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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4일 상강일에 재현한 통제영 둑제를 기록한 영상. 문헌 고증과 섬세한 연출을 거쳐 완성한 통제영 둑제의 장엄한 현장을 담았다.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 통영 둑제를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
통제영둑제는 삼도수군통제영이었던 통영의 가장 중요한 의제(儀祭)이다. 둑제의 유래를 살펴보고 중앙과 다른 통제영만의 차이점을 담고 둑제의 올바른 복원과 재현을 위한 의장 및 복식, 악무, 둑제홀기 등을 기록했다. 「통제영 둑소홀기」와 「통제영 둑제의」를 바탕으로 시일 및 장소, 참여자, 제례의 순서 등을 고증한 콘텐츠
조선시대부터 멸치는 삶은 것을 말려서 유통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어민들이 한반도 해안가에 이주하고 개량된 장비로 많은 멸치를 잡으면서 마른멸치는 대량생산되었다. 경남의 멸치어장은 거제도, 욕지도, 진해만, 남해도, 사랑도, 울산만 등이고, 전남의 멸치어장은 거문도, 추자도, 제주도, 태랑도, 소안도, 흑산도 등이다. 그중 가장 유명한 어장은 경남 거제도, 진해만, 욕지도, 사랑도, 거문도, 제주도 등이다. 통영에 이주한 일본인들이 마른멸치를 일본이나 중국으로 유통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통영반도 남단과 미륵도를 연결하는 통영 해저터널은 동양 최초의 해저터널이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통영으로 이주해온 일본인 이주 어민들은 연안에서 어로 활동을 하며 물고기 떼를 쫓아 빠르게 이동할 필요가 있었는데, 미륵도와 통영 사이의 해협이 너무 좁아 미륵도를 빙 돌아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일제는 1932년 통영운하를 완공했다. 통영운하 개통 후 운하를 건너다니도록 하기 위해 교량 대신 만든 것이 해저터널이다. 터널을 만든 지역은 판데목이라는 곳인데, 임진왜란 한산대첩 때 많은 왜군이 이순신의 학익진에 대패해 판데목 부근에서 수장됐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조상의 유해 위로 건너다닐 수 없어서 해저터널을 팠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통영시 문화동 배수시설은 1933년에 건립된 근대기의 대표적인 상수도 시설이다. 배수시설은 통영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야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야산은 조선시대의 유적지인 통제영 내의 사당이 있었던 곳이다. 옛 통제영은 독기(纛旗. 토박이발음 '뚝기')를 모시고 봄가을로 군영의 무운장구를 기원하는 뚝제를 지냈는데 뚝기는 군영의 원수를 상징하는 군기이며 이 뚝기를 모신 곳을 뚝사당이라 했다. 일제는 조선의 자존심이 어려 있는 이곳에 근대적인 수도공급시설을 설치함으로써 과거 한산대첩의 패배로 잃어버린 자존심을 회복하고 지배를 공고히 하려했다. 문화동 배수시설이 등록문화재로 검토되자 지역사회에서는 일제 유물이라는 이유로 찬반 논쟁이 거셌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산업사적 가치를 인정해 2005년 4월 15일 문화동 배수시설을 등록문화재 제150호로 지정했다.
공주섬은 경상남도 통영시 도남동에 있는 조그마한 섬을 가리키는데, 도남동은 법정동이고 행정상으로는 2010년에 봉평동과 통합하여 현재 봉평동에 속한다. 공주섬은 공주도라고도 부르는데, 공주도(拱珠島)·공주도(控珠島)·공주도(公州島) 등과 같이 한자로 표기할 때는 서로 다른 글로 표기한다. 그리고 지역민들은 ‘공지섬’이라 부르고 있다. 공주섬에 대한 전설은 빨래를 하던 여인이 움직이는 섬을 보고 소리쳤다는 이야기와 용왕이 공주섬을 여의주로 삼아 가지고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통영상륙작전은 해병대 김성은(金聖恩) 부대가 최초로 적전상륙작전을 1950년 6·25전쟁 중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는 통영반도에 감행하여 통영을 탈환한 작전이다.
4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통영중앙시장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릴 정도로 많은 섬과 아름다운 항구가 있는 도시인 통영에 위치하고 있다. 통영중앙시장은 강구안 문화마당과 동피랑 벽화마을 등의 관광 명소가 인접해 있어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시장이다. 주로 해산물과 건어물을 비롯하여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매하고 있다.
소반이란 음식을 담은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이다. 우리나라에서 소반을 언제부터 사용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5-6세기 고구려 고분벽화를 보면 이미 소반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소반을 일찍부터 사용하게 된 데에는 우리나라 가옥 구조와도 관련 있다. 우리나라의 가옥 구조가 음식을 만드는 부엌과 방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소반은 각 지역마자 자생하는 재료와 지역 풍격을 반영하여 독특하게 만들기에 60여 종으로 분류된다.
통영 사람들은 굴을 꿀이라고 부른다. 경상도 발음이 억센 탓도 있지만, 굴이 바다의 꿀이기 때문이다. 통영에선 굴껍질을 산처럼 모아놓았다가 4~5월이 되면 나일론 줄에 꿰어 바다에 넣어 채묘를 한다. 이렇게 자연 채묘되어 성장한 굴은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수확하여, 박신장, 즉 굴껍질 까는 공장에서 껍질이 까져 우리의 식탁에 오른다. 박신(剝身)은 껍질을 벗긴다는 뜻으로, 아주머니들이 새벽 4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오후 4시까지 12시간 동안 서서 일한다.
염장은 발을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발’은 보통 햇볕을 가리는 데 쓰기 위해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얻은 대오리를 삼끈이나 실로 엮어서 만든 것이다. 전통가옥인 한옥에서의 생활에는 발이 필수품이었다. 발은 옛날 사람들이 타고 다녔던 가마의 문을 가리는 발에서부터, 집의 문을 가리는 발까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한옥이 사라지면서 발을 찾는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나전장은 나전칠기를 만드는 장인이다. 옻칠한 농짝이나 나무 그릇 등에 진주빛이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붙여서 장식한 공예품을 나전칠기라 한다. 우리나라의 나전칠기 기술은 중국 당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부터 발전한 것으로 본다. 현재 나전칠기로 가장 유명한 지역은 경상남도 통영이며, 강원도 원주는 우수한 옻칠 생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통영지역에서는 1907년 통영군립공업전습소가 설치되어 나전칠기의 기술적인 혁신과 인력 양성의 기반이 마련되었다. 1925년 프랑스 세계장식미술박람회에서 통영 나전칠기가 은상과 동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1956년에는 경상남도 나전칠기 기술원양성소가 설립되어 우수한 장인들을 배출하였고, 이들은 1960-80년대 전국 각지에 나전칠기 자개장롱 열풍의 주역이 되었다.
통영은 목공예로 명성이 높은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하여 12공방이 만들어졌던 곳이다. 12공방은 초기에는 군사물자와 진상품을 생산하였으나, 조선후기 관영 수공업 체제가 붕괴되자 운영이 축소되거나 폐쇄되었다. 하지만 당시 기술은 그대로 민간에 전해져 지금까지 나전칠기, 소반, 대발 등이 생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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