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미식을 원한다면 정답은 부산

어느덧 6월의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들 슬슬 여름 바캉스를 준비할 시기가 되었죠? 여러분들은 바캉스하면 어느 곳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부산이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시원한 바다와 먹거리가 가득한 도시 부산! 오늘은 맛난 음식들이 가득한 부산의 매력에 빠져볼까요?

우선 부산하면 해산물을 빼놓을 수 없죠. 바닷가에서도 도심에서도 싱싱한 제철 해산물을 맛볼 수 있습니다. 종류도 다양한 싱싱한 해산물의 색다른 풍미를 부산에서 즐겨 보세요! 다음 음식은 바로 돼지국밥입니다. 에피타이저로 소면 말아 호로록하고, 부추와 새우젓으로 간 맞춰 한 숟갈 뜨면 고기 반, 국물 반 믿을 수 없는 그 양에 놀라게 될 거예요. 돼지국밥을 먹어 봤다면 투박하지만 강렬한, 소박하지만 담백한 그 맛을 잊으실 수 없을 걸요? 마지막 음식은 밀면입니다! 국수보다는 쫄깃하고 냉면보다는 부드러운 면에, 취향에 맞게 물밀면과 비빔밀면 중에서 선택해 후루룩 맛보면 누구든 그 맛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부산의 음식들에 대해서 살펴보았는데요. 이 세 가지 음식 말고도 낙곱새, 씨앗호떡, 동래파전 등등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하답니다! 이번 여름 바캉스는 맛있는 부산, 미식의 도시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더보기
  • 부산 >중구

    서역의 음식에서 부산의 명물로, 부산 씨앗호떡
    매년 겨울, 노상에서 호떡을 기름에 지글지글 지지는 것을 볼 때면 이렇게 한해의 끝머리가 왔음을 실감하고는 한다. 호떡은 대표적인 길거리 간식이자 서민 음식의 상징이다. 전국적으로 다양한 호떡이 많지만, 부산에서는 호떡에 해바라기 씨와 각종 견과류, 건포도 등을 넣어 종이컵에 담아준다. 늘 우리 곁에 있어서 특별해보이지 않지만, 한 컵에 담긴 간식 속에도 기나긴 역사가 숨어있다.
  • 부산 >남구

    밀가루로 만든 냉면, 부산 밀면
    부산 밀면은 밀국수 냉면의 약칭으로 밀가루를 원료로 뽑은 면을 사용하여 만든 냉면을 말한다. 한국전쟁 시기 부산으로 내려온 이북지역의 피난민들에 의해 개발된 부산에서만 맛볼 수 있는 부산광역시의 고유한 향토음식이다.
  • 부산 >남구

    6.25에 생겨나 부산의 향토음식이 된 밀면
    함흥냉면에서 파생된 밀면은 부산의 향토음식이다. 이전 시대에 귀한 재료였던 밀가루가 1950년대 미군의 밀가루 원조로  남아돌게 되었다. 때문에 메밀 대신 그 밀가루에다가 고구마 전분이나 감자 전분 등을 추가하여 쫄깃한 면을 뽑아 만들었다. 요즘 부산시내 밀면집은 추석이나 설 등의 명절이 대목인데, 이는 외지에 나가있던 부산 사람들이 고향에 온 김에 먹고 가기 때문이다.
  • 부산 >북구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허기를 달래준 구포국수
    밀국수는 돌잔치나 혼인, 회갑 등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이었다. 밀국수가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외국 원조구호물자와 함께 대량의 밀가루가 반입되면서다. 부산 구포동에서 국수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구포동으로 모여든 피난민들은 싸고 맛있는 구포국수로 허기를 채웠다. 구포국수는 구포시장을 방문한 이들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 부산 >영도구

    어묵의 새 변화, 고급 간식이 된 어묵
     ‘오뎅(おでん)’은 어묵과 우무, 무 등을 넣고 끓인 냄비 요리를 지칭하는 일본말이다. 그것이 한국에 들어와 재료 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는데, 어묵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한국에 처음 설립된 어묵공장은 1907년 야마구치어묵제조소(山口 蒲鉾製造所)다. 이후 1940년대 말과 1950년대를 전후해서 부산 영도 봉래시장 입구에 동광식품과 삼진식품이 들어선다. 한국인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어묵공장이다. 삼진어묵은 1953년 박재덕 씨가 창업하여 박종수 씨의 뒤를 이어 아들 박용준 씨가 3대째 운영하고 있다.
  • 부산 >부산진구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애환과 피로를 풀어준 범일동 조방낙지
    조방낙지는 부산 조선방직 인근에서 만들어 팔기 시작한 낙지볶음의 일종으로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의 향토음식이다. 조방낙지는 조선방직공장 노동자들이 즐겨 찾았던 음식이었던 관계로 낙지볶음 대신 조선방직의 줄임말인 ‘조방’이 붙어 조방낙지라는 고유명사로 정착한 음식이다.
  • 부산 >중구

    전국의 포장마차를 제패했던 부산 자갈치시장 꼼장어구이
    자갈치 꼼장어구이는 먹장어를 매운 양념에 채소와 버무려서 구워 먹는 부산광역시 자갈치시장의 향토음식이다. 꼼장어는 먹장어의 경상도 방언으로 부산광역시 기장군의 대표적인 수산물이다. 해방이후 일본에서 돌아와 부산에 정착한 귀국동포들이 충무동 바닷가에 좌판을 벌여 판매하였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 부산 >중구

    보따리상을 통해 만들어진 유부 보따리
    요즘에는 해외직구가 간편해져 인터넷으로 클릭 한 번 하면 먼 나라의 물품이 내 집 현관문 앞까지 배송되는 시대라지만, 예전에는 국내에서 팔지 않는 물건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런 물품들이 꼭 필요한 경우, 해외에서 돌아오는 지인에게 부탁하거나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상인들에게 맡기고는 했는데, 국내에 정식 수입되지 않던 물품을 개인적으로 들여와 팔던 이들을 두고 보따리상이라 불렀다. 그들이 자주 오가던 항구 부산에 가면 그 시대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는 음식이 있으니, 바로 유부 보따리다.
  • 부산 >동래구

    달착지근한 쪽파와 해산물을 찹쌀 반죽으로 지져야 동래파전
    흔히 파전이라 하면 바삭하게 기름에 구워진 밀가루 파전을 생각하지만 부산 동래파전은 쪽파가 주인공이다. 유채씨기름 위에 쪽파를 가지런히 눕히고 찹쌀반죽을 뿌린 뒤 굴, 새우, 대합을 얹고 계란을 하나 툭 깨어 올린 후 뚜껑을 덮어 굽는다. 동래시장 난전에서 팔던 동래파전은 어느새 지역 특산 음식이 되었다. 
  • 부산 >남구

    밀면과 냉면은 목젖을 치는 그 맛이죠
    부산의 내호냉면은 2019년이면 백 년을 맞는다. 남한 함흥냉면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 당시 흥남시 내호면에서 부산까지 피난 와서 낸 가게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녹말로 면을 만들어서 가자미회와 양념 등을 올려 비벼 먹는 냉면이다. 식량이 부족한 겨울철에 먹던 음식이었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에 의해 남한에도 알려지게 되는데 냉면국수의 주요 재료인 감자녹말은 고구마 녹말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미군의 구호품이었던 밀가루 보급으로 고구마 녹말과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면서 밀면이 탄생했다. 

가볍게 즐기는 청주 여행

여름이 시작된 6월의 어느 날, 갑자기 홀가분히 떠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럴 때 가기 딱 좋은 곳이 있죠!

바로 충청북도의 청주입니다!

청주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당일치기부터 1박 2일 코스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답니다! 그럼 가볍게 당일치기 코스로 한번 떠나볼까요?

먼저 대청호에 들러서 드라이브를 즐겨보세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문의문화재단지에 도착할 거예요. 문의문화재단지는 청주 시내의 유형, 무형 문화재 등을 수집 및 전시한 역사 교육장이랍니다. 역사를 배웠으니 이제 전시회를 즐기러 가볼까요? 전시회는 마동 창작마을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서양화가 이홍원 작가가 폐교를 개조하여 작업실 개인 공간을 개방한 곳으로, 전시관과 셀프카페를 운영하는 곳이에요. 전시를 보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리다 마지막으로 가덕 말미 장터 마을에 들러 고추장 담그기, 고추 따기 체험 등 농촌 체험을 즐겨봐요. 이렇게 당일치기를 즐기고 나면 재밌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가볍게 즐기는 청주 여행으로 힐링과 재미를 동시에 만끽해 보세요.

더보기
  • 충북 >청주시

    청주의 옛이름을 단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7.5km에 청주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91.2m 상당산 위에 쌓은 포곡식 석성이다. 둘레가 4.2km, 높이 3~4m, 내부면적 220,000평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충북 >청주시

    선비의 정신을 갖춘 상업 인재를, 청주 대성고등학교 본관
    청주상업학교는 1930년대 청주 지역 학부모들의 염원과 청주 유지들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특히 청암 김원근과 석정 김영근 형제가 거금을 내놓아 학교 설립이 결실을 보았다. 붉은 벽돌 2층으로 지어진 학교 본관은 상업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해방 후 청주상업 고등학교가 되었으나 시대의 추세에 따라 2002년 인문계로 전환해 청주 대성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우암산 자락 인가 드문 뽕나무밭에 들어선 학교는 해방 후 청주대학교를 비롯해 학교 건물들이 잇따라 지어지고, 청주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번화한 거리로 변했다.
  • 충북 >청주시

    수도권과 삼남지방의 물건을 교류하던 청주 육거리종합시장
    청주시의 시장은 조선시대부터 활발하게 개설되었다. 청주시의 대표적 시장인 ‘육거리종합시장’은 청주장을 잇는 상설시장이다. 육거리종합시장은 9개의 상인회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정도로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다. 육거리종합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시장’의 역할이 컸으며, 요즘에도 새벽시장(도깨비시장)이 열린다. 
  • 충북 >청주시

    등고강변의 지극히 선한 경지를 실천하고자 했던, 청주 지선정
    지선정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중척리 산25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1호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오명립(1563~1633)이 1614년(광해군 6)에 등고강변의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등고강은 오늘날의 청주시 현도면 중척리 앞으로 흐르는 금강의 별칭으로, 이 일대를 가리키는 ‘등고’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현재의 청주시 현도면과 문의면 일대는 보성오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아온 지역이다. 지선정이라는 정자명은 『대학』의 지어지선(止於至善)에서 취한 것으로,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이후 피폐하고 어지러운 정사 속에서 풍속을 교화하고 향촌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오명립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 충북 >청주시

    청주 육거리종합시장에서의 의미 있는 답교놀이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다리를 밟는 민속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석교동에는 조선시대 이전에 놓인 다리 가운데 제일 긴 다리인 남석교(南石橋)가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의 물길이 변경되면서 매립되어 시장으로 변모하고, 남석교 또한 매몰되어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청주시의 대표적인 시장인 ‘육거리종합시장’은 1950년 이후에 형성되었다. 이곳 육거종합시장에 바로 남석교가 묻혀 있다. 그래서 청주문화원 등의 공공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시장 입구에 남석교 모형을 만들어 놓고 ‘남석교 다리밟기’ 놀이를 재현한다.
  • 충북 >청주시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은 청주성 3인의 청주 표충사
    청주의 표충사는 이인좌의 반란군이 청주성을 함락할 때 성을 지키던 이봉상, 남연년, 홍림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청주성은 영남과 호남의 중간지점으로 군대가 무기를 갖춘 병영이 설치되어 있어 반란군이 가장 먼저 점령한 곳이었다. 청주성을 지키던 무신들은 반란군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반란군을 꾸짖고 죽임을 당했다.
  • 충북 >청주시

    미국 선교사 주택으로 쓰인 여섯채의 건물, 청주 탑동 양관
    충청북도 청주시 탑동에는 청주 탑동 양관이라는 6동의 서양식 건물이 있다. 미국의 선교사와 관련된 건물로 1906년에서 1932년 사이에 지어졌다. 모든 건물은 2층 이상이며 지하실을 갖추고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축의 변화를 보인다. 벽돌로 쌓은 벽체에 지붕에는 기와가 올려져 있어 한식과 양식의 절충식 형태를 띠고 있다. 제3호부터 제6호는 일신여자고등학교 내부에, 제1호와 제2호는 외부에 자리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호랑이 숲에서 박생원 딸의 병을 낫게 해준 충북 청주시의 명암약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던 명암약수는 1920년대 무렵 발견한 탄산약수로 약수에 철분 성분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청주 시내에서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기에 청주시민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명암약수는 청주에 살던 박생원 딸의 병을 치료해주었다는 설화가 함께 전승한다. 청주시에서는 명암약수터가 있던 곳을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명암약수터는 청주시민들의 소풍 장소이자, 나들이 장소였다. 2015년 청주시에서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으며, 2021년에는 ‘명암밸리파크’라는 종합 유원지로 만들어 갈 계획이다.
  • 충북 >청주시

    보살사에 열린 청주 유림의 풍류,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고인쇄박물관에는 을축갑회도(乙丑甲繪圖) 및 죽림갑계문서(竹林甲稧文書)가 소장되어 있다.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는 청주 일원에 거주하였던 을축년생(1625년) 사대부가 1682년에 갑계를 개최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와 그림이다. 특히 을축갑회도의 경우는 갑계가 열린 보살사 경내를 배경으로 당시의 정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7세기 청주 지역 갑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충북 >청주시

    주성교육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청주 구 청주공립보통학교 강당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동에는 구 청주공립보통학교의 강당이었던 ‘주성교육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청주공립소학교로 개교하여 청주공립보통학교, 주성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다가 현재 주성초등학교로 불린다. 구 청주공립보통학교 강당은 2001년 주성교육박물관으로 개관하여 학습자료 및 민속용품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 건물은 충청북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건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350호에 지정되었다.

우리 옷의 전통 모시옷

예부터 여름철 최고의 옷으로 주목받은 모시옷. 모시는 삼국시대 때부터 삼베와 더불어 옷감의 재료로 쓰였는데요. 모시로 만든 옷은 가볍고 통풍이 잘 되어 땀도 빠르게 말라 여름에는 너도나도 입었답니다. 특히 한산모시는 고급 모시로,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의 특산품이었습니다. 비단과도 같은 광택과 삼베보다 좋은 내구성을 갖춘 옷감인 모시! 이 좋은 재료로 만든 모시옷은 장점이 많은 만큼 만들어지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모시의 껍질을 벗겨 물에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하고, 그 이후에는 베틀로 짤 수 있도록 한올 한올 실로 만들어야 했는데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모시옷, 모시옷을 만들기 위해 베틀을 짜는 것은 필수며 현재까지도 전해져오는 한산모시짜기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직물 모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산모시 전시관에 방문하여 모시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들어보고 미니 베틀, 모시옷 입기 체험도 즐겨보세요~
더보기
  • 전국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 전국

    상류층 부녀들이 입던 속치마, 무지기치마
    무지기치마는 조선시대 상류층 부녀자들이 입었던 속치마이다. 명절이나 잔치 때에 무지기치마를 입으면 겉치마가 자연스럽게 넓게 펴져 치마가 풍성하게 보였다. 무지기치마는 서로 길이가 다른 치마를 여러 겹 한 허리에 달았으며 이때 만들어지는 층의 수에 따라 3합·5합·7합 등의 종류로 나뉘었다. 각 층의 치마는 모시 12폭을 이어 만들었고 치마 밑단 끝부분만 염색하였다. 그 색감과 모습이 마치 무지개와 같아 보였으므로 이를 토대로 치마의 명칭을 무지개라 하였다가 후에 무지기로 변화하였다. 무지기치마는 그 색감과 형태가 현대의 아름다움과 흡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 충남 >서천군

    모시 생산의 전통을 잃지 않기 위한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세모시로 유명한 한산의 모시 생산 과정을 유희화한 놀이다. 모시는 한산의 중요한 소득원으로써, 이 지역의 여성들은 모시 만드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지금은 다양한 직물의 보급과 기계화로 쇠퇴했지만, 모시 생산의 전통을 잃지 않고 놀이의 형태로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충남 >서천군

    우리나라 모시 유통의 본거지 한산장
    한산장은 모시로 유명한 서천군 한산면소재지에서 열리는 정기시장이다. 한산모시는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서 유명해졌다. 한산모시를 근간으로 한 유통망 때문에 한산면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한산장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장’이라고도 불렀다. 부녀자들이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파는 작은 시장이라는 의미다. 한산장에는 3대째 이어오는 대장간과 40여 년 동안 문을 연 철물점, 함석집 등의 오래된 상점들이 있어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 충남 >서천군

    여름용 전통 직물 한산 모시짜기
    한산모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저마를 이용해 짠 전통 직물이다. 한산모시는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하였다. 모시도 여름 옷감으로 이름이 나면서 오일장에서도 판매하였다. 모시 짜기는 모시실 만들기와 베 짜기로 이루어진다. 196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전국

    치마 안에 입던 여름용 홑바지, 살창고쟁이
    살창고쟁이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치마 안에 입던 속옷으로 여름용 홑바지인 고쟁이 중 하나이다. 살창고쟁이의 형태는 허리말기 아래, 허리둘레를 따라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구멍의 크기는 대략 6~8cm 폭에 15~20cm 길이로 직사각형 구멍을 10개 이상 내고 구멍의 개수는 바지마다 다르다. 살창 부분을 재단한 후 가장자리를 2~3cm 접어 감침질로 가장자리의 삼베 올이 풀리지 않게 정리하고 허리말기를 달았다. 살창고쟁이는 밑이 트인 바지인 개당고(開襠袴)이며 주로 뒤쪽이 트여 있었으며, 간혹 허리말기만 흰색 모시로 만들기도 하였다. 살창고쟁이는 여름에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성과 신부가 갖출 수 있는 예의범절, 그리고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우리 전통 옷이다.
  • 충남 >서천군

    『삼국사기』에 기록된 오래된 여성들의 전통놀이, 길쌈놀이
    전통사회 여성들의 중요한 생업 활동 중에 길쌈이 있다. 삼·누에·목화 등을 이용해 삼베·명주베·모시베·무명베 등의 옷감을 짜내는 노동이다. 길쌈놀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남아 있다. 왕이 여성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한 달 동안 길쌈을 하게 하여, 그 양을 따져 승부를 겨룬 다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 놀이었댜. 이는 추석[가배(嘉俳)]의 유래이기도 하다. 길쌈놀이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한 달 동안 이어져 온 생업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의 노고(勞苦)를 달랜 부분이라 생각된다.
  • 충남 >논산시

    은진미륵의 보은으로 결혼 한 모시장수
    ‘은진미륵’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灌燭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불로는 가장 크며, 특히 토속적인 생김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은진미륵의 보답으로 결혼을 하게 된 서울의 모시장수를 내용으로 하는 설화가 전한다. 모시장수가 한산장에서 모시를 구입해 지게에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가다가 그만 소나기를 만나 모시가 다 젖게 되었다. 모시장수는 비에 젖은 모시를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가 모시를 펴서 은진 미륵에다 입혀 놓았다. 그랬더니 은진미륵이 오랜 시간 헐벗고 있었는데 옷을 입혀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모시장수는 서울로 향하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전국

    베틀 노세 베틀 노세, 옷감을 짜는 길쌈
    길쌈은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삼 ·누에 ·모시 ·목화 등의 섬유 원료로 베 · 명주 · 모시 · 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만들어진 직물은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었고 화폐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일의 고통을 덜고 자신들의 설움을 표현하며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길쌈노래라고 한다.

도자기의 역사 속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옛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상님들이 귀중하게 생각하며 지켜온 유물이 있기에 알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세계에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린 문화재로는 고려청자가 있답니다. 고려청자는 빼어난 색감과 음각, 양각 등 화려함이 돋보여 우리나라의 도예 문화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려청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시대를 거쳐오면서 도예 기술도 발전했을 텐데요. 이번 지역N 문화에서는 역사에 따라 형태와 용도가 달라진 도자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자기로서 최초로 만들어졌던 것은 토기로 그 기원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이라네요! 문명이 시작된 이후에는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등장했으며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형태의 도자기인 고려청자도 등장하게 됩니다.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도자기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체적으로도 생산하게 되었으며 송나라의 다양한 제조기법을 바탕으로 고려 도공들은 특유의 색, 상감기법, 문양 표현 등으로 세계 도자기사에 한 획을 남겼답니다~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고려청자에 대해 알고 나니 그 자태가 더욱 뛰어나 보이는데요. 귀중한 유물을 남겨준 조상님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더보기
  • 전남 >강진군

    흙을 빚고 불을 피우는 체험 '강진청자축제'
    청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예술품으로, 한국문화예술사의 자랑이다. 강진청자축제는 약 500년간 청자문화를 꽃피운 강진군민의 자긍심을 널리 알리고 강진지역의 문화관광자원과 연계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의 축제이다. 청자축제에서는 가마에 불 지피기와 물레체험, 청자 빚기 등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으며, 30% 할인판매를 통해 고려청자의 대중화를 꾀한다.
  • 충남 >공주시

    충남 공주 출신으로 일본의 도자기의 신이 된 이삼평(李參平)
    신들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되는 대한민국 출신의 이삼평이다. 이삼평이 태어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655년에 사망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이다. 일본은 전쟁 과정에서 이삼평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도공을 일본으로 데려 갔다. 그 전까지 일본은 도자기 생산 기술이 그리 좋지 못하였는데 그들로 인해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발전하여 이들을 영웅 이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삼평은 이 지역에서 도자기의 시조라는 의미에서 도조(陶祖)로 모셔지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옹기마을에서 흙을 빚고 구워봐요! '울산옹기축제'
    울산옹기축제는 국내 유일의 ‘옹기’를 특화된 주제로 부각시킨 차별화된 축제이다. 옹기를 전통제작기술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축제가 개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 대표 특산물인 ‘옹기’를 홍보하고 생활옹기의 보급과 전통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장인들의 옹기만들기 시연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흙을 밟고, 흙장난을 치며 옹기를 만들고 구워볼 수 있다. 옹기마을의 현장성이 뛰어나 축제 방문객이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은 축제이다.
  • 서울 >용산구

    기법을 달리한 학무늬가 새겨진 철화 청자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여러 철화청자 중 덕수 4459번 청자 철화 구름 학 무늬 매병은 상감청자에 많이 등장하는 학 무늬(雲鶴文)도 기법을 달리하면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구나 싶은 유물이다. 철분 안료로 바탕을 칠하고 무늬 부분을 긁어낸 다음 붓으로 백토를 발라 표현했다. 상감기법과 퇴화기법에서 보이는 맛이 동시에 나타나 한층 활달한 느낌이며 운동감이 있다. 형태도 일반 청자매병과 달리 풍만한 몸통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길어지면서 좁아들었다.
  • 경기 >광주시

    왕실 백자를 만들던 분원리에서 펼쳐지는 ‘광주왕실도자기축제’
    경기도 광주시의 분원리는 조선시대 전 시기동안 왕실 도자기를 굽던 사옹원분원(司饔院分院·관영 사기제조장)이 있던 곳이다. 사옹원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던 백자와 달리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수준높은 백자만을 생산하던 중앙 관요(官窯)이다. 왕실 도자기 생산지라는 특별한 전통을 계승하고자 1998년부터 도자기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분원리 백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기 >이천시

    세계도자비엔날레와 함께 하는 이천도자기축제
    이천도자기축제는 1987년 설봉문화제의 단위행사로 처음 시작하였다. 지역이 특산물(쌀, 복숭아 등)과 연계하고 문화상품으로서의 도자기를 개발하여 우수한 이천 도자기를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다 독립적인 축제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2년에 한번씩 세계도자비엔날레도 같이 개최하고 있다. 이천은 2010년 공예와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유네스코 공예분야 창의도시 의장도시로 선정되었다.
  • 경기 >여주시

    1990년부터 열린 여주도자기 축제
    여주는 고려시대부터 백자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양질의 고령토와 가마불을 땔 소나무, 깨끗한 물이 있기에 도자기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 유통되는 생활도자기의 60%가 여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주도자기 축제는 1990년 시작된 도자기를 주제로 한 축제이다. 매년 4~5월에 개최되는 여주도자기 축제에서는 흙을 만지며 직접 도자기를 빚을 수도 있고, 도자접시 깨기 대회도 개최된다. 여주도자기 축제를 통해 도자기 문화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
  • 경남 >김해시

    국내 유일의 분청사기 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분청사기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이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만든 명칭으로, 백토로 분장하여 회청색을 띤 분청사기는 14세기 중엽~16세기 중엽에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김해는 가야토기의 명맥을 이어온 곳으로 조선시대 토산공물로 도자기를 생산하였고, 일본 분청사기의 원류도 김해로 본다. 1996년 시작된 김해분청도자기 축제는 김해군과 김해도예협회가 주최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고장 강진에서 만나는 '고려청자박물관'
    청자는 신비로운 색, 아름다운 선과 형태, 다양한 장식, 높은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우리 문화의 최고 자랑 중 하나다. 청자는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중국에서도 고려청자를 최고로 여겼다. 중국 남송(南宋) 태평노인(太平老人)이 쓴 《수중금》에서 고려청자에 대해 ‘고려비색(高麗秘色)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고 쓰고 있다. 강진은 청자요지와 고려청자에 대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1997년에 고려청자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볼 수 있으며, 직접 손으로 그릇을 빚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맑은 빛을 만들어낸 강진의 정수사 약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정수사(淨水寺)에 가면 맑은 샘이 물줄기를 강력하게 뿜어내고 있다. 이 물줄기는 자연약수라 일컫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러 오고, 이 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믿음까지 가지고 있다. 약수 주변은 돌담으로 잘 정비해 두었으며, 흘러내린 물이 고여서 흐르고 있을 정도다. 절 이름도 맑은 물을 뜻하는 정수사이고, 이 맑은 물이 고려청자를 구워냈던 물이라 한다. 바로 청자의 맑고 고운 빛깔을 만들어내던 물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단오날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습니다. 제삿날에는 떡을 해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었으며, 남자는 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우리는 단오라고 부르는데요!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져 왔고, 그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전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매년 단오에 열리는 가장 오래된 축제 중 하나로,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축제로 불리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사와 굿, 관노가면극, 그네 타기, 씨름 등 단오날 행해지던 행사도 즐길 수 있답니다~ 올해 단오날에는 단오제에 참가하여 단오 풍습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봅시다!

더보기
  • 전북 >전주시

    여름철 선물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선자장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부채는 우리 조상들이 한여름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 가운데 합죽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 강원 >강릉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음력 4월 중순쯤에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진다.
  • 경기 >과천시

    공중에서 벌어지는 곡예 줄타기
    줄타기는 광대가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담,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곡예를 부리는 놀이다. 줄타기는 4월 초파일,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연희되었으며, 궁중의 행사, 권세 높은 집안의 잔치, 마을 축제, 장터 등에서도 공연되었다. 따라서 놀이판은 관아의 뜰이나 대감댁, 절마당, 장마당 등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훈련이 잘된 남자들이 타며, 청중 가운데 줄광대의 기량이 뛰어난 것에 감탄하여 돈 꾸러미나 비단을 내려주는 수도 있었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지금까지 이런 가면극은 없었다!' 특별한 강릉 관노가면극
    강릉 관노가면극은 강릉에서 관노들이 단오제 때 벌이는 무언 가면극이다. 근대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관노였음을 숨기려는 연희자들이 놀이를 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원형을 크게 잃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다. 관의 주도로 지역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놀이인 만큼 사회 풍자적인 다른 가면극들과 달리 오락적인 성격이 강하다.
  • 경북 >경산시

    한장군과 누이를 기념하는 무형문화재 ‘경산자인단오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용성면 일대에서 신라말 혹은 고려시대에 왜구로부터 주민들을 구한 한장군과 그녀의 누이를 기념하고, 그들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제사이다. 단옷날에 한묘제를 지내고, 자인단오굿, 호장장군 행렬, 여원무, 팔광대 등 왜구를 유인 섬멸한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함께 무녀를 동원하여 여원무를 추었다는 전설을 재현하는 제사이다. 1970년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축제의 형태로 지금껏 전승되고 있다. 2007년에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 전국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 전국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살피는 널뛰기놀이
    널뛰기는 널빤지 양쪽에 사람이 서서, 번갈아 가며 뛰어오르는 놀이다. 왜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이 '세상 구경을 하려고 널을 뛰었다', '시집가서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다', '귀신을 쫓으려고 널을 뛰었다'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 경남 >창녕군

    평민들의 영웅, 문호장(文戶長)을 기리는 영산 문호장굿
    영산문호장굿은 창녕군 영산면에서 단오날에 영산의 수호신인 문호장을 추모하기 위해 굿 과정에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굿놀이 형태이다. 4-5월에 이루어지며, 관의 기획에 의해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며, 무당의 굿,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형태인데, 현재 전승이 중단되어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많은 잔가시를 세심하게 발라낸, 단오에 먹는 준치만두
    진어(眞魚), 시어(鰣魚), 준치어(俊致魚), 준어(俊魚) 등으로 불리는 준치는 맛도 좋지만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준치만두는 잔가시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발라낸 준치 살과 쇠고기를 넣고 완자 형태로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묻혀 찌는 만두이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빚는 일반 만두와는 다른 형태로 일종의 굴림만두이다. 준치만두는 단오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준치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6월, 태극기 휘날리며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지는 6월 6일입니다. 6월 6일은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며 조기를 게양하는 현충일입니다. '현충(顯忠)'은 충렬을 높이 드러낸다는 뜻으로, 현충일은 충성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지는 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충일에는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한 모든 분들의 넋을 기리고 추모합니다.

나라의 위기 앞에 기꺼이 목숨을 바치며 희생할 수 있었던 숭고한 호국정신을 후손인 저희가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서는 태극기를 게양하며 묵념하는 것도 추모의 방법 중 하나입니다.

지금부터 올바르게 태극기를 게양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 태극기 게양 하는 법 ]
1. 게양 방법: 깃봉(최상단)에서부터 간격을 두고 내려서 게양
2. 게양 시간: 오전 7시~오후 6시
3. 게양 위치: 집 밖에서 보았을 때, 중앙 또는 문 왼쪽에 게양

더보기
  • 충남 >당진시

    당진 천의장터의 3.1만세운동과 4.4독립운동기념탑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의 천의장터는 1919년 4월 4일 대호지면에서 정미면까지 이어진 당진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역이다. 1995년 4월 4일 만세운동 당시 순사주재소가 있던 자리에는 4.4독립운동기념탑이 건립되었다.
  • 대전 >서구

    의친왕 망명시도와 국내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펼친 김용원
    김용원은 대전광역시 서구 원정동 덕골 출신으로 자는 중옥(仲玉), 호는 강산(剛山)·무이천(無二天), 이명은 백상열(白相悅)이다. 김용원은 1919년 대동단에 가입하여 의친왕 이강의 상해 망명 공작에 참여하였고, 의친왕의 망명이 실패하면서 김용원은 고향에 피신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 상해에서 임시의정원 상임위원에 선임되기도 하였으나 사임하고, 무장투쟁 활동을 위해 중국 무관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병으로 귀국하였다. 국내에서 김용원은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고 체포·병보석 등을 반복하며 활동하며 7년간 옥살이를 하다 1934년 병보석으로 석방되어 병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김용원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광주 >동구

    언론 운동을 한 독립운동가, 최원순
    최원순은 1919년 동경 유학생으로 2.8 독립선언에 적극 참여하고, 평생을 언론인으로 언론운동을 했다. 일제의 언론 탄압에 언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언론인을 결속시키는 ‘전조선기자대회’를 열기도 하고 총독부를 비판하는 글을 써 투옥되기도 한다. 출소 후 그는 죽을 때까지 계유구락부를 만들어 민중계몽운동과 빈민구제활동을 한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서울 >은평구

    민족을 위한 헌신, 금사향이 부른 『님계신 전선』
    님계신 전선은 6·25전쟁 당시 발표된 노래로 국방부 정훈국 소속이었던 금사향이 노래를 불렀다. 그는 군의 사기 진작을 위해 태극기를 휘날리며 공연했고 그 공을 인정받아 6.25 참전 국가유공자로 선정되었다. 님계신 전선 노래비는 은평평화공원 미 해군대위 윌리엄 해밀턴 쇼 동상 옆에 세워져 있다. 
  • 경북 >성주군

    성주 독립운동의 성지, 야계 송희규 종가
    송희규의 본관은 야로(冶爐)이고, 자(字)는 천장(天章)이며, 호는 야계산옹(倻溪散翁)이다. 송수겸(宋守謙)의 증손이며, 시조 송맹영의 16세손이다. 송희규는 왕의 외숙인 윤원형의 무도함을 탄핵했다가 전라도 고산에서 5년간 유배 생활을 했다. 1552년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고산리로 돌아와 야계 종택인 백세각을 건립하였다. 송희규는 성주 야성송씨의 위상을 높인 인물이다. 야계 종가는 야성송씨 집성촌인 고산정 마을의 구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송희규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 대전 >중구

    독립운동가 신채호가 8살까지 살았던 대전 신채호 선생 생가지
    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 생가지가 있다. 1991년 대전광역시 기념물 제26호로 지정되면서 1992년 생가터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고 주민들의 고증을 바탕으로 하여 1999년 생가가 완성되었다. 2015년에는 생가 관리 건물로 쓰이던 곳을 리모델링해 단재홍보관인 단채헌이 개관되어 신채호와 대전의 독립운동가 관련 자료가 전시되고 있다.
  • 서울 >성북구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 한용운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이다. 백담사에 입산하여 승려가 된 후,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하며 조선불교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 준비과정에서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뤘다. 대표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간행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서울 성북구에는 한용운이 1933년에 짓고 거주했던 '심우장'이 남아있다.
  • 전국

    양구·화천 전투, 고지전투에 참전한 최전방 전투병, 부상으로 제대하다
    김대명은 6·25참전 용사로 현재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에 살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선산 처가 쪽으로 피난을 갔다가 보름 만에 상주로 다시 돌아왔다. 피난을 못 갔다고 2등국민이란 소리 듣는 것이 싫었다. 1950년 11월에 영장을 받게 되자 1등 국민이 되려고 군에 입대하여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다. 대구 방직공장에서 훈련을 받고 동부전선 최전방인 양구, 화천 등에서 치열한 고지전을 치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인이 바뀌는 고지전투 속 중공군과의 육박전으로 큰 부상을 입고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고 명예 제대하여 현재는 참전유공자로 살고 있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요!

여러분 바다에도 기념일이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바로 매년 5월 31일 바다의 날로 해양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해양산업 종사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날입니다. 이날 행사는 주로 항만 및 바다 청소, 수산자원 보호 등 바다 환경과 관련된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다의 현재 인간의 손길로 인해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연안에서 수거되는 해양 쓰레기의 양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한 해 평균 11만 4212t이라고 하는데 이는 무려 20t짜리 생활 쓰레기 수거 트럭 5700대의 분량이며 그중 플라스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썩는데 500년 이상이 걸린다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분해되어도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고 합니다.

이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데요. 결국에는 우리 식탁에 음식으로 올라오며 인간에게 위협을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해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오늘부터 하나하나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보는 게 어떨까요?
더보기
  • 전국

    바다 위에 열리는 시장, 파시
    파시는 저장시설과 운반시설이 부족하던 시절에 바다 위에서 열리던 시장이다. 조선시대의 문헌 자료에 '파시'라는 용어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파시는 대상 어종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데 조기파시와 민어파시, 고등어파시 등이 그것이다. 파시가 열리는 지역에는 이 기간 동안 임시 촌락인 파시촌이 형성된다. 파시촌은 밤만 되면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어부들을 상대로 여러 상업시설이 불야성을 이뤘기 때문이다.
  • 전남 >보성군

    뻘배 타고 갯벌을 미끄러지며 꼬막잡기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 일원에서는 갯벌 위를 뻘배를 타고 다니며 꼬막을 채취한다. 부드러운 펄에서 꼬막 채취가 쉽도록 뻘배를 사용한다. 수십 개의 종류 중 참꼬막은 제사상에 오른다고 하여 ‘제사꼬막’이라 부르며 고급 조개로 간주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보성군 벌교 앞바다인 여자만(汝子灣)의 넓은 갯벌에 대포마을과 장암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1962년에 어촌계가 조직으로 그동안 어업 활동에 면허제도가 도입되어 마을 공동어장 관리를 시작하면서 양식 꼬막 생산이 시작되었고, 집중적으로 생산된 꼬막 작업에 뻘배가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2016년에 '국가중요어업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보령시

    보령 오천항, 잠수부가 키조개를 캐는 유일한 항구
    오천항은 백제와 신라시대에 회이포라는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어지자 군선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수영을 설치했다.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있어 피항시설이 없어도 안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방파제 없이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령시의 중심 장시인 광천장이 위치해 있다. 광천장을 오가는 배들이 물때가 맞지 않으면 이 곳에 배를 두고, 걸어가야 했던 마지막 기항지이기도 했다.
  • 경기 >화성시

    어촌마을에서 즐기는 바다 체험, 화성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소속이지만 충청남도 당진 장고항에 더 가까운 서해의 작은 섬이다. 국화도에는 두 개의 부속 섬이 있는데 이들 섬은 물때에 따라 국화도와 연결된다. 작은 섬이라 많은 주민들이 살지 않고 분교로 있던 학교도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 선착장 주변과 완만한 경사의 국화도 해수욕장 주변에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접근성이 좋고 조용한 섬으로 간단한 트래킹을 즐기러 오거나 낚시를 하러 오는 섬이다.
  • 부산 >사하구

    부산 을숙도, 다시 살아난 생태계의 섬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을숙도는 새가 많고 물이 맑다고 해서 '을숙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과거에는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 했던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으나, 산업화와 난개발 때문에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훼손되었다. 이후 각종 오염을 감내해야 했던 을숙도는 1996년부터 생태계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2012년 완료하였고, 현재는 을숙도 철새공원,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생태공원과 메모리얼파크 등의 명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전국

    일반인도 쉽게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해루질
    해루질은 물이 빠진 바다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해루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를 하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생활하는 어민들과 단순히 해루질 체험활동을 즐기기 위한 체험객들의 주된 목적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민들의 해루질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분이 강하지만 체험객들에겐 하나의 유희에 불과하다. 다만 다양한 목적으로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어족 자원을 외지에서 온 체험객들에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서울 >마포구

    조선 후기 어업의 발달과 관련이 깊은 지토선
    지토선(地土船)은 지방에 소재한 배라는 뜻으로,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방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배를 말한다. 이 배의 또 다른 명칭은 어염상선(魚鹽商船)이다. 지토선은 지방을 기반으로 한 선박으로 용도적인 부분에서나 지역적인 부분에서 볼 때 매우 다양한 형태의 선박이 존재하였다. 지토선은 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물건을 싣고 강과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선박이었는데 주로 취급하던 품목으로는 나무와 소금, 물고기 등이었다.
  • 강원 >삼척시

    수심과 어기(漁)에 따라 다양한 어종을 어획하는 동해안의 자망
    강원도 삼척시와 동해시 어민들은 바다를 수심에 따라 구분한다. 수심 20~40m는 가까운 바다라고 부르고, 수심 100m 이상은 먼 바다라고 부른다. 수심에 따라 어구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고기를 잡는 그물인 자망(刺網)은 수심의 깊이에 따라 그 종류가 다르다. 자망은 울타리처럼 생긴 그물과 고정형 그물로 나뉜다. 그물의 용도에 따라 저자장, 유자망, 부자망, 선자망 등으로 구분된다. 설치 수심에 따라 표층자망, 중층자망, 저층자망으로도 구분한다. 동해안에서는 어류의 서식지에 따라 자망을 달리 사용하는데, 어종의 크기에 따라 자망의 그물코와 그물 겹수가 다르다. 가지미를 잡을 때는 저자망을 사용하고, 오징어를 잡을 때는 중층자망을 사용한다. 오랜 전통을 지닌 어법으로, 시기에 따라 어종의 변화와 수심에 대응해 다양한 어종을 어획할 수 있다.
  • 경북 >울진군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한 후포 등대
    후포리는 경상북도 울진군 최남단에 속해있는 마을로 800여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마을에는 해발 60m의 등기산이 자리 잡고 있고, 등기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바닷가의 산정에는 후포 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후포 등대는 1968년 1월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의 표지 역할과 후포항을 진출입하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등대는 백색의 팔각형으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높이 11m의 등대는 35km의 불빛이 뻗어나가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는 후포항과 동해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도 하고 있다.
  • 경북 >울릉군

    아름다운 우리 땅 국토지킴이 독도 등대
    아름다운 우리 땅, 대한민국 최동단 독도에는 국토를 지키는 독도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독도 등대의 역사는 1954년 8월 처음으로 불을 밝히며 시작되었다. 독도 등대의 첫 번째 임무는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리고 우리의 땅과 선박을 지키는 것이다. 독도 등대는 백색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15m의 높이를 자랑하고, 최대 46km의 거리까지 빛을 전달하고 있다. 독도 동도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등대 주변에는 통신 시설과 경비 시설이 함께 하고 있다.

과거 아이들의 옷차림

아이들의 몸에 맞춰 제작된 작고 앙증맞은 옷을 보다 보면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렇게 유아옷을 보고 있으니 문득 드는 의문이 있는데요! 과거 아이들은 어떤 옷을 입고 생활했을지말이에요~ 궁금하다면 알아봐야겠죠! 지금부터 과거 속으로 떠나 아이들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 알아봅시다!

새곤새곤 자고 있는 아기의 저고리를 유심히 살펴보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네요. 배냇저고리는 아이가 태어나 처음 입는 옷으로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는 옷이랍니다! 추운 날씨지만 조잘조잘 떠들며 놀고 있는 아이를 보니 귀까지 덮어주는 모자를 쓰고 있네요. 저 모자는 굴레로 추위를 막기 위해 안감은 비단이나 융을 사용하였으며 화려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까치까치 설날은♬ 까치설날이네요! 저기 누가 봐도 눈에 띄는 두루마기를 입은 아이가 있는데요. 무슨 옷을 입은걸까요? 아~ 까치두루마기네요.까치 두루마기는 오색 옷감으로 지은 두루마기로 설 전날 입혔으며 현재는 돌옷으로 많이 입힌다고 합니다~ 옛 시절 아이들은 어떤 옷을 입었을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해결되는 유익한 시간이었네요~ 다음에 또 만나요!
더보기
  • 경기 >이천시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는 청소년들이 거북이 형상을 뒤집어쓰고 노는 놀이로 추석날 벌인다.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밭농사와 관련이 깊다. 아이들이 남의 집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집주인이 떡과 음식을 내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전국

    뒤쪽이 트이게 만든 아이용 바지, 풍차바지
    풍차바지는 바지 마루폭에 바람을 막아주는 풍차(風遮)를 달고 뒤가 길게 트인 아이용 바지이다. 풍차바지라는 이름은 바지 엉덩이 부분에 헝겊 조각인 ‘풍차’를 달아서 붙여졌다. 풍차바지의 형태는 큰사폭, 작은사폭, 마루폭, 조끼허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차바지의 앞은 보통 남자 바지와 같다. 마루폭에 순서대로 큰사폭과 작은사폭을 꿰매어 붙인다. 그리고 바지 뒤쪽의 트인 부분에 풍차를 대어 겹치게 하였다. 풍차바지는 성인의 바지와 구성은 비슷하지만, 뒤와 밑이 트여 아이들이 입기에 적합한 의복이었다. 풍차바지를 입고 어린아이들이 배변훈련을 하기도 하였고, 색상으로 남아와 여아를 구별하기도 했던 풍차바지는 아동들이 착용했던 옷 중에서도 가장 기능적인 옷이었다.
  • 전국

    찬 기운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는 옷, 두렁치마
    두렁치마는 치마 모양으로 어린아이의 배와 아랫도리에 두르는 옷이다. 어린아이의 배 위에 두렁치마를 둘러 밖의 찬 기운으로부터 아이를 보호하였다. 두렁치마의 형태는 성인의 치마와 비슷하지만 일반적인 치마와 다르게 뒤가 겹치지 않게 만들어서 아기의 뒤가 배기지 않도록 하였으며, 기저귀를 갈기에도 편리하였다. 두렁치마의 모양은 중앙에는 직사각형의 치마폭을 두고 바깥쪽에 사다리꼴의 무를 달았다. 치마의 주름은 듬성듬성 잡거나 가장자리 양쪽으로 두세 개씩 주름을 잡기도 하였다. 두렁치마의 소재는 무명, 광목(廣木), 명주를 사용해서 만들었으며 자주 세탁해야 하는 아이들의 옷이라 대체로 흰색이다. 두렁치마는 배냇저고리, 풍차바지와 더불어 외형적 디자인보다 아동의 위생과 성장에 맞춘 실용성을 고려한 유아기의 대표적인 복식이다.
  • 전국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 굴레
    굴레는 조선시대 후기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로 상류층 가정에서 돌쟁이부터 4~5세까지의 남녀 아이가 착용하였다. 굴레는 돌을 맞이한 아기들이 많이 써 ‘돌모’라고도 불리며, 아이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담은 다섯 가지 색의 비단에 화려한 장식을 덧붙여 아이의 쓰개로는 가장 화려하다. 굴레의 형태는 세 가닥 또는 더 많은 가닥을 얽어 정수리인 모부(帽部)를 덮고, 그 밑에 여러 가닥의 드림댕기가 드리워진다. 굴레는 어린이의 쓰개였지만 성인이 착용할 때도 있었다. 딸이 회갑을 맞을 때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딸이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어머니의 무릎에 안기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때 굴레를 함께 썼다.
  • 서울 >용산구

    평생 '어린이'를 위해 살았던 아동문학가 방정환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 전까지 우리나라에 없던 말이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1920년 천도교에서 발행한 종합월간지 『개벽』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면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방정환은 안데르센과 그림 동화를 번역 소개했고, 한국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아동문제연구회인 색동회를 창립하고 어린이날을 만들었으며, 동화회를 열었다. 『신청년』 , 『신여성』 , 『학생』 등의 잡지를 발간하고, 『칠칠단의 비밀』, 『사랑의 선물』 등의 동화를 썼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방정환의 동상이 서 있다.
  • 전국

    아이의 첫 생일, 돌
    아이의 첫 번째 생일을 ‘돌’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태어나 1년이 되기 전에 죽는 아이들이 많아서 돌의 통과의례적인 의미가 컸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생일에 예쁜 돌복을 입히고, 음식을 풍성히 차려 잔치를 했다. 잔치 중에는 아이의 장래를 예측해보는 돌잡이도 했고, 이웃들에게 돌떡을 돌리기도 했다. 현재에도 돌은 중요한 의미가 있으며, 돌잔치 문화도 전승되고 있다.
  • 전국

    삼칠일 동안 걸어두는 금줄
    금줄은 부정을 막기 위해서 집 대문이나 길 어귀에 걸어두는, 공간을 구분하는 새끼줄이다. 일반적으로 집안에 새로운 아이가 태어나거나 중요한 제의를 준비할 때 집 대문의 양쪽 기둥 사이에 걸어둔다. 금줄을 걸어두는 기간은 삼칠일(21일) 정도이다. 금줄은 왼 새끼를 사용하고,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숯과 종이, 성별에 따라 남자아이는 빨간 고추를 여자아이는 솔가지를 함께 엮어 걸어둔다.
  • 전국

    은으로 배씨(梨種子) 모양을 만든 댕기, 배씨댕기
    배씨댕기는 여자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사용한 댕기이며, 은으로 배씨(梨種子) 모양을 만들고 그 위를 칠보로 장식한다. 주로 3~4세의 어린아이가 머리장식으로 사용한 댕기로 머리카락이 아직 한 줌이 채 되지 않는 어린아이들이 착용하였다. 배씨댕기는 댕기 위에 사각형이나 마름모, 또는 원형의 비단·전(氈)·융 같은 천 위에 은이나 유리로 여러 모양을 만든 장식을 얹은 것이다. 그리고 양편에 가늘게 보조댕기를 달아 중앙에 배씨를 놓는다. 그런 다음에 양편으로 가른 머리를 배씨댕기와 바둑판처럼 나누어가면 같이 연결한다. 이렇게 배씨댕기로 짧은 머리를 고정하고 앞가르마를 장식하였다. 배씨댕기는 생애 첫 장신구로 아이의 건강과 행운을 빌어 병마를 피하고, 액운을 막기 위한 주술적 의미도 포함되었다.
  • 전국

    깃이 달리지 않은 아기 저고리, 배냇저고리
    배냇저고리는 태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갓난아이를 씻기고 입히는 옷으로 깃과 섶을 달지 않은 아기의 저고리를 말한다. 배냇옷 또는 깃저고리라고도 한다. 배냇저고리의 형태는 우리나라 저고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일반 저고리와 달리 길과 소매, 옷고름뿐이며 색이나 재료와 바느질도 매우 단순하며 엉성하지만, 실용과 과학, 합리성을 담고 있다. 또한, 배냇저고리는 많은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있어 옛 우리 가정에서는 이를 귀히 여겨 보관하는 습속이 있었다.
  • 전국

    까치설빔으로 어린이가 입는 오방장두루마기
    까치두루마기는 까치설날 아이들이 까치설빔으로 입는 옷으로 오색 옷감으로 지은 두루마기를 말하며 오방장(五方丈)두루마기라고도 한다. 까치두루마기의 형태는 다섯가지 색으로 만들어졌으며, 섶이나 길과 무는 같거나 다른 색으로 하였으나 대부분 오방색 중앙을 차지하는 황색으로 겉섶을 만들고, 길은 연두색으로 만든다. 남자아이는 깃과 옷고름인 돌띠, 남자아이는 깃과 옷고름인 돌띠와 끝동의 색은 남색, 무는 자색으로 하였다. 반대로 여자아이는 깃과 옷고름인 돌띠, 끝동의 색을 홍색·자색으로, 무는 남색으로 하였다. 이처럼 까치두루마기는 검은색을 제외한 고운 색으로 소매와 길을 만들었다. 이는 오방색을 통해 길상(吉祥)의 기(氣)를 받아 부귀영화와 장수를 누리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있다.

CNN 선정 한국 명소

지난 2012년 CNN에서는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을 발표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리스트가 아닙니다! 내국인들도 한국을 탐험하고 발견하며 즐길 수 있는 명소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을에 가기 딱 좋은 장소 몇 곳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합천 해인사입니다. 해인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세계문화유산 외에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유명합니다. 고즈넉한 해인사를 둘러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보성 녹차밭입니다. 가을인데 차밭이 무슨 소리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싱그러운 느낌과는 또 다른 운치 있는 분위기의 녹차밭이 여러분들을 맞이해 줄 거예요. 주변의 단풍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녹차밭을 보면 힐링이 절로 되겠죠? 이외에도 성산일출봉, 대둔산 구름다리, 여주 신륵사,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설악산 울산바위 등 많은 명소도 있으니 기분 따라 골라서 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더보기
  • 제주 >서귀포시

    제주 제1경, 일출이 아름다운 서귀포의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峯)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있는 명산이다. 높이는 해발 182m이나 바닷가에 있어서 경관이 뛰어나다. 이 산은 화산 분화구로 독립된 섬을 이뤘으나 점점 바닷물의 작용으로 모래와 흙이 쌓여서 제주도의 본토에 붙게 되었다. 분화구 주변으로 99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서 구구봉이라 불린다. 희귀종 식생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바닷가 벼랑에는 춘란 등 15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말 방목지로 유명하다. 2000년에는 천연기념물로, 2007년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경기 >여주시

    비천을 아로새긴 신륵사 보제존자 석등
    나옹화상은 고려 말 선불교를 중흥시킨 대표적 선승으로 고려불교가 조선불교로 이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나옹화상의 석등은 나옹의 불교계 입지를 반영하듯 지금까지 조성한 사례와 달리 빼어난 구조미와 화려한 조각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등이 갖는 무명을 밝히는 상징을 통해 려말선초 불교계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 나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등으로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 경남 >합천군

    고려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그 어느 시대보다도 공예문화가 발달하였지만 목공예는 나전칠기를 제외하면 현존하는 유물과 문헌기록이 드물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대장경판(大藏經板)을 통하여 고려시대 목공예의 높은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 경남 >합천군

    무른 돌을 갈아 탑을 세우고, 해인사 청석탑
    해인사 원당암 청석탑은 9세기 후반 진성여왕 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점판암을 가공해 공예탑 성격으로 조성한 특수형식 탑이다. 기단은 무른 점판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강석으로 제작했고, 탑신과 옥개석 모두를 점판암으로 제작했다. 원당암 석탑은 진성여왕 때에 위홍을 위한 원당으로 지목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위홍을 위해 기존 석탑과 구별되는 형식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의 능침사찰 신륵사의 다층석탑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을 수호하기 위한 능침사찰이었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입적한 곳으로 중창된 이후, 세종대왕의 능을 이장하면서 신륵사를 능침(陵寢)사찰로 지정하여 왕릉수호 역할을 부여했다. 다층석탑은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고려 말 경천사지 십층석탑 양식을 계승해 수미단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공예적인 조형의 탑신석을 올린 구조를 취했다. 상층기단 면석에 조각된 용 문양은 조선 왕실과의 관련이 높고, 성종 3년(1472)에 이루어진 신륵사 중창을 염두에 둔다면 석탑 역시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경남 >합천군

    용궁에서 온 강아지의 보은으로 세워진 해인사
    옛날에 가야산 산골에 사는 노부부가 우연히 집으로 온 강아지 한 마리를 3년간 정성껏 길렀다. 3년이 되는 날 강아지는 자신이 용왕의 딸이고 죄를 지어 강아지가 되었는데, 이제 3년이 지나 용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아지는 부부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중에 용궁에 오게 되면 용왕이 선물을 할 것이니 반드시 해인이라는 도장을 고르라 하고는 사라졌다. 며칠 뒤 용궁에 가게 된 노인은 용왕과 공주를 만나 후한 대접을 받고, 해인을 선물로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노부부는 해인으로 남은 삶을 편안하게 지내다가 죽기에 이르러 절을 지었다. 그 절에 해인을 보관하게 되어 해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강원 >속초시

    금강산으로 들어가려다 멈춘 울산바위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에 울산바위가 있다. 울산바위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그 형상이 '울타리'처럼 생겨서 불려졌다고도 하며, 천둥이 칠 때 하늘이 울린다고 해서 ‘천후산(天吼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잘 생긴 바위들을 금강산으로 모두 모이도록 하였다. 울산바위는 경상남도 울산에 있었는데, 조물주의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덩치가 워낙 크고 무거워 걸음걸이가 늦다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이 만들어졌다. 울산바위는 다시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이 없어서 설악산에 눌러앉고 말았다.
  • 전남 >보성군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진출한 우리의 전통음료, 보성 녹차
    보성 녹차는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고 딴 채로 바로 가마솥에 넣고 가열하여 손으로 비벼 건조시킨 차로서, 우리나라 최대의 녹차 생산지인 전라남도 보성군의 특산물이다. 보성군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녹차잎의 총 생산량 중 약 34%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녹차생산지이다.
  • 전남 >보성군

    일제강점기 많이 생산된 녹차
    찻잎을 따서 바로 덖으면 찻잎이 발효되지않아 찻물이 녹색이 된다. 이러한 차를 녹차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주로 먹는 차는 녹차였는데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광주의 무등다원, 정읍의 소천다원(小川茶園), 보성의 보성다원(宝城茶園) 등에서 일본인이 차를 재배하여 녹차를 만들었다. 이때 만든 녹차는 수증기로 차잎을 찌는 것이었다. 이 증제녹차가 상품화되어 유통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녹차는 수증기로 찌지 않고 물없이 솥에 덖는다. 이 녹차는 일제강점기 규슈 특정지방의 녹차 만드는 방식을 해방 후 도입한 것인데, 선구자는 일본 규슈의 제다공장에서 다년간 노동자로 일했던 화개의 김복순이었다.
  • 경기 >파주시

    평화의 레일을 꿈꾸는 증기기관차 – 파주 임진각 일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일원에는 등록문화재 한 점과 경기도 기념물 한 점 그리고 세계기록유산과 관련이 깊은 비석이 있다. 등록문화재는 제78호인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다이며, 자유의 다리는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다. 복선이었던 경의선 임진각 철교가 한국전쟁 시기에 두 개 모두 망가지자, 서쪽 철교를 복구하고 국도로 연결하기 위해 가설한 다리가 자유의 다리다.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 포로 1만2,700여 명이 이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왔다. 임진각은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연중 찾는 장소로서, 임진각 앞에는 방송 당시 주제가였던 ‘잃어버린 30년’ 가사를 새긴 ‘망향의 노래비’가 서 있다.

참 맛있는 여행, 거제

푸르른 5월, 날이 좋은만큼 콧바람을 쐬러 어디든 떠나고 싶어집니다. 날이 좋은데 집에만 있기엔 심심하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와 함께 거제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많은 여행지 중 왜 거제인지 물으신다면 응당 답해드리는 게 맞겠죠! 지금부터 거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릴 테니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에게 있어 맛집 탐방은 빼놓을 수 있는 취미생활 중 하나입니다. 맛집 탐방에 진심인 분들에게 거제는 흥미진진한 여행지가 될 텐데요.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췄으며 오직 거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죠!

거제 9미라 불리며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들은 맑은 해산물을 가미하여 소박하지만, 그 참 맛은 제일이랍니다.

거제 9미에 대해 살짝 살펴본다면 거제의 특색이라 해도 손색없을 성게, 멍게 비빔밥인데요. 청정지역인 거제에서만 해녀들이 직접 잡은 성게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랍니다. 다음으로는 봄의 나른함을 쫓아줄 도다리쑥국입니다. 담백한 맛의 도다리와 향긋한 향의 봄 제철 식품인 쑥의 조합으로 한번 먹으면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해줍니다~ 맛있는 여행 거제에서 바로 시작하세요!
더보기
  • 경남 >거제시

    겨울 남해의 방파제 낚시로 맛보는 호래기(꼴뚜기)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이 말은 꼴뚜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생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속담이다. 그러나 꼴뚜기는 그런 취급을 받을 생선이 아니다. 남해안에서는 통칭 ‘호래기’라고 부르는 꼴뚜기는 아직 양식이 안 되기에, 가격이 비싼 고급어종에 속한다. ‘경남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꼴뚜기는 경상남도의 초겨울, 통영과 거제의 방파제 및 수산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호래기 낚시와 호래기 회는 재미와 별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남 >거제시

    바다의 맛과 향을 비벼보자, 거제도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살짝 얼린 멍게젓갈에 밥과 함께 김 가루, 참기름, 야채 등을 넣어 비빈 요리로 경상남도 거제도의 향토음식이다. 주재료인 멍게젓은 멍게의 살로만 만드는데, 멍게 특유의 향과 단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는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첨가하지 않는다. 멍게젓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기도 하고 고추장이 멍게 특유의 향과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경남 >거제시

    조개를 회로 먹는다고? 왕우럭조개
    이름에 접두어 ‘왕’이 붙을 때에는 유별나게 크거나 특출난 것을 표현한다. 뚜껑이 유별나게 커서 왕뚜껑, 중국집의 왕짬뽕, 어린시절 추억의 간식 왕밤빵까지... 개체중에 특출나게 큰 것은 왕건이 잡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크기 자랑은 거제도 앞바다에도 있으니, 그 이름 왕우럭조개다. 못해도 성인 주먹보다 크고, 특출나게 큰 녀석은 사람 얼굴만 한다고 하니, 과연 ‘왕’의 자리에 오를 만하다. 커서 회로 먹어도 충분한 살이 나오는 조개. 거제도의 명물 왕우럭조개를 만나보자.
  • 경남 >거제시

    수정같이 솟아있는 거제 옥산성
    거제 옥산성은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10호로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수정봉 정상 부분에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수정봉성이라고 불리는 옥산성은 게제도의 옛 치소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계룡산에서 거제면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 부분에 있다. 그리하여 옥산성에 오르면 멀리 한산도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서쪽 방향이 트여있어 산성지로 적합한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 경남 >거제시

    일제강점기 대량생산된 마른멸치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 경남 >거제시

    진해만의 대구 잡이
    대구포는 대구를 말린 것으로 밑반찬이나 제사음식으로 쓰였다. 대구포를 만드는 대구어는 경남 창원 인근의 진해만이 최대 어장이다. 진해만에 있는 대구어장의 중심은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이다. 1979년 무렵에는 어민 450여명이 60여척의 배로 대구를 잡을 정도였다. 한반도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와 서부 황해계통의 대구어로 나뉜다. 황해방면의 대구어는 체형이 왜소하고 동해계통 대구어보다 맛이 떨어진다. 진해만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가 산란을 위해 왔다가 잡히는 것이다.
  • 경남 >거제시

    잠수복을 입고 전복을 캐는 거제의 ‘모구리어업’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동마을에는 모구리가 많다. 모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말로, ‘머구리’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어패류를 채취하기 위해 조선으로 밀려 들어온 잠수기 업자들이 침탈적으로 어로행위를 이어 나갔다. 급기야 남획으로 인해 수산자원을 보호하려 어업을 통제해야 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 소유였던 잠수기어선이 귀속재산으로 처리되면서 초기 잠수기어업이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잠수기어업이 이루어지지만 그중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거제 장목항이다. 장목항 주변의 저도 어장은 천혜의 자원 보고로 많은 잠수기어선이 모여든다. 거제 어장에서는 개조개, 바지락, 왕우럭 등을 주로 채취한다.
  • 경남 >거제시

    기차타고 함흥에서 흥남으로, 흥남에서 뱃길로 거제도까지
    이장영(남·1940년생)현 거제도민회회장이다. 유서깊은 개신교 목사 집안 출신으로, 목사였던 부친이 흥남철수 작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현봉학(의사)을 도와 당시 미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을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교인인 가족들은 남은 사람 없이 피난을 나와 함흥에서 흥남으로 기차를 타고 왔고 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와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 경남 >거제시

    경남 거제의 삼 삼으며 부르는 줌치타령
    경남 거제시에는 삼을 삼으며 부르던 노래로 줌치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삼삼기는 여성들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삼삼는소리」 또한 여성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줌치타령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가창유희요이나 삼삼기의 고됨과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도 불렀다. 줌치 즉 주머니를 짓는 재료부터 주머니를 지은 방법, 주머니를 매개로 한 남녀 간의 구애 행동을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흘간의 항쟁

서울의 봄을 꿈꿨던 세상은 신군부의 국가 장악으로 인해 꿈을 이루기도 전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새 정부로 인해 1980년 5월 초,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학생들의 시위가 불붙기 시작하였고 서울뿐만 아닌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 지방 도시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엔 끝이 없었고 광주에서는 5월 13일부터 지속적인 민주화 시위가 계속해서 이뤄졌습니다. 시위가 이뤄지던 광주에서는 부상자를 병원에 옮기던 운전기사가 죽임을 당하고 임산부가 총에 맞아 즉사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자 시위대 또한 실탄으로 무장하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공수부대의 공격 속에서도 끊임없이 항쟁을 이어 나갔고 무자비한 폭격 속에서도 시민군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무력 진압 앞에 광주 시민군은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으나 언론 통제로 인해 폭동을 일으켰다는 오명까지 받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날의 항쟁이 아픔과 상처로 남게 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독재의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염원한 광주 시민들의 용감한 투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보기
  • 강원 >원주시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원주 원동성당
    강원도 원주시 원동성당은 1896년 원주 본당으로 시작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원동성당은 1913년 고딕 성당을 지었으나 한국전쟁 초기에 폭격으로 무너져 버렸다. 현재의 성당은 1954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첫 주교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정신에 따라 1970년대부터 유신 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다. 원동성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시기에 중요한 중심 공간 역할을 했다.
  • 광주 >서구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 5.18 자유공원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 센터 맞은편에 5.18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5.18 자유공원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가장 큰 건물인 자유관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약 10일간 벌어진 광주 시민의 민주 항쟁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 계엄군의 억압 현장의 기록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왼편에는 헌병대 중대 내무반과 본부 사무실, 취사실, 영창 건물이 있으며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 인천 >중구

    민주주의가 자라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성덕당은 1935년 인천 공립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졌다. 일본인 학교였던 인천 공립학교는 해방 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이 되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이었던 교육자 길영희 선생은 ‘성덕당’에서 전교생에게 양심적인 나라의 일꾼이 되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1930년대 세워졌던 옛 학교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성덕당은 남아 제물포고등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 광주 >동구

    5.18민주화 운동 당시 끝까지 사수했던 광주 구 전라남도청 본관
    광주 구 전라남도청 본관은 광주광역시 5.18 민주광장 앞에서 북부 발산교 앞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금남로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에 참여하여 지은 대표적인 관공서 건물이다. 초기에는 벽돌조 2층 건물이었으나 해방 후 백색 도료로 도색되었고 1975년에 3층으로 증축되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후의 격전지로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민주화의 꿈이 스러지다, 장면 가옥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장면은 1960년 8월 12일 내각책임제 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은 불과 9개월 만에 무너졌다. 서울 장면 가옥은 그렇게 짧았던 민주화의 꿈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집은 장면이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인 1937년 건립하여 1966년 서거할 때까지 30년가량 거주하였던 곳이다. 욕실과 화장실을 실내에 배치하고 대청마루가 거실 형태로 바뀌는 등 1930년대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광주 >서구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양동시장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의 역사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100년의 시간을 훌쩍 넘었다. 긴 역사만큼 양동시장은 근현대사의 다양한 사건들과 함께 해 왔고, 역사적 현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에도 양동시장은 함께 했다.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은 시민들에게 주먹밥과 음료수, 구급약품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양동시장은 5.18사적지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전남 >화순군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부, 홍남순
    홍남순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나 1963년 광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후 평생을 광주 민주화 운동의 대부 노릇을 한 어른이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약자의 편에 선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어려운 형편에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가의 녹을 먹는 판사를 그만두고 약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이자, 독재 정권과 싸우는 민주투사가 된다.
  • 서울 >도봉구

    씨알의 세상을 외치다, 함석헌
    인권운동가이자 시인·교육자·사상가·언론가·역사가인 함석헌은 평생을 민중운동에 헌신했던 사상가다. 함석헌이 발간한 잡지 『씨알의 소리』는 함석헌이 일생을 걸쳐 수립한 사상인 '씨알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중심으로 하는 씨알사상은 함석헌의 정치·사회활동의 근간이었으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정신유산이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는 함석헌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함석헌 기념관이 있다.
  • 광주 >남구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광주광역시 남구 이강하미술관’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자리한 이강하미술관은 5.18때 시민군으로 참여하고 이후 양림동에서 3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화가 이강하의 삶과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옛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미술관에서 이강하의 무등산 연작과 영산강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단청을 비롯한 우리 전통과 시민들의 삶, 그리고 새롭게 해석한 남도의 풍경을 담아낸다.
  • 전남 >나주시

    사회적 약자의 어머니 조아라
    조아라는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여성의 교육과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 수피아여학교 시절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항일단체 ‘백청단’ 단원으로 활동한다. 백청단 사건으로 교직에서 쫓겨난 후 그는 광주 YWCA에서 고아, 성매매여성, 빈민여성 등의 여성인권과 여성 교육을 위해 헌신한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는 구속자와 부상자를 돌본다.

등에 불을 밝히는 부처님 오신 날

4월 초파일이라고도 불리는 부처님 오신 날은 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절에서는 등을 켜고 불교 행사를 진행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면 절 주변으로 등이 달려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는데요. 등을 보다 보니 왜 석가탄신일에는 등을 달고 불을 밝히는지 궁금증이 생기게 됩니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궁금하셨을 거 같은데요. 그 이유를 지금 알아볼까요?! 등을 밝히는 이유는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 중 하나로 무지와 번뇌로 가득한 어두운 세계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함과 동시에 깨달음의 세계에 이루고자 함이라 합니다. 또한 등에 불을 밝히는 것을 연등이라 칭합니다. 등에 불을 밝히는 행사인 연등회는 기록상 신라시대 때 처음 등장하였으며 지금까지 1200년 동안 이어오는 오래된 전통문화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답니다! 이번 부처님 오신 날에는 불로 환히 밝혀진 등과 함께 욕심과 집착을 내려 놓아볼까요?
더보기
  • 충북 >보은군

    법주사 팔상전을 도는 속리산 탑돌이
    속리산 탑돌이는 본래 법주사 스님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불교의례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민속놀이가 되었다.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고 경을 읽으며 팔상전을 돌면, 신도들은 스님의 인도에 따라 팔상전을 함께 돈다. 한 바퀴 돌고 나면 탑제를 지낸다. 이 의례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놀이가 시작된다. 보시를 시작으로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방편-원-력-지를 그리며 탑을 돈다.
  • 전남 >함평군

    불교적 속성을 가진 마을신, 미륵신
    미래를 구원해주는 불교의 미륵이 마을신으로 모셔진 경우이다. 불교적 속성을 지닌 미륵이 마을의 신으로 모셔지게 된 연유는 정확하지 않지만 불교적 속성을 지닌 것이 민간에 널리 퍼지게 되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나타난다고 하겠다. 다른 마을신과 달리 특정 사람의 꿈에 나타나 앞날을 예언하는 경우가 많다. 불교에서 지닌 미륵불의 성격이 민간신앙에도 그래도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 경기 >여주시

    비천을 아로새긴 신륵사 보제존자 석등
    나옹화상은 고려 말 선불교를 중흥시킨 대표적 선승으로 고려불교가 조선불교로 이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나옹화상의 석등은 나옹의 불교계 입지를 반영하듯 지금까지 조성한 사례와 달리 빼어난 구조미와 화려한 조각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등이 갖는 무명을 밝히는 상징을 통해 려말선초 불교계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 나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등으로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 강원 >평창군

    오래된 고찰에서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월정사 탑돌이
    월정사 탑돌이는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월정사에서 행해지는 불교의례와 관련된 놀이문화이다. 월정사를 대표하는 탑을 도는 이 놀이는 개회사를 시작으로 삼귀의례-천수경-탑돌이-법계도 돌기-발원문-축원문-반야심경-폐회사 순으로 진행된다. 이 놀이는 많은 사람들이 탑을 돌면서 자신들의 극락왕생을 비롯해 국가의 국태민안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 강원 >평창군

    60여 사찰의 불교문화재를 보존하는 월정사 성보박물관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불교문화재를 '성보'라고 한다. 소중한 성보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월정사에서는 문화유산을 따로 보존하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을 설립하였다.
  • 전국

    종교조직에서 출발해서 마을 공동체로 변모한 향도
    향도는 여러 가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조직된 단체로, 본래는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 불교신앙 활동을 위해 결성된 승속단체였다. 원래 ‘향을 피우는 것을 유지하기 위한 무리’라는 뜻이지만 사회 변동에 따라 그 조직의 성격이 바뀌어 마을 노역, 혼례와 상장례, 마을의 수호신 제사 등을 주관하는 공동체 조직으로 변모하였다.
  • 서울 >강남구

    꺼져가는 조선의 불교를 다시 지피다. 보우
    보우가 살았던 시기는 조선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꽃 피던 시기였다. 당시의 선비들은 성리학 이외의 타학문과 종교에 배타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이로 인해 불교의 입지는 점차 위태로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우는 불교의 부흥을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보우의 활동은 주변 승려들의 시샘과 사림의 반발을 샀고 결국 정치적 후원자였던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 역시 유배 간 제주에서 생을 마쳤다.
  • 서울 >강남구

    불교 최초 근대식 병원 제중원 표석
    불교제중원은 1923년에 준공된 불교 최초의 근대식 병원으로, 현재 경기여고 교정을 가로질러 직진하면 길 끝 한적한 작은 정원에 표석이 무심히 서있다. 오층석탑과 표석, 석등 모두 불교제중원이 세운 것으로, 원래는 덕수궁‘선원전’에 있었다. 조성 시기를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근대 불교 유산이라는 점에서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42호로 지정되었다.
  • 전북 >완주군

    불교와 민속신앙이 혼재된 완주 무등리 입석
    무등리 입석은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제내리 363-2에 위치한다. 무등리 입석은 무등리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으며, 마을주민들은 독선돌이라 부르고 있다. 무등리 입석에는 ‘불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고 글씨가 새겨져 있어 민속신앙과 불교의 성격을 함께 드러내고 있다. 입석에서 1.4km 떨어진 곳에 관음사지가 있는데, 무등리 입석과의 연관성 여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전북 >군산시

    일본 불교와 한국 불교의 인연과 악연-군산 동국사 대웅전
    전북 군산시 동국사의 뿌리는 1909년 문을 연 일본 ‘금강선사’라는 포교당이다. 금강선사는 일본 불교 조동종의 우치다 붓칸이라는 노승이 군산으로 건너와 세웠다. 금강선사는 금강사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3년 식민지에서 농장 경영으로 부를 축적한 신도들의 시주로 절을 지었다. 해방 후 동국사라는 이름으로 개칭했다. 동국사 종각 옆에는 2010년대 들어 평화의 소녀상과 일본 조동종의 참회의 비석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