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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풍년을 기원하는 단오날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습니다. 제삿날에는 떡을 해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었으며, 남자는 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우리는 단오라고 부르는데요!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져 왔고, 그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전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매년 단오에 열리는 가장 오래된 축제 중 하나로,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축제로 불리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사와 굿, 관노가면극, 그네 타기, 씨름 등 단오날 행해지던 행사도 즐길 수 있답니다~ 올해 단오날에는 단오제에 참가하여 단오 풍습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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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여름철 선물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선자장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부채는 우리 조상들이 한여름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 가운데 합죽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 강원 >강릉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음력 4월 중순쯤에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진다.
  • 경기 >과천시

    공중에서 벌어지는 곡예 줄타기
    줄타기는 광대가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담,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곡예를 부리는 놀이다. 줄타기는 4월 초파일,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연희되었으며, 궁중의 행사, 권세 높은 집안의 잔치, 마을 축제, 장터 등에서도 공연되었다. 따라서 놀이판은 관아의 뜰이나 대감댁, 절마당, 장마당 등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훈련이 잘된 남자들이 타며, 청중 가운데 줄광대의 기량이 뛰어난 것에 감탄하여 돈 꾸러미나 비단을 내려주는 수도 있었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지금까지 이런 가면극은 없었다!' 특별한 강릉 관노가면극
    강릉 관노가면극은 강릉에서 관노들이 단오제 때 벌이는 무언 가면극이다. 근대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관노였음을 숨기려는 연희자들이 놀이를 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원형을 크게 잃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다. 관의 주도로 지역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놀이인 만큼 사회 풍자적인 다른 가면극들과 달리 오락적인 성격이 강하다.
  • 경북 >경산시

    한장군과 누이를 기념하는 무형문화재 ‘경산자인단오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용성면 일대에서 신라말 혹은 고려시대에 왜구로부터 주민들을 구한 한장군과 그녀의 누이를 기념하고, 그들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제사이다. 단옷날에 한묘제를 지내고, 자인단오굿, 호장장군 행렬, 여원무, 팔광대 등 왜구를 유인 섬멸한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함께 무녀를 동원하여 여원무를 추었다는 전설을 재현하는 제사이다. 1970년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축제의 형태로 지금껏 전승되고 있다. 2007년에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 전국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 전국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살피는 널뛰기놀이
    널뛰기는 널빤지 양쪽에 사람이 서서, 번갈아 가며 뛰어오르는 놀이다. 왜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이 '세상 구경을 하려고 널을 뛰었다', '시집가서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다', '귀신을 쫓으려고 널을 뛰었다'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 경남 >창녕군

    평민들의 영웅, 문호장(文戶長)을 기리는 영산 문호장굿
    영산문호장굿은 창녕군 영산면에서 단오날에 영산의 수호신인 문호장을 추모하기 위해 굿 과정에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굿놀이 형태이다. 4-5월에 이루어지며, 관의 기획에 의해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며, 무당의 굿,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형태인데, 현재 전승이 중단되어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많은 잔가시를 세심하게 발라낸, 단오에 먹는 준치만두
    진어(眞魚), 시어(鰣魚), 준치어(俊致魚), 준어(俊魚) 등으로 불리는 준치는 맛도 좋지만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준치만두는 잔가시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발라낸 준치 살과 쇠고기를 넣고 완자 형태로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묻혀 찌는 만두이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빚는 일반 만두와는 다른 형태로 일종의 굴림만두이다. 준치만두는 단오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준치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가볍게 즐기는 청주 여행

여름이 시작된 6월의 어느 날, 갑자기 홀가분히 떠나고 싶지 않으신가요? 그럴 때 가기 딱 좋은 곳이 있죠!

바로 충청북도의 청주입니다!

청주는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당일치기부터 1박 2일 코스까지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답니다! 그럼 가볍게 당일치기 코스로 한번 떠나볼까요?

먼저 대청호에 들러서 드라이브를 즐겨보세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문의문화재단지에 도착할 거예요. 문의문화재단지는 청주 시내의 유형, 무형 문화재 등을 수집 및 전시한 역사 교육장이랍니다. 역사를 배웠으니 이제 전시회를 즐기러 가볼까요? 전시회는 마동 창작마을에서 즐길 수 있습니다! 서양화가 이홍원 작가가 폐교를 개조하여 작업실 개인 공간을 개방한 곳으로, 전시관과 셀프카페를 운영하는 곳이에요. 전시를 보고 차 한 잔의 여유를 부리다 마지막으로 가덕 말미 장터 마을에 들러 고추장 담그기, 고추 따기 체험 등 농촌 체험을 즐겨봐요. 이렇게 당일치기를 즐기고 나면 재밌는 하루를 보낼 수 있을 거예요. 가볍게 즐기는 청주 여행으로 힐링과 재미를 동시에 만끽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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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청주시

    청주의 옛이름을 단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7.5km에 청주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91.2m 상당산 위에 쌓은 포곡식 석성이다. 둘레가 4.2km, 높이 3~4m, 내부면적 220,000평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 충북 >청주시

    선비의 정신을 갖춘 상업 인재를, 청주 대성고등학교 본관
    청주상업학교는 1930년대 청주 지역 학부모들의 염원과 청주 유지들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특히 청암 김원근과 석정 김영근 형제가 거금을 내놓아 학교 설립이 결실을 보았다. 붉은 벽돌 2층으로 지어진 학교 본관은 상업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해방 후 청주상업 고등학교가 되었으나 시대의 추세에 따라 2002년 인문계로 전환해 청주 대성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우암산 자락 인가 드문 뽕나무밭에 들어선 학교는 해방 후 청주대학교를 비롯해 학교 건물들이 잇따라 지어지고, 청주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번화한 거리로 변했다.
  • 충북 >청주시

    수도권과 삼남지방의 물건을 교류하던 청주 육거리종합시장
    청주시의 시장은 조선시대부터 활발하게 개설되었다. 청주시의 대표적 시장인 ‘육거리종합시장’은 청주장을 잇는 상설시장이다. 육거리종합시장은 9개의 상인회가 독립적으로 존재할 정도로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다. 육거리종합시장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시장’의 역할이 컸으며, 요즘에도 새벽시장(도깨비시장)이 열린다. 
  • 충북 >청주시

    등고강변의 지극히 선한 경지를 실천하고자 했던, 청주 지선정
    지선정은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중척리 산25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11호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오명립(1563~1633)이 1614년(광해군 6)에 등고강변의 언덕 위에 세운 정자이다. 등고강은 오늘날의 청주시 현도면 중척리 앞으로 흐르는 금강의 별칭으로, 이 일대를 가리키는 ‘등고’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현재의 청주시 현도면과 문의면 일대는 보성오씨가 집성을 이루며 살아온 지역이다. 지선정이라는 정자명은 『대학』의 지어지선(止於至善)에서 취한 것으로, 지극히 선한 경지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이후 피폐하고 어지러운 정사 속에서 풍속을 교화하고 향촌질서를 바로 세우려는 오명립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
  • 충북 >청주시

    청주 육거리종합시장에서의 의미 있는 답교놀이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다리를 밟는 민속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석교동에는 조선시대 이전에 놓인 다리 가운데 제일 긴 다리인 남석교(南石橋)가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의 물길이 변경되면서 매립되어 시장으로 변모하고, 남석교 또한 매몰되어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청주시의 대표적인 시장인 ‘육거리종합시장’은 1950년 이후에 형성되었다. 이곳 육거종합시장에 바로 남석교가 묻혀 있다. 그래서 청주문화원 등의 공공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시장 입구에 남석교 모형을 만들어 놓고 ‘남석교 다리밟기’ 놀이를 재현한다.
  • 충북 >청주시

    반란군의 회유에 넘어가지 않은 청주성 3인의 청주 표충사
    청주의 표충사는 이인좌의 반란군이 청주성을 함락할 때 성을 지키던 이봉상, 남연년, 홍림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청주성은 영남과 호남의 중간지점으로 군대가 무기를 갖춘 병영이 설치되어 있어 반란군이 가장 먼저 점령한 곳이었다. 청주성을 지키던 무신들은 반란군의 회유에도 넘어가지 않았고 오히려 반란군을 꾸짖고 죽임을 당했다.
  • 충북 >청주시

    미국 선교사 주택으로 쓰인 여섯채의 건물, 청주 탑동 양관
    충청북도 청주시 탑동에는 청주 탑동 양관이라는 6동의 서양식 건물이 있다. 미국의 선교사와 관련된 건물로 1906년에서 1932년 사이에 지어졌다. 모든 건물은 2층 이상이며 지하실을 갖추고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건축의 변화를 보인다. 벽돌로 쌓은 벽체에 지붕에는 기와가 올려져 있어 한식과 양식의 절충식 형태를 띠고 있다. 제3호부터 제6호는 일신여자고등학교 내부에, 제1호와 제2호는 외부에 자리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호랑이 숲에서 박생원 딸의 병을 낫게 해준 충북 청주시의 명암약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던 명암약수는 1920년대 무렵 발견한 탄산약수로 약수에 철분 성분을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청주 시내에서 상당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서 접근성이 좋기에 청주시민들이 많이 이용하였다. 명암약수는 청주에 살던 박생원 딸의 병을 치료해주었다는 설화가 함께 전승한다. 청주시에서는 명암약수터가 있던 곳을 유원지로 조성하였다. 명암약수터는 청주시민들의 소풍 장소이자, 나들이 장소였다. 2015년 청주시에서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였으며, 2021년에는 ‘명암밸리파크’라는 종합 유원지로 만들어 갈 계획이다.
  • 충북 >청주시

    보살사에 열린 청주 유림의 풍류,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있는 고인쇄박물관에는 을축갑회도(乙丑甲繪圖) 및 죽림갑계문서(竹林甲稧文書)가 소장되어 있다.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는 청주 일원에 거주하였던 을축년생(1625년) 사대부가 1682년에 갑계를 개최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와 그림이다. 특히 을축갑회도의 경우는 갑계가 열린 보살사 경내를 배경으로 당시의 정황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7세기 청주 지역 갑계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충북 >청주시

    주성교육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청주 구 청주공립보통학교 강당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영동에는 구 청주공립보통학교의 강당이었던 ‘주성교육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청주공립소학교로 개교하여 청주공립보통학교, 주성국민학교로 교명이 변경되다가 현재 주성초등학교로 불린다. 구 청주공립보통학교 강당은 2001년 주성교육박물관으로 개관하여 학습자료 및 민속용품 등 다양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이 건물은 충청북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건물로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국가등록문화재 제350호에 지정되었다.

호국보훈의 달, 가슴 깊이 새긴 고귀한 희생

6월을 되돌아 보면 의병의 날, 현충일, 6.25전쟁 등을 기념하는 기념일의 연속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친 국가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며 넋을 기리는 6월. 이러한 6월을 우리는 호국보훈의 달이라 칭합니다.

호국보훈은 나라를 지키고 보호한다는 의미와 '호국'과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의 '보훈'이 합쳐진 말로,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분들을 위하여 국가와 국민이 보답한다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어느덧 호국보훈의 달의 끝에 서 있는데요. 6월을 되돌아보며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나라를 지키고자 한 강인하고도 투철한 애국정신에 고마움을 표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 의병의 날(6월 1일) ♤ 현충일(6월 6일) ♤ 6.25전쟁(1950년 6월 25일)
♤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 제2연평해전(2020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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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전남 >나주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전투의 영웅, 김경진 육군중령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피아간 10일 동안 격전을 치루었다. 이들은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포탄이 하루 평균 5만 발 가까이 작렬하는 등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고지공방전을 치루었다. 김경진 소령은 이 과정에서 백마고지를 탈취, 확보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렇지만 김경진 소령이 고지탈환 작전 중 최후의 돌격사격을 전개하려는 찰라, 적군이 쏜 박격포탄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부산 >남구

    부산 유엔평화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유엔군을 기리는 곳
    유엔평화기념관은 2014년도에 개관한 국가보훈처 산하의 현충 시설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UN군을 기억하고, 평화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휴전에 이르는 역사가 전시된 ‘한국전쟁실’, 한국전쟁에 참여한 UN군의 현황과 참전용사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UN참전실’, UN의 활동과 지금도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소식을 전하는 ‘UN국제평화실’, 부산의 아동복지와 의료 여건 향상 등에 힘쓴 미국 장교 리차드 위트컴에 초점을 맞춘 ‘리차드 위트컴전’ 등을 관람할 수 있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경기 >김포시

    의병장 조헌을 기리는 우저서원
    우저서원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조헌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1648년에 지은 서원으로 1675년에 우저라는 사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경북 >칠곡군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다부동 전투의 그날을 기억하는 곳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6.25 전쟁의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유역을 지키고,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다부동 전투’에 대해 알리고자 2015년에 세워진 공공 박물관이다. 한국전쟁 발발에서부터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다부동 전투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학도의용군으로 나선 어린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학도의용군 태극기’ 앞에서 고개가 숙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전쟁의 무서움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 경북 >칠곡군

    왜관지구전투
    왜관 지역은 유엔군과 국군이 대구를 침공하기 위해 최후의 공세를 펼친 북한군이 격전을 치른 곳이다. 최후의 일각까지 유엔군과 국군은 고귀한 생명을 바쳐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적의 공세를 막아냈다.

말과 함께 걸어온 우리의 시간

2026년은 병오년, '붉은 말의 해'입니다. 불의 기운을 지닌 '병'과 말을 뜻하는 '오'가 만난 해인 만큼, 예부터 병오년은 강한 생명력과 추진력을 상징했는데요. 실제로도 말은 농사를 짓고, 전쟁터를 달리고, 사람과 물자를 나르며 단순한 상징물을 넘어 오랜 시간 우리의 동반자로 살아왔습니다.
그 흔적은 여러 이야기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미의 무덤 앞에서 절을 올리며 효를 실천한 춘천 마당골의 역마, 자동차보다 앞서 세상을 움직였던 기마 문화를 보여주는 등자 이야기,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제당에 모셨던 쇠말 신앙, 장수의 성급함 때문에 쓰러져 전설이 된 횡성 용마총까지, 말은 신앙, 기술, 전쟁, 생활문화 곳곳에서 우리와 함께해 왔습니다.
붉은 말의 해를 맞은 지금, 우리 곁을 묵묵히 지켜온 말의 이야기를 살펴볼까요? 말과 함께 걸어온 시간 속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선조들의 염원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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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말과 친해질 수 있는 종마장, 원당 렛츠런팜
    원당 렛츠런팜은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종마장이다. 도심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탁 트인 들판과 여유로운 말들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아이들이 승마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옆에 서삼릉과 농협대학도 있어 자연과 호흡하며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기에 좋은 곳이다.
  • 제주 >제주시

    정서방이 죽자 말이 머리를 내밀었던 제주 말머리
    옛날 제주시 용담동에 정 서방이라는 이가 살았다. 그는 먹기도 많이 먹을 뿐만 아니라 힘도 장사였다. 그의 식성을 감당하지 못한 부모가 관가에 가서 해결해 줄 것을 청했다. 관에서는 힘이 장사인 그가 훗날 역적이 될 것을 우려해 그를 죽이려고 했다. 팔다리에 바위를 묶어 바다에 던졌으나 정 서방은 삼 일 동안 떠올랐다. 마침내 정 서방이 물밑으로 가라앉고, 그 자리에서 백마 한 마리가 나와 울다가 따라 물속으로 들어갔다. 말머리가 나와 울었다해서 그 곳을 ‘말머리’라고 부른다.
  • 경기 >과천시

    말박물관, 경마장 옆 박물관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말박물관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당시 한국마사회가 과천에 승마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설립한 박물관으로, 1988년 ‘마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말과 관련된 모든 문화유산이 모여 있고, 역사 자료뿐만 아니라 현대 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말 조각과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문화복합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리에게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말을 교통수단이나 스포츠가 아닌, 문화로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말 전문 박물관이다.
  • 경북 >경주시

    말 위에서 몸을 자유자재로! 말 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 등자
    말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가축 중 하나로 19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널리 사용되었다. 말을 탈 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는 바로 등자이다. 등자는 발걸이라고도 하는데 말 위에서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해준다. 등자는 초기에 가죽 또는 나무로 만들었으나 점차 금속제로 만들어 사용하였다. 등자는 그 형태에 따라 크게 호등과 윤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호등은 발 앞부분을 감싸는 주머니 형태이며, 윤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삼각 고리형태이다. 우리나라는 고분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통해 적어도 삼국시대에는 등자를 사용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 전국

    말뚝박기와 마부놀이로 즐기던 말타기놀이
    말타기 놀이는 '움직이는 말타기(마부놀이)'와 '움직이지 않는 말타기(말뚝박기놀이)'로 나뉜다. 움직이는 말타기는 말과 마부를 한 사람씩 뽑은 뒤, 나머지 사람들이 말 등에 올라타는 놀이다. 반면 움직이지 않는 말타기는 두 편으로 나뉘어, 진 편이 허리를 굽혀 말이 되고 이긴 편이 그 위에 올라탄 후 대장끼리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린다.
  • 강원 >횡성군

    화살과 경주한 명마 무덤 마산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 ‘마산(馬山)’이라는 곳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횡성군에 살던 황장군이 용마(龍馬) 한필을 길렀다. 용마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황장군은 용마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황장군이 말 등에 올라탄 후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용마와 함께 달렸다. 황장군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용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화살 한 개가 날아와 땅에 꽂혔다.
  • 경기 >오산시

    권율이 말을 목욕시킨 세마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독산성(獨山城)과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독산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왜군은 독산성 함락이 어려워지자, 독산성 안에 우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물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 그 때 권율장군이 왜군들이 잘 보이는 곳에 말을 세워 놓고, 쌀로 목욕을 시켰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왜군들은 독산성 안에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고 여기고, 공격을 접고 물러났다고 한다.
  • 경기 >양평군

    호환 방지와 대장장이 사업번창을 위한 동제당의 쇠말
    고분이나 유적지에서 종종 철로 만든 말 조형물이 발견된다. 이런 쇠말들은 대체로 그리 크지는 않으며 철을 녹여 틀에 붓는 주물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철로 만들어진 쇠말은 전국의 마을제당 여러 곳에 봉안되어 있다. 마을제당에 쇠말을 봉안한 이유로는 호랑이와 대적하기 위해, 즉 호환을 방지를 위해, 마을의 수호신이 타고 다니라고, 근처에 솥점 또는 주물터(대장간) 등이 있어서 대장장이들이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만들어 바쳤다고 한다. 서산 창리와 삼척 내미노리에서는 호랑이와 대적하기 위해서이고 양평 성덕리에서는 대장장이들이 장사가 잘되기를 바라며 마을제당에 쇠말을 바치기도 했다.
  • 강원 >춘천시

    말 효성에 감복해 말 사당을 지었던 강원도 춘천시 마당골
    강원도 춘천시 서면 당림리(塘林里)를 예전에는 ‘마당골’이라 불렀다. ‘당림’의 지명은 신당(神堂)을 모신 숲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한 것이다. 경기도 가평에서 춘천을 오르내리는 안보역에 나이가 많은 말이 있었다. 늙은 말은 당 숲을 지날 때면 항상 사람과 짐을 강제로 내리게 하고, 당 숲을 향해 절을 해야만 춘천까지 오르내렸다. 당 숲 앞을 지날 때 절을 하는 것은 늙은 말의 할머니 때부터 해왔으며, 그 어미를 기억하는 늙은 말의 효성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말의 안녕을 기원하는 사당을 짓고, 사당이 있는 곳을 ‘마당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비한 보라빛같은 전통 시장

여러분은 필요한 물건이 생기면 어디서 구매하나요? 대부분 대형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서 구매하실 것 같은데요. 이번 주말엔 정겨우면서도 신비로운 전통 시장을 방문해보는건 어떨까요?

광주의 말바우시장은 상설 점포시장과 2, 4, 7, 9일마다 열리는 정기시장이 공존하는 곳입니다. 장날이 되면 곡성, 담양 등 근처의 농민들이 재배한 신선한 상품을 직접 가져와 판다고 해요.

원주의 미로예술시장은 원주중앙시장의 2층에 위치해있습니다. 미로와 같은 골목으로 이어져있어서 발길이 닿는대로 돌아보는 재미가 매력적이라고 해요.

성남의 성호시장은 성남시가 개발되기 전 60년대 말부터 형성된 곳입니다. 한때 1,000여 개가 넘는 점포가 운영되었지만 점차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50여 년의 세월을 거친 예전의 향수를 느껴볼 수 있는 시장이라고 해요.

이렇게 전국의 다양한 시장들을 알아봤는데요. 여러분 지역에도 있을 전통시장 한번 구경하러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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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북구

    노점상의 단속으로 생겨난 말바우시장
    말 발자국이 찍혀있는 전설의 말바위. 지금은 그 바위가 있던 야산은 사라졌지만 말바위란 이름은 시장으로 남았다. 광주광역시 말바우시장은 노점상에서부터 시작했다. 버스터미널이 있고, 버스 노선의 요충지였던 곳이라 유동인구가 많아지면서 노점상들이 몰려들었다. 여기에 서방시장에 장옥이 들어서고, 행정기관이 노점상을 단속하면서 서방시장의 노점상인들이 범두고개 너머로 이전했다. 이렇게 형성된 시장이 점차 확장되면서 오늘날의 말바우시장을 이룬다.
  • 경기 >성남시

    성남시의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남은 성남 성호시장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동에는 성호시장이라는 전통시장이 있다. 성호시장은 성남시가 생겨나기 이전인 1960년대 말, 성남 지역으로 모여든 주민들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되었다. 성남시의 최대 상권으로 자리 잡으며 중앙시장, 모란시장과 함께 성남시 3대 시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 대형 마트가 등장하면서 상권의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질 좋은 물건과 저렴한 가격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 오랜 세월 동안 유지되어 온 만큼 앞으로 성호시장의 새로운 모습도 기대해 본다.
  • 강원 >원주시

    미로와 함께 재탄생한 레트로 시장, 원주중앙시장(미로예술시장)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에 위치한 원주중앙시장은 1950년대 중앙동 오일장으로 시작하여, 1970년 2층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재건축 없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항상 손님이 붐비었지만,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떨어져 방치된 2층은 2015년 문화 관광형 시장과 청년지원 사업에 선정되면서 미로예술시장으로 재탄생하였다. 이름처럼 미로와 같은 골목으로 이어져 있어서,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보는 게 미로예술시장만의 매력이다.
  • 서울 >중구

    동대문 평화시장과 한국의 노동운동
    동대문 평화시장은 한때 의류생산의 본거지였다. 지금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지역 등에 공장을 세우고 옷을 만들지만 도매시장에서 옷을 직접 만들어 팔았던 시절이 있었다. 평화시장의 가게들도 판매와 생산을 동시에 했고, 한국 의류산업 발전의 기틀을 닦았다. 하지만 이곳의 노동환경은 그리 좋지 못했다. 빛도 안 들고, 공기도 안 통하는 비좁은 공장에서 적은 돈을 받고 오랜 시간동안 일했다. 옷을 만들면 만들수록 몸은 병들어갔다. 이러한 환경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사회의식을 갖게 하였고, 한국사회의 노동운동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 강원 >태백시

    10일에 한번 씩 장이 서는 태백의 통리5일장
    '통리5일장'은 동해의 북평장에 이어 강원도에서 두 번째로 큰 시장으로 태백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현재는 상설시장과 오일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보통의 오일장과 달리 매월 5일, 15일, 25일에 장이 선다. 주로 해산물을 비롯하여 제철 과일과 채소, 농산물, 약초, 농기구 등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 서울 >동작구

    내륙 최대의 수산물 도매시장인 노량진수산시장
    노량진수산시장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수산물 전문 도매시장이다. 1927년 서울역 인근에 개설되었다가 1971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1980년대 중반까지 수산물 도매시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가락시장의 개장과 시설의 노후화 문제로 위축되었지만, 다시 노량진수산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재화 사업을 진행하였다. 현재는 서울을 찾는 많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시장 중 하나이다.
  • 강원 >삼척시

    싱싱한 수산물과 고랭지 채소가 함께하는 삼척중앙시장
    삼척중앙시장은 강원도 삼척시에 위치한 유일한 상설재래시장으로 1975년 10월 전통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매일 2일, 7일 열리는 5일장을 겸하고 있으며, 상인이 아닌 사람도 재배한 농산물을 팔 수 있는 직거래 장터도 마련되어 있다. 산과 바다가 많은 지역적 특성상 동해안의 싱싱한 해산물과 어물을 판매하고 있으며, 채소와 과일, 신발 등의 물품을 판매한다. 요즘 찾아보기 어려운 방앗간도 볼 수 있다. 5일장날에는 시장 골목 사이에 많은 노점이 열려 장터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다섯가지 덕이 담긴 막걸리 한 사발

막걸리는 전근대기 한국인들이 가장 자주 만들고 즐겨 마셨던 술입니다. 막걸리는 찐 곡식과 누룩, 그리고 물을 섞어 발효시킨 것으로, 그 특유의 맛과 향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주세령이라는 법령으로 인해 집에서의 술 만들기가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막걸리 제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걸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고, 1990년대에 들어서야 현재와 같이 100% 쌀로 만든 막걸리가 시장에 출시되었습니다.

현재는 전통주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막걸리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막걸리에는 '오덕'이라는 다섯 가지 덕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 '오덕'에 대해 더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오늘은 막걸리 한잔과 함께 이 '오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01. 취하되 인사불성일 만큼 취하지 않음이 일덕(一德)이요,
02. 새참에 마시면 요기되는 것이 이덕(二德)이며,
03. 힘 빠졌을 때 기운 돋우는 것이 삼덕(三德)이다.
04. 안 되던 일도 마시고 넌지시 웃으면 되는 것이 사덕(四德)이며,
05. 더불어 마시면 응어리 풀리는 것이 오덕(五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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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그때그때 달라요, 막걸리 재료의 변화
    막걸리는 전근대기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만들고 많이 먹던 술이었다. 농번기나 축성 등의 노역에는 반드시 필요한 노동주였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집에서 술 빚는 것을 금지시키고 양조장에서 술을 사먹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러면서 막걸리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였다. 이것은 막걸리를 마시며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추가의 세금을 걷으려는 것이었다. 해방 후 쌀이 귀해지면서 막걸리는 밀가루로 만들다가 1990년 다시 쌀로 만든 막걸리가 허용되었다.
  • 부산 >금정구

    누룩, 국가가 통제하다.
    누룩은 곡식을 발효시켜 술로 만들 때 필요한 발효제이다. 전근대 시기 누룩은 주로 밀로 만들었는데 밀 농사를 지은 농민들이 부업으로 만들어 장에서 팔았다. 일제시대 대규모로 누룩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출현하였는데 농촌에서 부업으로 만드는 누룩도 공존하였다. 1930년대 일제는 누룩 제조를 특정 공장에만 허가하고 전매권을 주었다. 다양하게 만들어지던 누룩은 국가에 의해 통제되었다.
  • 경기 >양평군

    프랑스군 본부가 되었던 100년 술도가, 양평 지평양조장
    경기도 양평 지평양조장은 1925년 설립되었고, 양조장 건물은 1939년 지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환기를 위해 지붕에 높은 창을 낸 지평양조장은 1951년 2월 프랑스군의 지휘 본부의 역할을 잠시 해야 했다. 근방에서 지평양조장보다 나은 지휘소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화약 연기가 사라지고 다시 술을 빚기 시작한 지평양조장은 100년 된 옛 우물에서 길어올린 물로, 전통방식을 이어가려 애쓰며 막걸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지평양조장의 지평막걸리는 전국적으로 애주가들이 찾는 막걸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충북 >진천군

    탁배기 한 잔이 건네는 위로, 진천 덕산양조장
    덕산양조장 건물은 1930년 지어졌다. 백두산에서 목재를 가져올 만큼 정성을 기울인 건축물이다. 양조 과정을 좌우하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왕겨를 채워 넣은 두꺼운 벽체를 세웠고, 천장 판자 위에도 왕겨를 채웠다. 자연스러운 환기가 되도록 통풍 구조를 만들고, 양조장 앞 화단에는 측백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다. 덕산양조장은 한국전쟁 시기 소실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고, 막걸리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시기에는 10년간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깔끔하고 묵직한 술맛을 잃지 않으면서, 여전히 서민들에게 한 잔의 위로를 건네는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 경남 >밀양시

    클래식 음악만 듣고 자란 막걸리랍니다.
    막걸리는 남녀를 불문하고 격식을 차리거나 근사한 안주가 없어도 마실 수 있는 술이다. 경상남도 밀양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서 만들어진 클래식 생막걸리가 있다. 생막걸리는 살균을 한 막걸리와 달리 효모와 유산균이 살아있기에 유통기한이 짧다. 단장 양조장에서는 밀양에서 생산되는 쌀로만 술을 빚어 특산주로 면허를 받고 인터넷 판매를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 부산 >금정구

    막걸리계의 큰 형님, 부산 금정산성 막걸리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는 막걸리들 중 유일하게 향토 민속주로 지정된 전통 쌀 막걸리이다. 300여 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금정산성 막걸리는 자연 속에서 발효된 누룩과 청정한 물로 빚어 은은한 향과 구수한 감칠맛을 특징으로 한다.
  • 경북 >문경시

    탁배기 한잔에 목구멍 탄가루 씻고 – 문경 가은양조장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가은양조장은 은성무연탄광 개발이 시작되던 1938년 12월에 영업을 시작했다. 은성무연탄광은 1994년 폐광될 때까지 은성탄광이라는 이름으로 석탄을 채굴했다. 가은양조장은 탄광촌이 형성되고 가은읍에 50여 개로 늘어난 술집에 막걸리를 공급했다. 탄부들은 8시간 동안 막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쌓인 피로와 탄가루 먼지를 가은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로 씻어냈다. 가은양조장은 1970년대 중반 가장 번창할 때 하루 1만 리터의 막걸리를 팔았다고 한다. 은성탄광은 1994년 폐광되었다. 막걸리 소비가 소주와 맥주에 밀려 점차 줄어든 데다가, 은성탄광 폐광으로 가은양조장도 2010년 결국 문을 닫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가은양조장 사무실과 공장 건물은 당시 양조장의 구조를 잘 보여주며, 예전 서류 등이 보관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가은양조장은 2017년 등록문화재 제706호로 지정되어, 국내 양조장 가운데 세 번째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 전남 >고흥군

    고흥의 유자와 쌀, 청정수가 탄생시킨 고흥 유자막걸리
    탐스러운 유자가 재배되기에 최적화된 기후조건을 가진 전라남도 고흥에서는 오래전부터 유자나무를 심어왔다. 풍성하게 수확되는 유자는 특유의 산미 때문에 과육을 그대로 먹기보다는 씨를 발라내고 껍질과 과즙을 다양한 방식으로 가공하여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그중에서도 유자 막걸리는 고흥에서 재배된 유자와 쌀 그리고 청정수가 어우러져 특유의 향긋함과 구수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 강원

    달고 부드러워 술술 넘어가는 옥수수 막걸리
    강원도하면 옥수수, 옥수수하면 강원도다. 지형이 험하고 흙이 거친 강원도에서도 잘 자라는 옥수수는 오랜 세월동안 강원도를 먹여 살렸다. 강냉이 범벅, 옥수수전, 옥수수빵 등 옥수수로 만든 수많은 음식이 있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강원도 특산품은 바로 강원도 옥수수 막걸리가 아닌가 싶다. 시금털털한 막걸리 맛의 편견을 깨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누구나 좋아한다.
  • 충남 >부여군

    부여의 달콤한 밤과 알밤막걸리
    충청남도 부여군은 공주시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밤 생산지이다. 억센 가시가 돋은 밤송이 속에는 윤기 나는 밤이 한 개에서 많게는 세 개씩 숨어있다. 밤은 생으로 먹어도, 구워서 먹어도 맛있지만 막걸리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특히 부여군의 알밤으로 만드는 밤막걸리들은 그 달콤하고 진득한 맛으로 젊은이들과 여성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막걸리는 시금털털하다는 편견을 깨어버리는 달콤한 알밤막걸리는 고소하고 달콤하고 목넘김이 좋아 술술 들이킬 수 있다.

노동요를 부르면 일이 쉬워져요

우리나라는 농경을 중시하던 농경사회였는데요.
한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의례를 지내며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농경사회이던 과거, 봄이 되면 모두가 바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겨울 내 얼어있던 땅을 갈구고 씨앗을 뿌리며 곡식 재배를 위해 부단히 노력한답니다.

곡식 하나가 자라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동력이 들어가기에 쉬이 지치고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농부들은 타령을 부르며 힘듦을 잊고 즐겁게 농사일을 하였는데요.
그렇게 부른 타령을 '노동요'라 합니다.

전국 곳곳마다 다 다른 노동요는 그 지역의 특색을 보여줍니다.
대표적인 노동요로는 벼를 심을 때 부르는 「모심는 소리」,‘옹헤야 어절시구, 옹헤야 저절시구, 옹헤야 잘도 논다~' 구절이 유명한 경상도에서 보리타작할 때 부르던 「옹헤야」 등이 있습니다.

농업을 근간으로 생활해 왔기에 특히 농업 노동요가 많으며 24절기에 따른 농사 과정, 방식 등도 노동요에 담겨 있으니 지역에 따른 노동요가 더욱 궁금하다면 지역N문화에서 자세히 알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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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서구

    일을 하며 부르는 노동요, 구덕 망깨터다지기
    구덕 망깨터다지기는 무겁고 넓적한 돌을 이용해 터를 단단하게 다지는 망깨질 작업을 놀이화한 것이다. 터를 다지기 전에 집을 지켜주는 여러 신들께 제사를 지내고 가래질과 망깨질을 하는데, 여기에는 노동의 고단함을 노랫가락에 맞춰 씻어버리고 집안의 평안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전남 >순천시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서 논 매며 부르는 산아지타령
    전남 순천시에서는 「논매는소리」로 산아지타령을 불렀다. 「논매는소리」는 논에 잡초를 뽑으며 부르던 노래로 우리 민요 가운데 그 종류가 가장 다양하다. 산아지타령은 4마디 2행의 전언가사에 “에야디야 에헤이에야 에야디여라 산아지로구나”와 같은 디딤가사를 붙여 선후창으로 부른다. 순천시 주암면 동촌마을에서는 논을 맬 때마다 불렀으나, 그 중 초벌매기할 때 가장 많이 불렀다고 한다.
  • 충북 >진천군

    충북 진천의 모 찌며 부르는 뭉치세소리
    충청북도 진천군에서는 「모찌는소리」로 뭉치세소리를 불렀다. 「모찌는소리」는 모판에서 모를 뽑아 한춤씩 묶으며 부르던 노래이다. 뭉치세소리는 충청남도와 충청북도에서 불렸으며 특히 충청북도에서 보다 활발하게 불렸다. 가창방식은 선후창이다. 전언가사는 2마디 또는 4마디로 구성되나 대개는 4마디이다. 디딤가사는 “뭉치세 뭉치세 이못자리 뭉치세” “뭉치세 뭉치세 에이나 뭉치세”처럼 ‘뭉치세’를 핵심어로 삼는다.
  • 충남 >서천군

    충남 서천의 볏단 나르며 부르는 어웨기소리
    충청남도 서천군에서는 「볏단나르는소리」로 어웨기소리를 불렀다. 「볏단나르는소리」는 볏단을 말리기 위해 논두렁으로 메고 가면서 불렀던 소리로 충남 지역에서는 「벼쳐내는소리」라고도 한다. 어웨기소리는 현재까지 충남 일부 지역에서만 확인이 된 노래이다. 4마디짜리 전언가사에, '허 허 허어허 허야 어 허어이 허 어' 또는 이와 비슷한 소리로 디딤가사를 붙인다. 가창방식은 선후창이다.
  • 충남 >청양군

    충남 청양의 벼를 털며 부르는 왔나소리
    충청남도 청양군에서는 「벼터는소리」로 왔나소리를 부른다. 「벼터는소리」는 볏단을 개상, 탯돌, 나무 절구통 등에 내리쳐 알곡을 털어낼 때 부르는 소리로 주로 충남 서부 지역에서 왕성하게 불렸다. 그 중에서도 왔나소리가 가장 성하게 불린 노래이다. 왔나소리는 선후창으로 부르며, “왔나”라고 물으며 시작한다. 마지막 구절 “허어헤 허어어헤 허디어 나하헤”는 제창으로 부르며, 이 소리 후 볏단을 새 것으로 교체한다.
  • 경기 >포천시

    경기도 포천에서 쌍겨리로 밭을 갈면서 부르는 이러소리
    신북면은 경기도 포천시 서부에 위치하고 있다. 「밭가는 소리」는 「소모는 소리」로 강원도와 경기도에서 주로 전승되었다. 주로 비탈진 밭이 있는 지역에서 밭을 갈 때 불렀다.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갈월리에서 밭을 갈 때 부르던 노래는 쌍겨리 소리인 이러소리로, 소 두 마리로 밭을 갈면서 부르는 노래이다. 소에게 방향을 지시하거나 칭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 제주 >제주시

    밭을 매면서 부르는 제주 행원마을의 「사대소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행원리는 600여 년 전에 김해 김씨가 들어와 살면서 마을이 형성된 반농반어마을이다. 당근·마늘·콩 등을 많이 재배하고, 해산물로는 소라·우뭇가사리를 많이 채취한다. 「사대소리」는 밭을 맬 때 부르는 노래로, 2∼4명이 밭을 맬 때는 교환창이나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하는 윤창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밭매기를 하면서 산천은 젊어지는데 우리네는 늙어만 간다고 얘기하며, 그래도 자식이 있으니 빨리 매고 내려가자고 한다.
  • 경북 >영주시

    경북 영주의 우마차 끌며 부르는 이랴소리
    경북 영주시에서는 「우마차끄는소리」로 이랴소리를 불렀다. 「우마차끄는소리」는 소나 말이 끄는 달구지를 몰고 가며 부르는 노래이다. 전승지역이 한정적인 귀한 소리인데다, 주로 논밭 갈 때 부르는 이랴소리를 우마차끄는 소리로 전승한 곳은 영주가 유일하다. 이랴소리는 자유로운 리듬에 소를 몰기 위해 재촉하는 내용과 함께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전북 >진안군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진안 호암마을의 「미나리」
    전라북도 진안군 용담면 호계리 호암마을은 용담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면서 수몰 주민들이 옛 대방마을 쪽으로 이주하여 새로 호계마을을 조성했다. 댐이 건설되기 전 산간마을일 때 호암마을에서 부르던 모심기 노래는 「미나리」로, 두 사람 교대로 부르는 교환창이었다. 호암마을 「미나리」에서 특이한 점은 창자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중간마다 소리를 길게 빼면서 ‘허으하’, ‘허으허’, ‘호우호’, ‘헤이헤’ 등과 같이 부르는데, 이는 호암마을의 「밭매는소리」와 가창방식, 창법 및 곡조, 노랫말까지 닮았다.
  • 전북 >익산시

    모를 심으면서 부르는 익산 상단마을의 「상사소리」와 「자진상사소리」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구평리에는 죽청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고, 맹동·장평·노동·상단·하단 등 여러 자연마을이 있어 논농사를 지었다. 전북지역에서는 모심을 때 「미나리」, 「상사소리」, 「정자소리」 등을 주로 부르고, 익산시에서는 「상사소리」가 중심을 이룬다. 전북지역 「상사소리」의 선소리에서는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말을 들어보소, 아냐 농부야 말 좀 듣소” 등과 같은 노랫말이 나오는데, 상단마을에서 부르는 「상사소리」에는 이 노랫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맘 편히 충주로 훌쩍 떠나자

매일 바쁜 일상에 휩쓸려 지친 마음을 달래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요? 그럴 땐 맘 편히 충주로 훌쩍 떠나볼까요~? 충청북도에 위치한 충주는 경기, 강원, 경상 3개의 도와 맞닿아있어 비교적 맘 편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입니다! 어라, 너무 지쳐서 여행 계획도 세우기 힘드시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 때를 위한 충주의 풀코스가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황옥동굴 → 석종사 → 탄금대 → 중원당 → 중앙탑 사적공원 → 장미산성 → 목계솔밭 → 비내섬

코스 중간중간 충주의 대표 음식인 꿩요리, 산나물밥상, 올뱅이 해장국을 맛보시면 더욱 더 안성맞춤이겠죠?! 뚜벅이 & 운전하기 싫은 분들을 위한 코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체험관광 디자이너가 함께하는 충주의 감성버스 투어입니다! 인기 있는 충주의 관광명소와 특별한 체험 그리고 맛있는 밥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답니다~ 이런 코스들 맘에 드시나요? 그렇담 맘 편히 충주 여행을 떠나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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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충주시

    700리 남한강 물길의 대표 포구, 충주 목계나루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 목계리에는 700리 남한강의 물길의 중심포구였던 목계포구가 있었다. 물길과 육로가 연결되어 내륙의 물산과 남한강을 통해 유입되는 물산이 집산되었고, 조선 후기의 5대 하항(河港)에 속해 ‘오목계(五牧溪)’로 불렸다. 1930년대에 충주와 서울을 잇는 충북선 철도가 가설되면서 남한강 수운 기능이 소멸하기 이전까지 물류 교류의 중심지였다. 세금을 거두는 조운선 20여 척이 교차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소유하고 있어, 내륙에 있는 포구 중 가장 컸다. 충청도를 중심으로 경기도, 경상도, 강원도 지역에 이르기까지 여러 지역과 연계하였다. 주요 거래품은 쌀과 소금 등이었으며, 배가 들어오면 강변에 장시가 개설되었고, 전국에서 몰려온 장꾼과 놀이패가 한바탕 난장을 펼쳤다. 800여 호가 거주민이 상업에 전념할 정도로 번성했다. 2015년에 충주시는 목계나루의 옛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나루복원과 문화마을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 충북 >충주시

    철 생산지 충주에서 제작된 고려중기 철불, 단호사 철조여래좌상
    단호사(丹湖寺) 철조여래좌상은 고대부터 철 생산 중심지였던 충주지역에서 조성된 고려 중기 철불좌상이다. 높이 130㎝ 규모의 비교적 소형 불상이지만 당당한 자세와 근엄한 표정 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경직된 안면과 도식화된 법의 표현 등은 나말여초 및 고려 초 철불과는 대조되는 것으로, 고려 중기 이후 철불 조성이 감소하면서 나타나는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 충북 >충주시

    계명산에서 자리를 옮긴 충북 충주의 심항산 봉수
    심항산 봉수는 충청북도 충주시 종민동에 소재한 심항산 정상부에 있다. 이 봉수는 고려 말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동쪽에 있는 제천 오현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서쪽에 있는 마산 봉수로 연결했던 내지봉수였다. 본래 심항산 봉수는 계명산에 있었는데, 당시 산이 높고 험준하여 봉수군의 고역이 크고 날이 흐리면 조망이 좋지 않아 조망이 좋은 지금의 심항산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현재 심항산 일대는 신과 호수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충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알려지면서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 충북 >충주시

    철 생산지에서 만든 토속화된 철불, 충주 철조여래좌상
    충주 철조여래좌상은 봉안 사찰을 알 수 없다. 최초 발견장소는 충주공업고등학교 근처였는데 1922년 충주 군청으로 옮겼다가 1937년 마하사(摩訶寺)로 이전하였다. 다시 1959년 대원사로 옮겨 봉안했으나 1994년 대원사 대웅전에 화재가 나 일부 손상을 입은 채 충주시립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1998년 대원사에 다시 봉안되었다. 98cm의 크기로 눈은 활모양으로 휘어졌고, 입꼬리는 양쪽이 다 쳐져서 상당히 토속화된 양식을 보여준다.
  • 충북 >충주시

    신라 가야금의 명인 우륵과 충주5현을 추모하는 ‘우륵문화제’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가야인 악성(樂聖)우륵을 비롯해 충주 출신 5현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우륵이 충주 탄금대에서 가야금을 연주하고, 제자들을 양성한 일은 유명하다. 우륵 외에도 임경업, 신립, 강수, 김생 등의 충주 출신 명현 다섯명을 충주오현이라 하여 명현 추모제를 드리고, 탄금대 가야금 경진대회 등을 개최하고 있다. 매년 9월말에 개최되는 우륵문화제는 한국의 전통음악문화를 전승하고 널리 알리며 충주의 항토문화예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개최되고 있다.
  • 충북 >충주시

    태조 이성계가 욕창 치료를 위해 다녀간 충북 충주시의 수안보 온천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에 ‘수안보 온천’ 지대가 소재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태조 이성계가 욕창을 치료하기 위해 수안보 온천을 자주 찾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권람, 권상하, 안맹담 등의 조선시대 선비는 물론 일반 백성들까지도 수안보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수안보 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조선 말기 일본인들에 의해서였다. 1885년 소규모의 남녀 목욕탕인 ‘온천정’이 만들어지고, 1929년 온천공으로 굴착 해 온천수를 끌어서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1963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서 1990년대 수안보온천 지대에는 다양한 호텔과 리조트 등이 들어섰으며, 1997년 ‘수안보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 충북 >충주시

    연원도의 중심 연원역
    연원역은 조선 시대 충청도 충주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연원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충주를 중심으로 지금의 충청북도 동북부 일대의 교통로를 관할했다. 주변에 있던 14개의 역을 관할하고 물류와 행정의 중심지로 주변 지역까지 아우르며 역참의 업무를 총괄하면서 크게 번성했다. 충주시에서는 연원역 기념조형물을 설치하여 연원역의 역사를 이해하고 마을의 유래를 알기 쉽게 해 놓았다. 연원역은 지역 주민들의 관심으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직접 조종한 전투기, F-51D 무스탕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飛行)에 성공했다. 첫 비행은 지상에서 잠시 떴다가 내려앉은 수준이었으나 이후 비행기는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세계대전을 거치며 비행기의 성능은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우리나라 공군 조종사는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후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게 되었는데, 그 첫 번째 전투기가 바로 F-51D 무스탕이다.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투기로 한국전쟁 초반부터 전투에 투입되었다. 133여대의 전투기가 한국전쟁 동안 8,495회 전투에 투입되었다. 프로펠러 전투기였던 F-51D 무스탕은 제트 전투기의 등장으로 공중전 투입의 자리는 내주었지만 이후에도 우리나라에서 연습용 전투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 충북 >충주시

    충주 어씨 시조설화
    충주 어씨 시조인 어중익(魚重翼)의 출생과 성장, 그리고 득성(得姓)에 관한 이야기이다. 충주 어씨 설화는 『한국성씨대관』, 『한국인의 성씨』,『만성대동보』, 『한국의 전설』, 『충주어씨족보(忠州魚氏族譜)』, 『한국구비문학대계 8-3』에 수록되어 있다. 문헌 자료와 구전설화를 종합하면, 어씨의 본성이 지씨였다는 점과 어씨 성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사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 충북 >충주시

    택견의 고장에서 만나는 세계무술, ‘충주세계무술박물관’
    “익크 엑크 익크 엑크.......” 충주세계무술박물관이 있는 충주세계무술공원에서는 무술인들의 구령에 맞춘 움직임이 보인다.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택견은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우리의 전통무예이다. 택견을 중심으로 열리는 세계무술축제에 참여했던 세계 무술인들이 기증한 무기, 공예품, 도복 등 전 세계의 무술관련 유물이 수집되어 전시된 곳이 ‘충주세계무술박물관’이다. 베는 무기, 쏘는 무기, 찌르는 무기 등 세계 무술의 무기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무술체험실에서는 택견 동작을 따라해 보고, 격파와 대련게임도 체험할 수 있다.

우리 옷의 전통 모시옷

예부터 여름철 최고의 옷으로 주목받은 모시옷. 모시는 삼국시대 때부터 삼베와 더불어 옷감의 재료로 쓰였는데요. 모시로 만든 옷은 가볍고 통풍이 잘 되어 땀도 빠르게 말라 여름에는 너도나도 입었답니다. 특히 한산모시는 고급 모시로, 임금님께 진상될 정도의 특산품이었습니다. 비단과도 같은 광택과 삼베보다 좋은 내구성을 갖춘 옷감인 모시! 이 좋은 재료로 만든 모시옷은 장점이 많은 만큼 만들어지기까지 엄청난 노력과 수고가 필요한 작업이었습니다.

모시의 껍질을 벗겨 물에 적시고 말리기를 반복하고, 그 이후에는 베틀로 짤 수 있도록 한올 한올 실로 만들어야 했는데요.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모시옷, 모시옷을 만들기 위해 베틀을 짜는 것은 필수며 현재까지도 전해져오는 한산모시짜기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까지 등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직물 모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한산모시 전시관에 방문하여 모시의 역사와 가치에 대해 들어보고 미니 베틀, 모시옷 입기 체험도 즐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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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상류사회의 여자들이 정장할 때 입던 속치마, 대슘치마
    대슘치마는 조선시대 왕실 및 양반사대부의 부녀자들이 예복(禮服)을 착용할 때 입던 속치마이다. 대슘치마는 주로 모시로 만들었는데 색깔은 모시 본래의 색깔인 소색(素色)이나 흰색으로 하였다. 대슘치마의 형태는 끌리지 않을 정도 길이의 모시 12폭으로 지었다. 치마 아랫단에는 창호지 또는 넝마 등을 두껍게 겹붙인 ‘배악비’를 높이 4cm, 길이는 치마폭 정도로 만들어 풀을 먹인 모시로 붙였다. 대슘치마 밑단에 다는 백비단과 빳빳한 창호지는 여러 겹 입은 속옷과 치마를 받쳐 주어 발의 움직임을 자유롭게 해 준다. 무지기와 대슘치마를 같이 입으면 겉치마의 아랫부분이 곡선으로 자연스럽게 부풀려졌다.
  • 전국

    상류층 부녀들이 입던 속치마, 무지기치마
    무지기치마는 조선시대 상류층 부녀자들이 입었던 속치마이다. 명절이나 잔치 때에 무지기치마를 입으면 겉치마가 자연스럽게 넓게 펴져 치마가 풍성하게 보였다. 무지기치마는 서로 길이가 다른 치마를 여러 겹 한 허리에 달았으며 이때 만들어지는 층의 수에 따라 3합·5합·7합 등의 종류로 나뉘었다. 각 층의 치마는 모시 12폭을 이어 만들었고 치마 밑단 끝부분만 염색하였다. 그 색감과 모습이 마치 무지개와 같아 보였으므로 이를 토대로 치마의 명칭을 무지개라 하였다가 후에 무지기로 변화하였다. 무지기치마는 그 색감과 형태가 현대의 아름다움과 흡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어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 충남 >서천군

    모시 생산의 전통을 잃지 않기 위한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
    서천 저산팔읍 길쌈놀이는 세모시로 유명한 한산의 모시 생산 과정을 유희화한 놀이다. 모시는 한산의 중요한 소득원으로써, 이 지역의 여성들은 모시 만드는 일을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지금은 다양한 직물의 보급과 기계화로 쇠퇴했지만, 모시 생산의 전통을 잃지 않고 놀이의 형태로 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 전국

    삼 ·모시 ·노 등으로 삼은 신, 미투리
    미투리는 짚신 중에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삼(麻)이나 모시, 노끈 등을 엮어 만든다. 미투리는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신던 것으로 미투리 중 섬세한 제품은 사대부들이 주로 신었다. 미투리는 형태로 보면 신목이 낮은 신발의 총칭인 이(履)의 일종이다. 미투리는 흔히 날이 여섯 개나 여덟 개였으며, 아주 정교한 총(미투리의 앞과 옆을 이루고 있는 올) 50~60개로 이루어졌다. 원래 미투리는 삼으로 만들었는데 점차 모시, 노끈, 닥나무 껍질, 칡넝쿨이나 종이와 무명실 등의 좋은 재료로 섬세하게 엮기도 하였으며 왕골이나 부들로 만든 미투리는 염색하여 무늬를 넣어 제작하기도 했다. 이처럼 미투리는 짚신보다 튼튼하여 양반층과 서민들이 고급 신발로 취급하였다.
  • 충남 >서천군

    우리나라 모시 유통의 본거지 한산장
    한산장은 모시로 유명한 서천군 한산면소재지에서 열리는 정기시장이다. 한산모시는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서 유명해졌다. 한산모시를 근간으로 한 유통망 때문에 한산면 시장이 발달하게 되었다. 한산장은 조선시대부터 있었으며, ‘안장’이라고도 불렀다. 부녀자들이 물건을 가지고 와서 파는 작은 시장이라는 의미다. 한산장에는 3대째 이어오는 대장간과 40여 년 동안 문을 연 철물점, 함석집 등의 오래된 상점들이 있어서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 충남 >서천군

    여름용 전통 직물 한산 모시짜기
    한산모시는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역에서 생산되는 저마를 이용해 짠 전통 직물이다. 한산모시는 품질이 우수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하였다. 모시도 여름 옷감으로 이름이 나면서 오일장에서도 판매하였다. 모시 짜기는 모시실 만들기와 베 짜기로 이루어진다. 1967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전국

    치마 안에 입던 여름용 홑바지, 살창고쟁이
    살창고쟁이는 조선시대 부녀자들의 치마 안에 입던 속옷으로 여름용 홑바지인 고쟁이 중 하나이다. 살창고쟁이의 형태는 허리말기 아래, 허리둘레를 따라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구멍의 크기는 대략 6~8cm 폭에 15~20cm 길이로 직사각형 구멍을 10개 이상 내고 구멍의 개수는 바지마다 다르다. 살창 부분을 재단한 후 가장자리를 2~3cm 접어 감침질로 가장자리의 삼베 올이 풀리지 않게 정리하고 허리말기를 달았다. 살창고쟁이는 밑이 트인 바지인 개당고(開襠袴)이며 주로 뒤쪽이 트여 있었으며, 간혹 허리말기만 흰색 모시로 만들기도 하였다. 살창고쟁이는 여름에 시원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성과 신부가 갖출 수 있는 예의범절, 그리고 딸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담긴 우리 전통 옷이다.
  • 충남 >서천군

    『삼국사기』에 기록된 오래된 여성들의 전통놀이, 길쌈놀이
    전통사회 여성들의 중요한 생업 활동 중에 길쌈이 있다. 삼·누에·목화 등을 이용해 삼베·명주베·모시베·무명베 등의 옷감을 짜내는 노동이다. 길쌈놀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남아 있다. 왕이 여성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한 달 동안 길쌈을 하게 하여, 그 양을 따져 승부를 겨룬 다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 놀이었댜. 이는 추석[가배(嘉俳)]의 유래이기도 하다. 길쌈놀이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한 달 동안 이어져 온 생업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의 노고(勞苦)를 달랜 부분이라 생각된다.
  • 충남 >논산시

    은진미륵의 보은으로 결혼 한 모시장수
    ‘은진미륵’은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동 관촉사(灌燭寺)에 있는 고려시대의 석불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석불로는 가장 크며, 특히 토속적인 생김새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은진미륵의 보답으로 결혼을 하게 된 서울의 모시장수를 내용으로 하는 설화가 전한다. 모시장수가 한산장에서 모시를 구입해 지게에 짊어지고 서울로 올라가다가 그만 소나기를 만나 모시가 다 젖게 되었다. 모시장수는 비에 젖은 모시를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가 모시를 펴서 은진 미륵에다 입혀 놓았다. 그랬더니 은진미륵이 오랜 시간 헐벗고 있었는데 옷을 입혀주어 고맙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보답으로 모시장수는 서울로 향하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전국

    베틀 노세 베틀 노세, 옷감을 짜는 길쌈
    길쌈은 부녀자들이 가정에서 삼 ·누에 ·모시 ·목화 등의 섬유 원료로 베 · 명주 · 모시 · 무명 등의 직물을 짜는 모든 과정을 일컫는 말이다. 만들어진 직물은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었고 화폐의 대용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부녀자들이 길쌈을 하면서 일의 고통을 덜고 자신들의 설움을 표현하며 달래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길쌈노래라고 한다.

달콤한 인생, 스윗하게 살자♬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어머, 당이 떨어져서 힘이 없다구요? 걱정하지마세요~ 오늘은 지역N문화와 함께 달달한 이야기 같이 살펴보면서 당 충전 빵빵!하게 해볼거에요. 달콤 쌉쌀한 초콜릿도 있고, 고소고소한 과자도 있고, 시원하고 달달한 아이스크림도 있어요. 아이스크림은 어떤 맛으로도 변할 수 있어 그 매력이 변화무쌍하답니다~ 잠깐! 달달구리의 원조 '설탕'이 빠질 수 없어요. 설탕은 그 형태가 다양해서 많은 분야에서 사랑받고 있어요. 달콤함의 최고봉 설탕, 이제는 입이 아니라 눈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점, 알고 계셨나요? 슈가크래프터의 손길에서 태어나는 설탕을 활용한 아름다운 음식부터 시작해 설탕이 들어가 제맛나는 양갱과 딸기잼까지! 이야기들이 정말정말 달콤해서 글을 읽는 사람의 기분마저 행복해질 것만 같아요~ 우리 같이 달콤한 인생 속으로 여행을 떠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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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노원구

    기찻길 옆 행복한 아이스크림 가게
    경춘선 무궁화호가 달리던 낡은 철로주변은 '경춘선 숲길'로 변해 공원이 되었고 주변은 카페거리로 유명해졌다. 철길 건너편에는 터키에서 온 메흐멧 오즈 데미르씨가 운영하는 예쁜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는 신선한 계절과일과 재료를 사용하여 맛 좋고 건강에도 좋은 아이스크림을 맛 볼 수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그때 거기, 고소하고 달콤한 센베이과자
    센베이(전병, 煎餠)는 중국의 과자 ‘토우가시(唐菓子)’가 일본에 전래되면서 우리나라로 전해졌다. 센베이의 기본재료는 밀가루 반죽이지만 국가나 지역에 따라서 재료와 만드는 방법에 차이가 있고 모양도 제 각각이다. 한국의 센베이는 밀가루와 설탕을 반죽하여 만들고 살짝 구부려진 둥근 모양이다. 경복궁역에는 50년 넘도록 센베이를 만들고 있는 과자 전문점이 있다. 이곳에서 따끈한 땅콩 센바이를 맛볼 수 있다.
  • 광주 >광산구

    삶의 경험으로 만든 알록달록 과일 연양갱
    우뭇가사리가 원료인 한천으로 만드는 연양갱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간식이다. 원래는 양갱은 양고기와 피를 굳힌 중국의 국물음식이었지만 일본으로 건너가 팥을 이용한 과자가 되었다. 광주의 송정시장에는 각양각색의 과일을 넣어 다양하게 만들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양갱을 파는 가게가 있다.
  • 제주 >제주시

    껍질째 먹는 우도땅콩과 달콤고소한 땅콩아이스크림
    1986년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우도 땅콩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우리나라 땅콩 농사의 명맥을 이어왔다. 값싼 미국산 땅콩에 대항해 장점을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 결과, 화산토가 많은 제주도의 지형을 적극 활용하여 껍질째 먹어도 되는 땅콩이 탄생했다. 2010년에는 제주 동부농업 기술센터 주도로 국내 최초의 땅콩 아이스크림이 개발되었다. 오늘날 우도 땅콩은 껍질째 먹을 수 있어 맛과 건강을 챙겨주는 효자 작물이자, 우도를 찾아가면 반드시 먹어봐야하는 별미인 땅콩 아이스크림으로 사랑받고 있다.
  • 전국

    초콜릿과 사랑에 빠진 사람들, 쇼콜라티에
    쇼콜라티에는 초콜릿을 이용하여 인형을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창의적인 예술품을 만드는 직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직업이지만, 유럽에서는 400년이 넘는 오래된 직업의 하나이다. 카사노바는 ‘작업용’으로 초콜릿을 이용하였다. 초콜릿을 이용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쇼콜라티에는 여성들에게 유리한 직업이다. 우리나라에서 디저트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유망한 직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 전국

    한겨울에 추위를 달콤하게 녹이는 엿치기
    엿치기는 가락엿을 부러트려서 단면에 난 구멍의 크기(또는 개수)를 견주는 놀이다. 엿의 구멍은 갱엿을 잡아 늘이는 과정에서 공기가 들어가서 생기는데, 표면이 거칠고 엿가락 측면의 줄무늬가 선명할수록 구멍이 클 가능성이 높다. 엿이 잘 굳는 추운 계절에 즐겨 놀았다.
  • 전국

    설탕으로 하는 예술, 슈가크래프터
    슈가크래프터는 분말로 가공한 설탕을 재료로 반죽해서 케이크, 과자, 생활 소품 등을 등을 만드는 사람 혹은 직업을 말한다. 슈가크래프터는 설탕공예가, 슈가그래프트 아티스트라고도 한다. 주로 결혼식과 같은 특별한 날을 위한 장식용 케이크를 만든다. 결혼식의 케이크나 부케, 돌잔치의 케이크 및 각종 장식품 등을 들 수 있다. 슈가크래프터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결혼과 파티 문화 속에서 발전한 직업으로 우리나라에는 해방 이후 일본에서 제빵기술을 배운 제빵기술자들이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발전은 2000년을 전후해서 시작됐다.
  • 강원 >인제군

    양봉기술의 새로운 도약, 꿀
    양봉은 벌을 길러 벌이 모은 꿀, 꽃가루, 로열젤리 등을 사람이 이용하는 것이다. 오랜 옛날부터 한국인들은 양봉을 했는데 속이 빈 나무에 벌집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벌집은 개항기 이후 들어왔다. 개항기에 이태리산등 외국벌도 도입되어 근대적 양봉이 시작되었다. 벌은 큰 힘과 돈을 들이지 않고도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는 부업으로 권장되었다. 오늘날에는 부업에서 나아가 전문적으로 양봉을 하기도 하는데 꽃이 피는 봄이 되면 전국의 꿀이 많은 곳을 찾아 벌집을 이동하는 식으로 운영한다. 6.25 전쟁 이후 D.D.T가 살포되면서 익충이 많이 죽었다. 정부에서는 구호자금으로 벌들을 공급했는데, 과일과 곡식이 수정을 위해서였다. 오늘날 강원도 인제군 등 산림지역은 양봉의 적지로 주목된다.
  • 북한

    설탕, 대중화가 시작되다.
    설탕은 전근대기 한국에서 중국을 통해 소량 들어오던 귀중품이었다. 1921년 평양에 제당 공장이 설립되면서 한국에도 설탕이 대중적으로 보급된다. 설탕의 제조원료는 대만에서 수입한 사탕수수와 평안도와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재배한 사탕무였다. 일본인이 설립한 제당 회사는 설탕 판매 이익을 위하여 한국농민이 생산한 사탕무를 헐값에 사들여 원성을 샀다.
  • 전북 >전주시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 제과 명가, 전주 PNB 풍년제과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의 ‘PNB 풍년제과’는 1951년 고(故) 강정문 씨가 완산구 중앙동에 ‘풍년 센베 과자점’이라는 상호로 문을 연 이래 3대에 걸쳐 대를 잇는 70년 역사의 오래된 가게이다. 1978년 현재의 경원동으로 가게를 이전한 이후 창업주의 아들 강현희 씨가 2대 대표를 맡아 운영하는 기간에 IMF 외환위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의 경쟁, 상표권 분쟁 등 적지 않은 곤경과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과감한 투자와 신제품 개발을 통해 2010년대 이후 다시금 명실상부한 전주시의 대표 제과점이자 전국적으로 알려진 제빵 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창업주가 개발한 ‘땅콩전병’과 2대 대표가 개발한 ‘수제 초코파이’는 PNB 풍년제과를 반석에 올려놓은 대표적인 제품이다.

[그때 그곳] 피난민 모여살던 달동네

광복 후 동포 귀환과 한국전쟁으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고향을 뒤로하고 피난을 가게 되었어요. 서울로 이주한 피난민들은 인왕산, 남산 등을 비롯한 도심부 인근의 산을 개간하여 판잣집을 짓고 살았지요. 또한 한국전쟁 때 임시수도가 된 부산으로 수십만 명의 피난민들이 유입되면서 인구가 폭증하였다고 해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북한의 피난민들이 고지대에 정착하며 사는 경우도 있었지요. 이러한 달동네는 도심과 변두리의 높은 곳에 있으며, 임시 천막을 치고 살면서 방에 누우면 밤하늘의 달과 별이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에요.

방 한편에 누워서 달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달이 가까이 보인다며 행복해하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흐려질 때쯤, 혼자 남은 방에 비친 거울 사이로 희끗희끗한 머리와 주름진 얼굴이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쓸쓸한 동네를 거닐다 멈추어 바라본 달이 유난히도 밝아서, 아아 아름다웠던 그러나 아팠던 그 시절을 반추해봅니다. 우리 달동네 이야기 들으러 함께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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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여수시 광무동 달동네
    여수시 광무동 달동네로 불리던 지역은 6·25전쟁 1·4후퇴 당시 여수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피난민촌이었다. 휴전 이후 60여년이 지난 이곳은 여수의 대표적 주거환경이 취약한 구도심 낙후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광무동 611-2번지 일원에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었고 2018년 사업완료가 되면 원도심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광주 >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
    광주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정착한 달동네로 1970년대에는 방직공장 여공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으나 방직공장이 이전하고 도시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아 빈집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2014년 지역재생산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볕이 뜨는 발산마을’로 ‘청춘의 발산’ 마을 만들기에 주민과 뜻있는 사람들의 많은 참여가 지금까지 이어져 ‘발산창조문화마을’이란 새로운 마을이 탄생했다.
  • 인천 >남동구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달동네 골목의 추억 만나기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1960~1970년대 수도국산달동네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하고 당시의 소중한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세워졌다. 수도국산달동네를 그대로 박물관 전시실에 옮겨놓았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뜻깊은 경험을, 어린이와 젊은 세대에게는 옛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 경북 >김천시

    김천시 성내동 달동네
    성내동 달동네는 6·25전쟁으로 피난민들이 거주하면서 경사지에 형성된 김천의 대표적인 달동네이다. 60여년이 지난 자산동(성내동)은 김천의 대표적인 주거취약지역으로 많은 어려움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으나 2015년부터 시작된 자산동 새뜰마을사업으로 마을 정비를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연차적으로 추진되어 왔고 2018년 사업완료를 앞두고 있어 원도심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추억의 골목 여행,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우암산 자락에 위치한 수암골은 6·25전쟁 후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전형적인 달동네였다. 낙후되고 초라한 마을의 모습이었던 이곳은 2007년에 진행된 공공미술 프로젝트와 함께 벽화마을로 재탄생되었다. 이후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청주를 찾는 탐방객들이 꼭 들르는 최고의 명소가 됐다. 현재 수암골 벽화마을은 문화공간으로 변신중이다.
  • 전북 >군산시

    군산 해망동 달동네
    군산시 해망동은 6·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들어와 정착한 피난민촌으로 알려진 달동네이다. 2006년 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사업으로 한동안 벽화마을로 알려졌으나 오래지 않아 주거취약지구로 마을사람들이 집을 비웠다. 환경부가 시행한 자연마당 조성사업이 2016년에 완료되고 ‘해망자연마당’으로 바뀌었고 해망동 달동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해망자연마당’의 일부분이 ‘해망마을’이라는 상징공간으로 남았다.
  • 서울 >성북구

    성북구 장수마을과 북정마을
    성북구의 돈암동 일대와 이웃한 지역에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도시민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면서 불량주택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서울 중심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미아리로 계속 유입되어 해마다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고 달동네가 형성되었다. 도시빈민의 마지막 보금자리는 주택재개발 사업으로 달동네는 다세대 벽돌집으로 변화했고, 도시의 성장과 인구의 증가를 감당하기 위한 주택으로 아파트를 짓기 시작하여 30년 동안 지속된 아파트 건설은 특색 없는 도시경관을 만들어 냈다. 다행히 성북구에는 장수마을과 북정마을의 근대 서민문화유산이 남아있다.

뉴트로 감성이 스며든 다방에서 커피 한 잔

줄줄이 우거진 빌딩들 사이로 오래된 다방 하나가 있습니다. 좁은 계단 끝의 나무문을 열면 종업원이 "어서 오세요!"하며 반갑게 맞아주곤 하는데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황토색 쇼파와 낡은 테이블, 손때 묻은 카운터, 훈훈한 석유난로의 냄새까지. 시간이 멈춘 이 공간에서 잠시, 정겨운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합니다. 검은 빛 쌍화차 사이로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고소하게 입안에 퍼질 때쯤, 변하지 않은 맛과 향기에 황홀함을 감추지 못한답니다.

"한국전쟁 이후 그 시절이 어렵긴 했어도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운 곳이 다방이였어요." - 을지다방 내용 中
"그땐 단순하게 차를 파는 게 아니라, 약속을 하고 만나는 장소, 전화 연락을 기다리는 장소, 선을 보는 장소로 소통의 공간이었지요." - 봉다방 내용 中

지금의 다방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옛 손님들에게는 추억을 마실 수 있는 공간, 주인은 그러한 추억을 전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요즘 뉴트로 열풍이 불자 MZ세대들도 하나 둘씩 다방문화를 즐기곤 하는데요. 한 번이라도 다녀간 이들이라면 감성 충만한 이곳의 분위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하는 매력의 공간, 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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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생들의 아지트였던 학림다방
    학림다방은 1956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에 이양숙이 개업했고, 1975년에는 강준혁·신선희가 운영하였다. 그리고 1987년 이충렬이 학림다방을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림다방은 가업으로 이어져 오지는 않았지만, 처음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면서 학림을 기억하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학림다방은 대학 문화의 산실이며, 저항문화와 대중문화의 산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학림다방은 2013년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인천 >부평구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만남의 장소, 봉다방
    봉다방은 1974년 최정숙이 개업했고,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다방이다. 최정숙은 처음부터 다방을 개업했던 것은 아니고 세탁소를 15년 동안 운영하였다. 오산 출신의 최정숙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생계의 기반을 다지기는 했지만 직업병으로 손목이 안 좋아지면서 현재의 자리에 다방을 개업하였다. 산곡동은 백마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제2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유행에 민감했고, 주변에는 군부대와 산곡시장 등이 있는 번화한 거리였다.
  • 인천 >중구

    지식인들의 쉼터였던 레트로 다방, 인천 국제다방
    국제다방은 1972년에 처음 '마음다방'이라는 상호로 윤석례가 신포시장 입구에서 시작하였다. 1979년, 현재 자리의 국제다방을 인수하고 현재까지 영업중이다. 국제다방은 인천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안식처였고, 그 시대의 다방문화를 간직하며 원래 위치와 간판을 지키고 있는 가게이다. 1980년대 당시 신포동은 40군데가 넘는 다방이 있었다. 지금은 이 국제다방이 유일하다.
  • 대구 >중구

    대구 약전골목의 미도다방
    대구 진골목의 명소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美都)’ 속의 다방(美都)이라는 뜻이다. ‘정 여사’로 불리는 정인숙 대표가 지인의 다방을 넘겨받아 1982년부터 30년이 넘도록 운영 중이고, 두 번의 이사 후 지금의 위치인 진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것은 2013년이었다. 미도다방은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대통령부터 정치인과 유림, 문인, 화가들이 다녀가는 명소였고, 지금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이 많다. 커피값 2500원, 대구 약령시의 좋은 약재로 직접 달인 약차와 쌍화차도 3~4천원에 마실 수 있다.
  • 서울 >서대문구

    ‘독방’·‘수방’·‘리방’으로 거듭난 독다방
    독수리다방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에 김정희가 1971년 음악다방으로 개업한 찻집이다. 2004년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업을 했다가 2013년 김정희의 손자인 손영득이 재개업하였다. 독다방은 재개업을 하면서 두 가지의 컨셉을 설정하였다. 독다방이 독수리다방으로 개업했을 때부터 들렀던 세대들을 위해서는 그 시절 향수와 추억을 재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1970·80년대 문화를 알지 못하는 20대들에게는 그 시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수리다방이 독다방으로 상호를 바꾸어 재개업하자 언론에서 개업소식을 알릴 정도로 의미가 있는 다방이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경남 >창원시

    창원(진해) 흑백다방,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노포(老鋪)
    진해 흑백다방은 1955년 서양화가 유택렬 화백이 친구가 운영하던 칼멘다방을 인수하여 ‘흑백’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시작한 다방이다. 흑백다방은 화가와 문인, 시인 등 수많은 예술인이 출입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문화의 불모지였던 진해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흑백다방은 1999년 유택렬 화백이 작고하면서 피아니스트로 유학 중이었던 둘째 딸 유경아 씨가 2대 주인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에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시민단체가 ‘흑백운영협의회’를 결성하면서 흑백다방은 ‘시민 문화공간 흑백’으로 재탄생하였다. 2013년에는 1912년에 건축된 흑백다방 건물이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 흑백다방’으로 지정되었다. 2020년 유경아 씨가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흑백다방의 운영은 부녀 2대에서 그치게 되었으나 흑백다방을 사랑하는 시민과 예술가들이 3대 대표로 ‘문화공간 흑백’으로 거듭난 흑백다방을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