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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3.1절,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다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천안의 독립운동 터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타골공원 '팔각정'. 철원 지역의 3.1운동에 앞장선 철원 제일 교회. 1919년 학생들의 3.1만세운동 적극적인 참여로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던 전주 신흥학교. 모두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반면, 구 나주 경찰서와 같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을 고문의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3.1운절을 맞아 일제탄압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역사를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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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목포시

    댕기머리 소녀들의 야무진 만세 함성,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목포 정명여학교는 1903년 미 남장로교의 선교에 일환으로 세워진 학교다.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명여학교는 1919년과 1921년 만세 시위를 벌인 학교로 유명하다. 댕기머리 소녀들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명여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 당했다가 1947년에야 재개교했다. 선교사 사택은 1905~1910년 사이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목포 산지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2채다. 현재 정명여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쓰이는 사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을 지킨 진묘수, 무령왕릉 석수
    1971년 7월 발굴된 무령왕릉은 무덤의 주인이 명확한 백제왕실의 무덤으로 6세기 전반에 축조되었다. 무령왕릉의 널길에서는 무덤의 주인을 알리는 지석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진묘수인 무령왕릉 석수가 발견되었다. 무덤에 진묘수를 매장하는 풍습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데, 무령왕릉의 석수는 그 형태와 기능이 중국 남조의 것과 유사하다. 무령왕릉 석수는 악귀를 쫓아내고 사자(死者)를 수호하며, 무령왕과 왕비의 영혼을 안내하는 역할로서 제작되었다.
  •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조선 시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다.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 본관과 강당은 미국의 리차드슨 부인이 거금을 기부해 건립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아쉽게도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다행히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유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경북 >안동시

    가장 오래된 종가 음식 조리서, 경북 안동 수운잡방
    경상북도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에는 수운잡방이라는 음식 조리서가 소장되어 있다. 김유와 김령이 지은 한 권 분량의 책으로 술, 국수, 김치, 과자 등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법이 기록되어 있다. 일반인이 저술한 최초의 음식 관련 서적으로 조선 전기 경상북도 안동시의 식생활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운잡방에 관한 관심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수운잡방연구원에 방문하면 음식을 조리하고 맛보는 체험도 할 수 있다.
  • 경북 >영천시

    형은 나발 아우는 피리- 우애 깊은, 영천 옥간정
    영천 옥간정은 학식이 높고 우애가 돈독한 정만양과 정규양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716년 조성한 정자이다. 중국의 무이구곡과 같이 아름다운 횡계구곡 가운데 바로 4곡에 해당되는 곳에 옥간정이 지어졌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정자 이름이 ‘옥같이 빛나는 시냇가 정자’라는 의미이다. 옥간정은 이층의 누마루와 단층의 건물이 하나로 붙어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 경남 >고성군

    경남 고성의 첫 3⋅1 독립만세운동터 100주년 기념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물결처럼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3월 20일, 고성에서도 맨 처음으로 구만면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이웃 배둔 장터까지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고성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00주년을 맞아 구만면 국내다리 터에 기념탑을 세우고 “비를 세우며”란 시를 새겨 놓았다.

[경기 고양]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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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행주치마가 지킨 행주산성
    1592년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곳으로 해발 124.9m의 덕양산에 흙을 이용하여 쌓은 포곡식 토석혼축 산성이다. 산 정상부를 에워싼 소규모 내성과 북서쪽으로 전개된 작은 골짜기를 둘러싼 2중구조를 가지고 있다.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으로는 창릉천이 산성을 에워싸고 돌아, 자연적으로 성을 방어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지역은 삼국시대 초기에 백제의 땅이었으며, 서해안과 연결된 수로의 거점지역으로 남북 교통의 요충지대이다.
  • 경기 >고양시

    일산의 허브, 일산문화공원(구 미관광장)
    1996년, 2차 신도시 개발로 일산호수공원과 정발산역을 이어주던 거리를 제5호 미관광장으로 불렀는데, 2004년 일산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일산문화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산문화광장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광장에는 일산 신도시 건설기념탑, 평화의 소녀상, 고양 독립운동 기념탑 등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호수 공원과 쇼핑몰이 인근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유동인구가 많아 각종 지역축제 및 정기적인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 경기 >고양시

    박재궁 마을의 유래를 찾아서
    박재궁 묘역은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 박재궁 마을에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성되어 광해군 때까지 300년 간 53위의 묘소와 11위의 제단을 모슨 밀양 박씨 가문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이 곳에 묻힌 사람 중 박충원과 박심문은 단종에 대한 충절로 유명한 위인이다. 현재 박재궁 마을은 화려한 묘역과 주택가가 섞여 있다.
  • 경기 >고양시

    고려 공양왕이 마셨다는 샘물, 대궐고개 약수터
    대궐고개 약수터는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에 있는 약수터로, 근처의 공양왕릉, 식사동, 배다리 누리길 등의 장소와 함께 옛 이야기로 엮인 곳이다. 고려말기 이성계의 먼 친척이라는 이유로 예기치 않게 왕이 된 공양왕은 삼척에 유배되어 있다가 탈출하여 최영 장군의 묘가 있는 고양시까지 오게 되는데, 그때 피신했던 고개를 대궐고개, 그때 마셨던 샘물이 대궐고개 약수터 샘물이라고 한다.
  • 경기 >고양시

    46년만에 찾은 평화, 행주산성 역사공원
    1970년대 초 무장공비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군 철책 중 가장 먼저 철거된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 행주산성 역사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를 토대로 재현된 행주마을의 옛 모습이 있고, 살구나무와 자생식물이 있는 생태광장이 있다. 과거 군 초소를 보수하여 만든 한강 전망대에서는, 적군의 침투를 감시하는 대신 한강의 철새들과 일몰, 야경의 아름다움을 평화롭게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행주산성과 행주서원, 행주성당 등 역사적인 장소와 연계해 교육공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경기 >고양시

    추억여행을 떠나는 곳, 원릉역
    원릉역은‘원당’과 ‘서삼릉’의 한 글자씩을 합쳐 만든 역명으로, 1961년 세워진 오래된 기차역이다. 고양시와 서울을 잇는 교외선의 주요 역으로서 한때는 하루 수천 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곳이었고,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역장님이 계셨던 곳이기도 하다. 2011년에는 영화 [파수꾼]의 촬영장소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여객영업이 완전히 중단된 뒤 역사의 출입과 횡단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된 철책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을 겪기도 했지만, 2014년 지하보도가 만들어지면서 불편이 해소되고, 지금은 주민들의 산책과 운동 코스로 애용되고 있다.
  • 경기 >고양시

    주민 참여 도서관이 있는 마상근린공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위치한 마상근린공원은 보통의 근린공원이 그러하듯 각종 체육시설과 휴게시설,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는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다른 근린공원과 달리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배다리 누리길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점과 주민참여예산으로 건립된 최초의 공립 작은 도서관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다. 야외무대와 작은 도서관에서 소박하지만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마상공원은, 주민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경기 >고양시

    구 역사(驛舍) 일산역. 사람의 길이 열린다
    고양일산역(高陽日山驛)은 2006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국가 등록문화재 제294호 지정되어 한국철도공사에서 관리·보호되는 장소이다. 1933년에 지어진 것으로 ―자형 평면 구조에 십자형 박공지붕(배 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을 얹었다. 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 경의선의 중심역이며 경의선 역사 중 유일하게 남겨진 곳으로 일제강점기 철도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 충남 >천안시

    미술관을 품은 시장인 성환이화시장
    '성환장'은 천안시 북부 지역에 위치한 성환읍에서 열리는 오일장이며, 매월 1일과 6일에 장이 서는 정기시장이다. 현재는 '성환이화시장'으로 불리며, 미술관을 품은 예술시장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행사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시장이다.
  • 경기 >고양시

    한옥과 성당이 만나다, 고양 행주성당
    1910년 지어진 경기도 고양시 행주외동 행주 성당은 한옥 성당의 멋과 향기를 간직하여 전해주는 근대유산이다. 전통 한옥의 정취와 성당의 종교적 경건함을 동시에 살려낸 건축물로서, 건축사적 가치가 높다. 한국전쟁 시기에 격전지였던 행주외리 마을은 큰 피해를 보았으나, 언덕 위 목조 행주 성당은 건재했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충청도 근대문화역사를 읽다.

충청도 지역에는 어떤 근대문화 역사유산이 남아있을까? 건축 유산에 남아있는 근대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 사람들의 일상과 흔적을 느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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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부여군

    “껍데기는 가라!”, 부여 신동엽 가옥 터
    부여 신동엽 가옥 터는 ‘껍데기는 가라’라는 시로 유명한 신동엽 시인이 유년기부터 신접살림 시절까지 살았던 집의 터이다. 신동엽은 고통 받는 민중의 저항의식을 아름다운 시어로 승화시킨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다. 1930년 부여에서 태어난 시인은 한국전쟁과 4·19혁명 등 격동의 역사를 겪으며 민족과 민중의 아픔을 시로 형상화했다. 간암으로 39세에 요절했지만 그의 시는 한국인의 정신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런 탓에 신동엽 가옥 터에 세워진 기념관과 문학관에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충북 >제천시

    담배 연기는 시름을 싣고…, 제천 엽연초 생산조합 구 사옥
    충청북도 제천은 담배 경작에 적합한 농지가 많아 일찍부터 재배 농가가 증가했다. 제천 엽연초경작조합은 1918년 설립되었다. 조합의 사옥이 지어진 것은 1935년이다. 조합 사옥은 실용성 위주로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주 출입구 부분을 돌출시키고, 아치형 벽체를 세워 출입구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강조했다. 제천은 해방 후에도 국내 최대 황색종 엽연초 생산지로 부상했다. 힘이 많이 들지만 환금성이 높은 황금작목으로 꼽히던 담배는 1980년대부터 쇠퇴했다. 제천 조합 구 사옥은 근대 담배 산업의 어제를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 충북 >괴산군

    교육 열망이 낳은 “돌집”, 괴산중학교 구 본관
    해방 후 분출된 충청북도 괴산군민들의 교육 열망은 괴산중학교 설립으로 나타났다. 1946년 인가를 받은 괴산중학교는 이듬해인 1947년 당대 최고의 석조 건축 회사인 서울중앙산업에 학교 건축을 맡겼다. 석재는 괴산과 음성 경계 지점의 치마바위를 깨뜨려 운반했다. 석재를 다듬기 위해 석공 20명이 3년간 인근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괴산중학교 1호관은 1949년에, 잇달아 지어진 2호관은 1951년에 준공됐다. 괴산중학교 구 본관은 공사에만 4년여 세월과 정성이 들어간 건축물이다. 충청북도 내에서 석조 교사는 괴산중학교 구 본관이 유일하다.
  • 충북 >진천군

    성공회의 사회선교와 토착화 원칙, 대한성공회 충북 진천성당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은 충청북도 진천을 중부 내륙 선교기지로 삼고, 1908년 진천성당을 설립했다. 성공회의 토착화 원칙에 따라 세운 한옥 성당이 1920년 소실되자 1923년 현재의 성당을 다시 건립하였다. 진천성당의 한옥 성당은 2002년 현재의 위치로 해체 복원되었다. 한옥 성당은 전통적인 한국의 사찰건축을 기본으로 서양 성당의 요소를 접목한 근대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성공회 선교사들은 진천성당과 함께 애인병원을 설치하였고 이어 신명 학교를 열었다. 애인병원은 입원실과 수술실을 갖춘 데다 노인산 의사 부부의 헌신으로 먼 곳의 환자들까지 찾아오는 병원으로 이름이 높았다.
  • 충북 >청주시

    선비의 정신을 갖춘 상업 인재를, 청주 대성고등학교 본관
    청주상업학교는 1930년대 청주 지역 학부모들의 염원과 청주 유지들의 노력으로 세워졌다. 특히 청암 김원근과 석정 김영근 형제가 거금을 내놓아 학교 설립이 결실을 보았다. 붉은 벽돌 2층으로 지어진 학교 본관은 상업 인재 양성의 요람이 되었다. 해방 후 청주상업 고등학교가 되었으나 시대의 추세에 따라 2002년 인문계로 전환해 청주 대성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었다. 우암산 자락 인가 드문 뽕나무밭에 들어선 학교는 해방 후 청주대학교를 비롯해 학교 건물들이 잇따라 지어지고, 청주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현재는 번화한 거리로 변했다.
  • 대전 >동구

    한밭 경제를 떠받친 ‘민족계 은행’, 구 조흥은행 대전지점
    조흥은행은 ‘민족계 은행’인 대한제국 시기 한성은행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은 여러 은행을 합병하여 1931년 동일은행이 되었고, 동일은행은 1943년 호남은행과 합쳐 조흥은행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조흥은행 대전지점은 한국전쟁 시기에 불에 타 사라졌고, 1951년 지점 영업을 재개했다. 조흥은행 대전지점 건물은 1951년 지어졌으나, 1957년 대대적으로 증축되었다. 조흥은행 대전지점은 상업의 비중이 높은 대전의 중심 상권이었던 대전 중앙시장의 입구에서 상업금융기관으로서 한밭의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 역할을 수행했다. 조흥은행이 2006년 신한은행에 흡수 합병되면서 구 조흥은행 대전지점은 신한은행 대전역 금융센터로 변모했다.
  • 경기 >수원시

    일제강점기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사회운동가, 나혜석
    나혜석은 일제강점기 신여성으로 민족자결권을 향한 독립운동에 헌신했으며, 조선에 서양화를 도입한 최초의 전업 화가. 장편 소설과 시 작품으로 문단에서도 크게 활약한 전방위적 작가이다. 시대를 앞선 각성으로 봉건주의와 남존여비의 악습 타파를 주장하며 여성운동의 선봉에서 당시 사회로부터 지탄과 경탄을 함께 감당했던 한국 페미니스트의 원조이기도 하다.
  • 전남 >목포시

    기름의 대량생산, 식용유
    한국에서 전통적인 식용기름은 참기름과 들기름이었다. 한국음식에는 튀김요리가 많지 않아 들기름과 참기름은 일제강점기에도 공급량이 충분했다. 일제강점기 면실유와 대두유가 대규모로 생산되었다. 면실유는 면화의 씨로 만드는 기름인데 목포의 일화제유(日華製油)라는 회사가 면화생산이 증가하면서 면실유를 제조하였다. 대두유는 1930년대 만주의 콩을 조선의 청진 콩기름 공장으로 들여와 대량 생산하였다. 청진 콩기름 공장은 1933년 가을 일본의 삼정물산이 방계회사인 북조선 제유회사를 청진에 설립한 것이다.
  • 충북 >진천군

    탁배기 한 잔이 건네는 위로, 진천 덕산양조장
    덕산양조장 건물은 1930년 지어졌다. 백두산에서 목재를 가져올 만큼 정성을 기울인 건축물이다. 양조 과정을 좌우하는 적정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왕겨를 채워 넣은 두꺼운 벽체를 세웠고, 천장 판자 위에도 왕겨를 채웠다. 자연스러운 환기가 되도록 통풍 구조를 만들고, 양조장 앞 화단에는 측백나무를 여러 그루 심었다. 덕산양조장은 한국전쟁 시기 소실의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고, 막걸리가 사양길에 접어들었던 시기에는 10년간 문을 닫기도 했다. 하지만 깔끔하고 묵직한 술맛을 잃지 않으면서, 여전히 서민들에게 한 잔의 위로를 건네는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다.
  • 충남 >논산시

    생명연장의 꿈이 붐비던 곳,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건물은 1923년 지어졌다. 1926년부터는 연수당이라는 간판으로 건재 한약방이 운영되었다. 연수당은 병이 난 사람들, 보약을 지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강경의 대표적 한약방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때 남일당이 이름을 바꾼 한약방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으나, 남일당은 인근에서 성업했다가 사라진 다른 한약방이다. 연수당 건재 한약방은 전통의약 시대 보통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준 상징적 공간이다.

[랜선여행] 봄꽃 축제 같이 갈래요?

매년 봄, 전국에서는 봄을 맞이하는 다양한 꽃 축제가 개최됩니다. 코로나19로 직접 갈 수 없는 아쉬움은 잠시 뒤로하고, 온라인 봄꽃 축제 나들이 함께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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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부안군

    부안군 위도띠뱃놀이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마을에서 행해지는 위도띠뱃놀이는 정월 초사흘에 행해진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82-3호로 지정된 제의로 서해안 지역을 대표하는 마을 제의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집 안에는 원당 마누라와 본당 마누라를 비롯해 여러 신이 모셔져 있는데 제의의 핵심이 되는 신은 이 두 신위이다. 제물은 흑돼지를 비롯해 과일과 여러 종류의 생선이다. 위도띠뱃놀이의 순서는 원당제-띠배제작-주산 돌기-용왕굿-띠배 띄우기-대동 마당(뒤풀이)이다. 원당제는 성주굿을 시작으로 산신 굿-손님굿-지신 굿-서낭굿-깃굿-문지기 굿으로 진행된다. 당일에 만들어 놓은 띠배 앞에서 무녀를 중심으로 한 용왕굿이 진행된다. 용왕굿은 바다의 용왕님을 위한 의식이다. 용왕굿에 이어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한 용왕밥 주기 행사가 펼쳐진다. 이 과정이 끝나면 제작한 띠배를 바다에 띄운다. 띠배를 끌고 갔던 모선이 돌아오면 마을 해변에서 뒤풀이가 행해진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주민이 모여 놀이판을 벌인다. 
  • 울산 >중구

    울산 태화강의 6천만송이 봄꽃과 함께하는 생태축제 '태화강 봄꽃대향연'
    울산광역시에 있는 태화강은 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수질이 6등급까지 떨어져 한때 죽음의 강으로 불렸다. 울산광역시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약 10년 전부터 봄에는 황어, 가을에는 연어가 돌아오는 생명의 강이 되었다. 2019년 7월에는 순천만에 이어 전국에서 두번째 국가정원으로 지정되었다. 태화강봄꽃대향연은 울산 태화강의 6천만송이 봄꽃과 십리대숲이 함께하는 생태문화예술축제이다.
  • 경남 >거창군

    신라와 백제의 치열한 전적지 거열성
    거열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22호로 거창읍의 서북쪽 3km 정도 떨어져 있는 해발 572m의 건흥산에 있는 산성이다. 거열성이 축성된 정확한 연대는 확인되지 않으나 주변의 다른 성들과 함께 백제와 신라의 치열한 접전이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열성은 건흥산의 정상부 조금 아래쪽에 정상부를 둘러싸고 축성된 테뫼식 산성으로 성의 길이는 1115m이다.
  • 서울 >강동구

    베트남 참전자들이 만든 에너지생태마을, 십자성마을
    베트남 종전 후 부상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이 파월전상자 자립회를 만들고 기금을 마련하여 1974년 천호동에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후 십자성마을은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에 동참하여 2012년부터 에너지 자립마을로 변신했다. 주택 태양광을 설치, 환경운동과 에너지절감을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 서울 >성동구

    봄이 가장 먼저 오는 응봉산개나리축제
    응봉산개나리축제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응봉동에 있는 응봉산에서 열리는 개나리를 주제로 한 지역축제이다. 응봉산은 매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1980년대 도시 개발로 산이 깍여 본래의 모양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개발로 인해 산자락 모래흙이 흘러내리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개나리를 심기 시작했고, 지금은 약 20만 그루의 개나리가 심어져 응봉산은 개나리 동산이 되었다. 응봉산개나리축제에선 어린이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 대회가 열리고 음악회, 먹거리 장터, 페이스 페인팅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제주 >제주시

    제주 자생종 왕벚꽃의 향연, 제주왕벚꽃축제
    제주왕벚꽃축제는 1992년부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시민복지타운 일대에서 개최되는 왕벚꽃 축제이다. 제주 왕벚꽃은 한 때 일본의 국화로 오인되었으나 해외 박사들과 국내 학자들의 연구 끝에 국내 자생종이며 일본과는 상관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제주왕벚꽃축제는 제주 자생종 왕벚나무가 제주 고유 나무임을 알리고 벚꽃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개최된다.
  •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근처의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창간된 최초의 순우리말 잡지이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성벽 외곽에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잡지를 비롯해 발행인 한창기 선생이 모은 6500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전시실들이 있고, 야외전시실에는 거문고 명인 김무규 선생의 고택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 전남 >광양시

    청매실농원에서 시작된 광양매화축제
    광양매화축제는 1997년부터 시작된 매화꽃 축제이다. 매년 3월에 개최되는 광양매화축제의 발단은 1995년 청매실 농원이 주관한 청매실 농원 매화축제였다. 50여년 전 광양 다압면으로 시집온 홍쌍리 여사가 황무지 야산에 매화나무를 심고 매실농사를 지어 매화마을을 만들었다. 광양매화축제는 최근 대한민국 빅데이터 축제대상을 받았는데, 원거리에서 오는 방문객의 증가율이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광양매화축제 기간에 이 지역을 다녀간 관광객이 134만명으로 집계되었다.
  • 서울 >영등포구

    우리나라의 대표적 벚꽃축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서로에서 2005년부터 시작된 봄꽃축제이다. 여의도 벚꽃은 창경궁에 일본인들이 심었던 것을 1980년대에 옮겨와 심은 것이다. 이런 일제 식민지화의 기억 때문에 '벚꽃축제'였던 명칭은 2007년 '봄꽃축제'로 개칭되었다. 영등포 여의도 봄꽃축제는 진해 군항제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봄꽃축제이다.
  • 서울 >동대문구

    회기 동네 산책로가 있는 배봉산
    배봉산은 동대문구 휘경2동에 있는 해발고도 106.03m의 나지막한 산이다. 배봉산을 둘러싸고 삼육의료원, 휘경여자고등학교, 배봉초등학교 등이 있다. 배봉산 내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유아숲체험장, 근린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어 동네 사람들의 산책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경남 진주]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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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진주시

    관군과 백성이 함께 싸운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의 진주 창열사
    진주의 창열사는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진주성은 부산포와 한양을 잇는 일본군의 보급로였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요충지였기에 진주성 함락은 왜군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김시민의 리더십으로 왜군을 물리쳤지만 2차 진주성전투는 패전하였다. 하지만 진주성전투로 세력이 약해진 왜군이 호남 진출을 포기하게 했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의병들이 관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전투지가 되었다.
  • 경남 >진주시

    남강에 유유히 떠있는 아름다운 등의 향연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 남강의 유등놀이는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비롯된 것이다. 1592년 10월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명의 왜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에서 유등은 군사신호와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우기도 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의 특별 행사로 운영되던 유등놀이를 2000년에 별도의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 경남 >진주시

    봉황이 내려앉았다가 쫓겨가버린 진주 봉강리
    어느 마을에 봉황 한 마리가 날아와 둥지를 틀고 알을 낳으려고 했다. 마침 지나가던 노파가 그것을 보고는 고함을 질러 봉황을 쫓아내 버렸다. 봉황은 둥지를 버리고 진주 쪽으로 날아갔다. 상봉동에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알을 낳았다. 봉황이 알을 낳은 자리를 마을 사람들은 ‘봉알자리’라고 불렀다. 한편, 뒤늦게 봉황을 쫓아내버린 사실을 알게 된 이전 마을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봉이 내려와 앉았다 갔다 하여 ‘봉강’이라고 마을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나는 망경동에 간다.
    경상남도 진주의 오래된 골목길이 남아있는 망경동은 2020년 진주시 도시재생사업의 대상지로 선정되어 문화거리로 변모하고 있다. 진주시는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해 타격을 받은 문화예술가들의 활동 영역을 넓히고, 지친 시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소규모 문화예술행사를 망경동에서 진행하기도 하였다. 망경동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는 1982년 지어져 목욕탕으로 사용되다가 2014년 갤러리, 카페, 게스트하우스 등이 있는 건물로 리모델링한‘진주문화공간 루시다’가 있다.
  • 경남 >진주시

    진주 상인들의 자존심 -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은 경상남도 진주시의 근현대사를 살펴보기 좋은 코스다.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은 진주시 창렬로 비봉루에서 시작해서 수정봉 밑 옥봉성당~진주 상무사~진주 중앙시장~배영초등학교 구 본관~진주초등학교 강당~진주성을 돌아보도록 하는 길이다. 진주 중앙시장 체험 길은 진주 부자 정상진이 자신의 선조와 인연이 있는 비봉산에 세운 비봉루와 한국 차 문화의 부흥에서 시작해서 경상남도 천주교회사, 조선 시대까지 ‘북 평양, 남 진주’라 불리었던 진주가 식민지 근대를 맞아 어떤 경로를 걸어왔는지 깊이 살펴볼 수 있게 해 준다.
  • 경기 >구리시

    고려의 전통을 이으며 조선의 권위를 세운 태조 건원릉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묘인 건원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내에 위치한다. 전체적인 형태는 고려 공민왕의 능인 현릉과 유사하나, 고려시대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곡장(曲墻)이 봉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봉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있고, 병풍석 위에는 12지신이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교대로 2쌍씩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앞쪽에는 혼유석(魂遊石), 고석(鼓石)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이 있다. 태조는 죽어서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하였으나, 태종은 아버지의 묘를 가까이에 두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싶어 했다. 때문에 태조의 건원릉은 현재의 위치에 조성되었고, 태조의 유언도 지키고자 함흥의 억새와 흙을 공수해 와서 단장하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국내 최초 예술제이자 진주 남강 유등축제와 함께하는 ‘개천예술제’
    경상남도 진주시의 예총진주지부는 1949년에 정부수립과 실질적인 독립 1주년을 기리고, 예술문화의 발전을 위해 영남예술제를 개최했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제였다. 영남예술제는 1959년 개천예술제로 개명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김시민 목사가 이끈 진주대첩을 소재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공연이 열리며, 진주시민들은 가장행렬과 경연대회 등에 참가하여 축제를 즐긴다. 예술제 기간 동안 진주 남강에서는 유등축제가 열리며, 진주대첩과 진주목사 부임행차를 재현하는는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 경남 >진주시

    차기 도읍지로 스스로 걸어가던 진주 대천리 입석
    진주 대천리 입석은 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에 세워져 있다. 진주 대천리 입석은 대천리 논 가운데에 암수 짝을 이뤄 세워져 있는데, 경지 정리를 하면서도 이 입석은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대천리 마을에서는 진주 대천리 입석을 ‘각시바위’, ‘신랑바위’라고 부르고 있으며, 입석이 세워져 있는 위치로 보면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제사의 대상으로 추측되고 있다.
  • 경남 >진주시

    임란 의병과 '논개'가 떠오르는 , 진주 촉석루
    진주 촉석루(矗石樓)는 우리나라 3대 누각이다. 진주 촉석루하면 먼저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논개’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전투의 하나인 진주대첩의 장소이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에서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서 진주하면 ‘ 임진왜란 – 촉석루 – 논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촉석루를 노래했던 문인들의 감흥도 임진왜란 전후가 크게 달라진다.
  • 경남 >진주시

    한옥 성당과 고딕 성당이 나란히, 진주 문산성당
    경상남도 진주의 문산 성당은 1920년대에 지어진 한옥 성당과 1930년대에 건축된 고딕 성당을 나란히 가지고 있는 성당이다. 문산 성당의 터는 조선 시대 문산 찰방의 관서가 있었던 자리다. 한옥 성당은 경상남도 고성의 옛 사찰을 옮겨다 지었다는 설이 있다. 굵은 기둥 13개와 들보로 서양 성당의 내부 공간을 한국식으로 재현했다. 신도가 증가함에 따라 지어진 고딕 성당은 정통적인 고딕 성당과는 다른 구성이지만, 서양의 고딕 부활 양식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북 문경]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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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문경시

    솔잎향 그윽해 신선들이 탐낸다는 술, 호산춘
    경상북도 문경의 장수 황씨 사정공파 종갓집에서는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술이 있다. 바로 호산춘(湖山春)이다. 호산춘은 신선들이 탐낼만한 술이라 하여 호선주(好仙酒)라고도 불렸다. 호산춘(湖山春)은 옅은 노란색을 띠며, 첨가된 솔잎으로 향기가 그윽하고, 부드러운 맛과 짜릿한 느낌이 특징이다. 알코올 도수는 약 18정도로 높지만 건강주로 유명하다. 손으로 만졌을 때 살짝 끈적거릴 정도 진한 술인 문경 호산춘은 1990년 관광 토속주로 지정되었고, 그로부터 1년 뒤 경상북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 18호로 지정된 전통주이다.
  • 경북 >문경시

    탁배기 한잔에 목구멍 탄가루 씻고 – 문경 가은양조장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가은양조장은 은성무연탄광 개발이 시작되던 1938년 12월에 영업을 시작했다. 은성무연탄광은 1994년 폐광될 때까지 은성탄광이라는 이름으로 석탄을 채굴했다. 가은양조장은 탄광촌이 형성되고 가은읍에 50여 개로 늘어난 술집에 막걸리를 공급했다. 탄부들은 8시간 동안 막장에 들어가 일하면서 쌓인 피로와 탄가루 먼지를 가은양조장에서 빚은 막걸리로 씻어냈다. 가은양조장은 1970년대 중반 가장 번창할 때 하루 1만 리터의 막걸리를 팔았다고 한다. 은성탄광은 1994년 폐광되었다. 막걸리 소비가 소주와 맥주에 밀려 점차 줄어든 데다가, 은성탄광 폐광으로 가은양조장도 2010년 결국 문을 닫았다. 1930년대에 지어진 가은양조장 사무실과 공장 건물은 당시 양조장의 구조를 잘 보여주며, 예전 서류 등이 보관돼 있어 역사적 가치가 있다. 가은양조장은 2017년 등록문화재 제706호로 지정되어, 국내 양조장 가운데 세 번째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 경북 >문경시

    “지역 농가의 오미자로 만든 자연 스파클링 와인과 증류주”
    오미자(五味子)는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매운맛의 5가지 맛이 난다고 하여 오미자라고 부른다. 오미자의 신맛이 기침을 줄이고 폐를 건강하게 하며 유기산이 많아 피로 해소에도 좋다. 우리나라에선 주로 한약재로 이용되었는데, 2000년대부터 과일로 인식되어 산업화하기 시작했다. 문경은 2006년 오미자 산업 특구로 지정되었다. 전국 오미자 생산량의 대부분을 문경에서 생산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 조선시대 문헌에도 오미자를 문경의 토산물(특산물)로 기록하고 있다. 문경에서 국내 최초의 오미자 와인인 ‘오미로제’와 증류주 ‘고운달’이 탄생했다.
  • 경북 >문경시

    아홉 처녀와 결혼해서 아홉 아들을 낳은 문경 구랑리
    옛날 한 마을에 가난하지만 효성이 지극한 총각이 살고 있었다. 총각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낮잠에 빠졌는데, 꿈에서 노인이 나타나 아버지의 묘를 이장하고 십 년 동안 벙어리로 살면 자손들이 삼정승 육판서에 오를 것이라고 했다. 총각은 반대하는 어머니 몰래 묘를 옮기고 벙어리 행세를 했다. 그 사이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딱 십 년 째 되는 날이었다. 동네의 아홉 처녀들이 총각을 잡아서 나무에 매달고 놀렸다. 그때 10년이 딱 지났고, 총각이 소리를 쳤다. 이에 처녀들은 잘못했다고 빌었다. 이후 총각은 아홉 처녀를 부인으로 맞아 아홉 아들을 낳았다. 훗날 그 아들들은 모두 삼정승 육판서가 되었다고 한다. 아홉 아들을 낳았다고 해서 이 마을을 ‘구랑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 경북 >경주시

    신라 절터에 세운 경주 월암 종택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에 위치한 월암 종택은 조선중기 주택으로, 임진왜란 때 부산첨사를 지낸 김호(金虎) 장군의 집이다. 넓은 마당을 중심으로 위쪽에는 일자형의 안채가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좌측에는 동향으로 아래채가 놓여 있다. 안채의 우측에 사랑채가 있었으나 지금은 터만 남아 있고, 안채 북쪽에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단순한 세칸집으로 마루가 없는 저상식이지만, 고방은 고상식의 마룻바닥을 삽입하는 등 옛날식 기법을 적용했다. 고방 앞에 문짝을 다는 양식은 경주지역의 특징이다. 굴뚝을 부엌의 부뚜막에 설치한 것은 남방식 건축기법을 적용한 것이다.
  • 경북 >문경시

    가장 아름다운 글귀가 적혀있는, 문경 주암정
    문경의 주암정(舟巖亭)은 배의 형상을 한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주암정은 문화재로 지정된 오래된 건물도 아니고, 정자의 주인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주암정은 우리나라 누정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건축물이다.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 그 연꽃이 만개한 연못에 우뚝하게 한 척의 배가 정박해있는 모습은 천상의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주암정에 올라서면 마치 극락이나 천국에서 배를 타고 아름다운 연꽃 밭을 유람하고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어느 누정 보다 아름다운 글귀가 눈길을 끈다.
  • 경북 >문경시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했던 문경 토끼비리
    문경 토끼비리는 과거 동래에서 한양을 오가던 사람들이 다니던 영남대로 일부에 속한다. 군사가 이동하다가 길이 끊겨 고민하던 중 토끼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 길을 따라 이동했다는 데에서 토끼비리라 불린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따라 나 있는 이 옛길은 수백 년 동안 많은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 바닥에 윤기가 흐를 정도로 반질반질해졌다. 근현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지금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는 곳은 아니지만, 주변을 통과하는 철도 및 고속교통로 등과 어우러지고 자연경관과도 잘 어울리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옛길로 남아 있다.
  • 경북 >문경시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문경새재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였던 영남대로에 있는 고개이다. 새재는 예로부터 백두대간 북쪽의 한강과 백두대간 남쪽의 낙동강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고개로 알려져 있으며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었다. 지금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고갯길은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폭이 넓지만,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면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었던 과거 길도 일부 남아 있다. 새재에 설치된 3개의 관문을 비롯해 고갯길 주변에는 옛날의 모습이 잘 간직되고 있다.
  • 경북 >성주군

    사도세자 호위무사의 충심을 담은 성주 응와종택
    경상북도 성주군의 전통마을인 한개마을에 위치한 고택이다. 성주이씨 세거지인 한개마을의 대표 가옥 중 하나인 응와고택은 사도세자의 호위무사인 응와 이석문이 사도세자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북쪽을 향해 사립문을 내고 평생토록 절의를 지켰다고 하여 북쪽 사립문이라는 뜻의 ‘북비(北扉)’고택이라 부른다. 평판한 대지 위에 안채, 사랑채, 사당, 안사랑채, 대문채, 북비택 등 여섯 채가 동서로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인 양반가옥의 구조를 띠나 남성의 공간을 동쪽에 두고, 여성의 공간을 서쪽에 두는 유교적 이념은 투영되어 있지 않다. 사당을 별도의 공간에 두지 않고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배치하였고, 독립성이 강한 북비택은 후학을 위한 강학당으로 활용하였다.
  • 경북 >상주시

    지주중심 농가형 마을의 중심 가옥, 상주 취은고택
    경상북도 상주시 공성면 골가실 마을에 오래도록 세거해온 여산송씨 정가공파의 주택이다. 취은고택은 송량의 손자인 송덕부(宋德溥, 1603~1674)가 골가실로 이사하여 건축한 집으로 송덕부의 호를 취해 취은(醉隱) 고택이라 부른다.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골가실 마을의 중심부에 고택이 위치하며, 그 주위에 소작농의 집이 에워싸고 있다. 대지주의 고택을 중심으로 소작농의 집이 들어선 ‘지주중심 농가형마을’이다. 안채, 대문간채, 바깥대문채, 우물채, 곳간채 등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건물별로 담을 둘러 공간별 영역을 한정하였으며, 초가를 얹은 바깥문채의 소박함과 팔작기와지붕의 안채, 사랑채의 당당한 위세가 공존한다. 이는 조선후기 향촌사회를 주도한 경제력을 갖춘 양반가옥의 특성이다.

[세종]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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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 세종

    국내 유일 행정도시 세종시민을 위한 '세종축제'
    세종특별자치시의 명칭은 국민 공모를 통해 조선 세종의 묘호에서 따온 것으로,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축제는 세종대왕의 얼을 기리는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세종특별자치시의 위상에 맞는 축제를 위해 연기군에서 개최되던 축제 일부를 통합했다. 세종축제는 5일에 걸쳐 다양한 ‘공연, 체험, 전시’ 행사가 진행된다.
  •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 세종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상과 벌을 주는 독락정 석불
    노부부가 살았는데 하루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찾아와 먹을 것을 구하였다. 부부가 불쌍히 여겨 잘 대접해주니 노인은 독락정 뒤편 석불에 백일기도를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부부는 석불에 백일기도 하여 결국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또 석불에 찾아가 기도하니 약초가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이 소문이 돌자 이웃마을의 욕심 많은 청년이 석불에 찾아가 돈이 필요하다고 빌자 돈이 든 주머니를 얻었는데, 날마다 술 마시고 노는 데 쓰다 보니 돈이 모두 뱀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함부로 석불에 소원을 빌지 않는다고 한다.
  • 세종 >세종시

    피난길을 안내했던 김승로를 참수한 세종시 전동면의 붉은덕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심중리에 ‘붉은덕’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붉은덕은 전동면 청람리에 묘소가 있는 김승로(金承露)가 참수당했다고 해서 불리는 지명이다. 고려시대 말엽 원나라군이 고려를 침입하였다. 피난길에 오른 고려 왕이 천안시 행정리 부근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김승로가 ‘전의’ 방향으로 갈 것을 추천하였다. 김승로의 말에 따라서 전의로 오던 중 평야가 있을 것이라는 김승로의 말처럼 평야가 보이지 않자, 고려 왕은 성급하게 김승로를 참수하였다고 한다.
  • 세종 >세종시

    선돌이 서 있었던 세종시 전동면의 석곡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石谷里)는 국사봉(國師峰), 송학산(松鶴山) 등과 같은 낮은 산지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국사봉에는 예전에 봉화대가 있었으며,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제장(祭場)이 있는 곳이다. 석곡리 지명은 ‘선돌배기’와 관련이 있다. 옛날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한 장수가 들고 가다가 지팡이처럼 마을에 돌을 세워두었기에 선돌배기라 부른다고 한다.
  • 세종

    가마를 설치했던 세종시 연서면의 부동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관내의 자연마을 가운데 ‘가마골’ 곧 ‘부동리(釜洞里)’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옛날 가마골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시골 마을의 부잣집인지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편, 부자에게는 며느리가 한 명 있었는데, 시집온 지 삼 년이 지나도록 손님 접대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루는 시주하러 온 노스님에게 손님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묻고, 노스님의 말에 따라서 마을 주위에 성을 쌓았다. 그 후에 부잣집을 찾는 손님이 점차 줄어들었지만, 부잣집의 가세 또한 기울어졌다고 한다.
  • 세종

    남양 홍씨 9명의 효자를 기리는 연서 효교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 713-55 번지에는 연서 효교비가 세워져 있다. 연서면 일원에는 남양 홍씨 문중에는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있었다. 홍연경(洪延慶)과 아들 홍연설(洪延卨), 손자 홍우적(洪禹積), 홍우평(洪禹平), 홍우구(洪禹九), 증손자 홍방만(洪鈁?), 현손 홍득후(洪得厚), 홍득일(洪得一), 5세손 홍상직(洪相直)이다. 이러한 홍씨 문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49년인 1773년에 비석을 세웠다.
  • 세종

    노승의 말을 어기고 뒤돌아보다 바위가 된 며느리
    옛날 한 부잣집에 부자와 며느리가 살았다.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자 부자는 거름을 끼얹었다. 다른 날 다시 온 노승에게 며느리가 후하게 시주하자 노승은 며칠 뒤 있을 홍수를 이야기해주며 전월산으로 피하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며칠 뒤 큰비가 오니 며느리는 부자에게 같이 산에 오르자 하였지만 부자는 재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남아있었다. 며느리는 혼자 산에 오르다 부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다 그대로 굳어 바위로 변했다. 이후로 이 바위를 사람들은 며느리바위라 불렀고 바위 밑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 세종

    힘이 들 땐 청춘 방앗간에서 수다 한 접시
    세종시 조치원의 전통시장에는 청춘 방앗간이 있다. 이곳은 직접 뽑은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분식점이다. 주요 메뉴는 청춘 세트, 방앗간 세트이다. 청춘 세트는 떡볶이와 김밥, 튀김, 순대를 기본으로 한다. 달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고추장 소스가 쫄깃한 가래떡을 섬으로 만들었다. 세트메뉴의 양은 두 명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만큼 많은 양이다.

[울산 울주]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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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 >울주군

    임진왜란 때 의병항전지 언양천전리성
    언양천전리성은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19호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명촌리 해발 297m의 산성산(山城山) 정상부를 중심으로 석성을 축조한 테뫼식 산성이다. 이곳은 울산에서 밀양으로 연결되는 24번 국도와 경주와 양산을 잇는 35번국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교통의 요충지이며 동해안에서 울산지역을 거쳐 내륙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언양천전리성은 언양읍성과 함께 언양지역의 방어체제를 구축했던 성으로 고대로부터 주로 왜구의 침략에 대한 방비를 목적으로 쌓은 산성으로 추정한다.
  • 울산 >울주군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울산 언양 미진이용원
    울산광역시 언양읍의 미진이용원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장사가 잘 될 때는 면도와 안마를 맡아주는 여자 종업원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두 부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이 머리손질과 면도를 하면, 아내가 머리를 감겨주고, 머리카락을 청소한다. 이젠 '이용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낯선 시대이지만, 다리가 버텨주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용원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 울산 >울주군

    선사시대의 바위그림을 마주한 신라인, 울주 천전리 각석
    울주 천전리 각석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대곡천 인근에 위치한다. 각석은 1970년에 발견되었는데, 기하학문·동물상·인물상 등의 그림과 명문이 총 800여 개 남아있다. 각석은 내용에 따라 상단부와 하단부로 구분할 수 있다. 상단부에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인 점각기하학적 문양과 동물·인물 등이 새겨져 있으며 하단부에는 신라시대의 선각화와 명문이 남아있다. 울주 천전리 각석은 청동기시대와 신라시대의 생활과 사상 등을 함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 울산 >울주군

    울산 지역의 첫 서점, 언양 하나서점
    울산광역시 언양읍 농협 옆의 적산가옥에는 울산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하나서점이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앗간 자리에 문을 연 이 서점은 이제 언양읍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동네서점이다. 하루도 문을 닫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위해 자녀의 결혼식날에도 오후에 문을 열었다는 이 서점의 주인장 김충열 씨는 학생들의 참고서를 팔며 학생들의 선도부 역할도 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찾아와 용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 울산 >울주군

    수십 개의 성혈이 새겨진 바위들, 울주 방기리 알바위
    방기리 알바위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에 있다. 방기리의 유래는 방씨들이 많이 살았던 곳, 또는 통도사에 방문한 신도들에게 방을 빌려주는 곳이라고 한다. 알 모양의 구멍들이 있는 바위를 알바위라 하는데, 바위의 구멍들은 돌 표면을 쪼아서 형태를 잡은 후 회전마찰을 통해 다듬은 것이다. 울산대학교 반구대암각화유적보존연구소에 의하면 방기리 알바위에는 전체 180개의 성혈이 새겨져 있으며, 이중 46개는 선으로 연결된 형태이며 이는 특별한 의미를 나타내는 암각화로 보인다고 하였다.
  • 울산 >울주군

    고래가 전해주는 옛 사람들의 이야기,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신석기 시대에 만들어진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위치한다. 이 암각화는 1971년에 발견되었는데, 판판한 바위 면에 단단한 도구를 사용하여 바다 동물과 육지동물, 사냥 장면 등 다양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바위의 왼쪽에는 바다 동물을 수직방향으로 배치하여 역동성을 살렸고, 오른쪽에는 육지 동물을 수평 방향으로 배치하여 생동감을 나타냈다. 암각화 그림은 주제에 따라 동물그림, 인물그림, 도구-사냥 그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특히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새겨져있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유적으로 인류의 해양어로문화를 알 수 있어 가치가 높다.
  • 울산 >울주군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울산 울주의 서생 이길 봉수대
    서생 이길 봉수대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나사리에 소재한 봉대산에 있다. 이 봉수대는 연변봉수로써 남쪽에 있는 기장 아이 봉수대의 신호를 받아 북쪽에 있는 하산 봉수대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울산에 소재한 여덟 개의 봉수 중에서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으며, 특히 연대 위에 있는 연소실은 전국에서 유일하여 연변봉수의 상부구조를 추측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 울산 >울주군

    언양을 지키는 언양읍성
    예로부터 경주·울산·밀양·양산과의 교통 중심지로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던 옛 언양 고을의 읍성이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을 말한다. 조선 전기에 축성된 석축성으로 네모꼴의 평면구조이다. 규모는 둘레 1559.7m, 석축의 폭 5m, 최고 높이는 4.6m 정도이다.
  • 울산 >울주군

    일년 361일 문을 여는 언양읍 매일대장간
    울산광역시 언양읍 알프스시장에 있는 언양 매일대장간은 40년 동안 매일 문을 연 대장간이다. 박병오 씨가 견습과정을 거쳐 마흔 넘어 차린 대장간으로, 매일 문을 연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이름이다. 농사가 주된 수입원이던 1970~80년대에는 주문이 넘쳐 밤을 새기도 했지만, 요즘은 손님이 뜸하다. 그럼에도 그가 매일 문을 여는 이유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 그 자리에 자신이 없다면 피해를 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직한 대장장이 박병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울산 >남구

    11월-기다림과 정성의 미학을 요리에서 찾다, 무짱아찌(송순화할머니)
    충청도가 고향인 송순화 씨는 서울에 있는 직장에서 남편을 만나 장생포에 오게되었다. 남편과 결혼하며 시어머니와 같이 살게 되었고, 송순화씨는 시어머니를 모시며 음식의 고수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요리를 잘하셨고, 포경이 금지되면서 장아찌를 팔게 되었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손맛을 물려받은 송순화 씨의 장아찌는 기다림과 정성이 가득 담겨있다.

[인천 강화]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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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광무 4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불교 가람과 유교 사당을 닮은 성공회 강화성당은 조선의 토착 종교를 반영해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노력을 보여준다.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본당 앞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유교의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심었다.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당을 지을 때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목수를 초빙하고, 백두산 목재를 가져오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 인천 >강화군

    “정조가 하사품(下賜品)으로 내린 오뉴월 밴댕이 한 두름”
    강화도에는 5월부터 7월 사이에 밴댕이 식도락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밴댕이는 이 시기에 산란을 준비하기 때문에 살이 오르고 기름기가 가장 많다. 겨우내 바다 깊은 곳에 있다가 따뜻한 바닷물을 따라 먹이활동을 한다. 바로 이때, 살이 오른 통통한 밴댕이를 잡을 수 있다. 그러다가 산란기를 마치면 살도 기름기도 빠져서 맛이 조금 덜하다. '오뉴월 밴댕이'라는 말이 있다. 밴댕이의 맛이 가장 좋은 제철에 대접을 받는 것, 바로 후한 대접을 의미하는 것이다.
  • 인천 >중구

    중국황제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던 생선, 인천 밴댕이회무침
    밴댕이회무침은 손질한 밴댕이를 잘게 썰어서 배, 야채 등과 함께 매콤한 고추장양념에 비벼낸 인천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예로부터 밴댕이가 많이 잡혔던 인천에는 여러 곳에 밴댕이골목이 많은데, 인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중구 북성동 차이나타운 옆의 밴댕이골목과 남동구 구월3동의 밴댕이골목이 유명하고, 중구 연안부두에는 ‘연안부두 밴댕이 회무침거리’가 조성되어 관광객들의 명소로 알려져 있다.
  • 인천 >강화군

    화문석으로 유명했던 강화읍장과 강화풍물시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곳리에는 강화풍물시장이 있다. 강화풍물시장은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상설시장뿐만 아니라 매월 2일과 7일 오일장도 함께 열린다. 장날이면 풍물시장 공터와 도로변에 300여 개의 노점들이 조성되며, 지역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모인 상인들은 각종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인천 >강화군

    강화읍 최초로 세탁기계를 도입한 중앙 세탁소
    강화읍에서 45년 이상을 묵묵하게 자리 잡고 있는 중앙 세탁소. 이곳은 오래된 세탁소라는 의미도 있지만, 강화도에서 처음으로 세탁기계를 도입해서 옷을 세탁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찾는 동네 주민들은 사장님의 섬세함과 정직함을 기억하고 이곳에 항상 옷을 맡긴다. 세탁뿐만 아니라 수선, 심지어 작은 단추를 다는 것까지 이 지역 주민들은 그의 손을 통해서 옷을 손질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그 묵묵한 손길로 인해 여전히 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세탁소이다.
  • 인천 >강화군

    주민들이 직접 지은 한옥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은 110년을 지켜온 한옥 구조의 성당이다. 1900년 강화에는 선교본부인 영국교회의 지원 하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함께 온수리 성당이 세워졌다. 민초들이 세운 성당이라 그 의미가 더 깊은 공간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한옥의 양식이 잘 보존된 교회건축양식으로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5호로 지정받았다.
  • 인천 >강화군

    강화 전등사 업경대(인천광역시 유형문화제 제47호)
    강화도 전등사에는 업경대가 1쌍 있다. 업경대는 불교에서 지옥의 염라대왕(閻羅大王)이 인간의 죄를 비추어보는 거울이다. 전등사의 업경대는 화염문 거울을 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색사자와 황색사자 한 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1627년(인조 5)에 제작되어 조선시대 후기의 불교 목공예품의 편년 설정 및 상호비교 연구에 있어서 획기적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 인천 >강화군

    빈티지한 멋이 살아있는 강화 조양방직
    강화 조양방직은 일제강점기인 1933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방직공장이다. 1960년대까지 최고 품질의 인조직물을 생산하던 조양방직은 이후 20~30년 정도 폐공장으로 방치되다가 서울에서 유럽 빈티지샵을 운영하던 이용철 대표를 만나 탈바꿈했다.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는 신조로 공장 형태를 그대로 남기고 심지어 마네킨과 트랙터까지 낡은 물건을 끌어들여 빈티지한 분위기를 물씬 자아낸다. '신문리 미술관'이라는 또다른 이름이 있는 이곳은 강화의 관광명소이자 이색카페로 유명하다.
  • 인천 >강화군

    실향민들이 만든 강화 교동도 대룡시장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살던 주민들이 잠시 피난왔다가 영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살았던 곳이 강화읍 교동도이다. 교동도 북단 율두산의 망배단은 실향민들이 명절에 모여 차례를 지내는 곳이다. 이들이 고향의 연백시장을 그리워하며 꾸린 곳이 대룡시장이다. 이발소, 잡화점, 신발집, 약방 등 시간이 멈춘듯한 오래된 가게들이 여전히 영업 중인 곳이기도 하다.
  • 인천 >강화군

    오랑캐의 침입에 죽음을 택한 순절자들의 배향, 강화도 충렬사
    강화도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정신으로 죽음을 선택한 39인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물살이 거세 적군이 들어올 수 없다는 철옹성이라 여기던 강화도에 청나라군이 들이닥치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오랑캐 여진족에게 굴복하기보다 자결로 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용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충렬사에 배향된 인물들 외에도 자결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신축년에 듣는 지역의 '소' 이야기

2021년은 소의 해입니다. 십이지의 두 번재 동물인 소는 동경문화였던 우리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동물이죠. 우리 생활 속에는 소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요, 한 번 같이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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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밀양시

    두 마리 소를 묻은 골짜기, 밀양 우곡
    옛날 밀양의 한 마을에 전염병이 돌아 소들이 모두 죽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된 마을 사람들은 굶주림에 허덕였다. 어느 해, 소 두 마리가 마을로 들어왔다. 사람들은 기뻐하며 돌아가면서 소를 부렸다. 하지만 소를 너무 심하게 부린 탓에 과로한 소 두 마리가 다 죽고 말았다. 그제야 잘못을 뉘우친 마을 사람들은 소의 죽음을 슬퍼하며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 이후 마을에는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마을은 소를 묻은 언덕이라는 뜻으로 우곡이라 불렸다.
  • 강원 >강릉시

    소처럼 생긴 마을, 주문진의 소돌과 아들바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 6리와 12리에 있는 마을은 마을의 형상이 소 모양으로 생겨서 ‘소돌’이라는 지명이 되었다. 소형상의 지형은 풍수지리에서 풍요와 자손의 번창을 가져다준다고 믿으며, 돌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성질의 상징이다. 소돌 바닷가에 있는 아들바위는 원래 삼치바위였는데, 1990년대에 아들을 낳게 해준다는 소문이 돌면서 아들바위라는 명칭으로 바뀌었다.
  • 충남 >아산시

    소를 탄 노인, 맹사성
    조선 초기에 좌의정 맹사성이 고향인 아산에 볼일이 있어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경기도 양성과 진위 현감이 길을 닦고 마중 나와 있었다. 한참이 지나도 소식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포졸은 허름한 차림에 소를 타고 길을 지나가려는 노인에게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말했으나 그 노인은 금방 지나가겠다며 실랑이를 했던 것이었다. 포졸이 노인을 두 현감에게 잡아가 상황을 설명하니 두 현감이 맹사성임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 넙죽 엎드렸다고 한다.
  • 경기 >동두천시

    소를 끌고 간 이무기가 살았던 경기도 동두천의 쇠목마을
    경기도 동두천시 광암동(廣岩洞)에서 동북쪽으로 4㎞정도 떨어진 곳에 ‘쇠목계곡’과 ‘쇠목마을’이 소재해 있다. 마을 입구에는 높이가 높지 않은 폭포가 한 곳 있는데, 그곳에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논의를 통해 이무기를 이용해서 농자를 짓자고 하였다. 가뭄이 들 때마다, 폭포 아래 물웅덩이에서 물을 퍼내고 징을 쳐 시끄럽게 하였다. 이무기가 화가 나서 그럴 때마다 비를 내려 주었다. 이무기 덕분에 가뭄에 내린 비로 마을 주민들은 가뭄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 경북 >안동시

    소를 바꾸려다 바뀐 사돈
    옛날에 사돈 간에 같은 장에 소를 사고팔러 갔다. 한 사돈은 작은 소를 팔아 큰 소를 사길 원했고, 또 한 사돈은 큰 소를 팔아 작은 소를 사길 원했다. 서로의 소를 바꾸기면 하면 될것같아서 약속을 하고 주막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자신의 집을 잘 찾아가는 소를 믿고 술을 취하도록 마셨다. 하지만 서로의 소가 바뀐지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가 소를 바꾸려다 사돈이 서로 바뀌게 되었다.
  • 경남 >창녕군

    꽁새미 소의 보은
    창녕에서 적교 쪽으로 가다 보면 이방면 상리 마을이 있다. 이 상리 마을 뒤산 제일 높은 산봉우리를 ‘꽁새미’라고 부른다. 어느 날 이 마을에 가뭄이 들어 사람들이 굶어죽기 직전이었다. 촌장집에 소 한 마리가 있었는데, 사람들은 굶은 탓에 이 소를 잡아 먹을려고 했다. 소를 아끼던 촌장은 소를 도망가게 했고, 사람들은 소가 어디 갔냐며 따졌다. 그 순간 산봉우리에서 소가 우는 소리가 들렸고, 하늘에서 비가 내려 사람들이 하늘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전남 >강진군

    와우형국(臥牛形局)의 읍터와 연못
    강진읍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상으로 ‘황소’가 누워있는 와우형국이라 한다. 읍의 형국을 유심히 보면 흡사 엎드린 황소가 그 턱을 목야에 걸고 콧김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강진 사람들은 황소와 연관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주령을 우두봉이라 부르는 것은 황소의 머리를 뜻함이요, 성곽(강진읍성)은 소의 얼굴을 말함인데 큼직한 황소가 양편 귓전을 넌지시 펼치고 엎드린 모양은 천만년의 풍우에도 굽힘이 없는 의연함과 말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성실히 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 전남 >고흥군

    한밤중에 소 울음소리가 울려퍼진 섬, 우도
    옛날 전라남도 고흥 땅 산골에 살던 젊은이가 결혼을 하였으나 생활이 어려워 바다 가운데 있는 섬으로 이주하였다. 섬은 육지에서보다 생활이 안정되어 부부는 행복하게 살았다. 하루는 남편이 육지에 볼일을 보고 온다고 하더니 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했다. 부인은 남편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했는데, 그녀를 짝사랑하던 육지의 부잣집 아들이 부인을 겁탈하려 했다. 가까스로 막은 부인은 젊은이에게 산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 세 번을 내고 오라고 했다. 부인이 자기를 받아들일 거라고 착각한 젊은이는 산에 올라가 소 울음소리를 세 번 내고 왔으나 부인은 자결했다. 이후 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 섬이라 하여 이 섬을 우도라 불렀다.
  • 농부에게 배운 황희정승
    이 이야기는 황희정승의 젊은 시절 이야기로 밭을 가는 평범한 농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데 소중한 가치인 배려를 배웠다는 것이다. 미물이라고 여기는 소도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는 농부의 모습과 이를 수용하는 황희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전남 나주]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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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나주시

    철야대동계의 중심지, 나주 만호정
    만호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343-1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145호이다. 고려 초기에 원일정이 있던 자리에 조선 전기의 무신 서지(徐祉:1468~1537)가 무송정이라는 정자를 창건하였다. 이후에 정자명은 쾌심정으로 고쳐졌으며, 1601년(선조 34)에 임진왜란으로부터 정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면서 영평정으로 개칭하였다. 1774년(영조 50년)에는 영산강의 조수를 끌어당긴다는 의미의 만호정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만호정을 중심으로 향약과 동규가 마련되어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
  • 전남 >나주시

    봄을 간직하고 있는, 나주 장춘정
    장춘정은 전라남도 나주시 다시면 죽산리 화동마을 969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전라남도기념물 제201호이다. 1561년(명종 16)에 조선 중기의 무신 유충정(柳忠貞:1509∼1574)이 건립하였다. 1818년(순조 18)과 1930년에 중수하였으며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장춘정이라는 정자명은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숲과 사시사철 피는 꽃들이 항상 봄을 간직한 듯하다는 의미이다. 장춘정을 중심으로 문인과 무인 등의 교류가 활발하였으며 영산강 권역의 대표적인 정자이다.
  • 전남 >나주시

    자유로운 영혼 백호 임제를 만나는, 나주 영모정
    영산강을 내려다보는 영모정(永慕亭)은 1520년 나주 임씨 임붕(林鵬)이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원래 이름은 귀래정(歸來亭)이었다. 임붕이 죽자 임복·임진 두 아들이 아버지를 추모하기 위해 귀래정을 재건하면서 영모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영모정이 유명해진 것은 임진의 아들 백호(白湖) 임제(林悌) 때문이다. 조선 시대 명문장가였던 임제가 어린 시절 글을 깨우치고 시작(詩作)을 즐기던 곳이 바로 영모정이었다. 그는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정랑까지 지냈지만 관직에는 뜻이 없고, 자유분방한 시대의 풍운아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백호문학관이 있다.
  • 전남 >나주시

    순사들의 전성시대, 구 나주경찰서
    전라남도 나주경찰서는 1910년 설치되면서 청사를 지었다. 2층 붉은 벽돌 건물로 당시 나주에서는 가장 권위적인 건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나주경찰서는 항일 학생과 운동가들을 가혹하게 고문하여 취조하는 곳으로 악명이 높았다. 목조 건물 지하에 있었다던 취조실은 사라졌으나, 유치장으로 쓰이던 4개의 방은 아직도 남아 있다. 나주는 1929년 11월 전국으로 번져나간 항일 학생 시위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구 나주경찰서는 1950년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원형대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 전남 >나주시

    호남의 중심지, 나주읍성
    나주읍 중심부에 돌을 쌓아 만든 평지성으로 둘레는 3,530m에 달하며 남북장축의 타원형이다. 읍성의 동서남북에 4대문을 설치하고 모든 문에 옹성을 조성하였다. 고려시대에 처음 쌓은 후 조선시대에 여러 번 확장하여 축성하였으나 일제시대에 그 원형을 상실한 대표적 읍성이다. 나주읍성의 4대문 중 남문인 남고문은 1993년에 복원되었으며 동문인 동점문은 2002년, 서문인 서성문은 2007년에 발굴 조사된 후 복원되었다.
  • 전남 >나주시

    물도 나무도 마음도 푸른, 나주 벽류정
    나주는 오래도록 호남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나주에는 이름난 누정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쌍계정·영모정·벽류정이다. ‘벽류정(碧流亭)’은 말 그대로 ‘시리도록 푸른빛의 맑은 물이 흐른다’는 의미이다. 우뚝 서있는 벽류정 아래에는 영산강의 지류인 금천이 흐르고, 정자를 사방으로 호위하듯 노거수가 에워싸고 있다. 발 아래로 시리도록 푸른빛의 맑은 물과 파랗게 이끼가 더해진 오래된 나무의 녹음이 ‘벽류정’ 이름과 잘 어울린다. 벽류정은 김운해(金運海)가 1640년 세운 정자로 여러 편액과 현판이 걸려있다.
  • 전남 >나주시

    나주의병봉기지 나주향교
    나주향교는 사적 제483호로 1896년 을미의병기 이학상을 중심으로 나주의병을 결성한 장소이다. 나주의병은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의 격문이 전달되자 나주의 유림들과 향리들이 나주향교에 모여 이학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나주의병은 광주로 진출하여 북상을 준비하다 선유사가 내려와 왕명으로 해산을 종용하자 결국 해산하였다.
  • 서울 >중랑구

    서울 봉화산 도당제
    서울 중랑구 신내동 산141번지에 위치한 봉화산의 도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위해 음력 3월 3일마다 지내는 마을 제사를 말한다. 2005년에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34호로 지정되었다.
  • 전남 >나주시

    붉은 벽돌성당의 기적 - 나주 노안성당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양천리 노안성당은 나주에서는 처음 설립된 성당이자, 전라남도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이다. 노안성당은 1900년대 계양 공소로 시작됐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나주읍내 가까운 곳에 성당을 설립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아 산골이지만 계안 공소를 나주 최초의 성당으로 정했다. 1927년 증축 건립된 노안성당 본당 건물은 기술의 한계와 재정적 여건 때문에 비용은 줄이되 기능은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붉은 벽돌로 올린 노안성당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불을 지르려던 인민군들이 착각을 일으키는 기적적인 일을 겪기도 했다. 노안성당은 1930년대엔 신성학교라는 초등교육 과정을, 1961년에서 1984년까지는 성 골롬반중학교라는 중등교육 과정 학교를 직접 운영했다. 나주 가톨릭의 모태 격인 노안성당은 2002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노안성당이 자리 잡은 계양마을은 2000년대 들어 이슬촌으로 마을 이름을 바꾸었다. 주민 절대다수가 노안성당 신도인 이슬촌은 농촌 체험 마을로, 크리스마스 축제로 전국적으로 소문난 마을이 되었다.
  • 전남 >나주시

    소반과 부채로 유명한 나주의 목공예
    나주는 비옥한 토양을 바탕으로 각종 문물이 모여드는 호남 문화의 중심지로 일찍이 목공예가 발달하였다. 특히 나주소반, 나주부채, 나주 목물(장·농·뒤주·반닫이·문갑·사방탁자) 등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대량의 벌채와 해방 이후 산업구조의 변화 등으로 나주 목물의 명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는 김춘식 선생이 나주소반과 나주 부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 장수]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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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장수군

    빨간 컬러푸드의 건강함을 담은 '장수 한우랑사과랑축제'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는 한우, 사과, 오미자, 토마토 등 빨간색(red color) 농산물을 특성화한 차별화된 축제이다. 장수군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모두가 함께 참여하는 장수한우랑사과랑축제는 2007년 처음 시작되었으며, 매년 9월에 장수군 의암공원과 누리파크 일원에서 개최된다. 한국 최대 규모의 한우 셀프시식 프로그램 장수한우마당이 운영되며, 적과의 동침, 레드조각 맞취기, 레드푸드 릴레이 등 색깔을 주제로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전북 >장수군

    후백제군이 군량을 모으던 합미성
    장수 합미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75호로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식천리 177-1의 자고개 서북쪽 산기슭인 해발 800m의 능선 정상에 자리한 봉우리를 중심으로 축성한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 내부에서 출토된 유물로 백제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 등이 확인되어 백제에 의해 축성된 산성으로 추정된다. 합미성은 해발 1151m의 팔공산 남쪽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어 동북쪽으로는 장수분지를 조망할 수 있고, 서남쪽으로는 대성고원을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요충지에 있다.
  • 전북 >장수군

    금쟁반의 옥잔 명당에 세운 장수 권희문 가옥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오산리에 건립된 권희문 가옥은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상류가옥 중 하나이다. 안동권씨 칠봉공파 종가로, 안채 상량문에 영조 49년(1773년)이라 기록되어 있다. 넓은 대지에 안채, 사랑채, 아래채, 바깥채, 서쪽채, 나뭇간채 등의 여러 건물이 산재되어 있다. ㄱ자형의 안채는 전북지방에는 드문 형태로, 중문을 들어서면 부엌벽이 보이는데 기와를 이용해 멋진 장식되어 있다. 지금도 권희문 일가가 거주하고 있는데, 사랑채 골방은 권희문 옹이, 그의 부인은 안채의 큰방을 사용하고, 큰아들 내외는 안채의 작은방을 사용하며, 작은아들 내외는 서쪽채의 아랫방에 기거한다. 과하주, 식술, 점주(粘酒) 등의 가양주가 종가음식으로 전한다.
  • 전북 >장수군

    물의 뿌리 신앙의 뿌리, 장수성당 수분공소
    장수성당 수분공소가 자리 잡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는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가 있는 마을이다. 지역 토박이들은 수분리를 ‘물뿌랭이’ 마을이라고 부른다. 물의 뿌리라는 뜻이다. 수분리 일대에는 병인박해 이전부터 숨어사는 천주교 교우촌이 있었다고 한다. 수분공소는 1913년에서 1914년 사이 경상남도 함안성당과 전라북도 진안 어은동 성당 주임신부 간의 합의에 따라 중간 쉼터 격으로 세워졌다. 한옥으로 지어진 수분공소는 1921년 신도들의 합심 노력으로 현재 모습의 원형을 갖추었다. 들보와 서까래로 쓴 목재는 곡선을 그대로 살려 사용함으로써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 전북 >장수군

    지명으로 찾아가는 장수의 옛 현 터
    장수는 하늘과 물이 만나는 고장이다. 장수의 지역 중 천천면은 백제부터 고려 초기까지 현이 있던 곳으로 현 터가 있는 남양리, 가야고분이 있는 삼고리 등이 있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들은 장수 천천면의 지명 유래와 이야기를 소개한다.
  • 전북 >장수군

    오뫼마을 권희문 가옥의 전통음식 세가지
    전라북도 민속문화재 22호인 권희문 가옥은 장수 팔경 중 하나인 영대산 앞에 지은 ㄱ자 형태의 전통 가옥이다. 약 300여년 7대째 살고 있는 이 집안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음식 세 가지가 있다. 점주, 육포, 정과가 그것이다. 그 전통음식들 중 점주, 접장, 정과를 소개한다. 장손부 이순녀 여사와 며느리 정희선 씨에게 직접 들은 레시피들이다.
  • 전북 >장수군

    전통 명맥을 잇는 장수의 녹반석(綠斑石) 벼루
    오래전 장수에서는 ‘녹반석(綠斑石)’이라는 돌로 벼루를 만들었다. 초록색 돌 속에 다른 성분의 점이 박혀 있어 ‘녹반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담금질을 마친 쇠라면 자귀(짜구)로도 가공이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무른 돌이며 점처럼 박힌 다른 돌 성분으로 인해 정밀조각이 어려우나 먹이 잘 갈리고 물이 마르지 않는다. 연마 후에는 검은색 기운을 띠는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일반적인 벼루와는 색과 성질이 다르다.
  • 전북 >장수군

    첨성대 닮은, 이념대립 시대의 유물 - 장수 호룡보루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동화리 ‘호룡보루’는 외관이 경상북도 경주시의 첨성대와 비슷하다. ‘호룡보루’는 1949년 빨치산의 동태를 감시하고,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지서 앞에 세워진 일종의 망루다. 호랑이와 용처럼 용감하게 싸우라는 뜻으로 ‘호룡보루’라 이름 붙여진 망루는 원래 2개가 있었지만 서쪽 망루는 사라졌고 동쪽 망루만 남아 있다. 위로 갈수록 다소 작아지는 민흘림 방식으로 지어진 망루에는 3단에 걸쳐 총안이 나 있다. 1951년 호룡보루에서 전투가 벌어져 경찰관 4명과 민간인 향토방위대원 11명이 숨지기도 했다. 호룡보루가 세워진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은 지리산, 회문산, 덕유산 등을 근거지로 활동하던 빨치산들의 이동 경로였다. 극단적 이념대립 시대의 산물인 호룡보루는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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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씨 집안의 진상품이었던 곱돌솥으로 지은 장수 돌솥밥
    장수돌솥밥은 전라북도 장수군의 특산물인 ‘곱돌’로 불리는 각섬석편마암을 가공하여 만든 돌솥에 쌀과 더불어 다양한 곡물을 비롯한 식재료를 넣어 만든 향토음식이다. 장수의 돌솥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 대성리의 고(故) 최순룡 씨가 1923년 본격적으로 상품화하면서 곱돌그릇이 장수군의 특산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 전북 >장수군

    장수 동촌리 동촌당산제
    전라북도 장수군 동촌리 마을주민들은 정월 열나흘 밤이 되면 마을에서 모시고 있는 신에게 마을 제의를 드린다. 마을주민들의 신앙처인 마을의 당집은 돌탑인데 사냥터라 칭하는 숲에 있는 돌탑과 숲 거리에 있는 2기의 돌탑이 그것이다. 제의를 지내기 전에 우선 제의를 주관할 제주를 선정한다. 제의를 지내는 비용은 마을의 공동자금으로 충당하였다. 하지만 가구 수도 줄어들고 여러 가지 연유로 근래에는 화주를 맡은 사람이 부담한다. 동촌마을의 제의에 필요한 제물에는 과일을 비롯해 탕, 명태포, 떡과 술 등이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행한다. 제의 순서는 제물을 진설한 다음 분향-헌작-독축-소지 축원-음복이다. 제의가 끝나면 헌식이라는 의식을 행한다. 모든 제의가 끝나면 제의를 준비하던 집에 모여 음복을 하면 동촌리 마을의 당산제는 비로소 마무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