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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철도의 역사와 문화

6월 28일은 철도의 날로 교통수단인 철도의 가치를 높이고 철도 종사자들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철도의 날은 본래 1899년 9월 18일 한국에서 최초로 개통한 경인선을 기념하기 위해 1937년부터 지정하여 유래했는데요. 그러나 1937년은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아픔을 겪은 시기로, 철도 노동자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고 일본 황제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강요하는 등 여러 가지 문제를 겪게 됩니다. 그러한 연유로 2018년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국(의정부 공무아문 철도국) 창설 날짜(1894년 6월 28일)에 맞추어 이날을 철도의 날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2022년 철도의 날은 1894년 6월 26일 이래 128주년이 되었습니다. 12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철도 역사도 많은 발전을 이루었는데요. 철도의 날을 맞아 낭만적인 감성과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기차를 타고 우리 지역에 남아있는 철도를 따라 역사와 문화를 엿보러 가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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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구 역사(驛舍) 일산역. 사람의 길이 열린다
    고양일산역(高陽一山驛)은 2006년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국가 등록문화재 제294호 지정되어 한국철도공사에서 관리·보호되는 장소이다. 1933년에 지어진 것으로 ―자형 평면 구조에 십자형 박공지붕(배 집 양편에 八자 모양으로 붙인 두꺼운 널)을 얹었다. 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철도 경의선의 중심역이며 경의선 역사 중 유일하게 남겨진 곳으로 일제강점기 철도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 전남 >곡성군

    섬진강을 따라 흐르는 철로 - 구 곡성역사
    전라남도 곡성군 오곡면 구 곡성역은 1933년 전라선 철도 남원~곡성 구간이 개통되면서 역 업무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섬진강 모래를 실어 전국으로 보내는 역할이 주된 임무였다. 1937년 전라선이 호남선 익산역에서 전라남도 여수역까지 전 구간 개통되면서 여객 수송도 늘어났다. 호남지방 동부의 유명한 명승지를 거쳐 가는 노선이었고, 이용 인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라선은 1980년대 말부터 복선화가 진행되었다. 곡성군을 지나가는 부분은 섬진강 흐름을 따라 구불구불했으나, 직선으로 철로를 이설하면서 1999년 곡성읍에 새로운 역이 생겨 이전 곡성역은 구 곡성역이 되었다. 곡성군과 코레일은 2004년 구 곡성역이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적극적인 활용 사업을 진행해 2005년 ‘섬진강 기차마을’을 개장했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폐선로를 이용한 레일바이크와 증기기관차 운행을 비롯해 국내 최다 장미 품종을 갖춘 장미원 조성까지 성공적인 철도 테마파크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 대구 >동구

    한국 근대철도의 달빛, 대구 구 반야월역사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반야월은 공식 지명이 아니지만 후삼국 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유명한 지명이다. 1917년 대구~하양 간 협궤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가 반야월을 지나가게 되었다. 반야월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 강원 >원주시

    레일바이크가 들어선 간현역과 간현유원지
    강원도 원주 간현유원지는 1970~90년대 대학생들의 MT 장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서울 청량리 역에서 중앙선 기차를 타고 올 수 있었다. 2011년 중앙선 간현역이 폐쇄되면서 2013년 간현역에서 판대역까지의 6.5Km에 레일바이크가 운영되고 있다. 또한 간현관광지 내 소금산 등산로 입구에서는 소금산 출렁다리를 건널 수 있다. 섬강 위 100m 상공에 설치되어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이 다리는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명소 100선에 선정되었다.
  • 강원 >철원군

    금강산으로 이어주던 길,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
    상류계층의 전유물과 같았던 관광은 대량운송을 가능하게 한 철도의 등장으로 보다 넓은 계층에 퍼져 나갔다. 우리나라에서도 관광은 특정 계층만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였는데 본디 아름다운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은 사람으로서 가지는 본성이었다. 특히 금강산은 평민들도 꼭 가보고 싶어 하는 대표적인 관광지였다. 일제강점기에 경기도 철원과 금강산 내금강을 잇는 금강산 철도와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이 만들어지면서 기차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금강산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금강산 관광은 보다 활성화되었다. 금강산 전기철도 교량은 1950년대 남북이 분단되면서 사용을 멈췄지만 기차를 타고 금강산 가던 시절의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근대 철도의 역사를 간직한, 수원역 급수탑
    수원역에서 남쪽방향으로 내려가다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옛 증기기관차의 급수를 하던 급수탑 두 개를 만날 수 있다. 급수탑은 증기기관차에 물을 급수하던 시설물을 말하는데, 수원은 주요 간선의 중심이자 수원천이 흐르는 지역으로, 급수탑을 설치하기에 적합한 도시였다. 현재, 급수탑은 준철도 기념물 제 15, 16호로 등록 보존되고 있으며, 그 주변 산책길이 조성돼 시민들에게 근대 철도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 대전 >동구

    ‘대전발 0시50분’의 추억,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
    구 철도청 대전지역사무소 보급창고 3호는 전후복구 시기인 1956년 지어졌다. 대전역은 1905년 개통된 경부선, 1914년 전 구간 운행을 시작한 호남선이 분기하는 철도의 중요 거점이다. 대전역에는 기차를 수리하고 정비하는 큰 열차 검수 차고가 있었다. 대전역 동광장 쪽에 세워졌던 창고들은 잇따라 철거되었지만, 보급창고 3호는 여전히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서 있다. 목조 트러스 구조에 목재 비늘판벽을 두른 보급창고 3호는 산업화 시대를 지킨 철도 시설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 경기 >연천군

    연천의 랜드 마크,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은 1914년 경원선 전 구간이 완공되면서 경원선의 유일한 급수탑으로 건립되었다. 처음 세워진 급수탑은 상자형이었고, 1930년대 들어 높이가 3배인 원통형 급수탑이 더 만들어졌다. 2기의 연천역 급수탑은 일제 강점기 이래 연천의 명물이었다. 한국전쟁 시기에는 하얀색 급수탑이 폭격 좌표를 잡는 지상의 ‘랜드 마크’ 구실을 하기도 했다.
  • 강원 >삼척시

    도계역 급수탑
    도계역 급수탑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역 구내에 위치하고 있는데, 1940년 영동선이 개통하면서부터 도계역을 경유하는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해주던 시설물이다. 1940년 영동선이 개통된 이후 증기기관차는 30년 동안 도계역에 들어서면 10~30분 정도 정차해서 이 급수탑을 이용해 물을 보충했다. 문화재청은 도계역 급수탑을 2003년 1월 28일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46호)으로 지정하였다.
  • 강원 >태백시

    철도는 탄광도시 발전의 은인
    태백선과 영암선의 철도 개설은 석탄산업을 발전시키는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 왔다. 이 철도망을 통해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탄광도시인 태백과 도계지역의 본격적인 발전이 가능했다. 태백시에 기차역이 8개나 있었고, 삼척시에 기차역이 13개나 있었던 것은 석탄수송과 관련이 있다. 철도는 석탄산업 발전을, 석탄은 우리나라 모든 산업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영화】로 보는 6.25전쟁

광복의 기쁨도 잠시, 이데올로기가 남긴 전쟁의 소용돌이는 1950년 6월 25일 같은 민족끼리 총을 겨누었던 가슴 아픈 역사를 남겼습니다.

"동이 트기 전, 대포 소리에 잠이 깼어요. 사람들이 짐을 메고는 어디론가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더군요.
그제야 알았어요. 전쟁이 일어났다는걸요." - 6.25를 겪은 민간인의 증언

수백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부모를 잃은 전쟁고아는 하루아침에 길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향을 등지고 피난을 가야 했던 사람들과 그 사이로 가족과 긴 이별을 해야만 했던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전쟁의 잔상은 참혹한 비극과 아픔 그리고 희생을 남겼습니다. 올해로 6.25전쟁 72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참전 용사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의 아픔은 직접 겪은 세대들만의 가슴 아린 기억이 아닌, 앞으로 살아갈 젊은 세대들도 함께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입니다. 이에 앞으로 살아갈 젊은 세대들이 6.25전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6.25 특선 영화』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전쟁의 서사 속에서 연출된 필름은 72년 전 오늘을 기억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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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중구

    목숨을 건 첩보전을 그린 영화 『인천상륙작전(2016)』
    2016년 7월 27일 개봉한 「인천상륙작전」은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1950년 9월 15일 국제연합(UN)군이 맥아더 장군의 지휘 아래 감행된 군사작전인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이재한 감독의 영화이다. 양창훈 제작, 이만희각본, 이정재, 이범수, 리암 니슨, 진세연, 정준호 등이 출연했다.
  • 부산 >중구

    전쟁을 넘어 굳세게 살아가는 삶, 영화 『국제시장(2014)』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윤제균 감독의 작품으로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황정민, 오달수, 김윤진이 주연을 맡은 휴먼 드라마 영화이다. 1950년대 6·25전쟁에서 현재까지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지금의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역사의 비극·감동을 한 번에 감상할 수 있는 전쟁영화이다.
  • 경북 >포항시

    71명의 학도병이 포항을 지켜낸, 영화 『포화속으로(2010)』
    2010년 이재한 감독이 발표한 「포화속으로」는 6·25전쟁에서 큰 활약을 한 학도병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쟁 영화로, 1950년 8월 11일에 포항여자중학교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차승원이 북한군 장교 역할을, 빅뱅의 멤버 최승현이 학도병을 맡았고, 권상우는 불량 청소년에서 애국자로 변화하는 역할을 맡았다.
  • 강원 >평창군

    6·15선언의 정신을 영화로 보여준 『웰컴 투 동막골(2005)』
    영화 「웰컴투동막골」은 1950년 11월 6·25전쟁이 한창이던  ‘동막골’이라는 강원도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유엔군, 북한군, 국군 일행이 우연히 이 마을에 모여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영화적 판타지로 그려내고 있다. 사상과 이념의 대립이 없는 한 공간에 그들을 배치시킴으로써 관객들이 이전의 전쟁영화와는 달리 이데올로기의 안경을 벗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 경남 >합천군

    가족의 희생사를 다룬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3)』
    2004년 개봉한 강제규 감독작 「태극기 휘날리며」는 6·25 전쟁으로 한 형제의 산산이 부서진 삶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그린 영화이다. 전장에 끌려간 형과 동생, 두 형제는 서로를 의지하는 마음으로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숱한 운명적 순간을 겪으며 살아남지만, 형이 동생을 구하려다 죽음을 맞고 산자와 죽은 자가 뒤바뀌게 되는 이야기다.
  • 전국

    전쟁의 잔상에서 살아남기, 영화 『만무방(1994)』
    엄종선 감독이 연출한 「만무방」은 1961년 현대문학상 수상작인 오유권 작가의 중편소설 『이역의 산장』을 ‘만무방’이란 제목으로 바꾸어 영화화한 것이다. 1994년 대종필름에서 제작한 이 영화는 6·25전쟁 말기 접전지역의 한 오두막에서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벌이는 또 다른 생존전쟁을 그린 전쟁영화로 장동휘, 윤정희, 김형일, 신영진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은 101분이다.
  • 경기 >부천시

    안정효의 소설을 다룬 영화 『은마는 오지 않는다(1991)』
    1991년 한진흥업에서 제작한 「은마는 오지 않는다」는 미국에서 출판되어 화제를 모은 안정효의 소설 『은마(Silver Stallion)』를 원작으로 하여 장길수 감독이 연출하고, 이혜숙, 김보연, 손창민, 전무송 등이 출연하였다. 상영시간 123분이다. 6·25전쟁 중 미군 부대가 들어오면서 유입된 미국 문화로 인해 급속히 붕괴되어 가는 한국의 전통적인 시골마을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원작의 모티브는 부천군 심곡리[현 부천시 심곡동]에 살았던 작가의 전쟁 피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 전남 >구례군

    이태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영화 『남부군(1990)』
    1990년 개봉한「남부군」은 종군기자 이태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로 출간된 원작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제작비 14억 원에 3만 명의 엑스트라가 동원된 대작으로 주목을 끌었다. 5년에 걸친 지리·소백산 지구의 빨치산 토벌전을 배경으로 북한에서 버림받고 남한에서 반동으로 몰려 갈 곳을 잃고 산속으로 들어간 빨치산의 전투 활동을 그렸다. 안성기, 최민수, 최진실, 이혜영 등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들과 왕년의 스타인 트위스트 김이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와 열연했고, 장선우의 각본으로 정지영감독이 연출하였으며, 남프로덕션에서 제작하였다. 상영시간은 157분이다.
  • 강원 >철원군

    598고지에서 국군의 활약을 그린 영화 『전우가 남긴 한마디(1979)』
    「전우가 남긴 한마디」는 6·25 전쟁 당시 가장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던 전술상의 요지인 598고지에서 국군의 활약상을 그린 전쟁영화이다. 2011년 독고영재가 당시 신예로 연기했던 영화촬영에 대한 후일담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79년 한진흥업에서 제작한 전쟁영화로 황길용의 원작을 백결이 각색, 이원세 감독이 연출하고, 진봉진, 장혁, 전영선, 김만 등이 출연했다. 상영시간 105분이다.
  • 전국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낙동강은 흐르는가」는 1976년 우진필름에서 제작된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임권택 감독의 전쟁영화이다. 나한봉과 한성의 각본으로 진유영, 유영국, 김지혜, 장혁 등이 출연하였으며, 상영시간은 95분이다.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에서 북한군과 대적하는 국군의 고군분투와 희생정신을 그렸다.

찬란한 역사가 빛나는 한글도시, 세종

무기력한 몸과 마음을 힐링하기 좋은 요즘 주말에 집콕만 하긴 아쉽지 않으신가요? 나른한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도 쫙해주시고 어디든 떠나고 싶은 그런 좋은 날 즉흥 여행을 떠나보세요. 지역N문화에서는 행복도시 세종시를 추천합니다! 자연이 주는 감사함의 그저 힐링이 되는 국립세종수목원과 야경 맛집 세종호수공원도 보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설렘 가득한 문화 탐방도 함께 해보아요. 찬란한 역사와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여유로운 나만의 시간을 마음껏 즐겨봅시다. 세종에서의 특별한 여행으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잊지 못할 추억도 쌓고 행복나들이도 즐겨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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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

    왜군들이 피난민들을 죽여 피가 흘렀던 세종시 피숫골
    충청도지역에는 예로부터 피난지로 널리 알려진 곳이 여럿 있는데 전동면 미곡리가 그중의 한 곳이다. 그리하여 임진왜란 중에 충청도 인근의 많은 사람들이 미곡리에 모여들었다. 그러나 중으로 가장한 염탐꾼에 의해 피난지가 발각되어 왜군에게 수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왜군들이 휘두른 칼에 쓰러진 피난민들의 피는 맑은 물이 흐르던 냇가를 붉게 물들였다. 사람들은 이때부터 미곡리의 한 골짜기를 피숫골이라 불렀다.
  • 세종

    국내 유일 행정도시 세종시민을 위한 '세종축제'
    세종특별자치시의 명칭은 국민 공모를 통해 조선 세종의 묘호에서 따온 것으로, 세상(世)의 으뜸(宗)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종축제는 세종대왕의 얼을 기리는 세종특별자치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세종특별자치시의 위상에 맞는 축제를 위해 연기군에서 개최되던 축제 일부를 통합했다. 세종축제는 5일에 걸쳐 다양한 ‘공연, 체험, 전시’ 행사가 진행된다.
  • 세종

    부자 홍개가 살았던 세종시 홍개터골
    조선 초기에 세종시 금남면 영대리에 홍개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인근에서 부자로 소문이 나 많아 사람들이 찾아왔다. 홍개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게 너무나 귀찮아 탁발 온 노스님에게 비법을 물었다. 홍개는 노스님이 일러준 대로 뒤꼍의 백마 머리를 잘라 땅에 묻었다. 신기하게도 이튿날부터 묵었던 손님들은 모두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없었다. 삼 년이 흘러 땅에 묻었던 말머리를 파내자 백마 두 마리가 나오더니 집 주위를 돌다가 사라졌다. 그 날부터는 홍개네 집안이 기울었고 곧 망했다. 홍개가 살던 곳의 흔적은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개가 살던 곳이라 하여 홍개골이라 했다.
  • 세종

    사람들의 행동을 보고 상과 벌을 주는 독락정 석불
    노부부가 살았는데 하루는 허름한 차림의 노인이 찾아와 먹을 것을 구하였다. 부부가 불쌍히 여겨 잘 대접해주니 노인은 독락정 뒤편 석불에 백일기도를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부부는 석불에 백일기도 하여 결국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이 커서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또 석불에 찾아가 기도하니 약초가 있는 곳을 알게 되어 아버지가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이 소문이 돌자 이웃마을의 욕심 많은 청년이 석불에 찾아가 돈이 필요하다고 빌자 돈이 든 주머니를 얻었는데, 날마다 술 마시고 노는 데 쓰다 보니 돈이 모두 뱀으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함부로 석불에 소원을 빌지 않는다고 한다.
  • 세종 >세종시

    피난길을 안내했던 김승로를 참수한 세종시 전동면의 붉은덕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심중리에 ‘붉은덕’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붉은덕은 전동면 청람리에 묘소가 있는 김승로(金承露)가 참수당했다고 해서 불리는 지명이다. 고려시대 말엽 원나라군이 고려를 침입하였다. 피난길에 오른 고려 왕이 천안시 행정리 부근의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을 때 김승로가 ‘전의’ 방향으로 갈 것을 추천하였다. 김승로의 말에 따라서 전의로 오던 중 평야가 있을 것이라는 김승로의 말처럼 평야가 보이지 않자, 고려 왕은 성급하게 김승로를 참수하였다고 한다.
  • 세종 >세종시

    선돌이 서 있었던 세종시 전동면의 석곡리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 석곡리(石谷里)는 국사봉(國師峰), 송학산(松鶴山) 등과 같은 낮은 산지로 둘러싸인 마을이다. 국사봉에는 예전에 봉화대가 있었으며, 마을 주민들이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산신제(山神祭)를 지내는 제장(祭場)이 있는 곳이다. 석곡리 지명은 ‘선돌배기’와 관련이 있다. 옛날 어느 시대인지는 모르지만 한 장수가 들고 가다가 지팡이처럼 마을에 돌을 세워두었기에 선돌배기라 부른다고 한다.
  • 세종

    가마를 설치했던 세종시 연서면의 부동리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관내의 자연마을 가운데 ‘가마골’ 곧 ‘부동리(釜洞里)’라 부르는 마을이 있다. 옛날 가마골에 큰 부자가 살고 있었다. 시골 마을의 부잣집인지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편, 부자에게는 며느리가 한 명 있었는데, 시집온 지 삼 년이 지나도록 손님 접대하느라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루는 시주하러 온 노스님에게 손님이 오지 않게 하는 방법을 묻고, 노스님의 말에 따라서 마을 주위에 성을 쌓았다. 그 후에 부잣집을 찾는 손님이 점차 줄어들었지만, 부잣집의 가세 또한 기울어졌다고 한다.
  • 세종

    남양 홍씨 9명의 효자를 기리는 연서 효교비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기룡리 713-55 번지에는 연서 효교비가 세워져 있다. 연서면 일원에 남양 홍씨 문중에는 5대에 걸쳐 9명의 효자가 있었다. 홍연경(洪延慶)과 아들 홍연설(洪延卨), 손자 홍우적(洪禹積), 홍우평(洪禹平), 홍우구(洪禹九), 증손자 홍방만(洪鈁?), 현손 홍득후(洪得厚), 홍득일(洪得一), 5세손 홍상직(洪相直)이다. 이러한 홍씨 문중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영조 49년인 1773년에 비석을 세웠다.
  • 세종

    노승의 말을 어기고 뒤돌아보다 바위가 된 며느리
    옛날 한 부잣집에 부자와 며느리가 살았다.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 시주를 부탁하자 부자는 거름을 끼얹었다. 다른 날 다시 온 노승에게 며느리가 후하게 시주하자 노승은 며칠 뒤 있을 홍수를 이야기해주며 전월산으로 피하되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였다. 며칠 뒤 큰비가 오니 며느리는 부자에게 같이 산에 오르자 하였지만 부자는 재산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남아있었다. 며느리는 혼자 산에 오르다 부자의 비명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다 그대로 굳어 바위로 변했다. 이후로 이 바위를 사람들은 며느리바위라 불렀고 바위 밑에서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 세종

    힘이 들 땐 청춘 방앗간에서 수다 한 접시
    세종시 조치원의 전통시장에는 청춘 방앗간이 있다. 이곳은 직접 뽑은 가래떡으로 떡볶이를 만들어 파는 분식점이다. 주요 메뉴는 청춘 세트, 방앗간 세트이다. 청춘 세트는 떡볶이와 김밥, 튀김, 순대를 기본으로 한다. 달지도 자극적이지도 않은 고추장 소스가 쫄깃한 가래떡을 섬으로 만들었다. 세트메뉴의 양은 두 명이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만큼 많은 양이다.

제주의 감성을 품은 박물관

어느덧 6월, 비에 젖은 흙을 가만히 들어 콧잔등에 대어보니 싱그러운 여름 냄새가 마음의 설렘을 더하여 줍니다. 곧이어 화창하게 내리쬐는 태양 빛에 못 이기듯, 푸른 바다와 초록빛 신록이 우거진 제주로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요. 제주를 방문하는 여러분께 꼭 추천해 드리고 싶은 다양한 박물관이 여기 있습니다. 박물관 천국이라 불릴 만큼 다양한 테마로 꾸며져 있어 취향대로 골라 방문할 수 있는데요. 제주와 잘 어울리는 이색적인 전시와 자연 건축물을 보며 색다른 경험도 해보고, 기념 사진도 찍어보며 인스타 핫플레이스 인증도 해보세요. 제주를 방문하는 여러분, 제주의 살랑이는 바람 따라 박물관 탐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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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서귀포시

    신나는 우주체험을 할 수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
    인류에게 하늘은 늘 탐구의 대상이었다. 하늘의 뜻을 읽는 자가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이끌던 과거에서 우리는 점점 발전했다. 지금은 하늘을 넘어 우주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인류의 노력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이 바로 제주도에 있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이다. 비행기부터 시작해 현재 탐험 가능한 우주와 미래의 모습과 다양한 체험이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는 박물관이다. 파일럿이나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어린이에게도 즐거움을 주겠지만 성인들도 즐길 수 있는 박물관이다.
  • 강원 >영월군

    폐교에 400여 점의 인도 미술품을 전시한 인도미술박물관
    카레와 요가로 익숙해졌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인도의 예술품과 문화에 매료되었던 우리나라 화가인 박여송 씨와 인도지역연구가 백좌흠 씨는 인도의 특색있고 매력적인 예술을 우리나라에 알리고 싶었다. 인도를 여행하고 생활하며 35년간 인도에서 모은 400여점의 수집품들과 영월의 작은 폐교 공간을 활용해서 2012년 인도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 제주 >서귀포시

    올바른 성을 이야기하는 건강과 성박물관
    우리나라에서 성은 다들 알고 있지만 쉽게 말하지 않는 이야기 주제이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는 성을 점점 음지로 끌고 갔다. 그러다 보니 지금 성인들도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않아 아이들의 성교육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어른들을 대상으로 올바른 성 지식과 성교육을 하고자 건강과 성박물관이 2006년에 문을 열었다. 건강과 성박물관은 성인들이 놓치고 있던 다양한 성에 대한 지식을 알려주고 우리 몸과 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제주 >서귀포시

    유리공예가들이 만들어놓은 반짝이는 세상, 유리 박물관
    투명한 유리에 색깔을 넣고, 다양한 모양을 만들어 8,000여평을 꾸며놓은 유리박물관이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다. 다른 유리로 만든 흥미유발의 관광지와 차별되는 점은 이곳의 유리작품들을 예술가들이 직접 만들고 배치했다는 것이다. 야외 전시와 실내전시로 구분되어 있지만 사실상 모든 것들이 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둘러보는 내내 마냥 신기한 곳이다. 낮의 자연광으로 보는 유리도 신비롭지만, 형형색색의 새로운 세상을 보고 싶다면 저녁 관람을 추천한다.
  • 제주 >제주시

    제주 공예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예나르 제주공예박물관
    예나르 공예박물관이 위치한 제주 저지리 예술인 마을은 1999년 계획된 마을이다. 그 마을 중심에 예나르 공예박물관이 있다. 50년 경력의 고미술 화랑 운영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설립한 이 박물관은 작은 규모이며, 상설전 없이 기획전시로만 운영되고 있다. 2020년 첫 개관전으로 '제주 실경도와 제주 문자도'를 열었고, 두번째 기획전 '제주 궤와 팔도 받닫이'를 열었다. 기획전에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므로, 방문 전에 전시가 열리고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 제주 >서귀포시

    놀라운 자연의 색을 보여주는 세계 조가비 박물관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가비(조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곳이 ‘세계 조가비 박물관’이다. 세계조가비 박물관은 40여년 간 수집한 1만5천여종의 조가비와 산호를 아름다운 받침대 위에 조화롭게 배치하여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전시되어 있는 조개의 다양한 색감들을 보며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 제주 >서귀포시

    세계의 술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 술 박물관
    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몽신화에 처음 등장해 다양한 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술의 주된 재료가 곡식이다 보니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법적으로 술을 금지하는 금주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그 명맥이 끊어졌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의 필요성을 느끼며 민속주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민속주를 비롯해 프랑스 꼬냑, 러시아의 보드카, 독일의 맥주 등 세계 각국의 술을 모아놓은 세계 술박물관이 제주도에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현무암에 심은 풍란의 아름다움, 석부작박물관
    제주도는 돌, 바람, 여자가 많은 삼다도로 유명하다. 지금이야 제주도가 누구나 가고싶어하는 관광지이지만 교통, 항공편이 발달되기 전에 제주도는 그저 척박하고 살기 어려운 땅이었다. 화산섬인 제주도는 90%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있어 비가 오면 물이 그대로 빠져나간다. 그래서 물이 부족하지만 대신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제주의 자연을 현무암과 야생화, 초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곳이 '석부작 박물관'이다.
  • 제주 >제주시

    만화 <피너츠>와 제주의 자연이 어우러진 스누피 가든(SN 박물관)
    최근 다양한 콜라보가 유행하면서 옛 캐릭터들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스누피’이다. 스누피는 미국의 《피너츠(Peanuts)》 시리즈로 유명한 만화 속에 등장하는 비글이다. 50여년 간 연재된 이 만화를 통해 스누피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캐릭터가 되었다. 그래서 작가를 기념하는 박물관과 스누피 박물관이 해외에도 있고, 최근 다양한 기획전이 진행되기 했다. 우리나라에도 2020년 스누피를 테마로 한 아름다운 정원과 전시장이 제주도에서 문을 열었다. 스누피 가든이라고 불리는 SN박물관은 5개의 테마홀과 미니정원이 꾸며진 ‘가든하우스’와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테마와 어우러진 ‘스누피가든’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에서 만화 속 캐릭터들의 삶을 함께 공감하며 휴식과 여유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 제주 >서귀포시

    테디베어로 표현되는 세상, 제주 테디베어 뮤지엄
    어린이들이 한번쯤은 애착인형으로 거쳐가는 인형이 곰돌이, 테디 베어다. 제주 테디베어 뮤지엄은 유년시절의 감성을 떠올리고, 아기자기한 곰인형으로 표현된 인류역사의 중요순간들과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관람없이도 방문이 가능한 뮤지엄샵에서는 다양한 굿즈를 판매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색깔부터 와펜까지 직접 골라 만드는 비스포크 테디베어가 인기 상품이다.

옛 선비들의 발자취, 서원을 걷다

2019년 5월,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의 서원 9곳'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였습니다. 성리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9개 서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는지 살펴봅시다. 그리고 선비들이 자신만의 이상향을 갖고 자연 속에 은거한 것처럼 우리도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옛 정취를 느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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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전북 >정읍시

    태산에 유풍을 일으킨 현자들의 발자취
    대부분의 서원이 민가와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지역민이 주축이 돼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태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수령으로 왔던 최치원과 신잠의 공덕을 기려 생사당을 지었고 둘을 함께 합사해 ‘태산사’라 이름하였다. 무성서원은 태산사가 지역민의 향학당 자리로 옮겨져 서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성서원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지역민과 수령들이 서원을 통해 어떻게 유교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 경기 >안성시

    상소를 올리고 죽은 오두인의 고향에 세워진 덕봉서원
    덕봉서원은 숙종 대의 문신인 오두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오두인은 장희빈을 왕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하려는 숙종의 명을 거스르는 상소를 올렸다. 부모가 화평하지 않으면 자식이 화평할 수 없듯 선비들과 백성들이 모두 슬퍼하니 사심을 버리고 인심과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유교적 논리로 임금의 명에 반대한 것이다. 상소를 보고 격노한 숙종은 상소문을 작성한 이들을 불러 가혹한 심문을 하였고, 다음날 유배를 가던 길에 오두인은 숨을 거두었다. 서원과 멀리 않은 곳에 오두인의 종갓집이 있다.
  • 경기 >용인시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워진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조광조는 사화로 사사된 이후 포은 정몽주와 함께 배향되어 오다가 관작이 회복되면서 선영 근처의 서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조광조를 배향하는 서원 설립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도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 경기 >하남시

    노량진 사육신 사당 옆에 세워졌던 사충신의 사당,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원래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경종 재위기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시킨 노론의 사대신(四大臣)이 배향되어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즉위해 영조가 되면서 충신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하지만 1년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경종에 대한 역신으로 간주되어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이후 다시 설립된다. 충신에서 역신으로, 그리고 다시 충신이 되어 서원에 배향된 이들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 서울 >강동구

    선조들이 공부하던 구암서원 터, 구암정
    구암정은 1667년 조선 중기 현종 8년에 세워진 최초의 서원인 구암서원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정자이다. 서원은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길러내는 학습 기관이자 향약을 조직하여 유교적 마을 공동체를 조직하는 향촌 자치 기구였다. 구암서원은 오늘날 강동구가 속해있었던 광주 지역의 유생들이 관료사회에 나아가기 위해 유교적인 학식과 교양을 쌓는 곳이었다. 하지만 구암서원은 1871년 고종 때 전국의 서원철폐와 함께 사라졌고 1998년 구암서원 터에 구암정을 건립하여 기념하고 있다.
  • 대전 >서구

    대전 유림을 대표하는 권득기와 권시의 도산서원 사적비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에는 도산서원 사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도산서원은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 1570~1622) 선생과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權諰, 1604~1672) 선생을 제향한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1692년 대전의 유생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1711년에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이후 흥선대원군 재위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안동권씨 종중에 의해 복원 및 증축되었다. 도산서원 사적비는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글을 짓고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 글씨를 써서 세운 것으로 도산서원의 건립 배경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 전국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경상도 별미,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고아 푹 우려낸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만든 것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즐겨 먹는 별미입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 누구보다 발 빠르게 새벽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국밥의 풍미를 더할 육수를 몇 시간 동안 펄펄 끓이며 재료를 준비하는 가게 사장님의 정성은 국밥의 깊은 맛을 더하곤 하지요. 이러한 돼지국밥이 경상도 지역의 별미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의식주생활사전'에 따르면 돼지국밥은 북한 음식이지만 월남하여 부산으로 피난온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경상도 고유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저마다의 인생과 정성은 오늘도 모락모락 김이 새어 나오는 국밥집 주변을 맴돌게 하는데요. 이번 주는 든든한 한 끼, 국밥 한 그릇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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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군산시

    군산공설시장 형성과 함께한 돼지국밥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산공설시장은 군산을 대표하는 시장이었다. 군산의 돼지국밥은 군산공설시장과 옹기전 사이를 흐르는 ‘샛강’ 주변에서 식당 4~5개가 영업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샛강의 돼지국밥은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원래는 ‘순댓국’이라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돼지국밥’으로 바뀌었다. 돼지국밥은 푸짐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물이 진하고 얼큰해서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다.
  • 경남 >창녕군

    창녕 이방식당, 제대로 된 수구레국밥의 명품식당
    경상남도 거창군 이방면 거남리의 이방식당은 1977년 문정자 씨가 이방시장에서 난전(亂廛)으로 시작하여 1980년 현 위치에 점포를 매입하여 이방식당의 간판을 열고 개업한 지 41년이 되는 노포식당이다. 이방식당은 시장에서 좌판 장사할 때부터 팔았던 수구레국밥과 수구레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에 있는 특수부위인 수구레를 가공하여 선지와 함께 사골육수에 얼큰하게 끓여낸 수구렛국이 이방식당에서 차리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된다. 2018년부터 1대 문정자 씨의 며느리 최은영 씨가 대물림하여 운영하고 있다.
  • 울산 >중구

    푸짐함과 투박함이 가득한 토렴식 돼지국밥, 울산 '산전식당'
    산전식당은 김영생이 방영시장에서 1967년 개업한 돼지국밥 전문식당이다. 김영생이 처음 가게를 혼자 운영하다 식구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부터는 며느리인 박주애가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산전식당의 돼지국밥은 돼지국밥에 국물을 붓고 다시 국물을 덜어내는 토렴 방식의 조리법을 택하고 있다. 이 같은 토렴방식은 우리나라 국밥에서 사용하는 전통 방식이다.
  • 부산 >연제구

    부산시가 선정한 향토음식 돼지국밥, 경주 박가 국밥
    경주 박가 국밥은 경주 박가(慶州 朴家)가 운영하는 국밥집이다. 경주 박가 국밥은 1951년 박주호의 어머니가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개업하였다. 박주호는 어머니에게서 국밥 일을 배운 후, 1993년 금정구 서동에 경주 박가 국밥 분점을 열었다. 1997년 박주호의 경주 박가 국밥 분점은 지금의 연제구 연산동으로 가게를 옮겼다. 서동의 국밥집은 주방장이 인수하였다.
  • 부산 >부산진구

    피난살이의 고달픔과 허기를 달래주었던 부산 돼지국밥
    부산 돼지국밥은 돼지 사골을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육수를 돼지고기와 밥에 여러 차례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만든 다음 국물을 부어내는 부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부산광역시는 부산향토음식의 하나로 돼지국밥을 지정하였다.
  • 경남 >밀양시

    소뼈국물과 돼지수육이 어우러진 깊은 맛, 밀양 무안돼지국밥
    밀양돼지국밥은 소뼈를 오랜 시간 고아낸 국물에 쌀밥을 토렴한 다음 뜨거운 국물을 붓고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얹어내는 국밥으로 경상남도 밀양시의 향토음식이다. 밀양돼지국밥은 1938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무안장 인근에 ‘양산식당’을 연 최성달 씨가 처음 개발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3대에 걸쳐 원조 밀양돼지국밥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 부산 >남구

    피난지에서 만든 탕반,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곤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고 간을 해서 먹는 부산광역시 향토 음식이자 전쟁음식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설렁탕을 변형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형됐다는 설이 있다. 둘 다 물자가 귀한 전쟁시 피난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뼈와 부속물로 대체하여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9년 부산 시내 3군데 국밥집이 향토 음식점으로 지정되었고, 범일동과 서면에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호국보훈의 달, 가슴 깊이 새긴 고귀한 희생

호국보훈의 달, 6월은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정된 달입니다. 난세 때마다 애국애족정신으로 나라를 지킨 의병과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고, 국토방위에 목숨을 바친 장병들과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 6.25전쟁으로 나라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께 감사하고, 서해를 지켰던 영웅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며, 대한민국의 오늘을 지켜준 이들의 숭고함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달이 됩시다!

♤ 의병의 날(6월 1일) ♤ 현충일(6월 6일) ♤ 6.25전쟁(1950년 6월 25일)
♤ 제1연평해전(1999년 6월 15일) ♤ 제2연평해전(2020년 6월 29일)

※ 조의(弔意)를 표하는 현충일, 태극기 바르게 다는 법
1. 게양방법: 깃봉(최상단)에서부터 간격을 두고 내려서 게양
2. 게양시간: 오전 7시~오후 6시
3. 게양위치: 집 밖에서 보았을 때, 중앙 또는 문 왼쪽에 게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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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전남 >나주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전투의 영웅, 김경진 육군중령
    국군 제9사단과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백마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피아간 10일 동안 격전을 치루었다. 이들은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뀌고 포탄이 하루 평균 5만 발 가까이 작렬하는 등 세계전사에 유례가 없는 고지공방전을 치루었다. 김경진 소령은 이 과정에서 백마고지를 탈취, 확보하는데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그렇지만 김경진 소령이 고지탈환 작전 중 최후의 돌격사격을 전개하려는 찰라, 적군이 쏜 박격포탄으로 인하여 현장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부산 >남구

    부산 유엔평화기념관, 한국전쟁 당시 희생된 유엔군을 기리는 곳
    유엔평화기념관은 2014년도에 개관한 국가보훈처 산하의 현충 시설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UN군을 기억하고, 평화를 위해 희생한 그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휴전에 이르는 역사가 전시된 ‘한국전쟁실’, 한국전쟁에 참여한 UN군의 현황과 참전용사들의 육성을 들을 수 있는 ‘UN참전실’, UN의 활동과 지금도 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 소식을 전하는 ‘UN국제평화실’, 부산의 아동복지와 의료 여건 향상 등에 힘쓴 미국 장교 리차드 위트컴에 초점을 맞춘 ‘리차드 위트컴전’ 등을 관람할 수 있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경기 >김포시

    의병장 조헌을 기리는 우저서원
    우저서원 조선 선조 때의 학자이며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조헌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1648년에 지은 서원으로 1675년에 우저라는 사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경북 >칠곡군

    칠곡호국평화기념관, 다부동 전투의 그날을 기억하는 곳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6.25 전쟁의 최후의 방어선이었던 낙동강 유역을 지키고, 불리했던 전세를 역전 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다부동 전투’에 대해 알리고자 2015년에 세워진 공공 박물관이다. 한국전쟁 발발에서부터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과 다부동 전투에 뛰어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학도의용군으로 나선 어린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학도의용군 태극기’ 앞에서 고개가 숙어지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으랴.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은 전쟁의 무서움과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 경북 >칠곡군

    왜관지구전투
    왜관 지역은 유엔군과 국군이 대구를 침공하기 위해 최후의 공세를 펼친 북한군이 격전을 치른 곳이다. 최후의 일각까지 유엔군과 국군은 고귀한 생명을 바쳐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적의 공세를 막아냈다.

6.25전쟁과 피난민의 삶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산업생산 시설은 잿더미가 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철도를 비롯한 도로와 교량 등 간접자본의 훼손 역시도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전쟁은 많은 전쟁고아와 전쟁미망인을 파생시켰고, 초토화된 국가 경제난에서 고향을 등지고 피난을 가야만 했던 사람들만 수백만 명의 다다랐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전쟁 속에서 고향을 떠나 현재에 머무르기까지 피난을 가야 했던 피난민들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한국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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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진도군

    진도 안농마을
    6·25전쟁 이후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장연, 송화, 옹진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진도에 실향민촌이 생겼다. 2005년 진도 내에는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실향민 350가구가 있으며, 실향민회가 있다. 집단 이주가 이루어진 안농마을이 최근 농촌마을 리모델링 사업과 농촌재능나눔 공모사업으로 알려지면서, 피난민의 생활이 재조명되고 있다.
  •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아바이마을
    당감동 아바이마을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피란민들의 정착한 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당감동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들어온 피난민 정착촌 중 하나였다. 휴전이 되자 거제도로 피난 온 함경도 피난민들이 당감동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구 시장 골목’에 정착하게 되었다.
  • 광주 >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
    광주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정착한 달동네로 1970년대에는 방직공장 여공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으나 방직공장이 이전하고 도시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아 빈집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2014년 지역재생산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볕이 뜨는 발산마을’로 ‘청춘의 발산’ 마을 만들기에 주민과 뜻있는 사람들의 많은 참여가 지금까지 이어져 ‘발산창조문화마을’이란 새로운 마을이 탄생했다.
  •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부산 피난민 마을의 색다른 변신
    감천문화마을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1950년대 6·25 전쟁 피난민들과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태극도마을이라는 이름의 낙후된 곳으로 알려져 왔으나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환경정비를 하고 담장이나 건물 벽에 벽화 등을 그리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와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이 진행되어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 경남 >창녕군

    부산까지 소를 몰고 피란 갔다 왔다 (이완종 수기)
    6·25전쟁이 터진 해 대구 수창국민학교의 5학년생이었던 이완종은 소등에 짐을 싣고 창녕 이모 댁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을 간 창녕읍에도 포탄이 떨어져 부산을 목표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서 돌아오니, 마을 주변에는 지뢰, 수류탄 등 위험한 폭발물이 곳곳에 있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 경남 >창녕군

    만삭이 된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장사를 하였다 (이한식 수기)
    전쟁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한식은  시모님, 남편, 세 살짜리 딸과 피난을 떠났다. 부북면 신촌 다리 밑에서 자리를 잡고, 남편은 밖에 나가면 방위병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숨어다니고 이한식은 만삭이 된 몸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입소문을 따라 고향에 돌아가니, 담만 남아있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 그래도 방이었던 자리에 청소하여 바닥에 풀을 깔고 그 위에 누웠으니 우리 집이 제일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경남 >창녕군

    나는 보도연맹으로 끌려가신 아버지의 시체없는 무덤 앞에 묘사를 올리고 있다 (정인규 수기)
    정인규의 아버지는 함안에서 농민을 돕는 농민운동을 하였는데 6.25전쟁이 일어나자 보도연맹이란 명분으로 평상에 쉬고 있는 아버지를 설순경이란 사람이 와서 잡아갔다. 잡아갈 때는 아버지의 허리띠를 순경이 풀어버리고 끌려가시면서 평상 밑에 떨어진 자그마한 공을 주어 나에게 주면서 잘 놀아라 며칠 있으면 돌아올 것이다 한 것이 마지막 말씀이었다.
  • 경남 >창녕군

    총알이 귀 옆으로 날아가는 듯하였다 (신용찬 수기)
    창녕군 남지읍 홍포동에 살던 신용찬은 13살이 되던 해 전쟁이 나,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많은 피란민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피난을 갔던 수용소에서는 배급이 적어 굶주려야 했다. 신용찬과 가족들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다시 거제도 장승포 수용소로 피난을 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 경남 >창녕군

    피란 중 모병에 붙잡혔는데 명함 한 장으로 모면했다 (김외식 수기)
    김외식은 1950년 5월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6.25 전쟁이 일어났다.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내려왔을 때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사가 마을마다 배치되어 피란 나가도록 독려하였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마을에 불을 질러 빨리 피란 나가도록 독려하였다. 피란 중, 강제모병에 징집될 뻔했으나 부산부두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당숙의 명함 덕분에 모면할 수 있었다.
  • 경남 >창녕군

    교량폭파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이틀이 걸렸다 (윤혁근 수기)
    1950년 7월, 윤혁근은 열 살 초등학교 4학년으로 길곡면 오호리에 살았다. 어느 날 멀리서 쿵쿵하는 대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 소를 먹이러 가던 중 제트기비행기 2대가 쌩쌩 소리 내며 길곡면 오호리 상공을 돌고 있다가 100m 앞 전방 함안군 칠북면 득남리 어느 집을 폭격하여 초토화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낙동강 변 백사장과 온 들판이 피란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단오 축제로 코로나 팬데믹 털어내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설날, 추석, 단오를 삼대 명절로 삼았고, 이 중에서도 여름이 시작되는 음력 5월 5일 단오를 가장 양기 충만한 날로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릉단오제는 천년의 축제라고 불리는데요. 드디어 강릉단오제가 코로나19로 인한 3년간의 휴면기를 마치고 오는 5월 30일부터 6월 6일까지 정상 개최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단오제를 방문하여 떡도 해 먹고 창포물에 머리도 감아보고, 춘향이처럼 그네도 뛰어보고, 씨름도 해보며 멋과 흥이 넘치는 이곳에서 추억도 쌓고 스트레스도 날려버리세요! 그리고 강릉까지 가기 힘든 여러분, 우리 지역에도 단오가 행해지고 있는지도 함께 살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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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여름철 선물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선자장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부채는 우리 조상들이 한여름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 가운데 합죽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 강원 >강릉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50여 일 동안 진행되는 큰 규모의 제의다. 음력 4월 중순쯤에 열리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는 무척 중요한데 대관령에서 산신을 위한 제의를 한 다음 신목(神木)과 서낭을 마을로 모셔온다.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지는데 단오굿을 보기 위해 강릉은 물론 인근 지역 주민들이 구경을 올 정도로 명성이 높다. 강릉단오제에는 단오굿 이외에 관노가면극, 그네뛰기 등의 행사가 함께 열린다. 특히 무언극으로 진행되는 관노가면극은 강릉단오제의 위상을 더욱 높여주는 데 손색이 없다.
  • 경기 >과천시

    공중에서 벌어지는 곡예 줄타기
    줄타기는 광대가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담,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곡예를 부리는 놀이다. 줄타기는 4월 초파일,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연희되었으며, 궁중의 행사, 권세 높은 집안의 잔치, 마을 축제, 장터 등에서도 공연되었다. 따라서 놀이판은 관아의 뜰이나 대감댁, 절마당, 장마당 등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훈련이 잘된 남자들이 타며, 청중 가운데 줄광대의 기량이 뛰어난 것에 감탄하여 돈 꾸러미나 비단을 내려주는 수도 있었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지금까지 이런 가면극은 없었다!' 특별한 강릉 관노가면극
    강릉 관노가면극은 강릉에서 관노들이 단오제 때 벌이는 무언 가면극이다. 근대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관노였음을 숨기려는 연희자들이 놀이를 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원형을 크게 잃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다. 관의 주도로 지역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놀이인 만큼 사회 풍자적인 다른 가면극들과 달리 오락적인 성격이 강하다.
  • 경북 >경산시

    한장군과 누이를 기념하는 무형문화재 ‘경산자인단오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용성면 일대에서 신라말 혹은 고려시대에 왜구로부터 주민들을 구한 한장군과 그녀의 누이를 기념하고, 그들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제사이다. 단옷날에 한묘제를 지내고, 자인단오굿, 호장장군 행렬, 여원무, 팔광대 등 왜구를 유인 섬멸한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함께 무녀를 동원하여 여원무를 추었다는 전설을 재현하는 제사이다. 1970년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축제의 형태로 지금껏 전승되고 있다. 2007년에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 전국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살피는 널뛰기놀이
    널뛰기는 널빤지 양쪽에 사람이 서서, 번갈아 가며 뛰어오르는 놀이다. 왜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이 '세상 구경을 하려고 널을 뛰었다', '시집가서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다', '귀신을 쫓으려고 널을 뛰었다'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 경남 >창녕군

    평민들의 영웅, 문호장(文戶長)을 기리는 영산 문호장굿
    영산문호장굿은 창녕군 영산면에서 단오날에 영산의 수호신인 문호장을 추모하기 위해 굿 과정에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굿놀이 형태이다. 4-5월에 이루어지며, 관의 기획에 의해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며, 무당의 굿,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형태인데, 현재 전승이 중단되어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많은 잔가시를 세심하게 발라낸, 단오에 먹는 준치만두
    진어(眞魚), 시어(鰣魚), 준치어(俊致魚), 준어(俊魚) 등으로 불리는 준치는 맛도 좋지만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준치만두는 잔가시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발라낸 준치 살과 쇠고기를 넣고 완자 형태로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묻혀 찌는 만두이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빚는 일반 만두와는 다른 형태로 일종의 굴림만두이다. 준치만두는 단오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준치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격변의 조선을 살아간 의병의 삶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은 '의병의 날'입니다. 애국애족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외세에 대항한 민군을 의병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의병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조선후기엔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의병을 떠올릴 때면, 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곽재우 장군과 신돌석 의병장의 이름이 익숙하게 다가오지요.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의병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호국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도 의병이 주요 소재로 다뤄지며, 의병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하였는데요. 전국에는 의병의 주요 봉기지와 활동지 등을 사적과 문화재로 지정하여,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병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지역의 의병 이야기를 찾아보고, 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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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의령군

    홍의장군 곽재우
    곽재우(1552~1617)는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고, 왜군의 호남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들고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녀 홍의장군으로 불렸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활동하였다.
  • 전남 >나주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 경남 >창원시

    8척의 멋진 의병 제말
    제말(諸沫)[1567~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조카 제홍록과 함께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경남 >함양군

    황석산성에서 전사한 곽준
    곽준(郭䞭, 1551년(명종6)~1597(선조30))은 안음 현감을 지낸 인물로 조종도와 함께 황석산성에서 정유재란 때 최후를 맞았다.
  • 충남 >금산군

    칠백의병의 의로운 죽음, 조헌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 강원 >춘천시

    춘천의 한말의병장 이소응
    이소응(李昭應, 1861~1928)은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큰 학자이며 춘천에서 창의한 한말의병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전보를 올렸던 인물이다.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의 문집을 정리하기도 했다.
  • 강원 >춘천시

    의병가사를 지었던 춘천의 의병장 류홍석
    류홍석(柳弘錫, 1841~1913)은 화서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 후 55세의 나이로 의병에 가담하였다. 처음 춘천의진에 있다가 제천의진에 가담하였으며, 류인석을 따라 중국에 가 있다가 1913년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 충남 >홍성군

    충남 홍주의 의병장 김복한
    김복한(金福漢, 1860~1924)은 충남 홍성 출신으로 승정원 승지를 지냈다.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왔다. 1895년 단발령과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다시 1906년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강원 >춘천시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
    류인석(柳麟錫, 1842~1915)은 한말의병장이며 13도의군도총재로서 나이 53세에 의병을 시작해서 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해외에서 한 많은 평생을 끝맺었다.
  • 강원 >춘천시

    한국최초의 여성의병 윤희순의 의병가사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현 구리시 출신으로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출가하여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는 의병가사를 써서 남녀모두 의병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였다.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법

매년 5월 31일은 '바다의 날'입니다. 조금은 생소한 기념일 같은데요. 해양 개발의 중요성과 바다에 대한 중요성을 알리고 세계 해양 강국으로 부상하기 위해 1996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입니다. '바다'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계절은 여름인데, 왜 5월에 바다의 날이 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통일신라시대 장보고 장군이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한 달이 5월이기 때문입니다. 청해진을 설치했던 완도에서는 5월 27일부터 5월 31일까지 '장보고 축제'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그러한 연유로 국민 축제 시기에 적합한 이때를 바다의 날로 제정한 것입니다. 바다의 날을 맞이하여, 지역N문화에서 소개하는 우리나라의 해양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보고, 바다의 소중함과 더불어 바다의 환경을 조금 더 깨끗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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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바다 위에 열리는 시장, 파시
    파시는 저장시설과 운반시설이 부족하던 시절에 바다 위에서 열리던 시장이다. 조선시대의 문헌 자료에 '파시'라는 용어가 기록된 것으로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파시는 대상 어종에 따라 구분이 가능한데 조기파시와 민어파시, 고등어파시 등이 그것이다. 파시가 열리는 지역에는 이 기간 동안 임시 촌락인 파시촌이 형성된다. 파시촌은 밤만 되면 불이 꺼지지 않았는데 어부들을 상대로 여러 상업시설이 불야성을 이뤘기 때문이다.
  • 전국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등대
    등대는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라잡이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자원이다. 서구에서 생겨난 등대는 여러 나라로 퍼져나가는데 우리나라는 1900년대 초반 최초로 등장했다. 등대는 최하단부의 등탑, 불을 밝히는 등롱, 그리고 등명기로 구분된다. 등대의 핵심 기능은 야간에 불빛을 비추는 것이다. 이 불빛을 보고 항해나 조업하는 선박들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무사히 운항을 하게 된다. 최첨단 기술이 발달된 오늘날까지도 등대는 여전히 불을 밝혀 선박들의 항해를 돕고 있다.
  • 인천 >옹진군

    바다 위의 기암괴석, 백령도 두무진 연화마을
    우리나라 최북단에 속한 백령도는 섬이지만 육지처럼 커서 여러 마을이 있다. 그 중 특색있는 마을이 선착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두무진이다. 이곳이 유명한 이유는 금강산의 기암괴석을 닮은 바위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바다에 여러 형태의 바위가 서 있다.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면 더욱 멋진 풍경을 엿볼 수 있다. 두무진 마을은 우리나라에서 천주교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으로도 유명하다. 중국에서 배를 타고 건너온 유럽의 신부들이 이곳에 도착한 다음, 우리나라 본토로 들어갔다고 한다.
  • 전남 >신안군

    신안 임자도, 아름다운 모래의 섬
    임자도는 오랜 간척의 역사를 갖고 있는 사질토의 섬이다. 임자대교가 완성되어 다리를 통해서 섬에 들어갈 수 있다. 들깨가 많이 나서 임자도라고 불렸지만 현재는 대파가 대표 특산물이며, 젓새우와 민어도 유명하다.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변을 갖고 있는 임자도 대표 관광지이다. 어머리해안의 용난굴 설화가 있으며 섬을 한 바퀴 둘러볼 수 있는 자전거길과 걷기코스가 있다.
  • 제주 >서귀포시

    제주도 남서쪽 마라도 앞의 모래가 많은 ‘모슬포항’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에 있는 모슬포항은 모슬봉(187m)과 가시악(加時岳, 106.5m)의 두 산이 항구를 등지고 있고, 남서부 해안의 암초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이다. 항구 앞쪽 바다 건너에 대한민국의 시작이자 끝인 최남단 마라도가 있어 항구에 마라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1971년에 1종 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1991년에 북항과 남항이 완공되었다. 개항 이후 한일통어장정이 체결되고 일본이 잠수기 어업을 펴면서 식민지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다. 2007년부터 해마다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국내 최대 방어어장이 조성되고, 방어축제 또한 개최하고 있다.
  • 제주 >제주시

    고려시대부터 제주도와 외부를 연결하던 옛 포구인 고산항
    고산항은 제주시 한경면 고산1리에 있는 어항으로, 여몽 항쟁기에 고려관군과 몽고 연합군이 상륙해 삼별초군과 해전을 벌였던 포구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제주도민이 일본으로 가는 여객선을 타던 항구였다. 해안에는 여몽항쟁 당시 사망한 유골 1,000여 구가 묻혔다는 전설이 어린 ‘천개동산’이 있고, 고산항 절벽 굴속에는 일본 해군이 사용했다는 격납고 흔적도 남아 있다. 해방 이후 낙후된 항구 시설을 정비하는 것이 다소 늦어져 1967년에 방포제를 건설하면서 항구로서의 위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1999년에 제주시에 의거해 제2종 어항으로 지정되었고 현재 각종 어선이 위험한 바다에서 대피할 수 있는 대피항으로도 활용 중이다.
  • 제주 >서귀포시

    토기와 농산물을 육지로 운송하던 제주 사계포
    사계항은 제주특별자치도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어항으로, 깨끗한 모래와 푸른 바닷물이 어우러져 명사벽계(明沙壁溪)라 하여 사계리라 부른다. 사계리의 작은 포구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인근 도요지에서 생산한 토기와 농산물을 테우에 실어 육지로 운반하던 포구였다. 사계포구 앞쪽 마을은 토기동 또한 토끼동이라 부르며, 토기와 연관된 사계포구도 토기포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1702년(숙종 28)에 그린 『탐라순력도 』에는 흑로포(黑路浦)라 묘사되어 있으며, 흑로포는 ‘검은질개’라는 명칭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인근에는 영주 십경(瀛州十景) 중 하나인 산방굴사(山房窟寺)와 용머리 해안과 낚시터, 바다 건너 형제섬 등이 있다.
  • 인천 >중구

    수도권에서 유일한 선상파시가 열리던 인천 ‘북성포구’
    인천시 중구 북성동의 북성포구는 북성곶에 위치한 포구로, 북성곶(北城串)은 화도진이 관장하던 포대가 있던 곳이다. 1883년 인천항 개항과 더불어 조성되었고, 넓은 갯벌 위에 조성된 갯벌 포구이다. 수도권의 최대포구이자 유일하게 열리는 선상(船上) 파시(波市)로 유명했다. 어시장은 연안부두로 옮겨갔지만 2021년까지 옛 포구의 모습이 유지되었으나 갯벌로 유입되는 오수로 매립되어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북성포구의 인상적인 모습은 김장철에 생새우를 사러 온 인파가 북적이던 선상포구이다. 밀물이 들이차면서 포구에 어선이 정박하면 선상에서 파시가 열린다. 1970~80년대에는 100여 척의 어선이 모이는 번화한 포구였다. 인천 앞바다에서 갓 잡은 생새우, 새우, 주꾸미, 가자미 등이 배마다 가득했다.
  • 충남 >당진시

    당나라와 교류했던 큰 나루, 당진 한진포구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한진리에 있는 한나루(한진포구)는 세곡선과 인천을 경유하는 배가 정박했던 포구이다. 백제 때는 창(倉)과 관(館)이 있었는데, 이 곳은 당나라의 사신과 상인이 왕래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 후기 고지도인 《해동지도》와 《대동지지》에 대진(大津)이라 표기되어 있으며, 면천, 홍주 등지에서 한양으로 가던 큰 나루로, 1979년 삽교천 방조제 건립 이전까지 바다 맞은편의 경기도 평택시 포승면 만호리와 한진나루를 잇는 나룻배를 정기적으로 운행했다. 대진(大津),한나루,나루머리(津頭)이라 불렀다. 조기를 잡던 시절에는 100여 척의 어선이 드나들었다. 임진왜란 당시 아산만에 침입한 왜군을 물리치기 위해 바위가 스스로 신통력을 발휘해 장군의 형상으로 변했다는 영웅바위가 있다.
  • 경기 >김포시

    김포시의 유일한 포구인 대명포구, 대명항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명항(大明港)은 김포시의 유일한 지방어항이다. 봄철이면 삼식이, 주꾸미, 밴댕이, 여름철에는 농어, 광어, 우럭, 가을철이면 꽃게를 주로 어획한다. 대명포구는 강화도가 연륙되기 이전 바다 건너편의 강화도를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이고, 군사지역인 전방으로서의 면모를 갖춘 전함이 모여 있는 함상공원도 볼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2-2호인 ‘서해안 풍어제’ 굿패가 풍어제를 개최해 전통이 숨쉬는 곳으로 유명하다.

랜선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매년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정한 국가기념일입니다. 사는 환경이 서로 다르기에 서로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그 문화를 직접 방문하여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요. 그러나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해외여행을 선뜻 가기 어려워졌습니다. 삶의 활력소 중 하나가 준 것 같아 아쉬움도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쉽게 여행을 가지 못하는 여러분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랜선 세계여행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지역N문화에서 소개하는 각국의 여행지를 통해 잠시나마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랜선 여행을 떠나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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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고양시

    고양 (재)중남미문화원병설박물관, 발 딛는 순간 '여기는 중남미'
    중남미문화원은 30여 년 동안 중남미 국가의 외교관을 지낸 이복형, 홍갑표 부부가 해외 체류 시절 어렵게 구한 유물을 모으고, 퇴직금을 포함한 사비를 털어 마련한 문화 복합 공간이다. 중남미 여러 부족의 고대 유물에서부터 민속품, 근현대 중남미 예술가의 조각 등이 전시돼 있다. 중남미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중남미 전문 박물관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중남미문화원은 1994년에 비영리 문화재단으로 인가를 받고, 1994년 박물관을 시작으로 미술관(1997년), 조각 공원(2011년), 종교전시관과 연구소(2011년)를 차례로 설립했다.
  • 제주 >서귀포시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를 경험할 수 있는 제주아프리카미술박물관
    미디어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진짜 아프리카 문화를 보여주고자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있는 젠네 대사원을 모티브로 만든 이색적인 건물의 박물관이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자연환경, 예술문화를 전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디어 파사드, 영상을 통해 현대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이색적인 기념품으로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면 한 번쯤 들려볼만한 박물관이다.
  • 강원 >영월군

    폐교에 400여 점의 인도 미술품을 전시한 인도미술박물관
    카레와 요가로 익숙해졌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인도의 예술품과 문화에 매료되었던 우리나라 화가인 박여송 씨와 인도지역연구가 백좌흠 씨는 인도의 특색있고 매력적인 예술을 우리나라에 알리고 싶었다. 인도를 여행하고 생활하며 35년간 인도에서 모은 400여점의 수집품들과 영월의 작은 폐교 공간을 활용해서 2012년 인도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 하회세계탈박물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탈의 세상
    안동 하회세계탈박물관은 김동표 하회탈 전문 제작 장인이 세운 박물관이다. 박물관 옆에는 김동표 관장이 운영하는 하회동 탈방이 위치한다. 소장품은 김동표 관장이 국내는 물론 세계 전역을 다니며 수집한 다양한 탈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에는 한국의 탈을, 제2부터 5전시실까지는 각국의 독특한 탈을 볼수 있다. 하회탈은 조형적으로도 재미있고, 춤과 함께 쓰이는 까닭에 문화 예술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또한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고 사회를 풍자하는 면에서 정치적이기도 하다. 하회세계탈박물관을 방문하면 탈 하나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의미를 알고, 신명 나는 흥을 즐길 수 있다.
  • 경북 >경주시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멋짐 백만볼트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2017년 경주 보문단지에 세워진 자동차 전문 박물관이다. 모형이나 사진이 아닌, 실물 자동차를 전시하는 곳으로,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동차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의 소장품은 설립자인 구승회 회장의 개인 수집품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어렵게 구한[때로는 수리와 정비까지 거친] 자동차들로, 세계적인 명차를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 제주 >서귀포시

    놀라운 자연의 색을 보여주는 세계 조가비 박물관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가비(조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곳이 ‘세계 조가비 박물관’이다. 세계조가비 박물관은 40여년 간 수집한 1만5천여종의 조가비와 산호를 아름다운 받침대 위에 조화롭게 배치하여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전시되어 있는 조개의 다양한 색감들을 보며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클래식카와 세계에 한대 뿐인 피아노를 볼 수 있는 세계 자동차&피아노 박물관
    3만여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와 8천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피아노는 각각 기술과 예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놀라운 발명품들은 기술과 예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변화가 미래 세대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교육의 현장이 되는 박물관이 개인 소장품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로 제주도에 있는 ‘세계 자동차&피아노박물관’이다.
  • 제주 >서귀포시

    세계의 술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 술 박물관
    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몽신화에 처음 등장해 다양한 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술의 주된 재료가 곡식이다 보니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법적으로 술을 금지하는 금주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그 명맥이 끊어졌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의 필요성을 느끼며 민속주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민속주를 비롯해 프랑스 꼬냑, 러시아의 보드카, 독일의 맥주 등 세계 각국의 술을 모아놓은 세계 술박물관이 제주도에 있다.
  • 강원 >영월군

    이색적인 아프리카 문화를 체험하는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아직 미지의 세계이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정보가 ‘구호단체 홍보’라면 그 인식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아프리카 다양한 종족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고자 하는 곳이 강원도 영월에 있다.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아프리카 다양한 종족의 조각상과 가면,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2021년 6월부터 캠핑장을 운영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 대해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 충북 >충주시

    유네스코가 후원하는 국내 유일의 무술축제 '충주세계무술축제'
    충주세계무술축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택견을 중심으로 한 문화관광축제로, 유네스코의 후원을 받은 국내 유일의 행사이다. 2014년 말을 기준으로 짝수 해는 충주호수축제가, 홀수 해는 충주세계무술축제가 개최된다. 충주세계무술축제는 국제무예연무대회, 세계무술거리에서의 무술체험, e스포츠 무술대회 등 다양한 무술과 문화가 어우러진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