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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다, 한글날

10월 9일 한글날은 훈민정음으로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것을 기념하고, 우리 글자 한글의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날입니다. 훈민정음은 1443년부터 제정하여 1446년에 반포되었습니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주도하에 창의적으로 만든 문자입니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것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업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종 시기에는 과학과 기술이 많이 발전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연을 이용해 시간을 측정하는 해시계와 물시계도 이때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측우기 또한 세종 시기에 발명이 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농업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세종은 법전의 정비에도 힘을 썼다고 전해집니다. 그뿐만 아니라 음악 분야에서도 중요한 업적을 남겼는데요, 악보의 역할을 하는 정간보를 창안하고 국가 의례를 위한 음악인 '여민락'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종대왕의 다양한 업적을 알아보았습니다. 이번 한글날을 통해 우수한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우리말을 좀 더 사용하는 하루가 되는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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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아산시

    신분의 한계를 이겨낸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조선시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충청남도 아산이 본관이다. 세종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과학기술을 배우러 명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장영실이 귀국 후 세종은 그를 노비에서 해방시키고 벼슬까지 내려 주었다. 장영실은 세종의 지원과 신뢰하에 본인의 실력과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장영실은 최고의 발명품, 물시계 자격루와 해시계 앙부일구 등을 만들어내며 조선시대 과학기술 문화의 꽃을 피웠다.
  • 울산 >중구

    최현배를 기리고 한글사랑을 알리는 ‘외솔 한글 한마당’
    ‘외솔 한글 한마당’은 일제강점기 때 한글을 사랑하고 지켜낸 최현배(1894~1970년) 선생을 기리고 한글을 전 세계에 보급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치러지는 인물축제이면서 한글 확산 목적축제이다. 축제가 행해지는 장소는 울산에 있는 외솔 최현배의 기념관과 그 일대이다. 공식행사, 특별행사, 학술경연대회, 공연행사, 전시체험행사로 나누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10월 9일 한글날을 전후해서 행해진다.
  • 전북 >정읍시

    ‘조선말 큰사전’ 편찬원 권승욱
    권승욱은 고창고보 스승인 정인승의 권유로 조선어사전 편찬에 참여하게 된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 때문에 1년 옥고를 치르지만, 포기하지 않고 1938년 6월부터 1957년 한글날까지 『조선말 큰사전』여섯 권이 발간될 때까지 20년 동안 조선어사전 편찬에 헌신하였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언어로 항일 민족운동을 전개하다, 조선어학회
    조선어학회(朝鮮語學會)는 한글운동을 창시했던 주시경(周時經)이 1908년 창립한 국어연구학회(國語硏究學會)에 기원을 둔 학술운동단체이다. 국어연구학회는 이후 조선언문회(1911년), 한글모(1913년) 등으로 개칭되었으며, 1919년 제자들이 조선어연구회로 명칭을 바꾸어 활동하다가 1931년 조선어학회로 변경되었다. 해방 후에는 조직을 정비하고 1949년 한글학회로 재탄생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20~1930년대에는 한글날 제정·기관지 『한글』 창간·조선어강습회 개최 등의 활동과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및 한글맞춤법을 비롯한 표준말 사정, 외래어 표기법 제정 작업을 하였다. 그러나 1942년 10월 일제가 날조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인해 조선어학회 회원 33명이 검거되어 옥중에서 2명이 고문 후유증으로 순국하는 등 해방될 때까지 고초를 겪었다.
  • 강원 >강릉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의 허균
    허균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소설이자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의 저자이다. 허균은 명문가 유학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천재적인 예술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대와 화합하지 못했다. 늦게 얻은 벼슬길에서 여러 죄명으로 좌천당하고 유배당하다 결국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하지만 그의 자유분방한 사상은 작품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이 그의 누이이다.
  • 전남 >순천시

    국내 최초 순한글 가로쓰기 잡지발행자 한창기의 ‘뿌리깊은나무박물관’
    한국을 대표하는 K팝그룹 BTS의 음악에는 때로 국악장단과 ‘얼쑤’, ‘지화자좋다’와 같은 추임새가 어우러진다. 얼터너티브 팝밴드 이날치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의 접점을 찾아 음악을 들려준다. 이처럼 현대의 팝그룹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재발견해 가치를 높이고 있다. 이들 이전에 일찍이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수집해온 이가 있다. 바로 잡지<뿌리깊은나무>의 발행인 한창기(1936~1997년)이다. 그가 발간한 <뿌리깊은나무>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잡지이며 최초의 가로쓰기 잡지였다. <뿌리깊은나무>의 가치는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남아 이어지고 있다.
  • 경남 >의령군

    조선어를 지키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다, 이극로
    이극로는 영화 <말모이> 상영으로 새롭게 주목받은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다. 그는 일본의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의 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한글 운동을 하였다. 같은 민족이면서도 말이 달라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것을 극복하기 위해 말과 철자를 통일하는 맞춤법 통일안을 만들었다. 또한 그는 위장 친일행동을 하고, 이우식과 정세권 등에게 사전 편찬에 후원하도록 설득하는 일을 하는 등 오직 사전편찬만을 위해 헌신했다.
  • 충남 >공주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불경, 월인석보 목판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에 위치한 갑사(甲寺)에는 『월인석보(月印釋譜)』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월인석보(月印釋譜)』는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과 『석보상절(釋譜詳節)』을 합하여 한글로 발간한 불경이다. 갑사에 소장된 이 목판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월인석보 목판으로서, 25권 중 21권 46매만 남아 있다. 15세기 국어 생활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전국

    우리나라에 맞는 최초의 농사책, 『농사직설』
    『농사직설』은 세종대왕의 명으로 정초와 변효문 등이 작성한 우리나라 최초의 농사책이다. 농사직설은 우리 나라의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던 기존의 중국에서 들어온 농서와는 달리 우리나라 현장조사에 의한 연구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농사와 맞는 정보를 담고 있다.
  •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과 함께하는 여주 한글시장
    여주제일시장은 경기도에서 두 번째로 큰 전통 5일장이 열리던 상설시장이다. 이곳이 2016년 문화관광형 시장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한글을 테마로 한 ‘여주한글시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매 5일과 10일에 열리는 5일장 때는 상설시장에 덧붙여 가판이 서면서 농수산물과 살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여주한글시장 안에는 세종대왕상, 한글빵 카페, 한글 벽화 등 보고 즐길거리가 많다.

보름달에게 소원을 비는 추석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뜨는 민족 대명절 추석이 찾아왔습니다.
팔월의 한가운데 날이라는 뜻을 지닌 추석은 순우리말로 한가위라 불리는데요.
오곡이 익는 계절 사이에 있는 명절인 만큼 풍요를 기리는 세시풍속도 행해진답니다.
추석에는 어떤 세시풍속이 행해지는지 알아볼까요?

추석은 농사를 마감한 한가한 시기이자 풍요를 자랑하는 때로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강강술래, 거북놀이, 줄다리기 등의놀이를 통해 공동체 의식을 다지기도 했는데요.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기도 해 날이 쌀쌀해져 가을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하는데
추석 때 입는 새 옷을 추석빔이라고 했답니다.그리고 조상에게 예를 갖추어 차례를 지내기 위해
햇곡으로 빚은 송편과 각종 음식을 준비하며 산소에 가서 성묘하는 조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손의 도리를 다합니다. 1년 중 가장 큰 만월을 맞이하는 추석, 맑은 하늘에 둥글게 떠오른 보름달을 바라보며 흥겨운 명절을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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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평택시

    어깨도 들썩거리게 만드는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
    평택 와야골 거북놀이는 팽성읍 와야골 마을에서 8월 추석에 수수깡으로 거북이 형상을 하고 집집마다 다니며 놀았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이다. 거북 신앙에서 유래하며, 마을 주민의 안녕과 복을 비는 목적을 지니며 세시놀이로 전승되다가 중단되었으나, 근래에 다시 복원되었다.
  • 충남 >당진시

    볏가릿대를 세워 한 해의 풍년을 비는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
    당진 가학리 볏가릿대거북놀이는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가학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되는 놀이다. 정월대보름에 대략 8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는 놀이다. 놀이는 총 여섯마당으로 진행된다. 볏가릿대는 벼, 보리, 조, 팥, 기장 등 오곡을 매달고 이삭이 늘어진 모양으로 동아줄을 거꾸로 틀어 대동샘 옆에 세우고, 2월 초하룻날 허물면서 한 해의 풍년을 점친다. 거북이도 만들어 그 안에 두 사람이 들어가 동네를 돈다. 이 놀이는 한 해의 풍년을 점치고 장수를 기원하는 놀이이다.
  • 경기 >이천시

    아이들의 장수를 바라는 이천 거북놀이
    이천 거북놀이는 청소년들이 거북이 형상을 뒤집어쓰고 노는 놀이로 추석날 벌인다. 거북이를 수수 잎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밭농사와 관련이 깊다. 아이들이 남의 집 마당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집주인이 떡과 음식을 내어주는 풍습이 있는데, 여기에는 아이들이 장수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 경북 >청도군

    청도의 색다른 볼거리, 청도소싸움놀이
    청도소싸움은 예전에 머슴들의 소박한 소싸움에서 점차 마을간 집단적인 소싸움으로 바뀌었으며, 근래에는 현대식 소싸움경기장에서 상금을 걸고 체급별 토너먼트 방식의 경기로 다시 바뀌게 되었다. 현재 동물 싸움 형태로는 유일하게 전통민속놀이로 인정받아 해마다 봄철에 청도소싸움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 전남 >진도군

    보름달 뜨는 밤 아낙들의 놀이, 강강술래
    강강술래는 우리나라의 남서쪽 해안지역에서 주로 추석날 밤에 행해졌던 노래와 무용이 혼합된 부녀자들의 민속놀이다. 밝은 보름달이 뜬 밤에 마을처녀들이 손에 손을 맞잡고 원을 둥글게 그리고 돌며, 노래를 부른다. 이 놀이는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전남 >곡성군

    과식하게 되는 추석, 속을 편안하게 해주는 토란국
    추석상에 토란국은 쇠고기 양지머리 육수에 토란(土卵)을 넣고 끓인 국으로 토란탕, 또는 토란곰국이라고도 한다. 토란국은 조선시대 가사인 농가월령가에도 추석음식으로 등장한다. 토란은 위와 장운동을 활발하게 하여 소화를 돕고 변비예방에 효과가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이러한 특성을 지닌 토란으로 만든 토란국은 다양하고 기름진 음식들이 가득한 추석에 꼭 맞는 음식이라 할 수 있다.
  • 전국

    명절을 즐기던 삼국시대 사람들
    고대부족국가에서 농경 제천의식이 시작되는데, 이는 추수감사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명절의 출발은 바로 이러한 농경제천의식에서 비롯한다. 신라 유리왕대에 한가위가 시작되었다고 하고, 백결선생과 관련된 기사에서는 새해가 되었을 때 떡을 해먹었다고도 한다. 이를 통해서 명절의 기원은 농경의례에서, 또 명절음식의 기원은 농사지은 곡물의 가공을 통해 마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삼국기대부터 지내기 시작한 명절도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이다.
  • 전국

    햇곡식을 조상님께 올리는 추석차례
    추석에 지내는 차례를 추석차례라고 한다. 본래 차례는 차를 올리는 예를 말하는 것이지만 조선시대 후기를 지나면서 차례상이 기제사와 같은 제사상으로 변하게 되었다. 대신에 차례상에는 시절음식이 올라간다. 추석이 너무 빨라서 아직 곡식이 수확되지 않은 경우에는 벼 한줌을 베어서 밥 대신에 놓기도 했다. 햇곡식을 수확하지 못한 경우에는 추석 이후인 9월 9일(중구)에 차례를 지냈다.
  • 전국

    햇곡식 못 구한 추석에는 9월 9일 중구차례
    추석 무렵에도 곡식이 제대로 여물지 않은 경우, 차례를 지내는 날짜를 미루어 9월 9일 중양절에 차례를 지냈다. 이를 중구차례라고 부른다. 어떤 지역에는 추석차례보다 큰 명절이었던 중구차례는 추석이 연휴로 바뀌면서 사라졌다. 중구차례에는 후손이 없이 죽는 사람이나 객사한 사람, 기일을 모르는 조상들을 위한 제사를 주로 지냈다.
  • 전국

    온가족이 함께 추석을 준비하는 벌초
    조상님의 묘지 주변에 자란 풀을 베고 다듬으며 잔디를 잘 정리하는 것을 벌초라 부른다. 벌초는 지금도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미풍양속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금초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교 사회에서는 묘를 돌보고 살피는 일을 부모를 모시는 것과 같은 효행으로 인식하며, 벌초가 안된 묘는 자손이 없는 묘로 여겨지곤 했다.

경축 고조선 건국의 날, 개천절

개천절은 단군이 최초의 민족국가인 단군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개천'은 하늘이 열렸다는 뜻으로, 환웅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나라를 세운 전설에서 비롯된 말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개천절은 단군조선의 건국과 문화민족으로의 새로운 탄생 모두를 아우르는 국가적 경축일이자 명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개천절이 10월 3일인 이유는 다양하지만,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홍익인간'의 이념과 이치로 다스리는 세계라는 뜻의 '이화세계'의 대업을 시작한 날인 음력 10월 3일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타당하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개천절을 맞아 단군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고 갈까요?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번째 임금입니다. 역사적인 인물로 기록되었을뿐만 아니라 일부 지역에서는 단군을 마을신으로 모시기도 합니다. 개천절을 통해 한민족의 긴 역사와 그 안에 담긴 가치를 기억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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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곡성군

    이 나라 한아바님은 단군이시니, 곡성 단군전
    곡성 단군전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백당 신태윤이 1914년 전라남도 곡성군에 처음 건립했다. 백당은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뒤 1930년대에 곡성에 돌아와 오늘날의 단군전 자리에 새롭게 단군 사당을 짓고 단군 영정을 모셔다 놓았다. 역사학자였던 백당은 가는 곳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단군전을 지었다.
  • 서울 >용산구

    마을신이 된 고조선의 건국 시조, 단군
    단군은 우리민족의 시조로 고조선의 첫 번째 임금이다. 단군에 관한 기록은 『위서(魏書)』,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 전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단군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는 데에서는 일치한다.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단군조선을 개국했다.
  • 인천 >강화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 전북 >익산시

    고조선 기준왕의 전설이 깃든 익산 낭산산성
    익산 낭산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13호로 전라북도 익산시 낭산면 낭산리 산48번지 해발 162m의 낭산산 정상에서 서쪽 골짜기 일부를 감싸고 축성된 테뫼식과 포곡식의 복합산성이다. 낭산산성은 마한성(馬韓城)이라고도 알려져 있고, 구성(舊城) 또는 북성(北城)으로도 불린다. 이 성이 마한시대에 축성된 성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성내에서 발견되는 유물로 보아 백제 시기에 이미 축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전국

    하늘과 땅을 품고 고조선을 연 단군왕검
    단군왕검에 관한 이야기는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고조선의 내력을 밝히는 건국신화이며, 우리 민족의 개국신화이기도 하다. '단군신화'에는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라는 성스러운 땅에 내려와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개국의 터전을 만들고, 그의 아들인 단군왕검이 조선을 건국했다고 나온다. 단군신화에 대해서는 환인-환웅-단검으로 이어지는 부계 3대를 중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의 결합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 전국

    단군할아버지도 농사를 지었을까? 고조선 농업
    고조선은 BC 108년까지 요동과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존재한 한국 최초의 국가이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건국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신시와 고조선사회가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고조선 시기에 농경이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 전남 >보성군

    나철, 대종교로 나라를 찾아라
    나철은 대종교를 다시 일으킨 종교인이자 독립운동가다. 과거에 급제를 한 후 그는 관직에 나가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귀향해 10년간 수행을 한다. 1904년 포츠머스조약, 러일전쟁, 을사조약 등이 일어나자 애국계몽운동, 민간외교운동, 을사오적 암살 시도 등을 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그는 애국계몽운동이나 매국노 암살로는 국권을 회복할 수 없고, 우리 민족의 정신을 다시 되살리는 것, 즉 단군신앙으로 단결해서 일제에 항거하는 민족종교운동만이 국권을 회복할 수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대종교를 중광한 후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포교활동과 국학운동, 독립군 양성 등을 한다. 일제가 대종교를 탄압하자 순교로서 항거한다.

추위도 이겨낸, 1月의 지역인물

1월에 태어난 인물들은 누가 있을까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물들을 알아봅시다.

표암 강세황은 조선시대의 르네상스였던 18세기의 중심에 있던 화가였습니다. 서구의 원근법과 음영법을 도입하기도했고 김홍도와 신위 등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습니다.

천상병은 일상적인 언어로 순수함을 담았던 시인인데요. 대표작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로 시작하는 "귀천"입니다.

백정기는 일제강점기 동안 일제에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입니다. 그는 흑생공포단을 조직하여 친일파 처단, 일제 시설 파괴 등 무장 독립 투쟁을 이어가다 결국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1月의 지역인물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다음 달에는 또 어떤 인물들이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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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지다, 김상옥
    김상옥은 서울 출신으로 가정형편이 좋지않아 어려서부터 생계를 도와야 하였으나 배움에 대한 정열로 야학에서 주경야독하였다. 김상옥은 약 행상과 철물점 경영으로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비밀결사 광복단을 조직하였다. 김상옥이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을 하게 된 것은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을 겪으면서부터이다. 이후 김상옥은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행하여 독립운동 일선에서 활동하였다. 또한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한계를 인식하고 1920년 중국에서 의열단에 가입하여 무장투쟁에 나섰다. 김상옥은 1922년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세간을 놀라게 하였고 조선총독 주살을 계획하였으나 밀정의 밀고로 일본 경찰에 쫓겼다. 그리고 효제동 이혜수의 집을 포위한 무장경찰과 결전을 벌이고, 탄약이 떨어지자 마지막 한 발을 자신의 머리에 쏘아 자결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2년 김상옥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 서울 >노원구

    자연과 인간의 순수함을 일상적인 언어로 담은 시인 천상병
    천상병은 경상남도 창원시의 시인으로 1930년 일본 효고현 히메지시에서 출생하여 1945년 귀국하여 창원시에서 성장했다. 그의 시는 동심에 가까운 순진성이 특징이다. 자연과 인간의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일상적인 언어에 담겨 있다. 대표작으로는 「귀천」(1970)이 있다. 현재는 천상병을 기리는 사업들이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벌어지고 있다.
  • 서울 >서대문구

    격변의 시기, 조선의 눈을 뜨게 하다. 서재필
    1986년 4월 7일, 서재필을 중심으로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사회정치단체인 독립협회가 설립되었다. 연이어 최초의 민간 발행 신문 「독립신문」까지 창간되었다. 국가의 근대화를 위해 민중 계몽이 기필코 필요하다고 생각한 서재필의 결실이 이룬 역사적인 날이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의 발간 의도대로 대중을 계몽하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이 무너지며 조국에서 추방당하면서도 조국의 계몽과 독립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의 조국을 향한 처절한 사랑은 대한민국 역사 위에 길이 남을 것이다.
  • 경북 >경주시

    '나그네'를 쓴 서정시의 대가 박목월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로 시작하는 동요 「얼룩송아지」는 박목월의 시에 노래를 붙인 것이다. 박목월은 경상북도 경주에서 태어났다. 동시로 등단했고,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활동했다. 대표작 「나그네」는 조지훈의 시 「완화삼」에 화답한 시라고 한다. 향토적인 서정성을 민요의 율조에 담아 계승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에는 박목월 생가와 밀밭이 복원되어 있다.
  • 강원 >원주시

    한기악, 교육 ·언론을 통해 민족계몽에 헌신하다.
    한기악의 자는 명오(明五), 호는 월봉이고 원주에서 출생하였다. 보성전문(普成專門)학교 법과 졸업 후 동경(東京)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상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의정원 ·법무 의원이 되었다. 1920년 『동아일보(東亞日報)』 창간에 가담, 1921년 발행 겸 편집인, 1924년 편집국장 대리 등을 역임하였다. 1925년 『시대일보(時代日報)』 초대 편집국장, 1928년 『조선일보(朝鮮日報)』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5년 중앙고보로 돌아와 교사로 봉직하여, 재단 간사(幹事)·감사(監事)를 역임하면서 인재양성에 헌신했다.
  • 충북 >진천군

    붓의 기세로 오악을 흔든 표암 강세황
    조선의 문예가 꽃피던 18세기 화단에서 남달리 높은 식견과 안목을 갖춘 사대부 화가로서 시, 서, 화 삼절(三絶)로 불리며 그림 제작과 중국과 조선의 서화 작품에 대해 해박한 품평을 남겼다. 남종문인화며 진경산수화, 풍속화, 도석인물화의 유행 및 서양화법의 수용 등을 주도하며 ‘예원의 총수’로 활약한 선구적 인물로 김홍도와 신위 등에게 그림을 가르친 스승이기도 했다.
  • 서울 >용산구

    한민족을 위한 투쟁, 백정기
    백정기(白貞基, 1896~1934년)는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일제에 정면으로 맞섰던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우리 민족의 독립을 생각했던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3.1운동의 분위기를 느끼고 고향인 부안과 인근지역에서 만세 운동을 이끌었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망명했던 백정기는 국내외를 오가며 독립운동 자금을 조성하는 일을 맡았다. 신채호와 주로 교류했던 그는 점차 무정부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민족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에 저항하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독립이었다. 그는 동지들과 함께 흑색공포단(黑色恐怖團)을 조직하고 친일파 처단, 일제의 기간 시설 파괴 등 무장 독립 투쟁을 이어가다 결국 일본 주중대사 아리요시 처단에 실패해 체포되었다.

장인의 손길로 빚어낸 우리의 예술

한국의 전통 공예는 일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나무를 깎아 책을 올려둘 경대를 만들고, 한지를 꼬아 곡식을 담을 바구니를 엮었습니다. 흙을 빚어 밥그릇과 술잔을 구웠고, 실을 매듭지어 허리춤에 다는 노리개를 완성했죠.
여기에 선조들의 미적 감각이 더해지자, 생필품은 예술 작품으로 거듭났습니다. 그 아름다움은 오랜 시간 쌓아온 손기술과 작은 차이도 놓치지 않는 눈썰미에서 비롯되었는데요. 매듭 하나를 만들 때에도 실을 수십 번 교차해 모양을 다듬었고, 도자기 한 점을 구울 때도 옻나무 진액을 칠하고 말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 시간이 두 달 이상 소요되었다고 하죠. 서두르지 않고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이는 것, 이것이 장인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태어난 공예품들은 수백 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오늘날 젊은 공예가들은 이러한 전통 기법을 따르면서도 현대적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며 한국 공예의 영역을 넓히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 공예의 세계로 들어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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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생활도자기의 장인 사기장
    조선시대 도자기는 질박하고 견고했으나 종국이나 일본에 비해 정교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사기그릇을 만들던 장인을 사기장이라 한다. 사기장은 국가에서 관리하던 직업 중에서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노동 강도가 세서 대대로 가업으로 전수하게 한 유일한 직업이다. 조선시대 사옹원에서 만들던 자기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장인들이 전국적으로 흩어져 곳곳에서 그릇을 제작하였다. 부산광역시에서는 2005년 사기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전승에 힘쓰고 있다.
  • 전국

    금속공예의 정화(精華), 입사공예의 전통 기법
    입사(入絲)는 금속 표면에 홈을 파고 금선(金線) 또는 은선(銀線)을 박음질하여 장식하는 금속공예 기법이다. 금속용기나 용구는 질감이 딱딱하고 차가우며 무겁다. 철로 만든 것들은 어둡기까지 하다. 입사는 어두운 바탕 금속에 대비되는 입사 금속의 광채를 도드라지게 하여 기물을 화려하고도 품격있게 한다. 입사는 섬세하고 화려해서 금속공예의 정화(精華)로 일컬어진다. 전통 입사기법은 대략 기물 만들기, 바탕 작업, 은실박이 작업, 착색 작업으로 나뉘는데, 조금 더 세부적으로는 15가지 정도의 공정이 있다. 이 공정을 아홉 공정으로 구성해본다.
  • 전국

    실생활에 유용하게, 한국 전통매듭공예의 용도
    매듭공예는 예술미와 장식미가 돋보이는 대상물이긴 하나 본래는 우리네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실생활용품이었다. 현재까지 남아 있는 매듭공예와 관련된 것들을 보면 남성용 매듭, 여성용 매듭, 패물, 불구용 매듭 등으로 구분을 할 수가 있다. 이 중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남성용 매듭과 여성용 매듭이다. 이 가운데 남성용 매듭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을 하는 반면, 여성용 매듭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긴 하나 노리개를 비롯해 귀걸이술 등이 주를 이룬다.
  • 전국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 유리 공예의 기법
    유리공예는 크게 열간가공과 냉간가공으로 나뉜다. 열간가공은 유리를 가열하는 기법으로 블로잉, 캐스팅, 모자이크, 램프워킹, 퓨징, 벤딩, 샤깅, 슬럼핑, 빠뜨 드 베르 등이 있다. 냉간 가공은 상온의 유리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컷팅, 인그레이빙, 라미네이팅, 에칭, 폴리싱, 샌드블라스팅 등이 있다. 유리공예가는 이상의 기법을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여러 기법을 혼합하여 유리 조형물과 공예품을 만든다.
  • 전국

    한지공예의 종류, 일반생활기물
    한지공예의 분류는 쓰이는 용도에 따라 남성용과 여성용기물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내용에 포함되지 않은 것들도 적지 않은데 한지공예를 연구하는 학자나 공예물을 직접 제작하는 사람들은 일반생활용구 내지 기물로 따로 분류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다. 전통성을 담보로 하는 공예물을 중심으로 여기에 속하는 것을 소개하면 종이옷, 찻상, 종이로 만든 우산(지우산), 그릇, 채독, 약장, 연, 부채, 자장궤 등을 들 수 있다.
  • 전국

    한지를 활용한 예술, 한지공예의 개념과 정의
    한지공예는 한지를 활용한 공예를 말한다. 한지공예와 관련이 깊은 한지는 다른 나라에서 사용하거나 제작하는 종이와 달리 닥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재료로 한국만의 방식으로 만든 종이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 보게 되면 한지공예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보여주는 공예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지공예는 종이를 사용한다고 하여 종이의 한자어인 지(紙)자를 사용하여 지공예라 칭하기도 한다.
  • 전국

    실과 끈의 예술, 전통매듭공예의 개념과 정의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예로 자리매김한 전통매듭은 본래 공예로서의 성격보다는 무언가를 묶는 기술적인 성격이 보다 강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술성과 장식성이 강조되면서 명실상부하게 공예품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전통매듭공예는 오랜 역사성을 지닌 것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 전국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짚풀공예의 역사
    정확한 역사는 사실상 가늠하기 어렵긴 하나 짚풀공예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조선시대 이전에 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아 정확한 실상을 엿보기 어렵지만 일부 남아 있는 자료들, 가령 고고학 자료나 유물, 그리고 삼국 및 고려시대의 문헌 등을 통해 그 실상을 조심스레 추정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선시대에 전성기를 누리던 짚풀공예는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였다. 합성섬유가 등장하면서 설 자리를 잃은 것이 주된 이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짚풀공예는 지금까지도 그 맥을 이어가고 있다.
  • 전국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시대 목공예
    조선시대 목공예는 인위적인 장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목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나뭇결을 살려 단순하고 소박한 것이 특징이다. 일상생활용 목공예품은 집안에서 남녀 공간을 분리하여 각 공간과 기능에 맞게 사용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소의 뿔을 공예품에 이용한 화각공예가 성행하였는데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공예분야이다.
  • 전국

    한국 목공예의 특성
    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재료인 만큼 예로부터 일상생활에 다양하게 쓰였다. 우리나라는 산맥과 강을 따라 각 지방이 나뉘어져 독특한 생활환경과 풍습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지역 색은 지역 특산의 목재와 생활양식에 따라 제작된 목공예에서도 잘 나타난다. 특히 소반, 반닫이 등은 지역마다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효심으로 이어진 우리의 이야기

'효'는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과 사랑은 사람됨을 판단하는 기준이었고, 집안과 마을의 질서를 이루는 중요한 가치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설화와 지명 속에는 효를 앞세운 이야기가 유난히 많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버지의 부고를 듣고 냇가를 건너려던 여인을 위해 고려 무신 임연이 하루 만에 돌다리를 놓아주었다는 진천 농다리 이야기, 병든 아버지를 위해 아홉 개의 절을 돌며 밥을 구한 아이를 기려 이름 붙인 춘천 효자바위 등 효심 깊은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하지만 효 이야기가 모두 따뜻한 결말을 맺은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 어머니를 살리려다 호랑이가 되어 산을 떠돌았다는 홍범 전설처럼 비극을 품은 이야기들도 전해집니다.
이처럼 효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전해져 오는 것은 그 안에 담긴 희생과 사랑이 우리 문화에서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옛 이야기 속에 담긴 효의 의미, 함께 살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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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춘천시

    며느리의 정성으로 솟은 효정
    강원도 춘천시 남면 가정리 약바위 서쪽에 효정이 있었다. 효정의 유래와 관련하여 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 후기에 남면에 유씨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부인 이씨의 효심이 지극하였다. 이씨는 매일 아침 심산유곡에서 정화수를 떠 와 시부모님께 올렸는데, 그 정성에 감동한 산신령이 부엌에 샘을 만들어주었다. 그 샘이 바로 효정이다. 효정은 물맛이 매우 좋았다고 한다.
  • 강원 >춘천시

    어린 효자가 늙은 아버지를 봉양하던 춘천 효자바위
    ‘효자바위’는 강원도 춘천시 신북읍 발산리 수리봉에 있는 바위인데 사람들에 따라서는 ‘효자암(孝子岩)’, 또는 ‘기특바위’라고도 한다. 수리봉 아래 바위에서 늙고 병든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근처 아홉 곳의 절을 다니며 밥을 얻어다 아버지를 봉양했는데 절에서는 아이가 오는 것을 귀찮아했다. 그래서 스님들이 꾀를 낸 것이 아홉 개 절이 같은 시간에 공양을 올리기로 하였다. 그러면 아이는 한 곳밖에 올 수가 없으니 그만큼 밥이 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는 같은 시간에 아홉 곳에 나타나 밥을 청했다. 스님들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바위를 도끼로 내리쳤다. 그러자 붉은 피가 솟구쳐서 아홉 곳의 절로 향했다. 이후 절은 망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사람들은 효자가 살던 바위라고 해서 ‘효자바위’라 불렀다.
  • 인천 >옹진군

    바다의 험난한 환경을 보여주는 심청이와 인신공희
    심청전의 주요 모티브인 인신공희는 사람을 제물로 삼아 어떤 대상에 바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양상은 비교적 아주 오래전부터 행해졌을 가능성이 농후한데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순장문화이다. 왕이나 최고의 통치자가 죽으면 그 옆에 살아 있는 사람을 함께 매장하는 풍습으로 그러한 흔적은 비교적 여러 사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어촌 지역의 인신공희는 비교적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백령도 지역에서는 숫총각을 바다에 빠뜨렸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양한 양상으로 바뀌게 된다.
  • 경북 >칠곡군

    호랑이로 변한 효자 홍범
    예전에 홍씨 효자가 아내와 함께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병든 어머니를 정성으로 간호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어느 날 우연히 도사를 통해 수캐의 불알 서 말이 있으면 효험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또 호랑이로 변했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주문이 적힌 종이를 받았다. 홍씨 효자가 밤마다 호랑이로 변해 이웃 마을에서 개를 죽였는데, 이를 알게 된 아내가 사실이 발각될까 두려워 주문이 적힌 종이를 태워버렸다. 홍씨 효자는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호랑이의 몸이 되어 홍범이라 불렸으며, 산을 떠돌다 포수의 총을 맞아 죽었다고 한다.
  • 충북 >진천군

    여인의 효성에 감동받아 놓은 농다리
    고려 고종 때의 무신 임연은 매일 아침 세금천이라는 냇가에서 세수를 하였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다 냇가를 건너려는 한 여인을 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친정에 가야 한다는 여인의 사정을 듣고 그 효성에 감동받은 임연은 용마를 타고 나타나 돌을 날라 농다리를 완성하였다. 여인은 임연이 놓아준 농다리를 통해 무사히 냇가를 건너갈 수 있었다.
  • 전북 >고창군

    김질의 효성으로 세워진 개가장터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석교리에 김질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등창을 빨아 낫게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상사에 흙을 져다가 성분(成墳)하고 시묘살이를 하였다고 한다. ‘개가장터’는 김질의 효성으로 장이 열렸다는 전설이 전한다. 
  • 강원 >춘천시

    거두리와 효자문거리의 유래가 된 효성 깊은 총각
    효성 깊은 총각 이야기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전승되는 민담이다. 주로 아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부모는 아버지보다는 어머니의 비중이 높게 나타난다. 강원도 춘천시에는 한 총각이 병든 어머니의 약을 구하기 위해 시체의 머리를 잘라 먹인 이야기가 전한다. 그 시체는 나중에 보니 산삼이었다. 또 한 겨울에 어머니가 먹고 싶은 딸기를 구하고 위기에 처했지만, 호랑이의 도움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함께 결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게가 장원급제 상징이 된 이유

함양 남계서원에 가면 천장에 그려진 게 두 마리를 볼 수 있습니다. 서원과 게 그림이라니, 둘 사이 연관성이 무엇일지 의문이 생길 수 있지만, 게는 예로부터 복과 합격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게가 두 마리라는 건 초시와 복시, 즉 1차 시험과 최종 시험까지 모두 합격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셈이죠.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촌에서 게는 더욱 각별한 존재였습니다. 단옷날 해안가에서 열리던 '단오게잡이놀이'는 남녀노소 다 같이 즐기던 여름철 풍속으로, 한 해의 풍요와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였습니다. 삼척에서는 게가 잡귀를 막아준다고 여겨, 사대광장에서 게의 발을 닮은 줄을 당기며 마을의 평안을 빌었습니다. 이것을 '기줄다리기'라고 하는데, 여기서 '기'는 게의 방언입니다.
설화 속에서도 게는 지혜를 전하는 존재였습니다. '원숭이와 게의 떡 다툼' 설화에는 욕심을 경계해야 한다는 교훈이, '소금쟁이와 게와 물고기' 설화에는 경솔하게 판단하면 안 된다는 우리 조상의 가르침이 담겨 있죠. 이렇듯 게는 오랜 세월 행운과 깨달음의 상징으로 우리의 곁에 함께 해왔습니다. 우리 함께 게에 얽힌 다채로운 우리 이야기를 만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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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삼척시

    나쁜 기운과 귀신을 쫓는 삼척 기줄다리기
    삼척 기줄다리기는 줄이 게(사투리 '기')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기줄다리기’라고 부른다. 삼척에서는 게가 나쁜 기운과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옛날에 죄인을 처형하던 곳인 사대광장에서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풍년도 풍년이지만 줄다리기에서 지면 마을 공사에 동원됐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매우 치열하게 했다. 줄은 쌍줄로 만들어서 두 줄을 비녀목으로 연결하는데, 이 힘겨운 줄 꼬기 작업을 달래주는 '술비통노래'가 지금까지 불리고 있어 주목된다.
  • 서울 >마포구

    섣부른 판단이 불러오는 참사를 보여주는 소금쟁이와 게와 물고기
    소금장수는 게를 잡아 구워 먹겠다, 끓여 먹겠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자 게는 좋겠다며 말대답을 한다. 물에 빠뜨리겠다니 그제야 하지 말라고 한다. 말대답에 약이 오른 소금장수는 게를 물에 던져버리게 되고 게는 약 올리며 도망간다. 소금장수는 다시 물고기를 잡지만 또 똑같이 말대답을 한다며 물고기를 물에 던지게 되고 물고기 역시 약을 올리고 도망간다. 소금장수가 허망한 채 다리를 건너는데 게와 물고기가 다시 놀렸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게와 물고기를 잡겠다며 소금장수는 물에 뛰어들어 죽게 된다.
  •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 충남 >태안군

    태안반도의 숨겨진 매력 태안군 꽃게
    충청남도에 속한 태안군을 대표하는 특산물은 꽃게이다. 꽃게는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잡히긴 하나 가장 핵심이 되는 곳은 단연 태안군이다. 태안군에서도 특히 가의도와 신진도 주변에서 꽃게를 많이 잡는데 한 때는 꽃게를 잡아 돈을 쓸어 담았다는 이야기가 지역에 전해온다. 태안 지역에서는 잡히는 꽃게를 가지고 다양한 요리를 만드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꽃게탕이 인기가 좋다.
  • 경기 >평택시

    단옷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단오게잡이놀이
    경기도 평택시의 단오게잡이놀이는 게잡이 과정을 놀이로 재구성한 것이다. 비교적 게가 많이 잡히는 평택 지역의 주민들은 단오 무렵이면 토실토실하게 살이 올라온 게를 잡기 위해 마을 주민들이 함께 강가나 갯가를 찾았다. 이 놀이는 게잡이를 나가기 전의 입장-게잡이-요리-뒷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비교적 단순해 보이긴 하나 놀이 과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놀이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게잡이 과정에서 서로 주고받는 소리 역시 이 놀이의 또 다른 묘미라 할 수 있다.
  • 경기 >의정부시

    원숭이의 엉덩이가 빨개진 이유가 밝혀진 원숭이와 게의 떡 다툼
    가을날, 원숭이가 게에게 놀러 오자 게는 논에서 잘 익은 곡식을 훑어다가 정성껏 떡을 만들어준다. 그런데 원숭이가 욕심을 부려 떡을 모조리 챙겨 나무로 올라갔다. 게에게 나무에 올라오면 떡을 주겠다며 놀리던 중 바람이 불어 떡이 바닥에 떨어졌다. 게는 떡을 가지고 게구멍으로 들어가 다시 원숭이를 놀리고, 화가 난 원숭이는 게구멍에 대고 방귀를 뀐다. 게는 원숭이 엉덩이를 잡아 뜯고 그 뒤로 원숭이 엉덩이는 빨갛게 되고 게 앞발엔 털이 생겼다고 한다.
  • 제주 >제주시

    용출수에서 산란하는 참게를 잡는 제주도 사람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화북동, 화순리, 하도리, 이호동 등은 강(江)이 바다와 이어지는 기수역으로, 이곳에 참게가 산다. 제주 해변의 대부분은 분출한 용암이 해변까지 흘러내린 계곡을 따라서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건천(乾川)이기에 참게 서식지는 매우 드물다. 어린 참게는 민물에서 생활하지만 산란기가 되면 기수역으로 내려와 한동안 생활한다. 절기상 망종(芒種, 6월 6일)이나 하지(夏至, 6월 22일)에 장마가 지면 그 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와 백로(白露, 9월 8일)까지 하류에서 사는데, 이때가 참게잡이철이다. 제주말로 참게 이름은 매우 다양하디. ‘산깅이’(화북동), ‘너파리깅이’(하도리), ‘냇깅이(화순리)’라 부른다. 산깅이는 ‘산에 사는 게’라는 뜻이며, 너파리깅이‘는 ’너팍너팍한 모양의 게‘라는 뜻이며, 냇깅이는 ‘냇가에 사는 게’라는 뜻이다. 이들 이름은 참게가 사는 기수역의 다양성에서 비롯되었다.
  • 충남 >태안군

    태안군 신진도에서는 통발 함정으로 꽃게를 잡는다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에는 제1종 신진도항이 있다. 1995년에 연륙교인 신진대교가 가설되면서 비로소 뭍이 되었다. 신진항에는 꽃게, 갈치, 오징어 등을 어획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여든 어선들이 즐비하다. 꽃게는 통발을 이용해서 잡는데, 통발에는 고등어나 열치 등을 넣어 꽃게를 유인한다. 통발을 물에 넣고 하루가 지난 후 거둔다. 과거에는 신진도 연안에서 주로 조업했으나, 지금은 격렬비열도 주변에서 근해어업을 한다. 산란기의 봄 꽃게는 가을 꽃게보다 살이 단단해 맛이 좋다. 과거에는 짚 가마니에 담아 꽃게를 인천장으로 보내 판매했으나, 지금은 톱밥에 꽃게를 담아 살아있는 꽃게를 소비자들에게 보낸다. 태안군이 바다목장사업으로 시작한 종묘 방류 사업이 꽃게잡이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 전남 >순천시

    순천만 펄 갯벌에서 널배 타고 칠게를 잡자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마산리 거차마을은 순천만(順天灣)에 속한다. 해안 하구에 형성된 연안습지로 칠게가 많다. 넓게 펼쳐진 갯벌에 미리 건강망을 설치해 두고, 밀물을 따라 들어온 고기를 잡는다. 건강망은 남해안과 서해안 갯벌에 치는 어구이지만, 순천만에서는 칠게를 주로 잡는다. 그물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대나무발을 쳤다. 12㎢의 넓은 면적 전체가 펄로 이루어진 순천만의 펄 갯벌에 쳐둔 건강망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널배[뻘배]를 이용해야 한다. 수명이 길고, 속도가 빠른 삼나무로 널배를 만드는데, 목적과 사용자에 따라 널배의 크기와 모양이 다르다.
  • 경기 >연천군

    1급수 참게를 잡기 위한 진검승부, 연천게줄당기기
    예로부터 연천은 물이 맑기로 유명한 하천이 많았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1급수에서나 볼 수 있는 다양한 생물이 서식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참게이다. 연천게줄당기기는 바로 이 참게와 관련된 놀이이다. 참게가 강으로 올라오는 계절이면 연천의 여러 마을 주민들이 서로 게를 잡기 위해 다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놀이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다. 참게 모양으로 줄을 만들어 줄을 당김으로써 그러한 갈등을 해소하였다. 이 놀이는 삼판양승제로 결정이 난다. 그리고 일반적인 줄다리기와 달리 허리춤에 줄을 끼고 기어서 게처럼 줄을 당기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궁궐에 담긴 조상들의 지혜

서울 도심 곳곳에서도 볼 수 있는 궁궐은 설계될 때부터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을 따져 건축되었다는 사실! 다들 알고 계시는가요?

흔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경복궁에는 문이 여럿 있는데요. 동쪽이자 봄을 말하는 동문은 건춘, 여름이자 남쪽인 남문은 광화 서쪽이자 가을에 해당하는 문은 영추, 북쪽이자 겨울을 상징하는 문은 신주로 음양오행의 이론을 바탕에 두어 규칙에 따라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경복궁 근정전 정문 좌우에 위치한 월화문과 일화문 또한 동쪽에서는 해가 떠 양의 기운이 있기에 일화문, 서쪽은 해가 지는 음의 기운이 있어 월화문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궁궐의 지붕을 보다 보면 화려한 단청이 눈에 들어오는데요. 단청의 기본 색은 적, 청, 황, 흑, 흰 오방색으로 오방색 또한 음양오행 사상의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경복궁 외에도 창덕궁 후원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부용정은 네모난 연못 가운데 소나무가 심어진 둥근 섬이 있는데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 음양오행 사상에 비롯하여 만들어진 공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궁궐은 단순히 왕족들이 살았던 공간이 아니라, 동양의 철학과 조화로운 삶의 미학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었네요! 궁궐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만큼 더욱 의미 있는 방문을 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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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빼어난 경치를 즐기는, 창덕궁 승재정
    승재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조선 순종 때 연못을 새로 파고 관람정을 지을 때 함께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승재(勝在)’의 ‘승’자는 아름답고 빼어난 경치나 고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승재정은 빼어난 경치가 있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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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개혁정치와 문예부흥의 산실, 창덕궁 주합루
    주합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9호로 지정되어 있다. 1776년(정조 즉위년)에 정조가 창덕궁 부용지 북쪽 언덕 높은 곳에 2층 누각을 짓고 아래층은 규장각(奎章閣), 위층은 주합루라는 편액을 걸었다. 규장각은 도서관으로, 주합루는 열람실로 이용하였다. 이 주합루 일대는 정조의 개혁 정치와 조선 후기 문예부흥의 산실로서 정약용(丁若鏞)·박제가(朴齊家)·유득공(柳得恭)·이덕무(李德懋) 등 다양한 인재들이 활동하던 중요한 공간이다. 또한 정조가 지은 어제와 어필·어진·인장 등을 보관하였던 장소로 그 원형이 잘 남아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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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향기 머금은 신선의 세상, 창덕궁 부용정
    부용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보물 제1763호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숙종이 1707년(숙종 33)에 지은 택수재(澤水齋)를 1793년(정조 17)에 정조가 고쳐 지으면서 부용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부용정이 있는 부용지 주변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가장 넓고 짜임새 있게 구조가 갖추어진 아름다운 휴식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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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의 북카페, 경복궁 팔우정
    팔우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팔각 2층 정자이다. 고종의 서재로 쓰였던 집우재에 딸려 있는 정자로, 일종의 북카페와 같은 역할을 한 정자이다. 이곳에서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책을 열람하기도 하고, 외국 사신들을 접견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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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성황후의 넋이 어린, 경복궁 옥호루
    옥호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경복궁 내에 있는 건청궁 곤녕합에 딸린 누각이다. 본래 1873년(고종 10)에 건청궁 건립 때 세워졌으나,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의 현장으로서 1909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다. 2007년 건청궁 복원 때 옥호루도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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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중 여인들의 연회지, 경복궁 청연루
    청연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로 37번지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원래 대비의 거처인 자경전 내에 딸린 부속 건물이다. 1888년(고종 25)에 지어졌다. 경회루에서 왕과 신하들이 연회를 베풀었던 반면에 청연루에서는 대비, 왕비, 공주, 군부인 등 궁중 여인들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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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 향기 은은한 경복궁 향원정
    향원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정자이다. 1867년~1873년 사이에 지어진 고종의 개인적 휴식처 건청궁의 후원에 세워진 정자이다. 향원지에 연꽃을 심어 놓고 이를 감상하기 위해 지어진 정자로, 연꽃의 향이 멀어질수록 더욱 맑아진다는 향원익청(香遠益淸)에서 정자 이름을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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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과 하늘이 교감하는 작은 우주, 경복궁 경회루
    경회루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에 있는 경복궁 내에 있는 누각이다. 국보 제2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초기 경복궁 창건 당시에 태조 이성계(李成桂)가 편전 서쪽 습지에 연못을 파고 작은 누각을 세웠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누각은 기울어지고 너무 좁아서 실제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1411년(태종 11) 태종이 경복궁 수리를 명하면서 경회루도 재건 공사를 시작하여 1412년 2월에 완공되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경회루의 기둥으로 사용되었던 돌기둥만이 남았다. 고종 때 왕권 강화책의 일환으로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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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초의 원기를 담고 있는, 창덕궁 태극정
    태극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태극정의 본래 이름은 운영정(雲影亭)이었는데, 1636년(인조 14)에 다시 짓고 이름도 태극정으로 바꾸었다. 정자 편액의 ‘태극(太極)’은 태초의 혼돈한 원기를 의미한다. 『주역』에 ‘역에는 태극이 있어 이것이 양의(兩儀)를 낳고, 양의는 사상(四象)을 낳으며, 사상은 팔괘(八卦)를 낳는다.’고 하였는데, 이에서 태극이 유래하였다. 숙종은 창덕궁 후원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정자 세 곳을 상림삼정(上林三亭)이라 하였는데, 태극정도 그 가운데 하나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농민들의 삶을 헤아리기 위해 만든 초가 정자, 창덕궁 청의정
    청의정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1636년(인조 14)에 건립되었다. 초가지붕의 정자이다. 일종의 농민의 휴식처인 모정과도 같다. 이러한 모정을 창덕궁 후원 깊숙한 곳에 만든 것은 군주가 농민의 정서를 체험하고, 그해 농사가 풍년인가 흉년인가를 가늠하려는 마음의 자세가 반영된 것이다. 

미식의 도시, 전주

한옥 한채 한채가 모여 아름다운 풍경이 매력인 한옥마을을 자랑하는 전주는 유네스코 음식창의 도시로 선정되어 한옥마을을 비롯한 오목대, 전동성당 등의 명소뿐만 아니라 맛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전주는 예부터 비빔밥이 유명하였는데요. 비빔밥의 정확한 역사를 알려지지 않지만, 누군가는 고려시대, 누군가는 조선시대에 비빔밥을 비벼 먹기 시작하면서 조리법이 만들어졌다고도 말합니다. 전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비빔밥집은 한국집으로 1953년 당시 남문시장에서 비빔밥을 파는 식당이 성행하였고 한국집은 비빔밥 고급화하기를 노력했으며 이것이 지금 전주비빔밥의 원형이라네요! 비빔밥은 1970년대 이후로 서울에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그 맛이 알려지게 되었고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답니다.

한식을 대표하는 음식의 본고장 전주는 비빔밥과 더불어 콩나물국밥, 오모가리탕, 돌솥밥, 전주백반, 한정식 등의 음식을 통해 지역의 특색있는 맛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주의 다양한 맛과 멋을 즐기러 미식 여행을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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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뚝배기에 끓이는 민물고기매운탕', 오모가리탕
    전라북도 전주의 향토음식인 오모가리탕은 뚝배기의 전주 사투리인 오모가리에 민물고기를 넣어 끓인 매운탕이다. 민물새우를 넣어 감칠맛이 도는 얼큰한 국물과 부드럽게 씹히는 시래기가 구수함과 걸쭉한 맛을 더하여 준다.
  • 전북 >전주시

    세계적인 팝스타 마이클 잭슨을 단번에 사로잡은 맛, 전주비빔밥
    전주비빔밥은 소머리를 고아낸 육수로 지은 밥에 고사리를 비롯하여 당근, 더덕, 도라지, 무, 밤, 불고기, 시금치, 오이, 은행, 콩나물, 표고버섯, 호박, 황백지단, 황포묵 등을 다섯 가지 색깔별로 고명을 만들어 얹은 다음 그 위에 소고기 육회와 계란 노른자를 올려 고추장에 비벼먹는 전라북도 전주시의 향토음식이다. 1990년대 말부터 해외에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명실상부하게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전통음식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 전북 >전주시

    세계인이 좋아하는 음식 전주비빔밥의 초석을 놓은 식당, 전주 한국집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전동에 있는 ‘한국집’은 고(故) 이분례 씨가 1952년 개업한 전주에서 가장 오래된 전주비빔밥 전문음식점이다. 한국집은 현행 전주비빔밥이라고 알려진 비빔밥의 원형을 최초로 만들고 상품화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음식점이다. 한국집은 개업 초기에 비빔밥이 아닌 떡을 만들어 파는 ‘한국떡집’으로 시작하였다. 그러나 떡이 잘 팔리지 않자 딸 주순옥 씨의 제안에 따라 식당을 겸업 하기로 하고 처녀 때 시장에서 먹었던 ‘뱅뱅돌이’라는 시장 음식에서 착안하여 비빔밥을 팔기로 하였다. 이때 기존 비빔밥에 고급스러운 재료를 다양하게 추가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와 같은 전주비빔밥이 탄생하였다. 한국집은 이분례 씨에 이어 딸 주순옥 씨가 2대를 이었고 현재는 주순옥 씨의 셋째 딸 장지혜 씨가 한국집의 3대 주인으로 가업을 꾸리고 있다.
  • 전북 >전주시

    모주(母酒) 한 잔을 곁들여 먹는 남도 술꾼들의 해장음식, 전주 콩나물국밥
    콩나물국밥은 콩나물국에 밥을 넣고 끓인 다음 날계란을 얹어 낸 해장음식으로 널리 알려진 전라북도 전주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전주에서 콩나물이 유명한것은 전주가 전라도 각지에서 올라온 물산과 인원이 모이는 물류의 중심지였던만큼 장시(場市)의 발달과 관계가 있다.
  • 전북 >전주시

    사시사철 간편하게 먹는 콩나물국밥
    현대인들이 즐겨 먹는 콩나물국밥은 전라북도 전주시가 유명하다. 속을 풀어주는 음식으로 특히 아침 식사로 즐겨먹는다. 사시사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콩나물국밥은 서민들의 가장 친근한 음식이다. 콩나물국밥은 일반적으로 한국전쟁 때 어려운 상황에서 구하기 쉬운 재료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요리로 개발된 음식이라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주시 남부시장 뿐만 아니라 전주역 근처에도 콩나물국밥집이 있었다. 1980년대 경제성장으로 경기가 좋아지고 외식이 일반화되면서 콩나물국밥도 시장음식으로 정착하게 된다.
  • 전북 >전주시

    조선의 3대 명주, 배와 생강이 들어간 전주 이강주
    전라북도 전주의 이강주는 증류주인 전통 소주에, 배(梨)와 생강(薑)을 첨가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강고라고도 한다. 조선 고종 때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지금으로 말하면 일종의 ‘건배주’로 사용되었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술이었다. 조선 중기부터 전라도와 황해도에서 제조되었던 이강주는 정읍의 죽력고, 평양의 감홍로와 함께 조선의 3대 명주로 꼽힌다. 전주 이강주는 1987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6호로 지정되었다.
  • 전북 >전주시

    남부시장의 전주콩나물국밥과 전주비빔밥
    전라북도 전주시에는 조선시대부터 긴 역사를 자랑하는 남부시장이 있다. 예로부터 교통의 요지였던 전주는 물자가 오고가는 교역의 중심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에 시장이 섰고, 시장을 통해 사람들은 교류했다. 남부시장에는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인 콩나물국밥과 비빔밥을 맛볼 수 있다. 전주콩나물국밥과 전주비빔밥이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의 음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 전북 >전주시

    일제강점기 오일장을 통합해 설립한 전주 남부시장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인 전주에 '남부시장'이 있다. 남부시장은 조선시대 개설된 '남문밖장'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1905년에 정기 공설시장으로 조성되어 매월 2일과 7일 열리는 정기시장이 상설시장화가 되었다. 남부시장은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주를 찾는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시장이며, 전주에서 생산되는 부채와 전주비빔밥이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 전북 >전주시

    인기있는 외식메뉴, 비빔밥
    비빔밥은 옛날부터 만들었던 음식으로 생각된다. 안동의 헛제사밥처럼 제사를 지내고 남은 음식들을 밥과 섞어 먹은 것이 비빔밥이기 때문이다. 비빔밥은 조선후기부터 음식점에서 팔았다. 일제시대 유명한 비빔밥으로 『별건곤』잡지는 진주(晉州)비빔밥을 거론하고 있다. 이 비빔밥은 육회비빔밥으로, 서울의 육회비빔밥보다 낫다고 하여 서울에도 육회비빔밥이 있던 것을 보여준다. 『동아일보』에서는 함평 소주와 함평비빔밥이 기막힌 조합을 이룬다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전주비빔밥이 유명하다. 가을에 전주에서 비빔밥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 전북 >전주시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선 제과 명가, 전주 PNB 풍년제과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의 ‘PNB 풍년제과’는 1951년 고(故) 강정문 씨가 완산구 중앙동에 ‘풍년 센베 과자점’이라는 상호로 문을 연 이래 3대에 걸쳐 대를 잇는 70년 역사의 오래된 가게이다. 1978년 현재의 경원동으로 가게를 이전한 이후 창업주의 아들 강현희 씨가 2대 대표를 맡아 운영하는 기간에 IMF 외환위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와의 경쟁, 상표권 분쟁 등 적지 않은 곤경과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과감한 투자와 신제품 개발을 통해 2010년대 이후 다시금 명실상부한 전주시의 대표 제과점이자 전국적으로 알려진 제빵 명소로 자리매김하였다. 창업주가 개발한 ‘땅콩전병’과 2대 대표가 개발한 ‘수제 초코파이’는 PNB 풍년제과를 반석에 올려놓은 대표적인 제품이다.

겨울에 가면 더 재밌는 강원도

새하얀 눈이 세상을 뒤덮고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겨울! 눈이 소복이 쌓이는 겨울이 되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지역이 있는데요. 바로 강원도입니다. 강원도는 겨울이 만들어낸 비경으로 어느 때보다 아름다운데요. 지금부터 겨울이라는 계절과 잘 어울리는 강원도의 명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는 겨울의 트레킹도 즐거울 수 있는 강릉의 선자령입니다. 선자령 풍차길은 줄지어 선 있는 풍력발전기로 인해 이국적인 정취를 선보이며 정상에 오르면 새파란 동해바다와 광활하게 펼쳐진 설원을 바라볼 수 있답니다.

두 번째로는 평창의 월정사입니다. 사찰 특유의 고즈넉함과 평온함을 느낄 수 있는 월정사는 겨울 내내 설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또한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였던 전나무숲길도 거닐 수 있어 힐링 여행으로 제격이랍니다~

마지막으로는 맑디맑은 공기로 깨끗한 겨울 하늘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영월의 별마로 천문대입니다. 별마로 천문대는 봉래산 정상에 위치해있어 별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답니다. 밤하늘 가득 채운 별을 바라보며 낭만을 느껴보면 좋겠네요~

코끝이 시린 추운 겨울이지만 집콕이 아닌 강원도로 떠나 그림과도 같은 환상적인 추억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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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평창군

    눈꽃마을에서 살아남기, 평창 황병산 사냥놀이
    평창 황병산 사냥놀이는 겨울철 황병산 인근에서 멧돼지를 잡아다가 서낭신께 바치던 풍속에서 비롯된 놀이다. 마을의 단합을 꾀하고 풍요를 기원할 뿐만 아니라, 강원도 산촌마을의 독특한 사냥 방식과 도구를 전승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 강원 >영월군

    역사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영월 10경
    영월 10경은 장릉, 청령포, 별마로 천문대, 김삿갓 유적지, 고씨굴, 선돌, 어라연, 한반도지형, 법흥사, 요선암·요선정 등을 이른다. 영월 10경에는 유적지와 관련하여 3곳이 선정되어 있는데 이는 강원특별자치도의 여타 시·군에 비해 역사문화유적지가 많다. 아울러 명승지와는 거리가 있는 별마로천문대를 제3경에 선정함으로써 영월 10경은 단순하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학습하고 즐기는 역사관광문화에도 주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 강원 >강릉시

    선녀가 아들을 데리고 와서 놀다 간 강릉 선자령
    선자령은 선잘령·대관산·보현산·만월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 경계에 있는 산이다. 선자령은 계곡이 너무나 아름다워 하늘의 선녀들이 아들까지 데리고 목욕을 하고는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한다. 선자령은 해발 840m인 대관령에서 5∼6km 정도밖에 되지 않아 산행이 그리 어렵지 않다.
  • 강원 >평창군

    관동 지방을 대표하는 평창 월정사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에 있는 월정사는 관동 지방을 대표하는 사찰로, 신라 승려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월정사가 사격(寺格)을 갖추게 된 것은 수다사 장로였던 유연이 암자를 짓고 살면서부터였다. 일제강점기에 전국 31본산의 하나로 강원도 남부지역의 사찰을 총괄하였으며, 1951년 한국전쟁 당시 10여 동의 건물이 소실되었다. 1964년부터 꾸준히 중건과 중창이 이루어져 대찰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월정사에는 국보와 보물, 강원도 유형문화재 등 다양한 종류의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 강원 >원주시

    소나무 숲길이 아름다운 원주 지역 최대의 사찰, 구룡사
    구룡사는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에 있는 사찰로, 668년 의상이 창건하였으며 당시 절 이름은 구룡사(九龍寺)였다. 도선, 무학, 서산 등 당대 이름난 고승들이 머물며 후학들을 지도한 영서 지역을 대표하는 수찰(首刹)의 하나였다. 조선시대 중기에 구룡사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로 인해 구룡사(龜龍寺)로 바뀌었다. 구룡사 경내로 들어가는 소나무 숲길은 우리나라 사찰 길 가운데 손꼽히는 산책로 중의 하나이다. 구룡사는 절터가 경사지에 자리하여 석축을 쌓고 전각을 건립하였다. 구룡사에는 강원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보광루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형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 강원 >평창군

    오래된 고찰에서 탑을 돌면서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월정사 탑돌이
    월정사 탑돌이는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월정사에서 행해지는 불교의례와 관련된 놀이문화이다. 월정사를 대표하는 탑을 도는 이 놀이는 개회사를 시작으로 삼귀의례-천수경-탑돌이-법계도 돌기-발원문-축원문-반야심경-폐회사 순으로 진행된다. 이 놀이는 많은 사람들이 탑을 돌면서 자신들의 극락왕생을 비롯해 국가의 국태민안을 기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다.
  • 강원 >강릉시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잇던 대관령 옛길
    아흔아홉 굽이 대관령 옛길은 강원도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4대 고개 가운데 하나이다. 고개가 너무 높아 고개 위 겨우 석 자가 하늘이라는 말이 전해질 정도로 높고 험준했다. 오래전부터 대관령은 영동지방 사람들이 내륙으로 드나드는 관문이었고, 대관령 옛길은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이래 영동지방과 영서지방을 잇는 교역로이자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새롭게 개통한 영동고속도로가 별도의 구간으로 개설되면서 도보로 이동하던 옛길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 강원 >평창군

    대관령에서 만나는 눈과 얼음의 낭만, 대관령눈꽃축제
    대관령눈꽃축제는 눈을 소재로한 겨울축제로 강원도 대관령 눈꽃마을에서 1993년 처음 시작되었다. 매년 1월 대관령 고원에서 펼쳐지는 대관령눈꽃축제는 눈꽃과 얼음을 활용하여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연출한다. 거기에 대관령 만의 겨울생활문화를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겨울축제이며, 자연환경을 활용한 겨울축제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 강원 >평창군

    60여 사찰의 불교문화재를 보존하는 월정사 성보박물관
    오랜 역사를 가진 사찰이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불교문화재를 '성보'라고 한다. 소중한 성보문화유산을 보존하고, 불교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월정사에서는 문화유산을 따로 보존하는 월정사 성보박물관을 설립하였다.
  • 강원 >동해시

    동해시가 선정한 5대권역별 관광명소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에서는 추암권역, 무릉권역, 천곡권역, 묵호권역, 망상권역 등 5개 권역으로 나누어 지역의 관광명소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의 관광문화를 방문객들에게 자세하게 소개하려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으로 파악된다. 요즘의 관광은 연령층에 따라 취향이 다양한데, 지역의 유명한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 층이 있는가 하면 조용한 산과 계곡 그리고 바다 등을 찾는 이들도 많다. 사정이 이러하니 지역에서도 시설들을 갖추고 이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수밖에 없다. 동해시의 이러한 고민과 배려가 5대권역별 관광명소에 스며있다.

겨울에만 즐길 수 있는 지역 특산물

겨울에 특히 더 맛있는 음식들이 있습니다. 각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먼저 빙떡입니다. 제주도 향토음식인 빙떡은 메밀전병에 삶은 무채를 넣어 말아 먹는 음식입니다. 달큰한 겨울 무로 만든 빙떡은 제주의 대표 부조 음식이었으며 현재는 지역 축제 장소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과메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청어나 꽁치를 해풍에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말린 포항의 특산물이기도 합니다. 과메기는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올려지기도 했을 정도로 귀한 음식인데요, 배춧잎과 미역에 싸서 먹는 맛은 일품이라고 합니다.

통영에서 굴은 꿀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말그대로 바다의 꿀이기 때문입니다. 굴껍질을 산처럼 모았다가 채묘를 시작하여 성장한 굴은 10월부터 2월까지 수확합니다. 코끝이 시려운 찬바람이 불때면 노릇하게 절여진 배춧잎에 굴을 감아 먹을때라는 신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밖에도 꼬막, 아귀, 명태등 겨울에 즐길 수 있는 특산물들을 지역N문화를 통해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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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보성군

    뻘배 타고 갯벌을 미끄러지며 꼬막잡기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장암리 일원에서는 갯벌 위를 뻘배를 타고 다니며 꼬막을 채취한다. 부드러운 펄에서 꼬막 채취가 쉽도록 뻘배를 사용한다. 수십 개의 종류 중 참꼬막은 제사상에 오른다고 하여 ‘제사꼬막’이라 부르며 고급 조개로 간주한다. 고흥반도와 여수반도가 좌우로 감싸고 있는 보성군 벌교 앞바다인 여자만(汝子灣)의 넓은 갯벌에 대포마을과 장암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1962년에 어촌계가 조직으로 그동안 어업 활동에 면허제도가 도입되어 마을 공동어장 관리를 시작하면서 양식 꼬막 생산이 시작되었고, 집중적으로 생산된 꼬막 작업에 뻘배가 중요한 도구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2016년에 '국가중요어업유산 제2호’로 지정되었다.
  • 전남 >보성군

    물 인심 다음으로 후하다는 꼬막 인심, 벌교 꼬막무침
    꼬막무침은 벌교 여자만(汝自灣)의 갯벌에서 채취한 꼬막을 삶아서 매콤한 양념에 버무려서 무친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의 향토음식이다.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회정리 일대에는 꼬막식당거리가 형성되어 있어 꼬막탕, 꼬막무침, 꼬막파전, 양념꼬막 외에 다양한 꼬막요리를 맛볼 수 있다.
  • 경남 >통영시

    “덜큰한 바다 꿀 생각에 통영 박신장을 가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발음이 억센 탓도 있지만, 굴이 바다의 꿀이기 때문이다. 통영에선 굴껍질을 산처럼 모아놓았다가 4~5월이 되면 나일론 줄에 꿰어 바다에 넣어 채묘를 한다. 이렇게 자연 채묘되어 성장한 굴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확하여, 박신장, 즉 굴껍질 까는 공장에서 껍질이 까져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박신(剝身)은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아주머니들이 새벽 4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12시간 동안 서서 일한다.
  • 제주 >제주시

    인삼 하고도 안 바꾸는 제주 겨울 무로 만든 빙떡
    빙떡은 제주도 향토 음식으로 메밀전병에 삶은 무채를 넣어 돌돌 말아 먹는 음식이다. 겨울에 먹는 음식이라서 얼음 빙(氷) 빙떡, 빙빙 말아서 만든다고 빙떡이라 불렸다. 제주도 동쪽에서는 멍석처럼 생겼다고 해서 ‘멍석떡’, 서귀포 지역에서는 전기떡, 쟁기떡이라고 부른다. 메밀의 독성을 무가 중화시켜주며, 옥돔구이와 함께 먹어도 별미다. 
  • 경북 >포항시

    영일만의 해풍이 만든 포항의 효자식품, 구룡포 과메기
    구룡포 과메기는 청어 또는 꽁치를 11월부터 설 전후까지 자연상태에서 구룡포 앞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면서 그늘에서 말린 경상북도 포항시의 특산물이다. 과메기는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품으로 올려진 예로부터 경상도 지역의 중요한 특산물이었다. 구룡포항 일대에는 '구룡포 과메기 물회거리'가 있어 동해의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
  • 전북 >부안군

    부안 갯벌이 보내준 천혜의 원기회복제, 바지락죽
    바지락죽은 지구에 존재하는 5대 갯벌 중 하나에 속하는 서해 갯벌에서 수확한 바지락에 쌀과 녹두, 당근, 마늘, 파, 표고버섯 등을 넣어 끓인 다음 인삼채를 얹어낸 죽으로 백합죽과 더불어 조개의 고장으로 이름난 전라북도 부안군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 경북 >포항시

    과메기는 기장미역에 싸서 꼭꼭 씹어 먹는 것
    과메기는 꽁치나 청어를 겨울바람에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여 건조한 생선이다. 원래는 포항에서 흔하게 났던 청어를 말렸는데, 요즘은 꽁치 과메기가 많다. 가난한 선비도 쉽게 먹을 수 있었던 청어는 선비를 살찌게 한다는 의미의 ‘비유어(肥儒魚)’, ‘비웃’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1947년 전후, 동해안의 청어 생산량이 급속히 줄어들어 수십년 간 꽁치가 과메기로 가공되었다. 근래에는 청어 포획량이 다시 늘고 있어 옛 청어과메기를 맛볼 수 있다. 
  • 충남 >태안군

    천연의 굴밭에서 지주식 굴양식을 하는 태안 의항리 사람들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에서는 굴을 양식한다. 굴은 김과 더불어 대표적인 양식어업이다. 굴은 대부분의 연안에서 서식했으나 충청도 천수만과 가로림만은 그중에서도 굴 자원이 풍부한 곳이다. 천수만(淺水灣)은 조수간만의 차이가 크고, 수심이 얕고 펄과 모래가 섞인 혼합갯벌이 발달되어 있어 일찍이 굴생산을 집중했다. 천수만 외안에 위치한 의항리는 바닷물이 안쪽으로 깊숙이 내만되어 있고, 해안가에 바위와 돌이 많아 굴 서식의 최적지였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이후 자연산 굴과 김 생산이 중단되었다. 기름유출 사고 이전까지 의항2리는 굴 양식으로 유명세가 높았다. 썰물과 밀물로 인해 지주식 양식장이 썰물기간동안 드러나 있어 굴이 자라지 못해 크기가 작다. 밀물이 되면 바다속 풍부한 영양분을 먹고 검은 빛깔을 띠며 자란다. 이 지역의 굴은 검은빛을 띤다고 하여 ‘검정굴’이라 부른다.
  • 충남 >태안군

    천수만(淺水灣)의 황금갯벌에서 자라는 황도 바지락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황도리는 바지락의 주 생산지다. 바지락은 백합과에 속하는 바닷조개로, 수심 10m 미만 바다의 모래와 펄이 섞인 곳에서 산다. 이동을 하지 못하므로 채취하기 쉬우며, 산란기인 7월~8월까지는 채취하지 않는다. 1912년 이후 곳곳에서 바지락을 양식하고 있는데, 황도도 그중 한곳이다. 바지락은 모래가 많은 펄에서 서식한다. 황도 앞쪽 윽섬 주변에는 모래갯벌이 넓게 펼쳐져 있어 바지락 서식에 최고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갈퀴로 바닥을 긁어 맛 좋은 바지락을 캔다. 어촌계원들마다 자신이 할당받은 채취량을 캔다. 홀로 작업하기 어렵다면 2명이 할당량을 채운다. 황도 바지락은 크고 맛이 좋아 인근에서도 유명하다. 바다가 오염되고, 수온이 상승하면서 예전과 같이 생산되지 않지만 황도 바지락은 천수만 바다의 영양분을 먹으며 오늘도 자라고 있다.
  • 인천 >미추홀구

    바다의 천덕꾸러기가 귀하게 여겨지기까지, 인천 물텀벙이탕
    물텀벙이탕은 아귀를 미나리ㆍ쑥갓ㆍ콩나물ㆍ파와 각종 양념으로 끓여낸 탕으로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에서 시작한 인천의 향토음식이다. 물텀벙이는 예전에는 그물에 걸리면 바다에 버려질 때 ‘텀벙’소리가 났다해서 붙여진 아귀의 속칭이다. 다른 지역과는 다리 인천지역에서는 아귀라 하지 않고 물텀벙이로 칭한다. 한국전쟁이후 인천항의 부두노동자들이 값싼 아귀를 식사나 안줏거리로 즐겨먹기 시작하면서 물텀벙이탕이 등장하였고 1970년대부터 음식상품화 되었다.

핫하게 즐기는 겨울 축제

매년 겨울, 전국 각지에서 겨울을 맞이해 다양한 축제들이 개최됩니다. 눈꽃 축제부터 얼음낚시 축제 그리고 이색 축제까지 다양한 겨울철 축제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먼저 눈꽃 축제입니다. 태백에서 열리는 태백산눈축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 축제 중 하나입니다. 이곳에서는 다채로운 눈 조각품 전시회가 열리며 그 밖에도 얼음 미끄럼틀, 눈썰매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데요. 오순도순 이야기하기 좋은 이글루 카페도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다음은 얼음낚시 축제입니다. 강화도에서 열리는 왕방마을얼음축제는 인산저수지에서 매년 12월 말경에서 이듬해 2월 말까지 진행되는데요. 겨울에 몸집을 키운 빙어를 꽁꽁 언 빙판 위에 구멍을 뚫은 후 낚시를 하는 축제입니다. 잡은 빙어는 매점에 가면 5,000원에 튀겨주니 재밌는 낚시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 큰 즐길 거리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이색 축제인데요. 바로바로 대전맨몸마라톤 입니다! 16년부터 시작한 이 축제는 웃통을 벗은 사람들이 모여 매해 1월 1일 11시 11분에 시작됩니다. 지친 몸과 마음에 묵은때를 벗고, 새해를 건강하게 시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밖에도 떡국 나눔, 바디 페인팅, 포토월 등 다양한 이벤트도 진행된다고 하니 새해 첫 이벤트로 안성맞춤일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겨울철 축제에 관해 얘기해 봤는데요. 이번 겨울, 추워도 축제에 가서 겨울철 힐링을 즐기고 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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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화천군

    한국의 대표적인 겨울축제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
    산천어는 냉수성 토종 민물고기로 1급수의 맑은 계곡에서만 서식한다. 얼음나라화천산천어축제의 백미는 산천어 낚시이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로 30cm이상 꽁꽁 언 화천천 위에서 얼음구멍을 뚫고 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산천어를 낚는 것이 얼음낚시이다. 산천어 낚시는 1일 최대 8,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얼음낚시’, 1일 최대 1,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외국인 얼음낚시’, 1일 최대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산천어 밤낚시(야간)’가 있다. 세계 4대 겨울축제로 발돋움하며 외국인 관광객의 비율이 높아졌고, 눈썰매장, 산타우체국 등 가족들이 즐길거리도 많다.
  • 강원 >태백시

    멋진 눈조각을 감상하며 썰매를 타요! '태백산눈축제'
    태백산눈축제는 매년 1월 말에서 약 9일간 태백산국립공원과 태백시 일원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겨울철 관광축제이다. 태백산눈축제는 규모가 큰 눈조각을 만날 수 있고, 얼음썰매, 얼음미끄럼틀, 오궁썰매타기 등 겨울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며, 이글루 카페에서 담소를 나눌 수도 있어 온 가족이 함께 하기 좋은 축제이다. 태백산 근처에는 황지, 태백석탄박물관, 용연굴(龍淵窟) 등이 있어 둘러보기 좋다.
  • 강원 >삼척시

    새해 그대 소원을 빌어요 ‘삼척 정월대보름제’
    ‘삼척 정월대보름제’는 1973년부터 삼척지역의 민속을 기반으로 행해온 축제이다. 행사는 천신과 농신과 해신에게 기원하는 삼원제를 주축으로 기줄다리기가 가장 성대하게 행해진다. 기줄다리기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행사인데, 삼척지역은 1662년(현종 3) 삼척부사 허목 때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십천을 경계로 양쪽의 마을사람이 함께 치렀던 역사가 깊은 줄다리기이다. 이밖에 별신굿판, 달집태우기, 사투리구연대회 등이 열린다.
  • 부산 >부산진구

    2030년 부산세계엑스포를 기원하는 ‘부산 희망 드림 빛축제’
    ‘부산 희망 드림 빛축제’는 부산시민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빛축제이다. ‘2030부산 세계 엑스포’를 기원하면서 시작했다. 빛을 축복빛, 희망빛, 도약빛, 소원빛으로 나누어 부산시민공원 남1문에서 북문까지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색깔도 용어에 맞추어 노랑, 분홍, 푸른색, 녹색 등으로 나누어 빛을 밝혔다. 빛이 가지는 희망 이미지를 한껏 살린 축제이다.
  • 부산 >해운대구

    겨울 해변에서 즐기는 빛 ‘해운대 빛축제’
    ‘해운대 빛축제’는 2014년부터 해운대해수욕장 일대에서 시작했다. 해운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부산시민들과 전 국민이 즐겨 찾는 장소이다. 여름에는 해수욕장으로 명성을 갖고 있지만, 겨울에는 낭만의 장소로 소문나 있다. 이곳에 겨울밤을 수놓는 빛 축제를 개최해서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다.
  • 부산 >서구

    달님 올해도 건강과 풍요를 주소서 ‘부산 송도달집축제’
    ‘부산 송도달집축제’는 2000년부터 매년 정월대보름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진행되는 전통문화축제이다. 장소는 송도해수욕장이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행하던 우리나라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펼쳐낸다. 정월대보름의 달은 우리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정월대보름은 묵은해의 액운을 물리치고 새로운 복을 불러들이는 날이다.
  • 부산 >남구

    건강과 풍요를 달님에게 물어봐 ‘부산남구 달맞이축제’
    ‘부산남구 달맞이축제’는 매년 음력 1월 5일 정월대보름날을 맞아 용호별빛공원에서 행해지는 달맞이 축제이다. 주최는 부산시 남구이고, 낮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행한다. 행사 목적은 정월대보름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남구 주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데 있다. 축제행사에서 달집태우기를 LED불로 대신해서 특이하다.
  • 전남 >해남군

    국토최남단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땅끝해넘이해맞이 축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의 땅끝마을은 한반도의 최서남단으로, 삐죽하게 바다로 내민 땅끝에서 해넘이와 해맞이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땅끝전망대 및 땅끝탑은 국토의 끝이자 한반도의 땅끝이므로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땅끝마을은 한 해를 보내는 해넘이와 새해를 보내는 해맞이 축제를 통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자 축제를 벌인다. 해를 보며 기올리기, 달집태우기, 소원탑쌓기, 소원띠, 해맞이제 등을 통해 한 해를 의미 있게 시작할 수 있다.
  • 대전 >서구

    건강이 최고지 ‘대전맨몸마라톤’
    ‘대전맨몸마라톤’은 2016년부터 시작한 대전의 스포츠축제이다. 주 종목은 마라톤이다. 새해 첫날 11시에 엑스포광장에서 시작한다. 추운 겨울 얼음이 꽁꽁 언 도시와 강변을 맨몸으로 뛰며 새해 첫날 한해 설계를 한다. 어떤 참가자는 ‘몸이 답이다’라는 글을 몸에다 쓰고 달렸다. 세상에서 가장 값진 몸, 몸 건강을 챙겨야 정신건강도 유지할 수 있다. ‘대전맨몸마라톤’는 매해마다 참가자가 늘고 있는 달리기 축제이다.
  • 인천 >남동구

    내 별은 어디 있어 ‘인천 서창별빛축제’
    ‘인천 서창 별빛 축제’는 2019년부터 시작한 거리축제이다. 인천시 남동구에서 주관하며, 장소는 인천시 남동구 서창2지구 로터리 일원이다. 매년 12월 중순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진행한다. 별빛 조명을 화려하게 밝히고, 점등식 및 축하공연, 버스킹 공연, 서창 별빛 콘서트, 이벤트 부스 운영 등이 이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