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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지역의 지명, 설화, 전설, 역사, 문화유산 등을 소개하는 책이다. 경기도 성남은 예로부터 서울과 지방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 대표적인 옛길인 ‘영남대로’와 영남대로 주변에 산재한 이야기를 엮었다.
정동벌립은 제주특별자치도 중산간 지역에서 야생 댕댕이 덩굴인 정동으로 만든 하절기 노동용 모자이다. 차양이 넓어서 햇빛 가리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모자 꼭대기부터 경계 부분까지 촘촘하여 도롱이와 같이 입으면 빗물이 몸에 전혀 스며들지 않아 한라산 산간 지역을 누비며 살았던 목자들에게 적합한 모자였다. 무형문화재 제8호 ‘정동벌립장’을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으며, 현재는 변형된 ‘정동모자’로 개발되어 대표적인 제주도 관광 토산품으로 자리잡았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채 고려 충신 이오(李午)의 절개가 어려 있는 고려동(高麗洞)은 열 채가 넘는 멋진 건물을 거느리고 있다. 자미정, 안채, 사당, 곳간채, 계모당, 율간정, 모계정사 들이 줄을 잇는데 이들 건물만으로는 고려동을 제대로 누리고 느끼기 어렵다. 그러려면 고려동을 조선 땅이 아닌 고려 영토로 만드는 담장·고려교와 더불어 고려의 유민임을 기억하게끔 하는 고려전(田)도 보고 의미를 새겨야 한다.
6.25전쟁 이후 정착한 실향민들이 속초에 정착하면서 전래한 북한 지역 전통 음식. 지역 정체성과 실향의 기억을 담고 있는 피란민들이 만든 이 음식은 속초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으며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음식문화 유래, 특징 등과 관련된 이야기
자천대는 원래 옥서면 선연리 해안의 바위산 이름이자 그 위에 세워진 2층 정자 최치원의 유년기 전설과 관련된 유서 깊은 장소였다. 그러나 1930년대 일제의 군산비행장 확장으로 바위산이 사라지자 지역 유림과 옥구군수 최학수가 정자를 해체해 옮겨 보존했고, 현재는 옥구향교 경내에 남아 있다. 지형은 사라졌지만, 지역민이 문화유산을 지켜내며 군산의 역사·기억을 이어온 상징적 사례로 평가된다.
약봉 서성의 대구 서씨는 문과 합격자 10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6대에 걸쳐 최고위직 관리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서성은 3조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대구 서씨가 포천 선단동에 입향 한것은 서고(1489-1550)의 묘와 아들 서해 (1537-1559), 손자인 서성(1558-1631) 3대의 묘를 쓰면서 포천 설운동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후 5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서성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맹인(盲人)이면서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자식교육을 위한 결단력으로 대구 서씨 가문을 조선 최고의 인재 산실로 만든 약봉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의 자녀 교육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희망대공원은 1970년대에 성남이 시로 승격된 직후 만든 공원이다. 성남 도심에 자리 잡고 있는 가장 오래된 공원으로 도서관과 물놀이장, 광장, 산책로를 비롯하여 각종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성남시민뿐만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희망대공원에서 놀기 위해 찾아온다. 지대가 높아 전망이 좋은 희망대공원은 성남의 활기차고 역동적인 시가지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남시민들의 문화와 학습, 휴식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사랑받는 장소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동에 ‘두껍능산’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다. 옛날 마음씨 착한 처녀가 살고 있었다. 두꺼비는 처녀가 부엌에 있을 때마다 찾아오고, 그런 두꺼비에게 처녀는 매번 밥을 주었다. 처녀가 시집을 가도 두꺼비는 따라갔다. 어느 날 처녀를 해하려는 지네를 물리치지만, 두꺼비는 그만 죽고 만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두꺼비를 묻어주고 제사를 지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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