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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포스트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기획전을 통해 여러 가지 지역 문화콘텐츠들을 한 곳에 모아 보여줍니다.

단오,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설날, 추석, 단오를 삼대 명절로 삼았고, 이중에서도 여름이 시작되는 5월 5일 단오를 가장 양기 충만한 날로 생각하였습니다.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단오 행사가 열릴 예정입니다. 우리 지역의 단오 행사에 참여해서 함께 여름맞이 준비를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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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 강원 >강릉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강릉단오제의 제의 대상은 주신인 대관령국사서낭과 그의 부인인 대관령국사여서낭이다.강릉단오제는 음력 5월 5일인 단오와 관련이 있긴 하나 본격적인 제의와 준비는 훨씬 일찍부터 시작된다.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50여 일 동안 진행되는 큰 규모의 제의다. 음력 4월 중순쯤에 열리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는 무척 중요한데 대관령에서 산신을 위한 제의를 한 다음 신목(神木)과 서낭을 마을로 모셔온다.강릉단오제의 핵심인 단오굿은 남대천 근처에 마련된 신당에서 진행된다.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지는데 단오굿을 보기 위해 강릉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이 구경을 올 정도로 명성이 높다. 강릉단오제에는 단오굿 이외에 관노가면극, 그네뛰기 등의 행사가 함께 열린다. 주로 단오와 관련된 것들이다. 특히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 서울 >종로구

    많은 잔가시를 발라낸 준치 살로 만든 굴림만두, 단오에 먹는 준치만두

    진어(眞魚), 시어(鰣魚), 준치어(俊致魚), 준어(俊魚) 등으로 불리는 준치는 맛도 좋지만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준치만두는 잔가시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발라낸 준치 살과 쇠고기를 넣고 완자 형태로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묻혀 찌는 만두이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빚는 일반 만두와는 다른 형태로 일종의 굴림만두이다. 준치만두는 단오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준치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 경기 >하남시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고양골 단오제와 산신제

    경기도 하남시 하산곡동 고양골에서는 2가지 마을제사가 있다. 매년 5월 단오날 행하는 단오제와 2년에 한 번씩 검단산에서 행하는 검단산신제가 그것이다. 단오제는 길가에 있는 350여년 정도된 느티나무에서 행하고, 검단산산신제는 마을 뒤쪽에 있는 검단산에 있는 산치성터에서 지낸다.

  • 강원 >태백시

    탄광촌 주민들이 지내는 단오산신제

    태백지역에는 단옷날에 마을단위로 산신제, 성황제(서낭제)를 지내는 곳이 많다. 주민들은 성황당의 단오고사를 통해 집안의 평안과 오곡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또 각 집안의 가족과 자손이 무탈하기를 빌고 가축 또한 번성 하고 마을이 평화롭기를 빈다. 따라서 단오고사는 기복신앙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제의를 진행하는 제관과 제주로 선정되면 몸을 정갈하게 하고 마음을 바르게 해야 한다. 

  • 강원 >태백시

    강릉단오보다 컸다는 함태단오제

    단옷날이 되면 태백시 관내의 각 광업소가 주관하여 마을마다 단오축제를 열었다. 장성동 지역에서는 장성광업소를 중심으로 단오 행사가 열렸고, 소도동 지역에서는 함태광업소를 중심으로 단오 행사가 열렸다. 각 광업소에서는 단옷날 종업원에게 특별 배급을 지급할 만큼 각별한 명절로 여겼고 공휴와 함께 성대한 단오 행사를 열었다. 특히 소도지역에서 사나흘씩 진행하던 단오는 ‘함태단오’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성대한 축제였다.

한국의 서원

2019년 5월,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의 서원 9곳'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였습니다. 성리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9개 서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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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 경북 >안동시

    이황의 도산서당을 모체로 한 도산서원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이듬해인 1546년 이황은 병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한다. 이때부터 호를 물러날 퇴, 시냇물 계, 퇴계(退溪)라 하고 고향에서 살았다. 토계 인근에 정자와 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도덕과 예를 실천하고 가르치며 군자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도산서원은 이런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던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서원이었다.

  • 대구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 경남 >함양군

    함양의 유림이 뜻을 모아 세운 남계서원

    함양은 일두 정여창의 고향으로, 남계서원은 고을 사림들이 정여창을 흠모하여 세운 서원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자 글과 예를 숭상하는 풍속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들은 남계서원을 정몽주를 배향하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안향을 기리는 소수서원과 견줄 만큼 정여창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경북 >영주시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골에 자리한 소수서원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에 주세붕이 붙인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백운동(白雲洞)은 ‘흰 구름에 쌓인 골짜기’라는 뜻으로 서원의 입지와 관련이 깊다. 서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의 산자락 위로 흰 구름이 가득하고 옆으로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죽계천이 연못을 이루다 밑으로 흘러갔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죽계별곡」은 이곳 죽계천을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구름에 감싸인 소백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죽계천의 경치를 보면서 주세붕은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떠올렸고 이곳에 서원을 세워야겠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독락당에 세워진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안강은 이언적의 고향이다. 이언적은 을사사화로 유배 간 강계에서 죽음을 맞았고, 19년이 지난 후에 마을의 사림들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 그가 거처하던 독락당 근처에 덕행과 학업을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16세기 말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과 소장 유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어느덧 어른, 성년의 날

매년 5월 셋째 월요일은 만 19세가 된 젊은이들이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고 격려하는 날인 '성년의 날'입니다. 관혼상제의 '관'에 해당하는 성년례는 사대부가와 서민들의 방식에 차이가 있었는데요, 서민들은 대체로 지역이나 마을 단위로 사람들이 모여 힘겨루기 등을 하며 어른이 되었음을 인정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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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이 되어 내는 음식과 술, 진세턱

    일반적으로 16~20세가 된 사람들이 노동력을 인정받기 위해 마을에 있는 들돌을 들어올린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 명의 어른으로 인정을 받고 축하를 받으면 음식과 술을 대접한다. 이를 진세턱이라고 한다. 충청도에서는 꽁배술이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바쁜 농사일이 마무리되는 7월 칠석이나 백중에 이루어진다. 주로 논농사가 많이 이루어지는 남부지역에서 이루어졌다.

  • 충남 >논산시

    논산시 들돌들기

    들돌들기는 마을의 남자들이 명절에 즐기는 놀이이자 통과의례이다. 어린 머슴들이나 두레의 막내인 소동들이 한 명의 어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과정이었다. 들돌은 일반적으로 마을 내에 당산나무 아래나 장자집 마당등 1, 2개 많으면 7개까지 있으며, 평상시에도 힘을 기르기 위해 많이 이용한다. 충청남도 논산시에서는 백중날 이루어지며, 평야를 끼고 있는 지역에서 널리 행해진다. 일반적으로는 사용되는 들돌은 완전한 원형이나 타원형으로 무게는 쌀 한 가마니 정도이다.

  • 경기 >고양시

    상민의 성년식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에 따라 또 시대에 따라 성년식의 시련은 다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줄 새끼에 매달려야 했고, 양주 지방에서는 백운대 정상에 있는 낭떠러지를 뛰어 건너야 했다. 그리고 호남 지방에서는 무거운 들돌을 들어야 했고, 개성 지방에서는 바위를 안고 혹은 등지고 돌아야만 했다. 이러한 행위들은 성인이 갖추어야 할 힘과 담력, 용기와 인내 등을 시험한 것이다. 이러한 시련을 통과함으로써 성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신이 성인의 자질을 갖고 있음을 증명해야 했던 것이다.

  • 전남 >화순군

    사대부가의 관례

    관례는 아이가 어른이 되었음을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의례이다. 우리나라의 관례는 고려 말에 『주자가례』가 유입되면서 사대부 계층에 정착되었다. 조선 시대 사대부 집안에서는 『주자가례』 와 같은 예서에 따라 관례를 치렀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에서 행해진 관례의 절차는대체로 "택일- 준비-시가례-재가례-삼가례-초례-자관자례-현우사당" 순으로 진행되었다.

  • 경남 >진주시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 의식인 자관자례

    자관자례는 관례와 계례에서 마지막 단계에서 행해졌다. 주례자인 빈이 관자 혹은 계자에게 주는 자는 당사자들에게 그 자에 어울리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자관자례는 성인이 되는 시점에 당사자들에게 새로운 호칭을 부여함으로써 기성 사회로의 통합을 의미하는 통합의례가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강원 >홍천군

    여성의 성인의식 계례

    조선 시대에는 『가례(家禮)』의 영향으로 여자 나이 15세를 전후하여 쪽을 짓고 비녀를 꽂는 계례를 행했다. 계례는 혼인이 정해지면 하는 것이었으나, 만약 15세가 되어도 시집을 가지 못하면 자기 집안의 제부 중에서 한 사람이 계례를 거행했다. 비록 계례를 행했더라도 결혼을 하지 못한 경우에는 처녀 때의 귀밑머리로 되돌아갔다. 실제 계례는 남자의 관례만큼 보편화되지 못한 듯하며, 계례는 혼례 속에 흡수되어 실행된 것으로 보인다.

  • 제주 >제주시

    남자들의 힘겨루기, 제주도 뜽돌들기

    제주도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이다. 뜽돌들기는 내륙에서의 들돌들기와 유사한 형식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년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측된다. 남자들의 힘을 겨루는 놀이로 규칙에 따라 돌을 어떻게 얼마나 들고 있냐에 따라 승부가 결정된다. 현재는 이러한 놀이가 전승되는 마을은 없으나 체육대회나 축제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 놀이다.

  • 어른이 되는 날, 진새례

    진새례는 농가에서의 성년식은 일반적으로 15~20세의 청년들이 한명의 일꾼으로써 인정받는 자리이다. 일반적으로는 힘을 측정하는 들돌들기가 이루어진다. 진새례를 치루는 집안에서는 술과 음식을 준비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한다. 마을 사람들은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해준다. 또한, 유사한 이름이지만 다른 풍습으로 어린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기원하는 진새 잔치가 있다.

  • 서울 >종로구

    조선 왕실의 관례

    조선시대 왕세자의 관례 의식은 보통 인정전에서 왕이 빈찬에게 관례를 행할 것을 명령하면 시작된다. 동궁 정당(경현당, 시민당 등)에서 관례가 거행된 후 다시 인정전에서 하례를 받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거행된 왕세자의 관례 절차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빈찬 명령-초가-재가-삼가-초례-명자례-회빈객-조알" 순으로 거행되었다.

서울 이야기와 함께하는 봄 나들이

서울은 흔히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현대도시라고 합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고층빌딩 숲으로 둘러 싸여있지만, 그 안에는 600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로 겪은 오랜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조선시대의 궁궐,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탑골공원의 팔각정뿐만 아니라, '고향의 봄'을 작곡한 홍난파 가옥 등 예술가의 공간도 서울 곳곳에 남아있습니다. 용산 해방촌은 6·25전쟁 당시, 월남한 실향민과 해외에서 돌아온 교포들의 임시거주지였다가 미국 군인들의 거주지로 바뀌었고, 지금은 젊은이들이 모여 북적거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봄, 내가 몰랐던 서울 여행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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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용산구

    용산해방촌

    서울특별시 용산동1·2가동 일명 ‘해방촌’이라 부르는데 8.15 해방과 더불어 해외에서 돌아온 동포들과 6·25전쟁으로 온 피난민들이 이 부근 산자락에 임시거주지를 마련하고 많이 살게 된데서 유래된 명칭이다.

  • 서울 >은평구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580호)

    서울시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연대를 알 수 있는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목조 불상으로 1239년(고종26)에 제작된 고려시대 불상이다. 이 불상 내에서는 36종 84점의 유물이 대거 발견되어 에 복장품 연구에도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불상은 나무로 만든 불상 가운데 최고(最古)의 불상이며, 나무로 만들어진 불상의 계보를 계승한 고려시대 목조 불상이다.

  •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배오개장을 계승한 광장시장

    '광장시장'은 1905년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조선후기 종로 지역에 있던 배오개장의 전통을 계승한 시장이다. 주요품목은 직물과 한복 등이며, 먹거리와 구제 상품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하루에 6만 5천여 명이 방문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종합 시장이다.

  • 서울 >중구

    의류 전문 도매시장 평화시장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평화시장은 대한민국 최대의 의류 전문 도매시장이다. 원래 한국전쟁 때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형성되었으며, 1958년 대화재 이후 1961년 3층 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의류 전문 도매시장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 서울 >동대문구

    한약재의 집산지 경동시장

    서울특별시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에는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설시장인 '경동시장'이 있다. 원래 농산물과 임산물을 판매했지만, 1960년대 후반 을지로와 종로에 있던 상인들이 이주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약재시장이 되었다. 또한 경동시장은 '서울약령시 한방축제 개최'를 통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2017년 10월 서울한방진흥센터를 개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 서울 >종로구

    수많은 역사소설의 산실, 서울 평창동 박종화 가옥

    한국 근대문학사에서 역사소설 부문을 개척한 월탄 박종화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은 작가다. 월탄이 1920년 발간한 『장미촌』은 한국 최초의 시지[詩誌]이며, 23세[1923년]에 발표한 「목 매이는 여자」는 우리 현대문학사상 최초의 역사소설이다. 월탄은 3권의 시집, 17편의 장편소설, 12편의 단편소설, 2권의 수필과 평론집을 쓸 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그의 작품들은 다수가 영화나 TV 드라마로 만들어져 대중에게 익숙하다. 서울 평창동 박종화 가옥에서 그는 『여인천하』, 『세종대왕』, 『양녕대군』, 『임진왜란』, 『월탄 삼국지』 등의 작품을 썼다.

  • 서울 >성북구

    해방정국 정치1번가, 돈암장

    서울 돈암장은 해방을 맞아 고국으로 돌아온 이승만 전 대통령이 2년간 머문 곳이다. 미군정기의 혼란한 정국 속에서 이승만은 이곳에 머물며 향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을 펼쳤다. 우남 이승만은 당시 ‘최고지도자’로 추앙받는 정치지도자였으므로 많은 정객이 그와 제휴하기 위해 돈암장을 찾았다. 또한, 우익이 주도했던 신탁통치반대운동도 돈암장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돈암장은 대목장 배희한이 지은 한옥인데 전통적 궁궐기법이라는 평가와 일본풍이 가미되었다는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서울 >종로구

    한국 최초 서양화가가 후학 가르치던 곳, 서울 원서동 고희동 가옥

    한옥들이 좁은 골목을 끼고 오목조목 붙어 앉은 서울 북촌 원서동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이 41년 간 후학들을 가르치면서 창작 활동을 했던 집도 있다. 고희동은 우리나라 신미술 운동의 기수로서 서양화로 삽화를 처음 그린 근대화단의 선구자이다. 하지만 세상에 나온 고희동의 유화작품은 단 3점에 불과하다. 하나는 일본 유학시절에 그린 자화상이고, 나머지 둘은 며느리가 원서동 가옥에서 옛날 짐보따리를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해 세상에 나온 또 다른 자화상들이다. 고희동 가옥은 1918년 창덕궁 후원이 바라보이는 곳에 터를 잡아 지어졌다.

  • 서울 >도봉구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시기 등 우리 민족이 위기와 고난에 처해 귀중한 문화유산을 지키기 어려웠을 때 전 재산을 털어 문화재를 지켰다. 간송이 지켜낸 문화유산에는 훈민정음 해례본, 고려청자, 추사 김정희의 글씨, 겸재 정선·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이 포함되어 있다. 전형필은 한국 최초의 근대적 사립박물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만들어 어렵게 모은 문화재를 간직했다. 등록문화재 제 521호인 서울 방학동 전형필 가옥은 그의 민족혼이 배어있는 집이다. 간송이 생전에 머물렀던 가옥으로는 현재 이곳이 유일하다.

  • 서울 >강서구

    김포평야의 첫 근대식 설비,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구 양천 수리조합은 1928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양천구 마곡동에 배수펌프장을 지었다. 1923년 설립된 양천 수리조합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로 큰 농경지 피해를 보았기 때문에 김포평야의 물을 한강으로 내보내는 시설이 절실했다. 당시 양천 수리조합의 몽리구역에 속했던 595정보는 모두 경기도 김포시에 소속된, 김포평야의 농경지였다. 배수펌프장은 근대의 동력인 전동기로 물을 퍼 흘려보내는 배수로와 배수갑문을 갖추었다. 배수갑문은 홍수 시 문을 닫아 한강이 역류하지 못하게 했다. 4m 높이의 콘크리트 기단 위에 목조로 지어진 배수장 건물은 김포평야가 도시화로 인해 사라진 현재도 근대 농업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봄을 담다.

살랑이는 바람에 따스함이 느껴지는 봄.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시기인 경칩을 지나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온다는 삼짇날에는 봄에 피는 진달래로 화전을 해먹고, 향긋한 쑥이 들어간 쑥국을 먹으며 건강을 기원하였다. 봄 제철 음식을 먹고 봄을 담은 곳의 이야기를 보고 즐기며,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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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창원시

    ‘울긋불긋 꽃대궐’,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린 동네 /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고향의 봄> 노랫말을 쓴 아동 문학가 이원수가 울긋불긋 꽃 대궐이라고 추억한 동네가 바로 김종영의 생가가 있는 경상남도 창원시 소답동이다. 김종영은 우리나라 현대 조각의 개척자이자 미술교육의 선구자이다. 1940년에 증개축한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는 꽃이 많아서 마을 사람들이 ‘소답 꽃집’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원수는 김종영의 집에 자주 가서 놀았다. 김종영 생가는 원래 김종영의 증조부가 지은 집으로, 안채·아래채·대문채의 본가와 정자·사미루의 별채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목조 근대 한옥이다.

  • 서울 >종로구

    “나의 살던 고향은…”, 서울 홍파동 홍난파 가옥

    ‘고향의 봄’, ‘봉선화’의 작곡가 홍난파는 한국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실내악단 창시자, 최초의 음악평론가, 최초의 음악잡지 발행인이었다. 한국 근대음악의 선구자인 홍난파의 집이 서울 홍파동 경희궁 뒤편 언덕에 있다. 홍난파는 홍파동 집에서 자신의 대표곡 가운데 상당수 작품을 작곡했다. 홍파동 집은 1930년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로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다. 홍난파는 1934년에 가수 이대형과 재혼하며 결혼생활을 위해 홍파동 집을 마련했다고 한다. 홍난파는 1944년 작고할 때까지 여기서 살았다.

  • 서울 >종로구

    봄을 알리고 단비를 기원하는, 창덕궁 보춘정

    보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창덕궁 내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이다. 보춘정 건물의 다른 면에 희우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누각은 봄이 옴을 알리고, 가뭄 때 단비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눈으로 보는 꽃의 아름다움이 화려한 음식으로, 화전(花煎)

    화전은 잘 반죽한 찹쌀가루를 기름 두른 번철에 조그맣고 둥글 넓적하게 부쳐 계절을 대표하는 꽃을 더한 떡이다. 진달래꽃, 장미,국화 등을 고명처럼 얹는다. 다른 말로 꽃지지미 또는 꽃부꾸미라고 한다.

  • 전남 >영광군

    노비를 위해 만든 특별한 음식, 영광 모싯잎송편

    모싯잎송편은 뜨거운 물에 데친 모시 잎을 곱게 갈아서 물에 불린 쌀과 섞어 만든 떡으로 전라남도 영광군의 향토음식이다. 조선 시대에는 음력 2월 초하루를 ‘머슴날’이라 하여 봄 농사가 시작되기 전 주인이 노비들을 격려하고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술과 음식을 베풀었다. 이날 노비들에게 먹인 떡이라 하여 ‘노비송편’으로도 불린다.

  • 제주 >제주시

    봄에 담가 먹는 제주도 전통 김치, 동지김치

    동지김치는 무나 배추의 꽃대 ‘동지’를 소금에 절인 다음 고춧가루와 마늘, 파 등으로 버무려 저장 발효시킨 음식이다. 제주의 봄을 알려주는 동지김치는 독특한 제주도의 음식문화를 엿볼 수 있는 제주도 고유의 향토음식이다.

  • 충북 >충주시

    이름처럼 맑고 깨끗한 전통주, 청명주

    청명주는 충주 김해 김씨 문중에서 빚어왔던 가양주의 일종으로, 지금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위치한 중원당 청명주 양조장에서 생산한다. 24절기 중 하나인 청명에 술을 빚거나 마셔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청명주는 알코올 도수 17도의 맑고 부드러운 술로 조선시대부터 유명한 전통주 중 하나이다. 1993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 경남 >거제시

    바다의 맛과 향을 비벼보자, 거제도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살짝 얼린 멍게젓갈에 밥과 함께 김 가루, 참기름, 야채 등을 넣어 비빈 요리로 경상남도 거제도의 향토음식이다. 주재료인 멍게젓은 멍게의 살로만 만드는데, 멍게 특유의 향과 단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는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첨가하지 않는다. 멍게젓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기도 하고 고추장이 멍게 특유의 향과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

    모양은 작지만 큰 정성으로 만드는 고유의 떡, 쑥구리단자

    쑥구리단자는 봄을 알리는 대표적 식용 식물인 쑥을 이용한 전통 떡이다. ‘단자’는 찹쌀로 떡을 빚어 그 안에 팥소를 넣고, 곁에 꿀물을 바르고 고물을 묻혀 만든다.

3.1절,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다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천안의 독립운동 터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타골공원 '팔각정'. 철원 지역의 3.1운동에 앞장선 철원 제일 교회. 1919년 학생들의 3.1만세운동 적극적인 참여로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던 전주 신흥학교. 모두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이다. 반면, 구 나주 경찰서와 같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을 고문의 흔적도 남아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탄압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역사를 다시 살펴보며, 3.1운동의 의미를 되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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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유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 충북 >청주시

    청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조동식

    조동식(趙東植, 1873~1949)은 1919년 3월 23일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산마루에서 주민 수십 명과 횃불을 들고 봉화 만세운동을 펼쳤다. 독립선언서를 담은 출판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충남 >공주시

    곰나루 근현대사를 품다, 공주제일교회 구 예배당

    공주 제일 교회의 연원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청도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던 공주 제일 교회는 1931년 현재의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다. 공주 제일 교회는 일제강점기 말에는 교회가 폐쇄되는 비운을 겪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교인들은 1956년 개축을 하면서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예배당을 복원하였다. 그 파란만장했던 예배당은 현재 공주 제일 교회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조선 시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다.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 본관과 강당은 미국의 리차드슨 부인이 거금을 기부해 건립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아쉽게도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다행히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전남 >목포시

    댕기머리 소녀들의 야무진 만세 함성,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목포 정명여학교는 1903년 미 남장로교의 선교에 일환으로 세워진 학교다.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명여학교는 1919년과 1921년 만세 시위를 벌인 학교로 유명하다. 댕기머리 소녀들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명여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 당했다가 1947년에야 재개교했다. 선교사 사택은 1905~1910년 사이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목포 산지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2채다. 현재 정명여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쓰이는 사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서울 >종로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팔각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99(종로2가) 탑골공원 내에 있는 조선 말기의 정자이다.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73호이다. 팔각정의 건립 시기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지 못하나, 탑골공원이 조성된 이후인 1902년 이후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말기의 근대 건축가 심의석(沈宜碩:1854~1924)이 건축하였다. 일제시대 때 팔각정에서 3·1운동의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민들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 전북 >임실군

    오수도의 중심 오수역

    오수역은 조선시대 전라도 임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오수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전라북도 동남부와 전라남도 동부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오수역이 관할하던 역은 모두 11개였다. 오수역은 일찍부터 주변 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1894년 역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오수역터에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2017년에는 오수역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졌다. 오수는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구한 개의 사연을 담은 오수의견으로도 유명하다.

  • 독립운동 단체인 상무동사

    '상무동사'는 일제의 경제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신민회에 의해 1908년 평안북도 용천에 만들어진 회사이다. 상무동사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수익금 일부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제정을 지원하였다. 또한, 시장세 납부를 거부하는 ‘백일세항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한 해의 첫 명절, 설과 정월대보름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날인 설과 한 해의 첫 보름달이 뜨는 날, 정월대보름에는 가족, 마을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음식을 나누어먹고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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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청주시

    청주 육거리종합시장에서의 의미 있는 답교놀이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다리를 밟는 민속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석교동에는 조선시대 이전에 놓인 다리 가운데 제일 긴 다리인 남석교(南石橋)가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의 물길이 변경되면서 매립되어 시장으로 변모하고, 남석교 또한 매몰되어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청주시의 대표적인 시장인 ‘육거리종합시장’은 1950년 이후에 형성되었다. 이곳 육거종합시장에 바로 남석교가 묻혀 있다. 그래서 청주문화원 등의 공공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시장 입구에 남석교 모형을 만들어 놓고 ‘남석교 다리밟기’ 놀이를 재현한다.

  •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며 달집태우기

    일년 중 가장 먼저 떠오른 정월대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짚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움막을 만들어 달집을 만든다. 달집태우기는 이 달집을 불로 태움으로써 모든 부정과 근심을 함께 태워 없애는 대보름의 주술적 행위이다.

  •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놀이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마을굿(당굿)을 한 다음 각 집을 차례로 돌면서 풍물을 치며 집터 곳곳의 지신(地神)을 밟아서 달램으로써 한 해의 안녕과 복덕을 기원하는 마을 민속의례이다. 집터에 있는 지신을 말 그대로 밟는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신들이 있는 터에 들어가 풍물을 치며 놀면서 신을 즐겁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초에 가족과 집안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함을 빌며 한 해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올리는 제의이다.

  • 경기 >수원시

    눈사람 닮은 조랭이떡국

    조랭이떡국은 새해 아침 한해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누에고치 모양으로 떡을 만들어 장국에 넣고 끓인 개성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 설날하면? 뭐니 뭐니 해도 역시 떡국!

    떡국은 새해 첫날인 설에 먹는 전통음식으로 흰 가래떡을 썰어서 쇠고기나 꿩고기, 닭고기로 맛을 낸 맑은 장국에 넣고 끓여 만든다.

  • 하루 아홉 번 먹는 오곡밥

    정월 대보름에 풍농을 기원하며 먹는 오곡밥은 다섯 가지 곡식, 쌀, 조, 수수, 팥, 콩 등을 섞어 지은 밥으로 보름밥이라고도 한다.

  • 전북 >전주시

    손으로 빚어 만든 전통시대의 인스턴트 떡국, 생떡국

    생떡국은 멥쌀가루를 뜨거운 물에 익반죽하여 손으로 가래떡 모양을 빚은 다음 칼로 썬 생떡을 장국에 넣고 끓여낸 전라북도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 울산 >남구

    찹쌀떡을 구워 만든 떡국, 울산 굽은떡국

    굽은떡국은 찹쌀가루를 익반죽하여 만든 반대기를 구운 다음 골패모양으로 썰어 굴과 함께 끓여낸 울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 제사상에 올라가는 삼색나물

    제사상에 올라가는 세 가지 나물을 삼색 나물이라고 한다. 삼색 나물에서 흰색은 뿌리나물이고 해서 무나물이나 도라지를 쓰고, 검은색은 줄기나물이라 하여 고사리를 사용한다. 푸른색은 잎나물로 시금치나 미나리를 이용한다. 삼색 나물의 뿌리, 줄기, 잎은 각각 상징이 있다. 뿌리나물을 조상을 상징하고, 줄기나물은 부모님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잎나물은 나를 상징한다고 전해진다.

  • 조상님께 새해인사를 드리는 설 차례

    차례는 달이나 계절, 해가 바뀌어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음을 조상에게 알리면서 절찬과 시식을 천신하는 의례다. 설 차례는 설날에 올리는 차례로 새해를 맞이하면 조상님께 인사를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물로 떡국이 올라가서 떡국 차례라고 부르기도 하고, 정조다례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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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에 인생을 함께한 무형문화재 목공예 장인들 ! 생활문화, 불교용품, 선비용품 등 다양한 목공예 장인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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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선비의 칼 낙죽장도를 만드는 장인 낙죽장도장(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낙죽장도장(烙竹粧刀匠) 대나무로 만든 장도에 낙죽장식을 한 낙죽장도를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2월 23일부터 국가무형문화재 제60호 장도장으로 지정하여 기능을 보존 및 전승하고 있다. 기능보유자는 1993년 한병문이 지정되었으며 현재는 그의 아들 한상봉이 2012년 등록되었다.

  • 인천 >남동구

    소의 뿔로 만든 화각공예 장인 화각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

    화각장(華角匠)은 쇠뿔을 투명하게 만든 안쪽에 그림을 그려 채색한 화각공예 기능을 가진 장인이다. 1930년대 거의 생산이 중단된 화각기술이 지금까지 전승될 수 있었던 것은 장인 음일천의 공이 컸다. 화각장은 1996년 12월 31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으며 기능보유자로는 이재만이 인정되어 현재까지 유일하게 활동하고 있다.

  • 전남 >담양군

    알록달록 대나무 상자를 만드는 채상장(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

    채상장은 얇게 저민 대나무 껍질을 물들여 무늬가 배치되도록 짠 상자인 채상을 엮는 기능 혹은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1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되어 김동연, 서한규를 거쳐 현재는 서신정이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그 기능을 보존 및 전승하고 있다. 

  • 경북 >포항시

    화살 넣는 통을 만드는 전통장(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

    전통장은 화살을 담는 화살통인 전통(箭筒)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93호로 지정되어 기능 보유자는 김동학이 유일하다. 그의 증조부는 무인출신으로 화살통을 손수 만들어 썼다고 하며 4대째 화살통 만드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 전남 >나주시

    소반을 만드는 장인 소반장(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장은 밥과 반찬 등의 음식을 차려놓고 먹는 작은 상인 소반을 만드는 일이나 그 일에 종사하는 장인을 말한다. 소반장은 1992년 11월 10일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지정되었는데 최초의 기능보유자는 해주반으로 유명한 이인세(1928-2009)이다. 그의 사후 2014년 9월 16일에는 나주반의 김춘식과 통영반의 추용호가 소반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되어 활동하고 있다.

  • 경남 >통영시

    나전칠기를 만드는 장인 나전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은 조개껍질을 다양한 형태로 잘라 기물의 표면에 붙여 장식한 공예품인 나전칠기를 제작하는 기능 혹은 그러한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1966년 6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끊음질과 줄음질 기법으로 나누어 나전칠기의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하고 있다.

  • 인천 >강화군

    왕골을 엮어 생활기물을 만드는 장인 완초장(국가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은 왕골로 돗자리, 방석, 합 등의 기물을 엮어 만드는 기능 혹은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강화지역의 왕골 공예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품질이 좋으며 유명하다. 이곳은 기후 조건이 왕골의 생장에 알맞아 질 좋은 원료를 구할 수 있으며, 예로부터 전승되어 내려온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03호 완초장으로 등록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순천시

    나무를 지져 문양을 만드는 장인 낙죽장(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烙竹匠)은 대나무의 표면을 뜨거운 인두로 지져 글씨나 무늬를 새기는 기능 또는 그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1호 낙죽장으로 지정되어 이동련, 국양문, 김기찬이 기능보유자로 활동하며 그 기능을 보존 및 전승하고 있다.

  • 목가구를 만드는 장인 소목장(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은 나무로 건물의 문이나 창문, 가구를 제작하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이다. 나무를 다루는 장인을 목수라고 하는데 대목장과 소목장으로 나눠진다. 대목장은 주로 궁궐·사찰·주택 등 건축물을 짓는 것을 담당하고, 소목장은 주로 건축물 실내로 들어가는 가구나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1월 29일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을 지정하여, 현재 박명배, 소병진, 엄태조가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 활과 화살을 만드는 장인, 궁시장(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능과 그 기능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활을 만드는 사람은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시장(矢匠)이라 한다. 1971년 9월 13일 국가무형문화재 제47호 궁시장이 지정되어 현재는 유영기, 박호준, 김종국이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어 전통적인 활과 화살 제작기술을 보존하고 전승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활용품

생활용품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옛 조상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의 특징을 통해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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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을 보관하는 가구, 책장

    책장은 책을 넣어 보관하는 수납가구로 선비의 사랑방에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가구였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 졌으며 2층장, 3층장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가장 많다. 많은 책의 무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조선시대 선비 취향에 부응하여 검소하고 소박하다.

  • 전남 >영암군

    가늘고 촘촘한 빗, 참빗

    참빗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머리빗이다. 머리를 정갈하게 정돈하거나 기름을 바를 때 사용하였으며, 진소(眞梳)라고도 불렀다. 전라남도 영암과 담양 지역은 참빗 생산지로 유명한데 특히 영암 참빗의 품질이 높았다. 영암읍 망호리에서는 약 300여 년 전부터 마을사람들이 참빗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 음식과 그릇을 보관하는 부엌가구, 찬장

    찬장은 식기나 음식 등을 보관하는 부엌용 수납 가구이다. 중량감 있는 그릇을 포개 보관하기 때문에 무게를 충분히 감당하기 위해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가 필수적이며, 실용적인 사용을 우선시 하는 생활용 가구이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 가하지 않고 튼튼하고 견고하게 제작하였다.

  • 제주 >서귀포시

    제주 서귀포 지역의 죽공예품

    제주도는 다른 공예에 비해 목공예의 제작과 사용이 많았으며 특히 서귀포지역에서는 죽공예의 제작이 활발하였는데,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인 ‘구덕’이 가장 대표적이다. 구덕은 여성들의 일상생활 전체에서 쓰임새가 가장 많은 도구이며, 제주의 자연 환경과 인문적 배경에서 발생한 독특한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도구이다.

  •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는 도구, 죽부인

    죽부인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침구의 하나로 무더운 여름밤에 끼고 자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피서용 생활도구이다. 주로 남성들이 끼고 잤기 때문에 인격화하여‘죽부인’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생전 사용하셨던 죽부인도 모시고 같이 제사를 받게 하였다.

  • 계산도구, 주판

    주판은 계산을 도와주는 간편한 도구로 수를 더하거나 뺄 때 사용했으며 이것으로 계산하는 것을 주산(珠算)이라고 한다. 고대 숫자들은 계산보다 기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계산을 도와주는 도구가 별도로 필요했다. 주판은 우리나라에서 1980~1990년대 초까지 널리 보급되었지만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 옷을 걸어 보관하는 옷장, 의걸이장

    의걸이장은 내부에 횃대라는 긴 막대가 있어 옷이 구겨지지 않게 걸어서 보관하는 옷장이다. 주로 관복이나 두루마기 등의 남성의 의복을 보관하던 옷장으로 남성의 생활공간인 사랑방에 놓였다.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며 사랑방의 검소하고 문기어린 선비의 취향에 맞도록 제작되었다.

  • 문방용품 수납용 가구 연상

    연상(硯床)은 벼루, 먹, 붓, 종이, 연적 등 문방용품을 한 곳에 모아 보관하는 문방가구로 주로 사랑방에서 사용되었다. 사랑방에서 연상은 중심공간에 배치되는 좌식 책상인 서안(書案)의 바로 옆에 위치하여 서안과 함께 세트로 만드는 경우도 있었다.

  • 약재를 보관하는 가구, 약장

    약장은 약재를 분류하여 따로따로 넣어두는 서랍이 있는 가구이다. 약재의 종류에 따라 많은 서랍이 필요하며, 이러한 서랍이 정연하게 연속적으로 배열된 모습은 독특하고 개성강한 조형미가 있다. 조선시대 약장은 형태·용도·목적·신분·지역 등에 따라 구분되며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 음식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 소반

    소반은 작은 상이라는 뜻으로 식기를 받쳐 나르거나 음식을 차려 먹을 때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상차림은 1인 1상을 기본으로 하여 각 가정에서는 크고 작은 소반이 많이 필요하였는데 내방객이 많은 양반가에서는 수십여 점을, 일반 민가에서도 여러 점을 구비하여 사용하였다. 이처럼 소반은 우리나라 좌식생활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방가구중 하나로 다른 가구와 달리 계층을 막론하고 널리 사용된 생활필수품이다.

대중매체 속의 지역문화

신문에 소개된 다양한 식재료와 음식, 시대적 특징과 분위기를 나타내주는 노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대중매체 속 정보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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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인기있는 외식메뉴, 비빔밥

    비빔밥은 옛날부터 만들었던 음식으로 생각된다. 안동의 헛제사밥처럼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들을 밥과 섞어 먹은 것이 비빔밥이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조선후기부터 음식점에서 파는 외식메뉴였는데 일제강점기에도 이러하였다. 일제시대 유명한 비빔밥으로 『별건곤』잡지는 진주(晉州)비빔밥을 거론하고 있다. 이 비빔밥은 육회비빔밥인데 서울의 육회비빔밥보다 낫다고 하여 서울에도 육회비빔밥이 있던 것을 보여준다. 『동아일보』에서는 함평 소주와 함평비빔밥이 기막힌 조합을 이룬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전주비빔밥이 유명한데 가을에 전주에서 비빔밥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 서울 >종로구

    근대 서민의 술안주, 빈대떡

    조선시대 빈대떡은 녹두를 불려 갈은 반죽을 밤이나 팥에 꿀에 말은 소를 안에 넣고 부친 음식이었다. 일제시대 빈대떡은 대표적인 술안주가 되었는데 양념을 털어낸 김치, 되재고기 채썬 것, 각종 채소를 녹두반죽위에 올려놓고 돼지기름을 바른 철판에 구원내는 요리가 되었다. 이렇게 만든 빈대떡은 값싸고 맛있는 최고의 술안주가 되어 선술집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여성들이 빈대떡을 안주로 선술집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현대는 녹두값이 많이 올라 빈대떡은 더 이상 서민의 음식이 아니게 되었다.

  • 경기 >부천시

    복사골을 아시나요, 소사 복숭아

    복숭아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랐는데 팔기위해 재배한 것은 아니었다. 팔기위해 복숭아를 기르기 시작한 시기는 개항기 이후이다. 개항기 상품으로 팔기 위해 복숭아 나무를 심은 곳이 부천 소사이다. 부천 소사 복숭아는 일제강점기부터 많이 생산되고 질이 좋아서 유명하였다. 해방 후에도 부천 소사복숭아는 유명했는데 1980년대 부천이 산업화와 도시화되면서 대형 복숭아 과수원이 아파트와 공장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지금도 복숭아 과수원이 약간 남아 있어 과거의 영광을 알려주고 있다.

  • 인천 >중구

    1882년 임오군란 이후 한국에 들어온 자장면

    자장면(炸醬麵)은 장을 튀겨 면에 비벼먹은 음식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튀기는 장은 콩 70%와 밀 30%를 섞어 짜게 발효시킨 면장(麵醬)인데 중국 산둥지역에서 주로 담궈 먹었다고 한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난 후 청나라와 조선은 ‘상민수륙무역장정(商民水陸貿易章程이라는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으로 청나라와 조선의 상인들은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상민수륙무역장정에 따라 청나라 사람들 특히 주로 중국 산둥 지방 사람들이 인천등 개항장에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산동지방의 향토음식이 한국에 정착한 것이 짜장면이다.

  • 서울 >종로구

    일제강점기 조선인이 경영한 화신백화점

    화신백화점은 지금의 종로타워가 있던 곳에 있었는데 1937년 준공되어 1987년 철거되었다. 지하 1층, 지상 6층의 규모로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화신백화점은 1937년 새로 준공하기전 3층의 규모의 건물이었는데 화재로 다시 지은 것이었다. 화신백화점은 박흥식이 건립하고 운영하였는데 그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후까지 다양한 사업을 왕성히 하였던 기업가였다. 화신백화점은 구 건물시기부터 지하 식품매장과 식당가가 유명했다. 식당가는 양식, 화식, 조선요리를 팔았는데 새건물이 준공된 후에도 이러한 체제였다. 지하 식품매장에는 수입식품과 일본의 고로께등 다양한 음식을 팔았다. 화신백화점은 주로 조선인 중상류층이 이용하였다.

  • 충남 >논산시

    유산균으로 몸을 건강하게 해 주는 요구르트

    요구르트는 해방이후 본격적으로 도입되는데 1969년 일본과의 합작으로 한국야구르트가 많은 양을 생산하면서 널리 보급되었다. 1976년 해태유업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이후 대일유업, 서울우유협동조합, 한국낙동, 삼양식품등 많은 업체가 제품을 내놓았다. 이 시기의 요구르트는 탈지분유를 물로 희석하여 유산균을 발효시킨 것으로 우유의 비중이 굉장히 작았다. 마시는 음료에 가까웠던 요구르트가 걸쭉한 죽 형태로 변화된 것은 대일유업 지금의 빙그레에서 ‘요플레’를 내놓은 것이 시작이다. 대일유업은 1981년 10월 프랑스 농협 조합으로부터 기술도입 계약을 맺어 죽형태의 요구르트인 요플레를 만들었다. 이후 요구르트는 죽형태, 마시는 형태등 다양화되었다.

  • 경기 >포천시

    오늘날에도 인기있는 전통과자, 엿

    전통엿은 곡식에 엿기름을 넣고 고아 만든다. 엿기름은 기름이 아니라 싹난 보리를 말린 것이다. 공업적으로 엿을 만들기도 하는데 값싼 옥수수나 고구마 전분을 끓여서 죽으로 만든 다음 엿기름 대신 미생물로부터 얻은 당화효소를 넣는 것이다. 엿은 전통적으로 인기있는 간식이었지만 곡식으로 만들므로 나라에서 금지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제과업자들이 전통엿을 만들어 판매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엿장사도 많이 생겼는데 일본인이 엿장사를 하기도 하였다. 엿장사는 양과자가 인기를 끌면서 매출이 줄어들었다.

  • 경남 >밀양시

    일제강점기 한국의 우뭇가사리로 만든 일본 과자, 양갱

    양갱은 중국에서 일본에 전해져 정착된 일본과자로 우뭇가사리를 냉동건조시킨 한천에 팥, 설탕등을 넣고 쪄서 만든 것이다. 양갱은 일제강점기 조선에 들어와 지금도 팔릴만큼 한국인의 과자로 정착되었다. 양갱의 원료인 우뭇가사리는 일제강점기 본격적으로 한반도 바다에서 채취되었는데 우뭇가사리가 양갱원료 이외에 의약품, 화장품등의 원료로 쓰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우뭇가사리 채취는 주로 제주도 출신 해녀들이 담당하였다. 해방후에도 한천을 계속 만들어졌는데 주로 외국으로 수출되었다.

  • 경기 >포천시

    1970년대 대기업이 대량생산한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은 우유나 유지방을 다른 재료를 섞어 얼린 것이다. 국제규격에 의하면 유지방이 8%이상 함유되어야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은 일제강점기부터 일반인에게 보급되었는데 신문에는 아이스크림 만드는 법이 나오고 아이스크림 행상도 있었다. 그러나 쉽게 상하는 문제로 단속의 대상이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1970년대 대기업에서 본격적으로 대량생산되었다. 1970년대 농촌에 젖소등이 보급되어 낙농단지가 만들어져 우유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양의 우유를 대량의 아이스크림으로 만들기 위해 기계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것은 이 당시 대기업만이 가능했다. 해태, 한화등 대기업이 1970년대부터 아이스크림을 대량생산하게 되었다.

  • 경기 >포천시

    근대 유럽에서 비로소 대량생산이 된 버터

    버터는 유지방을 휘저어 엉기게 하여 만들므로, 유럽에서도 1800년대 말 기계 발달에 힘입어 대규모로 생산되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버터는 모리나가유업등 일본의 유제품회사에서 수입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입된 버터는 조선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버터는 식민지시기 폐결핵을 이겨낼 수 있는 음식 중 하나로 주목받기도 했다. 버터는 냉장보관이 아니면 쉽게 상하기 때문에 이시기 신문에는 버터의 보관법, 상한 버터 판별법등의 기사가 실렸다. 1930년대 후반 유럽과 미국의 수입품을 규제하게 되면서 버터가 귀해진다. 버터의 대체품으로 돼지기름인 라드와 쇠기름이 주목받기도 하였다.

조상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조상들의 사계절을 어떻게 지냈을까? 조상들의 사계절을 엿볼 수 있는 계절마다 이용했던 생활용품과 장소, 음식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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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는 도구, 죽부인

    죽부인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침구의 하나로 무더운 여름밤에 끼고 자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피서용 생활도구이다. 주로 남성들이 끼고 잤기 때문에 인격화하여‘죽부인’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생전 사용하셨던 죽부인도 모시고 같이 제사를 받게 하였다.

  • 충남 >공주시

    추운 겨울날 새벽까지 파는 군밤

    밤은 우리나라에서 오랜 옛날부터 먹은 과실이다. 조선시대에는 평양밤과 양주밤이 유명했는데 일제 강점기에도 명성이 이어졌다. 특히 평양밤은 당도가 높아 일본으로 많이 이출되었다. 일제강점기부터 군밤장사의 수가 많아지는데 주로 도시에서 낮부터 새벽 2시까지 화로에 밤을 구원 파는 것이었다. 화로에 밤을 굽기 때문에 가을부터 초봄까지가 군밤장수의 활동기였다. 일제강점기 서울의 일본인이 운영하는 백화점근처에는 기계로 평양밤을 구어팔기도 했다. 어린 군밤장수의 경우 10전의 군밤을 팔기위해 낮부터 새벽까지 겨울에 떨기도 하였다. 

  • 여름을 즐겁게 해 주는 빙수

    빙수는 갈은 얼음에 설탕, 시럽, 단팥등을 넣고 먹는 음식이다. 얼음을 먹으므로 더운 여름철 인기있는 음식다. 일제강점기 빙수는 인기있는 판매음식이 되었다. 처음 빙수는 천연빙으로 만들었는데 제빙공장의 얼음이 많이 생산되면서 대중화되었다. 빙수는 여름 한철 장사로 가게는 임시가게였다. 빙수가게에 여점원이 많았는데 풍기문란으로 신문에 지적받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서울시내 다양한 빙수가 있어서 여러 사람들의 기호를 맞추어주었다.

  • 전북 >임실군

    여름날 배롱나무와 어우러진, 임실 만취정

    임실 만취정(晩翠亭)은 김위(金偉 ; 1532∼1595)가 1572년(선조 5) 낙향하여 세운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김위의 호 ‘만취(晩翠)’에서 따온 것이다. ‘만취’는 ‘겨울에도 변하지 않는 초목의 푸른빛’이라는 의미이다. 김위는 재상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여러 고을의 수령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고, 당대의 고봉 기대승·율곡 이이·백호 임제와 같은 인물과 교유하였다. 만취정에는 이들의 현판이 지금도 걸려있다.

  • 전남 >영암군

    수석 같은 월출산을 사계절 즐기는, 영암 부춘정

    영암 부춘정(富春亭)은 호남의 명산 월출산을 바라보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부춘정은 야트막한 부춘봉 자락을 뒤로하고 앞으로는 군자의 상징인 연꽃이 심겨진 연못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낚싯대를 드리울 수 있는 덕진천이 흐른다. 부춘정은 강한종이 낙향하여 1618년에 지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다른 건물과 달리 뒤쪽 4칸에 방을 만들고, 앞쪽 4칸에 마루를 놓았다. 10개의 기둥에 주련이 달렸고, ‘부춘정’ 편액과 기문·시판이 마루에 걸려있다.

  • 전북 >익산시

    조상을 추모하는, 익산 망모당

    망모당은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광암리 356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1607년(선조 40)에 조선 중기의 문신 송영구(1556~1620)가 그의 거처 후원 구릉에 망모당을 짓고 누정 동쪽의 우산에 있는 선영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망모당이라는 정자 이름은 ‘사모하고 그리워한다.’라는 의미로, 송영구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만났던 인물이 후일에 사신으로 조선을 방문했을 때 만나 지어준 편액이라고 한다.

  • 서울 >종로구

    봄을 알리고 단비를 기원하는, 창덕궁 보춘정

    보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창덕궁 내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이다. 보춘정 건물의 다른 면에 희우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누각은 봄이 옴을 알리고, 가뭄 때 단비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 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조상님의 묘를 찾아뵙는 한식절사

    한식에는 과일과 떡 등을 차리고 조상의 묘소에서 차례를 지낸다. 이를 ‘한식차례(寒食茶禮)' 한식제사(寒食祭祀), 한식차례(寒食茶禮), 한식성묘(寒食省墓)라고도 한다. 조상의 무덤이 헐었을 경우에는 잔디를 다시 입히는 것을 일반적으로 한식에 한다. 이것을 ‘개사초(改莎草)’라고 한다.

구비전승 설화이야기

구비문학은 인류가 언어를 사용하면서 집단을 이루어 사회생활을 할 때부터 형성된 문학으로서, 문자가 창제된 이후 글로 이루어진 기록문학이 나타나기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구비문학의 시원은 곧 문학의 시원인데, 인류가 집단생활을 하면서 언어를 통하여 협동하는 과정에서 구축한 언어단위가 예술성을 획득하여 후대로 전승되면서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공동체에서 신에 대한 제의를 행하면서 송창(誦唱)하던 제신가(祭神歌)나 집단으로 노동을 하면서 부른 노동요 등은 초창기 구비문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었던 강력한 체험이나 역사적인 큰 사건에 대한 흥미 있는 이야기가 집단의 호응을 받으면서 후대로 전승되면서 꾸며져 세련된 설화문학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구비문학은 언어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생활의 일부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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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향운설화의 대표적인 정자, 정읍 군자정

    군자정은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영주로 532-7(고부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33호이다. 사방이 연못으로 둘러 싸인 정자여서 연정(蓮亭)이라고도 한다. 최초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역사가 오래된 정자이다. 군자정은 고장의 운명과 관련된 향운설화(鄕運說話)의 대표적인 정자로, 고을의 운명을 길하게 하기 위해 연정을 파고 정자를 개보수한 설화와 역사를 함께한 정자이다. 군자정이란 정자명은 주돈이의 「애련설」에서 유래한 것으로, 연꽃을 군자의 꽃이라 칭한데서 연정을 군자정이라 하였다.

  • 충남 >예산군

    저승에 갔다 온 할머니

    90세 먹은 노인이 죽어 시신을 염습하여 입관한다. 장례 전날, 관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열어보니 노인이 살아난다. 노인은 저승에 갔더니 몇 년 더 살다가 오라고 해서 이승으로 왔다고 한다.

  • 서울 >서대문구

    상가승무노인곡(喪歌僧舞老人哭)

    「상가승무노인곡(喪歌僧舞老人哭)」은 가난하지만, 효심이 깊은 상중의 젊은 내외가 어머니의 환갑상을 차리면서 벌어진 이야기와 아들 내외의 효행에 탄복한 영조대왕이 그 효심을 표창한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어느 고을을 지나던 영조임금은 방안에서 상주가 노래하고 여승이 춤추며 노인이 우는 광경을 목격한다. 노모를 극진히 모시고자 하는 아들 부부의 지극한 정성을 목격한 영조대왕은 과거 시제로 ‘상가승무노인곡’을 낸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알 수 없어 낙방하지만, 효자는 자신이 겪을 일을 빗대어 글을 지어 장원급제하였다는 것이다.

  • 대구 >남구

    하회 유씨 묘지설화

    「하회 유씨 묘지설화」는 명당 주인으로 하여금 그 곳이 명당이 아닌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묫자리를 빼앗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김씨 집안의 한 지관이 명당자리를 가리키며 내일 오시까지 물이 나오지 않으면 3대에 걸쳐 정승이 나온다고 한다. 이 말을 들은 김 씨 여인이 밤새도록 물을 길어다 붓는다. 그래서 김씨 문중에서는 묫자리를 포기한다. 김 씨 연인은 오빠에게 간청하여 시아버지를 그곳에 묻는다. 이후 김씨 문중은 쇠퇴하고, 유시 문중이 번성하였다고 한다.

  • 충북 >충주시

    충주 어씨 시조설화

    충주 어씨 시조인 어중익(魚重翼)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득성(得姓)에 관한 이야기이다. 충주 어씨 설화는 『한국성씨대관』, 『한국인의 성씨』,『만성대동보』, 『한국의 전설』, 『충주어씨족보(忠州魚氏族譜)』, 『한국구비문학대계 8-3』에 수록되어 있다. 문헌 자료와 구전설화를 종합하면, 어씨의 본성이 지씨였다는 점과 어씨 성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사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 경남 >창녕군

    창녕 조씨 시조설화

    창녕 조씨의 시조인 조계룡의 출생과 득성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다. 신라 진평왕 대에 이광옥의 딸 예향과 신룡의 아들 옥결이 만나서 낳은 자식이 조계룡이라고 한다. 계룡의 옆구리에 ‘조’ 자가 새겨져 성을 조씨라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설화에서는 예향이 병을 고치기 위해 화왕산의 못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병이 나은 동시에 잉태했다. 꿈속에 신룡의 아들인 옥결이 나타나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밝히고 잘 기르면 자손만대가 번성할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들은 이광옥이 왕에게 아뢰자, 왕이 조라는 성과 계룡이라는 이름을 주었다고 한다.

  • 충남 >부여군

    제사 잘 드리고 복 받은 사람

    어느 총각이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나무 장사를 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 제사가 돌아왔다. 이날따라 비가 내려 나무를 할 수가 없었다. 총각은 할 수 없이 물 한 사발과 나무할 때 쓰던 도끼를 깨끗이 씻어놓고 제사를 지냈다. 이런 아들의 모습에 감복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현몽하여 논에 묻혀 있던 두 개의 황금단지를 발견하게 한다. 아버지의 혼령 덕분에 아들은 부자가 되었으며 어머니를 모시고 잘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충남 >당진시

    이상한 제사방법

    어떤 과부가 며느리 보는 것이 소원이다. 하지만 아들이 늦도록 장가가는 것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아들은 열심히 일해서 색시를 얻는다. 아들 내외는 부모님 제삿날이면 초저녁에 제상에 제물을 차리고, 그 앞에 이부자리를 펴놓는다. 그리고 등불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고 들어오고, 제사를 지낸 다음에 다시 등불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어느 학자가 아들 내외가 지내는 제사방법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아들의 설명을 들은 학자는 주인의 제사방식이 옳다고 하면서 계속 그렇게 제사를 지내라고 했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 경북 >안동시

    회갑날 할멈에게 수염 뜯긴 영감

    예전에 성질이 억세고 거친 처자가 살았다. 처녀의 부모는 자기 딸을 데리고 사는 사람에게 평생 먹을 것을 주겠다고 한다. 어떤 머슴이 처녀와 결혼한다. 첫날밤에 신부가 똥을 쌌다고 누명의 씌워 처자의 기를 죽인다. 머슴과 처자는 아들 삼 형제를 낳고 나름 행복하게 산다. 영감이 된 머슴은 자신의 환갑날에 첫날밤에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가 할멈에게 수염을 뽑히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 부산 >북구

    세쌍둥이가 죽어서 된 삼태성

    어느 부잣집에 시주하러 온 스님과 부잣집 딸이 동침하여 세쌍둥이를 낳게 되었고, 그 아이들이 죽어서 삼태성이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삼태성은 국자 모양을 한 북두칠성에서 물을 담는 쪽에 비스듬하게 길게 늘어서 있는 세 쌍의 별을 말한다. 삼태성의 유래담은 제주도와 함경남도, 평안북도, 중국 연변 지역에 사는 조선족 등에게서 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