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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지역에서 내려오는 역사, 전설, 설화를 쉽게 풀어낸 어린이용 이야기책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의 태몽, 중앙석굴과 김유신, 노귀재 전설, 임진왜란 당시 정의번과 그의 종 억수의 이야기 등 16개의 이야기가 삽화와 함께 수록되었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진주박물관에는 태평회맹도 병풍이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경상북도 영천시 출신의 권응수 장군 유물 중의 하나이다. 권응수 장군은 임진왜란 때 영천성 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에서 승리를 이끈 의병장으로 선무공신으로 기록되었다. 태평회맹도 병풍은 선조가 임진왜란 때의 선무공신 63명을 불러 모아 연회를 베풀고 그 장면을 화공에게 그리게 하여 만든 병풍이다.
영천 곳나무싸움은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에서 암줄과 수줄의 머리를 연결하는 ‘곳나무’를 차지하려고 벌이는 놀이다. 곳나무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우물 안, 화장실, 여자들의 치마 속, 얼음이 언 강바닥 밑 등 찾기 어려운 곳에 숨겨야 한다. 곳나무를 차지한 사람은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다.
영천 소머리국밥은 소머리뼈와 사골을 우려낸 국물에 고기와 대파를 넣고 푹 끓여낸 경상북도 영천시의 향토 음식이다. 영천은 조선 시대 영남대로(嶺南大路)가 지나는 중요한 길목이자 대구, 안동, 포항, 경주 등의 물류가 경유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소머리국밥은 외부에서 몰려든 장꾼들과 과객의 허기를 채워주는 외식(外食)으로 정착하였다.
은해사는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청통로 951번지에 위치한 사찰이다. 1943년 자료에 따르면 은해사는 809년 승려 혜철이 창건했으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해안사였다고 한다. 조선중기 대화재를 겪고 중건하며 이름이 은해사로 바뀌었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함께 여러 문인의 글이 남아있다.
환구세덕사(環丘世德祠)는 1990년 8월에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7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정세아(鄭世雅, 1535~1612년)와 그의 아들 정의번(鄭宜蕃, 1560~1592년)을 모신 사당이다. 정의번은 아버지와 같이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위급에 처한 아버지를 구하려다 죽었다. 그래서 그의 충절을 기리고자 충현사를 지어 향사를 했는데, 나중에 정세아도 함께 위패를 모셨다.
‘이(夷) 웅덩이’는 경상북도 영천시 봉동 옆으로 흐르는 북안천의 한 웅덩이를 가리킨다. 하천의 웅덩이는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 웅덩이는 한 여인이 손수 모래자갈을 파내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지난 까닭에 지금은 ‘이(夷) 웅덩이’가 모두 메워졌기에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려우나 부인이 혼자서 모래와 자갈을 파내어 웅덩이를 만들어 마을 구성원과 함께 오랑캐를 수장시켰다. 이로서 부인은 전장에서 죽은 남편을 대신하여 원한을 갚았고 나아가서 나라의 원수를 갚은 것이다.
사모산(思母山)은 경상북도 영천시 서부동에 있는 해발 254.2m에 있는 산으로 삼모산이라고도 한다. 지도에는 삼모산으로 표기하고 있지만 지역 사람들이나 등산로 표기에는 사모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조씨 성을 가진 분이 딸을 데리고 영천군수로 부임하였다. 딸은 병으로 죽은 전임 군수 아들과 밤마다 만남을 가졌다.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도령은 자신이 저승 귀신이라는 것을 밝히고 사라진다. 낭자는 놀랐지만 그리움이 더 큰 탓에몸져 눕게 되고 딸은 자신을 어머니가 있는 한양을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말하며 죽었다. 아버지는 딸의 유언에 따라 봉화산 옆에 봉우리에 묻으니 지역에서는 어머니를 그리며 묻힌 곳이라 해서 사모산이라 불렀다.
청지(菁池)는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구암리에 있는 신라 때 축조한 저수지이다. 청지는 청제(菁堤)라고도 불리는데 신라 때 축조된 저수지 가운데 지금까지 관개 수리시설로 이용되는 유일한 저수지로 인정받고 있다. 청지는 신라 법흥왕 23년인 536년에 주변의 280개 지역에서 25명씩 선발하여 모두 7,000여 명이 동원되었다고 하니 당시로서는 얼마나 큰 공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저수지 건설에는 ‘망깨’라고 불리는 쇳덩이를 들었다 내리며 말뚝을 박는데, 청지(菁知)와 같은 힘이 센 인물이 필요로 한다. 그리고 저수지는 가뭄과 홍수조절 기능이 있는데, 청지가 비를 내리고 거두는 용이 되어 이를 담당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경상북도 영천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정세아(鄭世雅)의 증손 삼휴 정호신(鄭好信, 1605~1649년)이 정자를 짓고 살면서 '삼휴'라는 시를 지어 그 정자 이름을 삼휴정이라 했다. 이 건물은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5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영천댐이 생기면서 위쪽으로 옮겨 옛 정취를 느낄 수는 없다. 그러나 옛 건축양식을 잘 보전하고 있는 건물로 알려져 있다.
하천재(夏泉齋) 부비각(附碑閣)은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 산78번지에 있는 오천 정씨의 재실에 붙어있는 비각이다. 하천재는 1975년 8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3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비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을 지낸 강의공(剛義公) 정세아(鄭世雅, 1535~1612)의 신도비를 보호하기 위한 집이다. 주변에 강호정, 오회공종택 등이 영천댐 주변으로 이어 있어 볼거리가 잘 갖춰져 있다.
경북 영천 선원동 철조여래좌상은 당당한 가슴과 무릎 아래로 표현한 부채꼴 형 옷주름,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처리 기법 등에서 석굴암 석조여래좌상과의 친연성이 보인다. 경상북도 지역에 철불이 조성된 것도 주목되지만, 석굴암 본존불과의 친연성을 통해 철불 역시 경주 지역의 불상 양식을 토대로 제작되었고, 지방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지역 양식이 반영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영천 옥간정은 학식이 높고 우애가 돈독한 정만양과 정규양 형제가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716년 조성한 정자이다. 중국의 무이구곡과 같이 아름다운 횡계구곡 가운데 바로 4곡에 해당되는 곳에 옥간정이 지어졌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정자 이름이 ‘옥같이 빛나는 시냇가 정자’라는 의미이다. 옥간정은 이층의 누마루와 단층의 건물이 하나로 붙어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자연과 지리 / 마을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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