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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도자기의 역사 속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옛 역사를 공부하고 알아갈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조상님들이 귀중하게 생각하며 지켜온 유물이 있기에 알 수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세계에 우리 문화를 널리 알린 문화재로는 고려청자가 있답니다. 고려청자는 빼어난 색감과 음각, 양각 등 화려함이 돋보여 우리나라의 도예 문화가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고려청자가 만들어지기까지 시대를 거쳐오면서 도예 기술도 발전했을 텐데요. 이번 지역N 문화에서는 역사에 따라 형태와 용도가 달라진 도자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도자기로서 최초로 만들어졌던 것은 토기로 그 기원은 문명이 시작되기 전이라네요! 문명이 시작된 이후에는 빗살무늬 토기, 민무늬 토기 등이 등장했으며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가 흔히 아는 정교하고도 복잡한 형태의 도자기인 고려청자도 등장하게 됩니다. 고려청자는 중국에서 도자기를 수입하기 시작하면서 자체적으로도 생산하게 되었으며 송나라의 다양한 제조기법을 바탕으로 고려 도공들은 특유의 색, 상감기법, 문양 표현 등으로 세계 도자기사에 한 획을 남겼답니다~ 우수한 도자기 기술을 보여주는 고려청자에 대해 알고 나니 그 자태가 더욱 뛰어나 보이는데요. 귀중한 유물을 남겨준 조상님들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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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강진군

    흙을 빚고 불을 피우는 체험 '강진청자축제'
    청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자예술품으로, 한국문화예술사의 자랑이다. 강진청자축제는 약 500년간 청자문화를 꽃피운 강진군민의 자긍심을 널리 알리고 강진지역의 문화관광자원과 연계하여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목적의 축제이다. 청자축제에서는 가마에 불 지피기와 물레체험, 청자 빚기 등 청자를 제작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해 볼 수 있으며, 30% 할인판매를 통해 고려청자의 대중화를 꾀한다.
  • 충남 >공주시

    충남 공주 출신으로 일본의 도자기의 신이 된 이삼평(李參平)
    신들의 나라로 알려진 일본에서 도자기의 신으로 추앙되는 대한민국 출신의 이삼평이다. 이삼평이 태어난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1655년에 사망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의 고향은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이다. 일본은 전쟁 과정에서 이삼평을 포함한 조선시대의 도공을 일본으로 데려 갔다. 그 전까지 일본은 도자기 생산 기술이 그리 좋지 못하였는데 그들로 인해 일본의 도자기 기술이 발전하여 이들을 영웅 이상으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특히 이삼평은 이 지역에서 도자기의 시조라는 의미에서 도조(陶祖)로 모셔지고 있다.
  • 울산 >울주군

    옹기마을에서 흙을 빚고 구워봐요! '울산옹기축제'
    울산옹기축제는 국내 유일의 ‘옹기’를 특화된 주제로 부각시킨 차별화된 축제이다. 옹기를 전통제작기술 방식으로 제작하고 있는 울주군 외고산 옹기마을에서 축제가 개최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역 대표 특산물인 ‘옹기’를 홍보하고 생활옹기의 보급과 전통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장인들의 옹기만들기 시연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흙을 밟고, 흙장난을 치며 옹기를 만들고 구워볼 수 있다. 옹기마을의 현장성이 뛰어나 축제 방문객이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은 축제이다.
  • 서울 >용산구

    기법을 달리한 학무늬가 새겨진 철화 청자 매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여러 철화청자 중 덕수 4459번 청자 철화 구름 학 무늬 매병은 상감청자에 많이 등장하는 학 무늬(雲鶴文)도 기법을 달리하면 이렇게 새로운 느낌을 주는구나 싶은 유물이다. 철분 안료로 바탕을 칠하고 무늬 부분을 긁어낸 다음 붓으로 백토를 발라 표현했다. 상감기법과 퇴화기법에서 보이는 맛이 동시에 나타나 한층 활달한 느낌이며 운동감이 있다. 형태도 일반 청자매병과 달리 풍만한 몸통 윗부분에 비해 아랫부분이 길어지면서 좁아들었다.
  • 경기 >광주시

    왕실 백자를 만들던 분원리에서 펼쳐지는 ‘광주왕실도자기축제’
    경기도 광주시의 분원리는 조선시대 전 시기동안 왕실 도자기를 굽던 사옹원분원(司饔院分院·관영 사기제조장)이 있던 곳이다. 사옹원은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던 백자와 달리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는 수준높은 백자만을 생산하던 중앙 관요(官窯)이다. 왕실 도자기 생산지라는 특별한 전통을 계승하고자 1998년부터 도자기축제를 개최하고 있어, 분원리 백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접 도자기 만드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기 >이천시

    세계도자비엔날레와 함께 하는 이천도자기축제
    이천도자기축제는 1987년 설봉문화제의 단위행사로 처음 시작하였다. 지역이 특산물(쌀, 복숭아 등)과 연계하고 문화상품으로서의 도자기를 개발하여 우수한 이천 도자기를 알리고자 하였다. 그러다 독립적인 축제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2년에 한번씩 세계도자비엔날레도 같이 개최하고 있다. 이천은 2010년 공예와 민속예술분야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되었고, 2018년에는 유네스코 공예분야 창의도시 의장도시로 선정되었다.
  • 경기 >여주시

    1990년부터 열린 여주도자기 축제
    여주는 고려시대부터 백자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양질의 고령토와 가마불을 땔 소나무, 깨끗한 물이 있기에 도자기 생산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전국에 유통되는 생활도자기의 60%가 여주에서 생산되고 있다. 여주도자기 축제는 1990년 시작된 도자기를 주제로 한 축제이다. 매년 4~5월에 개최되는 여주도자기 축제에서는 흙을 만지며 직접 도자기를 빚을 수도 있고, 도자접시 깨기 대회도 개최된다. 여주도자기 축제를 통해 도자기 문화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꾀하고 있다.
  • 경남 >김해시

    국내 유일의 분청사기 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
    김해분청도자기축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분청사기를 주제로 열리는 축제이다. 분청사기라는 명칭은 미술사학자 고유섭이 만든 명칭으로, 백토로 분장하여 회청색을 띤 분청사기는 14세기 중엽~16세기 중엽에 활발하게 생산되었다. 김해는 가야토기의 명맥을 이어온 곳으로 조선시대 토산공물로 도자기를 생산하였고, 일본 분청사기의 원류도 김해로 본다. 1996년 시작된 김해분청도자기 축제는 김해군과 김해도예협회가 주최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고장 강진에서 만나는 '고려청자박물관'
    청자는 신비로운 색, 아름다운 선과 형태, 다양한 장식, 높은 기술력으로 만들어낸 우리 문화의 최고 자랑 중 하나다. 청자는 중국에서 들여왔지만 중국에서도 고려청자를 최고로 여겼다. 중국 남송(南宋) 태평노인(太平老人)이 쓴 《수중금》에서 고려청자에 대해 ‘고려비색(高麗秘色)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고 쓰고 있다. 강진은 청자요지와 고려청자에 대한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해 1997년에 고려청자박물관의 문을 열었다. 고려청자박물관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를 볼 수 있으며, 직접 손으로 그릇을 빚는 체험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 전남 >강진군

    고려청자의 맑은 빛을 만들어낸 강진의 정수사 약수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정수사(淨水寺)에 가면 맑은 샘이 물줄기를 강력하게 뿜어내고 있다. 이 물줄기는 자연약수라 일컫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러 오고, 이 물을 마시면 건강해진다는 믿음까지 가지고 있다. 약수 주변은 돌담으로 잘 정비해 두었으며, 흘러내린 물이 고여서 흐르고 있을 정도다. 절 이름도 맑은 물을 뜻하는 정수사이고, 이 맑은 물이 고려청자를 구워냈던 물이라 한다. 바로 청자의 맑고 고운 빛깔을 만들어내던 물이다.

풍년을 기원하는 단오날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습니다. 제삿날에는 떡을 해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었으며, 남자는 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우리는 단오라고 부르는데요!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져 왔고, 그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전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매년 단오에 열리는 가장 오래된 축제 중 하나로,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축제로 불리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사와 굿, 관노가면극, 그네 타기, 씨름 등 단오날 행해지던 행사도 즐길 수 있답니다~ 올해 단오날에는 단오제에 참가하여 단오 풍습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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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여름철 선물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선자장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부채는 우리 조상들이 한여름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 가운데 합죽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 강원 >강릉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음력 4월 중순쯤에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진다.
  • 경기 >과천시

    공중에서 벌어지는 곡예 줄타기
    줄타기는 광대가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담,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곡예를 부리는 놀이다. 줄타기는 4월 초파일,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연희되었으며, 궁중의 행사, 권세 높은 집안의 잔치, 마을 축제, 장터 등에서도 공연되었다. 따라서 놀이판은 관아의 뜰이나 대감댁, 절마당, 장마당 등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훈련이 잘된 남자들이 타며, 청중 가운데 줄광대의 기량이 뛰어난 것에 감탄하여 돈 꾸러미나 비단을 내려주는 수도 있었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지금까지 이런 가면극은 없었다!' 특별한 강릉 관노가면극
    강릉 관노가면극은 강릉에서 관노들이 단오제 때 벌이는 무언 가면극이다. 근대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관노였음을 숨기려는 연희자들이 놀이를 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원형을 크게 잃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다. 관의 주도로 지역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놀이인 만큼 사회 풍자적인 다른 가면극들과 달리 오락적인 성격이 강하다.
  • 경북 >경산시

    한장군과 누이를 기념하는 무형문화재 ‘경산자인단오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용성면 일대에서 신라말 혹은 고려시대에 왜구로부터 주민들을 구한 한장군과 그녀의 누이를 기념하고, 그들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제사이다. 단옷날에 한묘제를 지내고, 자인단오굿, 호장장군 행렬, 여원무, 팔광대 등 왜구를 유인 섬멸한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함께 무녀를 동원하여 여원무를 추었다는 전설을 재현하는 제사이다. 1970년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축제의 형태로 지금껏 전승되고 있다. 2007년에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 전국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 전국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살피는 널뛰기놀이
    널뛰기는 널빤지 양쪽에 사람이 서서, 번갈아 가며 뛰어오르는 놀이다. 왜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이 '세상 구경을 하려고 널을 뛰었다', '시집가서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다', '귀신을 쫓으려고 널을 뛰었다'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 경남 >창녕군

    평민들의 영웅, 문호장(文戶長)을 기리는 영산 문호장굿
    영산문호장굿은 창녕군 영산면에서 단오날에 영산의 수호신인 문호장을 추모하기 위해 굿 과정에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굿놀이 형태이다. 4-5월에 이루어지며, 관의 기획에 의해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며, 무당의 굿,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형태인데, 현재 전승이 중단되어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많은 잔가시를 세심하게 발라낸, 단오에 먹는 준치만두
    진어(眞魚), 시어(鰣魚), 준치어(俊致魚), 준어(俊魚) 등으로 불리는 준치는 맛도 좋지만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준치만두는 잔가시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발라낸 준치 살과 쇠고기를 넣고 완자 형태로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묻혀 찌는 만두이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빚는 일반 만두와는 다른 형태로 일종의 굴림만두이다. 준치만두는 단오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준치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요!

여러분 바다에도 기념일이 있다는 거 알고 계셨나요? 바로 매년 5월 31일 바다의 날로 해양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해양산업 종사자들의 노고를 위로하는 날입니다. 이날 행사는 주로 항만 및 바다 청소, 수산자원 보호 등 바다 환경과 관련된 행사를 열고 있습니다.

이처럼 바다의 현재 인간의 손길로 인해 큰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국내 연안에서 수거되는 해양 쓰레기의 양도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한 해 평균 11만 4212t이라고 하는데 이는 무려 20t짜리 생활 쓰레기 수거 트럭 5700대의 분량이며 그중 플라스틱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플라스틱은 자연적으로 썩는데 500년 이상이 걸린다는 큰 단점이 있습니다.

심지어 분해되어도 미세 플라스틱이 된다고 합니다.

이 미세 플라스틱은 해양 생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기도 하는데요. 결국에는 우리 식탁에 음식으로 올라오며 인간에게 위협을 끼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해요. 이러한 악순환을 끊기 위해 오늘부터 하나하나 잘못된 습관들을 고쳐보는 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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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바다 위에 열리는 시장, 파시
    파시는 저장시설과 운반시설이 부족하던 시절에 바다 위에서 열리던 시장이다. 조선시대의 문헌 자료에 '파시'라는 용어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파시는 대상 어종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데 조기파시와 민어파시, 고등어파시 등이 그것이다. 파시가 열리는 지역에는 이 기간 동안 임시 촌락인 파시촌이 형성된다. 파시촌은 밤만 되면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어부들을 상대로 여러 상업시설이 불야성을 이뤘기 때문이다.
  • 전남 >보성군

    뻘배 타고 갯벌을 미끄러지며 꼬막잡기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 일원에서는 갯벌 위를 뻘배를 타고 다니며 꼬막을 채취한다. 부드러운 펄에서 꼬막 채취가 쉽도록 뻘배를 사용한다. 수십 개의 종류 중 참꼬막은 제사상에 오른다고 하여 ‘제사꼬막’이라 부르며 고급 조개로 간주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보성군 벌교 앞바다인 여자만(汝子灣)의 넓은 갯벌에 대포마을과 장암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1962년에 어촌계가 조직으로 그동안 어업 활동에 면허제도가 도입되어 마을 공동어장 관리를 시작하면서 양식 꼬막 생산이 시작되었고, 집중적으로 생산된 꼬막 작업에 뻘배가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2016년에 '국가중요어업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보령시

    보령 오천항, 잠수부가 키조개를 캐는 유일한 항구
    오천항은 백제와 신라시대에 회이포라는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어지자 군선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수영을 설치했다.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있어 피항시설이 없어도 안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방파제 없이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령시의 중심 장시인 광천장이 위치해 있다. 광천장을 오가는 배들이 물때가 맞지 않으면 이 곳에 배를 두고, 걸어가야 했던 마지막 기항지이기도 했다.
  • 경기 >화성시

    어촌마을에서 즐기는 바다 체험, 화성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소속이지만 충청남도 당진 장고항에 더 가까운 서해의 작은 섬이다. 국화도에는 두 개의 부속 섬이 있는데 이들 섬은 물때에 따라 국화도와 연결된다. 작은 섬이라 많은 주민들이 살지 않고 분교로 있던 학교도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 선착장 주변과 완만한 경사의 국화도 해수욕장 주변에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접근성이 좋고 조용한 섬으로 간단한 트래킹을 즐기러 오거나 낚시를 하러 오는 섬이다.
  • 부산 >사하구

    부산 을숙도, 다시 살아난 생태계의 섬
    부산 사하구에 위치한 을숙도는 새가 많고 물이 맑다고 해서 '을숙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과거에는 갈대와 수초가 무성하고 어패류가 풍부하여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까지 했던 동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으나, 산업화와 난개발 때문에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훼손되었다. 이후 각종 오염을 감내해야 했던 을숙도는 1996년부터 생태계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2012년 완료하였고, 현재는 을숙도 철새공원, 낙동강하구에코센터, 생태공원과 메모리얼파크 등의 명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전국

    일반인도 쉽게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해루질
    해루질은 물이 빠진 바다에서 어패류를 채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최근 해루질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를 하고 있다. 바다를 무대로 생활하는 어민들과 단순히 해루질 체험활동을 즐기기 위한 체험객들의 주된 목적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민들의 해루질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부분이 강하지만 체험객들에겐 하나의 유희에 불과하다. 다만 다양한 목적으로 해루질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어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어족 자원을 외지에서 온 체험객들에 모두 가져갈 수 있다는 점에서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서울 >마포구

    조선 후기 어업의 발달과 관련이 깊은 지토선
    지토선(地土船)은 지방에 소재한 배라는 뜻으로,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방에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배를 말한다. 이 배의 또 다른 명칭은 어염상선(魚鹽商船)이다. 지토선은 지방을 기반으로 한 선박으로 용도적인 부분에서나 지역적인 부분에서 볼 때 매우 다양한 형태의 선박이 존재하였다. 지토선은 고기를 잡는 것보다는 물건을 싣고 강과 바다를 자유롭게 오가는 선박이었는데 주로 취급하던 품목으로는 나무와 소금, 물고기 등이었다.
  • 강원 >삼척시

    수심과 어기(漁)에 따라 다양한 어종을 어획하는 동해안의 자망
    강원도 삼척시와 동해시 어민들은 바다를 수심에 따라 구분한다. 수심 20~40m는 가까운 바다라고 부르고, 수심 100m 이상은 먼 바다라고 부른다. 수심에 따라 어구를 사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고기를 잡는 그물인 자망(刺網)은 수심의 깊이에 따라 그 종류가 다르다. 자망은 울타리처럼 생긴 그물과 고정형 그물로 나뉜다. 그물의 용도에 따라 저자장, 유자망, 부자망, 선자망 등으로 구분된다. 설치 수심에 따라 표층자망, 중층자망, 저층자망으로도 구분한다. 동해안에서는 어류의 서식지에 따라 자망을 달리 사용하는데, 어종의 크기에 따라 자망의 그물코와 그물 겹수가 다르다. 가지미를 잡을 때는 저자망을 사용하고, 오징어를 잡을 때는 중층자망을 사용한다. 오랜 전통을 지닌 어법으로, 시기에 따라 어종의 변화와 수심에 대응해 다양한 어종을 어획할 수 있다.
  • 경북 >울진군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한 후포 등대
    후포리는 경상북도 울진군 최남단에 속해있는 마을로 800여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마을에는 해발 60m의 등기산이 자리 잡고 있고, 등기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바닷가의 산정에는 후포 등대가 자리하고 있다. 후포 등대는 1968년 1월 처음으로 불을 밝혔다. 밤이 되면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의 표지 역할과 후포항을 진출입하는 선박의 안전한 항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등대는 백색의 팔각형으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높이 11m의 등대는 35km의 불빛이 뻗어나가 바다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으며, 현재는 후포항과 동해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의 역할도 하고 있다.
  • 경북 >울릉군

    아름다운 우리 땅 국토지킴이 독도 등대
    아름다운 우리 땅, 대한민국 최동단 독도에는 국토를 지키는 독도 등대가 우두커니 서 있다. 독도 등대의 역사는 1954년 8월 처음으로 불을 밝히며 시작되었다. 독도 등대의 첫 번째 임무는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알리고 우리의 땅과 선박을 지키는 것이다. 독도 등대는 백색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15m의 높이를 자랑하고, 최대 46km의 거리까지 빛을 전달하고 있다. 독도 동도의 가장 높은 곳에 세워진 등대 주변에는 통신 시설과 경비 시설이 함께 하고 있다.

CNN 선정 한국 명소

지난 2012년 CNN에서는 한국 방문 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을 발표했습니다. 외국인들에게만 해당되는 리스트가 아닙니다! 내국인들도 한국을 탐험하고 발견하며 즐길 수 있는 명소들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가을에 가기 딱 좋은 장소 몇 곳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는 합천 해인사입니다. 해인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으로 유명한 곳인데요. 세계문화유산 외에 아름다운 단풍으로도 유명합니다. 고즈넉한 해인사를 둘러보며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보성 녹차밭입니다. 가을인데 차밭이 무슨 소리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예요! 싱그러운 느낌과는 또 다른 운치 있는 분위기의 녹차밭이 여러분들을 맞이해 줄 거예요. 주변의 단풍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녹차밭을 보면 힐링이 절로 되겠죠? 이외에도 성산일출봉, 대둔산 구름다리, 여주 신륵사,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설악산 울산바위 등 많은 명소도 있으니 기분 따라 골라서 가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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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서귀포시

    제주 제1경, 일출이 아름다운 서귀포의 성산일출봉
    성산일출봉(城山日出峯)은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있는 명산이다. 높이는 해발 182m이나 바닷가에 있어서 경관이 뛰어나다. 이 산은 화산 분화구로 독립된 섬을 이뤘으나 점점 바닷물의 작용으로 모래와 흙이 쌓여서 제주도의 본토에 붙게 되었다. 분화구 주변으로 99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하여서 구구봉이라 불린다. 희귀종 식생이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바닷가 벼랑에는 춘란 등 15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말 방목지로 유명하다. 2000년에는 천연기념물로, 2007년에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경기 >여주시

    비천을 아로새긴 신륵사 보제존자 석등
    나옹화상은 고려 말 선불교를 중흥시킨 대표적 선승으로 고려불교가 조선불교로 이어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나옹화상의 석등은 나옹의 불교계 입지를 반영하듯 지금까지 조성한 사례와 달리 빼어난 구조미와 화려한 조각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등이 갖는 무명을 밝히는 상징을 통해 려말선초 불교계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 나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석등으로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 경남 >합천군

    고려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제32호)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그 어느 시대보다도 공예문화가 발달하였지만 목공예는 나전칠기를 제외하면 현존하는 유물과 문헌기록이 드물어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러나 합천 해인사에 보관된 대장경판(大藏經板)을 통하여 고려시대 목공예의 높은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 경남 >합천군

    무른 돌을 갈아 탑을 세우고, 해인사 청석탑
    해인사 원당암 청석탑은 9세기 후반 진성여왕 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점판암을 가공해 공예탑 성격으로 조성한 특수형식 탑이다. 기단은 무른 점판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강석으로 제작했고, 탑신과 옥개석 모두를 점판암으로 제작했다. 원당암 석탑은 진성여왕 때에 위홍을 위한 원당으로 지목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위홍을 위해 기존 석탑과 구별되는 형식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의 능침사찰 신륵사의 다층석탑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왕릉인 영릉을 수호하기 위한 능침사찰이었다. 고려 말 나옹화상이 입적한 곳으로 중창된 이후, 세종대왕의 능을 이장하면서 신륵사를 능침(陵寢)사찰로 지정하여 왕릉수호 역할을 부여했다. 다층석탑은 대리석을 재료로 사용했으며, 고려 말 경천사지 십층석탑 양식을 계승해 수미단을 기단으로 삼고, 그 위로 공예적인 조형의 탑신석을 올린 구조를 취했다. 상층기단 면석에 조각된 용 문양은 조선 왕실과의 관련이 높고, 성종 3년(1472)에 이루어진 신륵사 중창을 염두에 둔다면 석탑 역시 함께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경남 >합천군

    용궁에서 온 강아지의 보은으로 세워진 해인사
    옛날에 가야산 산골에 사는 노부부가 우연히 집으로 온 강아지 한 마리를 3년간 정성껏 길렀다. 3년이 되는 날 강아지는 자신이 용왕의 딸이고 죄를 지어 강아지가 되었는데, 이제 3년이 지나 용궁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강아지는 부부의 은혜에 감사하며 나중에 용궁에 오게 되면 용왕이 선물을 할 것이니 반드시 해인이라는 도장을 고르라 하고는 사라졌다. 며칠 뒤 용궁에 가게 된 노인은 용왕과 공주를 만나 후한 대접을 받고, 해인을 선물로 골라 집으로 돌아왔다. 노부부는 해인으로 남은 삶을 편안하게 지내다가 죽기에 이르러 절을 지었다. 그 절에 해인을 보관하게 되어 해인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강원 >속초시

    금강산으로 들어가려다 멈춘 울산바위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에 울산바위가 있다. 울산바위의 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그 형상이 '울타리'처럼 생겨서 불려졌다고도 하며, 천둥이 칠 때 하늘이 울린다고 해서 ‘천후산(天吼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가장 잘 생긴 바위들을 금강산으로 모두 모이도록 하였다. 울산바위는 경상남도 울산에 있었는데, 조물주의 말을 듣고 금강산으로 길을 떠났다. 그러나 덩치가 워낙 크고 무거워 걸음걸이가 늦다보니 설악산에 이르렀을 때, 이미 금강산이 만들어졌다. 울산바위는 다시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갈 체면이 없어서 설악산에 눌러앉고 말았다.
  • 전남 >보성군

    소유즈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진출한 우리의 전통음료, 보성 녹차
    보성 녹차는 찻잎을 발효시키지 않고 딴 채로 바로 가마솥에 넣고 가열하여 손으로 비벼 건조시킨 차로서, 우리나라 최대의 녹차 생산지인 전라남도 보성군의 특산물이다. 보성군은 전국에서 생산되는 녹차잎의 총 생산량 중 약 34%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녹차생산지이다.
  • 전남 >보성군

    일제강점기 많이 생산된 녹차
    찻잎을 따서 바로 덖으면 찻잎이 발효되지않아 찻물이 녹색이 된다. 이러한 차를 녹차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주로 먹는 차는 녹차였는데 일제강점기 조선에는 광주의 무등다원, 정읍의 소천다원(小川茶園), 보성의 보성다원(宝城茶園) 등에서 일본인이 차를 재배하여 녹차를 만들었다. 이때 만든 녹차는 수증기로 차잎을 찌는 것이었다. 이 증제녹차가 상품화되어 유통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녹차는 수증기로 찌지 않고 물없이 솥에 덖는다. 이 녹차는 일제강점기 규슈 특정지방의 녹차 만드는 방식을 해방 후 도입한 것인데, 선구자는 일본 규슈의 제다공장에서 다년간 노동자로 일했던 화개의 김복순이었다.
  • 경기 >파주시

    평화의 레일을 꿈꾸는 증기기관차 – 파주 임진각 일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 일원에는 등록문화재 한 점과 경기도 기념물 한 점 그리고 세계기록유산과 관련이 깊은 비석이 있다. 등록문화재는 제78호인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다이며, 자유의 다리는 경기도 기념물 제162호다. 복선이었던 경의선 임진각 철교가 한국전쟁 시기에 두 개 모두 망가지자, 서쪽 철교를 복구하고 국도로 연결하기 위해 가설한 다리가 자유의 다리다. 휴전협정 체결 이후 한국군과 유엔군 포로 1만2,700여 명이 이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왔다. 임진각은 실향민과 이산가족이 연중 찾는 장소로서, 임진각 앞에는 방송 당시 주제가였던 ‘잃어버린 30년’ 가사를 새긴 ‘망향의 노래비’가 서 있다.

참 맛있는 여행, 거제

푸르른 5월, 날이 좋은만큼 콧바람을 쐬러 어디든 떠나고 싶어집니다. 날이 좋은데 집에만 있기엔 심심하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와 함께 거제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많은 여행지 중 왜 거제인지 물으신다면 응당 답해드리는 게 맞겠죠! 지금부터 거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릴 테니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에게 있어 맛집 탐방은 빼놓을 수 있는 취미생활 중 하나입니다. 맛집 탐방에 진심인 분들에게 거제는 흥미진진한 여행지가 될 텐데요.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췄으며 오직 거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죠!

거제 9미라 불리며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들은 맑은 해산물을 가미하여 소박하지만, 그 참 맛은 제일이랍니다.

거제 9미에 대해 살짝 살펴본다면 거제의 특색이라 해도 손색없을 성게, 멍게 비빔밥인데요. 청정지역인 거제에서만 해녀들이 직접 잡은 성게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랍니다. 다음으로는 봄의 나른함을 쫓아줄 도다리쑥국입니다. 담백한 맛의 도다리와 향긋한 향의 봄 제철 식품인 쑥의 조합으로 한번 먹으면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해줍니다~ 맛있는 여행 거제에서 바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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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거제시

    겨울 남해의 방파제 낚시로 맛보는 호래기(꼴뚜기)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이 말은 꼴뚜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생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속담이다. 그러나 꼴뚜기는 그런 취급을 받을 생선이 아니다. 남해안에서는 통칭 ‘호래기’라고 부르는 꼴뚜기는 아직 양식이 안 되기에, 가격이 비싼 고급어종에 속한다. ‘경남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꼴뚜기는 경상남도의 초겨울, 통영과 거제의 방파제 및 수산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호래기 낚시와 호래기 회는 재미와 별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남 >거제시

    바다의 맛과 향을 비벼보자, 거제도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살짝 얼린 멍게젓갈에 밥과 함께 김 가루, 참기름, 야채 등을 넣어 비빈 요리로 경상남도 거제도의 향토음식이다. 주재료인 멍게젓은 멍게의 살로만 만드는데, 멍게 특유의 향과 단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는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첨가하지 않는다. 멍게젓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기도 하고 고추장이 멍게 특유의 향과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경남 >거제시

    조개를 회로 먹는다고? 왕우럭조개
    이름에 접두어 ‘왕’이 붙을 때에는 유별나게 크거나 특출난 것을 표현한다. 뚜껑이 유별나게 커서 왕뚜껑, 중국집의 왕짬뽕, 어린시절 추억의 간식 왕밤빵까지... 개체중에 특출나게 큰 것은 왕건이 잡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크기 자랑은 거제도 앞바다에도 있으니, 그 이름 왕우럭조개다. 못해도 성인 주먹보다 크고, 특출나게 큰 녀석은 사람 얼굴만 한다고 하니, 과연 ‘왕’의 자리에 오를 만하다. 커서 회로 먹어도 충분한 살이 나오는 조개. 거제도의 명물 왕우럭조개를 만나보자.
  • 경남 >거제시

    수정같이 솟아있는 거제 옥산성
    거제 옥산성은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10호로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수정봉 정상 부분에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수정봉성이라고 불리는 옥산성은 게제도의 옛 치소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계룡산에서 거제면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 부분에 있다. 그리하여 옥산성에 오르면 멀리 한산도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서쪽 방향이 트여있어 산성지로 적합한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 경남 >거제시

    일제강점기 대량생산된 마른멸치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 경남 >거제시

    진해만의 대구 잡이
    대구포는 대구를 말린 것으로 밑반찬이나 제사음식으로 쓰였다. 대구포를 만드는 대구어는 경남 창원 인근의 진해만이 최대 어장이다. 진해만에 있는 대구어장의 중심은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이다. 1979년 무렵에는 어민 450여명이 60여척의 배로 대구를 잡을 정도였다. 한반도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와 서부 황해계통의 대구어로 나뉜다. 황해방면의 대구어는 체형이 왜소하고 동해계통 대구어보다 맛이 떨어진다. 진해만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가 산란을 위해 왔다가 잡히는 것이다.
  • 경남 >거제시

    잠수복을 입고 전복을 캐는 거제의 ‘모구리어업’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동마을에는 모구리가 많다. 모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말로, ‘머구리’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어패류를 채취하기 위해 조선으로 밀려 들어온 잠수기 업자들이 침탈적으로 어로행위를 이어 나갔다. 급기야 남획으로 인해 수산자원을 보호하려 어업을 통제해야 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 소유였던 잠수기어선이 귀속재산으로 처리되면서 초기 잠수기어업이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잠수기어업이 이루어지지만 그중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거제 장목항이다. 장목항 주변의 저도 어장은 천혜의 자원 보고로 많은 잠수기어선이 모여든다. 거제 어장에서는 개조개, 바지락, 왕우럭 등을 주로 채취한다.
  • 경남 >거제시

    기차타고 함흥에서 흥남으로, 흥남에서 뱃길로 거제도까지
    이장영(남·1940년생)현 거제도민회회장이다. 유서깊은 개신교 목사 집안 출신으로, 목사였던 부친이 흥남철수 작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현봉학(의사)을 도와 당시 미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을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교인인 가족들은 남은 사람 없이 피난을 나와 함흥에서 흥남으로 기차를 타고 왔고 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와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 경남 >거제시

    경남 거제의 삼 삼으며 부르는 줌치타령
    경남 거제시에는 삼을 삼으며 부르던 노래로 줌치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삼삼기는 여성들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삼삼는소리」 또한 여성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줌치타령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가창유희요이나 삼삼기의 고됨과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도 불렀다. 줌치 즉 주머니를 짓는 재료부터 주머니를 지은 방법, 주머니를 매개로 한 남녀 간의 구애 행동을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민주주의를 향한 열흘간의 항쟁

서울의 봄을 꿈꿨던 세상은 신군부의 국가 장악으로 인해 꿈을 이루기도 전에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자유를 억압하는 새 정부로 인해 1980년 5월 초, 민주화를 요구하며 대학생들의 시위가 불붙기 시작하였고 서울뿐만 아닌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 지방 도시까지 그 열기는 이어졌죠.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엔 끝이 없었고 광주에서는 5월 13일부터 지속적인 민주화 시위가 계속해서 이뤄졌습니다. 시위가 이뤄지던 광주에서는 부상자를 병원에 옮기던 운전기사가 죽임을 당하고 임산부가 총에 맞아 즉사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하자 시위대 또한 실탄으로 무장하고 반격에 나섰습니다.

공수부대의 공격 속에서도 끊임없이 항쟁을 이어 나갔고 무자비한 폭격 속에서도 시민군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무력 진압 앞에 광주 시민군은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 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당하고 목숨까지 잃었으나 언론 통제로 인해 폭동을 일으켰다는 오명까지 받아 남은 사람들에게는 그날의 항쟁이 아픔과 상처로 남게 되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독재의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염원한 광주 시민들의 용감한 투쟁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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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원주시

    “싸움 중에 있는 저희를 보호하소서.”, 원주 원동성당
    강원도 원주시 원동성당은 1896년 원주 본당으로 시작한 유서 깊은 성당이다. 원동성당은 1913년 고딕 성당을 지었으나 한국전쟁 초기에 폭격으로 무너져 버렸다. 현재의 성당은 1954년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첫 주교로 부임한 지학순 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회의 정신에 따라 1970년대부터 유신 독재에 정면으로 맞섰다. 원동성당은 1970년대와 1980년대 한국 민주화 시기에 중요한 중심 공간 역할을 했다.
  • 광주 >서구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의 현장, 5.18 자유공원
    광주 서구 치평동 김대중컨벤션 센터 맞은편에 5.18 민주항쟁을 기념하는 5.18 자유공원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가장 큰 건물인 자유관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약 10일간 벌어진 광주 시민의 민주 항쟁과 전두환 신군부 정권 계엄군의 억압 현장의 기록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왼편에는 헌병대 중대 내무반과 본부 사무실, 취사실, 영창 건물이 있으며 당시 계엄군의 만행을 생생하게 모형으로 재현되어 있다.
  • 인천 >중구

    민주주의가 자라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성덕당은 1935년 인천 공립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졌다. 일본인 학교였던 인천 공립학교는 해방 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이 되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이었던 교육자 길영희 선생은 ‘성덕당’에서 전교생에게 양심적인 나라의 일꾼이 되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1930년대 세워졌던 옛 학교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성덕당은 남아 제물포고등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 광주 >동구

    5.18민주화 운동 당시 끝까지 사수했던 광주 구 전라남도청 본관
    광주 구 전라남도청 본관은 광주광역시 5.18 민주광장 앞에서 북부 발산교 앞 교차로까지 이어지는 금남로의 시작점에 위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인 건축가 김순하가 설계에 참여하여 지은 대표적인 관공서 건물이다. 초기에는 벽돌조 2층 건물이었으나 해방 후 백색 도료로 도색되었고 1975년에 3층으로 증축되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후의 격전지로서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민주화의 꿈이 스러지다, 장면 가옥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장면은 1960년 8월 12일 내각책임제 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은 불과 9개월 만에 무너졌다. 서울 장면 가옥은 그렇게 짧았던 민주화의 꿈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집은 장면이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인 1937년 건립하여 1966년 서거할 때까지 30년가량 거주하였던 곳이다. 욕실과 화장실을 실내에 배치하고 대청마루가 거실 형태로 바뀌는 등 1930년대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광주 >서구

    5.18 광주 민주화운동과 양동시장
    광주광역시 양동시장의 역사는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100년의 시간을 훌쩍 넘었다. 긴 역사만큼 양동시장은 근현대사의 다양한 사건들과 함께 해 왔고, 역사적 현장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었던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에도 양동시장은 함께 했다. 당시 양동시장 상인들은 시민들에게 주먹밥과 음료수, 구급약품 등을 나눠주기도 했다. 양동시장은 5.18사적지 제19호로 지정되어 있다.
  • 전남 >화순군

    광주 민주화운동의 대부, 홍남순
    홍남순은 전라남도 화순에서 태어나 1963년 광주에서 변호사 개업을 한 후 평생을 광주 민주화 운동의 대부 노릇을 한 어른이다. 그는 유년시절부터 약자의 편에 선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어려운 형편에도 변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자 국가의 녹을 먹는 판사를 그만두고 약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이자, 독재 정권과 싸우는 민주투사가 된다.
  • 서울 >도봉구

    씨알의 세상을 외치다, 함석헌
    인권운동가이자 시인·교육자·사상가·언론가·역사가인 함석헌은 평생을 민중운동에 헌신했던 사상가다. 함석헌이 발간한 잡지 『씨알의 소리』는 함석헌이 일생을 걸쳐 수립한 사상인 '씨알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중심으로 하는 씨알사상은 함석헌의 정치·사회활동의 근간이었으며, 우리가 본받아야 할 중요한 정신유산이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는 함석헌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함석헌 기념관이 있다.
  • 광주 >남구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광주광역시 남구 이강하미술관’
    광주광역시 양림동에 자리한 이강하미술관은 5.18때 시민군으로 참여하고 이후 양림동에서 30년간 작품활동을 해온 화가 이강하의 삶과 예술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옛 양림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한 미술관에서 이강하의 무등산 연작과 영산강 연작을 만나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단청을 비롯한 우리 전통과 시민들의 삶, 그리고 새롭게 해석한 남도의 풍경을 담아낸다.
  • 전남 >나주시

    사회적 약자의 어머니 조아라
    조아라는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여성의 교육과 인권을 위해 헌신했다. 수피아여학교 시절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여하고 항일단체 ‘백청단’ 단원으로 활동한다. 백청단 사건으로 교직에서 쫓겨난 후 그는 광주 YWCA에서 고아, 성매매여성, 빈민여성 등의 여성인권과 여성 교육을 위해 헌신한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는 구속자와 부상자를 돌본다.

부패정치와 외세에 맞서다

조선을 뒤흔들었던 사건 중 하나인 동학농민혁명, 포악한 관리와 외세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들의 함성은 한반도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포악한 관리와 외세의 극악무도한 횡포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동학 조직을 이용해 부대를 편성하였고 봉기를 촉구하였으며 그 결과 농민군들은 파죽지세로 전라도 일대를 누비며 북상하였습니다. 그 기세는 진압군들조차 겪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였고 이에 조선 정부는 농민군의 요구를 들어주겠다 약속하였고 농민군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그 약속은 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게 되었고 또다시 농민들은 들끓는 마음으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신식 무기 앞에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패하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꺾이지 않은 마음이었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용기, 그 용기와 희망이 조선의 개혁과 의병 전쟁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깃발을 들고 여기에 이른 것은 안으로는 못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외적을 내쫓고자 함이라."

우리 모두 그 용기를 이어받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성공으로 가는 과정과 마음만을 생각하며 희망찬 앞날을 꿈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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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군산시

    1927년 전북 옥구 이엽사농장 소작농의 농민 항일항쟁과 시위지
    옥구소작쟁의(沃溝小作爭議)는 전라북도 옥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의 소작 농민들이 일본인 지주의 살인적인 소작료 수탈에 대항하여 일으킨 1920년대 대표적인 피식민지 농민항쟁이다. 소작쟁의는 소작농이 결성한 옥구농민조합을 중심으로 일본인 식민농업회사인 이엽사와 이를 감싸는 일제의 공권력에 항의하여 1927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 경북 >구미시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었던 구미 쌍암 고택
    구미 쌍암고택은 조선 영조시대 진사 최광익(1731~1795)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반가이다. 쌍암고택은 고택 부근에 큰 바위 2개가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쌍암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사당의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쌍암고택은 유일하게 남향으로 자리 잡은 사랑채를 빼고 모두 동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쌍암고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과학성과 실용성을 엿볼 수 있다.
  •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라북도 정읍하면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다. 당대 부조리한 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노력한 농민들의 함성을 정읍에서 생생하게 들어보자.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고부 만석보’, 황토현전투의 장소 ‘황토현’, 전봉준 고택 ‘녹두장군 옛집’ 등 동학농민혁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흔적을 기념관에 담아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역사적 사건을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에게 전시, 교육, 유적지 답사 등을 제공하고 있다.
  • 경남 >양산시

    윤복이, 양산농민시위 중 총을 맞다
    윤복이는 일본 지주, 동양척식회사들이 소작인을 착취하는 것에 항거해 농민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인물이다. 그는 1931년 양산농민조합이 결성되자 농민의 권익을 위해 조합원으로 가입한다. 그는 소작료를 4할로 낮추고, 마름 제도를 없애고 소작권을 지주나 마름이 횡포를 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합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경찰이 이유 없이 조합 간부 17명을 검거하고 양산농민조합을 탄압하자, 조합원 300 명과 함께 양산경찰서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김개남
    김개남은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주역이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에서 활약한 공적과는 별개로 탐관오리들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처벌한 잔인한 사람,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청주성을 공격하는 개별행동을 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게 한 사람 등의 부정적 평가에 가려져 있다.
  • 경기 >파주시

    동학농민군이었다가 농민의병으로도 항쟁한 김수민
    김수민은 한말 후기 의병기에 경기도 동북부 지역의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이다. 그는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한 바도 있는 농민으로서 의병전쟁에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무기를 제조하거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1908년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도 참여하였으며 경기도와 강원도, 황해도 일대를 옮겨다니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군이 첫 승리한 정읍 황토현 전적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는 황토현이라는 나지막한 고개가 있다. 1894년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한 동학농민군들이 전라감영군과 맞서 싸운 곳이다. 전라감영군과 접전을 벌이던 동학농민군은 거짓 패한 척하며 황토현에 진을 쳤고, 뒤따라와 황토현 인근에 진을 친 전라감영군을 기습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군은 호남지방을 석권하게 되고 동학농민운동도 확대되었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정읍 황토현 전적은 1981년 사적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논산시

    동학농민군의 피로 물들었던 충남 논산의 황화산성
    충청남도 논산시 강화동과 등화동 경계에 있는 황화산에 황화산성이 있다. 황화산성은 백제 때 만들어진 토성으로 당시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한 거점이었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 봉수대로 이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현재는 이곳에서 매년 ‘황화산성 봉화제’가 개최되어 마을주민의 화합과 논산시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 경남 >하동군

    동학농민군의 항일전쟁 유적지인 경남 하동의 고성산성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의 고성산에 고성산성이 있다. 고성산성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동학혁명 때 진주를 중심으로 모여든 경남 서부지역의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1995년 고성산성에 동학농민군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학혁명위령탑이 건립되었고, 이 위령탑에서 매년 11월 11일 11시가 되면 동학혁명군 위령제가 열린다.
  • 충남 >공주시

    동학의 우금치 전투를 기리는 공주 우금치전적 동학혁명군 위령탑
    공주 우금치 전적 동학혁명군위렵탑은 충청남도 공주 금학동에 위치하고 있고 사적387호로 지정됐다. 전봉준은 일본의 만행을 두고보지 못해 2차 봉기를 일으켰고, 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죽검으로 대항한 농민들은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에게 전멸당했다. 1973년 동학혁명군 위령탑 건립위원회에서 동학혁명군 전적비를 세웠고, 동학농민혁명 100년이 지난 1994년에야 우금치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우리 지역의 효(孝) 이야기

푸르른 5월은 가정과 관련된 행사가 많아 '가정의 달'이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을 때, 대다수가 '가족'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가족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기 어려워하지요. 가족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바쁜 회사 일로 가족에게 소홀하기도 하고, 때론 친구들이 가족보다 우선순위가 되어 그 소중함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늘 가까운 곳에서 따뜻하게 반겨주는 가족은 언제든 돌아갈 내 안식처와 같은 곳이지만, 소중함을 잊고 지내어 실로 그래서 더욱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지역의 효(孝)와 관련된 장소와 이야기를 알아봄으로써 가족이 나에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감사함을 더하여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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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장흥군

    효심으로 지어진 탐진강, 장흥 용호정
    정남진의 고장 장흥에는 탐진강을 따라 이름난 누정들이 들어서있다. 사인정, 부춘정, 용호정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용호정(龍湖亭)은 탐진강 상류 깊은 용소(龍沼)가 있는 암벽 위에 자리한다. 아래로는 맑은 탐진강이 휘돌아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는 우뚝 솟은 기역산이 탐진강과 조화를 이룬다. 용호정은 ‘용호정 원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호정은 최규문(崔奎文) 형제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1827년 지은 효심의 정자이다.
  • 전남 >영광군

    세 효자의 정문을 모셔둔 대문채, 영광 매간당
    전라남도 영광군 동서면 동간리에 위치한 매간당은 조선후기 가옥 중 하나로, 연안김씨 직강공파의 종택이다. 연안김씨 직강공파 시조의 4대손인 김영(金嶸, 1540년생)이 영광군수로 부임하는 숙부 김세를 따라와 정착한 후 그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다. 1868년에 안채를 지었으며, 나머지 3개 건물이 잇따라 개축과 신축으로 완성되었다. 마을 뒤쪽인 남쪽에 안산이 있어 집은 북향으로 앉아 있다. 남북으로 완만한 비탈에 안채와 사랑채를 축대를 쌓고 세웠다. 현달한 조상을 선양하기 위해 대문 위에 정문을 건립하는 등 독특하고 구성진 공간의 묘미가 돋보인다.
  • 충북 >음성군

    효자를 위해 잉어가 스스로 뛰쳐나온 음성 이양골
    충청북도 음성에 효자로 이름난 권국화가 살았다. 어느 해 부친의 약을 구하러 한밤중에 장호원을 가려고 하니 호랑이 태워다 줬다. 그리고 한겨울에 부친이 잉어회를 먹고 싶다고 해 성미저수지에 가서 도끼로 얼음을 깨려 했으나 깨지지 않았다. 권국화는 무릎을 꿇어 하늘에 기도를 드렸고, 무릎의 체온에 얼음이 녹아 뚫힌 구멍으로 잉어가 뛰쳐나왔다. 덕분에 아버지는 잉어회를 먹고 천수를 누렸다. 권국화가 잉어를 잡았던 성미저수지가 있는 들판을 잉어가 올라온 곳이라 하여 이양골이라 불렀다.
  • 강원 >춘천시

    효자가 살았던 춘천시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孝子洞)과 거두리(擧頭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춘천의 지명에 효자동과 거두리와 대룡산이 있다.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는 이 지명이 생긴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효자는 조선조 때 춘천에 살던 반희언이라는 사람 이야기라고도 한다. 효자 반희언(潘希彦)은 임진왜란 때 용감했던 장군 반처량(潘處良)의 아들로서 희언은 1554년 5월 18일 춘천 퇴계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를 임진왜란에 잃고 홀로 어머니를 돌보면서 효자노릇을 했다. 그의 효성을 표창하여 나라에서 효자문을 내렸는데, 그 때문에 효자동이 생겼다고 한다.
  • 전북 >완주군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한 전북 완주 유석진 효자비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읍 읍내리에는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던 유석진의 효행을 기린 유석진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유석진은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에 생존했던 인물로,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먹이니 아버지의 병이 곧바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지고 『삼강행실도』에 실리게 되었다. 유석진이 실천한 방법은 현대에서는 어려운 것이지만 그의 효행 정신만큼은 본받을 만하다.
  • 경북 >포항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가 살았던 포항 효자동
    옛날 경북 포항 한 마을에 홀어머니와 효자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어 했다. 아들은 대구로 시집간 누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밤중에 산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호랑이는 아들을 태워 순식간에 누나에게 데려다주었다. 마침 누나의 집에 홍시가 있어 아들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후 효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대구 > 달성군

    임진왜란 때 아버지와 네 효자가 숨었던 대구 사효자굴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양리 비슬산 중턱의 한 굴에는 사효굴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임진왜란 때 곽재훈과 그의 네 아들은 비슬산의 한 굴에 숨어 있다가 곽재훈의 기침 소리 때문에 지나가는 왜군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네 아들이 차례로 나와 아버지를 살려달라며 죽임을 당했다. 왜군은 네 아들의 효성에 감동하여 곽재훈을 살려주었고 이 일이 조정에까지 알려지자 네 효자의 정려각이 세워졌다.
  • 경북 >경주시

    이언괄의 효심을 칭송하는,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심수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8-5(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1호이다.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1491~1553)의 아우 이언괄(1494~1553)을 추모하여 1560년(명종 15)경에 여강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철종 때의 화재 이후 1917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여강이씨 파종가인 향단의 부속 정자라고도 한다. 심수정이라는 정자명은 ‘고요함이란 자는 마음 가운데 있는 물에서 나온다[靜之字 心中之水].”라는 글에서 유래하며,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고요함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힌다.
  • 경기 >오산시

    정조의 효심이 어린 곳, 독산성
    독산성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현재 세마대지와 함께 사적 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시대의 산성이지만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용되어 왔고,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말을 쌀로 씻어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의 애증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이 좋고 독산성 산림욕장과 주변 먹거리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많은 오산 시민들이 방문한다.
  • 경북 >칠곡군

    호랑이로 변한 효자 홍범
    예전에 홍씨 효자가 아내와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병든 어머니를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도사를 통해 수캐의 불알 서 말이 있으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호랑이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주문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홍씨 효자가 밤마다 호랑이로 변해 이웃마을에서 개를 죽였는데, 이를 알게 된 아내가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주문이 적힌 종이를 태워버렸다. 홍씨 효자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호랑이의 몸이 되어 홍범이라 불렸으며, 산을 떠돌다 포수의 총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 어린이날

모든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바로 어린이날인데요. 어린이날은 가정의 달 시작을 알리는 반가운 기념일이자
어린이의 인격을 소중히 여기고, 어린이의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제정된 날이랍니다~
모두가 즐거운 5월 5일이지만 어린이날이 제정되기까지의 과정을 여러분은 아시나요?

과거 어른의 축소판으로만 여겨지며 어린이의 인격이 지켜지지 않았던 시절에
어린이 운동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1981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었습니다.
아동복지법에는'어린이를 옳고 아름답고 슬기로우며,
씩씩하게 자라도록 하도록 하기 위하여 매년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한다'라는 조문이 포함되어 있답니다!
많은 사람들의 힘으로 얻게 된 소중한 어린이날, 여러분에게 어린이날은 어떤 날로 기억되고 있나요?
오늘은 주변 어린이들에게 친절과 행복을 나누며 어린이날을 즐겁게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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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순천시

    선교사의 자녀들, 구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
    미국 남장로회 순천선교부는 1910년 설립이 결정되었다. 당시 순천선교부에는 선교사만 70명 이상이 오가며 활동했다. 순천선교부는 1913년부터 순천시 매곡동 일대 버려진 땅에 교회, 학교, 병원을 세우고, 사택을 지어 활동 근거지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는 기혼 선교사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회색 벽돌로 지은 건물이다. 낯 설고 물 설은 식민지 땅에서 헌신한 선교사들의 자취를 짐작하게 해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순천선교부 외국인 어린이학교는 순천시 순천선교부 거리의 등록문화재 5곳 가운데 한 곳이다.
  • 제주 >제주시

    자연과 책이 만나는 공간 꿈공작소! 제주 꿈바당어린이도서관
    제주꿈바당어린이도서관은 제주시 연동에 위치하여 책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힘차게 뛰어놀 수 있는 정원과 놀이터를 갖추고 있고, 정성어린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의 꿈과 비전을 키워나갈 수 있는 꿈공작소 역할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까지 즐거워지는 곳, 남녀노소가 모여 책을 매개로 자연을 만나고 놀이와 배움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공간으로 오랜 시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 경기 >성남시

    성남 현대어린이책미술관, 책의 매력에 빠져들 준비 되셨나요?
    현대어린이책미술관은 현대백화점 판교점에서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2015년에 문을 열었다. 국내 유일의 그림책 전문 미술관이며, 그림책을 문학과 미술이 결합한 복합 예술 장르로 다루고 있다. 두 개의 전시실과 모카(MOKA) 랩, 아틀리에, 버블 스텝, 미디어룸, 열린서재, 교육실 등을 갖췄다. 일상생활에서의 예술 활동을 확대하고자, 어린이는 물론 청소년과 성인 프로그램까지 다양한 체험 교육을 운영한다.
  • 제주 >서귀포시

    신나는 우주체험을 할 수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인류에게 하늘은 늘 탐구의 대상이었다. 하늘의 뜻을 읽는 자가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던 과거에서 우리는 점점 발전했다. 지금은 하늘을 넘어 우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인류의 노력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제주도에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다. 비행기부터 시작해 현재 탐험 가능한 우주와 미래의 모습과 다양한 체험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파일럿이나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어린이에게도 즐거움을 주겠지만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 부산 >연제구

    책방 큰엄마가 운영하는 어린이책 전문서점, 책과아이들
    1997년 부산에 문을 연 동네책방 ‘책과아이들’은 어린이전문서점이다. 책과아이들은 1997년 12월 부산 양정동에서 12평 규모로 처음 문을 열었다. 초창기에는 책방과 육아공동체를 함께 운영했는데 회원이 늘자 공간이 비좁아 2001년 공간을 넓혀 부산교대 근처로 이전했고, 2009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했다. 2만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책과아이들은 이제 동네책방의 버팀목 같은 존재이며, 강정아 대표는 책방 큰엄마로 불린다. 단순히 책을 파는 서점일 뿐 아니라 바로 옆에 마을도서관 구름빵이 있고, 갤러리와 방이 여러개 있어 각종 전시회와 모임, 문화행사도 이루어지고 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녹지 부족한 영통의 쉼터 수원어린이교통공원
    수원 영통에 위치한 수원어린이교통공원은 어린이 전용공원이면서 교통안전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수원 영통의 경우 도시 개발로 아파트단지가 많다 보니 녹지가 부족한 편인데 어린이가 안전하게 놀 수 있어 부모와 아이들에게 모두 소중한 공간이다. 최근 수원어린이교통공원의 개발이슈는 도심의 주거지와 공용공간의 가치, 그리고 이를 대하는 공동체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 경기 >부천시

    부천자연생태박물관, 자연과 환경을 경험하는 어린이들의 천국
    부천자연생태박물관은 관람객들에게 자연을 경험할 기회와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고자 부천시에서 2000년에 건립한 공공 박물관이다. 부천자연생태박물관 개관에 연이어서 2002년 농경유물전시관, 2006년 부천식물원, 2012년 부천무릉도원수목원이 문을 열었고, 현재 4개 관을 묶어 부천자연생태공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람객들은 부천자연생태박물관에서 살아있는 동물과 화석, 표본 등을 통해 다양한 생태계의 동식물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두루 관람할 수 있다.
  • 서울 >광진구

    어린이날, 나루몽과 함께 해요! 서울동화축제
    서울동화축제는 어린이날 어린이대공원을 중심으로 광진구에서 펼쳐지는 어린이 축제다. 2012년 처음 개최되었는데, 서울어린이대공원 등 광진구의 지역 인프라를 ‘동화’라는 주제와 결합하여 광진구를 브랜드화하기 위해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가족과 어린이를 위한 참여형 프로그램, 동화에 관한 학술대회와 포럼 등 다양하고 전방위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성공적인 어린이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루몽이라는 캐릭터가 서울동화축제의 마스코트이다.
  • 서울 >용산구

    평생 '어린이'를 위해 살았던 아동문학가 방정환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 전까지 우리나라에 없던 말이다. 아동문학가 방정환이 1920년 천도교에서 발행한 종합월간지 『개벽』에 번역 동시 「어린이 노래: 불 켜는 이」를 발표하면서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방정환은 안데르센과 그림 동화를 번역 소개했고, 한국 최초의 아동잡지 『어린이』를 창간했다. 아동문제연구회인 색동회를 창립하고 어린이날을 만들었으며, 동화회를 열었다. 『신청년』 , 『신여성』 , 『학생』 등의 잡지를 발간하고, 『칠칠단의 비밀』, 『사랑의 선물』 등의 동화를 썼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방정환의 동상이 서 있다.
  • 대전 >유성구

    트램펄린이 설치된 별밭어린이공원
    대전 유성구 학하동 별밭어린이공원은 도시개발 가운데 생긴 공간에 들어선 어린이공원이다. 뒤편 언덕에 성선성봉과 천명각이 있다. 6차선 대로변 바로 옆에 있는 공원으로 접근성도 뛰어나거 근처에 큰 아파트 단지가 많아서 지역주민들도 걸어 나오기 쉬운 공원이다. 놀이시설 중에는 트램펄린이 인기가 많다.

고즈넉한 궁궐 여행 BEST 5

우리 민족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고궁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서울이 외국의 도시보다 아름다운 건, 바로 이 고궁 때문인데요.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 도시에 5개의 궁궐이 있는 나라는 없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곳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는데요. 조선 왕조의 상징인 경복궁과 경복궁 중건 전 정궁 역할을 한 창덕궁, 그리고 세종이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창경궁과 왕의 피우를 위해 이궁으로 건립된 경희궁,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까지. 우리 민족의 혼과 한이 깃들어져 더욱 아름다움을 풍기곤 합니다. 이번 주는 빛과 바람이 스며들어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고궁으로 나들이 가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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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낙선재 후원의 화려한 육모정자, 창덕궁 상량정
    상량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후기의 정자이다. 낙선재 후원에 있는 이층 육모정자이다. 본래 이름은 평원루이었다가 일제 때 상량정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상량(上凉)이란 높은 곳에 오른다는 의미로, 상량정이라는 정자명이 높은 지대에 시원스럽게 앉아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일품이다. 서울 도심과 인왕산, 창덕궁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종묘로 이어지는 산자락과 멀리 남산 일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봄을 알리고 단비를 기원하는, 창덕궁 보춘정
    보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번지 창덕궁 내 성정각에 딸려 있는 누각이다. 보춘정 건물의 다른 면에 희우루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이 누각은 봄이 옴을 알리고, 가뭄 때 단비를 기원하는 누각이다. 조선 숙종대에 지어진 누각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덕성을 존중하고 태평성대를 염원한, 창덕궁 존덕정
    존덕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이 자리에는 본래 조선 선조 때 정자가 있었으나 훼손되어 인조 때 다시 지어 육면정이라 불리다가 뒤에 존덕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존덕(尊德)’이란 덕(德)을 존중한다는 뜻으로, 군주가 덕성을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를 할 때 성군이 된다는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해 세워진 정자이다. 특히 정조는 자신의 이상을 글로 담아 존덕정에 걸어 두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군자의 꽃 연꽃을 사랑하는, 창덕궁 애련정
    애련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원래 1692년(숙종 18)에 연못 가운데 섬을 쌓고 그곳에 건립된 정자였다. 이후 순조 이전에 연못 가운데서 연목 북쪽으로 옮겨져 지금의 자리에 위치하게 되었다. ‘애련(愛蓮)’은 ‘연꽃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애련정은 ‘연꽃을 사랑하는 정자’다. 숙종이 애련정을 세운 것은 더럽고 진흙이 깔린 호수에서도 화려한 꽃을 피우는 연꽃의 지조와 깨끗함에 반하여 늘 연꽃을 사랑하였고, 이것이 곧 군자의 덕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애련정이 있는 후원은 인공적인 냄새가 별로 풍기지 않고, 자연 지형을 그대로 활용하면서 주위 풍경과 어우러지게 조성하였는데, 이는 인위적인 냄새가 강한 중국이나 일본의 궁정 정원과 크게 비교된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빼어난 경치를 즐기는, 창덕궁 승재정
    승재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순종 때 연못을 새로 파고 관람정을 지을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승재(勝在)’의 ‘승’자는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승재정은 빼어난 경치가 있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정조의 개혁정치와 문예부흥의 산실, 창덕궁 주합루
    주합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9호로 지정되어 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창덕궁 부용지 북쪽 언덕 높은 곳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 위층은 주합루라는 편액을 걸었다. 규장각은 도서관으로, 주합루는 열람실로 이용하였다. 이 주합루 일대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丁若鏞)·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덕무(李德懋)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또한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어진·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연꽃 향기 머금은 신선의 세상, 창덕궁 부용정
    부용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숙종이 1707년(숙종 33)에 지은 택수재(澤水齋)를 1793년(정조 17)에 정조가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부용정이 있는 부용지 주변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넓고 짜임새 있게 구조가 갖추어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영조의 어진 정치를 보여준, 창경궁 함인정
    함인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1833년(순조 33)에 중건되었다. 함인정이란 정자명은 ‘어짊에 흠뻑 젖는다’는 뜻으로, 실제 왕들이 이 함인정에 백성들을 초청하여 그들의 애환을 듣고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고종의 북카페, 경복궁 팔우정
    팔우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팔각 2층 정자이다. 고종의 서재로 쓰였던 집우재에 딸려 있는 정자로, 일종의 북카페와 같은 역할을 한 정자이다.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책을 열람하기도 하고,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명성황후의 넋이 어린, 경복궁 옥호루
    옥호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청궁 곤녕합에 딸린 누각이다. 본래 1873년(고종 10)에 건청궁 건립 때 세워졌으나,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현장으로서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다. 2007년 건청궁 복원 때 옥호루도 복원되었다

그날의 외침, 민주주의를 되찾다

1960년 4월 19일,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학생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이날 일어난 4.19혁명은 한국 역사에서 일반 대중이 궐기하여 정권을 무너뜨린 최초의 사건이다. 그로부터 66년전인 1894년, 농민들이 봉기하여 부정과 외세에 항거한 또 하나의 혁명이 있었다. 바로 반봉건, 반외세 운동인 "동학농민운동"이다. 농민들은 조선시대 양반 관리들의 부정부패, 사회혼란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혁명을 주도했다. 혁명의 중심에 당시 사회의 부정함이 있다는 점이 두 혁명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어준다.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올까? 결국 사회는 민중들로부터 나온다. 동학 정신 또한 그러하다. 동학 사상에는 인본주의, 즉 사람은 하늘아래 누구나 평등하다는 정신이 깃들어있다. 이 사상이 있어 3.1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그리고 해방 후 4.19혁명까지 일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다시 가슴 속에 민주주의를 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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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구미시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었던 구미 쌍암 고택
    구미 쌍암고택은 조선 영조시대 진사 최광익(1731~1795)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반가이다. 쌍암고택은 고택 부근에 큰 바위 2개가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쌍암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사당의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쌍암고택은 유일하게 남향으로 자리 잡은 사랑채를 빼고 모두 동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쌍암고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과학성과 실용성을 엿볼 수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민주화의 꿈이 스러지다, 장면 가옥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장면은 1960년 8월 12일 내각책임제 정부의 국무총리로 선출됐다. 하지만 이듬해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제2공화국은 불과 9개월 만에 무너졌다. 서울 장면 가옥은 그렇게 짧았던 민주화의 꿈이 서려있는 곳이다. 이 집은 장면이 동성상업학교 교장으로 있을 때인 1937년 건립하여 1966년 서거할 때까지 30년가량 거주하였던 곳이다. 욕실과 화장실을 실내에 배치하고 대청마루가 거실 형태로 바뀌는 등 1930년대 주거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라북도 정읍하면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다. 당대 부조리한 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노력한 농민들의 함성을 정읍에서 생생하게 들어보자.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고부 만석보’, 황토현전투의 장소 ‘황토현’, 전봉준 고택 ‘녹두장군 옛집’ 등 동학농민혁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흔적을 기념관에 담아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역사적 사건을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에게 전시, 교육, 유적지 답사 등을 제공하고 있다.
  •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김개남
    김개남은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주역이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에서 활약한 공적과는 별개로 탐관오리들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처벌한 잔인한 사람,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청주성을 공격하는 개별행동을 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게 한 사람 등의 부정적 평가에 가려져 있다.
  • 경기 >파주시

    동학농민군이었다가 농민의병으로도 항쟁한 김수민
    김수민은 한말 후기 의병기에 경기도 동북부 지역의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이다. 그는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한 바도 있는 농민으로서 의병전쟁에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무기를 제조하거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1908년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도 참여하였으며 경기도와 강원도, 황해도 일대를 옮겨다니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군이 첫 승리한 정읍 황토현 전적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는 황토현이라는 나지막한 고개가 있다. 1894년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한 동학농민군들이 전라감영군과 맞서 싸운 곳이다. 전라감영군과 접전을 벌이던 동학농민군은 거짓 패한 척하며 황토현에 진을 쳤고, 뒤따라와 황토현 인근에 진을 친 전라감영군을 기습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군은 호남지방을 석권하게 되고 동학농민운동도 확대되었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정읍 황토현 전적은 1981년 사적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논산시

    동학농민군의 피로 물들었던 충남 논산의 황화산성
    충청남도 논산시 강화동과 등화동 경계에 있는 황화산에 황화산성이 있다. 황화산성은 백제 때 만들어진 토성으로 당시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한 거점이었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 봉수대로 이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현재는 이곳에서 매년 ‘황화산성 봉화제’가 개최되어 마을주민의 화합과 논산시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 경남 >하동군

    동학농민군의 항일전쟁 유적지인 경남 하동의 고성산성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의 고성산에 고성산성이 있다. 고성산성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동학혁명 때 진주를 중심으로 모여든 경남 서부지역의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1995년 고성산성에 동학농민군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학혁명위령탑이 건립되었고, 이 위령탑에서 매년 11월 11일 11시가 되면 동학혁명군 위령제가 열린다.
  • 충남 >공주시

    동학의 우금치 전투를 기리는 공주 우금치전적 동학혁명군 위령탑
    공주 우금치 전적 동학혁명군위렵탑은 충청남도 공주 금학동에 위치하고 있고 사적387호로 지정됐다. 전봉준은 일본의 만행을 두고보지 못해 2차 봉기를 일으켰고, 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죽검으로 대항한 농민들은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에게 전멸당했다. 1973년 동학혁명군 위령탑 건립위원회에서 동학혁명군 전적비를 세웠고, 동학농민혁명 100년이 지난 1994년에야 우금치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 전북 >부안군

    동학군의 근거지였던 백산성
    백산성은 사적 제409호로 고부와 부안으로 갈라지는 백산면 용계리 해발 47.4m의 낮은 산 위에 있다. 이 성은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백제가 멸망한 후 백제부흥군이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맞아 왕으로 세우고 최후 항쟁을 하였던 곳이다. 또한 백산성은 1894년 갑오동학농민항쟁 때 동학군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산성이기도 하다. 이 성은 토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백산 정상부를 감싸고 축조되어 있다.

뚜벅뚜벅 역사를 거닐는 옛길

길을 걷다 보면 다양한 풍경들이 자연스레 눈에 담기게 되고 심란했던 마음이나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하루쯤은 정처 없이 걷는 것도 좋지만 역사의 한 페이지를 담고 있는 옛길을 뚜벅뚜벅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옛 조상님들이 걸으며 보았던 풍경과 사뭇 다를 순 있지만 가는 길목 길목에 남겨진 역사의 산물이 옛길의 흔적을 보여준답니다. 지금부터 편안한 마음으로 걸어볼 수 있는 옛길을 알아볼까요? 조선과 중국을 오가는 상인과 사신들이 이용했던 의주길은 의주대로를 바탕으로 한 역사문화탐방로로 화석정, 벽제관지,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등의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어 길에 담긴 역사를 알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평해길은 강원도와 한양을 연결해주던길로 들판과 산, 한강 수변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며 정약용유적지, 망우묘역 등을 탐방해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강진과 영암을 잇는 삼남대로의 중요한 고갯길 누릿재는 최익현, 송시열,김정희 등 많은 문사들의 방문기록이 있는 역사적가치가 큰 옛길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남긴 흔적뿐만이 아니라 오랜시간 축적되어온 문화, 역사 등을 담고 있는 옛길을 가족, 친구들과 함께 나란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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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보은군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고 넘던 말티재길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관문이라 불리는 말티재는 신라 진흥왕 때에 법주사를 세우기 위해 의신조사가 넘어간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넘었던 옛길이다. 말티재는 사람을 가마가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험하고 힘든 구간이었다. 사람이 가마에서 내린 후 말에 옮겨 탔다는 고개일 정도로 사람들의 통행도 어려웠던 길이다. 신작로가 만들어지고 법주사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속리산으로 진입하는 주요한 입구 역할을 했다. 지금은 말티재 옛길의 북쪽에 속리터널이 개통되면서 자동차의 통행량도 많이 감소했다. 말티재를 넘어가면 임금이 벼슬을 하사한 정이품송 소나무가 있다.
  •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 서울 >관악구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통하는 관문 남태령 옛길
    남태령은 서울특별시 관악구와 경기도 과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고개이다. 지금은 남태령에 넓은 대로가 개통되어 자동차의 통행이 빈번한 도로가 통과한다. 일제강점기 신작로가 개설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그마한 산길을 넘어 한양과 지방을 오가던 사람들이 이동했다. 과거 남태령 구간에는 도적이 많아 50명 이상의 행인이 모인 다음 관군의 호송을 받아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삼남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남태령을 넘어 서을특별시의 사당동, 동작동을 지나 노량진의 노량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 한양으로 이동했다.
  • 경기 >과천시

    한양으로 들어가는 한양관문길
    조선시대에 한양에서 남부지방으로 향하던 대로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로 이어지던 삼남로이다. 삼남대로라 불리기도 하던 이 길은 조선시대 육상교통의 중심축이었으며, 근래에 경기도 삼남길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명되고 있다. 경기도 삼남길의 첫 번째 구간이 한양관문길이다.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의 경계를 형성하는 남태령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온온사, 과천향교, 가자우물(찬우물) 등을 거쳐 경기도 안양시의 인덕원에 이르는 구간이 한양관문길에 포함된다.
  • 충북 >충주시

    백두대간을 최초로 넘었던 하늘재 옛길
    하늘재 옛길은 경상북도 문경시와 충청북도 충주시를 잇는 해발 520m의 고갯길로, 백두대간을 넘는 여러 고갯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갯길이다. 하늘재는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으며, 국방상으로도 중요한 요충지였다. 하늘재 옛길은 삼국시대 한반도에 전래된 불교가 신라로 이동하던 통로이며, 주변에서 생산된 물자의 교역이 이루어지던 남북 무역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 경북 >영주시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죽령 옛길
    죽령 옛길은 경상북도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을 연결하던 옛길이다. 현재 죽령을 통과하는 길 가운데 영주시의 희방사역에서 고갯마루의 죽령 주막에 이르는 구간이 죽령 옛길로 남아 있다. 자동차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죽령 옛길은 경상도와 충청도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 기능을 담당했다.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 다양한 물건을 짊어지고 나르던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었다. 죽령 옛길이 매우 경사가 심한 구간에 자리했으므로 새로운 도로나 철도가 개통될 때에 죽령 옛길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 강원 >양양군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의 물자가 오가던 구룡령 옛길
    구룡령은 강원도의 양양군 서면과 홍천군 내면을 연결하는 고개로, 옛길은 산세가 부드러워 옛날부터 영동지방 사람들이 내륙으로 갈 때 많이 이용하던 길이다.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은 물론, 지게꾼과 가마꾼도 구룡령 옛길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일제는 동해안의 물자를 빼앗아 가고자 1908년 새 도로를 개통하면서 신작로가 구룡령 옛길과 노선을 중복하지 않아 구룡령 옛길의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조선 시대와 근현대의 자취를 모두 간직하고 있는 구룡령 옛길은 역사・문화와 자연경관의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 경기 >의정부시

    정조가 광릉을 참배할 때 통과하던 축석령길
    경기도 의정부시와 포천시의 경계에 있는 축석령은 오래전부터 한양에서 강원도 철원을 지나 함경도로 이어지던 조선시대의 간선로에 포함된 구간이다. 금강산을 유람하는 사람, 변방으로 귀양 가는 사람들이 넘던 고갯길이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은 남양주시에 있는 광릉을 참배하러 다니던 능행길에 축석령을 통과하기도 했다. 한양으로 진입하는 관문이었던 까닭에 동학혁명 때에는 일본군과 의병 사이의 전투가 있었고, 6·25전쟁 때에는 한국군과 적군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 곳이 축석령이다.
  • 경기 >광주시

    경기도 광주 경안역을 중심으로 연결된 경안도(慶安道)
    경안도는 조선 시대 경기도 광주에 있던 경안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로이며, 경안역은 1457년 종6품인 찰방으로 승격되었다. 이 역로는 한양에서 지금의 경기 동남부에 해당하는 광주-이천-여주-충주 방향으로 이어지던 역로와 이천-음죽 방향으로 이어지던 역로를 관할하였다. 중심이 되는 경안역을 비롯하여 광주의 덕풍역, 여주의 양화역·신진역·안평역, 이천의 아천역·오천역, 음죽의 유춘역 등 7개 역이 포함되었다. 경안도는 경상도의 동부인 경상좌도 및 일본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는 물건의 수송로상에 있던 역들을 담당하였다. 또한 왕이 한양에서 출발하여 여주의 왕릉으로 향하던 능행로의 구간에도 포함되었다.
  • 경기 >과천시

    이야기가 있는 과천 남태령 옛길 따라 도보산책
    남태령에는 17세기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있는 여우고개 이야기와 정조 대왕 능행차시 남태령으로 지명이 바뀌게 된 사연 등 많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현재 남태령 도로 옆에 조성되어 있는 남태령 옛길은 한양에서부터 삼남(경상, 전라, 충청)으로 통하는 대로였으며, 역사적으로는 정조 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모신 현륭원으로 행차하실 때 지나셨던 효행의 길로써 유서가 깊은 길이다. 남태령 옛길 따라 과천방향으로 산책을 하면서 평소 모르고 지나쳤던 숨어있는 우리 조상들의 정신과 얼이 담겨져 있는 문화유적지들을 탐방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