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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평화와 발전을 위한 과학의 날

4월 21일은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 '과학의 날'입니다. 뉴턴은 '우리가 발견한 것은 넓은 바다에서 조개껍질 하나를 발견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하였는데요. 과학의 발전은 앞으로도 무궁무진할 것으로 예측되기에 우리의 삶은 더욱 획기적이고 윤택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과학의 날을 맞이하여 과거의 과학이 현대로 오기까지 어떠한 발자취를 남겼는지 그 흔적을 함께 찾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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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안성시

    과학관, 눈썰매장, 캠핑장, 공연장, 수변공원, 숲이 다 있는 안성맞춤랜드
    안성맞춤랜드는 2012년에 준공된 안성의 시민공원으로 안성맞춤 천문과학관, 박두진 문학관, 사계절 썰매장, 안성맞춤 공예문화센터, 안성맞춤 캠핑장, 남사당 공연장, 소원 대박 터널, 바우덕이 광장, 수변공원, 편백나무 숲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안성을 대표하는 장소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우리의 소리를 기록한 음반, 빅타 레코드 금속 원반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면서 인류는 본격적으로 소리를 녹음하고 재생하기 시작했다. 이후 오늘날 사용하는 원반 형태의 음반이 베를리너에 의해 만들어졌고, 음반을 만드는 재료도 고무에서 동물성 수지, 염화비닐로 바뀌어 갔다. 우리나라에서는 1868년 ‘오페르트 도굴사건’을 일으킨 오페르트가 처음 축음기를 사용했다고 전해지며, 1900년대에 들어서면 음악을 녹음한 음반이 발매되기 시작하였다. 빅타 레코드 금속 원반은 음반을 복제할 때 사용되는 최초의 음원이 담긴 ‘원반’으로 내구도가 높고 부식에 강한 크롬강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원반은 일본에서 만들어졌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음악들을 기록한 철제 유물로서 한국 근대음악의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서울 >서초구

    전기박물관, 전기의 역사가 궁금하다면 이곳으로!
    전기박물관은 한국전력공사에서 운영하는 국내 유일의 전기 전문 박물관으로 2001년에 문을 열었다. 전기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알리고, 전기가 가져온 생활의 편리함과 변화, 앞으로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해 관람객과 소통하고자 설립됐다. 산업용 전기설비에서부터 생활 전자제품까지, 평소에 접할 수 없거나 잊고 있었던 추억의 전기 관련 유물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에디슨이 개발한 전기제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어서, 에디슨을 좋아하는 관람객에게 발명가 에디슨의 고민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화성 축조를 위한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화성 건설에서 돌은 숙지산과 여기산 두 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그리고 팔달산 등 모두 여섯 군데에서 채취하였다. 모두 28만 7,600여 덩이가 축성에 소요되었다. 목재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재목을 베어 오거나 사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조달하였다. 먼저 국가에서 관리하던 안면도 · 장산곶 · 강원도 지역에서의 조달은 직접 베어내어 운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기와와 벽돌은 왕륜면 백운동 성역소에서 땔나무를 마련하여 조달하였다. 기와가마는 왕륜과 서봉동에 설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철물은 그 사용 용도가 다양하였다. 철물은 해서(황해도), 호서(전라도), 관동(강원도), 서울, 수원부 등 각처에서 사왔다. 다산 정약용의 발명품인 거중기는 왕실에서 1부를 내려주었다. 유형거는 왕실에서 1량을 내려주고 10량을 새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숯, 석회, 장기산 뇌록, 종이, 붓, 먹, 벼룻돌, 숙마, 느릅나무 껍질인 유피, 쇠가죽, 빈 가마니, 숫돌 등이 조달되었다.
  • 제주 >서귀포시

    클래식카와 세계에 한대 뿐인 피아노를 볼 수 있는 세계 자동차&피아노 박물관
    3만여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와 8천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피아노는 각각 기술과 예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놀라운 발명품들은 기술과 예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변화가 미래 세대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교육의 현장이 되는 박물관이 개인 소장품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로 제주도에 있는 ‘세계 자동차&피아노박물관’이다.
  • 강원 >강릉시

    세계에서 에디슨의 발명품이 가장 많은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에디슨 과학 박물관
    우리에게 발명왕으로 알려져 있는 ‘토마스 에디슨’. 그의 업적으로 남겨져 있는 발명품들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이다. 강원도 강릉시에 자리한 참소리 축음기 박물관과 에디슨 과학 박물관은 관장 손성목의 끝없는 열정과 노력으로 에디슨의 발명품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곳이다. 이곳에서는 일정시간 도슨트를 통해 에디슨의 업적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함께 손성목 관장을 사로잡았던 다양한 축음기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 대전 >서구

    대표적인 과학축제, 대전 사이언스페스티벌
    대전 사이언스페스티벌은 2000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축제이다. 대전은 대덕구에 있는 국가출연기관, 연구기관들이 많아서 이 기관들을 중심으로 과학체험, 과학 관련 문화예술 행사를 벌이고 있다.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체험하는 축제로 성공적인 진행을 해왔으나 최근 내부적으로 정체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한국판 미쉐린 가이드, '블루리본 서베이'

블루리본 서베이는 2005년 처음 발행된 대한민국 최초의 레스토랑 가이드북임과 동시에 국내에선 가장 신뢰받는 레스토랑 가이드북입니다. 블루리본 서베이는 한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전국 어디에서나 만나 볼 수 있는데요. '오늘 저녁 뭐 먹지?'라는 고민없이! 하루 한 끼 대충 흘려보내지 않고, 미식가들이 평가한 이곳에서 제대로 된 한 끼 식사하시는 건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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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서구

    대전에서 평양냉면하면 여기! '사리원면옥'
    사리원면옥은 김봉득이 1951년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에 개업한 대전 최초의 북한식 정통 평양냉면 전문점이다. 김봉득의 며느리인 옥인숙은 외조부 이재우가 사리원역 부근에서 운영했던 재령면옥의 전통을 살려, 1952년 대전에서는 일반음식점 제1호 업소로 평양냉면의 전통을 이었다. 사리원은 옥인숙의 아들 김형근이 가게를 이어받았고 지금은 김형근의 딸인 김래현이 가게를 이어오고 있다. 김봉득 일가는 6·25 전쟁 때 황해도 사리원에서 대전으로 피난을 내려와 정착하였다.
  • 전남 >담양군

    며느리 4대가 90년의 전통을 이어온 떡갈비의 본가, 담양 신식당
    전라남도 담양군 담양읍의 ‘신식당’은 담양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떡갈비 전문식당이다. 담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떡갈비 전문점인 신식당은 창업주 고(故) 남광주 할머니가 떡갈비를 만들기 시작한 이래 1932년 본격적인 식당업을 시작하였다. 이후 창업주의 며느리 2대 고(故) 신금례 할머니, 신금례 할머니의 며느리 3대 이화자(65) 씨, 이화자 씨의 며느리 4대 한미희 씨가 4대에 걸쳐 90년의 전통을 이어 나가고 있다. 신식당의 떡갈비는 소갈비에서 떼어낸 갈빗살에서 기름기를 제거한 후 곱게 다진 것을 일일이 갈비뼈에 모양을 내어 다시 붙인 다음 참숯불에 타지 않도록 불을 조절해가면서 양념장을 여러 차례 발라가며 구워내는 음식이다.
  • 강원 >원주시

    얼큰하게 끓여내는 추어탕의 맛, 원주복추어탕
    강원도 원주시 개운동에 있는 원주복추어탕은 원주시에서 최초로 원주식 추어탕을 만들어 판매한 식당이다. 경상북도 포항에서 시집온 이복순 씨가 1965년 이전에 원주고등학교 앞에 장사를 시작한 이래 초기 주요 고객이었던 군인과 공무원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이후 원주 관내에 40여 개소의 추어탕집이 생기면서 원주시 추어탕은 원주시의 향토 음식으로 정착하였다. 고추장 양념으로 낸 얼큰한 국물이 특징이며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는 ‘통추어탕’과 뼈째 갈아 넣는 ‘갈추어탕’의 두 가지 메뉴를 제공한다. 현재는 막내딸이 어머니와 함께 식당을 운영하면서 2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 인천 >동구

    경양식집에서 복집으로, 인천 송미옥
    송미옥은 평양에서 경양식집을 운영했던 고(故) 김종연이 개업한 가게이다. 송미옥이라는 가게 이름은 소나무처럼 맛을 항상 유지하고자 했던 의지의 표현이었다. 김종연은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을 세우기 위해 들어왔던 독일 노동자들의 식사를 전담해 주기 위해 구내식당을 하다가 그들이 2~3년 후에 독일로 돌아가자 현재의 자리에 송미옥을 개업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100년 넘은 원조 설농탕의 맛, 이문설렁탕
    이문설농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설농탕 식당이다. 이문설농탕은 처음 홍종환이 이문식당으로 문을 열었고, 그 뒤 양씨가 인수했다고 한다. 양씨의 이름은 불분명하다. 창업 연도는 여러 설이 있는데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는 노인들에 의하면 1902년~1907년까지로 설명된다. 1960년 유원석이 이문설농탕을 인수하고, 1981년 아들인 전성근이 이어받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전성근은 1904년을 개업 연도로 삼고 있다.
  • 경남 >진주시

    제삿상에 올리던 진주 곰탕의 진한 맛, 진주 육거리곰탕
    육거리곰탕은 경상남도 진주시 강남동에서 73년째 ‘진주 곰탕’을 전문으로 하는 노포식당이다. 육거리곰탕은 1948년 고(故) 정순악 할머니가 가게를 연 이래 한 번도 이전하지 않고 개업 초기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육거리곰탕의 곰탕은 소고기와 내장으로 끓여 국물이 맑은 다른 곳의 곰탕과는 달리 뽀얗고 진한 맛이 특징이다. 예로부터 제사상에 진한 곰탕을 갱(羹)으로 올렸던 진주의 제사음식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골과 소머리고기, 사태고기를 함께 푹 끓여낸 육수는 기름지지 않고 담백한 곰탕의 맛을 유지하면서도 설렁탕과 소머리국밥의 맛이 조화된 것이 특징이다. 현재는 1974년 시집오면서부터 가게에 참여한 정순악 씨의 며느리 배명희 씨가 2대 주인으로 47년간 가게를 지켜왔고, 배명희 씨의 딸 유정은 씨가 오래전부터 어머니를 도우면서 3대째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 서울 >강남구

    서울식 음식의 전통을 지키는 '한일관'
    한일관은 3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에 있는 한식당이다. 한일관은 신우경이 1939년 개업을 했는데 처음 상호는 ‘화선옥’이었고, 영업장도 압구정이 아닌 종로 피맛골이었다. 1945년 화선옥에서 한일관으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1979년 신우경의 딸 길순정이 가업을 이었고, 2008년 길순정의 딸 김이숙·김은숙이 가업을 이어 3대째이다. 종로에서 압구정으로 가게를 옮긴 것은 1991년 현재의 건물을 지으면서이다.
  • 서울 >중구

    태극당,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태극당은 1945년 광복 이후 일본인이 두고 간 제빵 기구를 받아 신창근이 1946년 ‘태극당’이라는 이름으로 명동에서 개업한 빵집이다. 1973년 태극당은 명동에서 현재의 장충동으로 가게를 이전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 건축한 것이다. 1999년 신창근의 아들인 신광열이 가게를 이었고, 2011년부터 신광열의 자녀들인 신경철, 신혜명, 신혜종이 태극당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태극당은 변화보다 보전을 택했고, 태극당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 서울 >중구

    서울식 추어탕인 '추탕' 맛집, 용금옥
    용금옥은 1932년 홍기녀가 서울특별시 중구 무교동에서 개업한 음식점이다. 1971년 무교동 재개발로 인해 현재 자리에 터를 잡고 홍기녀의 아들 부부가 가게를 운영하다 현재는 손자 부부가 가게를 이어받았다. 용금옥은 추어탕을 된장을 기본으로 하는 서울식으로 만들어 미꾸라지를 통으로 넣는 남도식 추어탕과 다르다.
  •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 오뎅식당, ‘부대찌개’를 최초로 상품화한 음식점
    오뎅식당은 만화가 허영만 씨의 작품 『식객(食客)』에도 소개되었던 맛집으로 부대찌개를 최초로 개발하여 음식 상품으로 판매한 식당이다. 식당의 상호는 창업주 고(故) 허기숙 할머니가 1960년 어묵과 국수를 팔던 이동식 포장마차에서 시작한 것에서 유래한다. 이후 미군 부대에서 나온 고기와 햄, 소시지로 부대고기 볶음을 만들어 판매하다가 현재의 형태와 같은 부대고기에 식힌 김치와 각종 재료를 얹고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 부대찌개를 개발하였다. 1964년 무렵 현재의 위치에 가게를 얻어 한 자리에서 50년이 넘게 영업하고 있다. 이후 오뎅식당 주변에 부대찌개 식당이 늘어나면서 2009년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로 지정되기도 하였다. 1996년 아들 김태관 씨가 가게를 물려받아 2대째 운영하였다. 2009년 손자 김민우 씨가 3대 대표가 되면서 법인으로 전환하여 직영점 설치, 부대찌개 전국택배 서비스, 수도권 일대에 분점을 개설하는 등 외식 전문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도심 속 오아시스, 식물원에 가다

반복된 일상 속에 지쳐 무뎌진 마음을 잠시 접어 두고, 나를 위해 한 박자 쉬어 가면 좋을 듯 합니다. 도심 속 오아시스라 불리는 식물원은 눈길 닿는 곳마다 초록 빛의 싱그러움으로 여러분을 반기곤 하는데요. 조금은 느긋하게 걸어도 보고, 작은 벤치에 기대어 눈을 감아도 보고, 한숨 돌리며 봄향기 가득한 꽃내음도 맡아보는거 어떠세요? 잠시나마 여러분에게 쉼(休)을 선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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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제주시

    제주 도심 속에 위치한 명품 힐링 공간 한라수목원
    제주의 복잡한 도심 노형동에 위치한 한라수목원은 공항에서도 가깝고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힐링 공간으로, 관광객들도 많이 찾지만 제주시민들이 더 사랑하는 공간이다. 주차장이 넓고 입구까지의 거리도 꽤 멀지만 많은 시민들이 걸어서 방문한다. 희귀식물이 많고 잘 가꾸어져 있는데다, 광이오름까지 오르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어 건강을 가꾸기에도, 마음의 쉼을 얻기에도 좋은 공간이기 때문이다.
  • 세종 >세종시

    지방 최초의 산림박물관, 충청남도 산림박물관
    국립산림박물관 다음으로 1997년 10월에 개관한 충청남도 산림박물관은 지방에서 최초로 설립된 산림박물관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의 산림과 관련된 역사사료 및 산림에 관한 메시지를 총 5개의 테마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 산림박물관은 계룡산의 금강을 가로지르는 절경 속에 있으며, 산림환경연구소와 금강수목원, 금강자연휴양림과 함께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 숲을 느끼고, 숲에 대해 알아가는 자연학습장으로 아주 적합한 곳이다.
  • 경기 >부천시

    부천자연생태박물관, 자연과 환경을 경험하는 어린이들의 천국
    부천자연생태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자연을 경험할 기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자 부천시에서 2000년에 건립한 공공 박물관이다. 부천자연생태박물관 개관에 연이어서 2002년 농경유물전시관, 2006년 부천식물원, 2012년 부천무릉도원수목원이 문을 열었고, 현재 4개 관을 묶어 부천자연생태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람객들은 부천자연생태박물관에서 살아있는 동물과 화석, 표본 등을 통해 다양한 생태계의 동식물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두루 관람할 수 있다.
  • 대전 >서구

    국내 최초의 수장고형 표본관리동이 있는 ‘천연기념물센터’
    천연기념물센터는 자연유산인 천연기념물과 명승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국가연구기관으로 대전 엑스포광장 동쪽, 한밭수목원의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우리나라 자연유산을 체계적으로 조사, 연구하여 연구의 결과를 전시와 교육으로 알리고 있는 천연기념물센터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 동물, 지질, 천연보호구역과 명승을 만날 수 있다. 또한 국내 최초 개방형 수장고의 개념으로 마련된 표본관리동과 야외학습장을 갖추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 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학습의 장소이자, 온 가족의 쉼터로 적격이다.
  • 제주 >서귀포시

    감귤의 역사와 다양한 체험이 함께하는 제주 감귤박물관
    감귤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특산품이다. 일본 문헌자료에 따르면 제주도에서 감귤은 삼국시대부터 재배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감귤은 겨울이 너무 추우면 재배하기 어려운 과일이다. 따라서 겨울이 따뜻한 제주도의 특산품이 되었다. 제주도에 있는 감귤박물관에는 감귤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부터 다양한 귤나무를 직접 볼 수 있다. 또한 감귤을 테마로한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는데, 감귤피자 만들기와 감귤과즐 만들기가 최근 가장 인기 프로그램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구경거리가 된 왕궁, 창경궁 대온실
    일제는 왕의 위엄을 깎아내리기 위해 창경궁 뜰에 동물원과 함께 식물원을 1909년 건립했다. 창경궁 대온실은 10.5m 높이의 철골 구조에 연속되는 유리창과 지붕까지 판유리를 기와처럼 덮은, 서양 세계박람회 전시장 형식을 본뜬 건축물이다. 유리창과 프레임은 100년 넘는 세월에 크게 훼손되었으나, 원형을 잃지는 않았다. 지금도 식물원으로서, 창경궁 뜰 한 자리를 지키고 있다.
  • 경남 >거제시

    부부가 꾸며놓은 환상의 섬, 경상남도 거제시 외도
    남해안에 있는 외도는 비교적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곳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있는 연유도 있겠지만 섬 전체가 정원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에 이곳에 바다낚시를 하러왔던 부부가 섬을 사들여 한평생 꾸며놓은 정원은 이색적인 풍광을 자랑한다. 부부가 사비를 털어 어렵게 외도를 정원으로 탈바꿈시켜놓은 덕분에 많은 사람은 이곳에 들러 좋은 추억을 만들고 있다.

싱그러이 펼쳐진 벚꽃의 향연

반짝 추위가 끝나고 나니, 어느덧 2022년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벚꽃 개화에 영향을 주는 3월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높아, 개화가 전국적으로 5~7일 빠르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마음껏 벚꽃을 즐길 수 없는 상황이 야속하기도 하지요. 올해는 여러분의 아쉬운 마음을 지역N문화에서 소개하는 '랜선 벚꽃놀이'로 달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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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중구

    울산 태화강의 6천만송이 봄꽃과 함께하는 생태축제 '태화강 봄꽃대향연'
    울산광역시에 있는 태화강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수질이 6등급까지 떨어져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울산광역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약 10년 전부터 봄에는 황어, 가을에는 연어가 돌아오는 생명의 강이 되었다. 2019년 7월에는 순천만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 태화강봄꽃대향연은 울산 태화강의 6천만송이 봄꽃과 십리대숲이 함께하는 생태문화예술축제이다.
  • 경남 >창원시

    사쿠라 지고 벚꽃 피는 군항, 구 진해요항부 사령부
    일본 해군은 1905년부터 진해만을 중요하게 여겨 1910년부터 진해를 해군 기지로 건설했다. 진해요항부 사령부 건물은 1914년 준공되었다. 르네상스 절충양식으로 지어진 진해요항부 사령부는 화려한 외관을 갖춘 건축물이다. 일본 해군 기지 건설로 난리를 겪어야 했던 조선인의 후손들이 이제는 충무공을 기리는 군항제를 매년 봄 진해에서 연다.
  • 제주 >제주시

    제주 자생종 왕벚꽃의 향연, 제주왕벚꽃축제
    제주왕벚꽃축제는 199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시민복지타운 일대에서 개최되는 왕벚꽃 축제이다. 제주 왕벚꽃은 한 때 일본의 국화로 오인되었으나 해외 박사들과 국내 학자들의 연구 끝에 국내 자생종이며 일본과는 상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제주왕벚꽃축제는 제주 자생종 왕벚나무가 제주 고유 나무임을 알리고 벚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개최된다.
  • 서울 >영등포구

    우리나라의 대표적 벚꽃축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서로에서 2005년부터 시작된 봄꽃축제이다. 여의도 벚꽃은 창경궁에 일본인들이 심었던 것을 1980년대에 옮겨와 심은 것이다. 이런 일제 식민지화의 기억 때문에 '벚꽃축제'였던 명칭은 2007년 '봄꽃축제'로 개칭되었다.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진해 군항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봄꽃축제이다.
  • 경기 >평택시

    벚꽃 나들이하기 좋은 평택 은혜로
    은혜로는 정식 명칭이 아니나, 이충동 레포츠 공원에서 은혜고등학교와 국제대학으로 향하는 길을 말한다. 은혜로는 벚꽃이 풍성하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4월 벚꽃 개화시기가 오면 봄나들이를 온 사람들로 매우 붐빈다. 차 안에서 은혜로를 지나면서 보는 풍경도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좋다.
  • 경남 >창원시

    창원 미진과자점, 벚꽃의 도시 진해의 특산물이 된 '벚꽃빵'
    미진과자점은 1972년 제과제빵 기술자였던 고(故) 조한석 씨가 옛 진해시 충무동에 개업한 제과점이다. 조한석 씨의 세 아들 중 장남 조성천 씨는 부친이 인수한 진해제과를 운영하고 있고, 제과제빵 분야 ‘경상남도 최고장인’으로 선정된 차남 조성래 씨는 파티쉐미진이라는 독립적인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다. 미진과자점은 2011년 막내아들 조성일 씨 부부가 대물림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미진과자점의 세 형제는 지난 2006년 벚꽃빵을 개발하여 진해시의 특산물로 지정되었고, 연이어서 벚꽃 크림치즈 타르트, 벚꽃 허니 마드레느 등 시리즈 제품을 출시하였다. 벚꽃 크림치즈 타르트는 2019년 창원시의 특산물로 지정되었다.

제주4.3사건을 기억하며

"탕, 탕" 제주도에 울려 퍼지는 총성 소리. 1948년 4월 3일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당하였습니다. 평화로웠던 제주도는 하루아침에 빨갛게 물들었고, 도시는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이후로 최다 인명피해라 하니, 비극의 아픔은 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처절했던 그날을 추념하고 함께 4.3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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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서귀포시

    “동해의 솟은 해를 가슴에 안고”,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
    ‘제주 구 해병훈련시설’은 1950년 8월 5일 한국전쟁 시기에 제주도에서 모병된 해병대 3기가 훈련을 받은 곳이다. 돌과 시멘트로 지은 막사와 세면장이 남아 있다. 세면장은 출입구 동선과 목욕 시설 등이 매우 효율적으로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됐다. 훈련시설에서 ‘지옥훈련’을 받은 해병대 3기 1,500명은 1950년 8월 30일 입대한 4기 1,500명과 함께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었다. 한국군 해병대는 인천과 서울 수복에 이어 1951년 강원도 양구군 ‘도솔산지구 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려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영예를 얻었다.
  • 제주 >서귀포시

    평화로 덮어야 할 일제 군사 요새, 제주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 지하벙커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는 미군의 공습 시 지휘소 겸 통신시설로 건설되었다. 알뜨르비행장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바다 건너 상하이, 난징 등을 폭격하기 위해 비행기들이 출격하던 장소다.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제는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여 미군의 제주도 점령을 결사적으로 막는다는 작전을 세웠다. 알뜨르비행장과 인접한 송악산 해안에 ‘인간 어뢰’ 공격을 위한 동굴 진지를 만드는 등 제주도 곳곳을 요새화했다.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를 비롯한 일제의 군사 시설 건립에는 제주도민들이 강제 동원되었다.
  •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시 대정읍의 역사자료전시관, 기억의 눌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은 알뜨르 비행장, 선알오름 학살터 등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 기억들을 모아놓은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의 이름이 기억의 눌이다. 눌은 제주 방언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더미'이다. 기억의 눌이 있는 건물은 1955년 지어진 대정면사무소 건물로, 2005년 등록문화재 157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억의 눌은 대정읍의 주민들이 직접 지역 공간의 기억과 기록을 모아 만든 전시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제주 >서귀포시

    절경에 드리웠던 어두운 그림자 - 남제주 구 대정면사무소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구 대정면사무소는 1955년에 완공된 2층 건물이다. 벽체의 재질이 제주 현무암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안쪽으로 기울이 쌓는 방식을 사용하는 등 1950년대 제주도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건축 모델은 1952년 지어진 옛 제주도 도청 청사다. 상모리는 1933년 면사무소가 이전해 오면서 대정면의 행정중심이었다. 상모리는 1930년대부터 계속 진행된 ‘알뜨르 비행장’ 건설과 확장공사,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조성 등 일제강점기의 수난을 직접 겪어낸 현장이다. 해방 후에도 ‘4·3사건’과 ‘섯알오름 학살’을 겪어냈다. 면사무소가 준공된 다음해(1956년) 대정면은 읍으로 승격했다. 읍사무소가 1980년 하모리로 옮겨간 후에는 보건지소로 쓰이다가 2014년부터 향토문화 자료 전시관(대정현 역사자료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5년 등록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됐다.
  • 제주 >서귀포시

    항쟁과 학살 사이에 서있는 돌담 – 제주 4‧3 수악주둔소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제주도의 화려한 모습 이면에는 제주 4‧3항쟁의 비극이 숨어있다. 4‧3항쟁을 생생히 증언하는 문화재가 소화산인 물오름(수악)에 있다. ‘제주 4‧3 수악주둔소’다. 수악주둔소가 만들어진 시기에 대해 서로 다른 두 가지 기록이 존재한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의 기록에 따르면 수악주둔소는 무장 세력이 궤멸 직전이던 1949년 가을경에 만들어졌다. 한편 문화재청 자료에 의하면 수악주둔소는 한국전쟁 이후 축조되었다. 경찰이 얼마 남지 않은 무장대 토벌작전을 위해 1952년 4월 제주에 32개의 주둔소를 설치하였는데, 수악주둔소 역시 그 가운데 하나이다. 1952년 창설된 100전투경찰사령부가 수막주둔소를 확장, 수리하여 본격적인 소탕작전을 펼쳤다. 수악주둔소는 제주 4․3사건 유적 중에서도 보존상태가 가장 양호하다. 문화재청은 제주 4‧3 수악주둔소를 등록문화재 제716호로 지정했다.

천의 얼굴 고창

우리나라 고인돌 최대 밀집지역인 고창의 역사는 청동기 시대인 2천 년 전부터 시작됩니다. 삼국시대·조선·근대 유물까지 모두 보유한 고창을 둘러보면서 대한민국 역사의 흐름을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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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고창군

    술에 취하면 잠드는 바위, 고창 취석정
    취석정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노동로 191-9(화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53호이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경희(金景熹:1515~1575)가 사화(士禍)를 피해 고향으로 낙향하여 1546년(명종 1)에 건립하였다. 파괴되어 빈터로 남아 있다가 후손들이 1871년(고종 8)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취석정이라는 정자명은 도연명이 한가로이 세상을 살 때 술에 취하면 집 앞 바위 위에 잠들기도 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으며, 사람이 욕심 없이 한가롭게 생활한다는 도가적 뜻이 담겨 있다.
  • 전북 >고창군

    성을 밟으면 병에 안걸리는 고창읍성
    1453년(단종 1)에 반등산을 바라보며 남쪽에서 뻗어 내린 산 위에 완만한 곡선으로 두른 원형이며 돌로 쌓은 평산성형이다. 총 길이 1,680m, 높이 4m, 면적은 50,172평에 이른다. 고창의 읍성으로 세워진 것으로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데, 백제 때 고창지역을 모량부리로 불렀던 데서 비롯되었다. 나주진관, 입암산성 등과 더불어 왜적으로부터 호남내륙을 방어하는 요충지이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읍성이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그 원형이 잘 보존된 석축 성곽이다.
  • 전북 >고창군

    조선시대 개설된 고창읍내장을 계승한 고창상설시장
    '고창상설시장'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개설된 '고창읍내장'을 계승한 시장으로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주로 고창의 특산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품을 판매하고 있다.
  • 전북 >고창군

    고창읍성을 밟고 무병장수하세! '고창 모양성제'
    고창모양성제는 애국심을 고취하고 향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고창군민의 긍지와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 1973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지역축제이다. 왜구를 막기 위해 전라도민들이 축성한 모양성(고창읍성)을 밟는 답성놀이와 강강술래 재연이 주효 행사이다. 고창군에서는 답성민속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9월 9일(중양절)에 축제를 개최하여 답성놀이를 한다.
  • 전북 >고창군

    책을 읽고 책을 만드는 고창 책마을해리
    전라북도 고창 해리면 월봉마을의 '고창 책마을해리'는 출판계에 몸 담았던 이대건 촌장이 나성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다. 나성초등학교는 1933년 광승 간이학교로 문을 열어 2001년에 폐교가 된 이후 2006년에 '고창 책마을 해리'로 다시 문을 열었다. 바람언덕(야외강연장), 암벽타기벽이 있는 동학평화도서관, 책숲 시간숲(마을신문과 지역책 도서관), 버들눈 도서관(어린이청소년 도서관), 직접 책을 찍어낼 수 있는 누리책공방 등 볼거리와 할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 전북 >고창군

    판소리 명창들을 교육했다는 고창 신재효 고택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고창읍성 입구에 있는 신재효 고택은 판소리의 대가 신재효가 1850년 경에 지은 집이다. 이 집에서 판소리 명창을 모아 이론을 강론하고 판소리 사설을 편술하였다. 그러나 수리과정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1899년에 건축했다고 되어 있어, 신재효 사후에 그 아들이 중수한 것으로 추정한다. 중요민속자료를 지정되기 이전까지는 고창경찰서 관사로 이용되었다. 대지 3천평 규모에 사랑채로 보이는 건물 한 동과 연못, 우물만이 남아 있다. 「동리가」에는 집안에 정자가 있고, 그 아래로 시냇물이 흘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현재 남아있는 연못은 과거의 화려했던 신재효 가옥의 영광을 보여주며, 초가를 얹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 전북 >고창군

    긴 토담길을 따라 들어가는 고창의 김정회 가옥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리는 안동 김씨와 청도 김씨의 세거지로 여러 채의 고가가 있지만 김정회 가옥은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고가이다. 1862년에 건립한 전형적인 상류가옥으로, 서예가이자 학자인 보정 김정회(1903~1970)가 태어난 집이다. 고가로 이어지는 긴 토담길은 소박하지만 전통한옥의 멋스러움도 갖추고 있다. 대문을 통해 들어서면 넓게 트인 사랑마당과 사랑채가 있는데, 최근에 초가를 기와로 바꾸었다. 안채와 사랑채는 일자형으로 남녀가 유별한 조선시대의 유교적 이념이 잘 투영되어 있다.
  • 전북 >고창군

    요정의 시대는 갔어도 - 고창 조양관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조양관’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여관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한국전쟁 후 전라북도 전주의 요정 ‘행원’에서 주방 일을 하던 사람이 ‘국일여관’을 인수해 ‘조양관’이라는 음식점을 열었다. ‘조양관’은 일반 음식점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유행했던 요정으로 영업을 했다. 요정은 요리가 주목적이 아니라 술과 여흥을 파는 업태로서, 기생제도의 변화와 함께 전국적으로 곳곳에 생겨났던 업태다. 조양관은 1970년대까지 고창의 손꼽아주는 요정이었으나, 이후 고급 한정식 음식점으로 전환했다. 조양관 건물은 일제강점기 주거시설의 특징을 간직한 건물로 평가받아 2007년 등록문화재 제325호로 지정되었다.
  • 전북 >고창군

    “북 오산, 남 고창”의 민족 교육 – 고창 구 고창고등보통학교 강당
    “북 오산, 남 고창”은 일제강점기 초기 대표적인 민족교육 학교 두 곳을 지칭하는 표현이었다. 평안북도 정주의 오산학교와 전라남도 고창의 고창고보다. 흥미롭게도 고창고보의 전신은 일본인 마스도미가 1919년 세운 오산학교다.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교육자였던 마스도미는 일본의 식민지배에 사죄하는 심정으로 학교를 설립했다. 재정난으로 오산고보가 폐쇄 위기에 몰리자 고창군민들이 나섰다. 천석꾼 지주들을 중심으로 5,500명의 기부금을 모아 오산고보를 잇는 고창고보가 1922년 설립되었다. 고창고보는 새로운 교육을 실천했으며, 1937년 전주 신흥학교가 신사참배 거부로 폐교되자 고등과 전체 학생을 받아들였다. 고창고보 강당은 1939년 지어졌으며, 일제강점기에 건축된 고창고보 건물 가운데 당시 모습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이다.
  • 전북 >고창군

    걷고 밟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고창 답성놀이
    고창 답성놀이는 윤년 윤달에 부녀자들이 돌을 머리위에 이고 모양성(고창읍성) 성곽 위로 올라가 성 줄기를 따라 열을 지어 도는 민속놀이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성곽을 3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무병장수하고, 극락왕생 한다고 믿었다. 답성놀이는 원래 오래된 성이 있는 곳에서 두루 행해졌지만 현재는 고창지역에서만 유일하게 전해지고 있다.

조선 최초의 계획도시, 수원화성

"혼란을 잠재우고, 왕권을 드높여라." 정조가 신도시 수원화성을 설계해야만 했던 이유를 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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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수원화성, 화성의 도시 기반시설
    정조는 화성을 조선의 제2 도시로 조성하고자 여러 가지 행정적 조치를 취하였다. 한편 상업을 부흥시키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는데 수원부사 조심태는 새 고을에 점포를 설치하는 일에 대해 본고장 백성들 중 살림밑천이 있고 장사물정을 아는 사람을 골라 읍 부근에 자리 잡고 살게 하면서 이자 없는 돈 6만 냥을 빌려주자는 상업진흥책을 내놓았다. 그리하여 이제는 수원을 ‘상왕의 도시’, ‘조선조 제2의 도시’를 건설하려는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하게 된다. 1793년 1월에는 ‘수원부’를 ‘화성유수부’로 승격시키고 좌의정을 역임한 채제공을 초대 화성유수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1794년 1월부터 1796년 9월 사이 행궁을 둘러싸는 5.7km에 달하는 성곽이 건설되고 도시기반 시설도 새롭게 조성되었다. 먼저 성안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남북대로와 행궁을 중심으로 동쪽을 향하여 사거리를 만들고 이를 ‘십자로’라 불렀다. 이곳에는 상가가 들어서고 민가들이 주변에 조성되었다. 정조는 화성을 건설하면서 관청, 도로, 다리, 상가 등의 도시기반 시설은 물론 저수지와 둔전을 만들어 생산기반 시설도 완비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시조경도 중요시 여겨 도로변에 수많은 나무를 심었다.
  •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정조대왕 능행차를 시연하는 '수원화성문화제'
    수원화성문화제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수원화성에서 개최되는 종합축제 성격의 향토문화제이다. 수원화성은 정조대왕이 그의 부친인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 화산의 현륭원으로 옮긴 이후 축조한 성곽이다. 정조대왕의 지극했던 효심을 기리는 뜻도 담겨 있다. 수원화성문화제의 대표 행사는 ‘정조대왕 능행차 시연’으로 수 천명이 참가하여 장관을 이룬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화성의 생산과 유통 기반시설
    정조는 화성을 자급자족적인 도시로 성장시키고자 농업생산기반 시설을 건설하였다. 제일 먼저 1795년에는 만석거를 조성하고 이 저수지를 활용하여 대유둔을 조성하였다. 1798년 4월에는 현륭원 남쪽에 만년제를 완성하였고 1799년에는 만석거보다 규모가 3배 정도 더 큰 축만제를 건설하였다. 정조는 상업발전을 위해 종로를 중심으로 한 북수동 일대에 상설 점포인 시전상가를 조성하였고 이후 이를 바탕으로 ‘성내 시장’과 팔달문 밖에 성외 시장’이 형성되었다.더 나아가 화성은 삼남으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로 변모하였다. 정조는 1796년 화성 성역이 마무리되는 즈음에 양재역을 영화역으로 고치고 역참(郵治)을 화성 북문 밖에 옮겨 설치하였다. 이는 수백 년 이상 삼남지방으로 물자와 사람들이 오가던 ‘길’에 대한 혁명적 변화였다. 이로 인하여 오늘날 ‘1번 국도’로 불리는 도로의 원형이 탄생된 것이다. 이에 따라 수원은 삼남은 물론 서울, 광주, 용인, 안산, 남양, 안성 등으로 사방팔방 뻗어가는 교통의 중심지가 되고 물산이 모여드는 상업의 구심점이 되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화성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정조는 1793년 12월 6일에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蔡濟恭)을 총리대신으로, 훈련대장을 역임한 조심태(趙心泰)를 감동당상으로 임명하면서 화성건설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2월 8일에 화성성역소를 설치하고 낭관(郎官)의 우두머리인 도청에 이유경(李儒敬)을 임명하였다. 그 하위 단위는 작업관리 및 현장감독 분야와 사무관리 및 지원부서로 나누었다.화성 성역에 동원된 기술자는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수레장이, 화공, 가칠장이, 큰끌톱장이, 작은끌톱장이, 기거장이, 걸톱장이, 조각장이, 마조장이, 선장, 나막신장이, 안자장이, 병풍장이, 박배장이, 부계장이, 회장이 등 549명이었다.기술자를 제외한 모군(품팔이)은 화성 성역 현장에서는 자재를 운반하는 담군과 허드렛일을 하는 모군으로 분류된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화성 축조를 위한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화성 건설에서 돌은 숙지산과 여기산 두 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그리고 팔달산 등 모두 여섯 군데에서 채취하였다. 모두 28만 7,600여 덩이가 축성에 소요되었다. 목재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재목을 베어 오거나 사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조달하였다. 먼저 국가에서 관리하던 안면도 · 장산곶 · 강원도 지역에서의 조달은 직접 베어내어 운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기와와 벽돌은 왕륜면 백운동 성역소에서 땔나무를 마련하여 조달하였다. 기와가마는 왕륜과 서봉동에 설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철물은 그 사용 용도가 다양하였다. 철물은 해서(황해도), 호서(전라도), 관동(강원도), 서울, 수원부 등 각처에서 사왔다. 다산 정약용의 발명품인 거중기는 왕실에서 1부를 내려주었다. 유형거는 왕실에서 1량을 내려주고 10량을 새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숯, 석회, 장기산 뇌록, 종이, 붓, 먹, 벼룻돌, 숙마, 느릅나무 껍질인 유피, 쇠가죽, 빈 가마니, 숫돌 등이 조달되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화성건설 비용
    정조는 1789년 7월 11일 장헌세자의 원침을 이전하기로 하고, 4일 만인 15일에 수원의 읍(邑) 소재지를 전격적으로 팔달산 동쪽으로 옮겼다. 그리하여 구읍치에 있던 주민들의 주택과 전답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졌다. 보상과 원침 조성 비용은 모두 돈으로 환산하면 총 24만 5,500냥이 지출되었다.그리하여 총체적인 화성 건설에는 1789년 원침 이전과 구읍치 보상비용에 약 24만 5,500냥 이외에도 1790년 용주사 창건에 8만 7,505냥 1전,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위한 1795년(을묘)의 원행에 지출된 10만 38냥 6전 8푼, 화성 건설에 약 93만 4,028냥 등 총 136만 7,071냥 7전 8푼이 지출되었다. 이러한 공사비는 호조 1년 수입과 맞먹는 금액이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정약용의 화성 기본설계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인재양성과 연구사업의 기초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였다. 특히 즉위 1년 후인 1777년 2월에 백과전서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중 5,020권을 은 2,150냥을 지급하고 사 오도록 명하였다.다산 정약용은 1789년(정조 13) 배다리〔舟橋〕를 만드는데 그 규모와 제도를 올려 성공한 바가 있어 주상께서 성제(城制)에 대해 조목조목 올릴 것을 명하여 본인이 화성을 기본 설계하였다고 회고하였다.그리하여 정약용은 여러 책들을 참고하여 8가지 원칙을 담은 『성설』을 지어 정조에게 올렸다. 위의 8가지 원칙이 임금이 지은 『어제성화주략』으로 채택되었다. 성역(城役)을 마친 뒤에 정조는 기중가(起重架)를 써서 돈 4만 냥의 비용을 줄였다며 다산을 칭찬하였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일한만큼 받는 화성건설의 성과급제
    화성 건설에서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항은 임금 지불 방식에서 날품팔이들에게 짐을 옮긴 거리와 크기 그리고 회수에 따라 차등 지급한 성과급제를 시행한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하루에 2전 5푼 정도 일당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였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는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조선 초기 강제로 동원되어 일을 하던 방식에서 화성 건설 시 돈을 주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은 보다 세상이 발전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자본주의적’인 사회로 변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수원 화성을 거쳐 안성까지 가던 영화도(迎華道)
    영화도는 조선 시대에 경기도에 있던 역도 가운데 하나이며, 경기도 수원의 영화역(迎華驛)을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본래 양재도에 속해 있었던 것이 수원 화성 축조 이후 개편되어 영화도가 되었다. 영화도의 전신인 양재도는 고려 시대 경기도 광주를 중심으로 설치되었던 광주도(廣州道)에 속한 역들을 중심으로 편제되었다. 1796년 충청도 정역찰방이 관할하던 역과 동화도가 영화도로 개편되면서 과천역과 영화역이 새롭게 설치되었으며, 중심역은 양재역에서 영화역으로 바뀌었다.

을지로-동대문의 뉴트로 바이브

과거의 것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새로운 변화를 이어가는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뉴트로'. 을지로와 동대문이 21C 트렌드를 장식하는 이유를 찾아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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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중구

    을지로의 소울푸드, 을지로골뱅이
    여름철 시원한 안주가 생각날 때, 고된 하루 끝에 매콤한 것이 당길 때면 골뱅이무침만한 것이 없다. 매콤, 새콤 입맛을 돌게 하는 골뱅이무침은 서울 청계천 남쪽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 을지로 거리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왜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하필 서울 을지로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을지로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공구, 타일, 인쇄 상인과 노동자들부터 지금의 사무직 직원들에게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을지로 골뱅이의 정체성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 >동대문구

    한약재의 집산지 경동시장
    서울특별시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에는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설시장인 '경동시장'이 있다. 원래 농산물과 임산물을 판매했지만, 1960년대 후반 을지로와 종로에 있던 상인들이 이주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약재시장이 되었다. 또한 경동시장은 '서울약령시 한방축제 개최'를 통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2017년 10월 서울한방진흥센터를 개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 서울 >동대문구

    서울 미래유산에 등재된 서울풍물시장
    '서울풍물시장'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래는황학동에 있었던 ‘벼룩시장’에서 유래한 시장이다. 2004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했다가 동대문운동장이 공원화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공식 명칭을 서울풍물시장으로 변경하였다. 주로 옛 풍물과 일생생활용품, 관광, 토속상품, 민속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서울풍물시장은 2013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23년된 와인바 겸 카페 대학로 나무요일
    나무요일은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카페 겸 펍(pub)으로,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명륜동을 포함한 대학로 일대는 단순하게 한가지 색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역사·문화적으로 많은 가치를 지닌 곳이다. 많은 예술가가 대학로 일대의 다방, 술집 등을 아지트 삼아 작품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나무요일도 단골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숨은 진주 같은 가게이다.
  • 서울 >을지로3가

    “생맥주 집은 생맥주가 맛있어야 하고 노가리는 천 원에 파는 게 예의”
    우리나라에 최초의 맥주공장이 들어선 것은 1933년이다. 일본의 자본으로 조선맥주회사와 소화기린맥주회사가 설립된다. 광복이 되고 미 군정이 관리했을 때에는 미군이 마실 맥주를 판매했다. 맥주회사의 민간 경영은 1952년부터 시작됐다. 을지로 3가 인쇄골목의 또다른 이름은 노가리골목인데, 노가리골목을 만든 가게가 을지오비베어다. 1980년 12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업했고, 지금은 2대째 딸이 물려받아 영업하고 있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배오개장을 계승한 광장시장
    '광장시장'은 1905년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조선후기 종로 지역에 있던 배오개장의 전통을 계승한 시장이다. 주요품목은 직물과 한복 등이며, 먹거리와 구제 상품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하루에 6만 5천여 명이 방문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종합 시장이다.

강릉, 바다내음 즐기며 커피 한잔

깨끗한 동해바다를 자랑하는 강릉, 청정한 자연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고 강릉의 특색이 묻어있는 장소에서 식사를 하는 여행코스를 즐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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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 강원 >강릉시

    강릉선교장의 별서, 강릉 방해정
    방해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449(저동 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0호이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고찰 인월사(印月寺) 터였는데, 1859년(철종 10)에 강릉선교장의 주인인 이봉구(李鳳九)가 선교장의 객사 건물을 뜯어다 지금의 자리에 별서 건물로 지었다. 경포대 가는 길가에 있으며,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가옥형 정자이다.
  • 강원 >강릉시

    고상하고 단아한 명가의 사랑채, 강릉 활래정
    활래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운정길 63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후기 전형적인 상류 주택인 선교장에 부속된 정자이다. 1816년(순조 16)에 이후가 지었다. 온돌방과 마루가 같이 있는 정자로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활래정이라는 정자명은 ‘맑은 물은 근원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이 만발한 연못 위에 위치한 활래정은 고아하고 단아한 기품을 풍기는 정자이다.
  • 강원 >강릉시

    우암 송시열의 쌍둥이 편액, 강릉 해운정
    강릉 해운정(海雲亭)은 1531년(중종 26) 어촌 심언광(沈彦光)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 지은 별당이다. 강릉에서 멀지 않은 동해에도 심언광과 관련되는 누정이 또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해암정은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1361년 창건한 후, 1531년 심언광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에 중건하였다. 심언광은 심동로의 7대손이다. 강릉의 해운정과 동해의 해암정 편액 모두가 우암 송시열의 글씨여서 이채롭다. 해운정은 강릉에서 오죽헌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 강원 >강릉시

    푸른 바다를 보며 갓 볶은 커피를 음미하는 '강릉커피축제'
    강릉은 우리나라 커피 문화 1번지다. 강릉 대부분의 커피집이 로스팅을 하며, 1세대 바리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다. 강릉커피축제는 2009년에 시작되었으며 매년 10월 강릉시 전역에서 개최된다.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갓 볶은 고급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감성 문화 축제로, 커피집을 다니며 스탬프 랠리를 하고, 100인의 바리스타들이 제각각 다른 맛의 커피를 내려준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강릉에서 두부를 먹는다면 ‘초두부 주세요’라고”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두부는 조선시대에 시작되었다.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초당(草堂)’이라는 허엽의 호를 붙여 그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초당 마을의 남자들은 줄어들고 여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릉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두부를 만들 때 거품을 거둔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바닷물을 넣으면 촛물이 몽글몽글 뭉친다. 이것이 ‘초두부’로,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뜻이다. 
  • 강원 >강릉시

    거울같이 맑은 물에 비치는, 강릉 경포대
    대관령 너머 관동 땅에는 명승지가 많다. 통천 총석정에서 시작되어 평해 월송정까지 해안을 따라 늘어선 절경들을 관동 팔경이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강릉 경포대이다. 경포대는 고려 때 창건되었지만 조선 중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경포대와 경포 호수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경포대’라는 명칭은 ‘경포’, 즉 ‘유리같이 맑은 호수’에서 따온 말이다.
  • 강원 >강릉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역사적인 건축물인 오죽헌은 강릉시 죽헌동에 있다.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오죽헌이라 불렀다. 안채 온돌방이 신사임당이 이이를 낳은 몽룡실이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역사가 오래된 건축물로 1938년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었다. 가장 오래된 익공집으로 추정되며 주심포 양식이 익공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 강원 >강릉시

    초가지붕을 기와집으로 개조한 강릉 반송댁
    강릉 반송댁이 있는 초당동은 바닷물을 이용해서 만든 ‘초당두부’와 강문 ‘진또베기굿’이 유명한 곳이다. 강릉 반송댁은 2017년 11월 「강원도 지정문화재(전통가옥) 지정명칭 변경고시」에 따라 ‘강릉 최상순 가옥’에서 ‘강릉 반송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본래 초가지붕을 1940년대에 기와집으로 고쳤다고 한다.

3.1절,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다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천안의 독립운동 터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3.1운동에 앞장섰던 철원 제일 교회. 1919년 학생들의 적극적인 만세 시위로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던 전주 신흥학교. 모두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반면, 구 나주 경찰서와 같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을 고문한 가슴아픈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3.1절을 맞아 일제탄압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역사적 순간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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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목포시

    댕기머리 소녀들의 야무진 만세 함성,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목포 정명여학교는 1903년 미 남장로교의 선교에 일환으로 세워진 학교다.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명여학교는 1919년과 1921년 만세 시위를 벌인 학교로 유명하다. 댕기머리 소녀들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명여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 당했다가 1947년에야 재개교했다. 선교사 사택은 1905~1910년 사이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목포 산지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2채다. 현재 정명여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쓰이는 사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조선 시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다.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 본관과 강당은 미국의 리차드슨 부인이 거금을 기부해 건립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아쉽게도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다행히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류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경남 >고성군

    경남 고성의 첫 3⋅1 독립만세운동터 100주년 기념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물결처럼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3월 20일, 고성에서도 맨 처음으로 구만면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이웃 배둔 장터까지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고성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00주년을 맞아 구만면 국내다리 터에 기념탑을 세우고 “비를 세우며”란 시를 새겨 놓았다.
  • 강원 >춘천시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남긴 노래들, 윤희순 의병 가사집
    『윤희순 의병 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지은 노래를 모아 만든 가사집이다.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윤희순은 당시 사대부 아녀자의 신분으로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중들에게도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구국활동에 전념한 인물이다. 특히, 일제에 저항하거나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돕자는 내용의 가사를 지어 사람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일조하였다.
  • 전북 >임실군

    오수도의 중심 오수역
    오수역은 조선시대 전라도 임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오수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전라북도 동남부와 전라남도 동부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오수역이 관할하던 역은 모두 11개였다. 오수역은 일찍부터 주변 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1894년 역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오수역터에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2017년에는 오수역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졌다. 오수는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구한 개의 사연을 담은 오수의견으로도 유명하다.
  • 충북 >청주시

    청주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조동식
    조동식(趙東植, 1873~1949)은 1919년 3월 23일 청원군 강내면 태성리 산마루에서 주민 수십 명과 횃불을 들고 봉화 만세운동을 펼쳤다. 독립선언서를 담은 출판물을 배포하다 체포되어 2년의 옥고를 치렀다.

진주, 조선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몸은 던지 이야기가 있는 경남 진주. 진주의 랜드마크인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장군이 3천명의 의병으로 2만명의 왜병을 물리친 곳이기도 합니다. 진주의 조선 역사 페이지 속으로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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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진주시

    관군과 백성이 함께 싸운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의 진주 창열사
    진주의 창열사는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진주성은 부산포와 한양을 잇는 일본군의 보급로였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요충지였기에 진주성 함락은 왜군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김시민의 리더십으로 왜군을 물리쳤지만 2차 진주성전투는 패전하였다. 하지만 진주성전투로 세력이 약해진 왜군이 호남 진출을 포기하게 했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의병들이 관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전투지가 되었다.
  • 경남 >진주시

    논개의 얼이 서려 있는 조선 삼대 누각, 진주 촉석루
    촉석루(矗石樓)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본성동)에 있는 누각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촉석루는 규모가 크고 건물이 아름다우며 주변 풍경도 절경이어서 예로부터 명루(名樓)로 꼽혔다.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으로 불리었고, 부벽루와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삼척의 죽서루(竹西樓)와 함께 ‘한국의 4대 누각’, 영남루와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남도의 3대 누각’, 영남루와 안동 영호루(映湖樓)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 등으로 꼽혀왔다. 촉석루라는 정자명은 고려말의 문신인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1303~1374)가 “강 가운데 돌이 삐죽 삐죽 나온 것이 있어서 촉석(矗石)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제2진주성 전투
    영남의 왜적이 1593년(선조 26) 6월 22일에 와서 진주를 공략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질을 쳤다. 이보다 앞서 성안에서는 적이 오려 한다는 것을 듣고서 여러 가지 방비를 해 두었다.23일부터 수많은 적이 와서 일진일퇴를 거듭하였으나 드디어 성이 함락되었다.성이 함락되자 좌우가 김천일을 부축해 일으켜서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천일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좌우를 돌아보며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하고, 마침내 아들 김상건과 더불어 서로 끌어안고서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적이 성을 함락하고 모두 허물고 평지를 만들었는데 성안에 죽은 자가 6만여 인이었다.
  • 경남 >진주시

    용맹하게 성을 지킨 제1진주성 전투
    1592년 10월 5일에 적이 1만 명을 셋으로 나누어 곧바로 진주를 침범하였다. 처음 전투에서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고, 진주 목사 김시민과 지역의 관리들이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고 여러 장수와 함께 각 문을 나누어 지켰다. 7일부터 시작된 전투는 밤낮 5일간을 버티면서 목사 김시민을 비롯하여 곤양 군수 이광악, 성수경, 최덕량 등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군사들과 함께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지켜내었다.
  • 경남 >진주시

    김시민 장군의 3대첩이 이루어진 진주성
    남강변 절벽위에 세워진 진주성은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1379년(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둘레는 1.7㎞이다. 원래 백제의 거열성지였다고 전하며 고려 말에는 왜구 방비의 기지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김시민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란 3대첩의 전승을 이룬 곳이다. 촉석성(矗石城), 진주읍성이라고도 불린다.
  • 경남 >진주시

    진주성의 성돌이 되려고 직접 굴러간 진주 명석 자웅석
    진주 명석 자웅석은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 있다. 자웅석은 신기리 동전마을의 동편 명석각 안에 “남자돌”과 “여자돌”이라는 이름으로 남근석 1기, 여근석 1기가 세워져 있다.신기리 마을주민들은 자웅석을 보국충석(輔國忠石)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고려때 원나라가 침략한다는 소리에 자웅석이 스스로 굴러가 진주성 돌이 되려고 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기리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보름과 음력 7월 15일에 자웅석에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명석면 주민들이 다함께 지내는 제사로 바뀌어 음력 3월 3일에 지내고 있다.
  • 경남 >함양군

    진주성을 찾은 한말의병장 노응규
    노응규(盧應奎, 1861~1907)는 한말의병장으로 정한용 진주의병장과 힘을 모아 진주성을 되찾고, 영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07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숨졌다.
  • 경남 >진주시

    촉석루 삼장사 고종후
    고종후(高從厚, 1554(명종 9)∼1593(선조 26))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면서 의병장이었다. 그의 아버지 고경명도 의병장을 지냈는데 아들 고종후도 의병장으로 공을 세웠다. 최후에 진주 남강에 김천일, 최경회와 함께 투신했다. 이들 셋을 삼장사라 부른다.

동심찾아 떠나는 서울 강동 여행

하루만큼은 어린이가 되어서 힐링여행을 떠나보는건 어떨까. 어릴때 먹었던 추억의 떡볶이를 먹고 즐겨보던 만화를 추억하며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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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강동구

    고덕천과 한강이 만나는 곳, 고덕수변생태공원
    경기도 하남시 이성산에서 발원하여 서울 강동구 상일로를 따라 흐르는 고덕천을 따라 걷다 보면 한강과 만나는 지점에 고덕수변생태공원이 있다. 고덕수변생태공원은 수생생물들과 야생 포유류 동물들, 그리고 다양한 식물 등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고덕수변생태공원을 산책하다보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자연이 주는 포근함으로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
  • 서울 >강동구

    청년 장인들의 공방, 엔젤공방거리
    변종 유해 업소 밀집 지역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강동구는 그 거리를 문화와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방거리로 바꾸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창업이 어려운 청년 장인들을 위해 임대료와 월세, 홍보를 지원해주는 사업을 통해 성안로에 '엔젤공방거리'를 조성하였다. 현재 21개의 엔젤공방이 운영 중이다. 셀프 사진촬영, 쿠킹 클래스, 금속공예, 목공, 가죽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다.
  • 서울 >강동구

    동심의 세계로. 천호 문구․완구거리
    서울시 5대 문구거리 중 하나인 천호동 문구․ 완구 거리는 1980년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지하철 5․ 8호선 천호역 1번 출구로 나가 직진하면 연필모양 간판의 골목 입구를 찾을 수 있다. 아이들을 위한 장난감뿐만 아니라 성인들의 취향을 저격할만한 성인들을 위한 장난감도 많아 키덜트들이 둘러보기에도 좋다. 예전 학교 앞 문구점의 감성을 간직한 천호동 문구․ 완구 거리를 소개한다.
  • 서울 >강동구

    30년 한 자리를 지켜온 꾸러기분식
    서울 강동구 구천면로에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즉석떡볶이 집이 있다. 배우 조인성이 자주 찾기로 유명한 꾸러기 분식이다. 꾸러기 분식은 짜장 즉석떡볶이만 판다. 꾸러기 분식만의 독특한 육수와 고추장, 고춧가루 그리고 춘장이 섞인 특별한 양념장이 유명세의 비법이다.
  • 서울 >강동구

    날아라 태권브이! 브이센터
    로봇태권브이 라이브 뮤지엄인 브이센터는 2012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2015년에 정식 개관한 국내 최초의 로봇 박물관이다. 13m 실물의 마스터태권브이가 제작되어 격납고에 설치되어 있고, 시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캐릭터 아이템과 그들의 탄생과정, 피규어들이 어우러져 어린이, 청소년들의 체험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 서울 >강동구

    하늘과 바람과 별과 허브천문공원
    허브천문공원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산 94번지 일대에 2006년 9월 21일 개원한 공원이다. 허브원과 온실, 관천대, 전망대,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색의 정원․감촉의 정원․향기의 정원․차의 정원․맛의 정원으로 분류된, 120여 종의 허브가 식재되어 있는 허브원과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관천대, 공원바닥에 설치된 282개의 조명으로 연출한 별자리가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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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개발로 사라지는 노포들, 천호동 족발골목
    천호동 재래시장인 구시장 거리에 30년 넘는 역사의 족발집들이 모여있는 좁다란 족발골목이 있다. 십년 단위의 단골고객들을 가진 동네의 명물 골목이었다. 한국 전쟁 후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70년대 들어서며 지금의 모습으로 점차 완성되어 갔다. 좁은 골목이기에 더 극대화되던 족발골목만의 소리와 냄새는 동네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족발’이라는 음식 자체는 대한민국 대표 야식, 배달 음식이기에 인기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족발골목은 강동구 재개발의 일부가 되어 텅 비어버렸다. 코 닿을 듯 붙어있던 가게들은 이제 일대 여러 건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족발골목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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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시대와의 대화, 강동선사문화축제
    강동선사문화축제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에 있는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 1996년부터 매년 10월 둘째주 금요일부터 3일간 열리는 축제이다. 1925년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면서 알려진 서울 암사동 유적은 국가사적 제267호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신석기 유적 가운데 마을 단위 유적으로는 최대의 규모이다. 기록이 없는 역사 이전의 시대이기에 선사시대라고 부르지만,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강동선사문화축제는 에듀테인먼트형 축제로 아이들과 함께 즐기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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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성당이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천호동 성당
    천호동 재래시장인 구시장의 좁은 2차선 도로 한쪽 언덕에 천호동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언덕 위 숨은 듯이 자리잡은 천호동 성당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도 꽤 되지만, 1958년 설립된 오랜 역사와 전통의 성당이다. 2011년 신축을 통해 현재의 거대하고 깔끔한 성전의 모습이 되었으며, 결혼식장, 유치원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행사도 이어지고 있다. 계단을 올라서면 보이는 성전과 풍성하고 잘 정돈된 로즈메리힐 정원은 서울시가 지정한 주민쉼터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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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풀의 웹툰을 벽화로 만날 수 있는 곳, 강풀만화거리
    오랜 강동구 주민이자 유명 웹툰작가인 강풀의 작품 속 명장면들을 오래된 주택이 밀집돼있는 천호대로 168가길 일대에 꾸민 만화 특화거리이다. 강풀 작가의 여러 작품 중 「순정만화」 시리즈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 ‘마녀’)를 주테마로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