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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단백질 가득한 두부의 매력

두부는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리는 콩으로 만든 음식입니다. 이 식물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은 소화율이 95%에 이르며, 각 지역마다 만드는 방법과 조리법이 다양합니다. '둠비'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전통 두부로, 맷돌에 간 생 콩가루를 끓여 만듭니다. 육지의 두부보다 콩 함량을 높여 단단하게 만들어서 '마른 두부'라고도 부릅니다.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서 제조하는 '초당두부'는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하여 만듭니다. 다른 두부들보다 수분 함량이 많아 부드럽고 결집성이 좋습니다. 대전은 조선 시대부터 큰 밭으로 유명하여 콩과 같은 작물로 만든 음식들이 발달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두부두루치기'가 별미입니다. 부드러운 두부와 얼큰한 양념장의 조화, 그리고 칼국수 사리를 함께 넣어서 먹으면 맛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두부들을 알아봤는데요. 각 지역마다 사람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두부'의 크나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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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전 >중구

    ‘콩의 도시’에서 맛보는 대전 두부 두루치기
    두루치기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한 가지 물건을 여기저기 두루 씀’ 또는 ‘한 사람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음식으로 해석하자면 ‘두루두루 갖가지 재료를 넣어서 한 음식’ 정도가 될 것이다. 실제로도 두루치기는 각 지역마다 각기 다른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해서 요리되는데, 재료를 보면 지역마다의 특색이 잘 드러난다. 대전의 ‘두부 두루치기’는 고기를 넣지 않고 만들어낸 칼칼하고 진한 맛이 일품이다. ‘콩의 도시’ 대전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 제주 >제주시

    제주의 푸른 바다를 품은 식품, 둠비
    둠비는 생콩을 갈아 끓이면서 제주 앞바다의 해수를 응고제로 사용하여 엉기게 한 후 틀에 부어 눌러 놓았다가 단단하게 만든 제주특별자치도 특유의 전통 두부이다. 둠비는 두부의 제주 방언으로 '마른 두부'라고도 부른다. 육지의 두부보다 콩의 향량이 높아 단단한 둠비는 제주도의 경조사와 제례 때 빠지지 않는 음식이기도 하다.
  • 강원 >강릉시

    “강릉에서 두부를 먹는다면 ‘초두부 주세요’라고”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두부는 조선시대에 시작되었다.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초당(草堂)’이라는 허엽의 호를 붙여 그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초당 마을의 남자들은 줄어들고 여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릉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두부를 만들 때 거품을 거둔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바닷물을 넣으면 촛물이 몽글몽글 뭉친다. 이것이 ‘초두부’로,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뜻이다. 
  • 강원 >강릉시

    바다내음 그윽한 강릉 초당두부
    초당두부는 강원도 강릉시 초당동에서 제조하는 특산 두부이다. 초당두부가 생산되는 강릉에서는 천일염이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소금 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이용하여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 인천 >미추홀구

    세 가지 색과 맛이 어우러진 신기시장의 삼층두부
    두부는 예로부터 우리의 오랜 식재료이자 그 자체로도 훌륭한 음식이다. 1970년대 형성된 인천의 신기시장에는 두부 한 모에 세 가지 색이 무지개떡처럼 생긴 이색 두부, 삼층두부가 있다. 문우영 대표가 만든 삼층두부는 우리가 익히 아는 두부콩으로 만든 흰 두부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검은콩즙을 넣어 만든 검은 두부와 브로컬리와 뽕잎을 넣어 만든 녹색 두부가 층층이 쌓여 세 가지 색이라서 사람들은 삼색두부라고도 부른다. 건강식으로 지역사회에 명성이 자자하며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신기시장의 대표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 전국

    두부와 두부행상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농사지은 콩의 1/3 이상이 일본으로 수출되었지만, 만주산 콩이 한국으로 다량 수입되면서 한국인들은 두부를 많이 만들 수 있었다. 두부는 한번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므로 집에서 만들지 않고 전문적인 제조소에서 만들었는데, 짧은 유통기한으로 인해 두부 행상이 반드시 필요했다. 인천에서는 두부행상들의 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 두부 만드는데 쓰이는 간수를 우물물로 쓰기도 했는데, 우물물이 오염된 경우가 많아 위생검사에서 걸리곤 했다.
  • 강원 >강릉시

    두부장수에서 초당순두부 음식점으로, 강릉 초당고부순두부
    강릉 초당순두부는 조선 중기의 문신 허엽(許曄)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일화와 한국전쟁 이후 생계의 일선에 나서야 했던 강릉 어머니들의 고난에 찬 삶이 어우러져 탄생한 강릉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이다. 강릉 초당두부마을에 위치한 ‘초당고부순두부’도 1950년대부터 집에서 두부를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것에서 시작하였다. IMF 경제위기가 발생한 이후 1998년 손자며느리 김영미 씨가 음식점을 차린 것이 현재의 초당고부순두부이다. 지금은 창업주의 증손자가 4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

아는만큼 보이는 세시풍속 놀이

이제는 전통이라 불리며 전승되는 놀이들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오늘 알아볼 놀이는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명절이나 절기마다 즐겼던 세시풍속 놀이입니다. 설날에는 윷놀이를,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 부럼 깨기 등과 같은 놀이를, 단옷날에는 그네 타기, 씨름, 투호 던지기 등을 하며 우리 조상들은 다양한 놀이를 행해왔습니다. 현재는 특정 축제나 행사 때에만 행해지는 풍속 놀이로 여겨지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전통문화와 놀이는 후대에도 계속해서 알려져야 할 우리나라의 고유정체성을 담고 있기에 축제, 행사 때만 즐길 것이 아니랍니다. 낯선 세시풍속과 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욱 다양한 교육과 놀이 체험이 이루어진다면 24절기로부터 시작되는 세시풍속과 그에 따른 놀이, 풍습이 잊히지 않겠죠? 무뎌지고 사라져가는 세시풍속 놀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이며 문화를 지켜나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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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며 달집태우기
    달집태우기는 이러한 기풍의례의 하나로서 정월대보름에 갖는 만월 의식 중의 하나이다. 일년 중 가장 먼저 만월이 떠오르는 날인 정월대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짚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움막을 만들어 달집을 만든다. 달집태우기는 이 달집을 불로 태움으로써 모든 부정과 근심을 함께 태워 없애는 대보름의 주술적 행위이다.
  • 부산 >수영구

    부산 수영동 정월대보름 탈놀이, 수영야류
    수영야류는 부산 남구 수영동에서 마을사람들에 의해 정월 대보름날 행해지던 탈놀이다. 야류(野遊)는 우리말로는 ‘들놀음’이라고 하는데 넓은 들판에서 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정월 대보름날 산신제를 올리고, 마을의 우물과 최영 장군 무덤에 제사를 지낸 뒤 길놀이와 가면극이 이어진다. 197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어 보존 및 전승되고 있다.
  • 경기 >광주시

    400년의 전통을 지닌 광주 광지원해동화놀이
    광주 해동화놀이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중부면) 광지원리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 주민이 달맞이를 위해 해동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정초의 집단 놀이 형태이다. 해동화놀이는 지역에 따라 달집태우기(호남), 동화제(충남), 동홰놀이(경기도), 화옹이(경기도 여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 강원 >강릉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음력 4월 중순쯤에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진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전남 >장흥군

    정월대보름날, 귀신을 땅에 묻어 액운을 몰아낸다
    현재 110호가 모여 살고있는 방촌마을 초입에는 주요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석장승이 세워져 있다.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이 석장승이 있는 곳에서 출발하여 온 마을을 돌며 매귀를 쳐내다가 마지막에 마을회관 앞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의 말미에 재물의 일부와 허수아비를 싸서 허수아비 골에 버리는 것으로 제사를 비롯한 모든 의식은 마무리 된다.
  • 전국

    온 가족이 둘러앉아 흥을 돋우던 윷놀이
    윷놀이는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을 던져 그 결과를 가지고 윷판에 윷말을 사용하여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이다. 비교적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으며, 놀이 규칙과 방법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변수가 흥을 돋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겼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 충북 >청주시

    청주 육거리종합시장에서의 의미 있는 답교놀이
    다리밟기는 정월 대보름에 다리를 밟는 민속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석교동에는 조선시대 이전에 놓인 다리 가운데 제일 긴 다리인 남석교(南石橋)가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無心川)의 물길이 변경되면서 매립되어 시장으로 변모하고, 남석교 또한 매몰되어 지금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청주시의 대표적인 시장인 ‘육거리종합시장’은 1950년 이후에 형성되었다. 이곳 육거종합시장에 바로 남석교가 묻혀 있다. 그래서 청주문화원 등의 공공단체와 시민단체들이 시장 입구에 남석교 모형을 만들어 놓고 ‘남석교 다리밟기’ 놀이를 재현한다.
  • 충남 >서천군

    『삼국사기』에 기록된 오래된 여성들의 전통놀이, 길쌈놀이
    전통사회 여성들의 중요한 생업 활동 중에 길쌈이 있다. 삼·누에·목화 등을 이용해 삼베·명주베·모시베·무명베 등의 옷감을 짜내는 노동이다. 길쌈놀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남아 있다. 왕이 여성들을 두 팀으로 나누고 한 달 동안 길쌈을 하게 하여, 그 양을 따져 승부를 겨룬 다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 놀이었댜. 이는 추석[가배(嘉俳)]의 유래이기도 하다. 길쌈놀이가 지닌 진정한 가치는 한 달 동안 이어져 온 생업활동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서로 음식을 나눠 먹으며 그동안의 노고(勞苦)를 달랜 부분이라 생각된다.
  • 전국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풍년을 기원하는 단오날

벼농사의 시작을 알리는 모내기, 모내기를 끝낸 후에는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올렸습니다. 제삿날에는 떡을 해먹고 여자는 창포물에 머리를 감고 그네를 뛰었으며, 남자는 씨름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었습니다. 이렇게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우리는 단오라고 부르는데요!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 하여 큰 명절로 여겨져 왔고, 그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전국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강릉단오제는 매년 단오에 열리는 가장 오래된 축제 중 하나로,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전통 축제로 불리며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제사와 굿, 관노가면극, 그네 타기, 씨름 등 단오날 행해지던 행사도 즐길 수 있답니다~ 올해 단오날에는 단오제에 참가하여 단오 풍습에 대해 제대로 알아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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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전주시

    여름철 선물인 부채를 만드는 선자장
    선자장은 부채를 만드는 장인이다. 부채는 우리 조상들이 한여름을 보내는 데 필요한 필수품이었다. 여름이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단오를 맞아 부채를 선물하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나라 부채는 형태상으로 크게 둥근 모양의 부채와 접고 펼 수 있는 접부채로 나뉜다. 접부채 가운데 합죽선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공예품이다.
  • 강원 >강릉시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강릉단오제
    강릉에서는 매년 단오 무렵에 단오제라는 제의가 열린다. ‘단오굿’, ‘단양제’ 등으로 불리는 강릉단오제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제의적 성격과 함께 축제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강릉단오제는 음력 3월 20일경에 제주인 신주(神酒)를 빚기 시작으로 음력 4월 중순쯤에는 서낭신 모셔오기 행사, 무녀를 중심으로 하는 단오굿은 음력 5월 1일부터 5일까지 펼쳐진다.
  • 경기 >과천시

    공중에서 벌어지는 곡예 줄타기
    줄타기는 광대가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담, 발림을 섞어가며 갖가지 곡예를 부리는 놀이다. 줄타기는 4월 초파일, 단오, 추석 등 명절에 연희되었으며, 궁중의 행사, 권세 높은 집안의 잔치, 마을 축제, 장터 등에서도 공연되었다. 따라서 놀이판은 관아의 뜰이나 대감댁, 절마당, 장마당 등 넓은 마당이 있는 곳이면 가능했다. 일반적으로 훈련이 잘된 남자들이 타며, 청중 가운데 줄광대의 기량이 뛰어난 것에 감탄하여 돈 꾸러미나 비단을 내려주는 수도 있었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지금까지 이런 가면극은 없었다!' 특별한 강릉 관노가면극
    강릉 관노가면극은 강릉에서 관노들이 단오제 때 벌이는 무언 가면극이다. 근대 신분제도가 없어지면서 관노였음을 숨기려는 연희자들이 놀이를 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원형을 크게 잃지 않은 채 전승되고 있다. 관의 주도로 지역민들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한 놀이인 만큼 사회 풍자적인 다른 가면극들과 달리 오락적인 성격이 강하다.
  • 경북 >경산시

    한장군과 누이를 기념하는 무형문화재 ‘경산자인단오제’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과 용성면 일대에서 신라말 혹은 고려시대에 왜구로부터 주민들을 구한 한장군과 그녀의 누이를 기념하고, 그들의 넋을 위무하기 위한 제사이다. 단옷날에 한묘제를 지내고, 자인단오굿, 호장장군 행렬, 여원무, 팔광대 등 왜구를 유인 섬멸한 한장군과 그의 누이가 함께 무녀를 동원하여 여원무를 추었다는 전설을 재현하는 제사이다. 1970년대 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품하면서 축제의 형태로 지금껏 전승되고 있다. 2007년에 경산자인단오제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 전국

    모내기를 끝내고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 단오
    단오는 음력 5월 5일로 홀수가 두 번 겹치므로 일년 중 양기가 가장 강한 날이다. 이 때는 양기가 강할 때 그 기운을 거두는 여러 가지 풍습이 있는데 익모초와 쑥 꺾기, 창포물에 머리감기, 부적쓰기 등이 있고 절식으로는 수리취떡을 먹는다. 궁중에서는 전주나 남원에서 진상된 부채를 임금이 신하들에게 나누어 선물하기도 하였다.
  • 전국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 세상을 살피는 널뛰기놀이
    널뛰기는 널빤지 양쪽에 사람이 서서, 번갈아 가며 뛰어오르는 놀이다. 왜 널을 뛰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바깥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던 여성들이 '세상 구경을 하려고 널을 뛰었다', '시집가서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다', '귀신을 쫓으려고 널을 뛰었다' 등의 이야기가 전한다.
  • 경남 >창녕군

    평민들의 영웅, 문호장(文戶長)을 기리는 영산 문호장굿
    영산문호장굿은 창녕군 영산면에서 단오날에 영산의 수호신인 문호장을 추모하기 위해 굿 과정에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굿놀이 형태이다. 4-5월에 이루어지며, 관의 기획에 의해 주민들이 적극 참여하며, 무당의 굿, 다양한 놀이가 첨가된 형태인데, 현재 전승이 중단되어 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많은 잔가시를 세심하게 발라낸, 단오에 먹는 준치만두
    진어(眞魚), 시어(鰣魚), 준치어(俊致魚), 준어(俊魚) 등으로 불리는 준치는 맛도 좋지만 가시가 많은 생선으로 유명하다. 준치만두는 잔가시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발라낸 준치 살과 쇠고기를 넣고 완자 형태로 만든 다음 녹말가루를 묻혀 찌는 만두이다. 만두피에 소를 넣어 빚는 일반 만두와는 다른 형태로 일종의 굴림만두이다. 준치만두는 단오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준치 특유의 고급스러운 맛을 즐길 수 있다.

부패정치와 외세에 맞서다

조선을 뒤흔들었던 사건 중 하나인 동학농민혁명, 포악한 관리와 외세의 수탈에 맞서 봉기한 농민들의 함성은 한반도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포악한 관리와 외세의 극악무도한 횡포에 녹두장군 전봉준은 동학 조직을 이용해 부대를 편성하였고 봉기를 촉구하였으며 그 결과 농민군들은 파죽지세로 전라도 일대를 누비며 북상하였습니다. 그 기세는 진압군들조차 겪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였고 이에 조선 정부는 농민군의 요구를 들어주겠다 약속하였고 농민군은 해산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그 약속은 일본군에 의해 짓밟히게 되었고 또다시 농민들은 들끓는 마음으로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치열한 접전을 펼쳤으나 신식 무기 앞에 결국 패하고 말았습니다. 패하였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꺾이지 않은 마음이었으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불합리함에 맞서 싸우는 용기, 그 용기와 희망이 조선의 개혁과 의병 전쟁에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의로운 깃발을 들고 여기에 이른 것은 안으로는 못된 관리의 머리를 베고, 밖으로는 횡포한 외적을 내쫓고자 함이라."

우리 모두 그 용기를 이어받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성공으로 가는 과정과 마음만을 생각하며 희망찬 앞날을 꿈꿔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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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 >군산시

    1927년 전북 옥구 이엽사농장 소작농의 농민 항일항쟁과 시위지
    옥구소작쟁의(沃溝小作爭議)는 전라북도 옥구 이엽사농장(二葉社農場)의 소작 농민들이 일본인 지주의 살인적인 소작료 수탈에 대항하여 일으킨 1920년대 대표적인 피식민지 농민항쟁이다. 소작쟁의는 소작농이 결성한 옥구농민조합을 중심으로 일본인 식민농업회사인 이엽사와 이를 감싸는 일제의 공권력에 항의하여 1927년 8월부터 11월까지 총 7차례에 걸쳐 전개되었다.
  • 경북 >구미시

    두 개의 큰 바위가 있었던 구미 쌍암 고택
    구미 쌍암고택은 조선 영조시대 진사 최광익(1731~1795)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반가이다. 쌍암고택은 고택 부근에 큰 바위 2개가 있어서 이름 붙여졌다. 쌍암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중문채, 안채, 사당의 차례로 자리하고 있다. 쌍암고택은 유일하게 남향으로 자리 잡은 사랑채를 빼고 모두 동향으로 지어졌다. 또한 쌍암고택을 통해 우리나라 전통가옥의 과학성과 실용성을 엿볼 수 있다.
  • 전북 >정읍시

    황토현 전적지에 세워진 '동학농민혁명기념관'
    전라북도 정읍하면 ‘동학농민혁명’이 떠오른다. 당대 부조리한 질서를 타파하고 외세의 침략을 막으려 노력한 농민들의 함성을 정읍에서 생생하게 들어보자. 정읍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 된 ‘고부 만석보’, 황토현전투의 장소 ‘황토현’, 전봉준 고택 ‘녹두장군 옛집’ 등 동학농민혁명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그 흔적을 기념관에 담아내고 있다. 동학농민혁명기념관은 역사적 사건을 상상하고 체험할 수 있도록 관람객에게 전시, 교육, 유적지 답사 등을 제공하고 있다.
  • 경남 >양산시

    윤복이, 양산농민시위 중 총을 맞다
    윤복이는 일본 지주, 동양척식회사들이 소작인을 착취하는 것에 항거해 농민운동을 하다가 순국한 인물이다. 그는 1931년 양산농민조합이 결성되자 농민의 권익을 위해 조합원으로 가입한다. 그는 소작료를 4할로 낮추고, 마름 제도를 없애고 소작권을 지주나 마름이 횡포를 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합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경찰이 이유 없이 조합 간부 17명을 검거하고 양산농민조합을 탄압하자, 조합원 300 명과 함께 양산경찰서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다.
  •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김개남
    김개남은 전봉준과 함께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주역이지만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는 동학농민혁명에서 활약한 공적과는 별개로 탐관오리들을 잔혹하게 죽이거나 처벌한 잔인한 사람,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청주성을 공격하는 개별행동을 해 우금치 전투에서 패배하게 한 사람 등의 부정적 평가에 가려져 있다.
  • 경기 >파주시

    동학농민군이었다가 농민의병으로도 항쟁한 김수민
    김수민은 한말 후기 의병기에 경기도 동북부 지역의 항일의병투쟁을 주도한 의병장이다. 그는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한 바도 있는 농민으로서 의병전쟁에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었으며, 무기를 제조하거나 전술적인 측면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군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1908년 13도창의군의 서울진공작전에도 참여하였으며 경기도와 강원도, 황해도 일대를 옮겨다니며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였다.
  •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군이 첫 승리한 정읍 황토현 전적
    전라북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에는 황토현이라는 나지막한 고개가 있다. 1894년 고부군수의 학정에 대항한 동학농민군들이 전라감영군과 맞서 싸운 곳이다. 전라감영군과 접전을 벌이던 동학농민군은 거짓 패한 척하며 황토현에 진을 쳤고, 뒤따라와 황토현 인근에 진을 친 전라감영군을 기습 공격해 승리를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동학농민군은 호남지방을 석권하게 되고 동학농민운동도 확대되었다.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정읍 황토현 전적은 1981년 사적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 충남 >논산시

    동학농민군의 피로 물들었던 충남 논산의 황화산성
    충청남도 논산시 강화동과 등화동 경계에 있는 황화산에 황화산성이 있다. 황화산성은 백제 때 만들어진 토성으로 당시 사비성을 방어하기 위한 거점이었고, 조선 시대에 이르러 봉수대로 이용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현재는 이곳에서 매년 ‘황화산성 봉화제’가 개최되어 마을주민의 화합과 논산시민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 경남 >하동군

    동학농민군의 항일전쟁 유적지인 경남 하동의 고성산성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북방리의 고성산에 고성산성이 있다. 고성산성은 조선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며, 동학혁명 때 진주를 중심으로 모여든 경남 서부지역의 동학농민군이 일본군에 맞서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다. 1995년 고성산성에 동학농민군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학혁명위령탑이 건립되었고, 이 위령탑에서 매년 11월 11일 11시가 되면 동학혁명군 위령제가 열린다.
  • 충남 >공주시

    동학의 우금치 전투를 기리는 공주 우금치전적 동학혁명군 위령탑
    공주 우금치 전적 동학혁명군위렵탑은 충청남도 공주 금학동에 위치하고 있고 사적387호로 지정됐다. 전봉준은 일본의 만행을 두고보지 못해 2차 봉기를 일으켰고, 1894년 11월 우금치 전투에서 죽검으로 대항한 농민들은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군에게 전멸당했다. 1973년 동학혁명군 위령탑 건립위원회에서 동학혁명군 전적비를 세웠고, 동학농민혁명 100년이 지난 1994년에야 우금치가 사적으로 지정됐다.

참 맛있는 여행, 거제

푸르른 5월, 날이 좋은만큼 콧바람을 쐬러 어디든 떠나고 싶어집니다. 날이 좋은데 집에만 있기엔 심심하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와 함께 거제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많은 여행지 중 왜 거제인지 물으신다면 응당 답해드리는 게 맞겠죠! 지금부터 거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릴 테니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에게 있어 맛집 탐방은 빼놓을 수 있는 취미생활 중 하나입니다. 맛집 탐방에 진심인 분들에게 거제는 흥미진진한 여행지가 될 텐데요.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췄으며 오직 거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죠!

거제 9미라 불리며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들은 맑은 해산물을 가미하여 소박하지만, 그 참 맛은 제일이랍니다.

거제 9미에 대해 살짝 살펴본다면 거제의 특색이라 해도 손색없을 성게, 멍게 비빔밥인데요. 청정지역인 거제에서만 해녀들이 직접 잡은 성게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랍니다. 다음으로는 봄의 나른함을 쫓아줄 도다리쑥국입니다. 담백한 맛의 도다리와 향긋한 향의 봄 제철 식품인 쑥의 조합으로 한번 먹으면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해줍니다~ 맛있는 여행 거제에서 바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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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거제시

    겨울 남해의 방파제 낚시로 맛보는 호래기(꼴뚜기)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이 말은 꼴뚜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생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속담이다. 그러나 꼴뚜기는 그런 취급을 받을 생선이 아니다. 남해안에서는 통칭 ‘호래기’라고 부르는 꼴뚜기는 아직 양식이 안 되기에, 가격이 비싼 고급어종에 속한다. ‘경남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꼴뚜기는 경상남도의 초겨울, 통영과 거제의 방파제 및 수산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호래기 낚시와 호래기 회는 재미와 별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남 >거제시

    바다의 맛과 향을 비벼보자, 거제도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살짝 얼린 멍게젓갈에 밥과 함께 김 가루, 참기름, 야채 등을 넣어 비빈 요리로 경상남도 거제도의 향토음식이다. 주재료인 멍게젓은 멍게의 살로만 만드는데, 멍게 특유의 향과 단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는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첨가하지 않는다. 멍게젓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기도 하고 고추장이 멍게 특유의 향과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경남 >거제시

    조개를 회로 먹는다고? 왕우럭조개
    이름에 접두어 ‘왕’이 붙을 때에는 유별나게 크거나 특출난 것을 표현한다. 뚜껑이 유별나게 커서 왕뚜껑, 중국집의 왕짬뽕, 어린시절 추억의 간식 왕밤빵까지... 개체중에 특출나게 큰 것은 왕건이 잡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크기 자랑은 거제도 앞바다에도 있으니, 그 이름 왕우럭조개다. 못해도 성인 주먹보다 크고, 특출나게 큰 녀석은 사람 얼굴만 한다고 하니, 과연 ‘왕’의 자리에 오를 만하다. 커서 회로 먹어도 충분한 살이 나오는 조개. 거제도의 명물 왕우럭조개를 만나보자.
  • 경남 >거제시

    수정같이 솟아있는 거제 옥산성
    거제 옥산성은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10호로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수정봉 정상 부분에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수정봉성이라고 불리는 옥산성은 게제도의 옛 치소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계룡산에서 거제면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 부분에 있다. 그리하여 옥산성에 오르면 멀리 한산도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서쪽 방향이 트여있어 산성지로 적합한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 경남 >거제시

    일제강점기 대량생산된 마른멸치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 경남 >거제시

    진해만의 대구 잡이
    대구포는 대구를 말린 것으로 밑반찬이나 제사음식으로 쓰였다. 대구포를 만드는 대구어는 경남 창원 인근의 진해만이 최대 어장이다. 진해만에 있는 대구어장의 중심은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이다. 1979년 무렵에는 어민 450여명이 60여척의 배로 대구를 잡을 정도였다. 한반도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와 서부 황해계통의 대구어로 나뉜다. 황해방면의 대구어는 체형이 왜소하고 동해계통 대구어보다 맛이 떨어진다. 진해만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가 산란을 위해 왔다가 잡히는 것이다.
  • 경남 >거제시

    잠수복을 입고 전복을 캐는 거제의 ‘모구리어업’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동마을에는 모구리가 많다. 모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말로, ‘머구리’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어패류를 채취하기 위해 조선으로 밀려 들어온 잠수기 업자들이 침탈적으로 어로행위를 이어 나갔다. 급기야 남획으로 인해 수산자원을 보호하려 어업을 통제해야 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 소유였던 잠수기어선이 귀속재산으로 처리되면서 초기 잠수기어업이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잠수기어업이 이루어지지만 그중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거제 장목항이다. 장목항 주변의 저도 어장은 천혜의 자원 보고로 많은 잠수기어선이 모여든다. 거제 어장에서는 개조개, 바지락, 왕우럭 등을 주로 채취한다.
  • 경남 >거제시

    기차타고 함흥에서 흥남으로, 흥남에서 뱃길로 거제도까지
    이장영(남·1940년생)현 거제도민회회장이다. 유서깊은 개신교 목사 집안 출신으로, 목사였던 부친이 흥남철수 작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현봉학(의사)을 도와 당시 미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을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교인인 가족들은 남은 사람 없이 피난을 나와 함흥에서 흥남으로 기차를 타고 왔고 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와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 경남 >거제시

    경남 거제의 삼 삼으며 부르는 줌치타령
    경남 거제시에는 삼을 삼으며 부르던 노래로 줌치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삼삼기는 여성들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삼삼는소리」 또한 여성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줌치타령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가창유희요이나 삼삼기의 고됨과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도 불렀다. 줌치 즉 주머니를 짓는 재료부터 주머니를 지은 방법, 주머니를 매개로 한 남녀 간의 구애 행동을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땅끝마을에서 즐기는 진미

전라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해남은 해양도시로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해남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있어 낙조와 일출이 매우 아름다우며 풍부한 먹거리와 볼거리로서 여행객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요. 해남은 해남 8미로 해남을 대표하는 맛인 음식들이 있으며 보리쌈밥, 떡갈비, 삼치회, 생고기 한정식, 황칠오리백숙 등으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 맛여행을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남 8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해남 8미 중 봄철 가장 사랑받는 음식은 봄 산행 후 먹는 보리밥과 산채정식, 닭 한마리로 몸을 보양하는 닭오리코스요리입니다. 날 좋은 봄에 산행하고 내려와서 먹는 보리밥과 떨어진 체력을 올려줄 닭오리 코스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사시사철 풍성한 먹거리가 생산되는 해남에서 육해공을 맛보지 못한다면 후회할지도 모르니 해남 8미를 맛보며 새로운 맛과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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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해남군

    '제국의 불빛'에서 희망으로, 해남 구 목포구 등대
    해남 구 목포구등대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을 돕는 ‘제국의 불빛’으로 건립되었다. 원통형 콘크리트로 지어진 구 목포구등대는 비례 균형이 뛰어나 후대 등대 건축의 표본이 되었다. 목포항~다도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은 1세기가량 구 목포구등대의 안내를 받아 거센 바닷길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 전남 >해남군

    봉황의 왼쪽 날개를 닮은, 해남 주작산의 작천소령
    작천소령은 일명 쉬양릿재라고도 한다. 작천소령은 강진군 신전면 수양리와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에 걸쳐 있는, 주작산(朱雀山, 428m)에 있는 고개이다. 산의 형상이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주작산이라 한다. 작천소령은 주작의 좌측 날개에 해당한다. 그 의미는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쉬양릿재는 수양리에 있는 재라는 뜻이다. 산이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을 형성하고 있어서 암릉(巖陵)이란 표현을 쓰는데, 산 능선마다 모양이 다르고 기암이 있으며, 그 사이로 피어나는 꽃은 바위와 조화를 이루어 더 멋진 고개를 만든다. 작천소령은 기온이 따뜻해 주변에 양란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아 비닐하우스가 죽 이어져있다.
  • 전남 >해남군

    이광사의 필체로 다시 걸린 전남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자락에는 대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대흥사 대웅보전의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가 쓴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렀다가 대웅보전의 글씨를 보고 못마땅해 하며 이광사의 현판을 내리고 자신이 쓴 글씨로 걸게 하였다. 후에 유배를 마치고 많은 깨우침을 얻은 김정희는 지난날을 후회하며 자신이 쓴 현판을 내리고 원래 있던 이광사가 쓴 현판을 걸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 전남 >해남군

    넉넉한 보물창고 3칸 곳간이 있는 해남 민정기 가옥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민정기 가옥은 민정기의 6대조인 민형현(閔亨顯)이 1807년(순조 7) 건축한 가옥이다. '청사정'이라 이름 붙은 사랑채는 여흥 민씨가 1670년대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의 사랑채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민정기 가옥에는 곳간이 초가 3칸인데 벽면과 문짝을 판자로 붙여 놓았다. 곳간의 규모로 보아 중요 보관물품이나 식량이 꽤 많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크기이다. 민정기 가옥은 1992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 전남 >해남군

    미황사의 풍경소리 들리는 해남의 달마산
    달마산(達摩山)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해발 489m 높이의 명승 제59호로 지정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이 곳에는 신라시대 의조(義照) 화상이 창건한 천년 고찰 미황사(美黃寺)가 있고,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도솔암(兜率庵)이 있다. 땅끝마을에서 사자봉을 지나 도솔산으로 이르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목격할 수 있다. 귀래봉(471m)과 도솔봉(421m) 등이 모두 절경이다.
  • 전남 >해남군

    국토최남단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땅끝해넘이해맞이 축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의 땅끝마을은 한반도의 최서남단으로, 삐죽하게 바다로 내민 땅끝에서 해넘이와 해맞이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땅끝전망대 및 땅끝탑은 국토의 끝이자 한반도의 땅끝이므로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땅끝마을은 한해를 보내는 해넘이와 새해를 보내는 해맞이 축제를 통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자 축제를 벌인다. 해를 보며 기올리기, 달집태우기, 소원탑쌓기, 소원띠, 해맞이제 등을 통해 한 해를 의미있게 시작할 수 있다.
  • 전남 >해남군

    공룡, 익룡, 새발자국이 한 지층에서 만난 해남 우항리의 ‘해남공룡박물관’
    벽을 뚫고 공룡 두 마리가 나타났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빠진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87호로 지정된 ‘해남 우항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전라남도 해남의 핫플레이스 '해남공룡박물관'이다. 2007년 4월에 문을 연 박물관은 세계 최초로 같은 지층에서 공룡, 익룡, 새 발자국이 발견된 곳을 보존하고 연구, 전시 교육하고 있다. 또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테마파크를 조성해 생생한 공룡의 세계로 관람객을 안내하고 있다.
  • 전남 >해남군

    역사와 문화를 품은 백 년 술도가, 해남 해창주조장
    ‘해창주조장’은 1927년 시바다 히코헤이(柴田彦平)라는 일본인 사업가가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6-2에 정착한 이후 건축한 일본식 정원을 갖춘 주택에 거주하면서 일본식 청주인 정종(正宗)을 빚으면서 시작한 양조장이다. 해방 이후 직원이었던 장남문 씨가 불하받아 거주하면서 1961년부터 집 옆에 양조장 시설을 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강진군에서 양조장을 하는 황의권 씨가 인수하여 30여 년간 운영하다가 2008년 현재 해창주조장의 4대 주인이 되는 오병인 씨가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창주조장은 각종 일본식 건축물과 정원을 갖춘 근대 문화유산이자 오병인 씨가 개발한 ‘프리미엄 막걸리’로 소문난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 전남 >해남군

    왜군 장수의 애인이었던 어란이 묻힌 전남 해남의 여낭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는 여낭터가 있다. 여낭터는 어란이라는 여인과 관련된 지명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수군이 어란리에 주둔할 때 왜군 대장은 어란이라는 기생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왜군 대장이 명량으로 출발할 날짜를 어란에게 누설하게 되고, 어란은 잡혀 와 있던 포로 김중걸에게 이를 알렸다. 김중걸이 이순신에게 이 정보를 전해 명량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어란은 왜군 대장이 죽게 되자 자신도 따라 죽었고, 어부에 의해 시신이 수습되었다. 어란의 시신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에 묻혔는데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여낭터’라 부른다고 한다.
  • 전남 >해남군

    춤과 노래가 다양하게 어우러진 연희, 해남강강술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승되는 강강술래는 여성들의 놀이로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 그리고 여타의 지역, 가령 완도와 무안 등의 강강술래와 달리 다양한 놀이가 체계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활발하게 전승 중이다. 해남강강술래는 중강강술래를 비롯해 진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껑자, 청어엮지, 청애풀지, 지와밟기, 덕석몰기와 풀기, 진주새끼와 꼬리따기, 문지기놀이, 가마타기놀이, 끝내기강강술래, 손잡기강강술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 과정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춤과 노래는 해남강강술래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런' 직업이 있었다고?

세월이 무색하게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요즘이에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하급수적인 기술 발전 및 변화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수많은 직업이 생겨나곤 하지요.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 던 '유튜버'가 지금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것처럼 말이에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늘은 조선조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생겨났던 특이한 직업들을 몇 가지 살펴볼까요?

양반 대신에 매를 맞는 '매품팔이'가 있다고?"
『흥부전』에서 흥부가 돈을 받고 대신 매를 맞아주는 대목이 등장하는데요. 이처럼 조선 후기 양반을 대신해 매를 맞는 것으로 생계를 연명하며 목숨을 담보로 한 사람이 바로 매품팔이랍니다.

"장례 때 곡소리를 대신해주는 '곡비'가 있다고?"
조선시대 장례식장에서 돈을 받고 울어주는 곡비가 있었어요. 대신 울어주는 사람을 고용한 것은 통곡 소리 크기에 따라 상갓집의 수준을 평가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 생소한 직업이 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런' 직업도 있었다니 참 신기하죠? 이 밖에도 조선시대의 다양한 이색직업이 있다는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 함께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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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구

    물길을 이용해 떼돈을 번 사람들, 떼꾼
    떼꾼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에 강물을 이용하여 목재를 서울로 운반해주던 사람을 가리킨다. 떼꾼들은 4월부터 10월 말까지 뗏목을 운행했는데, 강원도 정선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보통 5일 정도 걸렸다. 떼꾼은 일이 힘든 만큼 많은 돈을 벌었다. 그래서 “떼돈 번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떼꾼들의 떼돈을 보고 남한강 주변에 많은 객줏집이 있었고, 주색과 노름에 빠져 돈을 탕진한 떼꾼들도 많았다. 떼꾼은 팔당댐이 생기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서울 >마포구

    주인의 그림자 조선의 집사, 겸인(청지기)
    조선시대 주인을 대신하여 집안일을 관리하는 사람은 겸인이라 하였다. 겸인은 주인을 수행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챙긴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내 비서였다. 주인은 자기에게 충성한 겸인을 중앙 관청에 취직시켜주었다. 취직한 이후에도 주인과 겸인의 관계는 지속된다. 겸인에게 중요한 덕목은 주인과의 의리이다. 몰락한 주인에게 의리를 지킨 겸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회자하였다.
  • 서울 >마포구

    깊은 산속에서 외치는 “심봤다!”, 심마니
    조선시대 심마니는 황첩이라는 허가증이 있어야 산삼을 캘 수 있었다. 황첩이 없으면 캐낸 산삼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심마니는 산속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입산 전후로 여러 가지 금기를 지키고,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한다. 강원도 금강산, 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일대에서 산삼이 많이 나온다. 8월 말에서 10월 초까지가 산삼을 캐기 좋은 때이다. 캐낸 산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원앙메, 산삼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을 독메라 한다. 전국적으로 70~80여 명의 심마니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사우나 관리인 한증승
    한증승이란 조선시대 때 치료목적의 사우나였던 한증소를 관리하던 승려를 말한다. 한증소는 땀을 내게 하는 공간으로 주로 오한이 있거나 미열이 있는 환자들에게 효과적이었고, 중풍이나 기혈이 막힌 환자들에게도 좋은 치료소였다. 한증소에 대한 기록은 세종 4년에 처음 나온다. 한말 화가인 기산 김준근의 그림에 한증소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까지도 한증소가 있었고, 한증승도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식 대중목욕탕이 들어오면서 한증소가 밀려난 것으로 추정한다.
  • 서울 >마포구

    조선의 스파이 체탐인
    체탐인에서 '체탐'(體探)이란 '몸소 알아본다는 뜻'이다. 체탐인이란 적진에 직접 침투하여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을 말한다. 체탐인이란 조선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초 북방 영토가 확정되기 전까지 평안도 북방에서부터 압록강까지 이르던 지역에 살던 여진족들이 끊임없이 조선과 마찰을 일으켰는데, 이들의 동태를 살피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게 체탐인이었다. 이들은 세종조에 가장 많이 활동했고, 임진왜란까지는 체탐인의 활동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체탐인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 서울 >마포구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직업, 판수
    조선시대 시각 장애인 중에서 점복과 독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판수라 한다. 시각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오늘날과 조금 달랐다. 시각 장애인은 시각을 잃은 대신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볼 수 있다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중국보다 뛰어난 것으로 4가지를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판수’였다. 조선시대에는 운수를 점치고자 했던 사람들이 판수를 많이 찾았다. 오늘날 판수는 무당의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 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검시 전문가, 오작인
    조선시대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고을 사또는 오작인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해 검시를 진행하였다. 오작인은 법의학에 기초하여 사인을 밝혀내는 조선의 과학 수사관이었다. 검시는 2차례에 걸쳐 서로 다른 오작인에 의해 진행되었다. 오작인은 각종 도구와 물품을 이용하여 사인을 밝혀냈다. 당시 식초와 술지게미 등을 이용한 검시 방법은 과학적이면서 창의적인 방법이었다. 오작인은 사인을 밝혀내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했으나, 사람들은 변사체를 만지는 오작인을 하찮게 여겼다.
  • 서울 >마포구

    기생의 뒤를 봐주는 조방꾼
    조선시대 여성들의 직업 중의 하나가 기생이다. 이런 기생을 뒤에서 돌봐준 보호자이자 파트너가 조방꾼이다. 당시 조방꾼은 대전별감이나 포도청 군관 등 왕실이나 권력 기관에 연결된 사람들이 주로 맡았다. 박지원의 「광문자전」과 조수삼의 『추재기이』에 의하면, 한양의 유명한 조방꾼으로 최박만과 벙어리 최씨, 이중배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들은 조방꾼의 우두머리였다. 1948년 권번의 폐지와 함께 조방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서울 >마포구

    소설의 유행과 지식의 대량 유통을 선도한 세책점주
    상업의 발달은 조선을 소설의 시대로 만들었다. 당시 세책점에서 유행하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서로 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책점을 운영하며 돈을 버는 사람을 세책점주라 한다. 세책점주는 좋은 작품을 보는 안목과 한 권의 책을 여러 권으로 분권하는 장사꾼 수완도 필요했다. 세책점주의 등장으로 사대부 여성들은 소설 독서라는 특유의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 서울 >마포구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조 화폐 제작업자, 도주자
    조선시대에 상평통보가 주조되면서 조선은 전면적인 화폐 경제 생활에 들어서게 된다.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자, 빠르게 위조 화폐가 만들어져 시장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조선시대 위조 화폐 제작자를 도주자라 한다. 조정에서는 도주자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위조 화폐의 주조를 단속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도 위폐를 제작하는 것는 큰 범죄이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침드라마 뺨치는 비극설화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같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꾸며낸 이야기를 우리는 설화(說話)라고 해요. 이러한 설화는 당대 사람들의 가치관을 담고 있어 시대 의식을 엿볼 수 있고, 구비 전승되어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어요. 특히 권선징악(勸善懲惡), 음덕양복(陰德陽服), 전화위복(轉禍爲福) 등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아침드라마 뺨치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설화를 소개하고자 해요.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서 전해진 서도사 이야기는 그가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은 천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전하는데요. 과연 서도사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였으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또한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서 전해진 매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부부의 애달픈 사랑을 담고 있는데요. 사랑한 두 사람이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우리 얼른 설화 한 편 보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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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절개를 지킨 여인이 꽃나무로 다시 태어난 경기도 수원의 꽃뫼 언덕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에는 꽃뫼 언덕 있다. 옛날 수원의 한 마을에 얼굴도 곱고, 심성도 착한 여인이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딸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아버지를 간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고,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에 농사일을 도와줄 머슴을 두자 집안 형편은 날로 풍족해졌다. 여인에게 많은 혼담이 들어왔다. 그러자 몰래 여인을 짝사랑하던 머슴은 여인을 겁탈하였고, 여인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여인의 무덤에서 꽃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하여 그녀의 무덤을 ‘꽃뫼’라 불렀다고 한다.
  • 경남 >산청군

    부부의 원한이 맺힌 경남 산청의 승지골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는 승지골이 있다. 옛날 청계마을에는 글공부하던 선비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선비는 아내의 뒷바라지 덕분에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선비가 떠나자 시어머니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아내는 집에서 쫓겨났고, 오갈 곳이 없던 아내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죽게 된다. 이후 승지 벼슬을 얻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는 없었다. 남편은 수소문 끝에 마을 사람에게 아내의 일에 대해 듣게 되고, 아내의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가슴을 치며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부부의 원한이 맺힌 이곳을 ‘승지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 경기 >양주시

    칠 일 만에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온릉이 있다. 이 온릉은 중종의 첫 번째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의 무덤이다. 단경왕후는 칠 일 만에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로 오랫동안 중종을 그리워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애달픈 사랑은 치마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홀로된 왕비의 곁을 지킨 애마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 경기 >평택시

    며느리의 청을 거절해 멸문지화를 당한 소씨 가문
    경기도 평택시 송북동 우곡마을에 과거 진주 소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진주 소씨는 살지 않으며, 우곡마을 일대에는 소정승에 관한 이야기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소정승이 지혜로운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출병하여 대패하고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후 그의 가문도 멸문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경남 >하동군

    병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로 둔갑한 최선비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마을에는 ‘최씨내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는 옛날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학동마을에 살던 최선비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호랑이로 변신하여 개를 잡아다가 드렸다. 그런데 아내가 변신술 주문이 적힌 책을 태워버려 다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호랑이로 살았다고 한다.
  •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 충북 >옥천군

    웅인과 계화 공주의 비극적 사랑이 담긴 문바위
    충청북도 옥천군 청상면 한곡리에는 문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문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문바위라 부른다. 옛날 하늘나라에 살던 옥황상제의 딸 계화 공주와 재상의 아들인 웅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권력 욕심이 있던 악독한 대신이 자기 아들과 계화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재상과 웅인을 모함하였고,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웅인은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을 무찌를 결심하고, 옥황상제의 금기를 어긴다. 웅인은 괴물을 죽였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바위가 되고, 웅인을 보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계화 공주 역시 그의 곁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경기 >부천시

    악행을 일삼다가 천벌을 받은 서도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는 서도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서도사의 횡포에 암행어사였던 과객이 죽게 되고, 이로 인해 서도사가 피살되었다는 구조이다. 특히 서도사의 죽음 이후 가문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을 통해 악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강원 >강릉시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이 깃든 매바위와 거북바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는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매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착한 부부는 거북이를 구해주었고, 남편은 죽을 위기에서 용왕에게 구조된다. 용궁에서 지내던 남편은 아내가 그리워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매바위가 되고 남편 또한 거북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강원 >고성군

    정부자의 횡포 때문에 물에 잠긴 오호마을과 송지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소재한 송지호에는 서낭바위가 있으며, 이 일대에는 서낭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욕심이 많고 인색한 정부자가 동냥 온 거지와 시주 온 스님을 박대한다. 그에 따른 징벌로 그의 집과 오호마을은 호수가 되고 정부자는 물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