림제는 음력 1월 15일에 지내는데, 일반적인 유교식 제사와 유사하다.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의 성황당은 과거에는 석남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절이 없어진 후에 그 터가 지금 마을 사람들의 마을신앙의 장소가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하는 곳이다.
  • 강원 >원주시

    꿩이 죽음으로 은혜를 갚은 원주 치악산
    치악산은 해발 1,288m이며 우리나라 16번째 국립공원으로 1984년에 지정되었다. 치악산은 원주시·횡성군·영월군 등 세 개 시·군의 9개 면·동에 걸쳐있는데, 치악산 전체 면적 중 많은 부분은 횡성군에 속한다. 치악산은 예전에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이라 불리던 산인데, 꿩의 보은설화에 의해 지금과 같이 치악산으로 바뀌었다.
  • 강원 >원주시

    먹냄새 듬뿍 담긴 치악산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나무의 결을 살린 직선적인 느낌이 특징인 목판화는 판화 중에서도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 강원도 원주 치악산에 위치한 고판화 박물관은 우리나라는 물론 티벳, 중국, 몽골의 목판화까지 6천여 점의 유물을 자랑하는 곳이다. 명주사와 함께 운영되고 있어 고판화 박물관을 관람하며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다. 도시의 바쁨에서 벗어나 산속의 평온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기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뚜벅뚜벅 역사를 거닐는 옛길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풍경들이 자연스레 눈에 담기게 되고 심란했던 마음이나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하루쯤은 정처 없이 걷는 것도 좋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고 있는 옛길을 뚜벅뚜벅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옛 조상님들이 걸으며 보았던 풍경과 사뭇 다를 순 있지만 가는 길목 길목에 남겨진 역사의 산물이 옛길의 흔적을 보여준답니다. 지금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볼 수 있는 옛길을 알아볼까요?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상인과 사신들이 이용했던 의주길은 의주대로를 바탕으로 한 역사문화탐방로로 화석정, 벽제관지,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등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길에 담긴 역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평해길은 강원도와 한양을 연결해주던길로 들판과 산, 한강 수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정약용유적지, 망우묘역 등을 탐방해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강진과 영암을 잇는 삼남대로의 중요한 고갯길 누릿재는 최익현, 송시열,김정희 등 많은 문사들의 방문기록이 있는 역사적가치가 큰 옛길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남긴 흔적뿐만이 아니라 오랜시간 축적되어온 문화, 역사 등을 담고 있는 옛길을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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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 서울 >관악구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 남태령 옛길
    남태령은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지금은 남태령에 넓은 대로가 개통되어 자동차의 통행이 빈번한 도로가 통과한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산길을 넘어 한양과 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동했다. 과거 남태령 구간에는 도적이 많아 50명 이상의 행인이 모인 다음 관군의 호송을 받아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삼남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남태령을 넘어 서을특별시의 사당동, 동작동을 지나 노량진의 노량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이동했다.
  •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한양관문길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남부지방으로 향하던 대로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이어지던 삼남로이다. 삼남대로라 불리기도 하던 이 길은 조선시대 육상교통의 중심축이었으며, 근래에 경기도 삼남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경기도 삼남길의 첫 번째 구간이 한양관문길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를 형성하는 남태령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온온사, 과천향교, 가자우물(찬우물) 등을 거쳐 경기도 안양시의 인덕원에 이르는 구간이 한양관문길에 포함된다.
  • 충북 >충주시

    백두대간을 최초로 넘었던 하늘재 옛길
    하늘재 옛길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를 잇는 해발 520m의 고갯길로, 백두대간을 넘는 여러 고갯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하늘재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으며, 국방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다. 하늘재 옛길은 삼국시대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가 신라로 이동하던 통로이며, 주변에서 생산된 물자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남북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 경북 >영주시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죽령 옛길
    죽령 옛길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을 연결하던 옛길이다. 현재 죽령을 통과하는 길 가운데 영주시의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의 죽령 주막에 이르는 구간이 죽령 옛길로 남아 있다.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죽령 옛길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기능을 담당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 다양한 물건을 짊어지고 나르던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었다. 죽령 옛길이 매우 경사가 심한 구간에 자리했으므로 새로운 도로나 철도가 개통될 때에 죽령 옛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강원 >양양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물자가 오가던 구룡령 옛길
    구룡령은 강원도의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길은 산세가 부드러워 옛날부터 영동지방 사람들이 내륙으로 갈 때 많이 이용하던 길이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은 물론, 지게꾼과 가마꾼도 구룡령 옛길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일제는 동해안의 물자를 빼앗아 가고자 1908년 새 도로를 개통하면서 신작로가 구룡령 옛길과 노선을 중복하지 않아 구룡령 옛길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조선 시대와 근현대의 자취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구룡령 옛길은 역사・문화와 자연경관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 경기 >의정부시

    정조가 광릉을 참배할 때 통과하던 축석령길
    경기도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 축석령은 오래전부터 한양에서 강원도 철원을 지나 함경도로 이어지던 조선시대의 간선로에 포함된 구간이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사람, 변방으로 귀양 가는 사람들이 넘던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은 남양주시에 있는 광릉을 참배하러 다니던 능행길에 축석령을 통과하기도 했다. 한양으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까닭에 동학혁명 때에는 일본군과 의병 사이의 전투가 있었고, 6·25전쟁 때에는 한국군과 적군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곳이 축석령이다.
  • 경기 >광주시

    경기도 광주 경안역을 중심으로 연결된 경안도(慶安道)
    경안도는 조선 시대 경기도 광주에 있던 경안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로이며, 경안역은 1457년 종6품인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이 역로는 한양에서 지금의 경기 동남부에 해당하는 광주-이천-여주-충주 방향으로 이어지던 역로와 이천-음죽 방향으로 이어지던 역로를 관할하였다. 중심이 되는 경안역을 비롯하여 광주의 덕풍역, 여주의 양화역·신진역·안평역, 이천의 아천역·오천역, 음죽의 유춘역 등 7개 역이 포함되었다. 경안도는 경상도의 동부인 경상좌도 및 일본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물건의 수송로상에 있던 역들을 담당하였다. 또한 왕이 한양에서 출발하여 여주의 왕릉으로 향하던 능행로의 구간에도 포함되었다.
  • 경기 >과천시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

설날에는 왜 떡국을 먹을까?

2023년 새해가 밝아오면서 민족 대명절인 설을 맞이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여러분은 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음식이 무엇인가요? 대명절인 설에는 다양한 음식들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는 만큼 머릿속에 음식들이 한가득 생각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많은 음식 중에서도 한 그릇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떡국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옛날부터 새해면 먹어왔던 떡국! 설날에 떡국을 먹는 이유를 아시나요? 설날은 천지 만물이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져 깨끗하게 한 해를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주식이었던 멥쌀로 만든 하얀색의 가래떡을 먹은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긴 가래떡이 장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장수를 기원하며 먹기도 했답니다! 설이면 당연하게 먹었던 떡국, 그 이유를 알고 나니 더욱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새해 설날 아침 온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가족의 정과 떡국 한 그릇의 온기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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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이천시

    추수철 맛있는 이천 햅쌀 만나러 오세요! '이천쌀문화축제'
    이천쌀문화축제는 임금님께 쌀을 진상하던 이천에서 개최되는 잔치한마당이다. 이천쌀문화축제는 이천농업인축제로 시작하여 2004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천쌀문화축제는 풍년마당, 공연마당, 동화마당, 놀이마당, 농경마당, 햅쌀거리 등 11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알린다. 가마솥밥, 가래떡, 막걸리 등 쌀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고, 햅쌀을 구입할 수 있다
  • 전국

    설날하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떡국!
    떡국은 새해 첫날인 설에 먹는 전통음식으로 흰 가래떡을 썰어서 쇠고기나 꿩고기, 닭고기로 맛을 낸 맑은 장국에 넣고 끓여 만든다. 새해 첫날의 밝음의 의미로 흰 떡을 사용하고 떡을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은 재산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눈사람 닮은 조랭이떡국
    조랭이떡국은 새해 아침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누에고치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장국에 넣고 끓인 개성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 조상님께 새해인사를 드리는 설 차례
    차례는 달이나 계절, 해가 바뀌어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음을 조상에게 알리면서 계절음식과 명절음식을 올리는 의례다. 설 차례는 설날에 올리는 차례로 새해를 맞아 조상님께 인사를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물로 떡국이 올라가서 떡국 차례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조다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절차례가 대부분 사라졌지만 설 차례만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 경기 >용인시

    용인중앙시장의 역사와 함께 한 1호 떡 가게, '용인떡집'
    용인떡집은 조선 후기 용인현의 주요 장시(場市) 가운데 한 곳이었던 ‘김량장’의 전통을 계승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의 ‘용인중앙시장’의 제1호 떡집이다. 용인떡집은 1980년 떡 만드는 기술자인 김상석 씨와 부인 홍금자 씨 부부가 용인중앙시장에 문을 연 이래 40년 넘게 한 자리를 고수한 오래된 가게이다. 특히 김상석 씨는 가게에서 일하였던 여러 직원에게 떡 만드는 기술을 아무런 조건 없이 전수하여 독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선행을 베풀기도 하였다. 현재는 아들 김충헌 씨가 2대째 가업을 계승할 준비를 하고 있다.
  • 부산 >중구

    부산 포장마차의 별미, 물떡
    ‘물떡’, 처음 듣는 이들은 어떤 음식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떡오뎅’이라고 하면 비로소 정체에 대해 조금 짐작이 가기 시작한다. 부산 지역의 포장마차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물떡은 가래떡을 긴 꼬챙이에 끼워서 오뎅 국물에 담가 놓았다가 어묵처럼 간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갓 뽑은 가래떡을 꿀에 찍어 먹거나, 은은한 불에 구워 설탕에 찍어 먹은 적은 있어도 오뎅국물에 넣었다가 먹을 생각을 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단순히 국물에 불려만 놓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말렸다가 불렸다가를 반복해야한다고하니 주인장의 손놀림을 잘 지켜보자.
  • 경남 >함양군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가 설치된 경상남도 함양군 물레방아떡마을
    경남 함양의 물레방아떡마을은 안의면 신안리에 있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박지원이 안의 현감으로 있던 시절, 이 마을에 우리나라 최초로 물레방아를 설치했다고 한다. 2005년 이 마을은 농촌전통테마 시범마을로 지정되었고, 용추계곡에는 물레방아공원이 만들어졌다. 물레방아떡 마을에 가면 떡 만들기, 벼 타작 등 다양한 농촌체험을 할 수 있다.
  • 제주

    둥그런 보름달을 꼭 닮은 달떡
    농경사회에서 달은 생산의 상징으로, 사람들은 달에 소원을 빌었다. 달의 모양을 본떠 떡을 만드는 것 역시 이러한 염원이 담긴 것이다. 달떡은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보름달의 모양을 따서 만든 절편이다. 주로 혼례나 회갑례와 같은 잔치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보통 높게 쌓아올려서 상에 올라간다. 제주도에서는 토질의 특성상 쌀이 귀해 달떡을 메밀로 만들기도 한다.
  • 울산 >남구

    찹쌀떡을 구워 만든 떡국, 울산 굽은떡국
    굽은떡국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만든 반대기를 구운 다음 골패모양으로 썰어 굴과 함께 끓여낸 울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음식이름에서 ‘굽은’의 뜻은 ‘구운’의 경상도식 발음이다. 굽은떡국은 ‘꾸분 떡국’이라고도 부른다. 멥쌀로 만든 가래떡을 사용하는 보통 떡국과는 달리, 찹쌀가루로 만든 생떡을 구워서 떡국을 만든다는 것이 굽은 떡국의 가장 큰 특징이다.
  • 전북 >전주시

    손으로 빚어 만든 전통시대의 인스턴트 떡국, 생떡국
    생떡국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하여 손으로 가래떡 모양을 빚은 다음 칼로 썬 생떡을 장국에 넣고 끓여낸 전라북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멥쌀을 쪄내어 떡메로 쳐서 쫄깃하게 만드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생떡국은 ‘날떡국’이라고도 하였고, 한자로는 ‘생병탕(生餠湯)’으로 불렀다.

[그때 그곳] 피난민 모여살던 달동네

광복 후 동포 귀환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고향을 뒤로하고 피난을 가게 되었어요. 서울로 이주한 피난민들은 인왕산, 남산 등을 비롯한 도심부 인근의 산을 개간하여 판잣집을 짓고 살았지요. 또한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가 된 부산으로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폭증하였다고 해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북한의 피난민들이 고지대에 정착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러한 달동네는 도심과 변두리의 높은 곳에 있으며,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에요. 방 한편에 누워서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달이 가까이 보인다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흐려질 때쯤, 혼자 남은 방에 비친 거울 사이로 희끗희끗한 머리와 주름진 얼굴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쓸쓸한 동네를 거닐다 멈추어 바라본 달이 유난히도 밝아서, 아아 아름다웠던 그러나 아팠던 그 시절을 반추해봅니다. 우리 달동네 이야기 들으러 함께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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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여수시 광무동 달동네
    여수시 광무동 달동네로 불리던 지역은 6·25전쟁 1·4후퇴 당시 여수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피난민촌이었다. 휴전 이후 60여년이 지난 이곳은 여수의 대표적 주거환경이 취약한 구도심 낙후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광무동 611-2번지 일원에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었고 2018년 사업완료가 되면 원도심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광주 >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
    광주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정착한 달동네로 1970년대에는 방직공장 여공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으나 방직공장이 이전하고 도시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아 빈집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2014년 지역재생산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볕이 뜨는 발산마을’로 ‘청춘의 발산’ 마을 만들기에 주민과 뜻있는 사람들의 많은 참여가 지금까지 이어져 ‘발산창조문화마을’이란 새로운 마을이 탄생했다.
  • 인천 >남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달동네 골목의 추억 만나기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1960~1970년대 수도국산달동네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당시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세워졌다. 수도국산달동네를 그대로 박물관 전시실에 옮겨놓았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뜻깊은 경험을, 어린이와 젊은 세대에게는 옛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 경북 >김천시

    김천시 성내동 달동네
    성내동 달동네는 6·25전쟁으로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경사지에 형성된 김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이다. 60여년이 지난 자산동(성내동)은 김천의 대표적인 주거취약지역으로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2015년부터 시작된 자산동 새뜰마을사업으로 마을 정비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연차적으로 추진되어 왔고 2018년 사업완료를 앞두고 있어 원도심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추억의 골목 여행,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우암산 자락에 위치한 수암골은 6·25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전형적인 달동네였다. 낙후되고 초라한 마을의 모습이었던 이곳은 2007년에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함께 벽화마을로 재탄생되었다. 이후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청주를 찾는 탐방객들이 꼭 들르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 현재 수암골 벽화마을은 문화공간으로 변신중이다.
  • 전북 >군산시

    군산 해망동 달동네
    군산시 해망동은 6·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들어와 정착한 피난민촌으로 알려진 달동네이다. 2006년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으로 한동안 벽화마을로 알려졌으나 오래지 않아 주거취약지구로 마을사람들이 집을 비웠다. 환경부가 시행한 자연마당 조성사업이 2016년에 완료되고 ‘해망자연마당’으로 바뀌었고 해망동 달동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망자연마당’의 일부분이 ‘해망마을’이라는 상징공간으로 남았다.
  • 서울 >성북구

    성북구 장수마을과 북정마을
    성북구의 돈암동 일대와 이웃한 지역에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도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불량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미아리로 계속 유입되어 해마다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고 달동네가 형성되었다. 도시빈민의 마지막 보금자리는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달동네는 다세대 벽돌집으로 변화했고, 도시의 성장과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기 위한 주택으로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여 30년 동안 지속된 아파트 건설은 특색 없는 도시경관을 만들어 냈다. 다행히 성북구에는 장수마을과 북정마을의 근대 서민문화유산이 남아있다.

한입 쏙~ 겨울철 대표 간식 알아보기!

입김을 "호~"하고 부니, 추운 날씨가 체감되는 요즘이에요.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없으세요? 두터운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종종걸음으로 길을 지나는데 모락모락 오르는 김과 함께 구수한 냄새가 가는 길을 붙잡을 때 말이에요. 특히 겨울철 대표 별미로 손꼽히는 붕어빵은 팥앙금이 듬뿍 들어있어 호호 불어먹는 묘미가 있지요. 요즘은 팥뿐만 아니라 자색 고구마 앙금이 들어간 고구마 맛과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슈크림 맛 붕어빵도 있어 취향에 따라 맛볼 수도 있어요! 오늘은 집 가기 전에 붕어빵 몇 개 사서 따스운 온기와 함께 달달함을 맛보는거 어때요? 아참! 여러분은 머리와 꼬리 중 어느 부분부터 먹을건가요? 두근두근 궁금해지네요! 또 다른 간식으로 어묵은 어떠세요? 간장을 베이스로 하여 어묵, 곤약, 무를 푹 넣고 끓이는 국물의 맛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는데요. 따뜻한 국물과 탱탱한 식감의 어묵을 한 입 삼키는 순간,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행복함을 느낄 거예요. 우리 겨울철 간식 먹고 따뜻한 온기로 칼바람 저리 가라 외쳐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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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중구

    서역의 음식에서 부산의 명물로, 부산 씨앗호떡
    매년 겨울, 노상에서 호떡을 기름에 지글지글 지지는 것을 볼 때면 이렇게 한해의 끝머리가 왔음을 실감하고는 한다. 호떡은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이자 서민 음식의 상징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호떡이 많지만, 부산에서는 호떡에 해바라기 씨와 각종 견과류, 건포도 등을 넣어 종이컵에 담아준다. 늘 우리 곁에 있어서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한 컵에 담긴 간식 속에도 기나긴 역사가 숨어있다.
  • 제주 >제주시

    너무 귀해서 나무를 잘라버렸던 감귤
    감귤은 대표적인 겨울 과일로 동남아시아 아열대가 원산지이다. 비타민 A, C의 함량이 높아 겨울철 감기 예방에 좋다. 겉껍질은 말려서 차나 약재로 활용하며, 속껍질의 하얀 부분은 펙틴이 풍부하여 과육과 함께 잼, 마멀레이드로 활용된다. 이른 시기부터 재배된 과일로 보여지며 현재 우리가 먹는 감귤의 대부분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온 온주밀감이다. 그러나 최근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과 같은 감귤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제주 >제주시

    인삼 하고도 안 바꾸는 제주 겨울 무로 만든 빙떡
    빙떡은 제주도 향토 음식으로 메밀전병에 삶은 무채를 넣어 돌돌 말아 먹는 음식이다.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서 얼음 빙(氷) 빙떡, 빙빙 말아서 만든다고 빙떡이라 불렸다. 제주도 동쪽에서는 멍석처럼 생겼다고 해서 ‘멍석떡’,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 쟁기떡이라고 부른다. 메밀의 독성을 무가 중화시켜주며, 옥돔구이와 함께 먹어도 별미다. 
  • 부산 >영도구

    어묵의 새 변화, 고급 간식이 된 어묵
     ‘오뎅(おでん)’은 어묵과 우무, 무 등을 넣고 끓인 냄비 요리를 지칭하는 일본말이다. 그것이 한국에 들어와 재료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는데, 어묵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한국에 처음 설립된 어묵공장은 1907년 야마구치어묵제조소(山口 蒲鉾製造所)다. 이후 1940년대 말과 1950년대를 전후해서 부산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 동광식품과 삼진식품이 들어선다. 한국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어묵공장이다. 삼진어묵은 1953년 박재덕 씨가 창업하여 박종수 씨의 뒤를 이어 아들 박용준 씨가 3대째 운영하고 있다.
  • 부산 >사하구

    명품 수제어묵을 만드는 부산 효성어묵
    효성어묵은 1960년 성명섭이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시장에서 온천식품으로 어묵 제조를 시작하여 1984년 부산광역시 사하구 장림동에서 선우식품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성명섭의 딸 성재란과 사위 김천환이 1992년 선우식품을 이어받아 효성식품으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2009년 효성어묵을 주식회사로 만들고 상호를 바꾸었다. 2015년 성명섭의 손녀인 김민정이 효성어묵을 이어받았다.
  • 강원 >인제군

    매서운 겨울, 서른네 번의 손이 가야 맛볼 수 있는 황태
    한국인에게 친숙한 생선 명태를 겨울에 눈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며 말린 것을 황태라고 한다. 눈이 오지 않고 포근한 날이 계속되면 검은빛의 먹태가 된다. 강원도 진부령에는 황태덕장이 있다. 옛날처럼 덕장에서 눈과 바람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말리는 것은 똑같지만 예전에는 개울물에 씻어 널어 말렸다면 요즘은 환경오염 때문에 바로 냉동창고로 직행했다 기온이 떨어지면 널어 말린다. 
  • 전국

    한겨울에 추위를 달콤하게 녹이는 엿치기
    엿치기는 가락엿을 부러트려서 단면에 난 구멍의 크기(또는 개수)를 견주는 놀이다. 엿의 구멍은 갱엿을 잡아 늘이는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서 생기는데, 표면이 거칠고 엿가락 측면의 줄무늬가 선명할수록 구멍이 클 가능성이 높다. 엿이 잘 굳는 추운 계절에 즐겨 놀았다.
  • 부산 >연제구

    부산 특유의 명물 식품으로 도약하다, 부산어묵
    어묵은 으깬 생선살과 전분을 배합한 반죽에 소금 등의 부재료를 넣어 간을 하고 모양을 만들어서 굽거나 삶거나 찌거나 혹은 튀겨낸 음식을 말한다. 어묵은 본래 우리나라에 전해진 일본의 가마보코(かまぼこ, 蒲鉾)에서 비롯된 식품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되고 진화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는 국민간식으로까지 사랑받는 한국의 향토식품이 되었다. 부산광역시는 20세기 초부터 어묵을 생산한 지역으로서 '부산어묵'이라는 고유명사가 통용될 정도로 한국 특유의 어묵문화의 본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부산 >영도구

    요리 이름에서 재료 이름이 된 오뎅
    오뎅은 일본에서는 어묵을 무, 곤약등과 함께 국물에 삶은 요리를 말하지만 한국에서는 어묵의 의미로 정착되었다. 일제강점기 어묵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데 부산지역에서는 1907년, 통영지역에서는 1920년 공장이 건립되고 본격적으로 생산된다. 어묵이 생산될 수 있었던 것은 한반도 해안에서 많은 물고기가 잡혔기 때문이다. 어묵공장의 주인은 대부분 일본인으로 대량 생산된 어묵은 일본과 조선의 도시에 판매되었다. 어묵이 대량 유통되면서 오뎅집이라는 일반 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술집도 생겼다.
  • 충남 >공주시

    추운 겨울날 새벽까지 파는 군밤
    밤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먹은 과실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밤과 양주밤이 유명했는데 일제 강점기에도 명성이 이어졌다. 특히 평양밤은 당도가 높아 일본으로 많이 이출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밤장사의 수가 많아지는데 주로 도시에서 낮부터 새벽 2시까지 화로에 밤을 구워 팔았다. 가을부터 초봄까지가 군밤장수의 활동기였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백화점 근처에선 기계로 평양밤을 구워팔기도 했다. 어린 군밤장수는 10전의 군밤을 팔기위해 추운 겨울 낮부터 새벽까지 바깥에서 떨기도 하였다. 

아침드라마 뺨치는 비극설화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같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꾸며낸 이야기를 우리는 설화(說話)라고 해요. 이러한 설화는 당대 사람들의 가치관을 담고 있어 시대 의식을 엿볼 수 있고, 구비 전승되어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어요. 특히 권선징악(勸善懲惡), 음덕양복(陰德陽服), 전화위복(轉禍爲福) 등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아침드라마 뺨치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설화를 소개하고자 해요.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서 전해진 서도사 이야기는 그가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은 천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전하는데요. 과연 서도사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였으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또한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서 전해진 매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부부의 애달픈 사랑을 담고 있는데요. 사랑한 두 사람이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우리 얼른 설화 한 편 보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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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절개를 지킨 여인이 꽃나무로 다시 태어난 경기도 수원의 꽃뫼 언덕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에는 꽃뫼 언덕 있다. 옛날 수원의 한 마을에 얼굴도 곱고, 심성도 착한 여인이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딸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아버지를 간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고,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에 농사일을 도와줄 머슴을 두자 집안 형편은 날로 풍족해졌다. 여인에게 많은 혼담이 들어왔다. 그러자 몰래 여인을 짝사랑하던 머슴은 여인을 겁탈하였고, 여인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여인의 무덤에서 꽃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하여 그녀의 무덤을 ‘꽃뫼’라 불렀다고 한다.
  • 경남 >산청군

    부부의 원한이 맺힌 경남 산청의 승지골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는 승지골이 있다. 옛날 청계마을에는 글공부하던 선비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선비는 아내의 뒷바라지 덕분에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선비가 떠나자 시어머니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아내는 집에서 쫓겨났고, 오갈 곳이 없던 아내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죽게 된다. 이후 승지 벼슬을 얻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는 없었다. 남편은 수소문 끝에 마을 사람에게 아내의 일에 대해 듣게 되고, 아내의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가슴을 치며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부부의 원한이 맺힌 이곳을 ‘승지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 경기 >양주시

    칠 일 만에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온릉이 있다. 이 온릉은 중종의 첫 번째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의 무덤이다. 단경왕후는 칠 일 만에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로 오랫동안 중종을 그리워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애달픈 사랑은 치마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홀로된 왕비의 곁을 지킨 애마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 경기 >평택시

    며느리의 청을 거절해 멸문지화를 당한 소씨 가문
    경기도 평택시 송북동 우곡마을에 과거 진주 소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진주 소씨는 살지 않으며, 우곡마을 일대에는 소정승에 관한 이야기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소정승이 지혜로운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출병하여 대패하고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후 그의 가문도 멸문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경남 >하동군

    병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로 둔갑한 최선비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마을에는 ‘최씨내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는 옛날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학동마을에 살던 최선비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호랑이로 변신하여 개를 잡아다가 드렸다. 그런데 아내가 변신술 주문이 적힌 책을 태워버려 다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호랑이로 살았다고 한다.
  •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 충북 >옥천군

    웅인과 계화 공주의 비극적 사랑이 담긴 문바위
    충청북도 옥천군 청상면 한곡리에는 문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문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문바위라 부른다. 옛날 하늘나라에 살던 옥황상제의 딸 계화 공주와 재상의 아들인 웅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권력 욕심이 있던 악독한 대신이 자기 아들과 계화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재상과 웅인을 모함하였고,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웅인은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을 무찌를 결심하고, 옥황상제의 금기를 어긴다. 웅인은 괴물을 죽였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바위가 되고, 웅인을 보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계화 공주 역시 그의 곁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경기 >부천시

    악행을 일삼다가 천벌을 받은 서도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는 서도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서도사의 횡포에 암행어사였던 과객이 죽게 되고, 이로 인해 서도사가 피살되었다는 구조이다. 특히 서도사의 죽음 이후 가문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을 통해 악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강원 >강릉시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이 깃든 매바위와 거북바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는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매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착한 부부는 거북이를 구해주었고, 남편은 죽을 위기에서 용왕에게 구조된다. 용궁에서 지내던 남편은 아내가 그리워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매바위가 되고 남편 또한 거북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강원 >고성군

    정부자의 횡포 때문에 물에 잠긴 오호마을과 송지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소재한 송지호에는 서낭바위가 있으며, 이 일대에는 서낭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욕심이 많고 인색한 정부자가 동냥 온 거지와 시주 온 스님을 박대한다. 그에 따른 징벌로 그의 집과 오호마을은 호수가 되고 정부자는 물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펀(fun)하지만 뻔하지 않은 겨울 보내기!

여러분 잘 지내셨나요? 새해를 맞이하여 2023년 겨울을 알차고 즐겁게 보내는 방법을 지역N문화에서 소개할게요! 펀(fun)하지만 절대 뻔하지 않은 겨울 보내기 준비되셨나요? 가장 먼저 추천할 곳은 '화천'인데요! 이곳에선 1급수의 맑은 계곡에서만 사는 토종 민물고기 산천어를 얼음낚시, 수상낚시, 루어낚시, 맨손잡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해요. 이 밖에도 씽씽 달리는 얼음썰매, 스케이트, 눈썰매를 즐기며 어른들과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고, 산타우체국과 같은 색다른 흥밋거리도 제공한다고 하니 안 가볼 수 없겠죠? 다음으로 추천할 곳은 2018년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 바로 눈과 얼음의 고장인 평창인데요! 이곳에서는 산천어와 마찬가지로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송어를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해요. 내 손으로 잡은 송어를 바로 구워 먹으면 얼마나 부드럽고 맛있는지! 아마 후회없는 볼거리와 먹거리를 선물받을거예요. 우리 집에만 웅크리고 있기엔 너무 아쉽잖아요. 다가오는 주말엔 추위도 끄떡없는 겨울 축제의 현장으로 떠나볼까요?

[행사일정] ※ 화천산천어축제: 2023.1.7(토)~1.29(일) ※ 평창송어축제: 2022.12.30(토)~1.29(일) * 단, 기후 사정에 따라 변동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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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하늘을 날고 싶은 소망을 담아 즐기던 고고매놀이
    고고매놀이는 명주실에 가벼운 새의 솜털을 매달아 공중으로 날리면서 노는 어린아이들의 유희다. 고고매란 봉황을 뜻하는 단어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이 담긴 놀이라 할 수 있다. 솜털이 잘 날아오르려면 공기가 맑고 바람이 많이 불어야 하므로 주로 겨울철에 즐겼다.
  • 강원 >화천군

    한국의 대표적인 겨울축제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
    산천어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로 1급수의 맑은 계곡에서만 서식한다.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의 백미는 산천어 낚시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30cm이상 꽁꽁 언 화천천 위에서 얼음구멍을 뚫고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를 낚는 것이 얼음낚시이다. 산천어 낚시는 1일 최대 8,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얼음낚시’, 1일 최대 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외국인 얼음낚시’, 1일 최대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밤낚시(야간)’가 있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발돋움하며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높아졌고, 눈썰매장, 산타우체국 등 가족들이 즐길거리도 많다.
  • 강원 >태백시

    멋진 눈조각을 감상하며 썰매를 타요! '태백산눈축제'
    태백산눈축제는 매년 1월 말에서 약 9일간 태백산국립공원과 태백시 일원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축제이다. 태백산눈축제는 규모가 큰 눈조각을 만날 수 있고, 얼음썰매, 얼음미끄럼틀, 오궁썰매타기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이글루 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어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축제이다. 태백산 근처에는 황지, 태백석탄박물관, 용연굴(龍淵窟)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 전국

    돌아라, 돌아라, 더 빨리! 팽이치기
    팽이치기는 바닥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 팽이를 회전시키면서 다양한 기술을 겨루는 놀이다. 겨울철 남자아이들이 주로 즐겼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것은 팽이의 회전 관성이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또 팽이의 마찰력이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가급적 바닥과 닿는 면을 작게(=뾰족하게) 만들어야 오랫동안 돌릴 수 있다.
  • 강원 >평창군

    꽁꽁 언 오대천에서 낚시와 송어회를 즐겨봐요 '평창송어축제'
    평창송어축제는 눈과 얼음의 고장인 평창 오대천 일원의 야외에서 즐기는 송어축제이다. 싱싱한 송어도 잡고 얼음 위에서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추위를 이길 수 있다. 평창군은 국내 최대의 송어 양식지로, 이곳에서 자란 송어는 식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평창송어축제의 프로그램으로 ‘텐트낚시, 얼음낚시, 놀이시설, 맨손잡기, 먹거리촌, 어린이낚시’ 등이 있는데, 맨손잡기가 평창송어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 강원 >평창군

    대관령에서 만나는 눈과 얼음의 낭만, 대관령눈꽃축제
    대관령눈꽃축제는 눈을 소재로한 겨울축제로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에서 1993년 처음 시작되었다. 매년 1월 대관령 고원에서 펼쳐지는 대관령눈꽃축제는 눈꽃과 얼음을 활용하여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한다. 거기에 대관령 만의 겨울생활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겨울축제이며, 자연환경을 활용한 겨울축제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충북 >제천시

    오이의 향긋한 내음이 나는 바삭한 맛, 제천 빙어튀김
    빙어튀김은 빙어(氷魚)의 대표적 서식지 중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에서 잡아 올린 빙어를 깨끗이 손질하여 물기를 제거한 후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 낸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빙어는 조선시대부터 겨울철에 잡아 탕을 끓여 별미로 삼을 정도로 각광을 받던 민물고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에서는 예로부터 발달한 저수지와 하천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빙어를 비롯한 모래무지ㆍ참마자ㆍ피라미 등 작은 민물고기를 잡아서 튀김으로 만들어 먹었다.
  • 강원 >인제군

    얼음판에 구멍 내어 빙어를 잡아요! 인제빙어축제
    인제빙어축제는 매년 1월~2월에 강원도 인제군 남면 빙어호 일대에서 개최되는 겨울축제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매우 춥다. 추운 겨울 꽁꽁언 빙판위에서 빙어낚시를 하는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빙판위에서 활동을 할수 없어 날이 추워야만 가능한 겨울축제이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빙판이 쉽게 형성되지 않아 축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 강원 >양양군

    강원도 겨울철 먹거리, 은어(銀魚)라 불린 도루묵
    도루묵은 강원도 고성군부터 속초시, 양양군, 강릉시, 삼척시에서 두루 잡히는 겨울철 대표 어종이다. 농어목 도루묵과의 회유성이자 냉수성 어족으로 ‘도루매기’, ‘도루묵’, ‘은어(銀魚)’라고 부른다. 여름철에는 깊은 바닷 속에 있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하기 위해 연안으로 올라온다. 강원도의 북쪽부터 11월경 어획하기 시작한다. 산란 후에는 남쪽으로 이동하며 성장하므로 강원도 전 지역에서 잡는다. “도루묵은 알맛이다”라는 말처럼 12월 산란 직전의 도루묵이 가장 맛이 좋다. 도루묵을 넣고 끓인 도루묵김치찌개는 겨울철 별미이다. 11월부터 12월까지만 잡혀 “도루묵은 두 달 농사이다.”라고 한다.
  • 충북 >단양군

    송어의 옛 맛을 추억하며, 남한강 송어양식
    충청남·북도를 흐르는 남한강과 금강변에서는 송어를 양식한다. 바다와 먼 내륙지역이기에 예로부터 민물고기 회를 즐겨왔다. 송어 양식은 1965년에 시작되었고, 충청북도에서는 1980년대에 확산하여 현재 30곳에 이른다. 송어는 1급수 맑은 물에 사는 물고기로, 지하수를 여과해 깨끗한 물을 공급한다. 양식장은 음식점을 같이 운영해 생산과 소비를 연계하여 청결하고 질 좋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송어는 11월부터 3월에 산란하며, 산란한 송어알을 채취해 섭씨 10도 내외를 유지해 양식한다. 수질을 관리하며 송어의 특성을 고려한 양식법은 친환경적 어법으로 세심하게 관리한다.

흑토끼야, 어디를 가느냐♬

202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는 계묘년(癸卯年)으로 검은 토끼의 해에요. 새해에는 어떤 재밌는 일이 가득할까요! 새해에 일어날 재밌는 일을 상상하기 전에, 우리 모두 떡국 한 그릇 먹고 한 살 더 먹고 올까요? 토끼의 눈망울처럼 올망졸망한 조랭이 떡으로 만든 떡국도 있고, 토끼의 귀를 닮은 가래떡 떡국도 있답니다. 따뜻하게 떡국을 먹었으니, 가족 모두 모여 한바탕 놀아볼까요! 우리 모두 신이 난 토끼들처럼 한 곳에 모여, 올해 모~든 일이 잘 될 수 있도록 신나게 놀아봅시다. 재밌게 놀았더니 어느덧 몸이 노곤해지는 것 같아요. 토끼에 대한 설화를 읽으면서 잠에 들어볼까요? 토끼는 다양한 동물들과 친했나봐요. 토끼에게 속은 호랑이도 있고, 자라와 머리 싸움을 한 토끼 이야기도 있답니다. 토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어요. 왠지 올해, 모든 일이 잘 될 것 같지 않나요? 검은 토끼와 함께 올 한 해 같이 힘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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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수영구

    고기를 많이 잡아 만선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좌수영 어방놀이
    좌수영 어방놀이는 부산시 남구 수영동에서 전승되어온 어업의 작업과정과 노동요를 놀이화한 민속놀이다. 새해를 맞이해 바다로 나가기 전, 굿을 하고 놀이를 벌여 고기를 많이 잡아 만선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하였다.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 제62호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국

    달나라 옥토끼도 찧는 절구 방아
    곡물에 충격을 주어 발생되는 충격력과 마찰력에 의해 곡물의 껍질을 벗기거나, 겨를 제거하거나, 알곡을 부수는데 사용하는 연장이다. 절구는 방아찧을 곡물을 넣는 통(절구, 절구통)과 충격을 가하는 막대(절구공이)로 구성된다.
  • 경남 >밀양시

    새해를 여는 흥겨운 잔치, 밀양 법흥 상원놀이
    밀양 법흥 상원놀이의 '상원'은 정월 대보름의 다른 말로, 놀이의 시점이 음력 1월 15일인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놀이는 온종일 벌어지는데, 이른 새벽 당산제와 용왕제를 지내고 풍년과 복을 빈 후 헌신랑 다루기, 장작윷놀이, 돌다리밟기 등을 즐긴다. 그러고 나서 보름달이 뜨면 달집태우기를 한다.
  • 부산 >동래구

    "악귀와 잡신아 썩 물러가거라!" 동래 지신밟기
    동래 지신밟기는 부산 동래지역에 전승되는 민속놀이이다. 새해를 맞이해 정월 정초에 마을과 집터에 머물러 있는 지신(地神)을 진압하여 악귀와 잡신을 물리치고 마을과 집안의 평안을 빌며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민속신앙적인 놀이다. 1977년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 4호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경북 >문경시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했던 문경 토끼비리
    문경 토끼비리는 과거 동래에서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이 다니던 영남대로 일부에 속한다. 군사가 이동하다가 길이 끊겨 고민하던 중 토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이동했다는 데에서 토끼비리라 불린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이 옛길은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바닥에 윤기가 흐를 정도로 반질반질해졌다. 근현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은 아니지만, 주변을 통과하는 철도 및 고속교통로 등과 어우러지고 자연경관과도 잘 어울리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옛길로 남아 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눈사람 닮은 조랭이떡국
    조랭이떡국은 새해 아침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누에고치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장국에 넣고 끓인 개성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 경남 >거제시

    호랑이 꼬리는 길고, 토끼 꼬리는 짧은 이유
    옛날에 호랑이가 배가 고파서 뭐를 잡아먹을려고 헐레벌떡 지나가는데 토끼를 만나게 된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기 위해 꾀를 쓰고 토끼는 호랑이로부터 도망가기 위해 꾀를 쓰다가 호랑이 꼬리는 길고, 토끼 꼬리는 짧아지게 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 충남 >금산군

    호랑이를 죽인 꾀 많은 토끼
    토끼들이 감자를 먹을려고 굽고 있었는데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와 감자를 다 뺏어먹었다. 먹을것을 뺏긴 토끼들은 호랑이를 쫓아내기 위해 꾀를 냈다. 그래서 모닥불에 감자와 자갈을 섞어 세게 구워 뜨거운 자갈을 호랑이에게 주었다. 호랑이는 그것을 냉큼 받아먹고 속이 타 죽었다고 한다.
  • 충남 >금산군

    토끼에게 속은 바보 호랑이
    배고픈 호랑이가 어슬렁거리다가 토끼를 만났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토끼는 꾀를 내어 자신처럼 작은 짐승보다 더 맛있는게 있다면서 돌을 구워서 주었다. 뜨거운 돌을 먹고 호랑이가 아파하는 순긴을 틈 타 토끼는 도망쳤다. 그 후로 호랑이는 토끼를 또 만나게 되었는데 토끼는 또 한번 꾀를 내어 이번에는 먹을게 많은 물가로 데려갔다. 호랑이가 먹을게 있는지 확인하러 물가에 들어간 순간 토끼는 도망쳤다. 토끼의 꾀에 두 번이나 속은 것이 분한 호랑이는 그냥 물 속에 빠져 죽었다.
  • 경남 >사천시

    꾀 많은 토끼와 충직한 자라
    ‘토끼의 간’ 이야기는 김부식의 『삼국사기』(1145)에 수록된 ‘구토설화’에서 유래된 동물담이다. 구토설화는 판소리 ‘수궁가’와 판소리계의 소설 ‘토끼전’의 배경설화가 되었으며, 민간에서도 전승이 활발하여 토끼의 간 이야기로도 전해지고 있다. 토끼의 간 이야기는 토끼가 꾀를 내어 죽을 위기를 극복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어떠한 어려움도 지혜만 있다면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다는 피지배계층의 의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어흥, 2022년은 이만 갑니다

2022년 검은 호랑이 해의 마지막 날이 곧 찾아옵니다. 올해 모두들 행복하셨나요? 이제 호랑이 곧 물러가야 합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아직 2022년이 좋은가 봐요~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아요! 아마도 호랑이가 좋아하는 떡에 대한 이야기가 지역N문화에 가득해서 그런 것 같은데, 우리 모두 호랑이가 좋아하는 떡 이야기를 함께 살펴볼까요~ 호랑이가 좋아하는 떡은 보아하니 전국 팔도의 다양한 떡이에요. 각 지역의 특색 있는 재료들을 많은 종류의 맛있는 떡이 가득해요. 신나게 떡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호랑이를 보내줄 때가 된 것 같아요. 호랑이가 무서워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호랑이는 곶감을 무서워한답니다. 우는 아이의 울음을 뚝 그치게 만드는 곶감, 호랑이도 무서워할 만 하죠? 곶감은 감의 껍질을 벗겨 말린 과일이에요. 한국 사람들은 감을 매우 좋아해서 말려도 먹고, 푹 익혀서 홍시로 먹기도 하고, 얼려서 먹기도 한답니다. 호랑이가 곶감 이야기를 듣더니 곧 떠나려고 하는 모양이에요~ 호랑이와 함께 2022년도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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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모양은 작지만 큰 정성으로 만드는 고유의 떡, 쑥구리단자
    쑥구리단자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 식용 식물인 쑥을 이용한 전통 떡이다. ‘단자’는 찹쌀로 떡을 빚어 그 안에 팥소를 넣고, 곁에 꿀물을 바르고 고물을 묻혀 만든다.
  • 경남 >함안군

    곶감으로 아버지 병 고친 임효자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에 은진 임씨 문중이 살았는데 문중의 어른이 병들어 앓게 되었다. 그 어른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효심이 매우 깊었다. 임효자는 매일 산에 올라 약초를 캤다. 어느 날 아무 약초도 캐지 못하고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디뎌 기절하고 말았다. 한참 후 한 노인이 어서 일어나라고 호통을 쳤다. 노인은 절벽의 열매를 아버지의 약으로 쓰라고 알려준 뒤 사라졌다. 임효자는 겨우 절벽에 올라 열매를 따와서 껍질을 벗긴 후 말려서 물에 녹여 아버지에게 드리니 씻은 듯이 낫게 되었다. 이 열매는 감이었고 이것이 곶감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였다고 전해진다.
  • 제주 >제주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오메기떡
    ‘오메기’는 차조를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이다. 오메기떡은 차조 가루로 익반죽을 도넛과 같은 모양으로 빚어 삶아 고물을 묻혀 먹는 떡이다. 고물은 콩이나 팥을 주로 사용한다. 오메기떡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형태와 재료가 변화했다. 과거에는 차조로만 만들었지만 찹쌀을 섞어 반죽하게 되었고, 짙은 색깔을 위해 쑥이 첨가되었다. 설탕으로 조린 팥소가 들어가면서 모양 역시 동그랗게 변화했다. 고물 역시 팥이나 콩가루 이외에도 호박씨, 아몬드, 땅콩 등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제주도 여행 기념품으로 많이 구매하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의 '명품' 소울푸드, 버버리찰떡
    안동 버버리 찰떡은 쪄낸 찹쌀을 떡메로 쳐서 고물을 묻혀낸 떡으로 경상북도 안동지역 주민들이 간식으로 애호하는 향토음식이다. 떡의 유래는 1920년대부터 김노미 할머니(1978년 타계)가 가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안동시 안흥동의 경북선 철길 밑에서 팥고물을 묻힌 찰떡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소복히 쌓여있는 주홍색 호박이 탐스러운, 물호박떡
    물호박떡은 늙은 호박을 얇게 저며 쌀가루와 섞어 만든 시루떡이다. 맷돌호박, 청동호박이라고도 불리는 늙은 호박은 호박고지를 만들거나 겨우내 저장하여 죽이나 떡, 나물 등의 재료로 활용하였다. 추석 무렵부터 겨울철에 많이 만들어 먹는 떡인 물호박떡은 호박 특유의 은근한 향과 사각거리며 씹히는 질감이 잘 어우러져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맛이다.
  • 전남 >영광군

    노비를 위해 만든 특별한 음식, 영광 모싯잎송편
    모싯잎송편은 뜨거운 물에 데친 모시 잎을 곱게 갈아서 물에 불린 쌀과 섞어 만든 떡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의 향토음식이다. 조선 시대에는 음력 2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 하여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주인이 노비들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 이날 노비들에게 먹인 떡이라 하여 ‘노비송편’으로도 불린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이름과 달리 궁중에서 먹는 두텁떡
    두텁떡은 떡고물이 흩어져 있고 모양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먹어 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알 수 없을 만큼 맛있는 떡이다. 떡을 시루에 안칠 때 보통 시루떡처럼 고물과 떡가루를 평평하게 안치지 않고 작은 보시기 크기로 하나씩 떠 낼 수 있게 소복소복하게 안쳐 봉우리떡이라고 하며, 편편하게 썰어 먹는 것이 아니라 도독하게 하나씩 먹는다는 뜻으로 두꺼울 후(厚)자를 붙여 후병이라 하며, 합병은 소를 넣고 뚜껑을 덮어 안치는 격이므로 그릇 중 합과 비슷한 모양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 경남 >창녕군

    배처럼 시원 아삭한 초록빛 감, 태추단감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주홍색 열매는 가을을 알리는 색깔이다. 감은 주홍색으로 붉게 물들었을 때 따서 먹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최근 단감 중에서도 초록빛이 도는 것이 인기라고 한다. 이 단감의 이름은 ‘태추단감’. 초록빛이 날 때가 가장 맛있다는 품종이다. 껍질이 얇고 씨가 없는 편이며, 한입 물었을 때는 감과 배 사이의 부드러운 식감을 느낄 수 있으며, 달콤시원한 맛이 특징이다.
  • 충남 >금산군

    여름에 홍시 구한 효자
    병으로 누워 있는 어머니가 홍시를 먹고 싶다고 했다. 효심이 깊은 아들이 아무리 찾아도 홍시를 구할 수가 없었다. 깊은 밤 장에 다녀오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아들에게 등에 타라고 했다. 아들이 호랑이를 타고 어느 집으로 가니 마침 제삿날이었다. 아들은 제사상에 올렸던 홍시를 얻었다. 아들이 호랑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 홍시를 어머니께 드렸다는 이야기이다.
  • 강원 >횡성군

    한겨울에 홍시를 구한 효자
    냉동 기술 같은 것이 없던 겨울에 자신의 어머니가 병환에 홍시를 찾았다. 그래서 효자는 감나무밭에 가서 감을 찾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호랑이를 타고 한 산골 집에 갔는데, 그 집이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그 집에서 마침 제사음식을 내왔는데 거기에 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홍시를 갖다 드릴 수 있었다. 홍시는 효자의 효성이 지극해 한 겨울에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모두들 말한다.

자연의 선물, 에너지와 우리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해요. 그 중에 단연코 중요한 것은 에너지! 그 중에서도 전기에너지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가지 못해요:(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굶주린 배를 쓰다듬으면서 무엇을 먹을까 냉장고를 열어봅니다. 아뿔사! 냉장고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안에 있는 내용물이 상해버렸어요~ 전기에너지가 없어지게 되면 많은 것이 불편해져요. 그렇다면 예전 사람들은 전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우리는 오늘 전기에너지가 어떻게 생성되는 지에 대한 역사를 발전소들과 함께 알아볼 거에요. 지금은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기를 많이 생산하고 있지만, 예전에는 어땠을까요? 그 답을 우리는 자연에서 찾을 수 있어요. 무엇이 있을까요? 바람, 불, 물이 대표적일 거에요. 바람이 많이 불수록 전기가 많이 생성되는 풍력발전! 석탄을 태워 발전소를 가동하는 화력발전! 댐을 만들어 물이 떨어지는 힘을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수력발전! 에너지 발전방식과 함께 변화한 우리의 역사도 함께 확인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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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가평군

    댐이 된 근로보국대의 땀, 가평 청평댐
    청평댐은 1939년부터 1943년까지 건설된 북한강 수계 최초의 댐이다. 수문만 25개이고, 높이가 31m, 길이가 470m인 대형 댐을 만들기 위해 지역 주민들이 근로 보국대라는 미명 하에 강제 동원되었다. 근로 보국대는 1938년 일제의 국가총동원법에 따라 전국적으로 조직된 노동력 수탈 기구였다. 그들의 희생으로 청평댐이 건설되었고 그로 인해 거대한 청평호가 형성되었다.
  • 전북 >전주시

    바람을 만드는 부채
    부채는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만드는 도구이다. ‘부치는 채’라는 뜻으로, 줄여서 ‘부채’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부채의 특징은 대나무와 한지를 주재료로 만드는 것이다. 예로부터 전라도 지역의 전주와 남평(나주지역의 옛 이름)에서 생산한 것을 제일로 쳐주었는데 이들 지역에서는 곧고 단단한 대나무와 질 좋은 한지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 경북 >영덕군

    풍력발전소 단지 내에 있는 경북 영덕의 별반산 봉수
    별반산 봉수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창포리에 소재한 별반산에 있다. 이 봉수는 고려 말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남쪽에 있는 도리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에 있는 대소산 봉수로 연결했던 연변봉수이다. 현재 봉수가 있던 별반산 일대는 풍력발전소 단지를 비롯해 영덕조각공원, 정크&트릭아트전시관, 신재생에너지전시관 등이 들어서 있고, 단지 내에서 별반산 봉수를 상징하는 삿갓 모양의 연대를 볼 수 있다.
  • 제주 >제주시

    천연 에너지 태양열을 이용한 제주 구엄리 돌염전
    구엄리 돌염전은 암석해안 암반을 이용하여 해수를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던 곳이었다. 육지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금을 검고 평평한 천연암반 위에서 생산하였고, 이 돌염전을 제주도 말로 '소금빌레'라 하였다. ‘소금빌레’는 ‘소금을 만드는 밭’이라는 의미이다. 소금빌레는 명맥이 1950년대까지 이어졌고, 여기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양은 1년에 28,800금(17톤) 정도 였다고 한다.
  • 울산 >울주군

    울산대곡박물관, 대곡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을 영원히 기억해요
    울산대곡박물관은 대곡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2009년에 문을 연 공공박물관이다. 댐 건설을 시작하기 전에 벌인 문화재 조사에서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다양한 고고 역사 유적이 확인됐는데, 여기서 출토된 1만 3천여 점의 유물을 전시, 교육하고 있다. 발굴품 외에도 대곡댐이 지어지기 전의 마을 모습과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기억과 추억을 볼 수 있어서 현대 산업화 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실향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강원 >화천군

    남한 최북단의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 수력발전소는 일제강점기에 경인공업지구 내 군수공장에 원할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운 발전소이다. 해방 후 북한 영토에 속해 있다가 6.25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되찾았다. 6.25 한국전쟁 당시 전력은 매우 중요한 에너지였기 때문에 화천 수력발전소를 둘러싼 접전이 수차례나 발생했다. 한국전쟁 후 시설 대부분이 파손되었으나 1953년에 복구하여 다시 가동하기 시작했다. 화천 수력발전소는 휴전 후 우리나라 전력 공급의 30%를 담당했을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었다.
  • 강원 >영월군

    지역의 석탄을 공급받던 화력발전소(영월, 동해)
    영월탄을 소비하던 영월화력발전소는 1937년부터 1960대 사이에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석탄화력발전소로 기능했다. 한편 1990년대 후반 들어서 국내 무연탄의 판로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국내 석탄 소비처 확대를 위해 발전된 동해화력발전소는 연간 1백만톤의 석탄을 소비했다. 서천화력발전소 역시 연간 100만톤을 소비하면서 탄광업계의 판로를 열어주었다.
  • 전국

    석탄산업의 시작과 광업법 제정
    우리나라 석탄산업은 1906년에 제정한 최초의 광업 법률인 광업법을 통해 기틀을 잡는다. 광업법은 왕실의 전유물이던 광업권을 개방하여 자유경쟁에 의한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당시의 친일내각은 광업법을 통해 일본인이 독점할 수 있도록 허가 조항을 제정했다. 일제식민 통치가 시작되면서는 조선광업령 제정을 통해 일본인의 독점이 강화된다.
  • 전국

    석탄개발을 시작한 1920년대의 산업현황
    1929년은 석탄 94만 톤을 생산해 1919년 대비 4배 이상으로 성장한다. 1920년대가 우리나라 석탄산업의 본격적인 형성기인 셈이다. 이 시기에 함경북도 아오지탄광 같은 대규모 탄광이 본격 개발되기 시작한 것을 비롯해 경원·경성(생기령)·봉의·회령 지역의 탄광이 개발되고, 남한에서는 문경탄광이 개발된다. 하지만 전체광구 442개 중 95%가 일본인 소유로 조선인은 노동력만 착취당하는 비극의 시기였다.
  • 전국

    석탄산업이 우리 사회에 끼친 공로
    석탄은 우리나라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으로 국가 산업발전의 주역이다. 에너지 수입의존율이 97%나 되는 상황에서 자체 생산되는 석탄산업은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었다. 그 외에도 석유파동 극복, 고용창출, 에너지 자원 수입 절감 효과, 석탄 수송을 위한 철도망 확충, 연탄 사용으로 인한 산림녹화 등의 공로가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2022년 12월도 벌써 반이 지나갔네요. 요즘 길거리에 돌아다니면 트리들이 예쁘게 장식된 곳이 많고, 아름다운 캐롤송이 괜스레 흥얼거리게 만드는데요. 이제 얼마 후면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는 걸 실감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실 3년 전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길거리가 황량했었는데요. 점차 회복되는 가운데 오랜만에 코로나 시국 이전으로 돌아간 기분이 드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우리는 보통 크리스마스만 되면, 가족과 친구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라곤 하지요. 마치 축제의 날처럼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서로 선물을 주기도 하고 여행을 가기도 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요.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 속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크리스마스에 담긴 소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관련 핫플레이스로 떠나보도록 해요! 매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가톨릭의 예배 의식인 미사(mass)의 합성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예요. 그렇다면 왜 하필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일까요? 이 날짜는 고대 로마인들에게 매우 의미 있는 날로 12월 25일은 로마 달력에서 1년 중 해가 가장 짧은 동지였고, 태양신 미트라의 탄생일이었어요. 마침 성경은 그리스도를 ‘빛’으로 묘사했는데요. 즉 로마인들이 섬기던 빛의 신인 '미트라'와 빛으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를 동일시하기에 무리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기에 12월 25일 태양신 탄생일과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동일하게 만들어 축하하는 것이었답니다. 크리스마스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기며, 우리 아름다운 성당 나들이 한 번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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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함평군

    농민 속에서 농민과 함께, 구 함평성당
    구 함평성당은 해방 직후인 1945년 말 본당으로 승격했다. 1949년부터 성당 건물 신축이 추진되었고, 1950년 5월 착공에 들어갔으나, 전쟁이 발발해 중단되었다. 원래 1950년 8월 15일 해방 5주년에 맞추어 봉헌될 예정이었던 성당은 짓다 만 상태에서 1950년 10월 퇴각하는 인민군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1951년 교황 사절단이 함평을 방문하여 지원을 약속함으로써 성당은 1952년 완공될 수 있었다. 2층 붉은 벽돌로 지어진 함평성당은 전면 중앙 상부의 첨탑이 돋보이며, 해방 후 성당 건축의 초기 모습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전형적인 농촌 지역에 자리 잡은 함평성당은 1970년대 ‘함평 고구마 사건’, 1980년대 전국농민대회 등 산업화시대 소외된 농민들의 아픔과 불만을 함께 해온 성당으로 기록되어 있다.
  • 강원 >원주시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원주 원동성당
    강원도 원주시 원동성당은 1896년 원주 본당으로 시작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원동성당은 1913년 고딕 성당을 지었으나 한국전쟁 초기에 폭격으로 무너져 버렸다. 현재의 성당은 1954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가로 폭과 세로의 길이가 1:3.6이나 되는 긴 건축물로서, 전면에 4층 높이의 돔 형 지붕을 가진 종탑이 돋보인다. 1957년 성당 분리 때 원주성당이라는 명칭을 넘겨주고 원동성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65년 원주교구가 독립하면서 주교가 머무르는 주교좌성당이 되었다. 첫 주교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정신에 따라 1970년대부터 유신 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다. 원동성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시기에 중요한 중심 공간 역할을 했다.
  • 충북 >진천군

    성공회의 사회선교와 토착화 원칙, 대한성공회 충북 진천성당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은 충청북도 진천을 중부 내륙 선교기지로 삼고, 1908년 진천성당을 설립했다. 성공회의 토착화 원칙에 따라 세운 한옥 성당이 1920년 소실되자 1923년 현재의 성당을 다시 건립하였다. 진천성당의 한옥 성당은 2002년 현재의 위치로 해체 복원되었다. 한옥 성당은 전통적인 한국의 사찰건축을 기본으로 서양 성당의 요소를 접목한 근대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진천성당과 함께 애인병원을 설치하였고 이어 신명 학교를 열었다. 애인병원은 입원실과 수술실을 갖춘 데다 노인산 의사 부부의 헌신으로 먼 곳의 환자들까지 찾아오는 병원으로 이름이 높았다.
  •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광무 4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불교 가람과 유교 사당을 닮은 성공회 강화성당은 조선의 토착 종교를 반영해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노력을 보여준다.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본당 앞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유교의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심었다.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당을 지을 때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목수를 초빙하고, 백두산 목재를 가져오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 충남 >당진시

    김대건 신부의 생애와 발자취가 담긴 당진 솔뫼성지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는 솔뫼성지라는 천주교 성지가 있다. 솔뫼마을에서 1821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났다. 김대건은 1836년 마카오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아 귀국하였다. 사제 생활 1년여 만에 체포되어 1846년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김대건 순교 100주년을 맞으며 솔뫼성지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이후 성역화되었다.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기념성당 및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 전남 >나주시

    붉은 벽돌성당의 기적 - 나주 노안성당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노안성당은 나주에서는 처음 설립된 성당이자, 전라남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노안성당은 1900년대 계양 공소로 시작됐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나주읍내 가까운 곳에 성당을 설립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산골이지만 계안 공소를 나주 최초의 성당으로 정했다. 1927년 증축 건립된 노안성당 본당 건물은 기술의 한계와 재정적 여건 때문에 비용은 줄이되 기능은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올린 노안성당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불을 지르려던 인민군들이 착각을 일으키는 기적적인 일을 겪기도 했다. 노안성당은 1930년대엔 신성학교라는 초등교육 과정을, 1961년에서 1984년까지는 성 골롬반중학교라는 중등교육 과정 학교를 직접 운영했다. 나주 가톨릭의 모태 격인 노안성당은 2002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노안성당이 자리 잡은 계양마을은 2000년대 들어 이슬촌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 주민 절대다수가 노안성당 신도인 이슬촌은 농촌 체험 마을로, 크리스마스 축제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마을이 되었다.
  • 경남 >진주시

    한옥 성당과 고딕 성당이 나란히, 진주 문산성당
    경상남도 진주의 문산 성당은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 성당과 1930년대에 건축된 고딕 성당을 나란히 가지고 있는 성당이다. 문산 성당의 터는 조선 시대 문산 찰방의 관서가 있었던 자리다. 한옥 성당은 경상남도 고성의 옛 사찰을 옮겨다 지었다는 설이 있다. 굵은 기둥 13개와 들보로 서양 성당의 내부 공간을 한국식으로 재현했다. 신도가 증가함에 따라 지어진 고딕 성당은 정통적인 고딕 성당과는 다른 구성이지만, 서양의 고딕 부활 양식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 충북 >음성군

    충청북도 최초의 성당, 음성 감곡성당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에는 충청북도 최초의 성당인 감곡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신부 임 가밀로에 의해 감곡성당이 설립되었다. 감곡성당 터는 명성황후의 6촌오빠인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터였다. 명성황후가 시해되고 민응식도 서울로 압송되면서 집터는 일본군에 의해 불타버렸고 이를 임 가밀로 신부가 헐값에 사들여 감곡성당을 세우게 되었다. 성당 옆에는 사제관으로 사용했던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현재 매괴박물관으로 재단장하여 가톨릭 관련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 경기 >김포시

    믿음으로 쌓아올린 사랑과 찬미, 구 김포성당
    경기도 김포시 김포성당은 북변동 언덕 위에 있다. 김포성당 언덕에 올라서면 한강과 김포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화강암으로 지어진 구 김포성당은 1955년부터 1년간 신도들이 직접 돌을 캐고 날라 지었다. 김포성당은 1960년대 들어 장애인을 위한 편물학원을 운영하고,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지역민과 함께 하는 성당으로서 소임을 다하고자 힘썼다. 1999년 새 성당이 석조 성당 옆으로 건축되어, 신·구 성당이 조화를 이룬다. 1만 평에 이르는 김포성당의 정원은 잣나무 숲과 장미가 만발하는 도심의 쉼터로 사랑받는다. 석조 성당이 등록문화재인 김포성당은 2015년 한국 최초로 ‘성체 성지’로 지정되었다.
  • 경기 >포천시

    화마도 삼키지 못한 신앙, 구 포천성당
    구 포천성당은 1955년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육군 6군단장 이한림 장군에 의해 지어졌다. 인근의 화강석을 가져다가 벽돌을 쌓듯이 2열로 쌓아 벽체를 올린 석조 성당이다. 준 고딕 양식의 구 포천성당은 1990년 실수로 불이 나 창호와 지붕이 소실되고, 종탑부 상부도 사라졌다. 하지만 벽체를 원체 두껍게 쌓은 덕분에 성당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화재 직후 석조 성당을 철거하고 새로운 성당을 짓자는 여론이 분분했으나, 당시 춘천 교구장을 비롯한 사제들은 불에 탄 성당을 보존하기로 했다. 석조 성당 옆에 새 성당이 신축되었고, 구 성당은 서양의 초기 기독교 유적처럼 남아 포천 천주교의 역사와 신앙을 증거 하는 종교시설 구실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