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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남해에서 일상을 리프레쉬하다

해가 길어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진 걸 보니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왔나 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지루한 나의 일상을 리프레쉬 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 보니 대한민국의 숨은 보석, 남해로 목적지를 정하였는데요.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살랑이는 바람 사이로 걸을 수 있는 해안가와 이국적인 경관이었습니다. 남해는 동해, 서해와는 달리, 수많은 섬을 지나가면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으로 그 자태가 멋을 선물하고, 울창한 숲 사이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마음껏 누리게 한답니다. 남해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독일마을은 여기가 마치 한국이 아닌, 독일을 여행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이곳에서 이국적인 정취와 특색있는 요리도 맛보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해파독전시관을 방문하여 독일로 가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도 생생히 살펴보면 좋을 듯합니다. 독일마을을 즐기고 난 후에는 울창한 숲의 모습을 보여주는 물건리방조어부림에서 피톤치드를 온몸 가득 담아보세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우거진 숲은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답니다. 일상 속에서 지쳐가는 심신에 리프레쉬가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남해로 떠나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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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래길 돌아 맛보는 쫄깃한 죽방멸치”
    '바래'는 남해의 옛 단어로, 남해 바래길은 어민들이 일을 나가고 들어오던 남해의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남해 바다에는 아직 죽방렴이 남아있다. 죽방렴은 좁은 바다의 물목에 대나무 발 그물을 V자로 세워 멸치를 잡는 어업방식을 뜻한다. 죽방렴 멸치가 맛있는 이유는 사람도 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하듯, 남해 물목의 거센 조류에서 헤엄치며 살기 때문이다. 죽방렴 멸치는 살이 탄력있어 쫄깃하고 맛있다. 
  •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 경남 >남해군

    죽방멸치 쌈밥의 명가(名家), 남해 우리식당
    우리식당은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에 있는 향토음식 전문점이다. 1978년 류원찬∙이순심 씨 부부가 현 위치에 멸치쌈밥과 멸치회무침을 전문으로 하는 점포를 낸 지 43년이되는 식당이다. 우리식당 메뉴의 주된 재료인 멸치는 식당 앞 바다인 지족해협에서 죽방렴(竹防簾)이라는 전통어로 방식으로 잡은 신선한 멸치만을 사용한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자재는 국산을 사용한다. 음식의 양념도 인공감미료로 일절 맛을 내지 않고 식당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만을 사용하므로 담백한 감칠맛이 도는 음식이 특징이다.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다의 향긋함을 마신다, 유자차와 유자화채
    유자차와 유자화채는 옛날부터 만들어 마셨던 우리나라 전통 음료로서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 조선 후기에 저술된 여러 전통 조리서에도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다. 두 전통 음료의 주요 재료인 유자는 남해안 지방과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었으나 예로부터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에서 나는 유자가 유명하였다.
  •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 경남 >남해군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서불이 지나간 남해 상주리 석각
    남해군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도서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남해 금산 서남쪽에는 거북바위라고도 불리는 상주리 석각이 있다. 거북바위의 엉덩이 부근에는 알 수 없는 형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읽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그 내용은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이다. 서불은 진시황의 지시로 불로초를 찾는 여정을 떠난 인물인데, 그가 이곳 남해 금산을 지나며 거북바위에 글을 새겼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선사시대의 그림 또는 거란의 문자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 경남 >사천시

    리미술관, 남해 바닷냄새로 코끝 찡한 유쾌한 예술의 집
    리미술관은 사천에 생긴 ‘1호 미술관’이다. 항공 우주 산업의 도시로, 문화예술 인프라가 많지 않은 사천을 문화와 감동이 넘치는, 삶 속에 예술이 살아있는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2015년에 세워졌다. 지역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사천의 문화와 교육을 이끄는 기관으로써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사천에 여러 미술관이 들어서게 한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매년 사천과 남해 출신의 작가를 초대하여 수십 차례의 기획전시를 열고, 레지던시 ‘MOVE IN’을 운영 중이며, 어린이는 물론 성인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민과 소통하고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유배문학관, 글이 절로 써지는 아름다운 남해를 즐길 수 있는 곳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와 유배 문학을 주제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남해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네 개의 전시실에서 주제별로 남해의 유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향토역사실’에는 남해의 자연과 역사, 문화, 죽방렴 멸치잡이 등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유배문학실’은 국내외 유배의 역사와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형벌의 종류에 대해 알고, 대나무 숲처럼 꾸민 벽면에 적힌 아름다운 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유배체험실’은 관람객들이 유배객이 되어 유배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실인데, 전자 상소문 쓰기와 VR 체험이 준비돼 있다. 마지막으로 ‘남해유배문학실’에서는 남해로 유배해 온 대표적인 문인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에서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 '독일마을 맥주축제'
    독일마을은 남해군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2010년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모태로 개최된 축제로, 이색적인 독일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정통 독일맥주를 맛볼 수 있다. 독일마을 주변에 다양한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 경남 >남해군

    정월 대보름날 즐기는 특별한 민속놀이, 남해 선구 줄끗기
    남해 선구 줄끗기는 정월 대보름날 벌이는 줄다리기로, 풍농과 풍어를 함께 기원하기 위해 행해진다. 남해 선구 줄끗기의 특이한 점은 암고(여성 상징)와 수고(남성 상징)가 따로 나뉘어 있지 않고, 양편이 힘겨루기를 해서 이긴 쪽이 수고를 맡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줄다리기에서는 여성 편이 이겨야 풍요가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암고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결국 암고와 수고가 한 번씩 승자가 되는 것이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된 6.25전쟁

2024년 6월 25일은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7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1945년 한반도는 새 나라를 세울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념적 대립이 생기게 되면서 한반도에는 두 개의 체재가 들어섰고 이념적 갈등은 결국 6.25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동이 트기 전, 대포 소리에 잠이 깼어요. 사람들이 짐을 메고는 어디론가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더군요.
그제야 알았어요. 전쟁이 일어났다는걸요." - 6.25를 겪은 민간인의 증언

6.25전쟁은 3년간 많은 인명 피해를 냈습니다. 한국군 61만, 유엔군 54만, 북한군 80만, 중공군 97만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6.25전쟁은 민간인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요. 남한은 100만, 북한은 107만여 명의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렇게 수백만 명의 사상자들과 함께 전쟁고아와 이산가족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전쟁의 참혹한 비극과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6.25전쟁을 배경으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참전 용사들과 전쟁 피해자들을 생각하고 그날들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된 우리의 『6.25 특선 영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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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중구

    목숨을 건 첩보전을 그린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
    2016년 7월 27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1950년 9월 15일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감행된 군사작전인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이재한 감독의 영화이다. 양창훈 제작, 이만희각본,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 진세연, 정준호 등이 출연했다.
  • 부산 >중구

    전쟁을 넘어 굳세게 살아가는 삶, 영화 『국제시장(2014)』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이 주연을 맡은 휴먼 드라마 영화이다. 1950년대 6·25전쟁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역사의 비극·감동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전쟁영화이다.
  • 경북 >포항시

    71명의 학도병이 포항을 지켜낸, 영화 『포화속으로(2010)』
    2010년 이재한 감독이 발표한 「포화속으로」는 6·25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쟁 영화로, 1950년 8월 11일에 포항여자중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차승원이 북한군 장교 역할을, 빅뱅의 멤버 최승현이 학도병을 맡았고, 권상우는 불량 청소년에서 애국자로 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 강원 >평창군

    6·15선언의 정신을 영화로 보여준 『웰컴 투 동막골(2005)』
    영화 「웰컴투동막골」은 1950년 11월 6·25전쟁이 한창이던 ‘동막골’이라는 강원도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유엔군, 북한군, 국군 일행이 우연히 이 마을에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영화적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이 없는 한 공간에 그들을 배치시킴으로써 관객들이 이전의 전쟁영화와는 달리 이데올로기의 안경을 벗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 경남 >합천군

    가족의 희생사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
    2004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으로 한 형제의 산산이 부서진 삶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그린 영화이다. 전장에 끌려간 형과 동생, 두 형제는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숱한 운명적 순간을 겪으며 살아남지만, 형이 동생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고 산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게 되는 이야기다.
  • 전국

    전쟁의 잔상에서 살아남기, 영화 『만무방(1994)』
    엄종선 감독이 연출한 「만무방」은 196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오유권 작가의 중편소설 『이역의 산장』을 ‘만무방’이란 제목으로 바꾸어 영화화한 것이다. 1994년 대종필름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6·25전쟁 말기 접전지역의 한 오두막에서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또 다른 생존전쟁을 그린 전쟁영화로 장동휘, 윤정희, 김형일, 신영진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은 101분이다.
  • 경기 >부천시

    안정효의 소설을 다룬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1991년 한진흥업에서 제작한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미국에서 출판되어 화제를 모은 안정효의 소설 『은마(Silver Stallion)』를 원작으로 하여 장길수 감독이 연출하고, 이혜숙, 김보연, 손창민, 전무송 등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 123분이다. 6·25전쟁 중 미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유입된 미국 문화로 인해 급속히 붕괴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의 모티브는 부천군 심곡리[현 부천시 심곡동]에 살았던 작가의 전쟁 피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 전남 >구례군

    이태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부군(1990)』
    1990년 개봉한「남부군」은 종군기자 이태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로 출간된 원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제작비 14억 원에 3만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대작으로 주목을 끌었다. 5년에 걸친 지리·소백산 지구의 빨치산 토벌전을 배경으로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반동으로 몰려 갈 곳을 잃고 산속으로 들어간 빨치산의 전투 활동을 그렸다. 안성기, 최민수, 최진실, 이혜영 등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들과 왕년의 스타인 트위스트 김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열연했고, 장선우의 각본으로 정지영감독이 연출하였으며, 남프로덕션에서 제작하였다. 상영시간은 157분이다.
  • 강원 >철원군

    598고지에서 국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 『전우가 남긴 한마디(1979)』
    「전우가 남긴 한마디」는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전술상의 요지인 598고지에서 국군의 활약상을 그린 전쟁영화이다. 2011년 독고영재가 당시 신예로 연기했던 영화촬영에 대한 후일담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9년 한진흥업에서 제작한 전쟁영화로 황길용의 원작을 백결이 각색, 이원세 감독이 연출하고, 진봉진, 장혁, 전영선, 김만 등이 출연했다. 상영시간 105분이다.
  • 전국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1976년 우진필름에서 제작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이다. 나한봉과 한성의 각본으로 진유영, 유영국, 김지혜, 장혁 등이 출연하였으며, 상영시간은 95분이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과 대적하는 국군의 고군분투와 희생정신을 그렸다.

제주의 감성을 품은 박물관

어느덧 6월, 비에 젖은 흙을 가만히 들어 콧잔등에 대어보니 싱그러운 여름 냄새가 마음의 설렘을 더하여 줍니다. 곧이어 화창하게 내리쬐는 태양 빛에 못 이기듯, 푸른 바다와 초록빛 신록이 우거진 제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제주를 방문하는 여러분께 꼭 추천해 드리고 싶은 다양한 박물관이 여기 있습니다. 박물관 천국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어 취향대로 골라 방문할 수 있는데요. 제주와 잘 어울리는 이색적인 전시와 자연 건축물을 보며 색다른 경험도 해보고, 기념 사진도 찍어보며 인스타 핫플레이스 인증도 해보세요. 제주를 방문하는 여러분, 제주의 살랑이는 바람 따라 박물관 탐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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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서귀포시

    신나는 우주체험을 할 수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인류에게 하늘은 늘 탐구의 대상이었다. 하늘의 뜻을 읽는 자가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던 과거에서 우리는 점점 발전했다. 지금은 하늘을 넘어 우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인류의 노력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제주도에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다. 비행기부터 시작해 현재 탐험 가능한 우주와 미래의 모습과 다양한 체험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파일럿이나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어린이에게도 즐거움을 주겠지만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 강원 >영월군

    폐교에 400여 점의 인도 미술품을 전시한 인도미술박물관
    카레와 요가로 익숙해졌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인도의 예술품과 문화에 매료되었던 우리나라 화가인 박여송 씨와 인도지역연구가 백좌흠 씨는 인도의 특색있고 매력적인 예술을 우리나라에 알리고 싶었다. 인도를 여행하고 생활하며 35년간 인도에서 모은 400여점의 수집품들과 영월의 작은 폐교 공간을 활용해서 2012년 인도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 제주 >서귀포시

    올바른 성을 이야기하는 건강과 성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성은 다들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하지 않는 이야기 주제이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성을 점점 음지로 끌고 갔다. 그러다 보니 지금 성인들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않아 아이들의 성교육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른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성 지식과 성교육을 하고자 건강과 성박물관이 2006년에 문을 열었다. 건강과 성박물관은 성인들이 놓치고 있던 다양한 성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우리 몸과 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제주 >서귀포시

    유리공예가들이 만들어놓은 반짝이는 세상, 유리 박물관
    투명한 유리에 색깔을 넣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8,000여평을 꾸며놓은 유리박물관이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다. 다른 유리로 만든 흥미유발의 관광지와 차별되는 점은 이곳의 유리작품들을 예술가들이 직접 만들고 배치했다는 것이다. 야외 전시와 실내전시로 구분되어 있지만 사실상 모든 것들이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둘러보는 내내 마냥 신기한 곳이다. 낮의 자연광으로 보는 유리도 신비롭지만, 형형색색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면 저녁 관람을 추천한다.
  • 제주 >서귀포시

    테디베어로 표현되는 세상, 제주 테디베어 뮤지엄
    어린이들이 한번쯤은 애착인형으로 거쳐가는 인형이 곰돌이, 테디 베어다. 제주 테디베어 뮤지엄은 유년시절의 감성을 떠올리고, 아기자기한 곰인형으로 표현된 인류역사의 중요순간들과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관람없이도 방문이 가능한 뮤지엄샵에서는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색깔부터 와펜까지 직접 골라 만드는 비스포크 테디베어가 인기 상품이다.
  • 제주 >제주시

    제주 공예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
    예나르 공예박물관이 위치한 제주 저지리 예술인 마을은 1999년 계획된 마을이다. 그 마을 중심에 예나르 공예박물관이 있다. 50년 경력의 고미술 화랑 운영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설립한 이 박물관은 작은 규모이며, 상설전 없이 기획전시로만 운영되고 있다. 2020년 첫 개관전으로 '제주 실경도와 제주 문자도'를 열었고, 두번째 기획전 '제주 궤와 팔도 받닫이'를 열었다. 기획전에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므로, 방문 전에 전시가 열리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 제주 >서귀포시

    놀라운 자연의 색을 보여주는 세계 조가비 박물관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가비(조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곳이 ‘세계 조가비 박물관’이다. 세계조가비 박물관은 40여년 간 수집한 1만5천여종의 조가비와 산호를 아름다운 받침대 위에 조화롭게 배치하여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전시되어 있는 조개의 다양한 색감들을 보며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 제주 >서귀포시

    세계의 술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 술 박물관
    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몽신화에 처음 등장해 다양한 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술의 주된 재료가 곡식이다 보니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법적으로 술을 금지하는 금주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그 명맥이 끊어졌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의 필요성을 느끼며 민속주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민속주를 비롯해 프랑스 꼬냑, 러시아의 보드카, 독일의 맥주 등 세계 각국의 술을 모아놓은 세계 술박물관이 제주도에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현무암에 심은 풍란의 아름다움, 석부작박물관(현 숨도)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제주도가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관광지이지만 교통, 항공편이 발달되기 전에 제주도는 그저 척박하고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90%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있어 비가 오면 물이 그대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물이 부족하지만 대신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현무암과 야생화, 초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곳이 '석부작 박물관'이다.
  • 제주 >제주시

    만화 『피너츠』와 제주의 자연이 어우러진 스누피 가든(SN 박물관)
    최근 다양한 콜라보가 유행하면서 옛 캐릭터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스누피’이다. 스누피는 미국의 《피너츠(Peanuts)》 시리즈로 유명한 만화 속에 등장하는 비글이다. 50여년 간 연재된 이 만화를 통해 스누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래서 작가를 기념하는 박물관과 스누피 박물관이 해외에도 있고, 최근 다양한 기획전이 진행되기 했다. 우리나라에도 2020년 스누피를 테마로 한 아름다운 정원과 전시장이 제주도에서 문을 열었다. 스누피 가든이라고 불리는 SN박물관은 5개의 테마홀과 미니정원이 꾸며진 ‘가든하우스’와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테마와 어우러진 ‘스누피가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만화 속 캐릭터들의 삶을 함께 공감하며 휴식과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강화로 떠나는 웰니스 추천 여행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몸은 정원이요, 우리 의지는 정원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쉬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기 보단, 자신의 속도 대로 충분히 쉬어가며,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행복한 정원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이곳, 강화도에서 여러분의 정원을 가꾸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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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또한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 인천 >강화군

    갑옷을 쌓아 배를 타러 갔던 인천 강화 갑곶나루
    강화군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을 오가는 나룻배를 운영하던 나루인데, 강화도와 뭍을 연결하는 중요 통로였다. 정묘호란(1627년)이 발발하자 인조가 후금을 피해 건넜던 나루이며, 그의 아들 봉림대군도 병자호란 때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로 들어왔다. 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신하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읍으로 진입한 곳이다. 세종대에 박신(朴信)이 경비를 부담하고, 주민들 노역하여 14년간 선착장 석축로를 쌓았으며, 그 후로 1920년에 김포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를 신설하기 이전까지 중요 나루로 활용되었다. 1970년에 강화대교가 생기면서 나루터는 제 기능을 잃었고, 제방 공사로 인해 나루터 시설이 사라졌다.
  • 인천 >강화군

    지하 난방시설과 목욕시설이 있는 강화 고대섭 가옥
    강화 고대섭 가옥은 ‘미음(ㅁ)’자 형태의 반가(班家)로, 집의 크기는 99칸〔間〕이다. 일반 사대부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집 크기다. 강화 고려인삼을 경작하고 인삼무역을 했던 고대섭은 개성의 집을 본 따 황해도의 자재로 전통 한옥과 일식을 결합한 집을 지었다. 그래서 이 집에는 지하 난방시설, 쇠솥이 있는 목욕시설 등 독특한 시설들이 있다. 2020년부터는 한옥스테이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 인천 >강화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 인천 >강화군

    강화의병 전투지 전등사
    전등사는 1907년 7월 강화진위대장 출신 이동휘가 김동수·허성경 등의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해산군인 400여 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반일집회를 열어 일반 군중을 고무시켰던 곳이다. 또 1908년 강화 출신 시위대 장교였던 이능권이 의병을 일으켜 ‘대동창의진’이라 하고 전등사를 근거지로 일제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 인천 >강화군

    화문석으로 유명했던 강화읍장과 강화풍물시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곳리에는 강화풍물시장이 있다. 강화풍물시장은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상설시장뿐만 아니라 매월 2일과 7일 오일장도 함께 열린다. 장날이면 풍물시장 공터와 도로변에 300여 개의 노점들이 조성되며, 지역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모인 상인들은 각종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인천 >강화군

    주민들이 직접 지은 한옥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은 110년을 지켜온 한옥 구조의 성당이다. 1900년 강화에는 선교본부인 영국교회의 지원 하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함께 온수리 성당이 세워졌다. 민초들이 세운 성당이라 그 의미가 더 깊은 공간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한옥의 양식이 잘 보존된 교회건축양식으로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5호로 지정받았다.
  • 인천 >강화군

    고려 왕조의 생명선,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고종 20) 해안 방어를 위해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 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 인천 >강화군

    오랑캐의 침입에 죽음을 택한 순절자들의 배향, 강화도 충렬사
    강화도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정신으로 죽음을 선택한 39인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물살이 거세 적군이 들어올 수 없다는 철옹성이라 여기던 강화도에 청나라군이 들이닥치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오랑캐 여진족에게 굴복하기보다 자결로 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용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충렬사에 배향된 인물들 외에도 자결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 인천 >강화군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철도의 역사와 문화

6월 28일은 철도의 날로 교통수단인 철도의 가치를 높이고 철도 종사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철도의 날은 본래 1899년 9월 18일 한국에서 최초로 개통한 경인선을 기념하기 위해 1937년부터 지정하여 유래했는데요. 그러나 1937년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아픔을 겪은 시기로, 철도 노동자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일본 황제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강요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러한 연유로 2018년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국(의정부 공무아문 철도국) 창설 날짜(1894년 6월 28일)에 맞추어 이날을 철도의 날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2024년 철도의 날은 1894년 6월 26일 이래 130주년이 되었습니다. 1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철도 역사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데요. 철도의 날을 맞아 낭만적인 감성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차를 타고 우리 지역에 남아있는 철도를 따라 역사와 문화를 엿보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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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구 역사(驛舍) 일산역. 사람의 길이 열린다
    고양일산역(高陽一山驛)은 2006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국가 등록문화재 제294호 지정되어 한국철도공사에서 관리·보호되는 장소이다. 1933년에 지어진 것으로 ―자형 평면 구조에 십자형 박공지붕(배 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을 얹었다. 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 경의선의 중심역이며 경의선 역사 중 유일하게 남겨진 곳으로 일제강점기 철도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 전남 >곡성군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철로 - 구 곡성역사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구 곡성역은 1933년 전라선 철도 남원~곡성 구간이 개통되면서 역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섬진강 모래를 실어 전국으로 보내는 역할이 주된 임무였다. 1937년 전라선이 호남선 익산역에서 전라남도 여수역까지 전 구간 개통되면서 여객 수송도 늘어났다. 호남지방 동부의 유명한 명승지를 거쳐 가는 노선이었고, 이용 인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라선은 1980년대 말부터 복선화가 진행되었다. 곡성군을 지나가는 부분은 섬진강 흐름을 따라 구불구불했으나, 직선으로 철로를 이설하면서 1999년 곡성읍에 새로운 역이 생겨 이전 곡성역은 구 곡성역이 되었다. 곡성군과 코레일은 2004년 구 곡성역이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적극적인 활용 사업을 진행해 2005년 ‘섬진강 기차마을’을 개장했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폐선로를 이용한 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 운행을 비롯해 국내 최다 장미 품종을 갖춘 장미원 조성까지 성공적인 철도 테마파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 대구 >동구

    한국 근대철도의 달빛, 대구 구 반야월역사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반야월은 공식 지명이 아니지만 후삼국 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유명한 지명이다. 1917년 대구~하양 간 협궤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가 반야월을 지나가게 되었다. 반야월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 강원 >원주시

    레일바이크가 들어선 간현역과 간현유원지
    강원도 원주 간현유원지는 1970~90년대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올 수 있었다. 2011년 중앙선 간현역이 폐쇄되면서 2013년 간현역에서 판대역까지의 6.5Km에 레일바이크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간현관광지 내 소금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소금산 출렁다리를 건널 수 있다. 섬강 위 100m 상공에 설치되어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다리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명소 100선에 선정되었다.
  • 강원 >철원군

    금강산으로 이어주던 길,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상류계층의 전유물과 같았던 관광은 대량운송을 가능하게 한 철도의 등장으로 보다 넓은 계층에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은 특정 계층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였는데 본디 아름다운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본성이었다. 특히 금강산은 평민들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철원과 금강산 내금강을 잇는 금강산 철도와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이 만들어지면서 기차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금강산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금강산 관광은 보다 활성화되었다.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은 1950년대 남북이 분단되면서 사용을 멈췄지만 기차를 타고 금강산 가던 시절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근대 철도의 역사를 간직한, 수원역 급수탑
    수원역에서 남쪽방향으로 내려가다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옛 증기기관차의 급수를 하던 급수탑 두 개를 만날 수 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급수하던 시설물을 말하는데, 수원은 주요 간선의 중심이자 수원천이 흐르는 지역으로, 급수탑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도시였다. 현재, 급수탑은 준철도 기념물 제 15, 16호로 등록 보존되고 있으며, 그 주변 산책길이 조성돼 시민들에게 근대 철도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 대전 >동구

    ‘대전발 0시50분’의 추억,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는 전후복구 시기인 1956년 지어졌다. 대전역은 1905년 개통된 경부선, 1914년 전 구간 운행을 시작한 호남선이 분기하는 철도의 중요 거점이다. 대전역에는 기차를 수리하고 정비하는 큰 열차 검수 차고가 있었다. 대전역 동광장 쪽에 세워졌던 창고들은 잇따라 철거되었지만, 보급창고 3호는 여전히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서 있다. 목조 트러스 구조에 목재 비늘판벽을 두른 보급창고 3호는 산업화 시대를 지킨 철도 시설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 경기 >연천군

    연천의 랜드 마크,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은 1914년 경원선 전 구간이 완공되면서 경원선의 유일한 급수탑으로 건립되었다. 처음 세워진 급수탑은 상자형이었고, 1930년대 들어 높이가 3배인 원통형 급수탑이 더 만들어졌다. 2기의 연천역 급수탑은 일제 강점기 이래 연천의 명물이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하얀색 급수탑이 폭격 좌표를 잡는 지상의 ‘랜드 마크’ 구실을 하기도 했다.
  • 강원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
    도계역 급수탑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역 구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1940년 영동선이 개통하면서부터 도계역을 경유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해주던 시설물이다. 1940년 영동선이 개통된 이후 증기기관차는 30년 동안 도계역에 들어서면 10~30분 정도 정차해서 이 급수탑을 이용해 물을 보충했다. 문화재청은 도계역 급수탑을 2003년 1월 28일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46호)으로 지정하였다.
  • 강원 >태백시

    철도는 탄광도시 발전의 은인
    태백선과 영암선의 철도 개설은 석탄산업을 발전시키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이 철도망을 통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탄광도시인 태백과 도계지역의 본격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태백시에 기차역이 8개나 있었고, 삼척시에 기차역이 13개나 있었던 것은 석탄수송과 관련이 있다. 철도는 석탄산업 발전을, 석탄은 우리나라 모든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의병

의병이라는 단어는 많이 들어 보았어도 '의병'의 뜻 또는 '의병의 날'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은데요.
의병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부대를 조직하여 외적에 맞서 싸운 영웅을 뜻합니다. 의병의 날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의지 하나로 싸운 의병들의 역사적 가치와 투철한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의병의 날인 6월 1일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날을 양력으로 환산한 일자입니다.

누구나 두려움 앞에서는 망설여지고 도망가고 싶어지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스스로 싸우고자 한 의병들의 강인함이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도록 굳건한 토대가 되어주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의병이란 이름을 잊지 말아야 하고 간직하며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매년 6월 1일에는 의로운 삶을 살다 간 의병의 역사적 의의를 되새기며 희생과 애국정신을 기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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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의령군

    홍의장군 곽재우
    곽재우(1552~1617)는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고, 왜군의 호남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들고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녀 홍의장군으로 불렸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활동하였다.
  • 전남 >나주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 경남 >창원시

    8척의 멋진 의병 제말
    제말(諸沫)[1567~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조카 제홍록과 함께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경남 >함양군

    황석산성에서 전사한 곽준
    곽준(郭䞭, 1551년~1597)은 안음 현감을 지낸 인물로 조종도와 함께 황석산성에서 정유재란 때 최후를 맞았다. 곽준은 백사림이 성을 버리고 도주하고자 하여 몰래 사람을 시켜 꾀어냈지만 화를 내며 오히려 두렵지 않다고 소리쳤다. 그리고 성을 왜적의 손에 넘겨줄 수 없다고 말하며 성에서 버티다 왜적들에게 목숨을 빼앗겼다.
  • 충남 >금산군

    칠백의병의 의로운 죽음, 조헌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 강원 >춘천시

    춘천의 한말의병장 이소응
    이소응(李昭應, 1861~1928)은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큰 학자이며 춘천에서 창의한 한말의병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전보를 올렸던 인물이다.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이 1915년에 사망하자 그의 유고를 모아 편찬하기도 했으며 이후에는 그의 스승 유중교의 문집을 정리해서 간행했다. 이소응은 1930년 79세의 나이로 광복을 보지 못하고 요동에서 생을 마감했다.
  • 강원 >춘천시

    의병가사를 지었던 춘천의 의병장 류홍석
    류홍석(柳弘錫, 1841~1913)은 화서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 후 55세의 나이로 의병에 가담하였다. 처음 춘천의진에 있다가 제천의진에 가담하였으며, 류인석을 따라 중국에 가 있다가 1913년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 충남 >홍성군

    충남 홍주의 의병장 김복한
    김복한(金福漢, 1860~1924)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승정원 승지를 지냈다.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왔다. 1895년 단발령과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다시 1906년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강원 >춘천시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
    류인석(柳麟錫, 1842~1915)은 한말의병장이며 13도의군도총재로서 나이 53세에 의병을 시작했다. 계속해서 의병을 일으켜서 나라를 위해 싸웠으나 점점 시간이 갈수록 대항하기 힘들어졌다. 이후 국내의 의병활동이 여의치 않아 러시아로 망명해서 의병조직을 하나로 통합 후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의병조직을 탄압하는 힘이 강해져 의병은 와해되었다. 결국 류인석은 독립을 보지 못하고 해외에서 한 많은 평생을 끝맺었다.
  • 강원 >춘천시

    한국최초의 여성의병 윤희순의 의병가사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현 구리시 출신으로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출가하여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는 의병가사를 써서 남녀모두 의병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였다.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생활용품

생활용품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옛 조상들이 사용했던 생활용품들의 특징을 통해 어떤 생활을 하며 살았는지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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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책을 눕혀 보관하던 책장
    책장은 책을 넣어 보관하는 수납가구로 선비의 사랑방에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가구였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으며 2층장, 3층장으로 만들어진 경우가 가장 많다. 많은 책의 무게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만들었으며 조선시대 선비 취향에 부응하여 검소하고 소박하다.
  • 전남 >영암군

    가늘고 촘촘한 빗, 참빗
    참빗은 빗살이 가늘고 촘촘한 머리빗이다. 머리를 정갈하게 정돈하거나 기름을 바를 때 사용하였으며, 진소(眞梳)라고도 불렀다. 전라남도 영암과 담양 지역은 참빗 생산지로 유명한데 특히 영암 참빗의 품질이 높았다. 영암읍 망호리에서는 약 300여 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참빗 만드는 일을 했다고 한다.
  • 전국

    음식과 그릇을 보관하는 부엌가구, 찬장
    찬장은 식기나 음식 등을 보관하는 부엌용 수납 가구이다. 중량감 있는 그릇을 포개 보관하기 때문에 무게를 충분히 감당하기 위해 튼튼하고 안전한 구조가 필수적이며, 실용적인 사용을 우선시하는 생활용 가구이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을 하지 않고 튼튼하고 견고하게 제작하였다. 단층 뒤주장은 곡식을, 이층찬장과 삼층찬장에는 양념, 그릇, 음식물 등을 보관하였다. 
  • 제주 >서귀포시

    구덕으로 대표되는 제주도의 죽공예품
    제주도는 다른 공예에 비해 목공예의 제작과 사용이 많았으며 특히 서귀포 지역에서는 죽공예의 제작이 활발하였다. 대표적인 죽공예품이 바로 ‘구덕’이다. 구덕은 대나무로 만든 바구니로, 여성들의 일상생활 전체에서 쓰임새가 가장 많은 도구였다. 아기를 눕혀놓는 애기구덕, 물동이를 넣는 물구덕, 테왁 등을 담는 물질구덕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는 제주의 자연 환경과 인문적 배경에서 발생한 독특한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는 바구니이다.
  • 전국

    한여름 무더위에 껴안고 자는 죽부인
    죽부인은 대나무로 엮어 만든 침구의 하나로 무더운 여름밤에 끼고 자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피서용 생활도구이다. 주로 남성들이 끼고 잤기 때문에 인격화하여 ‘죽부인’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생전 사용하셨던 죽부인도 모시고 같이 제사를 받게 하였다.
  • 전남 >담양군

    대나무 산지에 따라 발달한 죽공예
    죽공예(竹工藝)는 대나무를 재료로 여러 가지 생활용품과 장식용품을 만들어내는 공예의 한 형식이다. 우리나라 죽공예는 대나무의 종류별 산지에 따라 특색있게 발달되어왔다. 담양에서는 오늘날까지 죽석·대발·바둑판·죽피방석·소쿠리·채상 등 다양한 죽공예품이 생산되고 있으며 낙죽장(烙竹藏)이 전승되고 있다. 전주는 예로부터 부채인 합죽선이나 태극선이, 남원은 연죽으로 만든 부채가, 광양에는 낙죽장도가 유명하다. 경남 진주, 하동은 죽피방석·바구니·소쿠리 등의 생활죽물과 어도구(漁具)를 생산하고 있다.
  • 전국

    계산도구, 주판
    주판은 계산을 도와주는 간편한 도구로 수를 더하거나 뺄 때 사용했으며 이것으로 계산하는 것을 주산(珠算)이라고 한다. 고대 숫자들은 계산보다 기록을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계산을 도와주는 도구가 별도로 필요했다. 주판은 우리나라에서 1980~1990년대 초까지 널리 보급되었지만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 전국

    옷을 걸어 보관하는 의걸이장
    의걸이장은 내부에 횃대라는 긴 막대가 있어 옷이 구겨지지 않게 걸어서 보관하는 옷장이다. 주로 관복이나 두루마기 등 남성의 의복을 보관하던 옷장으로 남성의 생활공간인 사랑방에 놓였다. 관복과 함께 신는 신발인 목화를 보관할 수 있는 이층 의걸이장도 있었다. 
  • 전국

    서안 옆에 놓는 문방용품 가구, 연상
    연상(硯床)은 벼루, 먹, 붓, 종이, 연적 등 문방용품을 한곳에 모아 보관하는 문방가구로 주로 사랑방에서 사용되었다. 사랑방에서 중심에 배치되는 좌식 책상인 서안(書案)의 바로 옆에 연상을 두었다. 연상은 2단으로 구성되어 상단에는 벼루와 먹을 보관하고, 하단에는 연적이나 종이 두루마리를 보관했다.  
  • 전국

    약재를 보관하는 약장
    약장은 약재를 분류하여 따로따로 넣어두는 서랍이 있는 가구이다. 약재의 종류에 따라 많은 서랍이 필요하며, 이러한 서랍이 정연하게 연속적으로 배열된 모습은 독특하고 개성강한 조형미가 있다. 조선시대 약장은 형태·용도·목적·신분·지역 등에 따라 구분되며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목숨을 바쳐 사람을 지킨 동물들

우리나라 곳곳에는 위기에서 주인을 구하거나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동물들의 감동적인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이 이야기들은 동물과 인간이 깊은 정과 신의를 나누었음을 보여주지요.
부산 개좌산에는 산불에서 주인을 구한 충견에 대한 전설이 전해집니다. 주인이 깜빡 잠든 사이에 주변에 불이 번지자, 그의 길동무였던 개가 자기 몸에 물을 적셔 불길을 막아주었다는 겁니다. 개는 주인을 대신해 죽음을 맞았고, 사람들은 사고가 있던 곳을 '개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는 의미로 '개좌산(개제산)'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10년간 밥을 챙겨준 선비에게 은혜를 갚은 물고기도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물고기는 승천하기 전 선비에게 뜻을 펼칠 방도를 알려주었고, 선비는 그 예언대로 높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후 여러 폐단이 있던 조선의 조세 정책을 개혁하며 백성을 위한 삶을 살았다고 하죠. 그가 바로 조선 후기 명재상 김육 선생입니다.
이 외에도 마음씨 착한 처녀에게 은혜를 갚고자 천 년 묵은 지네와 싸운 두꺼비부터, 전염병으로 고생하던 마을 사람들을 힘껏 도운 소 두 마리까지, 전국에 전해지는 의로운 동물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희생과 보은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 보여주며 숭고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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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기장군

    주인의 목숨을 구한 개를 묻은 부산광역시 반송동의 개좌골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후, 기장군 철마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부산에 속해 있는 각 진영에 입방군(入防軍)으로 복무를 해야 했다. 당시 기장군 철마면 연구리에 살던 ‘서홍인(徐弘仁)’도 부산성에서 입방군으로 복무하였다. 그는 노부모를 봉양하기에 집에서 매일같이 24㎞나 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그러던 중 부산성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 개좌산 고갯길 입구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불이 나서 서홍인이 위험해지자 그가 길동무 삼아 데리고 다니던 개가 개울물을 묻혀 서홍인 주변에 번지는 불을 껐다. 그런데 개는 연기 속에서 질식해 죽었다.
  • 충북 >청주시

    은혜 갚은 까치들이 살았던 청주 까치말
    까치가 요란스럽게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버드나무 가지를 쳐다보니 독사 한 마리가 새끼 까치를 잡아먹으려고 둥지로 가는 중이었다. 이를 본 이 교리는 표창으로 독사의 꼬리를 잘랐다. 꼬리 잘린 독사는 실개천에 들어가 독을 내뱉었는데, 이를 몰랐던 이 교리는 표주박으로 그 물을 떠먹으려고 했다. 이때 까치가 날개로 표주박을 쳐내어 이 교리의 목숨을 구했다. 이후 사람들은 까치가 살았던 마을이라 해서 까치말, 뱀이 독을 뿜던 실개천은 뱀내라고 불렀다.
  • 경남 >밀양시

    논밭 갈다 죽은 소를 언덕에 묻어준 밀양 우곡마을
    우곡(牛谷)마을은 경상북도 밀양시 삼랑진읍 우곡리의 자연마을로 해발 674m의 만어산과 해발 640.1m의 구천산 사이의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우곡(牛谷)마을은 우곡리 한 가운데 있는 중심마을로 우실·웁실 등으로도 불린다. 옛날 우곡마을은 물론 이웃마을에도 소 돌림병이 돌아 몇 년 동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면 수확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먹고살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소 두 마리가 나타나 마을에서는 돌아가면서 소를 부려 밭을 갈았는데 소가 너무 힘들어 두 마리가 동시에 죽었다. 이에 마을에서는 소를 양지바른 언덕에 묻어주고 스스로 ‘우곡(牛谷)마을’이라 불렀다.
  • 경기 >성남시

    지네를 물리쳐 처녀에 은혜 갚은 두꺼비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에 ‘두껍능산’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꺼비는 처녀가 부엌에 있을 때마다 찾아오고, 그런 두꺼비에게 처녀는 매번 밥을 주었다. 처녀가 시집을 가도 두꺼비는 따라갔다. 어느 날 처녀를 해하려는 지네를 물리치지만, 두꺼비는 그만 죽고 만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두꺼비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 강원 >원주시

    꿩이 죽음으로 은혜를 갚은 원주 치악산
    치악산은 해발 1,288m이며 우리나라 16번째 국립공원으로 1984년에 지정되었다. 치악산은 원주시·횡성군·영월군 등 세 개 시·군의 9개 면·동에 걸쳐있는데, 치악산 전체 면적 중 많은 부분은 횡성군에 속한다. 치악산은 예전에 가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이라 불리던 산인데, 꿩의 보은설화에 의해 지금과 같이 치악산으로 바뀌었다.
  • 경기 >가평군

    하늘의 덕을 입은 연못, 경기도 가평의 천덕소
    경기도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에는 잠곡서원 터가 있고, 그곳에는 천덕소라는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광해군 때 김육 선생은 홀로 청평에서 살고 있었다. 하루는 선생이 밭에 씨를 뿌리고 점심을 먹기 위해 연못가에 앉았다. 이때 연못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튀어 올라 자신의 곁으로 떨어졌고, 그 물고기가 불쌍했던 선생은 자신의 밥을 덜어 물고기에게 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선생은 십 년 동안 물고기에게 밥을 주었다. 어느 날 선생이 한양으로 가려고 하자 물고기는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며, 선생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뜻을 펼칠 방도를 알려주었다. 물고기의 말대로 한 김육 선생은 큰 벼슬을 얻었고,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이후 김육 선생은 물고기의 보답에 감사하며, ‘하늘의 덕을 입은 연못’이라는 뜻에서 ‘천덕소’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은혜를 갚은 잉어
    옛날에 돌쇠라는 총각이 살았는데,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잉어를 잡아 온 것을 보고 아이들에게 잉어를 사서 강가에 풀어주었다. 그 날 이후 저녁에 밥상이 차려져 있어 이웃집 아주머니가 차려주신 줄 알고 감사히 먹었다. 하지만 매일 이 일이 반복되자 궁금증이 생겨 멀리서 집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처녀가 집을 들어가는 것을 보고 누구냐고 물어보니 동네 아이들에게 잡혔던 잉어라며 풀어줘서 은혜를 갚기 위해 매일 밥상을 차렸다고 한다.

한 그릇에 듬뿍 담은 영양, 어죽

해안 또는 강가에 자리 잡은 지역에서는 생선을 이용하여 만든 어죽이 별미 중의 별미입니다.
어죽은 영양가가 높아 보양식으로도 많이 먹는답니다 깨끗한 민물에 사는 민물고기로 만든 어죽은
그 맛이 특히나 좋기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몸과 배를 든든하게 채워줄 어죽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볼까요?!
어죽은 생선을 푹 고은 후 발라낸 살과 체에 밭친 국물에 쌀을 넣어 끓인 죽인데요.
어죽에 쓰이는 민물고기 중에서도 붕어와 도미 등이 특미로 일컬어지며 천렵으로 고기를 낚았다고 합니다.

천렵은 냇물에서의 고기잡이를 뜻하는데요. 갓 잡은 신선한 생선으로 만들어 먹는 어죽은 더욱 맛있고 영양가가 있을 것 같네요!

남은 겨울 민물고기를 직접 잡지는 못해도 영양가 높은 어죽으로 몸보신에 힘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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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송강 정철이 반한 담백하면서 비리지 않은, 꾹저구탕
    꾹저구는 강바닥에 붙어사는 토종 민물고기로서 강릉의 남대천 등 영동지역의 하천에서 많이 잡히는 어종이다. 뚜거리, 뚝저구, 뿌구리, 꾸부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꾹저구는 강원 영동지역 주민에겐 오래된 토속 어탕재료로 이용되어 왔다. 꾹저구탕은 강원도의 향토음식으로 뚜거리탕이라고도 하며, 추어탕보다 담백하면서 맛이 부드럽다.
  • 전남 >곡성군

    섬진강의 어살과 민물고기
    민물고기는 옛날부터 식생활에 이용되었는데 은어, 메기, 잉어, 참게 등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민물고기는 양식을 하거나 낚시로 잡는데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하천에 어살을 설치하여 많이 잡았다. 어살은 강 혹은 바다에 나무, 돌 등을 쌓아 물고기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한 후 잡는 함정어구의 일종이다. 어살은 강에 댐이 생기면서 구실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섬진강에 어살이 일부 남아있는데 고뱅이 어살과 살뿌리 어살이다.
  • 전북 >전주시

    '뚝배기에 끓이는 민물고기매운탕', 오모가리탕
    전라북도 전주의 향토음식인 오모가리탕은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인 오모가리에 민물고기를 넣어 끓인 매운탕이다. 민물새우를 넣어 감칠맛이 도는 얼큰한 국물과 부드럽게 씹히는 시래기가 구수함과 걸쭉한 맛을 더하여 준다.
  • 전국

    내천에서의 치열한 사냥, 천렵
    천렵(川獵)은 ‘川’과 ‘獵’이라는 용어가 합쳐진 것으로 내천에서의 사냥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놀이다. 단순히 더위를 피하기 위해 발을 담그는 탁족과 달리 물고기를 잡는다는 점에서 이 놀이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셈이다. 천렵은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지던 것으로 특히 남성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던 놀이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직접 물고기를 잡은 다음 그것을 매운탕이나 어죽 등으로 끓여 먹는 것이 이 놀이가 지닌 진정한 가치라 할 수 있다.
  • 충남 >예산군

    “달치곤 하고 쫄깃한 붕어찜에 시래기를 척 감아 먹어야지”
    붕어찜과 어죽 식당이 모여있는 충청남도 예산의 예당저수지(예당호)는 1963년 만들어진 예당저수지는 우리나라 제일의 농업용 저수지로 민물고기가 많아 낚시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 잡힌 붕어와 민물고기로 만든 붕어찜과 어죽은 예산의 대표적인 보양식이다.
  • 충북 >괴산군

    달천의 민물고기로 더위를 식힌 괴산 어죽
    어죽은 내장을 빼낸 민물고기를 푹 삶은 국물을 체에 걸러낸 다음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풀고 물에 불린 쌀ㆍ다진 마늘ㆍ다진 양파ㆍ민물새우를 넣고 끓이다가 채 썬 깻잎ㆍ다진 풋고추ㆍ들깻가루ㆍ참기름 등을 넣고 한소끔 더 끓여낸 충청북도 괴산군의 향토음식이다.
  • 충북 >영동군

    어죽을 최초로 음식 상품화한 식당, 영동 가선식당
    충청북도 영동군 가선리의 ‘가선식당’은 금강 상류에서 잡은 청정 민물고기를 끓여서 만든 ‘어죽’을 처음으로 음식 상품화한 음식점이다. 처음에는 내수면 어업허가증이 있는 김명제 씨가 금강에서 물고기를 잡아 내다 팔고 남은 것을 끓여 마을 사람들과 나누어 먹다가 식당을 해보라는 권유가 동기가 되었다. 김명제 씨는 1958년부터 마당에 멍석을 깔아 놓고 장사를 시작한 이래 1970년대부터 외지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명성이 쌓였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전국에서 ‘맛집 순례’를 하는 손님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유명 식당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단백질 가득한 두부의 매력

두부는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리는 콩으로 만든 음식입니다. 이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은 소화율이 95%에 이르며, 각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과 조리법이 다양합니다. '둠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전통 두부로, 맷돌에 간 생 콩가루를 끓여 만듭니다. 육지의 두부보다 콩 함량을 높여 단단하게 만들어서 '마른 두부'라고도 부릅니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서 제조하는 '초당두부'는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여 만듭니다. 다른 두부들보다 수분 함량이 많아 부드럽고 결집성이 좋습니다. 대전은 조선 시대부터 큰 밭으로 유명하여 콩과 같은 작물로 만든 음식들이 발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부두루치기'가 별미입니다. 부드러운 두부와 얼큰한 양념장의 조화, 그리고 칼국수 사리를 함께 넣어서 먹으면 맛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두부들을 알아봤는데요. 각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두부'의 크나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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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중구

    ‘콩의 도시’에서 맛보는 대전 두부 두루치기
    두루치기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가지 물건을 여기저기 두루 씀’ 또는 ‘한 사람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음식으로 해석하자면 ‘두루두루 갖가지 재료를 넣어서 한 음식’ 정도가 될 것이다. 실제로도 두루치기는 각 지역마다 각기 다른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해서 요리되는데, 재료를 보면 지역마다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대전의 ‘두부 두루치기’는 고기를 넣지 않고 만들어낸 칼칼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콩의 도시’ 대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제주 >제주시

    제주의 푸른 바다를 품은 식품, 둠비
    둠비는 생콩을 갈아 끓이면서 제주 앞바다의 해수를 응고제로 사용하여 엉기게 한 후 틀에 부어 눌러 놓았다가 단단하게 만든 제주특별자치도 특유의 전통 두부이다. 둠비는 두부의 제주 방언으로 '마른 두부'라고도 부른다. 육지의 두부보다 콩의 함량이 높아 단단한 둠비는 제주도의 경조사와 제례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다.
  • 강원 >강릉시

    “강릉에서 두부를 먹는다면 ‘초두부 주세요’라고”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두부는 조선시대에 시작되었다.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초당(草堂)’이라는 허엽의 호를 붙여 그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초당 마을의 남자들은 줄어들고 여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릉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두부를 만들 때 거품을 거둔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바닷물을 넣으면 촛물이 몽글몽글 뭉친다. 이것이 ‘초두부’로,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뜻이다. 
  • 강원 >강릉시

    바다내음 그윽한 강릉 초당두부
    초당두부는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서 제조하는 특산 두부이다. 초당두부가 생산되는 강릉에서는 천일염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소금 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 인천 >미추홀구

    세 가지 색과 맛이 어우러진 신기시장의 삼층두부
    두부는 예로부터 우리의 오랜 식재료이자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음식이다. 1970년대 형성된 인천의 신기시장에는 두부 한 모에 세 가지 색이 무지개떡처럼 생긴 이색 두부, 삼층두부가 있다. 문우영 대표가 만든 삼층두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두부콩으로 만든 흰 두부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검은콩즙을 넣어 만든 검은 두부와 브로컬리와 뽕잎을 넣어 만든 녹색 두부가 층층이 쌓여 세 가지 색이라서 사람들은 삼색두부라고도 부른다. 건강식으로 지역사회에 명성이 자자하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신기시장의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전국

    두부와 두부행상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농사지은 콩의 1/3 이상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지만, 만주산 콩이 한국으로 다량 수입되면서 한국인들은 두부를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두부는 한번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므로 집에서 만들지 않고 전문적인 제조소에서 만들었는데, 짧은 유통기한으로 인해 두부 행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인천에서는 두부행상들의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 두부 만드는데 쓰이는 간수를 우물물로 쓰기도 했는데, 우물물이 오염된 경우가 많아 위생검사에서 걸리곤 했다.
  • 강원 >강릉시

    두부장수에서 초당순두부 음식점으로, 강릉 초당고부순두부
    강릉 초당순두부는 조선 중기의 문신 허엽(許曄)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일화와 한국전쟁 이후 생계의 일선에 나서야 했던 강릉 어머니들의 고난에 찬 삶이 어우러져 탄생한 강릉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강릉 초당두부마을에 위치한 ‘초당고부순두부’도 1950년대부터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IMF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1998년 손자며느리 김영미 씨가 음식점을 차린 것이 현재의 초당고부순두부이다. 지금은 창업주의 증손자가 4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궁궐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궁궐은 설계될 때부터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을 따져 건축되었다는 사실! 다들 알고 계시는가요?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복궁에는 문이 여럿 있는데요. 동쪽이자 봄을 말하는 동문은 건춘, 여름이자 남쪽인 남문은 광화 서쪽이자 가을에 해당하는 문은 영추, 북쪽이자 겨울을 상징하는 문은 신주로 음양오행의 이론을 바탕에 두어 규칙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경복궁 근정전 정문 좌우에 위치한 월화문과 일화문 또한 동쪽에서는 해가 떠 양의 기운이 있기에 일화문, 서쪽은 해가 지는 음의 기운이 있어 월화문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궁궐의 지붕을 보다 보면 화려한 단청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단청의 기본 색은 적, 청, 황, 흑, 흰 오방색으로 오방색 또한 음양오행 사상의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경복궁 외에도 창덕궁 후원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부용정은 네모난 연못 가운데 소나무가 심어진 둥근 섬이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 음양오행 사상에 비롯하여 만들어진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궁궐은 단순히 왕족들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라, 동양의 철학과 조화로운 삶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네요! 궁궐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만큼 더욱 의미 있는 방문을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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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빼어난 경치를 즐기는, 창덕궁 승재정
    승재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순종 때 연못을 새로 파고 관람정을 지을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승재(勝在)’의 ‘승’자는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승재정은 빼어난 경치가 있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정조의 개혁정치와 문예부흥의 산실, 창덕궁 주합루
    주합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9호로 지정되어 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창덕궁 부용지 북쪽 언덕 높은 곳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 위층은 주합루라는 편액을 걸었다. 규장각은 도서관으로, 주합루는 열람실로 이용하였다. 이 주합루 일대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丁若鏞)·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덕무(李德懋)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또한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어진·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연꽃 향기 머금은 신선의 세상, 창덕궁 부용정
    부용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숙종이 1707년(숙종 33)에 지은 택수재(澤水齋)를 1793년(정조 17)에 정조가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부용정이 있는 부용지 주변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넓고 짜임새 있게 구조가 갖추어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고종의 북카페, 경복궁 팔우정
    팔우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팔각 2층 정자이다. 고종의 서재로 쓰였던 집우재에 딸려 있는 정자로, 일종의 북카페와 같은 역할을 한 정자이다.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책을 열람하기도 하고,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명성황후의 넋이 어린, 경복궁 옥호루
    옥호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청궁 곤녕합에 딸린 누각이다. 본래 1873년(고종 10)에 건청궁 건립 때 세워졌으나,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현장으로서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다. 2007년 건청궁 복원 때 옥호루도 복원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궁중 여인들의 연회지, 경복궁 청연루
    청연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번지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원래 대비의 거처인 자경전 내에 딸린 부속 건물이다. 1888년(고종 25)에 지어졌다. 경회루에서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었던 반면에 청연루에서는 대비, 왕비, 공주, 군부인 등 궁중 여인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연꽃 향기 은은한 경복궁 향원정
    향원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1867년~1873년 사이에 지어진 고종의 개인적 휴식처 건청궁의 후원에 세워진 정자이다. 향원지에 연꽃을 심어 놓고 이를 감상하기 위해 지어진 정자로, 연꽃의 향이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진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정자 이름을 따왔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인간과 하늘이 교감하는 작은 우주,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 창건 당시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편전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작은 누각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누각은 기울어지고 너무 좁아서 실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경복궁 수리를 명하면서 경회루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412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경회루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돌기둥만이 남았다. 고종 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태초의 원기를 담고 있는, 창덕궁 태극정
    태극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태극정의 본래 이름은 운영정(雲影亭)이었는데, 1636년(인조 14)에 다시 짓고 이름도 태극정으로 바꾸었다. 정자 편액의 ‘태극(太極)’은 태초의 혼돈한 원기를 의미한다. 『주역』에 ‘역에는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으며,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이에서 태극이 유래하였다.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정자 세 곳을 상림삼정(上林三亭)이라 하였는데, 태극정도 그 가운데 하나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농민들의 삶을 헤아리기 위해 만든 초가 정자, 창덕궁 청의정
    청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1636년(인조 14)에 건립되었다. 초가지붕의 정자이다. 일종의 농민의 휴식처인 모정과도 같다. 이러한 모정을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 만든 것은 군주가 농민의 정서를 체험하고, 그해 농사가 풍년인가 흉년인가를 가늠하려는 마음의 자세가 반영된 것이다. 

지역 속에 담긴 흥미로운 유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에는 지도에서 찾을 수 없는 다양한 지역 이야기들이 숨어있습니다. 지도로 길을 찾을 순 있지만, 이곳에 언제부터 길이 있었는지, 길이 왜 만들어졌는지, 이곳 지형이 주민들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끼쳤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죠.
궁금증이 생겼을 때 지도 대신 봐야 할 책이 바로 '시군지'입니다. 구례·완주·제천에서 간행한 이 사료집은 그 지역의 산과 강, 그리고 마을이 어떤 시간을 지나 지금에 이르렀는지 보여주죠. 물론 서울이나 인천의 향토문화자원집처럼, 우리가 익히 아는 대도시의 깊은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돕는 자료들도 있습니다.
이렇듯 '시군지'는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한 지역의 어제와 오늘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합니다. 매일 무심히 지나치던 우리 동네에서든, 낯선 여행지에서든, 지역에 숨겨진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시군지를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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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신안군

    1800년대 말 서해안 지역의 도서 상황을 기록한 지도군총쇄록
    『지도군총쇄록(智島郡叢瑣錄)』은 19세기 말의 자료로 오늘날 신안군 지역에 해당하는 당시 지도 지역의 다양한 모습을 기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오횡묵으로 지도군수로 부임을 받은 그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지도군까지 배를 타도 오는 일련의 과정과 지도군수로 있으면서 그가 여러 섬을 다니며 했던 일들을 이 책에 소상하게 기록해 놓았다. 여러 가지로 자료가 부족한 19세기 말 도서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리하였다는 점에 무척 의미 있는 책이 아닐 수 없다.
  •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시 대정읍의 역사자료전시관, 기억의 눌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은 알뜨르 비행장, 선알오름 학살터 등 한국 근현대사의 기억들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 기억들을 모아놓은 대정현 역사자료전시관의 이름이 기억의 눌이다. 눌은 제주 방언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 더미'이다. 기억의 눌이 있는 건물은 1955년 지어진 대정면사무소 건물로, 2005년 등록문화재 157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기억의 눌은 대정읍의 주민들이 직접 지역 공간의 기억과 기록을 모아 만든 전시관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30년 동안 지역문화잡지를 발행해 온 문화모임 안동
    ‘문화모임 안동’은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을 위한 전국 강연이 안동에서 열리면서 신문사 후원을 위해 모였던 안동지역의 문화인과 학자들이 안동지역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가 필요하다는데 공감하면서 만들어졌다. ‘문화모임 안동’을 통해 1988년 4월에 창간된 지역문화잡지 『안동』은 30년이 넘도록 발행되고 있다. 이 잡지에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주인공이며 안동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가 게재된다. 재정적 어려움으로 2014년에 종간될 뻔 했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여전히 발행되고 있다.
  • 경기 >이천시

    이천을 이끄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천 이야기 총론
    이천문화원은 이천 문화의 주체가 이천시민임을 인식하여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과 시민기록관 등 아카이브 기반 시설을 마련하였다. 주제별 아카이브와 이천문화를 알리는 다양한 전문가 과정을 개설하였다. 2017년 ‘이천의 소소한 일상을 기록하다-이천 시민기록자 양성 과정’을 수료한 시민기록자들은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이천시민의 일상과 기억을 기록하고, 지역 아카이브 전 과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구술생애사, 마을지, 마을 노거수 사진 기록, 이천 옛이야기 총서 등 다양한 콘텐츠로 우리 동네 이야기를 기록·생산하고 있다.
  • 경기 >이천시

    주민의 관점에서 마을을 기록하는 문화 자치, 이천 마을지
    이천문화원은 2017년부터 외지에서 온 소수 전문가가 기록하는 기존의 마을지 제작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주민이 기록 주체로 참여하는 방식의 마을지를 제작·발간해 오고 있다. 이를 위해 마을지 제작 우선 과정으로 시민기록자와 마을주민이 만나는 ‘마을 기록학교’를 마련하여 마을주민의 삶과 경험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고 기록할지 주민 스스로 선택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후에는 마을주민 인터뷰로 개개인의 기억과 마을 이야기 등을 기록하며 마을 역사를 재발견하고 마을주민이 마을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마을지를 발간한다.
  • 경기 >과천시

    시민들의 기증 자료로 꾸며진 과천향토사료관
    2012년 4월 16일 과천시 문원동에 있는 과천문화원 2층에 과천향토사료관을 개관하였다. 과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18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기증받은 자료인 고문헌, 박물류, 사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과천사람들의 삶의 흔적과 열정을 느낄 수 있고 조상들의 발자취가 담겨 있는 곳이다.
  • 전남 >곡성군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곡성군 지명유래
    곡성이란 명칭은 본래 백제의 욕내(欲乃)에서 유래된다. 통일신라시대 지방통치조직과 군현개명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생성된 '곡성군' 지명은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당시 욕내군은 지금의 목사동면과 석곡면 일대로 고려시대까지 읍치가 있었던 곳이다. ‘골짜기가 많은 곳’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욕내'라는 순우리말 명칭이 한자로 변경되어 '곡성(谷城)'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