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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군포시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향토설화를 그린 그림책. 초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화를 만화로 그려 곳곳에서 지역문화를 체감할 수 있다. 수리산, 감투봉, 범밧골 등 군포의 지명, 마을의 유래에 대해 전해오는 설화를 통해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콘텐츠.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운길산 북한강변에 있는 수종사(水鍾寺)는 1459년 세조 때 크게 중창하였다. 세조가 오대산에 갔다가 돌아올 때,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잠자리에서 종소리를 듣는다. 다음날 그 종소리가 울린 근방의 사찰을 찾아보라고 하였다. 사찰을 찾아 나선 대신들이 강 건너 동굴에 십팔나한이 모셔져 있는데, 동굴 천정에서 떨어서는 물방울 소리가 종소리와 흡사하다고 하였다. 세조가 동굴에 가보고 신묘한 조화로 자신을 오게 한 부처님께 감응해서 수종사를 중창하고, 은행나무를 심고 돌아갔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에 ‘홍법사(弘法寺)’라는 사찰이 있다. 홍법사는 1611년 홍(洪)씨 문중에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홍법리에 살던 ‘홍랑’이라는 처녀가 공녀(貢女)로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명나라로 갈 때 모래, 대추, 물을 가지고 갔다.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홍랑은 명나라에서 고향에서 가지고 간 모래만 밟고, 대추와 물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조선에서 가지고 간 물과 대추가 떨어지고, 결국 홍랑도 죽게 된다. 명나라에서 죽은 홍랑은 무쇠사공이 젓는 돌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경기도 하남시 감이동의 옛 이름은 ‘널무니’이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천민 출신의 ‘서흔남(徐欣男)’이 병자호란 당시에 전령으로 많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할 때는 서흔남이 인조를 업고 남한산성에 올랐으며, 남한산성 안팎의 소식을 전하는 전령으로 자청하여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등을 다니며 인조의 유지(諭旨)를 전했다고 한다. 서흔남은 이러한 공으로 천인 신분을 벗고 벼슬도 제수 받을 수 있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대동리에 ‘소개비냥’이라는 절벽이 있었다. 소개비냥 절벽 아래는 임진강이 흐르며, 그 위로는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었다. 옛날 장단면 지역에 살던 김승경이라는 사람이 ‘쇠’, ‘전광세’ 등 파주에서 힘이 센 사람들과 힘겨루기에서 이겼다. 더 이상 무서운 것이 없었던 김승경은 갖은 행패를 부리고 다녔다. 그러던 중 소개비냥에서 한 초립동과 만나 서로 길을 비키지 않으려고 싸우다가 지고 만다. 김승경은 자신의 아들들도 자신들의 힘을 믿고 행패를 부리자, 자신의 경험을 일러 주고, 세상에는 자신보다 더 힘센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타이른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와 마암리에 걸쳐 효양산(孝養山)이 있다. 그리고 효양산 정상에는 ‘금송아지상’이 있다. 옛날 효양산에 금송아지가 살았다고 한다. 중국 황제가 신하를 보내어 금송아지를 데려오게 하였다. 중국에서 온 신하는 수개월 동안 걸어서 이천에 도착하였다. 효양산을 가까이 두었을 때, 효양산 산신령이 오천리, 구만리 더 가야 효양산이 있다고 해서, 더 가는 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경기도 동두천시에 ‘황금바위’라 부르는 바위가 있다. 황금바위는 황금알을 낳는 닭이 앉았던 바위다. 옛날 성실한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황금알을 낳는 닭이 있다는 마을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산에 오를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던 나무꾼은 황금알 낳는 닭을 목격하지만 금방 사라지고 만다. 나무꾼은 산신령이 자신의 욕심을 깨우치려 했다고 것으로 알고 이후 성실하게 살았다고 한다.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선생의 묘가 있는데, 그 주위에는 홰나무들이 많다. 하연은 살았을 때 묏자리를 잡고, 그 주위에 홰나무를 심었다.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홰나무를 베거나 팔자, 하연의 영혼이 신임부사에게 나타나 후손들이 더 이상 홰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에 ‘두껍능산’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꺼비는 처녀가 부엌에 있을 때마다 찾아오고, 그런 두꺼비에게 처녀는 매번 밥을 주었다. 처녀가 시집을 가도 두꺼비는 따라갔다. 어느 날 처녀를 해하려는 지네를 물리치지만, 두꺼비는 그만 죽고 만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두꺼비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 때의 일이다. 경상북도 안동에 ‘김위’라는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중 안성에서 이진사댁에 머무른다. 이진사는 3년 전에 외아들이 실종된 상태였다. 김위는 이진사댁에서 지었던 시로 과거에 급제를 하고 안성군수로 내려온다. 안성군수가 된 김위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진사 아들을 죽인 범인을 잡고, 아들 시신을 찾아준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와동과 상록구 월피동에 걸쳐서 있는 산을 광덕산(廣德山)이라고 한다. 광덕산 할미골에 ‘부채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는데, 이곳에 살고 있던 할머니가 수확한 보리를 말리기 위해 멍석에 널어놓고 암자를 비웠다. 잠시 후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보리가 모두 젖을 것 같았는데, 이를 본 지나가던 선비가 보리를 걷어 주어 젖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는 그 은혜를 갚으려 선비에게 새 옷을 만들어 주었고 새옷을 받은 선비는 암자를 새로 지어주었다고 한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은대리를 흐르는 한탄강 한복판에 ‘삼형제바위’가 있다. 옛날 한 어머니가 아들 삼형제를 키우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삼형제와 함께 남편이 남긴 조그마한 밭에서 농사를 지었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밭에서 김을 매던 삼형제는 더위를 식히러 한탄강에 들어갔다가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매일같이 한탄강에 나와 아들들의 생전 모습을 그리워했다. 그러던 중 한탄강 복판에 세 개의 바위가 솟았는데, 그것을 삼형제바위라 불렀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에 ‘대황교(大皇橋)’라 불리는 다리가 있었다. 대황교는 조선시대 때 정조가 융릉(隆陵) 행차를 할 때 건넜던 돌다리라고 한다. 청나라에서 대황교 이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사신을 보내라고 하였다. 사신이 청나라에 도착할 무렵 청나라 황제의 어머니가 상을 당했다. 사신은 미리 준비해간 상복을 입고 조문을 해서 청나라 황제를 놀라게 하였다. 상복까지 미리 준비를 해왔고, 예의를 갖추어 조문을 하는 사신을 보니 질책할 수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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