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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태극기 휘날리며 자유를 외치던 그날의 현장

1919년 3월 1일, 민족의 독립을 향한 뜨거운 열망이 전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 그 함성은 서울을 넘어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죠.
화성 송산면에서는 사강리를 중심으로 수많은 주민이 모여 만세 시위를 벌였고, 천안 아우내장터에서는 유관순 열사가 군중에게 독립의 메시지를 외쳤습니다. 호남 최초의 만세 운동 발원지인 군산에서는 수만 명이 시위에 참여하며,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합천에서 결집한 연합 시위대는 일제의 통신 시설을 파괴하는 등 구체적인 성과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독립을 염원하는 함성은 강원도 양양의 관 고개, 제주 조천면의 미밋 동산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3·1운동은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국의 민중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거족적인 운동이었습니다. 당시 학생, 상인, 농민, 해녀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나라를 잃은 슬픔과 독립을 향한 염원을 태극기에 담아냈습니다. 지금도 전국 곳곳에는 그날의 함성이 메아리처럼 남아 있습니다. 선조들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자유와 독립, 그 역사의 현장을 찾아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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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천안시

    ‘유관순열사기념관’, 끝나지 않는 독립만세의 함성
    유관순열사기념관은 유관순 열사의 삶을 온전히 전해주는 박물관이다. 유관순 열사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해 2003년에 문을 열었다. 전시실에는 유관순의 가족 이야기, 학창 시절의 밝고 평범했던 모습, 독립운동사, 체포돼 재판받고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일들이 관련 유물과 함께 잘 정리돼 있다. 고문으로 퉁퉁 부은 수감자 사진은 물론 출생기록부와 재판기록물 등을 직접 살펴보고, 유관순이 갇혀 있던 서대문 감옥의 벽관 고문실[재현물]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 경남 >남해군

    남해전통시장에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읍 북변리에 남해전통시장이 있다. 남해전통시장은 남해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상설시장이자 대표적인 어시장이다. 과거 남해 읍성이 있던 객사 터에서 개설되었던 남해읍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1914년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다고 한다. 1930년대 상설시장이 형성되었고, 1978년 본격적인 상인회가 조직되면서 상설시장과 매달 2일과 7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남해전통시장은 남해 군민을 비롯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곳으로 남해의 보물로 알려진 유자, 시금치, 마늘, 죽방멸치 등의 특산품을 판매하고 있다.
  • 경남 >진주시

    전국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컸던 진주의 3.1만세운동
    경상남도 진주의 3.1운동은 1919년 3월 18일 김재화 등이 주도하여 영남포정사(嶺南布政司) 문루(門樓) 일대에 연인원 3만 명에 이르는 진주 일대 주민들이 운집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전국에서 두 번째의 대규모 시위였다. 한편, 진주의 삼일운동은 기생, 걸인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이들은 조직적으로 활동하며 만세운동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 강원 >양양군

    일제 경찰도 굴복시켰던 양양군의 3.1만세운동과 만세고개 3.1만세운동 유적비
    강원도 양양군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4월 3일부터 4월 9일까지 6일 동안 총 8회에 걸쳐 전체 6개 면 82개 마을에서 연인원 1만 5천여 명이 참가하여 연속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만세운동 엿새째가 되는 4월 9일 현북면 기사문리 관 고개의 시위는 가장 치열한 시위였다. 이날 일제의 군경은 기사문리 경찰주재소로 향하던 600여 명의 시위대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여 9명의 사망자와 20여 명의 중상자가 발생하였다. 3.1운동 이후 관 고개는 ‘만세고개’로 불리게 되었다. 만세고개에는 2000년 3월 1일 양양 3‧1만세운동 유적비 건립추진위원회가 조성한 기념공원이 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전북 >군산시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 발원지에 세워진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군산은 호남지방 최초의 3·1만세운동 발원지이다. 세브란스 의전 학생이었던 김병수가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 장을 전달받아 1919년 3.1 운동 나흘 뒤 3월 5일 군산 구암동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총 28번의 만세운동에 3만 7천여 명이 참여했다. 군산의 3·5만세운동은 만세운동이 한강 이남 일대에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계기이자 도화선이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군산 3·1운동역사공원에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 그날을 재현하고 있다.
  • 경남 >고성군

    경남 고성의 첫 3⋅1 독립만세운동터 100주년 기념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물결처럼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3월 20일, 고성에서도 맨 처음으로 구만면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이웃 배둔 장터까지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고성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00주년을 맞아 구만면 국내다리 터에 기념탑을 세우고 “비를 세우며”란 시를 새겨 놓았다.
  • 제주 >제주시

    선조들의 희생과 독립을 향한 노력이 기록된 제주항일기념관
    우리의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일제강점기를 끝내기 위한 선조들의 노력과 독립의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제주 항일기념관이 3.1운동이 일어났던 제주시 조천읍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항일기념관은 제주도에서 진행된 항일운동에 대해 자세히 전시하고 있다. 또한 외부전시와 조천면 비석거리까지 항일운동의 희생과 노력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팔각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99(종로2가) 탑골공원 내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정자이다.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73호이다. 팔각정의 건립 시기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지 못하나, 탑골공원이 조성된 이후인 1902년 이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말기의 근대 건축가 심의석(沈宜碩:1854~1924)이 건축하였다. 일제시대 때 팔각정에서 3·1운동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민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 경기 >화성시

    일본인 순사를 처단한 화성 송산면의 3.1만세운동과 송산지역 3.1운동 기념탑
    경기도 수원군 송산면의 3.1운동은 1919년 3월 26일부터 28일까지 홍면옥을 비롯한 40여 명의 인물이 주동이 되어 송산면사무소, 면사무소 뒷산, 사강장터 등에서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8일 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한 일본인 순사부장 노구치 고조(野口廣三)가 분노한 시위 군중에게 타살당하였다. 이 일로 많은 인원이 구속되어 여러 가지 참혹한 고문을 받고 소요 및 살인 등에 관한 죄목으로 옥고를 치렀다.

한과부터 화채까지, 매력 있는 전통 디저트

식사를 마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달콤한 디저트. 오늘은 케이크 대신 한과와 전통 음료를 맛보며 색다른 미식의 세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한과는 찹쌀을 튀겨 만든 유과, 꿀과 밀가루로 만든 약과, 식물의 뿌리를 조린 정과 등 종류가 다양합니다. 조상들이 약이라고 여겼던 꿀이 들어간 약과는 궁중에서 특히 즐겨 먹었다고 합니다.
우리 전통 디저트 중에는 넉넉한 고물 속에 깊은 맛을 숨긴 두텁떡도 있습니다. 찹쌀가루에 진간장으로 간을 하고, 밤, 대추, 잣 등을 넣은 팥고물을 쪄내 만드는데, 재료가 비싸고 공이 많이 들어 궁중에서만 전해졌죠. 정조대왕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환갑 잔칫상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디저트와 찰떡궁합을 자랑하는 음료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꿀물에 제철 과일이나 꽃을 넣은 화채가 대표적인데, 단오(음력 5월 5일)에는 앵두화채를 많이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약재를 꿀에 재 마시던 제호탕은 여름철 청량음료로 사랑받았고, 물만 있으면 섭취가 가능해 전쟁 중 비상식량이나 휴대용 인스턴트 식품 역할을 하던 미숫가루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기 음료로 자리매김했죠.
자연의 재료로 정성을 다해 만든 우리의 전통 디저트, 그 매력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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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앙증맞고 노오란 호박송편
    추석 명절에 먹는 가장 대표적인 떡인 송편은 지역에 따라 들어가는 재료, 모양 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양한 채소를 잘 활용하는 충청도에서는 추석이면 호박송편을 만든다. 호박송편은 썰어 말렸던 가을 호박을 빻아서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거나 찐 호박을 으깨어 멥쌀가루와 섞어서 피를 만든다. 모양 역시 호박의 모양을 따서 만들어 앙증맞고 귀엽다.
  • 광주 >광산구

    삶의 경험으로 만든 알록달록 과일 연양갱
    우뭇가사리가 원료인 한천으로 만드는 연양갱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간식이다. 원래는 양갱은 양고기와 피를 굳힌 중국의 국물음식이었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팥을 이용한 과자가 되었다. 광주의 송정시장에는 각양각색의 과일을 넣어 다양하게 만들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양갱을 파는 가게가 있다.
  • 제주 >제주시

    귀한 날 먹는 제주도 쌀떡, 절변
    제주도는 화산섬이라 논이 귀하고, 쌀도 귀하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일상적으로 먹는 떡은 다양한 잡곡류를 활용한다. 쌀떡은 귀한 날에만 먹을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떡이 바로 절변이다. 절변은 절편의 제주도 방언이다. 일반 절편과 다른 절변만의 특징은 2개의 반죽을 이어서 서로 붙여 만든다는 것. 이는 부부의 화합을 상징한다고 하여 절대 따로 떼서 먹지 않는다.
  • 전국

    모양은 작지만 큰 정성으로 만드는 고유의 떡, 쑥구리단자
    쑥구리단자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 식용 식물인 쑥을 이용한 전통 떡이다. ‘단자’는 찹쌀로 떡을 빚어 그 안에 팥소를 넣고, 곁에 꿀물을 바르고 고물을 묻혀 만든다. 맛이 좋은 만큼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단자는 보통 적은 양만 만들어 각색 편과 같은 고임떡의 웃기로 장식하거나 다과상에 차와 함께 올렸다. 고물은 한 가지 색만 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삼색을 마련하였다.
  • 강원 >강릉시

    잘 만든 한과는 자르르 입안에서 녹아요
    한과는 중국 한대(漢代)에 들어왔다 하여 한과(漢菓)라고 부르다가, 외래 과자와 구별하기 위해 한과(韓菓)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정월 초하루에 민가에서도 한과를 해먹었고, 이런 풍습이 전해져 농한기가 되면 농가에서는 강정과 산자를 만들어 친척들과 나누어 먹거나 내다팔아 돈을 벌기도 했다. 한과는 만드는데 최소 25일이 걸린다고 한다. 그만큼 만들기 번거롭고 정성이 필요하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음력 10월 상달고사에 올리던 떡, 안동 무설기
    안동 무설기는 멥쌀가루에 무를 섞어 시루에 쪄내는 떡으로 경상북도 안동시의 향토음식이다. 무를 많이 재배하였던 안동에서는 무설기떡과 무가 들어간 붉은팥 시루떡은 제사상이나 고사상에 반드시 올리는 음식이었다. 무떡은 제례음식뿐만 아니라 손님접대, 부조, 선물 등 다양한 용도로도 만들어졌다.
  • 제주 >제주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오메기떡
    ‘오메기’는 차조를 가리키는 제주도 방언이다. 오메기떡은 차조 가루로 익반죽을 도넛과 같은 모양으로 빚어 삶아 고물을 묻혀 먹는 떡이다. 고물은 콩이나 팥을 주로 사용한다. 오메기떡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 형태와 재료가 변화했다. 과거에는 차조로만 만들었지만 찹쌀을 섞어 반죽하게 되었고, 짙은 색깔을 위해 쑥이 첨가되었다. 설탕으로 조린 팥소가 들어가면서 모양 역시 동그랗게 변화했다. 고물 역시 팥이나 콩가루 이외에도 호박씨, 아몬드, 땅콩 등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제주도 여행 기념품으로 많이 구매하는 관광상품이 되었다.
  • 강원 >강릉시

    빨간 앵두로 만든 시원한 음료, 앵두화채
    우리나라는 끓여 마시는 차보다는 차가운 음료의 종류가 더 다양하다. 차가운 음료 중 제철의 과일을 이용하거나 식용 꽃 등을 과일즙 또는 꿀물에 띄어 만든 음료를 화채라고 한다. 화채는 더위를 식히는 계절 음식으로 제격이며 특히 앵두화채는 단오절 더위를 이기는 청량음료이다. 5월 전후로 한창 여물은 앵두를 재료로 물과 꿀 또는 설탕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서 만들며 새콤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식혜는 색이 뽀얗고 맛이 달다는 상식을 뛰어넘다, 안동식혜
    안동식혜는 찹쌀로 지은 고두밥에 엿기름, 무, 고춧가루, 생강, 물을 재료로 하여 따뜻한 곳에서 발효시킨 전통음료이다. 식혜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알려진 단맛의 감주와는 달리 재료에서 우러난 알싸한 향과 매콤하고 얼큰한 맛을 지닌 안동과 안동문화권에 속한 경북북부지방에만 있는 경상북도 안동시의 향토음식이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의 '명품' 소울푸드, 버버리찰떡
    안동 버버리 찰떡은 쪄낸 찹쌀을 떡메로 쳐서 고물을 묻혀낸 떡으로 경상북도 안동지역 주민들이 간식으로 애호하는 향토음식이다. 떡의 유래는 1920년대부터 김노미 할머니(1978년 타계)가 가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금은 사라진 안동시 안흥동의 경북선 철길 밑에서 팥고물을 묻힌 찰떡을 판매하기 시작하였다.

조선 회화로 보는 당대의 이야기

조선시대의 회화는 단순한 예술을 넘어, 정치적 이상과 삶의 온기, 인간의 내면까지 담아낸 시대의 기록이었습니다. 화가의 붓끝에서 탄생한 그림들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지요.
어좌 뒤에 설치되어 있던 일월오봉도는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조선만의 독특한 회화입니다. 해와 달, 산과 물, 소나무와 같이 영원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적절하게 배치해, 왕이 어좌에 앉음으로써 ‘조선 왕조의 지속과 번영’이라는 완전한 의미를 지니도록 만들었습니다.
1미터가 넘는 비단에 그려진 태평성시도는 한양의 시장 풍경을 축제와 같은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상업화와 도시화에 대한 당대 사람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단종의 비극과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그린 월중도, 정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조선 후기 복식 및 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 강희언의 그림들, 서민의 흥취와 일상을 그대로 포착한 신윤복의 풍속화 등 여러 그림에 조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조선 회화의 세계, 알면 알수록 재미있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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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용산구

    「단원풍속화첩」에 그려진 김홍도의 대장간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중 대표작인 「단원풍속화첩」은 산수 배경 없이 풍속 장면만을 화첩에 그린 것이다. 모두 25엽으로 구성된 이 화첩 안에 대장간 그림이 있다. 대장간 건물은 생략되고 쇳덩이를 가열하기 위한 단야로(鍛冶爐)를 중심으로 4명의 인물이 모루 위에 달구어진 쇳덩이를 집게로 잡은 채 두들기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후에 김득신에 의해 모방되기도 했다.
  • 서울 >관악구

    시화첩에 담긴 의금부 신참 신고식, 금오계첩
    「금오계첩」은 의금부 관원들이 모임을 열고 이를 기록한 시화첩이다. 조선시대에는 처음 관직에 나아가는 관원이 선배 관원에게 성의를 표시하던 면신례가 행해졌다. 의금부에서는 신임 도사가 면신례를 행하는 날 「금오계첩」을 필수로 지참하여 선배 도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는 것이 관례였다. 1742년 작 「금오계첩」은 의금부 청사를 그림으로 남겼던 관행에서 벗어나 모임이 열린 주변 경관을 계첩에 담아 감상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이는 계첩에 유명 화가의 그림과 명필가가 쓴 시를 담아 계첩의 품격을 높이고 후손들이 소중히 여겨주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 경기 >성남시

    그림에 담긴 강원도 영월에서의 단종의 자취, 월중도
    『월중도』는 강원도 영월로 유배 간 단종의 자취와 충신들의 절의가 깃든 장소를 8폭의 그림으로 제작한 화첩이다. 18세기에는 단종과 충절신들이 복권되고 이들과 관련된 유적이 정비되었다. 특히, 정조 15년(1791)년에 단종의 유적에 관한 기록이 전반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하였는데, 『월중도』는 이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월에서의 단종과 충신들의 자취는 『월중도』뿐만 아니라 영월에서 열리는 단종제례와 단종문화제를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 전남 >해남군

    한국 초상화의 걸작 「자화상」의 화가, 공재 윤두서
    조선 후기의 선비화가다. 시 · 서 · 화에 두루 능했고, 실학을 추구한 지식인이었다. 인물화와 말 그림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조선 사람들의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풍속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 그의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는 「자화상」이 있다.
  • 서울 >중구

    혜원 신윤복의 ‘저잣길’
    조선 후기의 풍속화가 신윤복은 많은 작품을 남기지는 않았지만 양반의 풍류 세계를 해학적으로 그린 작품을 주로 남겼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도화서 화원이었기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입문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해 많이 알려진 바가 없다. 신윤복의 작품 중 ‘저잣길’에는 시장에 다녀오는 것 같은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어디에서 누구를 그린 작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머리에 인 함지박에 보이는 커다란 생선을 통해서 칠패장에 다녀온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 서울 >강서구

    정선의 그림 속에 보이는 조선의 악양루, 서울 소악루
    소악루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가양동 8의 성산 양천향교 뒤 언덕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 조선 18세기에 이유가 중국의 호남성의 명승지 악양루를 본떠 만든 누정으로 강서구 가양동 산4번지 성산 동쪽 기슭에 있었다. 이 누정은 당대에 풍류객의 요지로서 이름을 날렸으며, 많은 문객과 화가들이 작품을 남겼다. 대표적인 시서화의 화합으로 시인 이병연과 화가 정선의 작품을 통해 소악루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정선의 「소악루도」를 통해 1994년에 현재의 위치에 소악루를 복원하였다.
  • 서울 >용산구

    조선 후기 꿈꾸던 사회가 담긴 태평성시도
    국립중앙박물관에는 1미터가 넘는 비단에 그린 8폭짜리 그림이 있다.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지 않지만 우리는 이 그림을 “태평성시도”라고 부른다. 몇 가지 단서를 통해 조선 후기 그림일 것이라고 추측만 할 따름이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갖가지 상점과 그곳에서 일하는 상인들의 모습은 무엇을, 왜,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문자등으로 밝힌 ‘태평’을 통해 당대 태평한 도시를 꿈꾸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 서울 >마포구

    김석신의 그림에 보이는 안평대군의 풍류 정자, 서울 담담정
    담담정은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동 419-1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세종의 셋째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이 마포 북쪽 기슭에 지었다고 한다. 안평대군 사사후 신숙주(申叔舟)가 주인이 되었으며, 이후 일제시대에 세관감시소로 사용되다가, 이후 조선총독부 정무총감의 별장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거처로 잠시 사용되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으나 조선후기 화가 김석신(金碩臣)의 그림을 통해서 담담정의 모습을 살펴 볼 수가 있다.
  • 서울 >용산구

    조선 후기 도시의 상업활동상을 볼 수 있는 경기감영도(京畿監營圖) 병풍
    경기감영이란 지금의 경기도청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던 조선시대 관청이다. <경기감영도>는 조선 후기 돈의문 밖에 위치했던 경기감영과 그 주변 반송방(盤松坊) 지역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전체 12폭 병풍으로 이뤄진 작품이다. 작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작품 속 건물인 천연정이 1741년(영조17)에 지어졌기 때문에 제작 시기는 그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 경기감영을 비롯해 근처에 위치한 주택, 쌀가게와 약국 등 상업 활동을 하는 건축물과 백성들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돼 있어 조선 후기 도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 서울 >성북구

    한국적 서정주의 회화, 변종하(卞鐘下)
    한국의 서양화가다. 한국적인 소재들을 요철회화 등 독창적인 기법으로 재해석하여 특유의 시적인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그림을 그렸다.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하며 작가적 명성을 획득했고, 국내에 돌아와 원초적 정감이 배어 있는 한국적 이미지를 세련된 기법으로 탐구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대표작으로 <돈키호네> 연작, <돈키호테 이후> 연작, <어떤 탄생> 연작 등이 있다.

봄을 여는 전령, 매화에 깃든 이야기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있습니다. 겨울 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화사한 꽃망울을 피우는 봄의 전령사, 매화입니다. 이맘때면 광양 매화마을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매화 명소는 봄 정취를 만끽하려는 상춘객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곤 합니다.
매화를 좋아한 건 선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매화는 예로부터 난초, 국화, 대나무와 함께 사군자(四君子)로 꼽혔는데요.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매화의 강인함이 불의에 굴하지 않는 선비 정신의 표상으로 여겨졌습니다.
조선의 대학자 퇴계 이황 선생도 매화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이황이 단양군수로 있을 당시, 그를 사모하던 한 기생이 귀한 매화 한 그루를 가져다 바쳤는데, 이를 단양군청 뜰에 심고 감상하던 이황이 그 싹 하나를 떼어와 안동 도산서원에도 번식시켰다고 전해집니다.
성남 분당구에 있는 ‘이매동’이라는 지명의 유래에도 매화나무가 등장합니다. 마을 사람들의 실수로 억울하게 죽은 이무기가 저주를 퍼부었고, 이에 놀란 주민들이 위령제를 지내자 제를 지낸 자리에 마을의 안녕을 상징하는 매화나무 두 그루가 솟아올랐다는 겁니다.
선비의 고고한 정신을, 그리고 용서와 번영을 상징하며 한결같이 기품 있는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한 매화. 그 역사 속 이야기를 따라 향긋한 여정을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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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성남시

    두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는 성남시 분당구의 이매동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이매동이 소재해 있다. 이매동의 지명유래는 다양하다. 첫 번째는 탄천 주변의 들을 ‘이무슬들’이라고 불렀고, 풍수적으로 마을 형상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형국인 ‘매화낙지형’이다. 그래서 ‘이무슬’과 ‘매화낙지’를 합하여 지명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마을 동쪽에 있는 영장산을 ‘큰 매지봉’이라 부르고, 현재의 매지봉을 ‘작은 매지봉’이라 불렀는데, 한 산줄기에 두 곳의 매지봉이 있다고 해서 이매동이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세 번째는 탄천에서 마을 주민이 천년 만에 하늘로 승천하는 이무기를 잡아 죽인 일로 저주받아 마을 주민들이 이무기를 위한 위령제를 지냈는데, 위령제 이후 두 그루의 매화나무 솟아나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 경북 >울진군

    울진 매화장터의 3.1만세운동과 울진 기미독립만세기념탑
    1919년 당시 강원도 울진군의 3.1운동은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늦은 4월 11일에 매화장터의 시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울진은 서울과 거리가 멀고 태백산맥 건너 동해안에 있는 탓에 교통과 연락이 불편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독립선언서와 3.1운동 소식이 도착하자 만흥학교 출신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4월 11일 매화장터 만세 시위를 시작으로 4월 13일까지 3일간 지속적인 만세운동을 펼쳤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 선생과 기생과 매화
    도산서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있는데 봄에 피는 매화에는 전해지고 있는 전설이 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퇴계 선생을 좋아했던 기생이 있었다. 그 기생은 퇴계 선생에게 음식과 옷 등을 갖다주며 마음을 표현했지만 선생은 마음을 거절하였다. 기생은 선생의 종에게 그가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었더니 종은 ‘매화’라 하였다. 기생은 종을 시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를 찾아오라고 시키고 그 매화를 퇴계 선생에게 주었다. 퇴계 선생은 매화를 단양군청에 심어 지금의 매화나무가 자리잡게 되었다.
  • 전국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한지공예의 식물문양
    한지공예의 식물문양은 크게 사군자, 과일, 화초로 나눌 수 있다. 이 세 가지 이외에도 다른 식물이 있긴 하지만 크게 이와 같이 구분지을 수 있다. 사군자는 네 개의 식물을 이야기하는데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이다. 흔히 과실로 표현하는 과일문양에는 복숭아, 불수감, 포도, 조롱박(호로), 참외, 석류가 대표적이다. 마지막에 해당하는 화초문양에는 연꽃을 비롯해 모란, 보상화, 당초가 있다. 이들 식물문양은 동물문양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의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있다.
  • 전남 >광양시

    청매실농원에서 시작된 광양매화축제
    광양매화축제는 1997년부터 시작된 매화꽃 축제이다. 매년 3월에 개최되는 광양매화축제의 발단은 1995년 청매실 농원이 주관한 청매실 농원 매화축제였다. 50여년 전 광양 다압면으로 시집온 홍쌍리 여사가 황무지 야산에 매화나무를 심고 매실농사를 지어 매화마을을 만들었다. 광양매화축제는 최근 대한민국 빅데이터 축제대상을 받았는데, 원거리에서 오는 방문객의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광양매화축제 기간에 이 지역을 다녀간 관광객이 134만명으로 집계되었다.
  • 전남 >진도군

    백사장에 매화가 피어있던 진도의 섬, 관매도
    관매도는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속한 섬이다.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 알기 어렵지만 임진왜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사람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은 세 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돈대봉이라 불리는 관매산이 있다. 워낙 풍경이 뛰어난 덕분에 조도면의 여러 섬과 함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주민들은 농사와 어업을 병행하고 있는데 특히 어업이 활발하다. 주변에 좋은 어장이 형성된 연유로 다양한 어종을 잡으며 생활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 지역이야기

2025년 웹툰&애니메이션 공모전 수상작 7편에 창작의 영감으로 작용한 지역문화 콘텐츠가 있습니다.
6·25전쟁의 식량난 속에서 탄생한 부대찌개, 광복 이후 서울의 시간을 간직한 태극당, 도산서원에 전해 내려오는 퇴계와 매화 설화,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부르게 한 용두사 철당간과 지명 이야기, 제주에서 이어져 온 사만이본풀이(맹감본풀이), 해녀의 조상신으로 전승된 구슬할망, 그리고 화성 홍법사에 깃든 홍랑각시 보살 이야기까지.
문서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웹툰과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는지 지역문화 콘텐츠를 둘러봅시다.
2025년 공모전 수상작은 지역문화포털에 곧 게재될 예정이며, 추후 관련하여 공지사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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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제주시

    백골을 잘 모셔 수명을 연장한 사만이
    이 설화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전승되는 일반신본풀이 중 하나로 ‘맹감본풀이’로 알려져 있다. 맹감본풀이는 주인공 사만이가 산에 버려진 백골을 잘 모시고, 백골의 도움으로 저승차사를 피해 목숨을 연장했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에는 자신의 수명보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주인공 이름을 따 '사만이본풀이'라 부르기도 한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 선생과 기생과 매화
    도산서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있는데 봄에 피는 매화에는 전해지고 있는 전설이 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퇴계 선생을 좋아했던 기생이 있었다. 그 기생은 퇴계 선생에게 음식과 옷 등을 갖다주며 마음을 표현했지만 선생은 마음을 거절하였다. 기생은 선생의 종에게 그가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었더니 종은 ‘매화’라 하였다. 기생은 종을 시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를 찾아오라고 시키고 그 매화를 퇴계 선생에게 주었다. 퇴계 선생은 매화를 단양군청에 심어 지금의 매화나무가 자리잡게 되었다.
  • 서울 >중구

    태극당,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이 두고 간 제빵 기구를 받아 신창근이 1946년 ‘태극당’이라는 이름으로 명동에서 개업한 빵집이다. 1973년 태극당은 명동에서 현재의 장충동으로 가게를 이전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 건축한 것이다. 1999년 신창근의 아들인 신광열이 가게를 이었고, 2011년부터 신광열의 자녀들인 신경철, 신혜명, 신혜종이 태극당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태극당은 변화보다 보전을 택했고, 태극당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 제주 >제주시

    나주김씨 집안의 조상신이 된 구슬할망
    구슬할망 이야기는 나주김씨 집안의 조상신에 관한 내력을 담은 본풀이이다. 나주김씨 집안에서는 현재까지도 집안의 수호신으로 구슬할망을 모시고 있다. 구슬할망은 ‘물질을 배워 구슬(진주)을 따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말로 오늘날 해녀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조상신본풀이는 결말이 비극적이지만, 구슬할망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자손들이 정성껏 모신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물질을 하며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해녀들의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경기 >의정부시

    미군부대의 보급품으로 만든 부대찌개
    6·25전쟁으로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미군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경기도 동두천시와 양주시, 의정부시, 평택시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에서 쓰고 남은 소시지나 햄 등을 이용하여 김치와 함께 끓여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이 음식은 미군의 보급품을 음식 재료로 사용하여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혹은 당시에 미국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라 '존슨탕'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부대찌개는 외식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는 라면, 당면, 흰떡 등의 사리나 치즈 등의 재료를 함께 넣어 그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하여 즐긴다.
  • 충북 >청주시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의 충북 청주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경기 >화성시

    명나라에 공녀로 갔다 돌아온 홍랑각시 보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에 ‘홍법사(弘法寺)’라는 사찰이 있다. 홍법사는 1611년 홍(洪)씨 문중에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홍법리에 살던 ‘홍랑’이라는 처녀가 공녀(貢女)로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명나라로 갈 때 모래, 대추, 물을 가지고 갔다.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홍랑은 명나라에서 고향에서 가지고 간 모래만 밟고, 대추와 물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조선에서 가지고 간 물과 대추가 떨어지고, 결국 홍랑도 죽게 된다. 명나라에서 죽은 홍랑은 무쇠사공이 젓는 돌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말과 함께 걸어온 우리의 시간

2026년은 병오년, '붉은 말의 해'입니다. 불의 기운을 지닌 '병'과 말을 뜻하는 '오'가 만난 해인 만큼, 예부터 병오년은 강한 생명력과 추진력을 상징했는데요. 실제로도 말은 농사를 짓고, 전쟁터를 달리고, 사람과 물자를 나르며 단순한 상징물을 넘어 오랜 시간 우리의 동반자로 살아왔습니다.
그 흔적은 여러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미의 무덤 앞에서 절을 올리며 효를 실천한 춘천 마당골의 역마, 자동차보다 앞서 세상을 움직였던 기마 문화를 보여주는 등자 이야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당에 모셨던 쇠말 신앙, 장수의 성급함 때문에 쓰러져 전설이 된 횡성 용마총까지, 말은 신앙, 기술, 전쟁, 생활문화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해 왔습니다.
붉은 말의 해를 맞은 지금,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켜온 말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말과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염원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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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말과 친해질 수 있는 종마장, 원당 렛츠런팜
    원당 렛츠런팜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종마장이다.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탁 트인 들판과 여유로운 말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아이들이 승마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 서삼릉과 농협대학도 있어 자연과 호흡하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 제주 >제주시

    정서방이 죽자 말이 머리를 내밀었던 제주 말머리
    옛날 제주시 용담동에 정 서방이라는 이가 살았다. 그는 먹기도 많이 먹을 뿐만 아니라 힘도 장사였다. 그의 식성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관가에 가서 해결해 줄 것을 청했다. 관에서는 힘이 장사인 그가 훗날 역적이 될 것을 우려해 그를 죽이려고 했다. 팔다리에 바위를 묶어 바다에 던졌으나 정 서방은 삼 일 동안 떠올랐다. 마침내 정 서방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그 자리에서 백마 한 마리가 나와 울다가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말머리가 나와 울었다해서 그 곳을 ‘말머리’라고 부른다.
  • 경기 >과천시

    말박물관, 경마장 옆 박물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말박물관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당시 한국마사회가 과천에 승마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설립한 박물관으로, 1988년 ‘마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말과 관련된 모든 문화유산이 모여 있고, 역사 자료뿐만 아니라 현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말 조각과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문화복합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게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말을 교통수단이나 스포츠가 아닌, 문화로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말 전문 박물관이다.
  • 경북 >경주시

    말 위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말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 등자
    말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축 중 하나로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말을 탈 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등자이다. 등자는 발걸이라고도 하는데 말 위에서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등자는 초기에 가죽 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점차 금속제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등자는 그 형태에 따라 크게 호등과 윤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호등은 발 앞부분을 감싸는 주머니 형태이며, 윤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각 고리형태이다. 우리나라는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등자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 전국

    말뚝박기와 마부놀이로 즐기던 말타기놀이
    말타기 놀이는 '움직이는 말타기(마부놀이)'와 '움직이지 않는 말타기(말뚝박기놀이)'로 나뉜다. 움직이는 말타기는 말과 마부를 한 사람씩 뽑은 뒤, 나머지 사람들이 말 등에 올라타는 놀이다. 반면 움직이지 않는 말타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 진 편이 허리를 굽혀 말이 되고 이긴 편이 그 위에 올라탄 후 대장끼리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린다.
  • 강원 >횡성군

    화살과 경주한 명마 무덤 마산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 ‘마산(馬山)’이라는 곳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횡성군에 살던 황장군이 용마(龍馬) 한필을 길렀다. 용마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황장군은 용마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황장군이 말 등에 올라탄 후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용마와 함께 달렸다. 황장군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용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화살 한 개가 날아와 땅에 꽂혔다.
  • 경기 >오산시

    권율이 말을 목욕시킨 세마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독산성(獨山城)과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독산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왜군은 독산성 함락이 어려워지자, 독산성 안에 우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물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 그 때 권율장군이 왜군들이 잘 보이는 곳에 말을 세워 놓고, 쌀로 목욕을 시켰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왜군들은 독산성 안에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고 여기고, 공격을 접고 물러났다고 한다.
  • 경기 >양평군

    호환 방지와 대장장이 사업번창을 위한 동제당의 쇠말
    고분이나 유적지에서 종종 철로 만든 말 조형물이 발견된다. 이런 쇠말들은 대체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철을 녹여 틀에 붓는 주물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쇠말은 전국의 마을제당 여러 곳에 봉안되어 있다. 마을제당에 쇠말을 봉안한 이유로는 호랑이와 대적하기 위해, 즉 호환을 방지를 위해, 마을의 수호신이 타고 다니라고, 근처에 솥점 또는 주물터(대장간) 등이 있어서 대장장이들이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서산 창리와 삼척 내미노리에서는 호랑이와 대적하기 위해서이고 양평 성덕리에서는 대장장이들이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마을제당에 쇠말을 바치기도 했다.
  • 강원 >춘천시

    말 효성에 감복해 말 사당을 지었던 강원도 춘천시 마당골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塘林里)를 예전에는 ‘마당골’이라 불렀다. ‘당림’의 지명은 신당(神堂)을 모신 숲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춘천을 오르내리는 안보역에 나이가 많은 말이 있었다. 늙은 말은 당 숲을 지날 때면 항상 사람과 짐을 강제로 내리게 하고, 당 숲을 향해 절을 해야만 춘천까지 오르내렸다. 당 숲 앞을 지날 때 절을 하는 것은 늙은 말의 할머니 때부터 해왔으며, 그 어미를 기억하는 늙은 말의 효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말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당을 짓고, 사당이 있는 곳을 ‘마당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궁중 음료에서 국민 음료로, 한국 커피의 역사

하루 중 에너지가 필요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커피. 한국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음료를 사랑하게 되었을까요?
커피는 개항 무렵, 서양인 선교사와 외교관들을 통해 처음 전해졌습니다. 초기에는 궁중에서 서양인을 대접하는 용도로 주로 쓰였는데, 이때 고종 황제도 고소한 커피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죠. 오죽하면 커피에 독을 타 고종을 암살하려던 미수 사건이 벌어질 정도였답니다.
이후에는 커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대중에 확산되기 시작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원두커피가 다방을 중심으로 퍼져나갔고, 6·25 전쟁 이후에는 유엔군 보급품이었던 간편한 인스턴트커피가 등장하며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한 인스턴트커피는 1970년대부터 국내 생산을 시작했죠.
그렇다면 현대의 커피 문화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요? 2000년대 커피 명인 박이추 선생이 자리를 잡은 후, 1980년대 커피 자판기가 즐비했던 안목해변이 커피의 거리로 탈바꿈한 강릉에 그 해답이 숨어 있습니다. 국내 최초의 상업용 커피 재배 농가와 커피박물관, 그리고 매년 열리는 강릉커피축제에서 국민 음료로 성장한 커피의 역사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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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푸른 바다를 보며 갓 볶은 커피를 음미하는 '강릉커피축제'
    강릉은 우리나라 커피 문화 1번지다. 강릉 대부분의 커피집이 로스팅을 하며, 1세대 바리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다. 강릉커피축제는 2009년에 시작되었으며 매년 10월 강릉시 전역에서 개최된다.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갓 볶은 고급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감성 문화 축제로, 커피집을 다니며 스탬프 랠리를 하고, 100인의 바리스타들이 제각각 다른 맛의 커피를 내려준다.
  • 경기 >남양주시

    친숙해진 커피, 익숙해진 철제 커피 그라인더
    커피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기호식품 중 하나이다. 커피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기록은 명확하지 않지만 아프리카와 서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커피를 마시는 습관이 점차 보편화되면서 커피를 만드는 방법은 다양해졌고, 커피 열매를 잘게 부수기 위해 커피 그라인더라는 철제 도구도 만들어졌다. 커피는 19세기 무렵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커피 그라인더 역시 함께 수입되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다양한 기능을 갖춘 커피 머신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도 커피 그라인더로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내려 마시곤 한다. 커피가 친숙해진 만큼, 커피 그라인더도 현대인에게 익숙한 철제 도구가 되었다.
  • 전북 >군산시

    미곡집산지 군산의 카페 미곡창고
    군산의 카페 미곡창고는 1960년대에 지어진 농협 미곡창고를 개조하여 만든 카페이다. 당시의 외관이 남아 있으면서도 인테리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카페이다. 창을 크게 내어 창고의 갑갑한 단점을 보완했고, 전문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 맛도 일품이다. 유기농 밀로 직접 만든 빵도 맛있다. 군산역과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근처에 있어서 군산 근대거리를 관광한 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 서울 >중구

    고종황제를 매혹시킨 커피
    커피는 개항이후 조선의 궁궐인 경복궁이나 덕수궁에서 서양인을 접대할 때 사용되었다. 고종은 커피를 상당히 좋아했다. 서양인 선교사들은 커피를 가지고 한국에 왔는데 한국인에게 대접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커피는 일반인들에게 많이 퍼져서 1930년대 후반에는 다방도 많이 생겼다. 이 시기 커피는 원두를 갈아 주전자에 끓여 체에 받쳐 걸러 먹었다. 1930년대 후반 전쟁으로 수입이 통제되면서 커피의 사용은 줄어들었다.
  • 인천 >부평구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만남의 장소, 봉다방
    봉다방은 1974년 최정숙이 개업했고,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다방이다. 최정숙은 처음부터 다방을 개업했던 것은 아니고 세탁소를 15년 동안 운영하였다. 오산 출신의 최정숙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생계의 기반을 다지기는 했지만 직업병으로 손목이 안 좋아지면서 현재의 자리에 다방을 개업하였다. 산곡동은 백마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제2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유행에 민감했고, 주변에는 군부대와 산곡시장 등이 있는 번화한 거리였다.
  • 강원 >인제군

    일제강점기 예술인들이 모인 다방
    우리나라에서 다방은 고려시대부터 있었는데 국가기관으로 외국사신을 접대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일제강점기 1910년대에도 다방은 국가기관의 성격이 강했다. 1920년대부터 다방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서울에 많은 다방이 생겼다. 조선인을 상대로 하는 다방은 예술가들이 많이 개업했고, 그런만큼 예술가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낙랑팔라’는 화가 이순석의 아틀리에를 겸한 다방이었고, 시인 이상도 '제비' 등 여러 다방을 운영하였다. 그러나 다방은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고, 해방 후 196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게 되었다. 
  • 충남 >태안군

    폐교,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카페로 재탄생
    태안에는 폐교를 저마다의 뚜렷한 개성을 가진 문화 공간으로 바꾼 곳이 있다. 옛 어은초등학교는 중세 귀족의 대저택같은 안나앤틱 카페로, 옛 신두초등학교는 우드 스타일과 플랜테리어가 인상적인 카페로 바뀌었다. 학교의 흔적과 구조와 흔적이 남은 카페들은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전북 >전주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다방, 전주 삼양다방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의 삼양다방은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일본에서 사업을 하다 귀국한 정삼룡 씨가 개업한 70년 역사의 오래된 가게이다. 삼양다방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문인, 예술인, 영화인들의 사랑방으로서 1950년대 전주시 다방문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0년 삼양다방 건물에 전주 문화방송 TV국이 입주한 이후 기존 단골이었던 문화계 인사 외에 언론인과 방송인들이 출입하면서 1970년대에도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한때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큰 사랑을 받았던 삼양다방은 2000년대 이후 신도심으로 도심 축의 변동과 음료 소비문화의 변화로 인해 사양길을 걸으며 경영난에 처했다. 2013년에는 건물주가 바뀌면서 폐업할 위기에 처했으나 삼양다방을 살리기 위해 시민과 단체들이 모여 ‘삼양다방 운영위원회’를 결성하였고, 새 건물주 최인욱 씨의 희생에 가까운 도움과 협조에 힘입어 2014년 역사문화 공간 삼양다방으로 다시 새 출발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강원 >강릉시

    로스팅에서 시음까지 모든 단계를 만날 수 있는 강릉커피박물관
    강릉은 우리나라에서 커피로 가장 유명한 지역이다. 강릉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상업용 커피가 재배된 곳이기도 하다. 적당한 고원지대에 적지를 찾아 농가를 만들어 커피가 우리나라에 토착화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커피농가 옆에 전세계에서 모아온 2만점의 커피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있는 강릉 커피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