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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먹거리, 이야깃거리 가득한 부산 재래시장

역사와 전통이 살아있는 재래시장을 찾아 떠난 이번 여행지는 바로 부산입니다♪ 부산은 시장을 테마로 하여 여행 코스를 잡아도 될 정도로 많은데요. 무려 170여 개의 재래시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시장을 뽑아 여러분께 소개해드릴게요!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래시장>은 원래 조선시대 읍내장이라고 해요. 오일장의 형태였으나, 현재는 상설시장의 형태로 바뀌었으며 약 245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답니다. 그다음은 광복 이후부터 이어져 온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후 피난민들이 장사하며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는데요. 이러한 내용은 영화 '국제시장'을 통해 자세히 알려져 이제는 관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한답니다. 또한 국제시장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부평깡통시장>을 마주할 수 있는데요. 1970년대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던 사람들이 다양한 외국 물품들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곳이랍니다. 이처럼 부산 시장에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쳐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는데요. 우리 역사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살펴보고, 부산 재래시장을 방문해보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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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중구

    일본과의 개시무역을 담당한 동래상인
    조선시대 동래는 일본과의 관계로 경제적으로 중시되었던 곳이다. 1407년에 왜인의 왕래를 허락하고 동래의 부산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동래상인은 동래왜관과 왜관 주변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좁은 의미의 동래상인은 개시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래상인들 가운데 ‘도중’은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 부산 >남구

    밀가루로 만든 냉면, 부산 밀면
    부산 밀면은 밀국수 냉면의 약칭으로 밀가루를 원료로 뽑은 면을 사용하여 만든 냉면을 말한다. 한국전쟁 시기 부산으로 내려온 이북지역의 피난민들에 의해 개발된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부산광역시의 고유한 향토음식이다.
  • 부산 >동구

    조선시대 개설된 부산장의 명맥을 잇는 부산진시장
    부산진시장은 조선시대 때 매월 4일과 9일에 개설되었던 부산장의 명맥을 잇는 전통시장이다. 일제강점기 상설화되면서 오일장은 열리지 않고, 상설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1350여 개의 점포에서 혼수와 관련된 물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 부산 >동래구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동래시장
    동래시장은 부산에서 개설된 시장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다. 조선시대 때 매월 2일과 7일에 열렸던 동래읍장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상설시장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함께 열렸지만, 현재는 상설시장만 운영되고 있다. 주로 농수산물 비롯하여 생활용품, 포목, 의류,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 부산 >중구

    귀환한 동포들이 만든 부산 국제시장
    '부산국제시장'은 부산특별시 중구 신창동 4가 일대에 상설시장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3대 시장 중 한 곳이다. 해방 이후 귀환한 동포들에 의해서 형성되었으며, 당시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다가 1950년 '국제시장'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부산국제시장은 6개의 공구거리로 조성되어 있으며, 주로 가전제품, 의류, 직물, 신발, 가방, 일용잡화, 문구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 부산 >중구

    한국 현대사와 함께한 부산 국제시장
    국제 시장은 부산광역시 소재 중구 신창동 4가 일대에 있는 시장이다. 일본 패망 후 본국으로 돌아가려는 일본인들이 고리짝을 팔기도 했고, 대거 귀환한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쓰던 물건을 내놓기도 했으며, 6.25전쟁 때는 미군의 원조 물자 및 많은 밀수품들이 흘러들어 국제적인 교류가 일어나며 국제시장이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 이전에는 도떼기 시장, 자유 시장 등으로 불렸다. 한국 현대사와 역사를 함께 해 온 시장이다.
  • 부산 >북구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허기를 달래준 구포국수
    밀국수는 돌잔치나 혼인, 회갑 등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이었다. 밀국수가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외국 원조구호물자와 함께 대량의 밀가루가 반입되면서다. 부산 구포동에서 국수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구포동으로 모여든 피난민들은 싸고 맛있는 구포국수로 허기를 채웠다. 구포국수는 구포시장을 방문한 이들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 부산 >동래구

    달착지근한 쪽파와 해산물을 찹쌀 반죽으로 지져야 동래파전
    흔히 파전이라 하면 바삭하게 기름에 구워진 밀가루 파전을 생각하지만 부산 동래파전은 쪽파가 주인공이다. 유채씨기름 위에 쪽파를 가지런히 눕히고 찹쌀반죽을 뿌린 뒤 굴, 새우, 대합을 얹고 계란을 하나 툭 깨어 올린 후 뚜껑을 덮어 굽는다. 동래시장 난전에서 팔던 동래파전은 어느새 지역 특산 음식이 되었다. 
  • 부산 >남구

    밀면과 냉면은 목젖을 치는 그 맛이죠
    부산의 내호냉면은 2019년이면 백 년을 맞는다. 남한 함흥냉면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 당시 흥남시 내호면에서 부산까지 피난 와서 낸 가게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녹말로 면을 만들어서 가자미회와 양념 등을 올려 비벼 먹는 냉면이다. 식량이 부족한 겨울철에 먹던 음식이었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에 의해 남한에도 알려지게 되는데 냉면국수의 주요 재료인 감자녹말은 고구마 녹말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미군의 구호품이었던 밀가루 보급으로 고구마 녹말과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면서 밀면이 탄생했다. 
  • 부산 >중구

    전쟁을 넘어 굳세게 살아가는 삶, 영화 『국제시장(2014)』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이 주연을 맡은 휴먼 드라마 영화이다. 1950년대 6·25전쟁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역사의 비극·감동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전쟁영화이다.

골목따라 대구 근현대문화여행

오늘 소개해드릴 대구의 근대골목은 한국관광 100선에 선정된 관광지랍니다! 대구 골목골목은 근현대의 건축물과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가득한데요. 이는 한국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덕분에 대구 중구에는 근대건축물이 남아있고, 오랫동안 대구 중심지 역할을 했던 향촌동에는 한국전쟁 이후에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문학과 예술을 논하던 건물과 낭만적인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또한 대구 근대문화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보면, 350여 년의 전통을 가진 약령시와 약전골목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구약령시한의약박물관부터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조성한 벽화거리, 그리고 조선 중기에 형성되어 우리 곁에 남은 서문시장까지 만나볼 수 있는데요. 대구를 방문하는 여러분, 이번 여행에선 여유로이 걸으며, 대구의 살아있는 역사 현장을 체험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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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중구

    부침 거듭한 화교의 역사, 대구화교협회
    대구화교협회는 대구시 중구 진골목에 있다. 화교가 대구에 이주한 것은 1905년부터인데 이들은 상업, 건축청부업, 주물업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펼쳤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은 원래 1929년 서병국이 건립한 붉은 벽돌조 2층 양식(洋式) 주택인데 1949년경 대구화교협회가 매입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의 설계와 시공은 중국인 건축기술자 모문금이 맡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돌은 평양에서 구워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베어왔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대구화교협회는 얼마 남지 않은 1930년대 근대건축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대구 >동구

    한국 근대철도의 달빛, 대구 구 반야월역사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반야월은 공식 지명이 아니지만 후삼국 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유명한 지명이다. 1917년 대구~하양 간 협궤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가 반야월을 지나가게 되었다. 반야월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 대구 >중구

    약령시 개장행사를 축제로 승화시킨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는 전통한의약문화의 진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대표적인 한의약 축제이다. 약령시는 각종 약재를 교환․매매하는 시장으로, 대구약령시는 1658년(효종 9) 무렵에 형성되었다. 대구 약령시가 개시 될 때는 조선8도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각종 약재와 약재상이 모여들었다. 이러한 약령시 개장행사를 현대적인 축제 형식으로 승화시킨 것이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이다.
  • 대구 >중구

    청라언덕과 대구 사과와 제중원-대구 동산병원 구관
    대구광역시 동산병원은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우드브릿지 존슨이 1899년 시작한 ‘미국약방’과 ‘제중원’에서 시작되었다. 서양 근대 의학의 힘으로 고질병이 낫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중원을 찾는 환자도 점차 증가했다. 제중원은 1903년 무렵 동산으로 위치를 옮겼다. 선교사들은 병원과 선교사 사택을 짓고,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 묘목을 조선 토종 능금과 접붙여 ‘대구 사과’를 탄생시켰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언덕이라 하여 청라언덕이라 불리게 된 동산에서 제중원은 동산기독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대 원장인 플레처는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1930년대에 병원을 새로 지었다. 이 건물이 2002년 등록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대구 동산병원 구관이다. 동산병원은 일제 강점기 말에는 일본군 경찰병원으로, 한국전쟁 시기에는 국립 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쓰였으나, 다시 동산병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구 의료계를 선도하는 병원의 역할을 감당했다.
  • 대구 >중구

    공구가 만들어낸 색다른 거리, 북성로 공구거리
    대구 최대의 공구거리인 ‘북성로 공구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폐공구를 수집하던 주민 몇몇이 이곳에서 공구를 판매하며 시작되었다. 1950~60년대 철물과 기계를 취급하는 공구 상점들이 하나둘 모여 들더니 1970~80년대는 점포 수가 600여 개에 이르며 전국의 모든 공구가 이곳에 있다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쇠락했고, 수십 개의 공구 상가들이 남아 ‘북성로 공구거리’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 순종황제 어가길이 조성되면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는데, 특색 있는 카페, 갤러리, 독립서점 등이 들어섰다. 그 중에서도 북성로 공구박물관과 모루는 장인 작업장과 수많은 공구를 볼 수 있고, 직접 체험도 해볼 수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다.
  • 대구 >중구

    피란시절 예술인들이 모여든 향촌동, 대구 향촌문화관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은 오랜 시간동안 대구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의 화약고가 있던 곳이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예술인들이 많이 모이던 ‘문화예술인의 거리’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피란민 중 문인들도 있었다. 김동리, 조지훈, 박목월 등이 향촌동의 다방 한 구석에서 시를 읊었고, 변훈, 하대응, 김동진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서 명곡이 탄생했다. 이중섭이 담뱃갑에 그렸던 은지화도 향촌동에서 그려졌다. 이런 향촌동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향촌문화관에서 볼 수 있다. 향촌문화관은 1912년 대구 최초로 설립된 은행인 선남상업은행 건물에 들어서 있다.
  • 대구 >중구

    대구예술발전소 & 수창청춘맨숀
    대구연초제조창(KT&G) 을 리모델링한 대구예술발전소와 이 연초제조장 직원의 관사였던 아파트가 수창청춘맨숀이다. 두 건물은 나란히 옆에 붙어있다. 대구예술발전소는 1949년에 짓고 1976년에 증축한 별관의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수창청춘맨숀은 1976년부터 관사로 쓰이다가 1996년 연초제조장이 문을 닫으면서 20년 남짓 방치되어 있다가 2016년에 리모델링하여 문을 열었다. 전시장, 공연장, 독서당 등 다양한 공간이 들어서 있고, 변지현 작가의 ‘문플라워(Moon Flower)’ 벽화는 큰 보름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 대구 >중구

    대구 약전골목의 미도다방
    대구 진골목의 명소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美都)’ 속의 다방(美都)이라는 뜻이다. ‘정 여사’로 불리는 정인숙 대표가 지인의 다방을 넘겨받아 1982년부터 30년이 넘도록 운영 중이고, 두 번의 이사 후 지금의 위치인 진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것은 2013년이었다. 미도다방은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대통령부터 정치인과 유림, 문인, 화가들이 다녀가는 명소였고, 지금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이 많다. 커피값 2500원, 대구 약령시의 좋은 약재로 직접 달인 약차와 쌍화차도 3~4천원에 마실 수 있다.
  • 대구 >중구

    교육의 질, 교사의 질 –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는 경성사범학교, 평양사범학교와 더불어 조선 3대 사범학교로 꼽혔다. 학비와 기숙사비 무료에 용돈까지 지급했기에 전국의 인재가 몰렸다. 1921년 설립된 대구사범학교는 1923년 본관, 1925년 강당을 건축했다. 조선총독부는 대구사범학교가 황국신민화 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하도록 통제하였으나, 대구사범학교는 항일정신이 투철한 교사와 학생을 중심으로 독서회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극심한 탄압의 시기인 1941년 ‘다혁회’ 사건 때 35명이 구속되어, 5명이 옥중에서 숨졌고, 12명은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 후 세상을 떠났다.
  • 대구 >동구

    밤은 깊어도 단아한 모습으로,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 내에 있는 조양회관은 원래 1922년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 앞에 지어졌던 건축물이다. 애국지사 서상일이 청년들의 민족의식 배양 공간으로 구상한 조양회관은 기획에서 설계, 준공까지 한국인의 손으로 완성되었다. 서상일은 부지를 쾌척했을 뿐만 아니라 건축비 부담까지 가산을 들여 떠안았다. 단아하게 지어진 조양회관은 총독부에 징발되어 한때 병영으로 쓰이는 수모까지 겪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건축물로 손꼽힌다.

바다가 들려주는 이야기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는 바다와 관련된 다양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요. 바다의 신이 된 마을 처녀의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에는 장래를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살고 있었어요. 처녀는 바다에 있는 애바위까지 가서 해초를 뜯기로 하고 총각은 배로 처녀를 태워다 주곤, 다시 데리러 오기로 하였지요. 그런데 해가 중천에 뜰 때쯤,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파도가 높아져 배를 띄울 수 없던 총각은 처녀를 데리러 가지 못하였고, 결국 처녀는 파도에 휩쓸려 가고 말았지요.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처녀가 살려고 애를 쓰다가 죽었다고 해서 그 바위를 '애바위'라고 부르곤 마을의 신으로 모시게 되었답니다. 이 밖에도 다양한 전설을 여러분께 소개할 텐데요. 바다에는 어떤 신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고, 푸른 바다의 비밀이 무엇인지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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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옹진군

    조기의 신으로 모시는 임경업 신
    임경업(1594 ~ 1646)은 조선중기의 장군이다. 그런 그가 서해안 여러 지역의 마을신으로 모셔져 있다. 그 이유는 조기와 관련되어 있는데, 그가 병사들과 함께 중국으로 가는 길에 연평도 근처에서 병사들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가시나무를 꺾어 바다에 던졌더니 조기가 잡혔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임경업의 사후에 서해안 주민들은 그를 마을신으로 모셔 조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갈 때면 언제나 그를 찾아가 기도를 드린다.
  • 제주 >제주시

    2월이면 제주를 찾아오는 영등 할머니
    영등 할머니는 음력 2월 초에 제주를 찾아와서 바닷가를 돌면서 해녀 채취물의 씨를 뿌려주어 바다의 풍요를 주고, 농업에까지 도움을 주고 2월 25일 다시 자신의 거처로 돌아간다는 신이다. 2월 할만네, 영등 할망이라고도 한다.
  • 전북 >군산시

    용이 승천하면서 만든 바다, 군산 용당포
    전라북도 군산시 소룡동 용당포는 원래 작은 시내였는데, 이 언덕에 젊은 농부가 부인과 아들과 함께 살았다. 하루는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이곳이 바다가 될 것이니 빨리 자리를 뜨라고 했다. 농부는 방바닥에서 나는 물소리를 듣고 부인과 아이를 깨워 구암동 기슭으로 피했다. 이때 용당포 근처에서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산이 무너지고 용 한 마리가 하늘로 올랐다. 용이 머물렀던 자리에는 바닷물이 몰려와 바다가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용이 머물다 승천하면서 만든 바다라 하여 용당포라 불렀다.
  • 충남 >서산시

    조기가 사라진 황금산 앞바다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리 황금산 앞바다에는 조기가 많았다. 언제부터인가 조기가 줄어들자 마을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활을 잘 쏘는 박활량의 꿈에 청룡이 나타나 조기를 몰아간 황룡과 싸울 것이니 활을 자기, 즉 청룡에게 겨누어 쏘아달라고 했다. 박활량은 청룡과 황룡의 싸움을 지켜보다 누구를 쏠 것인지 고민이 됐고, 결국 황룡을 쏘았다. 그러나 그 순간 황룡이 몸을 비틀어 화살이 청룡에게 맞아 죽게 되었다. 그 이후로 황금산 앞바다에는 조기가 사라졌다고 한다.
  • 전남 >영광군

    일곱 골짜기가 바다로 변한 칠산바다
    전라남도 영광군 서쪽 바다에는 ‘칠산도’라 불리는 일곱 개의 작은 섬들이 있다. 칠산도는 영광군 낙월면 송이리에 속한 섬들로 남쪽에서부터 북쪽까지 일곱 개의 섬들이 이어져 있고, 이곳을 ‘칠산바다’라 부른다. 본래 칠산바다는 일곱 개의 골짜기가 있어 ‘칠산 고을’이라 불렸던 곳이나 마을 사람들이 금기를 어긴 탓에 바다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 인천 >중구

    바다에서 건진 돌부처가 있는 용궁사
    인천광역시 중구 운남동 백운산 동쪽 기슭에 용궁사(龍宮寺)라는 사찰이 있다. 용궁사에는 한 어부가 바다에서 건진 돌부처가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영종도에 살던 한 어부가 연평도로 조기잡이를 갔다가 그물로 건진 돌부처를 태평암 위에 모셔 놓았다. 그런데 돌부처가 영험해서 한 한량이 활을 쏘아 팔을 떨어뜨렸는데, 떨어진 팔이 바로 붙었다고 하며, 그 앞으로 말을 타거나 담뱃대를 물고 가면 말발굽이 땅에 붙고, 담뱃대가 사람의 입에 붙었다. 또한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 효험도 보였다고 한다. 그 돌부처는 일제강점기 때 약탈 당해서 현재는 없다.
  • 충북 >충주시

    소금을 많이 넣은 충북 충주 염바다들
    충청북도 충주시 안림동에 ‘염바다들’이라 불리는 들이 있다. 염바다들이 있는 자리에 원래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근처에서 사람과 동물들의 사체가 자주 발견되었다. 충주 관아에서 범인을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소금장수가 연못을 무사하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연못에 소금을 넣어 큰 지렁이를 잡았다. 연못이 매립된 이후에도 소금을 많이 넣었다고 해서 연못이 있던 자리를 염바다들이라 부른다.
  • 충남 >보령시

    충남 보령의 배를 바다로 내리며 부르는 어이차소리
    충청남도 보령시에서는 뭍에서 배를 바다로 끌어내릴 때 어이차소리를 불렀다. 배를 내릴 때에는 20~30명이 역할을 나누어 작업을 했다. 가창방식은 선후창으로, “이워이차 이여”, “이워 차리라차” 등과 같은 구호를 메기는 중에 “밀어 닥쳐라” “심을 다같이 일정허게 써서”와 같이 일과 관련된 말을 넣는다. 후창자는 “에차” “어이사” 등의 구호로 받았다. 앞소리를 할 때 준비를, 뒷소리를 할 때 힘을 모아 배를 밀어 올렸다고 한다.
  • 전남 >영광군

    돌부처 귀에 피가 흘러 칠산바다가 된 사연
    아주 옛날 칠산바다는 원래 일곱 개의 고을이 있던 육지였다. 어느 날 나그네가 서 영감 집에 하루 묵고 가면서 보답으로 뒷산의 돌부처 귀에 피가 나면 고을이 물에 잠길 것이라 알려줬다. 서 영감이 매일 돌부처 귀를 확인하자, 마을 백정이 장난으로 돼지 피를 돌부처에 묻혔다. 서 영감은 바로 마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높은 산으로 피했다. 고을 원님도 피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마을은 바다에 잠겼다. 이후 사람들은 칠산 고을이 있던 자리를 칠산바다라 불렀다고 한다.
  • 강원 >삼척시

    바다의 신이 된 마을 처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갈남2리 신남마을은 남근(男根)을 깎아 마을제사를 지낸다. 옛날 신남마을에 장래를 약속한 처녀와 총각이 살고 있었다. 처녀는 마을 앞 바다에 있는 ‘애바위’까지 가서 해초를 뜯기로 하였다. 총각은 배로 처녀를 태워다 주고, 다시 데리러 오기로 하였다. 그런데 바람 때문에 파도가 높아져 배를 띄울 수 없었다. 결국 애바위에서 총각을 기다리던 처녀는 파도에 휩쓸려가고 말았다. 그래서 처녀의 원혼을 위로하고자 남근을 깎아서 마을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시 여름 바닷가♬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흐르고, 나의 마음은 괜히 조급하기만 하고, 이 여름의 끝에서 잠시 쉬어갈 곳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지금 여기, 바닷가에 오게 되었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그늘진 바닷가 모래밭에 털썩 앉아 가만히 바다 멍을 해보는데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살랑이며 다가오는 바람, 그리고 탁 트인 바다까지. 화려하진 않아도 자연이 주는 힐링에 괜스레 가슴이 벅차곤 합니다. 바다에 수놓은 파도의 일렁거림을 바라보니, 때론 거칠게 치기도, 때론 잔잔하게 치기도 하는 게 우리의 감정과도 같아 보이네요. 감정이 만들어낸 파도를 따라 빛이 산란하여 반짝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의 삶도 저렇게 반짝거리며 힘껏 나아가길 바라봅니다. 여러분도 여름 바닷가를 방문하여 힘든 일상으로 인한 걱정과 근심을 바다에 띄워 보내세요. 그리고 올해도 반짝거리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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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신안 임자도, 아름다운 모래의 섬
    임자도는 오랜 간척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질토의 섬이다. 임자대교가 완성되어 다리를 통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들깨가 많이 나서 임자도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대파가 대표 특산물이며, 젓새우와 민어도 유명하다.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변을 갖고 있는 임자도 대표 관광지이다. 어머리해안의 용난굴 설화가 있으며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자전거길과 걷기코스가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토기와 농산물을 육지로 운송하던 제주 사계포
    사계항은 제주특별자치도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어항으로, 깨끗한 모래와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져 명사벽계(明沙壁溪)라 하여 사계리라 부른다. 사계리의 작은 포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인근 도요지에서 생산한 토기와 농산물을 테우에 실어 육지로 운반하던 포구였다. 사계포구 앞쪽 마을은 토기동 또한 토끼동이라 부르며, 토기와 연관된 사계포구도 토기포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1702년(숙종 28)에 그린 『탐라순력도 』에는 흑로포(黑路浦)라 묘사되어 있으며, 흑로포는 ‘검은질개’라는 명칭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인근에는 영주 십경(瀛州十景) 중 하나인 산방굴사(山房窟寺)와 용머리 해안과 낚시터, 바다 건너 형제섬 등이 있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북 >울진군

    울진 죽변항, 대게로 유명한 울진 북단의 대표 포구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리에 있는 죽변항은 대나무가 많다 하여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는 뜻으로 ‘죽빈’이라 불렀다. 죽변항구는 1938년에 축항시설을 만들었다. 풍부한 수산자원 덕에 일찍이 시설을 완비한 항구로, 대게와 오징어, 고등어·꽁치·대게·도루묵·가자미 등도 많이 잡히고, 미역의 생산량도 많다. 죽변항에 있는 높이 15.6m 울진 등대도 유명하지만 더 특별한 것은 대게의 생산지라는 점이다. 울진과 삼척 경계의 왕돌짬에서 잡은 울진대게는 영덕대게와 달리 크고, 잘 생기고, 단단해 ‘박달게’라 부른다. 항구 주변에는 10㎞ 정도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 충남 >보령시

    보령 오천항, 잠수부가 키조개를 캐는 유일한 항구
    오천항은 백제와 신라시대에 회이포라는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어지자 군선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수영(忠淸水營)을 설치했다. 오천(鰲川)에서 흐르는 바다가 마치 내천(川)자처럼 흐른다 하여 오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있어 피항시설이 없어도 안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방파제 없이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인근지역에서 캐낸 광물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주요한 광물 공출 항구로 기능했다. 오천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령시의 중심 장시인 광천장이 위치해 있다. 광천장을 오가는 배들이 물때가 맞지 않으면 이 곳에 배를 두고, 걸어가야 했던 마지막 기항지이기도 했다. 수심이 깊어 1960년대부터 잠수기 어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자연산 키조개와 홍합 등 다양한 패류가 유명하다.
  • 전남 >신안군

    자산어보와 홍어로 유명한 신안 흑산도
    검은 섬, 흑산도는 최서남단에 있는 섬이지만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어선들 뿐 아니라 흑산도의 자연환경을 보고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도 온다. 해산물은 풍부하고 그 맛도 좋은데 그 중 제일 유명한 어종은 홍어이다. 예로부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흑산도는 마을마다 당집이 있고, 제를 지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조선시대 유배지로도 유명한 이 섬은 정약용이 자산어보를 쓴 곳이기도 하다.
  • 전남 >여수시

    여수 거문도, 다도해 최남단의 섬
    거문도는 천혜의 자연 항만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탐을 냈던 섬이다. 그래서 아픈 역사도 함께 갖고 있는 섬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도해 남단의 동백이 아름답게 피고 해풍 쑥이 많이 나는 섬으로 더 유명하다. 뱃길로 가야 해서 하늘이 도와야 들어갈 수 있지만 곳곳에 이야기들이 있고 아직은 번화한 관광지 같지 않은 거문도는 조용한 트래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섬이다. 낚시를 하기에도 좋은 섬이다.
  • 경기 >화성시

    어촌마을에서 즐기는 바다 체험, 화성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소속이지만 충청남도 당진 장고항에 더 가까운 서해의 작은 섬이다. 국화도에는 두 개의 부속 섬이 있는데 이들 섬은 물때에 따라 국화도와 연결된다. 작은 섬이라 많은 주민들이 살지 않고 분교로 있던 학교도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 섬의 주민들은 김과 뱅어포를 만들고 채집어업이 중심으로 살아간다. 선착장 주변과 완만한 경사의 국화도 해수욕장 주변에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접근성이 좋고 조용한 섬으로 간단한 트래킹을 즐기러 오거나 낚시를 하러 오는 섬이다.
  • 경북 >울릉군

    동해안 끝자락의 화산섬, 울릉도
    경상북도에 속한 울릉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큰 섬이다. 독도와 함께 동해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워낙 어족 자원이 풍부한 부분도 배제할 수 없다. 정확히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기 어려우나 중국 측 문헌이나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그 역사만큼은 오래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과 어업, 그리고 축산업과 임업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비교적 다양한 방법으로 울릉도를 찾을 수 있는데 한 해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고 있다.
  • 부산 >남구

    부산 앞바다의 이정표, 오륙도와 등대
    오륙도는 부산광역시 남구에 속한 바위섬으로, 총 6개의 화산암으로 이루어져있다. 동해와 남해를 나누는 기준이 되는 오륙도는 육지에 이어진 작은 반도였다가 오랜 시간 파도에 의한 침식작용과 융기작용으로 육지에서 분리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오륙도 등대는 부산항 개항 후 오륙도 앞을 배들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길잡이가 필요해서 지어진 등대이다. 우리나라 최대 국제 항구인 부산항에 가려면 오륙도를 거쳐갈 수밖에 없었는데, 오륙도 등대는 이러한 바다의 이정표이자 부산항의 상징적인 등대이기도 하다.

여름철 원기회복 장어로 해결

높은 습도에 기온이 올라가는 찜통 무더위가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가고 있을 듯합니다. 폭염은 몸의 수분을 빼앗아 일사병과 열사병을 발생시키고 실내에선 오랜 시간 냉방기에 노출되어 냉방병까지 일으켜 건강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하는데요. 여름철 대표 보양식, 장어로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기력도 회복하고 든든한 한 끼도 채우시는 거 어떠세요? 장어는 불포화지방산과 DHA, EPA 등을 함유하고 있으며 철분, 칼슘, 단백질 등이 풍부해 기력 보충에 좋은 건강 음식입니다. 몸에 좋은 요소가 가득한 장어는 신선하게 먹고 싶을 땐 '회'로, 고소한 맛을 느끼고 싶을 땐 '구이'로, 칼칼함을 맛보고 싶을 땐 '탕'으로 즐길 수 있답니다. 또한 먹장어, 붕장어, 갯장어 등 그 종류도 다양하여 입맛과 취향에 따라 누구나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땀도 많이 나고 더운 여름, 기력이 쇠해지셨다면 오늘 저녁은 장어 한 마리 몰고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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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고흥군

    “붕장어는 통통하니 놀자근한 것, 입이 짤막한 것이 담백하고 맛있지”
    장어의 종류는 민물장어, 먹장어(곰장어), 붕장어, 갯장어 등이다. 도시의 포장마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물장어, 먹장어와 달리 붕장어는 남해안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붕장어는 비늘이 없고 입이 둥글고 이빨이 약하다. 옆으로 흰점이 줄줄이 나 있고, 가시가 적고 살이 부드러워 먹기에 좋다. 예전에는 장어회로 많이 먹었으나 기름이 많아 구이로 먹어도 맛있다.  
  • 전북 >고창군

    보양강장식품의 대명사, 고창 풍천장어구이
    풍천장어구이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인천강(仁川江)의 하구에서 잡은 뱀장어에 고추장소스를 발라 구운 고창군의 향토음식이다. 인천강 하구에서 잡은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하는데, 일반 뱀장어에 비해 육질이 단단하고 영양가가 높아서 맛도 휠씬 고소하다.
  • 부산 >중구

    전국의 포장마차를 제패했던 부산 자갈치시장 꼼장어구이
    자갈치 꼼장어구이는 먹장어를 매운 양념에 채소와 버무려서 구워 먹는 부산광역시 자갈치시장의 향토음식이다. 꼼장어는 먹장어의 경상도 방언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해방이후 일본에서 돌아와 부산에 정착한 귀국동포들이 충무동 바닷가에 좌판을 벌여 판매하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 부산 >사상구

    부산 양산도집, 민물장어의 맛있는 변신
    1956년 김우영·강행림 부부가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 516번지에 민물 장어구이 전문 식당을 열었다. 식당을 하면서 민물장어 도·소매업도 겸업하였다. 양산도집이라는 상호는 주인이 지은 것이 아니라 단골손님이 지은 이름이다. 양산도집은 처음 가게를 연 이후 지금까지 건물을 증축,개축을 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김우영이 사망하면서 딸인 김말숙이 가게를 이었고, 2019년부터는 김말숙의 며느리인 문현아가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 전남 >여수시

    일본으로 수출되는 장어
    장어는 조선시대에 주로 보신용으로 먹었다. 일제 강점기 들어 일반 요리로 정착되었는데 일본인들이 장어를 많이 먹었기 때문에 조선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일제 강점기부터 일본으로 수출되던 장어는 갯장어와 붕장어였는데 이 두 장어는 모두 바다에 산다. 두 장어 모두 남해안에서 많이 잡혔다. 붕장어는 통영, 갯장어는 여수가 유명하다. 뱀장어는 민물에서 살다 산란하러 바다에 가고 알에서 깨어난 어린 장어가 다시 강으로 돌아와 산다. 뱀장어는 풍천장어라고도 부르는데 전라북도 고창이 유명하다.
  • 전남 >강진군

    장어를 잡기 위해 만든 함정, 강진 탐진강의 ‘독다믈’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만과 장흥 탐진강 일대에서는 돌무더기를 쌓아 풍천장어를 잡는다. 서해의 야트막한 개펄 지역이나 강 하구에서 장어를 잡는 전통 어로방식으로, 장흥군 탐진강 하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사리때 드러나는 갯벌에 1m 높이로 돌무더기를 쌓아두는데 남도에서는 ‘독다믈’이라 한다. 돌무더기 주변에는 대나무나 쇠말뚝을 박은 후 사각 그물을 쳐두고, 물이 깊은 곳에 고기가 모이는 임통을 만들어둔다. 물이 빠진 후 그물 안으로 들어가 돌을 그물 밖으로 던지면 장어가 임통 안으로 들어간 것을 잡는다. 인위적으로 함정을 만들어 장어를 낚는 함정어법이다.
  • 울산 >중구

    울산 곰장어골목의 터줏대감, ‘대왕곰장어’
    '대왕곰장어'는 감포 출신의 이상길이 울산광역시 역전시장에서 1973년에 개업한 곰장어 전문점이다. 곰장어는 꼼장어·먹장어·묵장어·꾀장어·푸장어 등으로도 불린다. 지금은 아들인 이정훈이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의 대로가 뚫리기 전, 울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동해남부선이 운행되었는데, 역전시장에서 시작된 곰장어가게들은 철로변과 가판으로 중앙시장까지 늘어섰다. 19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곰장어가게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곰장어 골목을 형성하였다.
  • 전북 >고창군

    양식으로 명맥을 이어가는 고창 풍천장어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만돌리 일대의 갯벌에서는 풍천장어를 양식한다. 장어는 바다에서 부화한 후 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올라와 자라다가 산란기가 되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선운사 앞의 줄포만으로 흘러드는 주진천 일대는 장어가 회귀하기 위해 머무는 공간이다. 강 하구인 풍천에서 잡은 장어라는 뜻에서 ‘풍천장어’라 부른다. 주진천 하구는 담수와 해수가 만나 장어 먹이인 플랑크톤이 풍부하고, 강한 물살을 뚫고 성장하므로 육질이 좋다. 하구를 막는 개발로 인해 양식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1968년에 장어 새끼인 ‘실뱀장어’를 잡아 수출했으나 1971년부터는 양식을 시작했고, 1980년대에 양식센터를 건립해 풍천장어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충남 >당진시

    여름 보양식으로 유명한 실뱀장어잡이
    실뱀장어는 뱀장어의 치어를 말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일본식 표현인 ‘시라시’라고 부른다. 실뱀장어는 사람의 눈으로 겨우 보일 정도로 아주 작지만 양식장으로 옮겨져 다양한 사료를 먹으면 일반인들이 먹을 수 있는 정도까지 자라게 된다. 충남 당진의 실뱀장어잡이는 봄철에 행해지는데 주로 그물을 이용한다. 잡은 실뱀장어는 크기별로 구분을 한 다음에 상인에게 팔려나가 양식장에서 일정한 크기로 자라면 사람들의 식단에 올라간다.
  • 부산 >기장군

    부산의 명물로 거듭난 기장 짚불구이 곰장어
    기장 곰장어 짚불구이는 기장 앞바다에서 잡은 먹장어를 짚불에 통째로 구워 먹는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향토음식이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는 곰장어 짚불구이의 원조가 되는 지역으로 곰장어 음식점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갯벌'

여러분은 한국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작년 2021년 7월 26일 충남 서천 갯벌, 전북 고창 갯벌, 전남 신안 갯벌, 보성 벌교 및 순천만 갯벌이 세계유산에 등록되었답니다.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갯벌은 47종의 고유종과 5종의 멸종 위기 해양무척추동물을 부양하고, 2,150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등 생물 다양성 보존에 중요하고 의미 있는 서식지"라 판단되었으며, 특히 멸종위기 철새의 기착지로 가치가 크기 때문에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포괄한 등재 기준에 부합하여 선정된 이유를 이와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살아있는 생태계의 보고인 한국의 갯벌은 이제 전 세계인의 공동 유산인 만큼 자연과 인류가 더불어 살 수 있도록 갯벌을 잘 보호하고 그 가치를 보존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소중한 유산을 후대에도 깨끗하게 물려주기 위해, 자연 보호에 함께 노력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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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신안 갯벌, 1,025개 섬마다 제각각 다른 다도해의 갯벌 천국
    신안 갯벌은 전라남도 신안군 다도해 주변의 갯벌로, 전국에서 가장 넓은 면적(11만 86㏊)를 소유하고 있다. 이 갯벌은 약 7,000년 전 간빙기에 해수면 상승 속도가 늦어지면서 해안선이 안정화되고, 퇴적물이 쌓이면서 형성되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펄 퇴적층을 이루고 있으며,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홀로세 퇴적진화를 보여주는 ‘다도해형 섬 갯벌’이다. 펄·모래·암반 등의 다양한 성분으로 이루어져 섬마다 갯벌이 각기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갯벌 주변에는 해빈, 사취, 사구, 염습지 등의 생태지가 발달해 있어 높은 생물다양성이 나타난다. 갯벌에는 대형저서동물(568종)이 살고 있으며, '생물 다양성이 우수한 이동성 물새의 국제적인 서식지'로 국제 인증을 받기도 했다. 주민들의 생업 수단인 낙지를 비롯해, 농게, 칠게, 망둑어를 잡을 수 있는 청정 갯벌과 염전이 넓게 펼쳐져 있다.
  • 전남 >보성군

    뻘배 타고 갯벌을 미끄러지며 꼬막잡기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 일원에서는 갯벌 위를 뻘배를 타고 다니며 꼬막을 채취한다. 부드러운 펄에서 꼬막 채취가 쉽도록 뻘배를 사용한다. 수십 개의 종류 중 참꼬막은 제사상에 오른다고 하여 ‘제사꼬막’이라 부르며 고급 조개로 간주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보성군 벌교 앞바다인 여자만(汝子灣)의 넓은 갯벌에 대포마을과 장암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1962년에 어촌계가 조직으로 그동안 어업 활동에 면허제도가 도입되어 마을 공동어장 관리를 시작하면서 양식 꼬막 생산이 시작되었고, 집중적으로 생산된 꼬막 작업에 뻘배가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2016년에 '국가중요어업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서천군

    금강 하구에 유일하게 남은 철새의 중간기착지, 서천 갯벌
    서천 갯벌은 충청남도 서천군 서쪽 연안과 유부도 주변, 장봉도 동쪽에 분포하며, 행정구역상 장항읍, 마서면, 종천면, 비인면, 서면 등 5개 읍면에 걸쳐 있다. 갯벌 전체 면적은 71.3㎢인데, 이중 비인면과 종천면 일대와 유부도 북측의 갯벌은 습지보호구역과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다. 펄과 모래가 조화로운 자연상태의 갯벌로 잘 보존되어 있으며, 다양한 해양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2021년에는 생물다양성 보존을 위한 중요한 서식지로 인정되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1989년 국가산업단지 장항산업단지가 지정되면서 갯벌이 매립될 뻔 했으나 서천군의 반발 끝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국립생태원 등의 대안사업을 수용하고 갯벌을 보호했다.
  • 전북 >고창군

    고창 갯벌, 전라북도 최대 규모의 줄포만 갯벌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 부안면, 흥덕면 일대에 펼쳐진 갯벌로, 곰소만 내에 고창군에 있는 갯벌을 ‘고창 갯벌’이라 부른다. 고창군과 부안군 사이에 있는 곰소만(줄포만)에 자리하고 있고, 인근의 새만금 갯벌이 매립되면서 전라북도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갯벌이 되었다. 2010년에 우리나라 14번째 습지로 지정, 2021년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었다. 면적은 고창갯벌 습지 보호구역 10.4㎢, 부안 줄포만갯벌 습지 보호구역 4.9㎢, 고창군 주변 갯벌 30.2㎢를 포함해 전체 면적이 45.5㎢이다. 고창 갯벌은 해양생물의 산란지이자 서식지이며, 주변 어민들의 생활 근거지로 활용 중이다. 주요 서식 생물은 조개류, 갯지렁이 등 저서동물 68종과 풀게·동죽 등 수산 자원이 13종이 있다.
  • 전남 >보성군

    여자만 갯벌의 보물을 캐자, ‘벌교꼬막축제’
    전라남도 벌교의 갯벌은 미세한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래가 섞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아 꼬막 서식의 최적지이다. 일찍이 넓은 여자만 갯벌에 꼬막 양식을 시작했다. 많은 양의 꼬막을 채취하기 위해 널배와 특별히 제작된 꼬막채취 도구를 이용하는데, '벌교의 널배를 이용한 꼬막 채취’는 2016년 국가중요어업유산 2호로 지정되었다. 대표적인 꼬막 양식지인 벌교읍과 대포리에서 2001년부터 매년 11월에 꼬막을 주제로 수산물 축제를 연다.
  • 충남 >태안군

    바지락도 캐고 낙지도 잡는 갯벌 호미
    갯바닥을 일구며 여러 가지 조개를 파낼 때 쓰는 호미를 ‘개발호미(갯벌호미)’라고 하며 뭍의 호미와 구별한다. 갯벌 호미는 무엇을 잡느냐에 따라 개발호미, 바지락호미, 우럭호미, 물백합호미, 낙지호미 등이 있다. 갯벌 호미에는 왼손잡이용과 오른손잡이용이 따로 있다. 자루나 목의 곡선은 차이가 없지만 날의 모습이 다르다. 낙지호미에는 아낙네용과 남정네용이 따로 있다. 남정네용이 아낙네용보다 호미 날이 더 길고 크다.
  • 전남 >보성군

    보성 갯벌, 짱뚱어와 흑두루미를 만날 수 있는 생태계의 보고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해안가의 보성갯벌은 다양한 수산자원이 서식하는 벌교천 하구의 고운 펄퇴적물이 쌓인 갯벌이다. 2003년에 일부 구역이 습지보호지역 제4호로 지정되었고, 2006년에 국제 람사르습지로 등록되어 관리되고 있다. 2021년에는 보성갯벌을 포함한 국내 5개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습지보호구역은 10.3㎢ 면적이나 보성갯벌은 31.85㎢으로 광활하다. 보성갯벌은 자연하천과 펄 갯벌이 이상적인 해양 생물의 다양성을 유지하며, 지형·지질학적 가치도 높다. 보성군 호동리, 장암리, 장도리 일대로 펄갯벌에서 뻘배어업 등의 전통어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갯벌과 연계된 지역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펄갯벌의 대표 어종인 짱뚱어 최대 산지이며,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색 매력의 출구 없는 도시, 경주

7월에 가면 '인스타 감성' 폭발하는 경주, 휴가철 많은 사람들이 몰려 벌써 기차가 매진되었는데요.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끄는 경주만의 매력은 무엇일지 함께 알아볼까요! 여름 감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가족과 연인과 함께 나란히 걷기 좋은 황리단길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야경으로 눈이 즐거운 동궁과 월지를 즐길 수 있답니다. 또한 더위로 인해 한없이 올라가는 불쾌 지수를 한순간에 낮춰주는 탁 트인 바다 전망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주상절리 출렁다리까지. 웰니스 여행지로도 손꼽힐만 하겠지요? 더하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고즈넉함과 신비로움이 가득한 대릉원과 불국사, 동양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 천년의 숲 계림 등 남녀노소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가 많아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답니다~ 올여름 누구보다 여름휴가를 잘 보냈다고 소문내고 싶다면 경주에서 천년의 역사가 지닌 남다른 감성 바이브를 느끼며 매력 만점 핫플레이스로 지금 바로 출발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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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경주시

    자연을 정원 삼아 홀로 즐기는, 경주 독락당 계정
    독락당 계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시대 동방사현이라 불린 성리학자 이언적이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고자 1533년(중종 28)에 지은 정자이다. 자계천이라는 시냇가의 암반 위에 지어진 계정은 ‘홀로 즐긴다.’는 의미의 독락당의 별채로서 자연을 정원 삼아 지어진 정자이다.
  • 경북 >경주시

    월성손씨의 강학처, 경주 양동마을 안락정
    안락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92-19(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2호이다. 월성손씨 문중의 서당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같은 마을에 있는 여강이씨의 서당인 강학당과 쌍벽을 이룬다. 1776년(영조 52)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안락정이라는 정자명은 ‘분수를 편히 하고 소신한 바를 즐기는 것이 의이다[安吾分樂吾志之義也].’라는 의미이다.
  • 경북 >경주시

    이언괄의 효심을 칭송하는,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심수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8-5(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1호이다.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1491~1553)의 아우 이언괄(1494~1553)을 추모하여 1560년(명종 15)경에 여강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철종 때의 화재 이후 1917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여강이씨 파종가인 향단의 부속 정자라고도 한다. 심수정이라는 정자명은 ‘고요함이란 자는 마음 가운데 있는 물에서 나온다[靜之字 心中之水].”라는 글에서 유래하며,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고요함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힌다.
  • 경북 >경주시

    임진왜란의 애환이 서려 있는,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수운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45-20(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0호이다.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이 벼슬의 뜻을 접고 학문 연구를 위하여 1582년(선조 15)에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집경전에 보관되어 있던 태조의 어영을 잠시 보관하기도 한 곳이었다. 수운정의 정자의 의미는 ‘동도(東都)의 산수가 맑고 운연(雲煙)이 허공에 떠 있다[水淸而雲虛]’라는 의미이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부잣집, 경주 이향정
    이향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2-1(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79호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이범중(1708~?)이 살던 집으로, 그의 호 이향정을 따서 집의 이름을 붙였다. 그의 맏아들 이헌유(1733~?)가 살면서 집의 규모를 더욱 넓혔다고 한다. 이들이 살았던 1700년대 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구성은 사랑채, 안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사랑채가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 경북 >경주시

    요산요수의, 경주 서출지 이요당
    이요당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남산동)에 있는 서출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서출지 일대가 사적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학자 이요당(二樂堂) 임적(任勣:1612~1672)이 1664년(현종 5)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서출지는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전해져 오는 곳으로, 백련과 홍련의 연지와 연못 주변에 심어 놓은 배롱나무의 절경으로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 경북 >경주시

    경주 첨성대 앞마당에서 열리는 '신라소리축제 에밀레전'
    신라소리축제 에밀레전은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최되는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을 주제로 소리축제이다. 불교방송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와 경주시, 그리고 불국사 등이 후원한다. 신라소리축제 에밀레전은 경주 첨성대 잔디광장에서 6톤 규모의 에밀레종의 모형을 타종할 수 있으며, 신라문화 체험과 신라 간등회 재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경북 >경주시

    천년고도의 대명사가 된 음식, 경주 황남빵
    황남빵은 1939년 고(故) 최영화 씨가 경주시 황남동에서 동명(同名)의 빵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래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노포이다. 황남빵은 경주 향토음식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이바지한 바가 커서 경주시와 경상북도로부터 전통음식과 경북 명물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는 철탑산업훈장을 수여하였다. 1979년 최영화 씨의 차남 최상은 씨가 가업에 참여하여 1987년부터 지금까지 황남빵의 2대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는 최상은 씨의 장남 최진환 씨가 제빵 기술을 전수하여 3대째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 경북 >경주시

    경주를 지키는 경주읍성
    경상북도의 중심도시인 경주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다. 완전한 평지성으로 방형이며 성벽 양쪽을 돌로 쌓아 올리는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2,412m에 이른다. 경주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경상도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행정읍성이었다. 특히 성벽 주위에 너비 3m의 해자를 둘렀는데 지금도 북쪽은 하수구로 이용되며 동쪽에도 일제강점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읍성의 남문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 경북 >경주시

    경주의 핫플레이스는 황리단길!
    이태원에 경리단길이 있다면 경주에는 황리단길이 있다. 경주 황리단길은 자칭 ‘경주 여행코스’의 메카이다. 이곳에서는 경주의 옛스러움과 현대의 모던함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황리단길에서 맛있는 음식과 카페를 즐길 수 있고 바로 옆의 대릉원과 첨성대를 산책하며 고즈넉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황리단길의 묘미는 이렇게 트렌디한 감성과 오래된 역사의 향기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무더운 여름, 서점으로 북캉스 떠나자!

'북캉스'는 북(Book)과 바캉스(Vacance)가 합하여진 단어로, 책을 읽으며 휴가를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캉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조용하고 안정적인 휴가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코스로 꼽히는데요.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곳이나 또는 여행지에 방문하여 서점에서 색다른 북캉스를 즐겨 보는 건 어떠세요? 잠시나마 스마트폰은 내려놓고, 책을 통해 나만의 색다른 감상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고민하는 여러분! 지역N문화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서점 이야기를 통해 어떤 책이 좋을지 한 번 살펴보는 걸 추천해 드려요. 이번 여름은 북캉스로 느긋하게 쉬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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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서구

    평범한 동네서점의 평범한 오늘 - 인천 서구 ‘동아서점’
    동아서점은 인천 서구 마전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으로, 2001년 4월 개점한 이래 인근 주민들의 독서 생활과 공부를 책임져왔다. 지금도 주요 품목은 중고등학생들의 학습지와 문제집이지만, 동네서점 에디션이나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발 빠르게 갖추고 있는 서점이다. 온라인 및 대형서점에 밀려 한동안 멀어졌던 동아서점에 오랜만에 방문한 기록이다.
  • 광주 >동구

    골목 끝의 변방과 현장, 광주 동네책방 ‘소년의 서’
    광주광역시 충장로 광주극장 옆골목으로 들어와 굽이굽이 여행하듯 걸어가면 '소년의 서'라는 작은 책방이 나타난다. 인문사회화학예술서점으로 광주 오월 관련 책들, 형제복지원 책, 여성 관련 책들, 연극에 관한 책 등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도 진열되어 있다. 2016년에 문을 열었지만 주인장 임인자 씨가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형제복지원 생존자 모임 총무 등으로 거리에 나가 있느라 문이 자주 닫혀 있다.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 충남 >부여군

    이야기가 물든 곳, 부여 송정그림책마을
    충청남도 부여군 송정그림책마을은 2010년에 한국전통문화학교 학생들의 도움으로 부여군 최초의 벽화마을이 되었다. 그러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그림책 읽는 마을 찻집 조성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의 컨설팅으로 마을에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23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엿한 작가로 그림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송정그림책마을의 언덕 위에는 오래된 야학당이 있다. 지금은 비어있지만, 광복 전후로 글을 모르는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친 곳이고, 이 덕분에 지금의 송정그림책마을이 있게 되었다는 상징 같은 곳이다.
  • 서울 >서대문구

    홍익문고,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홍익문고는 박인철이 1957년 노점책방으로 시작하여 1960년 가게를 얻어 개업하였고, 1978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2번지에 자리를 잡은 가게이다. 2009년 박인철의 아들인 박세진이 암투병 끝에 사망한 아버지의 가게를 이었다. 2012년 신촌일대 재개발로 홍익문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신촌일대의 주민, 연세대 학생과 동문, 책 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이 결성되면서 홍익문고 자리는 재개발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대전 >동구

    바다를 건너온 책이 모이는 곳, 해풍사
    대전역전지하상가에 있는 해풍사는 20여년 전부터 오래된 외국 잡지와 만화책, 외국서적 등을 파는 곳이다. 과거에는 무역업자를 통해 책을 수입하고 배달해주는 식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따로 점포 없이 집에서 운영하다, 대전 은행동, 대흥동에서 서점을 운영했고, 20년 전 역전지하상가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서적과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90년대 외국 잡지, 애니메이션 포스터, CD, 비디오테이프, 드로잉북, 연예인 사진, 캐릭터 문구까지 옛 물건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 인천 >연수구

    25년 2대째 운영 중인 우리 동네 대중서점, 세종 문고
    연수동 상가 골목을 25년 지켜온 우리 동네 서점 세종문고는 2대째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1층에는 학생들의 참고서가 가득한 가운데 지하 1층으로 내려가야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 단행본들이 놓인 코너가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과 온라인 서점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독립서점 사이에서, 대중 서점으로써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며 운영 중인 우리 동네 대중서점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고서점, 통문관
    통문관은 1934년 서울특별시 관훈동 37번지에 이겸노가 ‘금항당’으로 개업한 후 1945년 관훈동 18번지에 ‘통문관’으로 상호를 바꾸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통문관은 1963년 관훈동 147번지로 이사하였고, 1969년 옛 건물을 헐고 신축하였다. 1970년 이겸노의 아들 이동호가 가게를 이어받았고, 1982년 이동호의 아들 이종운이 가게를 이어가며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고서점으로 지금은 출판업까지 겸하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울산 지역의 첫 서점, 언양 하나서점
    울산광역시 언양읍 농협 옆의 적산가옥에는 울산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하나서점이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앗간 자리에 문을 연 이 서점은 이제 언양읍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동네서점이다. 하루도 문을 닫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위해 자녀의 결혼식날에도 오후에 문을 열었다는 이 서점의 주인장 김충열 씨는 학생들의 참고서를 팔며 학생들의 선도부 역할도 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찾아와 용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 경북 >영주시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책방, 영주 스쿨서점
    경상북도 영주시의 스쿨서점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자, 여러 개의 ‘최초’ 기록을 가진 서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김휘용 씨가 영주 읍내에 문을 연 스쿨서점은 2021년 현재 67년의 역사를 지닌 노포이다. 1972년에는 무역사업을 하던 아들 김시태 씨가 가업을 물려받아 2대 대표로 스쿨서점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는 지방 군소도시 단위로는 최초의 복층 서점을 열었고, 서점 최초로 에어컨 설치와 도서 전산화를 추진하였다. 2009년에는 이웃에서 서점을 하던 송태근 씨가 3대 대표로 가게를 물려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광주 >동구

    해방 이후 지금까지 지켜온 계림동 헌책방 거리
    광주 동구 광주고등학교 앞에 있는 ‘계림동 헌책방 거리’는 1960~1970년대를 주름잡던 중고 책방의 메카였다. 해방 직후에서 시작된 헌책방 거리에는 1980년대만 해도 헌책방이 60곳 넘게 있었다. 지금은 유림서점, 백화서적, 학문당, 광일서점, 대교서점, 광주 고서점, 문학서점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유림서점 2세대인 딸 유수진 씨와 책문화기획자 유휘경 씨가 공동기획으로 이 오래된 헌책방 거리를 살리기 위해 '계림동 처방전'이라는 프로젝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이 곳도 서울 청계천이나 부산 보수동처럼 부활할 수 있을까?

뉴트로 감성이 스며든 다방에서 커피 한 잔

줄줄이 우거진 빌딩들 사이로 오래된 다방 하나가 있습니다. 좁은 계단 끝의 나무문을 열면 종업원이 "어서 오세요!"하며 반갑게 맞아주곤 하는데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황토색 쇼파와 낡은 테이블, 손때 묻은 카운터, 훈훈한 석유난로의 냄새까지. 시간이 멈춘 이 공간에서 잠시, 정겨운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합니다. 검은 빛 쌍화차 사이로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고소하게 입안에 퍼질 때쯤, 변하지 않은 맛과 향기에 황홀함을 감추지 못한답니다.

"한국전쟁 이후 그 시절이 어렵긴 했어도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운 곳이 다방이였어요." - 을지다방 내용 中

"그땐 단순하게 차를 파는 게 아니라, 약속을 하고 만나는 장소, 전화 연락을 기다리는 장소, 선을 보는 장소로 소통의 공간이었지요." - 봉다방 내용 中

지금의 다방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옛 손님들에게는 추억을 마실 수 있는 공간, 주인은 그러한 추억을 전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요즘 뉴트로 열풍이 불자 MZ세대들도 하나 둘씩 다방문화를 즐기곤 하는데요. 한 번이라도 다녀간 이들이라면 감성 충만한 이곳의 분위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하는 매력의 공간, 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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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부평구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만남의 장소, 봉다방
    봉다방은 1974년 최정숙이 개업했고,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다방이다. 최정숙은 처음부터 다방을 개업했던 것은 아니고 세탁소를 15년 동안 운영하였다. 오산 출신의 최정숙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생계의 기반을 다지기는 했지만 직업병으로 손목이 안 좋아지면서 현재의 자리에 다방을 개업하였다. 산곡동은 백마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제2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유행에 민감했고, 주변에는 군부대와 산곡시장 등이 있는 번화한 거리였다.
  • 인천 >중구

    지식인들의 쉼터였던 레트로 다방, 인천 국제다방
    국제다방은 1972년에 처음 '마음다방'이라는 상호로 윤석례가 신포시장 입구에서 시작하였다. 1979년, 현재 자리의 국제다방을 인수하고 현재까지 영업중이다. 국제다방은 인천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안식처였고, 그 시대의 다방문화를 간직하며 원래 위치와 간판을 지키고 있는 가게이다. 1980년대 당시 신포동은 40군데가 넘는 다방이 있었다. 지금은 이 국제다방이 유일하다.
  • 대구 >중구

    대구 약전골목의 미도다방
    대구 진골목의 명소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美都)’ 속의 다방(美都)이라는 뜻이다. ‘정 여사’로 불리는 정인숙 대표가 지인의 다방을 넘겨받아 1982년부터 30년이 넘도록 운영 중이고, 두 번의 이사 후 지금의 위치인 진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것은 2013년이었다. 미도다방은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대통령부터 정치인과 유림, 문인, 화가들이 다녀가는 명소였고, 지금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이 많다. 커피값 2500원, 대구 약령시의 좋은 약재로 직접 달인 약차와 쌍화차도 3~4천원에 마실 수 있다.
  • 서울 >서대문구

    ‘독방’·‘수방’·‘리방’으로 거듭난 독다방
    독수리다방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에 김정희가 1971년 음악다방으로 개업한 찻집이다. 2004년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업을 했다가 2013년 김정희의 손자인 손영득이 재개업하였다. 독다방은 재개업을 하면서 두 가지의 컨셉을 설정하였다. 독다방이 독수리다방으로 개업했을 때부터 들렀던 세대들을 위해서는 그 시절 향수와 추억을 재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1970·80년대 문화를 알지 못하는 20대들에게는 그 시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수리다방이 독다방으로 상호를 바꾸어 재개업하자 언론에서 개업소식을 알릴 정도로 의미가 있는 다방이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경남 >창원시

    창원(진해) 흑백다방,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노포(老鋪)
    진해 흑백다방은 1955년 서양화가 유택렬 화백이 친구가 운영하던 칼멘다방을 인수하여 ‘흑백’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시작한 다방이다. 흑백다방은 화가와 문인, 시인 등 수많은 예술인이 출입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문화의 불모지였던 진해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흑백다방은 1999년 유택렬 화백이 작고하면서 피아니스트로 유학 중이었던 둘째 딸 유경아 씨가 2대 주인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에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시민단체가 ‘흑백운영협의회’를 결성하면서 흑백다방은 ‘시민 문화공간 흑백’으로 재탄생하였다. 2013년에는 1912년에 건축된 흑백다방 건물이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 흑백다방’으로 지정되었다. 2020년 유경아 씨가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흑백다방의 운영은 부녀 2대에서 그치게 되었으나 흑백다방을 사랑하는 시민과 예술가들이 3대 대표로 ‘문화공간 흑백’으로 거듭난 흑백다방을 지키고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생들의 아지트였던 학림다방
    학림다방은 1956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에 이양숙이 개업했고, 1975년에는 강준혁·신선희가 운영하였다. 그리고 1987년 이충렬이 학림다방을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림다방은 가업으로 이어져 오지는 않았지만, 처음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면서 학림을 기억하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학림다방은 대학 문화의 산실이며, 저항문화와 대중문화의 산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학림다방은 2013년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진주, 천년의 멋을 지니다

유서 깊은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도시, 진주는 임진왜란 때 공적을 세운 김시민 장군과 논개의 순국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중, 왜군은 선조를 잡기 위해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진주를 점령해야 했는데요. 이때, 김시민 장군은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에서 약 3,800명의 군사로 2만 여명의 왜군을 물리쳐 기적의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전투 중,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남강에 유등을 띄워, 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교란시켰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전통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10월마다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랍니다. 이렇듯 진주대첩은 전라도를 지키고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꾼 상징적인 전투였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 후 2차 진주성 전투 때는 6만여 명의 조선 민관군이 희생당하면서 왜군이 승기를 잡게 됩니다. 왜군은 '촉석루'에서 축하연을 벌였고, 그때 논개가 술에 취한 왜장을 절벽 근처로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하게 됩니다.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한 논개의 충절이 촉석루에 우아하고 위엄있는 자태 속에 숨겨져 있답니다. 이 밖에도 촉석루 아래, 논개가 뛰어내린 장소로 추정되는 의암, 경상남도의 유일한 인공 호수로 장관을 선사한 진양호 등 탁 트인 풍경과 함께 지친 몸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까지 편안하게 하고 싶다면 진주로 떠나보는 거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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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진주시

    관군과 백성이 함께 싸운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의 진주 창열사
    진주의 창열사는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진주성은 부산포와 한양을 잇는 일본군의 보급로였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요충지였기에 진주성 함락은 왜군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김시민의 리더십으로 왜군을 물리쳤지만 2차 진주성전투는 패전하였다. 하지만 진주성전투로 세력이 약해진 왜군이 호남 진출을 포기하게 했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의병들이 관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전투지가 되었다.
  • 경남 >진주시

    남강에 유유히 떠있는 아름다운 등의 향연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 남강의 유등놀이는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비롯된 것이다. 1592년 10월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명의 왜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에서 유등은 군사신호와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우기도 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의 특별 행사로 운영되던 유등놀이를 2000년에 별도의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 경남 >진주시

    논개의 얼이 서려 있는 조선 삼대 누각, 진주 촉석루
    촉석루(矗石樓)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본성동)에 있는 누각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촉석루는 규모가 크고 건물이 아름다우며 주변 풍경도 절경이어서 예로부터 명루(名樓)로 꼽혔다.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으로 불리었고, 부벽루와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삼척의 죽서루(竹西樓)와 함께 ‘한국의 4대 누각’, 영남루와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남도의 3대 누각’, 영남루와 안동 영호루(映湖樓)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 등으로 꼽혀왔다. 촉석루라는 정자명은 고려말의 문신인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1303~1374)가 “강 가운데 돌이 삐죽 삐죽 나온 것이 있어서 촉석(矗石)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제2진주성 전투
    영남의 왜적이 1593년(선조 26) 6월 22일에 와서 진주를 공략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질을 쳤다. 이보다 앞서 성안에서는 적이 오려 한다는 것을 듣고서 여러 가지 방비를 해 두었다.23일부터 수많은 적이 와서 일진일퇴를 거듭하였으나 드디어 성이 함락되었다.성이 함락되자 좌우가 김천일을 부축해 일으켜서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천일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좌우를 돌아보며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하고, 마침내 아들 김상건과 더불어 서로 끌어안고서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적이 성을 함락하고 모두 허물고 평지를 만들었는데 성안에 죽은 자가 6만여 인이었다.
  • 경남 >진주시

    용맹하게 성을 지킨 제1진주성 전투
    1592년 10월 5일에 적이 1만 명을 셋으로 나누어 곧바로 진주를 침범하였다. 처음 전투에서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고, 진주 목사 김시민과 지역의 관리들이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고 여러 장수와 함께 각 문을 나누어 지켰다. 7일부터 시작된 전투는 밤낮 5일간을 버티면서 목사 김시민을 비롯하여 곤양 군수 이광악, 성수경, 최덕량 등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군사들과 함께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지켜내었다.
  • 경남 >진주시

    김시민 장군의 3대첩이 이루어진 진주성
    남강변 절벽위에 세워진 진주성은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1379년(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둘레는 1.7㎞이다. 원래 백제의 거열성지였다고 전하며 고려 말에는 왜구 방비의 기지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김시민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란 3대첩의 전승을 이룬 곳이다. 촉석성(矗石城), 진주읍성이라고도 불린다.
  • 경남 >진주시

    진주 촉석루, 임란 의병과 '논개'가 떠오르는 누정
    우리나라의 3대 누각 중 하나인 진주 촉석루(矗石樓)하면 먼저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논개’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전투에 속하는 진주대첩의 장소로,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에서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서 진주하면 ‘임진왜란-촉석루-논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촉석루를 노래했던 문인들의 감흥도 임진왜란이 발발한 전후로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 경남 >진주시

    진주성의 성돌이 되려고 직접 굴러간 진주 명석 자웅석
    진주 명석 자웅석은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 있다. 자웅석은 신기리 동전마을의 동편 명석각 안에 “남자돌”과 “여자돌”이라는 이름으로 남근석 1기, 여근석 1기가 세워져 있다.신기리 마을주민들은 자웅석을 보국충석(輔國忠石)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고려때 원나라가 침략한다는 소리에 자웅석이 스스로 굴러가 진주성 돌이 되려고 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기리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보름과 음력 7월 15일에 자웅석에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명석면 주민들이 다함께 지내는 제사로 바뀌어 음력 3월 3일에 지내고 있다.
  • 경남 >진주시

    의로운 기녀 논개의 이야기가 담긴 진주 의암 사적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선동 진주성에는 진주 의암 사적비가 있다. 진주 의암 사적비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함께 남강에 빠져 죽은 논개의 사연이 새겨져 있다. 진주 선비 정식이 어우야담의 기사와 시를 지어 새겼다. 당시 진주 사람들이 논개의 의로운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수차례 건의하여 진주 의암 사적비와 의기사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진주논개제가 개최되면서 논개의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 경남 >함양군

    진주성을 찾은 한말의병장 노응규
    노응규(盧應奎, 1861~1907)는 한말의병장으로 정한용 진주의병장과 힘을 모아 진주성을 되찾고, 영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07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숨졌다.

남해에서 일상을 리프레쉬하다

해가 길어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진 걸 보니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왔나 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지루한 나의 일상을 리프레쉬 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 보니 대한민국의 숨은 보석, 남해로 목적지를 정하였는데요.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살랑이는 바람 사이로 걸을 수 있는 해안가와 이국적인 경관이었습니다. 남해는 동해, 서해와는 달리, 수많은 섬을 지나가면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으로 그 자태가 멋을 선물하고, 울창한 숲 사이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마음껏 누리게 한답니다. 남해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독일마을은 여기가 마치 한국이 아닌, 독일을 여행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이곳에서 이국적인 정취와 특색있는 요리도 맛보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해파독전시관을 방문하여 독일로 가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도 생생히 살펴보면 좋을 듯합니다. 독일마을을 즐기고 난 후에는 울창한 숲의 모습을 보여주는 물건리방조어부림에서 피톤치드를 온몸 가득 담아보세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우거진 숲은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답니다. 일상 속에서 지쳐가는 심신에 리프레쉬가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남해로 떠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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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래길 돌아 맛보는 쫄깃한 죽방멸치”
    '바래'는 남해의 옛 단어로, 남해 바래길은 어민들이 일을 나가고 들어오던 남해의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남해 바다에는 아직 죽방렴이 남아있다. 죽방렴은 좁은 바다의 물목에 대나무 발 그물을 V자로 세워 멸치를 잡는 어업방식을 뜻한다. 죽방렴 멸치가 맛있는 이유는 사람도 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하듯, 남해 물목의 거센 조류에서 헤엄치며 살기 때문이다. 죽방렴 멸치는 살이 탄력있어 쫄깃하고 맛있다. 
  •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 경남 >남해군

    죽방멸치 쌈밥의 명가(名家), 남해 우리식당
    우리식당은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에 있는 향토음식 전문점이다. 1978년 류원찬∙이순심 씨 부부가 현 위치에 멸치쌈밥과 멸치회무침을 전문으로 하는 점포를 낸 지 43년이되는 식당이다. 우리식당 메뉴의 주된 재료인 멸치는 식당 앞 바다인 지족해협에서 죽방렴(竹防簾)이라는 전통어로 방식으로 잡은 신선한 멸치만을 사용한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자재는 국산을 사용한다. 음식의 양념도 인공감미료로 일절 맛을 내지 않고 식당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만을 사용하므로 담백한 감칠맛이 도는 음식이 특징이다.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다의 향긋함을 마신다, 유자차와 유자화채
    유자차와 유자화채는 옛날부터 만들어 마셨던 우리나라 전통 음료로서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 조선 후기에 저술된 여러 전통 조리서에도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다. 두 전통 음료의 주요 재료인 유자는 남해안 지방과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었으나 예로부터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에서 나는 유자가 유명하였다.
  •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 경남 >남해군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서불이 지나간 남해 상주리 석각
    남해군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도서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남해 금산 서남쪽에는 거북바위라고도 불리는 상주리 석각이 있다. 거북바위의 엉덩이 부근에는 알 수 없는 형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읽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그 내용은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이다. 서불은 진시황의 지시로 불로초를 찾는 여정을 떠난 인물인데, 그가 이곳 남해 금산을 지나며 거북바위에 글을 새겼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선사시대의 그림 또는 거란의 문자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에서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 '독일마을 맥주축제'
    독일마을은 남해군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2010년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모태로 개최된 축제로, 이색적인 독일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정통 독일맥주를 맛볼 수 있다. 독일마을 주변에 다양한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유배문학관, 글이 절로 써지는 아름다운 남해를 즐길 수 있는 곳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와 유배 문학을 주제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남해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네 개의 전시실에서 주제별로 남해의 유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향토역사실’에는 남해의 자연과 역사, 문화, 죽방렴 멸치잡이 등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유배문학실’은 국내외 유배의 역사와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형벌의 종류에 대해 알고, 대나무 숲처럼 꾸민 벽면에 적힌 아름다운 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유배체험실’은 관람객들이 유배객이 되어 유배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실인데, 전자 상소문 쓰기와 VR 체험이 준비돼 있다. 마지막으로 ‘남해유배문학실’에서는 남해로 유배해 온 대표적인 문인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경남 >사천시

    리미술관, 남해 바닷냄새로 코끝 찡한 유쾌한 예술의 집
    리미술관은 사천에 생긴 ‘1호 미술관’이다. 항공 우주 산업의 도시로, 문화예술 인프라가 많지 않은 사천을 문화와 감동이 넘치는, 삶 속에 예술이 살아있는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2015년에 세워졌다. 지역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사천의 문화와 교육을 이끄는 기관으로써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사천에 여러 미술관이 들어서게 한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매년 사천과 남해 출신의 작가를 초대하여 수십 차례의 기획전시를 열고, 레지던시 ‘MOVE IN’을 운영 중이며, 어린이는 물론 성인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민과 소통하고 있다.
  • 경남 >남해군

    정월 대보름날 즐기는 특별한 민속놀이, 남해 선구 줄끗기
    남해 선구 줄끗기는 정월 대보름날 벌이는 줄다리기로, 풍농과 풍어를 함께 기원하기 위해 행해진다. 남해 선구 줄끗기의 특이한 점은 암고(여성 상징)와 수고(남성 상징)가 따로 나뉘어 있지 않고, 양편이 힘겨루기를 해서 이긴 쪽이 수고를 맡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줄다리기에서는 여성 편이 이겨야 풍요가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암고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결국 암고와 수고가 한 번씩 승자가 되는 것이다.

삼복(三伏) 더위를 부탁해!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이 되면 여름 더위를 이겨낼 보양식을 먹고 몸보신을 하는데요. 오늘은 삼복의 유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삼복의 복(伏)은 "뜨거운 여름 기운에 무너진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람이 더위에 지쳐 무기력해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를 의미한 한자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더운 복날이 되면 민간에서는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제철 과일을 섭취하고 각종 보양식을 먹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해의 더위를 물리친다고 하여 개장국이나 백숙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복날 음식을 섭취하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어, 우리는 복날엔 "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삼계탕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풍습이 달라 장어탕, 용봉탕 등 먹는 음식도 제각각이었다고 하는데요. 올여름도 맛있는 음식 잘 챙겨 먹고, 수분 섭취도 충분히 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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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청송군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의 차이, 약수로 만든 백숙”
    달기약수터 주변에는 약수백숙을 하는 집이 30여 곳이나 된다. 재료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약수로 조리한 백숙이다. 철분이 많은 약수로 밥을 하면 밥알이 푸르고 찰지다. 쫄깃한 다리 부위는 부드럽고 퍽퍽한 가슴은 쫄깃해진다. 맛은 담백(淡白)하고, 함께 나오는 닭죽은 녹두를 갈았음에도 텁텁함이 없다. 이 모두를 먹고 나면 그 정성에 앓던 병도 낫는다고 한다.
  • 경북 >청송군

    철분약수로 삶아 푸른색이 감도는, 청송 달기약수백숙
    달기약수백숙은 경상북도 청송의 달기약수를 이용하여 조리한 닭백숙 요리이다. 약수의 철분과 탄산성분으로 인해 푸른 색이 감돌며, 닭고기의 지방성분이 분해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육질과 담백하고 쌉쌀한 맛이 특징이다.
  • 경기 >고양시

    "고추장 한 스푼과 채소를 탈탈 넣어 끓인 미꾸라지 털레기"
    고양의 미꾸라지 털레기는 통째로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를 넣고 끓이다가 고추장을 푼 물에 채소를 탈탈 털어 넣는다. 그래서 ‘미꾸라지 털레기’라고 부른다. 미꾸라지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 가을에도 잡았다. 겨울에는 논두렁의 진흙을 파서 잠자던 미꾸라지를 꺼내 먹기도 했다.
  • 광주 >광산구

    용과 봉황의 기운으로 더위를 물리친다, 광산 용봉탕
    용봉탕은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상징하는 자라와 봉황(鳳凰)을 상징하는 닭을 재료로 하여 끓여낸 여름철 보양식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향토 음식이다. 용봉탕은 이름 자체만으로 길하고 복된 음식이며 궁중음식에서 유래되었다.
  • 경기 >목포시

    최고의 여름 보양식, 민어탕
    민어탕은 맑은장국에 민어 토막을 넣고 끓인 국이다. 여름에 가장 맛이 오르는 민어로 끓인 민어탕은 복날 보신탕 대신 먹었던 보양식으로도 유명한 향토 음식이다. 옛날에는 인천 앞바다가 민어의 주요 산지였지만 현재 민어는 북상하는 어군이 많지 않아 대부분 전남 해안에 머물고 있다.
  • 서울 >중구

    서울 최초의 전문 삼계탕집, 고려삼계탕
    고려삼계탕은 1960년 이상림이 명동에 개업한 삼계탕 가게이다. 삼계탕 전문의 고려삼계탕은 서울특별시 최초의 전문점으로, 2005년부터 아들인 이준희가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고려삼계탕은 1976년 서소문으로 장소를 옮겼다가 1978년 현재의 위치로 터를 옮겼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속으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맛집인 고려삼계탕은 프리미엄 한식 HMR 브랜드 ‘진지(Jin-ji)’의 상품으로 개발되어 온라인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 전남 >순천시

    청정 갯벌 순천만에서 맛볼 수 있는 순천 짱뚱어탕
    짱뚱어탕은 청정 갯벌인 순천만에서 잡은 짱뚱어에 시래기와 애호박, 대파 등을 넣고 끓인 전라남도 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짱뚱어는 탕 이외에도 구이나 전골 등의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되는데, 비린내가 적고 맛이 고소하고 담백한 데다가 영양가도 많아 인기가 높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세계인이 좋아하는 전통 보양음식 삼계탕
    삼계탕은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과 마늘, 대추, 인삼을 넣고 물을 부어 오래 끓인 음식으로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 음식의 하나로 초복, 중복, 말복에 주로 애용된다. 
  • 경남 >김해시

    배산임수의 백숙촌, 김해 평지마을
    김해 평지마을은 비음산 산자락에 있는 마을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마을은 평지라 평지마을이라고 불린다. 뒤로는 비음산, 앞으로는 넓은 호수같은 진례저수지가 있어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토속음식점이 모여들어 백숙촌으로도 불리는데, 이곳의 물맛과 요리솜씨가 좋아 부산, 창원, 김해시내 등지에서 한해 20만 명 이상 다녀간다.
  • 전북 >군산시

    20년간 군산의 입맛을 사로잡은 녹두삼계탕, 군산 운정식당
    전라북도 군산시 개복동의 운정식당은 1979년 정옥순 씨가 개업한 이래 42년간 지켜온 오래된 식당이다.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는 일식집으로 시작한 운정식당은 예상 밖으로 장사가 잘되지 않자 설렁탕과 우족탕을 전문으로 하는 한식당으로 전환하였다. 예전에는 운정식당이 자리한 중앙로 일대가 관공서와 금융기관 등이 모여 있고 극장가와 음식점이 번성하였던 군산시의 번화가이자 상권의 중심지였다. 그 덕에 20여 년 가까이 장사가 잘되었으나 IMF 사태와 군산 신도심의 개발로 인해 제2의 위기를 맞았다. 정옥순 씨는 단골손님을 배려하여 사양길에 접어든 구도심의 현 위치를 고수하는 대신 군산시 최초로 녹두삼계탕을 개발하고 소개함으로써 재도약과 중흥의 입지를 굳건히 다지고 현재에 이르렀다. 2015년경부터는 아들 양정일 씨가 식당 일을 본격적으로 돕기 시작하면서 운정식당은 2대를 계승하는 가업의 꿈을 일궈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