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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나는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독립운동가가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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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곡성 단군전
    곡성 단군전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당 신태윤이 1914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처음 건립했다. 백당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대에 곡성에 돌아와 오늘날의 단군전 자리에 새롭게 단군 사당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셔다 놓았다. 역사학자였던 백당은 가는 곳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단군전을 지었다.
  • 전북 >정읍시

    ‘2·8 독립선언’ 주역의 고향,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1919년 3·1 운동을 촉발시킨 2·8 독립선언의 주역 중에 나용균이 있다. 동경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나용균은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 야당 정치인을 하며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평생 독립투사 및 정치 지도자로 국가에 공헌한 나용균은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받았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나용균의 생가와 사당이 있다. 사랑채, 문간채, 고방, 사당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사당 건축은 호남의 유명한 목수 중 한 명인 심사일이 담당했다.
  • 전국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류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보달원은 관전현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고, 고령지는 관전현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소고령지는 보달원 고령지에 소속된 자연마을이다.
  • 전국

    윤희순 의사와 조선독립단의 항일독립투쟁
    윤희순의 생각으로 류돈상과 음성국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조선독립단은 학교와 가족부대 등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구국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흥경진공전과 무순공격전 등에 참가하여 일제와 맞서 싸웠다.
  • 전국

    윤희순이 환인현에 세운 학교 노학당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해서 환인현 남괴마자에 1912년 동창학교의 분교로 노학당(老學堂)이란 학교를 세워서 교육하였다. 이곳에서 졸업한 학생 중 50여 명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광주 >북구

    열악한 여건에서 탄생한 지역 교육의 거점 -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은 1957년 지역 건축계를 이끌었던 김한섭의 작품이다. 아직 교육대학이라는 학제가 정착되기 전 광주사범대학의 본관으로 지어졌다. 광주사범대학의 직접적인 전신은 1938년 개교한 광주사범학교이나, 뿌리를 따져보면 1923년 설립된 전라남도 공립 사범학교가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남도와 광주 건축계의 거목으로 일컬어지는 김한섭은 건축자재도,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광주사범의 본관을 지었다. 철근을 조달하기 어려워 2층 건물에 슬래브 지붕을 만들 수 없자, 목구조 위에 경사지붕을 얹었다. 기둥은 벽돌을 쌓아 거푸집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채우는 방식으로 세웠다. 하지만, 주 출입구의 캐노피 현관과 창호와 벽돌 기둥을 리듬감 있게 배치한 수법 등은 건축가의 고뇌가 탄생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광주교육대학교는 원래의 본관을 부속 초등학교 교사 등으로 활용하다가 현재는 호남 최초로 개관한 교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은 2014년 등록문화재 제644로 지정되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전북 >군산시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 발원지에 세워진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군산은 호남지방 최초의 3·1만세운동 발원지이다. 세브란스 의전 학생이었던 김병수가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 장을 전달받아 1919년 3.1 운동 나흘 뒤 3월 5일 군산 구암동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총 28번의 만세운동에 3만 7천여 명이 참여했다. 군산의 3·5만세운동은 만세운동이 한강 이남 일대에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계기이자 도화선이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군산 3·1운동역사공원에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 그날을 재현하고 있다.
  • 서울 >서대문구

    한국영화의 개척자, 춘사 나운규
    나운규(羅雲奎)는 독립운동가이자 영화인이다. 투철한 민족정신과 자유로운 예술관으로 29편의 작품을 남겼고, 그중 15편에서 직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초창기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불후의 명작 <아리랑>을 남겼다.

겨울에 먹으면 더 맛있는 칼국수

따뜻한 곳에 있다가 외출을 하게 되면 찬바람에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게 됩니다. 바람을 쐬다 보니 손과 발도 어느새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데요. 이렇게 몸이 차가워질 때는 따끈한 국물 요리를 먹어주면 몸도 따뜻해지고 체온도 올라가게 되어 추위를 조금이나마 빠르게 없앨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 따끈한 국물 요리를 찾게 되나요? 그렇다면 쫄깃한 면발과 얼큰 담백한 맛을 내는 칼국수로 든든하게 속을 채워보는 건 어떨까요? 특히 겨울에는 동지가 있는 만큼 팥을 이용하여 만드는 팥칼국수를 많은 분들이 즐겨 드시는데요 팥과 국수를 함께 먹으면 비타민B1이 풍부해져 탄수화물 대사는 물론 곡류에 부족한 영양소를 보충해주어 좋답니다~ 술자리가 많을 때는 장칼국수 한 그릇으로 해장해보세요~ 맵고 칼칼한 맛으로 속을 시원하게 풀어준답니다. 단출한 모양새지만 구수한 국물의 맛을 자랑하는 멸치육수 칼국수는 칼국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칼국수 요리로 김치와 함께 먹으면 더욱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추위로 덜덜 떠는 몸, 따뜻한 칼국수 국물로 따뜻하게 만들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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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노원구

    다양한 국수를 골라 먹을 수 있는 공릉동 국수 거리
    보통 전통과 다양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허나 전통의 멸치 국수 가게가 서로 어울러져 경쟁하며, 저마다의 특징과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공릉동 국수거리에 오면 다양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통이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1980년 후반 시작한 「원조 멸치국수」를 시작으로 이 일대에는 많은 국수가게들이 성업하고 있으며, 나름 칼국수나 왕만두, 비빔국수, 전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 강원

    저온숙성 고추장으로 끓여낸 강원도의 맛, 장칼국수
    강원도의 3대 별미로 꼽는 장칼국수는 예로부터 장류가 발달한 강원도 지역의 특색이 녹아있는 투박하면서도 맛있는 음식이다. 보통 국수의 기본은 해물육수인데, 강원도 내륙의 산촌지방에서는 멸치나 다시마를 구하기가 힘들어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육수를 만들고 얼큰하게 끓여낸 것이 바로 장칼국수다. 냄비에 애호박과 양파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여기에 고추장과 면을 풀어 만드는 단순한 음식이지만, 구수하고 오묘한 맛을 낸다. 투박함 속에 녹아 있는 깊은 맛에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가족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자 하던 어머니들의 정성이 담겨있다.
  • 강원 >영월군

    '질릴 정도로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영월 꼴두국수
    꼴두국수는 메밀가루로만 반죽하여 칼국수처럼 썰어 만든 면을 다시마ㆍ멸치ㆍ무로 우려낸 육수에 넣고 끓인 다음 김과 참깨 등의 고명을 얹어 내는 강원도 영월군의 향토음식이다. 국수 이름에는 재미있는 유래가 전하는데 메밀로 만든 국수를 하도 지겹게 먹어 ‘꼴도 보기 싫다’는 뜻에서 ‘꼴두’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 대구 >달성군

    4대째 이어지는 국수 종가, 대구의 '동곡할매손칼국수'
    동곡할매손칼국수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동곡리 장터 마을에서 강신조가 처음 문을 연 가게이다. 1950년 처음 가게를 열었을 때는 국밥집이었고, 칼국수로 업종을 변경한 것은 1975년이다. 동곡할매손칼수는 강신조의 며느리인 석종옥이 가게를 이었고, 지금은 강신조의 증손자인 김동형이 가게를 이어 4대째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국수종가로, 이 지역 칼국수의 원조로, 시장의 상인과 지역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김동형은 명인장을 한국 전통 문화 보존회로부터 받았다.
  • 대구 >중구

    진한 멸칫국물에 끓여낸 대구 칼국수의 대명사, 누른국수
    누른국수는 밀가루에 적당량의 콩가루를 배합한 반죽을 얇고 널찍하게 밀어서 만든 면을 진한 멸칫국물에 야채와 함께 넣어서 끓여낸 대구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경상도 지방에서는 칼국수 반죽을 홍두깨로 눌러서 만든다고 하여 ‘누른국수’라는 명칭이 붙었다.
  • 경기 >화성시

    “갯고랑 넘어야 먹을 수 있는 바지락칼국수, 그 깊은 시원함”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에 속한 작은 섬(면적 0.98㎢)이다. "저비섬", "접비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었다. 북쪽의 자갈밭과 해수욕장을 제외하면 모두 갯벌인 제부도에서는 예전에는 바다에 들어가기만 하면 갯벌에 숨은 바지락을 한 양동이씩 캐왔다. 전국적으로 바지락이 생산되고 있지만, 서해안의 바지락이 제일 맛있다.
  • 충남 >공주시

    예전에 칼국수는 양반이 먹던 고급음식이었다.
    칼국수는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얇게 밀어 펴낸 다음, 겹쳐 말아 가늘게 썰어서 장국에 넣어 끓인 요리이다. 어떠한 재료로 국물 맛을 내느냐에 따라 그 종류도 맛도 달라지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 구하기가 쉽지 않아 밀가루보다는 메밀을 이용하여 만든 국수가 일반적이었다.
  • 충남 >아산시

    도마 위의 무술(武術) 그리고 손칼국수
    충청남도 온양온천역에서 가까운 온양온천 전통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가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출입구 앞에서 흰 수증기를 내뿜고 있는 손칼국수 집이다. 손칼국수는 더울 때는 이열치열(以熱治熱) 열을 식혀주고 엄동설한(嚴冬雪寒)에는 언 몸을 녹여주니 사계절을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 전북 >전주시

    팥죽과 칼국수의 따끈한 만남, 전라북도 팥칼국수
    팥칼국수는 팥물을 끓여 만든 앙금에 밀가루 또는 밀가루에 콩가루를 섞어 반죽한 칼국수를 넣고 끓여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싱건지, 묵은 김치 등과 함께 먹는 전라북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과거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여 어려웠던 시절의 허기를 달래주는 식사였지만 현재는 영양식 또는 별미로 찾는 음식이다.
  • 제주 >제주시

    칼국수가 아닌 ‘칼국’이랍니다, 제주 꿩메밀칼국수
    꿩메밀칼국수는 꿩육수에 메밀반죽을 얇고 넓게 썰어 넣어 만든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벼농사가 적합하지 않은 제주의 풍토를 배경으로 꿩고기 특유의 고소함과 메밀의 조화가 잘 어우러진 음식이다.

입동을 맞이하니 겨울 시작이었다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인 입동부터 겨울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과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 사이에 있으며, 양력으로는 11월 7~8일 무렵, 음력으로는 10월에 해당합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겨울 문화가 펼쳐집니다. 첫 번째 겨울 문화는 김장입니다. 그 다음 해까지 먹을 김치를 담그는 이 시기, 오랜만에 가족들이 모여 소중한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김장 후에 만든 수육과 함께 신선한 김치를 즐기는 것은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다양한 겨울 축제들입니다. 겨울이 시작되면 전국 각지에서 눈꽃 축제, 얼음낚시 축제, 겨울 먹거리 축제, 불빛 축제 등 여러 축제가 열리는데요. 특히 강원도에서는 대관령눈꽃축제, 인제빙어축제, 평창송어축제 등 사람들과 어우러져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들이 열립니다. 겨울 문화를 통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보세요. 주위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추운 겨울도 따스함으로 가득 찬 기분으로 보낼 수 있습니다. 모두 사랑하는 이와 함께 따스한 겨울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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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남구

    ‘광주김치박물관’, 한국 전통 발효 과학의 홍보대사
    광주김치박물관은 ‘김치’를 주제로 광주김치센터 본관 2층에 자리한 박물관이다. 김치의 역사, 김치라는 단어의 변천사, 김치 담는 재료와 과정, 전국의 다양한 김치 종류, 김치 담을 때 필요한 물품, 김치의 효능과 가치 등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2010년에 개관했다. 상설전시실은 전시 내용에 따라 ‘환영의 장’, ‘김치역사의 장’, ‘팔도김치의 장’, ‘김치체험의 장’, ‘김치탐구의 장’,‘발효음식의 장’으로 나뉜다.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를, 새삼 새롭게 보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
  • 강원 >화천군

    한국의 대표적인 겨울축제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
    산천어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로 1급수의 맑은 계곡에서만 서식한다.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의 백미는 산천어 낚시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30cm이상 꽁꽁 언 화천천 위에서 얼음구멍을 뚫고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를 낚는 것이 얼음낚시이다. 산천어 낚시는 1일 최대 8,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얼음낚시’, 1일 최대 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외국인 얼음낚시’, 1일 최대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밤낚시(야간)’가 있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발돋움하며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높아졌고, 눈썰매장, 산타우체국 등 가족들이 즐길거리도 많다.
  • 강원 >태백시

    멋진 눈조각을 감상하며 썰매를 타요! '태백산눈축제'
    태백산눈축제는 매년 1월 말에서 약 9일간 태백산국립공원과 태백시 일원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축제이다. 태백산눈축제는 규모가 큰 눈조각을 만날 수 있고, 얼음썰매, 얼음미끄럼틀, 오궁썰매타기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이글루 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어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축제이다. 태백산 근처에는 황지, 태백석탄박물관, 용연굴(龍淵窟)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 강원 >평창군

    꽁꽁 언 오대천에서 낚시와 송어회를 즐겨봐요 '평창송어축제'
    평창송어축제는 눈과 얼음의 고장인 평창 오대천 일원의 야외에서 즐기는 송어축제이다. 싱싱한 송어도 잡고 얼음 위에서 다양한 놀이를 즐기며 추위를 이길 수 있다. 평창군은 국내 최대의 송어 양식지로, 이곳에서 자란 송어는 식감이 일품이라고 한다. 평창송어축제의 프로그램으로 ‘텐트낚시, 얼음낚시, 놀이시설, 맨손잡기, 먹거리촌, 어린이낚시’ 등이 있는데, 맨손잡기가 평창송어축제의 하이라이트이다.
  • 강원 >평창군

    대관령에서 만나는 눈과 얼음의 낭만, 대관령눈꽃축제
    대관령눈꽃축제는 눈을 소재로한 겨울축제로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에서 1993년 처음 시작되었다. 매년 1월 대관령 고원에서 펼쳐지는 대관령눈꽃축제는 눈꽃과 얼음을 활용하여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한다. 거기에 대관령 만의 겨울생활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겨울축제이며, 자연환경을 활용한 겨울축제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강원 >인제군

    얼음판에 구멍 내어 빙어를 잡아요! 인제빙어축제
    인제빙어축제는 매년 1월~2월에 강원도 인제군 남면 빙어호 일대에서 개최되는 겨울축제이다. 강원도의 겨울은 매우 춥다. 추운 겨울 꽁꽁언 빙판위에서 빙어낚시를 하는 것이다. 얼음이 녹으면 빙판위에서 활동을 할수 없어 날이 추워야만 가능한 겨울축제이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빙판이 쉽게 형성되지 않아 축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 광주 >남구

    우리 김장문화를 널리 알리는 '광주세계김치축제'
    우리나라 김장문화는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광주세계김치축제는 국내 유일의 김치테마 축제로, 김치의 우수성과 우리나라의 다양한 김치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행사이다. 광주세계김치축제는 김치와 관련된 각종 경연대회와 문화행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김치와 김치 재료 등을 살 수 있으며 각종 먹을거리도 맛볼 수 있다.

가을 단풍같은, 10月의 지역인물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단풍을 즐길 수 있는 10월입니다. 10월에 태어난 지역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요? 지역N문화와 함께 알아봅시다.

소설가이자 화가였던 한무숙은 「역사는 흐른다」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며, 김정한은 부산 출신으로 리얼리즘 소설인 대표작 '모래톱 이야기'를 썼습니다. 경기민요 기능 보유자인 묵계월은 소리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어린 시절 양녀로 보내져 소리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인물들도 눈에 띕니다. 조선 건국의 설계자 정도전은 이성계를 초대 국왕으로 추대하며 조선의 기틀을 마련했고, 김약수는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로서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남북통일정부수립을 위해 활동했습니다. 이갑성은 민족대표 33인 중 최연소로, 학생과 독립운동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바보 의사'로 불리던 장기려는 6.25 전쟁 당시 월남 후 부산에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10月의 지역인물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달에는 또 어떤 인물들이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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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동구

    ‘바보 의사’ 장기려
    장기려(張起呂)는 부산에서 의료·사회봉사활동을 한 의사이다. 1911년 평안북도 용천출생으로 1932년 평양의과대학 외과교수, 평양도립병원장 및 김일성종합대학 교수를 지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둘째아들 장가용만을 데리고 월남하여 부산에 정착했다. 서울대학교·부산대학교·가톨릭대학교·부산백병원에서 강의하며 복음병원의 원장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했다. 1974년 ‘한국간연구회’를 창립하고 지속적인 연구를 진행하여 외과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1976년 '청십자사회복지회’를 창설하여 취약계층 구호 활동을 전개하는 등 기독교인으로 평생 무소유를 실천하며 가난한 이웃을 위해 의사로서 소명을 다하고, 1995년 북에 남은 이산가족과 상봉하지 못한 채 사망했다.
  • 부산 >기장군

    초대 제헌의회 부의장 김약수
    김약수는 일제 강점기에는 사회주의자로 국내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해방 후에는 공산당 활동을 하지 않고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남북통일정부수립을 위해 활동한다. 남한단독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제헌의회 초대 국회부의장으로 선출돼 친일파 척결과 자주평화통일을 위해 헌신한다. 그는 조봉암과 함께 국회프락치 사건으로 옥살이를 한다.
  • 충북 >단양군

    조선건국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
    정도전은 고려 후기 개혁적 신진사대부로 활동하였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조선 초대 국왕으로 추대하여 조선 건국을 기획하고 구현했다. 또한 조선왕조의 국가경영을 이론적으로 구체화하고 제도로 정착시킨 조선의 설계자라고도 볼 수 있다. 『조선경국전』을 비롯한 경세론 관련 저작을 남겼다. 1398년(태조 7) 세자책봉 문제로 불거진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희생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인간의 고통과 인간애를 소설에 담은, 한무숙
    한무숙은 문인이자 화가이다. 한무숙의 문학은 여성의로서의 삶, 사랑 등과 함께 한국현대사에 대한 통찰력도 보여준다. 대표작인 '역사는 흐른다'는 1989년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한무숙은 화가로서도 왕성하게 활동하여, 동료 작가의 삽화를 그리거나 서화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 서울 >중구

    경기잡가의 명인 묵계월
    묵계월은 서울 중구 지역문화예술인으로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 기능보유자였다. 중요무형문화재 57호 경기민요에는 12잡가인 유산가, 적벽가, 제비가, 소춘향가, 집장가, 선유가, 출인가, 평양가, 십장가, 방물가, 형장가, 달거리가 포함된다. 이와 함께 『삼설기』전수에도 힘썼다.
  • 서울 >중구

    대한독립을 부르짖은 민족대표, 이갑성
    이갑성(李甲成, 1889~1981년)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노력한 독립운동가다. 민족 최대의 독립운동이었던 3.1 만세운동에서 이갑성은 개신교를 대표하여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였다. 33인 중 최연소자였던 그는 민족적 역량이 하나로 결집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며, 특히 학생 계층의 운동을 지지하고 학생과 독립운동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 이갑성은 광복 이후 정치 일선에서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썼으며, 3.1운동을 비롯한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산 증인으로서 역할을 다했다.
  • 부산 >금정구

    '모래톱이야기'를 쓴 부산의 소설가 김정한
    소설가 김정한은 부산 동래구에서 출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교원동맹을 조직하려다 검거되고, 양산농민봉기사건과 관련하여 투옥되는 등 항일운동을 했고, 동아일보 근무 시절 강제 폐간되자 절필을 하기도 했다. 대표작으로 「사하촌」, 「모래톱이야기」 등이 있으며 현실을 재현한 리얼리즘 소설을 썼다. 「모래톱이야기」는 을숙도로 추정되는 '조마이섬'을 배경으로 섬을 빼앗긴 주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요산문학관이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다, 한글날

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으로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부터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에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 시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많이 발전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물시계도 이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측우기 또한 세종 시기에 발명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농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세종은 법전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요, 악보의 역할을 하는 정간보를 창안하고 국가 의례를 위한 음악인 '여민락'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통해 우수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우리말을 좀 더 사용하는 하루가 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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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아산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충청남도 아산이 본관이다.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을 배우러 명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장영실이 귀국 후 세종은 그를 노비에서 해방시키고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지원과 신뢰하에 본인의 실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장영실은 최고의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와 해시계 앙부일구 등을 만들어내며 조선시대 과학기술 문화의 꽃을 피웠다.
  • 울산 >중구

    최현배를 기리고 한글사랑을 알리는 ‘외솔 한글 한마당’
    ‘외솔 한글 한마당’은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낸 최현배(1894~1970년) 선생을 기리고 한글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치러지는 인물축제이면서 한글 확산 목적축제이다.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는 울산에 있는 외솔 최현배의 기념관과 그 일대이다. 공식행사, 특별행사, 학술경연대회, 공연행사, 전시체험행사로 나누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해서 행해진다.
  • 전북 >정읍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 권승욱
    권승욱은 고창고보 스승인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문에 1년 옥고를 치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938년 6월부터 1957년 한글날까지 『조선말 큰사전』여섯 권이 발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조선어사전 편찬에 헌신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언어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는 한글운동을 창시했던 주시경(周時經)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國語硏究學會)에 기원을 둔 학술운동단체이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조선언문회(1911년), 한글모(1913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에는 조직을 정비하고 1949년 한글학회로 재탄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0~1930년대에는 한글날 제정·기관지 『한글』 창간·조선어강습회 개최 등의 활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및 한글맞춤법을 비롯한 표준말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0월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검거되어 옥중에서 2명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는 등 해방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 강원 >강릉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허균
    허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허균은 명문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다. 늦게 얻은 벼슬길에서 여러 죄명으로 좌천당하고 유배당하다 결국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이다.
  • 전남 >순천시

    국내 최초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발행자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K팝그룹 BTS의 음악에는 때로 국악장단과 ‘얼쑤’, ‘지화자좋다’와 같은 추임새가 어우러진다.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의 접점을 찾아 음악을 들려준다. 이처럼 현대의 팝그룹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발견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들 이전에 일찍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해온 이가 있다. 바로 잡지<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1936~1997년)이다. 그가 발간한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잡지이며 최초의 가로쓰기 잡지였다. <뿌리깊은나무>의 가치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 경남 >의령군

    조선어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이극로
    이극로는 영화 <말모이> 상영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본의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한글 운동을 하였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말과 철자를 통일하는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위장 친일행동을 하고, 이우식과 정세권 등에게 사전 편찬에 후원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는 등 오직 사전편찬만을 위해 헌신했다.
  • 충남 >공주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월인석보 목판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갑사(甲寺)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한글로 발간한 불경이다. 갑사에 소장된 이 목판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월인석보 목판으로서, 25권 중 21권 46매만 남아 있다. 15세기 국어 생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전국

    우리나라에 맞는 최초의 농사책, 『농사직설』
    『농사직설』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초와 변효문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책이다. 농사직설은 우리 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기존의 중국에서 들어온 농서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장조사에 의한 연구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사와 맞는 정보를 담고 있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과 함께하는 여주 한글시장
    여주제일시장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전통 5일장이 열리던 상설시장이다. 이곳이 2016년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한글을 테마로 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매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 때는 상설시장에 덧붙여 가판이 서면서 농수산물과 살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여주한글시장 안에는 세종대왕상, 한글빵 카페, 한글 벽화 등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추석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닌 추석은 순우리말로 한가위라 불리는데요.
오곡이 익는 계절 사이에 있는 명절인 만큼 풍요를 기리는 세시풍속도 행해진답니다.
추석에는 어떤 세시풍속이 행해지는지 알아볼까요?

추석은 농사를 마감한 한가한 시기이자 풍요를 자랑하는 때로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강강술래,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의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했는데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도 해 날이 쌀쌀해져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추석 때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했답니다.그리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기 위해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준비하며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손의 도리를 다합니다.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추석, 맑은 하늘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흥겨운 명절을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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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시

    어깨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는 팽성읍 와야골 마을에서 8월 추석에 수수깡으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놀았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이다. 거북 신앙에서 유래하며, 마을 주민의 안녕과 복을 비는 목적을 지니며 세시놀이로 전승되다가 중단되었으나, 근래에 다시 복원되었다.
  • 충남 >당진시

    볏가릿대를 세워 한 해의 풍년을 비는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
    당진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놀이다. 정월대보름에 대략 8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놀이다. 놀이는 총 여섯마당으로 진행된다. 볏가릿대는 벼, 보리, 조, 팥, 기장 등 오곡을 매달고 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대동샘 옆에 세우고, 2월 초하룻날 허물면서 한 해의 풍년을 점친다. 거북이도 만들어 그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동네를 돈다. 이 놀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고 장수를 기원하는 놀이이다.
  • 경기 >이천시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는 청소년들이 거북이 형상을 뒤집어쓰고 노는 놀이로 추석날 벌인다.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밭농사와 관련이 깊다. 아이들이 남의 집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집주인이 떡과 음식을 내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경북 >청도군

    청도의 색다른 볼거리, 청도소싸움놀이
    청도소싸움은 예전에 머슴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점차 마을간 집단적인 소싸움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는 현대식 소싸움경기장에서 상금을 걸고 체급별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동물 싸움 형태로는 유일하게 전통민속놀이로 인정받아 해마다 봄철에 청도소싸움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 전남 >진도군

    보름달 뜨는 밤 아낙들의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남서쪽 해안지역에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졌던 노래와 무용이 혼합된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다.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마을처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둥글게 그리고 돌며, 노래를 부른다. 이 놀이는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과식하게 되는 추석,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토란국
    추석상에 토란국은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土卵)을 넣고 끓인 국으로 토란탕, 또는 토란곰국이라고도 한다. 토란국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에도 추석음식으로 등장한다. 토란은 위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소화를 돕고 변비예방에 효과가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토란으로 만든 토란국은 다양하고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한 추석에 꼭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 전국

    명절을 즐기던 삼국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신라 유리왕대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새해가 되었을 때 떡을 해먹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해서 명절의 기원은 농경의례에서, 또 명절음식의 기원은 농사지은 곡물의 가공을 통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국기대부터 지내기 시작한 명절도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 전국

    햇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차례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추석차례라고 한다. 본래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차례상이 기제사와 같은 제사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신에 차례상에는 시절음식이 올라간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아직 곡식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벼 한줌을 베어서 밥 대신에 놓기도 했다. 햇곡식을 수확하지 못한 경우에는 추석 이후인 9월 9일(중구)에 차례를 지냈다.
  • 전국

    햇곡식 못 구한 추석에는 9월 9일 중구차례
    추석 무렵에도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경우, 차례를 지내는 날짜를 미루어 9월 9일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이를 중구차례라고 부른다. 어떤 지역에는 추석차례보다 큰 명절이었던 중구차례는 추석이 연휴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중구차례에는 후손이 없이 죽는 사람이나 객사한 사람, 기일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주로 지냈다.
  • 전국

    온가족이 함께 추석을 준비하는 벌초
    조상님의 묘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잘 정리하는 것을 벌초라 부른다. 벌초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묘를 돌보고 살피는 일을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행으로 인식하며, 벌초가 안된 묘는 자손이 없는 묘로 여겨지곤 했다.

가을의 시작, '추분'

'추분(秋分)'은 본격적인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절기입니다. 매년 9월 22~23일 경으로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졌다가 점점 밤의 길이가 길어지는 기점이 되고, 농촌에서는 논밭의 곡식을 거둬들이는 가을걷이를 합니다. 가을의 풍습과 음식 등 이야기를 읽으며, 가을을 맞이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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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이천시

    추수철 맛있는 이천 햅쌀 만나러 오세요! '이천쌀문화축제'
    이천쌀문화축제는 임금님께 쌀을 진상하던 이천에서 개최되는 잔치한마당이다. 이천쌀문화축제는 이천농업인축제로 시작하여 2004년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이천쌀문화축제는 풍년마당, 공연마당, 동화마당, 놀이마당, 농경마당, 햅쌀거리 등 11개의 마당으로 구성되어 우리나라의 농경문화를 알린다. 가마솥밥, 가래떡, 막걸리 등 쌀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고, 햅쌀을 구입할 수 있다
  • 전남 >목포시

    갈치조림과 갈치구이만 있다면 밥 한공기 꿀꺽!
    갈치는 가을을 대표하는 어종이다. 8월부터 12월까지가 갈치의 철이다. 제주도에서 낚시로 잡히는 것은 은갈치, 목포에서 인간망이나 유자망으로 잡히는 갈치는 먹갈치라고 부른다. 대량으로 잡기 때문에 갈치끼리 서로 부딪쳐 은비늘이 벗겨지기 때문이다. 몸통이 크고 굵은 갈치는 구이용으로 쓰고, 그보다 작은 것은 조림을 해 먹는다. 갈치 조림을 할 때는 쌀뜨물을 넣으면 비린내가 적어진다.
  • 전국

    누렇게 익어 고개 숙인 벼베기
    벼가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이면 더 이상 물을 대지 않고 논에 남아 있는 물도 빼서 논을 말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것은 벼의 낱알이 마지막까지 잘 여물고 또 일정 부분은 마르게 하기 위함이다. 가을이 되어 벼가 고개를 숙이면, 곧 벼를 벤다. 벼베기는 수확을 의미하는 것이며, 전통사회에서는 낫을 이용하여 벼룰 거뒀다. 현재는 콤바인으로 수확을 하며, 콤바인이 들어갈 수 없는 곳에서만 낫을 이용하여 수확을 한다.
  • 전남 >영광군

    세계 최대 상사화 군락지에서 열리는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
    전라남도 영광군에 있는 불갑산(516m)은 그리 높지 않은 산임에도 사시사철 아름다운 야생화가 핀다. 상사화는 잎과 꽃이 번갈아 피는 까닭에 서로를 그리워한다는 의미의 전설이 전해지는 꽃이다. 영광군에서는 상사화군락지인 불갑산의 자연환경을 토대로 매년 9월 불갑사 관광지 일원에서 영광불갑산상사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상사화 꽃길을 따라 걷고, 소원등을 달며, 상사화 화관 만들기, 상사화 캐리커처 등의 행사를 진행한다.
  • 충남 >홍성군

    새우를 맛깔나게 즐기는 ‘홍성남당항대하축제’
    충청남도 홍성군 남당항은 천수만의 끝부분에 위치한 청정 어항으로 과거로부터 대하잡이로 유명세를 얻었다. 대하는 1960년대까지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했으나, 그 후 국내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새우는 크기에 따라 대하, 중하, 세하로 구분되는데, 이중 대하는 크기가 크고 맛도 좋아 구워 먹는다. 가을철 대하가 생산되는 철이면 천수만에 남은 몇 안되는 포구인 남당항에서 축제판이 벌어진다. 해마다 9~10월경에 대하도 즐기고, 대하를 잡아 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강원 >양양군

    송이버섯 나는 계절엔 양양으로! '양양송이축제'
    양양송이축제는 양양송이를 주제로 한 체험형 축제이다. 송이버섯은 귀한 식재료라 가격조차 정해지지 않은 '싯가'일 때가 많다. 양양송이축제에서는 버섯채취 체험과 강원도 산간사람들의 전통놀이였던 탁장사대회를 열고, 대중적인 버섯요리와 고급 송이요리를 선보인다. 대자연 속에서 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점에서 양양송이축제는 참살이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강원 >양양군

    하늘이 내리고 신선이 먹는다는 송이버섯 본연의 맛, 송이밥
    송이버섯은 소나무 아래에서만 자라는 특성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성장 조건이 까다로운 송이는 인공재배가 불가능하고 채취 기간도 일 년에 추석을 전후로 20일 정도에 불과한 고가의 식품이다. 강원도 양양은 송이버섯의 전국 최대 산지로 유명하다. 다양한 송이 요리 중에서도 송이밥은 쌀과 찹쌀, 잡곡, 대추, 밤 등을 섞어 밥을 지은 후 송이를 넣고 잠시 뜸을 들여 먹는 음식으로 송이 본연의 향과 식감을 느끼기에 최고의 음식으로 손꼽힌다.

달콤한 뿌리, 지역을 잇는 고구마 문화 이야기

달콤한 뿌리, 지역을 잇는 고구마 문화 이야기 고구마는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오랜 세월 우리 민족의 삶과 문화 속에 스며든 귀한 뿌리작물입니다. 조선시대 일본에서 전해져 흉년의 굶주림을 덜어준 뒤, 각 고장마다 서로 다른 품종과 이야기를 품으며 전해져 왔습니다. 남도의 바람과 흙에서 자란 해남 고구마, 노랗게 익어 단맛을 더한 안면도의 호박고구마, 그리고 원주에서 조엄이 들여와 널리 퍼뜨린 고구마까지 땅과 역사, 풍토에 따라 고구마는 제각기 다른 맛과 전설을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감제떡, 고구마밥, 조침떡 같은 향토 음식으로 우리의 밥상을 풍성하게 채우며, 세대를 이어온 지혜와 따뜻한 공동체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달콤한 뿌리에 담긴 삶의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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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난방도 하고 고구마도 구워 먹던 쇠화로
    쇠화로는 숯불을 담아서 음식을 끓이거나 난방을 보조하는 생활 도구이지만 실제로는 용도가 다양하다. 화로는 과거 불씨가 귀할 때 불씨를 보존하는 역할도 했다. 이른 시기의 쇠화로는 춘천에서 출토되었던 신라의 쇠화로이다. 이 화로는 원통형의 동체에 넓은 원형의 전이 둘러져 있는 형태이다. 화로는 원래 화덕처럼 고정되어 있던 것이 점차 이동이 가능하도록 작은 그릇 형태로 변화했다. 불씨가 집안의 재운을 좌우한다고 믿어서 시어머니는 불씨를 담은 화로를 며느리에게 대대로 물려주는 등 화로는 생활하는 데도 유용하지만 신앙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인식되었다.
  • 전남 >해남군

    땅끝에서 전해오는 향기 해남 고구마
    전라남도 해남군에서는 지역 날씨와 온도, 그리고 해풍 및 토질의 조건에 맞추어서 고구마 생산을 특화하였다. 특히 해남 고구마가 달고 식감이 좋아서 한 번 구매한 사람은 다시 구매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에 해남 고구마는 해남 지역의 특산물로 자리할 수 있었고, 해남군에서는 지리적 표시등록을 해서 고구마를 관리하고 있다. 고구마를 활용한 다양한 먹거리 개발도 해남 고구마가 특산물이 될 수 있는 조건이 되었다.
  • 충남 >태안군

    노란 꿀고구마 ‘안면도 호박고구마’ 먹어 보셨나요?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일원에서는 호박고구마를 생산하고 있다. 호박고구마는 호박처럼 노란색을 띠는 고구마이다. 일교차가 큰 태안군의 안면읍에서 해안가의 물 빠짐이 좋은 황토밭에서 주로 재배한다. 태안농업기술센터에서는 ‘안면종’으로 구분하여 꾸준히 신품종 개량과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고구마는 연작 피해가 크고, 병충해 피해도 커서 재배에 신경을 써야 하는데, 안면도는 해양성 기후이므로 질병에 강하다. 서산에서 안면도로 들어가는 초입에 대규모 호박고구마 판매처가 있다. 겨울에는 토굴에 고구마를 저장했다가 연중 판매하고 있다.
  • 강원 >원주시

    역사로 남은 맛, 원주 조엄 고구마
    원주 고구마는 조선조 영조 때 원주 사람 조엄(1719~1777)이 일본통신사로 다녀오면서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들여온 사실에 바탕하여 유명해졌다. 조엄이 일본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해는 1763년이다. 이를 계기로 따뜻한 고장인 우리나라 남해 지방을 중심으로 고구마가 생산되어 백성들의 식량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 원주에서는 조엄이 원주 출신이라는 사실에 입각하여 고구마를 심었으며, 조엄의 기념관을 만들고, 축제를 여는 등 다각적으로 힘써서 원주 특산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 제주 >제주시

    좁쌀가루에 고구마를 섞어 만드는 조침떡
    조침떡은 좁쌀 가루에 채를 썬 생고구마를 섞어 팥고물을 층층이 안쳐서 시루에 쪄서 만드는 제주도지역의 전통떡이다. 제주도의 지역특산물 중 조와 고구마를 활용한 향토색 짙은 떡이다. 제주도에서는 시루떡을 ‘침떡’이라고 부른다. 1970년대 말 현대식 떡류 가공업이 생겨나면서 쌀로 시루떡을 만들다 보니 좁쌀로 만든 시루떡은 점점 잊혀져 가고 있다.
  • 경남 >창녕군

    고구마를 떡으로 빚어 먹다, 경상남도 감제떡
    감제떡은 썰어서 말린 고구마를 가루로 만든 후에 송편처럼 빚어서 찐 떡으로 경상남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감제’는 고구마의 한자 명칭인 ‘감저(甘藷)’의 별칭으로 경상도와 제주도에서 사용한다. 감제떡은 ‘빼대기떡’이라고도 부르는데, 빼대기는 수분이 많은 고구마를 장기간 보관하기 위하여 썰어서 햇볕에 말린 것을 말한다.
  • 제주 >제주시

    곡식이 귀했던 제주도의 구황음식, 고구마밥
    고구마밥은 좁쌀이나 보리쌀과 같은 잡곡에 고구마를 썰어 넣고 지은 밥으로 제주특별자치도의 향토음식이다. 1765년 무렵 동래부사 강필리가 전라도와 제주에 고구마를 보급하면서 제주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다. 1794년 서영보가 제주도는 고구마농사의 적지이므로 널리 심을 것을 보고하였고 이듬해 제주목사 윤시동이 부임하면서부터 고구마를 밥에 넣어 먹는 조리법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구마밥은 제주방언으로 감저밥, 감제밥 등으로 불린다.
  • 전국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고구마
    열대 아메리카 원산으로 전국에 식용으로 재배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뿌리는 덩이뿌리로 타원형이며, 홍자색이다. 줄기는 땅 위를 기며, 옆으로 뻗는다. 잎은 어긋나며, 밑은 심장형이고 가장자리는 1~3갈래로 갈라진다. 꽃은 7-8월에 피고 잎겨드랑이에서 긴 꽃대가 올라와 끝에 5~6송이씩 모여 달린다. 꽃받침은 5개로 갈라지고 녹색이고 화관은 깔때기 모양이다. 수술은 5개, 암술은 1개이다. 덩이뿌리는 식용, 알코올 제조용으로 쓰며, 잎자루는 식용, 사료용으로 이용한다. 조선시대 영조 39년(1763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조엄趙曮이 대마도에서 들여온 것이 처음이었다.

옛적에 신던 여름 신발, 나막신

'딸깍딸깍'

어? 무슨 소리죠? 아하, 나막신이 바닥과 부딪혀 나는 소리인 것 같아요! 여러분은 나막신을 신어본 적이 있나요? 요즘 신발은 대부분 천과 가죽으로 만들어져서 나막신처럼 나무로 만든 신발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요. 왜냐하면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의 영향으로 나막신은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리다 1940년대 전후로 사라졌거든요. 나막신은 원래 조선시대 말기에 짚신과 함께 대중적으로 신는 신발이었다고 해요. 가죽신이 비싸서, 비오는 날 진흙이 되어버린 땅에서 신기 위해 쓰였다고도 합니다.

나막신에 대해 알아보니 과거에 또 어떤 신발들을 신었는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삼국시대 이전에는 풀과 가죽으로 만든 이(履)와 화(靴)라는 신발을 신었다고 해요.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은 앞코와 뒤축이 장식된 낮은 높이의 신발인 당혜를 신었다고 합니다. 또 미투리라는 질 좋은 짚신이 있었는데요. 이는 삼이나 모시, 노끈을 엮어서 만들었다고 해요. 정말 다양한 신발들이 있었죠?

주룩주룩 비가 오는 날, 혹은 찌는 듯이 더운 여름날 여러분은 어떤 신발을 신으시나요? 신발 젖을 걱정 없는 장화나 통풍이 잘되는 샌들을 많이 신으실 텐데요. 장화와 샌들을 신을 때 과거 조상님들이 신었던 나막신도 한번 떠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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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비오는 날 신는 나막신
    나막신은 비 오는 날 진흙땅에서 신기 위해 한 덩어리의 목재를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발이다. 조선시대에는 신분의 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비가 올 때는 물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에도 신었다. 1910년 이후 고무신이 등장하자 경쟁에서 밀려 1940년대를 전후하여 거의 사라졌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전국

    비 오는날 또는 진 땅에서 신는 신발, 나막신
    나막신은 비오는 날 진 땅에서 신기 위하여 통나무를 파서 깎아 만든 굽이 높은 신이다. 나막신은 나무로 신발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두껍고 큰 목재를 쓸 수밖에 없었다. 조선시대의 경우 은행나무·오동나무·피나무·소나무·오리나무처럼 제작이 쉬운 나무를 파서 신과 굽을 통째로 만들었다. 목재의 겉이 마르지 않도록 기름을 칠하기도 했다. 나막신은 신분상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신었다. 굽이 높아 비에 젖어 질어진 땅을 걸어다니 좋았으나, 무겁고 활동성이 떨어져 먼 길을 가거나 말을 탈 때는 착용하지 않았다. 맑은 날에도 많이 신었으며, 굽이 닳으면 새 굽을 바꿔 달았다고 한다. 나막신은 이처럼 널리 신겨지다가 1910년 이후 등장한 고무신으로 인해 차츰 설 자리를 잃어버려 1940년대를 전후해서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 전국

    구름무늬가 새겨진 신발, 운혜(雲鞋)
    운혜(雲鞋)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자가 신는 신으로 신코[신발 앞쪽의 뾰족한 곳]와 뒤축[발 뒤쪽의 둥그런 부분 중 두둑한 맨 뒤쪽의 가운데]에 다른 색의 무늬를 장식한 신발이다. 신발 바닥에 짐승 털로 만든 조각인 담(毯)을 깔아 따뜻하다는 의미에서 ‘온혜(溫鞋)’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신발의 앞쪽 모양이 제비의 부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제비부리 신’이라고도 불린다. 운혜는 앞코에 죽엽문(竹葉紋)을, 뒤축에는 굼벵이 형태의 장식을 붙여서 마무리한다. 이러한 형태는 개화기 개발된 고무신에 그대로 반영되어 최근까지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운혜는 화려하고 조화로운 색감과 날렵한 곡선 형태가 어우러져 한국적 미의 아름다운 외양을 나타내고 있다.
  • 전국

    조선시대 양반가 부녀자들의 신발, 당혜
    당혜(唐鞋)는 조선시대 부녀자가 신던 가죽신으로, 당초문(唐草文)으로 앞코와 뒤축을 장식한 낮은 높이의 신발이다. 조선시대 여자의 신으로는 당혜⸱온혜(溫鞋) 등이 있었는데, 당혜는 좋은 집안인 양갓집 부녀자가 신었고 온혜는 일반 백성 집안의 부녀자가 신었다. 중국 당나라에서 통일신라시대 무렵 들어와 조선시대 말엽까지 신었으며 ‘당혜’라는 명칭은 당초문(唐草紋) 장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당혜의 일반적인 형태는 남자용 신발보다 앞코가 더 뾰족하게 올라가 있다. 또한 현대의 고무신처럼 신울의 간격이 좁아 오랫동안 신고 걷기는 불편하였다. 그리고 신발의 오른쪽, 왼쪽의 구별이 없었다. 당혜의 신코에서 뒤축으로 이어지는 곡선의 아름다움은 당혜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으로 다른 나라의 신발과는 구별되는 조선시대 특유의 형태적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 서울 >송파구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화혜장
    화혜장은 전통 신발을 만드는 장인이다. 조선시대에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가죽으로 만든 ‘갖신’을 신었다. 이러한 전통 가죽신을 만드는 장인이 ‘화혜장’이다. 전통 신발 제작은 가죽을 주재료로 하여 수십 번의 제작공정을 거쳐 이루어질 만큼 고도의 기술과 숙련된 장인의 솜씨가 요구된다.
  • 전국

    남방계와 북방계의 신발, 이(履)와 화(靴)
    이(履)는 신목이 짧은 신의 총칭으로 신발의 일반적인 의미를 가지며, 남방족계의 신이며, 화(靴)는 장화와 같이 신목이 높이 달린 신으로 방한, 방침에 적당하여 무풍적인 북방계의 신이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두 종류의 신을 혼용하여 착용했기 때문에 먼저 생긴 신의 형태는 알 수 없으나 고유 복식이 북방호복 계통이므로 고유의 신은 목이 긴 화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삼국 이전에는 이미 풀과 가죽을 이용한 신을 신었으며, 부여의 초탑, 마한의 초갹, 초갹답, 초리 같은 다양한 신의 종류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의 신발이 발달하였다.

가을볕 받으며, 누정 산책

우리 지역 누정의 가을 정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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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철야대동계의 중심지, 나주 만호정
    만호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45호이다. 고려 초기에 원일정이 있던 자리에 조선 전기의 무신 서지(徐祉:1468~1537)가 무송정이라는 정자를 창건하였다. 이후에 정자명은 쾌심정으로 고쳐졌으며, 1601년(선조 34)에 임진왜란으로부터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영평정으로 개칭하였다. 1774년(영조 50년)에는 영산강의 조수를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만호정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호정을 중심으로 향약과 동규가 마련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 전남 >담양군

    천상의 화원, 담양 명옥헌
    담양 명옥헌은 배롱나무꽃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명옥헌은 조선 중기에 아들 오이정이 아버지 오희도가 죽은 후 아버지를 기리며 지은 누정이다. 계곡 물소리가 ‘옥구슬이 부딪쳐 깨지는 듯 맑은 소리’ 같다는 의미의 명옥헌은 배롱나무꽃이 필 때쯤이면 천상의 화원이 된다. 담양의 다른 누정과 달리 관련된 문학 작품이 많지 않지만 자연 경관 만으로도 상쇄하고 남음이 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인간과 하늘이 교감하는 작은 우주,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 창건 당시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편전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작은 누각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누각은 기울어지고 너무 좁아서 실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경복궁 수리를 명하면서 경회루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412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경회루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돌기둥만이 남았다. 고종 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 경북 >영주시

    최초의 서원에 지어진, 영주 소수서원 경렴정
    경렴정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에 자리한다. 경렴정은 다른 서원의 누정과 다른 점이 많다. 경렴정은 용도나 양식을 볼 때 누각이 아니라 정자의 형태이고, 다른 서원의 누각과 달리 서원 밖에 세워져 있다. 정자에는 ‘경렴정’이라 쓴 두 개의 편액과 신재 주세붕과 퇴계 이황이 지은 시를 비롯한 여러 현판이 걸려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형제간의 우애가 느껴지는, 안동 백운정
    백운정(白雲亭)은 안동을 가로지르는 반변천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지어졌다. 지금은 임하댐 건설로 임하호가 펼쳐져있다. 흰 구름이 머무는 정자. 강 건너로는 개호송 숲과 의성 김씨 동족마을의 고택이 보이는 수려한 곳이다. 일대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金守一)이 1568년 지은 정자이다. 김수일은 평생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던 인물이다. 백운정은 동생인 학봉 김성일(金誠一)에 의해 더 알려졌다. 김성일은 백운정에 머물며 많은 시를 남겼다. 미수 허목이 전서체로 쓴 ‘백운정(白雲亭)’ 편액이 정자의 기품을 더해준다.
  • 충북 >제천시

    벗들과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청풍 응청각
    청풍 응청각(凝淸閣)은 청풍 관아의 부속 건물로 공무로 내려온 관인이 머물던 객사였다. 응청각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였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응청각도 청풍 관아의 금병헌·한벽루·금남루 건물과 함께 현재의 자리로 사이좋게 이전되었다. 문루인 금남루에서 보면 동헌인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나란히 서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퇴계 이황과 같이 응청각에서 유숙하면 지은 시가 많이 있다.
  • 전남 >순천시

    신선들의 놀이터, 순천 선암사 강선루
    순천 선암사 강선루(降仙樓)는 다른 사찰과 달리 문루 기능이 큰 2층 누각이다. 강선루는 좁은 지류가 흐르는 다리 위에 지은 문루여서 다른 누각과 구조가 많이 다르다. 강선루 1층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맑고 깊은 계곡 옆의 강선루와 보물로 지정된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같이 있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선암사(仙巖寺), 강선루(降仙樓), 승선교(昇仙橋)’ 모두 신선과 연관된 이름이다. 온통 신선들의 놀이터다.
  • 전남 >완도군

    윤선도와 송시열의 엇갈린 운명, 보길도 세연정
    윤선도는 1637년 이후 보길도에 부용동 원림인 ‘세연정 – 낙서재 – 동천석실’을 짓고 말년을 보냈다. 세연정(洗然亭)은 두 곳의 인공 연못 사이에 지은 정자이다. 사람의 손이 더해져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곳이 세연정이다. 대청마루 기둥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멋진 액자 속의 명화이다. 보길도에는 남인 윤선도에게 시련을 안겨주었던 서인 송시열의 흔적이 함께 남아있다. 송시열이 제주도로 유배가다 풍랑으로 도착한 곳이 바로 보길도였다. 그는 보길도 끝 암벽에 죽음을 예감하듯 신세를 한탄하는 시를 새겨놓고 그해 죽었다. 남인과 서인의 영수로 대결하던 두 거물. 역사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풍요와 나눔의 날, 백중 이야기

머슴의 날이라 불리던 백중날을 아시나요? 백중날(百中, 음력 7월 15일)은 예로부터 머슴과 농민들의 명절로 불리며, 풍년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공동체가 화합하는 특별한 날이었습니다. 이날에는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머슴들에게 새 옷과 음식, 술을 대접하며 한 해 동안의 땀 흘린 노고를 위로했습니다. 또한 농악놀이와 씨름, 마을 잔치가 열려 풍요와 즐거움이 가득한 축제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백중은 단순한 세시풍속을 넘어 노동의 가치와 보답, 나눔의 정신을 상징하는 날로서 오늘날에도 공동체 문화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백중날에 담긴 풍성한 이야기와 세시풍속을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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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밀양시

    백중 무렵 열리는 시장과 밀양백중놀이
    음력 7월 15일을 백중이라고 한다. 백중 무렵이 되면 해당 지역의 소재지에서 백중장이 열렸다. 백중장이 열리면 인근 지역에서 많은 장사꾼들이 모여들어 난장이 펼쳐졌다. 경상남도 밀양군에서는 ‘백중놀이’, ‘호미씻기’, ‘꼼배기참놀이’ 등으로 불리는 농군들(머슴들)만의 놀이를 한다.
  • 충남 >계룡시

    김국광(金國光)을 기리기 위한 연산 백중놀이
    연산 백중놀이는 조선 시대 좌의정을 지낸 김국광을 기리기 위해 시작됐다. 두레패별로 독립적으로 벌이는 다른 지역의 백중놀이와 달리, 이곳에서는 왕대리 마을을 중심으로 열두 두레가 함께 하는 합두레먹이로 진행된다.
  • 전국

    차례나 동제를 지내며 노는 명절 백중놀이
    백중놀이는 음력 7월 15일에 여름철 농사일을 정리하면서 햇곡식과 햇과일로 조상에 천신하고 농사짓는 모든 사람들이 하루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을 말한다. 백중은 백종, 중원, 망혼일, 우란분절 등으로 불린다. 또한 백가지 곡식의 씨앗이라는 뜻으로 이 무렵에는 여러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오는 시기임을 말한다.
  • 경남 >밀양시

    '고된 일을 마쳤으니, 어디 한 번 놀아보세' 밀양 백중놀이
    밀양 백중놀이는 논농사에서 가장 힘든 작업인 김매기를 끝낸 후 벌이는 유희다. '머슴날'이라고도 불린다. 술과 음식을 풍족히 먹고 풍물을 앞세워 신나게 즐기는데, 이때 놀이에 필요한 경비는 양반과 부농 계층이 후원한다. 소작인들의 울분을 달래고 사회결속을 다지기 위함이다. 불교 문화인 백중과 김매기 시기가 겹치는 바람에 백중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경남 >밀양시

    밀양 백중놀이의 신선이 된 하보경
    무형문화재 68호 밀양 백중놀이의 백미인 ‘범부춤’과 ‘양반춤’의 예능보유자였던 명인 하보경은 일찍이 굿판과 농악판의 풍물소리를 듣고 자라며 춤사위를 익혔고, 밀양 읍내 놀이계인 ‘보본계(報本契)’에 입단해 우리 춤의 장인으로 이력을 쌓았다. 나이가 들수록 그의 춤은 삶에서 우러난 소박함과 흥겨움이 어우러진 무아지경 ‘신선’으로 명인을 변모시켰다.
  • 서울 >송파구

    "얼쑤~" 백중들의 신명나는 놀이판, 송파백중놀이
    송파백중놀이는 한강 유역에서 큰 장시로 유명한 송파장을 중심으로 백중날에 벌였던 각종 연희와 놀이 중심의 세시풍속을 말한다. 백중은 농촌에서 논매기의 세벌매기가 끝나는 시기로 실질적으로 농사가 마무리되어, 이 날은 머슴을 위하는 날이다. 백중날에 특별히 난장이 서는데, 송파에서는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각종 전문적 놀이패를 불러 큰 놀이판을 벌였다.
  • 충북 >괴산군

    김매기가 끝난 백중날 상머슴을 뽑는 괴산 백중놀이
    괴산백중놀이는 음력 7월 15일 백중날에 행해지는 놀이로, 고된 김매기가 끝난 뒤에 농민들이 하루 쉬면서 휴식을 취하고 노는 날이다. 백중날, 머슴들이 멍석 등을 가지고 집집마다 돌면서 놀이에 필요한 술과 음식, 옷, 돈 등을 받아온다. 이것들이 준비되면 김매기에 참여했던 머슴 가운데서 가장 일을 잘한 사람을 상머슴으로 선정한 뒤, 얼굴에 분칠하고 관을 만들어 씌우고, 도롱이를 입혀 소에 태우고 돌아다닌다. 오늘날 괴산백중놀이는 지역의 축제와 결합하여 진행되고 있다.

애틋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칠월칠석

칠월칠석은 까치와 까마귀가 만들어준 오작교 위에서 견우와 직녀가 1년에 딱 한 번 만나는 날로 칠석날로도 불리는데요. 칠월칠석에는 다양한 풍습이 행해집니다.

칠성단에 참기름으로 불을 켜 자손들의 장수를 빌기도 하고, 여인들은 바느질과 길쌈을 잘하게 해달라는 걸교의식을 행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신이 내려오는 날이라고 하여 아침 일찍 논에는 나가지도 않았답니다~ 신이 내려오는 날 인간이 돌아다니면 수확량이 떨어질 거라 믿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칠월칠석에 내리는 비는 기쁨의 눈물과 슬픔의 눈물로 나뉘는데요! 칠석날에는 만남의 기쁨으로 인한 눈물이고 다음날 내리는 비는 헤어져야 하는 슬픔으로 흘리는 눈물이라고 합니다.

다가올 8월 29일(음력 7월 7일) 칠석날에는 견우와 직녀의 애달픈 사랑 설화를 떠올리며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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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진주시

    이루지 못한 사랑의 한이 서린 용다리
    옛날 진주 군수의 둘째 딸이 시집을 갔다가 얼마 후 남편이 죽어 다시 친정으로 돌아왔다. 군수의 집 머슴 돌쇠는 둘째 딸을 사랑하게 되었고 둘째 딸도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돌쇠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둘은 신분의 차이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고, 군수의 딸이 상사병을 앓다 죽었다. 그 소식에 돌쇠는 그만 미쳐버려 용다리 근처 나무에 목을 매고 죽었다. 그뒤로 용다리에 개구리 떼가 생겨 울기 시작했다. 부부가 용다리를 건너면 개구리 떼가 잠잠해졌고, 상사병 걸린 사람이 용다리를 두 번 왕복하면 병이 나았다고 한다.
  • 충남 >보령시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탄생시킨 독수리바위
    충청남도 보령시 빙섬에 삼만이라는 총각이 부모님을 여의고 배를 빌려서 고기잡이를 하며 살았다. 어느 날 밤 배 주인의 딸이 찾아와 자신이 곧 시집을 가는데 가기 싫다면서 삼만이와 하룻밤을 보낸다. 그 후로 여인과 삼만이는 자주 만남을 가지게 되었으나 배 주인이 이 사실을 알고 삼만이를 배에 실어 바다에 버렸다. 열흘 뒤 삼만이가 탄 배가 갯벌에 멈추었는데 삼만이는 이미 죽어 있었다. 천둥번개가 치더니 배가 갯벌로 들어가고 독수리 모양의 바위가 솟아올랐다. 얼마 후 여인도 혼인을 하였으나 이틀 만에 죽고 말았다.
  • 충북 >옥천군

    웅인과 계화 공주의 비극적 사랑이 담긴 문바위
    충청북도 옥천군 청상면 한곡리에는 문같이 생긴 문바위가 있다. 옛날 옥황상제의 딸 계화 공주와 재상의 아들인 웅인은 서로 사랑했으나 권력 욕심이 있던 악독한 대신이 자기 아들과 계화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재상과 웅인을 모함하였고,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 살던 웅인은 괴물을 무찌를 결심하고, 옥황상제의 금기를 어긴다. 웅인은 괴물을 죽였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바위가 되고, 웅인을 보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계화 공주 역시 그의 곁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강원 >강릉시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이 깃든 매바위와 거북바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는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매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착한 부부는 거북이를 구해주었고, 남편은 죽을 위기에서 용왕에게 구조된다. 용궁에서 지내던 남편은 아내가 그리워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매바위가 되고 남편 또한 거북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경남 >하동군

    금오산을 붉게 물들인 별님과 달님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
    경상남도 하동군에는 금오산이 있다. 금오산 일대에는 금오산에 얽힌 별님과 달님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별님과 달님의 사랑을 질투한 지신이 잡신을 시켜 별님을 죽이고, 그 모습을 본 달님도 자결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주인공인 별님과 달님이 흘린 피가 물들어 금오산의 철쭉과 붉은 바위가 생기게 되었다는 내력을 밝히고 있다.
  • 경북 >경주시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에는 영지가 있다. 이 저수지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아사달은 불국사의 석가탑을 만들기 위해 신라로 오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불국사에 온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는 금기로 인해 아사녀는 영지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그리움에 지쳐 영지에 몸을 던진다. 아사달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불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 충남 >금산군

    견우와 직녀
    ‘아우 직녀 전설’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우 직녀는 옛날에 뱃사공들이 나무통을 째매서 타고 가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이 이야기는 이미 널리 알려진 ‘견우와 직녀’이야기에서 견우와 직녀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별들이 함께 만나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