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조선시대에는 책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은 집에 콕 틀어박혀 마음의 양식을 채우기 좋은 계절입니다.
요즘은 전자책이나 오디오북으로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는데요.
인쇄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는 과연 어땠을까요?

책은 수많은 사람의 손길을 거쳐야 완성되는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종이를 만드는 공정도 까다로웠고,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일 역시 쉽지 않았지요.
목판으로 책을 찍을 때는 판목에 글자를 새기는 장인인 각수의 솜씨가 필요했고,
왕실의 중요한 책은 한 글자씩 필사해 완성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큰 비용과 노력이 들었던 만큼, 글자를 틀리지 않게 옮기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지요.

조선시대에는 책과 관련된 이색 직업도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책 유통 시스템이 없었기에 직접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책을 사고팔았던
‘책쾌’라는 중개 상인이 있었고요.
조선 후기에는 글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사람들 앞에서 책을 실감 나게 읽어 주던 이야기꾼
‘전기수’도 활약했습니다.
이들은 조선 특유의 독서 문화를 잘 보여주지요.

종이를 만들고 글자를 새기던 손길부터 책을 전하고 읽어 주던 목소리까지,
옛 책에 남은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지식과 문화의 뿌리를 찾아 떠나 보세요.
더보기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정조의 개혁정치와 문예부흥의 산실, 창덕궁 주합루
    주합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9호로 지정되어 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창덕궁 부용지 북쪽 언덕 높은 곳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 위층은 주합루라는 편액을 걸었다. 규장각은 도서관으로, 주합루는 열람실로 이용하였다. 이 주합루 일대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丁若鏞)·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덕무(李德懋)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또한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어진·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 서울 >마포구

    100번의 손길이 닿은 종이를 만드는 장인, 지장
    지장은 고유의 제조법으로 종이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상갓집에 부조할 때 종이로 하는 풍습이 있었을 정도로 조선시대 사람들은 종이와 함께 살아가고 종이와 함께 세상을 마쳤다. 조선시대 종이는 조지서에서 만들었는데, 지장, 목장, 염장, 도침군 등 분업이 잘 되어 있었다. 18세기 상품 경제가 발달하면서 종이의 종류도 100여 종 이상으로 늘어난다. 종이를 만드는 지장의 명맥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서적 중개매매인 책쾌
    조선시대 헌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던 사람을 책쾌라 한다. 서쾌 또는 책거간꾼이라고도 불렀다. 책쾌는 가난하거나 몰락한 양반가에서 흘러나온 책들을 시세의 절반에 사서 책이 필요한 사람에게 제값을 받고 팔았다. 유명한 책쾌인 조신선은 조선에서 거래되는 책에 관해서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책쾌는 고객이 원하는 책이라면 금서도 구해다 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영조 때 청나라 책인 『명기집략』의 소장자와 판매자를 잡아들이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100여 명의 책쾌가 붙잡혀 죽었다. 조선 지식인이 학문적으로 성장하는데 나름대로 역할을 하였다.
  • 서울 >마포구

    글씨에 혼을 담는 사람, 각수
    각수는 목판에 글자를 새기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을 말한다. 각자장(刻字匠), 각공(刻工), 각원(刻員)이라고도 한다.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발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각종 서적을 간행할 때 목판인쇄를 한 것은 경제적인 비용 때문이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간행된 경전과 시문집, 저술 등에 관여한 각수의 대부분은 승려였다. 1996년 11월 각자장이라는 이름으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서울 >마포구

    책 읽어주는 남자, 전기수
    18세기 조선은 소설 붐이 일어났다. 서울에 소설책을 대여해 주는 세책점이 성업 중이었으나 일반 백성은 이용하기 어려웠다. 이때 등장한 직업이 전기수이다. 전기수는 서울의 제일교, 제이고, 배오개, 교동, 대사동, 종각에서 일반 백성들을 대상으로 소설책을 읽어주었다. 전기수는 요전법을 통해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다. 전기수는 억양을 바꾸고 몸짓을 곁들여 청중들을 소설의 세계에 빠져들게 했다. 전기수가 낭독한 소설에 과몰입한 청중이 현실과 소설의 세계를 혼동하여 전기수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신문을 편집해 팔았던 기인
    짧은 기간이지만 조선시대에도 지금처럼 민간에서 신문을 만들어 팔았다. 조선시대의 중앙정부기구로서 왕명 출납의 기능을 맡았던 승정원에서 주요 소식들을 필사해 중앙 및 기관의 관서를 중심으로 배포했던 신문을 조보라고 한다. 이 조보를 받아다가 민간에서 활자로 새겨 인쇄해서 팔았던 이들이 기인이었다. 그러나 민간 조보의 역사는 1년도 유지되지 못했다. 1577년 11월 28일, 민간에서 발행한 조보를 본 선조가 조보 발행을 허락한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유배를 보냈기 때문이다.
  • 대구 >달성군

    고서 2만 권을 소장한 대구 죽헌 문달규 종가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의 남평문씨 죽헌 문달규 종가에는 대대로 읽어왔던 20,000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 인수문고가 있다. 죽헌 문달규 종가가 있는 인흥마을은 인흥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인수문고가 소장한 책들은 결본이 거의 없는 완전본이다. 인수문고는 문중 문고이지만 지역성에 편협되지 않고 다양한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 자랑거리이다.
  • 전국

    아름다운 편지지를 찍어내는 시전지 목판
    시전지는 시나 편지를 적는 종이를 의미한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사용됐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개인에게까지 보편화되었다. 목판에 다양한 그림이 새겨지고 여러 가지 색의 염료를 묻혀 인쇄하는 방식으로 시전지가 제작되었다. 시전지 목판은 전국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꾸준히 전시되어 오고 있다. 시전지 목판 인쇄는 선조들의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삶을 알게 해주는 기록문화의 한 수단이다.
  • 전국

    조선시대 인쇄 문화를 살필 수 있는 목활자 인쇄용구
    목활자는 글자 하나하나를 네모진 나무 조각에 새긴 것으로 활자를 필요한 문구대로 조합한 뒤 인쇄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목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이 국가 기관은 물론 절이나 서원, 민간에까지 보급되면서 민간에서도 책을 제작하게 되었다. 목활자를 비롯해 조각칼, 대젓가락, 먹솔 등 인쇄에 사용되던 도구들이 현재까지 전해진다. 국립중앙도서관, 청주고인쇄박물관, 영천역사박물관 등 여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인쇄문화를 관람하고 체험할 수 있다.

청춘의 용기로 피어난 독립의 빛

11월 3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이날은 1929년에 광주 학생들이 일제 식민지 정책에 항거한 날을 기념하는 날로, 1919년 3·1운동, 1926년 6·10만세운동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독립운동으로 불릴 만큼 역사적 의미가 깊습니다.
이 격렬한 항일 운동의 발단은 1929년 10월 30일, 나주역에서 발생했습니다. 통학 열차에서 일본인 학생이 한국 여학생의 댕기 머리를 잡아당기며 희롱한 사건에 한국 학생들이 항의하며 충돌했고, 편파적인 일본 경찰의 조치에 쌓였던 분노가 폭발한 것입니다. 이는 성진회, 독서회 같은 비밀 학생 조직이 중심이 된 대규모 항일운동으로 번졌는데요. 1930년 3월까지 전국에서 5만 4천여 명의 학생이 참여하는 등 역대급 규모로 확산되었지요.
학생독립운동은 학생들이 주도한 민족해방운동이자 1930년대 국내 항일 독립운동의 포문을 여는 신호탄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집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용기를 내어 일제에 항거한 광주 학생들의 빛나는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족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더보기
  • 전남 >영암군

    영암의 아들 최규창,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최규창은 1920년대 광주항일학생운동을 이끈 성진회와 독서회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그는 광주고등보통학교 2학년 때 중등 학교 최초의 비밀 학생 모임인 ‘성진회’에 가입하여 1928년 동맹휴교 싸움을 이끈 지도부로 활동하였고, 1929년 광주 학생 운동 때에는 독서회 관계자로 참여하여 학생운동을 조직적으로 이끌었다. 1930년 중반 이후부터 사망하기까지 그는 ‘호남평론’, ‘호남신문’, ‘조선중앙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 경남 >진주시

    진주 항일학생운동가 정금자
    정금자는 1930년 진주에서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 시위에 참여해 정학처분을 받았다. 1931년에는 부산에 있는 조선방직회사 직공이 되어 노동운동에 참여한다. 사회주의 계열 적색노동조합에서 활동하며 하동 출신인 김계정, 제영순, 조복금 등과 함께 1931년 파업을 주도하다 체포돼 불구속 기소된다. 1930년 1월에 1929년 광주학생운동에 동조하는 만세 시위를 한 공로가 인정돼 2018년 대통령 포창을 받았다.
  • 전남 >완도군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인 학생시위로 확산시킨 장석천
    장석천은 전라남도 완도 신지도 출신으로 1918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이유없이 학생들을 괴롭히는 일본 교사를 응징하고 퇴학당하였다. 그리고 장석천은 1926년 ‘동맹휴학’사건으로 무기정학 처분을 당하자 스스로 학교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유학하였으나 전라남도 광주로 돌아왔다. 광주에서 활동하던 장석천은 광주학생운동으로 구속된 학생들을 위한 대책협의와 광주학생운동을 전국적으로 확산할 것을 결의하였다. 장석천은 학생운동의 지도를 전담하였으며 이로 인해 체포되어 1년 6개월 형의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다시 노동운동을 벌이다 1932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2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보석출감하였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치료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석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전남 >구례군

    독서회 중앙본부 조직에 앞장선 조길룡
    조길룡은 전라남도 능주군 원화순방 읍내면(지금의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출신으로 1929년 성진회를 이어 받아 항일의식을 고취하였다. 장재성이 동경에서 귀국하여 ‘독서회 중앙부’를 조직하자 조길룡은 독서회 중앙부 출판부 위원으로 각종 인쇄물 인쇄와 배포를 맡았다. 독서회 중앙부에서 활동하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이 일어나자 동맹휴학을 주도하고 광주농교생 가두시위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보안법 위반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8개월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조길룡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경북 >칠곡군

    대구사범학교 항일비밀결사 ‘다혁당’ 당수 권쾌복
    권쾌복은 경상북도 칠곡 출신으로 1939년 ‘왜관사건’ 과 관련하여 비밀결사 ‘백의단’을 조직하였으나 즉흥적 조직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하였다. 1941년 권쾌복은 선배들이 결성한 ‘문예부’와 ‘연구회’ 조직이 졸업생 중심으로 구성되어 조직 존속의 문제가 생기자 유흥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조직을 계승한 ‘다혁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권쾌복은 다혁당의 당수였으나 조직이 결성된 지 5개월 만에 발각되어, 포항에서 군사 훈련을 받던 중 체포되었다. 권쾌복은 다혁당의 당수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권쾌복은 광복 후 언론계에 몸담았고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권쾌복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경남 >통영시

    『반딧불』로 항일정신을 고취시킨 강두안
    강두안은 경상남도 통영 출신으로 『학생』, 『반딧불』 등을 발간한 독립운동가이다. 강두안은 대구사범학교 4학년으로 1939년 10월 박효준(朴孝濬)·이태길(李泰吉)·문홍의(文洪義)·유흥수(柳興洙) 등과 반일민족의식을 담은 작품집 『반딧불』을 간행하여 민족의식과 반일정신 고취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1941년 7월 대구사범학교 윤독회에서 간행한 『반딧불』이 일제 경찰 손에 들어가면서 대구사범학교 비밀결사 전모가 드러나 대합국민학교에 부임한 강두안은 체포되었다. 1943년 강두안은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 1944년 12월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강두안에게 1963년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부산 >부산진구

    일제의 전시체제에 항거한 부산 항일학생의거지, 부산공설운동장
    부산공설운동장(현 구덕운동장)은 1940년 11월 23일 일제가 주죄한 제2회 ‘경남학도전력증강 국방대회’라는 학생경기대회에서 일본인 심판장의 편파 판정과 민족차별에 분노한 동래중학교와 부산 제2상업학교의 조선인 학생들이 의거를 일으킨 장소이다. 이날 양교 학생 1,000여 명은 시내로 진출하여 가두시위를 벌였고, 경기 심판장이었던 노다이 대좌의 관사까지 습격하였다. 현재 구덕운동장 주차장 앞에는 <부산 항일학생의거 터> 표지석이 세워졌고, 2004년 11월 23일 부산학생의거를 기리기 위해 부산어린이대공원에 <부산항일학생의거기념탑>이 건립되었다.
  • 대구 >중구

    항일비밀결사 태극단(太極團) 결성지와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탑
    태극단은 1943년 5월 대구공립상업학교 4학년생 이상호가 서상교, 김상길 등과 함께 전시체제의 일제에 항일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한 학생 비밀결사 조직이다. 그러나 태극단은 결성한 지 2주 만에 내부자의 밀고로 단원이 전부 검거되면서 조직이 와해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군국주의 침략전쟁이 극성에 달했던 시기에 엄혹한 통제와 감시가 자행되는 중에도 무려 1년에 걸친 준비 기간을 거쳐 조직을 구성하였다는 점에서 태극단은 1940년대 대구지역의 비밀결사 활동 및 학생운동에 이정표를 하나 세웠다고 할 수 있다. 태극단이 결성되고 활동하였던 대구공립상업학교 본관(1923년 건축, 대구광역시 중구 대봉동) 건물은 현재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다. 2003년 학교를 새로운 교사(대구광역시 달서구 상인동)로 이전하면서 학교 뒤편에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였고, 공원 경내에는 태극단학생독립운동기념탑을 새로이 건립하였다.
  • 광주 >북구

    일제강점기 최대의 학생운동, 광주학생의거와 기념유적
    광주학생의거는 1929년 10월 30일 전라남도 나주역에서 일본인 남학생이 한국인 여학생을 희롱한 사건을 발단으로 일어난 일제강점기 최대의 학생운동이다. 같은 해 11월 3일 광주고등보통학교와 광주농업학교, 전남사범학교의 학생들이 일제의 차별과 탄압에 항의하는 가두시위를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이듬해인 1930년 3월까지 항쟁이 지속되었다. 또한 광주학생의거는 특정 지역의 학생운동에 그치지 않고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으로 확산하여 전민족적인 항일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현재 광주광역시에는 광주고등보통학교의 후신인 광주제일고등학교를 비롯하여 곳곳마다 광주학생의거를 기념하는 기념탑과 기념관 등이 건립되어 있다.
  • 전남 >해남군

    광주고등보통학교에서 외친 항일운동, 윤창하
    윤창하는 전라남도 해남 출신으로 해남군 현산보통학교를 졸업, 1926년 광주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1928년 윤창하는 광주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이경채의 퇴학 처분에 항의하여 일어난 동맹휴학에 동참하였다. 이로 인하여 윤창하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1929년 윤창하는 독서회 중앙본부 재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광주고등보통학교 독서회 조사선전부 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참여하였고,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시위운동과 독서회 활동건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고 출옥하였지만 이후 옥고 후유증으로 아무런 활동을 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윤창하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입동을 맞이하니 겨울 시작이었다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인 입동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 사이에 있으며, 양력으로는 11월 7~8일 무렵, 음력으로는 10월에 해당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겨울 문화가 펼쳐집니다. 첫 번째 겨울 문화는 김장입니다. 그 다음 해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이 시기,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소중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김장 후에 만든 수육과 함께 신선한 김치를 즐기는 것은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양한 겨울 축제들입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전국 각지에서 눈꽃 축제, 얼음낚시 축제, 겨울 먹거리 축제, 불빛 축제 등 여러 축제가 열리는데요. 특히 강원도에서는 대관령눈꽃축제, 인제빙어축제, 평창송어축제 등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들이 열립니다. 겨울 문화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보세요. 주위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추운 겨울도 따스함으로 가득 찬 기분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모두 사랑하는 이와 함께 따스한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더보기
  • 광주 >남구

    ‘광주김치박물관’, 한국 전통 발효 과학의 홍보대사
    광주김치박물관은 ‘김치’를 주제로 광주김치센터 본관 2층에 자리한 박물관이다. 김치의 역사, 김치라는 단어의 변천사, 김치 담는 재료와 과정, 전국의 다양한 김치 종류, 김치 담을 때 필요한 물품, 김치의 효능과 가치 등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2010년에 개관했다. 상설전시실은 전시 내용에 따라 ‘환영의 장’, ‘김치역사의 장’, ‘팔도김치의 장’, ‘김치체험의 장’, ‘김치탐구의 장’,‘발효음식의 장’으로 나뉜다.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를, 새삼 새롭게 보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
  • 강원 >화천군

    한국의 대표적인 겨울축제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
    산천어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로 1급수의 맑은 계곡에서만 서식한다.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의 백미는 산천어 낚시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30cm이상 꽁꽁 언 화천천 위에서 얼음구멍을 뚫고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를 낚는 것이 얼음낚시이다. 산천어 낚시는 1일 최대 8,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얼음낚시’, 1일 최대 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외국인 얼음낚시’, 1일 최대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밤낚시(야간)’가 있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발돋움하며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높아졌고, 눈썰매장, 산타우체국 등 가족들이 즐길거리도 많다.
  • 강원 >태백시

    멋진 눈조각을 감상하며 썰매를 타요! '태백산눈축제'
    태백산눈축제는 매년 1월 말에서 약 9일간 태백산국립공원과 태백시 일원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축제이다. 태백산눈축제는 규모가 큰 눈조각을 만날 수 있고, 얼음썰매, 얼음미끄럼틀, 오궁썰매타기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이글루 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어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축제이다. 태백산 근처에는 황지, 태백석탄박물관, 용연굴(龍淵窟)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 강원 >평창군

    꽁꽁 언 오대천에서 낚시와 송어회를 즐겨봐요 '평창송어축제'
    평창송어축제는 눈과 얼음의 고장인 평창 오대천 일원의 야외에서 즐기는 송어축제이다. 싱싱한 송어도 잡고 얼음 위에서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추위를 이길 수 있다. 평창군은 국내 최대의 송어 양식지로, 이곳에서 자란 송어는 식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평창송어축제의 프로그램으로 ‘텐트낚시, 얼음낚시, 놀이시설, 맨손잡기, 먹거리촌, 어린이낚시’ 등이 있는데, 맨손잡기가 평창송어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 강원 >평창군

    대관령에서 만나는 눈과 얼음의 낭만, 대관령눈꽃축제
    대관령눈꽃축제는 눈을 소재로한 겨울축제로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에서 1993년 처음 시작되었다. 매년 1월 대관령 고원에서 펼쳐지는 대관령눈꽃축제는 눈꽃과 얼음을 활용하여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한다. 거기에 대관령 만의 겨울생활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겨울축제이며, 자연환경을 활용한 겨울축제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강원 >인제군

    얼음판에 구멍 내어 빙어를 잡아요! 인제빙어축제
    인제빙어축제는 매년 1월~2월에 강원도 인제군 남면 빙어호 일대에서 개최되는 겨울축제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매우 춥다. 추운 겨울 꽁꽁언 빙판위에서 빙어낚시를 하는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빙판위에서 활동을 할수 없어 날이 추워야만 가능한 겨울축제이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빙판이 쉽게 형성되지 않아 축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 광주 >남구

    우리 김장문화를 널리 알리는 '광주세계김치축제'
    우리나라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광주세계김치축제는 국내 유일의 김치테마 축제로, 김치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다양한 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행사이다. 광주세계김치축제는 김치와 관련된 각종 경연대회와 문화행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김치와 김치 재료 등을 살 수 있으며 각종 먹을거리도 맛볼 수 있다.

을지로-동대문의 뉴트로 바이브

과거의 것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새로운 변화를 이어가는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뉴트로'. 을지로와 동대문이 21C 트렌드를 장식하는 이유를 찾아가봅니다.
더보기
  • 서울 >중구

    을지로의 소울푸드, 을지로골뱅이
    여름철 시원한 안주가 생각날 때, 고된 하루 끝에 매콤한 것이 당길 때면 골뱅이무침만한 것이 없다. 매콤, 새콤 입맛을 돌게 하는 골뱅이무침은 서울 청계천 남쪽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 을지로 거리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왜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하필 서울 을지로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을지로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공구, 타일, 인쇄 상인과 노동자들부터 지금의 사무직 직원들에게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을지로 골뱅이의 정체성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 >동대문구

    한약재의 집산지 경동시장
    서울특별시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에는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설시장인 '경동시장'이 있다. 원래 농산물과 임산물을 판매했지만, 1960년대 후반 을지로와 종로에 있던 상인들이 이주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약재시장이 되었다. 또한 경동시장은 '서울약령시 한방축제 개최'를 통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2017년 10월 서울한방진흥센터를 개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 서울 >중구

    서울 미래유산에 등재된 서울풍물시장
    '서울풍물시장'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래는황학동에 있었던 ‘벼룩시장’에서 유래한 시장이다. 2004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했다가 동대문운동장이 공원화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공식 명칭을 서울풍물시장으로 변경하였다. 주로 옛 풍물과 일생생활용품, 관광, 토속상품, 민속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서울풍물시장은 2013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23년된 와인바 겸 카페 대학로 나무요일
    나무요일은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카페 겸 펍(pub)으로,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명륜동을 포함한 대학로 일대는 단순하게 한가지 색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역사·문화적으로 많은 가치를 지닌 곳이다. 많은 예술가가 대학로 일대의 다방, 술집 등을 아지트 삼아 작품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나무요일도 단골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숨은 진주 같은 가게이다.
  • 서울 >중구

    “생맥주 집은 생맥주가 맛있어야 하고 노가리는 천 원에 파는 게 예의”
    우리나라에 최초의 맥주공장이 들어선 것은 1933년이다. 일본의 자본으로 조선맥주회사와 소화기린맥주회사가 설립된다. 광복이 되고 미 군정이 관리했을 때에는 미군이 마실 맥주를 판매했다. 맥주회사의 민간 경영은 1952년부터 시작됐다. 을지로 3가 인쇄골목의 또다른 이름은 노가리골목인데, 노가리골목을 만든 가게가 을지오비베어다. 1980년 12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업했고, 지금은 2대째 딸이 물려받아 영업하고 있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배오개장을 계승한 광장시장
    '광장시장'은 1905년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조선후기 종로 지역에 있던 배오개장의 전통을 계승한 시장이다. 주요품목은 직물과 한복 등이며, 먹거리와 구제 상품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하루에 6만 5천여 명이 방문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종합 시장이다.

군산, 한국 근대의 타임캡슐

많은 관광객이 찾는 항구도시 군산, 그 안에는 일제 수탈의 역사가 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한 군산항은 다른 항구와는 다르게 쌀 수출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후 경제적으로 일본에게 철저하게 수탈과 이용을 당했습니다. 여전히 남아있는 일제 강점기의 건물들은 당시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거주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더보기
  • 전북 >군산시

    미곡집산지 군산의 카페 미곡창고
    군산의 카페 미곡창고는 1960년대에 지어진 농협 미곡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카페이다. 당시의 외관이 남아 있으면서도 인테리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카페이다. 창을 크게 내어 창고의 갑갑한 단점을 보완했고, 전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 맛도 일품이다. 유기농 밀로 직접 만든 빵도 맛있다. 군산역과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근처에 있어서 군산 근대거리를 관광한 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 전북 >군산시

    금고를 채웠던 것은……,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전라북도 군산시 구 일본 제18 은행 군산지점은 1907년 설치되었다. 군산은 1899년 개항장이 된 이래 호남평야의 미곡반출 항구로서 일제강점기 내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구 일본 제18 은행 군산지점 건물은 1911~1914년 사이에 건립되었다. 특이하게 영업장으로 쓰인 본관과 사무실용 별채, 금고 겸 창고였던 별채 등 3개 동으로 지어졌다. 본관과 별채들은 바짝 붙여지어서 짧은 통로로 연결된다. 영업장과 금고 사이에는 철제문이 설치되었다. 군산세관이나 조선은행 군산지점 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소박한 외관을 보이지만, 일제의 ‘식민지 수탈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공간으로써 역사적 가치가 높다. 후에 대한통운 소유의 건물이 되었다가, 2013년 이후 군산 근대미술관이 되었다.
  • 전북 >군산시

    식민지 군산을 배경으로 한 '탁류'의 작가 채만식
    채만식은 군산의 작가다. 「레디메이드 인생」,「탁류」,「태평천하」 등의 대표작이 있으며, 그 소설들은 식민지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하며 비틀어 웃음을 준다. 풍자소설이자 세태소설로 채만식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그의 대표작 『탁류』에는 군산과 금강이 나오고, 군산시 장미동의 미두거리가 나온다. 그의 문학비와 소설비가 군산 시내에 있으며, 채만식 문학관도 건립되어 있다. 묘소도 군산시 옥구군 계남마을에 있다.
  • 전북 >군산시

    쌀 수탈의 한이 어린 통로 – 전북 군산 해망굴
    구 군산시청 앞의 중앙로(구 명치정통)는 군산 원도심을 동서로 연결하는 도로이다. 중앙로의 서쪽 끝에 해망령(海望嶺)이 있는데 일제는 군산시내와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현 해신동), 미곡을 반출하던 군산 내항을 연결하기 위해 해망령에 터널을 만들었다. 1926년 제3차 군산항 축항공사가 벌어졌는데 이때 해망굴(海望堀)도 함께 건설되었다. 해망굴 공사는 돌산을 깨서 만드는 난공사여서 인부 10여 명이 사망했는데 일제는 희생된 조선인 인부의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않았다. 이에 군산 노동운동의 대부이자 독립운동가인 조용관 선생이 투쟁을 벌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주둔했던 인민군의 지휘본부가 연합군의 공습을 피하기 위해 해망굴에 설치되기도 했다. 근대기에 만들어진 군산의 대표적 토목 구조물인 해망굴은 2005년 6월 18일 등록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었다.
  • 전북 >군산시

    ‘영원한 일본의 군산’을 꿈꾸었으나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전라북도 군산시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구 히로쓰 가옥’으로 불리던 집이다. 히로쓰는 군산에서 재산을 불리고,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예전에는 1925년 저택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일본인 학자가 후손 인터뷰 등을 통해 1934년 신축을 주장해, 정확한 연대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이 집은 일본산 삼나무를 써서 일본식으로 건축되었다. 방 하나에 온돌을 설치해 한국식 주거문화를 일부 받아들인 흔적도 보인다. 일본식 정원을 갖춘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의 근대역사 자취를 답사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수 코스로 꼽힌다.
  • 전북 >군산시

    일본 불교와 한국 불교의 인연과 악연-군산 동국사 대웅전
    전북 군산시 동국사의 뿌리는 1909년 문을 연 일본 ‘금강선사’라는 포교당이다. 금강선사는 일본 불교 조동종의 우치다 붓칸이라는 노승이 군산으로 건너와 세웠다. 금강선사는 금강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3년 식민지에서 농장 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신도들의 시주로 절을 지었다. 해방 후 동국사라는 이름으로 개칭했다. 동국사 종각 옆에는 2010년대 들어 평화의 소녀상과 일본 조동종의 참회의 비석이 세워졌다.
  • 전북 >군산시

    근대에게 말을 걸고 싶다면 - 군산의 근대 역사 문화 공간들
    전라북도 군산시는 근대 건축물이 170건 이상 남아 있어 ‘근대의 타임캡슐’로 불린다. 1900년대 군산 내항 축항 건설을 시작으로 군산은 한반도에서 중요한 항구로 부상했다. 한반도 쌀 반출량의 4분의 1이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실려 나갔다. 일본인들의 유입도 계속 늘어 1920년대에 이르면 군산 인구 가운데 한국인 대 일본인의 비율이 6대4로 거의 비슷한 정도에 이르렀다. 군산 내항 앞 해망로 일대에는 근대문화유산이 여러 건 있다. 1920년대부터 군산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이른바 원도심을 중심으로 다양한 건물이 지어졌고, 이 가운데 상당수가 근대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군산 원도심 일대의 어느 골목에 들어서도 군산 근대의 면모를 보여주는 유산을 만날 수 있다. 군산은 거리와 골목을 천천히 거닐면서 근대의 의미를 찬찬히 짚어보기 적합한 도시다.

충청도의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누정

단풍이 짙어지는 가을, 누정을 돌아보며 옛 선비들의 정취를 느껴보아요
더보기
  • 충북 >옥천군

    금강을 바라보다 고속도로에 막힌, 옥천 양신정
    충북 옥천의 양신정(養神亭)은 금강 주변에 있다.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에서 강을 따라가다 보면 마주치는 곳이다. 양신정은 1545년 옥천 전씨 전팽령(全彭齡)이 낙향하여 지은 정자이다. 전송정(全松亭)이라 하기도 했다. 지금도 양신정에는 키 큰 소나무 한그루가 정자를 지키고 있다. 양신정 입구에 전팽령을 비롯한 옥천 전씨를 모신 목담영당(鶩潭影堂)이 있다. 양신정은 멀리 금강과 그 너머 산자락을 바라보는 자리였으나, 현재는 경부고속도로의 소음을 견뎌야 할 정도로 주위가 망가졌다.
  • 충북 >제천시

    예전의 영화가 그리운, 청풍 한벽루
    고려 때 지어진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에 ‘차고 맑은 물과 푸르는 산과 나무’가 보이는 누각이 서 있으니 바라보는 풍광이 오죽 좋았을까 싶다. 한벽루를 노래한 주옥같은 시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물빛은 너무 맑아 거울인가 거울이 아닌가”로 시작되는 고려의 주열(朱悅)의 시가 그렇고, “거울도 아니고 연기도 아닌데 온통 푸르게 칠해 있네”라고 화답한 퇴계 이황의 시가 그렇다. 하지만 충주댐 건설로 이사한 한벽루의 옛 풍광이 아쉽기만 하다.
  • 충북 >제천시

    벗들과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청풍 응청각
    청풍 응청각(凝淸閣)은 청풍 관아의 부속 건물로 공무로 내려온 관인이 머물던 객사였다. 응청각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였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응청각도 청풍 관아의 금병헌·한벽루·금남루 건물과 함께 현재의 자리로 사이좋게 이전되었다. 문루인 금남루에서 보면 동헌인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나란히 서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퇴계 이황과 같이 응청각에서 유숙하면 지은 시가 많이 있다.
  • 대전 >대덕구

    소나무의 절개와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한, 대전 송애당
    송애당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대전광역시유형문화재 제8호이다. 김경여가 병자호란 때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1640년에 본가 옆에 별당으로 건립하였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90년에 옛터에 중수하였으며, 이후 1889년에 다시 중수되었다. 주변에 소나무가 많아서 당호를 송애당이라 하고, ‘송애’라는 의미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치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간직하겠다.”는 것으로, 김경여의 높은 기개와 충성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 경북 >영덕군

    영해 안동권씨의 무덤을 지키는, 영덕 화수루
    화수루는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 6-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화수루 일곽으로 국가민속문화재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수루 일곽은 화수루와 청간정, 까치구멍집을 지칭한다. 화수루는 옥천재사라고도 하며, 안동권씨의 영해 입향조 권책의 증손자인 권희언의 묘제를 수행하기 위해 지은 재사 건물이다. 이 정자는 그의 다섯 아들들이 1676(숙종 2)에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청간정은 권책의 후손인 권창유가 권희언을 추모하여 1808년(순조 8)에 건축한 정자이다. 까치구멍집은 화수루를 수호하기 위하여 17세기에 건립된 부속 초가 민가다.
  • 충북 >제천시

    새 보금자리에서 둥지를 튼, 청풍 금남루
    금남루(錦南樓)는 청풍도호부의 정문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금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1825년이고, 원래 있었던 자리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 읍리였다. 금남루는 1985년 청풍 관아의 한벽루·응청각·금병헌과 함께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청풍문화재단지로 이전되었다. 호수위의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는 제천시 10경 가운데 제5경이다.
  • 충남 >논산시

    스승과 제자가 함께 금강을 바라보던, 논산 임리정
    논산 임리정(臨履亭)의 원래 이름은 황산정(黃山亭)이었다. 임리정은 1626년 사계 김장생(金長生)이 낙향하여 설립한 정자이다. 임리정은 《시경》의 “두려워하고 조심하기를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 같이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것 같이하라”는 글귀에서 따온 것이다. 김장생은 이이와 성혼을 배향하는 죽림서원(황산서원)을 세우고 후학을 양성하였고, 죽림서원 바로 옆에 지은 것이 임리정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아들인 김집을 비롯하여 송시열·송준길·장유 등 당대의 내노라하는 제자를 배출하였다. 제자 송시열의 팔괘정(八卦亭)도 곁에서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 충남 >공주시

    군사적 기능이 중시된, 공주 공산성 만하루
    공주 공산성 만하루(挽河樓)는 조선 후기에 세워진 누각이다. 일반적으로 누각은 문루이자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하지만 만하루는 풍광도 즐기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공산성 동쪽 누대에 해당하는 군사적 기능이 우선시되었던 누정이다. 금강을 내려다보는 만하루는 바로 뒤에 연지와 함께 홍수로 매몰되어 1984년 복원된 건물이다. 누각이지만 1층 기둥이 짧아 단층 건물같이 보인다. 바로 곁의 새로 복원된 연지와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킨 영은사가 뒤에 있다.
  • 충남 >공주시

    인조가 피신 왔던, 공주 공산성 공북루
    공주 공산성의 공북루(拱北樓)는 성문에 해당하는 문루이다. 공북루의 양쪽은 금강을 따라 석벽으로 이어져 있다. 1층 정면 5칸 가운데 중앙의 1칸만 성으로 출입할 수 있게 개방되어 있고 나머지 4칸은 모두 석벽으로 둘러쳐 있다. 공산성의 다른 누각인 만하루(挽河樓)와 마찬가지로 휴식 공간 보다는 군사적 목적이 더 큰 건물이다. 금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공북루의 원래 이름은 망북루(望北樓)였다. 공북루의 명칭은 1603년 쌍수산성을 수축할 때 고쳐 부른 것이다.
  • 충남 >공주시

    정3품의 두 그루 나무가 있던, 공주 공산성 쌍수정
    공주 공산성에 있는 쌍수정(雙樹亭). 이괄의 난 때 공산성으로 피난 왔던 인조가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가 머물던 곳에 있던 두 그루 나무에게 정3품 품계를 내린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누정이다. 공주는 백제의 수도가 있었던 곳이다. 수도를 방어하는 성을 쌓아 백제 때는 웅진성, 고려 때는 공산성,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 때 공산성으로 피난 온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왕도 사랑한 온천의 매력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몸이 움츠러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온천이 생각납니다.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깊숙이 담그는 상상만 해도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만 같죠.
그런데 그거 아세요? 조선의 왕들도 온천 애호가였다는 거! 왕들은 전쟁이나 국난 같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궁궐을 비우지 않았지만, 질병 치유와 요양을 위해 이례적으로 온행(溫幸)길에 오르곤 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욕창을 치유하기 위해 충주의 수안보 온천을 찾았고, 세종도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양온천을 찾았다고 하죠. 왕들은 온천을 병을 치유하는 중요한 장소로 여겨, 왕이 머물 행궁(行宮)을 별도로 지을 정도였습니다.
왕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온천에는 신라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신비로운 이야기도 존재합니다. 눈먼 이가 눈을 뜨고, 깊은 상처가 깨끗하게 치유되었다는 내용이 대표적인데요. 과연 그곳은 어디일까요? 전국 곳곳의 온천 이야기로 움츠러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녹여 보세요!
더보기
  • 인천 >강화군

    차가운 서해 바람을 맞으며 온천욕을, 인천광역시 석모도 온천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에 바닷물로 온천을 할 수 있는 해수온천이 소재한다. 삼산면은 석모도를 비롯해서 아홉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 석모도는 강화군 외포항에서 서쪽으로 1.2km 떨어져 있는 섬이다. 최근 석모도는 인천광역시 관내의 섬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고 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온천 개발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석모도에서 온천이 처음으로 개발된 것은 2001년이다. 당시 양식장에 공급할 지하수를 파다가 우연히 발견하였다. 차가운 서해 바람과 따뜻한 온천수가 만나 조화를 이루는 온천이 석모도 온천이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과 김이 나는 온천탕은 석모도를 찾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 부산 >동래구

    동래온천의 보수공사를 기념한 부산 온정개건비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는 동래부사 강필리가 동래온천을 보수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온정개건비가 있다. 강필리는 온천수의 양을 확보해 온천의 규모를 확장하고 남녀가 따로 사용할 수 있는 탕을 만드는 등 대대적인 보수 작업을 진행했다. 현재에도 동래온천에서 주변 명소를 돌아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으며, 동래온천 용왕 대제가 300년이 넘도록 유지되고 있다.
  • 대전 >유성구

    순수 주민 주도형 축제 '유성온천문화축제'
    유성온천문화축제는 유성온천과 과학도시 유성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계승시킨 순수 주민 참여 및 주도형 축제이다. 유성온천은 197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되었으며 현재는 10개의 관광호텔과 약 200개의 숙박시설이 있다. 매년 2천만 명이 넘는 관광객과 목욕객이 유성온천을 찾고 있다. 유성온천문화축제의 대표적인 행사는 ‘온천거리 퍼레이드, 온천수 건강대첩, 온천수 샤워 DJ파티’이다.
  • 대전 >유성구

    학의 날개를 치료한 유성온천
    대전 유성에서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백제의 한 청년이 신라군과의 전투에 나갔다가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청년은 간신히 도망쳐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상처투성이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약을 써봤지만 효험이 없었다. 어느 날 날개 다친 학이 논길에서 뜨거운 물을 적신 뒤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그곳을 가보니 뜨거운 물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혹시나 하여 그 물로 아들을 씻기니 상처가 말끔히 낫게 되었다. 어머니는 그곳에 장막을 치고 아픈 사람들을 불러 모아 치료했는데 그곳이 바로 유성온천이다.
  • 충북 >충주시

    태조 이성계가 욕창 치료를 위해 다녀간 충북 충주시의 수안보 온천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수안보 온천’ 지대가 소재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태조 이성계가 욕창을 치료하기 위해 수안보 온천을 자주 찾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권람, 권상하, 안맹담 등의 조선시대 선비는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도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수안보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조선 말기 일본인들에 의해서였다. 1885년 소규모의 남녀 목욕탕인 ‘온천정’이 만들어지고, 1929년 온천공으로 굴착 해 온천수를 끌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서 1990년대 수안보온천 지대에는 다양한 호텔과 리조트 등이 들어섰으며, 1997년 ‘수안보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 경북 >포항시

    포항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양학 온천프라자
    경북 포항시 득량동에 있었던 온천. 처음엔 허허벌판에서 시작했으나 한때는 연간 3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유명했던 온천이다. 양학온천의 온천수에는 나트륨이 포함되어 있어 피부의 지방분을 빼주기에 다이어트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운영되고 있었으나, 2020년 대형복합상가 신축 계획이 통과되면서 운영을 중단하게 되었다.
  • 충남 >아산시

    온천과 함께하는 느낌 충만 문화공간 온양온천전통시장
    온양온천시장은 충남 아산시 온천동에 위치하고 있는 아산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으로 약 500여 개의 점포와 800여 명의 상인들이 운영하고 있는 문화관광형 시장이다. 온양온천시장의 상설시장은 3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가장 오래된 점포들이 모여 있으며, 상설시장 건물 안에는 온궁 휴양카페 ‘유유자적’이 있어서 시장을 찾는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편하게 찾아서 쉬고 갈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유명하다.
  • 충북 >충주시

    온천의 고장 충주 수안보풍물시장
    충주시 수안보면 온천리 일대에 위치한 수안보풍물시장은 4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충주의 전통시장이다. 고사리, 곤드레나물, 취나물 등의 나물과 벌꿀, 땅콩, 각종 잡곡 가루와 약초들을 많이 볼 수 있고, 특산품 판매점에 가면 산양산삼, 버섯, 옥수수, 곶감, 충주사과 등을 계절에 맞게 구매할 수 있다. 현대식으로 새롭게 단장해서 깔끔하고 편리한 쇼핑을 즐길 수 있으며, 먹거리로는 꿩요리가 유명하다.
  • 충남 >아산시

    온양온천 최초의 근대식 대중목욕탕, 온양 신정관온천탕
    ‘신정관 온천탕’은 일제강점기인 1928년 일본인이 온양행궁 터에 세운 신정관(神井館)이라는 휴양시설 내부에 설치된 ‘대욕탕(大浴湯)’이라는 대중탕에 기원을 둔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지금의 위치로 이전하여 온천탕이 건축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73년 황해도 출신의 고(故) 문여근 씨가 인수하여 50여 년 가까이 운영하였다. 현재는 아들 문병일 씨가 대를 이어 온양온천 ‘제1호 원탕’의 명성을 지켜나가고 있다.
  • 충남 >아산시

    신라시대부터 다양한 설화가 전해지는 충남 아산시의 도고온천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기곡리 물탕마을에 도고온천이 소재해 있다. 도고온천의 명칭은 아산시 남서부에 위치한 도고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도고온천과 관련해서 신라 시대부터 전하는 유래들이 많이 있다. 도고온천의 온천수로 신라 왕과 태자를 치료하고, 근처 마을에 살던 처녀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했다고도 한다. 도고온천의 본격적인 개발은 1921년 사금 채취하던 일본인에 의해서 시작되었으며, 도고온천은 약알칼리성 유황온천으로 동양의 4대 유황 온천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온천수가 유황을 함유하고 있어 피부에 직접 닿게 하거나 마시면 이온 상태로 체내에 흡수된다.

마음까지 데워주는 한 그릇

겨울이 깊어지면 더 많이 생각나는 뜨끈한 국물 요리. 바글바글 끓는 냄비 속에는 맛있는 재료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각 지역에서 이어져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서울 설렁탕에는 조선 시대 왕들이 백성을 위했던 따뜻한 마음이, 의정부 부대찌개에는 6·25전쟁 직후, 식재료가 부족한 와중에도 맛있는 한 끼를 만들려던 사람들의 지혜가 담겼지요. 남해의 생멸치찌개, 제주의 몸국처럼 바다와 함께 살아온 이들의 삶이 녹아든 국물도 있습니다.
올겨울,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통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더보기
  • 인천 >중구

    전국 꽃게 생산량 1위의 산지에서 맛보는 인천 꽃게탕
    인천은 전국 꽃게 생산량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최대 산지이다. 알배기 암꽃게를 맛보고 싶다면 봄철에, 살이 꽉 찬 수꽃게를 즐기고 싶다면 가을에 방문하여 싱싱한 제철꽃게를 푹 끓여낸 꽃게탕을 맛보자. 전국 최대 산지인 만큼 저마다의 손맛을 자랑하는 꽃게탕집들이 즐비하다. 인천 시내는 물론이거니와, 인천시의 수많은 섬들에서도 특별한 맛의 꽃게탕을 준비해놓고 있다. 바다건너 섬에서 맛보는 꽃게탕은 특히 더 감동스럽다.
  • 경남 >남해군

    멸치는 더 이상 식탁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남해 생멸치찌개
    생멸치찌개는 내장을 제거한 생멸치와 채소에 물을 부어 얼큰하고 자작하게 끓이는 찌개로 경상남도 남해안 일대의 향토 음식이다. 주로 멸치가 많이 잡히는 경상남도 남해군과 거제시, 부산광역시 기장군 등이 생멸치찌개를 비롯하여 생멸치를 이용한 음식으로 잘 알려진 고장이다.
  • 제주 >제주시

    제주도 잔칫집의 필수템, 제주 몸국
    몸국은 제주에서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기 위하여 돼지를 잡을 때 만들던 국으로 돼지고기 육수에 모자반을 넣어 끓여낸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몸국은 돼지고기와 뼈, 그리고 돼지내장을 한 번에 푹 삶아낸 국물을 육수로도 사용한다.
  • 경기 >의정부시

    전쟁과 가난의 사연이 담긴 퓨전요리, 부대찌개
    부대찌개는 군인들이 먹었던 음식이 아니라 미군부대 주변 지역에서 먹기 시작한 음식이었다. 한국전쟁 직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햄과 소시지 등 재료에 김치와 고추장을 섞어 얼큰하게 끓인 찌개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 전남 >영암군

    갈비탕과 연포탕의 환상적인 결합, 영암 갈낙탕
    갈낙탕은 소갈비의 ‘갈’자와 낙지의 ‘낙’자를 조합한 음식명이다. 갈낙탕은 이름 그대로 영암군에서 사육하는 한우의 소갈비와 영암군 독천리 앞바다에서 잡은 뻘낙지를 한데 끓여낸 전라남도 영암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임금님과 함께 설렁탕 한 뚝배기!
    서울에서 유래된 음식으로 소의 여러 부위를 넣고 끓여내 밥과 함께 내놓다. 사골과 도가니를 위주로 양지를 주로 국거리로 쓰며, 10시간 정도 가열하면 고기와 뼛속에 있는 성분이 흘러나와 국이 유백색을 띠게 된다. 삶은 소면을 같이 넣기도 하며, 식당에 따라서 다르지만, 처음부터 밥을 말아서 내놓기도 한다.
  • 강원 >원주시

    얼큰하게 끓여내는 추어탕의 맛, 원주복추어탕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에 있는 원주복추어탕은 원주시에서 최초로 원주식 추어탕을 만들어 판매한 식당이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시집온 이복순 씨가 1965년 이전에 원주고등학교 앞에 장사를 시작한 이래 초기 주요 고객이었던 군인과 공무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이후 원주 관내에 40여 개소의 추어탕집이 생기면서 원주시 추어탕은 원주시의 향토 음식으로 정착하였다. 고추장 양념으로 낸 얼큰한 국물이 특징이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통추어탕’과 뼈째 갈아 넣는 ‘갈추어탕’의 두 가지 메뉴를 제공한다. 현재는 막내딸이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서 2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 서울 >동대문구

    설렁탕 한 그릇 들고 가세요, 선농대제
    선농대제는 1979년부터 선농단이 있는 제기동의 주민들이 1년에 한 번씩 지내기 시작한 제사로, 1992년부터 서울특별시 동대문구가 중심이 되어 국가의례의 형식을 갖추어 매년 4월 곡우(穀雨)를 전후해 열리고 있다. 조선시대 국가제사 중 중사에 해당하는 선농제는 선농단보존위원회에서 옛 자료들을 수집, 연구, 고증하여 오늘날에 이르렀고, 선농단보존위원회는 2018년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시상식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선농대제가 끝나면 대형 가마솥과 화덕을 설치하고, 설렁탕을 재현해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 강원 >삼척시

    담백한 국물이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곰치국
    담백하고 입에서 살살 녹아내리는 듯 연한 육질이 특징인 곰치를 재료로 만든 곰치국은 강원도 삼척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지역에 따라 물텀벙, 물메기, 물고미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는 곰치의 표준어는 꼼치이다. 곰치국은 비리지 않고 시원하면서도 칼칼하다. 또한 연하고 담백한 육질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맛이 일품이다. 신김치, 고춧가루를 푼 곰치국은 숙취해소에 효과가 좋아 해장국으로 인기가 높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가장 흔한 외식메뉴, 설렁탕
    설렁탕은 서울의 명물로 쇠뿔을 제외한 쇠고기 모든 부위를 커다란 솥에 넣어 끓여 밥과 함께 먹는 음식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종로통을 사이에 두고 많은 설렁탕집이 있었다. 설렁탕은 대표적으로 경찰서가 음식값을 낮춘 음식이었는데 1930년에는 종래 15전 받던 것을 10전으로 내리기도 하였다. 설렁탕집은 이러한 가격통제로 청결한 운영에 큰 비용을 쓸 수는 없었다.

평범하지만 특별한 김치 이야기

김치의 날은 사계절 내내 우리 식탁에 올라온 김치의 가치를 생각하고, 오랜 세월 이어온 김장 문화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날입니다. 김치 재료 하나하나가 모여 스물 두 가지 효능을 낸다는 뜻에서 날짜도 11월 22일로 정했습니다.
지역마다 기후와 재료가 달라 김치의 종류와 맛도 다양합니다. 강화도의 순무섞박지, 여수의 돌산갓김치, 충남의 게국지처럼 각 지방의 손맛이 살아 있는 김치들은 서로 다른 풍토와 이야기를 품고 있지요.
김치의 날을 맞아 전국 각지의 다양한 김치를 만나보고, 우리 식탁에 담긴 지역의 맛있는 이야기를 즐겨보세요!
더보기
  • 전국

    한국인의 김치를 만드는 재료 배추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채소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의서 『향약구급방』에 배추가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 고추, 마늘과 함께 4대 주요 채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배추의 대부분은 김치의 주재료로 소비된다.
  • 광주 >남구

    ‘광주김치박물관’, 한국 전통 발효 과학의 홍보대사
    광주김치박물관은 ‘김치’를 주제로 광주김치센터 본관 2층에 자리한 박물관이다. 김치의 역사, 김치라는 단어의 변천사, 김치 담는 재료와 과정, 전국의 다양한 김치 종류, 김치 담을 때 필요한 물품, 김치의 효능과 가치 등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2010년에 개관했다. 상설전시실은 전시 내용에 따라 ‘환영의 장’, ‘김치역사의 장’, ‘팔도김치의 장’, ‘김치체험의 장’, ‘김치탐구의 장’,‘발효음식의 장’으로 나뉜다.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를, 새삼 새롭게 보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
  • 인천 >옹진군

    자연산 굴과 까나리액젓으로 만든 김치의 깊은 맛, 짠지떡
    짠지떡에는 백령도에서 흔한 자연산 굴이 들어있다. 그리고 까나리액젓으로 만든 깔끔한 김치가 그 맛을 좌우한다. 짠지떡의 피는 만두처럼 얇지 않고 두껍고 쫀득하다. 두부나 채소 없이 굴과 삭은 김치 두 가지로 맛을 내고, 굴이 있어도 무르지 않고 먹기에 알맞다.
  • 경북 >경주시

    최부자집 며느리의 고충이 깊게 담긴 김치 사연지
    사연지는 경상도 백김치의 일종으로 경상북도 경주시와 안동시의 향토음식이다. 만드는 방법이 까다롭고 정성이 많이 들기 때문에 안동지역에서는 제사상에도 올린다. 경주 최부자집의 내림음식으로도 유명하며 사연지라는 이름도 최부자집에서 유래한다.
  • 인천 >강화군

    강화도의 특산물 순무로 담근, 순무섞박지
    섞박지는 무, 배추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담근 김치이다. 순무섞박지는 강화도의 특산품인 순무와 새우젓, 고춧가루, 생강, 마늘, 대파 등을 넣어 담그는 섞박지이다. 순무 특유의 씁쓸하고 달큰하며 독특한 향이 각종 양념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 충남 >서산시

    게장 국물을 넣어 지져먹는 김치, 게국지
    게국지는 게나 게장 국물을 넣고 만든 김치를 지져 먹는(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충청남도의 향토음식이다. 요즘 방송에 소개되는 꽃게와 새우가 들어간 해물탕 형태의 게국지는 본래의 모습과 차이가 크다. 게국지는 구수하고 감칠맛도 풍부한 개성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끌고 있다.
  • 강원 >삼척시

    “시원한 곰치국 재료? 푹 삭은 김치 한 국자”
    꼼치는 동해안을 비롯한 모든 해안에서 나는 어종이다. 동해안의 꼼치는 다른 지역과 모양이 조금 다르다. 서·남해안의 것은 메기와 비슷하여 물메기, 미거지라고 부른다. 동해안에서는 꼼치를 곰치, 물곰이라고 부른다. 곰치는 여름 내내 1,000m의 깊은 바다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심이 얕은 바위틈으로 올라온다. 겨울 곰치는 흐물거리던 살도 단단해져 제 맛이 난다.
  • 전남 >여수시

    갓김치가 이어주는 바다와 고기의 맛, 여수삼합
    우리나라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조합해 먹는 삼합요리가 있다. 광주의 홍어삼합, 장흥의 한우삼합, 여수의 돌문어삼합. 이름만 들어도 각 지역의 음식 맛깔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여수의 맛을 담아낸 여수삼합은 지역에서 해물삼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여수 특산물인 돌문어와 돌산 갓김치를 한국인인 국민 고기인 삼겹살과 함께 불판 위에서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사이좋게 한점씩 올려 한입에 먹으면 삼합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 전남 >무안군

    남도의 쌉싸름한 맛, 전라남도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김치는 소금물에 삭혀 쓴맛을 제거한 고들빼기를 멸치젓국,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의 양념에 버무려 담근 전라남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고들빼기는 산과 들이나 밭 근처에서 자생하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뿌리와 잎을 나물이나 김치로 이용한다.
  • 전남 >여수시

    톡 쏘는 알싸한 남도의 맛, 여수 돌산갓김치
    돌산 갓김치는 여수의 향토음식으로 돌산도에서 재배한 갓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멸치액젓과 생새우 등을 넣어 버무린 김치이다. 돌산 갓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과 알싸한 맛으로 예로부터 궁중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일대의 죽포, 두문포, 봉림, 방죽포의 네 개 마을은 ‘여수 돌산 갓김치 마을’로 지정되어있다.

겨울 시작 전 즐기는 특산물

12월을 코앞에 두 고있는 지금! 후다닥 맛봐야하는 특산물들이 있습니다~ 지금 바로 지역N문화와 함께 알아보러 떠날까요?

먼저 해산물들을 만나볼까요? 고등어는 영양소가 풍부한 생선으로 구워 먹기도 하고 조려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닷가 근처에서는 회로도 맛볼 수 있는데요. 육질의 탄력과 함께 지방층이 많아 입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이 일품이라고 합니다. 삼치도 고등어와 마찬가지로 구이로 대표적이지만 현지로 가면 회로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맛이 참치와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그중에서도 대삼치회를 최고로 친다고 해요.

다음은 땅에서 나는 농작물입니다. 무는 김치뿐 아니라 국거리, 찌개, 생선조림, 무말랭이, 단무지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되는데요. 맛도 좋지만, 소화 기능과 기관지에도 좋은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무처럼 소화와 기관지에 좋은 과일이 있다고 하는데요! 바로 배입니다. 후추를 박고 꿀에 삶아낸 배숙은 천연감기치료제로 유명하죠~ 마지막으로 늙은 호박입니다. 호박은 이뇨 작용이 뛰어나 부종 예방에 좋으며 포만감도 뛰어납니다. 찜과 죽 그리고 전 등 많은 요리로도 즐길 수 있다고 해요~

이렇게 11월의 특산물들에 대해서 알아봤는데요. 어서 빨리 특산물을 즐기고 맛도 건강도 함께 잡아봅시다!
더보기
  • 전남 >고흥군

    최대 유자 산지, 고흥의 유자로 겨울나자!
    전라남도 고흥군은 남도의 특산물인 유자 생산의 주산지이다. 고흥은 특별히 ‘유자골’이라 불린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지 않고, 겨울철에 눈도 적게 내리고, 일조량이 풍부해 광합성을 잘할 수 있어 유자가 성장하기에 적합한 아열대 기후적 조건이기 때문이다. 고흥유자는 구연산과 식이섬유가 듬뿍 들어 있어 감기예방은 물론 피부미용, 소화액 촉진 등의 효과가 탁월할 뿐만 아니라 유자향이 진하고, 과즙도 많아 상품으로 인정받았다. 전국 유자 생산량의 30%가 고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다양한 유자 관련 상품은 고흥 유자축제에서 만날 수 있다.
  • 제주 >제주시

    너무 귀해서 나무를 잘라버렸던 감귤
    감귤은 대표적인 겨울 과일로 동남아시아 아열대가 원산지이다. 비타민 A, C의 함량이 높아 겨울철 감기 예방에 좋다. 겉껍질은 말려서 차나 약재로 활용하며, 속껍질의 하얀 부분은 펙틴이 풍부하여 과육과 함께 잼, 마멀레이드로 활용된다. 이른 시기부터 재배된 과일로 보여지며 현재 우리가 먹는 감귤의 대부분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사이에 일본에서 들어온 온주밀감이다. 그러나 최근 한라봉, 천혜향, 레드향과 같은 감귤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
  • 충남 >천안시

    세계인이 매료된, 당도가 높고 과즙이 많은 ‘천안 성환배’
    충청남도 천안시 성환읍과 직산읍에서는 특산물로 배를 재배하는데, 성환에서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하여 ‘성환배’라 한다. 15세기 초반의 『세종실록』 지리지에 천안의 공물로 배가 등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토종배 재배에 적합하였다고 하겠다. 성환읍에서는 1909년에 처음으로 현재의 성환배를 재배하기 시작해 2023년 기준으로 11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성환배는 추석보다는 추석이 지난 후 만생종으로 그 맛이 더해진다. 매년 10월에 수확하는 성환배는 전국에서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며, 과즙도 많은 특유의 맛을 지니고 있다.
  • 전국

    전도 해 먹고 쌈도 싸 먹고 나물로도 먹는 호박
    호박은 박과에 속하는 덩굴성 초본식물로 널리 재배된다. 한국에서는 애호박의 한 종류인 동양계 재래종 서울마디호박이 주로 재배되며 어린 열매는 나물, 전 등의 음식으로 만들어 먹고, 늙은 열매는 과육을 떡, 범벅, 죽 등으로 만들어서, 혹은 지역에 따라서는 호박잎을 쪄서 쌈을 싸서 먹고 씨를 먹기도 한다.
  • 경기 >남양주시

    먹골이 아닌 남양주의 특산물인 먹골배
    시원하고 달콤하면서 기침과 가래에 좋은 먹골배는 남양주시 특산물인 배의 이름이다. 먹골은 서울시 중랑구 묵동의 옛 이름인데 이곳에서 자라는 배는 맛이 좋아 구한말까지 진상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도시화 과정에서 먹골배는 주변으로 퍼져갔으며 그중 남양주 별내면, 진건읍 지역은 중랑천변과 같은 사양토에 토지가 비옥하고 온화한 기후를 가져 먹골배를 생산하기에 충분했다. 먹골배는 당도가 높을 뿐 아니라 과육이 두껍고 향이 좋을 뿐 아니라 저장하기 좋다.
  • 경남 >통영시

    고등어라고 다 같은 고등어가 아니에요, 통영 고등어회
    자반고등어 구이는 한국인의 식탁에 일상적으로 오르내리는 음식이다. 하지만 국민생선 고등어를 회를 먹거나 살아있는 상태로 본 기억은 희미할 것이다. 이는 고등어가 성질이 급한 생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등어는 활어회로 먹을 때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생선이다. 이를 확인하고 싶다면 겨울철에 통영으로 가보자. 통영 근처의 욕지도에 고등어 양식장이 있고, 거기서 공수해오는 활고등어회를 맛볼 수 있다.
  •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대표 달콤 시원함, 송산배
    경기도 의정부시의 농업특산물인 송산배의 과수원은 도봉산과 수락산이 둘러싸여 있어 풍수 재해를 막아주고 사질 양토로 물 빠짐이 좋아 배생산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일조량이 충분하고 일교차가 커서 당도가 높다. 의정부시의 배농가들이 대부분 송산동에 많이 있었기 때문에 의정부배의 이름을 송산배로 하였다. 도시의 개발로 인해 배밭의 면적이 많이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품종의 맛있는 배를 생산하고 있으며, 아파트단지와 가깝고 의정부시 안에 배과수원이 있어서 도시민들이 많이 찾는다.
  • 충남 >보령시

    보령 대천항에서는 갈매기를 보고 삼치를 잡는다
    충청남도 보령시 신흑동 대천항 일원에서 끌낚시로 삼치를 잡는다. 삼치는 봄부터 여름까지 멸치를 따라 북상한다. 먹이활동을 위해 멸치를 따라 올라온 삼치는 연안에서 산란하며, 가을이 되면 남하한다. 삼치가 확인되면 삼치가 물속에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끌낚시를 내린다. 소형어선을 이용해, ‘쪼준바리’ 혹은 ‘끌바리’로 잡는데, 이 방식은 가짜미끼를 끼운 배를 움직여 삼치를 유인해 어획하는 방법이다. 남쪽 어부들이 삼치를 어획하던 방식을 전수받았다. 배의 앞쪽에 대나무를 가로로 놓은 후 그것에 긴 낚시줄을 연결한다. 줄에는 납을 달아 물속에서 서식하는 삼치를 어획한다. 멸치를 좋아하는 갈매기가 있는 곳에 삼치가 많으므로, 갈매기가 모여 있는 곳에 낚시를 내린다.
  • 전남 >여수시

    참치회 뺨치는 녹는 맛, 여수 대삼치회
    고급 생선회의 대명사로 통하는 참치회는 특유의 사르르 녹는 맛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메뉴다. 그에 비해, 비슷한 맛과 식감을 내는 삼치회를 먹어본 사람은 그 비율이 극히 적다. 우리나라에서 삼치는 구이용 생선으로 더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인데, 사실 싱싱한 삼치회를 먹어본 사람이라면 왠만한 참치회는 저리 가라할 정도로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참치와 삼치는 둘 다 고등어과에 속하며, 크기가 클수록 맛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삼치회 중에서도 으뜸은 전장 1미터가 넘어가는 대삼치다. 고울 려(麗), 물 수(水), 바다가 아름다운 도시에 가면 꼭 먹어봐야 할 생선회다.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다의 향긋함을 마신다, 유자차와 유자화채
    유자차와 유자화채는 옛날부터 만들어 마셨던 우리나라 전통 음료로서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 조선 후기에 저술된 여러 전통 조리서에도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다. 두 전통 음료의 주요 재료인 유자는 남해안 지방과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었으나 예로부터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에서 나는 유자가 유명하였다.

계절과 계절사이의, 11月의 지역인물

가을과 겨울의 경계에선 11월입니다. 11월에 태어난 지역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요? 지역N문화와 함께 알아봅시다.

모더니스트였던 시인 김수영은 서울 토박이로 초기 시는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하는 데 집중되었으나 전쟁과 4월 혁명을 계기로 자유에 대한 갈망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화작가인 정채봉은 '오세암', '물에서 나온 새' 등 많은 작품들을 썼으며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으며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을 집필한 허균도 11월의 인물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 고전소설작가지만 시대와는 화합하지 못하고 끝내 역적모의를 했다는 죄명으로 능지처참을 당했다고 합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도 눈에 띕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제가는 당시 사회 분위기와 달리 선진문물을 배울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의 파장은 조선 후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연병호는 3.1운동 직후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하며 독립을 위한 활동들을 했다고 하네요. 이태준은 105인 사건으로 인해 중국으로 망명하였고 몽골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독립을 위한 활동을 이어나갔다고 해요. 목사였던 주기철은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제를 거부하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순교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11月의 지역인물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달에는 또 어떤 인물들이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더보기
  • 전남 >순천시

    어른을 위한 동화 장르를 개척한 정채봉 작가
    아동문학가 정채봉은 대학시절 생 떽쥐베리의 작품을 보고서 동화를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동화가 소설의 하위 장르라는 편견을 부수었고,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동화집 『오세암』으로 제14회 새싹 문화상, 1991년 『생각하는 동화』로 동국문학상, 2000년 『푸른 수평선은 왜 멀어지는가』로 제33회 소천아동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동화 『초승달과 밤배』가 있다. 정채봉 작품의 사상적 기반은 불교와 카톨릭이다. 이런 기반 위에 환상적인 사건과 추리소설적인 구성을 얹어 흥미를 유발하면서 교훈을 주는 작품을 썼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박제가, 조선 사회에 일으킨 거침없는 파장
    박제가(朴齊家, 1750~1805년)는 조선 후기의 서얼 출신 실학자이다. 어려서부터 시, 서, 화에 능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사망한 뒤, 집안이 어려워졌으나 어머니와 장인의 덕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박제가는 그와 같은 처지에 있던 서얼 출신들과 교우했는데, 이들을 ‘백탑시파’라고 부른다. 박제가는 당시 조선의 사회 분위기와는 달리,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고 상공업과 소비를 중시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가 조선 사회에 일으킨 파장은 조선 후기의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 강원 >강릉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허균
    허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허균은 명문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다. 늦게 얻은 벼슬길에서 여러 죄명으로 좌천당하고 유배당하다 결국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이다.
  • 서울 >도봉구

    자유를 갈망한 모더니스트, 도봉구의 시인 김수영
    시인 김수영은 서울 토박이다. ‘김수영’하면 대개 자유와 혁명, 참여와 저항, 풀과 바람 등 정치적이고 문학적인 이미지들이 먼저 떠오르지만, 김수영은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죽은 ‘서울 사람’이고 ‘서울의 시인’이다. 종로 2가와 6가, 마포 구수동, 도봉구 도봉동 등을 오가며 살던 김수영의 마지막 안식처는 도봉구였다.
  • 경남 >창원시

    주기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하다
    주기철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 운동을 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산학교를 다니며 민족의식과 항일정신을 갖게 되고, 김익두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목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산정현교회에서 목사로 근무하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한다. 장로교 평북노회, 장로교 총회에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가 아니고 국가적 의식일 뿐이므로 신사참배를 하기로 결정하지만 주기철은 순교를 무릅쓰고 신사참배를 거부한다.
  • 충북 >괴산군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조직한 연병호
    연병호는 고향 괴산에서 동명학교를 마치고 중국 용정에서 창동학원을 다니다 병으로 귀향하였다. 1915년 서울에서 안재홍, 조소앙의 동생 조용주와 친교를 맺었다. 3.1만세운동 직후 조용주 등과 대한민국청년외교단을 결성 후 국내에서 조직이 정비되자 임시정부와 만주 독립군을 연계하기 위해 만주로 갔다. 1922년 연병호는 세계한인동맹회, 유호청년회를 조직하고, 1923년에는 북경대학에 입학하여 동서혁명위원회를 조직·활동하였다. 1925년 만주 신민부, 1929년 한국혁명당 결성에 참여하였고, 1933년 신한독립당을 만들어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1937년 이갑녕 저격사건으로 상해에서 체포되어 징역 8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제헌국회와 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연병호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경남 >함안군

    몽골에서 혁명운동에 참여한 이태준
    이태준은 경상남도 함안에서 출생하였고 자(字)는 원일(元一), 호는 대암(大岩)이다. 몽골정부 공식문서에 이태준은 「고려국 국적민 의사 리다인」으로 되어 있는데, 이태준의 호 ‘대암’을 몽골어로 표기한 것이 ‘다인’이다. 그는 24세 나이로 세브란스의학교에 입학, 3년 9개월 만에 졸업하였다. 동의의국을 통한 이태준의 근대적 의술 통한 치료는 성가가 높아 그는 몽골왕궁 출입, 몽골의 보그드 칸의 어의(御醫)가 되어 몽골왕족의 큰 신임을 얻었다. 이태준의 활동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소비에트정부로부터 한인사회당이 확보한 코민테른 자금 40만 루블의 금괴운송에 관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1차 운반에 성공하고 2차 운반 중 러시아 백위파 운레른 군대에 의해 피살되었다.

묵호항 번영과 쇠락 그 후 이야기

묵호항과 주변은 1937년 일본이 수탈 목적으로 삼척지역 무연탄 반출 항으로 개발한 이후 해방 후에는 국내 연탄 제조를 위한 무연탄과 건설을 위한 시멘트를 출하하는 대표 항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그리고 묵호항에는 수산업 황금기가 도래하여 강아지도 만 원권 지폐를 물고 다닐 정도의 강원도 최고 지가를 형성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990년 이후 쇠락해 왔지만, 2010년 동해문화원의 논골담길 사업 등으로 새롭게 조명받게 되었다.

논골담길의 중심에서 변화하는 묵호항과 지역 산업, 관련 사람들의 삶의 현장의 모습을 알아보고 묵호에 관련된 재밌는 이야기를 함께 들어봅시다.
더보기
  • 강원 >동해시

    강원도와 동해의 발전을 위해 달려온, 동해의 해결사 전억찬
    전억찬 구술자는 1946년생으로 동해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야간학교를 열었다. 망상야간학교, 묵호새마을청소년학교, 성림기술고등학교, 동해자동차공업고등학교로 발전하면서 전 학력 인정을 받는 학교로 발전시켰다. 도의원으로 활동하였고 동해경제인연합회를 창립하였다. 현재는 강원경제인연합회 회장과 동해경제대학 학장으로서 지역의 발전을 위하여 힘쓰고 있다.
  • 강원 >동해시

    오징어 할복과 명태 건조로 어판장에서 47년을 보낸 문경자
    문경자 구술자는 제주도 어촌마을에서 1남 1녀의 맏이로 태어나 부모 부재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큰집 언니가 묵호로 시집을 오면서 묵호로 따라와 정착했고, 결혼해서 일가를 이루게 된다. 오징어와 명태 건조로 47년간 생계를 이어나갔지만, 어업 일을 어려워하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을 부양해야 하는 녹록지 않은 살림살이 탓에 틈틈이 개 사육 및 판매와 노점상, 촌두부 행상 등을 병행하며 생계를 보탰다.
  • 강원 >동해시

    오징어·명태 건조에서 양곡조합장까지, 묵호동의 전영규
    전영규 구술자는 1941년생으로 묵호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 1학년 때 중퇴하고 장사를 시작했다. 오징어 건조, 명태 건조와 부두에서 생선 장사, 쌀장사를 하던 중 묵호읍 3대 양곡조합장에 선출되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취직이 되어 정년퇴직하였다. 퇴직 후에는 많은 사람의 결혼 주례를 서 줄 정도로 말솜씨가 좋다. 현재는 묵호동 노인회장과 동해시 파크골프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 강원 >동해시

    지게꾼, 건조업 … 묵호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장두중
    장두중 구술자는 경북 영천에서 1940년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6.25 때, 어머니는 구술자가 20살 때 돌아가셨다. 일자리를 찾다 기차를 잘못 타 묵호, 지금의 논골 등대마을에 정착하였다. 지게꾼, 건조업, 노래방, 식당 등 다양한 생업으로 살아왔으며, ‘등대 경로당’을 창설하였고, ‘논골담길 해설사’ 1대 회장을 한 후 지금도 논골담길 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다.
  • 강원 >동해시

    묵호에서의 36년 공직 생활, 행정전문가 박종흔
    박종흔 구술자는 묵호에 있는 동호초등학교, 묵호중학교, 묵호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9년 5급 을류(현 9급)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군 복무를 마친 후인 1973년 묵호읍사무소에 첫 발령을 받아, 2009년 퇴임까지 36년 3개월이란 기간 동안 모범적인 공직자상을 정립했다. 업무뿐만 아니라 주경야독 만학으로 학업에도 열정을 쏟아 2004년 55세의 나이로 관동대 행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 강원 >동해시

    옛 묵호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는 묵호항의 산증인 황종태
    황종태 구술자는 1936년 태생으로 지금 세대가 모르는 묵호의 옛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구술자는 명태잡이 조업을 하다 이북에 끌려가 28일 만에 귀환한 이력이 있는데, 그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경험이 있으셨다. 뱃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묵호시장 인근에 민박집을 운영하다가 현재는 큰 아들에게 물려주고 여가를 즐기고 계시다.
  • 강원 >동해시

    재단 이상하게 잘하는, 묵호의 양복장인 최석길
    최석길 구술자는 1943년 묵호 괴란동에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고, 북평중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으로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띠동갑인 누님의 권유로 강릉 대동라사에서 양복재단 일을 배워 묵호에서 평생 맞춤 양복 일을 했다. 현재 발한동 소재의 상가아파트 내에서 ‘최석길 라사’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다.
  • 강원 >동해시

    삼척·태백의 무연탄 출하하던 제일의 무역항, 동해 묵호항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에 있는 묵호항(墨湖航))은 작은 어항이었으나 1939년에 개항한 이후 삼척과 태백지역의 탄광에서 캐낸 무연탄과 시멘트를 출하하는 항만으로 활용되었다. 북평항 건설 이전까지 인근에서 규모가 가장 큰 항구로, 동해안의 어업기지이자 피난항구로 이용하였다. 동해항의 보조항만이자 독도·울릉도와 강원도를 잇는 관광항로의 기능도 하고 있다. 동해안의 제1의 무역항이었지만 지금은 동해안의 어업전진기지로 변모해 주변에 어시장과 활어회센터가 발달해 있다. 한때는 오징어잡이 어선이 즐비하게 들어왔으며, 지금은 갓 잡은 싱싱한 어물이 거래된다. 주변에는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어 해변 공원이 넓게 펼쳐져 있고, 바다를 조망하기에 좋은 조망대인 ‘바람의 언덕’과 주변 해변길도 유명하다.
  • 강원 >동해시

    덤과 흥정이 있어 언제나 즐거운 곳, 동쪽바다중앙시장
    강원도 동해시 중앙시장길에 위치한 동쪽바다중앙시장은 1943년 묵호항이 개항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장이다. 2011년부터 상권활성화사업 추진을 통해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시장이름을 묵호중앙시장에서 동쪽바다중앙시장으로 변경하였다. 2016년 중소기업청 공모사업으로 추진된 청년상인창업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청년몰 싱싱스'가 개설되어 현재 함께 운영되고 있다. 바다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물들이 어시장을 가득 채우고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한 농산물이 준비되어 있다.
  • 강원 >동해시

    까마귀 많은 마을에서 선비가 나는 마을로, 동해 묵호동
    강원도 동해시 묵호동은 물도 바다도 물새도 검어 묵호동(墨湖洞)이라 했다. 옛날 묵호에는 까마귀가 많아 까마귀 오(烏)자를 써서 까마귀가 많은 마을의 나루라는 뜻으로 오리진(烏里津)이라 불렀다. 강릉부사 이응유가 와 보니 바다도 검고 까마귀도 많아 검을 묵(墨)자를 써서 묵호라 했다. 또 이 지방 선비들이 학문과 선비를 뜻하는 한묵(翰墨)의 의미로 옆 마을 발한(發翰)에 상대해서 묵호라 지었다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