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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겨울을 견딘 선조들의 지혜

칼바람이 두 뺨을 스칠 때마다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요즘입니다. 옷 안에 핫팩을 붙이고 그 위에 롱패딩을 걸치면, 동장군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한 기분이 드는데요. 이렇게 든든한 방한복이 없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혹독한 한반도의 겨울을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선조들의 지혜는 바로 '겹쳐 입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패딩 속에 조끼를 껴입고 귀마개를 하듯 상황에 맞게 필요한 방한용품을 더하는 방식이었죠. 예를 들어, 저고리 위에 덧입던 '마고자'는 지금의 패딩 조끼처럼 체온을 유지해 주는 따뜻한 외투였습니다. 또한, '남바위'는 귀마개와 목도리의 역할을 동시에 해주어, 찬바람에 노출되기 쉬운 얼굴과 목 주변의 열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고마운 모자였답니다.
지금부터 오늘날의 롱패딩 못지않게 든든하고 포근했을 선조들의 방한용품들을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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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뒤쪽이 트이게 만든 아이용 바지, 풍차바지
    풍차바지는 바지 마루폭에 바람을 막아주는 풍차(風遮)를 달고 뒤가 길게 트인 아이용 바지이다. 풍차바지라는 이름은 바지 엉덩이 부분에 헝겊 조각인 ‘풍차’를 달아서 붙여졌다. 풍차바지의 형태는 큰사폭, 작은사폭, 마루폭, 조끼허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차바지의 앞은 보통 남자 바지와 같다. 마루폭에 순서대로 큰사폭과 작은사폭을 꿰매어 붙인다. 그리고 바지 뒤쪽의 트인 부분에 풍차를 대어 겹치게 하였다. 풍차바지는 성인의 바지와 구성은 비슷하지만, 뒤와 밑이 트여 아이들이 입기에 적합한 의복이었다. 풍차바지를 입고 어린아이들이 배변훈련을 하기도 하였고, 색상으로 남아와 여아를 구별하기도 했던 풍차바지는 아동들이 착용했던 옷 중에서도 가장 기능적인 옷이었다.
  • 전국

    조선시대 남녀가 겉옷으로 두른 두루마기
    주의(周衣)는 조선시대에 남녀 귀천 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겉옷으로 주로 외출할 때 입었다. 주의는 한자어 표음으로 주막의(周莫衣)·주차의(周遮衣)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두루마기라고 한다. 두루마기는 다른 외투인 창의(氅衣)가 어깨 밑이 터져 세 폭이 따로 도는 것과 다르게 옷 전체가 두루 ‘막혀있다’라는 뜻의 ‘두루막이’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인 두루마기의 형태는 뒷길·앞겉길·앞안길과 소매, 그리고 겉섶·안섶이 있다. 또한 옷고름·안옷고름과 동정·깃 등으로 직령교임식(直領交衽式)이며 소매는 좁았다. 길이는 보통 발목에서 20~25cm 정도 올라오게 한다. 두루마기는 1884년(고종 21) 복제 개혁에 따라 종래의 웃옷인 창의·도포·중치막 등이 폐지되자 웃옷으로 유행하였다.
  • 전국

    추위를 피하기 위해 저고리 위에 덧입는 마고자
    마고자는 마괘자(馬褂子)라고도 하며, 저고리 위에 덧입는 덧옷으로 중국 청나라 때 의복이다. 1887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의 유폐에서 풀려나 귀국할 때 마고자를 입고 온 뒤부터 한국에서도 입기 시작하였다. 마고자는 저고리와 비슷한 형태에 깃과 동정, 고름이 없으며, 양 섶을 여밀 수 있도록 섶에 단추를 달았다. 남성용은 여성용과 다르게 섶을 달고 길이도 여자 것보다 길어서 양옆 아랫부분을 터서 활동성을 좋게 하였다. 마고자의 목둘레는 마고자 안에 저고리를 입었을 때 옷깃이 보이도록 V자 모양이며, 배래는 저고리와 같이 붕어 배래로 되어 있다. 단추는 하나이며, 괘와는 반대로 단추가 달린다.
  • 전국

    추위나 더위를 막기 위해 팔목에 끼는 토시
    토시는 팔목에 껴 추위나 더위를 막는 물건으로 ‘토수’라고도 한다. 원래는 남자들만 착용하였으나 점차 여자들도 착용하게 되어 조선시대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한 치레거리로 자리잡았다. 토시의 형태는 저고리 소매와 비슷하다. 한쪽 끝은 좁고, 다른 쪽은 넓다. 그래서 이를 봉재할 때는 버선처럼 4겹 박음질을 하고, 좌우 구분이 가능하게 만든다. 토시의 종류는 계절마다 소재와 형태가 달라 다양하였다. 토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외국에서 들어온 셔츠나 장갑과 같은 서양의복에 의해 차차 사라졌다. 1950년대 후반에는 노인들 일부만 사용하였으며 현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오늘날에도 등토시는 모시 한복에 받쳐 사용하기도 한다.
  • 전국

    뺨과 턱 그리고 정수리를 가릴 수 있던 방한구, 볼끼
    볼끼는 겨울철에 쓰는 방한구로 뺨과 턱, 그리고 귀까지 모두 감싸고 정수리에서 묶는 간단한 추위막이이다. 볼끼의 용어로 조선 전기에는 한자로 과시·협과로 기록되기도 하였으며, 후기에는 보을리·보을기, 볼기·볼끼 등으로 기록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왔다. 조선시대 볼끼의 재료는 신분별로 차이를 두어 왕실 여성들은 자적색을 사용하고 상궁 이하 궁인들은 백색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전국

    조선시대 남성들이 착용하던 방한모, 휘양(揮揚)
    휘양(揮揚)은 머리부터 어깨까지 덮는 방한모(防寒帽)로 조선시대 남자들이 주로 추운 겨울에 착용하였다. 휘양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정수리 부분을 둥글게 하고 이마 부위에 걸치게 한다. 모자의 아랫부분은 얼굴을 내놓는 부분으로 그 크기는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만 하고 윗부분은 약간 좁게 만든다. 뒤로는 통수와 목을 둘렀으며, 양쪽 볼끼에 끈을 달아 단단히 묶어 찬바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소재에 따라서 휘양은 모휘양(毛揮揚)·목휘양(木揮揚)·양휘양(凉揮揚)으로 구분하며,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 전국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 굴레
    굴레는 조선시대 후기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로 상류층 가정에서 돌쟁이부터 4~5세까지의 남녀 아이가 착용하였다. 굴레는 돌을 맞이한 아기들이 많이 써 ‘돌모’라고도 불리며, 아이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담은 다섯 가지 색의 비단에 화려한 장식을 덧붙여 아이의 쓰개로는 가장 화려하다. 굴레의 형태는 세 가닥 또는 더 많은 가닥을 얽어 정수리인 모부(帽部)를 덮고, 그 밑에 여러 가닥의 드림댕기가 드리워진다. 굴레는 어린이의 쓰개였지만 성인이 착용할 때도 있었다. 딸이 회갑을 맞을 때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딸이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어머니의 무릎에 안기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때 굴레를 함께 썼다.
  • 전국

    조선시대 남녀가 공용으로 썼던 방한모, 남바위와 풍차
    남바위는 조선시대 남녀가 공용으로 썼던 방한모로 '이엄(耳掩)' 또는 '난이(暖耳)'라고도 하며 일명 ‘풍뎅이’라고도 한다. 남바위의 형태는 위가 뚫려 있고 가장자리는 볼에서 둥근 모양으로 끝나는 조바위와 다르게 볼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너비의 모선(毛縇)이 둘려 있다. 조선시대 방한모 중에 남바위와 형태가 비슷한 다른 쓰개로 풍차가 있다.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또 다른 쓰개인 풍차(風遮)는 남바위와 비슷하지만 귀와 빰, 턱을 가리는 볼끼가 모자부분과 이어져 있다. 남바위는 볼끼를 탈착할 수 있지만, 풍차는 볼끼를 사용하지 않을 때 뒤로 제쳐서 끈으로 매야 한다.
  • 전국

    겨울에 부녀자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착용했던 아얌
    아얌은 조선시대 때 부녀자들이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에 쓰는 방한모로 액엄(額掩)이라고도 한다. 아얌의 형태는 머리에 쓰는 부분과 뒤에 늘어지는 큰 댕기로 이루어져, 크게 모부(帽部)와 드림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아얌은 조선시대에 양반가와 일반 부녀자들이 외출용으로 착용하고 때론 장식용 난모(暖帽)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기녀들도 아얌을 일상용으로 착용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 말기에 다른 방한용 모자인 조바위가 등장하면서 차츰 사라졌다.
  • 전국

    발에 감는 좁고 긴 무명천, 감발
    감발은 먼 길을 떠나거나 추위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발에 감는 좁고 긴 무명천으로 버선이나 양말 대신 착용했다. ‘신발’이란 말은 짚신의 ‘신’과 감발의 ‘발’에서 나온 말이며, 감발의 유형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과 보온의 기능을 하는 두가지로 나타난다. 신발이 발달하지 않았고, 방한도구가 없었던 시기에 감발은 손이나 발을 보호하는 유일한 보호용 도구였으며, 따라서 감발은 장거리 여행이나 추위를 막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 12月의 지역인물

12월에 태어난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알아봅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 윤동주는식민지 청년의 상실감과 자아 성찰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어쩐지 겨울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죠.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암살>을 떠올리면 알 수 있듯 남자현은 48세의 나이에도 3.1운동에 참여하고, 무장투쟁을 펼쳤던 강력한 독립의지를 불태운 인물입니다.

평생을 권력에 저항했던 사회운동가 계훈제는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남으며 그의 집터에는 마을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마을 극장이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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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화순군

    고택에서 움튼 예술혼, 화순 오지호 생가
    오지호 화백은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화가, 교육자, 미술이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한국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목이다. 그가 태어난 전라남도 화순의 고택은 1800년대에 지어졌다. 안채 사랑채, 화실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주의적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일본 총독부의 탄압을 받아 한때 고향 집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기도 했다. 생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2005년 개관한 오지호 기념관이 있다.
  • 전남 >화순군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선구자, 오지호
    한국의 서양화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로, 생명력이 충만하고 밝은 우리 자연의 이상적인 모습을 명랑하고 찬연한 색채로 그렸다. 일본에서 인상주의 회화를 배웠지만 이후 한국적 풍토에 맞는 인상주의 미학을 수립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대표작으로 「사과밭」, 「남향집」, 「열대어」, 「항구」, 「무등산」 등이 있다.
  • 광주 >동구

    서양화 대가 모후산인 오지호가 살던 초가집인 광주 오지호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가(家)는 서양화의 대가인 오지호 화백이 1954년부터 1982년까지 살던 초가집이다. 오지호는 광주지역은 물론 한국미술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인물이다. 오지호가는 189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1986년에 전면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동구청은 ‘동구 인문산책길’, ‘오감만족 풍류산책’ 등을 통해 오지호가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 윤동주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때 동시를 쓰기 시작했고, 서울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새로운 길」 등의 대표작을 썼다. 사후 친구들에 의해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상실감과 자아상이 담긴 서정적인 시를 썼다. 현재 그의 시비와 문학관 등은 연세대학교, 교토 도시샤대학, 서울 종로구, 교토 우지강변 등 세계 각지에 세워져있다.
  • 경남 >통영시

    박경리기념관, 통영을 사랑한 문학가가 잠든 곳
    박경리기념관은 통영 출신 고(故) 박경리(1926~2008년) 선생의 문학세계를 알리고, 대표작인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의 배경인 통영을 소개하고자 2010년에 세워졌다. 박경리기념관 전시실은 2층에 마련돼 있는데, 작가의 생애, 서재의 모습, 작품과 친필 원고, 20세기 초 통영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 등을 관람하고, 영상실과 자료실에서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1층은 북카페로 차를 마시면서 고(故)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앞마당에는 박경리 선생의 동상과 문장을 적은 비석이,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는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조성돼 있다.
  • 경북 >영양군

    민족의식 충만했던 시인이자 지사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시 「승무」는 조지훈의 시다. 조지훈은 불교적인 바탕 위에 민족적 정서와 고전미를 시화한 시인이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해방 전 『큰사전』 편찬위원, 해방 이후 『사상계』 편집위원 등을 거치며 민족의식을 공고히 했고, 순수문학과 민족문학을 옹호했다. 고향인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지훈문학관이 건립되었다.
  • 강원 >홍천군

    한말의 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 남궁억
    남궁억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언론인·교육자이다. 그는 내부주사(內部主事), 궁내부 별군직(別軍職), 칠곡부사(漆谷府使)를 역임하고 토목국장(土木局長)을 지내면서 탑골공원을 조성했다. 이후 독립협회에서 활동하고 황성신문 사장으로 취임했다. 양양군수(襄陽郡守)를 지내며 현산학교(峴山學校)를 설립하고 대한협회장, 관동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배화학당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교과서를 편찬했으며 홍천에서 모곡학교(牟谷學校)와 교회를 설립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우물 속 하늘과 맞닿은 공간
    윤동주문학관은 청운동아파트가 철거된 후 쓸모없어진 수도가압장을 개조해서 지은 문학관이다. 윤동주가 종로구 누상동에 잠시 머문 것이 인연이 돼서, 2012년에 문을 열었으며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 중이다. 전시실은 수도가압장의 기존 시설을 가능한 살려서 만들어졌으며, 윤동주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인채’와 천정이 뚫린 ‘열린 공간’, 감옥을 형상화한 ‘닫힌 공간’으로 나뉜다.
  • 서울 >도봉구

    평생을 자유와 평등을 외친 사회운동가 계훈제
    평생을 권력에 저항했던 사회운동가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할 정도의 수재였으나 일제의 징용령을 거부하여 헌병에 체포되었다. 강제노역 후 그는 우리 민족의 현실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평생토록 권력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재야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 항상 흰 고무신을 신고 생활을 했던 그를 기려 도봉구 방학동의 집터는 주민들을 위한 ‘마을극장 흰고무신’이 들어서 있다.
  • 경남 >하동군

    대하장편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경상남도 하동의 작가로 박경리가 있다. 하동에 있는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에는 박경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박경리의 대표작은 『토지』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근대 한국의 역사를 담은 대하장편소설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가 『토지』의 주 무대다. 작품 속에서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낀 평사리의 넓고 비옥한 대지에 최참판댁과 마을 사람들이 생을 기탁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이러한 『토지』의 공간을 실재화해 낸 장소인 최참판댁이 있다. 최참판댁이 건립된 장소는 1985년 처음으로 『토지』를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할 당시 박경리가 최참판댁이 있을만한 장소라고 언급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초가집을 지키는 현명한 소방 대책

겨울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화재입니다. 춥고 건조한 날씨와 늘어난 화기 사용으로 화재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도 대형 화재는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는데요. 소방관이 없던 조선시대에는 과연 어떻게 화재를 진압했을까요?
크고 작은 화재를 잇달아 겪은 세종은 화재 예방과 진압을 담당하는 금화도감을 설치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현재의 소방관에 해당하는 금화군과 멸화군이 속해 있었죠. 우리의 전통 가옥은 짚과 나무로 지은 초가집이라 화재에 매우 취약했고, 한번 불이 나면 수백 채에 불길이 옮겨붙었기에, 이들은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건물을 허무는 쇠갈고리와 도끼를 주로 사용했답니다.
화마의 위협이 컸던 만큼, 불을 다스리기 위한 토속신앙과 풍습도 많이 발달했습니다. 충남 논산에서 소금 단지를 땅에 묻어 바다의 기운으로 화마를 제압하고자 한 '소금단지 화재맥이'가 대표적인 예시죠. 화마와 맞서며 삶의 터전을 지켜온 조상들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통해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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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탄광의 가스 사고와 화재 사고
    탄광 사고 중에서 가스 재해는 가장 잦은 발생 빈도와 사상자를 유발하는 중대 사고이다. 지하 갱내 작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스 폭발이나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44명이 사망하면서 석탄산업 사상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은성광업소 사고도 화재 때문이다. 갱내 공동에 있던 탄산가스가 밀려나오면서 가스질식 사고 같은 특이한 가스 사고도 있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의 소방관 멸화군
    조선의 소방관인 멸화군은 이름 그대로 불을 없애는 군인이다. 멸화군은 화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을 끄는 것 외에도 화재 예방을 위한 활동도 멸화군의 몫이었다. 이들은 순관들과 함께 야간순찰을 돌았는데, 이때 화재 예방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금화(禁火)관련 포고령 역시 이들이 집집마다 전달했다. 멸화군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존속했지만 규모가 축소되면서 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서양의 소방장비를 비롯한 조직들이 도입되었다.
  • 전북 >익산시

    안내판만 남아있는 전라북도 익산의 소방산 봉수대
    소방산 봉수대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소재한 봉화산에 있다. 이 봉수대의 축조 시기는 고려말로 추정하며, 남서쪽에 있는 군산 불지산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동쪽에 있는 광두원산 봉수대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봉수대는 등산로가 조성되면서 파괴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함라면 주민들이 설치한 안내판만이 봉수대가 있었음을 대신하고 있다.
  • 서울 >마포구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수, 금화군
    조선시대 한양에서 불이 나면 최소 100여 채에서 최대 2,000여 채가 불에 타서 없어졌다. 조선의 가옥이 불에 취약했던 것은 나무와 짚으로 된 초가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화재에 관한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렸다. 방화범은 곤장 100대, 3년 유형, 교살형, 참형, 유배 등에 처했다. 세종은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르자 1431년 5월에 우리나라 소방 전담 기구인 금화도감을 설치하고 금화군을 배치한다. 금화군의 화재 진압 장비는 밧줄, 사다리, 쇠갈고리, 도끼 등이었다. 금화군은 열악한 화재 장비로 인해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불난 건물을 쓰러트리는 등 불길이 번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 전북 >순창군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순창 금월리 대각 당산제
    전북 순창 복흥면의 서쪽에 위치한 금월리 대각마을은 오래전부터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오릿대를 세우고 당산제를 지낸다. 대각마을 이외에 순창 지역에서 오리짐대를 세우는 곳은 석보리, 금상리 등 몇 군데가 남아 있다. 이중에서 금월리 대각마을 당산제가 마을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전승되어 왔다. 현재 대각마을 당산제는 제물 준비나 제의 절차 등이 간소화되었지만, 주민들의 당산제에 대한 정성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 충남 >논산시

    화재 예방에 역점을 둔 논산 고산임화 동제와 소금단지 화재맥이
    논산 고산임화 동제와 소금단지 화재맥이와 같은 풍습은 논산시 양촌면 산간 마을에서 주로 전승되었으나, 최근에 들어 빠른 속도로 쇠퇴·소멸하고 있다. 화재맥이는 수시로 마을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화재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다를 상징하는 소금을 통해 자신들의 거주 공간을 지키고자 했던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전통적 풍습이다. 먼저 소금을 산에 묻고 산신제를 지낸다는 점에서 특이한 형태의 동제라 하겠다.
  • 전북 >임실군

    임실 구암리 도깨비제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구암리 마을에서는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마을 제의가 행해진다. 특히 이 마을은 화재로 인한 사고가 빈번했는데 그 이유를 도깨비의 장난으로 생각해 도깨비제를 지낸다. 도깨비제는 시월 섣달그믐날 밤에 지낸다. 우선 풍물패가 제의의 시작을 알린다. 풍물패를 필두로 제관들이 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진설한다. 미리 준비한 돼지머리와 조기, 메밀 시루떡이 제상에 올라간다. 전체적인 내용은 집에서 지내는 것과 유사하다. 제의가 정리되면 제물로 올린 메밀 시루떡을 느티나무 주변에 뿌린다. 도깨비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의례라 하는데 결국 도깨비를 달래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셈이다.

김치의 효능을 알리는 날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입니다. 김치의 날은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김치 소재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각종 재료와 레시피로 수많은 김치 종류가 있는데요. 쌉싸름한 맛이 매력인 고들빼기김치, 톡 쏘는 알싸한 맛의 갓김치, 강화도 특산품인 순무로 만들어진 순무 섞박지 그리고 겨울철에 먹는 동치미 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김치는 여러 가지 음식으로 재탄생하기도 하는데요. 게 혹은 게장 국물을 넣고 만든 김치를 끓여 먹는 게국지부터 갓김치와 함께 해산물과 고기를 곁들여 먹는 여수삼합까지! 정말 다채로운 음식들이 있지 않나요?

김치와 함께하지 않는 밥상은 상상조차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익숙해서 찾아보지 않았던 김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지역N문화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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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한국인의 김치를 만드는 재료 배추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채소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의서 『향약구급방』에 배추가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 고추, 마늘과 함께 4대 주요 채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배추의 대부분은 김치의 주재료로 소비된다.
  • 광주 >남구

    ‘광주김치박물관’, 한국 전통 발효 과학의 홍보대사
    광주김치박물관은 ‘김치’를 주제로 광주김치센터 본관 2층에 자리한 박물관이다. 김치의 역사, 김치라는 단어의 변천사, 김치 담는 재료와 과정, 전국의 다양한 김치 종류, 김치 담을 때 필요한 물품, 김치의 효능과 가치 등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2010년에 개관했다. 상설전시실은 전시 내용에 따라 ‘환영의 장’, ‘김치역사의 장’, ‘팔도김치의 장’, ‘김치체험의 장’, ‘김치탐구의 장’,‘발효음식의 장’으로 나뉜다.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를, 새삼 새롭게 보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
  • 인천 >강화군

    강화도의 특산물 순무로 담근, 순무섞박지
    섞박지는 무, 배추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담근 김치이다. 순무섞박지는 강화도의 특산품인 순무와 새우젓, 고춧가루, 생강, 마늘, 대파 등을 넣어 담그는 섞박지이다. 순무 특유의 씁쓸하고 달큰하며 독특한 향이 각종 양념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 충남 >서산시

    게장 국물을 넣어 지져먹는 김치, 게국지
    게국지는 게나 게장 국물을 넣고 만든 김치를 지져 먹는(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충청남도의 향토음식이다. 요즘 방송에 소개되는 꽃게와 새우가 들어간 해물탕 형태의 게국지는 본래의 모습과 차이가 크다. 게국지는 구수하고 감칠맛도 풍부한 개성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끌고 있다.
  • 서울 >중구

    지금은 볼 수 없는 김장시장의 풍경
    김장은 한국의 오랜 전통이었다. 긴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담가 이웃과 나눠 먹는 즐거움도 컸다. 김장날은 육체적으로 고된 날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김장을 하고 참을나눠 먹는 즐거운 날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김장날은 농민들의 한 해 대목이기도 했다. 1946년 서울시는 전국 도처에서 몰려드는 김장 채소 상인들이 펼친 난장을 정리하고자 김장시장을 열었다. 김장시장은 197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신청자를 받아 여는 형태로 변화되었으며, 이후 농협, 상설시장, 대형마트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김장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산더미러처럼 배추를 쌓아두고 파는 김장시장의 모습은 사라졌다.
  • 전남 >여수시

    갓김치가 이어주는 바다와 고기의 맛, 여수삼합
    우리나라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조합해 먹는 삼합요리가 있다. 광주의 홍어삼합, 장흥의 한우삼합, 여수의 돌문어삼합. 이름만 들어도 각 지역의 음식 맛깔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여수의 맛을 담아낸 여수삼합은 지역에서 해물삼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여수 특산물인 돌문어와 돌산 갓김치를 한국인인 국민 고기인 삼겹살과 함께 불판 위에서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사이좋게 한점씩 올려 한입에 먹으면 삼합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 전남 >무안군

    남도의 쌉싸름한 맛, 전라남도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김치는 소금물에 삭혀 쓴맛을 제거한 고들빼기를 멸치젓국,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의 양념에 버무려 담근 전라남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고들빼기는 산과 들이나 밭 근처에서 자생하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뿌리와 잎을 나물이나 김치로 이용한다.
  • 전남 >여수시

    톡 쏘는 알싸한 남도의 맛, 여수 돌산갓김치
    돌산 갓김치는 여수의 향토음식으로 돌산도에서 재배한 갓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멸치액젓과 생새우 등을 넣어 버무린 김치이다. 돌산 갓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과 알싸한 맛으로 예로부터 궁중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일대의 죽포, 두문포, 봉림, 방죽포의 네 개 마을은 ‘여수 돌산 갓김치 마을’로 지정되어있다.
  • 강원 >정선군

    매콤하고 아삭한 정선 갓
    갓은 잎과 줄기를 먹는 채소이다. 갓을 활용한 음식으로 갓김치가 가장 대표적이다. 매콤한 맛과 더불어 새콤한 맛도 지니고 있으면서 아삭한 식감을 지니고 있다. 갓은 같은 종자라고 하더라도 기온과 해발고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정선의 경우는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배되는 갓은 먹기에 적당한 맵기와 향을 지니게 된다. 갓이 정선의 특산물인 이유이다. 갓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여 노화뿐만 아니라 질병이 발병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강원 >춘천시

    겨울철 물에 담가 먹는 김치, 동치미
    동치미는 무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배, 청각, 쪽파, 갓, 고추, 마늘, 생강 등과 함께 소금물을 부어 익힌 김치이다. 주로 김장철에 담그는 동치미는 옛 조리서에 ‘동침(凍沈, 冬沈)’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름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북부 지방에서는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겨울철 별미로 즐겼고 강원도 지역에서도 막국수 국물로는 동치미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칼국수

따뜻한 곳에 있다가 외출을 하게 되면 찬바람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게 됩니다. 바람을 쐬다 보니 손과 발도 어느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데요. 이렇게 몸이 차가워질 때는 따끈한 국물 요리를 먹어주면 몸도 따뜻해지고 체온도 올라가게 되어 추위를 조금이나마 빠르게 없앨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 따끈한 국물 요리를 찾게 되나요? 그렇다면 쫄깃한 면발과 얼큰 담백한 맛을 내는 칼국수로 든든하게 속을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특히 겨울에는 동지가 있는 만큼 팥을 이용하여 만드는 팥칼국수를 많은 분들이 즐겨 드시는데요 팥과 국수를 함께 먹으면 비타민B1이 풍부해져 탄수화물 대사는 물론 곡류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주어 좋답니다~ 술자리가 많을 때는 장칼국수 한 그릇으로 해장해보세요~ 맵고 칼칼한 맛으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답니다. 단출한 모양새지만 구수한 국물의 맛을 자랑하는 멸치육수 칼국수는 칼국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칼국수 요리로 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추위로 덜덜 떠는 몸, 따뜻한 칼국수 국물로 따뜻하게 만들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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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노원구

    다양한 국수를 골라 먹을 수 있는 공릉동 국수 거리
    보통 전통과 다양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허나 전통의 멸치 국수 가게가 서로 어울러져 경쟁하며, 저마다의 특징과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공릉동 국수거리에 오면 다양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통이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1980년 후반 시작한 「원조 멸치국수」를 시작으로 이 일대에는 많은 국수가게들이 성업하고 있으며, 나름 칼국수나 왕만두, 비빔국수, 전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 강원

    저온숙성 고추장으로 끓여낸 강원도의 맛, 장칼국수
    강원도의 3대 별미로 꼽는 장칼국수는 예로부터 장류가 발달한 강원도 지역의 특색이 녹아있는 투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다. 보통 국수의 기본은 해물육수인데, 강원도 내륙의 산촌지방에서는 멸치나 다시마를 구하기가 힘들어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육수를 만들고 얼큰하게 끓여낸 것이 바로 장칼국수다. 냄비에 애호박과 양파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여기에 고추장과 면을 풀어 만드는 단순한 음식이지만, 구수하고 오묘한 맛을 낸다. 투박함 속에 녹아 있는 깊은 맛에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자 하던 어머니들의 정성이 담겨있다.
  • 강원 >영월군

    '질릴 정도로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영월 꼴두국수
    꼴두국수는 메밀가루로만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썰어 만든 면을 다시마ㆍ멸치ㆍ무로 우려낸 육수에 넣고 끓인 다음 김과 참깨 등의 고명을 얹어 내는 강원도 영월군의 향토음식이다. 국수 이름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하는데 메밀로 만든 국수를 하도 지겹게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뜻에서 ‘꼴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대구 >달성군

    4대째 이어지는 국수 종가, 대구의 '동곡할매손칼국수'
    동곡할매손칼국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 장터 마을에서 강신조가 처음 문을 연 가게이다. 1950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국밥집이었고, 칼국수로 업종을 변경한 것은 1975년이다. 동곡할매손칼수는 강신조의 며느리인 석종옥이 가게를 이었고, 지금은 강신조의 증손자인 김동형이 가게를 이어 4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국수종가로, 이 지역 칼국수의 원조로, 시장의 상인과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김동형은 명인장을 한국 전통 문화 보존회로부터 받았다.
  • 대구 >중구

    진한 멸칫국물에 끓여낸 대구 칼국수의 대명사, 누른국수
    누른국수는 밀가루에 적당량의 콩가루를 배합한 반죽을 얇고 널찍하게 밀어서 만든 면을 진한 멸칫국물에 야채와 함께 넣어서 끓여낸 대구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칼국수 반죽을 홍두깨로 눌러서 만든다고 하여 ‘누른국수’라는 명칭이 붙었다.
  • 경기 >화성시

    “갯고랑 넘어야 먹을 수 있는 바지락칼국수, 그 깊은 시원함”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면적 0.98㎢)이다. "저비섬", "접비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북쪽의 자갈밭과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모두 갯벌인 제부도에서는 예전에는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갯벌에 숨은 바지락을 한 양동이씩 캐왔다. 전국적으로 바지락이 생산되고 있지만, 서해안의 바지락이 제일 맛있다.
  • 충남 >공주시

    예전에 칼국수는 양반이 먹던 고급음식이었다.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 펴낸 다음, 겹쳐 말아 가늘게 썰어서 장국에 넣어 끓인 요리이다. 어떠한 재료로 국물 맛을 내느냐에 따라 그 종류도 맛도 달라지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 구하기가 쉽지 않아 밀가루보다는 메밀을 이용하여 만든 국수가 일반적이었다.
  • 충남 >아산시

    도마 위의 무술(武術) 그리고 손칼국수
    충청남도 온양온천역에서 가까운 온양온천 전통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출입구 앞에서 흰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손칼국수 집이다. 손칼국수는 더울 때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을 식혀주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는 언 몸을 녹여주니 사계절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 전북 >전주시

    팥죽과 칼국수의 따끈한 만남, 전라북도 팥칼국수
    팥칼국수는 팥물을 끓여 만든 앙금에 밀가루 또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한 칼국수를 넣고 끓여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싱건지, 묵은 김치 등과 함께 먹는 전라북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웠던 시절의 허기를 달래주는 식사였지만 현재는 영양식 또는 별미로 찾는 음식이다.
  • 제주 >제주시

    칼국수가 아닌 ‘칼국’이랍니다, 제주 꿩메밀칼국수
    꿩메밀칼국수는 꿩육수에 메밀반죽을 얇고 넓게 썰어 넣어 만든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벼농사가 적합하지 않은 제주의 풍토를 배경으로 꿩고기 특유의 고소함과 메밀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음식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다, 한글날

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으로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부터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에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 시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많이 발전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물시계도 이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측우기 또한 세종 시기에 발명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농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세종은 법전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요, 악보의 역할을 하는 정간보를 창안하고 국가 의례를 위한 음악인 '여민락'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통해 우수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우리말을 좀 더 사용하는 하루가 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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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아산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충청남도 아산이 본관이다.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을 배우러 명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장영실이 귀국 후 세종은 그를 노비에서 해방시키고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지원과 신뢰하에 본인의 실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장영실은 최고의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와 해시계 앙부일구 등을 만들어내며 조선시대 과학기술 문화의 꽃을 피웠다.
  • 울산 >중구

    최현배를 기리고 한글사랑을 알리는 ‘외솔 한글 한마당’
    ‘외솔 한글 한마당’은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낸 최현배(1894~1970년) 선생을 기리고 한글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치러지는 인물축제이면서 한글 확산 목적축제이다.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는 울산에 있는 외솔 최현배의 기념관과 그 일대이다. 공식행사, 특별행사, 학술경연대회, 공연행사, 전시체험행사로 나누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해서 행해진다.
  • 전북 >정읍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 권승욱
    권승욱은 고창고보 스승인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문에 1년 옥고를 치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938년 6월부터 1957년 한글날까지 『조선말 큰사전』여섯 권이 발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조선어사전 편찬에 헌신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언어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는 한글운동을 창시했던 주시경(周時經)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國語硏究學會)에 기원을 둔 학술운동단체이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조선언문회(1911년), 한글모(1913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에는 조직을 정비하고 1949년 한글학회로 재탄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0~1930년대에는 한글날 제정·기관지 『한글』 창간·조선어강습회 개최 등의 활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및 한글맞춤법을 비롯한 표준말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0월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검거되어 옥중에서 2명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는 등 해방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 강원 >강릉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허균
    허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허균은 명문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다. 늦게 얻은 벼슬길에서 여러 죄명으로 좌천당하고 유배당하다 결국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이다.
  • 전남 >순천시

    국내 최초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발행자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K팝그룹 BTS의 음악에는 때로 국악장단과 ‘얼쑤’, ‘지화자좋다’와 같은 추임새가 어우러진다.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의 접점을 찾아 음악을 들려준다. 이처럼 현대의 팝그룹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발견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들 이전에 일찍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해온 이가 있다. 바로 잡지<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1936~1997년)이다. 그가 발간한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잡지이며 최초의 가로쓰기 잡지였다. <뿌리깊은나무>의 가치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 경남 >의령군

    조선어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이극로
    이극로는 영화 <말모이> 상영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본의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한글 운동을 하였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말과 철자를 통일하는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위장 친일행동을 하고, 이우식과 정세권 등에게 사전 편찬에 후원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는 등 오직 사전편찬만을 위해 헌신했다.
  • 충남 >공주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월인석보 목판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갑사(甲寺)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한글로 발간한 불경이다. 갑사에 소장된 이 목판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월인석보 목판으로서, 25권 중 21권 46매만 남아 있다. 15세기 국어 생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전국

    우리나라에 맞는 최초의 농사책, 『농사직설』
    『농사직설』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초와 변효문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책이다. 농사직설은 우리 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기존의 중국에서 들어온 농서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장조사에 의한 연구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사와 맞는 정보를 담고 있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과 함께하는 여주 한글시장
    여주제일시장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전통 5일장이 열리던 상설시장이다. 이곳이 2016년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한글을 테마로 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매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 때는 상설시장에 덧붙여 가판이 서면서 농수산물과 살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여주한글시장 안에는 세종대왕상, 한글빵 카페, 한글 벽화 등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추석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닌 추석은 순우리말로 한가위라 불리는데요.
오곡이 익는 계절 사이에 있는 명절인 만큼 풍요를 기리는 세시풍속도 행해진답니다.
추석에는 어떤 세시풍속이 행해지는지 알아볼까요?

추석은 농사를 마감한 한가한 시기이자 풍요를 자랑하는 때로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강강술래,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의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했는데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도 해 날이 쌀쌀해져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추석 때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했답니다.그리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기 위해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준비하며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손의 도리를 다합니다.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추석, 맑은 하늘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흥겨운 명절을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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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시

    어깨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는 팽성읍 와야골 마을에서 8월 추석에 수수깡으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놀았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이다. 거북 신앙에서 유래하며, 마을 주민의 안녕과 복을 비는 목적을 지니며 세시놀이로 전승되다가 중단되었으나, 근래에 다시 복원되었다.
  • 충남 >당진시

    볏가릿대를 세워 한 해의 풍년을 비는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
    당진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놀이다. 정월대보름에 대략 8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놀이다. 놀이는 총 여섯마당으로 진행된다. 볏가릿대는 벼, 보리, 조, 팥, 기장 등 오곡을 매달고 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대동샘 옆에 세우고, 2월 초하룻날 허물면서 한 해의 풍년을 점친다. 거북이도 만들어 그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동네를 돈다. 이 놀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고 장수를 기원하는 놀이이다.
  • 경기 >이천시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는 청소년들이 거북이 형상을 뒤집어쓰고 노는 놀이로 추석날 벌인다.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밭농사와 관련이 깊다. 아이들이 남의 집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집주인이 떡과 음식을 내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경북 >청도군

    청도의 색다른 볼거리, 청도소싸움놀이
    청도소싸움은 예전에 머슴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점차 마을간 집단적인 소싸움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는 현대식 소싸움경기장에서 상금을 걸고 체급별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동물 싸움 형태로는 유일하게 전통민속놀이로 인정받아 해마다 봄철에 청도소싸움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 전남 >진도군

    보름달 뜨는 밤 아낙들의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남서쪽 해안지역에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졌던 노래와 무용이 혼합된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다.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마을처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둥글게 그리고 돌며, 노래를 부른다. 이 놀이는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과식하게 되는 추석,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토란국
    추석상에 토란국은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土卵)을 넣고 끓인 국으로 토란탕, 또는 토란곰국이라고도 한다. 토란국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에도 추석음식으로 등장한다. 토란은 위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소화를 돕고 변비예방에 효과가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토란으로 만든 토란국은 다양하고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한 추석에 꼭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 전국

    명절을 즐기던 삼국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신라 유리왕대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새해가 되었을 때 떡을 해먹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해서 명절의 기원은 농경의례에서, 또 명절음식의 기원은 농사지은 곡물의 가공을 통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국기대부터 지내기 시작한 명절도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 전국

    햇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차례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추석차례라고 한다. 본래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차례상이 기제사와 같은 제사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신에 차례상에는 시절음식이 올라간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아직 곡식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벼 한줌을 베어서 밥 대신에 놓기도 했다. 햇곡식을 수확하지 못한 경우에는 추석 이후인 9월 9일(중구)에 차례를 지냈다.
  • 전국

    햇곡식 못 구한 추석에는 9월 9일 중구차례
    추석 무렵에도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경우, 차례를 지내는 날짜를 미루어 9월 9일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이를 중구차례라고 부른다. 어떤 지역에는 추석차례보다 큰 명절이었던 중구차례는 추석이 연휴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중구차례에는 후손이 없이 죽는 사람이나 객사한 사람, 기일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주로 지냈다.
  • 전국

    온가족이 함께 추석을 준비하는 벌초
    조상님의 묘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잘 정리하는 것을 벌초라 부른다. 벌초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묘를 돌보고 살피는 일을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행으로 인식하며, 벌초가 안된 묘는 자손이 없는 묘로 여겨지곤 했다.

경축 고조선 건국의 날, 개천절

개천절은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개천'은 하늘이 열렸다는 뜻으로,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나라를 세운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개천절은 단군조선의 건국과 문화민족으로의 새로운 탄생 모두를 아우르는 국가적 경축일이자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천절이 10월 3일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의 이념과 이치로 다스리는 세계라는 뜻의 '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음력 10월 3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개천절을 맞아 단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갈까요?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번째 임금입니다.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었을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단군을 마을신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개천절을 통해 한민족의 긴 역사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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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곡성 단군전
    곡성 단군전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당 신태윤이 1914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처음 건립했다. 백당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대에 곡성에 돌아와 오늘날의 단군전 자리에 새롭게 단군 사당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셔다 놓았다. 역사학자였던 백당은 가는 곳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단군전을 지었다.
  • 서울 >용산구

    마을신이 된 고조선의 건국 시조, 단군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이다. 단군에 관한 기록은 『위서(魏書)』,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전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데에서는 일치한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다.
  • 인천 >강화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 전북 >익산시

    고조선 기준왕의 전설이 깃든 익산 낭산산성
    익산 낭산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13호로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산48번지 해발 162m의 낭산산 정상에서 서쪽 골짜기 일부를 감싸고 축성된 테뫼식과 포곡식의 복합산성이다. 낭산산성은 마한성(馬韓城)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구성(舊城) 또는 북성(北城)으로도 불린다. 이 성이 마한시대에 축성된 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보아 백제 시기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전국

    하늘과 땅을 품고 고조선을 연 단군왕검
    단군왕검에 관한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고조선의 내력을 밝히는 건국신화이며,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이기도 하다. '단군신화'에는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라는 성스러운 땅에 내려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의 터전을 만들고, 그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했다고 나온다.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환인-환웅-단검으로 이어지는 부계 3대를 중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의 결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전국

    단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을까? 고조선 농업
    고조선은 BC 108년까지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존재한 한국 최초의 국가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신시와 고조선사회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고조선 시기에 농경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전남 >보성군

    나철, 대종교로 나라를 찾아라
    나철은 대종교를 다시 일으킨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다. 과거에 급제를 한 후 그는 관직에 나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귀향해 10년간 수행을 한다. 1904년 포츠머스조약, 러일전쟁, 을사조약 등이 일어나자 애국계몽운동, 민간외교운동, 을사오적 암살 시도 등을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는 애국계몽운동이나 매국노 암살로는 국권을 회복할 수 없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것, 즉 단군신앙으로 단결해서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종교운동만이 국권을 회복할 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종교를 중광한 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포교활동과 국학운동, 독립군 양성 등을 한다.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자 순교로서 항거한다.

가을의 시작, '추분'

'추분(秋分)'은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매년 9월 22~23일 경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다가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기점이 되고, 농촌에서는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이는 가을걷이를 합니다. 가을의 풍습과 음식 등 이야기를 읽으며, 가을을 맞이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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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이천시

    추수철 맛있는 이천 햅쌀 만나러 오세요! '이천쌀문화축제'
    이천쌀문화축제는 임금님께 쌀을 진상하던 이천에서 개최되는 잔치한마당이다. 이천쌀문화축제는 이천농업인축제로 시작하여 2004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천쌀문화축제는 풍년마당, 공연마당, 동화마당, 놀이마당, 농경마당, 햅쌀거리 등 11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알린다. 가마솥밥, 가래떡, 막걸리 등 쌀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고, 햅쌀을 구입할 수 있다
  • 전남 >목포시

    갈치조림과 갈치구이만 있다면 밥 한공기 꿀꺽!
    갈치는 가을을 대표하는 어종이다. 8월부터 12월까지가 갈치의 철이다. 제주도에서 낚시로 잡히는 것은 은갈치, 목포에서 인간망이나 유자망으로 잡히는 갈치는 먹갈치라고 부른다. 대량으로 잡기 때문에 갈치끼리 서로 부딪쳐 은비늘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몸통이 크고 굵은 갈치는 구이용으로 쓰고, 그보다 작은 것은 조림을 해 먹는다. 갈치 조림을 할 때는 쌀뜨물을 넣으면 비린내가 적어진다.
  • 전국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베기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더 이상 물을 대지 않고 논에 남아 있는 물도 빼서 논을 말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벼의 낱알이 마지막까지 잘 여물고 또 일정 부분은 마르게 하기 위함이다. 가을이 되어 벼가 고개를 숙이면, 곧 벼를 벤다. 벼베기는 수확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통사회에서는 낫을 이용하여 벼룰 거뒀다. 현재는 콤바인으로 수확을 하며,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만 낫을 이용하여 수확을 한다.
  • 전남 >영광군

    세계 최대 상사화 군락지에서 열리는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는 불갑산(516m)은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사시사철 아름다운 야생화가 핀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번갈아 피는 까닭에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전설이 전해지는 꽃이다. 영광군에서는 상사화군락지인 불갑산의 자연환경을 토대로 매년 9월 불갑사 관광지 일원에서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상사화 꽃길을 따라 걷고, 소원등을 달며, 상사화 화관 만들기, 상사화 캐리커처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 충남 >홍성군

    새우를 맛깔나게 즐기는 ‘홍성남당항대하축제’
    충청남도 홍성군 남당항은 천수만의 끝부분에 위치한 청정 어항으로 과거로부터 대하잡이로 유명세를 얻었다. 대하는 1960년대까지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으나, 그 후 국내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새우는 크기에 따라 대하, 중하, 세하로 구분되는데, 이중 대하는 크기가 크고 맛도 좋아 구워 먹는다. 가을철 대하가 생산되는 철이면 천수만에 남은 몇 안되는 포구인 남당항에서 축제판이 벌어진다. 해마다 9~10월경에 대하도 즐기고, 대하를 잡아 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강원 >양양군

    송이버섯 나는 계절엔 양양으로! '양양송이축제'
    양양송이축제는 양양송이를 주제로 한 체험형 축제이다. 송이버섯은 귀한 식재료라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은 '싯가'일 때가 많다. 양양송이축제에서는 버섯채취 체험과 강원도 산간사람들의 전통놀이였던 탁장사대회를 열고, 대중적인 버섯요리와 고급 송이요리를 선보인다. 대자연 속에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양양송이축제는 참살이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원 >양양군

    하늘이 내리고 신선이 먹는다는 송이버섯 본연의 맛, 송이밥
    송이버섯은 소나무 아래에서만 자라는 특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성장 조건이 까다로운 송이는 인공재배가 불가능하고 채취 기간도 일 년에 추석을 전후로 20일 정도에 불과한 고가의 식품이다. 강원도 양양은 송이버섯의 전국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다양한 송이 요리 중에서도 송이밥은 쌀과 찹쌀, 잡곡, 대추, 밤 등을 섞어 밥을 지은 후 송이를 넣고 잠시 뜸을 들여 먹는 음식으로 송이 본연의 향과 식감을 느끼기에 최고의 음식으로 손꼽힌다.

옛적에 신던 여름 신발, 나막신

'딸깍딸깍'

어? 무슨 소리죠? 아하, 나막신이 바닥과 부딪혀 나는 소리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나막신을 신어본 적이 있나요? 요즘 신발은 대부분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나막신처럼 나무로 만든 신발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의 영향으로 나막신은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리다 1940년대 전후로 사라졌거든요. 나막신은 원래 조선시대 말기에 짚신과 함께 대중적으로 신는 신발이었다고 해요. 가죽신이 비싸서, 비오는 날 진흙이 되어버린 땅에서 신기 위해 쓰였다고도 합니다.

나막신에 대해 알아보니 과거에 또 어떤 신발들을 신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삼국시대 이전에는 풀과 가죽으로 만든 이(履)와 화(靴)라는 신발을 신었다고 해요.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은 앞코와 뒤축이 장식된 낮은 높이의 신발인 당혜를 신었다고 합니다. 또 미투리라는 질 좋은 짚신이 있었는데요. 이는 삼이나 모시, 노끈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해요. 정말 다양한 신발들이 있었죠?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 혹은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여러분은 어떤 신발을 신으시나요? 신발 젖을 걱정 없는 장화나 통풍이 잘되는 샌들을 많이 신으실 텐데요. 장화와 샌들을 신을 때 과거 조상님들이 신었던 나막신도 한번 떠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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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비오는 날 신는 나막신
    나막신은 비 오는 날 진흙땅에서 신기 위해 한 덩어리의 목재를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발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가 올 때는 물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도 신었다. 1910년 이후 고무신이 등장하자 경쟁에서 밀려 1940년대를 전후하여 거의 사라졌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전국

    비 오는날 또는 진 땅에서 신는 신발, 나막신
    나막신은 비오는 날 진 땅에서 신기 위하여 통나무를 파서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이다. 나막신은 나무로 신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두껍고 큰 목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은행나무·오동나무·피나무·소나무·오리나무처럼 제작이 쉬운 나무를 파서 신과 굽을 통째로 만들었다. 목재의 겉이 마르지 않도록 기름을 칠하기도 했다. 나막신은 신분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신었다. 굽이 높아 비에 젖어 질어진 땅을 걸어다니 좋았으나, 무겁고 활동성이 떨어져 먼 길을 가거나 말을 탈 때는 착용하지 않았다. 맑은 날에도 많이 신었으며, 굽이 닳으면 새 굽을 바꿔 달았다고 한다. 나막신은 이처럼 널리 신겨지다가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으로 인해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려 1940년대를 전후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 전국

    구름무늬가 새겨진 신발, 운혜(雲鞋)
    운혜(雲鞋)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자가 신는 신으로 신코[신발 앞쪽의 뾰족한 곳]와 뒤축[발 뒤쪽의 둥그런 부분 중 두둑한 맨 뒤쪽의 가운데]에 다른 색의 무늬를 장식한 신발이다. 신발 바닥에 짐승 털로 만든 조각인 담(毯)을 깔아 따뜻하다는 의미에서 ‘온혜(溫鞋)’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신발의 앞쪽 모양이 제비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제비부리 신’이라고도 불린다. 운혜는 앞코에 죽엽문(竹葉紋)을, 뒤축에는 굼벵이 형태의 장식을 붙여서 마무리한다. 이러한 형태는 개화기 개발된 고무신에 그대로 반영되어 최근까지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운혜는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감과 날렵한 곡선 형태가 어우러져 한국적 미의 아름다운 외양을 나타내고 있다.
  • 전국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의 신발, 당혜
    당혜(唐鞋)는 조선시대 부녀자가 신던 가죽신으로, 당초문(唐草文)으로 앞코와 뒤축을 장식한 낮은 높이의 신발이다. 조선시대 여자의 신으로는 당혜⸱온혜(溫鞋) 등이 있었는데, 당혜는 좋은 집안인 양갓집 부녀자가 신었고 온혜는 일반 백성 집안의 부녀자가 신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무렵 들어와 조선시대 말엽까지 신었으며 ‘당혜’라는 명칭은 당초문(唐草紋) 장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혜의 일반적인 형태는 남자용 신발보다 앞코가 더 뾰족하게 올라가 있다. 또한 현대의 고무신처럼 신울의 간격이 좁아 오랫동안 신고 걷기는 불편하였다. 그리고 신발의 오른쪽, 왼쪽의 구별이 없었다. 당혜의 신코에서 뒤축으로 이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당혜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다른 나라의 신발과는 구별되는 조선시대 특유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화혜장
    화혜장은 전통 신발을 만드는 장인이다. 조선시대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가죽으로 만든 ‘갖신’을 신었다. 이러한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이 ‘화혜장’이다. 전통 신발 제작은 가죽을 주재료로 하여 수십 번의 제작공정을 거쳐 이루어질 만큼 고도의 기술과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요구된다.
  • 전국

    남방계와 북방계의 신발, 이(履)와 화(靴)
    이(履)는 신목이 짧은 신의 총칭으로 신발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남방족계의 신이며, 화(靴)는 장화와 같이 신목이 높이 달린 신으로 방한, 방침에 적당하여 무풍적인 북방계의 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두 종류의 신을 혼용하여 착용했기 때문에 먼저 생긴 신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고유 복식이 북방호복 계통이므로 고유의 신은 목이 긴 화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 이전에는 이미 풀과 가죽을 이용한 신을 신었으며, 부여의 초탑, 마한의 초갹, 초갹답, 초리 같은 다양한 신의 종류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의 신발이 발달하였다.

가을볕 받으며, 누정 산책

우리 지역 누정의 가을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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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철야대동계의 중심지, 나주 만호정
    만호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45호이다. 고려 초기에 원일정이 있던 자리에 조선 전기의 무신 서지(徐祉:1468~1537)가 무송정이라는 정자를 창건하였다. 이후에 정자명은 쾌심정으로 고쳐졌으며, 1601년(선조 34)에 임진왜란으로부터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영평정으로 개칭하였다. 1774년(영조 50년)에는 영산강의 조수를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만호정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호정을 중심으로 향약과 동규가 마련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 전남 >담양군

    천상의 화원, 담양 명옥헌
    담양 명옥헌은 배롱나무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에 아들 오이정이 아버지 오희도가 죽은 후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누정이다. 계곡 물소리가 ‘옥구슬이 부딪쳐 깨지는 듯 맑은 소리’ 같다는 의미의 명옥헌은 배롱나무꽃이 필 때쯤이면 천상의 화원이 된다. 담양의 다른 누정과 달리 관련된 문학 작품이 많지 않지만 자연 경관 만으로도 상쇄하고 남음이 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인간과 하늘이 교감하는 작은 우주,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 창건 당시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편전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작은 누각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누각은 기울어지고 너무 좁아서 실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경복궁 수리를 명하면서 경회루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412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경회루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돌기둥만이 남았다. 고종 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 경북 >영주시

    최초의 서원에 지어진, 영주 소수서원 경렴정
    경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 자리한다. 경렴정은 다른 서원의 누정과 다른 점이 많다. 경렴정은 용도나 양식을 볼 때 누각이 아니라 정자의 형태이고, 다른 서원의 누각과 달리 서원 밖에 세워져 있다. 정자에는 ‘경렴정’이라 쓴 두 개의 편액과 신재 주세붕과 퇴계 이황이 지은 시를 비롯한 여러 현판이 걸려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형제간의 우애가 느껴지는, 안동 백운정
    백운정(白雲亭)은 안동을 가로지르는 반변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졌다. 지금은 임하댐 건설로 임하호가 펼쳐져있다. 흰 구름이 머무는 정자. 강 건너로는 개호송 숲과 의성 김씨 동족마을의 고택이 보이는 수려한 곳이다. 일대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金守一)이 1568년 지은 정자이다. 김수일은 평생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백운정은 동생인 학봉 김성일(金誠一)에 의해 더 알려졌다. 김성일은 백운정에 머물며 많은 시를 남겼다. 미수 허목이 전서체로 쓴 ‘백운정(白雲亭)’ 편액이 정자의 기품을 더해준다.
  • 충북 >제천시

    벗들과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청풍 응청각
    청풍 응청각(凝淸閣)은 청풍 관아의 부속 건물로 공무로 내려온 관인이 머물던 객사였다. 응청각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였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응청각도 청풍 관아의 금병헌·한벽루·금남루 건물과 함께 현재의 자리로 사이좋게 이전되었다. 문루인 금남루에서 보면 동헌인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나란히 서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퇴계 이황과 같이 응청각에서 유숙하면 지은 시가 많이 있다.
  • 전남 >순천시

    신선들의 놀이터, 순천 선암사 강선루
    순천 선암사 강선루(降仙樓)는 다른 사찰과 달리 문루 기능이 큰 2층 누각이다. 강선루는 좁은 지류가 흐르는 다리 위에 지은 문루여서 다른 누각과 구조가 많이 다르다. 강선루 1층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맑고 깊은 계곡 옆의 강선루와 보물로 지정된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같이 있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선암사(仙巖寺), 강선루(降仙樓), 승선교(昇仙橋)’ 모두 신선과 연관된 이름이다. 온통 신선들의 놀이터다.
  • 전남 >완도군

    윤선도와 송시열의 엇갈린 운명,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는 1637년 이후 보길도에 부용동 원림인 ‘세연정 – 낙서재 – 동천석실’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 세연정(洗然亭)은 두 곳의 인공 연못 사이에 지은 정자이다. 사람의 손이 더해져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곳이 세연정이다. 대청마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멋진 액자 속의 명화이다. 보길도에는 남인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던 서인 송시열의 흔적이 함께 남아있다.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가다 풍랑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그는 보길도 끝 암벽에 죽음을 예감하듯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새겨놓고 그해 죽었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낭만 충전!

어느덧 2025년도 끝자락에 접어들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늘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밀려오곤 하죠. 숨 가쁘게 달려온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가 대견하다가도 문득 놓쳐버린 기회들에 아쉬움이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한 해가 지나가기 전에, 하루의 해가 저무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속 깊이 담아두었던 아쉬움들을 저 석양 너머로 떠나보내는 건 어떨까요? 온 세상이 붉게 물든 장관을 마주하면 들떠 있던 마음도, 무거웠던 걱정도 차분하게 가라앉을 거예요. "모든 일은 이렇게 지나가기 마련이구나." 작은 위로와 함께 말이죠.
전국 곳곳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찾아가기 좋은 낙조 명소들이 있습니다. 경남 사천시 실안낙조는 죽방렴과 바다, 섬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석양으로 유명합니다. 충남 태안군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는 두 바위로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 광경이 서해안 3대 낙조로 손꼽히죠.
올 한 해도 수고한 나를 위해, 2025년을 후회 없이 떠나보내기 위한 시간을 선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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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사하구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지점,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다대포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위치한 다대포는 1971년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부산에 있는 네 개의 항구인 북항, 감천항, 다대포항, 남항 중 하나로, 본래는 목재 화물 부두였다. 낙동강 하구에 있는 다대포항은 수심이 2~20m로 얕고, 항역도 좁아 선박을 정박하고, 피항하기에 적합하다. 고대국가로부터 왜적이 출몰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영이 설치되었다. 을숙도 철새도래지와 감천동 항구 사이에 있으며, 다대포항 인근에서 어획한 고등어·삼치·방어 등의 어물을 판매한다. 항구에는 860여 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으며,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만 2,500명으로 어업 비중이 높다. 주변에 기암괴석이 많고, 숲이 우거져 있으며,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과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낙조분수 등의 명소가 있다.
  • 경기 >화성시

    수도권 요트의 천국이 된 화성 전곡항
    화성시 전곡항은 서울 근교에 위치해 요트나 보트를 타러 온 이들이 찾는 지방어항이다. 수많은 보트와 요트 덕에 이국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국 최초 레저 어항 시범지역으로 다기능 테마어항으로 선정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당성으로 불렀는데 당성은 삼국통일의 전초기지이자 중국의 선진문물이 유입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방파제를 건설해 24시간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크고 작은 요트 200척이 정백해 있다. 방파제 끝에는 붉은 색의 등대도 명물 중 하나이며, 이 곳에서 보는 낙조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화성 일몰 명소로 손꼽힌다.
  • 인천 >강화군

    아름다운 서해 낙조와 기도 성지로 유명한 인천 보문사
    석모도 낙가산에 자리한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 사찰의 하나로, 635년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회정이 창건했다고 한다. 사찰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석굴에는 23명의 나한을 모시고 있는데, 삼산면에 살던 어부가 노스님의 현몽에 따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불상을 안치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보문사에는 등공양 중 실수로 깨트린 옥등잔에 관한 설화도 전해진다. 보문사에는 기도 성지로 유명한 마애관음보살상과 일반 맷돌보다 큰 화강암 맷돌이 있다.
  • 충남 >태안군

    낙조가 아름다운 명승지 태안군 안면읍의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가 소재한다.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는 안면읍 꽃지해수욕장에 위치하며, 2009년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다. 꽃지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고 수심이 완만하며, 알맞은 수온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사계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특히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 일몰 광경은 서해안의 3대 낙조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 경남 >사천시

    기존의 8경에 용두공원과 청룡사 겹벚꽃을 추가한 사천 9경
    경상남도 사천시에서는 2002년에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사천 8경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후 추가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있었다. 이에 사천시에서는 다시 주민들 의견을 모아 2023년 3월에 사천 제1경을 ‘창선·삼천포대교’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인 ‘삼천포대교와 사천바다케이블카’로 변경하고 ‘용두공원과 청룡사 겹벚꽃’을 새롭게 추가하여 현재 사천시는 모두 9경이 선정되어 있다.
  • 경남 >진주시

    촉석루와 의암, 해돋이와 노을이 어우러진 진주 8경
    경상남도 진주시는 오래전부터 진주 12경, 진주 10경이라고 해서 지역의 절경을 자랑하였으나 지역이 개발되고 자연이 훼손되면서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에 지역의 뜻있는 분들의 발의로 시민들이 뜻을 합해 1997년에 새로운 진주 8경 선정을 추진하면서 후보지를 공모하고 심의하여 1999년 10월 8일에 이르러서 ‘진주 8경’을 제정·공표하였다. 그 결과 제1경은 진주성 촉석루, 제2경은 남강 의암, 제3경은 뒤벼리, 제4경은 새벼리, 제5경은 망진산 봉수대, 제6경은 비봉산의 봄, 제7경은 월아산 해돋이, 제8경은 진양호 노을 등이 선정되었다.
  • 전북 >김제시

    바닷가에 위치해 낙조가 아름다운 김제시 진봉면의 망해사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에 ‘진봉산 망해사’가 위치한다. 진봉산은 높지 않은 산이다. 그렇지만 진봉산 망해대에 오르면 서쪽으로 ‘서해’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금만경평야’가 내려다보인다. 망해사가 위치한 곳은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서해의 일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승지이므로 망해사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망해사는 사찰로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명승지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 전북 >익산시

    낙조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익산의 ‘웅포곰개나루’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에 있는 나루로, 충청남도 한산면 신성리와 금강을 가로질러 연결된다. 곰개(熊浦)라는 지명은 지형이 곰이 금강의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곰개나루는 서해의 해산물이 모이는 집산지이며, 조선 전기에는 세곡을 모으는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낙조의 섬, 군산의 장자도
    장자도는 고군산군도의 작은 섬이지만 천혜의 항구와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어서 예전에는 어업으로 풍요로운 섬이었다. 현재 어장은 예전만 못하지만 다리가 놓이면서 어업보다는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드라이브 코스의 마지막 지점으로 장자도에 들어와 고군산도의 바다를 둘러보며 걷다 보면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 장자도에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억울하게 바위가 되어버린 장자할머니의 슬픈 설화가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