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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우리 동네에도 귀신이 살았을까?

무더운 여름밤이면 으레 귀신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면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순간적으로 더위를 잊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 이야기 가운데 상당수가 특정 지역에서 실제로 전해 내려온 설화에서 비롯됐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전국 곳곳에는 억울한 사연을 품은 귀신 이야기부터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기이한 존재, 지혜와 용기로 위기를 극복한 사연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누군가를 무섭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삶과 감정, 공동체의 가치관이 담긴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슬픔은 전설이 되었고, 어떤 사건은 세월이 흐르며 마을 전체의 기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옛날 괴담은 무섭기만 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두려움과 바람, 그리고 지역의 풍경이 함께 녹아 있습니다. 올여름, 잠들어 있던 마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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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시흥시

    하연 묘소 주위의 홰나무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선생의 묘가 있는데, 그 주위에는 홰나무들이 많다. 하연은 살았을 때 묏자리를 잡고, 그 주위에 홰나무를 심었다.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홰나무를 베거나 팔자, 하연의 영혼이 신임부사에게 나타나 후손들이 더 이상 홰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 전남 >목포시

    기지를 발휘하여 병귀신을 무찌른 어부
    전라남도 목포에 전해지고 있는 병귀신에 얽힌 설화는 한 어부가 그물을 던져 놋쇠 병을 건져 올렸는데, 그 병에서 마왕이 나와 어부를 죽이려고 하나 이때 어부가 기지를 발휘해 다시 마왕을 병 안에 가두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설화로 목포지방에는 이 설화와 관련된 ‘귀신 물리기’라는 풍속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 경기 >광명시

    처녀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고 부부애를 깨달은 덕쇠
    경기도 광명시에는 도덕산이 있다. 이 산은 옛날 사신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도(道)와 덕(德)에 관하여 논했다고 하여 ‘도덕산’이라 불렸다고 하며, 그에 관한 다른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는 덕쇠가 죽은 처녀와 결혼하여 한을 풀어준 후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전남 >나주시

    나주 동문다리의 귀신
    나주에는 큰다리가 있는데 그 다리에서는 귀신이 출몰했다고 한다. 시숙이 장가를 가 장인어른이 처갓집을 가는 길에 다리를 건너게 되면서 동문다리의 귀신에 관한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술 귀신의 유래
    어느 산골에 효자가 살았는데 어머니가 병들자 약방이란 약방을 다 찾아 다녔고, 별의별 약을 다 해보았지만 어머니의 병환은 깊어만 갔다. 어느 날 친구에게 어머니의 병에는 사람의 간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지나가던 선비를 죽였다. 하지만 한명으론 부족할 것같아 지나가는 무당과 개 또한 죽였다. 그는 죄 없이 죽은 선비와 무당과 미친개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갔다. 잡초가 무성한 세 무덤을 보살피던 효자는 무덤가에서 이상한 씨앗을 발견하고 그 씨앗으로 술을 만들어 마을사람들에게 주었더니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했다.
  • 전남 >완도군

    소금장수 골창
    옛날 읍내 장터를 다니는 길목은 우슬나무가 많이 있고 산모퉁이를 몇 구비 돌아 언덕을 지나야 했다. 골짜기는 밤만 되면 귀신들이 득실거린다는 얘기가 있어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밖에 나가지 못했다. 어느 날 그 무서운 골짜기에 일찍 부모를 여의고 오갈 곳이 없는 가난뱅이 소금장수가 찾아와 움막을 짓고 사는데 밤마다 도깨비들이 찾아와 소금 장수에게 못된 짓을 했다. 그래서 소금장수는 소금의 위력을 보여주기 위해 소금을 물에 풀어 싱싱한 배추를 담궜다. 도깨비들은 배추가 시드는 것을 보고 멀리 도망갔다고 한다.
  • 충남 >금산군

    무서운 화장실 귀신
    ‘무서운 화장실 귀신’은 ‘계모와 칠 형제’를 변형한 이야기이다. 아들 칠 형제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고 계모를 얻었다. 심술궂은 계모는 남편에게 병에 걸렸다 하고 아들 칠 형제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남편은 아들들을 숨기고 토끼 간을 가져다 주면서 아들들의 간이라고 속였다. 계모를 그걸 먹더니 병이 다 나았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숨어있던 칠 형제가 나오자 계모는 똥통에 빠져 죽었다.
  • 충남 >금산군

    물귀신이 사는 강장모랭이
    강장모랭이는 강가에 있는 귀통나무로 물이 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 물귀신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날이 궂으면 강장모랭이에서는 풍물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4-50년 전에 구암이라는 금나라 사람도 이곳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 전남 >구례군

    노인 귀신
    옛날에 어르신이 외곡 검문소에서 일을 할 적에 비상이 걸렸었다. 당시만 해도 전화기가 많지 않은 시절인데 비상이 걸렸다고 하여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가는 길에 현재 섬지농원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소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비도 오는 날이었는데 그 사이로 노인이 한명 보였다고 한다. 사람 모양도 반 밖에 없는데 어르신을 놀리자 화가 나서 자전거로 들이받는다고 받았는데도 없었다. 그래서 그 주변이 돌밭이라 돌을 던졌는데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 그 소나무가 달빛을 받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다른 헛것으로 본 것이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옛날부터 어르신들이 헛것을 보고 3명이나 목숨을 잃은 곳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 경남 >밀양시

    억울한 죽음의 한을 스스로 푼 아랑
    옛날에 아랑이라는 여인이 밀양 부사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밀양에 갔다. 아랑은 유모와 영남루에 달구경을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밀양 부사는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채 사직하고 서울로 돌아간다. 그 뒤로 밀양에 새로 부사들이 부임하면 귀신을 보고 기절하여 죽어 나갔다. 모두가 두려워 밀양에 가지 않으려고 할 때 한 사람이 자원하여 밀양으로 내려갔다. 신임 부사는 귀신으로 나타난 아랑의 억울한 사연을 듣고 다음날 아랑을 죽인 자를 잡아 처형하였다. 그 후로 귀신이 나타나지 않았고 부임하는 부사가 죽는 변고도 없어졌다고 한다.

지역마다 달랐던 여름 보양식 이야기

초복과 중복이 다가오면 삼계탕부터 떠올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여름철 기력을 보충하던 음식이 삼계탕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역마다 나는 재료가 달랐던 만큼, 무더위를 이겨내기 위한 보양식도 저마다의 개성과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바닷가 마을에서는 제철 생선으로 국을 끓여 먹었고, 산과 들을 품은 마을에서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보양식을 만들었습니다. 누군가는 민어탕으로 기운을 북돋웠고, 누군가는 농어 미역국이나 애호박죽으로 더위를 달랬습니다. 광산 지역에서는 용봉탕처럼 이름부터 특별한 음식이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같은 여름이라도 지역에 따라 식탁 위 풍경이 조금씩 달랐던 겁니다.

이처럼 여름 보양식에는 단순한 영양 보충을 넘어 자연환경과 생활 방식, 지역민들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전국 향토지에 기록된 다채로운 보양식 이야기를 따라가며, 지역마다 달랐던 여름 밥상을 만나보세요.

음식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수단이 아니라 계절을 견디는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무더위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기 위해 지역 사람들이 만들어낸 '한 그릇의 지혜'를 따라가다 보면 여름 밥상에 담긴 또 다른 이야기가 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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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영양 가득한 여름철 별미, 콩국수
    콩국수는 불린 콩을 삶아 갈아 낸 국물을 차게 해서 국수를 말아먹는 음식이다. 시원한 콩국에 국수를 말아 볶은 깨와 잘 익은 열무김치를 곁들이면 여름철 기력을 충전시켜주는 소박하면서도 영양상 균형 잡힌 음식이 된다. 콩국수는 여름철의 소박한 보양식이면서 별미 음식이기도 하다.
  • 광주 >광산구

    용과 봉황의 기운으로 더위를 물리친다, 광산 용봉탕
    용봉탕은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상징하는 자라와 봉황(鳳凰)을 상징하는 닭을 재료로 하여 끓여낸 여름철 보양식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향토 음식이다. 용봉탕은 이름 자체만으로 길하고 복된 음식이며 궁중음식에서 유래되었다.
  • 경남 >양산시

    경상남도 양산 지방의 여름철 보양식, 애호박죽
    애호박죽은 물에 불린 멥쌀에 애호박과 바지락살을 넣고 장국에 끓인 죽으로 경상남도 양산시의 향토음식이다. 양산의 애호박죽은 바지락조개의 조갯살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경상남도 양산시가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조개나 멸치 등 해산물을 구하기 쉬웠던 지리적 조건이 작용한 것이다.
  • 전남 >목포시

    최고의 여름 보양식, 민어탕
    민어탕은 맑은장국에 민어 토막을 넣고 끓인 국이다. 여름에 가장 맛이 오르는 민어로 끓인 민어탕은 복날 보신탕 대신 먹었던 보양식으로도 유명한 향토 음식이다. 옛날에는 인천 앞바다가 민어의 주요 산지였지만 현재 민어는 북상하는 어군이 많지 않아 대부분 전남 해안에 머물고 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세계인이 좋아하는 전통 보양음식 삼계탕
    삼계탕은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과 마늘, 대추, 인삼을 넣고 물을 부어 오래 끓인 음식으로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 음식의 하나로 초복, 중복, 말복에 주로 애용된다. 삼계탕은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외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기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요리 중 하나로 꼽고 있다. 삼계탕이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요즘은 다양한 아이디어가 더해진 퓨전 삼계탕이 만들어지고 있다.
  • 대구 >달서구

    소고기로 끓인 보신탕, 대구 육개장
    대구 육개장은 소의 양지머리나 사태 등을 큼직하게 썰어서 고사리, 대파, 토란 대 등과 함께 고추기름, 마늘, 후추 간장 등 갖은양념을 하여 얼큰하게 끓여낸 여름철 보양식이자 대구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 전국

    일제강점기부터 꿩 대신 닭
    닭은 오랜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길렀지만 닭고기는 많이 먹지 않았다. 주로 달걀을 위해 닭을 길렀기 때문이다. 고기를 위해서는 꿩을 먹었는데 이러한 전통이 일제강점기에 변화한다. 이 시기 달걀의 대량생산을 위해 농가에서 닭을 많이 사육하게 된다. 달걀이 많이 생산되고 이 달걀의 일부를 병아리로 만들면 달걀을 못낳는 수탉이 많이 나왔다. 잉여의 닭이 늘어나면서 1920년대 음식점 메뉴로 연계탕이 나타난다. 연계탕에 인삼을 넣은 것이 삼계탕인데 이것이 오늘날 여름 보양식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 경남 >통영시

    여름철 보신에 좋은 연화도 농어 미역국
    남해 연화도는 사시사철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낚시터로 유명하다. 여름에는 농어가 많이 잡히는데, 낚시한 농어로 회를 뜨고 남은 부위는 미역국을 끓일 때 넣는다. 갯바위에서 손으로 직접 채취한 자연산 돌미역과 회를 뜨고 남은 뼈와 머리를 푹 고아 만든 미역국은 산후조리음식일뿐 아니라 보양식이다. 여름철 농어 회 몇 점과 함께 먹는다면 지상에 이런 보양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맛과 건강이 확실히 보장되는 하나의 세트메뉴다.
  • 전남 >여수시

    여덟 개의 다리로 복을 끌어들이는 여수 피문어죽
    피문어죽은 여수 돌산도에서 잡은 참문어를 껍질 채 말려 두었다가 통째로 국물을 낸 육수에 불린 쌀과 곱게 다진 피문어살을 넣고 끓여낸 전라남도 여수시의 향토음식이다. 참문어로 쑨 죽은 몸에 좋은 성분이 워낙 풍부하기 때문에 기력이 떨어지거나 여름철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보양식으로 이용되었다.
  • 경남 >고성군

    ‘하모’ 아시지예? 하모요! 고성 장어탕
    장어탕은 갯장어에 방아잎을 비롯한 여러 가지 채소를 넣어 끓인 경상도 연안지방의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식이자 경상남도 고성군의 향토음식이다. 이 지역에서 갯장어를 이용한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장어탕 외에 구이, 데침회, 숙회, 회 등이 있다.

선조들의 일상에 스며 있던 제로웨이스트

7월 3일(음력 5월 19일)은 '세계 일회용 비닐봉투 없는 날'입니다.
최근에는 쓰레기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실천으로 제로웨이스트와 업사이클링이 주목받고 있는데요. 사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아주 새로운 개념만은 아닙니다. 우리 선조들의 일상 속에도 물건을 아끼고 자원을 끝까지 활용하는 지혜가 자연스럽게 스며 있었습니다.

짚풀과 박 껍질 같은 자연 재료는 생활용품으로 다시 태어났고, 옷이나 신발은 해질 때까지 고쳐 쓰며 물건의 수명을 최대한 늘렸습니다. 부족한 물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늘날 제로웨이스트가 지향하는 가치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버려지는 것 없이 쓰임을 찾고, 물건 하나에도 정성과 아까운 마음을 담았던 것이죠.

풍요로운 소비문화에 익숙한 오늘날, 선조들의 생활 속 지혜는 새로운 시선으로 다가옵니다. 전국 향토지에 기록된 소박한 절약 이야기와 역사 속 인물들의 흥미로운 일화를 따라가며 '아껴 쓰는 삶'의 의미를 되새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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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포천시

    폐채석장을 활용한 관광지 포천아트밸리
    포천 아트밸리는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기지리에 위치한 공간으로, 1960년대부터 약 30년 동안 화강암을 채석하던 장소를 재활용해 조성된 포천시의 대표 관광지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산업 기반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수출 가능한 품목이 부족했으며, 이곳에서 채취한 화강암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채석장은 일자리가 귀하던 시절 지역에서 손꼽히는 고급 일자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채석장의 심도가 깊어지고 경제성이 떨어지자 돌의 상품 가치도 크게 낮아졌다. 결국 채석 작업은 중단되었고, 넓게 파헤쳐진 채석장은 별도의 활용 방안 없이 약 20년 동안 방치되었다. 포천시는 이후 경기도와 문화관광체육부와의 협의를 거쳐 약 250억 원(시비 50억, 도비 100억, 국비 100억)을 투입해 이 폐채석장을 문화·관광 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조성된 포천 아트밸리는 산업 폐기 자원을 성공적으로 재활용한 전국적인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 제주 >제주시

    선조의 음식 재활용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제주 쉰다리
    쉰다리는 보리로 밥을 지어 쉰밥을 만들고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후 끓여낸 제주특별자치도의 대표적인 전통 음료이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예로부터 쌀이 귀해 보리밥이 주식이었는데, 더운 여름철에 잘 쉬는 보리밥을 버리지 않고 음료로 만든 데서 유래한다. 쉰다리는 주로 무더운 여름에 갈증을 해소하는 시원한 음료로 마셨다.
  • 서울 >마포구

    재활용의 귀재 땜장이
    그릇이나 농사짓는데 쓰던 기구 등에 구멍이 나거나 깨진 부분을 땜질해주던 일을 직업적으로 하던 사람을 땜장이라고 한다. '금이 간 곳이나 뚫린 곳을 메우거나 붙이는 일'이란 뜻의 '땜'에 수공업적인 기술이 있는 사람에게 붙는 접미사인 ‘장이’가 붙어서 만들어진 직업의 이름이다. 더 이상 물건을 고쳐 쓰지 않아도 될 만큼 물자가 풍부해지자 찾는 이가 없게 됐고,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됐다.
  • 충북 >충주시

    충주 조륵의 묘에 세워진 자린고비
    조륵은 충주 자린고비라 불리는 인색한 인물이다. 파리 다리에 묻은 장이 아까워 따라가기도 하고, 조기를 매달아 놓고 쳐다보며 밥을 먹을 정도로 매우 절약하였다. 임금에게까지 조륵의 행동이 전해지자 임금은 어사를 보내어 알아 오도록 하였다. 조륵은 환갑을 기점으로 해서 구두쇠 노릇을 중단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모아놓은 재산을 베풀었다. 어사가 이 사실을 알리자 임금은 조륵을 기특하게 여겨 벼슬을 주었다. 이웃 사람들은 조륵의 선행을 아름답게 여겨 자인고비(資仁考碑)를 세웠다고 한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세초례(洗草禮)를 했던 세검정 차일암
    조선시대에는 왕이 죽으면 새로운 왕이 실록청이라는 기구를 임시로 만들고 사초를 모아서 정리를 하는데, 그 결과물이 『조선왕조실록』이다. 실록이 완성되면 실록의 토대가 되는 기초 사료인 사초를 세검정에 모여 정자 아래 흐르는 물에 씻어낸다. 이러한 의식을 세초례라고 한다. 세초례는 사초의 내용이 외부에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 종이가 귀한 당시의 상황에서 재활용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세초례를 하던 바위에 차일을 치고 행사를 했기 때문에 바위의 이름을 차일암이라고 한다.
  • 서울 >마포구

    에코마일리지의 시작 넝마주이
    넝마란 '낡고 해져서 입지 못하게 된 옷이나 천조각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넝마주이란 넝마 중에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주워서 삶을 꾸렸던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넝마 외에도 헌 종이나 빈병 등도 함께 주워 모았다. 넝마꾼, 넝마장수라고도 불렀다. 1920년대부터 사회의 한 부류로 등장했고, 1960년대 이후 넝마주이는 점차 줄어들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됐다. 1960년대의 국토건설단 운영과 1970년대의 직업훈련원의 운영으로 넝마주이를 하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빠져나갔다. 1990년대 이후 쓰레기산업을 포함한 폐품산업이 성장하면서 넝마주이가 설 자리가 좁아지면서 넝마주이는 점차 사라졌다.
  • 충남 >아산시

    근검절약으로 나라를 구한 아산시 선장면의 된고지
    충청남도 아산시 선장면 돈포리에 '된고지'로 부르는 자연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궁궐 안에만 있던 임금이 백성들이 삶이 궁금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김복선에게 백성들의 삶을 둘러보고 오게 하였다. 김복선이 한 마을에 머물렀는데 인심이 고약하였다. 궁궐로 돌아온 김복선은 된고지만 인심이 박해 하룻밤 거하기가 어려웠다고 하였다. 그 후 나라에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된고지에서 군량미를 보내 위태로움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그네를 소홀히 대접하는 일보다는 나라에 보탬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해서 그랬다는 얘기를 듣고, 임금과 조정 대신들이 감복했다고 한다.

폭염 탓에 죄수들을 풀어줬다?

더위의 기세가 꺾이기에는 아직도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입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피해 차가운 음식과 에어컨, 선풍기를 찾는 요즘과 다르게 과거에는 폭염을 피하기 쉽지 않았는데요. 특히 세종 때에는 가뭄과 폭염이 유난히 심했습니다. 평소 백성을 걱정하던 마음이 크던 세종은 폭염 탓에 감옥에서 죄수가 목숨을 잃을 것을 염려하여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들은 여름철에 잠시 석방하기도 하였습니다. 성종 때에도 강력범죄자가 아닌 이들이 억울하게 형문을 받다가 더위까지 먹어 목숨을 잃을까 보석을 허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석방되지 않은 죄수들을 위해서는 동이에 물을 담아 손을 씻게 하는 등 더위에 들지 않게 신경 썼다고 하네요. 극심한 폭염으로 죄수까지 풀어줄 정도였다니, 그 더위가 어느 정도였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운데요. 과거부터 현재까지 폭염으로 인한 여름 나기는 언제나 힘든 것 같습니다. 올여름 모두 더위로 인한 피해가 없도록 대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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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도서 지역에서 만난 유배문화
    도서 지역의 또 다른 문화 중에 하나인 유배는 조선시대의 형벌 가운데 하나이다. 죄의 경중에 따라 차이를 보이긴 하나 유배라 함은 일반적으로 절해의 고도에서 하는 것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유배지마다 차이를 보이긴 하겠지만 도서 지역에 유배인들이 들어온 것은 조선초기부터이다. 물론 조선후기에 오면서 대대적으로 증가를 한다. 도서 지역에서 유배를 보내는 유배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유배 생활을 하였다.
  • 전남 >영암군

    낙인에 얽힌 두 시선 : 나의 것에 찍은 도장, 타인에게 찍힌 형벌
    사유재산과 소유권의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흔히 ‘나의 것’에 커다란 애착을 갖게 되었다. 이에 ‘나의 것’을 타인의 것과 구분할 수 있도록, 혹은 누가 훔쳐가거나 잃어버리더라도 찾을 수 있도록 소유품에 특정한 표시를 하였는데 낙인은 표시를 남기기 위해 철로 만든 도장을 말한다. 농업사회에서 낙인은 불에 달군 다음 소나 말 등 가축에 찍어 해당 가축이 특정 인물 혹은 특정 기관의 소유임을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낙인’이라는 단어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낙인이 범죄자에게 가해지는 형벌로도 사용되어 낙인이 찍힌 범죄자는 죽을 때까지 자신이 범죄자라는 사실을 몸에 새기고 살아가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 서울 >강북구

    도둑질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무쇠솥, 화계사 시왕도 중 화탕지옥
    서울 강북구 화계사는 흥선대원군을 비롯한 조선말 왕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절이다. 화계사의 시왕도 중 화탕지옥에는 큰 무쇠솥이 그려져 있다. 화탕지옥(火湯地獄)은 엄청난 크기의 무쇠솥에 물을 끓이고 있는 지옥으로 도둑질을 하거나 빌려간 물건을 갚지 않은 중생들이 그 무쇠솥에 떨어진다. 무쇠솥에 끓여지는 물질은 죄질에 따라 똥물, 용암, 황산 등이다. 이 그림의 무쇠솥은 다리가 없는 부(釜)형식으로 조선시대 일반 민가에서 일상으로 사용하던 생활용구이기도 했다.
  • 전국

    짐승 같은 사내, 망나니
    예전에 사형수의 목을 베는 사람을 일러 망나니라고 한다. 망나니는 흉악범이나 사형수 중에서 자발적으로 선발된다. 사형수의 가족들은 망나니에게 단칼에 죄인의 목을 베어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끔 해달라고 뇌물을 바쳤다. 망나니는 자기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다. 1896년 참형 제도가 폐지되면서 망나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차 심부름꾼이자 여형사, 다모
    조선시대 고위 관리들은 차를 즐겨 마셨다. 고관들에게 차 심부름을 전담하던 사람을 다모라 한다. 다모는 관청에 소속된 관비였다. 다모는 차 심부름 이외에 은군자의 집에 숨어 있는 죄인을 잡아들이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은군자는 기생이나 애첩을 이르는 말이다. 남녀유별 문화 때문에 남성 포교와 포졸은 은군자의 집을 염탐하거나 수색할 수 없었다. 다모가 은군자의 집에 들어가 숨어 있던 죄인을 데리고 나왔다. 다모는 조선시대 후기 차 문화가 쇠퇴하면서 찬모와 통합되며 사라진다.
  • 서울 >마포구

    조선의 변호사 외지부
    조선시대에 다른 사람들의 소송을 부추기거나 대신해서 소송하던 사람들을 외지부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활동한 일종의 변호사인 셈이다. 조선시대 동안 외지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죄인 취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금지된 직업이었다. 이러한 외지부는 근대화와 개항으로 인해 합법화되었다. 1895년 사실상 변호인이 도입되었고, 1905년 대한제국기에 변호사법이 통과되었다. 현재 변호사는 고소득 직업이자 사회에서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다.
  • 경기 >부천시

    악행을 일삼다가 천벌을 받은 서도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는 서도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서도사의 횡포에 암행어사였던 과객이 죽게 되고, 이로 인해 서도사가 피살되었다는 구조이다. 특히 서도사의 죽음 이후 가문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을 통해 악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유배문학관, 글이 절로 써지는 아름다운 남해를 즐길 수 있는 곳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와 유배 문학을 주제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남해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네 개의 전시실에서 주제별로 남해의 유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향토역사실’에는 남해의 자연과 역사, 문화, 죽방렴 멸치잡이 등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유배문학실’은 국내외 유배의 역사와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형벌의 종류에 대해 알고, 대나무 숲처럼 꾸민 벽면에 적힌 아름다운 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유배체험실’은 관람객들이 유배객이 되어 유배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실인데, 전자 상소문 쓰기와 VR 체험이 준비돼 있다. 마지막으로 ‘남해유배문학실’에서는 남해로 유배해 온 대표적인 문인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서울 >마포구

    형벌에 따라 달라졌던 조선시대 유배 지역
    조선시대의 유배를 연구한 자료에 따르면 유배지는 주로 경상남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세 지역으로 유배를 간 횟수가 60%에 가깝다. 그리고 도서 지역 가운데 유배를 가장 많이 간 곳은 제주도와 거제도이다. 이들 섬으로 유배를 온 사람들의 형벌을 보면 모반대역죄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관리부정과 국정관린, 그리고 강상죄도 포함된다. 16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6개의 도서 지역에 유배를 보냈으나 그 이후에는 유배지역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를 한다.
  • 경북 >구미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긴 효자
    장석규(張錫奎)는 그의 아버지 시호(時皡)가 고을 사또 이갑회의 무고로 죄인이 되어 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옥중에서 태어났다. 그 후 어머니, 누이와 함께 전라도 강진의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가 9살 때 섬사람들의 괴롭힘으로 어머니와 누이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홀로 남은 장석규는 부지런히 노력하여 자립 한 후, 임금의 행차가 있을 때마다 억울함을 호소하였고 주변의 도움으로 신원되었다.

옛적에 신던 여름 신발, 나막신

'딸깍딸깍'

어? 무슨 소리죠? 아하, 나막신이 바닥과 부딪혀 나는 소리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나막신을 신어본 적이 있나요? 요즘 신발은 대부분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나막신처럼 나무로 만든 신발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의 영향으로 나막신은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리다 1940년대 전후로 사라졌거든요. 나막신은 원래 조선시대 말기에 짚신과 함께 대중적으로 신는 신발이었다고 해요. 가죽신이 비싸서, 비오는 날 진흙이 되어버린 땅에서 신기 위해 쓰였다고도 합니다.

나막신에 대해 알아보니 과거에 또 어떤 신발들을 신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삼국시대 이전에는 풀과 가죽으로 만든 이(履)와 화(靴)라는 신발을 신었다고 해요.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은 앞코와 뒤축이 장식된 낮은 높이의 신발인 당혜를 신었다고 합니다. 또 미투리라는 질 좋은 짚신이 있었는데요. 이는 삼이나 모시, 노끈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해요. 정말 다양한 신발들이 있었죠?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 혹은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여러분은 어떤 신발을 신으시나요? 신발 젖을 걱정 없는 장화나 통풍이 잘되는 샌들을 많이 신으실 텐데요. 장화와 샌들을 신을 때 과거 조상님들이 신었던 나막신도 한번 떠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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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비오는 날 신는 나막신
    나막신은 비 오는 날 진흙땅에서 신기 위해 한 덩어리의 목재를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발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가 올 때는 물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도 신었다. 1910년 이후 고무신이 등장하자 경쟁에서 밀려 1940년대를 전후하여 거의 사라졌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전국

    비 오는날 또는 진 땅에서 신는 신발, 나막신
    나막신은 비오는 날 진 땅에서 신기 위하여 통나무를 파서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이다. 나막신은 나무로 신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두껍고 큰 목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은행나무·오동나무·피나무·소나무·오리나무처럼 제작이 쉬운 나무를 파서 신과 굽을 통째로 만들었다. 목재의 겉이 마르지 않도록 기름을 칠하기도 했다. 나막신은 신분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신었다. 굽이 높아 비에 젖어 질어진 땅을 걸어다니 좋았으나, 무겁고 활동성이 떨어져 먼 길을 가거나 말을 탈 때는 착용하지 않았다. 맑은 날에도 많이 신었으며, 굽이 닳으면 새 굽을 바꿔 달았다고 한다. 나막신은 이처럼 널리 신겨지다가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으로 인해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려 1940년대를 전후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 전국

    구름무늬가 새겨진 신발, 운혜(雲鞋)
    운혜(雲鞋)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자가 신는 신으로 신코[신발 앞쪽의 뾰족한 곳]와 뒤축[발 뒤쪽의 둥그런 부분 중 두둑한 맨 뒤쪽의 가운데]에 다른 색의 무늬를 장식한 신발이다. 신발 바닥에 짐승 털로 만든 조각인 담(毯)을 깔아 따뜻하다는 의미에서 ‘온혜(溫鞋)’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신발의 앞쪽 모양이 제비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제비부리 신’이라고도 불린다. 운혜는 앞코에 죽엽문(竹葉紋)을, 뒤축에는 굼벵이 형태의 장식을 붙여서 마무리한다. 이러한 형태는 개화기 개발된 고무신에 그대로 반영되어 최근까지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운혜는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감과 날렵한 곡선 형태가 어우러져 한국적 미의 아름다운 외양을 나타내고 있다.
  • 전국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의 신발, 당혜
    당혜(唐鞋)는 조선시대 부녀자가 신던 가죽신으로, 당초문(唐草文)으로 앞코와 뒤축을 장식한 낮은 높이의 신발이다. 조선시대 여자의 신으로는 당혜⸱온혜(溫鞋) 등이 있었는데, 당혜는 좋은 집안인 양갓집 부녀자가 신었고 온혜는 일반 백성 집안의 부녀자가 신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무렵 들어와 조선시대 말엽까지 신었으며 ‘당혜’라는 명칭은 당초문(唐草紋) 장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혜의 일반적인 형태는 남자용 신발보다 앞코가 더 뾰족하게 올라가 있다. 또한 현대의 고무신처럼 신울의 간격이 좁아 오랫동안 신고 걷기는 불편하였다. 그리고 신발의 오른쪽, 왼쪽의 구별이 없었다. 당혜의 신코에서 뒤축으로 이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당혜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다른 나라의 신발과는 구별되는 조선시대 특유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화혜장
    화혜장은 전통 신발을 만드는 장인이다. 조선시대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가죽으로 만든 ‘갖신’을 신었다. 이러한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이 ‘화혜장’이다. 전통 신발 제작은 가죽을 주재료로 하여 수십 번의 제작공정을 거쳐 이루어질 만큼 고도의 기술과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요구된다.
  • 전국

    남방계와 북방계의 신발, 이(履)와 화(靴)
    이(履)는 신목이 짧은 신의 총칭으로 신발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남방족계의 신이며, 화(靴)는 장화와 같이 신목이 높이 달린 신으로 방한, 방침에 적당하여 무풍적인 북방계의 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두 종류의 신을 혼용하여 착용했기 때문에 먼저 생긴 신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고유 복식이 북방호복 계통이므로 고유의 신은 목이 긴 화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 이전에는 이미 풀과 가죽을 이용한 신을 신었으며, 부여의 초탑, 마한의 초갹, 초갹답, 초리 같은 다양한 신의 종류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의 신발이 발달하였다.

도자기의 역사 속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옛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상님들이 귀중하게 생각하며 지켜온 유물이 있기에 알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세계에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린 문화재로는 고려청자가 있답니다. 고려청자는 빼어난 색감과 음각, 양각 등 화려함이 돋보여 우리나라의 도예 문화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려청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시대를 거쳐오면서 도예 기술도 발전했을 텐데요. 이번 지역N 문화에서는 역사에 따라 형태와 용도가 달라진 도자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자기로서 최초로 만들어졌던 것은 토기로 그 기원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이라네요! 문명이 시작된 이후에는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등장했으며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형태의 도자기인 고려청자도 등장하게 됩니다.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도자기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체적으로도 생산하게 되었으며 송나라의 다양한 제조기법을 바탕으로 고려 도공들은 특유의 색, 상감기법, 문양 표현 등으로 세계 도자기사에 한 획을 남겼답니다~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고려청자에 대해 알고 나니 그 자태가 더욱 뛰어나 보이는데요. 귀중한 유물을 남겨준 조상님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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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강진군

    흙을 빚고 불을 피우는 체험 '강진청자축제'
    청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예술품으로, 한국문화예술사의 자랑이다. 강진청자축제는 약 500년간 청자문화를 꽃피운 강진군민의 자긍심을 널리 알리고 강진지역의 문화관광자원과 연계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의 축제이다. 청자축제에서는 가마에 불 지피기와 물레체험, 청자 빚기 등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으며, 30% 할인판매를 통해 고려청자의 대중화를 꾀한다.
  • 충남 >공주시

    충남 공주 출신으로 일본의 도자기의 신이 된 이삼평(李參平)
    신들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되는 대한민국 출신의 이삼평이다. 이삼평이 태어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655년에 사망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이다. 일본은 전쟁 과정에서 이삼평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도공을 일본으로 데려 갔다. 그 전까지 일본은 도자기 생산 기술이 그리 좋지 못하였는데 그들로 인해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발전하여 이들을 영웅 이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삼평은 이 지역에서 도자기의 시조라는 의미에서 도조(陶祖)로 모셔지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옹기마을에서 흙을 빚고 구워봐요! '울산옹기축제'
    울산옹기축제는 국내 유일의 ‘옹기’를 특화된 주제로 부각시킨 차별화된 축제이다. 옹기를 전통제작기술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축제가 개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 대표 특산물인 ‘옹기’를 홍보하고 생활옹기의 보급과 전통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장인들의 옹기만들기 시연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흙을 밟고, 흙장난을 치며 옹기를 만들고 구워볼 수 있다. 옹기마을의 현장성이 뛰어나 축제 방문객이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은 축제이다.
  • 서울 >용산구

    기법을 달리한 학무늬가 새겨진 철화 청자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여러 철화청자 중 덕수 4459번 청자 철화 구름 학 무늬 매병은 상감청자에 많이 등장하는 학 무늬(雲鶴文)도 기법을 달리하면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구나 싶은 유물이다. 철분 안료로 바탕을 칠하고 무늬 부분을 긁어낸 다음 붓으로 백토를 발라 표현했다. 상감기법과 퇴화기법에서 보이는 맛이 동시에 나타나 한층 활달한 느낌이며 운동감이 있다. 형태도 일반 청자매병과 달리 풍만한 몸통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길어지면서 좁아들었다.
  • 경기 >광주시

    왕실 백자를 만들던 분원리에서 펼쳐지는 ‘광주왕실도자기축제’
    경기도 광주시의 분원리는 조선시대 전 시기동안 왕실 도자기를 굽던 사옹원분원(司饔院分院·관영 사기제조장)이 있던 곳이다. 사옹원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던 백자와 달리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수준높은 백자만을 생산하던 중앙 관요(官窯)이다. 왕실 도자기 생산지라는 특별한 전통을 계승하고자 1998년부터 도자기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분원리 백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기 >이천시

    세계도자비엔날레와 함께 하는 이천도자기축제
    이천도자기축제는 1987년 설봉문화제의 단위행사로 처음 시작하였다. 지역이 특산물(쌀, 복숭아 등)과 연계하고 문화상품으로서의 도자기를 개발하여 우수한 이천 도자기를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다 독립적인 축제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2년에 한번씩 세계도자비엔날레도 같이 개최하고 있다. 이천은 2010년 공예와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유네스코 공예분야 창의도시 의장도시로 선정되었다.
  • 경기 >여주시

    1990년부터 열린 여주도자기 축제
    여주는 고려시대부터 백자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양질의 고령토와 가마불을 땔 소나무, 깨끗한 물이 있기에 도자기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 유통되는 생활도자기의 60%가 여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주도자기 축제는 1990년 시작된 도자기를 주제로 한 축제이다. 매년 4~5월에 개최되는 여주도자기 축제에서는 흙을 만지며 직접 도자기를 빚을 수도 있고, 도자접시 깨기 대회도 개최된다. 여주도자기 축제를 통해 도자기 문화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
  • 경남 >김해시

    국내 유일의 분청사기 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분청사기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이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만든 명칭으로, 백토로 분장하여 회청색을 띤 분청사기는 14세기 중엽~16세기 중엽에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김해는 가야토기의 명맥을 이어온 곳으로 조선시대 토산공물로 도자기를 생산하였고, 일본 분청사기의 원류도 김해로 본다. 1996년 시작된 김해분청도자기 축제는 김해군과 김해도예협회가 주최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고장 강진에서 만나는 '고려청자박물관'
    청자는 신비로운 색, 아름다운 선과 형태, 다양한 장식, 높은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우리 문화의 최고 자랑 중 하나다. 청자는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중국에서도 고려청자를 최고로 여겼다. 중국 남송(南宋) 태평노인(太平老人)이 쓴 《수중금》에서 고려청자에 대해 ‘고려비색(高麗秘色)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고 쓰고 있다. 강진은 청자요지와 고려청자에 대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1997년에 고려청자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볼 수 있으며, 직접 손으로 그릇을 빚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맑은 빛을 만들어낸 강진의 정수사 약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정수사(淨水寺)에 가면 맑은 샘이 물줄기를 강력하게 뿜어내고 있다. 이 물줄기는 자연약수라 일컫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러 오고, 이 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믿음까지 가지고 있다. 약수 주변은 돌담으로 잘 정비해 두었으며, 흘러내린 물이 고여서 흐르고 있을 정도다. 절 이름도 맑은 물을 뜻하는 정수사이고, 이 맑은 물이 고려청자를 구워냈던 물이라 한다. 바로 청자의 맑고 고운 빛깔을 만들어내던 물이다.

조상님들의 태양 피하는 법

7월 7일은 작은 더위라 불리며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소서입니다. 에어컨, 손선풍기 등으로 더위를 식힐 때 과학기술의 발전에 감사함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에는 이 더위를 어떻게 피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데요. 여름만 되면 피하기 바쁜 이 더위! 조상님들은 어떻게 여름을 지내왔을지 함께 알아볼까요?

잠깐의 외출에도 쉽게 땀이 차는 요즘, 등등거리와 등토시를 입으면 땀이 차는 걸 방지할 수 있답니다! 등등거리와 등토시는 등나무 줄기를 가늘게 쪼개서 만든 옛 여름옷으로, 속옷 안에 입어 옷이 피부에 닿지 않게 하여 쾌적한 생활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요즘에도 사용되는 죽부인은 대나무를 쪼개 얼기설기 엮어 만들었는데, 오늘날 바디필로우와 같은 물건입니다. 여름에 안고 자면 그렇게 시원하다네요!

또한, 한국 고유의 집 구조를 보면 대청마루가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는 길목으로 쓰인 대청마루를 보면 높은 지붕이 찬 기운은 아래로 향하게 하고 더운 공기는 위쪽으로 이동하게 하였답니다. 지금처럼 에어컨, 선풍기가 없던 그 시절에도 조상님들은 지혜롭게 태양이 내리쬐는 햇빛을 피하고 있었네요~

우리도 올여름 무사히 이 더위를 잘 이겨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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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한여름 무더위에 껴안고 자는 죽부인
    죽부인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침구의 하나로 무더운 여름밤에 끼고 자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피서용 생활도구이다. 주로 남성들이 끼고 잤기 때문에 인격화하여 ‘죽부인’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생전 사용하셨던 죽부인도 모시고 같이 제사를 받게 하였다.
  • 전국

    여름을 즐겁게 해 주는 빙수
    빙수는 얼음을 갈아 설탕, 시럽, 단팥 등을 넣고 먹는 음식으로 더운 여름철에 인기있다. 빙수는 일제강점기에 판매음식이 되었는데, 처음에는 천연빙으로 만들다가 위생적인 문제로 제빙공장의 얼음을 사용하게 되면서 대중화되었다. 당시 빙수가게는 여름 한철 장사로 천막을 쳐 임시가게를 열었다. 밖에는 ‘빙설(氷雪)’이라고 쓴 긴 깃발을 높이 달고 붉은색으로 외면을 장식한 후 실내에는 만국기를 달았다. 빙수가게에 여점원이 많았는데 풍기문란으로 신문에서 지적받기도 하였다.
  • 전북 >전주시

    여름철 선물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선자장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부채는 우리 조상들이 한여름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 가운데 합죽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 제주 >제주시

    다섯 번만 먹으면 무더위 보약 필요없는 자리돔 물회
    자리라고도 부르는 자리돔은 도미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5월부터 8월까지 제주도 연안 등지에서 잡히며, 6월에서 7월 중순 사이에 많이 식용한다. 제주에서는 "자리물회 다섯 번만 먹으면 무더위 보약이 필요없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철의 주요 반찬이었으며 제주도를 대표하는 전통향토음식 중 하나이다.
  • 충남 >서천군

    여름용 전통 직물 한산 모시짜기
    한산모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저마를 이용해 짠 전통 직물이다. 한산모시는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하였다. 모시도 여름 옷감으로 이름이 나면서 오일장에서도 판매하였다. 모시 짜기는 모시실 만들기와 베 짜기로 이루어진다. 196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전국

    추위나 더위를 막기 위해 팔목에 끼는 토시
    토시는 팔목에 껴 추위나 더위를 막는 물건으로 ‘토수’라고도 한다. 원래는 남자들만 착용하였으나 점차 여자들도 착용하게 되어 조선시대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한 치레거리로 자리잡았다. 토시의 형태는 저고리 소매와 비슷하다. 한쪽 끝은 좁고, 다른 쪽은 넓다. 그래서 이를 봉재할 때는 버선처럼 4겹 박음질을 하고, 좌우 구분이 가능하게 만든다. 토시의 종류는 계절마다 소재와 형태가 달라 다양하였다. 토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외국에서 들어온 셔츠나 장갑과 같은 서양의복에 의해 차차 사라졌다. 1950년대 후반에는 노인들 일부만 사용하였으며 현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오늘날에도 등토시는 모시 한복에 받쳐 사용하기도 한다.
  • 전국

    치마 안에 입던 여름용 홑바지, 살창고쟁이
    살창고쟁이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치마 안에 입던 속옷으로 여름용 홑바지인 고쟁이 중 하나이다. 살창고쟁이의 형태는 허리말기 아래, 허리둘레를 따라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구멍의 크기는 대략 6~8cm 폭에 15~20cm 길이로 직사각형 구멍을 10개 이상 내고 구멍의 개수는 바지마다 다르다. 살창 부분을 재단한 후 가장자리를 2~3cm 접어 감침질로 가장자리의 삼베 올이 풀리지 않게 정리하고 허리말기를 달았다. 살창고쟁이는 밑이 트인 바지인 개당고(開襠袴)이며 주로 뒤쪽이 트여 있었으며, 간혹 허리말기만 흰색 모시로 만들기도 하였다. 살창고쟁이는 여름에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성과 신부가 갖출 수 있는 예의범절, 그리고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우리 전통 옷이다.
  • 강원 >태백시

    탄광의 선풍기
    탄광에서도 선풍기를 많이 사용하는데, 일반 가정에서처럼 단순하게 더위만을 쫓으려고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다. 탄광의 갱내에는 지열로 인해 더울 뿐만 아니라 미세한 탄가루가 갱내를 혼탁케 하므로 시원하고 맑은 바람의 유입과 더불어 혼탁한 갱내 공기를 갱 바깥으로 내보내야 한다. 이렇듯 맑은 공기를 받아들이고 탁한 공기를 내보내는 데 사용하는 기계가 선풍기와 후앙(환풍기)이다.
  • 제주 >제주시

    제주의 무더위를 식혀준 철갈이 음식, 보리개역
    개역은 미숫가루의 제주방언으로 보리개역은 볶은 보리를 맷돌에 갈아 미숫가루를 만들어 물에 타 마시거나 밥에 비벼 먹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개역’은 미숫가루의 제주 방언으로 볶은 보리나 콩 따위를 갈거나 빻아서 만든 가루 음식물을 말한다.
  • 경북 >영덕군

    온돌과 마루가 공존하는 영덕 농아당 고택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 위치한 농아당 고택은 임진왜란에 참전한 무관(武官) 박홍장(朴弘長)의 집이다. 1570년(선조 3)에 건립되었다고 전하며, 1720년(숙종 46)에 일부 건물이 소실되어 현재는 안채만이 남아 있다. 무관 박홍장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후 서애 유성룡의 추천으로 왜란을 수습하는 책무를 맡고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되었던 인물이다. 안채는 정면 세칸 반, 측면 두 칸의 겹집에 팔작지붕을 얹었고, 북부지역의 온돌형과 남부지역의 마루형이 혼합되어 있다.

우리 옷의 전통 모시옷

예부터 여름철 최고의 옷으로 주목받은 모시옷. 모시는 삼국시대 때부터 삼베와 더불어 옷감의 재료로 쓰였는데요. 모시로 만든 옷은 가볍고 통풍이 잘 되어 땀도 빠르게 말라 여름에는 너도나도 입었답니다. 특히 한산모시는 고급 모시로,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의 특산품이었습니다. 비단과도 같은 광택과 삼베보다 좋은 내구성을 갖춘 옷감인 모시! 이 좋은 재료로 만든 모시옷은 장점이 많은 만큼 만들어지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모시의 껍질을 벗겨 물에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하고, 그 이후에는 베틀로 짤 수 있도록 한올 한올 실로 만들어야 했는데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모시옷, 모시옷을 만들기 위해 베틀을 짜는 것은 필수며 현재까지도 전해져오는 한산모시짜기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직물 모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산모시 전시관에 방문하여 모시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들어보고 미니 베틀, 모시옷 입기 체험도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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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 전국

    상류층 부녀들이 입던 속치마, 무지기치마
    무지기치마는 조선시대 상류층 부녀자들이 입었던 속치마이다. 명절이나 잔치 때에 무지기치마를 입으면 겉치마가 자연스럽게 넓게 펴져 치마가 풍성하게 보였다. 무지기치마는 서로 길이가 다른 치마를 여러 겹 한 허리에 달았으며 이때 만들어지는 층의 수에 따라 3합·5합·7합 등의 종류로 나뉘었다. 각 층의 치마는 모시 12폭을 이어 만들었고 치마 밑단 끝부분만 염색하였다. 그 색감과 모습이 마치 무지개와 같아 보였으므로 이를 토대로 치마의 명칭을 무지개라 하였다가 후에 무지기로 변화하였다. 무지기치마는 그 색감과 형태가 현대의 아름다움과 흡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 충남 >서천군

    모시 생산의 전통을 잃지 않기 위한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세모시로 유명한 한산의 모시 생산 과정을 유희화한 놀이다. 모시는 한산의 중요한 소득원으로써, 이 지역의 여성들은 모시 만드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지금은 다양한 직물의 보급과 기계화로 쇠퇴했지만, 모시 생산의 전통을 잃지 않고 놀이의 형태로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충남 >서천군

    우리나라 모시 유통의 본거지 한산장
    한산장은 모시로 유명한 서천군 한산면소재지에서 열리는 정기시장이다. 한산모시는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서 유명해졌다. 한산모시를 근간으로 한 유통망 때문에 한산면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한산장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장’이라고도 불렀다. 부녀자들이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파는 작은 시장이라는 의미다. 한산장에는 3대째 이어오는 대장간과 40여 년 동안 문을 연 철물점, 함석집 등의 오래된 상점들이 있어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 충남 >서천군

    여름용 전통 직물 한산 모시짜기
    한산모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저마를 이용해 짠 전통 직물이다. 한산모시는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하였다. 모시도 여름 옷감으로 이름이 나면서 오일장에서도 판매하였다. 모시 짜기는 모시실 만들기와 베 짜기로 이루어진다. 196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전국

    치마 안에 입던 여름용 홑바지, 살창고쟁이
    살창고쟁이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치마 안에 입던 속옷으로 여름용 홑바지인 고쟁이 중 하나이다. 살창고쟁이의 형태는 허리말기 아래, 허리둘레를 따라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구멍의 크기는 대략 6~8cm 폭에 15~20cm 길이로 직사각형 구멍을 10개 이상 내고 구멍의 개수는 바지마다 다르다. 살창 부분을 재단한 후 가장자리를 2~3cm 접어 감침질로 가장자리의 삼베 올이 풀리지 않게 정리하고 허리말기를 달았다. 살창고쟁이는 밑이 트인 바지인 개당고(開襠袴)이며 주로 뒤쪽이 트여 있었으며, 간혹 허리말기만 흰색 모시로 만들기도 하였다. 살창고쟁이는 여름에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성과 신부가 갖출 수 있는 예의범절, 그리고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우리 전통 옷이다.
  • 충남 >서천군

    『삼국사기』에 기록된 오래된 여성들의 전통놀이, 길쌈놀이
    전통사회 여성들의 중요한 생업 활동 중에 길쌈이 있다. 삼·누에·목화 등을 이용해 삼베·명주베·모시베·무명베 등의 옷감을 짜내는 노동이다. 길쌈놀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남아 있다. 왕이 여성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한 달 동안 길쌈을 하게 하여, 그 양을 따져 승부를 겨룬 다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 놀이었댜. 이는 추석[가배(嘉俳)]의 유래이기도 하다. 길쌈놀이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한 달 동안 이어져 온 생업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의 노고(勞苦)를 달랜 부분이라 생각된다.
  • 충남 >논산시

    은진미륵의 보은으로 결혼 한 모시장수
    ‘은진미륵’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灌燭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불로는 가장 크며, 특히 토속적인 생김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은진미륵의 보답으로 결혼을 하게 된 서울의 모시장수를 내용으로 하는 설화가 전한다. 모시장수가 한산장에서 모시를 구입해 지게에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가다가 그만 소나기를 만나 모시가 다 젖게 되었다. 모시장수는 비에 젖은 모시를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가 모시를 펴서 은진 미륵에다 입혀 놓았다. 그랬더니 은진미륵이 오랜 시간 헐벗고 있었는데 옷을 입혀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모시장수는 서울로 향하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전국

    베틀 노세 베틀 노세, 옷감을 짜는 길쌈
    길쌈은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삼 ·누에 ·모시 ·목화 등의 섬유 원료로 베 · 명주 · 모시 · 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만들어진 직물은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었고 화폐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일의 고통을 덜고 자신들의 설움을 표현하며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길쌈노래라고 한다.

더위를 날려줄 오싹한 이야기 들어볼래?

무서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여름입니다. 극장가에는 공포 영화들이 개봉하고 괴담이나 귀신 목격 이야기 등이 인터넷상에서 떠도는데요. 여름의 더위를 한방에 없애고 싶은 분들에게 지역N문화에서 귀신 설화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다 듣고 나면 어느새 추위에 덜덜 떨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귀신은 처녀귀신, 물귀신, 객귀 등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몽달귀신은 장가도 들지 못한 채 죽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병들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몽달귀신이 달라붙으면 멍석, 삼태기 같은 것을 사람의 머리에 덮어씌웠다고 합니다.

병을 일으키는 잡귀인 호구신은 천연두를 앓게 만들며 '손님'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손님이 들어오면 마을의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극진히 대접하고 굿을 벌여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다고 합니다.

타살령은 소, 개, 돼지 등 사람들 탓에 억울하게 죽은 동물의 원령입니다. 타살령은 원한이 강해 타살이 낀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져 굿판을 통해 타살령을 위로하여 천도했다고 합니다.

원한으로 인해 사람을 괴롭히는 귀신이라니 생각만 해도 무서운데요. 귀신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찾아온다고 하니 귀신 이야기를 할 때는 소곤소곤 조용히 말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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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여러 형태의 잡귀잡신들
    마을주민들이 마을신으로 모시는 신들 가운데서 빼놓을 수 없는 신이 바로 잡귀 잡신이다. 이들 신은 일반적인 신과 달리 일정한 형식을 갖춰 모셔지는 게 아니라 그 신의 부차적인 측면에서 위하는 게 특징이다.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으로 볼 때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은 정상적인 조상으로 자리 잡지만, 비정상적인 죽음을 당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조상이 되지 못하고 잡귀잡신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잡귀는 신들의 서열상 최하위에 속한다. 조상과는 달리 잡귀잡신은 저승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정처 없이 저승을 떠돌며,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원혼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위험한 존재로 여겨진다. 잡귀는 대개 보통 때는 사람들에게 천대를 당하고 꺼려지는 대상이지만, 사람들이 그들의 힘을 필요로 할 때에는 잠시 대접을 받는데 그럴 때는 잡신(雜神)으로 받들어진다. 이러한 신들은 무척 다양하다. 잡귀는 일정한 성격을 독특하게 지니지 않은 온갖 잡스러운 귀신 일체를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다. 잡귀 속에는 객귀와 영산, 상문 등의 귀류(鬼類) 일체를 포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귀류와 하등신(下等神)들을 싸잡아서 잡귀잡신이라 부르는 것이다.
  • 울산 >남구

    춤추고 노래하며 역신을 물리친 처용
    헌강왕이 냇가에서 쉬다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한 것을 보고 근처에 절을 세우라 명하니 구름과 안개가 걷히었다. 동해 용왕이 조화를 부린 것이었는데 왕의 명을 듣고 기뻐서 일곱 아들을 데리고 나와 왕에게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 중의 한 아들인 처용은 왕을 따라가서 보필하였는데 왕은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삼게 하였다. 처용의 아내를 사모한 역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여 밤에 몰래 동침하였다. 이를 본 처용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자 역신은 사죄하며 처용의 모습이 그려진 그림만 보아도 그곳에 들어서지 않을 것이라며 떠났다. 이후로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려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치고 좋은 일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한다.
  • 전국

    귀신아 물렀거라! 동짓날에 먹는 팥죽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어 거른 물에 쌀을 넣고 쑨 죽이다. 주로 겨울철 동지(冬至)에 귀신을 쫒는다는 의미로 먹는 전통음식이다.
  • 서울 >광진구

    권력도 잡고 귀신도 막는 문고리
    문고리는 문에 달려 있어서 사람 손이 가장 많이 닿는 것으로 튼튼하게 고정되어 있어야 했다. 문고리의 구조는 고리와 사슬, 배목으로 되어 있다. 문고리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낙랑시대 유적에서도 청동으로 된 문고리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다. 문고리는 손잡이 역할과 잠금 장치 역할을 동시에 한다. 문고리에는 무서운 형상도 있는데, 부정한 것을 쫓아냄으로써 집안의 평안과 건강을 기원했다.
  • 전남 >목포시

    기지를 발휘하여 병귀신을 무찌른 어부
    전라남도 목포에 전해지고 있는 병귀신에 얽힌 설화는 한 어부가 그물을 던져 놋쇠 병을 건져 올렸는데, 그 병에서 마왕이 나와 어부를 죽이려고 하나 이때 어부가 기지를 발휘해 다시 마왕을 병 안에 가두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는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설화로 목포지방에는 이 설화와 관련된 ‘귀신 물리기’라는 풍속도 함께 전해지고 있다.
  • 경기 >광명시

    처녀 귀신의 원한을 풀어주고 부부애를 깨달은 덕쇠
    경기도 광명시에는 도덕산이 있다. 이 산은 옛날 사신들이 이곳을 지나면서 도(道)와 덕(德)에 관하여 논했다고 하여 ‘도덕산’이라 불렸다고 하며, 그에 관한 다른 설화도 전해지고 있다. 이 설화는 덕쇠가 죽은 처녀와 결혼하여 한을 풀어준 후 부부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전북 >정읍시

    귀신 붙어 물을 퍼내지 않은 정읍시 북면의 신방죽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용호동에 신방죽 또는 신지(神池)방죽 등으로 부르는 방죽이 소재해 있다. 신방죽이 소재해 있는 정읍시는 대부분 지역이 해발고도 50m 미만의 구릉지와 평야 지대다. 옛날 신방죽은 물고기가 많기로 소문나 있었다. 그러나 어느 해부턴가 물을 퍼내서 물고기를 잡으려 하면, 물고기가 한 마리도 없었다. 하루는 큰 붕어에 실을 묶어서 방죽 안에 풀어 놓았다. 그리고 방죽의 물을 퍼냈는데, 다른 물고기는 물론 실로 묶어 두었던 붕어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실패에 연결된 실을 당겨보았다. 그랬더니 실이 방죽을 벗어나 앞 산골짜기로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산골짜기에서 실에 묶은 붕어가 땅에 박혀 있었다. 이를 귀신이나 도깨비의 장난이라고 믿게 되었다.
  • 경기 >여주시

    저승사자 친구 덕에 아들 살린 신숭겸
    중국으로 사신을 가던 신숭겸이 저승에서 마마의 직분을 맡은 친구를 만난다. 신숭겸은 저승사자에게 자신의 외아들을 살려달라고 부탁한다. 신숭겸은 저승사자가 자신의 외아들을 잡아가고 있음을 눈치챈다. 신숭겸은 친구 간의 의리를 내세워 저승사자에게 아들을 살릴 방법을 알아낸다. 국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집안은 외아들이 죽었다고 난리가 난다. 신숭겸은 친구가 알려준 대로 찔레나무를 구해다가 아들의 종아리를 때린다. 아들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와 살아났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경남 >거창군

    뱀이 된 처녀의 원한을 풀어준 경상남도 거창의 사동
    경상남도 거창군 마리면 월계리에 ‘학동(學洞)’이라는 마을이 있다. 마을 서쪽 300m되는 산에 흰 바위가 있어 ‘백암(白岩)’이라 하다가, 서당골에서 공부를 하였다고 해서 ‘학동’으로 지명이 바뀐 것이다. 한편 예전에는 ‘배움골’을 ‘배암골’로 말하고, ‘사동(蛇同)’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마을 근처에 ‘그슬린 바위’, ‘귀신바위’ 등으로 부르는 바위가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바위에서 피리 소리가 나고, 피리 소리를 따라간 사람들이 시체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한 젊은이가 피리 소리가 나는 날 바위로 갔다가 뱀이 된 처녀의 원한에 대해서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원한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풀어주었다.
  • 전국

    예로부터 귀신을 쫓는 붉은 곡식 팥
    팥은 밭에서 심어 기르는 덩굴성 한해살이풀이다. 열매는 식용한다. 팥은 요리를 하면 독특한 붉은색을 띄어 제사떡이나 동지 팥죽 같이 나쁜 귀신을 물리치는 상서로운 것으로써 우리의 전래 의식 속에서 함께 지내 온 농작물로 여겨졌다.

오래 기억될 슬픈사랑, 견우와 직녀

칠월칠석은 1년에 한 번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인데요. 부지런했던 직녀가 견우와 결혼한 이후 게을러졌고, 이에 옥황상제가 크게 노하여 견우와 직녀를 떨어져 살게 하면서 이들은 1년에 한 번 밖에 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이와 같은 견우와 직녀의 사연은 까마귀와 까치에게 전해졌고, 칠석마다 서로를 만나게 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다리를 놓아주었습니다. 그 다리는 오작교라 불리었고 오작교를 건넌 견우와 직녀는 그동안 쌓인 그리움을 풀어냈습니다. 그런데 왜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은 칠월칠석일까요? 칠월칠석의 유래를 살펴보면 매년 이 날짜에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두 별의 위치가 매우 가까워지는데, 이 사실을 기반으로 설화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칠석과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로는 칠석우가 있는데요. 칠석에 내리는 비인 칠석우는 견우와 직녀가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고, 그 이튿날 아침에 오는 비는 헤어짐 때문에 흘리는 이별의 눈물이라고 전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1년에 한 번 밖에 보지 못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지는 것 같습니다. 칠석에는 견우와 직녀 설화를 떠올려 보며 사랑하는 이에게 먼저 연락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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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문경시

    아홉 처녀와 결혼해서 아홉 아들을 낳은 문경 구랑리
    옛날 한 마을에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낮잠에 빠졌는데, 꿈에서 노인이 나타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십 년 동안 벙어리로 살면 자손들이 삼정승 육판서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총각은 반대하는 어머니 몰래 묘를 옮기고 벙어리 행세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딱 십 년 째 되는 날이었다. 동네의 아홉 처녀들이 총각을 잡아서 나무에 매달고 놀렸다. 그때 10년이 딱 지났고, 총각이 소리를 쳤다. 이에 처녀들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후 총각은 아홉 처녀를 부인으로 맞아 아홉 아들을 낳았다. 훗날 그 아들들은 모두 삼정승 육판서가 되었다고 한다. 아홉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이 마을을 ‘구랑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강원 >횡성군

    사랑하는 남녀가 죽어서 한 몸이 된 횡성 총각바우
    총각바우는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1리와 병지방2리의 경계에 있는 바위이다. ‘총각바우’에서 바우는 바위를 지역어로 부른 것으로 총각바우를 마을에서는 선바우 또는 각시바우라고도 한다. 총각바우는 전설의 인물 태기왕과 관련되는데, 총각이 너무나 가난하여 세금을 내지 못하고 군에 끌려가서 전장에서 죽었다. 결혼을 약속한 처녀 또한 슬픔에 죽음을 선택하니 그들이 함께 어울려 놀던 바위가 부분적으로 깎아지면서 현재와 같이 총각이 각시를 업고 있는 모양의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 강원 >평창군

    총각이 유부녀를 짝사랑하다 죽은 평창 돌모고개
    돌모고개는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계촌4리에 있는 고개인데, 이 고개 이름은 ‘돌모’라는 총각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돌모 총각은 가난하여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못하고 남의 여인을 짝사랑하다가 죽었다. 이후 신부를 태운 가마가 고개를 지날 때면 신부에게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마을에서는 돌모의 혼이 그런 것이라 여기고 고사를 지낸 후 고개 이름을 돌모 이름을 따서 ‘돌모고개’라 했다. 이렇게 고사를 지내고 돌모 이름을 넣어 ‘돌모고개’라고 불러주자 고개를 넘는 가마 탄 신부에게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 강원 >영월군

    신분 차이로 결혼을 못하고 바위로 변한 영월 각시바위와 신랑바위
    강원도 영월군 한반도면 옹정리 사정마을에서 후탄리 꽃병마을로 건너는 다리교각 우측의 돌너덜 위에 마치 족두리를 쓴 신부처럼 생긴 돌이 있어 마을에서는 ‘처녀바위’라 부른다. 그리고 강 건너 후탄리 꽃병마을에는 ‘신랑바위’가 있는데 이들은 마주 보고 있다. 두 마을의 돌이 마주보고 있는 것이 신기하여 사람들은 두 바위에 이뤄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꾸미고 있으니 이야기는 더욱 애달프다.
  • 전북 >군산시

    문어 때문에 생긴 오해
    섬으로 장가를 가게 된 한 사내가 있었다. 그는 처가에서 나흘 정도 묵게 되었다. 첫날 밤, 잠을 자려고 보니 한 삿갓을 쓴 한 사내가 찾아와 문 앞에 꼭 들러붙어 있었다. 사내는 결혼한 여인이 숨겨둔 남자가 있다고 오해를 하게 된다. 그 이튿날, 집으로 돌아온 사내는 아버지한테 늦은 밤 삿갓을 쓴 사내가 찾아왔다고 하소연한다. 이를 들은 아버지는 곧장 섬으로 가서 이를 확인한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이 되자 한 사내가 찾아와 문 앞에 붙었다가 이내 자리를 뜬다. 이에 사돈 식구들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그 정체는 달 밝은 밤에 활발히 움직이는 문어였다. 이내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오해라 알리고 섬으로 다시 돌아온 사내는 그간 있었던 오해를 풀고, 백년가약을 맺은 여인과 행복하게 살았다.
  • 경기 >가평군

    삼형제와 세 선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 경기도 가평의 던질꾸미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사룡리에는 ‘던질꾸미’라 불렸던 곳이 있었다. 옛날 삼성당 마을에는 효심이 깊은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삼 형제는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자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명산을 찾았지만,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천지신명께 불로초를 구할 수 있도록 기도를 드리니 동남쪽의 산봉우리에 신비로운 기운이 감돈다. 그곳으로 간 형제들은 세 선녀를 만나 불로초를 구한다. 이후 형제들과 선녀들은 서로 간의 정이 깊어져 결혼을 약속하지만, 전쟁이 일어나 군대에 가게 된 형제들은 전쟁에서 전사하고 만다. 선녀들은 하염없이 형제들이 오기만을 기다렸고, 뒤에 이 사실을 알게 된 선녀의 아버지는 화가 나 삼선당 마을로 담뱃대를 던졌다고 한다. 이때 담뱃대가 떨어진 곳을 ‘던질꾸미’라 불렀다고 한다.
  • 전남 >곡성군

    조통장군을 사랑한 아왕공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에서는 서낭당을 ‘조장군사당’이라 부른다. 조장군사당에는 나무로 만든 남녀 신상(神像)이 있다. 이 신상에 얽힌 설화가 있다. 고려시대 신종 때 곡성군 출신의 조통(趙通)이라는 학자였던 장군이 있었다. 당시 신종에게는 아왕공주라 부르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조통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런데 조통은 이미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있었다. 조통은 아왕공주를 피해 국경지역으로 갔지만,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한편, 아왕공주도 병석에 눕게 되었다. 남산에서 병을 치료하고 무속을 공부한 아왕공주는 옥과로 내려와 조통의 묘를 보살피다가 옥과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 충남 >태안군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된 할미할아비바위
    승언 장군과 부인 미도는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장보고의 명령에 따라 전쟁터에 나가게 된 승언은 미도와 이별하고 급히 떠나게 되었다. 미도는 매일 산에 있는 바위에 올라 승언이 돌아오기만을 기도하며 기다렸다. 몇 년이 지나도 승언은 돌아오지 않았다. 미도는 기다리고 기다리다 바위에서 죽고 말았는데 그 바위가 남편을 기다리며 서 있는 형상으로 변하였고 또 옆에 큰 바위 하나가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두 바위를 할미할아비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 충북 >옥천군

    웅인과 계화 공주의 비극적 사랑이 담긴 문바위
    충청북도 옥천군 청상면 한곡리에는 문같이 생긴 문바위가 있다. 옛날 옥황상제의 딸 계화 공주와 재상의 아들인 웅인은 서로 사랑했으나 권력 욕심이 있던 악독한 대신이 자기 아들과 계화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재상과 웅인을 모함하였고,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 살던 웅인은 괴물을 무찌를 결심하고, 옥황상제의 금기를 어긴다. 웅인은 괴물을 죽였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바위가 되고, 웅인을 보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계화 공주 역시 그의 곁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충남 >논산시

    은진미륵의 보은으로 결혼 한 모시장수
    ‘은진미륵’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灌燭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불로는 가장 크며, 특히 토속적인 생김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은진미륵의 보답으로 결혼을 하게 된 서울의 모시장수를 내용으로 하는 설화가 전한다. 모시장수가 한산장에서 모시를 구입해 지게에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가다가 그만 소나기를 만나 모시가 다 젖게 되었다. 모시장수는 비에 젖은 모시를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가 모시를 펴서 은진 미륵에다 입혀 놓았다. 그랬더니 은진미륵이 오랜 시간 헐벗고 있었는데 옷을 입혀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모시장수는 서울로 향하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또 다시 여름 바닷가♬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흐르고, 나의 마음은 괜히 조급하기만 하고, 이 여름의 끝에서 잠시 쉬어갈 곳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지금 여기, 바닷가에 오게 되었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그늘진 바닷가 모래밭에 털썩 앉아 가만히 바다 멍을 해보는데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살랑이며 다가오는 바람, 그리고 탁 트인 바다까지. 화려하진 않아도 자연이 주는 힐링에 괜스레 가슴이 벅차곤 합니다. 바다에 수놓아진 푸른 물결과 잔잔한 파도 소리로 쉼 없이 달려온 우리를 다독여 주는 바다! 멍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도 좋은 바다는 사계절 우리와 함께하지만 여름의 바다가 줄 수 있는 낭만과 힐링은 또 다른 것 같네요. 여름의 마무리는 푸른 윤슬이 아름다운 이곳 바닷가에서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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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주문진 오징어로 유명한 강릉 주문진항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에 있는 주문진항은 1927년에 개항한 항구이다. 약 350여 척의 어선과 화물선이 드나드는 큰 항구로 6·25 전쟁 당시 미 해군과 북한군이 여기에서 해전을 벌였는데 북한의 군수품을 실은 군함과 어뢰정을 격침시킨 곳이기도 하다. 동해북부선상의 역을 만들려 했으나 전쟁으로 인해 터가 소실되어 공사가 중단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해안에서 갓 잡은 오징어 어판장이 있어 오징어잡이 어선이 찾는 주요 항구이다. 오징어잡이 대형어선은 화물선이 드나드는 주문진항이나 속초항으로만 입항할 수 있어 이들 항구가 주요 오징어 위판장이었다. 주문진 오징어의 명성은 위판장과 연관 깊다. 오징어 이외에 명태, 꽁치, 고등어, 게 등 많은 어물을 잡은 수백 척의 어선이 드나드는 주요 항구이다.
  • 전남 >신안군

    신안 임자도, 아름다운 모래의 섬
    임자도는 오랜 간척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질토의 섬이다. 임자대교가 완성되어 다리를 통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들깨가 많이 나서 임자도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대파가 대표 특산물이며, 젓새우와 민어도 유명하다.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변을 갖고 있는 임자도 대표 관광지이다. 어머리해안의 용난굴 설화가 있으며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자전거길과 걷기코스가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토기와 농산물을 육지로 운송하던 제주 사계포
    사계항은 제주특별자치도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어항으로, 깨끗한 모래와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져 명사벽계(明沙壁溪)라 하여 사계리라 부른다. 사계리의 작은 포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인근 도요지에서 생산한 토기와 농산물을 테우에 실어 육지로 운반하던 포구였다. 사계포구 앞쪽 마을은 토기동 또한 토끼동이라 부르며, 토기와 연관된 사계포구도 토기포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1702년(숙종 28)에 그린 『탐라순력도 』에는 흑로포(黑路浦)라 묘사되어 있으며, 흑로포는 ‘검은질개’라는 명칭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인근에는 영주 십경(瀛州十景) 중 하나인 산방굴사(山房窟寺)와 용머리 해안과 낚시터, 바다 건너 형제섬 등이 있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북 >울진군

    울진 죽변항, 대게로 유명한 울진 북단의 대표 포구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리에 있는 죽변항은 대나무가 많다 하여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는 뜻으로 ‘죽빈’이라 불렀다. 죽변항구는 1938년에 축항시설을 만들었다. 풍부한 수산자원 덕에 일찍이 시설을 완비한 항구로, 대게와 오징어, 고등어·꽁치·대게·도루묵·가자미 등도 많이 잡히고, 미역의 생산량도 많다. 죽변항에 있는 높이 15.6m 울진 등대도 유명하지만 더 특별한 것은 대게의 생산지라는 점이다. 울진과 삼척 경계의 왕돌짬에서 잡은 울진대게는 영덕대게와 달리 크고, 잘 생기고, 단단해 ‘박달게’라 부른다. 항구 주변에는 10㎞ 정도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 충남 >보령시

    보령 오천항, 잠수부가 키조개를 캐는 유일한 항구
    오천항은 백제와 신라시대에 회이포라는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어지자 군선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수영을 설치했다.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있어 피항시설이 없어도 안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방파제 없이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령시의 중심 장시인 광천장이 위치해 있다. 광천장을 오가는 배들이 물때가 맞지 않으면 이 곳에 배를 두고, 걸어가야 했던 마지막 기항지이기도 했다.
  • 전남 >신안군

    자산어보와 홍어로 유명한 신안 흑산도
    검은 섬, 흑산도는 최서남단에 있는 섬이지만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어선들 뿐 아니라 흑산도의 자연환경을 보고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도 온다. 해산물은 풍부하고 그 맛도 좋은데 그 중 제일 유명한 어종은 홍어이다. 예로부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흑산도는 마을마다 당집이 있고, 제를 지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조선시대 유배지로도 유명한 이 섬은 정약용이 자산어보를 쓴 곳이기도 하다.
  • 전남 >여수시

    여수 거문도, 다도해 최남단의 섬
    거문도는 천혜의 자연 항만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탐을 냈던 섬이다. 그래서 아픈 역사도 함께 갖고 있는 섬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도해 남단의 동백이 아름답게 피고 해풍 쑥이 많이 나는 섬으로 더 유명하다. 뱃길로 가야 해서 하늘이 도와야 들어갈 수 있지만 곳곳에 이야기들이 있고 아직은 번화한 관광지 같지 않은 거문도는 조용한 트래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섬이다. 낚시를 하기에도 좋은 섬이다.
  • 경기 >화성시

    어촌마을에서 즐기는 바다 체험, 화성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소속이지만 충청남도 당진 장고항에 더 가까운 서해의 작은 섬이다. 국화도에는 두 개의 부속 섬이 있는데 이들 섬은 물때에 따라 국화도와 연결된다. 작은 섬이라 많은 주민들이 살지 않고 분교로 있던 학교도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 선착장 주변과 완만한 경사의 국화도 해수욕장 주변에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접근성이 좋고 조용한 섬으로 간단한 트래킹을 즐기러 오거나 낚시를 하러 오는 섬이다.
  • 경북 >울릉군

    동해안 끝자락의 화산섬, 울릉도
    경상북도에 속한 울릉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큰 섬이다. 독도와 함께 동해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워낙 어족 자원이 풍부한 부분도 배제할 수 없다. 정확히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기 어려우나 중국 측 문헌이나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그 역사만큼은 오래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과 어업, 그리고 축산업과 임업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비교적 다양한 방법으로 울릉도를 찾을 수 있는데 한 해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고 있다.

나만 알고 싶은 여름철 여행지 (부안편)

푹푹 찌는 더위의 8월입니다. 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요즘 재충전을 위한 여행을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지역N문화가 꽁꽁 숨겨뒀던 나만 알고 싶은 여름철 여행지를 소개해드릴게요~

바로 여러분의 여름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전라북도 부안입니다!

부안은 수만 년간 쌓인 지층이 매력적인 채석강과 천년고찰 내소사로 유명한 곳이지요. 소나무 숲과 바다가 어우러지는 변산 해수욕장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세 곳만 해도 특별한데 부안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줄 마지막 한 곳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일몰로 유명한 솔섬인데요. 새빨간 태양이 수평선을 향하면 솔섬의 바위와 소나무가 멋진 실루엣이 되어 눈을 황홀하게 해준답니다. 그뿐만이 아니죠! 솔섬에서 은하수와 별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지금 8월부터 보기 좋을 시기라고 하니 그 로맨틱한 광경에 빠져보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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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부안군

    마실가듯 놀러가는 거리형 축제 '부안마실축제'
    2019년부터 기존의 부안오복마실축제에서 부안마실축제로 축제명이 변경되었다. 부안마실축제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부안을 방문하여 휴식을 취하고 희망을 찾고 행복을 얻어가는 축제이다. 부안의 역사와 자원을 읍면별로 소개하는 마실부안마당, 일부 마을을 축제장으로 축소하여 농어촌체험마을을 직접 체험하는 체험프로그램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 전북 >부안군

    서해안의 절경을 자랑하는 부안의 변산
    변산(邊山)은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변산은 서해바다 쪽으로 삐져나온 반도를 형성하고 있어서 변산반도(邊山半島)로 유명하다. 1988년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관리하고 있다. 제일 높은 봉우리는 의상봉(508m)으로 신선봉(486m), 쌍선봉(459m) 등의 봉우리가 산을 형성하고 있다. 변산의 특징은 채석강 같은 바다의 멋스러움을 함께 보여주고 있어 바다와 산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변산과 내변산으로 구분해서 부르는데 외변산이 바다와 접한 부분이다. 내변산에는 직소폭포, 울금바위, 우금산성, 개암사 등이 있어 경관을 자랑한다.
  • 전북 >부안군

    백제 최후의 의병 사적지 우금산성
    우금산성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하고 복신 장군이 왕자 풍을 맞아 의병을 일으켰던 곳이다. 백제 최후의 항전지역이면서 백제 패배의 마지막 장소이다. 이 때문에 전라북도에서는 보존가치가 있는 역사자원이라 하여 1974년 9월 전라북도 기념물 제20호로 지정하였다. 『문헌비고』에는 우금산성(禹金山城)이 우(禹)와 진(陳)이라는 사람이 쌓은 산성이라고 한다.
  • 전북 >부안군

    전원시에서 현실비판시로, 신석정 시인
    신석정 시인은 전북 부안에서 출생했고, 1946년 고향에 부안중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서정적인 필명과 달리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4월혁명과 교원노조를 지지했으며, 작품으로 인해 검거되어 취조 받기도 여러번이었다. 신석정의 초기 시는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에 기반하여 탈속적이고 자연지향적인 면이 두드러져 전원시인, 목가시인으로 불렸으나 후기에는 역사의식, 현실비판의식을 드러낸 시를 쓰며 정권의 탄압을 받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가 있다. 전주시 덕진공원에는 신석정 시비와 동상이, 부안군에는 석정문학관이 있다.
  • 전북 >부안군

    두 마리의 새가 내려앉은 돌기둥 부안 쌍조석간
    쌍조석간은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궁안리 대벌마을에 있다. 쌍조석간은 대벌마을 입구에 서 있는 돌기둥 형태의 서낭대로 2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이다. 쌍조석간의 기둥 중간에 조선 영조 25년(1749) 정월 9일 한밤중에 세웠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대벌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에 당산제를 지냈으나, 1978년 이후 어업이 쇠퇴하면서 당산제의 전승이 중단되었다. 쌍조석간 당산제에서는 베다리기와 머리얹기를 하는데, 이는 당산제에서 ‘당산 옷입히기’와 유사한 행위이다.
  • 전북 >부안군

    거북마을에 남겨진 선사시대의 유산, 부안 구암리 지석묘군
    한반도에는 전 세계에 있는 지석묘의 40%가 넘는 40,000여 기가 존재한다. 이 중 20,000여 기가 호남지역에 위치해 있는데, 호남지역의 지석묘는 바둑판식(남방식) 지석묘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바둑판식 지석묘는 지하에 무덤방을 만들고 덮개돌과 무덤방 사이에 고임돌을 받치는 형태이다. 부안 구암리는 이러한 바둑판식 지석묘가 10기 이상 모여있으며 지석묘의 모습이 거북이 같다하여 마을 이름도 구암리(龜巖里), 거북바위마을이라 불린다. 부안 구암리의 지석묘는 덮개돌의 크기가 크고 부드러운 곡선형이며 8개의 고임돌이 받치고 있는 등 다른 지역의 지석묘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 전북 >부안군

    한일합병에 통분하여 섬으로 간 간재 선생 유지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23호는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에 있다. 계화도(界火島)라는 섬이다. 그 주인공은 성리학을 공부하던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년)이다. 그는 1882년(고종 19)에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1910년 한일합병이 되자 통분해 하다가 계화도에 들어가서 학문을 연구하며 후학을 양성했다. 주변에서는 의병에 나서지 않는 그를 지탄하기도 했다. 그가 죽은 후 제자들이 계양사(繼陽祠)를 지어 향사하고 있다. 1974년 9월에 그의 유지를 기념물로 지정했다.
  • 전북 >부안군

    한반도 최서단의 섬, 부안 왕등도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에 속한 왕등도는 위도에서 뱃길로 한 시간가량 가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왕과 관련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 곳은 중국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의 본토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다. 왕등도는 고려시대의 문인인 이규보를 비롯해 개화기 무렵의 간재 전우 선생의 유배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왕등도 주변은 어황이 좋아 전국 각지에서 낚시꾼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예전처럼 사람이 많이 거주해 있지 않지만 주민들은 풍족한 수산자원 덕분에 비교적 여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 전북 >부안군

    번화한 항구에서 갯벌생태공원이 된 부안의 줄포
    줄포는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포구이다. 이 곳은 1960~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곰소만과 칠산어장에서 조업하는 어민들과 상인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포구였으나 어업환경이 바뀌면서 서서히 기능이 상실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일본인이 머물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민들을 상대로 한 다양한 상업시설이 거리에 빼곡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비록 포구로서의 기능이 상실되긴 했지만 오늘날 이곳은 생태공원으로 새롭게 조성한 덕분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전북 >부안군

    젓갈이 유명한 부안 곰소항
    곰소항은 전라북도 부안군에 위치한 곳으로 오늘날에는 젓갈로 유명한 곳이다. 본래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무렵에 오면서 육지로 바뀌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주변 지역에서 생산되는 쌀 등을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일본이 이 곳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곰소항은 1970-80년대에 오면서 항구로서 더욱 발전하게 된다. 곰소항 주변에는 곰소염전을 비롯해 내소사와 모항 등이 있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