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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참 맛있는 여행, 거제

푸르른 5월, 날이 좋은만큼 콧바람을 쐬러 어디든 떠나고 싶어집니다. 날이 좋은데 집에만 있기엔 심심하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저와 함께 거제로 떠나보시는 건 어떨까요?! 수많은 여행지 중 왜 거제인지 물으신다면 응당 답해드리는 게 맞겠죠! 지금부터 거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말씀드릴 테니 하나도 놓치지 마세요!

밥심으로 살아가는 민족에게 있어 맛집 탐방은 빼놓을 수 있는 취미생활 중 하나입니다. 맛집 탐방에 진심인 분들에게 거제는 흥미진진한 여행지가 될 텐데요. 풍부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갖췄으며 오직 거제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죠!

거제 9미라 불리며 입맛을 사로잡는 음식들은 맑은 해산물을 가미하여 소박하지만, 그 참 맛은 제일이랍니다.

거제 9미에 대해 살짝 살펴본다면 거제의 특색이라 해도 손색없을 성게, 멍게 비빔밥인데요. 청정지역인 거제에서만 해녀들이 직접 잡은 성게로 만들기 때문에 특유의 향과 맛이 일품이랍니다. 다음으로는 봄의 나른함을 쫓아줄 도다리쑥국입니다. 담백한 맛의 도다리와 향긋한 향의 봄 제철 식품인 쑥의 조합으로 한번 먹으면 잊지 못할 맛을 선사해줍니다~ 맛있는 여행 거제에서 바로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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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거제시

    겨울 남해의 방파제 낚시로 맛보는 호래기(꼴뚜기)회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 이 말은 꼴뚜기가 얼마나 볼품없는 생선으로 인식되고 있었는지를 명백히 드러내는 속담이다. 그러나 꼴뚜기는 그런 취급을 받을 생선이 아니다. 남해안에서는 통칭 ‘호래기’라고 부르는 꼴뚜기는 아직 양식이 안 되기에, 가격이 비싼 고급어종에 속한다. ‘경남의 진주’라고도 불리는 꼴뚜기는 경상남도의 초겨울, 통영과 거제의 방파제 및 수산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아는 사람들만 즐긴다는 호래기 낚시와 호래기 회는 재미와 별미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다.
  • 경남 >거제시

    자연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거제 장승포항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포동에는 국제 개항장인 장승포항이 있다. 장승포는 거제도 가장 동쪽에 있는 마을로, 날이 맑으면 바다 건너 일본 대마도까지 볼 수 있다. 1889년(고종 26년)에 한일통어장정(韓日通漁章程)으로 일본 어민이 대거 이주해와 마을을 형성했다. 1930년에 방파제를 쌓으면서 어항과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965년 6월 개항장이 된 후 인근에 대우조선공업의 옥포조선소가 만들어지면서 크게 발전했다. 부산과 장승포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충지로, 장승포 여객선 터미널이 있다. 연륙되면서 지금은 여객선이 한려수도 해상 관광 유람선을 운행하여 해상 관광 도시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 경남 >거제시

    바다의 맛과 향을 비벼보자, 거제도 멍게비빔밥
    멍게비빔밥은 살짝 얼린 멍게젓갈에 밥과 함께 김 가루, 참기름, 야채 등을 넣어 비빈 요리로 경상남도 거제도의 향토음식이다. 주재료인 멍게젓은 멍게의 살로만 만드는데, 멍게 특유의 향과 단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멍게비빔밥을 먹을 때는 일반적으로 고추장을 첨가하지 않는다. 멍게젓 자체에 양념이 배어 있기도 하고 고추장이 멍게 특유의 향과 맛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 경남 >거제시

    조개를 회로 먹는다고? 왕우럭조개
    이름에 접두어 ‘왕’이 붙을 때에는 유별나게 크거나 특출난 것을 표현한다. 뚜껑이 유별나게 커서 왕뚜껑, 중국집의 왕짬뽕, 어린시절 추억의 간식 왕밤빵까지... 개체중에 특출나게 큰 것은 왕건이 잡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크기 자랑은 거제도 앞바다에도 있으니, 그 이름 왕우럭조개다. 못해도 성인 주먹보다 크고, 특출나게 큰 녀석은 사람 얼굴만 한다고 하니, 과연 ‘왕’의 자리에 오를 만하다. 커서 회로 먹어도 충분한 살이 나오는 조개. 거제도의 명물 왕우럭조개를 만나보자.
  • 경남 >거제시

    수정같이 솟아있는 거제 옥산성
    거제 옥산성은 경상남도 시도기념물 제10호로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동상리 수정봉 정상 부분에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수정봉성이라고 불리는 옥산성은 게제도의 옛 치소 뒷산에 있는 산성으로 거제도에서 제일 높은 계룡산에서 거제면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의 끝 부분에 있다. 그리하여 옥산성에 오르면 멀리 한산도가 시야에 들어올 정도로 서쪽 방향이 트여있어 산성지로 적합한 요충지임을 알 수 있다.
  • 경남 >거제시

    일제강점기 대량생산된 마른멸치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 경남 >거제시

    진해만의 대구 잡이
    대구포는 대구를 말린 것으로 밑반찬이나 제사음식으로 쓰였다. 대구포를 만드는 대구어는 경남 창원 인근의 진해만이 최대 어장이다. 진해만에 있는 대구어장의 중심은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이다. 1979년 무렵에는 어민 450여명이 60여척의 배로 대구를 잡을 정도였다. 한반도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와 서부 황해계통의 대구어로 나뉜다. 황해방면의 대구어는 체형이 왜소하고 동해계통 대구어보다 맛이 떨어진다. 진해만의 대구어는 동해 계통 대구어가 산란을 위해 왔다가 잡히는 것이다.
  • 경남 >거제시

    잠수복을 입고 전복을 캐는 거제의 ‘모구리어업’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장동마을에는 모구리가 많다. 모구리는 잠수부를 일컫는 말로, ‘머구리’라고도 부른다. 일제강점기에 어패류를 채취하기 위해 조선으로 밀려 들어온 잠수기 업자들이 침탈적으로 어로행위를 이어 나갔다. 급기야 남획으로 인해 수산자원을 보호하려 어업을 통제해야 했다. 해방 이후 일본인 소유였던 잠수기어선이 귀속재산으로 처리되면서 초기 잠수기어업이 시작되었다. 전국에서 잠수기어업이 이루어지지만 그중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 거제 장목항이다. 장목항 주변의 저도 어장은 천혜의 자원 보고로 많은 잠수기어선이 모여든다. 거제 어장에서는 개조개, 바지락, 왕우럭 등을 주로 채취한다.
  • 경남 >거제시

    기차타고 함흥에서 흥남으로, 흥남에서 뱃길로 거제도까지
    이장영(남·1940년생)현 거제도민회회장이다. 유서깊은 개신교 목사 집안 출신으로, 목사였던 부친이 흥남철수 작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현봉학(의사)을 도와 당시 미사령관이었던 알몬드 장군을 강하게 설득했다고 한다. 교인인 가족들은 남은 사람 없이 피난을 나와 함흥에서 흥남으로 기차를 타고 왔고 부두에서 배를 타고 거제도까지 와서 피난살이를 하였다.
  • 경남 >거제시

    경남 거제의 삼 삼으며 부르는 줌치타령
    경남 거제시에는 삼을 삼으며 부르던 노래로 줌치타령이 전승되고 있다. 삼삼기는 여성들의 노동이었기 때문에 「삼삼는소리」 또한 여성노동요라고 할 수 있다. 본디 줌치타령은 노래 자체를 즐기는 가창유희요이나 삼삼기의 고됨과 지루함을 잊기 위해서도 불렀다. 줌치 즉 주머니를 짓는 재료부터 주머니를 지은 방법, 주머니를 매개로 한 남녀 간의 구애 행동을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땅끝마을에서 즐기는 진미

전라남도 남서쪽에 위치한 땅끝마을이라 불리는 해남은 해양도시로 대표적인 관광지로 손꼽히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해남은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있어 낙조와 일출이 매우 아름다우며 풍부한 먹거리와 볼거리로서 여행객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볼거리도 중요하지만 먹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한데요. 해남은 해남 8미로 해남을 대표하는 맛인 음식들이 있으며 보리쌈밥, 떡갈비, 삼치회, 생고기 한정식, 황칠오리백숙 등으로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 맛여행을 즐기기에도 손색이 없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해남 8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볼까요? 해남 8미 중 봄철 가장 사랑받는 음식은 봄 산행 후 먹는 보리밥과 산채정식, 닭 한마리로 몸을 보양하는 닭오리코스요리입니다. 날 좋은 봄에 산행하고 내려와서 먹는 보리밥과 떨어진 체력을 올려줄 닭오리 코스라니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네요~ 사시사철 풍성한 먹거리가 생산되는 해남에서 육해공을 맛보지 못한다면 후회할지도 모르니 해남 8미를 맛보며 새로운 맛과 여행의 즐거움을 함께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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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 >해남군

    '제국의 불빛'에서 희망으로, 해남 구 목포구 등대
    해남 구 목포구등대는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을 돕는 ‘제국의 불빛’으로 건립되었다. 원통형 콘크리트로 지어진 구 목포구등대는 비례 균형이 뛰어나 후대 등대 건축의 표본이 되었다. 목포항~다도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은 1세기가량 구 목포구등대의 안내를 받아 거센 바닷길을 헤쳐 나갈 수 있었다.
  • 전남 >해남군

    봉황의 왼쪽 날개를 닮은, 해남 주작산의 작천소령
    작천소령은 일명 쉬양릿재라고도 한다. 작천소령은 강진군 신전면 수양리와 해남군 옥천면 용동리에 걸쳐 있는, 주작산(朱雀山, 428m)에 있는 고개이다. 산의 형상이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는 형상이라 해서 주작산이라 한다. 작천소령은 주작의 좌측 날개에 해당한다. 그 의미는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쉬양릿재는 수양리에 있는 재라는 뜻이다. 산이 바위로 이루어진 능선을 형성하고 있어서 암릉(巖陵)이란 표현을 쓰는데, 산 능선마다 모양이 다르고 기암이 있으며, 그 사이로 피어나는 꽃은 바위와 조화를 이루어 더 멋진 고개를 만든다. 작천소령은 기온이 따뜻해 주변에 양란을 재배하는 사람들이 많아 비닐하우스가 죽 이어져있다.
  • 전남 >해남군

    이광사의 필체로 다시 걸린 전남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현판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자락에는 대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대흥사 대웅보전의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가 쓴 것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가는 길에 대흥사에 들렀다가 대웅보전의 글씨를 보고 못마땅해 하며 이광사의 현판을 내리고 자신이 쓴 글씨로 걸게 하였다. 후에 유배를 마치고 많은 깨우침을 얻은 김정희는 지난날을 후회하며 자신이 쓴 현판을 내리고 원래 있던 이광사가 쓴 현판을 걸게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 전남 >해남군

    넉넉한 보물창고 3칸 곳간이 있는 해남 민정기 가옥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민정기 가옥은 민정기의 6대조인 민형현(閔亨顯)이 1807년(순조 7) 건축한 가옥이다. '청사정'이라 이름 붙은 사랑채는 여흥 민씨가 1670년대 지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재의 사랑채는 아닌 것으로 보여진다. 민정기 가옥에는 곳간이 초가 3칸인데 벽면과 문짝을 판자로 붙여 놓았다. 곳간의 규모로 보아 중요 보관물품이나 식량이 꽤 많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크기이다. 민정기 가옥은 1992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86호로 지정되었다.
  • 전남 >해남군

    미황사의 풍경소리 들리는 해남의 달마산
    달마산(達摩山)은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해발 489m 높이의 명승 제59호로 지정될 정도로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이 곳에는 신라시대 의조(義照) 화상이 창건한 천년 고찰 미황사(美黃寺)가 있고,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도솔암(兜率庵)이 있다. 땅끝마을에서 사자봉을 지나 도솔산으로 이르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경관을 목격할 수 있다. 귀래봉(471m)과 도솔봉(421m) 등이 모두 절경이다.
  • 전남 >해남군

    국토최남단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땅끝해넘이해맞이 축제'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의 땅끝마을은 한반도의 최서남단으로, 삐죽하게 바다로 내민 땅끝에서 해넘이와 해맞이를 동시에 할 수 있다. 땅끝전망대 및 땅끝탑은 국토의 끝이자 한반도의 땅끝이므로 한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최적의 장소로 손꼽힌다. 땅끝마을은 한해를 보내는 해넘이와 새해를 보내는 해맞이 축제를 통해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고자 축제를 벌인다. 해를 보며 기올리기, 달집태우기, 소원탑쌓기, 소원띠, 해맞이제 등을 통해 한 해를 의미있게 시작할 수 있다.
  • 전남 >해남군

    공룡, 익룡, 새발자국이 한 지층에서 만난 해남 우항리의 ‘해남공룡박물관’
    벽을 뚫고 공룡 두 마리가 나타났다! 이곳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바빠진다. 이곳은 천연기념물 제487호로 지정된 ‘해남 우항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에 위치하고 있는 전라남도 해남의 핫플레이스 '해남공룡박물관'이다. 2007년 4월에 문을 연 박물관은 세계 최초로 같은 지층에서 공룡, 익룡, 새 발자국이 발견된 곳을 보존하고 연구, 전시 교육하고 있다. 또한 국내 최대 규모의 공룡테마파크를 조성해 생생한 공룡의 세계로 관람객을 안내하고 있다.
  • 전남 >해남군

    역사와 문화를 품은 백 년 술도가, 해남 해창주조장
    ‘해창주조장’은 1927년 시바다 히코헤이(柴田彦平)라는 일본인 사업가가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6-2에 정착한 이후 건축한 일본식 정원을 갖춘 주택에 거주하면서 일본식 청주인 정종(正宗)을 빚으면서 시작한 양조장이다. 해방 이후 직원이었던 장남문 씨가 불하받아 거주하면서 1961년부터 집 옆에 양조장 시설을 하여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 후반에는 강진군에서 양조장을 하는 황의권 씨가 인수하여 30여 년간 운영하다가 2008년 현재 해창주조장의 4대 주인이 되는 오병인 씨가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해창주조장은 각종 일본식 건축물과 정원을 갖춘 근대 문화유산이자 오병인 씨가 개발한 ‘프리미엄 막걸리’로 소문난 관광명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 전남 >해남군

    왜군 장수의 애인이었던 어란이 묻힌 전남 해남의 여낭터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에는 여낭터가 있다. 여낭터는 어란이라는 여인과 관련된 지명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수군이 어란리에 주둔할 때 왜군 대장은 어란이라는 기생과 가깝게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그러다 왜군 대장이 명량으로 출발할 날짜를 어란에게 누설하게 되고, 어란은 잡혀 와 있던 포로 김중걸에게 이를 알렸다. 김중걸이 이순신에게 이 정보를 전해 명량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러나 어란은 왜군 대장이 죽게 되자 자신도 따라 죽었고, 어부에 의해 시신이 수습되었다. 어란의 시신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에 묻혔는데 이곳을 마을 사람들은 ‘여낭터’라 부른다고 한다.
  • 전남 >해남군

    춤과 노래가 다양하게 어우러진 연희, 해남강강술래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전승되는 강강술래는 여성들의 놀이로 그 역사가 아주 오래되었다. 그리고 여타의 지역, 가령 완도와 무안 등의 강강술래와 달리 다양한 놀이가 체계적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활발하게 전승 중이다. 해남강강술래는 중강강술래를 비롯해 진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껑자, 청어엮지, 청애풀지, 지와밟기, 덕석몰기와 풀기, 진주새끼와 꼬리따기, 문지기놀이, 가마타기놀이, 끝내기강강술래, 손잡기강강술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놀이 과정에서 행해지는 다양한 춤과 노래는 해남강강술래의 또 다른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이런' 직업이 있었다고?

세월이 무색하게 시간이 정말 빨리 가는 요즘이에요.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기하급수적인 기술 발전 및 변화는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수많은 직업이 생겨나곤 하지요. 과거에는 주목받지 못했 던 '유튜버'가 지금은 파급력이 어마어마한 것처럼 말이에요.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였어요. 오늘은 조선조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생겨났던 특이한 직업들을 몇 가지 살펴볼까요?

양반 대신에 매를 맞는 '매품팔이'가 있다고?"
『흥부전』에서 흥부가 돈을 받고 대신 매를 맞아주는 대목이 등장하는데요. 이처럼 조선 후기 양반을 대신해 매를 맞는 것으로 생계를 연명하며 목숨을 담보로 한 사람이 바로 매품팔이랍니다.

"장례 때 곡소리를 대신해주는 '곡비'가 있다고?"
조선시대 장례식장에서 돈을 받고 울어주는 곡비가 있었어요. 대신 울어주는 사람을 고용한 것은 통곡 소리 크기에 따라 상갓집의 수준을 평가했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세월과 함께 사라져 생소한 직업이 되었지만, 조선시대에 '이런' 직업도 있었다니 참 신기하죠? 이 밖에도 조선시대의 다양한 이색직업이 있다는데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우리 함께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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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마포구

    물길을 이용해 떼돈을 번 사람들, 떼꾼
    떼꾼은 도로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에 강물을 이용하여 목재를 서울로 운반해주던 사람을 가리킨다. 떼꾼들은 4월부터 10월 말까지 뗏목을 운행했는데, 강원도 정선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보통 5일 정도 걸렸다. 떼꾼은 일이 힘든 만큼 많은 돈을 벌었다. 그래서 “떼돈 번다.”라는 말이 생길 정도였다. 떼꾼들의 떼돈을 보고 남한강 주변에 많은 객줏집이 있었고, 주색과 노름에 빠져 돈을 탕진한 떼꾼들도 많았다. 떼꾼은 팔당댐이 생기면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 서울 >마포구

    주인의 그림자 조선의 집사, 겸인(청지기)
    조선시대 주인을 대신하여 집안일을 관리하는 사람은 겸인이라 하였다. 겸인은 주인을 수행하며 집안의 대소사를 모두 챙긴다는 점에서 일종의 가내 비서였다. 주인은 자기에게 충성한 겸인을 중앙 관청에 취직시켜주었다. 취직한 이후에도 주인과 겸인의 관계는 지속된다. 겸인에게 중요한 덕목은 주인과의 의리이다. 몰락한 주인에게 의리를 지킨 겸인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미담으로 회자하였다.
  • 서울 >마포구

    깊은 산속에서 외치는 “심봤다!”, 심마니
    조선시대 심마니는 황첩이라는 허가증이 있어야 산삼을 캘 수 있었다. 황첩이 없으면 캐낸 산삼을 빼앗기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심마니는 산속에서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입산 전후로 여러 가지 금기를 지키고, 자신들끼리만 통하는 은어를 사용한다. 강원도 금강산, 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일대에서 산삼이 많이 나온다. 8월 말에서 10월 초까지가 산삼을 캐기 좋은 때이다. 캐낸 산삼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것을 원앙메, 산삼을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독차지하는 것을 독메라 한다. 전국적으로 70~80여 명의 심마니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사우나 관리인 한증승
    한증승이란 조선시대 때 치료목적의 사우나였던 한증소를 관리하던 승려를 말한다. 한증소는 땀을 내게 하는 공간으로 주로 오한이 있거나 미열이 있는 환자들에게 효과적이었고, 중풍이나 기혈이 막힌 환자들에게도 좋은 치료소였다. 한증소에 대한 기록은 세종 4년에 처음 나온다. 한말 화가인 기산 김준근의 그림에 한증소가 나오는 것을 보면 당시까지도 한증소가 있었고, 한증승도 활동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일본식 대중목욕탕이 들어오면서 한증소가 밀려난 것으로 추정한다.
  • 서울 >마포구

    조선의 스파이 체탐인
    체탐인에서 '체탐'(體探)이란 '몸소 알아본다는 뜻'이다. 체탐인이란 적진에 직접 침투하여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사람을 말한다. 체탐인이란 조선의 스파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초 북방 영토가 확정되기 전까지 평안도 북방에서부터 압록강까지 이르던 지역에 살던 여진족들이 끊임없이 조선과 마찰을 일으켰는데, 이들의 동태를 살피는 등의 역할을 담당했던 게 체탐인이었다. 이들은 세종조에 가장 많이 활동했고, 임진왜란까지는 체탐인의 활동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체탐인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 서울 >마포구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는 직업, 판수
    조선시대 시각 장애인 중에서 점복과 독경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판수라 한다. 시각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오늘날과 조금 달랐다. 시각 장애인은 시각을 잃은 대신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볼 수 있다거나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여겼다. 이수광은 『지봉유설』에서 중국보다 뛰어난 것으로 4가지를 들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판수’였다. 조선시대에는 운수를 점치고자 했던 사람들이 판수를 많이 찾았다. 오늘날 판수는 무당의 보조자 역할에 머물러 있다.
  • 서울 >마포구

    조선시대 검시 전문가, 오작인
    조선시대에 살인사건이 일어나면 고을 사또는 오작인을 데리고 현장에 도착해 검시를 진행하였다. 오작인은 법의학에 기초하여 사인을 밝혀내는 조선의 과학 수사관이었다. 검시는 2차례에 걸쳐 서로 다른 오작인에 의해 진행되었다. 오작인은 각종 도구와 물품을 이용하여 사인을 밝혀냈다. 당시 식초와 술지게미 등을 이용한 검시 방법은 과학적이면서 창의적인 방법이었다. 오작인은 사인을 밝혀내는 중요한 직무를 수행했으나, 사람들은 변사체를 만지는 오작인을 하찮게 여겼다.
  • 서울 >마포구

    기생의 뒤를 봐주는 조방꾼
    조선시대 여성들의 직업 중의 하나가 기생이다. 이런 기생을 뒤에서 돌봐준 보호자이자 파트너가 조방꾼이다. 당시 조방꾼은 대전별감이나 포도청 군관 등 왕실이나 권력 기관에 연결된 사람들이 주로 맡았다. 박지원의 「광문자전」과 조수삼의 『추재기이』에 의하면, 한양의 유명한 조방꾼으로 최박만과 벙어리 최씨, 이중배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들은 조방꾼의 우두머리였다. 1948년 권번의 폐지와 함께 조방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 서울 >마포구

    소설의 유행과 지식의 대량 유통을 선도한 세책점주
    상업의 발달은 조선을 소설의 시대로 만들었다. 당시 세책점에서 유행하는 소설을 읽지 않으면 서로 간에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책점을 운영하며 돈을 버는 사람을 세책점주라 한다. 세책점주는 좋은 작품을 보는 안목과 한 권의 책을 여러 권으로 분권하는 장사꾼 수완도 필요했다. 세책점주의 등장으로 사대부 여성들은 소설 독서라는 특유의 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 서울 >마포구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조 화폐 제작업자, 도주자
    조선시대에 상평통보가 주조되면서 조선은 전면적인 화폐 경제 생활에 들어서게 된다. 상평통보가 전국적으로 유통되자, 빠르게 위조 화폐가 만들어져 시장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 조선시대 위조 화폐 제작자를 도주자라 한다. 조정에서는 도주자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위조 화폐의 주조를 단속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지금도 위폐를 제작하는 것는 큰 범죄이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침드라마 뺨치는 비극설화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같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꾸며낸 이야기를 우리는 설화(說話)라고 해요. 이러한 설화는 당대 사람들의 가치관을 담고 있어 시대 의식을 엿볼 수 있고, 구비 전승되어 사라지지 않고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어요. 특히 권선징악(勸善懲惡), 음덕양복(陰德陽服), 전화위복(轉禍爲福) 등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를 포함하고 있어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그중에서도 아침드라마 뺨치며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 설화를 소개하고자 해요.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서 전해진 서도사 이야기는 그가 악행을 일삼다가 결국은 천벌을 받게 된다는 내용을 전하는데요. 과연 서도사는 어떤 비극을 맞이하였으며,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또한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서 전해진 매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부부의 애달픈 사랑을 담고 있는데요. 사랑한 두 사람이 새드엔딩을 맞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지 우리 얼른 설화 한 편 보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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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절개를 지킨 여인이 꽃나무로 다시 태어난 경기도 수원의 꽃뫼 언덕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화서2동에는 꽃뫼 언덕 있다. 옛날 수원의 한 마을에 얼굴도 곱고, 심성도 착한 여인이 홀로된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자 딸은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아버지를 간호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세는 좋아지지 않았고, 집안 형편은 점점 어려워졌다. 이에 농사일을 도와줄 머슴을 두자 집안 형편은 날로 풍족해졌다. 여인에게 많은 혼담이 들어왔다. 그러자 몰래 여인을 짝사랑하던 머슴은 여인을 겁탈하였고, 여인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했다고 한다. 이후 여인의 무덤에서 꽃나무가 활짝 피었다고 하여 그녀의 무덤을 ‘꽃뫼’라 불렀다고 한다.
  • 경남 >산청군

    부부의 원한이 맺힌 경남 산청의 승지골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청계리에는 승지골이 있다. 옛날 청계마을에는 글공부하던 선비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선비는 아내의 뒷바라지 덕분에 과거를 보게 되었다. 그런데 선비가 떠나자 시어머니의 구박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결국, 아내는 집에서 쫓겨났고, 오갈 곳이 없던 아내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죽게 된다. 이후 승지 벼슬을 얻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으나 아내는 없었다. 남편은 수소문 끝에 마을 사람에게 아내의 일에 대해 듣게 되고, 아내의 무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가슴을 치며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이후 사람들은 부부의 원한이 맺힌 이곳을 ‘승지골’이라 불렀다고 한다.
  • 경기 >양주시

    칠 일 만에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에 온릉이 있다. 이 온릉은 중종의 첫 번째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의 무덤이다. 단경왕후는 칠 일 만에 궁에서 쫓겨난 비운의 왕비로 오랫동안 중종을 그리워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러한 그녀의 애달픈 사랑은 치마바위에 얽힌 이야기와 홀로된 왕비의 곁을 지킨 애마의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 경기 >평택시

    며느리의 청을 거절해 멸문지화를 당한 소씨 가문
    경기도 평택시 송북동 우곡마을에 과거 진주 소씨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진주 소씨는 살지 않으며, 우곡마을 일대에는 소정승에 관한 이야기 전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소정승이 지혜로운 며느리의 말을 듣지 않고 출병하여 대패하고 역적으로 몰려 처형당한 후 그의 가문도 멸문되었다는 이야기이다.
  • 경남 >하동군

    병든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호랑이로 둔갑한 최선비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묵계리 학동마을에는 ‘최씨내골’이라고 부르는 골짜기가 있다. 이 골짜기는 옛날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이 살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그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학동마을에 살던 최선비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호랑이로 변신하여 개를 잡아다가 드렸다. 그런데 아내가 변신술 주문이 적힌 책을 태워버려 다시 사람이 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호랑이로 살았다고 한다.
  • 인천 >강화군

    인심 고약한 정주마을이 갯벌로 변한 인천광역시 교동도의 청주펄
    인천광역시 강화도에 딸린 섬 가운데 ‘교동도(喬桐島)’가 있다. 교동도는 원래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었지만, 오랜 기간 간척사업을 통해 갯벌을 메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간척이 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는 갯벌도 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교동도 바닷가 근처에 ‘정주마을’이 있었다. 정주마을은 사람들은 부자이기는 하였지만 인색하였다. 하루는 노스님이 시주를 청하였으나 욕설을 하며 내쫓아 버렸다. 그 후 며칠이 지나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져 정주마을은 갯벌로 변했다고 하는데, 그곳이 바로 청주펄이다.
  • 충북 >옥천군

    웅인과 계화 공주의 비극적 사랑이 담긴 문바위
    충청북도 옥천군 청상면 한곡리에는 문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문과 같이 생겼다고 하여 문바위라 부른다. 옛날 하늘나라에 살던 옥황상제의 딸 계화 공주와 재상의 아들인 웅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권력 욕심이 있던 악독한 대신이 자기 아들과 계화 공주를 결혼시키기 위해 재상과 웅인을 모함하였고, 결국 그들은 인간 세상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인간 세상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웅인은 사람들을 해치는 괴물을 무찌를 결심하고, 옥황상제의 금기를 어긴다. 웅인은 괴물을 죽였지만, 금기를 어긴 죄로 바위가 되고, 웅인을 보기 위해 인간 세상으로 내려온 계화 공주 역시 그의 곁에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경기 >부천시

    악행을 일삼다가 천벌을 받은 서도사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상동 일대에는 서도사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 이야기는 서도사의 횡포에 암행어사였던 과객이 죽게 되고, 이로 인해 서도사가 피살되었다는 구조이다. 특히 서도사의 죽음 이후 가문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비극적 결말을 통해 악한 자는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주제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 강원 >강릉시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이 깃든 매바위와 거북바위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영진리에는 착한 부부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매바위에 관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착한 부부는 거북이를 구해주었고, 남편은 죽을 위기에서 용왕에게 구조된다. 용궁에서 지내던 남편은 아내가 그리워 다시 육지로 돌아오지만,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어 매바위가 되고 남편 또한 거북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 강원 >고성군

    정부자의 횡포 때문에 물에 잠긴 오호마을과 송지호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 오호리에 소재한 송지호에는 서낭바위가 있으며, 이 일대에는 서낭바위에 얽힌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욕심이 많고 인색한 정부자가 동냥 온 거지와 시주 온 스님을 박대한다. 그에 따른 징벌로 그의 집과 오호마을은 호수가 되고 정부자는 물귀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