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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군포시에 구전으로 전해지는 향토설화를 그린 그림책. 초등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화를 만화로 그려 곳곳에서 지역문화를 체감할 수 있다. 수리산, 감투봉, 범밧골 등 군포의 지명, 마을의 유래에 대해 전해오는 설화를 통해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콘텐츠.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독산성(獨山城)과 세마대(洗馬臺)가 있다.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독산성에 주둔하면서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왜군은 독산성 함락이 어려워지자, 독산성 안에 우물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물이 떨어질 때를 기다렸다. 그 때 권율장군이 왜군들이 잘 보이는 곳에 말을 세워 놓고, 쌀로 목욕을 시켰다. 멀리서 이 광경을 바라보던 왜군들은 독산성 안에 말을 목욕시킬 정도로 물이 많다고 여기고, 공격을 접고 물러났다고 한다.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봉성2리 산중턱 서낭고개라는 곳이 있다. 옛날, 효성이 지극한 덕칠이가 살고 있었다. 마을 청년들은 덕칠이에게 길장가 보내주겠다며 서낭고개로 데리고 갔다. 서낭고개를 넘는 사람들에게 장가보낸다고 장난치는 것이다. 그날 밤, 마지막으로 서낭고개를 넘은 처녀가 덕칠이에게 찾아와 같이 살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고는 요술을 부려 덕칠이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마을 사람들이 백년 묵은 여우일 것이라고 조심하라고 하였다. 보름달이 뜬 날 덕칠이는 여우로 변신한 아내를 보았다. 여우는 덕칠이의 간을 먹어야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덕칠이를 살려주고, 여우는 눈 쌓인 언덕에서 죽는다.
경기도 광명시 노온사동에 조선시대 인조의 큰아들 소현세자의 비인 민회빈 강씨의 묘소가 있다. 청나라의 수도였던 심양으로 끌려 간 소현세자와 민회빈 강씨는 그곳에서 온갖 어려움을 겪으며 힘든 생활을 했다. 그리고 8년의 인질생활이 끝나갈 때, 청나라 황제는 소현세자 일행을 조선으로 돌려보내기로 하고 위로잔치를 열었다. 위로잔치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용연 벼루를 선물을 받아 조선으로 돌아온 소현세자는 얼마 되지 않아 죽게 되고, 민회빈 강씨도 모함을 받아 사약을 받는다.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건원릉(健元陵)이 있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무덤이다. 건원릉은 동구릉 안에 있는데, 동구릉에 있는 다른 능과는 달리 봉분에 억새를 심었다. 태조는 한양에서 생활하면서도 태어나서 자란 함경남도 영흥을 항상 그리워했다. 또한 자신이 죽어서는 영흥에 묻히고 싶다는 말을 자주하였다. 그런데 태조가 승하한 뒤에 영흥에다 왕릉을 쓸 수 없기에 봉분을 덮을 억새만 영흥에서 가져다 입혔다고 한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풍산동(風山洞)’이 있다. 옛날 도촌천을 사이에 두고 풍동과 산황동으로 나뉘어져 있던 곳이다. 이들 두 마을에는 각각 황부자와 노부자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자는 만나면 자신이 서로 부자라고 다투었다. 그런데 어느 해 수해로 다리가 떠내려간 후 도촌천에 다리를 놓아야 했다. 황부자와 노부자는 서로 자신이 부자임을 뽐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겼다. 황부자는 놋쇠로 다리를 놓았고, 노부자는 닭똥집으로 다리를 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닭똥집으로 다리를 놓은 노부자가 매년 다리를 새로 놓아야 하기에 더 부자라고 손을 들어주었다.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 수어장대 아래에 청량당(淸凉堂)과 매바위가 있다. 청량당은 남한산성을 쌓다가 억울하게 죽은 이회의 넋을 위로하는 사당이다. 남한산성 축성을 이회와 벽암이 맡아서 하였다. 벽암은 일을 순조롭게 진행해 기일 안에 성을 쌓았으나 이회는 꼼꼼하게 성을 쌓다보니 기일 안에 공사를 끝내지 못했고 공사비도 부족하였다. 그런데 공사비가 부족한 것이 이회가 게으르고 무능해서 낭비했기 때문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 일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이회는 참수형에 처해지게 되었는데, 참수 당한 뒤 매가 이회의 시체를 들고 날아갔다. 그때 매가 앉은 바위가 매바위이다.
경기도 양주시에 백석읍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성종 무렵, 우애가 깊은 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이름은 ‘바위’이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두꺼비’이다. 바위는 과거 시험을 보아 병조판서에 오르지만, 다리가 불편한 두꺼비는 점치는 것을 배워 점쟁이가 된다. 점쟁이가 된 두꺼비는 바위의 도움으로 한양에서 유명해진다. 임금의 잃어버린 옥대를 찾아주고, 임금의 시험을 통과해 부자가 되어 두 친구는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대황교동에 ‘대황교(大皇橋)’라 불리는 다리가 있었다. 대황교는 조선시대 때 정조가 융릉(隆陵) 행차를 할 때 건넜던 돌다리라고 한다. 청나라에서 대황교 이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사신을 보내라고 하였다. 사신이 청나라에 도착할 무렵 청나라 황제의 어머니가 상을 당했다. 사신은 미리 준비해간 상복을 입고 조문을 해서 청나라 황제를 놀라게 하였다. 상복까지 미리 준비를 해왔고, 예의를 갖추어 조문을 하는 사신을 보니 질책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에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하연(河演) 선생의 묘가 있는데, 그 주위에는 홰나무들이 많다. 하연은 살았을 때 묏자리를 잡고, 그 주위에 홰나무를 심었다.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홰나무를 베거나 팔자, 하연의 영혼이 신임부사에게 나타나 후손들이 더 이상 홰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와 마암리에 걸쳐 효양산(孝養山)이 있다. 그리고 효양산 정상에는 ‘금송아지상’이 있다. 옛날 효양산에 금송아지가 살았다고 한다. 중국 황제가 신하를 보내어 금송아지를 데려오게 하였다. 중국에서 온 신하는 수개월 동안 걸어서 이천에 도착하였다. 효양산을 가까이 두었을 때, 효양산 산신령이 오천리, 구만리 더 가야 효양산이 있다고 해서, 더 가는 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경기도 군포시에 수리산이 있다. 수리산 북쪽 관모봉 중턱으로 오르는 길에 ‘노랑바위’가 있다. 옛날 아들이 없던 왕이 하늘에 제를 지내고 왕자를 낳았다. 그런데 왕자가 세 살 되던 해에 나라에 전란이 있어서 강화도로 피난을 가게 되었는데, 배를 타고 가던 중 폭풍우에 배가 전복되었다. 그 때 거북이 한 마리가 왕자를 태우고 육지로 올라와 관모봉 중턱에 내려놓았다. 거북이는 왕자를 내려놓고 마을에 먹을거리를 구하러 갔지만, 왕자는 자신을 버린 것이라 여겨 분함을 참지 못해 바위를 내리쳐 노란색의 피를 쏟고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홍법리에 ‘홍법사(弘法寺)’라는 사찰이 있다. 홍법사는 1611년 홍(洪)씨 문중에서 창건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이 끝난 후 홍법리에 살던 ‘홍랑’이라는 처녀가 공녀(貢女)로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녀는 명나라로 갈 때 모래, 대추, 물을 가지고 갔다.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홍랑은 명나라에서 고향에서 가지고 간 모래만 밟고, 대추와 물만 먹었다. 시간이 흘러 조선에서 가지고 간 물과 대추가 떨어지고, 결국 홍랑도 죽게 된다. 명나라에서 죽은 홍랑은 무쇠사공이 젓는 돌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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