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포스트

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울산 울주]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더보기
  • 울산 >울주군

    임진왜란 때 의병항전지 언양천전리성
    언양천전리성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9호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해발 297m의 산성산(山城山) 정상부를 중심으로 석성을 축조한 테뫼식 산성이다. 이곳은 울산에서 밀양으로 연결되는 24번 국도와 경주와 양산을 잇는 35번국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동해안에서 울산지역을 거쳐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언양천전리성은 언양읍성과 함께 언양지역의 방어체제를 구축했던 성으로 고대로부터 주로 왜구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추정한다.
  • 울산 >울주군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울산 언양 미진이용원
    울산광역시 언양읍의 미진이용원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장사가 잘 될 때는 면도와 안마를 맡아주는 여자 종업원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두 부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이 머리손질과 면도를 하면, 아내가 머리를 감겨주고, 머리카락을 청소한다. 이젠 '이용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낯선 시대이지만, 다리가 버텨주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용원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 울산 >울주군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을 마주한 신라인, 울주 천전리 각석
    울주 천전리 각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대곡천 인근에 위치한다. 각석은 1970년에 발견되었는데, 기하학문·동물상·인물상 등의 그림과 명문이 총 800여 개 남아있다. 각석은 내용에 따라 상단부와 하단부로 구분할 수 있다. 상단부에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인 점각기하학적 문양과 동물·인물 등이 새겨져 있으며 하단부에는 신라시대의 선각화와 명문이 남아있다. 울주 천전리 각석은 청동기시대와 신라시대의 생활과 사상 등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 울산 >울주군

    울산 지역의 첫 서점, 언양 하나서점
    울산광역시 언양읍 농협 옆의 적산가옥에는 울산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하나서점이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앗간 자리에 문을 연 이 서점은 이제 언양읍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동네서점이다. 하루도 문을 닫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위해 자녀의 결혼식날에도 오후에 문을 열었다는 이 서점의 주인장 김충열 씨는 학생들의 참고서를 팔며 학생들의 선도부 역할도 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찾아와 용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 울산 >울주군

    고래가 전해주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위치한다. 이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되었는데, 판판한 바위 면에 단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바다 동물과 육지동물, 사냥 장면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바위의 왼쪽에는 바다 동물을 수직방향으로 배치하여 역동성을 살렸고, 오른쪽에는 육지 동물을 수평 방향으로 배치하여 생동감을 나타냈다. 암각화 그림은 주제에 따라 동물그림, 인물그림, 도구-사냥 그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특히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새겨져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유적으로 인류의 해양어로문화를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 울산 >울주군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울산 울주의 서생 이길 봉수대
    서생 이길 봉수대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에 소재한 봉대산에 있다. 이 봉수대는 연변봉수로써 남쪽에 있는 기장 아이 봉수대의 신호를 받아 북쪽에 있는 하산 봉수대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울산에 소재한 여덟 개의 봉수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으며, 특히 연대 위에 있는 연소실은 전국에서 유일하여 연변봉수의 상부구조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 울산 >울주군

    언양을 지키는 언양읍성
    예로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조선전기에 축성된 석축성으로 네모꼴의 평면구조이다. 규모는 둘레 1,559.7m, 석축의 폭 5m, 최고 높이는 4.6m 정도이다.
  • 울산 >울주군

    일년 361일 문을 여는 언양읍 매일대장간
    울산광역시 언양읍 알프스시장에 있는 언양 매일대장간은 40년 동안 매일 문을 연 대장간이다. 박병오 씨가 견습과정을 거쳐 마흔 넘어 차린 대장간으로, 매일 문을 연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이름이다. 농사가 주된 수입원이던 1970~80년대에는 주문이 넘쳐 밤을 새기도 했지만, 요즘은 손님이 뜸하다. 그럼에도 그가 매일 문을 여는 이유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 그 자리에 자신이 없다면 피해를 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직한 대장장이 박병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울산 >울주군

    어머니의 열녀비와 아들의 효자비가 함께 있는 울산 언양 양세정려각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곡리에는 열녀비와 효자비가 함께 보관되어 있는 양세정려각이 있다. 어머니 파평윤씨의 열녀 파평윤씨 정려비와 아들 장계룡의 효자 장계룡 정려비가 함께 보존되어 있는 비각이다. 파평윤씨는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다 눈이 멀게 되었다. 아들 장계룡이 어머니의 눈이 뜨이기를 10년 동안 지성으로 빌자 마침내 파평윤씨가 눈을 뜨게 되었고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각이 세워졌다고 한다.
  • 울산 >울주군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불고기, 언양 불고기
    언양 지방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언양 불고기는 석쇠 위에 물 묻힌 한지를 올리고 그 위에 고기를 놓고 구워먹는 것이 특징이다. 도축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암소고기를 길고 굵게 썬 다음 배 즙에 재워 두었다가 양념을 넣고 버무린 다음 구워 먹는 요리이다. 광양 불고기와 더불어 전국적으로 유명한 불고기이다.

[인천 강화]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더보기
  •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광무 4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불교 가람과 유교 사당을 닮은 성공회 강화성당은 조선의 토착 종교를 반영해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노력을 보여준다.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본당 앞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유교의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심었다.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당을 지을 때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목수를 초빙하고, 백두산 목재를 가져오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 인천 >강화군

    “정조가 하사품(下賜品)으로 내린 오뉴월 밴댕이 한 두름”
    강화도에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밴댕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밴댕이는 이 시기에 산란을 준비하기 때문에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가장 많다. 겨우내 바다 깊은 곳에 있다가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먹이활동을 한다. 바로 이때, 살이 오른 통통한 밴댕이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다가 산란기를 마치면 살도 기름기도 빠져서 맛이 조금 덜하다.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다. 밴댕이의 맛이 가장 좋은 제철에 대접을 받는 것, 바로 후한 대접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인천 >중구

    속 좁다고 얕보지만 중국황제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던 생선, 인천 밴댕이회무침
    밴댕이회무침은 손질한 밴댕이를 잘게 썰어서 배, 야채 등과 함께 매콤한 고추장양념에 비벼낸 인천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예로부터 밴댕이가 많이 잡혔던 인천에는 여러 곳에 밴댕이골목이 많은데, 인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옆의 밴댕이골목과 남동구 구월3동의 밴댕이골목이 유명하고, 중구 연안부두에는 ‘연안부두 밴댕이 회무침거리’가 조성되어 관광객들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 인천 >강화군

    화문석으로 유명했던 강화읍장과 강화풍물시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곳리에는 강화풍물시장이 있다. 강화풍물시장은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상설시장뿐만 아니라 매월 2일과 7일 오일장도 함께 열린다. 장날이면 풍물시장 공터와 도로변에 300여 개의 노점들이 조성되며, 지역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모인 상인들은 각종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인천 >강화군

    강화읍 최초로 세탁기계를 도입한 중앙 세탁소
    강화읍에서 45년 이상을 묵묵하게 자리 잡고 있는 중앙 세탁소. 이곳은 오래된 세탁소라는 의미도 있지만, 강화도에서 처음으로 세탁기계를 도입해서 옷을 세탁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는 동네 주민들은 사장님의 섬세함과 정직함을 기억하고 이곳에 항상 옷을 맡긴다. 세탁뿐만 아니라 수선, 심지어 작은 단추를 다는 것까지 이 지역 주민들은 그의 손을 통해서 옷을 손질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 묵묵한 손길로 인해 여전히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세탁소이다.
  • 인천 >강화군

    주민들이 직접 지은 한옥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은 110년을 지켜온 한옥 구조의 성당이다. 1900년 강화에는 선교본부인 영국교회의 지원 하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함께 온수리 성당이 세워졌다. 민초들이 세운 성당이라 그 의미가 더 깊은 공간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한옥의 양식이 잘 보존된 교회건축양식으로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5호로 지정받았다.
  • 인천 >강화군

    강화 전등사 업경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제 제47호)
    강화도 전등사에는 업경대가 1쌍 있다. 업경대는 불교에서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전등사의 업경대는 화염문 거울을 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색사자와 황색사자 한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1627년(인조 5)에 제작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 목공예품의 편년 설정 및 상호비교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인천 >강화군

    빈티지한 멋이 살아있는 강화 조양방직
    강화 조양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1960년대까지 최고 품질의 인조직물을 생산하던 조양방직은 이후 20~30년 정도 폐공장으로 방치되다가 서울에서 유럽 빈티지샵을 운영하던 이용철 대표를 만나 탈바꿈했다.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는 신조로 공장 형태를 그대로 남기고 심지어 마네킨과 트랙터까지 낡은 물건을 끌어들여 빈티지한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신문리 미술관'이라는 또다른 이름이 있는 이곳은 강화의 관광명소이자 이색카페로 유명하다.
  • 인천 >강화군

    실향민들이 만든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살던 주민들이 잠시 피난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았던 곳이 강화읍 교동도이다. 교동도 북단 율두산의 망배단은 실향민들이 명절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곳이다. 이들이 고향의 연백시장을 그리워하며 꾸린 곳이 대룡시장이다. 이발소, 잡화점, 신발집, 약방 등 시간이 멈춘듯한 오래된 가게들이 여전히 영업 중인 곳이기도 하다.
  • 인천 >강화군

    오랑캐의 침입에 죽음을 택한 순절자들의 배향, 강화도 충렬사
    강화도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정신으로 죽음을 선택한 39인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물살이 거세 적군이 들어올 수 없다는 철옹성이라 여기던 강화도에 청나라군이 들이닥치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오랑캐 여진족에게 굴복하기보다 자결로 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용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충렬사에 배향된 인물들 외에도 자결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신축년에 듣는 지역의 '소' 이야기

2021년은 소의 해입니다. 십이지의 두 번재 동물인 소는 동경문화였던 우리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동물이죠. 우리 생활 속에는 소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요, 한 번 같이 알아볼까요?
더보기
  • 경남 >밀양시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 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 강원 >강릉시

    소처럼 생긴 마을, 주문진의 소돌과 아들바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6리와 12리에 있는 마을은 마을의 형상이 소 모양으로 생겨서 ‘소돌’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소형상의 지형은 풍수지리에서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며, 돌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성질의 상징이다. 소돌 바닷가에 있는 아들바위는 원래 삼치바위였는데, 1990년대에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들바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 충남 >아산시

    소를 탄 노인, 맹사성
    조선 초기에 좌의정 맹사성이 고향인 아산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양성과 진위 현감이 길을 닦고 마중 나와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포졸은 허름한 차림에 소를 타고 길을 지나가려는 노인에게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말했으나 그 노인은 금방 지나가겠다며 실랑이를 했던 것이었다. 포졸이 노인을 두 현감에게 잡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두 현감이 맹사성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넙죽 엎드렸다고 한다.
  • 경기 >동두천시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소재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경북 >안동시

    소를 바꾸려다 바뀐 사돈
    옛날에 사돈 간에 같은 장에 소를 사고팔러 갔다. 한 사돈은 작은 소를 팔아 큰 소를 사길 원했고, 또 한 사돈은 큰 소를 팔아 작은 소를 사길 원했다. 서로의 소를 바꾸기면 하면 될것같아서 약속을 하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잘 찾아가는 소를 믿고 술을 취하도록 마셨다. 하지만 서로의 소가 바뀐지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가 소를 바꾸려다 사돈이 서로 바뀌게 되었다.
  • 경남 >창녕군

    꽁새미 소의 보은
    창녕에서 적교 쪽으로 가다 보면 이방면 상리 마을이 있다. 이 상리 마을 뒤산 제일 높은 산봉우리를 ‘꽁새미’라고 부른다. 어느 날 이 마을에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기 직전이었다. 촌장집에 소 한 마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굶은 탓에 이 소를 잡아 먹을려고 했다. 소를 아끼던 촌장은 소를 도망가게 했고, 사람들은 소가 어디 갔냐며 따졌다. 그 순간 산봉우리에서 소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람들이 하늘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전남 >강진군

    와우형국(臥牛形局)의 읍터와 연못
    강진읍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상으로 ‘황소’가 누워있는 와우형국이라 한다. 읍의 형국을 유심히 보면 흡사 엎드린 황소가 그 턱을 목야에 걸고 콧김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강진 사람들은 황소와 연관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주령을 우두봉이라 부르는 것은 황소의 머리를 뜻함이요, 성곽(강진읍성)은 소의 얼굴을 말함인데 큼직한 황소가 양편 귓전을 넌지시 펼치고 엎드린 모양은 천만년의 풍우에도 굽힘이 없는 의연함과 말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성실히 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전남 >고흥군

    한밤중에 소 울음소리가 울려퍼진 섬, 우도
    옛날 전라남도 고흥 땅 산골에 살던 젊음이가 결혼을 하였으나 생활이 어려워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이주하였다. 섬은 육지에서보다 생활이 안정되어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육지에 볼일을 보고 온다고 하더니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부인은 남편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녀를 짝사랑하던 육지의 부잣집 아들이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 가까스로 막은 부인은 젊은이에게 산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 세 번을 내고 오라고 했다. 부인이 자기를 받아들일 거라고 착각한 젊은이는 산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를 세 번 내고 왔으나 부인은 자결을 했다. 이후 소 울음소리가 울려퍼진 섬이라 하여 이 섬을 우도라 불렀다.
  • 농부에게 배운 황희정승
    이 이야기는 황희정승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밭을 가는 평범한 농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가치인 배려를 배웠다는 것이다. 미물이라고 여기는 소도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과 이를 수용하는 황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한 해를 시작하는 날, 설

2021년은 '흰 소띠 해'인 신축년입니다. 소는 여유와 평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서로 배려하며 이겨내며, 건강을 지키고 소망하는 모든 일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더보기
  • 경남 >진주시

    진주 소싸움놀이
    진주 소싸움놀이는 진주지역 마을별 초동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시작하여, 1900년 초부터 강변 백사장에서 대규모 소싸움대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진주는 소싸움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2000년대에는 대형 소싸움 상설경기장이 건립되어 주기적인 대규모 소싸움대회가 열리고 있다.
  • 경북 >청도군

    청도소싸움놀이
    청도소싸움은 예전에 머슴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점차 마을간 집단적인 소싸움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는 현대식 소싸움경기장에서 상금을 걸고 체급별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동물 싸움 형태로는 유일하게 전통민속놀이로 인정받아 해마다 봄철에 청도소싸움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 전북 >정읍시

    내장산 단풍과 함께하는 정읍 전국민속소싸움대회
    정읍 전국민속소싸움 대회는 1996년 처음 시작되어 1998년 전국대회가 되었고, 2003년 문화관광축제로 지정되었다. 정읍 전국민속소싸움대회는 100여 마리의 싸움소가 체중에 따라 세 체급으로 나눠 토너먼트 경기를 벌인다. 내장산 단풍이 드는 10월말에 개최되어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으며, 소싸움장 주변에 먹거리 장터를 열고 축산물을 할인판매 해 전통 우시장 문화도 경험할 수 있다.
  • 전국

    설날하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떡국!
    떡국은 새해 첫날인 설에 먹는 전통음식으로 흰 가래떡을 썰어서 쇠고기나 꿩고기, 닭고기로 맛을 낸 맑은 장국에 넣고 끓여 만든다. 새해 첫날의 밝음의 의미로 흰 떡을 사용하고 떡을 길게 늘여 가래로 뽑는 것은 재산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의미이다.
  • 경기 >수원시

    눈사람 닮은 조랭이떡국
    조랭이떡국은 새해 아침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누에고치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장국에 넣고 끓인 개성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 조상님께 새해인사를 드리는 설 차례
    차례는 달이나 계절, 해가 바뀌어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음을 조상에게 알리면서 계절음식과 명절음식을 올리는 의례다. 설 차례는 설날에 올리는 차례로 새해를 맞아 조상님께 인사를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물로 떡국이 올라가서 떡국 차례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조다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명절차례가 대부분 사라졌지만 설 차례만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 전국

    잡귀야! 물럿거라! 설날 어린 아이도 원샷하는, 도소주(屠蘇酒)
    도소주(屠蘇酒)는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이라는 뜻으로 새해 첫날 차례를 마치고 온 가족이 모여 마시던 술이다. 섣달그믐에 약재가 담긴 주머니를 우물에 넣었다가 새해 새벽에 꺼내어 청주에 섞어 끓여낸 다음 차게 식혀 만든다. 어린아이부터 연장자순으로 동쪽을 향하여 앉아 마시는데 한 해 동안 건강과 악운을 떨치기를 바라며 마시던 술이다.
  • 울산 >남구

    찹쌀떡을 구워 만든 떡국, 울산 굽은떡국
    굽은떡국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만든 반대기를 구운 다음 골패모양으로 썰어 굴과 함께 끓여낸 울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음식이름에서 ‘굽은’의 뜻은 ‘구운’의 경상도식 발음이다. 굽은떡국은 ‘꾸분 떡국’이라고도 부른다. 멥쌀로 만든 가래떡을 사용하는 보통 떡국과는 달리, 찹쌀가루로 만든 생떡을 구워서 떡국을 만든다는 것이 굽은 떡국의 가장 큰 특징이다.
  • 전북 >전주시

    손으로 빚어 만든 전통시대의 인스턴트 떡국, 생떡국
    생떡국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하여 손으로 가래떡 모양을 빚은 다음 칼로 썬 생떡을 장국에 넣고 끓여낸 전라북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멥쌀을 쪄내어 떡메로 쳐서 쫄깃하게 만드는 과정이 생략되었기 때문에 생떡국은 ‘날떡국’이라고도 하였고, 한자로는 ‘생병탕(生餠湯)’으로 불렀다.

[전남 나주]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더보기
  • 전남 >나주시

    철야대동계의 중심지, 나주 만호정
    만호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45호이다. 고려 초기에 원일정이 있던 자리에 조선 전기의 무신 서지(徐祉:1468~1537)가 무송정이라는 정자를 창건하였다. 이후에 정자명은 쾌심정으로 고쳐졌으며, 1601년(선조 34)에 임진왜란으로부터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영평정으로 개칭하였다. 1774년(영조 50년)에는 영산강의 조수를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만호정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호정을 중심으로 향약과 동규가 마련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전남 >나주시

    자유로운 영혼 백호 임제를 만나는, 나주 영모정
    영산강을 내려다보는 영모정(永慕亭)은 1520년 나주 임씨 임붕(林鵬)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원래 이름은 귀래정(歸來亭)이었다. 임붕이 죽자 임복·임진 두 아들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귀래정을 재건하면서 영모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모정이 유명해진 것은 임진의 아들 백호(白湖) 임제(林悌) 때문이다. 조선 시대 명문장가였던 임제가 어린 시절 글을 깨우치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곳이 바로 영모정이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까지 지냈지만 관직에는 뜻이 없고, 자유분방한 시대의 풍운아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백호문학관이 있다.
  • 전남 >나주시

    순사들의 전성시대, 구 나주경찰서
    전라남도 나주경찰서는 1910년 설치되면서 청사를 지었다.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당시 나주에서는 가장 권위적인 건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나주경찰서는 항일 학생과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취조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목조 건물 지하에 있었다던 취조실은 사라졌으나, 유치장으로 쓰이던 4개의 방은 아직도 남아 있다. 나주는 1929년 11월 전국으로 번져나간 항일 학생 시위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구 나주경찰서는 1950년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원형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 전남 >나주시

    호남의 중심지, 나주읍성
    나주읍 중심부를 돌을 쌓아 만든 평지성으로 둘레는 3,530m에 달하며 남북장축의 타원형이다. 읍성의 동서남북에 4대문을 설치하고 모든 문에 옹성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에 처음 쌓은 후 조선시대에 여러번 확장하여 축성하였으나 일제시대에 그 원형을 상실한 대표적 읍성이다. 나주읍성의 4대문 중 남문인 남고문은 1993년에 복원되었으며 동문인 동점문은 2002년, 서문인 서성문은 2007년에 발굴 조사된 후 복원되었다.
  • 전남 >나주시

    물도 나무도 마음도 푸른, 나주 벽류정
    나주는 오래도록 호남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나주에는 이름난 누정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쌍계정·영모정·벽류정이다. ‘벽류정(碧流亭)’은 말 그대로 ‘시리도록 푸른빛의 맑은 물이 흐른다’는 의미이다. 우뚝 서있는 벽류정 아래에는 영산강의 지류인 금천이 흐르고, 정자를 사방으로 호위하듯 노거수가 에워싸고 있다. 발 아래로 시리도록 푸른빛의 맑은 물과 파랗게 이끼가 더해진 오래된 나무의 녹음이 ‘벽류정’ 이름과 잘 어울린다. 벽류정은 김운해(金運海)가 1640년 세운 정자로 여러 편액과 현판이 걸려있다.
  • 전남 >나주시

    나주의병봉기지 나주향교
    나주향교는 사적 제483호로 1896년 을미의병기 이학상을 중심으로 나주의병을 결성한 장소이다. 나주의병은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의 격문이 전달되자 나주의 유림들과 향리들이 나주향교에 모여 이학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나주의병은 광주로 진출하여 북상을 준비하다 선유사가 내려와 왕명으로 해산을 종용하자 결국 해산하였다.
  • 전남 >나주시

    붉은 벽돌성당의 기적 - 나주 노안성당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노안성당은 나주에서는 처음 설립된 성당이자, 전라남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노안성당은 1900년대 계양 공소로 시작됐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나주읍내 가까운 곳에 성당을 설립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산골이지만 계안 공소를 나주 최초의 성당으로 정했다. 1927년 증축 건립된 노안성당 본당 건물은 기술의 한계와 재정적 여건 때문에 비용은 줄이되 기능은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올린 노안성당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불을 지르려던 인민군들이 착각을 일으키는 기적적인 일을 겪기도 했다. 노안성당은 1930년대엔 신성학교라는 초등교육 과정을, 1961년에서 1984년까지는 성 골롬반중학교라는 중등교육 과정 학교를 직접 운영했다. 나주 가톨릭의 모태 격인 노안성당은 2002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노안성당이 자리 잡은 계양마을은 2000년대 들어 이슬촌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 주민 절대다수가 노안성당 신도인 이슬촌은 농촌 체험 마을로, 크리스마스 축제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마을이 되었다.
  • 전남 >나주시

    소반과 부채로 유명한 나주의 목공예
    나주는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호남 문화의 중심지로 일찍이 목공예가 발달하였다. 특히 나주소반, 나주부채, 나주 목물(장·농·뒤주·반닫이·문갑·사방탁자)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대량의 벌채와 해방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나주 목물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김춘식 선생이 나주소반과 나주 부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경남 >창원시

    삼대에 걸친 효행을 기념한 경남 창원 나주임씨 삼대 효자비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용강리에는 임성립, 임빈, 임윤국의 효행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나주임씨 삼대 효자비가 있다. 이들은 부모님이 병들어 자리에 누웠을 때에는 정성껏 간호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3년 동안 묘를 지켰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 삼대에 걸쳐 부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핀 효행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효자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전북 장수]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더보기
  • 전북 >장수군

    빨간 컬러푸드의 건강함을 담은 '장수 한우랑사과랑축제'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는 한우, 사과, 오미자, 토마토 등 빨간색(red color) 농산물을 특성화한 차별화된 축제이다. 장수군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는 2007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매년 9월에 장수군 의암공원과 누리파크 일원에서 개최된다. 한국 최대 규모의 한우 셀프시식 프로그램 장수한우마당이 운영되며, 적과의 동침, 레드조각 맞취기, 레드푸드 릴레이 등 색깔을 주제로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전북 >장수군

    후백제군이 군량을 모으던 합미성
    장수 합미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로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식천리 177-1의 자고개 서북쪽 산기슭인 해발 800m의 능선 정상에 자리한 봉우리를 중심으로 축성한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백제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 등이 확인되어 백제에 의해 축성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합미성은 해발 1151m의 팔공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동북쪽으로는 장수분지를 조망할 수 있고, 서남쪽으로는 대성고원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요충지에 있다.
  • 전북 >장수군

    금쟁반의 옥잔 명당에 세운 장수 권희문 가옥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에 건립된 권희문 가옥은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상류가옥 중 하나이다. 안동권씨 칠봉공파 종가로, 안채 상량문에 영조 49년(1773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넓은 대지에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바깥채, 서쪽채, 나뭇간채 등의 여러 건물이 산재되어 있다. ㄱ자형의 안채는 전북지방에는 드문 형태로, 중문을 들어서면 부엌벽이 보이는데 기와를 이용해 멋진 장식되어 있다. 지금도 권희문 일가가 거주하고 있는데, 사랑채 골방은 권희문 옹이, 그의 부인은 안채의 큰방을 사용하고, 큰아들 내외는 안채의 작은방을 사용하며, 작은아들 내외는 서쪽채의 아랫방에 기거한다. 과하주, 식술, 점주(粘酒) 등의 가양주가 종가음식으로 전한다.
  • 전북 >장수군

    물의 뿌리 신앙의 뿌리, 장수성당 수분공소
    장수성당 수분공소가 자리 잡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는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는 마을이다. 지역 토박이들은 수분리를 ‘물뿌랭이’ 마을이라고 부른다. 물의 뿌리라는 뜻이다. 수분리 일대에는 병인박해 이전부터 숨어사는 천주교 교우촌이 있었다고 한다. 수분공소는 1913년에서 1914년 사이 경상남도 함안성당과 전라북도 진안 어은동 성당 주임신부 간의 합의에 따라 중간 쉼터 격으로 세워졌다. 한옥으로 지어진 수분공소는 1921년 신도들의 합심 노력으로 현재 모습의 원형을 갖추었다. 들보와 서까래로 쓴 목재는 곡선을 그대로 살려 사용함으로써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 전북 >장수군

    지명으로 찾아가는 장수의 옛 현 터
    하늘과 물이 만나는 고장 장수, 신석기에서 철기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물들이 각 마을마다 퍼져있어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는 이름까지 생겨난 장수, 그중에서도 천천면은 삼국시대인 백제부터 고려 초기까지 현이 있던 곳이다. 백제시대에는 우평현, 통일신라 때에는 고택현, 고려(태조23년) 때 장천현으로 개칭되면서 덕들에서 장수읍 선창리로 옮겨졌고, 현의 명칭도 장수현, 장수군으로 바뀌었다. 우편현은 삼국사기, 고려사,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대동지지, 여지도서, 호남읍지, 장수지 등에 수록되어있다. 천천면에는 면단위인 춘송리와 현터가 자리한 남양리, 그리고 가야고분이 있는 삼고리를 비롯하여 10개의 리 단위와, 옛 현 터가 있는 이방마을 등 25개의 마을이 분포되어 있다. 요즈음 분주하게 발굴작업이 한창인 가야문화로 인해 사라져 가는 이야기가 있으니, 바로 옛 현터가 있는 이방마을을 중심으로 각 마을 지명유래 이야기이다. 도시사람들은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산으로 바다로 놀러가는 시기가 바로 7월, 8월이지만 시골은 이 시기가 매우 바쁜 농번기이다 오이따기, 호박 따기, 토마토 순 따기 등 수확이 없는 벼 대신 특수작물을 재배한다. 더운 여름 비지땀을 흘리면서 바쁜 수확기인데도 기꺼이 자료수집에 동참해 주셨다. 더 마을에 유적이 별로 없다면서도 이야기 하나라도 더 들려주려고 지인들에게 전화도 걸며 웃던 주민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현대는 고령화시대라고는 하나 지역문화에 대해 아시는 8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별로 없다. 그래서 현존하시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일념으로 자부심을 가지고 자료수집에 임하였다.
  • 전북 >장수군

    오뫼마을 권희문 가옥의 전통음식 세가지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22호인 권희문 가옥은 장수 팔경 중 하나인 영대산 앞에 지은 ㄱ자 형태의 전통 가옥이다. 약 300여년 7대째 살고 있는 이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음식 세 가지가 있다. 점주, 육포, 정과가 그것이다. 그 전통음식들 중 점주, 접장, 정과를 소개한다. 장손부 이순녀 여사와 며느리 정희선 씨에게 직접 들은 레시피들이다.
  • 전북 >장수군

    전통 명맥을 잇는 장수의 녹반석(綠斑石) 벼루
    오래전 장수에서는 ‘녹반석(綠斑石)’이라는 돌로 벼루를 만들었다. 초록색 돌 속에 다른 성분의 점이 박혀 있어 ‘녹반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담금질을 마친 쇠라면 자귀(짜구)로도 가공이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무른 돌이며 점처럼 박힌 다른 돌 성분으로 인해 정밀조각이 어려우나 먹이 잘 갈리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연마 후에는 검은색 기운을 띠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일반적인 벼루와는 색과 성질이 다르다.
  • 전북 >장수군

    첨성대 닮은, 이념대립 시대의 유물 - 장수 호룡보루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호룡보루’는 외관이 경상북도 경주시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호룡보루’는 1949년 빨치산의 동태를 감시하고,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지서 앞에 세워진 일종의 망루다. 호랑이와 용처럼 용감하게 싸우라는 뜻으로 ‘호룡보루’라 이름 붙여진 망루는 원래 2개가 있었지만 서쪽 망루는 사라졌고 동쪽 망루만 남아 있다. 위로 갈수록 다소 작아지는 민흘림 방식으로 지어진 망루에는 3단에 걸쳐 총안이 나 있다. 1951년 호룡보루에서 전투가 벌어져 경찰관 4명과 민간인 향토방위대원 11명이 숨지기도 했다. 호룡보루가 세워진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은 지리산, 회문산, 덕유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빨치산들의 이동 경로였다. 극단적 이념대립 시대의 산물인 호룡보루는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전북 >장수군

    최씨 집안의 진상품이었던 곱돌솥으로 지은 밥, 장수 돌솥밥
    장수돌솥밥은 전라북도 장수군의 특산물인 ‘곱돌’로 불리는 각섬석편마암을 가공하여 만든 돌솥에 쌀과 더불어 다양한 곡물을 비롯한 식재료를 넣어 만든 향토음식이다. 장수의 돌솥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의 고(故) 최순룡 씨가 1923년 본격적으로 상품화하면서 곱돌그릇이 장수군의 특산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전북 >장수군

    장수 동촌리 동촌당산제
    전라북도 장수군 동촌리 마을주민들은 정월 열나흘 밤이 되면 마을에서 모시고 있는 신에게 마을 제의를 드린다.마을주민들의 신앙처인 마을의 당집은 돌탑인데 사냥터라 칭하는 숲에 있는 돌탑과 숲 거리에 있는 2기의 돌탑이 그것이다. 제의를 지내기 전에 우선 제의를 주관할 제주를 선정한다.제의를 지내는 비용은 마을의 공동자금으로 충당하였다. 하지만 가구 수도 줄어들고 여러 가지 연유로 근래에는 화주를 맡은 사람이 부담한다. 동촌마을의 제의에 필요한 제물에는 과일을 비롯해 탕, 명태포, 떡과 술 등이다.제의는 유교식으로 행한다. 제의 순서는 제물을 진설한 다음 분향-헌작-독축-소지 축원-음복이다. 제의가 끝나면 헌식이라는 의식을 행한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제의를 준비하던 집에 모여 음복을 하면 동촌리 마을의 당산제는 비로소 마무리된다.

[충남 공주]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더보기
  • 충남 >공주시

    1955년부터 시작된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는 백제말 성충, 흥수, 계백 등 3충신에게 올리는 제향과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가 1955년 4월에 부여에서 거행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부여와 공주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1회 백제대제는 민간의 성금으로 진행되었는데, 망국의 한을 달래는 이색적인 제의에 전국 각처의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2010년에는 세계대백제전을 열어 백제 문화와 국제교류의 진면목을 과시하기도 했다.
  •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 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서울 >중구

    태종의 둘째 공주가 살았던 서울 소공동
    서울시 중구 소공동은 조선조 태종의 둘째 공주가 살던 곳이어서 소공동(小公洞)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처음에 ‘작은 공줏골’로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바꾸면서 소공동이 되었다. 선조 16년에 셋째아들 의안군의 집으로 마련해준 거처는 임진왜란 때 우끼다 히데이에오와 이여송의 거처로 사용되다 명나라 사진을 접대하는 남별궁이 되었다. 이곳은 고종황제 때 환구단이 되었다.
  • 강원 >춘천시

    청평사 원나라 공주와 상사뱀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청평리에 청평사(淸平寺)가 있다. 청평사로 가는 옛길인 환희령에 세워진 삼층석탑을 일명 ‘공주탑’이라 부르는데,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원나라 공주가 뱀이 떨어지지 않는 상사병에 걸렸다. 날이 갈수록 병이 심해지고, 공주에게 붙은 뱀은 떨어지지 않았다. 여러 절을 다니며 불공을 드려도 소용이 없자 공주는 원나라를 떠나 떠돌다가 청평사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주에게서 떨어지지 않던 뱀이 공주가 청평사에 들어가려 하자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 서울 >마포구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바리공주
    바리공주 이야기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무속신화이며, 모든 무당이 조상으로 대접하는 ‘무조신(巫祖神)’의 내력이 담긴 이야기이다. 바리공주 설화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이자 죽음을 넘어서는 삶의 이야기기로 한국 서사무가의 전통적인 성격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 전남 >곡성군

    조통장군을 사랑한 아왕공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에서는 서낭당을 ‘조장군사당’이라 부른다. 조장군사당에는 나무로 만든 남녀 신상(神像)이 있다. 이 신상에 얽힌 설화가 있다. 고려시대 신종 때 곡성군 출신의 조통(趙通)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당시 신종에게는 아왕공주라 부르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조통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런데 조통은 이미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있었다. 조통은 아왕공주를 피해 국경지역으로 가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한편, 아왕공주도 병석에 눕게 되었다. 남산에서 병을 치료하고 무속을 공부한 아왕공주는 옥과로 내려와 조통의 묘를 보살피다가 옥과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 충남 >공주시

    400년간 이어온 궁중 술의 제조 비법, 계룡백일주
    계룡 백일주는 본래 궁중에서 빚었던 술이었으나 조선 인조 때 제조법을 하사받은 연안 이씨 가문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주이다. 백일주는 술이 완성되기까지 10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미자, 황국, 솔잎, 진달래꽃 등이 첨가되어 맛과 향이 뛰어나 신선주라고도 불린다.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공주시

    공주 선교 스테이션의 마지막 자취, 공주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
    충청남도 공주시 중학동 구 선교사 가옥은 1910년대 말에서 1920년대 초 선교사 사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한동안 1905년 무렵 지어진 샤프 선교사 부부의 사택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당시 사진 기록과 정황을 종합하여 건축 시기가 바로잡혔다. 선교사 사택은 스킵 플로어 구조로 지어진 전형적인 미국식 주택 양식이다. 3층 다락방과 비례를 고려한 창호 배치로 안정감을 주는 건물이다. 미 감리회의 공주 선교부가 건축한 일제강점기 영명학교 건물들과 사택 가운데 유일하게 현존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 충남 >공주시

    군사적 기능이 중시된, 공주 공산성 만하루
    공주 공산성 만하루(挽河樓)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누각이다. 일반적으로 누각은 문루이자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하지만 만하루는 풍광도 즐기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성 동쪽 누대에 해당하는 군사적 기능이 우선시되었던 누정이다. 금강을 내려다보는 만하루는 바로 뒤에 연지와 함께 홍수로 매몰되어 1984년 복원된 건물이다. 누각이지만 1층 기둥이 짧아 단층 건물같이 보인다. 바로 곁의 새로 복원된 연지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영은사가 뒤에 있다.
  • 충남 >공주시

    인조가 피신 왔던, 공주 공산성 공북루
    공주 공산성의 공북루(拱北樓)는 성문에 해당하는 문루이다. 공북루의 양쪽은 금강을 따라 석벽으로 이어져 있다. 1층 정면 5칸 가운데 중앙의 1칸만 성으로 출입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4칸은 모두 석벽으로 둘러쳐 있다. 공산성의 다른 누각인 만하루(挽河樓)와 마찬가지로 휴식 공간 보다는 군사적 목적이 더 큰 건물이다.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북루의 원래 이름은 망북루(望北樓)였다. 공북루의 명칭은 1603년 쌍수산성을 수축할 때 고쳐 부른 것이다.

[충북 제천]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더보기
  • 충북 >제천시

    담배 연기는 시름을 싣고…, 제천 엽연초 생산조합 구 사옥
    충청북도 제천은 담배 경작에 적합한 농지가 많아 일찍부터 재배 농가가 증가했다. 제천 엽연초경작조합은 1918년 설립되었다. 조합의 사옥이 지어진 것은 1935년이다. 조합 사옥은 실용성 위주로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주 출입구 부분을 돌출시키고, 아치형 벽체를 세워 출입구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강조했다. 제천은 해방 후에도 국내 최대 황색종 엽연초 생산지로 부상했다. 힘이 많이 들지만 환금성이 높은 황금작목으로 꼽히던 담배는 1980년대부터 쇠퇴했다. 제천 조합 구 사옥은 근대 담배 산업의 어제를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 충북 >제천시

    철도도시 제천의 번성과 쇠퇴-대한통운 제천영업소
    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는 1941년 중앙선 철도의 개통과 동시에 제천역 앞에 건물을 짓고 제천지점을 설치했다. 화물자동차 영업은 철도 수송을 보조·보완하는 수단으로 중요했다. 대륙 침략의 목적으로 부설된 중앙선은 남한 동부지역의 지하자원을 채굴하여 운송하는 통로였다. 제천은 해방 후 철도도시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중앙선에 더해 태백선과 충북선이 놓이면서 무연탄, 시멘트, 비료를 수송하는 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제천지점은 고도성장의 산업화시기에 성장했다. 하지만 시멘트, 무연탄이 사양 산업이 되고, 도로 운송이 늘면서 철도도시 제천의 전성기는 지나갔다. 대한통운 제천지점은 제천영업소가 되었고, 택배 업무가 분리되면서, 전성기의 기능을 잃었다. 제천지점이 설치되던 1941년 화강석 쌓기로 지어진 제천영업소 건물은 제천의 전성기를 상기시키는 장소로 남아 있다.
  • 충북 >제천시

    조선시대 3대 약령시장, 제천약초시장
    제천시는 조선 시대 때부터 약령시(藥令市)가 개설되었다. 1930년대 말 약재 수입이 중단되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약령시장이 쇠퇴할 때 오히려 더 성장하였다. 1933년에 제천시 화산동으로 옮기고, 1990년 건물을 신축 개장하였다. 제천약초시장에서는 황기를 비롯해서 60여 가지의 약초가 판매된다. 2005년에 제천시가 ‘제천 약초 참살이 특구’로 선정되었고, 그 중심지 역할을 제천약초시장이 하고 있다.
  • 충북 >제천시

    예전의 영화가 그리운, 청풍 한벽루
    고려 때 지어진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에 ‘차고 맑은 물과 푸르는 산과 나무’가 보이는 누각이 서 있으니 바라보는 풍광이 오죽 좋았을까 싶다. 한벽루를 노래한 주옥같은 시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물빛은 너무 맑아 거울인가 거울이 아닌가”로 시작되는 고려의 주열(朱悅)의 시가 그렇고, “거울도 아니고 연기도 아닌데 온통 푸르게 칠해 있네”라고 화답한 퇴계 이황의 시가 그렇다. 하지만 충주댐 건설로 이사한 한벽루의 옛 풍광이 아쉽기만 하다.
  • 충북 >제천시

    벗들과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청풍 응청각
    청풍 응청각(凝淸閣)은 청풍 관아의 부속 건물로 공무로 내려온 관인이 머물던 객사였다. 응청각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였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응청각도 청풍 관아의 금병헌·한벽루·금남루 건물과 함께 현재의 자리로 사이좋게 이전되었다. 문루인 금남루에서 보면 동헌인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나란히 서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퇴계 이황과 같이 응청각에서 유숙하면 지은 시가 많이 있다.
  • 충북 >제천시

    새 보금자리에서 둥지를 튼, 청풍 금남루
    금남루(錦南樓)는 청풍도호부의 정문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금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1825년이고, 원래 있었던 자리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 읍리였다. 금남루는 1985년 청풍 관아의 한벽루·응청각·금병헌과 함께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청풍문화재단지로 이전되었다. 호수위의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는 제천시 10경 가운데 제5경이다.
  • 충북 >제천시

    오이의 향긋한 내음이 나는 겨울 빙어의 바삭한 맛, 제천 빙어튀김
    빙어튀김은 빙어(氷魚)의 대표적 서식지 중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에서 잡아 올린 빙어를 깨끗이 손질하여 물기를 제거한 후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 낸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빙어는 조선시대부터 겨울철에 잡아 탕을 끓여 별미로 삼을 정도로 각광을 받던 민물고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에서는 예로부터 발달한 저수지와 하천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빙어를 비롯한 모래무지ㆍ참마자ㆍ피라미 등 작은 민물고기를 잡아서 튀김으로 만들어 먹었다.
  • 충북 >제천시

    레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제천 의림지 파크랜드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 중 하나다. 의림지 둘레길에 있는 의림지 파크랜드는 1998년에 개장한 제천의 테마파크이다. 개장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도 영업하고 있다. 표를 팔찌처럼 착용하지 않고 명함크기의 표를 팔고 있으며, 바이킹과 스윙거, 토마스 기차, 회전목마 등 정겨운 놀이기구가 운행되고 있다.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으로 의림지 파크랜드를 방문하거나 복고풍 의상을 맞춰 입고 뉴트로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이 있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쿨나이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 충북 >제천시

    충절(忠節)의 고장 충청북도 제천(堤川)의 충청도식 막국수, 제천 토리면
    토리면은 메밀국수를 삶아 그릇에 담고 동치미국물을 부은 다음 도토리묵, 돼지고기 편육, 동치미무, 삶은 계란 등을 얹어낸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동치미 국물에 국수만 말면 ‘토면’이라 하고, 고명을 얹은 것을 토리면이라고 한다.
  • 충북 >제천시

    청풍명월의 고장에서 맛보는 향어회의 매콤한 맛, 제천 민물비빔회
    민물비빔회는 회를 친 향어 살에 깻잎ㆍ당근ㆍ미나리ㆍ상추ㆍ쑥갓ㆍ오이ㆍ풋고추 등 각종 야채를 넣고 초고추장 양념으로 골고루 버무린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민물비빔회는 1986년에 완공된 충주호에 가두리양식장과 같은 내수면어업을 위해 도입된 외래어종인 이스라엘잉어를 양식하게 된 이후 제천지역에서 만들어진 향토음식으로 청풍향어비빔회로도 불린다.

슬기로운 겨울생활

옛날에는 추운 겨울이 오면 고고매놀이, 연날리기, 팽이치기와 같은 놀이를 하였습니다. 공기가 맑고 바람이 많이 불어야 솜털이나 연이 잘 날 수 있어 겨울철에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겨울철은 농한기여서 일을 쉬는 기간이기도 했고요. 팽이치기는 꽁꽁 언 얼음 위에서 즐기는 재미가 있었죠. 신나게 놀았으니 배도 채워야겠죠? 통영 굴, 강원도 곰치, 황태, 남해 꼴뚜기 등이 겨울 제철 재료인데요, 옛날놀이도 해보고 제철 음식 먹으며 건강하게 겨울을 지내보아요.
더보기
  • 경남 >거제시

    겨울 남해의 방파제 낚시로 맛보는 호래기(꼴뚜기)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이 말은 꼴뚜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생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속담이다. 그러나 꼴뚜기는 그런 취급을 받을 생선이 아니다. 남해안에서는 통칭 ‘호래기’라고 부르는 꼴뚜기는 아직 양식이 안 되기에, 가격이 비싼 고급어종에 속한다. ‘경남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꼴뚜기는 경상남도의 초겨울, 통영과 거제의 방파제 및 수산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호래기 낚시와 호래기 회는 재미와 별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 제주 >제주시

    너무 귀해서 나무를 잘라버렸던 감귤
    감귤은 대표적인 겨울 과일로 동남아시아 아열대가 원산지이다. 비타민 A, C의 함량이 높아 겨울철 감기 예방에 좋다. 겉껍질은 말려서 차나 약재로 활용하며, 속껍질의 하얀 부분은 펙틴이 풍부하여 과육과 함께 잼, 마멀레이드로 활용된다. 이른 시기부터 재배된 과일로 보여지며 현재 우리가 먹는 감귤의 대부분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온 온주밀감이다. 그러나 최근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과 같은 감귤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전국

    고고매놀이
    고고매놀이는 명주실에 가벼운 새의 솜털을 매달아 공중으로 날리면서 노는 어린아이들의 유희다. 고고매란 봉황을 뜻하는 단어로, 하늘로 날아오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소망이 담긴 놀이라 할 수 있다. 솜털이 잘 날아오르려면 공기가 맑고 바람이 많이 불어야 하므로 주로 겨울철에 즐겼다.
  • 제주 >제주시

    인삼 하고도 안 바꾸는 제주 겨울 무로 만든 빙떡
    빙떡은 제주도 향토 음식으로 메밀전병에 삶은 무채를 넣어 돌돌 말아 먹는 음식이다.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서 얼음 빙(氷) 빙떡, 빙빙 말아서 만든다고 빙떡이라 불렸다. 제주도 동쪽에서는 멍석처럼 생겼다고 해서 ‘멍석떡’,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 쟁기떡이라고 부른다. 메밀의 독성을 무가 중화시켜주며, 옥돔구이와 함께 먹어도 별미다. 
  • 전국

    팽이치기
    팽이치기는 바닥을 뾰족하게 깎아 만든 팽이를 회전시키면서 다양한 기술을 겨루는 놀이다. 겨울철 남자아이들이 주로 즐겼다. 팽이가 쓰러지지 않고 계속 돌아가는 것은 팽이의 회전 관성이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또 팽이의 마찰력이 운동에너지를 열에너지로 전환시키기 때문에 가급적 바닥과 닿는 면을 작게(=뾰족하게) 만들어야 오랫동안 돌릴 수 있다.
  • 강원 >인제군

    매서운 겨울, 서른네 번의 손이 가야 맛볼 수 있는 황태
    한국인에게 친숙한 생선 명태를 겨울에 눈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며 말린 것을 황태라고 한다. 눈이 오지 않고 포근한 날이 계속되면 검은빛의 먹태가 된다. 강원도 진부령에는 황태덕장이 있다. 옛날처럼 덕장에서 눈과 바람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말리는 것은 똑같지만 예전에는 개울물에 씻어 널어 말렸다면 요즘은 환경오염 때문에 바로 냉동창고로 직행했다 기온이 떨어지면 널어 말린다. 
  • 강원 >삼척시

    “시원한 곰치국 재료? 푹 삭은 김치 한 국자”
    꼼치는 동해안을 비롯한 모든 해안에서 나는 어종이다. 동해안의 꼼치는 다른 지역과 모양이 조금 다르다. 서·남해안의 것은 메기와 비슷하여 물메기, 미거지라고 부른다. 동해안에서는 꼼치를 곰치, 물곰이라고 부른다. 곰치는 여름 내내 1,000m의 깊은 바다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심이 얕은 바위틈으로 올라온다. 겨울 곰치는 흐물거리던 살도 단단해져 제 맛이 난다.
  • 전국

    귀신아 물럿거라! 동짓날에 먹는 팥죽
    팥죽은 팥을 삶아 으깨어 거른 물에 쌀을 넣고 쑨 죽이다. 주로 겨울철 동지(冬至)에 귀신을 쫒는다는 의미로 먹는 전통음식이다.
  • 충남 >공주시

    추운 겨울날 새벽까지 파는 군밤
    밤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먹은 과실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밤과 양주밤이 유명했는데 일제 강점기에도 명성이 이어졌다. 특히 평양밤은 당도가 높아 일본으로 많이 이출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밤장사의 수가 많아지는데 주로 도시에서 낮부터 새벽 2시까지 화로에 밤을 구워 팔았다. 가을부터 초봄까지가 군밤장수의 활동기였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백화점 근처에선 기계로 평양밤을 구워팔기도 했다. 어린 군밤장수는 10전의 군밤을 팔기위해 추운 겨울 낮부터 새벽까지 바깥에서 떨기도 하였다. 
  • 충북 >제천시

    오이의 향긋한 내음이 나는 겨울 빙어의 바삭한 맛, 제천 빙어튀김
    빙어튀김은 빙어(氷魚)의 대표적 서식지 중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에서 잡아 올린 빙어를 깨끗이 손질하여 물기를 제거한 후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 낸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빙어는 조선시대부터 겨울철에 잡아 탕을 끓여 별미로 삼을 정도로 각광을 받던 민물고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에서는 예로부터 발달한 저수지와 하천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빙어를 비롯한 모래무지ㆍ참마자ㆍ피라미 등 작은 민물고기를 잡아서 튀김으로 만들어 먹었다.

우리 지역의 이름은? -역사 인물 편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이름에는 역사적 인물이 직접 지었다고 전해오는 곳이 있기도 하고, 또 그들과 연관된 사건 때문에 지명이 생긴 곳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인물들이 연관이 되어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더보기
  •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 경북 >청도군

    숙종이 이름 붙인 샛별 아래 마을, 청도 샛별장터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는 샛별장터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이름과 관련하여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숙종이 순시를 나왔다가 팔조령에서 머물렀다. 새벽녘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샛별 아래 마을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을 이름을 ‘샛별’이라고 부르라고 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는 이서면의 지형이 소를 닮아, ‘쇠(소)별’에서 ‘새별’또는 ‘샛별’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고려 말 두촌 박양무 선생이 이 곳으로 내려와 새 벌판을 발견하고는 ‘새벌’이라고 칭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경기 >남양주시

    단종을 잃은 정순왕후의 슬픔이 서린 남양주 사릉리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면 사릉리는 정순왕후의 무덤 사릉(思陵)에서 비롯했다. 사릉은 정순왕후가 ‘평생 단종을 생각하며 밤낮으로 공경함이 발랐다’는 구절에서 나온 이름이고, 한편으로 ‘지나간 일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기도 하다. 계유정난으로 왕위에서 물러난 단종과 영도교에서 18살에 헤어진 후 82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평생 남편을 그리워하며 지낸 정순왕후의 아픈 사연과 삶이 서린 곳이다.
  •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 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경북 >안동시

    견훤이 지렁이가 되어 숨은 안동 진모래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에는 진모래 또는 장사리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다. 옛날 왕건과 견훤이 이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 지렁이의 화신이었던 견훤은 모래땅에 진을 치고 싸움이 불리해지면 지렁이로 둔갑하여 모래 속으로 숨어 버렸다.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자, 삼태사가 냇물을 막아 못을 만들고 거기에 소금을 풀어 짠물을 만드는 계책을 세웠다. 다시 전투가 벌어져 견훤이 모래 속으로 숨자 못을 터뜨려 짠물이 모래에 스며들게 만들었다. 견훤은 겨우 도망쳐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이 때부터 소금물이 흐른 내라고 해서 간수내(현재는 가수내)라고 불렀으며, 견훤이 진을 쳤던 모래톱은 길다고 해서 진모래, 한자로 장사리라고 불렀다.
  • 서울 >중구

    태종의 둘째 공주가 살았던 서울 소공동
    서울시 중구 소공동은 조선조 태종의 둘째 공주가 살던 곳이어서 소공동(小公洞)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처음에 ‘작은 공줏골’로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바꾸면서 소공동이 되었다. 선조 16년에 셋째아들 의안군의 집으로 마련해준 거처는 임진왜란 때 우끼다 히데이에오와 이여송의 거처로 사용되다 명나라 사진을 접대하는 남별궁이 되었다. 이곳은 고종황제 때 환구단이 되었다.
  • 대구 >남구

    왕건을 쫓아 견훤이 왔던 동네, 대구 안지랑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한 왕건이 안지렁이 골짜기의 안일암으로 몸을 숨겼다. 견훤이 쫓아와 잡으려고 하자 왕건은 안일암 뒤 큰 굴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 지렁이의 후손인 견훤이 다녀간 곳이라고 해서 ‘왕지렁이’로 불리다 ‘안지랑이’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는, 안지랑이 계곡의 물이 좋아 앉은뱅이도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해서 ‘안지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 경북 >고령군

    대가야의 궁녀들이 비녀를 풀고 간 고령 옥잠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의 자연마을 옥담(옥잠)은 신라와 대가야의 전투와 관련이 있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침략하자 대가야의 왕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 마을에서 옥대를 풀어놓고 떠나 옥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신라군을 피해 도망을 치던 대가야의 왕비와 궁녀들이 이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비녀를 풀어놓았다고 해서 옥잠이라고도 부른다. 혹은 마을 주변에 쌓은 방죽이 반지 모양이라하여 옥담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경기 >평택시

    을미왜변의 영웅 한온이 태어난 평택 금암리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金岩里)는 을묘왜변(乙卯倭變)에 순국한 한온(1511~1555)의 충절에서 생긴 지명이다. 한온(韓蘊)은 을미왜변에서 죽은 뒤 충의(忠毅) 시호를 받고, 충신정문(忠臣旌門)을 받는다. 이 충신정문 현판에는 “철장석선 일심순국(鐵腸石膳 一心殉國)”라 쓰여 있다. 곧, '창자는 쇠붙이와 같고 쓸개는 돌과 같아라. 한 마음 나라에 바쳤도다.'는 뜻인데, 쇠 철자에서 금(金)을 따고, 돌 석(石)자에서 바위 암(岩)을 유추해서 지금의 금암리가 되었다고 한다.
  • 인천 >서구

    의병장 조헌의 가족이 피난했던 인천 율도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 율도(栗島)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승병 영규 등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후율(後栗) 조헌(趙憲, 1544~1592)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조헌은 이율곡을 좋아해서 후율이란 호를 썼다고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몸종을 시켜 율도에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서 가족과 몸종의 처가를 피신시켰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섬을 율도라 이름 지었다.

일상 속 공원여행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먼 여행지를 그리워하기 보다, 우리 주변의 공원을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답답함을 씻어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보기
  • 서울 >동대문구

    시비(詩碑)가 많은 용두근린공원
    동대문구청 앞에 있는 용두근린공원은 크진 않지만 야외 상설공연장을 갖추고 있으며 구민들의 휴식처이다. 공원 안에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는 꽃’, 박경리 시인의 ‘사마천’, 이상교 시인의 ‘빗방울의 발’, 하청호 시인의 ‘어머니의 등’ 시비(詩碑) 5개가 곳곳에 있어 아름다운 가을 산책에 낭만을 불어넣어 준다.
  • 경기 >고양시

    일산의 허브, 일산문화공원(구 미관광장)
    1996년, 2차 신도시 개발로 일산호수공원과 정발산역을 이어주던 거리를 제5호 미관광장으로 불렀는데, 2004년 일산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일산문화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산문화광장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광장에는 일산 신도시 건설기념탑, 평화의 소녀상, 고양 독립운동 기념탑 등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호수 공원과 쇼핑몰이 인근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유동인구가 많아 각종 지역축제 및 정기적인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 경기 >고양시

    46년만에 찾은 평화, 행주산성 역사공원
    1970년대 초 무장공비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군 철책 중 가장 먼저 철거된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 행주산성 역사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를 토대로 재현된 행주마을의 옛 모습이 있고, 살구나무와 자생식물이 있는 생태광장이 있다. 과거 군 초소를 보수하여 만든 한강 전망대에서는, 적군의 침투를 감시하는 대신 한강의 철새들과 일몰, 야경의 아름다움을 평화롭게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행주산성과 행주서원, 행주성당 등 역사적인 장소와 연계해 교육공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경기 >고양시

    주민 참여 도서관이 있는 마상근린공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위치한 마상근린공원은 보통의 근린공원이 그러하듯 각종 체육시설과 휴게시설,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는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다른 근린공원과 달리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배다리 누리길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점과 주민참여예산으로 건립된 최초의 공립 작은 도서관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다. 야외무대와 작은 도서관에서 소박하지만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마상공원은, 주민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방죽에서 저수지를 거쳐 공원이 된 오창 호수공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충북 청주시 오창읍 양청리도 이 단어가 딱 맞는 곳이다. 20여 년 전에는 논밭 사이에 있는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공원이 되어 있다. 오창호수공원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든 방죽이었다가 저수지로 확장했고, 1990년대에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으로 사라질뻔 했다가 도심의 호수공원으로 거듭났다. 현재는 둘레길과 포토존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작은 휴식터가 되고 있다.
  • 경기 >안성시

    과학관, 눈썰매장, 캠핑장, 공연장, 수변공원, 숲이 다 있는 안성맞춤랜드
    안성맞춤랜드는 2012년에 준공된 안성의 시민공원으로 안성맞춤 천문과학관, 박두진 문학관, 사계절 썰매장, 안성맞춤 공예문화센터, 안성맞춤 캠핑장, 남사당 공연장, 소원 대박 터널, 바우덕이 광장, 수변공원, 편백나무 숲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안성을 대표하는 장소이다.
  • 강원 >철원군

    갈라진 길, 이어질 길 DMZ 평화의 길과 생태평화공원
    강원도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에 ‘DMZ생태평화공원’이 들어서 있다. 남방한계선 철책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이다. ‘DMZ평화의 길’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안인데, 유엔사와 협의가 늦어지고 안전 문제가 있어 강원 고성 DMZ의 걷기 코스만 먼저 공개됐다. ‘DMZ평화의 길’ 출발지점은 고성의 통일전망대다.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지를 관통해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66년만에 처음으로 민간에게 공개되는 길이다.
  • 부산 >남구

    부산 재한 유엔 기념공원
    부산 재한 유엔기념공원은 유엔군 전몰장병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다가  희생당하였다. 이 기념묘지는 1959년 대한민국과 유엔 간에 체결한 ‘재 한국 국제연합 기념묘지의 설치 및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 간의 협정’에 의거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전몰 장병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서울 >강동구

    하늘과 바람과 별과 허브천문공원
    허브천문공원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산 94번지 일대에 2006년 9월 21일 개원한 공원이다. 허브원과 온실, 관천대, 전망대,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색의 정원․감촉의 정원․향기의 정원․차의 정원․맛의 정원으로 분류된, 120여 종의 허브가 식재되어 있는 허브원과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관천대, 공원바닥에 설치된 282개의 조명으로 연출한 별자리가 인상적이다.
  • 제주 >제주시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 산책로가 있는 한담공원
    감청색 에머랄드빛의 애월 한담공원과 해변산책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길이다. 최근에는 해양문학의 백미인 『표해록』의 저자이자 한담마을에서 태어난 장한철을 기념하는 기적비와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그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사업이 진행중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게 되면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월 한담마을 주민들의 후대들을 향한 애정과 표해록에 담긴 도전정신이 잘 전해지길 바라며 걷게 된다.

겨울로 들어서는 날, 입동(立冬)

해마다 양력 11월 7 ~ 8일 무렵은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입니다. 입동 때의 날씨를 보며 그해 겨울 추위를 가늠하기도 합니다. 입동 즈음이면 긴 겨울을 보내기 위해 김치와 같은 저장 음식을 준비하고, 추어탕과 같은 보양식을 먹으며 기력을 보충하기도 하는데 김치의 종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동치미, 배추김치 외에도 지역마다 매우 다양합니다.
더보기
  • 충남 >논산시

    강경포구와 강경장의 명성을 되살린 강경젓갈시장
    우리나라 서해안 해산물이 강경포구까지 배로 올라오고, 호남평야에서 생산한 농산물이 강경포구에 모였다가 충청도와 경기도로 간다. 그곳에 강경장이 있었다. 강경장은 1930년대까지 평양장, 대구장과 함께 그 규모가 3대 오일장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 와서 옛 강경장의 명성을 되찾고, 지역 특산물인 젓갈을 홍보하기 위해 ‘강경젓갈시장’ 복원에 노력하고 있다.
  • 경북 >경주시

    조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최부자집 며느리의 사연이 담긴 김치 사연지
    사연지는 경상도 백김치의 일종으로 경상북도 경주시와 안동시의 향토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이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안동지역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린다. 경주 최부자집의 내림음식으로도 유명하며 사연지라는 이름도 최부자집에서 유래한다.
  • 경기 >고양시

    “고추장 한 숟가락에 지천에 널린 채소를 탈탈 털어 끓인 미꾸라지 털레기”
    고양의 미꾸라지 털레기는 통째로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를 넣고 끓이다가 고추장을 푼 물에 채소를 탈탈 털어 넣는다. 그래서 ‘미꾸라지 털레기’라고 부른다. 미꾸라지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 가을에도 잡았다. 겨울에는 논두렁의 진흙을 파서 잠자던 미꾸라지를 꺼내 먹기도 했다.
  • 전남 >무안군

    남도의 쌉싸름한 맛, 전라남도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김치는 소금물에 삭혀 쓴맛을 제거한 고들빼기를 멸치젓국,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의 양념에 버무려 담근 전라남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고들빼기는 산과 들이나 밭 근처에서 자생하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뿌리와 잎을 나물이나 김치로 이용한다.
  • 강원 >춘천시

    겨울철 물에 담가 먹는 김치, 동치미
    동치미는 무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배, 청각, 쪽파, 갓, 고추, 마늘, 생강 등과 함께 소금물을 부어 익힌 김치이다. 주로 김장철에 담그는 동치미는 옛 조리서에 ‘동침(凍沈, 冬沈)’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름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북부 지방에서는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겨울철 별미로 즐겼고 강원도 지역에서도 막국수 국물로는 동치미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 전북 >부안군

    염장만큼 숙성이 중요한 젓갈
    젓갈은 어패류에 소금을 넣고 발효시킨 음식이다. 일제강점기 젓갈생산지역으로 유명한 곳 중 하나가 곰소만 지역이다. 일제강점기 간척사업으로 섬이었던 곰소가 육지가 연결되고 그 부근의 갯벌은 염전이 되었다. 염전에서 천일염이 많이 생산되어 젓갈의 재료로 쓰였다. 곰소만에서 잡히는 어패류가 다양했으므로 곰소만의 젓갈은 다양하다. 젓갈은 신선한 해산물을 잡은 즉시 바로 염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숙성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젓갈의 숙성은 곰소만의 객주들이 했는데 이들은 주로 충남의 광천굴, 폐광, 폐터널 등에서 젓갈을 숙성시켰다.
  • 충남 >홍성군

    토굴 숙성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토굴새우젓시장
    우리나라에서 새우젓으로 유명한 곳이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이다. 광천은 고려시대 때부터 새우젓 산지로 유명했다. 조선시대에는 호남지역에서 세곡 등을 싣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조운선(漕運船)이 운행하는 길목이다. 현재 ‘광천토굴새우젓시장’은 토굴에서 숙성시킨 새우젓을 주로 판매한다. 시장의 상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새우젓을 파는 상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새우젓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 인천 >남동구

    인천에도 얼큰한 인천식 추어탕의 명소가 있다, 연락골 추어탕
    연락골 추어탕은 삶은 미꾸라지를 갈아서 얼큰한 고추장 국물에 끓여내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운연동 주민들의 향토음식이다. 본래 인천에는 ‘추탕’이 유명하였다. 특히 인천 추탕은 백여 년 전 인천 개항장의 외식(外食)으로 인기를 얻었던 인천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근대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인천 추탕의 명맥은 잊혀졌다. 연락골 추어탕은 개항장의 화려했던 추탕과는 많이 다른 인천농민들의 소박한 음식이지만, 추탕이 인천의 대표음식이었다는 기억을 소환하고 명맥을 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음식이다.
  • 인천 >옹진군

    김치 맛을 더욱 살려주는 옹진 까나리액젓
    까나리는 뼈째 먹을 수 있는 고칼슘, 고단백 생선이다. 구이나 찌개, 조림 볶음 등으로 요리해 먹기도 하지만 주로 젓갈을 담가 먹는다. 까나리젓은 까나리를 소금에 절여 5개월 이상 발효 숙성시킨 식품으로 숙성된 젓갈을 베보자기나 창호지에 거른 것이 액젓이다. 까나리액젓은 김치의 신선도를 높여주고 숙성을 빠르게 하고 간장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충남 >서천군

    충청남도 서천군의 자랑, 붉은보라 빛 새우젓, 자하젓
    자하젓는 8월~11월 , 서해안의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하는 충청남도 서천군지역에서 잡히는 새우인 자하로 담든 일종의 새우젓이다. 자하(滋蝦)는 본래 투명하지만, 젓갈을 담가 숙성되면 붉은 연보라 빛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맛이 담백하고육질이 부드러운 자하젓은 충청남도 서천군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