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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그들이 꿈꾼 '최초'의 삶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을 맞아 문득 서글픈 질문을 던져봅니다.
만약 그 모진 역사의 폭풍우가 없었다면, 소녀들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요?


우리 역사 속에는 시대의 금기와 편견을 깨고 저마다의 분야에서 '최초'의 길을 개척해 나간 여성들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소리로 한국 최초의 여성 명창이 된 소리꾼, 성악가·배우·대중가수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업적을 남긴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위해 붓을 든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젖먹이를 업고 메가폰을 잡았던 영화감독, 한국 여성 최초로 하늘을 날아오른 비행사까지.
그들의 가슴속에는 늘 꿈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용기가 일렁이고 있었죠.

어쩌면 소녀들 중 누군가는 세상을 뒤흔드는 또 다른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갔을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아픔뿐 아니라, 끝내 이루지 못한 꿈과 가능성이기도 합니다.
우리 역사 속 최초의 길을 걸어간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녀들의 찬란했을 내일을 함께 그려보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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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한국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권기옥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숭현소학교를 졸업하고 숭의여학교를 1919년 졸업하였다. 숭의여학교 졸업반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권기옥은 수학 교사 박현숙의 권고로 숭의여학교 비밀결사대 송죽회(松竹會)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1923년 중국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하여 졸업하고 한국 최초 여류비행사가 되어 중국 국민군에서 비행사로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권기옥에게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강원 >춘천시

    한국최초의 여성의병 윤희순의 의병가사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현 구리시 출신으로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출가하여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는 의병가사를 써서 남녀모두 의병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세상의 편견을 깬 독립운동가 김란사
    김란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미국 유학생이며 미국 학사출신이다. 결혼을 한 몸으로 이화학당에 입학하였고 일본과 미국 유학을 하였다. 귀국 후 이화학당 자치단체인 이문회를 지도하며 민족 현실과 세계 정세를 가르쳤고, 많은 강연을 통해 여성계몽 활동을 하였다. 1918년 미국순회 강연을 통해 모금한 돈으로 정동제일교회에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였다. 고종의 통역을 맡기도 하였다. 1919년 의친왕의 은밀한 부탁으로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북경에 도착하였으나 교민들이 마련한 음식을 먹고 갑자기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전남 >순천시

    여성영화의 길을 닦은 큰언니 홍은원
    홍은원은 한국 영화사 최초의 여성 시나리오 작가이자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이다. 1947년 스크립터를 시작으로 조감독과 시나리오 작가의 단계를 거쳐 1962년 『여판사》의 감독으로 데뷔해 『홀어머니》와『오해가 남긴 것》까지 전통과 근대가 충돌하던 1960년대 한국 여성의 삶과 과도기적 갈등, 여성영화의 한계와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세 편의 영화를 남겼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일제강점기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사회운동가, 나혜석
    나혜석은 일제강점기 신여성으로 민족자결권을 향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조선에 서양화를 도입한 최초의 전업 화가. 장편 소설과 시 작품으로 문단에서도 크게 활약한 전방위적 작가이다. 시대를 앞선 각성으로 봉건주의와 남존여비의 악습 타파를 주장하며 여성운동의 선봉에서 당시 사회로부터 지탄과 경탄을 함께 감당했던 한국 페미니스트의 원조이기도 하다.
  • 경남 >진주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추상화가, 이성자(李聖子)
    경상남도 진주 출신의 여성화가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추상회화의 거장이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하여 프랑스 화단은 물론 세계적인 화가로 인정받았다. 동양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한국적 이미지들을 서양의 추상사조에 접목시키며, 회화와 판화, 조각과 도예 등 장르와 소재를 넘나들며 1만 40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내가 아는 어머니」, 「장애 없는 세계」, 「극지로 가는 길」 연작 등이 있다.
  • 경기 >광주시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인권유린의 역사를 잊지 마세요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세계 최초로 여성들의 성노예 실상을 밝힌 인권박물관으로 1998년에 설립됐다. 위안부 제도의 실상을 밝히고,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을 비롯해 일제의 만행을 입증할 자료를 모아서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위안부란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 착취를 당한 여성을 이르는 단어로, 정확히 말하면 성노예다. 일본 정부는 지금까지도 위안부 문제를 부인하고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있을 수 있을까. 우리 모두 인권 유린의 그 참혹했던 현장의 기억을 잊지 말아야 한다.
  • 전국

    '사의 찬미'를 부른 한국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윤심덕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성악가이자 배우, 대중가수였다. 예술가곡, 이탈리아 칸초네, 찬송가, 대중가요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모두 소화했다. 그녀의 대표곡은 외국곡에 우리나라 노래말을 붙여 만든 번안가요 <사의 찬미>이다. 레코드 재취입을 위해 일본에 갔다 오는 길에 김우진과 함께 현해탄에 투신하면서 <사의 찬미>는 그녀의 사후에 크게 유행했고, 대중음악 시대가 열렸다.
  • 전북 >고창군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
    진채선은 한국 최초의 여성 명창이다. 신재효의 후원 속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진채선은 흥선대원군이 주최한 경복궁 연회에 참석해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시대적 한계 속에 지속적인 음악 활동도, 제자 양성도 할 수 없었던 진채선의 흔적은 신재효가 그녀를 그리며 지었다는 「도리화가」와 신재효의 서신기록, 그리고 그녀의 더늠으로 알려진 ‘기생점고’ 대목으로만 전해져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 대구 >중구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된 영화소녀, 박남옥
    박남옥은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으로, 이화여전 중퇴 후 대구에서 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조선영화사촬영소에서 편집과 스크립터 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 전쟁 후 미망인들의 사회적 현실과 갈등을 그린 1955년 데뷔작 《미망인》은 흥행에 실패했으나, 딸을 등에 업고 현장을 누비던 박남옥 감독의 모습은 후배 영화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여성 감독이 아니면 착안하기 어려운 앵글과 사건의 템포 등이 명쾌하고 친근감을 자아내는 작품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영물 혹은 요물, 고양이를 보는 두 시선

매년 8월 8일은 고양이를 사랑하고 보호하기 위해 제정된 '세계 고양이의 날'입니다.
오늘날 고양이는 수많은 이들의 일상을 위로하는 다정한 반려동물이지만, 먼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는 친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묘한 두려움을 자아내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전국 각지의 구비 설화 속에는 고양이를 향한 상반된 인식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사람으로 둔갑한 여우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채는가 하면, 아무도 풀지 못한 복잡한 꿈을 술술 풀어내는 영리한 영물로 기록되기도 했고요. 때로는 자신을 해친 주인에게 서늘한 경고를 던지거나 복수를 하는 섬뜩한 인과응보 이야기 속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고양이가 초상집에 들어오면 송장이 살아난다는 속설이 있어, 장례를 치를 때는 고양이가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굴뚝을 막았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도도하게 인간을 집사로 부리는 귀여운 주인이자 일상 속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된 고양이의 반전 가득한 과거, 흥미롭지 않나요?
조상들이 남긴 옛이야기를 읽으며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고양이의 진짜 모습을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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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춘천시

    괴산의 고양이를 물리친 쥐가 살던 쥐산
    강원도 춘천시 사북면 고성리에는 쥐산이 있다. 쥐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크기가 쥐처럼 작고 쥐를 닮아서 붙은 것이다. 쥐산 인근에는 고양이를 닮은 산인 괴산이 있다. 이 두 산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진다. 괴산의 고양이들이 쥐산의 쥐를 잡아먹자, 쥐들이 힘을 모아 고양이를 물리쳤고 그 후로는 각자의 산에서 평화롭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 경남 >거창군

    아흔 아홉살 먹은 잉어의 꿈
    아흔 아홉 살 먹은 잉어는 좋은 꿈을 꾸었다며 잔치를 벌인다. 잉어는 살구나무에도 앉아보고 옥에도 갇혀봤으며 맥도 따보고 붉은 분도 발라보고 짠 물도 먹어보고 음지, 양지도 앉아보고 용상자개에도 해보고 옥주화도 타보고 붉은 고개도 넘어가고 털감투도 써봤다고 고양이에게 말한다. 꿈 이야기를 들은 고양이는 잉어가 곧 사람에게 잡혀 먹힐 것이라고 하나하나 해몽해준다. 하지만 그 말을 믿지 않지 않고 화를 냈던 잉어는 고양이가 말한 것처럼 결국 사람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 경기 >의정부시

    도미로 환생한 고양이
    고양이를 기르는 부부가 있었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고양이의 도둑질에 화가 난 부부는 고양이를 구렁텅이에 넣어 입을 묶고, 돌을 매달고, 칼까지 꽂아 잔인하게 죽인 다음 강물에 던졌다. 그러나 고양이는 죽지 않고 바다로 가 도미로 변했다. 다시 생선 장수에게 잡힌 도미는 고양이를 죽인 그 집에 다시 돌아오게 된다. 도미로 국을 끓여 먹으려 하니 고양이를 잡을 때 썼던 칼이 나와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부부는 죽을 위기를 넘기고 간신히 살 수 있었다.
  • 충북 >제천시

    사람 행세를 하다 고양이에게 들킨 여우
    최진사 집의 큰아들 혼사에 신부가 시댁으로 가마를 타고 갔다. 여우고개를 넘어갈 때 여우가 신부의 가마에 몰래 탔다. 첫날밤을 지내고 그다음 날이 되니 신방에 신부가 두 사람이 있었다. 두 신부는 말투와 행동이 똑같아서 누가 진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친정에서 신부의 신체적 비밀을 말해주었으나 그마저도 똑같았다. 결국 한 아낙네가 고양이를 구해오라고 제안하여 고양이를 신방에 넣으니 하얀 여우가 뛰쳐나와 도망가 버리고 진짜 신부를 찾게 되었다.
  • 충남 >예산군

    서낭나무 전설
    삽교읍 삽교리 충의대교 중간쯤 위치에 서낭나무가 있었다. 백제시대에 한 알뜰한 부부가 느티나무 옆에 주막을 차렸다. 주막은 날로 번창하고, 가축을 기르기도 했다. 쥐가 있어 고양이도 길렀는데 고양이는 쥐는 잡지 않고 나쁜 짓만 골라서 했다. 그래서 화가 난 주인이 고양이를 해쳤다. 이후 부부의 아들에게 노란 털이 나기 시작했고, 스님은 이것이 죽은 동물의 원한이라고 하며 마른 북어와 찹쌀밥을 주어 고양이를 막도록 하라고 말했다. 부부는 스님의 말대로 개에게 북어와 찹쌀밥을 잔뜩 주었다. 그러나 새벽이 되자 고양이는 없었고, 개만이 앞마당의 느티나무 옆에 쓰러져 죽어있었다.
  • 전남 >화순군

    고양이는 초상집에 못 간다
    예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구들방의 윗목에다가 시체를 놔둔다. 이때 고양이가 굴뚝을 통해 구들 안으로 들어가면 시체가 갑자기 일어나 꿋꿋이 서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시신을 마구 패서 엎어놓아야 했다. 그래서 초상집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우선 굴뚝부터 막았다. 그렇지 않으면 고양이가 굴뚝으로 들어가 송장이 살아난다는 전설이 있다. 고양이는 옛날부터 요물이라는 말이 많았으며, 자기를 해치면 반드시 복수를 한다고 한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처서 매직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더위와 씨름하는 것도 지쳐가는 도중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더위가 그치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절기 처서가 멀지 않았습니다. 처서가 지나면 햇볕이 누그러져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날씨가 이어진답니다. 조금 더 빨리 가을을 맞이하고 싶으시다면 산 속에 위치한 사찰로 떠나보시면 어떨까요?

첫 번째로 소개드릴 곳은 울산 마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동축사입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모형 불상을 모시기 위해서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되었다고 해요. 다음은 대구 비슬산의 유가사입니다. 유가사는 유가술이라는 도술을 계승했다고도 전해지며 소원을 들어주는 괘불이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과천 관악산에 자리한 연주암입니다. 연주암은 관악산의 아슬아슬한 절벽에 위치해 있습니다. 절벽에서 풍경을 쳐다보면 남은 더위도 다 날아가 버릴지도 몰라요~

이렇게 산 속에 위치한 사찰들을 알아봤는데요. 여름의 끝자락에서 도시를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 이른 가을을 즐겨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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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공주시

    화엄십찰의 하나, 공주 갑사
    갑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중장리에 있는 화엄십찰 중 하나로, 갑사(岬寺)·갑사사(甲士寺)·계룡갑사(鷄龍甲寺)·계룡사(鷄龍寺)라고도 한다. 갑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자장 창건설, 혜명 증축설, 아도 창건설, 혜명 창건설, 아도 창건· 혜명 증축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전해온다. 갑사의 가람 배치는 대웅전 구역과 대적전 구역으로 양분되어 있으며, 보물로 지정된 갑사철당간 및 지주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 충북 >괴산군

    조선시대 자복사찰의 하나였던 괴산 공림사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에 있는 공림사는 신라 경문왕 때 자정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공림사는 괴산 지역의 대표적인 명찰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 자복사찰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대웅전을 제외하고 모든 전각이 소실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다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현재 공림사의 건물은 1981년부터 1994년 사이에 중창 불사를 통해 조성한 것이다. 1776년 조성된 범종이 공림사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유산이다.
  • 경남 >양산시

    원효가 중국에서 온 천 명의 승려들을 맞이하여 창건한 양산 내원사
    내원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위치한 사찰로, 천성산(千聖山)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내원사는 신라 시대 문무왕 때 원효가 대둔사(大芚寺)를 창건하고 그 주위에 세운 89개의 암자 가운데 하나로, 대둔사는 원효가 중국에서 자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찾아온 천 명의 승려들을 위해 세운 절이다. 천성산 내원사 일원은 그 주변 산세가 아름다워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 전북 >순창군

    꿈에서 금부처를 본 자리에 지은 순창 불암사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석산리에 위치한 우두산에는 불암사터가 남아 있다. 이 절은 150여 년 전에 폐사하여 지금은 절터와 석상만이 남아 있다. 불암사와 관련하여서는 한 스님이 절을 짓기 위한 명당을 발견하였으나 대웅전 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었는데, 꿈에서 보살이 자리를 알려주어 그곳에 대웅전을 지었다는 연기설화가 전해진다.
  • 충남 >금산군

    신음산 국사봉 아래 위치한 금산 신안사
    충청남도 금산군 제위면 신안리에 있는 신안사는 전성기일 때 3,0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했던 거찰이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전각 대다수가 소실되어 현재 대광전·극락전·요사채만 남아 있다. 신안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무염 창건설, 자장 창건설, 조구 창건설 등 자료마다 서로 다른 내용으로 되어 있어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신안사는 가람이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신안사 일원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밖에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 경기 >과천시

    관악산의 아슬아슬한 절벽에 자리 잡은 과천 연주암
    관악사는 경기 오악의 하나로 연주암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사찰과 암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연주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절 이름은 관악사였다. 연주암의 유래담에 의하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관악사에서 연주암으로 절 이름이 바뀐 것으로 여겨진다. 연주암에는 효령대군이 세웠다는 삼층석탑과 서울 교외에서 보기 드문 절경을 자랑하는 연주대가 있다.
  • 경기 >의왕시

    산세가 아름다운 청계산에 자리한 의왕 청계사
    청계사는 서울의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청계산에 있다. 청계사가 대찰의 모습을 갖춘 것은 평양부원군 조인규가 거액을 들여 중창하면서부터이다. 1689년과 1876년에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기도 하였다. 1955년 중창을 시작하면서 당우를 회복하였다. 청계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동종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목판, 신중도, 청계사사적기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청계사조정숙공사당기비 등 다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 경기 >여주시

    원적산에 자리한 여주 대성사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외평리에 있는 대성사는 1941년 최주희가 중창한 사찰이다. 절에서 출토된 유물로 보았을 때 절은 고려시대 초기를 전후로 하여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성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화강암으로 조성된 포초골 미륵좌불이다.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포초골 미륵좌불은 1819년에 조성된 것이라 하나, 불상의 양식적 특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 울산 >울주군

    승려 연회가 문수보살을 만난 자리에 세워졌다는 울주 문수사
    문수사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청량읍에 위치한 사찰로, 문수보살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문수산에 자리 잡고 있다. 문수산은 본래 ‘영축산’과 ‘영취산’으로 불렸는데, 이곳의 산세가 청량하고 아름다워 문수보살이 와서 머물렀다고 한다. 신라 시대 원성왕 때 연회 국사(國師)에 의해 문수사가 창건되었다는 설에 따르면, 연회가 왕이 내려주는 벼슬을 피해 도망가던 중 문수보살을 만난 자리에 세워진 절이 바로 문수사이다.
  • 울산 >동구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모형 불상을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는 울산 동축사
    동축사는 울산광역시 동구 동부동에 위치한 사찰로, 마골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동축’은 인도의 동쪽에 지은 절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고, ‘동쪽에 있는 부처의 나라’를 뜻하는 이름이라고도 한다. 『삼국유사』에는 인도의 아소카왕이 보낸 모형 불상을 안치하기 위해 신라 시대 진흥왕 때 창건된 사찰로 기록되어 있다.

한여름에 태어난, 8月의 지역인물

8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 태어난 한국의 찬란한 지역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강렬한 마음은 마치 한 여름의 햇빛 같았습니다.

염상섭은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써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이후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담은 사실주의 소설들을 발표했습니다.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으로서 일제 강점기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고, 그의 시는 강한 민족의식을 담고 있습니다. 김법린도 불교계의 지성으로서 한용운과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청준은 '서편제'를 쓴 소설가로, 전통 예술과 현대 사회의 갈등을 다루며 한국 문학의 중요한 축을 이룹니다.

문학 분야 외에도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일제 강점기 조선인들에게 큰 자부심과 희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차미리사는 여성 교육과 권익 신장에 힘쓰며 근화학원(현 덕성여대)을 설립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는 한국 최초의 신부로, 천주교 전파와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으며 순교했습니다.

이들은 한국 사회와 문학, 스포츠, 종교, 교육 분야에서 큰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그들을 기억하며 잊지 말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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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올림픽은 전 세계의 운동선수가 꿈꾸는 무대다. 올림픽의 기원이기도 한 마라톤은 올림픽의 가장 마지막에 치러지는 상징적인 경기이다.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작은 체구의 동양인 청년이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이었다. 가난한 가정에서 성장한 그의 삶의 시작과 끝은 오직 ‘달리기’였다. 손기정 선수는 자신이 좋아했던 ‘달리기’로 국민들을 위로하고 우리의 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메달을 받으면서도 침울한 표정을 지었던 손기정은 그 시대를 살아갔던 우리 민족이 겪었을 혹정과 차별을 대변하는 존재였다.
  • 충남 >당진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며 신부가 된 지 1년만에 병오박해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가문은 충청남도 당진에 정착해 살아왔으며 4대에 걸쳐 천주교를 믿어왔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김대건은 유네스코 제40차 총회에서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는데, 2021년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던 해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식민지 시대 서울 중산층의 모습을 그린 소설가 염상섭
    한국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쓴 염상섭은 서울 종로구에서 출생하여 서울 성북동에서 타계한 서울의 소설가이다.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당시 문단의 두 흐름이었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서 중립적인 노선을 견지하며 작품활동을 했다. 대표작으로 『삼대』가 있으며 식민지 시대 서울 중산층의 세대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당대 표준어가 잘 나타나 있고, 서울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재현되어 있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 전남 >장흥군

    '서편제'를 쓴 소설가 이청준
    이청준은 문학적 완성도가 높고 대중적인 소설을 쓴 작가이다. 「이어도」, 「잔인한 도시」, 「비화밀교」, 「자유의 문」 등을 썼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진 「서편제」를 썼다. 「서편제」는 「남도사람」이라는 연작소설의 첫번째 소설로 전남 장흥과 보성 일대에 성행했던 판소리 유파 서편제를 소재로 했다. 「선학동 나그네」, 「눈길」, 「석화촌」, 「축제」등 그의 수많은 소설들이 고향 장흥의 산하와 서정을 바탕으로 한다.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 마을은 이청준을 기리기 위해 선학동으로 마을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 서울 >도봉구

    사람으로서의 여성, 주체를 꿈꾸다. 차미리사
    차미리사(車美理士, 1879~1955년)는 조선의 여느 여자아이와 다름없이 홀대를 받으며 태어났다. 여성인권은커녕 남존여비가 당연시 되었던 시절, 그는 섭섭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였으나 2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상동교회에서 미리사라는 세례명과 함께 근대 여성으로의 삶을 시작했다. 선진국으로 떠난 유학을 떠나 우리나라 여성의 성장은 생계와 직결된 것이며, 한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도 여성에 대한 교육은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했던 그는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여성 교육을 외치고 근화학원을 세웠다. 현 덕성여자대학교는 그가 설립한 근화학원의 후신으로서 현재까지도 그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다.
  • 서울 >성북구

    독립운동가이자 승려, 시인 한용운
    한용운은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이며 시인이다. 백담사에 입산하여 승려가 된 후, 불교와 동양철학을 연구하며 조선불교에 대해 날카롭게 분석하기도 하였다. 1919년 3‧1운동 독립선언 준비과정에서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뤘다. 대표적인 시집 '님의 침묵'을 간행하여 문단의 호평을 받았다. 서울 성북구에는 한용운이 1933년에 짓고 거주했던 '심우장'이 남아있다.
  • 부산 >동래구

    독립 의지를 불태운 불교계의 지성 김법린
    김법린은 경상북도 영천군 신녕면 치산리 출신으로 1남 1녀 중 장남이다. 호는 범산(梵山), 법명은 법윤(法允)이었는데 출가하여 법린(法麟)으로 개명하였다. 김법린의 본명은 김진린(金振麟)이다. 김법린은 1919년 범어사 허영호(許永鎬) 등과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시위를 결행하였다. 이후 일제 감시를 피해 김법린은 상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 프랑스로 유학 후 1929년 조선어사전편찬회의 준비 위원이 되었다. 1930년에는 만당에 가입하여 1933년부터는 다솔사 등에서 강의하여 범어사 불교전문강원이 되었다. 김법린은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945년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법린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독립을 이끈 여성들

모두가 간절히 희망하던 나라의 독립이 이루어진 지 8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광복이 오기까지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기도 했는데요.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조들을 기리며 2026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광복절의 의미와 함께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아볼까요?

권애라는 개성군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그녀는 9개월의 수감 기간동안 유관순과 의기투합하여 수감자들과 만세운동을 도모하기도 하였죠. 기생 출신으로 함께 만세운동을 벌인 김향화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치마폭에 태극기를 감추고 수원경찰서 앞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일화는 당시 여성들이 활동하기 힘든때에도 독립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한국의 최초 여성 비행사였던 권기옥도 있습니다. 숭의여학교에 다닐 당시 수학 교사였던 박현숙의 권고였던 비밀결사대 송죽회 가입을 시작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고 합니다.

광복절은 대한민국의 5대 국경일 중 하나로 '영예롭게 회복한 날'을 뜻한답니다. 광복이 오기까지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를 겪은 만큼 일본으로부터 해방되어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을 축하하는 날이니 더욱 뜻깊은 날입니다. 자유와 독립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분들의 희생에 감사함을 표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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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한국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
    권기옥은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숭현소학교를 졸업하고 숭의여학교를 1919년 졸업하였다. 숭의여학교 졸업반 때 3.1운동이 일어났다. 권기옥은 수학 교사 박현숙의 권고로 숭의여학교 비밀결사대 송죽회(松竹會)에 가입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1920년 상해로 망명하여 1923년 중국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하여 졸업하고 한국 최초 여류비행사가 되어 중국 국민군에서 비행사로 활약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권기옥에게 대통령 표창, 1977년 건국 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경기 >여주시

    남편 엄항섭과 함께 일제에 항전한, 연미당
    연미당(延薇堂)은 용정에서 태어나 한국 독립운동 중심지인 용정(龍井)과 상해(上海)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이다. 1927년 엄항섭과 결혼하여 독립운동가의 내조뿐만 아니라 여성 독립운동가로서의 활동을 활발하게 하였다. 상해여자청년동맹 결성에 참여하여 임시위원으로 적극적인 활동하였고, 한국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하여 조직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광복이 되어 귀국 후 가족을 돌보다 6·25전쟁 때 엄항섭이 납북되자 월북자 가족으로 오해받아 평탄치 못한 세월을 보냈다. 1981년 연미당은 7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연미당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경남 >하동군

    하동 여성독립운동가의 중심, 조복금
    조복금은 경상남도 하동 출신으로 근우회 활동을 하며 하동지역 여성운동, 부산 노동항일운동에 참여하였다. 고향 하동에서 여성단체와 청년단체 활동을 하던 조복금은 1927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대구지방법원에서 불기소(不起訴) 처분으로 풀려났다. 이듬해 조복금은 근우회 하동지회를 조직하였고, 1931년 부산으로 옮겨가 조선방직회사 직공으로 노동운동을 하였다. ‘부산적색노동조합협의회 사건’에 연루되어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고,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사건에도 연루되어 불기소 처분을 받기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아낙인들 나라 사랑 못 할쏘냐, 대한민국애국부인회(大韓民國愛國婦人會)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독립운동 중 투옥된 인사와 그 가족의 구제를 목적으로 조직된 혈성단애국부인회와 독립자금 모금을 위해 결성된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의 두 단체가 1919년 6월경 통합하여 결성한 항일여성 비밀결사이다. 같은 해 10월에는 3.1운동으로 감옥에 갔다 온 김마리아 등이 가세하면서 조직이 재편·강화되었다. 전국에 지부를 설치하고 임시정부에 6천 원의 활동 자금을 보내기도 하는 등 활동을 하였다. 그러나 11월 말 내부의 밀고로 인해 조직이 탄로 나면서 간부들이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고 형옥(刑獄)에 갇히면서 막을 내렸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정종명, 여성과 민족해방의 ‘산파’가 되다
    정종명은 여성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해 활동한 항일 운동가이다. 중매결혼과 3년 간의 시집살이를 통해 여성의 삶이란 자유가 없는 꼭두각시 인형 같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간으로 살기 위해 간호사가 된다. 3.1운동과 어머니의 항일운동을 보며 식민지 여성이 해방되기 위해서는 민족의 해방도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종명은 여성과 민족을 억누르는 일제와 봉건 이념을 깨고 여성과 민족이 해방되는 새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산파’ 역할을 한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항일 여성운동의 대모, 김마리아
    김마리아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다. 1919년 동경 유학생의 2·8독립선언에 참석한 후 독립운동을 촉구하기 위해 선언문을 국내에 가져왔다. 대한민국 애국부인회 회장으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한 후 상해로 망명했으나, 상해의 독립운동 분열에 실망하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중 여성 유학생 중심의 근화회를 조직하고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원산에서 신학을 강의하다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 강원 >춘천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의병이면서 독립군 윤희순 의사 묘소
    윤희순은 한국 최초의 여성 의병이면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16살에 춘천시 발산리에 시집을 와서 생을 마감하던 1935년 75살의 나이까지 오로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살았다. 정말 처절한 생애였다. 그러던 그가 세상을 떠나고 중국 땅에 묻혔다. 1994년 그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왔다. 처음 관천리에 그의 무덤이 있었으나 가정리 수락산 아래에 옮겨 그의 가족들과 함께 묻혀 있다.
  • 충남 >아산시

    독립운동가 이규갑의 든든한 지원자 이애라
    이애라는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던 중 독립운동가 이규갑과 결혼했다. 결혼 후 공주 영명학교와 평양 정의여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이어갔다. 1919년 3.1만세운동 전에 남편과 함께 서울로 왔고, 이후 남편이 상해로 망명한 후 일본 경찰에게 여러 차례 체포, 구금, 고문을 당했다. 또한 국내에서 애국부인회를 결성하고 여성운동을 전개하였다. 1921년 러시아 망명을 위해 천안에서 출발한 이애라는 우여곡절 끝에 조카 이민호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망명하여 이규갑을 만났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며칠 만에 사망하게 된다.
  • 인천 >미추홀구

    임시정부의 애환을 기록한 최선화
    최선화는 인천 출신으로 평양으로 이주하여 평양 정의여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1931년 이화여전 영문과 졸업하고 모교에서 교사로 활동하였다. 최선화는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수행하다 잠시 서울에 들른 양우조를 소개받고 유학을 빌미로 1936년 중국으로 건너갔다. 1937년 최선화는 김구의 주례로 양우조와 결혼하고 중일전쟁 발발하자 임시정부와 중경으로 이동하였다. 중경에 도착한 최선화는 독립운동 관련 단체 회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여성으로서 국내외 한국여성 단결·후원을 촉구하였다. 한편으로 최선화는 딸 제시를 키우며 쓴 육아일기 『제시의 일기』는 하나의 역사적 기록이 되는 소중한 자료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최선화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광주 >남구

    윤형숙, 만세운동을 하다가 팔을 잘리다
    윤형숙은 1919년 3월 10일에 광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헌병이 휘두른 칼에 팔 하나가 잘렸는데도 다른 팔로 태극기를 다시 잡고 만세를 불러서 ‘남도의 유관순’ㆍ‘제2의 유관순’으로 불린다. 3.1 만세운동으로 팔과 눈에 장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윤형숙은 이에 좌절하지 않고 한평생을 학생을 가르치고 기독교 선교와 반공운동을 활동하였다.

바다를 품은 낭만도시 목포

서남해안의 다양한 선박이 오가는 항구 도시, 목포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마음이 뻥 뚫리는 광경과 싱싱한 해산물의 맛을 보여주는데요! 지역N문화에서는 바다와 함께 사계절을 함께하는 목포의 절경과 맛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목포에는 영혼도 쉬어가는 곳이라 이름 붙여진 유달산이 있습니다. 유달산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야외 조각공원과 멋진 경치를 즐길 수 있는 대학루, 소유정, 유선각 등의 정자가 자리하고 있답니다~ 또한 유달산의 일주도로는 다도해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어 유달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유달산 주변으로는 목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목포 근대 역사관도 있어 목포의 역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절경을 보았다면 입안 가득 싱싱한 해산물도 먹어봐야겠죠! 목포를 상징하는 토산품 중 하나인 세발낙지! 세발낙지는 크기가 작아 연포탕으로도 끓여 먹고 나무젓가락에 돌돌 말아 한입에 먹을 수도 있습니다. 버릴 게 하나 없어서 다양한 음식으로 맛볼 수 있는 민어! 민어는 세발낙지와 함께 목포 5미로 손꼽히며 회로 먹으면 달콤 쫄깃함을 맛볼 수 있는데요! 껍질, 부레, 뱃살 등도 조리하여 먹기 때문에 입안은 맛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바다를 품어 사계절 푸르른 목포에서 눈과 입이 행복한 낭만을 누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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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목포시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재탄생한 목포 구 목포 일본영사관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는 1900년 지어진 구 목포 일본영사관이 있다. 이곳은 일본이 목포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후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용도 변경이 계속되다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하여 목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 전남 >목포시

    세발낙지를 탕탕!쳐서 육회에, 목포 낙지탕탕이
    산낙지를 산다. 도마에 올린다. 칼로 탕탕! 쳐내서 잘게 자른다. 토막 낸 낙지를,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둔 육회와 함께 조물조물 버무린다. 그리고 편으로 썬 고추와 생강, 참깨 등의 고명을 얹어내면 완성. 이렇게나 간단한 조리법인데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있다. 이름하여 낙지탕탕이. 도마에 산낙지를 올려두고 탕탕! 쳐낸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름은 그 놀라운 조리법만큼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이다.
  • 전남 >목포시

    그동안의 생선조림은 잊어라, 목포 병어조림
    회로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고, 조림으로 먹어도 맛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병어는 작지만, 고급생선이다. 병어는 아주 예민해서 그물에 걸리자마자 죽기에 회로 먹기는 상당히 어렵고, 대체로 냉장 보관을 해서 선어로 유통된다. 어떻게 먹어도 맛이 좋지만, 조림으로 먹으면 맛있다. 갈치조림보다 덜 비리고, 고등어조림보다 부드러워 입에서 살살 녹는다.
  • 전남 >목포시

    목포는 항구다, 서남해안의 관문 목포항
    목포항은 1897년 10월 개항장 중 하나로 개항한 항구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곡물을 비롯해 면화, 소가죽 등을 일본으로 공출하는 거점이었다. 1940년대에 남항과 북항으로 나누어졌고, 인천항, 부산항과 더불어 한국의 3대 항구가 되었다. 해방 이후 일본과 중국과 교역이 둔화하면서 항구의 기능이 쇠퇴하였다. 현재 목포항은 총 8개의 부두로 북항부두, 삼학부도, 대불부두, 동양시멘트 전용두부, 남항부두, 여객부두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 부두별 기능이 특화되어 있고, 주변 공업단지의 항만기능도 수행하고 있다.
  • 전남 >목포시

    '목포의 눈물' 노랫가락이 들리는 목포의 유달산
    유달산(鍮達山)은 목포시에 있는 목포의 지역상징과도 같은 산이다. 산의 높이는 해발 229.6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산이 매우 아름답고 빼어나서 '호남의 금강산'이라 하여 개골(皆骨)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영혼마저 이 산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고 하여 영달산(靈達山)이라 부른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그런 지명이 붙었을까. 산에 오르면 <목포의 눈물>노래비가 있어 음악을 들으면서 삼학도를 바라보면 애수에 금방 젖는다. 정상인 일등암(一等巖)에서 다도해를 보면 대한민국이 정말 걸작임을 새롭게 깨닫는다.
  • 전남 >목포시

    최고의 여름 보양식, 민어탕
    민어탕은 맑은장국에 민어 토막을 넣고 끓인 국이다. 여름에 가장 맛이 오르는 민어로 끓인 민어탕은 복날 보신탕 대신 먹었던 보양식으로도 유명한 향토 음식이다. 옛날에는 인천 앞바다가 민어의 주요 산지였지만 현재 민어는 북상하는 어군이 많지 않아 대부분 전남 해안에 머물고 있다.
  • 전남 >목포시

    아홉 가지 먹거리와 함께 즐기는 목포시의 목포구경
    전라남도 목포시에 ‘목포구경’이 소재한다. 1930년대부터 전해지던 ‘목포팔경’을 현대에 맞게 '목포구경'으로 2015년에 새롭게 지정한 것이다. 목포시는 서해와 영산강이 만나는 여울목에 위치하고 있다. 목포항 건설로 1930년대에는 우리나라 6대 도시에 들어갈 정도였다. ‘유달산’에 오르면 서해와 목포 야경이 보이고, ‘삼학도’ 등을 비롯한 작은 섬들이 바라다 보인다. 섬과 바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배들을 여유롭게 바라볼 수 있다. 목포를 대표하는 아홉 가지 먹거리와 조화를 이룬 목포구경은 목포시를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목포시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 전남 >목포시

    유달산 자락 다순구미의 현대사 - 조선내화주식회사 구 목포공장
    조선내화주식회사 옛 공장은 1938년 일제강점기 말기에 설립됐다. 내화란 불에 잘 견디는 성질을 일컫는 말로서, 조선내화에서는 무기용 철을 생산하는 용광로를 짓는데 들어가는 내화벽돌을 생산했다. 조선내화는 해방 후 한국인에게 팔렸다. 1953년에는 이동훈이 인수하여 목포 향토기업으로서 성장했다. 조선내화는 2017년 목포 공장 내 건물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받았다. 목포시 서산·온금지구 재개발과 맞물려 갈등을 빚기도 하였으나, 2019년 현재 추가로 공장 부지를 문화재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한 상태다.
  • 전남 >목포시

    목포가 자랑하는 5味를 모두 맛볼 수 있는 청호시장
    전라남도 목포시 석현동에는 청호시장이 있다. 청호시장은 처음에는 목포역 부근에서 노점이 모였다 사라지는 ‘도깨비시장’이었다. 1999년 노점 상인들이 조합을 설립해 석현동으로 옮겨 가면서 시장을 개설하였다. 1층에는 농수산물을 비롯한 육류, 잡화 등을 취급하고 있으며, 2층은 대규모의 가구 전문 업체가 입점해 있다. 청호시장은 목포의 다섯 가지 맛이라고 할 수 있는 낙지, 보리새우, 전복, 민어, 홍어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시장이다. 최근에는 ‘모바일 청호시장’이 오픈되어 스마트폰으로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다.
  • 전남 >목포시

    상인들이 적금을 부어 개설한 목포자유시장
    전라남도 목포시 산정동에는 목포자유시장이 있다. 목포시는 1800년대 후반 일본에 의해 개항하며 큰 변화를 겪은 도시이다. 목포자유시장은 목포역 뒤편에 형성된 도깨비시장으로 시작해 상인들의 적금으로 건물을 개축하여 오늘날에 이른다. 세발낙지와 홍어를 중심으로 한 수산물을 특히 많이 취급하고 있다.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는 남진야시장을 운영하여 다양한 먹거리를 선보이고 있다.

올림픽으로 보는 우리나라 민속놀이

2024년 7월 26일, 제33회 하계 올림픽이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습니다.다들 신나게 잘 즐기고 계신가요?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이 모여 스포츠 정신을 기리고, 각국의 문화를 교류하는 축제입니다. 오늘은 올림픽 종목과 유사한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를 알아볼까요?

서양의 하키와 유사한 장치기, 한국의 필드하키인 격구, 모래판에서 즐기는 씨름놀이 등이 있습니다. 대결 구도로 이뤄지는 민속놀이 이외에도 여러가지 바람을 위해 행해지던 민속놀이도 있었습니다. 마을의 평안을 위해 초파일마다 성을 돌던 강화산성 성돌이 놀이가 있었죠~

이런 다양한 민속놀이 덕분에 지금도 우리가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즐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남은 파리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하며, 전 세계인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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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광주시

    400년의 전통을 지닌 광주 광지원해동화놀이
    광주 해동화놀이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중부면) 광지원리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 주민이 달맞이를 위해 해동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정초의 집단 놀이 형태이다. 해동화놀이는 지역에 따라 달집태우기(호남), 동화제(충남), 동홰놀이(경기도), 화옹이(경기도 여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 강원 >양구군

    밭농사 중심의 생활환경이 만들어낸 양구 돌산령 지게놀이
    양구 돌산령 지게놀이는 돌산령을 오르내리며 꼴을 베던 초동들이 지게를 지고 다니면서 놀던 놀이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양구의 자연적 특성과 밭농사 중심의 생활환경이 만들어낸 유희라 할 수 있다. 지게걸음 대결과 지게로 만든 상여놀이를 벌이는데, 진 편에서는 이긴 편의 땔감을 대신 짊어져야 했다.
  • 서울 >마포구

    콩을 넣은 주머니를 가지고 노는 콩주머니놀이
    오자미라는 일본어 명칭을 가지고 있는 콩주머니놀이는 주머니 안에 콩을 넣어 만든 놀이도구를 가지고 노는 것을 말한다. 물론 콩 이외에 다양한 곡물과 모래를 가지고 주머니를 만들기도 한다. 이 놀이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혼자서 저글링식으로 주고받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러 사람이 두 팀으로 나눠 피구 형식으로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
  • 전국

    서양에는 하키, 우리나라에는 장치기!
    우리나라에는 서양의 하키와 유사한 놀이가 있다. ‘공치기’, ‘얼레공치기’, ‘타구’ 등으로 불리는 장치기다. 이 놀이의 한자어는 봉희(棒戱)다. 이 놀이는 격구에서 출발했다고 하지만 나무를 하러 다니는 초동들의 놀이라는 점에서 아닐 수도 있다. 이 놀이는 나무 채를 이용하여 상대방의 골대에 골을 넣는 놀이이다. 골은 솔방울이나 나무 옹이가 주로 사용되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스포츠 형태로 바뀌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놀이문화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 전국

    한국의 필드하키 격구
    격구는 오늘날의 스포츠의 하나인 하키와 닮은 점이 많은 놀이다. 말을 타고 하는 놀이가 있는가 하면 말이 아닌 도보로 이 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구문이라 불리는 골대를 세워놓은 다음 그 안에 나무로 제작한 공을 넣는 놀이다. 일정한 점수를 얻으면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놀이는 페르시아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이 놀이가 무과의 시험으로도 사용되었다.
  • 경기 >광주시

    여우가 등장하여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여우잡기
    우리나라 아이들이 비교적 일찍 접하는 여우잡기는 ‘여우놀이’로도 알려져 있는 놀이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로 시작되는 이 놀이가 지닌 진정한 의미는 노래에 맞춰 몸 동작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놀이를 하는 대상이 주로 어린아이들이라면 유치원이든 초등학교든 간에 반드시 즐기는 놀이라 할 수 있다. 이 놀이의 핵심은 술래인 여우와 다른 아이들이 노랫말을 주고받다가 여우가 밥을 먹는 과정에서 개구리 반찬이 살았다고 하면 술래를 피해 도망가는 것이다. 도망을 치다 잡힌 아이는 다음번 술래가 된다.
  • 서울 >마포구

    남자 아이들의 모의 전투 전쟁놀이
    전쟁놀이는 군사놀이 혹은 병정놀이로 불린다. 이 놀이는 모의적으로 행해지는 놀이이긴 하지만 놀이에 따라서는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이 가능하다. 다만 이 놀이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다소 모호한 부분이 없진 않다. 전쟁놀이의 일반적인 양상은 두 편으로 나눠 각자 자신들의 진영[진]을 구축하고, 시작과 함께 총을 쏘거나 혹은 칼싸움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다. 또 다른 놀이에는 전쟁 과정에서 남겨진 탄피 등을 이용하여 놀기 등도 있다.
  • 서울 >마포구

    원두막의 정겨운 풍경을 재현한 수박따기놀이
    수박따기놀이는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지는 남녀 혼성놀이다. 앵두치기와 살구치기처럼 과일의 이름이 붙은 이 놀이는 원두막의 수박을 배경으로 한 놀이라 할 수 있다. 수박을 따러 온 사람이 할멈을 꼬셔 수박을 떼어 숨겨놓은 다음 할멈이 이들을 다 찾으면 놀이가 끝이 난다. 대략 10여 명의 아이들이 참여하는 수박따기놀이는 놀이 과정에서 노래와 대화를 주고 받으며 진행된다는 점에서 모의적 속성이 무척 강한 놀이라 할 수 있다.
  • 인천 >강화군

    강화도를 대표하는 놀이, 강화산성 성돌이 놀이
    강화산성 성돌이 놀이는 강화도 지역의 옛 산성을 따라 도는 놀이를 말한다. 강화산성은 그 길이가 무려 7122m이며, 사적 132호로 지정되어 있다. 강화도 주민들은 윤달이 드는 해에 강화산성을 도는데, 특히 사월초파일에 성을 돌면 마을이 평안하고 항상 좋은 일만 생긴다고 믿었다. 요즘에는 관광객 유치를 위해 단풍드는 계절로 행사를 옮겼다. 오랫동안 중단된 놀이를 1980년대에 여러 사람들의 고증을 거쳐 새롭게 재현했으며, 지금은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강화도를 대표하는 놀이문화가 되었다.
  • 경기 >평택시

    거북이를 앞세우고 각 가정을 돌며 놀았던 평택거북놀이
    경기도 평택시에서 전승되는 거북놀이는 추석 무렵에 행해지는 명절놀이로서 직접 제작한 거북이를 앞세우고 가정을 돌며 고사를 지내주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주로 아이들에 의해 진행되는 평택거북놀이는 거북이의 옷을 만드는 과정을 시작으로 길놀이-수문장굿-용왕굿-터주굿-조왕굿-마당놀이 순으로 진행된다. 음성과 이천, 천안 등에서 행해지는 거북놀이와 여러모로 유사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놀이 과정이 짜임새가 좋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놀이라 할 수 있다.

[광복 81주년] 그날의 함성, 그날의 기억

1910년 허망하게 나라를 잃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며 고통과 수난의 암흑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일제는 식민지배정책으로 무단통치를 내세워 강압적인 통치를 하였는데요. 가장 대표적으로 헌병을 곳곳에 포진해 치안을 확보하고 즉결처분의 권한으로 한국인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는 등 폭력을 행사했답니다. 학교에선 칼을 찬 교사들이 수업을 하며 공포감을 조성했고, 언론의 자유를 박탈하여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하곤 했지요. 그러나 3.1운동을 기점으로 일제는 무단통치만으로는 한국인들을 제대로 통치하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1920년대에는 문화통치, 193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는 민족말살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투쟁한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마침내 빛을 회복했습니다. 오늘만큼은 그들을 기리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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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북구

    따스한 조화를 꿈꾸다, 여운형
    여운형(呂運亨, 1886~1947년)은 경기도 양평군의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의 청년들을 계몽하고 교육하는데 힘썼다. 그는 국내에서 항일결사단체인 신민회에서 활동하고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신한청년당의 발기인으로서 참여했던 여운형은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취임하였는데, 그가 사장으로 있을 때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인해 신문이 폐간되기도 했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던 그는 광복을 맞아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좌우합작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47년 극우파 한지근의 총격을 받아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독립의지에는 남녀가 없다, 지복영
    지복영은 아버지 지청천(池靑天)과 어머니 윤용자의 2남 2녀 중 둘째로 서울 출신이다. 지청천은 광복군 총사령관이었고 ‘복영’이라는 이름은 아버지 지청천을 만나기를 소망한다는 의미로 지은 것이다. 지복영은 1939년 한국광복군진선청년공작대, 1940년 광복군 입대, 1944년 대적방송 요원으로 활동을 하였다. 지복영은 1995년 『역사의 수레를 끌고 밀며- 항일독립운동과 백산 지청천 장군』을 발간하여 지청천과 함께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지복영에게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하였다.
  • 경기 >시흥시

    한국광복군의 참모, 박시창
    박시창은 백암 박은식의 장남으로 경기도 시흥 출생이다. 아버지의 민족정신 영향을 많이 받아 오성학교를 졸업하고 블라디보스토크에 갔다. 이곳에서 박은식을 수행하기 시작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함께 독립운동을 하였다. 상해에서 「시민보」를 발행하였고,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하였다. 또 무한한인청년회를 조직하기도 하였고, 중국군에 입대하여 대일전에서 전공을 세웠다. 광복 후, 개인 자격으로 귀국하여 국군 창설에 참여, 6·25전쟁에 참전하고 육군 소장으로 1959년 예편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박시창에게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 울산 >북구

    국내 최초 독립군 사령관 박상진
    고헌 박상진은 한국 최초의 판사가 되지만 독립운동가의 재판을 맡을 수 없어 그만둔다. 군사·정치·문화 활동이 금지되고 공포분위기 속에서 식민통치를 하던 1910년대에 ‘대한 광복회’를 만들어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항일운동가이다. 실력 양성과 외교론과 같은 소극적 항일운동이 중심이었던 때에 그는 독립 전쟁을 준비했다. 군대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군자금을 조달하고, 친일 인사들을 처단하는 의열 투쟁을 벌였다.
  • 경북 >칠곡군

    대구사범학교 항일비밀결사 ‘다혁당’ 당수 권쾌복
    권쾌복은 경상북도 칠곡 출신으로 1939년 ‘왜관사건’ 과 관련하여 비밀결사 ‘백의단’을 조직하였으나 즉흥적 조직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하였다. 1941년 권쾌복은 선배들이 결성한 ‘문예부’와 ‘연구회’ 조직이 졸업생 중심으로 구성되어 조직 존속의 문제가 생기자 유흥수의 제안을 받아들여 두 조직을 계승한 ‘다혁당’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다. 권쾌복은 다혁당의 당수였으나 조직이 결성된 지 5개월 만에 발각되어, 포항에서 군사 훈련을 받던 중 체포되었다. 권쾌복은 다혁당의 당수로 3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광복을 맞이하였다. 권쾌복은 광복 후 언론계에 몸담았고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권쾌복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하였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전국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투쟁의 중심,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는 1919년 3.1 운동 이후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직할 지도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러시아의 노령과 서울, 중국 상해 등 세 곳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곧 통합운동이 추진되어 1919년 9월 상하이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보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30년대 한인애국단의 의열활동, 1940년대 한국광복군 창설과 대일항전 등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항일운동의 핵심기구로 활약하였다.
  • 강원 >춘천시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남긴 노래들, 윤희순 의병 가사집
    『윤희순 의병 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지은 노래를 모아 만든 가사집이다.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윤희순은 당시 사대부 아녀자의 신분으로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중들에게도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구국활동에 전념한 인물이다. 특히, 일제에 저항하거나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돕자는 내용의 가사를 지어 사람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일조하였다.
  •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 영원한 민족의 지도자가 잠든 곳
    백범김구기념관은 백범 김구 선생(1876~1949년)의 묘역이 있는 용산구 효창 공원 안에 위치한다. 우리 민족의 큰 스승이라고 일컬어지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사상과 정신을 알리고,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삼기 위해 2002년 백범김구기념사업회에서 설립했다. 국민 필독 도서라 이야기되는 ‘백범일지’는 물론, 김구 선생이 썼던 물품과 지도, 사진 등에서 우리가 잘 몰랐던 근현대 역사와 김구 선생의 삶, 그리고 독립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김상옥
    김상옥은 서울 출신으로 가정형편이 좋지않아 어려서부터 생계를 도와야 하였으나 배움에 대한 정열로 야학에서 주경야독하였다. 김상옥은 약 행상과 철물점 경영으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비밀결사 광복단을 조직하였다. 김상옥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것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겪으면서부터이다. 이후 김상옥은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행하여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1920년 중국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무장투쟁에 나섰다. 김상옥은 1922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세간을 놀라게 하였고 조선총독 주살을 계획하였으나 밀정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쫓겼다. 그리고 효제동 이혜수의 집을 포위한 무장경찰과 결전을 벌이고, 탄약이 떨어지자 마지막 한 발을 자신의 머리에 쏘아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김상옥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다들 한 번쯤 들어보신 적 있으실 텐데요! 고래는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 바다에 출현했다고 해요. 신석기 시대의 반구대 암각화에서도 고래가 등장하니 아주 오래됐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그럼, 우리나라에서 '고래'하면 떠오르는 도시는 어디인가요? 울산광역시가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서 말한 반구대 암각화도 울산에서 발견되었고 고래잡이의 중심지도 울산의 장생포였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장생포는 고래문화특구를 구성했는데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고래바다여행선으로 이뤄져 있다고 해요. 특히 고래바다여행선 배를 타고 나가면 고래를 직접 볼 수도 있다고 하는데요. 운이 좋으면 고래를 볼 수 있다고 하니 고래를 좋아하신다면 도전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혹시 못 보셨다고 해도 아쉬워 마세요. 고래를 보지 못했을 경우 고래생태체험관에서 40% 할인된 가격으로 돌고래를 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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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남구

    먹어는 봤나요? 호른호른, 야들야들, 쫄깃한 고래고기
    장생포 ‘고래 문화마을’은 포경산업이 성황을 이루었던 60~70년대의 마을 모습을 재현했다. 당시 장생포 항구는 우리나라 최대 포경항이었다. 1899년 러시아 태평양 포경회사가 고래를 해체하는 장소로 선정한 이래 한국의 대표 포경기지였던 셈이다. 이 당시에는 해체한 고래를 주로 일본으로 수출했다. 그렇지 못한 부위는 장생포 사람들이 먹었다. 소금을 넣고 삶아서 수육으로 먹거나 이것저것 부위별로 섞어 탕도 끓여 먹었다. 그때만 해도 고래고기는 돼지나 소가 없었던 바닷사람들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 울산 >남구

    민중음식 고래고기
    고래고기가 보편화된 시기는 6·25전쟁과 복구기간으로 알려져 있다. 피란민들이 많았던 경남지방에서 고래고기는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유일한 포경항이었던 장생포는 경상도 일대에 고래고기를 공급하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 포경전진기지로 영화를 누렸지만, 포경금지로 쇠락의 길을 걸어왔던 울산 장생포 일대는 고래문화특구로 조성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울산 >남구

    울산 장생포고래박물관, 고래가 춤추는 곳
    장생포고래박물관은 과거 고래잡이가 성했던 장생포에 세워진 국내 유일의 고래 전문 박물관이다. 2005년 5월 ‘제57차 국제포경위원회 연례회’의 울산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2005년에 설립됐다. 1986년 이후 금지된 포경 문화를 수집, 보존, 전시, 교육하는 역할을 한다. 전시 공간은 실내외에 마련됐는데 실물 고래의 골격, 고래잡이의 역사와 해체장의 모습, 고래 관련 영상, 고래 체험 코너, 포경선, 야외 전망대 등을 경험할 수 있다.
  • 울산 >북구

    고래 속에 들어갔다 살아 온 사람
    ‘고래 속에 들어갔다 살아온 사람’은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첫 번째, 어느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배와 함께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죽지 않고 살아남은 어부는 주머니 속 칼로 고래 뱃속을 이곳저곳 찔렀고 상처를 입은 고래는 죽어서 해안가로 떠내려온다. 이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참봉 영감’이 고래를 쫓아 작은 배를 타고 오지만 오히려 먹혀버리고 만다. 배를 삼킨 탓에 고래는 죽고 만다. 하지만 고래와 달리 살아남은 영감은 주머니 속 칼로 고래를 도려 먹는다. 이후 사람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영감은 도리어 내가 잡은 고래라고 소유권을 주장한다.
  • 울산 >남구

    수천 년간 울산 사람들의 입맛을 지킨 장생포 고래고기
    장생포 고래고기는 육지의 소고기에 비견될 정도로 부위별로 12가지 맛을 자랑하는 고래고기로 만든 육회ㆍ수육ㆍ불고기ㆍ두루치기ㆍ찌개 등 다양한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 울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울산 장생포항의 고래고기 전문음식점을 중심으로 1970년대까지 호황을 누리던 고래고기 요리는 1986년 이후 상업포경이 금지되면서 현재는 어망에 혼획된 고래 등에 한해 공급 및 판매가 허락되어 귀한 음식으로 대접받고 있다.
  • 울산 >남구

    일제강점기 한해 100여 마리씩 잡은 고래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부터 고래사냥을 하였으나 근대적인 포경은 대한제국기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독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동양포경회사가 포경을 독점하여 한반도 해안에서 한해 평균 100여 마리의 고래를 잡았다. 고래는 고기와 기름 등이 수요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포경선이 모이는 곳은 울산 장생포였다. 이외 제주도 서귀포에도 고래잡이 전진기지가 있었다. 장생포항의 향도(向島)나 서귀포에는 고래공장도 있었다. 1978년 우리 나라는 국제포경위원회에 가입하였으며 이때부터 고래의 포획대상 종류 및 조업시기 등에 제한을 받았고 1985년 11월 1일부터 포경어업이 금지되었다.
  • 울산 >남구

    고래잡이의 기지 장생포에서 열리는 '울산고래축제'
    울산고래축제는 고래를 테마로 한 축제로, 고래테마공원 1호인 장생포고래문화마을과 고래문화특구인 장생포 일원에서 개최된다. 장생포에는 고래박물관, 고래바다여행선, 고래생태체험관, 고래문화마을 등 고래와 관련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다. 울산고래축제는 고래와 바다환경을 보호하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축제를 표방하고 있다.
  • 울산 >남구

    1월-삶의 여정을 위한 별식, 고래고래 고래국수(허경숙 할머니)
    고래잡이 금지되고 마을사람들은 하나둘 장생포를 떠났다. 그러나 장생포 마을에는 다른 삶을 위해 떠난 사람과 여전히 다른 삶을 위해 떠나지 않은 사람으로, 삶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다. 장생포에 남아계신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별식은 잔치국수이다. 잔치국수라는 별식은 장생포에서 생산하는 특산품인 '고래고래 국수'로 삶아 그 특별함을 더한다.
  • 울산 >울주군

    고래가 전해주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위치한다. 이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되었는데, 판판한 바위 면에 단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바다 동물과 육지동물, 사냥 장면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바위의 왼쪽에는 바다 동물을 수직방향으로 배치하여 역동성을 살렸고, 오른쪽에는 육지 동물을 수평 방향으로 배치하여 생동감을 나타냈다. 암각화 그림은 주제에 따라 동물그림, 인물그림, 도구-사냥 그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특히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새겨져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유적으로 인류의 해양어로문화를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 울산 >북구

    고래를 팔아서 산 울산광역시 북구의 고래논
    울산광역시 북구 어물동에 ‘고래논’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금천천 상류로 아무리 가물어도 물 걱정이 없는 논이라고 해서 ‘고래논’이라고 한다. 옛날 주전동에 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어부는 전마선(傳馬船)을 타고 고기잡이를 하러 바다로 나갔다. 그런데 큰 고래 한 마리가 나타나 어부와 전마선을 통째로 삼켜 버렸다. 어부는 허리춤에 차고 있던 짧은 칼로 고래 뱃가죽을 찔러 고래 배에서 나올 수 있었다. 마을로 돌아 온 어부는 주민들과 함께 죽은 고래를 팔아서 논을 샀는데, 그 논이 고래논이다.

무더운 여름, 서점으로 북캉스 떠나자!

'북캉스'는 북(Book)과 바캉스(Vacance)가 합하여진 단어로, 책을 읽으며 휴가를 즐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캉스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조용하고 안정적인 휴가를 선호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코스로 꼽히는데요. 집에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곳이나 또는 여행지에 방문하여 서점에서 색다른 북캉스를 즐겨 보는 건 어떠세요? 잠시나마 스마트폰은 내려놓고, 책을 통해 나만의 색다른 감상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리고 어떤 책을 읽어야 좋을지 고민하는 여러분! 지역N문화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서점 이야기를 통해 어떤 책이 좋을지 한 번 살펴보는 걸 추천해 드려요. 이번 여름은 북캉스로 느긋하게 쉬어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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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중구

    음악과 추억이 깃든 대구 헌책방거리의 ‘월계서점’
    월계서점은 차석규가 1954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개점한 서점이다. 차석규로부터 3대를 지나 현재 서점은 김기철이 운영하고 있다. 월계서점은 헌책뿐 아니라 새책도 구비하고 있다. 대구 헌책방골목에는 월계서점을 비롯한 4개의 서점만 남아 헌책방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 인천 >서구

    평범한 동네서점의 평범한 오늘 - 인천 서구 ‘동아서점’
    동아서점은 인천 서구 마전동에 위치한 작은 서점으로, 2001년 4월 개점한 이래 인근 주민들의 독서 생활과 공부를 책임져왔다. 지금도 주요 품목은 중고등학생들의 학습지와 문제집이지만, 동네서점 에디션이나 노벨문학상 수상작도 발 빠르게 갖추고 있는 서점이다. 온라인 및 대형서점에 밀려 한동안 멀어졌던 동아서점에 오랜만에 방문한 기록이다.
  • 광주 >동구

    골목 끝의 변방과 현장, 광주 동네책방 ‘소년의 서’
    광주광역시 충장로 광주극장 옆골목으로 들어와 굽이굽이 여행하듯 걸어가면 '소년의 서'라는 작은 책방이 나타난다. 인문사회화학예술서점으로 광주 오월 관련 책들, 형제복지원 책, 여성 관련 책들, 연극에 관한 책 등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들도 진열되어 있다. 2016년에 문을 열었지만 주인장 임인자 씨가 서울변방연극제 예술감독, 형제복지원 생존자 모임 총무 등으로 거리에 나가 있느라 문이 자주 닫혀 있다. 가기 전에 인스타그램으로 확인해보는 게 좋겠다.
  • 충남 >부여군

    이야기가 물든 곳, 부여 송정그림책마을
    충청남도 부여군 송정그림책마을은 2010년에 한국전통문화학교 학생들의 도움으로 부여군 최초의 벽화마을이 되었다. 그러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그림책 읽는 마을 찻집 조성 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그림책미술관시민모임의 컨설팅으로 마을에서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23명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엿한 작가로 그림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송정그림책마을의 언덕 위에는 오래된 야학당이 있다. 지금은 비어있지만, 광복 전후로 글을 모르는 주민들에게 글을 가르친 곳이고, 이 덕분에 지금의 송정그림책마을이 있게 되었다는 상징 같은 곳이다.
  • 서울 >서대문구

    홍익문고, 소중한 것은 시간을 넘어 이어진다
    홍익문고는 박인철이 1957년 노점책방으로 시작하여 1960년 가게를 얻어 개업하였고, 1978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2번지에 자리를 잡은 가게이다. 2009년 박인철의 아들인 박세진이 암투병 끝에 사망한 아버지의 가게를 이었다. 2012년 신촌일대 재개발로 홍익문고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신촌일대의 주민, 연세대 학생과 동문, 책 단체 등이 중심이 되어 ‘홍익문고 지키기 주민모임’이 결성되면서 홍익문고 자리는 재개발 지정 대상에서 제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대전 >동구

    바다를 건너온 책이 모이는 곳, 해풍사
    대전역전지하상가에 있는 해풍사는 20여년 전부터 오래된 외국 잡지와 만화책, 외국서적 등을 파는 곳이다. 과거에는 무역업자를 통해 책을 수입하고 배달해주는 식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따로 점포 없이 집에서 운영하다, 대전 은행동, 대흥동에서 서점을 운영했고, 20년 전 역전지하상가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서적과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90년대 외국 잡지, 애니메이션 포스터, CD, 비디오테이프, 드로잉북, 연예인 사진, 캐릭터 문구까지 옛 물건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 인천 >연수구

    25년 2대째 운영 중인 우리 동네 대중서점, 세종 문고
    연수동 상가 골목을 25년 지켜온 우리 동네 서점 세종문고는 2대째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1층에는 학생들의 참고서가 가득한 가운데 지하 1층으로 내려가야 우리에게 익숙한 일반 단행본들이 놓인 코너가 있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과 온라인 서점 그리고 새롭게 떠오르는 독립서점 사이에서, 대중 서점으로써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며 운영 중인 우리 동네 대중서점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고서점, 통문관
    통문관은 1934년 서울특별시 관훈동 37번지에 이겸노가 ‘금항당’으로 개업한 후 1945년 관훈동 18번지에 ‘통문관’으로 상호를 바꾸어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통문관은 1963년 관훈동 147번지로 이사하였고, 1969년 옛 건물을 헐고 신축하였다. 1970년 이겸노의 아들 이동호가 가게를 이어받았고, 1982년 이동호의 아들 이종운이 가게를 이어가며 3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고서점으로 지금은 출판업까지 겸하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울산 지역의 첫 서점, 언양 하나서점
    울산광역시 언양읍 농협 옆의 적산가옥에는 울산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하나서점이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앗간 자리에 문을 연 이 서점은 이제 언양읍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동네서점이다. 하루도 문을 닫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위해 자녀의 결혼식날에도 오후에 문을 열었다는 이 서점의 주인장 김충열 씨는 학생들의 참고서를 팔며 학생들의 선도부 역할도 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찾아와 용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 경북 >영주시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책방, 영주 스쿨서점
    경상북도 영주시의 스쿨서점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서점이자, 여러 개의 ‘최초’ 기록을 가진 서점이기도 하다. 한국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954년 김휘용 씨가 영주 읍내에 문을 연 스쿨서점은 2021년 현재 67년의 역사를 지닌 노포이다. 1972년에는 무역사업을 하던 아들 김시태 씨가 가업을 물려받아 2대 대표로 스쿨서점의 전성기를 열었다. 그는 지방 군소도시 단위로는 최초의 복층 서점을 열었고, 서점 최초로 에어컨 설치와 도서 전산화를 추진하였다. 2009년에는 이웃에서 서점을 하던 송태근 씨가 3대 대표로 가게를 물려받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역 여름 축제 다시보기

햇볕이 쨍쨍한 여름에는 더위를 즐기고, 이기기 위해 지역 곳곳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한여름을 뜨겁게 즐기는 축제들을 같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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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장흥군

    무더운 여름, 신나게 물싸움을 할 수 있는 '정남진 장흥 물축제'
    정남진 장흥 물축제는 전라남도 장흥의 탐진강과 장흥댐, 득량만 해수 등의 수자원을 주제로 한 테마축제이다. 매년 7월말에 탐진강과 편백숲 우드랜드 일원에서 개최되는데, 물싸움 거리 퍼레이드, 워터풀 파티, 워터 그라운드 등 물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와 체험을 선사한다. 매일 오후 2시에 하는 지상 최대의 물싸움은 단순한 물싸움이 아니라 동학 혁명의 격전지라는 역사성을 가미하여 관군과 동학농민의 대결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물축제로, 11년 연속 전라남도 대표축제로 선정되었다.
  • 충남 >부여군

    천만송이 연꽃과 함께 즐기는 '부여서동연꽃축제'
    부여서동연꽃축제는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가 서려있는 서동공원(궁남지)에서 매년 7월에 개최된다. 634년(무왕 35)에 만들어진 궁남지는 현재 국내에 남아 있는 인공 연못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10만평 규모의 연지에는 백련과 홍련을 비롯한 약 50종의 연꽃 천만송이가 핀다. 부여서동연꽃축제는 연꽃들을 관람하며 다양한 문화체험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축제이다.
  • 충남 >보령시

    바다, 진흙, 모래, 낭만 '보령머드축제'
    보령머드축제는 백사장 길이 3.5km, 폭 200m의 규모를 자랑하는 대천해수욕장에서 해수욕과 동시에 머드체험을 할 수 있는 관광객 체험형 축제이다. 보령은 수도권에서 2시간 거리로, 전국 어디서나 교통이 편리해 접근이 용이하다. 매년 7월에 개최되는 보령머드축제는 국내 축제 중에서 외국인이 제일 많이 참여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대한민국 글로벌육성축제”이다.
  • 인천 >연수구

    공연보고 맥주 마시고 '송도맥주축제'
    송도맥주축제는 탁 트인 공원에서 국내외 다양한 맥주와 최정상급 뮤지션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초대형 맥주&음악축제이다. 2011년 8월 세계 3대 축제의 하나인 옥토버페스트와 겨루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축제이다. 송도달빛축제공원에서 매년 8월에 개최되며, 축제기간 동안 매일밤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공원은 달빛존, 플레존, 축제존으로 구분되어 운영된다.
  • 경북 >울릉군

    울릉도에서 오징어로 할 수 있는 모든 것 ‘울릉도오징어축제’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에서 지역특산물인 오징어를 주제로 해마다 8월에 개최하는 축제이다. 울릉도의 비경을 배경으로 다양한 오징어 요리를 먹어보고, 오징어를 직접 잡아볼 수 있으며, 오징어에 관한 전시, 학술대회 등의 다양한 콘텐츠가 마련되어 있다. 오징어를 오감(五感) 만족의 대상으로 삼아 다양한 콘텐츠를 즐기며, 비경의 울릉도를 만끽할 수 있는 축제이다.
  • 충남 >금산군

    시골 외갓집 체험, 금강에서 하세요! '금강여울축제'
    금강여울축제는 시골 외갓집 체험을 주제로 한 주민참여형 여름축제이다. 금강은 수로가 401㎞에 이르는 큰 강이다. 남한에서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축제가 개최되는 금산군 부리면 평촌은 진정한 의미에서 금강이 시작되는 곳이다. 축제의 주요프로그램은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물놀이이며, 그밖에 다채로운 체험과 공연을 만끽할 있다.
  • 경남 >하동군

    재첩의 본고장 섬진강에서 열리는 '알프스하동섬진강문화재첩축제'
    알프스하동섬진강문화재첩축제는 섬진강 전체를 아우르는 하동만의 색깔을 입힌 종합관광 축제이다. 2015년 처음 개최된 알프스하동섬진강문화재첩축제는 매년 7월경 하동읍 송림공원과 섬진강 일원에서 열린다. 대한민국 대표 여름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금 재첩 모형을 찾으면 금 1돈짜리 황금 재첩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 전통 방식의 섬진강 재첩잡이 체험 등이 대표 행사이다.
  • 충북 >괴산군

    청결고추도 사고 축제도 즐기고 '괴산고추축제'
    고추는 국내 시장규모가 약 2조원 규모로 과채류 중에서 생산액이 가장 높으며 쌀 다음으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괴산은 지역의 특화작물로 유명한 ‘고추’를 활용하여 2001년부터 본격적인 고추출하시기인 매년 8월 하순에서 9월 초순경에 4일간의 일정으로 괴산고추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고추 거리 퍼레이드, 세계고추전시, 고추음식 체험, 임꺽정 선발대회 등을 한다. 축제 기간 동안 팔리는 건고추가 6만근이 넘는다.
  • 대전 >유성구

    국내 최초의 와인 생산지에서 열리는 '대전국제와인페어'
    대전광역시는 한국 최초로 와인을 생산한 지역이다. 1969년 7월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산내포도를 대전의 물로 빚어 숙성시킨 선리포트와인을 생산”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근간으로 개최된 것이 대전국제와인페어이다. 2012년 이래 매년 8월에 대전마케팅공사가 주최하는 대전국제와인페어의 주요 행사는 ‘아시아와인트로피, 아시아와인컨퍼런스, 한국국가대표 소믈리에 경기대회’이다.
  • 대구 >달서구

    여름밤, 두류공원에서 치킨과 맥주와 음악을! '대구치맥페스티벌'
    대구치맥페스티벌은 2013년부터 매년 7월 두류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대구의 대표 여름축제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로 뻗어나가는 치맥(치킨과 맥주) 열풍에 힘입어, 한국 치킨산업의 중심에 있는 대구에서 열린다. 매년 외국인 관광객 포함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며, 흥겨운 음악과 공연이 어우러지는 축제이다. 대구치맥페스티벌의 대표 프로그램은 매일 저녁 9시 9분에 다같이 건배를 하는 '치맥 99 건배 타임'이다. 치맥과 함께라면 대구의 더운 여름밤도 즐거워진다.

음식이 약이다, 보양식 드세요~

"음식이 약이다"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음식과 약의 근원이 같다는 말로 '식의동원', '약식동원'이라고도 합니다. 쉽게 예를 들자면 약에 쓰이는 재료인 쑥, 생강 등이 음식 재료로도 흔히 쓰이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평소 자신의 몸에 맞게 필요한 음식을 고루 챙겨 먹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건강도 관리할 수 있어 좋지만,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밥 한 끼도 제대로 챙겨 먹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일교차가 크고 냉방병 또는 더위를 먹어 몸의 면역력이 쉽게 떨어질 수 있는 여름에는 보양식을 통해서라도 체력을 끌어올리고 몸을 챙겨야 하겠죠? 지금부터 여름맞이 몸보신에 좋은 보양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름 대표 보양식으로 불리는 삼계탕은 따뜻한 성질로 알려진 닭을 기반으로 인삼 및 각종 양기를 북돋을 수 있는 한약재가 첨가되어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피로회복에 도움을 준답니다~ 추어탕은 비타민A를 다량으로 함유해 피부와 호흡기도의 점막을 튼튼하게 해주고 세균의 저항력을 높여주며 갈증을 없애는 데에도 좋다고 합니다. 기력이 쇠하고 체력이 떨어지는 요즘, 소개해 드린 보양식으로 몸 건강을 챙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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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고창군

    영조대왕도 즐겼던 원기 회복의 보양식, 고창 붕어찜
    고창 붕어찜은 참붕어를 손질하여 시래기와 각종 채소를 넣고 양념장을 끼얹어 만든 전라북도 고창군의 향토 음식이다. 전라북도 고창군은 예로부터 저수지나 하천에 서식하는 참붕어로 조리한 붕어찜이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유명하였다.
  • 경남 >양산시

    경상남도 양산 지방의 여름철 보양식, 애호박죽
    애호박죽은 물에 불린 멥쌀에 애호박과 바지락살을 넣고 장국에 끓인 죽으로 경상남도 양산시의 향토음식이다. 양산의 애호박죽은 바지락조개의 조갯살을 이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경상남도 양산시가 낙동강 하류에 위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조개나 멸치 등 해산물을 구하기 쉬웠던 지리적 조건이 작용한 것이다.
  • 전남 >목포시

    최고의 여름 보양식, 민어탕
    민어탕은 맑은장국에 민어 토막을 넣고 끓인 국이다. 여름에 가장 맛이 오르는 민어로 끓인 민어탕은 복날 보신탕 대신 먹었던 보양식으로도 유명한 향토 음식이다. 옛날에는 인천 앞바다가 민어의 주요 산지였지만 현재 민어는 북상하는 어군이 많지 않아 대부분 전남 해안에 머물고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어린아이의 이유식이나 보양식으로 좋은 타락죽
    타락은 몽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우유를 일컬었던 말이다. 타락죽은 물에 불린 쌀을 갈아 끓이다가 우유를 넣어서 쑨 죽이다. 우유죽이라고도 한다. 본래 타락죽은 조선시대에는 국왕과 왕실사람들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궁중음식이었다. 그만큼 영양가가 높고 흡수 및 소화가 잘 돼 지금은 어린 아이의 이유식이나 보양식으로도 좋은 음식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부드럽고 향도 좋은 보양식, 잣죽
    잣죽은 쌀과 잣을 곱게 갈아 만든 입자가 고운 죽이다. 향기가 좋고 영양가도 우수하여 궁중에서 쓰이는 죽 중에서 가장 좋은 죽으로 여겨졌다. 잣은 송자(松子), 백자(柏子), 해송자(海松子)라고 불리며 훌륭한 보양식이면서 성인병 예방의 효능을 갖고 있다.
  • 인천 >중구

    경인철도 건설 노동자들의 보양식이었던 감자탕
    감자탕은 돼지 등뼈와 감자를 비롯한 각종 야채와 양념을 넣어 얼큰하면서도 진하게 끓여낸 음식이다. 개항 이후 부두 노동자의 증가와 더불어 경인선 철도공사에 많은 노동자들이 인천으로 몰리면서 재탄생한 음식이기도 하다.
  • 제주 >제주시

    제주 ‘웃드르’의 전통 보양식, 꿩엿
    꿩엿은 차조로 지은 밥에 엿기름을 넣고 삭힌 뒤 꿩고기를 넣고 졸인 엿으로 제주인의 보양식으로 쓰이는 제주도 중산간 지역인 '웃드르'의 향토음식이다.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의 특산물로 상품화되어 그 맛을 전하고 있다.
  • 경남

    방아잎 냄새 향기로운 보양식, 논고동찜
    논고동찜은 우렁이찜, 우렁이찜국 등으로도 불리는 경상남도의 향토 음식이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었던 옛날에는 논두렁에 붙어있는 우렁이를 쉽게 볼 수 있었는데, 특히 모내기가 끝난 직후인 7월경에 많아져 농부들의 건강과 입맛을 책임지는 새참 거리였다. 시원한 콩나물 육수에 우렁이와 들깻가루, 찹쌀가루, 고춧가루 등을 넣고 마지막에 방아잎을 넣으면 경상도식 논고동찜이 완성된다.
  • 제주 >제주시

    제주인의 겨울철 보양식, 돼지고기엿
    돼지고기엿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가축이었던 토종 흑돼지의 고기를 차좁쌀로 만든 감주에 넣고 고아서 만든 겨울철의 단백질 공급원이자 보양식으로 삼았던 제주특별자치도의 향토음식이다.제주에서는 겨울철 부족해질 수 있는 영양분을 보충해 주기 위해 육류를 부재료로 한 엿이 발달하게 되었다.
  • 전북 >남원시

    남도의 걸쭉하고 구수한 맛을 담은 서민 보양식, 남원 추어탕
    전라북도 남원에서는 가을걷이를 마치면 겨울잠에 들어가는 미꾸라지를 잡아 국을 끓여 함께 나누어 먹으며, 기운을 보충하고 겨울을 대비하였다고 한다. 추어탕은 지역별로 다양하지만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서 된장에 버무린 시래기 등과 함께 끓여낸 것이 특징으로 남원시의 향토음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