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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랜선여행] 봄꽃 축제 같이 갈래요?

매년 봄, 전국에서는 봄을 맞이하는 다양한 꽃 축제가 개최됩니다. 코로나19로 직접 갈 수 없는 아쉬움은 잠시 뒤로하고, 온라인 봄꽃 축제 나들이 함께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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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부안군

    부안군 위도띠뱃놀이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서 행해지는 위도띠뱃놀이는 정월 초사흘에 행해진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82-3호로 지정된 제의로 서해안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 제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집 안에는 원당 마누라와 본당 마누라를 비롯해 여러 신이 모셔져 있는데 제의의 핵심이 되는 신은 이 두 신위이다. 제물은 흑돼지를 비롯해 과일과 여러 종류의 생선이다. 위도띠뱃놀이의 순서는 원당제-띠배제작-주산 돌기-용왕굿-띠배 띄우기-대동 마당(뒤풀이)이다. 원당제는 성주굿을 시작으로 산신 굿-손님굿-지신 굿-서낭굿-깃굿-문지기 굿으로 진행된다. 당일에 만들어 놓은 띠배 앞에서 무녀를 중심으로 한 용왕굿이 진행된다. 용왕굿은 바다의 용왕님을 위한 의식이다. 용왕굿에 이어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한 용왕밥 주기 행사가 펼쳐진다. 이 과정이 끝나면 제작한 띠배를 바다에 띄운다. 띠배를 끌고 갔던 모선이 돌아오면 마을 해변에서 뒤풀이가 행해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민이 모여 놀이판을 벌인다. 
  • 울산 >중구

    울산 태화강의 6천만송이 봄꽃과 함께하는 생태축제 '태화강 봄꽃대향연'
    울산광역시에 있는 태화강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수질이 6등급까지 떨어져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울산광역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약 10년 전부터 봄에는 황어, 가을에는 연어가 돌아오는 생명의 강이 되었다. 2019년 7월에는 순천만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 태화강봄꽃대향연은 울산 태화강의 6천만송이 봄꽃과 십리대숲이 함께하는 생태문화예술축제이다.
  • 경남 >거창군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전적지 거열성
    거열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로 거창읍의 서북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해발 572m의 건흥산에 있는 산성이다. 거열성이 축성된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주변의 다른 성들과 함께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열성은 건흥산의 정상부 조금 아래쪽에 정상부를 둘러싸고 축성된 테뫼식 산성으로 성의 길이는 1115m이다.
  • 서울 >강동구

    베트남 참전자들이 만든 에너지생태마을, 십자성마을
    베트남 종전 후 부상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이 파월전상자 자립회를 만들고 기금을 마련하여 1974년 천호동에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후 십자성마을은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에 동참하여 2012년부터 에너지 자립마을로 변신했다. 주택 태양광을 설치, 환경운동과 에너지절감을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 서울 >성동구

    봄이 가장 먼저 오는 응봉산개나리축제
    응봉산개나리축제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응봉동에 있는 응봉산에서 열리는 개나리를 주제로 한 지역축제이다. 응봉산은 매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1980년대 도시 개발로 산이 깍여 본래의 모양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개발로 인해 산자락 모래흙이 흘러내리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나리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약 20만 그루의 개나리가 심어져 응봉산은 개나리 동산이 되었다. 응봉산개나리축제에선 어린이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 대회가 열리고 음악회, 먹거리 장터, 페이스 페인팅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제주 >제주시

    제주 자생종 왕벚꽃의 향연, 제주왕벚꽃축제
    제주왕벚꽃축제는 199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시민복지타운 일대에서 개최되는 왕벚꽃 축제이다. 제주 왕벚꽃은 한 때 일본의 국화로 오인되었으나 해외 박사들과 국내 학자들의 연구 끝에 국내 자생종이며 일본과는 상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제주왕벚꽃축제는 제주 자생종 왕벚나무가 제주 고유 나무임을 알리고 벚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개최된다.
  •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근처의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창간된 최초의 순우리말 잡지이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성벽 외곽에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잡지를 비롯해 발행인 한창기 선생이 모은 6500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전시실들이 있고, 야외전시실에는 거문고 명인 김무규 선생의 고택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 전남 >광양시

    청매실농원에서 시작된 광양매화축제
    광양매화축제는 1997년부터 시작된 매화꽃 축제이다. 매년 3월에 개최되는 광양매화축제의 발단은 1995년 청매실 농원이 주관한 청매실 농원 매화축제였다. 50여년 전 광양 다압면으로 시집온 홍쌍리 여사가 황무지 야산에 매화나무를 심고 매실농사를 지어 매화마을을 만들었다. 광양매화축제는 최근 대한민국 빅데이터 축제대상을 받았는데, 원거리에서 오는 방문객의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광양매화축제 기간에 이 지역을 다녀간 관광객이 134만명으로 집계되었다.
  • 서울 >영등포구

    우리나라의 대표적 벚꽃축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서로에서 2005년부터 시작된 봄꽃축제이다. 여의도 벚꽃은 창경궁에 일본인들이 심었던 것을 1980년대에 옮겨와 심은 것이다. 이런 일제 식민지화의 기억 때문에 '벚꽃축제'였던 명칭은 2007년 '봄꽃축제'로 개칭되었다.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진해 군항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봄꽃축제이다.
  • 서울 >동대문구

    회기 동네 산책로가 있는 배봉산
    배봉산은 동대문구 휘경2동에 있는 해발고도 106.03m의 나지막한 산이다. 배봉산을 둘러싸고 삼육의료원, 휘경여자고등학교, 배봉초등학교 등이 있다. 배봉산 내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유아숲체험장, 근린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어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한국의 서원

2019년 5월,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의 서원 9곳'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였습니다. 성리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9개 서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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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강원 >삼척시

    “시원한 곰치국 재료? 푹 삭은 김치 한 국자”
    꼼치는 동해안을 비롯한 모든 해안에서 나는 어종이다. 동해안의 꼼치는 다른 지역과 모양이 조금 다르다. 서·남해안의 것은 메기와 비슷하여 물메기, 미거지라고 부른다. 동해안에서는 꼼치를 곰치, 물곰이라고 부른다. 곰치는 여름 내내 1,000m의 깊은 바다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심이 얕은 바위틈으로 올라온다. 겨울 곰치는 흐물거리던 살도 단단해져 제 맛이 난다.
  •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 경북 >안동시

    이황의 도산서당을 모체로 한 도산서원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이듬해인 1546년 이황은 병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한다. 이때부터 호를 물러날 퇴, 시냇물 계, 퇴계(退溪)라 하고 고향에서 살았다. 토계 인근에 정자와 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도덕과 예를 실천하고 가르치며 군자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도산서원은 이런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던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서원이었다.
  • 대구 >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 경남 >함양군

    함양의 유림이 뜻을 모아 세운 남계서원
    함양은 일두 정여창의 고향으로, 남계서원은 고을 사림들이 정여창을 흠모하여 세운 서원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자 글과 예를 숭상하는 풍속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들은 남계서원을 정몽주를 배향하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안향을 기리는 소수서원과 견줄 만큼 정여창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독락당에 세워진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안강은 이언적의 고향이다. 이언적은 을사사화로 유배 간 강계에서 죽음을 맞았고, 19년이 지난 후에 마을의 사림들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 그가 거처하던 독락당 근처에 덕행과 학업을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16세기 말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과 소장 유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 경북 >영주시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골에 자리한 소수서원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에 주세붕이 붙인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백운동(白雲洞)은 ‘흰 구름에 쌓인 골짜기’라는 뜻으로 서원의 입지와 관련이 깊다. 서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의 산자락 위로 흰 구름이 가득하고 옆으로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죽계천이 연못을 이루다 밑으로 흘러갔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죽계별곡」은 이곳 죽계천을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구름에 감싸인 소백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죽계천의 경치를 보면서 주세붕은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떠올렸고 이곳에 서원을 세워야겠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3.1절,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다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천안의 독립운동 터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타골공원 '팔각정'. 철원 지역의 3.1운동에 앞장선 철원 제일 교회. 1919년 학생들의 3.1만세운동 적극적인 참여로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던 전주 신흥학교. 모두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반면, 구 나주 경찰서와 같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을 고문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3.1운절을 맞아 일제탄압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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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목포시

    댕기머리 소녀들의 야무진 만세 함성,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목포 정명여학교는 1903년 미 남장로교의 선교에 일환으로 세워진 학교다.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명여학교는 1919년과 1921년 만세 시위를 벌인 학교로 유명하다. 댕기머리 소녀들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명여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 당했다가 1947년에야 재개교했다. 선교사 사택은 1905~1910년 사이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목포 산지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2채다. 현재 정명여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쓰이는 사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을 지킨 진묘수, 무령왕릉 석수
    1971년 7월 발굴된 무령왕릉은 무덤의 주인이 명확한 백제왕실의 무덤으로 6세기 전반에 축조되었다. 무령왕릉의 널길에서는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지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진묘수인 무령왕릉 석수가 발견되었다. 무덤에 진묘수를 매장하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무령왕릉의 석수는 그 형태와 기능이 중국 남조의 것과 유사하다. 무령왕릉 석수는 악귀를 쫓아내고 사자(死者)를 수호하며, 무령왕과 왕비의 영혼을 안내하는 역할로서 제작되었다.
  •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조선 시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다.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 본관과 강당은 미국의 리차드슨 부인이 거금을 기부해 건립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아쉽게도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다행히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유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가장 오래된 종가 음식 조리서, 경북 안동 수운잡방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는 수운잡방이라는 음식 조리서가 소장되어 있다. 김유와 김령이 지은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술, 국수, 김치, 과자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일반인이 저술한 최초의 음식 관련 서적으로 조선 전기 경상북도 안동시의 식생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운잡방에 관한 관심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수운잡방연구원에 방문하면 음식을 조리하고 맛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북 >영천시

    형은 나발 아우는 피리- 우애 깊은, 영천 옥간정
    영천 옥간정은 학식이 높고 우애가 돈독한 정만양과 정규양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716년 조성한 정자이다. 중국의 무이구곡과 같이 아름다운 횡계구곡 가운데 바로 4곡에 해당되는 곳에 옥간정이 지어졌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정자 이름이 ‘옥같이 빛나는 시냇가 정자’라는 의미이다. 옥간정은 이층의 누마루와 단층의 건물이 하나로 붙어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 경남 >고성군

    경남 고성의 첫 3⋅1 독립만세운동터 100주년 기념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물결처럼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3월 20일, 고성에서도 맨 처음으로 구만면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이웃 배둔 장터까지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고성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00주년을 맞아 구만면 국내다리 터에 기념탑을 세우고 “비를 세우며”란 시를 새겨 놓았다.

조선과 근대 여성들의 이야기

매년 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 입니다. 20세기 초반, 투표권, 여성노동자들의 권리 신장 등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나혜석 등이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여성의 사회참여가 어려웠던 시기에도 꿋꿋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업적을 이뤘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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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이천시

    근대가 끊었던 전통을 다시 잇다 - 이천 수광리 오름가마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도자기 가마는 원래 1949년 무렵 토정 홍재표가 축조한 가마다. 토정은 칠기(흑요) 장인으로서 칠기 가마로 만들었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 한국 도자기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현하려 했던 서울의 가마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해강 유근형, 도암 지순탁 등 고려청자, 조선백자를 현대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던 도예가들이 수광리로 와서 토정의 가마를 함께 쓰기 시작했다. 수광리 가마는 1962년 광호 조소수가 인수해 개축했다. 현재 수광리 가마는 당시 개축한 모습이다. 장작을 때워 도자기를 굽는 경사진 가마로서 12칸(27m)이며, 뒤 칸으로 갈수록 넓이와 높이가 높아지는 계단식이다. 수광리 가마는 이천을 현대 한국 도자기의 맥을 잇는 고장이 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해강은 고려청자를, 도암은 조선백자를, 토정은 고려 때 유약인 진사를 현대적으로 되살렸다. 1960년대부터 이천에서 도예가들이 공방을 열기 시작해, 현재는 도예 공방만 500곳에 이른다. 이천 여주 광주에서는 2년 간격으로 경기 세계 도자 비엔날레가 개최된다. 수광리 오름가마는 아직도 1년에 1~2차례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역할을 한다.
  • 전국

    6·25전쟁시 여성의 참전활동
    국가의 위기 앞에 남녀의 구별은 의미가 없다. 여성은 국방의 의무가 없지만, 나라의 위급함 앞에서는 남성 못지않게 구국활동에 앞장섰다.  
  • 제주 >제주시

    제주도의 거상 김만덕
    김만덕은 조선 후기 기생 출신으로 제주도를 대표할 수 있는 거상이 되었으며, 1795년 대기근으로 굶주린 제주도민을 위해 천금을 풀어 백성들을 기아에 구한 인물이다. 
  • 전남 >순천시

    여성영화의 길을 닦은 큰언니 홍은원
    홍은원는 한국 영화사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이자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다. 1947년 스크립터를 시작으로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단계를 거쳐 1962년 『여판사》의 감독으로 데뷔해 『홀어머니》와『오해가 남긴 것》까지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던 1960년대 한국 여성의 삶과 과도기적 갈등, 여성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세 편의 영화를 남겼다.
  • 제주 >서귀포시

    비운의 삶을 살았던 천재화가, 이중섭
    이중섭은 한국의 서양화가다. 소를 비롯한 어린이, 물고기, 게달, 달, 새 등 우리나라의 향토적인 소재들을 즐겨 다루며 해학과 천진무구한 소년의 정감이 녹아 있는 그림들을 그렸다. 비운의 삶을 살았던 이중섭에게 제주도 서귀포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던 낙원과 같은 곳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경기 >수원시

    일제강점기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사회운동가, 나혜석
    나혜석은 일제강점기 신여성으로 민족자결권을 향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조선에 서양화를 도입한 최초의 전업 화가. 장편 소설과 시 작품으로 문단에서도 크게 활약한 전방위적 작가이다. 시대를 앞선 각성으로 봉건주의와 남존여비의 악습 타파를 주장하며 여성운동의 선봉에서 당시 사회로부터 지탄과 경탄을 함께 감당했던 한국 페미니스트의 원조이기도 하다.
  • 서울 >중구

    여성에게 열린 배움의 빛, 서울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은 1915년 지어졌다. 이화학당의 교세가 커지고 학생이 늘면서 교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심슨기념관은 붉은색 벽돌 외벽에 규칙적인 아치형 창문들, 창문 위에 박은 화강석 키 스톤이 깔끔하고 산뜻한 분위기를 준다. 심슨기념관은 조선의 여성들에게 최초로 배움의 빛을 열어주었던 이화학당의 사명을 100년 넘게 이어 온 한국 여성 교육의 산실 가운데 하나다.
  • 강원 >춘천시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남긴 노래들, 윤희순 의병 가사집
    『윤희순 의병 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지은 노래를 모아 만든 가사집이다.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윤희순은 당시 사대부 아녀자의 신분으로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중들에게도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구국활동에 전념한 인물이다. 특히, 일제에 저항하거나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돕자는 내용의 가사를 지어 사람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일조하였다.
  • 강원 >원주시

    여자도 사람임을 철학적으로 증명하다, 윤지당
    조선 시대 가난한 양반 가문 출신으로 당대 성리학의 계보 중 최고 사상가들의 글을 탐독하면서 이들의 편협하고 타성적인 차별의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한편 여성의 눈으로 시대를 교정하며 성리학의 사유전통을 따라 스스로의 인간적 완성을 실현해 보인 여성 철학자.
  • 제주 >제주시

    대기근에 맞서 제주도민을 구한 의녀(義女) 김만덕 묘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선입동에 위치한 모충사에는 김만덕(金萬德)의 묘비가 건립되어 있다. 김만덕은 1795년 제주도에 대기근과 전염병이 돌았을 당시 사재를 털어 도민을 구휼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다. 당시 기녀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지역민을 돌보기 위해 앞장선 행적은 널리 칭송 받았다. 이에 정조로부터 의녀반수(醫女班首)라는 직책을 하사 받기에 이르렀다. 김만덕 묘비는 그녀의 사후 1812년에 지역민이 협심하여 세운 것이다.

방구석 국립공원 나들이

3월 3일은 국립공원공단에서 지정한 '국립공원의 날'입니다.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을 비롯해 총 22개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자연생태계와 문화경관을 지키며, 숨구멍이 되어주는 국립공원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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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영암군

    수석 같은 월출산을 사계절 즐기는, 영암 부춘정
    영암 부춘정(富春亭)은 호남의 명산 월출산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부춘정은 야트막한 부춘봉 자락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군자의 상징인 연꽃이 심겨진 연못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는 덕진천이 흐른다. 부춘정은 강한종이 낙향하여 1618년에 지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뒤쪽 4칸에 방을 만들고, 앞쪽 4칸에 마루를 놓았다. 10개의 기둥에 주련이 달렸고, ‘부춘정’ 편액과 기문·시판이 마루에 걸려있다.
  • 경남 >산청군

    지리산 천왕봉에 모셔진 지리산 성모상
    지리산 성모상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여신 석상이다. 중산리는 지리산 중턱에 위치한 마을로 지리산 성모상은 지리산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리산 성모상을 언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972년에 분실되었던 것을 1987년에 천왕사 주지 혜범이 꿈의 계시를 받아 찾아내어 천왕사에 봉안하였다. 지리산 성모상은 마고여신설과 왕건의 어머니설이 전해지고 있다. 지리산 성모상은 여러번 분실되었다가 현재의 자리에 복원되었다.
  • 강원 >태백시

    멋진 눈조각을 감상하며 썰매를 타요! '태백산눈축제'
    태백산눈축제는 매년 1월 말에서 약 9일간 태백산국립공원과 태백시 일원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축제이다. 태백산눈축제는 규모가 큰 눈조각을 만날 수 있고, 얼음썰매, 얼음미끄럼틀, 오궁썰매타기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이글루 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어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축제이다. 태백산 근처에는 황지, 태백석탄박물관, 용연굴(龍淵窟)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 전북 >남원시

    김기수의 현몽으로 찾아낸 전북 남원 주천석장승
    주천석장승은 전라북도 남원군 주천면 호기리 신기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주천석장승을 ‘미륵’이라 부른다. 석장승은 높이 270cm, 둘레 221cm, 폭 35cm의 크기로, 머리에는 벙거지 혹은 패랭이 같은 모자를 썼으며, 목은 없이 얼굴이 가슴에 붙어 있는 형상이다. 조선 후기에 살았던 김기수가 죽었다 3일 만에 살아나 캐낸 것이 주천석장승이라고 한다. 지금도 김기수의 자손들은 매년 칠월칠석이 되면 주천석장승에 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 전남 >순천시

    송천 달집태우기
    송천 달집태우기는 순천시 월등면 송천리 송산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나무로 만든 달집을 태우며 풍년을 기원하는 신앙의례이자 민속놀이다. 송천 달집태우기는 마을제사인 당산제와 줄다리기, 그리고 농악이 함께 어우러져 정월대보름의 종합 세시풍속으로 전승되고 있다. 1994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되어 보존, 계승되고 있다.
  • 충북 >단양군

    소백한 철쭉 피는 계절엔 ‘단양소백산 철쭉제’
    충청북도 단양군에서는 매년 5월에 충북과 경북의 경계에 거대한 산맥을 이룬 소백산에서 꽃망울을 터트리는 철쭉의 아름다움을 소재로 축제를 연다. 소백산을 찾는 산악인과 관광객이 참여하는 이 축제는 소백산 산신제를 시작으로 개막하여, 가족과 함께하는 소백산행, 향기 담은 꽃차 시음, 농산물 판매, 단양 문인들과 미술인들의 전시회, 실버가요제, 강변문화제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즐거움을 준다.
  • 제주 >제주시

    한라산신제를 올리는 곳, 산천단
    지금도 제주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한라산신제가 올려지는 산천단(山川壇)은 여러 제사를 봉행했던 유서 깊은 장소이다. 예로부터 농사의 재해예방을 기원하는 제사와 기우제를 올렸던 이곳은 소나무 숲으로 아름다울 뿐 아니라 탐라국 이래 한라산을 신성시하여 한라산신제를 올린 제주민들의 문화와 신앙을 엿 볼 수 있는 유적 중 하나이다. 또한 제주민의 고초를 덜어 준 선정과 청렴함의 목사 이약동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 충북 >보은군

    거북바위 미신을 타파하고 세운 보은 속리산사실기비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에 있는 법주사 수정교 인근에는 속리산 사실기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는 수정봉(水晶峰) 거북바위를 둘러싼 사적 및 미신 타파를 주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속리산의 수려한 자태가 중국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였다는 점, 세조의 행차와 관련한 저간의 정황 등을 두루 소개하고 있다. 비는 현종 7년인 1666년 건립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충남 >공주시

    불교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현학적으로 기록된 계룡산 갑사 사적비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갑사로에는 갑사(岬寺)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석은 갑사의 역사에 대해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갑사의 운영에 도움을 준 관료, 비석 제작에 관련한 인물들을 기록하였다. 불교의 역사와 사상적 특징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며, 수사적 표현이 많고 다양한 전고들을 활용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효종 10년인 1659년에 건립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경북 >영주시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골에 자리한 소수서원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에 주세붕이 붙인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백운동(白雲洞)은 ‘흰 구름에 쌓인 골짜기’라는 뜻으로 서원의 입지와 관련이 깊다. 서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의 산자락 위로 흰 구름이 가득하고 옆으로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죽계천이 연못을 이루다 밑으로 흘러갔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죽계별곡」은 이곳 죽계천을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구름에 감싸인 소백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죽계천의 경치를 보면서 주세붕은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떠올렸고 이곳에 서원을 세워야겠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첫 보름달이 뜨는 날, 정월대보름

새해 들어 처음 만월이 되는 정월대보름은 예로부터 한 해의 생명력과 생산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로 여겼습니다. 대보름 아침에는 나이만큼 부럼을 깨서 액운을 쫒고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고, 마을사람들은 모여 달집태우기, 지신밟기 등의 놀이를 하며 풍년을 빌었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어떤 풍습이 있는지 찾아보며 함께 좋은 한 해가 되길 빌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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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며 달집태우기
    일년 중 가장 먼저 만월이 떠오르는 날인 정월대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짚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움막을 만들어 달집을 만든다. 달집태우기는 이 달집을 불로 태움으로써 모든 부정과 근심을 함께 태워 없애는 대보름의 주술적 행위이다.
  • 강원 >강릉시

    강릉 사천하평 답교놀이
    강릉 사천하평 답교놀이는 매년 음력 2월 6일의 좀상날에 마을에 있는 다리를 밟으며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 형태이다. 원래 다리밟기는 사람의 다리가 튼튼하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정월대보름 전후에 이루어지는 세시풍속인데, 강릉은 시기와 목적이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이날 횃불놀이도 함께 이루어진다.
  • 경기 >광명시

    광명 아방리줄다리기
    아방리줄다리기는 경기도 광명시의 노온사동 아방리 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암줄과 수줄을 엮어서 서로 당기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였다. 이곳은 쌍줄이며, 남녀로 편을 나누고, 목적은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에 있다.
  •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놀이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마을굿(당굿)을 한 다음 각 집을 차례로 돌면서 풍물을 치며 집터 곳곳의 지신(地神)을 밟아서 달램으로써 한 해의 안녕과 복덕을 기원하는 마을 민속의례이다. 집터에 있는 지신을 말 그대로 밟는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신들이 있는 터에 들어가 풍물을 치며 놀면서 신을 즐겁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초에 가족과 집안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함을 빌며 한 해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올리는 제의이다.
  • 경남 >창원시

    창원 진동큰줄다리기
    진동큰줄다리기는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진동면 동촌 냇가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동서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세시성 집단놀이 형태이다. 줄은 암수줄로 구분하는 쌍줄 형태이며, 승부에 따라 상여를 만들고 상복을 입으며 곡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 전북 >고창군

    고창오거리 당산제
    고창군 고창 읍내에서 행해지는 오거리 당산제는 읍내에 자리한 여섯 곳의 당산에서 지내는 제의를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복합형태의 마을신앙이라 하겠다. 제의는 정월 대보름날 행해진다. 지역마다 각자의 당산제를 지낸 다음 읍내로 나와 동부와 서부로 나눠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이들 놀이가 끝나면 줄을 당산의 신체에 감아놓는다. 연등놀이도 함께 진행된다.
  • 광주 >남구

    광주 칠석동 당산제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은 상칠석과 하칠석으로 나뉘어 있는데 두 마을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각 마을에 모셔진 당산 신에게 제의를 지낸 다음 두 팀으로 나눠 고싸움놀이를 한다. 흔히 공주 칠석 고싸움놀이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이다.제관으로 선정이 되면 집마다 다니며 쌀을 걷는다. 화주는 제관에게 받은 쌀을 판 돈으로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 과정에 필요한 제물에는 과일, 고기, 채소 등이다. 본격적인 제의에 앞서 제의 당일 저녁 시간에 사돈 보기라는 행사를 한다. 사돈 보기가 끝나면 두 마을에서 뽑힌 제관들은 함께 상칠석의 당집을 찾아가 제의를 올린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의식이 마무리되면 두 마을주민들이 모두 참가하는 고싸움놀이를 한다. 동부(상칠석마을)와 서부(하칠석마을)로 나눠 진행되는데 승부를 겨룬다. 간혹 고싸움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고를 해체해 줄다리기하여 승패를 결정짓는다.
  • 경기 >포천시

    포천 틀무시 동홰세우기
    포천 틀무시동홰세우기는 경기도 포천시 틀무시마을에서 정월 16일에 수수깡과 나무를 세워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 형태이다. 이 놀이는 마을의 남녀가 같이 참여하는 집단놀이 형태로 정월대보름 세시놀이의 성격을 지닌다. 현재도 마을 단위로 전승이 지속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예부터 ‘동홰세운다’라고 말한다. 
  • 경기 >광주시

    광주 광지원해동화놀이
    광주 해동화놀이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중부면) 광지원리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 주민이 달맞이를 위해 해동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정초의 집단 놀이 형태이다. 해동화놀이는 지역에 따라 달집태우기(호남), 동화제(충남), 동홰놀이(경기도), 화옹이(경기도 여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 전국

    하루 아홉 번 먹는 오곡밥
    정월 대보름에 풍농을 기원하며 먹는 오곡밥은 다섯 가지 곡식, 쌀, 조, 수수, 팥, 콩 등을 섞어 지은 밥으로 보름밥이라고도 한다. 오곡밥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사실상 모든 곡식을 뜻한다는 말이고, 즉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봄이 오는 소리, 입춘(立春)

매년 양력 2월 3~4일 경은 24절기 중 첫번 째 절기인 입춘입니다. 입춘은 새해를 상징하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직은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가시지 않은 2월이지만, 지역의 봄과 관련된 장소와 이야기를 보면서 따뜻한 봄을 맞을 준비 같이 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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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서울 >성북구

    천재 조각가의 자취, 서울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
    서울 동선동 권진규 아틀리에는 조각가 권진규가 1962년에 지은 작업실이다. 한국적 사실주의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는 권진규는 테라코타 흉상을 주로 만들었다. 작품 모델은 자기 자신이거나 그가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그래서 작품의 이름도 경자, 현옥, 혜정, 애자, 봉숙, 영희 등이다. 흔하디흔한 이름이어서 토속적인 느낌마저 든다. 평범한 얼굴들에서 구도의 형상을 읽어낸 작가의 시선은 가히 천재적이다. 하지만 많은 천재들의 삶이 불운했듯 권진규 역시 고통스러워했다. 권진규는 52세에 자신의 작은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 서울 >종로구

    봄을 알리고 단비를 기원하는, 창덕궁 보춘정
    보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창덕궁 내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이다. 보춘정 건물의 다른 면에 희우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누각은 봄이 옴을 알리고, 가뭄 때 단비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 전북 >부안군

    건물 속에 묻혀 있던 부안 남문안당산
    남문안당산은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동중리에 위치하고 있다. 남문안당산은 부안읍성의 남문이 있었던 곳에 세워져 있었으나, 1992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남문안당산은 2개의 화강암을 다듬어 하나의 기둥처럼 아래위로 세운 솟대당산이다. 동문과 서문안 당산에는 솟대 위에 새가 얹혀 있는데, 남문안당산에는 새가 없다. 대신 거북이가 새겨져 있다. 남문안당산의 하단 석주에는 조성 당시의 시주자와 시공자로 보이는 사람들 24명의 이름이 기재되어있다. 남문안당산제는 1950년대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 전남 >영광군

    노비를 위해 만든 특별한 음식, 영광 모싯잎송편
    모싯잎송편은 뜨거운 물에 데친 모시 잎을 곱게 갈아서 물에 불린 쌀과 섞어 만든 떡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의 향토음식이다. 조선 시대에는 음력 2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 하여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주인이 노비들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 이날 노비들에게 먹인 떡이라 하여 ‘노비송편’으로도 불린다.
  • 전국

    눈으로 보는 꽃의 아름다움이 화려한 음식으로, 화전(花煎)
    화전은 잘 반죽한 찹쌀가루를 기름 두른 번철에 조그맣고 둥글 넓적하게 부쳐 계절을 대표하는 꽃을 더한 떡이다. 진달래꽃, 장미,국화 등을 고명처럼 얹는다. 다른 말로 꽃지지미 또는 꽃부꾸미라고 한다.
  • 대전 >대덕구

    자연과 하나되고자 했던 은일함을 추구한 대전 회덕 동춘당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회덕 동춘당은 조선후기 송준길이 머물던 별당이다. 동춘당(同春堂)이란 송준길의 호로 ‘살아 움직이는 봄과 같아라’라는 뜻이다.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두루 지낸 인물로, 낙향하여 이곳에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양성했다. 당대 유학의 거장인 우암 송시열이 쓴 동춘당 현판은 보물 2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소박한 규모에 담을 낮게 만들어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는 동춘당의 사상이 그대로 투영된 공간이다. 빛의 양을 계산해 방향마다 창문의 크기를 달리한 선조의 지혜가 돋보이고, 굴뚝 대신 연기 구멍을 뚫어 은일함을 추구했다.
  • 전통시장에서 거래물건의 대체방식

    한국의 전통시장에서는 다양한 상품들이 거래되었으며, 거래 관행에 따라 거래물건의 대체하는 다양한 거래문서들이 생겨났다. 특히 상품을 거래할 때는 수표, 임치장, 출차표 등을, 돈을 빌릴 때는 어음, 환간, 보음지, 삭채표 등의 문서들을 사용하였다.

  • 서울 >중구

    사냥꾼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기 장수
    한 부부가 아이를 났는데 그 아이는 봉사였다. 6월에 사냥꾼이 지나가면서 봉사인 아이가 모심는 모습을 보고 봉사아이와 내기를 했지만 졌다. 화가 난 사냥꾼은 아이를 화살을 쏘아 죽였다. 부모는 아이의 유언대로 아이를 묻어줬다. 사냥꾼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기 장수 이야기가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 제주 >제주시

    제주도 입춘굿놀이
    제주도 입춘굿놀이는 입춘날에 제주목 관아 일대에서 목사를 비롯한 관리들과 무당들이 행하던 일종의 세시적 굿놀이 형태이다. 농사를 짓는 과정을 모의농경의례로 재연하면서 풍요를 기원하고, 또한 처첩의 갈등을 가면놀이로 보여주기도 한다.

[경기 고양]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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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행주치마가 지킨 행주산성
    1592년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해발 124.9m의 덕양산에 흙을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토석혼축 산성이다. 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 내성과 북서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2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 경기 >고양시

    일산의 허브, 일산문화공원(구 미관광장)
    1996년, 2차 신도시 개발로 일산호수공원과 정발산역을 이어주던 거리를 제5호 미관광장으로 불렀는데, 2004년 일산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일산문화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산문화광장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광장에는 일산 신도시 건설기념탑, 평화의 소녀상, 고양 독립운동 기념탑 등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호수 공원과 쇼핑몰이 인근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유동인구가 많아 각종 지역축제 및 정기적인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 경기 >고양시

    박재궁 마을의 유래를 찾아서
    박재궁 묘역은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 박재궁 마을에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성되어 광해군 때까지 300년 간 53위의 묘소와 11위의 제단을 모슨 밀양 박씨 가문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이 곳에 묻힌 사람 중 박충원과 박심문은 단종에 대한 충절로 유명한 위인이다. 현재 박재궁 마을은 화려한 묘역과 주택가가 섞여 있다.
  • 경기 >고양시

    고려 공양왕이 마셨다는 샘물, 대궐고개 약수터
    대궐고개 약수터는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에 있는 약수터로, 근처의 공양왕릉, 식사동, 배다리 누리길 등의 장소와 함께 옛 이야기로 엮인 곳이다. 고려말기 이성계의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예기치 않게 왕이 된 공양왕은 삼척에 유배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최영 장군의 묘가 있는 고양시까지 오게 되는데, 그때 피신했던 고개를 대궐고개, 그때 마셨던 샘물이 대궐고개 약수터 샘물이라고 한다.
  • 경기 >고양시

    46년만에 찾은 평화, 행주산성 역사공원
    1970년대 초 무장공비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군 철책 중 가장 먼저 철거된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 행주산성 역사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를 토대로 재현된 행주마을의 옛 모습이 있고, 살구나무와 자생식물이 있는 생태광장이 있다. 과거 군 초소를 보수하여 만든 한강 전망대에서는, 적군의 침투를 감시하는 대신 한강의 철새들과 일몰, 야경의 아름다움을 평화롭게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행주산성과 행주서원, 행주성당 등 역사적인 장소와 연계해 교육공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경기 >고양시

    추억여행을 떠나는 곳, 원릉역
    원릉역은‘원당’과 ‘서삼릉’의 한 글자씩을 합쳐 만든 역명으로, 1961년 세워진 오래된 기차역이다. 고양시와 서울을 잇는 교외선의 주요 역으로서 한때는 하루 수천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역장님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영화 [파수꾼]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객영업이 완전히 중단된 뒤 역사의 출입과 횡단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철책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2014년 지하보도가 만들어지면서 불편이 해소되고, 지금은 주민들의 산책과 운동 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 경기 >고양시

    주민 참여 도서관이 있는 마상근린공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위치한 마상근린공원은 보통의 근린공원이 그러하듯 각종 체육시설과 휴게시설,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는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다른 근린공원과 달리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배다리 누리길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점과 주민참여예산으로 건립된 최초의 공립 작은 도서관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다. 야외무대와 작은 도서관에서 소박하지만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마상공원은, 주민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경기 >고양시

    구 역사(驛舍) 일산역. 사람의 길이 열린다
    고양일산역(高陽日山驛)은 2006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국가 등록문화재 제294호 지정되어 한국철도공사에서 관리·보호되는 장소이다. 1933년에 지어진 것으로 ―자형 평면 구조에 십자형 박공지붕(배 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을 얹었다. 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 경의선의 중심역이며 경의선 역사 중 유일하게 남겨진 곳으로 일제강점기 철도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 충남 >천안시

    미술관을 품은 시장인 성환이화시장
    '성환장'은 천안시 북부 지역에 위치한 성환읍에서 열리는 오일장이며, 매월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 정기시장이다. 현재는 '성환이화시장'으로 불리며, 미술관을 품은 예술시장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행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시장이다.
  • 경기 >고양시

    한옥과 성당이 만나다, 고양 행주성당
    1910년 지어진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 행주 성당은 한옥 성당의 멋과 향기를 간직하여 전해주는 근대유산이다. 전통 한옥의 정취와 성당의 종교적 경건함을 동시에 살려낸 건축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한국전쟁 시기에 격전지였던 행주외리 마을은 큰 피해를 보았으나, 언덕 위 목조 행주 성당은 건재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경남 진주]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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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진주시

    관군과 백성이 함께 싸운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의 진주 창열사
    진주의 창열사는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진주성은 부산포와 한양을 잇는 일본군의 보급로였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요충지였기에 진주성 함락은 왜군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김시민의 리더십으로 왜군을 물리쳤지만 2차 진주성전투는 패전하였다. 하지만 진주성전투로 세력이 약해진 왜군이 호남 진출을 포기하게 했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의병들이 관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전투지가 되었다.
  • 경남 >진주시

    남강에 유유히 떠있는 아름다운 등의 향연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 남강의 유등놀이는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비롯된 것이다. 1592년 10월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명의 왜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에서 유등은 군사신호와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우기도 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의 특별 행사로 운영되던 유등놀이를 2000년에 별도의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나는 망경동에 간다.
    경상남도 진주의 오래된 골목길이 남아있는 망경동은 2020년 진주시 도시재생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어 문화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진주시는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타격을 받은 문화예술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소규모 문화예술행사를 망경동에서 진행하기도 하였다. 망경동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는 1982년 지어져 목욕탕으로 사용되다가 2014년 갤러리,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는 건물로 리모델링한‘진주문화공간 루시다’가 있다.
  • 경남 >진주시

    진주 상인들의 자존심 -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은 경상남도 진주시의 근현대사를 살펴보기 좋은 코스다.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은 진주시 창렬로 비봉루에서 시작해서 수정봉 밑 옥봉성당~진주 상무사~진주 중앙시장~배영초등학교 구 본관~진주초등학교 강당~진주성을 돌아보도록 하는 길이다.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은 진주 부자 정상진이 자신의 선조와 인연이 있는 비봉산에 세운 비봉루와 한국 차 문화의 부흥에서 시작해서 경상남도 천주교회사, 조선 시대까지 ‘북 평양, 남 진주’라 불리었던 진주가 식민지 근대를 맞아 어떤 경로를 걸어왔는지 깊이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 경기 >구리시

    고려의 전통을 이으며 조선의 권위를 세운 태조 건원릉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묘인 건원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내에 위치한다. 전체적인 형태는 고려 공민왕의 능인 현릉과 유사하나, 고려시대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곡장(曲墻)이 봉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봉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있고, 병풍석 위에는 12지신이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교대로 2쌍씩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앞쪽에는 혼유석(魂遊石), 고석(鼓石)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이 있다. 태조는 죽어서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하였으나, 태종은 아버지의 묘를 가까이에 두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싶어 했다. 때문에 태조의 건원릉은 현재의 위치에 조성되었고, 태조의 유언도 지키고자 함흥의 억새와 흙을 공수해 와서 단장하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국내 최초 예술제이자 진주 남강 유등축제와 함께하는 ‘개천예술제’
    경상남도 진주시의 예총진주지부는 1949년에 정부수립과 실질적인 독립 1주년을 기리고,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영남예술제를 개최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제였다. 영남예술제는 1959년 개천예술제로 개명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목사가 이끈 진주대첩을 소재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공연이 열리며, 진주시민들은 가장행렬과 경연대회 등에 참가하여 축제를 즐긴다. 예술제 기간 동안 진주 남강에서는 유등축제가 열리며, 진주대첩과 진주목사 부임행차를 재현하는는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 경남 >진주시

    차기 도읍지로 스스로 걸어가던 진주 대천리 입석
    진주 대천리 입석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에 세워져 있다. 진주 대천리 입석은 대천리 논 가운데에 암수 짝을 이뤄 세워져 있는데, 경지 정리를 하면서도 이 입석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대천리 마을에서는 진주 대천리 입석을 ‘각시바위’, ‘신랑바위’라고 부르고 있으며, 입석이 세워져 있는 위치로 보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제사의 대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 경남 >진주시

    임란 의병과 '논개'가 떠오르는 , 진주 촉석루
    진주 촉석루(矗石樓)는 우리나라 3대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하면 먼저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논개’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전투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장소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에서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서 진주하면 ‘ 임진왜란 – 촉석루 – 논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촉석루를 노래했던 문인들의 감흥도 임진왜란 전후가 크게 달라진다.
  • 경남 >진주시

    한옥 성당과 고딕 성당이 나란히, 진주 문산성당
    경상남도 진주의 문산 성당은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 성당과 1930년대에 건축된 고딕 성당을 나란히 가지고 있는 성당이다. 문산 성당의 터는 조선 시대 문산 찰방의 관서가 있었던 자리다. 한옥 성당은 경상남도 고성의 옛 사찰을 옮겨다 지었다는 설이 있다. 굵은 기둥 13개와 들보로 서양 성당의 내부 공간을 한국식으로 재현했다. 신도가 증가함에 따라 지어진 고딕 성당은 정통적인 고딕 성당과는 다른 구성이지만, 서양의 고딕 부활 양식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 문경]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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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문경시

    솔잎향 그윽해 신선들이 탐낸다는 술, 호산춘
    경상북도 문경의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갓집에서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술이 있다. 바로 호산춘(湖山春)이다. 호산춘은 신선들이 탐낼만한 술이라 하여 호선주(好仙酒)라고도 불렸다. 호산춘(湖山春)은 옅은 노란색을 띠며, 첨가된 솔잎으로 향기가 그윽하고, 부드러운 맛과 짜릿한 느낌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약 18정도로 높지만 건강주로 유명하다. 손으로 만졌을 때 살짝 끈적거릴 정도 진한 술인 문경 호산춘은 1990년 관광 토속주로 지정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된 전통주이다.
  • 경북 >문경시

    탁배기 한잔에 목구멍 탄가루 씻고 – 문경 가은양조장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가은양조장은 은성무연탄광 개발이 시작되던 1938년 12월에 영업을 시작했다. 은성무연탄광은 1994년 폐광될 때까지 은성탄광이라는 이름으로 석탄을 채굴했다. 가은양조장은 탄광촌이 형성되고 가은읍에 50여 개로 늘어난 술집에 막걸리를 공급했다. 탄부들은 8시간 동안 막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쌓인 피로와 탄가루 먼지를 가은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로 씻어냈다. 가은양조장은 1970년대 중반 가장 번창할 때 하루 1만 리터의 막걸리를 팔았다고 한다. 은성탄광은 1994년 폐광되었다. 막걸리 소비가 소주와 맥주에 밀려 점차 줄어든 데다가, 은성탄광 폐광으로 가은양조장도 2010년 결국 문을 닫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가은양조장 사무실과 공장 건물은 당시 양조장의 구조를 잘 보여주며, 예전 서류 등이 보관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가은양조장은 2017년 등록문화재 제706호로 지정되어, 국내 양조장 가운데 세 번째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 경북 >문경시

    “지역 농가의 오미자로 만든 자연 스파클링 와인과 증류주”
    오미자(五味子)는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매운맛의 5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오미자라고 부른다. 오미자의 신맛이 기침을 줄이고 폐를 건강하게 하며 유기산이 많아 피로 해소에도 좋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한약재로 이용되었는데, 2000년대부터 과일로 인식되어 산업화하기 시작했다. 문경은 2006년 오미자 산업 특구로 지정되었다.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대부분을 문경에서 생산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조선시대 문헌에도 오미자를 문경의 토산물(특산물)로 기록하고 있다. 문경에서 국내 최초의 오미자와인인 ‘오미로제’와 증류주 ‘고운달’이 탄생했다.
  • 경북 >문경시

    아홉 처녀와 결혼해서 아홉 아들을 낳은 문경 구랑리
    옛날 한 마을에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낮잠에 빠졌는데, 꿈에서 노인이 나타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십 년 동안 벙어리로 살면 자손들이 삼정승 육판서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총각은 반대하는 어머니 몰래 묘를 옮기고 벙어리 행세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딱 십 년 째 되는 날이었다. 동네의 아홉 처녀들이 총각을 잡아서 나무에 매달고 놀렸다. 그때 10년이 딱 지났고, 총각이 소리를 쳤다. 이에 처녀들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후 총각은 아홉 처녀를 부인으로 맞아 아홉 아들을 낳았다. 훗날 그 아들들은 모두 삼정승 육판서가 되었다고 한다. 아홉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이 마을을 ‘구랑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경북 >경주시

    신라 절터에 세운 경주 월암 종택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월암 종택은 조선중기 주택으로, 임진왜란 때 부산첨사를 지낸 김호(金虎) 장군의 집이다.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일자형의 안채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좌측에는 동향으로 아래채가 놓여 있다. 안채의 우측에 사랑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안채 북쪽에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단순한 세칸집으로 마루가 없는 저상식이지만, 고방은 고상식의 마룻바닥을 삽입하는 등 옛날식 기법을 적용했다. 고방 앞에 문짝을 다는 양식은 경주지역의 특징이다. 굴뚝을 부엌의 부뚜막에 설치한 것은 남방식 건축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 경북 >문경시

    가장 아름다운 글귀가 적혀있는, 문경 주암정
    문경의 주암정(舟巖亭)은 배의 형상을 한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주암정은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건물도 아니고, 정자의 주인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주암정은 우리나라 누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 그 연꽃이 만개한 연못에 우뚝하게 한 척의 배가 정박해있는 모습은 천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주암정에 올라서면 마치 극락이나 천국에서 배를 타고 아름다운 연꽃 밭을 유람하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어느 누정 보다 아름다운 글귀가 눈길을 끈다.
  • 경북 >문경시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했던 문경 토끼비리
    문경 토끼비리는 과거 동래에서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이 다니던 영남대로 일부에 속한다. 군사가 이동하다가 길이 끊겨 고민하던 중 토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이동했다는 데에서 토끼비리라 불린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이 옛길은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바닥에 윤기가 흐를 정도로 반질반질해졌다. 근현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은 아니지만, 주변을 통과하는 철도 및 고속교통로 등과 어우러지고 자연경관과도 잘 어울리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옛길로 남아 있다.
  • 경북 >문경시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였던 영남대로에 있는 고개이다. 새재는 예로부터 백두대간 북쪽의 한강과 백두대간 남쪽의 낙동강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고개로 알려져 있으며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었다. 지금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고갯길은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폭이 넓지만,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면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었던 과거 길도 일부 남아 있다. 새재에 설치된 3개의 관문을 비롯해 고갯길 주변에는 옛날의 모습이 잘 간직되고 있다.
  • 경북 >성주군

    사도세자 호위무사의 충심을 담은 성주 응와종택
    경상북도 성주군의 전통마을인 한개마을에 위치한 고택이다. 성주이씨 세거지인 한개마을의 대표 가옥 중 하나인 응와고택은 사도세자의 호위무사인 응와 이석문이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북쪽을 향해 사립문을 내고 평생토록 절의를 지켰다고 하여 북쪽 사립문이라는 뜻의 ‘북비(北扉)’고택이라 부른다. 평판한 대지 위에 안채, 사랑채, 사당, 안사랑채, 대문채, 북비택 등 여섯 채가 동서로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인 양반가옥의 구조를 띠나 남성의 공간을 동쪽에 두고, 여성의 공간을 서쪽에 두는 유교적 이념은 투영되어 있지 않다. 사당을 별도의 공간에 두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배치하였고, 독립성이 강한 북비택은 후학을 위한 강학당으로 활용하였다.
  • 경북 >상주시

    지주중심 농가형 마을의 중심 가옥, 상주 취은고택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골가실 마을에 오래도록 세거해온 여산송씨 정가공파의 주택이다. 취은고택은 송량의 손자인 송덕부(宋德溥, 1603~1674)가 골가실로 이사하여 건축한 집으로 송덕부의 호를 취해 취은(醉隱) 고택이라 부른다.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골가실 마을의 중심부에 고택이 위치하며, 그 주위에 소작농의 집이 에워싸고 있다. 대지주의 고택을 중심으로 소작농의 집이 들어선 ‘지주중심 농가형마을’이다. 안채, 대문간채, 바깥대문채, 우물채, 곳간채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건물별로 담을 둘러 공간별 영역을 한정하였으며, 초가를 얹은 바깥문채의 소박함과 팔작기와지붕의 안채, 사랑채의 당당한 위세가 공존한다. 이는 조선후기 향촌사회를 주도한 경제력을 갖춘 양반가옥의 특성이다.

[광주]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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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광산구

    세 개의 시장이 합쳐진 송정삼색시장
    '송정삼색시장'은 광주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조선시대 개설된 '선암장'의 전통을 잇고 있다. 2015년에 문화관광형시장으로 선정되면서 당시 광산구에 있던 송정매일시장, 송정5일장, 1913송정역시장을 ‘송정삼색시장’이란 이름으로 통합하고, ‘세 가지 색깔을 지닌 전통시장’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전통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 광주 >동구

    무등산 깃대봉의 민립대학, 광주 조선대학교 본관
    광주광역시 동구 서석동 무등산 깃대봉 중턱의 조선대학교 본관 건물은 광주의 랜드 마크 가운데 하나다. 370m 길이에 19개 박공 건물이 늘어선 모습은 마치 한 마리 학이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본관 19개 건물 가운데 초기에 세워진 5개 건물은 등록문화재 제 94호다. 5개 동은 1947년부터 1955년까지 8년에 걸쳐 건축되었다. 이어진 건물들은 후에 증축한 것이다. 조선대학은 광복 직후인 1946년부터 진행된 민간 차원의 대학설립 운동이 결실을 맺은 최초의 사례다. 당시 호남 각지에서 7만2,000명이 조선대학 설립동지회에 가입해 한국 최초의 민립대학이 설 수 있었다.
  • 광주 >북구

    송강 정철과의 꿈같은 만남, 광주 환벽당
    환벽당은 광주의 대표적인 누정이다. 환벽당은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가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벗들과 친교를 나누던 곳이다. 대표적인 제자가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성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송순은 ‘식영정과 환벽당은 형제와 같은 정자’라고 했고, 또한 ‘소쇄원 – 식영정 – 환벽당’을 이 지역 대표적인 세 명승이라 했다. 실제로 세 곳 모두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 광주 >남구

    ‘서양촌’으로 들어온 근대 - 광주 양림동 근대역사문화마을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식민지 근대가 도래하기 전 개신교 선교사들의 계몽적 근대가 먼저 당도한 지역이다. 미국 남 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은 광주 선교를 위해 양림동의 땅을 사들였다. 중심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사택을 짓고, 학교와 병원을 세우면서 양림동에 ‘서양촌’을 형성해 나갔다. 일제강점기 들어 광주 중심부는 조선총독부의 계획 아래 근대 도시가 되었으나, 양림동은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광주 제중원 등 종교와 교육과 의료를 통해 근대를 접하게 되었다. 양림동에는 기독교 근대의 자취 외에도 전통 한옥이나 문화예술인들의 역사적 자취가 남아 있고, 광주가 팽창하면서 양림동에 터 잡고 살아온 보통사람들의 삶 또한 곳곳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양림동을 한 바퀴 돌면서 다양한 근대의 의미 지층을 탐색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근현대사 산책일 것이다.
  • 광주 >북구

    열악한 여건에서 탄생한 지역 교육의 거점 -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은 1957년 지역 건축계를 이끌었던 김한섭의 작품이다. 아직 교육대학이라는 학제가 정착되기 전 광주사범대학의 본관으로 지어졌다. 광주사범대학의 직접적인 전신은 1938년 개교한 광주사범학교이나, 뿌리를 따져보면 1923년 설립된 전라남도 공립 사범학교가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남도와 광주 건축계의 거목으로 일컬어지는 김한섭은 건축자재도,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광주사범의 본관을 지었다. 철근을 조달하기 어려워 2층 건물에 슬래브 지붕을 만들 수 없자, 목구조 위에 경사지붕을 얹었다. 기둥은 벽돌을 쌓아 거푸집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채우는 방식으로 세웠다. 하지만, 주 출입구의 캐노피 현관과 창호와 벽돌 기둥을 리듬감 있게 배치한 수법 등은 건축가의 고뇌가 탄생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광주교육대학교는 원래의 본관을 부속 초등학교 교사 등으로 활용하다가 현재는 호남 최초로 개관한 교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은 2014년 등록문화재 제644로 지정되었다.
  • 광주 >동구

    골목 끝의 변방과 현장, 광주 동네책방 ‘소년의 서’
    광주광역시 충장로 광주극장 옆골목으로 들어와 굽이굽이 여행하듯 걸어가면 '소년의 서'라는 작은 책방이 나타난다. 인문사회화학예술서점으로 광주 오월 관련 책들, 형제복지원 책, 여성 관련 책들, 연극에 관한 책 등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도 진열되어 있다. 2016년에 문을 열었지만 주인장 임인자 씨가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형제복지원 생존자 모임 총무 등으로 거리에 나가 있느라 문이 자주 닫혀 있다.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 광주 >동구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계림동 헌책방 거리
    광주 동구 광주고등학교 앞에 있는 ‘계림동 헌책방 거리’는 1960~1970년대를 주름잡던 중고 책방의 메카였다. 해방 직후에서 시작된 헌책방 거리에는 1980년대만 해도 헌책방이 60곳 넘게 있었다. 지금은 유림서점, 백화서적, 학문당, 광일서점, 대교서점, 광주 고서점, 문학서점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유림서점 2세대인 딸 유수진 씨와 책문화기획자 유휘경 씨가 공동기획으로 이 오래된 헌책방 거리를 살리기 위해 '계림동 처방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곳도 서울 청계천이나 부산 보수동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
  • 광주 >남구

    광주의 마지막 염료가게, 공원물방
    공원물방은 광주에 하나 남은 염료가게이다. 문경필 사장님은 19살에 입사해 7년 간 근무하고, 자신이 근무하던 물방을 인수하여 40년째 영업하고 있다. 예전에는 흰 무명옷에 양잿물, 물감, 조단을 혼합해 뜨거운 물에 끓여 염색했고, 생활필수품이었지만 요즘은 일상적으로 염료를 사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환경문제 때문에 예전에 선진국에서 만들던 화학염료를 이제는 후진국에서 만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생산되는 염료는 천연염료뿐이라고 한다.
  • 광주 >동구

    84년째 필름을 돌리고 있는 광주극장
    광주광역시 충장로에 있는 광주극장은 광주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1935년 개관하여 오늘까지 80년이 넘는 세월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1933년 법인이 설립되고 부터로 본다면 올해 84주년이다. 쭉 개봉관으로 운영하다가 멀티플렉스의 공세에 2002년부터 예술영화전용극장이 되었다. 현재 총 856석의 좌석이 있는데, 좌석이 지정되어 있지 않고, 1,2층 어디서든 자기가 앉고 싶은 곳에 앉아 관람이 가능하다. 영화가 시작될 때는 은은한 종소리가 들린다. 광주극장에서는 ‘영화간판학교’도 운영하고 있다. 4년전부터 시민 간판학교를 운영해서 각자가 좋아하거나 의미있는 영화를 주제로 작업해오고 있다.
  • 광주 >광산구

    용과 봉황의 기운으로 더위를 물리친다, 광산 용봉탕
    용봉탕은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상징하는 자라와 봉황(鳳凰)을 상징하는 닭을 재료로 하여 끓여낸 여름철 보양식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향토 음식이다. 용봉탕은 이름 자체만으로 길하고 복된 음식이며 궁중음식에서 유래되었다.

[세종]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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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 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 세종

    국내 유일 행정도시 세종시민을 위한 '세종축제'
    세종특별자치시의 명칭은 국민 공모를 통해 조선 세종의 묘호에서 따온 것으로,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축제는 세종대왕의 얼을 기리는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세종특별자치시의 위상에 맞는 축제를 위해 연기군에서 개최되던 축제 일부를 통합했다. 세종축제는 5일에 걸쳐 다양한 ‘공연, 체험, 전시’ 행사가 진행된다.
  •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 세종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상과 벌을 주는 독락정 석불
    노부부가 살았는데 하루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찾아와 먹을 것을 구하였다. 부부가 불쌍히 여겨 잘 대접해주니 노인은 독락정 뒤편 석불에 백일기도를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부부는 석불에 백일기도 하여 결국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또 석불에 찾아가 기도하니 약초가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이 소문이 돌자 이웃마을의 욕심 많은 청년이 석불에 찾아가 돈이 필요하다고 빌자 돈이 든 주머니를 얻었는데, 날마다 술 마시고 노는 데 쓰다 보니 돈이 모두 뱀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함부로 석불에 소원을 빌지 않는다고 한다.
  • 세종 >세종시

    피난길을 안내했던 김승로를 참수한 세종시 전동면의 붉은덕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심중리에 ‘붉은덕’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붉은덕은 전동면 청람리에 묘소가 있는 김승로(金承露)가 참수당했다고 해서 불리는 지명이다. 고려시대 말엽 원나라군이 고려를 침입하였다. 피난길에 오른 고려 왕이 천안시 행정리 부근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김승로가 ‘전의’ 방향으로 갈 것을 추천하였다. 김승로의 말에 따라서 전의로 오던 중 평야가 있을 것이라는 김승로의 말처럼 평야가 보이지 않자, 고려 왕은 성급하게 김승로를 참수하였다고 한다.
  • 세종 >세종시

    선돌이 서 있었던 세종시 전동면의 석곡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石谷里)는 국사봉(國師峰), 송학산(松鶴山) 등과 같은 낮은 산지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국사봉에는 예전에 봉화대가 있었으며,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제장(祭場)이 있는 곳이다. 석곡리 지명은 ‘선돌배기’와 관련이 있다. 옛날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한 장수가 들고 가다가 지팡이처럼 마을에 돌을 세워두었기에 선돌배기라 부른다고 한다.
  • 세종

    가마를 설치했던 세종시 연서면의 부동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관내의 자연마을 가운데 ‘가마골’ 곧 ‘부동리(釜洞里)’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옛날 가마골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시골 마을의 부잣집인지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편, 부자에게는 며느리가 한 명 있었는데, 시집온 지 삼 년이 지나도록 손님 접대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루는 시주하러 온 노스님에게 손님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묻고, 노스님의 말에 따라서 마을 주위에 성을 쌓았다. 그 후에 부잣집을 찾는 손님이 점차 줄어들었지만, 부잣집의 가세 또한 기울어졌다고 한다.
  • 세종

    백제 부흥운동군의 항전지 운주산성
    세종특별자치시 기념물 제1호인 운주산성은 구름이 머무는 산이라는 의미의 해발 460m 운주산에 축성된 산성이다. 이 성은 운주산 정상에서 서남쪽 3개 봉우리 사이의 골짜기를 감싸고 축성된 석성으로 백제의 두 번째 도성이었던 공주를 지키던 성이다. 운주산성은 정확한 축성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은 없으나 산성주변에서 백제시대의 토기와 기와조각 등이 다수 출토되어 백제시대의 성으로 알려져 있다.
  • 세종

    남양 홍씨 9명의 효자를 기리는 연서 효교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 713-55 번지에는 연서 효교비가 세워져 있다. 연서면 일원에는 남양 홍씨 문중에는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있었다. 홍연경(洪延慶)과 아들 홍연설(洪延卨), 손자 홍우적(洪禹積), 홍우평(洪禹平), 홍우구(洪禹九), 증손자 홍방만(洪鈁?), 현손 홍득후(洪得厚), 홍득일(洪得一), 5세손 홍상직(洪相直)이다. 이러한 홍씨 문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49년인 1773년에 비석을 세웠다.
  • 세종

    노승의 말을 어기고 뒤돌아보다 바위가 된 며느리
    옛날 한 부잣집에 부자와 며느리가 살았다.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자 부자는 거름을 끼얹었다. 다른 날 다시 온 노승에게 며느리가 후하게 시주하자 노승은 며칠 뒤 있을 홍수를 이야기해주며 전월산으로 피하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며칠 뒤 큰비가 오니 며느리는 부자에게 같이 산에 오르자 하였지만 부자는 재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남아있었다. 며느리는 혼자 산에 오르다 부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다 그대로 굳어 바위로 변했다. 이후로 이 바위를 사람들은 며느리바위라 불렀고 바위 밑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