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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장인의 손길로 빚어낸 우리의 예술

한국의 전통 공예는 일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무를 깎아 책을 올려둘 경대를 만들고, 한지를 꼬아 곡식을 담을 바구니를 엮었습니다. 흙을 빚어 밥그릇과 술잔을 구웠고, 실을 매듭지어 허리춤에 다는 노리개를 완성했죠.
여기에 선조들의 미적 감각이 더해지자, 생필품은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 쌓아온 손기술과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눈썰미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매듭 하나를 만들 때에도 실을 수십 번 교차해 모양을 다듬었고, 도자기 한 점을 구울 때도 옻나무 진액을 칠하고 말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 시간이 두 달 이상 소요되었다고 하죠. 서두르지 않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것, 이것이 장인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공예품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젊은 공예가들은 이러한 전통 기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며 한국 공예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공예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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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생활도자기의 장인 사기장
    조선시대 도자기는 질박하고 견고했으나 종국이나 일본에 비해 정교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을 만들던 장인을 사기장이라 한다. 사기장은 국가에서 관리하던 직업 중에서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노동 강도가 세서 대대로 가업으로 전수하게 한 유일한 직업이다. 조선시대 사옹원에서 만들던 자기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장인들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곳곳에서 그릇을 제작하였다. 부산광역시에서는 2005년 사기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에 힘쓰고 있다.
  • 전국

    금속공예의 정화(精華), 입사공예의 전통 기법
    입사(入絲)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金線) 또는 은선(銀線)을 박음질하여 장식하는 금속공예 기법이다. 금속용기나 용구는 질감이 딱딱하고 차가우며 무겁다. 철로 만든 것들은 어둡기까지 하다. 입사는 어두운 바탕 금속에 대비되는 입사 금속의 광채를 도드라지게 하여 기물을 화려하고도 품격있게 한다. 입사는 섬세하고 화려해서 금속공예의 정화(精華)로 일컬어진다. 전통 입사기법은 대략 기물 만들기, 바탕 작업, 은실박이 작업, 착색 작업으로 나뉘는데,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15가지 정도의 공정이 있다. 이 공정을 아홉 공정으로 구성해본다.
  • 전국

    실생활에 유용하게, 한국 전통매듭공예의 용도
    매듭공예는 예술미와 장식미가 돋보이는 대상물이긴 하나 본래는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실생활용품이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매듭공예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 남성용 매듭, 여성용 매듭, 패물, 불구용 매듭 등으로 구분을 할 수가 있다. 이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남성용 매듭과 여성용 매듭이다. 이 가운데 남성용 매듭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을 하는 반면, 여성용 매듭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긴 하나 노리개를 비롯해 귀걸이술 등이 주를 이룬다.
  • 전국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 유리 공예의 기법
    유리공예는 크게 열간가공과 냉간가공으로 나뉜다. 열간가공은 유리를 가열하는 기법으로 블로잉, 캐스팅, 모자이크, 램프워킹, 퓨징, 벤딩, 샤깅, 슬럼핑, 빠뜨 드 베르 등이 있다. 냉간 가공은 상온의 유리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컷팅, 인그레이빙, 라미네이팅, 에칭, 폴리싱, 샌드블라스팅 등이 있다. 유리공예가는 이상의 기법을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여러 기법을 혼합하여 유리 조형물과 공예품을 만든다.
  • 전국

    한지공예의 종류, 일반생활기물
    한지공예의 분류는 쓰이는 용도에 따라 남성용과 여성용기물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은데 한지공예를 연구하는 학자나 공예물을 직접 제작하는 사람들은 일반생활용구 내지 기물로 따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전통성을 담보로 하는 공예물을 중심으로 여기에 속하는 것을 소개하면 종이옷, 찻상, 종이로 만든 우산(지우산), 그릇, 채독, 약장, 연, 부채, 자장궤 등을 들 수 있다.
  • 전국

    한지를 활용한 예술, 한지공예의 개념과 정의
    한지공예는 한지를 활용한 공예를 말한다. 한지공예와 관련이 깊은 한지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거나 제작하는 종이와 달리 닥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로 한국만의 방식으로 만든 종이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보게 되면 한지공예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공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지공예는 종이를 사용한다고 하여 종이의 한자어인 지(紙)자를 사용하여 지공예라 칭하기도 한다.
  • 전국

    실과 끈의 예술, 전통매듭공예의 개념과 정의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예로 자리매김한 전통매듭은 본래 공예로서의 성격보다는 무언가를 묶는 기술적인 성격이 보다 강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성과 장식성이 강조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공예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전통매듭공예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 것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 전국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짚풀공예의 역사
    정확한 역사는 사실상 가늠하기 어렵긴 하나 짚풀공예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시대 이전에 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아 정확한 실상을 엿보기 어렵지만 일부 남아 있는 자료들, 가령 고고학 자료나 유물, 그리고 삼국 및 고려시대의 문헌 등을 통해 그 실상을 조심스레 추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짚풀공예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합성섬유가 등장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풀공예는 지금까지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전국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시대 목공예
    조선시대 목공예는 인위적인 장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목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나뭇결을 살려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일상생활용 목공예품은 집안에서 남녀 공간을 분리하여 각 공간과 기능에 맞게 사용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소의 뿔을 공예품에 이용한 화각공예가 성행하였는데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공예분야이다.
  • 전국

    한국 목공예의 특성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인 만큼 예로부터 일상생활에 다양하게 쓰였다. 우리나라는 산맥과 강을 따라 각 지방이 나뉘어져 독특한 생활환경과 풍습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역 색은 지역 특산의 목재와 생활양식에 따라 제작된 목공예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소반, 반닫이 등은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한 지역이야기

2025년 웹툰&애니메이션 공모전 수상작 7편에 창작의 영감으로 작용한 지역문화 콘텐츠가 있습니다.
6·25전쟁의 식량난 속에서 탄생한 부대찌개, 광복 이후 서울의 시간을 간직한 태극당, 도산서원에 전해 내려오는 퇴계와 매화 설화, 청주를 ‘주성(舟城)’이라 부르게 한 용두사 철당간과 지명 이야기, 제주에서 이어져 온 사만이본풀이(맹감본풀이), 해녀의 조상신으로 전승된 구슬할망, 그리고 화성 홍법사에 깃든 홍랑각시 보살 이야기까지.
문서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 주변의 이야기들이 어떻게 웹툰과 애니메이션으로 재탄생했는지 지역문화 콘텐츠를 둘러봅시다.
2025년 공모전 수상작은 지역문화포털에 곧 게재될 예정이며, 추후 관련하여 공지사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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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 선생과 기생과 매화
    도산서원에는 여러 가지 나무들이 심어져있는데 봄에 피는 매화에는 전해지고 있는 전설이 있다. 퇴계 선생이 단양군수로 있을 때 퇴계 선생을 좋아했던 기생이 있었다. 그 기생은 퇴계 선생에게 음식과 옷 등을 갖다주며 마음을 표현했지만 선생은 마음을 거절하였다. 기생은 선생의 종에게 그가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었더니 종은 ‘매화’라 하였다. 기생은 종을 시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화를 찾아오라고 시키고 그 매화를 퇴계 선생에게 주었다. 퇴계 선생은 매화를 단양군청에 심어 지금의 매화나무가 자리잡게 되었다.
  • 서울 >중구

    태극당,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이 두고 간 제빵 기구를 받아 신창근이 1946년 ‘태극당’이라는 이름으로 명동에서 개업한 빵집이다. 1973년 태극당은 명동에서 현재의 장충동으로 가게를 이전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 건축한 것이다. 1999년 신창근의 아들인 신광열이 가게를 이었고, 2011년부터 신광열의 자녀들인 신경철, 신혜명, 신혜종이 태극당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태극당은 변화보다 보전을 택했고, 태극당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 제주 >제주시

    백골을 잘 모셔 수명을 연장한 사만이
    이 설화는 제주특별자치도에서 전승되는 일반신본풀이 중 하나로 ‘맹감본풀이’로 알려져 있다. 맹감본풀이는 주인공 사만이가 산에 버려진 백골을 잘 모시고, 백골의 도움으로 저승차사를 피해 목숨을 연장했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에는 자신의 수명보다 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주인공 이름을 따 '사만이본풀이'라 부르기도 한다.
  • 제주 >제주시

    나주김씨 집안의 조상신이 된 구슬할망
    구슬할망 이야기는 나주김씨 집안의 조상신에 관한 내력을 담은 본풀이이다. 나주김씨 집안에서는 현재까지도 집안의 수호신으로 구슬할망을 모시고 있다. 구슬할망은 ‘물질을 배워 구슬(진주)을 따는 할머니’를 가리키는 말로 오늘날 해녀들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의 조상신본풀이는 결말이 비극적이지만, 구슬할망은 행복한 삶을 살고 자손들이 정성껏 모신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물질을 하며 고달픈 삶을 살아가야만 했던 해녀들의 바람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경기 >의정부시

    미군부대의 보급품으로 만든 부대찌개
    6·25전쟁으로 먹거리가 부족해지자 미군과 관련된 일을 하던 사람들이 경기도 동두천시와 양주시, 의정부시, 평택시에 주둔하던 미군 부대에서 쓰고 남은 소시지나 햄 등을 이용하여 김치와 함께 끓여 찌개를 만들어 먹었다. 이 음식은 미군의 보급품을 음식 재료로 사용하여 부대찌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혹은 당시에 미국 대통령인 린든 B. 존슨의 성을 따라 '존슨탕'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 부대찌개는 외식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오늘날에는 라면, 당면, 흰떡 등의 사리나 치즈 등의 재료를 함께 넣어 그 맛을 더욱 풍부하게 하여 즐긴다.
  • 충북 >청주시

    물 위에 배가 떠 있는 형상의 충북 청주
    충청북도 청주시 시내 한복판에 국보 제41호로 지정된 ‘용두사 철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이 철당간은 청주시를 ‘주성(舟城)’이라고 부르게 된 지명유래와 관련이 있다. 청주시는 풍수적으로 지형이 배와 같이 생겨,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청주시가 항상 평안하려면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용두사 철당간을 세워야 한다는 부처님 음성을 듣고, 혜원 스님이 철당간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 경기 >화성시

    명나라에 공녀로 갔다 돌아온 홍랑각시 보살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에 ‘홍법사(弘法寺)’라는 사찰이 있다. 홍법사는 1611년 홍(洪)씨 문중에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홍법리에 살던 ‘홍랑’이라는 처녀가 공녀(貢女)로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명나라로 갈 때 모래, 대추, 물을 가지고 갔다.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홍랑은 명나라에서 고향에서 가지고 간 모래만 밟고, 대추와 물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조선에서 가지고 간 물과 대추가 떨어지고, 결국 홍랑도 죽게 된다. 명나라에서 죽은 홍랑은 무쇠사공이 젓는 돌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효심으로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

'효'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은 사람됨을 판단하는 기준이었고, 집안과 마을의 질서를 이루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설화와 지명 속에는 효를 앞세운 이야기가 유난히 많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냇가를 건너려던 여인을 위해 고려 무신 임연이 하루 만에 돌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진천 농다리 이야기, 병든 아버지를 위해 아홉 개의 절을 돌며 밥을 구한 아이를 기려 이름 붙인 춘천 효자바위 등 효심 깊은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효 이야기가 모두 따뜻한 결말을 맺은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어머니를 살리려다 호랑이가 되어 산을 떠돌았다는 홍범 전설처럼 비극을 품은 이야기들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효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져 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희생과 사랑이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옛 이야기 속에 담긴 효의 의미, 함께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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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춘천시

    며느리의 정성으로 솟은 효정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약바위 서쪽에 효정이 있었다. 효정의 유래와 관련하여 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 남면에 유씨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부인 이씨의 효심이 지극하였다. 이씨는 매일 아침 심산유곡에서 정화수를 떠 와 시부모님께 올렸는데, 그 정성에 감동한 산신령이 부엌에 샘을 만들어주었다. 그 샘이 바로 효정이다. 효정은 물맛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 강원 >춘천시

    어린 효자가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던 춘천 효자바위
    ‘효자바위’는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 수리봉에 있는 바위인데 사람들에 따라서는 ‘효자암(孝子岩)’, 또는 ‘기특바위’라고도 한다. 수리봉 아래 바위에서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근처 아홉 곳의 절을 다니며 밥을 얻어다 아버지를 봉양했는데 절에서는 아이가 오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래서 스님들이 꾀를 낸 것이 아홉 개 절이 같은 시간에 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면 아이는 한 곳밖에 올 수가 없으니 그만큼 밥이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같은 시간에 아홉 곳에 나타나 밥을 청했다. 스님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바위를 도끼로 내리쳤다. 그러자 붉은 피가 솟구쳐서 아홉 곳의 절로 향했다. 이후 절은 망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효자가 살던 바위라고 해서 ‘효자바위’라 불렀다.
  • 인천 >옹진군

    바다의 험난한 환경을 보여주는 심청이와 인신공희
    심청전의 주요 모티브인 인신공희는 사람을 제물로 삼아 어떤 대상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양상은 비교적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순장문화이다. 왕이나 최고의 통치자가 죽으면 그 옆에 살아 있는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으로 그러한 흔적은 비교적 여러 사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어촌 지역의 인신공희는 비교적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백령도 지역에서는 숫총각을 바다에 빠뜨렸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 경북 >칠곡군

    호랑이로 변한 효자 홍범
    예전에 홍씨 효자가 아내와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병든 어머니를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도사를 통해 수캐의 불알 서 말이 있으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호랑이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주문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홍씨 효자가 밤마다 호랑이로 변해 이웃 마을에서 개를 죽였는데, 이를 알게 된 아내가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주문이 적힌 종이를 태워버렸다. 홍씨 효자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호랑이의 몸이 되어 홍범이라 불렸으며, 산을 떠돌다 포수의 총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 충북 >진천군

    여인의 효성에 감동받아 놓은 농다리
    고려 고종 때의 무신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이라는 냇가에서 세수를 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다 냇가를 건너려는 한 여인을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에 가야 한다는 여인의 사정을 듣고 그 효성에 감동받은 임연은 용마를 타고 나타나 돌을 날라 농다리를 완성하였다. 여인은 임연이 놓아준 농다리를 통해 무사히 냇가를 건너갈 수 있었다.
  • 전북 >고창군

    김질의 효성으로 세워진 개가장터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에 김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등창을 빨아 낫게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상사에 흙을 져다가 성분(成墳)하고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개가장터’는 김질의 효성으로 장이 열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 강원 >춘천시

    거두리와 효자문거리의 유래가 된 효성 깊은 총각
    효성 깊은 총각 이야기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전승되는 민담이다. 주로 아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부모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강원도 춘천시에는 한 총각이 병든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 시체의 머리를 잘라 먹인 이야기가 전한다. 그 시체는 나중에 보니 산삼이었다. 또 한 겨울에 어머니가 먹고 싶은 딸기를 구하고 위기에 처했지만, 호랑이의 도움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함께 결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말과 함께 걸어온 우리의 시간

2026년은 병오년, '붉은 말의 해'입니다. 불의 기운을 지닌 '병'과 말을 뜻하는 '오'가 만난 해인 만큼, 예부터 병오년은 강한 생명력과 추진력을 상징했는데요. 실제로도 말은 농사를 짓고, 전쟁터를 달리고, 사람과 물자를 나르며 단순한 상징물을 넘어 오랜 시간 우리의 동반자로 살아왔습니다.
그 흔적은 여러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미의 무덤 앞에서 절을 올리며 효를 실천한 춘천 마당골의 역마, 자동차보다 앞서 세상을 움직였던 기마 문화를 보여주는 등자 이야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당에 모셨던 쇠말 신앙, 장수의 성급함 때문에 쓰러져 전설이 된 횡성 용마총까지, 말은 신앙, 기술, 전쟁, 생활문화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해 왔습니다.
붉은 말의 해를 맞은 지금,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켜온 말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말과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염원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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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말과 친해질 수 있는 종마장, 원당 렛츠런팜
    원당 렛츠런팜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종마장이다.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탁 트인 들판과 여유로운 말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아이들이 승마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 서삼릉과 농협대학도 있어 자연과 호흡하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 제주 >제주시

    정서방이 죽자 말이 머리를 내밀었던 제주 말머리
    옛날 제주시 용담동에 정 서방이라는 이가 살았다. 그는 먹기도 많이 먹을 뿐만 아니라 힘도 장사였다. 그의 식성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관가에 가서 해결해 줄 것을 청했다. 관에서는 힘이 장사인 그가 훗날 역적이 될 것을 우려해 그를 죽이려고 했다. 팔다리에 바위를 묶어 바다에 던졌으나 정 서방은 삼 일 동안 떠올랐다. 마침내 정 서방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그 자리에서 백마 한 마리가 나와 울다가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말머리가 나와 울었다해서 그 곳을 ‘말머리’라고 부른다.
  • 경기 >과천시

    말박물관, 경마장 옆 박물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말박물관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당시 한국마사회가 과천에 승마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설립한 박물관으로, 1988년 ‘마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말과 관련된 모든 문화유산이 모여 있고, 역사 자료뿐만 아니라 현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말 조각과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문화복합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게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말을 교통수단이나 스포츠가 아닌, 문화로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말 전문 박물관이다.
  • 경북 >경주시

    말 위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말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 등자
    말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축 중 하나로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말을 탈 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등자이다. 등자는 발걸이라고도 하는데 말 위에서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등자는 초기에 가죽 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점차 금속제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등자는 그 형태에 따라 크게 호등과 윤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호등은 발 앞부분을 감싸는 주머니 형태이며, 윤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각 고리형태이다. 우리나라는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등자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 전국

    말뚝박기와 마부놀이로 즐기던 말타기놀이
    말타기 놀이는 '움직이는 말타기(마부놀이)'와 '움직이지 않는 말타기(말뚝박기놀이)'로 나뉜다. 움직이는 말타기는 말과 마부를 한 사람씩 뽑은 뒤, 나머지 사람들이 말 등에 올라타는 놀이다. 반면 움직이지 않는 말타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 진 편이 허리를 굽혀 말이 되고 이긴 편이 그 위에 올라탄 후 대장끼리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린다.
  • 강원 >횡성군

    화살과 경주한 명마 무덤 마산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 ‘마산(馬山)’이라는 곳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횡성군에 살던 황장군이 용마(龍馬) 한필을 길렀다. 용마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황장군은 용마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황장군이 말 등에 올라탄 후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용마와 함께 달렸다. 황장군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용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화살 한 개가 날아와 땅에 꽂혔다.
  • 경기 >오산시

    권율이 말을 목욕시킨 세마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독산성(獨山城)과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독산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왜군은 독산성 함락이 어려워지자, 독산성 안에 우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물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 그 때 권율장군이 왜군들이 잘 보이는 곳에 말을 세워 놓고, 쌀로 목욕을 시켰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왜군들은 독산성 안에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고 여기고, 공격을 접고 물러났다고 한다.
  • 경기 >양평군

    호환 방지와 대장장이 사업번창을 위한 동제당의 쇠말
    고분이나 유적지에서 종종 철로 만든 말 조형물이 발견된다. 이런 쇠말들은 대체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철을 녹여 틀에 붓는 주물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쇠말은 전국의 마을제당 여러 곳에 봉안되어 있다. 마을제당에 쇠말을 봉안한 이유로는 호랑이와 대적하기 위해, 즉 호환을 방지를 위해, 마을의 수호신이 타고 다니라고, 근처에 솥점 또는 주물터(대장간) 등이 있어서 대장장이들이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서산 창리와 삼척 내미노리에서는 호랑이와 대적하기 위해서이고 양평 성덕리에서는 대장장이들이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마을제당에 쇠말을 바치기도 했다.
  • 강원 >춘천시

    말 효성에 감복해 말 사당을 지었던 강원도 춘천시 마당골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塘林里)를 예전에는 ‘마당골’이라 불렀다. ‘당림’의 지명은 신당(神堂)을 모신 숲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춘천을 오르내리는 안보역에 나이가 많은 말이 있었다. 늙은 말은 당 숲을 지날 때면 항상 사람과 짐을 강제로 내리게 하고, 당 숲을 향해 절을 해야만 춘천까지 오르내렸다. 당 숲 앞을 지날 때 절을 하는 것은 늙은 말의 할머니 때부터 해왔으며, 그 어미를 기억하는 늙은 말의 효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말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당을 짓고, 사당이 있는 곳을 ‘마당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2026년, 일출로 여는 첫 여행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쌓였던 아쉬움과 후회는 내려놓고, 떠오르는 첫 번째 해를 보며 새 다짐을 마음에 새겨볼까요? 수평선 너머로 고개를 드는 태양은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약속하듯 찬란하게 빛납니다.
전국 곳곳에는 이 특별한 순간을 담기 좋은 일출 명소가 많이 있습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르는 울주 간절곶, 범종 소리와 함께 새해를 맞이할 수 있는 여수 향일암, 그리고 사찰 탑 꼭대기에 걸린 해가 마치 타오르는 횃불처럼 보이는 태안 안면암 등이 있죠.
새해의 첫 아침, 이렇게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일출 명소에서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보는 건 어떨까요? 밝아오는 태양처럼 마음도 새롭게 빛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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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울주군

    산과 폭포, 바다와 일출이 어우러진 울주 8경
    울주군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곳으로 신불산, 가지산, 대운산, 간월산 등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를 품고 있는 지역이다. 그리하여 울주군은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볼거리 또한 많아서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울주는 울산의 대표적인 관광자원이 함축된 지역이다.”이라는 설명이 있듯이, 울주군은 자치군이지만 울산광역시에 포함되는 까닭에 ‘울산 12경’과 ‘울진 8경’이 겹치는 곳이 여럿이다.
  • 울산

    일출과 대숲, 억새평원과 문화마을이 어우러진 울산 12경
    울산광역시는 산업도시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성장만 앞세우다보니 태화강이 ‘죽음의 강’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울산광역시와 시민들이 힘을 합쳐 국가정원으로 지정될 만큼 맑고 깨끗한 강으로 변신하여 원래의 태화강이 되었다. 울산 12경 또한 태화강, 대왕암, 가지산, 신불산, 간절곶, 몽돌해변, 계곡 등과 같이 자연에 집중되어 있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자연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베풀 때 관리를 잘해서 깨끗한 환경을 오래토록 지속시켜야 한다.
  • 제주 >서귀포시

    제주 제1경, 일출이 아름다운 서귀포의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峯)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있는 명산이다. 높이는 해발 182m이나 바닷가에 있어서 경관이 뛰어나다. 이 산은 화산 분화구로 독립된 섬을 이뤘으나 점점 바닷물의 작용으로 모래와 흙이 쌓여서 제주도의 본토에 붙게 되었다. 분화구 주변으로 99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서 구구봉이라 불린다. 희귀종 식생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바닷가 벼랑에는 춘란 등 15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말 방목지로 유명하다. 2000년에는 천연기념물로, 2007년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전남 >여수시

    해를 향해 서 있는 여수시의 향일암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에 2022년 명승으로 지정된 ‘여수 금오산 향일암 일원’이 위치한다. 향일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해돋이 명소 가운데 한 곳이며, 명승 지정 이전에 이미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을 받은 사찰이다. 향일암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4대 기도처로 계절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해가 뜰 무렵, 범종 소리와 함께할 수 있는 향일암이기에 매년 새해 첫날 해맞이 행사를 개최한다. 향일암에서의 해맞이 의식을 특별하게 여기는 참배객들이 많기에 일반인들과 함께 새해 첫날 향일암으로 향한다.
  • 충남 >태안군

    바다의 풍광과 안면송림이 어우러진 태안의 ‘안면암’
    안면암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에 있다. 안면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금산사에서 관리하는 작은 사찰로 1998년 건립되었다. 이 사찰은 해안가 절벽에 자리하며, 이국적인 태국식 건축물과 수려한 경관 덕분에 안면도의 새로운 명소로 급부상하고 있다. 특히 안면암은 일출과 일몰을 함께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안면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 경남 >하동군

    금오산 일출과 쌍계사의 가을, 철쭉과 벚꽃이 어우러진 하동 10경
    경상남도 하동군은 서쪽으로 섬진강을 끼고 전라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섬진강에서 채취한 재첩과 화개장이 유명하다. 하동 10경은 십리벚꽃, 일출과 다도해 모습, 가을 경치, 최참판댁의 들판, 연분홍색 철쭉꽃으로 물든 형제봉, 신선도를 수행하는 삼성궁, 지리산에서 제일 큰 폭포, 아늑한 쉼터 백사청송, 1,200년 전부터 차를 재배한 하동 야생차밭, 하동군에서 경치가 가장 뛰어난 누각 섬호정 등과 같이 가장 크고 오래된 그리고 최고의 절경이 중심을 이룬다.
  • 울산 >울주군

    간절함을 더욱 배가 시키는 간절곶 등대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에 위치한 간절곶은 해가 빨리 뜨기로 유명한 곳으로 일출 관광지 명소로 알려져 있다. 이곳 간절곶의 등대는 1920년 3월에 점등되었으며, 이후 100년간 쉬지 않고 뱃길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다. 간절곶 등대는 두 차례의 등탑 개량이 있었고, 구 등탑은 현재 간절곶 등대 옆에 복원하여 전시되고 있다. 이 등대는 팔각형의 콘크리트 건축 방법을 사용했으며 지붕은 10각으로 한옥식 기와를 첨부하여 조형미가 뛰어나다. 간절곶 등대는 전망대 구조로 되어 있어 관람이 가능하다.
  • 충남 >당진시

    서해바다에서 해돋이를 보다, 왜목마을
    왜목마을은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위치한 작은 어촌마을이다. 충청남도의 땅 끝에 있는 이 마을의 이름은 그 지형이 마치 누워 있는 사람의 목처럼 보여서 와목(臥木)이라고 불렀던 것이 왜목이 되었다는 설과 왜가리의 목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내려 온다. 이 독특한 지형이 왜목마을을 유명하게 했는데, 서해바다임에도 동쪽으로 형성된 해안으로 인해 일출과 일몰, 월출까지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매년 1월 1일 왜목마을에서는 이러한 특색을 살려 해돋이축제가 개최되며 수많은 관광객이 왜목마을을 찾아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고 있다.
  • 강원 >양양군

    산과 고갯길, 일출과 정자가 어우러진 양양 10경
    양양 10경은 남대천, 대청봉, 오색령(한계령), 오색주전골, 하조대, 죽도정, 남애항, 낙산사 의상대,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 양양 서핑비치로드 등을 이르는데, 이는 기존의 양양 8경에 ‘오산리 선사유적박물관’과 ‘양양 서핑비치로드’ 등 2경이 추가된 결과이다. 아울러 기존의 양양 8경에서는 경치가 아름답거나 역사적 명소인 곳을 중심으로 선정하였는데, 양양군에서는 최근에 지역의 대표성과 인지도 등을 반영하여 요즘 학습과 레저 관광지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두 곳을 추가로 선정하였다.
  • 강원 >삼척시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는 삼척 임원산 봉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임원리 산319번지에 있는 임원산(141.1.m)에 임원산봉수가 있었다. 바닷가에 있는 연변봉수로 조선시대 삼척에 있던 5개의 봉수 중 하나이다. 이 봉수는 직봉이 아니라 간봉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해안감시소를 설치하여 운영했고, 현재는 인근 주민들의 등산로와 해맞이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일부 훼손되었으나 봉수의 유물이 많이 남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응봉수로 북으로 초곡산 봉수에 응하고, 남으로 가곡산 봉수에 응한다고 했다.

노을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낭만 충전!

어느덧 2025년도 끝자락에 접어들었습니다. 연말이 되면 늘 여러 감정이 복잡하게 밀려오곤 하죠. 숨 가쁘게 달려온 순간들 속에서 스스로가 대견하다가도 문득 놓쳐버린 기회들에 아쉬움이 고개를 들기도 합니다.
한 해가 지나가기 전에, 하루의 해가 저무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속 깊이 담아두었던 아쉬움들을 저 석양 너머로 떠나보내는 건 어떨까요? 온 세상이 붉게 물든 장관을 마주하면 들떠 있던 마음도, 무거웠던 걱정도 차분하게 가라앉을 거예요. "모든 일은 이렇게 지나가기 마련이구나." 작은 위로와 함께 말이죠.
전국 곳곳에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찾아가기 좋은 낙조 명소들이 있습니다. 경남 사천시 실안낙조는 죽방렴과 바다, 섬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석양으로 유명합니다. 충남 태안군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는 두 바위로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 광경이 서해안 3대 낙조로 손꼽히죠.
올 한 해도 수고한 나를 위해, 2025년을 후회 없이 떠나보내기 위한 시간을 선물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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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사하구

    낙동강과 남해가 만나는 지점, 모래사장으로 유명한 다대포
    부산광역시 사하구 다대동에 위치한 다대포는 1971년에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부산에 있는 네 개의 항구인 북항, 감천항, 다대포항, 남항 중 하나로, 본래는 목재 화물 부두였다. 낙동강 하구에 있는 다대포항은 수심이 2~20m로 얕고, 항역도 좁아 선박을 정박하고, 피항하기에 적합하다. 고대국가로부터 왜적이 출몰하는 군사적 요충지로, 조선시대에는 수군만호영이 설치되었다. 을숙도 철새도래지와 감천동 항구 사이에 있으며, 다대포항 인근에서 어획한 고등어·삼치·방어 등의 어물을 판매한다. 항구에는 860여 척의 어선이 정박해 있으며, 어업에 종사하는 인구만 2,500명으로 어업 비중이 높다. 주변에 기암괴석이 많고, 숲이 우거져 있으며,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다대포 해수욕장과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낙조분수 등의 명소가 있다.
  • 경기 >화성시

    수도권 요트의 천국이 된 화성 전곡항
    화성시 전곡항은 서울 근교에 위치해 요트나 보트를 타러 온 이들이 찾는 지방어항이다. 수많은 보트와 요트 덕에 이국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국 최초 레저 어항 시범지역으로 다기능 테마어항으로 선정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당성으로 불렀는데 당성은 삼국통일의 전초기지이자 중국의 선진문물이 유입되는 관문 역할을 했다. 지금은 방파제를 건설해 24시간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크고 작은 요트 200척이 정백해 있다. 방파제 끝에는 붉은 색의 등대도 명물 중 하나이며, 이 곳에서 보는 낙조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화성 일몰 명소로 손꼽힌다.
  • 인천 >강화군

    아름다운 서해 낙조와 기도 성지로 유명한 인천 보문사
    석모도 낙가산에 자리한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 기도 사찰의 하나로, 635년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회정이 창건했다고 한다. 사찰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석굴에는 23명의 나한을 모시고 있는데, 삼산면에 살던 어부가 노스님의 현몽에 따라 바다에서 건져 올린 불상을 안치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보문사에는 등공양 중 실수로 깨트린 옥등잔에 관한 설화도 전해진다. 보문사에는 기도 성지로 유명한 마애관음보살상과 일반 맷돌보다 큰 화강암 맷돌이 있다.
  • 충남 >태안군

    낙조가 아름다운 명승지 태안군 안면읍의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에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가 소재한다.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는 안면읍 꽃지해수욕장에 위치하며, 2009년 명승으로 지정된 곳이다. 꽃지해수욕장은 백사장이 넓고 수심이 완만하며, 알맞은 수온과 울창한 소나무 숲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사계절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특히 꽃지 할미 할아비 바위 사이로 해가 넘어가는 일몰 광경은 서해안의 3대 낙조라고 할 정도로 유명하다.
  • 경남 >사천시

    기존의 8경에 용두공원과 청룡사 겹벚꽃을 추가한 사천 9경
    경상남도 사천시에서는 2002년에 주민들의 의견에 따라 사천 8경을 선정하였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후 추가와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있었다. 이에 사천시에서는 다시 주민들 의견을 모아 2023년 3월에 사천 제1경을 ‘창선·삼천포대교’에서 높은 선호도를 보인 ‘삼천포대교와 사천바다케이블카’로 변경하고 ‘용두공원과 청룡사 겹벚꽃’을 새롭게 추가하여 현재 사천시는 모두 9경이 선정되어 있다.
  • 경남 >진주시

    촉석루와 의암, 해돋이와 노을이 어우러진 진주 8경
    경상남도 진주시는 오래전부터 진주 12경, 진주 10경이라고 해서 지역의 절경을 자랑하였으나 지역이 개발되고 자연이 훼손되면서 예전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이에 지역의 뜻있는 분들의 발의로 시민들이 뜻을 합해 1997년에 새로운 진주 8경 선정을 추진하면서 후보지를 공모하고 심의하여 1999년 10월 8일에 이르러서 ‘진주 8경’을 제정·공표하였다. 그 결과 제1경은 진주성 촉석루, 제2경은 남강 의암, 제3경은 뒤벼리, 제4경은 새벼리, 제5경은 망진산 봉수대, 제6경은 비봉산의 봄, 제7경은 월아산 해돋이, 제8경은 진양호 노을 등이 선정되었다.
  • 전북 >김제시

    바닷가에 위치해 낙조가 아름다운 김제시 진봉면의 망해사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에 ‘진봉산 망해사’가 위치한다. 진봉산은 높지 않은 산이다. 그렇지만 진봉산 망해대에 오르면 서쪽으로 ‘서해’가 펼쳐지고, 동쪽으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인 ‘금만경평야’가 내려다보인다. 망해사가 위치한 곳은 서해의 섬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서해의 일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경승지이므로 망해사라 하였다고 한다. 한편 망해사는 사찰로서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명승지로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 전북 >익산시

    낙조로 유명세를 얻고 있는 익산의 ‘웅포곰개나루’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에 있는 나루로, 충청남도 한산면 신성리와 금강을 가로질러 연결된다. 곰개(熊浦)라는 지명은 지형이 곰이 금강의 물을 마시는 형상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 곰개나루는 서해의 해산물이 모이는 집산지이며, 조선 전기에는 세곡을 모으는 조창(漕倉)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의 아름다운 낙조의 섬, 군산의 장자도
    장자도는 고군산군도의 작은 섬이지만 천혜의 항구와 좋은 어장을 가지고 있어서 예전에는 어업으로 풍요로운 섬이었다. 현재 어장은 예전만 못하지만 다리가 놓이면서 어업보다는 관광지가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드라이브 코스의 마지막 지점으로 장자도에 들어와 고군산도의 바다를 둘러보며 걷다 보면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 있다. 장자도에는 남편을 기다리다가 억울하게 바위가 되어버린 장자할머니의 슬픈 설화가 전해온다.

지역 속에 담긴 흥미로운 유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지역 이야기들이 숨어있습니다. 지도로 길을 찾을 순 있지만, 이곳에 언제부터 길이 있었는지, 길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곳 지형이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죠.
궁금증이 생겼을 때 지도 대신 봐야 할 책이 바로 '시군지'입니다. 구례·완주·제천에서 간행한 이 사료집은 그 지역의 산과 강, 그리고 마을이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는지 보여주죠. 물론 서울이나 인천의 향토문화자원집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대도시의 깊은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돕는 자료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시군지'는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한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우리 동네에서든, 낯선 여행지에서든,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시군지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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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1800년대 말 서해안 지역의 도서 상황을 기록한 지도군총쇄록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瑣錄)』은 19세기 말의 자료로 오늘날 신안군 지역에 해당하는 당시 지도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오횡묵으로 지도군수로 부임을 받은 그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지도군까지 배를 타도 오는 일련의 과정과 지도군수로 있으면서 그가 여러 섬을 다니며 했던 일들을 이 책에 소상하게 기록해 놓았다. 여러 가지로 자료가 부족한 19세기 말 도서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 무척 의미 있는 책이 아닐 수 없다.
  •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시 대정읍의 역사자료전시관, 기억의 눌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은 알뜨르 비행장, 선알오름 학살터 등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 기억들을 모아놓은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의 이름이 기억의 눌이다. 눌은 제주 방언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더미'이다. 기억의 눌이 있는 건물은 1955년 지어진 대정면사무소 건물로, 2005년 등록문화재 157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억의 눌은 대정읍의 주민들이 직접 지역 공간의 기억과 기록을 모아 만든 전시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30년 동안 지역문화잡지를 발행해 온 문화모임 안동
    ‘문화모임 안동’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위한 전국 강연이 안동에서 열리면서 신문사 후원을 위해 모였던 안동지역의 문화인과 학자들이 안동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면서 만들어졌다. ‘문화모임 안동’을 통해 1988년 4월에 창간된 지역문화잡지 『안동』은 30년이 넘도록 발행되고 있다. 이 잡지에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며 안동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게재된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2014년에 종간될 뻔 했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여전히 발행되고 있다.
  • 경기 >이천시

    이천을 이끄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천 이야기 총론
    이천문화원은 이천 문화의 주체가 이천시민임을 인식하여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과 시민기록관 등 아카이브 기반 시설을 마련하였다. 주제별 아카이브와 이천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전문가 과정을 개설하였다. 2017년 ‘이천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다-이천 시민기록자 양성 과정’을 수료한 시민기록자들은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이천시민의 일상과 기억을 기록하고, 지역 아카이브 전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구술생애사, 마을지, 마을 노거수 사진 기록, 이천 옛이야기 총서 등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 동네 이야기를 기록·생산하고 있다.
  • 경기 >이천시

    주민의 관점에서 마을을 기록하는 문화 자치, 이천 마을지
    이천문화원은 2017년부터 외지에서 온 소수 전문가가 기록하는 기존의 마을지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주민이 기록 주체로 참여하는 방식의 마을지를 제작·발간해 오고 있다. 이를 위해 마을지 제작 우선 과정으로 시민기록자와 마을주민이 만나는 ‘마을 기록학교’를 마련하여 마을주민의 삶과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기록할지 주민 스스로 선택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에는 마을주민 인터뷰로 개개인의 기억과 마을 이야기 등을 기록하며 마을 역사를 재발견하고 마을주민이 마을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마을지를 발간한다.
  • 경기 >과천시

    시민들의 기증 자료로 꾸며진 과천향토사료관
    2012년 4월 16일 과천시 문원동에 있는 과천문화원 2층에 과천향토사료관을 개관하였다. 과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18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기증받은 자료인 고문헌, 박물류,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천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열정을 느낄 수 있고 조상들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곳이다.
  • 전남 >곡성군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곡성군 지명유래
    곡성이란 명칭은 본래 백제의 욕내(欲乃)에서 유래된다. 통일신라시대 지방통치조직과 군현개명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생성된 '곡성군' 지명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욕내군은 지금의 목사동면과 석곡면 일대로 고려시대까지 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골짜기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욕내'라는 순우리말 명칭이 한자로 변경되어 '곡성(谷城)'이 되었다고 한다.

겨울을 견딘 선조들의 지혜

칼바람이 두 뺨을 스칠 때마다 저절로 어깨가 움츠러드는 요즘입니다. 옷 안에 핫팩을 붙이고 그 위에 롱패딩을 걸치면, 동장군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한 기분이 드는데요. 이렇게 든든한 방한복이 없었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혹독한 한반도의 겨울을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선조들의 지혜는 바로 '겹쳐 입기'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패딩 속에 조끼를 껴입고 귀마개를 하듯 상황에 맞게 필요한 방한용품을 더하는 방식이었죠. 예를 들어, 저고리 위에 덧입던 '마고자'는 지금의 패딩 조끼처럼 체온을 유지해 주는 따뜻한 외투였습니다. 또한, '남바위'는 귀마개와 목도리의 역할을 동시에 해주어, 찬바람에 노출되기 쉬운 얼굴과 목 주변의 열을 고스란히 지켜주는 고마운 모자였답니다.
지금부터 오늘날의 롱패딩 못지않게 든든하고 포근했을 선조들의 방한용품들을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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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뒤쪽이 트이게 만든 아이용 바지, 풍차바지
    풍차바지는 바지 마루폭에 바람을 막아주는 풍차(風遮)를 달고 뒤가 길게 트인 아이용 바지이다. 풍차바지라는 이름은 바지 엉덩이 부분에 헝겊 조각인 ‘풍차’를 달아서 붙여졌다. 풍차바지의 형태는 큰사폭, 작은사폭, 마루폭, 조끼허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풍차바지의 앞은 보통 남자 바지와 같다. 마루폭에 순서대로 큰사폭과 작은사폭을 꿰매어 붙인다. 그리고 바지 뒤쪽의 트인 부분에 풍차를 대어 겹치게 하였다. 풍차바지는 성인의 바지와 구성은 비슷하지만, 뒤와 밑이 트여 아이들이 입기에 적합한 의복이었다. 풍차바지를 입고 어린아이들이 배변훈련을 하기도 하였고, 색상으로 남아와 여아를 구별하기도 했던 풍차바지는 아동들이 착용했던 옷 중에서도 가장 기능적인 옷이었다.
  • 전국

    조선시대 남녀가 겉옷으로 두른 두루마기
    주의(周衣)는 조선시대에 남녀 귀천 없이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우리나라 고유의 겉옷으로 주로 외출할 때 입었다. 주의는 한자어 표음으로 주막의(周莫衣)·주차의(周遮衣)라고도 하며 우리말로는 두루마기라고 한다. 두루마기는 다른 외투인 창의(氅衣)가 어깨 밑이 터져 세 폭이 따로 도는 것과 다르게 옷 전체가 두루 ‘막혀있다’라는 뜻의 ‘두루막이’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인 두루마기의 형태는 뒷길·앞겉길·앞안길과 소매, 그리고 겉섶·안섶이 있다. 또한 옷고름·안옷고름과 동정·깃 등으로 직령교임식(直領交衽式)이며 소매는 좁았다. 길이는 보통 발목에서 20~25cm 정도 올라오게 한다. 두루마기는 1884년(고종 21) 복제 개혁에 따라 종래의 웃옷인 창의·도포·중치막 등이 폐지되자 웃옷으로 유행하였다.
  • 전국

    추위를 피하기 위해 저고리 위에 덧입는 마고자
    마고자는 마괘자(馬褂子)라고도 하며, 저고리 위에 덧입는 덧옷으로 중국 청나라 때 의복이다. 1887년 흥선대원군이 청나라의 유폐에서 풀려나 귀국할 때 마고자를 입고 온 뒤부터 한국에서도 입기 시작하였다. 마고자는 저고리와 비슷한 형태에 깃과 동정, 고름이 없으며, 양 섶을 여밀 수 있도록 섶에 단추를 달았다. 남성용은 여성용과 다르게 섶을 달고 길이도 여자 것보다 길어서 양옆 아랫부분을 터서 활동성을 좋게 하였다. 마고자의 목둘레는 마고자 안에 저고리를 입었을 때 옷깃이 보이도록 V자 모양이며, 배래는 저고리와 같이 붕어 배래로 되어 있다. 단추는 하나이며, 괘와는 반대로 단추가 달린다.
  • 전국

    추위나 더위를 막기 위해 팔목에 끼는 토시
    토시는 팔목에 껴 추위나 더위를 막는 물건으로 ‘토수’라고도 한다. 원래는 남자들만 착용하였으나 점차 여자들도 착용하게 되어 조선시대 남녀노소 모두가 사용한 치레거리로 자리잡았다. 토시의 형태는 저고리 소매와 비슷하다. 한쪽 끝은 좁고, 다른 쪽은 넓다. 그래서 이를 봉재할 때는 버선처럼 4겹 박음질을 하고, 좌우 구분이 가능하게 만든다. 토시의 종류는 계절마다 소재와 형태가 달라 다양하였다. 토시는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외국에서 들어온 셔츠나 장갑과 같은 서양의복에 의해 차차 사라졌다. 1950년대 후반에는 노인들 일부만 사용하였으며 현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나 오늘날에도 등토시는 모시 한복에 받쳐 사용하기도 한다.
  • 전국

    뺨과 턱 그리고 정수리를 가릴 수 있던 방한구, 볼끼
    볼끼는 겨울철에 쓰는 방한구로 뺨과 턱, 그리고 귀까지 모두 감싸고 정수리에서 묶는 간단한 추위막이이다. 볼끼의 용어로 조선 전기에는 한자로 과시·협과로 기록되기도 하였으며, 후기에는 보을리·보을기, 볼기·볼끼 등으로 기록되면서 오랜 기간 동안 사용해왔다. 조선시대 볼끼의 재료는 신분별로 차이를 두어 왕실 여성들은 자적색을 사용하고 상궁 이하 궁인들은 백색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전국

    조선시대 남성들이 착용하던 방한모, 휘양(揮揚)
    휘양(揮揚)은 머리부터 어깨까지 덮는 방한모(防寒帽)로 조선시대 남자들이 주로 추운 겨울에 착용하였다. 휘양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정수리 부분을 둥글게 하고 이마 부위에 걸치게 한다. 모자의 아랫부분은 얼굴을 내놓는 부분으로 그 크기는 얼굴이 들어갈 정도로만 하고 윗부분은 약간 좁게 만든다. 뒤로는 통수와 목을 둘렀으며, 양쪽 볼끼에 끈을 달아 단단히 묶어 찬바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소재에 따라서 휘양은 모휘양(毛揮揚)·목휘양(木揮揚)·양휘양(凉揮揚)으로 구분하며, 실용성을 강조하였다.
  • 전국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 굴레
    굴레는 조선시대 후기 방한과 장식을 겸한 어린아이용 쓰개로 상류층 가정에서 돌쟁이부터 4~5세까지의 남녀 아이가 착용하였다. 굴레는 돌을 맞이한 아기들이 많이 써 ‘돌모’라고도 불리며, 아이의 건강에 대한 염원을 담은 다섯 가지 색의 비단에 화려한 장식을 덧붙여 아이의 쓰개로는 가장 화려하다. 굴레의 형태는 세 가닥 또는 더 많은 가닥을 얽어 정수리인 모부(帽部)를 덮고, 그 밑에 여러 가닥의 드림댕기가 드리워진다. 굴레는 어린이의 쓰개였지만 성인이 착용할 때도 있었다. 딸이 회갑을 맞을 때 부모님이 살아계시면, 딸이 색동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어머니의 무릎에 안기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때 굴레를 함께 썼다.
  • 전국

    조선시대 남녀가 공용으로 썼던 방한모, 남바위와 풍차
    남바위는 조선시대 남녀가 공용으로 썼던 방한모로 '이엄(耳掩)' 또는 '난이(暖耳)'라고도 하며 일명 ‘풍뎅이’라고도 한다. 남바위의 형태는 위가 뚫려 있고 가장자리는 볼에서 둥근 모양으로 끝나는 조바위와 다르게 볼을 가릴 수 있을 정도의 너비의 모선(毛縇)이 둘려 있다. 조선시대 방한모 중에 남바위와 형태가 비슷한 다른 쓰개로 풍차가 있다. 추위를 막을 수 있는 또 다른 쓰개인 풍차(風遮)는 남바위와 비슷하지만 귀와 빰, 턱을 가리는 볼끼가 모자부분과 이어져 있다. 남바위는 볼끼를 탈착할 수 있지만, 풍차는 볼끼를 사용하지 않을 때 뒤로 제쳐서 끈으로 매야 한다.
  • 전국

    겨울에 부녀자들이 추위를 막기 위해 착용했던 아얌
    아얌은 조선시대 때 부녀자들이 추위를 막으려고 머리에 쓰는 방한모로 액엄(額掩)이라고도 한다. 아얌의 형태는 머리에 쓰는 부분과 뒤에 늘어지는 큰 댕기로 이루어져, 크게 모부(帽部)와 드림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아얌은 조선시대에 양반가와 일반 부녀자들이 외출용으로 착용하고 때론 장식용 난모(暖帽)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기녀들도 아얌을 일상용으로 착용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 말기에 다른 방한용 모자인 조바위가 등장하면서 차츰 사라졌다.
  • 전국

    발에 감는 좁고 긴 무명천, 감발
    감발은 먼 길을 떠나거나 추위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발에 감는 좁고 긴 무명천으로 버선이나 양말 대신 착용했다. ‘신발’이란 말은 짚신의 ‘신’과 감발의 ‘발’에서 나온 말이며, 감발의 유형은 발을 보호하는 기능과 보온의 기능을 하는 두가지로 나타난다. 신발이 발달하지 않았고, 방한도구가 없었던 시기에 감발은 손이나 발을 보호하는 유일한 보호용 도구였으며, 따라서 감발은 장거리 여행이나 추위를 막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겨울의 한 가운데, 12月의 지역인물

12월에 태어난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알아봅시다.

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인물, 윤동주는식민지 청년의 상실감과 자아 성찰을 서정적으로 담아낸 많은 작품을 탄생시켰습니다. 어쩐지 겨울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작품들도 있죠.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영화 <암살>을 떠올리면 알 수 있듯 남자현은 48세의 나이에도 3.1운동에 참여하고, 무장투쟁을 펼쳤던 강력한 독립의지를 불태운 인물입니다.

평생을 권력에 저항했던 사회운동가 계훈제는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남으며 그의 집터에는 마을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마을 극장이 들어서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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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화순군

    고택에서 움튼 예술혼, 화순 오지호 생가
    오지호 화백은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개척자로 불린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화가, 교육자, 미술이론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그는 한국미술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거목이다. 그가 태어난 전라남도 화순의 고택은 1800년대에 지어졌다. 안채 사랑채, 화실 3개 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민족주의적 단체에서 활동했던 그는 일본 총독부의 탄압을 받아 한때 고향 집으로 돌아와 작품 활동에 몰두하기도 했다. 생가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2005년 개관한 오지호 기념관이 있다.
  • 전남 >화순군

    한국적 인상주의 화풍의 선구자, 오지호
    한국의 서양화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상주의 화가로, 생명력이 충만하고 밝은 우리 자연의 이상적인 모습을 명랑하고 찬연한 색채로 그렸다. 일본에서 인상주의 회화를 배웠지만 이후 한국적 풍토에 맞는 인상주의 미학을 수립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대표작으로 「사과밭」, 「남향집」, 「열대어」, 「항구」, 「무등산」 등이 있다.
  • 광주 >동구

    서양화 대가 모후산인 오지호가 살던 초가집인 광주 오지호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에 있는 오지호가(家)는 서양화의 대가인 오지호 화백이 1954년부터 1982년까지 살던 초가집이다. 오지호는 광주지역은 물론 한국미술 발전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인물이다. 오지호가는 1890년경에 건립된 것으로 1986년에 전면적인 보수가 이루어졌다. 동구청은 ‘동구 인문산책길’, ‘오감만족 풍류산책’ 등을 통해 오지호가를 활용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 윤동주
    시인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나 1945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했다.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때 동시를 쓰기 시작했고, 서울 연희전문학교 재학 시절 「별 헤는 밤」, 「자화상」, 「새로운 길」 등의 대표작을 썼다. 사후 친구들에 의해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나왔다. 윤동주는 식민지 지식인 청년의 상실감과 자아상이 담긴 서정적인 시를 썼다. 현재 그의 시비와 문학관 등은 연세대학교, 교토 도시샤대학, 서울 종로구, 교토 우지강변 등 세계 각지에 세워져있다.
  • 경남 >통영시

    박경리기념관, 통영을 사랑한 문학가가 잠든 곳
    박경리기념관은 통영 출신 고(故) 박경리(1926~2008년) 선생의 문학세계를 알리고, 대표작인 『김약국의 딸들』과 『토지』의 배경인 통영을 소개하고자 2010년에 세워졌다. 박경리기념관 전시실은 2층에 마련돼 있는데, 작가의 생애, 서재의 모습, 작품과 친필 원고, 20세기 초 통영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모형 등을 관람하고, 영상실과 자료실에서 관련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1층은 북카페로 차를 마시면서 고(故) 박경리 선생의 작품을 읽을 수 있는 곳이다. 앞마당에는 박경리 선생의 동상과 문장을 적은 비석이,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는 박경리 선생의 묘소가 조성돼 있다.
  • 경북 >영양군

    민족의식 충만했던 시인이자 지사 조지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로 시작하는 시 「승무」는 조지훈의 시다. 조지훈은 불교적인 바탕 위에 민족적 정서와 고전미를 시화한 시인이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해방 전 『큰사전』 편찬위원, 해방 이후 『사상계』 편집위원 등을 거치며 민족의식을 공고히 했고, 순수문학과 민족문학을 옹호했다. 고향인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에 지훈문학관이 건립되었다.
  • 강원 >홍천군

    한말의 독립운동가·교육자·언론인, 남궁억
    남궁억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언론인·교육자이다. 그는 내부주사(內部主事), 궁내부 별군직(別軍職), 칠곡부사(漆谷府使)를 역임하고 토목국장(土木局長)을 지내면서 탑골공원을 조성했다. 이후 독립협회에서 활동하고 황성신문 사장으로 취임했다. 양양군수(襄陽郡守)를 지내며 현산학교(峴山學校)를 설립하고 대한협회장, 관동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배화학당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교과서를 편찬했으며 홍천에서 모곡학교(牟谷學校)와 교회를 설립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윤동주문학관’, 우물 속 하늘과 맞닿은 공간
    윤동주문학관은 청운동아파트가 철거된 후 쓸모없어진 수도가압장을 개조해서 지은 문학관이다. 윤동주가 종로구 누상동에 잠시 머문 것이 인연이 돼서, 2012년에 문을 열었으며 종로문화재단에서 운영 중이다. 전시실은 수도가압장의 기존 시설을 가능한 살려서 만들어졌으며, 윤동주의 시를 감상할 수 있는 ‘시인채’와 천정이 뚫린 ‘열린 공간’, 감옥을 형상화한 ‘닫힌 공간’으로 나뉜다.
  • 서울 >도봉구

    평생을 자유와 평등을 외친 사회운동가 계훈제
    평생을 권력에 저항했던 사회운동가다. 그는 경성제국대학 법학부에 입학할 정도의 수재였으나 일제의 징용령을 거부하여 헌병에 체포되었다. 강제노역 후 그는 우리 민족의 현실과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평생토록 권력에 저항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재야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다. 항상 흰 고무신을 신고 생활을 했던 그를 기려 도봉구 방학동의 집터는 주민들을 위한 ‘마을극장 흰고무신’이 들어서 있다.
  • 경남 >하동군

    대하장편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경상남도 하동의 작가로 박경리가 있다. 하동에 있는 최참판댁과 박경리문학관에는 박경리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박경리의 대표작은 『토지』로, 조선 후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근대 한국의 역사를 담은 대하장편소설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가 『토지』의 주 무대다. 작품 속에서는 지리산과 섬진강을 낀 평사리의 넓고 비옥한 대지에 최참판댁과 마을 사람들이 생을 기탁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는 이러한 『토지』의 공간을 실재화해 낸 장소인 최참판댁이 있다. 최참판댁이 건립된 장소는 1985년 처음으로 『토지』를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할 당시 박경리가 최참판댁이 있을만한 장소라고 언급했던 곳이라고 전해진다.

초가집을 지키는 현명한 소방 대책

겨울에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화재입니다. 춥고 건조한 날씨와 늘어난 화기 사용으로 화재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현대에도 대형 화재는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를 낳는데요. 소방관이 없던 조선시대에는 과연 어떻게 화재를 진압했을까요?
크고 작은 화재를 잇달아 겪은 세종은 화재 예방과 진압을 담당하는 금화도감을 설치했어요. 그리고 여기에는 현재의 소방관에 해당하는 금화군과 멸화군이 속해 있었죠. 우리의 전통 가옥은 짚과 나무로 지은 초가집이라 화재에 매우 취약했고, 한번 불이 나면 수백 채에 불길이 옮겨붙었기에, 이들은 불길이 번지지 않도록 건물을 허무는 쇠갈고리와 도끼를 주로 사용했답니다.
화마의 위협이 컸던 만큼, 불을 다스리기 위한 토속신앙과 풍습도 많이 발달했습니다. 충남 논산에서 소금 단지를 땅에 묻어 바다의 기운으로 화마를 제압하고자 한 '소금단지 화재맥이'가 대표적인 예시죠. 화마와 맞서며 삶의 터전을 지켜온 조상들의 지혜로운 이야기를 통해 화재 예방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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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탄광의 가스 사고와 화재 사고
    탄광 사고 중에서 가스 재해는 가장 잦은 발생 빈도와 사상자를 유발하는 중대 사고이다. 지하 갱내 작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가스 폭발이나 화재가 발생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44명이 사망하면서 석탄산업 사상 최대 인명 피해를 낸 은성광업소 사고도 화재 때문이다. 갱내 공동에 있던 탄산가스가 밀려나오면서 가스질식 사고 같은 특이한 가스 사고도 있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의 소방관 멸화군
    조선의 소방관인 멸화군은 이름 그대로 불을 없애는 군인이다. 멸화군은 화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을 끄는 것 외에도 화재 예방을 위한 활동도 멸화군의 몫이었다. 이들은 순관들과 함께 야간순찰을 돌았는데, 이때 화재 예방활동을 펼쳤던 것이다. 금화(禁火)관련 포고령 역시 이들이 집집마다 전달했다. 멸화군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존속했지만 규모가 축소되면서 사라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서양의 소방장비를 비롯한 조직들이 도입되었다.
  • 전북 >익산시

    안내판만 남아있는 전라북도 익산의 소방산 봉수대
    소방산 봉수대는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에 소재한 봉화산에 있다. 이 봉수대의 축조 시기는 고려말로 추정하며, 남서쪽에 있는 군산 불지산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동쪽에 있는 광두원산 봉수대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현재 봉수대는 등산로가 조성되면서 파괴되어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으며, 함라면 주민들이 설치한 안내판만이 봉수대가 있었음을 대신하고 있다.
  • 서울 >마포구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수, 금화군
    조선시대 한양에서 불이 나면 최소 100여 채에서 최대 2,000여 채가 불에 타서 없어졌다. 조선의 가옥이 불에 취약했던 것은 나무와 짚으로 된 초가집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화재에 관한 범죄를 엄격하게 다스렸다. 방화범은 곤장 100대, 3년 유형, 교살형, 참형, 유배 등에 처했다. 세종은 크고 작은 화재가 잇따르자 1431년 5월에 우리나라 소방 전담 기구인 금화도감을 설치하고 금화군을 배치한다. 금화군의 화재 진압 장비는 밧줄, 사다리, 쇠갈고리, 도끼 등이었다. 금화군은 열악한 화재 장비로 인해 화재를 진압하는 것이 아니라 불난 건물을 쓰러트리는 등 불길이 번지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 전북 >순창군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순창 금월리 대각 당산제
    전북 순창 복흥면의 서쪽에 위치한 금월리 대각마을은 오래전부터 화재 예방을 목적으로 오릿대를 세우고 당산제를 지낸다. 대각마을 이외에 순창 지역에서 오리짐대를 세우는 곳은 석보리, 금상리 등 몇 군데가 남아 있다. 이중에서 금월리 대각마을 당산제가 마을 역사만큼이나 오랜 세월 전승되어 왔다. 현재 대각마을 당산제는 제물 준비나 제의 절차 등이 간소화되었지만, 주민들의 당산제에 대한 정성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 충남 >논산시

    화재 예방에 역점을 둔 논산 고산임화 동제와 소금단지 화재맥이
    논산 고산임화 동제와 소금단지 화재맥이와 같은 풍습은 논산시 양촌면 산간 마을에서 주로 전승되었으나, 최근에 들어 빠른 속도로 쇠퇴·소멸하고 있다. 화재맥이는 수시로 마을 사람들의 삶을 위협했던 화재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바다를 상징하는 소금을 통해 자신들의 거주 공간을 지키고자 했던 마을 사람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전통적 풍습이다. 먼저 소금을 산에 묻고 산신제를 지낸다는 점에서 특이한 형태의 동제라 하겠다.
  • 전북 >임실군

    임실 구암리 도깨비제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구암리 마을에서는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마을 제의가 행해진다. 특히 이 마을은 화재로 인한 사고가 빈번했는데 그 이유를 도깨비의 장난으로 생각해 도깨비제를 지낸다. 도깨비제는 시월 섣달그믐날 밤에 지낸다. 우선 풍물패가 제의의 시작을 알린다. 풍물패를 필두로 제관들이 당에 도착하면 제물을 진설한다. 미리 준비한 돼지머리와 조기, 메밀 시루떡이 제상에 올라간다. 전체적인 내용은 집에서 지내는 것과 유사하다. 제의가 정리되면 제물로 올린 메밀 시루떡을 느티나무 주변에 뿌린다. 도깨비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한 의례라 하는데 결국 도깨비를 달래 화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하는 셈이다.

김치의 효능을 알리는 날

11월 22일은 '김치의 날'입니다. 김치의 날은 김치의 가치와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로, 김치 소재 하나하나(11월)가 모여 22가지(22일)의 효능을 나타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각종 재료와 레시피로 수많은 김치 종류가 있는데요. 쌉싸름한 맛이 매력인 고들빼기김치, 톡 쏘는 알싸한 맛의 갓김치, 강화도 특산품인 순무로 만들어진 순무 섞박지 그리고 겨울철에 먹는 동치미 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김치는 여러 가지 음식으로 재탄생하기도 하는데요. 게 혹은 게장 국물을 넣고 만든 김치를 끓여 먹는 게국지부터 갓김치와 함께 해산물과 고기를 곁들여 먹는 여수삼합까지! 정말 다채로운 음식들이 있지 않나요?

김치와 함께하지 않는 밥상은 상상조차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익숙해서 찾아보지 않았던 김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지역N문화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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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한국인의 김치를 만드는 재료 배추
    배추는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는 저온성 채소이다. 중국이 원산지이며 한반도에서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고려시대 의서 『향약구급방』에 배추가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이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 고추, 마늘과 함께 4대 주요 채소로 인식되고 있으며, 배추의 대부분은 김치의 주재료로 소비된다.
  • 광주 >남구

    ‘광주김치박물관’, 한국 전통 발효 과학의 홍보대사
    광주김치박물관은 ‘김치’를 주제로 광주김치센터 본관 2층에 자리한 박물관이다. 김치의 역사, 김치라는 단어의 변천사, 김치 담는 재료와 과정, 전국의 다양한 김치 종류, 김치 담을 때 필요한 물품, 김치의 효능과 가치 등을 관람객에게 전하기 위해 2010년에 개관했다. 상설전시실은 전시 내용에 따라 ‘환영의 장’, ‘김치역사의 장’, ‘팔도김치의 장’, ‘김치체험의 장’, ‘김치탐구의 장’,‘발효음식의 장’으로 나뉜다. 늘 밥상에 오르는 김치를, 새삼 새롭게 보게 하는, 마법 같은 곳이다.
  • 인천 >강화군

    강화도의 특산물 순무로 담근, 순무섞박지
    섞박지는 무, 배추와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 담근 김치이다. 순무섞박지는 강화도의 특산품인 순무와 새우젓, 고춧가루, 생강, 마늘, 대파 등을 넣어 담그는 섞박지이다. 순무 특유의 씁쓸하고 달큰하며 독특한 향이 각종 양념과 조화를 이루면서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맛을 낸다.
  • 충남 >서산시

    게장 국물을 넣어 지져먹는 김치, 게국지
    게국지는 게나 게장 국물을 넣고 만든 김치를 지져 먹는(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충청남도의 향토음식이다. 요즘 방송에 소개되는 꽃게와 새우가 들어간 해물탕 형태의 게국지는 본래의 모습과 차이가 크다. 게국지는 구수하고 감칠맛도 풍부한 개성 있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으로 사람들을 끌고 있다.
  • 서울 >중구

    지금은 볼 수 없는 김장시장의 풍경
    김장은 한국의 오랜 전통이었다. 긴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담가 이웃과 나눠 먹는 즐거움도 컸다. 김장날은 육체적으로 고된 날이기도 하지만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김장을 하고 참을나눠 먹는 즐거운 날이기도 했다. 다른 한편 김장날은 농민들의 한 해 대목이기도 했다. 1946년 서울시는 전국 도처에서 몰려드는 김장 채소 상인들이 펼친 난장을 정리하고자 김장시장을 열었다. 김장시장은 197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신청자를 받아 여는 형태로 변화되었으며, 이후 농협, 상설시장, 대형마트 등으로 다양화되었다. 2000년대 이후 김장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산더미러처럼 배추를 쌓아두고 파는 김장시장의 모습은 사라졌다.
  • 전남 >여수시

    갓김치가 이어주는 바다와 고기의 맛, 여수삼합
    우리나라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물을 조합해 먹는 삼합요리가 있다. 광주의 홍어삼합, 장흥의 한우삼합, 여수의 돌문어삼합. 이름만 들어도 각 지역의 음식 맛깔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여수의 맛을 담아낸 여수삼합은 지역에서 해물삼합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여수 특산물인 돌문어와 돌산 갓김치를 한국인인 국민 고기인 삼겹살과 함께 불판 위에서 끓여내는 것이 특징이다. 사이좋게 한점씩 올려 한입에 먹으면 삼합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 전남 >무안군

    남도의 쌉싸름한 맛, 전라남도 고들빼기김치
    고들빼기김치는 소금물에 삭혀 쓴맛을 제거한 고들빼기를 멸치젓국,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의 양념에 버무려 담근 전라남도 지방의 향토음식이다. 고들빼기는 산과 들이나 밭 근처에서 자생하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두해살이풀로 뿌리와 잎을 나물이나 김치로 이용한다.
  • 전남 >여수시

    톡 쏘는 알싸한 남도의 맛, 여수 돌산갓김치
    돌산 갓김치는 여수의 향토음식으로 돌산도에서 재배한 갓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파, 멸치액젓과 생새우 등을 넣어 버무린 김치이다. 돌산 갓 특유의 톡 쏘는 매운맛과 알싸한 맛으로 예로부터 궁중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 돌산로 일대의 죽포, 두문포, 봉림, 방죽포의 네 개 마을은 ‘여수 돌산 갓김치 마을’로 지정되어있다.
  • 강원 >정선군

    매콤하고 아삭한 정선 갓
    갓은 잎과 줄기를 먹는 채소이다. 갓을 활용한 음식으로 갓김치가 가장 대표적이다. 매콤한 맛과 더불어 새콤한 맛도 지니고 있으면서 아삭한 식감을 지니고 있다. 갓은 같은 종자라고 하더라도 기온과 해발고도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정선의 경우는 해발고도가 높기 때문에 여기에서 재배되는 갓은 먹기에 적당한 맵기와 향을 지니게 된다. 갓이 정선의 특산물인 이유이다. 갓은 항산화 물질이 풍부하여 노화뿐만 아니라 질병이 발병하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 강원 >춘천시

    겨울철 물에 담가 먹는 김치, 동치미
    동치미는 무를 통째로 소금에 절여 배, 청각, 쪽파, 갓, 고추, 마늘, 생강 등과 함께 소금물을 부어 익힌 김치이다. 주로 김장철에 담그는 동치미는 옛 조리서에 ‘동침(凍沈, 冬沈)’으로 기록되어 있어 이름의 유래를 짐작할 수 있다. 북부 지방에서는 동치미 국물에 면을 말아 겨울철 별미로 즐겼고 강원도 지역에서도 막국수 국물로는 동치미 국물을 기본으로 한다.

나는 독립운동가입니다.

일제강점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일념으로 독립운동가가 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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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곡성 단군전
    곡성 단군전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당 신태윤이 1914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처음 건립했다. 백당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대에 곡성에 돌아와 오늘날의 단군전 자리에 새롭게 단군 사당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셔다 놓았다. 역사학자였던 백당은 가는 곳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단군전을 지었다.
  • 전북 >정읍시

    ‘2·8 독립선언’ 주역의 고향, 정읍 나용균 생가와 사당
    1919년 3·1 운동을 촉발시킨 2·8 독립선언의 주역 중에 나용균이 있다. 동경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나용균은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 야당 정치인을 하며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평생 독립투사 및 정치 지도자로 국가에 공헌한 나용균은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받았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나용균의 생가와 사당이 있다. 사랑채, 문간채, 고방, 사당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사당 건축은 호남의 유명한 목수 중 한 명인 심사일이 담당했다.
  • 전국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류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보달원은 관전현의 동부에 위치하고 있고, 고령지는 관전현의 동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소고령지는 보달원 고령지에 소속된 자연마을이다.
  • 전국

    윤희순 의사와 조선독립단의 항일독립투쟁
    윤희순의 생각으로 류돈상과 음성국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조선독립단은 학교와 가족부대 등을 만들어서 체계적으로 구국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흥경진공전과 무순공격전 등에 참가하여 일제와 맞서 싸웠다.
  • 전국

    윤희순이 환인현에 세운 학교 노학당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독립운동가 양성을 위해서 환인현 남괴마자에 1912년 동창학교의 분교로 노학당(老學堂)이란 학교를 세워서 교육하였다. 이곳에서 졸업한 학생 중 50여 명이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광주 >북구

    열악한 여건에서 탄생한 지역 교육의 거점 -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은 1957년 지역 건축계를 이끌었던 김한섭의 작품이다. 아직 교육대학이라는 학제가 정착되기 전 광주사범대학의 본관으로 지어졌다. 광주사범대학의 직접적인 전신은 1938년 개교한 광주사범학교이나, 뿌리를 따져보면 1923년 설립된 전라남도 공립 사범학교가 시원이라고 할 수 있다. 전라남도와 광주 건축계의 거목으로 일컬어지는 김한섭은 건축자재도, 전문 인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광주사범의 본관을 지었다. 철근을 조달하기 어려워 2층 건물에 슬래브 지붕을 만들 수 없자, 목구조 위에 경사지붕을 얹었다. 기둥은 벽돌을 쌓아 거푸집을 만들고 콘크리트를 채우는 방식으로 세웠다. 하지만, 주 출입구의 캐노피 현관과 창호와 벽돌 기둥을 리듬감 있게 배치한 수법 등은 건축가의 고뇌가 탄생시킨 작품으로 평가된다. 광주교육대학교는 원래의 본관을 부속 초등학교 교사 등으로 활용하다가 현재는 호남 최초로 개관한 교육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주교육대학교 교육박물관은 2014년 등록문화재 제644로 지정되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전북 >군산시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 발원지에 세워진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군산은 호남지방 최초의 3·1만세운동 발원지이다. 세브란스 의전 학생이었던 김병수가 민족대표 33인 중 하나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 장을 전달받아 1919년 3.1 운동 나흘 뒤 3월 5일 군산 구암동산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당시 총 28번의 만세운동에 3만 7천여 명이 참여했다. 군산의 3·5만세운동은 만세운동이 한강 이남 일대에 넓게 전파될 수 있었던 계기이자 도화선이었다. 전북 군산시 구암동 군산 3·1운동역사공원에 ‘군산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이 들어서 그날을 재현하고 있다.
  • 서울 >서대문구

    한국영화의 개척자, 춘사 나운규
    나운규(羅雲奎)는 독립운동가이자 영화인이다. 투철한 민족정신과 자유로운 예술관으로 29편의 작품을 남겼고, 그중 15편에서 직접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초창기 한국영화의 수준을 한단계 끌어올린 불후의 명작 <아리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