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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다, 한글날

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으로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부터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에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 시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많이 발전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물시계도 이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측우기 또한 세종 시기에 발명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농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세종은 법전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요, 악보의 역할을 하는 정간보를 창안하고 국가 의례를 위한 음악인 '여민락'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통해 우수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우리말을 좀 더 사용하는 하루가 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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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아산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충청남도 아산이 본관이다.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을 배우러 명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장영실이 귀국 후 세종은 그를 노비에서 해방시키고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지원과 신뢰하에 본인의 실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장영실은 최고의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와 해시계 앙부일구 등을 만들어내며 조선시대 과학기술 문화의 꽃을 피웠다.
  • 울산 >중구

    최현배를 기리고 한글사랑을 알리는 ‘외솔 한글 한마당’
    ‘외솔 한글 한마당’은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낸 최현배(1894~1970년) 선생을 기리고 한글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치러지는 인물축제이면서 한글 확산 목적축제이다.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는 울산에 있는 외솔 최현배의 기념관과 그 일대이다. 공식행사, 특별행사, 학술경연대회, 공연행사, 전시체험행사로 나누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해서 행해진다.
  • 전북 >정읍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 권승욱
    권승욱은 고창고보 스승인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문에 1년 옥고를 치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938년 6월부터 1957년 한글날까지 『조선말 큰사전』여섯 권이 발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조선어사전 편찬에 헌신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언어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는 한글운동을 창시했던 주시경(周時經)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國語硏究學會)에 기원을 둔 학술운동단체이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조선언문회(1911년), 한글모(1913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에는 조직을 정비하고 1949년 한글학회로 재탄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0~1930년대에는 한글날 제정·기관지 『한글』 창간·조선어강습회 개최 등의 활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및 한글맞춤법을 비롯한 표준말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0월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검거되어 옥중에서 2명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는 등 해방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 강원 >강릉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허균
    허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허균은 명문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다. 늦게 얻은 벼슬길에서 여러 죄명으로 좌천당하고 유배당하다 결국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이다.
  • 전남 >순천시

    국내 최초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발행자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K팝그룹 BTS의 음악에는 때로 국악장단과 ‘얼쑤’, ‘지화자좋다’와 같은 추임새가 어우러진다.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의 접점을 찾아 음악을 들려준다. 이처럼 현대의 팝그룹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발견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들 이전에 일찍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해온 이가 있다. 바로 잡지<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1936~1997년)이다. 그가 발간한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잡지이며 최초의 가로쓰기 잡지였다. <뿌리깊은나무>의 가치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 경남 >의령군

    조선어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이극로
    이극로는 영화 <말모이> 상영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본의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한글 운동을 하였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말과 철자를 통일하는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위장 친일행동을 하고, 이우식과 정세권 등에게 사전 편찬에 후원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는 등 오직 사전편찬만을 위해 헌신했다.
  • 충남 >공주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월인석보 목판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갑사(甲寺)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한글로 발간한 불경이다. 갑사에 소장된 이 목판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월인석보 목판으로서, 25권 중 21권 46매만 남아 있다. 15세기 국어 생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전국

    우리나라에 맞는 최초의 농사책, 『농사직설』
    『농사직설』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초와 변효문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책이다. 농사직설은 우리 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기존의 중국에서 들어온 농서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장조사에 의한 연구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사와 맞는 정보를 담고 있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과 함께하는 여주 한글시장
    여주제일시장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전통 5일장이 열리던 상설시장이다. 이곳이 2016년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한글을 테마로 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매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 때는 상설시장에 덧붙여 가판이 서면서 농수산물과 살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여주한글시장 안에는 세종대왕상, 한글빵 카페, 한글 벽화 등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추석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닌 추석은 순우리말로 한가위라 불리는데요.
오곡이 익는 계절 사이에 있는 명절인 만큼 풍요를 기리는 세시풍속도 행해진답니다.
추석에는 어떤 세시풍속이 행해지는지 알아볼까요?

추석은 농사를 마감한 한가한 시기이자 풍요를 자랑하는 때로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강강술래,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의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했는데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도 해 날이 쌀쌀해져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추석 때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했답니다.그리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기 위해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준비하며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손의 도리를 다합니다.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추석, 맑은 하늘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흥겨운 명절을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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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시

    어깨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는 팽성읍 와야골 마을에서 8월 추석에 수수깡으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놀았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이다. 거북 신앙에서 유래하며, 마을 주민의 안녕과 복을 비는 목적을 지니며 세시놀이로 전승되다가 중단되었으나, 근래에 다시 복원되었다.
  • 충남 >당진시

    볏가릿대를 세워 한 해의 풍년을 비는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
    당진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놀이다. 정월대보름에 대략 8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놀이다. 놀이는 총 여섯마당으로 진행된다. 볏가릿대는 벼, 보리, 조, 팥, 기장 등 오곡을 매달고 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대동샘 옆에 세우고, 2월 초하룻날 허물면서 한 해의 풍년을 점친다. 거북이도 만들어 그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동네를 돈다. 이 놀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고 장수를 기원하는 놀이이다.
  • 경기 >이천시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는 청소년들이 거북이 형상을 뒤집어쓰고 노는 놀이로 추석날 벌인다.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밭농사와 관련이 깊다. 아이들이 남의 집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집주인이 떡과 음식을 내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경북 >청도군

    청도의 색다른 볼거리, 청도소싸움놀이
    청도소싸움은 예전에 머슴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점차 마을간 집단적인 소싸움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는 현대식 소싸움경기장에서 상금을 걸고 체급별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동물 싸움 형태로는 유일하게 전통민속놀이로 인정받아 해마다 봄철에 청도소싸움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 전남 >진도군

    보름달 뜨는 밤 아낙들의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남서쪽 해안지역에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졌던 노래와 무용이 혼합된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다.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마을처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둥글게 그리고 돌며, 노래를 부른다. 이 놀이는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과식하게 되는 추석,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토란국
    추석상에 토란국은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土卵)을 넣고 끓인 국으로 토란탕, 또는 토란곰국이라고도 한다. 토란국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에도 추석음식으로 등장한다. 토란은 위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소화를 돕고 변비예방에 효과가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토란으로 만든 토란국은 다양하고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한 추석에 꼭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 전국

    명절을 즐기던 삼국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신라 유리왕대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새해가 되었을 때 떡을 해먹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해서 명절의 기원은 농경의례에서, 또 명절음식의 기원은 농사지은 곡물의 가공을 통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국기대부터 지내기 시작한 명절도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 전국

    햇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차례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추석차례라고 한다. 본래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차례상이 기제사와 같은 제사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신에 차례상에는 시절음식이 올라간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아직 곡식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벼 한줌을 베어서 밥 대신에 놓기도 했다. 햇곡식을 수확하지 못한 경우에는 추석 이후인 9월 9일(중구)에 차례를 지냈다.
  • 전국

    햇곡식 못 구한 추석에는 9월 9일 중구차례
    추석 무렵에도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경우, 차례를 지내는 날짜를 미루어 9월 9일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이를 중구차례라고 부른다. 어떤 지역에는 추석차례보다 큰 명절이었던 중구차례는 추석이 연휴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중구차례에는 후손이 없이 죽는 사람이나 객사한 사람, 기일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주로 지냈다.
  • 전국

    온가족이 함께 추석을 준비하는 벌초
    조상님의 묘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잘 정리하는 것을 벌초라 부른다. 벌초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묘를 돌보고 살피는 일을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행으로 인식하며, 벌초가 안된 묘는 자손이 없는 묘로 여겨지곤 했다.

경축 고조선 건국의 날, 개천절

개천절은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개천'은 하늘이 열렸다는 뜻으로,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나라를 세운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개천절은 단군조선의 건국과 문화민족으로의 새로운 탄생 모두를 아우르는 국가적 경축일이자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천절이 10월 3일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의 이념과 이치로 다스리는 세계라는 뜻의 '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음력 10월 3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개천절을 맞아 단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갈까요?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번째 임금입니다.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었을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단군을 마을신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개천절을 통해 한민족의 긴 역사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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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곡성 단군전
    곡성 단군전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당 신태윤이 1914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처음 건립했다. 백당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대에 곡성에 돌아와 오늘날의 단군전 자리에 새롭게 단군 사당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셔다 놓았다. 역사학자였던 백당은 가는 곳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단군전을 지었다.
  • 서울 >용산구

    마을신이 된 고조선의 건국 시조, 단군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이다. 단군에 관한 기록은 『위서(魏書)』,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전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데에서는 일치한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다.
  • 인천 >강화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 전북 >익산시

    고조선 기준왕의 전설이 깃든 익산 낭산산성
    익산 낭산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13호로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산48번지 해발 162m의 낭산산 정상에서 서쪽 골짜기 일부를 감싸고 축성된 테뫼식과 포곡식의 복합산성이다. 낭산산성은 마한성(馬韓城)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구성(舊城) 또는 북성(北城)으로도 불린다. 이 성이 마한시대에 축성된 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보아 백제 시기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전국

    하늘과 땅을 품고 고조선을 연 단군왕검
    단군왕검에 관한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고조선의 내력을 밝히는 건국신화이며,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이기도 하다. '단군신화'에는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라는 성스러운 땅에 내려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의 터전을 만들고, 그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했다고 나온다.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환인-환웅-단검으로 이어지는 부계 3대를 중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의 결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전국

    단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을까? 고조선 농업
    고조선은 BC 108년까지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존재한 한국 최초의 국가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신시와 고조선사회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고조선 시기에 농경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전남 >보성군

    나철, 대종교로 나라를 찾아라
    나철은 대종교를 다시 일으킨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다. 과거에 급제를 한 후 그는 관직에 나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귀향해 10년간 수행을 한다. 1904년 포츠머스조약, 러일전쟁, 을사조약 등이 일어나자 애국계몽운동, 민간외교운동, 을사오적 암살 시도 등을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는 애국계몽운동이나 매국노 암살로는 국권을 회복할 수 없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것, 즉 단군신앙으로 단결해서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종교운동만이 국권을 회복할 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종교를 중광한 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포교활동과 국학운동, 독립군 양성 등을 한다.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자 순교로서 항거한다.

또 다시 여름 바닷가♬

시간은 야속하게도 빠르게 흐르고, 나의 마음은 괜히 조급하기만 하고, 이 여름의 끝에서 잠시 쉬어갈 곳이 어디에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지금 여기, 바닷가에 오게 되었습니다. 내리쬐는 태양을 피해 그늘진 바닷가 모래밭에 털썩 앉아 가만히 바다 멍을 해보는데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살랑이며 다가오는 바람, 그리고 탁 트인 바다까지. 화려하진 않아도 자연이 주는 힐링에 괜스레 가슴이 벅차곤 합니다. 바다에 수놓아진 푸른 물결과 잔잔한 파도 소리로 쉼 없이 달려온 우리를 다독여 주는 바다! 멍하니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에도 좋은 바다는 사계절 우리와 함께하지만 여름의 바다가 줄 수 있는 낭만과 힐링은 또 다른 것 같네요. 여름의 마무리는 푸른 윤슬이 아름다운 이곳 바닷가에서 즐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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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주문진 오징어로 유명한 강릉 주문진항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 주문진리에 있는 주문진항은 1927년에 개항한 항구이다. 약 350여 척의 어선과 화물선이 드나드는 큰 항구로 6·25 전쟁 당시 미 해군과 북한군이 여기에서 해전을 벌였는데 북한의 군수품을 실은 군함과 어뢰정을 격침시킨 곳이기도 하다. 동해북부선상의 역을 만들려 했으나 전쟁으로 인해 터가 소실되어 공사가 중단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다. 동해안에서 갓 잡은 오징어 어판장이 있어 오징어잡이 어선이 찾는 주요 항구이다. 오징어잡이 대형어선은 화물선이 드나드는 주문진항이나 속초항으로만 입항할 수 있어 이들 항구가 주요 오징어 위판장이었다. 주문진 오징어의 명성은 위판장과 연관 깊다. 오징어 이외에 명태, 꽁치, 고등어, 게 등 많은 어물을 잡은 수백 척의 어선이 드나드는 주요 항구이다.
  • 전남 >신안군

    신안 임자도, 아름다운 모래의 섬
    임자도는 오랜 간척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질토의 섬이다. 임자대교가 완성되어 다리를 통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들깨가 많이 나서 임자도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대파가 대표 특산물이며, 젓새우와 민어도 유명하다.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변을 갖고 있는 임자도 대표 관광지이다. 어머리해안의 용난굴 설화가 있으며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자전거길과 걷기코스가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토기와 농산물을 육지로 운송하던 제주 사계포
    사계항은 제주특별자치도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어항으로, 깨끗한 모래와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져 명사벽계(明沙壁溪)라 하여 사계리라 부른다. 사계리의 작은 포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인근 도요지에서 생산한 토기와 농산물을 테우에 실어 육지로 운반하던 포구였다. 사계포구 앞쪽 마을은 토기동 또한 토끼동이라 부르며, 토기와 연관된 사계포구도 토기포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1702년(숙종 28)에 그린 『탐라순력도 』에는 흑로포(黑路浦)라 묘사되어 있으며, 흑로포는 ‘검은질개’라는 명칭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인근에는 영주 십경(瀛州十景) 중 하나인 산방굴사(山房窟寺)와 용머리 해안과 낚시터, 바다 건너 형제섬 등이 있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북 >울진군

    울진 죽변항, 대게로 유명한 울진 북단의 대표 포구
    경상북도 울진군 죽변리에 있는 죽변항은 대나무가 많다 하여 ‘대숲 끄트머리 마을’이라는 뜻으로 ‘죽빈’이라 불렀다. 죽변항구는 1938년에 축항시설을 만들었다. 풍부한 수산자원 덕에 일찍이 시설을 완비한 항구로, 대게와 오징어, 고등어·꽁치·대게·도루묵·가자미 등도 많이 잡히고, 미역의 생산량도 많다. 죽변항에 있는 높이 15.6m 울진 등대도 유명하지만 더 특별한 것은 대게의 생산지라는 점이다. 울진과 삼척 경계의 왕돌짬에서 잡은 울진대게는 영덕대게와 달리 크고, 잘 생기고, 단단해 ‘박달게’라 부른다. 항구 주변에는 10㎞ 정도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다.
  • 충남 >보령시

    보령 오천항, 잠수부가 키조개를 캐는 유일한 항구
    오천항은 백제와 신라시대에 회이포라는 항구를 통해 중국과 교역하던 항구로, 고려시대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어지자 군선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충청수영을 설치했다. 천수만의 깊숙한 곳에 있어 피항시설이 없어도 안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금도 방파제 없이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오천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령시의 중심 장시인 광천장이 위치해 있다. 광천장을 오가는 배들이 물때가 맞지 않으면 이 곳에 배를 두고, 걸어가야 했던 마지막 기항지이기도 했다.
  • 전남 >신안군

    자산어보와 홍어로 유명한 신안 흑산도
    검은 섬, 흑산도는 최서남단에 있는 섬이지만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어선들 뿐 아니라 흑산도의 자연환경을 보고 즐기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고 다른 섬으로 가기 위해서도 온다. 해산물은 풍부하고 그 맛도 좋은데 그 중 제일 유명한 어종은 홍어이다. 예로부터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흑산도는 마을마다 당집이 있고, 제를 지냈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조선시대 유배지로도 유명한 이 섬은 정약용이 자산어보를 쓴 곳이기도 하다.
  • 전남 >여수시

    여수 거문도, 다도해 최남단의 섬
    거문도는 천혜의 자연 항만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탐을 냈던 섬이다. 그래서 아픈 역사도 함께 갖고 있는 섬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도해 남단의 동백이 아름답게 피고 해풍 쑥이 많이 나는 섬으로 더 유명하다. 뱃길로 가야 해서 하늘이 도와야 들어갈 수 있지만 곳곳에 이야기들이 있고 아직은 번화한 관광지 같지 않은 거문도는 조용한 트래킹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섬이다. 낚시를 하기에도 좋은 섬이다.
  • 경기 >화성시

    어촌마을에서 즐기는 바다 체험, 화성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소속이지만 충청남도 당진 장고항에 더 가까운 서해의 작은 섬이다. 국화도에는 두 개의 부속 섬이 있는데 이들 섬은 물때에 따라 국화도와 연결된다. 작은 섬이라 많은 주민들이 살지 않고 분교로 있던 학교도 폐교된 지 오래되었다. 선착장 주변과 완만한 경사의 국화도 해수욕장 주변에 펜션과 같은 숙박시설이 여럿 있다. 접근성이 좋고 조용한 섬으로 간단한 트래킹을 즐기러 오거나 낚시를 하러 오는 섬이다.
  • 경북 >울릉군

    동해안 끝자락의 화산섬, 울릉도
    경상북도에 속한 울릉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큰 섬이다. 독도와 함께 동해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도 있지만, 워낙 어족 자원이 풍부한 부분도 배제할 수 없다. 정확히 언제부터 사람이 살고 있는지 알기 어려우나 중국 측 문헌이나 『삼국사기』 등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그 역사만큼은 오래된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곳 주민들의 생업은 농업과 어업, 그리고 축산업과 임업도 빼놓을 수가 없다. 오늘날에는 비교적 다양한 방법으로 울릉도를 찾을 수 있는데 한 해 10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울릉도를 찾고 있다.

모든 예측은 자연의 사소한 변화로부터

농업국가에서 풍작은 생존 문제와 직결되었기에, 우리 조상들은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에 자연 현상을 통해 한 해의 풍흉을 미리 점쳤습니다.
실제로 전북 순창 주민들은 음력 1월에 산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리면 그해에 비가 많이 내려 풍년이 든다고 믿었고, 전남 장흥 연지마을 주민들은 정월대보름에 우물물을 길어놓고 그 위에 촛불을 띄우는 방법으로 마을의 운명을 확인했죠. 불이 오래 가면 풍작, 금방 꺼지면 흉작이라고요.
그런가 하면 전남 진도 회동마을 주민들은 수백 년 된 팽나무의 잎이 피어나는 정도를 보고 비의 양을 짐작해 모내기를 준비했습니다. 잎이 한 번에 싹 피면 비가 많이 와 풍년이 들 것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정월대보름에는 마을 대항으로 횃불싸움도 벌였는데요. 이긴 마을이 농사가 더 잘될 것이라고 믿어서 대충 싸우는 법이 없었다고 하네요.
이 같은 풍습에는 자연의 작은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했던 수많은 염원들을 함께 되새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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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남원시

    용마를 만들어 편을 갈라 싸우는 남원 용마놀이
    용마놀이는 용마를 만들어 두 팀이 승부를 겨루는 놀이다. 구체적인 기록으로 확인이 어렵긴 하나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져오는 이 놀이는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한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 위해 행해졌다고 한다. 놀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용마는 대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광목 등을 입힌 다음, 색칠을 하여 용의 모양을 표현한다. 각 팀의 용마가 입장을 하면 본격적으로 놀이가 진행되는데 놀이 과정에서 용마가 쓰러지거나 혹은 용마에 올라탄 호위병이 떨어지면 승부에서 지게 된다.
  • 전남 >장성군

    예언의 능력이 있는 호남의 명물, 방울샘
    호남의 명물인 방울샘은 풍년이 들 때는 물이 쌀 뜬 물로 변하고, 흉년이 들거나 나라에 국난이 있을 때는 황토색으로 변하는 등 미리 앞일을 알려주는 신기한 샘이다. 과거보다는 규모와 절차가 간소화됐지만 현재도 정월 보름에 정성스럽게 방울샘 제를 지내고 있다. 또한 오동촌은 방울샘 물이 좋아 도지사, 장군, 변호사, 박사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해서 타지의 부러움을 받고 있다.
  • 경북 >문경시

    호계별신굿,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다
    호계 와야골 별신굿은 마을의 수호신에게 제를 올리고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마을 공동 제의다. 300여 년 전 용당 암굴의 물줄기가 끊기자 굿을 지내 물이 솟아난 데서 비롯되었으며, 10년마다 음력 정월 대보름에 거행되었다. 강신–오신–제사–영송의 절차를 거쳐 마을 평안을 기원하고, 지신밟기를 통해 각 가정의 안녕을 비는 주민 공동체의 대표적 민속의례다.
  • 경북 >청송군

    용당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가져다주는 두꺼비바위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면 용당마을에는 두꺼비바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용당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두꺼비바위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뱀산의 뱀이 깨어나 두꺼비를 잡아먹으려 하였다. 이에 사람들은 두꺼비를 보호하기 위해 돌을 쌓았고, 이후 마을의 액운은 사라지고 매년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 전북 >순창군

    풍년을 알려주는 세암산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목동리에 솟아있는 산인 세암산은 그 해에 풍년이 들것인가 흉년이 될 것인가를 농민들게 미리 알려준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정월에 이 산에 올라가 보면 산이 울리면서 북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고 한다. 모기 소리만큼 가늘게 들리지만 집중해서 들으면 여전히 나고 있다.
  • 전남 >장흥군

    우물물에 불을 띄워 그 불이 오래가면 풍년이라고
    연지마을에는 우물이 네 군데 있는데, 예전에는 우물물이 넘쳐흐를 정도로 양이 많고 물맛도 좋았다. 정월 대보름이면 1년에 몇 번씩 청소를 하며 아끼던 우물의 물을 종지에 떠다가 거기 불을 켜서 띄운 후 한해의 가뭄이 드는 정도와 풍작 여부를 점치기도 했는데, 불이 꺼지거나 도난을 당하지 않도록 불을 지키는 일을 아이들의 몫이기도 해서 어둑해져 어른들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아이들은 놀면서 불을 지켰다. 과거 연지마을 사람들에게 중요한 식수원이자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놀이터가 되어주던 우물 네 곳에 지금은 다 파이프가 박혀서 예전의 정취를 많이 잃게 되었다.
  • 전남 >진도군

    비를 점치는 팽나무
    마을 앞 팽나무는 수백 년이 된 나무이다. 팽나무에서 풀이 피어나면 그때마다 비가 와서 물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모도 심고, 물을 받았다고 한다. 한 번에 나무 잎이 모두 피면 비가 많이 와서 전부 모를 하고 풍년이 들었다. 옛날에는 세 그루가 나란히 있었으나, 지금은 한 그루만 남아 있다고 한다.
  • 경북 >봉화군

    '여군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봉화 삼계줄다리기
    봉화 삼계줄다리기는 경북 봉화군 봉화읍 삼계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게줄 형태로 줄을 제작해 남녀간에 편을 나누어 당기는 집단적 대동놀이이다. 한 해의 풍요를 기원하는 지역민의 기원을 담고 있으며, 현재는 가을철 축제에 재현되고 있다.
  • 경기 >용인시

    복과 풍년을 기원하는 용인 한터마을 동홰놀이와 줄다리기
    용인 한터마을 동홰놀이와 줄다리기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한터마을에 전승하는 정월대보름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다. 나무단을 엮어 세우고 보름날 달밤에 불을 붙이고 소원을 기원하는 신앙의식이 암수줄 줄다리기와 결합된 형태이다. 매년 실시했던 줄다리기와 동홰놀이는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새마을운동 사업이 일어나면서 자연적으로 1960년 초에 중단되었다. 경기도 지역에서 유일하게 동홰놀이와 줄다리기가 동시에 진행되던 곳인데, 아쉽게도 소멸되었다.
  • 전국

    올 해 풍년을 두고 마을 대항으로 벌이는 횃불싸움
    횃불싸움은 정월대보름에 홰를 들고 마을 대항으로 벌이는 싸움으로 이긴 마을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달맞이를 할 때 달의 윤곽과 색으로 풍년을 점치기도 한다. 우선은 무조건 달을 먼저 본 사람이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여 대보름 저녁에는 마을 청년들이 앞다투어 마을에서 달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으로 뛰어간다. 달의 색으로 풍년을 점치는 경우에는 달이 붉은 색을 띠면 가물고 흰색이면 홍수가 난다고 한다. 또 달 주변이 두터우면 풍년이고 얇으면 흉년으로 내다보면서 한 해 풍년을 점치기도 하였다.

목숨을 바쳐 사람을 지킨 동물들

우리나라 곳곳에는 위기에서 주인을 구하거나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동물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들은 동물과 인간이 깊은 정과 신의를 나누었음을 보여주지요.
부산 개좌산에는 산불에서 주인을 구한 충견에 대한 전설이 전해집니다. 주인이 깜빡 잠든 사이에 주변에 불이 번지자, 그의 길동무였던 개가 자기 몸에 물을 적셔 불길을 막아주었다는 겁니다. 개는 주인을 대신해 죽음을 맞았고, 사람들은 사고가 있던 곳을 '개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의미로 '개좌산(개제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0년간 밥을 챙겨준 선비에게 은혜를 갚은 물고기도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물고기는 승천하기 전 선비에게 뜻을 펼칠 방도를 알려주었고, 선비는 그 예언대로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폐단이 있던 조선의 조세 정책을 개혁하며 백성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하죠. 그가 바로 조선 후기 명재상 김육 선생입니다.
이 외에도 마음씨 착한 처녀에게 은혜를 갚고자 천 년 묵은 지네와 싸운 두꺼비부터, 전염병으로 고생하던 마을 사람들을 힘껏 도운 소 두 마리까지, 전국에 전해지는 의로운 동물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희생과 보은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보여주며 숭고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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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기장군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묻은 부산광역시 반송동의 개좌골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산에 속해 있는 각 진영에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당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살던 ‘서홍인(徐弘仁)’도 부산성에서 입방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노부모를 봉양하기에 집에서 매일같이 2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부산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개좌산 고갯길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서홍인이 위험해지자 그가 길동무 삼아 데리고 다니던 개가 개울물을 묻혀 서홍인 주변에 번지는 불을 껐다. 그런데 개는 연기 속에서 질식해 죽었다.
  • 충북 >청주시

    은혜 갚은 까치들이 살았던 청주 까치말
    까치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버드나무 가지를 쳐다보니 독사 한 마리가 새끼 까치를 잡아먹으려고 둥지로 가는 중이었다. 이를 본 이 교리는 표창으로 독사의 꼬리를 잘랐다. 꼬리 잘린 독사는 실개천에 들어가 독을 내뱉었는데, 이를 몰랐던 이 교리는 표주박으로 그 물을 떠먹으려고 했다. 이때 까치가 날개로 표주박을 쳐내어 이 교리의 목숨을 구했다. 이후 사람들은 까치가 살았던 마을이라 해서 까치말, 뱀이 독을 뿜던 실개천은 뱀내라고 불렀다.
  • 경남 >밀양시

    논밭 갈다 죽은 소를 언덕에 묻어준 밀양 우곡마을
    우곡(牛谷)마을은 경상북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의 자연마을로 해발 674m의 만어산과 해발 640.1m의 구천산 사이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곡(牛谷)마을은 우곡리 한 가운데 있는 중심마을로 우실·웁실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우곡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소 돌림병이 돌아 몇 년 동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면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소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소를 부려 밭을 갈았는데 소가 너무 힘들어 두 마리가 동시에 죽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스스로 ‘우곡(牛谷)마을’이라 불렀다.
  • 경기 >성남시

    지네를 물리쳐 처녀에 은혜 갚은 두꺼비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에 ‘두껍능산’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꺼비는 처녀가 부엌에 있을 때마다 찾아오고, 그런 두꺼비에게 처녀는 매번 밥을 주었다. 처녀가 시집을 가도 두꺼비는 따라갔다. 어느 날 처녀를 해하려는 지네를 물리치지만, 두꺼비는 그만 죽고 만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두꺼비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 강원 >원주시

    꿩이 죽음으로 은혜를 갚은 원주 치악산
    치악산은 해발 1,288m이며 우리나라 16번째 국립공원으로 1984년에 지정되었다. 치악산은 원주시·횡성군·영월군 등 세 개 시·군의 9개 면·동에 걸쳐있는데, 치악산 전체 면적 중 많은 부분은 횡성군에 속한다. 치악산은 예전에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이라 불리던 산인데, 꿩의 보은설화에 의해 지금과 같이 치악산으로 바뀌었다.
  • 경기 >가평군

    하늘의 덕을 입은 연못, 경기도 가평의 천덕소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에는 잠곡서원 터가 있고, 그곳에는 천덕소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때 김육 선생은 홀로 청평에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선생이 밭에 씨를 뿌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연못가에 앉았다. 이때 연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라 자신의 곁으로 떨어졌고, 그 물고기가 불쌍했던 선생은 자신의 밥을 덜어 물고기에게 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선생은 십 년 동안 물고기에게 밥을 주었다. 어느 날 선생이 한양으로 가려고 하자 물고기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며, 선생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뜻을 펼칠 방도를 알려주었다. 물고기의 말대로 한 김육 선생은 큰 벼슬을 얻었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김육 선생은 물고기의 보답에 감사하며, ‘하늘의 덕을 입은 연못’이라는 뜻에서 ‘천덕소’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은혜를 갚은 잉어
    옛날에 돌쇠라는 총각이 살았는데,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잉어를 잡아 온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잉어를 사서 강가에 풀어주었다. 그 날 이후 저녁에 밥상이 차려져 있어 이웃집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줄 알고 감사히 먹었다. 하지만 매일 이 일이 반복되자 궁금증이 생겨 멀리서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처녀가 집을 들어가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어보니 동네 아이들에게 잡혔던 잉어라며 풀어줘서 은혜를 갚기 위해 매일 밥상을 차렸다고 한다.

자유연애부터 혼인신고까지, 한국 혼례문화 변천사

혼인은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시대마다 달랐습니다. 가깝고도 익숙한 조선의 역사를 먼저 들여다보면, 남녀유별과 가문 중심의 유교 가치관이 강조되면서 중매혼이 자리를 잡았는데요. 결혼식 날이 되어서야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이혼의 권리가 남성에게만 주어지고 여성들의 재혼이 금지되는 등 남성 중심의 풍습이 두드러졌지요. 한편 왕실에서는 일종의 오디션인 간택 제도를 통해 배필을 정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김춘추와 문희, 서동과 선화공주처럼 자유로운 연애가 가능했던 삼국시대와 무척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제주도의 혼례 문화는 내륙과 달랐습니다. 문중의 영향력과 결속력이 약했기에 혼례는 친인척과 마을 전체가 함께하는 동네잔치였습니다. 준비부터 잔치까지 길게는 7일이 걸렸으며, 외가와 여성의 참여도 활발했지요.
개화기를 지나며 신여성들을 중심으로 자유연애 인식이 확산되었고, 법적으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1960년 혼인신고가 법적 효력을 갖게 된 것이죠. 이를 통해 결혼은 집안 간의 결합을 넘어 두 개인의 권리와 의무가 법으로 보호받는 관계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부부의 인연을 맺는 과정은 시대마다 달랐지만, 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겠지요. 한국 혼례의 변화상을 살펴보며 혼인의 의미를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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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혼례 등 주요행사 때 입었던 왕실 여성의 최고 예복, 적의
    적의(翟衣)는 조선시대 왕비의 의복으로 왕비가 큰 제례에 참여할 때와 가례를 올리거나 책례(册禮)를 받을 때 대수(大首)머리와 함께 착용하였다. 조선 초기와 국말 적의의 구성이 달랐으며 대한제국 시대의 적의는 왕의 면복 제도처럼 옷과 부속품으로 이루어진다. 상하의로는 적의(翟衣), 전행웃치마, 중단(中單)을 입고 허리에는 대대(大帶)와 옥대(玉帶)를 매었으며 청말(靑襪, 푸른색 버선)에 청석(靑舃)을 신었다. 그 외에는 폐슬(蔽膝), 패옥(佩玉), 후수(後綬), 하피(霞帔), 규(圭)를 갖췄으며, 마지막으로 머리에는 대수(大首)를 얹었다.
  • 전국

    전통 혼례복으로 인기리에 재현되고 있는 복온공주의 활옷
    활옷은 공주나 옹주가 혼례 때 입는 예복이지만, 왕실을 넘어 민간에도 허락되었으며 지금도 여성의 혼례복으로 제작되고 있다. 활옷에는 봉황, 나비, 모란 등 길상문을 수놓아 혼인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를 축복하였다. 활옷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문양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 복온공주의 활옷은 현존 유물 중 가장 오래된 데다 보존도 잘 되었고, 유일하게 착용자가 알려진 유물일뿐더러 재단과 자수부금이 뛰어나다. 이 활옷은 1987년 한상수 자수장에 의해 재현된 이래 수많은 한복 전문점에서 전통 혼례복으로 인기리에 제작되고 있다.
  • 전국

    혼례절차의 모든 것, 혼례 홀기
    혼례는 좁게 보면 혼례식만을 말하며, 넓게 보면 양쪽 집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한 때부터 혼례식까지 혼인과 관련된 모든 절차를 의미하기도 한다. 삼국시대 불교 기반의 화혼식부터 조선시대 혼례식, 그리고 1890년대부터 시작된 근대식 혼인까지 혼인의 과정은 계속해서 변화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절차는 유지되고 있다. 홀기는 혼인 의식의 절차를 기록한 것으로 단순히 옛날 것을 그대로 남기는 것이 아니다. 오래되고 낡은 홀기는 새롭게 만들어지고 꾸준히 다듬어져 후손들에게 전해지며, 전통 혼례의 맥을 잇는다.
  • 전국

    복잡한 혈연으로 맺어진 도서지역의 독특한 혼인풍속, 겹사돈
    어업과 관련된 문화, 특히 도서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 겹사돈이다. 이것은 사돈관계가 중복되는 것으로 도서 지역에선 자주 볼 수 있는 문화이다. 도서 지역에서 이러한 문화가 두드러진 이유는 지역이 처한 상황과 관련이 깊다.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는 결혼을 섬 안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이촌향도 등으로 이전에 비해 이러한 문화는 다소 줄어들었지만 겹사돈이라는 문화를 통해 우리는 외부와 교류가 많지 않았던 섬사람들의 혼인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셈이다.
  • 서울 >마포구

    혼례에 관한 일을 총괄하는 전문 직업여성, 수모
    수모는 요즘으로 하면 헤어 디자이너,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웨딩플래너, 폐백 도우미 등 혼례를 총괄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전문직업인에 해당한다. 수모는 조선시대 한양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왕실 혼례 때는 한양에서 활동하던 수모들이 전부 동원되었다. 지방에서는 별도의 수고비를 줘야 수모를 데려올 정도로 혼례에 있어서는 갑의 위치에 있었다. 수모는 간혹 중매쟁이 역할을 할 때가 있는데, 이때 일정한 보수를 받았다는 점에서 전문 중매쟁이와 다르다.
  • 전국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연애혼
    연애혼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일반적인 혼인형태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가장 우선시 되는 혼인형태를 말한다. 이러한 연애혼은 사실 여러 이야기로도 남아있다. 그만큼 조선시대 이전에는 자유연애와 연애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 유교적 도덕이 강화되면서 연애혼의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개화기를 지나면서 지식인 여성인 신여성들의 인식의 변화와 함께 사회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 전국

    결혼 60주년 기념식, 회혼례
    회혼잔치는 회갑잔치와 마찬가지로 부부의 연을 맺어 60년 동안 함께 한 부부를 축하하는 자리이다. 회혼례는 자녀들이 부모를 위해 준비한다. 회혼례를 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한평생을 함께 살았고,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자녀가 없어야 한다. 회혼례는 날을 잡아 손님을 초대하고, 부부가 혼례복을 입고 혼례식을 재현한다. 혼례식이 끝난 후에는 회갑잔치처럼 큰 상을 차리고 부모님이 건강하게 오래 함께하시기를 기원한다. 그 이후에는 자녀들이 재롱을 부리며 부모를 즐겁게 한다.
  • 전국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의 혼인풍속
    조선시대에는 혼례에 많은 제한이 있었다. 계급과 나이에 따라, 성별에 따라 다양한 제한이 있었다. 왕실은 사대부 이하의 여인과 결혼할 수 없었고, 양반은 천민과 결혼할 수 없었다. 또 조혼 풍습을 막기 위해 나이에 대한 제한이 생겨났다. 재혼이나 이혼의 경우, 칠거지악과 자녀안 등 여성 차별적인 규정이 심했다. 남성은 쉽게 이혼하고 재혼할 수 있었으나 여성은 그렇지 않았다. 
  • 전국

    부부임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혼인신고
    법적,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부부관계를 공식적으로 알리는 제도가 혼인신고이다.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따로 신고를 하는 절차는 없었다. 이 절차는 1909년부터 생겨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혼인신고를 미루는 부부가 증가하고 있다. 어느 정도 서로가 맞는지 확인한 뒤에 신고함으로써 이혼을 했을 경우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이다.
  • 제주 >제주시

    결혼식을 공동체 잔치로 여겼던 제주의 혼인 풍습
    제주도의 혼례 풍속은 의례보다 잔치가 더 중심적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문중 조직이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혼례는 친인척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였다. 동시에 내혼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동네잔치이기도 했다. 따라서 제주도에서 혼인은 개인 혹은 어느 한 집안에만 한정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외가, 여성의 참여가 활발하였다는 점은 내륙과는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얀 눈으로 뒤덮힌 절경 즐기기

꽃들이 날리는 봄과 선명한 햇빛의 여름 그리고 오색찬란한 단풍 가득한 가을이 지나 흰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번 주말! 겨울의 정취를 한가득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떠나보면 어떨까요?

첫 번째로 알려드릴 곳은 청주의 상당산성입니다. 상당산성은 청주와 청원의 경계를 이루는 상당산 위에 쌓인 포곡식 석성인데요. 그곳에 올라 새하얀 눈을 즐기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다음은 무주의 덕유산입니다. 덕유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는데요. 특히나 겨울 풍경이 일품이라고 해요. 이곳저곳 피어있는 눈꽃과 서리꽃이 주변 산과의 조화를 이루며 겨울 낙원을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알려드릴 곳은 강릉의 오죽헌입니다. 오죽헌은 신사임당과 그의 아들인 율곡 이이의 생가로 우리나라 주택 중 역사가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해요. 고즈넉한 한옥들 사이에 내린 흰 눈 사이를 거닐다 보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분위기 속에서 겨울의 아름다움을 느낄 겁니다.

이번 주말, 지역N문화가 알려드린 여행지로 추억에 남을 겨울 여행 되시기를 바랍니다. 따뜻한 옷차림과 마음으로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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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청주시

    청주의 옛이름을 단 상당산성
    상당산성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7.5km에 청주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491.2m 상당산 위에 쌓은 포곡식 석성이다. 둘레가 4.2km, 높이 3~4m, 내부면적 220,000평이다. 『삼국사기』에는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서쪽으로 청주·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정조의 개혁정치와 문예부흥의 산실, 창덕궁 주합루
    주합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9호로 지정되어 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창덕궁 부용지 북쪽 언덕 높은 곳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 위층은 주합루라는 편액을 걸었다. 규장각은 도서관으로, 주합루는 열람실로 이용하였다. 이 주합루 일대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丁若鏞)·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덕무(李德懋)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또한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어진·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연꽃 향기 머금은 신선의 세상, 창덕궁 부용정
    부용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숙종이 1707년(숙종 33)에 지은 택수재(澤水齋)를 1793년(정조 17)에 정조가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부용정이 있는 부용지 주변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넓고 짜임새 있게 구조가 갖추어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다.
  • 전북 >고창군

    동백숲으로 유명한 선운사가 있는 고창의 선운산
    선운산(禪雲山)은 전라북도 고창군 심원면에 있는 해발 336m의 산이다. 산은 높지 않지만 산에 오르면 서해의 광활한 풍경과 변산반도를 볼 수 있고, 내장산과도 가까워 그 경관이 몹시 뛰어나다. 원래 도솔산이라 했으나 선운사가 창건되면서 선운산으로 개칭되었다. 선운산에는 백제 때 세워진 천년 고찰 선운사(禪雲寺)와 신라 때 창건된 참당사와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중생제도를 위해 수도를 했다는 진흥굴 등이 있다. 선운산에는 산딸기가 유명한데 그 때문에 고창 복분자가 유명하며, 선운산 아래로 흐르는 풍천에 사는 장어는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 전북 >무주군

    빼어난 설경과 구천동 계곡을 자랑하는 무주의 덕유산
    덕유산(德裕山)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 경상남도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 있는 산이다. 북쪽의 해발 1,614m인 향적봉(香積峰)을 중심으로 남쪽의 남덕유산(1,507m), 북서쪽의 적상산(赤裳山, 1,034m), 북동쪽에 거칠봉(居七峯, 1,178m), 남서쪽에 삿갓봉(1,419m) 등의 높은 봉우리들이 있다. 덕유산은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의 절경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다양한 수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무주군 설천면의 반송은 천연기념물 제291호이고, 음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6호이다. 무려 33경을 자랑할 정도로 비경이다. 유적으로는 고려시대에 쌓았다는 적상산성이 남아 있다.
  • 강원 >양양군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높은 양양 설악산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이 398.237㎢에 이른다. 설악산은 강원도 양양군·속초시·고성군·인제군 등에 걸쳐 있으며, 그 정상은 해발 1,708m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산 1번지에 속한다. 설악산은 가을부터 눈이 내려 그 이듬해 여름에야 녹으므로 설악(雪嶽) 또는 설산·설봉산·설화산·설산 등으로 불렀다고 한다.
  • 강원 >강릉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역사적인 건축물인 오죽헌은 강릉시 죽헌동에 있다.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오죽헌이라 불렀다. 안채 온돌방이 신사임당이 이이를 낳은 몽룡실이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역사가 오래된 건축물로 1938년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었다. 가장 오래된 익공집으로 추정되며 주심포 양식이 익공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겨울을 오롯이 담은 궁 이야기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고 싶을 때가 있지 않으신가요?
그럴 때는 고요하면서 웅장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궁에 방문해 보세요!
고궁의 여유로움이 여러분의 마음에도 휴식을 줄 수 있답니다.

이번 지역N문화에서는 쉼을 선물하는 고궁에 대해 알려드릴테니
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고궁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궁은 경복궁인데요.
경복궁은 조선왕조의 500년을 보여주는 곳으로
조선 왕실 5대 궁궐 중 그 규모가 상당하답니다.
경복궁에서 강녕전, 근정전, 경회루 등을 구경하며 성대한 궁의 모습을 눈으로 즐겨봅시다.

다음으로는 비밀의 화원 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창덕궁입니다.
창덕궁은 특히 후원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서양식 건물의 대온실은
전통 궁궐의 건축양식과 대비되어 또다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연못과 정자, 수목 등이 어우러진 풍경은 눈이 내리는 날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자태를 자아냅니다~

마지막으로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덕수궁입니다.
덕수궁에서는 좌우대칭과 비례가 돋보이는 신고전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석조전을 볼 수 있는데요.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전달하고 있어 주의 깊게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눈이 소복이 내리는 겨울날 궁궐에서 운치 있는 하루를 보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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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빼어난 경치를 즐기는, 창덕궁 승재정
    승재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순종 때 연못을 새로 파고 관람정을 지을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승재(勝在)’의 ‘승’자는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승재정은 빼어난 경치가 있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연꽃 향기 머금은 신선의 세상, 창덕궁 부용정
    부용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숙종이 1707년(숙종 33)에 지은 택수재(澤水齋)를 1793년(정조 17)에 정조가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부용정이 있는 부용지 주변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넓고 짜임새 있게 구조가 갖추어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고종의 북카페, 경복궁 팔우정
    팔우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팔각 2층 정자이다. 고종의 서재로 쓰였던 집우재에 딸려 있는 정자로, 일종의 북카페와 같은 역할을 한 정자이다.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책을 열람하기도 하고,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명성황후의 넋이 어린, 경복궁 옥호루
    옥호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청궁 곤녕합에 딸린 누각이다. 본래 1873년(고종 10)에 건청궁 건립 때 세워졌으나,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현장으로서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다. 2007년 건청궁 복원 때 옥호루도 복원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궁중 여인들의 연회지, 경복궁 청연루
    청연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번지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원래 대비의 거처인 자경전 내에 딸린 부속 건물이다. 1888년(고종 25)에 지어졌다. 경회루에서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었던 반면에 청연루에서는 대비, 왕비, 공주, 군부인 등 궁중 여인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연꽃 향기 은은한 경복궁 향원정
    향원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1867년~1873년 사이에 지어진 고종의 개인적 휴식처 건청궁의 후원에 세워진 정자이다. 향원지에 연꽃을 심어 놓고 이를 감상하기 위해 지어진 정자로, 연꽃의 향이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진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정자 이름을 따왔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인간과 하늘이 교감하는 작은 우주,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 창건 당시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편전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작은 누각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누각은 기울어지고 너무 좁아서 실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경복궁 수리를 명하면서 경회루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412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경회루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돌기둥만이 남았다. 고종 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 서울 >중구

    대한제국의 황실 건축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은 18세기 신고전주의 유럽 궁전건축양식으로 지은 것으로 당시대 건축된 서양식 건물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큰 3층 석조 건물이다. 1946년 덕수궁 석조에서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렸으며, 6·25전쟁 이후 1986년까지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활용되었다. 1992~2004년에는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다가 석조전을 복원 이후 2014년부터는 대한제국역사관이라는 명칭으로 개관하여 사용 중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맑게 하는, 창덕궁 청심정
    청심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이곳은 원래 천수정(淺愁亭)의 옛터로, 1688년(숙종 14)에 세우고 청심정으로 이름을 고쳤다. 청심(淸心)’이란 잡념을 없애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이다. 정자 남쪽 뜰에 빙옥지(氷玉池)라는 이름의 연못이 있고, 연못가에 돌 거북 한 마리가 있는데, 거북 등에 빙옥지(氷玉池)라고 각자되어 있다. 빙옥은 얼음과 옥을 아우르는 말이자 티끌 하나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깨끗함을 이르는 말로, 정자의 이름과도 의미가 잘 통한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옥류천 주변에서 밤을 지샐 수 있었던, 창덕궁 농산정
    농산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언제 지어졌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정조 대에 있었던 정자이다. ‘농산(籠山)’이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라는 뜻으로, 정자 주변의 산세를 묘사하고 있다. 다른 정자는 모두 사방이 열려 있는데 비해 이 건물은 문이 달려 있어 일반 행랑채 모양을 하고 있다. 부엌이 있어 옥류천(玉流川) 일대로 나들이한 임금을 위해 과일 등 음식을 장만하고, 추울 때는 편안하게 쉬거나 잠을 청했던 곳이다.

실내에서 즐기는 역사탐방

날씨가 점점 추워지면서 몸도 마음도 꽁꽁 얼기 마련인데요, 이럴때 몸과 마음을 녹여줄 수 있는 실내문화공간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목포근대역사관은 지난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으로 개관하여 목포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습니다. 다양한 전시를 진행하며 목포의 독립운동부터 문화전반의 면모를 살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연기향토박물관은 전통놀이를 보존하고 알리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익히 잘 아는 전통놀이부터 생소한 놀이를 알리기 위한 작업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족보박물관은 현대인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족보를 가족의 역사와 문화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박물관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족보의 구성을 보며 각 세대에 걸쳐 내려온 이야기들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역사를 품은 박물관에서 따뜻한 봄바람을 기다려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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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김해시

    ‘김해목재문화박물관’, 인류와 함께해 온 지혜로운 나무
    김해목재문화박물관은 나무, 숲,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관람객들이 자연과 함께 살아온 인류의 목재문화를 즐길 수 있게끔 다양한 시설을 갖춘 문화시설이다. 2008년 산림청 공모사업에 선정돼 2015년 반룡산 공원 안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사박물관과 달리 전시가 아니라 체험 중심의 공간으로 꾸며진 덕분에 나무의 종류와 특성을 온몸으로 이해하고 나무가 주는 따뜻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 대상별로 목공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해, 나무가 우리에게 주는 생활의 이로움과 정서적 안정감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
  • 전남 >목포시

    목포근대역사관으로 재탄생한 목포 구 목포 일본영사관
    전라남도 목포시 대의동에는 1900년 지어진 구 목포 일본영사관이 있다. 이곳은 일본이 목포에 거주하는 일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다. 이후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용도 변경이 계속되다 2014년 목포근대역사관 1관으로 개관하여 목포의 역사를 살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구 목포 일본영사관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1년 사적 제289호로 지정되었다.
  • 서울 >은평구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북한산 자락 아래 신한옥 이야기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은 신한옥인 은평한옥을 알리고, 은평구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2014년에 문을 열었다. 박물관 2층,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면 앞으로는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래로는 기와지붕이 멋진 은평한옥마을이 내려다보인다. 정자[용출정]에 잠시 걸터앉아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 밖은 야외전시장으로 은평 뉴타운 지역에서 발견된 석물과 통일신라시대 토기 가마를 볼 수 있다.
  • 경기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 주먹도끼가 우리에게 말을 걸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동양 최초로 주먹도끼가 발견된 전곡리 선사유적지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박물관에는 인류 진화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끔, 발달 단계별 인류의 모형이 전시됐는데, 그 규모가 세계적인 수준이다. 박물관 밖으로는 약 24만 평에 이르는 유적 공원이 조성돼 있다. 선사시대 움집은 물론 각종 동물과 선사인 등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고, 발굴 피트를 볼 수 있는 토층전시관이 따로 마련돼 있어서 함께 이용할 수 있다.
  •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국악박물관’, 흥으로 멋으로! 덩기덕 쿵덕
    국립국악원국악박물관은 서초구 우면산 자락 아래 세워진 국내 최초의 국악 전문 박물관이다. 1995년, 국립국악원에서 설립해 운영 중이다. 국악기와 악보, 국악 관련 서적은 물론 영상과 소리 자료, 국악 명인들의 이야기 등이 풍부하게 모여 있다. 전시 관람은 1층 ‘국악뜰’을 시작으로 2층의 ‘소리품’, ‘악기실’, ‘문헌실’, ‘아카이브실’, ‘명인실’, ‘체험실’을 순서대로 둘러보면 된다. 전시 관람을 마친 후 다양하게 제공되는 교육과 체험프로그램에 참가해 보는 것도 박물관을 백 퍼센트 즐기는 비법 중 하나다.
  • 충남 >부여군

    백제역사유적지구인 부여에서 만나는 ‘백제역사문화관’
    백제는 수도를 세 번이나 옮기며 번성을 꾀했던 고대국가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부여’는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낸 세련된 문화가 주목받는다. 2015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등재되었다. 부여는 사비성과 관련해 네 곳이 백제역사유적지구로 지정된 곳이다. 부여에서 1,400여 년간 잠자던 백제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백제사’관련 전문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백제역사문화관이다. 단지 내 조성된 백제왕궁, 왕실사찰, 고분도 함께 둘러보기 좋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 유교사상? 외우지말고 체험하세요
    유교문화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의 부속기관으로 2006년에 문을 열었다. ‘사람의 길, 대동의 꿈’을 기치로, 유교의 덕목과 사상을 관람객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전시실은 주제별로 나뉘는데, 유교와의 만남, 유교와 수양, 유교와 가족, 유교와 사회, 유교와 국가, 유교와 미래사회, 재지사림과 유교문화, 유교와 과학 순서로 둘러보면 된다. 어려울 수 있는 유교의 가치를 구체적인 상황별로 풍부한 자료와 디오라마를 이용해 제시하여,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유교를 현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유교가 발전시킨 과학 기술이 무엇인지 등을 풀어낸 전시 기획이 매력적이다.
  • 경기 >광명시

    충현박물관, 멋진 한옥건물에서 즐기는 종가의 역사
    충현박물관은 오리(梧里) 이원익(1547~1634년) 선생의 종가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다. 청렴하고 백성을 사랑한 이원익 선생의 선비 정신을 계승하고 지키기 위해, 2003년 13대 종손이 설립했다. 이원익 선생의 호인 ‘오리[약 2km의 거리]’란 어느 날 원수 사이였던 유척기가 조언을 구하러 찾아왔을 때, 남편을 잃고 재가한 부인을 빗댄 이야기를 들려주어, 유척기가 위기를 모면할 수 있도록 해줬다는 설화에서 나왔다. 탁월한 지혜로 앞을 내다본 오리 이원익 선생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일화다. 충현박물관은 4채의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원익 선생 관련 유물과 종가에서 사용하던 물품을 중심으로 전시돼 있다.
  • 인천 >중구

    인천개항박물관, 1900년대 신세계 인천의 모습을 찾아서!
    인천개항박물관은 20세기 초 개항기 때의 인천을 두루 살펴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옛 일본제1은행 건물을 개조하여 2010년에 문을 열었다. 모두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는데, 주제별로 ‘인천의 개항과 근대 문물(제1전시실)’, ‘경인철도와 한국철도사(제2전시실)’, ‘개항기의 인천 풍경(제3전시실)’, ‘인천 전환국과 금융기관(제4전시실)’으로 나뉜다. 개항 당시의 시대 상황을 각종 문헌과 실물 자료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근대 역사의 학습장이다.
  • 경남 >의령군

    의병박물관, 의병의 뜻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
    의병박물관은 2012년 의령에 세워진 공립 역사박물관이다. 의령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에 맞서 싸운 곽재우 장군을 비롯해 나라를 지킨 수많은 의병에 대해 알리고, 그 정신을 기리려고 설립됐다. 전시실은 크게 ‘의병유물전시실’과 ‘고고역사실’로 나뉜다. ‘의병유물전시실’에서는 임진왜란이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는지, 곽재우 장군을 중심으로 의령에서 봉기한 의병들이 어떻게 나라를 구했는지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고고역사실’에는 의령의 역사, 인물, 문화가 시대와 주제별로 전시돼 있어 의령의 과거와 현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하나의 함성 하나의 바람, 독립

1919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대한독립만세"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로부터 106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그들 덕분에 지금과 같은 평온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은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향화는 서울 출신으로 수원에 살던 정도성과 결혼을 하였으나 이혼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 기생을 택했습니다. 그는 1919년도 다른 기생들의 독립운동 소식을 듣고 수원의 기생 33명을 모아 3월 29일 거사를 치렀습니다.

이종일은 1858년 태안 출신으로 정3품의 위계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1896년 독립협회가 발족하자 민권 의식과 민권사상 고취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3월 1일 당일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습니다.

임명애는 파주의 독립운동가로 3월 10일과 26일 두 차례에 걸쳐 주도하였습니다. 3월 10일에는 교하리 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백여 명을 이끌었고 3월 26일에는 군중 7백여 명을 이끌어 독립운동을 하였습니다.

모든 독립운동가의 용기와 희생이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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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강화군

    강화군 장날 독립만세운동 선봉장, 유봉진
    유봉진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유봉진은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1919년 3월 18일 강화군 부내면(府內面) 장날에 독립만세운동을 계획, 주도하였다. 유봉진은 1919년 3월 8일 길상면(吉祥面) 온수리(溫水里) 교회 목사인 이진형(李鎭亨)의 집에서 황도문(黃道文)·황유부(黃有富) 등과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이튿날 수십 명의 모임에서 3월 18일 강화 장날을 이용한 만세운동을 결의하였다. 강화 장날의 만세운동은 단일 사건으로는 43명이 체포되어 서울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원이 체포된 사건이다.
  • 경남 >의령군

    의령읍 장날에 독립만세를 외친 여세병
    여세병은 1919년 3월 14일 의령장터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여세병은 아버지 여민호(余玟鎬)와 어머니 현풍곽씨 곽유관(郭有寬)의 딸 사이에서 두 아들 가운데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여세병은 1919년 3월 14일 의령 장터에서 수많은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의령장터 독립만세운동 사건으로 체포된 여세병은 1919년 4월 28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요 혐의를 받아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1990년 여세병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전남 >목포시

    광주 독립만세운동의 주도자, 박애순
    박애순은 독립운동가로 정명여학교·수피아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였다. 박애순은 투철한 애국심의 소유자로 학생들에게 자주독립 당위성을 강조하며 광주 독립만세운동 주도하였다. 박애순은 수피아여학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10일 광주 만세운동 주도하였다. 박애순은 이 과정에서 체포되어 광주법원에서 1년 6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하였다. 박애순은 출소 후 서울안동교회 전도사를 역임하였으며 정부는 1990년 박애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인천 >중구

    인천고등학교 39회 졸업생들의 비밀결사와 송재필
    1943년 충청북도 영동경찰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무산된 학병거부 비밀결사는 인천고등학교(옛 인천공립상업고등학교) 1941년도 졸업생(39회)들이 주도하였다. 인천고등학교 39회 졸업생 중 조선인 학생은 47명이었고 그 가운데 24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고문으로 사망하거나, 후유증으로 고생을 하였다. 인천고등학교 39회 졸업생의 거사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획기적인 일면이 있다. 이를 기념한 추모비가 인천고등학교 운동장에 세워져 있다.
  • 경기 >화성시

    제암리 학살 사건의 희생자 홍원식
    홍원식은 본관이 남양으로, 1877년 10월 13일 수원군 향남면 제암리 넘말에서 태어났다. 홍원식은 고향 제암리에서 제암교회의 안종후와 고주리의 천도교인 김성렬 등과 함께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구국동지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홍원식은 발안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활동한 뒤 제암리 학살 만행으로 순국하였는데, 당시 부인 김씨도 같이 순국하였다. 1968년 대한민국 정부는 홍원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 1991년 부인 김씨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충남 >태안군

    3.1운동의 숨은 주역, 이종일
    이종일은 1858년 11월 6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서 태어났다. 호는 옥파(沃坡), 천도교 도호로는 묵암(黙菴)이다. 선생은 성장하면서 두뇌가 영특하여 인근 마을에서 신동이라 불릴 정도로 칭송이 자자했다. 이종일은 1896년 『독립신문』에 개화의식에 대한 논설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1896년 11월 선생은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민족의식의 진작과 민족사상 고취에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1898년 3월 동료들의 추대를 받아 개화사상의 대중기반인 대한제국민력회를 조직, 회장에 취임하였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독립운동에 힘쓴 기생, 김향화
    김향화는 서울 출신으로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수원의 정도성과 결혼했으나 18세인 1914년 이혼하였다. 친정으로 돌아온 김향화는 그해 부친의 사망으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가족 부양을 위해 기생이 되었다. 김향화는 기생 신분으로 1919년 3월 29일 수원경찰서 앞에서 33명의 수원 기생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벌였다. 이로 인해 두 달여의 감금, 고문을 당하고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으며 2009년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조국광복과 여성들의 지위향상에 앞장선 권애라
    권애라는 개성(開城) 출신으로 아버지는 권태준이다. 그녀는 7세에 개성 두을라여학교에 입학하고 졸업 후 중등과를 졸업한 뒤 이화학당에 입학하였다. 개성에서 유치원 교사로 재직 중 1919년 3월 손병희가 보낸 독립선언서 80매를 어윤희 등과 개성군 송도면에 배포하며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중일 전쟁이 진행 중이던 1942년 2월에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관동군에 체포되어 징역 12년을 선고받고 창춘 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광복 후 귀국하였다.
  • 경기 >파주시

    파주 독립만세운동을 이끈 여성, 임명애
    임명애는 파주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임명애는 파주 와석에서 1919년 3월 10일과 26일 만세운동을 두 차례 주도하였다. 임명애는 남편 염규호(廉圭浩) 그리고 김선명(金善明), 김수덕(金守德) 등과 격문을 배포, 만세운동을 두 차례 주도하였다. 이 만세운동으로 임명애는 체포되어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출판법 위반 혐의로 18개월을 선고 받았다. 이 당시 임신 상태에서 투옥되었다가 1919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출산 후 11월에 아기와 함께 재입소 하였다. 정부는 임명애에게 1982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전북 >남원시

    불교 대중화를 통해 독립운동을 전개한 3.1운동 민족대표 1인 백용성
    백용성은 전라북도 남원군 하번암면 죽림리(지금의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에서 백남현과 밀양 손씨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백용성의 본관은 수원(水原)이고 속명(俗名)은 상규(相奎), 법명(法名)은 진종(震鍾), 법호(法號)는 용성(龍城)이다. 백용성은 산사 생활을 정리하고 1911년 서울로 상경하여 종로 봉익동에 대각사(大覺寺)를 창건하여 ‘내가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자(自覺覺他)’는 대각교운동(大覺敎運動)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인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였다.

조선시대 로맨스, 은행 나눠갖기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로 연인들이 선물을 나누고 마음을 고백하는 날입니다.
밸런타인데이는 서양에서 유래된 이벤트라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초콜릿을 나누며 마음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 같네요.
그렇다면 과거에는 어떤 식으로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을까요?

우리나라에는 경칩이라고 하여 개구리가 봄이 되어 알에서 깨어나는 절기가 있는데요.
옛 농업서적인 '사시찬요'에서는 양력으로 3월 5일 전후의 시기를 한국식 밸런타인데이라고 말한답니다~
경칩이 되면 가을철 모아뒀던 은행을 모아 선물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왜 은행을 선물했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은행나무는 암수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며 암수가 함께여야만 열매를 맺기 때문에
은행을 사랑의 결실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과거 선조들의 은행나무 로맨스를 알아보니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것만 같네요~
다가올 경칩을 기다리며 로맨스로 물들어지는 하루를 보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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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정선군

    사랑 이야기가 전하는 강원도 정선의 '아우라지 나루'
    강원도 정선군 여량면 여량리에는 아우라지 나루터가 있다. 태백산에서 발원한 물이 임계를 지나 여량리로 흘러드는 골지천(骨只川)과 발왕산에서 발원해 노추산과 구절리를 지나 여량으로 흘러드는 송천(松川)이 만난다. 골지천은 물살이 느리고 순해 암물[陰水]이라 하고, 송천은 물살이 빠르고 힘차 수물[陽水]이라 부른다. 암물과 수물이 만나는 곳이기에 남녀의 만남으로 상징화한 전설이 전한다. 유천리 양지마을 처녀와 여량리 총각의 애절한 사랑이 다긴 아우라지 전설이 전한다. 아우라지 나루는 남한강을 따라 서울로 뗏목을 운반하던 출발지로, 뗏목을 타고 가던 총각이 물에 빠져 죽자, 처녀도 그를 따라 죽었다는 전설이 어려있다. 이를 기념해 아우라지 처녀상이 세워졌다. 여량리와 구절리를 잇는 나루는 도로가 난 지금까지도 사용 중이다.
  • 제주 >제주시

    사랑과 농사의 여신, 자청비
    자청비에 관한 설화는 제주 지역에서 전승되는 다양한 본풀이 중 일반신본풀이에 해당한다. ‘세경본풀이’이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자청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 ‘자청비 신화’라고도 불린다. 자청비에 관한 설화는 주인공 자청비가 시련을 극복하여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고, 농경신이 되었다는 내력을 담고 있다. 이 설화는 이야기의 전개 과정이 그 무엇보다 드라마틱하여 현재 전해지고 있는 본풀이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조통장군을 사랑한 아왕공주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 옥과리에서는 서낭당을 ‘조장군사당’이라 부른다. 조장군사당에는 나무로 만든 남녀 신상(神像)이 있다. 이 신상에 얽힌 설화가 있다. 고려시대 신종 때 곡성군 출신의 조통(趙通)이라는 학자였던 장군이 있었다. 당시 신종에게는 아왕공주라 부르는 딸이 한 명 있었는데, 조통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그런데 조통은 이미 결혼을 했고 자식까지 있었다. 조통은 아왕공주를 피해 국경지역으로 갔지만, 부상을 입고 고향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 한편, 아왕공주도 병석에 눕게 되었다. 남산에서 병을 치료하고 무속을 공부한 아왕공주는 옥과로 내려와 조통의 묘를 보살피다가 옥과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 경기 >동두천시

    원효대사를 그리워했던 요석공주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에 소재한 소요산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자재암이 있고, 이곳에는 원효대사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가 아들 설총과 함께 머물렀던 요석궁의 옛터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요석궁의 옛터는 찾을 수 없으나 그들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지금도 전하고 있다.
  • 경북 >경주시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에는 영지가 있다. 이 저수지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아사달은 불국사의 석가탑을 만들기 위해 신라로 오고,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아사녀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불국사에 온다. 그러나 탑이 완성되기 전에는 만날 수 없다는 금기로 인해 아사녀는 영지에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그리움에 지쳐 영지에 몸을 던진다. 아사달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불상을 조각했다고 한다.
  • 강원 >화천군

    슬픈 남녀의 사랑을 간직한 화천군 풍산리와 처녀고개
    강원도 화천군 화천읍 풍산리(豐山里)와 처녀고개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사랑하는 두 남녀가 있었다. 도령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갔고, 처녀는 도령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도령을 기다리며 매년 꽃버선을 나무에 매달던 처녀는 어느 해, 실족하여 죽고, 도령은 장원급제를 해서 돌아왔다. 처녀가 죽은 사실을 안 도령은 벼슬을 버리고 처녀의 원혼을 달래주었다. 그 후 마을에는 풍년이 들어 풍산리라고 불렀고, 처녀가 죽은 고개를 처녀고개라 불렀다.
  • 인천 >강화군

    강화도령이 첫사랑을 만난 약수터, 인천광역시 강화군의 찬우물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에는 ‘찬우물’ 또는 ‘냉정약천’, ‘냉정약수’ 등으로 불리는 약수터가 소재한다. 찬우물약수터는 강화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약수터 가운데 한 곳이다. 조선시대 철종이 어린 시절 강화도 용흥궁에서 지낼 때 냉정리에 있던 외갓집을 오가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잠시 쉬어서 물을 마셨던 곳이 바로 찬우물약수터다. 또한 철종과 같은 마을에 살던 강화도 처녀 봉이를 처음 만난 곳도 찬우물약수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