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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충남 공주] 랜선여행

지역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지역N문화]로 랜선여행 떠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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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공주시

    1955년부터 시작된 백제문화제
    백제문화제는 백제말 성충, 흥수, 계백 등 3충신에게 올리는 제향과 백마강 낙화암에 몸을 던진 삼천 궁녀의 넋을 위로하는 수륙재가 1955년 4월에 부여에서 거행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부여와 공주에서 번갈아가며 개최되고 있다. 1회 백제대제는 민간의 성금으로 진행되었는데, 망국의 한을 달래는 이색적인 제의에 전국 각처의 관람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2010년에는 세계대백제전을 열어 백제 문화와 국제교류의 진면목을 과시하기도 했다.
  • 전남 >목포시

    세발낙지를 탕탕!쳐서 육회에, 목포 낙지탕탕이
    산낙지를 산다. 도마에 올린다. 칼로 탕탕! 쳐내서 잘게 자른다. 토막 낸 낙지를,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해둔 육회와 함께 조물조물 버무린다. 그리고 편으로 썬 고추와 생강, 참깨 등의 고명을 얹어내면 완성. 이렇게나 간단한 조리법인데 없어서 못 먹는 음식이 있다. 이름하여 낙지탕탕이. 도마에 산낙지를 올려두고 탕탕! 쳐낸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름은 그 놀라운 조리법만큼이나 눈이 휘둥그레지는 맛이다.
  • 대전 >동구

    일제에 훼손된 송시열 문집을 다시 살려낸 송자대전목판
    대전광역시 동구 충청로에 위치한 우암사적공원에는 송자대전(宋子大全) 목판이 소장되어 있다. 송자대전은 본래 1787년에 간행되어 괴산 화양서원(華陽書院)에 보관 중이었다. 하지만 1907년 일제에 불태워 없어져 버린 후, 후손과 지역 유림의 합심 아래 1927년에 남간정사(南澗精舍)에서 다시 간행되었다. 송자대전 목판은 개인 문집 중에서는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목판으로 총 4,889장이 남아 있다.
  • 경북 >울진군

    저승으로 가는 관문인 경상북도 금강송면의 저승골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전곡리에 ‘저승골’이라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저승골’이라는 지명이 언제부터 불리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울진군과 봉화군이 만나는 지점에 있는 매우 험한 골짜기다. 옛날, 병석에 누워계시는 노모를 모시고 어렵게 살아가는 총각이 한 명 살았다. 어느 날, 어머니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총각은 너무 놀라서 이곳저곳을 찾아보았지만, 어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를 찾아 산속을 헤매다가 피곤함에 지쳐 잠시 잠이 들었을 때, 어머니가 나타나 아버지를 따라 어느 골짜기에 와 있다고 하였다. 꿈에서 깬 총각이 어머니가 있다는 골짜기를 가보니, 그곳에는 어머니의 싸늘한 시체만 남아 있었다.
  • 경북 >울진군

    뜰집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울진 매화리 윤광수 가옥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 있는 윤광수 가옥은 뜰집 구조의 전통가옥이다. 남수산을 등지고 건립된 뜰집은 안동문화권역에서 건축된 ㅁ자형의 지방형 가옥구조이다. ㅁ자형의 가옥구조는 중부지방에서도 흔히 찾아 볼 수 있는데, 몸채의 기본형이 ㅁ자형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면 사랑채가 좌우로 길어 앞쪽으로 면하고 있고, 큰 부엌을 상하 두 칸으로 두고,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쪽마루를 내고 난간을 설치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안동문화권에서 사대부가로 유행한 뜰집이 울진 사대부 가옥으로 채택되는 과정에 뜰집의 변화양상을 찾아볼 수 있다.
  • 전국

    막장의 관광지, 관광노보리
    정부 고위관리나 언론사 등 외부인이 찾아왔을 때 안내하는 탄광막장을 ‘관광노보리’라고 부른다. 관광노보리는 허리를 숙여야 다닐 수 있는 일반 작업장과 달리 기계화 채탄을 시작한 넓은 갱도의 작업장이었다. 광부들은 관광노보리를 가리켜 호텔 수준의 막장이라고 한다. 관광노보리라는 말 속에는 진실을 보지 않는 외부 감독에 대한 풍자도 담겨있다.
  • 경북 >울릉군

    자연의 제약을 극복한 울릉도 나리동 너와 투막집과 억새 투막집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 나리분지 내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서민가옥이다. 울릉도 개척령(1883년) 이후에 이주해온 정착민들이 지은 자연친화적인 가옥으로 지붕의 형태에 따라 너와 투막집과 억새 투막집으로 구분된다. 현재 남아 있는 너와 투막집은 1940년에 지었고, 억새 투막집은 1945년에 지었다. 투막집은 ‘투방집’으로도 불리는데, 통나무를 우물 정자로 올려 쌓아 벽을 만들고 흙으로 그 틈을 매운 집을 말한다. 바람이 심하기에 억새로 지붕을 올린 후 각목을 얹어 고정해두고, 지붕의 처마 끝 안쪽에 가는 기둥을 둘러 세우고 새나 싸리, 옥수수대를 길게 엮은 우데기를 돌리고, 문은 발처럼 말아 올린 꺼치렁문을 달았다. 벽과 우데기 사이의 공간인 축담은 살림살이를 보관하거나 겨울철에 작업하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정지바닥은 축담보다 낮게 하여 온기를 가두고, 방문은 크기를 최소화하여 추위의 접근을 차단하였다. 주변의 자연물을 활용해 자연환경을 견디기 위해 고안된 원초적이지만 실용적인 창작물이다.
  • 전국

    선산부만 사용하는 톱과 도끼 그리고 삽과 로커쇼벨
    톱·도끼·삽은 광부에게 가장 주요한 개인 작업 도구였다. 톱과 도끼는 선산부가, 삽은 후산부가 사용했다. 집에서부터 장비를 메고 출근했으니 들고 가는 도구만 봐도 선산부인지 후산부인지 구분할 수 있었다. 탄광에서는 ‘톱·도끼 받는 날’이란 것이 있는데, 선산부가 되는 날을 뜻한다. 삽을 대신하는 로커쇼벨이 등장하면서 작업능률이 크게 올랐다.
  • 충남 >공주시

    400년간 이어온 궁중 술의 제조 비법, 계룡백일주
    계룡 백일주는 본래 궁중에서 빚었던 술이었으나 조선 인조 때 제조법을 하사받은 연안 이씨 가문에서 전승되어 온 전통주이다. 백일주는 술이 완성되기까지 100일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미자, 황국, 솔잎, 진달래꽃 등이 첨가되어 맛과 향이 뛰어나 신선주라고도 불린다. 1989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 강원 >원주시

    한국광해관리공단
    한국광해관리공단은 광산관련 공기업으로서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하여 폐광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활동으로 지역사랑 실천 사회공헌 전략목표를 세웠다. 이를 통해 석탄광업자 및 근로자 자녀들에게 학자금을 지원하고, 탄광근로자 자녀 3명까지 학자금을 지급하고 있다. 그리고 업무상 재해를 입었거나, 장해등급이 확정된 근로자에게는 재해위로금을 지급하고 있다.

[충북 제천] 랜선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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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북 >제천시

    담배 연기는 시름을 싣고…, 제천 엽연초 생산조합 구 사옥
    충청북도 제천은 담배 경작에 적합한 농지가 많아 일찍부터 재배 농가가 증가했다. 제천 엽연초경작조합은 1918년 설립되었다. 조합의 사옥이 지어진 것은 1935년이다. 조합 사옥은 실용성 위주로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주 출입구 부분을 돌출시키고, 아치형 벽체를 세워 출입구의 중요성과 상징성을 강조했다. 제천은 해방 후에도 국내 최대 황색종 엽연초 생산지로 부상했다. 힘이 많이 들지만 환금성이 높은 황금작목으로 꼽히던 담배는 1980년대부터 쇠퇴했다. 제천 조합 구 사옥은 근대 담배 산업의 어제를 잘 보여주는 장소로 꼽힌다. 
  • 충북 >제천시

    철도도시 제천의 번성과 쇠퇴-대한통운 제천영업소
    대한통운의 전신인 조선 미곡창고 주식회사는 1941년 중앙선 철도의 개통과 동시에 제천역 앞에 건물을 짓고 제천지점을 설치했다. 화물자동차 영업은 철도 수송을 보조·보완하는 수단으로 중요했다. 대륙 침략의 목적으로 부설된 중앙선은 남한 동부지역의 지하자원을 채굴하여 운송하는 통로였다. 제천은 해방 후 철도도시로서 더욱 중요해졌다. 중앙선에 더해 태백선과 충북선이 놓이면서 무연탄, 시멘트, 비료를 수송하는 거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대한통운 제천지점은 고도성장의 산업화시기에 성장했다. 하지만 시멘트, 무연탄이 사양 산업이 되고, 도로 운송이 늘면서 철도도시 제천의 전성기는 지나갔다. 대한통운 제천지점은 제천영업소가 되었고, 택배 업무가 분리되면서, 전성기의 기능을 잃었다. 제천지점이 설치되던 1941년 화강석 쌓기로 지어진 제천영업소 건물은 제천의 전성기를 상기시키는 장소로 남아 있다.
  • 충북 >제천시

    조선시대 3대 약령시장, 제천약초시장
    제천시는 조선 시대 때부터 약령시(藥令市)가 개설되었다. 1930년대 말 약재 수입이 중단되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약령시장이 쇠퇴할 때 오히려 더 성장하였다. 1933년에 제천시 화산동으로 옮기고, 1990년 건물을 신축 개장하였다. 제천약초시장에서는 황기를 비롯해서 60여 가지의 약초가 판매된다. 2005년에 제천시가 ‘제천 약초 참살이 특구’로 선정되었고, 그 중심지 역할을 제천약초시장이 하고 있다.
  • 충북 >제천시

    예전의 영화가 그리운, 청풍 한벽루
    고려 때 지어진 청풍의 한벽루(寒碧樓).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의 고장에 ‘차고 맑은 물과 푸르는 산과 나무’가 보이는 누각이 서 있으니 바라보는 풍광이 오죽 좋았을까 싶다. 한벽루를 노래한 주옥같은 시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물빛은 너무 맑아 거울인가 거울이 아닌가”로 시작되는 고려의 주열(朱悅)의 시가 그렇고, “거울도 아니고 연기도 아닌데 온통 푸르게 칠해 있네”라고 화답한 퇴계 이황의 시가 그렇다. 하지만 충주댐 건설로 이사한 한벽루의 옛 풍광이 아쉽기만 하다.
  • 충북 >제천시

    벗들과 새 보금자리로 이사한, 청풍 응청각
    청풍 응청각(凝淸閣)은 청풍 관아의 부속 건물로 공무로 내려온 관인이 머물던 객사였다. 응청각이 원래 있던 자리는 제천시 청풍면 읍리였다. 읍리가 수몰되면서 응청각도 청풍 관아의 금병헌·한벽루·금남루 건물과 함께 현재의 자리로 사이좋게 이전되었다. 문루인 금남루에서 보면 동헌인 금병헌, 응청각, 한벽루가 나란히 서있다. 청풍명월의 고장답게 퇴계 이황과 같이 응청각에서 유숙하면 지은 시가 많이 있다.
  • 충북 >제천시

    새 보금자리에서 둥지를 튼, 청풍 금남루
    금남루(錦南樓)는 청풍도호부의 정문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금남루가 처음 지어진 것은 1825년이고, 원래 있었던 자리는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 읍리였다. 금남루는 1985년 청풍 관아의 한벽루·응청각·금병헌과 함께 청풍호를 내려다보는 청풍문화재단지로 이전되었다. 호수위의 작은 민속촌 청풍문화재단지는 제천시 10경 가운데 제5경이다.
  • 충북 >제천시

    오이의 향긋한 내음이 나는 바삭한 맛, 제천 빙어튀김
    빙어튀김은 빙어(氷魚)의 대표적 서식지 중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에서 잡아 올린 빙어를 깨끗이 손질하여 물기를 제거한 후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튀겨 낸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빙어는 조선시대부터 겨울철에 잡아 탕을 끓여 별미로 삼을 정도로 각광을 받던 민물고기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충청북도에서는 예로부터 발달한 저수지와 하천에 풍부하게 서식하는 빙어를 비롯한 모래무지ㆍ참마자ㆍ피라미 등 작은 민물고기를 잡아서 튀김으로 만들어 먹었다.
  • 충북 >제천시

    레트로 감성이 느껴지는 제천 의림지 파크랜드
    의림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3대 저수지 중 하나다. 의림지 둘레길에 있는 의림지 파크랜드는 1998년에 개장한 제천의 테마파크이다. 개장 당시와 별로 달라지지 않은 모습으로 지금도 영업하고 있다. 표를 팔찌처럼 착용하지 않고 명함크기의 표를 팔고 있으며, 바이킹과 스윙거, 토마스 기차, 회전목마 등 정겨운 놀이기구가 운행되고 있다.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으로 의림지 파크랜드를 방문하거나 복고풍 의상을 맞춰 입고 뉴트로를 즐기러 오는 관광객들이 있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쿨나이트'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한다.
  • 충북 >제천시

    충절(忠節)의 고장에서 맛보는 충청도식 막국수, 제천 토리면
    토리면은 메밀국수를 삶아 그릇에 담고 동치미국물을 부은 다음 도토리묵, 돼지고기 편육, 동치미무, 삶은 계란 등을 얹어낸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동치미 국물에 국수만 말면 ‘토면’이라 하고, 고명을 얹은 것을 토리면이라고 한다.
  • 충북 >제천시

    청풍명월의 고장에서 맛보는 향어회의 매콤한 맛, 제천 민물비빔회
    민물비빔회는 회를 친 향어 살에 깻잎ㆍ당근ㆍ미나리ㆍ상추ㆍ쑥갓ㆍ오이ㆍ풋고추 등 각종 야채를 넣고 초고추장 양념으로 골고루 버무린 충청북도 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민물비빔회는 1986년에 완공된 충주호에 가두리양식장과 같은 내수면어업을 위해 도입된 외래어종인 이스라엘잉어를 양식하게 된 이후 제천지역에서 만들어진 향토음식으로 청풍향어비빔회로도 불린다.

푸른 바다 통영 이야기

이순신, 한려수도, 충무김밥과 같이 흔히 통영하면 떠오르는 것 외에도 통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한 시인 김춘수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모르고 있었던 더 많은 통영 이야기 같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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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통영시

    동양 최초의 바다 밑 터널, 통영 해저터널
    통영반도 남단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통영 해저터널은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통영으로 이주해온 일본인 이주 어민들은 연안에서 어로 활동을 하며 물고기 떼를 쫓아 빠르게 이동할 필요가 있었는데, 미륵도와 통영 사이의 해협이 너무 좁아 미륵도를 빙 돌아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일제는 1932년 통영운하를 완공했다. 통영운하 개통 후 운하를 건너다니도록 하기 위해 교량 대신 만든 것이 해저터널이다. 터널을 만든 지역은 판데목이라는 곳인데, 임진왜란 한산대첩 때 많은 왜군이 이순신의 학익진에 대패해 판데목 부근에서 수장됐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조상의 유해 위로 건너다닐 수 없어서 해저터널을 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 경남 >통영시

    명나라 장수도 감동하고 따른 충무공 이순신의 통영 충렬사
    통영의 충렬사는 이순신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임진왜란의 영웅인 이순신에 대해서는 해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전장에서의 모습이 아닌 숨겨진 이야기들은 이순신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특히 명나라 도독 진린과의 일화는 이순신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대범하게 상황을 주도해가면서 신망을 얻었는지 잘 보여준다.
  • 경남 >통영시

    반일에 사라질 뻔한 근대 상수도시설 – 통영 문화동 배수시설
    통영시 문화동 배수시설은 1933년에 건립된 근대기의 대표적인 상수도 시설이다. 배수시설은 통영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야산은 조선시대의 유적지인 통제영 내의 사당이 있었던 곳이다. 옛 통제영은 독기(纛旗. 토박이발음 '뚝기')를 모시고 봄가을로 군영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뚝제를 지냈는데 뚝기는 군영의 원수를 상징하는 군기이며 이 뚝기를 모신 곳을 뚝사당이라 했다. 일제는 조선의 자존심이 어려 있는 이곳에 근대적인 수도공급시설을 설치함으로써 과거 한산대첩의 패배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배를 공고히 하려했다. 문화동 배수시설이 등록문화재로 검토되자 지역사회에서는 일제 유물이라는 이유로 찬반 논쟁이 거셌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산업사적 가치를 인정해 2005년 4월 15일 문화동 배수시설을 등록문화재 제150호로 지정했다.
  • 경남 >창녕군

    총알이 귀 옆으로 날아가는 듯하였다 (신용찬 수기)
    창녕군 남지읍 홍포동에 살던 신용찬은 13살이 되던 해 전쟁이 나,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많은 피란민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피난을 갔던 수용소에서는 배급이 적어 굶주려야 했다. 신용찬과 가족들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다시 거제도 장승포 수용소로 피난을 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 경남 >통영시

    “덜큰한 바다 꿀 생각에 통영 박신장을 가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발음이 억센 탓도 있지만, 굴이 바다의 꿀이기 때문이다. 통영에선 굴껍질을 산처럼 모아놓았다가 4~5월이 되면 나일론 줄에 꿰어 바다에 넣어 채묘를 한다. 이렇게 자연 채묘되어 성장한 굴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확하여, 박신장, 즉 굴껍질 까는 공장에서 껍질이 까져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박신(剝身)은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아주머니들이 새벽 4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12시간 동안 서서 일한다.
  • 경남 >통영시

    통영 사람들의 3.1운동과 저항-구 통영청년단 회관
    통영청년단은 1919년 3·1운동 직후 통영 청년들이 운동의 정신을 발전시켜 독립을 성취하자는 취지로 결성됐다. 애국계몽 운동과 문맹퇴치 운동 등에 힘쓴 통영청년단은 1920년부터 회관 건립을 추진했다. 부지를 희사 받고, 지역 유지들이 출연을 약속했지만, 일본의 방해로 공사는 중단되기 일쑤였다. 통영청년단은 ‘활동사진대’를 조직하여 전국을 돌며 영화를 상영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5대 단장(임철규)이 사재를 털고 거액을 대출받음으로써 회관 건물은 착공 3년 반 만인 1923년 완성되었다. 통영청년단은 1931년 강제 해산 당했고, 회관은 준공 승인을 내주지 않아 무허가 건물이 되었다. 일본의 관변 단체들이 사용하던 회관은 해방 후 임철규 씨가 통영읍에 기부했다. 해방 후 잠시 통영여자중학교가 사용하던 시절에는 유치환, 윤이상 등이 교사로서 이 건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1960년부터 충무고등공민학교가 통영 사람들의 저항 정신이 깃든 이 건물을 사용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 최근까지 통영문화원이 이 건물 1층을 사용했다.
  • 경남 >통영시

    근현대 통영의 나전칠기
    통영지역에서는 1907년 통영군립공업전습소가 설치되어 나전칠기의 기술적인 혁신과 인력 양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1925년 프랑스 세계장식미술박람회에서 통영 나전칠기가 은상과 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6년에는 경상남도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가 설립되어 우수한 장인들을 배출하였고, 이들은 1960-80년대 전국 각지에 나전칠기 자개장롱 열풍의 주역이 되었다.
  • 경남 >통영시

    남편의 시신을 안고 떠오른 해평열녀
    옛날 경상남도 통영 용화산 자락에 해평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시집 온지 몇 달 안 되는 새댁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같이 배를 타고 갔던 사람이 찾아와 남편이 심한 파도에 휩쓸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식을 전하였다. 부인은 놀라고 슬픈 마음에 남편이 빠졌다는 바다를 찾아가서는 자신도 물에 뛰어들었다. 사흘 뒤 부인이 남편을 끌어안은 채 두 시신이 바다로 떠올랐다. 깜짝 놀란 마을 사람들은 시신을 거두어 합장해주었다. 얼마 뒤 주변 산 나무의 나뭇잎들마다 벌레가 갉아먹은 흔적을 살펴보니 열녀라는 두 글자가 선명히 적혀있었다고 한다.
  • 경기 >안성시

    경기도 도당굿 도살풀이 예능보유자, 김숙자
    김숙자는 명창 집안에서 출생하여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 모태 예술인이다. 명창인 조부와 아버지의 음악성과 어머니의 무속적 몸짓으로부터 내려받은 천생의 예인이다. 경기도 도당굿 도살풀이의 예능보유자로 무속무용을 이끌어 온 무용인이다.
  • 경남 >통영시

    오방색으로 한국적 추상화를 개척한 바다의 화가, 전혁림(全赫林)
    한국의 서양화가다. 경상남도 통영에서 출생했고,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독특한 색채와 풍경을 이루는 작품으로 ‘색채의 마술사’ 또는 ‘바다의 화가’로 불렸던 전혁림은 한국적 색면추상의 선구자로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조형 의식을 토대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였다.

우리 지역의 이름은? -역사 인물 편

우리가 사는 지역의 이름에는 역사적 인물이 직접 지었다고 전해오는 곳이 있기도 하고, 또 그들과 연관된 사건 때문에 지명이 생긴 곳이 있기도 합니다. 어떤 지역에 어떤 인물들이 연관이 되어 있는지 함께 알아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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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 >강화군

    창왕과 영창대군이 죽은 강화 살창리마을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관청리에 살창리마을이 있다. 살창리(殺昌里)는 ‘살채이’라고도 발음하는데, '창왕이 살해당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고려가 멸망할 때 우왕의 아들 창왕이 왕으로 등극했다 폐위되어 이 마을로 와서 살해당했고, 조선 광해군 때 그의 이복동생 영창대군(永昌大君) 역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이 마을로 유배되어 뜨거운 방에서 살해되었다.
  • 경북 >청도군

    숙종이 이름 붙인 샛별 아랫마을, 청도 샛별장터
    경북 청도군 이서면에는 샛별장터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이름과 관련하여 세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숙종이 순시를 나왔다가 팔조령에서 머물렀다. 새벽녘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샛별 아랫마을이 있는 것을 보고 마을 이름을 ‘샛별’이라고 부르라고 명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또는 이서면의 지형이 소를 닮아, ‘쇠(소)별’에서 ‘새별’또는 ‘샛별’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마지막으로는 고려 말 두촌 박양무 선생이 이곳으로 내려와 새 벌판을 발견하고는 ‘새벌’이라고 칭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 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서울 >중구

    태종의 둘째 공주가 살았던 서울 소공동
    서울시 중구 소공동은 조선조 태종의 둘째 공주가 살던 곳이어서 소공동(小公洞)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처음에 ‘작은 공줏골’로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바꾸면서 소공동이 되었다. 선조 16년에 셋째아들 의안군의 집으로 마련해준 거처는 임진왜란 때 우끼다 히데이에오와 이여송의 거처로 사용되다 명나라 사진을 접대하는 남별궁이 되었다. 이곳은 고종황제 때 환구단이 되었다.
  • 대구 >남구

    왕건을 쫓아 견훤이 왔던 동네, 대구 안지랑이
    공산전투에서 견훤에게 패한 왕건이 안지렁이 골짜기의 안일암으로 몸을 숨겼다. 견훤이 쫓아와 잡으려고 하자 왕건은 안일암 뒤 큰 굴에 숨어 목숨을 건졌다. 지렁이의 후손인 견훤이 다녀간 곳이라고 해서 ‘왕지렁이’로 불리다 ‘안지랑이’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또는, 안지랑이 계곡의 물이 좋아 앉은뱅이도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고 해서 ‘안지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 강원 >강릉시

    온화함이 느껴지는 강릉 신복사지 참회공양상
    신복사지 석불좌상은 높은 보관을 착용하고, 다시 팔각형 보개(寶蓋)가 올려 있는 독특한 관을 착용한 보살상이다. 특히 탑 앞에 오른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가슴 앞에 세우고 있는 독특한 자세의 공양(供養) 보살좌상이다. 원통형 고관은 약간 뒤로 젖혀져 있는데, 중국 송나라 시기 제작된 보살상에 유행한 형식이다. 국내에서도 강릉 한송사지(寒松寺址) 출토 보살좌상,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앞에 세워진 보살좌상과 유사한 형식이다.
  • 경북 >고령군

    대가야의 궁녀들이 비녀를 풀고 간 고령 옥잠
    경북 고령군 대가야읍 신리의 자연마을 옥담(옥잠)은 신라와 대가야의 전투와 관련이 있다. 이사부가 대가야를 침략하자 대가야의 왕이 피난길에 올랐다가 이 마을에서 옥대를 풀어놓고 떠나 옥담이라 불렀다고 한다. 또 신라군을 피해 도망을 치던 대가야의 왕비와 궁녀들이 이 치욕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옥비녀를 풀어놓았다고 해서 옥잠이라고도 부른다. 혹은 마을 주변에 쌓은 방죽이 반지 모양이라 하여 옥담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 경기 >평택시

    을미왜변의 영웅 한온이 태어난 평택 금암리
    평택시 서탄면 금암리(金岩里)는 을묘왜변(乙卯倭變)에 순국한 한온(1511~1555)의 충절에서 생긴 지명이다. 한온(韓蘊)은 을미왜변에서 죽은 뒤 충의(忠毅) 시호를 받고, 충신정문(忠臣旌門)을 받는다. 이 충신정문 현판에는 “철장석선 일심순국(鐵腸石膳 一心殉國)”라 쓰여 있다. 곧, '창자는 쇠붙이와 같고 쓸개는 돌과 같아라. 한마음 나라에 바쳤도다.'라는 뜻인데, 쇠 철자에서 금(金)을 따고, 돌 석(石)자에서 바위 암(岩)을 유추해서 지금의 금암리가 되었다고 한다.
  • 인천 >서구

    의병장 조헌의 가족이 피난했던 인천 율도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 율도(栗島)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승병 영규 등과 함께 금산전투에서 전사한 후율(後栗) 조헌(趙憲, 1544~1592)의 호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조헌은 이율곡을 좋아해서 후율이란 호를 썼다고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알고 몸종을 시켜 율도에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해서 가족과 몸종의 처가를 피신시켰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 섬을 율도라 이름 지었다.
  • 경북 >구미시

    김성미가 단종을 생각하며 홀로 늙어간 구미시 오로동
    구미시 고아읍 오로리의 지명과 관련하여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자 김성미는 사위와 함께 오로마을에 들어와 ‘오로제’라는 호를 지은 뒤 단종을 그리워하며 살다 죽었다. 훗날 사람들이 그의 충절을 높이 사 ‘오로동’이라 이름하였다. 또 하나는 세종 때 심온이 역적으로 몰려 죽자, 그의 아들 심회가 강거민의 삼밭에 피신했다. 아들이 없던 강거민은 어린 심회를 양자로 거두었다. 훗날 심온이 복권하자 심회는 관직에 나아갈 수 있었다. 양부에게 벼슬하기를 권했으나 이곳에서 홀로 늙어가겠다며 거절했다. 그래서 오로동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일상 속 공원여행

실내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진 요즘, 먼 여행지를 그리워하기 보다, 우리 주변의 공원을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기고 답답함을 씻어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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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동대문구

    시비(詩碑)가 많은 용두근린공원
    동대문구청 앞에 있는 용두근린공원은 크진 않지만 야외 상설공연장을 갖추고 있으며 구민들의 휴식처이다. 공원 안에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는 꽃’, 박경리 시인의 ‘사마천’, 이상교 시인의 ‘빗방울의 발’, 하청호 시인의 ‘어머니의 등’ 시비(詩碑) 5개가 곳곳에 있어 아름다운 가을 산책에 낭만을 불어넣어 준다.
  • 경기 >고양시

    일산의 허브, 일산문화공원(구 미관광장)
    1996년, 2차 신도시 개발로 일산호수공원과 정발산역을 이어주던 거리를 제5호 미관광장으로 불렀는데, 2004년 일산 시민들의 공모를 받아 일산문화광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일산문화광장은 직사각형 모양으로, 광장에는 일산 신도시 건설기념탑, 평화의 소녀상, 고양 독립운동 기념탑 등의 조형물이 들어서 있으며, 호수 공원과 쇼핑몰이 인근에 있는 지리적 이점으로 유동인구가 많아 각종 지역축제 및 정기적인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다.
  • 경기 >고양시

    46년만에 찾은 평화, 행주산성 역사공원
    1970년대 초 무장공비를 막기 위해 설치했던 군 철책 중 가장 먼저 철거된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 행주산성 역사공원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를 토대로 재현된 행주마을의 옛 모습이 있고, 살구나무와 자생식물이 있는 생태광장이 있다. 과거 군 초소를 보수하여 만든 한강 전망대에서는, 적군의 침투를 감시하는 대신 한강의 철새들과 일몰, 야경의 아름다움을 평화롭게 감상할 수 있다. 인근에 있는 행주산성과 행주서원, 행주성당 등 역사적인 장소와 연계해 교육공원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 경기 >고양시

    주민 참여 도서관이 있는 마상근린공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위치한 마상근린공원은 보통의 근린공원이 그러하듯 각종 체육시설과 휴게시설, 간단한 운동기구들이 있는 산책로를 갖추고 있다. 다른 근린공원과 달리 특별한 점이 있다면, 배다리 누리길이 시작되는 곳이라는 점과 주민참여예산으로 건립된 최초의 공립 작은 도서관 ‘마상공원 작은 도서관’이 있다는 점이다. 야외무대와 작은 도서관에서 소박하지만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리기도 하는 마상공원은, 주민들이 언제든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충북 >청주시

    방죽에서 저수지를 거쳐 공원이 된 오창 호수공원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이 있다. 충북 청주시 오창읍 양청리도 이 단어가 딱 맞는 곳이다. 20여 년 전에는 논밭 사이에 있는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아파트촌에 둘러싸인 공원이 되어 있다. 오창호수공원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만든 방죽이었다가 저수지로 확장했고, 1990년대에 오창과학산업단지 조성으로 사라질뻔 했다가 도심의 호수공원으로 거듭났다. 현재는 둘레길과 포토존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작은 휴식터가 되고 있다.
  • 경기 >안성시

    과학관, 눈썰매장, 캠핑장, 공연장, 수변공원, 숲이 다 있는 안성맞춤랜드
    안성맞춤랜드는 2012년에 준공된 안성의 시민공원으로 안성맞춤 천문과학관, 박두진 문학관, 사계절 썰매장, 안성맞춤 공예문화센터, 안성맞춤 캠핑장, 남사당 공연장, 소원 대박 터널, 바우덕이 광장, 수변공원, 편백나무 숲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시민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안성을 대표하는 장소이다.
  • 강원 >철원군

    갈라진 길, 이어질 길 DMZ 평화의 길과 생태평화공원
    강원도 철원의 최북단 마을 생창리에 ‘DMZ생태평화공원’이 들어서 있다. 남방한계선 철책까지 이어지는 탐방로이다. ‘DMZ평화의 길’은 2018년 4·27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사안인데, 유엔사와 협의가 늦어지고 안전 문제가 있어 강원 고성 DMZ의 걷기 코스만 먼저 공개됐다. ‘DMZ평화의 길’ 출발지점은 고성의 통일전망대다. 철원 구간은 백마고지 전적지를 관통해 철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66년만에 처음으로 민간에게 공개되는 길이다.
  • 부산 >남구

    부산 재한 유엔 기념공원
    부산 재한 유엔기념공원은 유엔군 전몰장병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이들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다가  희생당하였다. 이 기념묘지는 1959년 대한민국과 유엔 간에 체결한 ‘재 한국 국제연합 기념묘지의 설치 및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국제연합 간의 협정’에 의거 6・25전쟁에서 전사한 유엔군 전몰 장병의 희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 서울 >강동구

    하늘과 바람과 별과 허브천문공원
    허브천문공원은 서울 강동구 둔촌동 산 94번지 일대에 2006년 9월 21일 개원한 공원이다. 허브원과 온실, 관천대, 전망대,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색의 정원․감촉의 정원․향기의 정원․차의 정원․맛의 정원으로 분류된, 120여 종의 허브가 식재되어 있는 허브원과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는 관천대, 공원바닥에 설치된 282개의 조명으로 연출한 별자리가 인상적이다.
  • 제주 >제주시

    ‘표해록’의 저자 장한철 산책로가 있는 한담공원
    감청색 에머랄드빛의 애월 한담공원과 해변산책로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길이다. 최근에는 해양문학의 백미인 『표해록』의 저자이자 한담마을에서 태어난 장한철을 기념하는 기적비와 산책로가 조성되었고, 그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는 사업이 진행중이다. 이러한 배경을 알게 되면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월 한담마을 주민들의 후대들을 향한 애정과 표해록에 담긴 도전정신이 잘 전해지길 바라며 걷게 된다.

한국의 서원

2019년 5월, 유네스코의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한국의 서원 9곳'에 대해 세계유산 등재를 권고하였습니다. 성리학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은 9개 서원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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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 강원 >삼척시

    “시원한 곰치국 재료? 푹 삭은 김치 한 국자”
    꼼치는 동해안을 비롯한 모든 해안에서 나는 어종이다. 동해안의 꼼치는 다른 지역과 모양이 조금 다르다. 서·남해안의 것은 메기와 비슷하여 물메기, 미거지라고 부른다. 동해안에서는 꼼치를 곰치, 물곰이라고 부른다. 곰치는 여름 내내 1,000m의 깊은 바다에 살다가 겨울이 되면 산란을 위해 수심이 얕은 바위틈으로 올라온다. 겨울 곰치는 흐물거리던 살도 단단해져 제 맛이 난다.
  •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 경북 >안동시

    이황의 도산서당을 모체로 한 도산서원
    명종이 즉위한 1545년 을사사화가 있었다. 사화에 연루되지 않았지만, 이듬해인 1546년 이황은 병을 구실로 모든 관직을 사퇴하고 낙향한다. 이때부터 호를 물러날 퇴, 시냇물 계, 퇴계(退溪)라 하고 고향에서 살았다. 토계 인근에 정자와 서당을 짓고 이곳에서 도덕과 예를 실천하고 가르치며 군자가 되는 길을 택한 것이다. 도산서원은 이런 이황의 가르침을 받았던 문인들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서원이었다.
  • 대구 >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 경남 >함양군

    함양의 유림이 뜻을 모아 세운 남계서원
    함양은 일두 정여창의 고향으로, 남계서원은 고을 사림들이 정여창을 흠모하여 세운 서원이다. 함양은 예로부터 선비의 고장이자 글과 예를 숭상하는 풍속이 있었다. 함양의 선비들은 남계서원을 정몽주를 배향하는 영천의 임고서원과 안향을 기리는 소수서원과 견줄 만큼 정여창에 대한 자부심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 독락당에 세워진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안강은 이언적의 고향이다. 이언적은 을사사화로 유배 간 강계에서 죽음을 맞았고, 19년이 지난 후에 마을의 사림들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 그가 거처하던 독락당 근처에 덕행과 학업을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16세기 말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과 소장 유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 경북 >영주시

    소백산 자락의 깊은 골에 자리한 소수서원
    소수서원이 사액을 받기 전에 주세붕이 붙인 이름은 ‘백운동서원’이었다. 백운동(白雲洞)은 ‘흰 구름에 쌓인 골짜기’라는 뜻으로 서원의 입지와 관련이 깊다. 서원에서 바라보면 멀리 소백산의 산자락 위로 흰 구름이 가득하고 옆으로는 소백산에서 내려온 죽계천이 연못을 이루다 밑으로 흘러갔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죽계별곡」은 이곳 죽계천을 노래한 고려가요이다. 구름에 감싸인 소백산과 그 밑으로 흐르는 죽계천의 경치를 보면서 주세붕은 주자가 세운 백록동서원을 떠올렸고 이곳에 서원을 세워야겠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골목따라 대구 근현대문화여행

대구 골목골목은 근현대의 건축물과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대구 중구에는 근대건축물이 남아있고, 오랫동안 대구 중심지 역할을 했던 향촌동에는 한국전쟁 이후에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문학과 예술을 논하던 건물과 낭만적인 이야기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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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중구

    부침 거듭한 화교의 역사, 대구화교협회
    대구화교협회는 대구시 중구 진골목에 있다. 화교가 대구에 이주한 것은 1905년부터인데 이들은 상업, 건축청부업, 주물업 등을 중심으로 경제활동을 펼쳤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은 원래 1929년 서병국이 건립한 붉은 벽돌조 2층 양식(洋式) 주택인데 1949년경 대구화교협회가 매입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대구화교협회 건물의 설계와 시공은 중국인 건축기술자 모문금이 맡았다. 이 건물을 지을 때 돌은 평양에서 구워오고 나무는 금강산에서 베어왔다는 증언이 전해진다. 대구화교협회는 얼마 남지 않은 1930년대 근대건축물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대구 >중구

    청라언덕과 대구 사과와 제중원-대구 동산병원 구관
    대구광역시 동산병원은 미국 북장로회 의료선교사 우드브릿지 존슨이 1899년 시작한 ‘미국약방’과 ‘제중원’에서 시작되었다. 서양 근대 의학의 힘으로 고질병이 낫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제중원을 찾는 환자도 점차 증가했다. 제중원은 1903년 무렵 동산으로 위치를 옮겼다. 선교사들은 병원과 선교사 사택을 짓고, 미국에서 들여온 사과나무 묘목을 조선 토종 능금과 접붙여 ‘대구 사과’를 탄생시켰다. 푸른 담쟁이덩굴이 우거진 언덕이라 하여 청라언덕이라 불리게 된 동산에서 제중원은 동산기독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대 원장인 플레처는 늘어나는 환자를 수용하기 위해 1930년대에 병원을 새로 지었다. 이 건물이 2002년 등록문화재 제15호로 지정된 대구 동산병원 구관이다. 동산병원은 일제 강점기 말에는 일본군 경찰병원으로, 한국전쟁 시기에는 국립 경찰병원 대구분원으로 쓰였으나, 다시 동산병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아 대구 의료계를 선도하는 병원의 역할을 감당했다.
  • 대구 >동구

    한국 근대철도의 달빛, 대구 구 반야월역사
    대구광역시에서 경상북도 영천과 경상북도 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반야월이라 불리는 지역이 있다. 반야월은 공식 지명이 아니지만 후삼국 시대부터 전해지는 전설로 유명한 지명이다. 1917년 대구~하양 간 협궤 선로가 놓이면서 기차가 반야월을 지나가게 되었다. 반야월역사는 1938년 협궤가 광궤로 확장 개통될 때 건립되었다. 대구선 반야월역은 반야월 주민들의 통근과 통학로인 동시에 화물을 수송하는 중요한 역이었다. 1960년 화물전용 홈이 개설되었고, 1971년부터는 안심 지역의 석탄저장소이자 수송 역이 되었다. 이등변삼각형 모양의 박공이 돋보이는 반야월역사는 일제강점기 후반 남부지방의 표준 역사로 꼽힌다. 대구선이 이설되면서 반야월역은 2008년 폐쇄되었으나, 2010년 인근 대구선 반야월 공원 내로 이전 복원되었다.
  • 대구 >중구

    약령시 개장행사를 축제로 승화시킨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는 전통한의약문화의 진수를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대표적인 한의약 축제이다. 약령시는 각종 약재를 교환․매매하는 시장으로, 대구약령시는 1658년(효종 9) 무렵에 형성되었다. 대구 약령시가 개시 될 때는 조선8도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각종 약재와 약재상이 모여들었다. 이러한 약령시 개장행사를 현대적인 축제 형식으로 승화시킨 것이 대구약령시 한방문화축제이다.
  • 대구 >중구

    공구가 만들어낸 색다른 거리, 북성로 공구거리
    대구 최대의 공구거리인 ‘북성로 공구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폐공구를 수집하던 주민 몇몇이 이곳에서 공구를 판매하며 시작되었다. 1950~60년대 철물과 기계를 취급하는 공구 상점들이 하나둘 모여 들더니 1970~80년대는 점포 수가 600여 개에 이르며 전국의 모든 공구가 이곳에 있다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쇠락했고, 수십 개의 공구 상가들이 남아 ‘북성로 공구거리’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 순종황제 어가길이 조성되면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는데, 특색 있는 카페, 갤러리, 독립서점 등이 들어섰다. 그 중에서도 북성로 공구박물관과 모루는 장인 작업장과 수많은 공구를 볼 수 있고, 직접 체험도 해볼 수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다.
  • 대구 >중구

    피란시절 예술인들이 모여든 향촌동, 대구 향촌문화관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은 오랜 시간동안 대구의 중심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경상감영의 화약고가 있던 곳이고, 한국전쟁 이후에는 예술인들이 많이 모이던 ‘문화예술인의 거리’이기도 하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피란민 중 문인들도 있었다. 김동리, 조지훈, 박목월 등이 향촌동의 다방 한 구석에서 시를 읊었고, 변훈, 하대응, 김동진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서 명곡이 탄생했다. 이중섭이 담뱃갑에 그렸던 은지화도 향촌동에서 그려졌다. 이런 향촌동의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향촌문화관에서 볼 수 있다. 향촌문화관은 1912년 대구 최초로 설립된 은행인 선남상업은행 건물에 들어서 있다.
  • 대구 >중구

    대구예술발전소 & 수창청춘맨숀
    대구연초제조창(KT&G) 을 리모델링한 대구예술발전소와 이 연초제조장 직원의 관사였던 아파트가 수창청춘맨숀이다. 두 건물은 나란히 옆에 붙어있다. 대구예술발전소는 1949년에 짓고 1976년에 증축한 별관의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2013년에 문을 열었다. 수창청춘맨숀은 1976년부터 관사로 쓰이다가 1996년 연초제조장이 문을 닫으면서 20년 남짓 방치되어 있다가 2016년에 리모델링하여 문을 열었다. 전시장, 공연장, 독서당 등 다양한 공간이 들어서 있고, 변지현 작가의 ‘문플라워(Moon Flower)’ 벽화는 큰 보름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 대구 >중구

    대구 약전골목의 미도다방
    대구 진골목의 명소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美都)’ 속의 다방(美都)이라는 뜻이다. ‘정 여사’로 불리는 정인숙 대표가 지인의 다방을 넘겨받아 1982년부터 30년이 넘도록 운영 중이고, 두 번의 이사 후 지금의 위치인 진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것은 2013년이었다. 미도다방은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대통령부터 정치인과 유림, 문인, 화가들이 다녀가는 명소였고, 지금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이 많다. 커피값 2500원, 대구 약령시의 좋은 약재로 직접 달인 약차와 쌍화차도 3~4천원에 마실 수 있다.
  • 대구 >중구

    교육의 질, 교사의 질 – 구 대구사범학교 본관과 강당
    일제강점기 대구사범학교는 경성사범학교, 평양사범학교와 더불어 조선 3대 사범학교로 꼽혔다. 학비와 기숙사비 무료에 용돈까지 지급했기에 전국의 인재가 몰렸다. 1921년 설립된 대구사범학교는 1923년 본관, 1925년 강당을 건축했다. 조선총독부는 대구사범학교가 황국신민화 교육을 담당할 교사를 양성하도록 통제하였으나, 대구사범학교는 항일정신이 투철한 교사와 학생을 중심으로 독서회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극심한 탄압의 시기인 1941년 ‘다혁회’ 사건 때 35명이 구속되어, 5명이 옥중에서 숨졌고, 12명은 고문 후유증으로 출옥 후 세상을 떠났다.
  • 대구 >동구

    밤은 깊어도 단아한 모습으로, 대구 효목동 조양회관
    대구광역시 동구 효목동 망우공원 내에 있는 조양회관은 원래 1922년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 앞에 지어졌던 건축물이다. 애국지사 서상일이 청년들의 민족의식 배양 공간으로 구상한 조양회관은 기획에서 설계, 준공까지 한국인의 손으로 완성되었다. 서상일은 부지를 쾌척했을 뿐만 아니라 건축비 부담까지 가산을 들여 떠안았다. 단아하게 지어진 조양회관은 총독부에 징발되어 한때 병영으로 쓰이는 수모까지 겪으면서도, 기품을 잃지 않은 건축물로 손꼽힌다.

먹거리, 이야깃거리 가득한 부산 재래시장

부산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동래시장부터 영화의 배경이 되기도 한 국제시장까지, 부산 시장에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쳐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가 되기까지 우리 역사와 서민들의 삶의 애환 등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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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중구

    일본과의 개시무역을 담당한 동래상인
    조선시대 동래는 일본과의 관계로 경제적으로 중시되었던 곳이다. 1407년에 왜인의 왕래를 허락하고 동래의 부산포에 왜관이 설치되었다. 동래상인은 동래왜관과 왜관 주변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좁은 의미의 동래상인은 개시무역에 참여하는 상인만을 가리키기도 한다. 동래상인들 가운데 ‘도중’은 왜관을 드나들면서 무역을 하기도 하였다.
  • 부산 >동래구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동래시장
    동래시장은 부산에서 개설된 시장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이다. 조선시대 때 매월 2일과 7일에 열렸던 동래읍장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일제강점기 상설시장이 되었다. 당시만 해도 상설시장과 오일장이 함께 열렸지만, 현재는 상설시장만 운영되고 있다. 주로 농수산물 비롯하여 생활용품, 포목, 의류,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 부산 >중구

    귀환한 동포들이 만든 부산 국제시장
    '부산국제시장'은 부산특별시 중구 신창동 4가 일대에 상설시장으로 부산을 대표하는 3대 시장 중 한 곳이다. 해방 이후 귀환한 동포들에 의해서 형성되었으며, 당시 ‘도떼기시장’이라 불리다가 1950년 '국제시장'이란 명칭으로 바뀌었다. 부산국제시장은 6개의 공구거리로 조성되어 있으며, 주로 가전제품, 의류, 직물, 신발, 가방, 일용잡화, 문구 등 다양한 종류의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다.
  • 부산 >북구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허기를 달래준 구포국수
    밀국수는 돌잔치나 혼인, 회갑 등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이었다. 밀국수가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올라오게 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외국 원조구호물자와 함께 대량의 밀가루가 반입되면서다. 부산 구포동에서 국수가 본격적으로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6·25 전쟁으로 피난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구포동으로 모여든 피난민들은 싸고 맛있는 구포국수로 허기를 채웠다. 구포국수는 구포시장을 방문한 이들이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으로 유명해졌다. 
  • 부산 >동래구

    달착지근한 쪽파와 해산물을 찹쌀 반죽으로 지져야 동래파전
    흔히 파전이라 하면 바삭하게 기름에 구워진 밀가루 파전을 생각하지만 부산 동래파전은 쪽파가 주인공이다. 유채씨기름 위에 쪽파를 가지런히 눕히고 찹쌀반죽을 뿌린 뒤 굴, 새우, 대합을 얹고 계란을 하나 툭 깨어 올린 후 뚜껑을 덮어 굽는다. 동래시장 난전에서 팔던 동래파전은 어느새 지역 특산 음식이 되었다. 
  • 부산 >남구

    밀면과 냉면은 목젖을 치는 그 맛이죠
    부산의 내호냉면은 2019년이면 백 년을 맞는다. 남한 함흥냉면의 역사를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25 당시 흥남시 내호면에서 부산까지 피난 와서 낸 가게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함흥냉면은 감자나 고구마 녹말로 면을 만들어서 가자미회와 양념 등을 올려 비벼 먹는 냉면이다. 식량이 부족한 겨울철에 먹던 음식이었다. 6·25 전쟁 이후 피난민들에 의해 남한에도 알려지게 되는데 냉면국수의 주요 재료인 감자녹말은 고구마 녹말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미군의 구호품이었던 밀가루 보급으로 고구마 녹말과 밀가루를 섞어 면을 만들면서 밀면이 탄생했다. 
  • 부산 >중구

    피난시절 부산 부평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던 비빔당면
    비빔당면은 삶은 당면에 비빔장과 고명을 얹어 비벼먹는 부산광역시 중구의 향토 음식이다. 한국전쟁이라는 시간과 부평시장이라는 공간이 어우러진 부산의 현대사가 만들어낸 음식으로 피난 시절 상인들의 허기를 달래는 음식이었다가 부평시장의 명물이 되었다. 즉석에서 바로 먹을 수 있는 향토 음식으로서 부산의 역사가 낳은 패스트푸드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 경북 >청도군

    400년 내시 가계를 이어온 청도 운림고택
    청도 운림 고택은 조선후기 궁중 내시였던 김일준(金馹俊, 1863∼1945)이 낙향하여 지은 가옥이다. 김일준은 내시로 정3품 통정대부에 올랐던 사람이다. 청도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내시 가계(內侍 家系)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던 곳이었다. 운림 고택은 1988년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고, 2005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되었다.
  • 부산 >중구

    부산을 대표하는 부산 자갈치시장
    부산 자갈치시장은 부산 국제시장, 부평 깡통시장과 더불어 부산을 대표하는 3대 시장 중 한 곳으로 남포동 4가 일대에 조성된 수산물시장이다. 각종 어패류와 활어류를 비롯하여 건어물류 등의 판매하며, 시장에는 싱싱한 횟감을 맛 볼 수 있는 횟집들도 조성되어 있다.
  • 부산 >북구

    조선중기에 개설된 구포장의 명맥을 잇는 구포시장
    '구포시장'은 조선시대에 개설되었던 '구포장'의 명맥을 잇는 전통시장이다. 일제강점기에 상설시장이 되었으며, 현재까지 상설시장과 오일장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상설시장에는 농산물, 수산물, 약재, 야채와 과일, 가축, 먹을거리를 파는 거리가 나뉘어 있고, 장날이면 500여 개의 노점들이 조성되고 있다.

경주 역사문화이야기

신라시대 유적뿐 아니라 조선시대 고택과 누정 등 많은 역사문화유산 있는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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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경주시

    까치로 변해 신라군을 염탐하던 계선공주가 죽은 경주 작원
    작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건천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신라 무열왕 때, 김유신이 5만 군사를 끌고 백제를 치러 떠났다. 날이 저물어 한 성에서 진을 치고 있는데, 난데없는 까치 한 마리가 나타나 진영 한가운데서 빙빙 돌더니 대장기 위에 앉았다. 김유신이 천둥같이 소리를 지르자 까치가 땅으로 떨어져 백제 계선 공주로 변하였다. 정체가 탄로 난 계선 공주는 자살을 했고, 이후 이 성을 까치 작자를 써 ‘작성’, 이 마을을 ‘작원’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 경북 >경주시

    반달을 닮은 경주 월성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성의 동·서·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길이는 동서 890m, 남북 260m 정도이며 둘레는 2,340m 정도이다.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있다.
  • 경북 >경주시

    선덕여왕에 칼을 겨눈 비담의 난이 일어난 경주 명활성
    명활산성은 북쪽 봉우리 해발 252m의 흰둥산과 남쪽 봉우리 해발 269m의 장군봉 등 2개의 산정을 감싸고 있는 석축산성이다. 길이는 4.5km에 달하는 대규모 산성이며 551년(진흥왕 12)에 축성되었다. 이 산성은 천연의 요새로 수도방어의 중요한 역할 뿐만 아니라 왕이 일정기간 거처했으며 비담이 반란을 일으켜 그 근거지가 되었던 산성이다.
  • 경북 >경주시

    자연을 정원 삼아 홀로 즐기는, 경주 독락당 계정
    독락당 계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시대 동방사현이라 불린 성리학자 이언적이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고자 1533년(중종 28)에 지은 정자이다. 자계천이라는 시냇가의 암반 위에 지어진 계정은 ‘홀로 즐긴다.’는 의미의 독락당의 별채로서 자연을 정원 삼아 지어진 정자이다.
  • 경북 >경주시

    근대기의 의료기관이자 학교인, 경주 수봉정
    수봉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신계입실길 87(괘릉리)에 있는 근대기의 정자이다. 경상북도기념물 제102호이다. 경주의 만석부자 이규인(李圭寅:1859∼1936)이 1924년에 빈민의 구제와 구료 및 교육사업을 위한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자신의 집 한쪽에 건립하였다. 건립 당시에는 2층이었으나, 1953년에 단층으로 개조되었다. 수봉정이라는 정자명은 이규인의 호인 수봉을 따라 붙인 것이다.
  • 경북 >경주시

    월성손씨의 강학처, 경주 양동마을 안락정
    안락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92-19(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2호이다. 월성손씨 문중의 서당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같은 마을에 있는 여강이씨의 서당인 강학당과 쌍벽을 이룬다. 1776년(영조 52)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안락정이라는 정자명은 ‘분수를 편히 하고 소신한 바를 즐기는 것이 의이다[安吾分樂吾志之義也].’라는 의미이다.
  • 강원 >횡성군

    화살과 경주한 명마 무덤 마산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 ‘마산(馬山)’이라는 곳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횡성군에 살던 황장군이 용마(龍馬) 한필을 길렀다. 용마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황장군은 용마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황장군이 말 등에 올라탄 후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용마와 함께 달렸다. 황장군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용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화살 한 개가 날아와 땅에 꽂혔다.
  • 경북 >경주시

    이언괄의 효심을 칭송하는,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심수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8-5(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1호이다.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1491~1553)의 아우 이언괄(1494~1553)을 추모하여 1560년(명종 15)경에 여강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철종 때의 화재 이후 1917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여강이씨 파종가인 향단의 부속 정자라고도 한다. 심수정이라는 정자명은 ‘고요함이란 자는 마음 가운데 있는 물에서 나온다[靜之字 心中之水].”라는 글에서 유래하며,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고요함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힌다.
  • 경북 >경주시

    임진왜란의 애환이 서려 있는,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수운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45-20(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0호이다.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이 벼슬의 뜻을 접고 학문 연구를 위하여 1582년(선조 15)에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집경전에 보관되어 있던 태조의 어영을 잠시 보관하기도 한 곳이었다. 수운정의 정자의 의미는 ‘동도(東都)의 산수가 맑고 운연(雲煙)이 허공에 떠 있다[水淸而雲虛]’라는 의미이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부잣집, 경주 이향정
    이향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2-1(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79호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이범중(1708~?)이 살던 집으로, 그의 호 이향정을 따서 집의 이름을 붙였다. 그의 맏아들 이헌유(1733~?)가 살면서 집의 규모를 더욱 넓혔다고 한다. 이들이 살았던 1700년대 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구성은 사랑채, 안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사랑채가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수, 더 깊게 보기

전라남도 여수의 역사문화, 생활문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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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여수시

    마음 맞잡은 청년들, 여수 구 청년회관
    여수 구 청년회관은 1931년 여수청년회가 주동하여 건립되었다. 여수 지역은 1920년대 초부터 3.1운동에 관계되어 낙향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이 여러 단체를 조직하여 계몽 활동과 민족의식 고취 운동을 진행하고 있었다. 여수 구 청년회관은 전라좌수영 좌청의 연못(덕지)이 있던 자리에 2층으로 건립됐다. 1층은 서양식, 2층은 한식 팔작지붕인 여수 구 청년회관은 건립 이래 여수의 교육·문화 공간으로 계속 활용되고 있다. 회관의 2층은 철거된 전라좌수영 좌청의 자재를 그대로 살려 지었다.
  • 경남 >함안군

    자유수호 전승의 터 기념탑
    낙동강 전선은 조국수호의 최후 방어선이었다. 그래서 낙동강 전선에 인접한 지역은 유엔군과 북한군 모두 물러설 수 없는 혈전의 장이 되어야 했다. 유엔군과 애국청년단, 경찰 등 함안의 민・관・군은 1950년 9월 1일까지 북한군의 공격 수십 차례에 맞서 사투로 이 지역을 방어함으로써 낙동강 전선 반격작전의 디딤돌이 되었다.
  • 전남 >여수시

    여수시 광무동 달동네
    여수시 광무동 달동네로 불리던 지역은 6·25전쟁 1·4후퇴 당시 여수로 몰려든 피난민들이 정착하여 마을을 이룬 피난민촌이었다. 휴전 이후 60여년이 지난 이곳은 여수의 대표적 주거환경이 취약한 구도심 낙후 지역이 되었다. 이러한 광무동 611-2번지 일원에 도시재생 사업이 추진되었고 2018년 사업완료가 되면 원도심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된다.
  • 강원 >정선군

    부모가 없는 고아의 피난살이
    신원교는 1926년 정선 덕송리에서 출생하고 어린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혼자 산속에 피란생활을 했지만 먹을 것을 챙겨다주는 가족이 없어 굶으며 생활해야 했다. 방위군으로 끌려가서 부산까지 걸어갔다. 방위군은 군복도 군번은 물론 그 어떤 혜택도 없었다. 관리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었다. 다행히 그는 살아 돌아왔다. 전쟁 중 인민군은 민간인의 식량을 가져갔고, 아군은 그들보다 더한 횡포를 일삼았으며, 민간인들은 빨갱이로 몰릴까봐 두려워했다.
  • 전남 >여수시

    지친 노동의 시간을 잠시 잊게 해주는 현천 소동패놀이
    현천 소동패놀이는 청소년 두레 조직인 소동패들이 힘든 농사일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고 작업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벌인다. 소동패는 여느 두레패와 달리 전문 예인 집단인 남사당패의 영향 아래 생겨나, 풀베기와 품앗이 등 두레의 기능을 흡수한 조직으로, 엄격한 규율 아래 운영됐다.
  • 전남 >여수시

    오동도의 오동나무를 베어버린 신돈
    전라남도 여수시 수정동에는 오동도가 있다. 본래 오동도는 오동나무가 많고, 섬의 모양도 오동잎처럼 생겼다고 하여 ‘오동도’라 불렸지만, 지금은 섬 어디에서도 오동나무를 찾아볼 수 없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말기 ‘요승(妖僧)’으로 불렸던 신돈이 오동도에 봉황이 날아드는 것을 막기 위해 오동나무를 모두 베어버렸기 때문에 오동도에 오동나무가 없어졌다고 한다.
  • 전남 >여수시

    거문도 주민들의 수호신 고도리 영감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도에는 고도리 영감에 관한 두 편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고도리 영감은 거문도 풍어제에 모시는 신체이다. 한 설화에서는 물고기가 잡히지 않아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자 바다에 큰 바위 하나가 떠올라 그 바위를 고두리 영감이라 불렀다 하고, 또 한 설화에는 바닷가에 쓰러져 있던 청년을 데려와 돌봤더니 그 청년이 왜구의 배를 물리쳤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풍어제 때 모시는 신체인 고도리 영감에 관한 비범성을 드러낸 이야기이다.
  • 전남 >여수시

    전라좌수영에서 벌이는 여수거북선축제
    여수거북선축제는 1967년 여수진남제에서 시작된 전통있는 축제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사령부 건물이었던 진해루 터에 지은 건물이다. '남쪽을 진압하라' 즉, 왜군을 진압하라는 의미를 붙여 진남관이라 불렀다. 여수거북선축제에서는 전야제로 영당 고유제가 열리고, 가장행렬, 선박 해상 햇불놀이, 불꽃놀이, 축등행렬을 진행하며 소년 이순신도 뽑는다. 그중 통제영길놀이는 인기가 많다.
  • 전남 >여수시

    서대가 엎드려 있던 개펄도 맛있다, 여수 서대회
    서대회는 서대라는 생선의 회를 야채와 함께 매콤한 양념에 무쳐 낸 전라남도 여수시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서대기' 또는 '박대'라고도 부르는데, 여수지역에는 "서대가 엎드려 있는 개펄도 맛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맛있는 생선으로 통한다.
  • 전남 >여수시

    한센인들의 한숨과 눈물, 손양원의 사랑 - 여수 구 애양원교회와 애양병원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애양원은 1911년 문을 연 광주 나병원이 뿌리다. 한센병 환자가 몰리자, 광주 나병원의 원장 윌슨 선교사는 신풍리로 근거지를 옮기기로 했다.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 때문에 600여 환우는 ‘눈물의 이주’를 해야 했다. 여수에 지어진 애양병원과 애양원교회는 비록 격리정책에 따른 수용시설이지만, 한센인들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공동체의 구심점이 되었다. 특히 애양원교회 2대 목사로 부임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는 헌신적으로 사랑의 봉사를 실천했다. 한센병 환자는 줄어들고, 한센병은 퇴치되었으나, 한센인의 고통과 한센인을 정성으로 돌보았던 손길들을 되돌아 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 구 애양병원(현 애양 역사박물관)과 애양원교회는 중요한 공간이다.

경기도 연천의 역사문화이야기

북녘땅과 가까운 경기도 연천에는 석기시대 유적지, 고구려 성곽, 일제강점기와 6.25전쟁과 관련된 역사 유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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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 >연천군

    수레와 철마가 멈춘 연천 차탄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車灘里)는 수레여울이라는 뜻을 가진 지명이다. 옛날 고을 원이 수레를 타고 민정을 살피다가 여울에 빠져 죽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는 망곡산(望哭山)이 있어 고종과 순종황제의 죽음을 애통해했고, 철도중단지점이 있어 애타게 북녘을 향해 기차는 달리고 싶어 하는 곳이다.
  • 경기 >연천군

    삼각형 모양의 연천 호로고루
    북동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에 접한 현무암 천연절벽의 수직단애 위에 있는 삼각형의 강안평지성(江岸平地城)이다. 성벽의 전체둘레는 성의 가장자리를 따라 재었을 때 약 400여m이고, 그중 남벽은 161.9m, 북벽은 146m이며, 동벽은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이 93m이고 성 내부는 전체적으로 해발 22m, 성벽 최정상부는 30m 정도이다.
  • 경기 >연천군

    고구려 축성술이 사용된 연천 당포성
    나루로 흘러 들어오는 당개 샛강과 임진강 본류 사이에 형성된 약 13m높이의 삼각형 절벽 위 대지의 동쪽 입구를 가로막아 쌓은 성곽이다. 연천군의 임진강·한탄강 북안에서만 발견되는 강안 평지성(江岸平地城)으로 서쪽 끝에서 동벽까지의 길이가 200m이며, 동벽의 길이는 50m, 전체둘레는 약 450m정도이다. 고구려를 중심으로 한 삼국시대 성으로 추측된다.
  • 경기 >연천군

    줄 잘 타는 재인이 줄이 끊어져 죽은 연천 재인폭포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古文里)와 재인폭포(才人瀑布)에는 줄을 잘 타는 재인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전한다. 하나는 재인의 아내가 자신을 탐내는 사또의 코를 깨물어 코문리라 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고문리로 변했다는 이야기이고, 또 하나는 반대로 예쁜 아내를 둔 마을 사람이 재인과 내기를 했다가 마음이 다급해져 줄을 끊은 이야기이다.
  • 경기 >연천군

    2개의 급수탑이 있는 연천역
    연천역은 38선 북쪽에 있어 6·25 전쟁 전에는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연천역의 화물 홈은 오래 전에 북한이 전쟁을 대비해 만든 장소였다고 한다. 현재 연천역은 동두천역에서 지하철 1호선 연장공사가 진행 중이라 닫혀 있다. 이곳에 급수탑이 2개 남아있다. 과거 경인선을 달리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등록문화제 제 45호로 지정된 귀중한 철도 문화재이다. 이 급수탑들 중 한 곳에는 벽돌 위로 깊게 파인 탄환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6·25 전쟁 당시의 참상을 보여주고 있다.
  •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열리는 역사문화체험축제 '연천 구석기 축제'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은 우리나라에서 30만 년 전에 구석기 사람들이 살았다는 증거인 주먹도끼가 발견된 세계적인 유적지이다. 연천 구석기 축제는 석기제작, 원시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관람객이 직접 손으로 만져보는 체험행사를 지향한다. 매년 조금씩 프로그램이 달라지는데, ‘구석기 공연마당, 장터마당, 구석기 가족마당, 체험 프로그램, 전시 및 관람 프로그램’ 등으로 진행된다.
  • 경기 >연천군

    이역만리에서 한 줌 재가 되어,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
    연천 유엔군 화장장 시설은 한국전쟁 당시 서부전선 전투가 치열했던 1951~1952년 사이에 지어졌다. 긴박한 상황이라 유해 송환이 어려웠던 사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유엔군 화장장은 영국군이 관리했다. 영국은 한국전쟁에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다. 영국은 영연방국가들의 참전군으로 1개 사단을 편성하기도 했다. 16개 유엔 참전국 가운데 전사자가 없었던 나라는 없다. 연천 유엔 화장장 시설은 현재 굴뚝과 일부 벽체 등이 남아 있다.
  • 경기 >연천군

    땔감을 얻으러 아미산에 올라 부르던 노래, 연천 아미산 울어리
    아미산울어리는 음력 8-9월에 겨울살이를 위해서 아미산에 올라가 땔감을 준비하기 위해 부르는 일노래 형태이다. 풋나무를 베면서 여러 놀이를 첨가해서 구성한 민요와 놀이의 결합 형태이다.
  • 경기 >연천군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 장승제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 궁평리에서는 1994년부터 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당시의 노인회장이 장승을 구입해 마을 입구인 장승고개에 세우고 축문을 지어 제사를 지내면서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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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 강원 >강릉시

    강릉선교장의 별서, 강릉 방해정
    방해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449(저동 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0호이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고찰 인월사(印月寺) 터였는데, 1859년(철종 10)에 강릉선교장의 주인인 이봉구(李鳳九)가 선교장의 객사 건물을 뜯어다 지금의 자리에 별서 건물로 지었다. 경포대 가는 길가에 있으며,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가옥형 정자이다.
  • 강원 >강릉시

    고상하고 단아한 명가의 사랑채, 강릉 활래정
    활래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운정길 63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후기 전형적인 상류 주택인 선교장에 부속된 정자이다. 1816년(순조 16)에 이후가 지었다. 온돌방과 마루가 같이 있는 정자로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활래정이라는 정자명은 ‘맑은 물은 근원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이 만발한 연못 위에 위치한 활래정은 고아하고 단아한 기품을 풍기는 정자이다.
  • 강원 >강릉시

    우암 송시열의 쌍둥이 편액, 강릉 해운정
    강릉 해운정(海雲亭)은 1531년(중종 26) 어촌 심언광(沈彦光)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 지은 별당이다. 강릉에서 멀지 않은 동해에도 심언광과 관련되는 누정이 또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해암정은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1361년 창건한 후, 1531년 심언광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에 중건하였다. 심언광은 심동로의 7대손이다. 강릉의 해운정과 동해의 해암정 편액 모두가 우암 송시열의 글씨여서 이채롭다. 해운정은 강릉에서 오죽헌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 강원 >강릉시

    강원도 주문진 성황당에서 모시는 정우복신
    강원도 강릉에 모셔진 정우복 신은 현감시절 지역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주어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지역의 학문을 장려한 덕분에 주민들은 그의 사후에 마을신으로 모셔 제의를 지내고 있다. 문진의 마을신은 정우복의 본명은 경세(經世)이며 본관은 진주이다. 1613년 강릉부사로 와서 학문장려와 선정을 베푼 명신으로 인해 후인들이 흥학비(興學碑)를 향교에 세우기도 하였다. 『임영지』에는 “우복사(愚伏祠)는 강릉 북쪽 퇴곡리에 있었는데 곧 도동사(道東祠)라 하였다. 우복 정선생은 광해군 계축년(1613)에 본 강릉부 부사로 재임할 때에 학문을 장려하고 정사를 조화롭게 돌보며 보살폈다”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 강원 >강릉시

    고대 예국의 창해역사
    강원도 강릉시 일대에 고대 부족국가인 ‘예국(濊國)’이 있었다. 옛날 예국에서 한 할머니가 빨래를 하다가 박같이 생긴 큰 알 한 개를 가져왔다. 알을 방안에 두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알에서 남자 아이 한 명이 나왔다. 얼굴빛이 검다고 해서 검을 여(黎)를 성씨로 하고. 이름을 용사(勇士)라 하였다. 여용사는 힘이 장사라 사나운 호랑이를 맨손으로 잡기도 하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들지 못하는 종을 들어 옮기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중국의 장량이 진시황을 시해하려 여용사를 데리고 간다. 그러나 여용사는 진시황 시해에 실패해 모래밭을 뚫고 삼십리를 달아나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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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른 바다를 보며 갓 볶은 커피를 음미하는 '강릉커피축제'
    강릉은 우리나라 커피 문화 1번지다. 강릉 대부분의 커피집이 로스팅을 하며, 1세대 바리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다. 강릉커피축제는 2009년에 시작되었으며 매년 10월 강릉시 전역에서 개최된다.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갓 볶은 고급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감성 문화 축제로, 커피집을 다니며 스탬프 랠리를 하고, 100인의 바리스타들이 제각각 다른 맛의 커피를 내려준다.
  • 강원 >강릉시

    언덕이 많아 강릉 다섯 데기
    강릉시 왕산면 대기리에는 다섯 데기의 지명이 있다. ‘데기’는 언덕을 말한다. 그중 잘 알려진 곳이 안반데기인데 안반데기는 떡메로 떡을 칠 때 밑에 바치는 안반과 같이 평평하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고지대에 있는 이 데기들에 옛날 화전민들이 살며 땅을 개간하였다. 다섯 개의 데기들은 고사리, 황장목, 황철나무 등 그 언덕에서 잘 자라는 식물들에서 지명을 따왔다.
  • 강원 >강릉시

    “강릉에서 두부를 먹는다면 ‘초두부 주세요’라고”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두부는 조선시대에 시작되었다.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초당(草堂)’이라는 허엽의 호를 붙여 그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초당 마을의 남자들은 줄어들고 여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릉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두부를 만들 때 거품을 거둔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바닷물을 넣으면 촛물이 몽글몽글 뭉친다. 이것이 ‘초두부’로,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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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다리는 짧지만 오징어도 울고 가는 맛, 주문진 한치물회
    주문진 한치물회는 한치를 가늘게 채 썰어 고춧가루 양념으로 무쳐 차가운 물이나 육수를 붓고 얼음을 띄운 강원도 강릉시 주문진읍의 향토음식이다. 주문진항은 우리나라 동해안 최대 규모의 어항으로 오징어와 한치를 비롯한 동해의 각종 해산물이 집화되는 곳이다. 주문진항 인근에는 한치물회 전문식당과 횟집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매년 가을 주문진오징어축제를 통해 주문진의 해산물을 널리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