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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부천시

    한국 제약산업의 발상지, 부천과 유한양행
    한국 제약산업의 발상지는 경기도 부천이다. 이곳에는 유일한 박사가 설립한 유한양행의 첫 근대식 제약공장이 자리했으며, 한국 의약산업이 태동한 상징적인 공간으로 평가된다. 평양 출신의 유일한은 독립운동가이자 기업가로서 “기업은 사회의 것”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국민 건강과 산업 자립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전쟁 피해로 공장 운영이 어려웠던 서울 대신, 교통이 편리하고 공업용수 확보가 용이한 부천 소사읍 약대리를 공장 부지로 선택해 1955년 국내 최대 규모의 현대식 제약공장을 완공했다. 이곳에서는 의약품 생산과 연구가 동시에 이루어졌으며, 화학·약학 전공 인재들이 사내 교육을 통해 성장했다. 부천공장은 단순한 생산 시설을 넘어 한국 제약산업의 인재 양성소이자 연구기지로 기능했다. 유한양행에서 배출된 인력들은 이후 동아제약, 종근당, 녹십자 등으로 진출하며 국내 제약산업의 생태계를 확장해 나갔다. 유일한은 경쟁보다 나눔을 중시하는 경영 철학을 실천했으며, 이를 통해 산업 전반의 성장을 이끌었다. 또한 부천공장은 직원 숙소와 병원, 학교를 포함한 산업 공동체로 발전해 지역사회의 복지와 교육 수준 향상에도 기여했다. 유일한은 1971년 사망 직전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유한재단을 설립했으며, 이러한 행보는 오늘날 ESG 경영의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부천시는 유한양행 부천공장의 역사적 가치를 산업문화유산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유한양행 부천공장은 한 사람의 신념이 도시의 흐름을 바꾸고, 한 기업이 국가 산업의 기초를 세운 상징적인 사례이다. 부천은 지금도 그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 제약산업의 원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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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천 농업훈련의 산시, 4H 한미재단
    1952년 6·25전쟁 중, 미국 아이젠하워 행정부와 한국 이승만 정부는 전후 복구와 냉전 전략이 결합된 민간 원조 프로젝트인 ‘한미재단(Korea America Foundation, KAF)’을 창립했다. 이 재단은 비정치·비영리·비종교를 원칙으로 삼고, 한국 사회를 물질적·정신적으로 재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953년부터 1979년까지 약 5천만 달러의 원조금이 보건의료, 주택 건설, 지역사회 개발, 교육, 농촌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입되었다. 특히 1954년 이후에는 4-H 운동(Head, Heart, Hand, Health)을 통해 청년 농업 지도자 양성과 농촌 근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 운동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던 부천 소사 4-H 훈련농장은 1963년에 설립되어 농업기술과 생활기술을 교육하는 실습장으로 활용되었다. 이곳에서는 남성에게 농지 관리, 원예, 축산 기술을, 여성에게는 재봉, 미용, 요리 등을 교육했다. 부천 소사 4-H 훈련농장은 단순한 교육시설을 넘어 자립형 모델 농장으로 발전했다. 그 결과 1968년에는 200만 원, 1969년에는 400만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1979년까지 총 3,602명의 졸업생을 배출해 지역사회 개발의 핵심 인력을 길러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새마을운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훈련농장의 상징이었던 사일로(Silo)는 가축 사료 저장 시설이자 농업 근대화를 상징하는 구조물로,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이 사일로는 2021년 10월 27일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으며, 1960~1970년대 한국 농업 근대화와 국제 협력, 청년 교육 운동이 교차한 역사적 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부천시 소사체육공원(소사본동 364-6)에 남아 있는 사일로는 전후 한국 농촌 재건의 상징이자, ‘머리·마음·손·몸’을 다해 미래를 일군 청년들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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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흥사와 소사공단 이야기
    소사에서 벌응절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지나던 현재의 소사구청 일대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임야가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이 지역에 철 관련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군수용품 생산을 목적으로 일흥사(日興社) 소사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일흥사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에 서울기계제작소와 서울주철제작소가 차례로 들어섰고, 이후 이들 공장은 각각 신한주철과 서울주철공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이천중기(삼양중기)가 입주하면서 이 일대는 소사공단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한때 소사공단에서 쇠를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던 공장들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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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개와 복개(復開) 사이, 심곡천
    일제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인 오카다 타쿠(岡田卓)는 당시 부천군 소사읍에서 태어나고 소사읍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재 조선 일본인이었다. 즉 부천의 소사는 오카다의 고향인 샘이다. 1945년 당시 소사소학교를 졸업한 오카다는 그해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자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오카다가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고향을 소사에 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지내다 소사소학교를 졸업한 동창들과 함께 옛 소사읍의 전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 현재 부천문화원이 소장하고 있는 A2용지 크기의 지도가 그것이다. 이 지도에는 1940년대 당시 옛 소사읍의 하천, 도로, 취락, 건물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 지도의 주요 내용과 함께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물줄기를 해석하여 소사천 등 여러 하천의 원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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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개와 복개(復開) 사이, 심곡천
    일제강점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인 오카다 타쿠(岡田卓)는 당시 부천군 소사읍에서 태어나고 소사읍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재 조선 일본인이었다. 즉 부천의 소사는 오카다의 고향인 샘이다. 1945년 당시 소사소학교를 졸업한 오카다는 그해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되자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오카다가 일본에서 성장하면서 고향을 소사에 두고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지내다 소사소학교를 졸업한 동창들과 함께 옛 소사읍의 전경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 현재 부천문화원이 소장하고 있는 A2용지 크기의 지도가 그것이다. 이 지도에는 1940년대 당시 옛 소사읍의 하천, 도로, 취락, 건물 등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이 지도의 주요 내용과 함께 지도에서 볼 수 있는 물줄기를 해석하여 소사천 등 여러 하천의 원형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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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다란 지역, 소사라는 이름의 추억들
    소사는 현재 소사구와 소사본동의 이름으로 사용되지만, 한때 부천 전체를 지칭하던 지명이었다. 본래 토박이말 ‘소새’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흰모래’ 혹은 ‘넓은 들판’을 뜻한다. 이는 과거 굴포천 유역과 개천 주변의 밝은 모래층, 배수가 잘되는 비옥한 토질과도 관련이 있다고 일각에서는 말한다. 과거 소사는 복숭아 산지로 유명해 ‘소사 복숭아’가 전국적으로 알려졌고, 봄이면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고 가을이면 달콤한 향이 골목을 채웠다. 또 근래 가장 주목받는 유래는 고구려어에서 ‘커다란 지역’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어서 이 지역이 삼국시대 서해안 방어의 요충지였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부천이 시로 승격될 당시 시 이름 후보로 ‘소사시’가 논의되었고 1993년 ‘남구’가 ‘소사구’로 바뀐 것도 시민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소사라는 이름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기억의 상징이다. 복숭아밭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진행된 지금도 사람들은 여전히 ‘소새시장 간다’, ‘소사 살았다’라며 그 이름을 입에 올린다. 지명은 기억의 지도이며 소사는 부천의 뿌리이자 사람들의 삶이 스며든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름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 기억과 정서를 되살리는 일이며 ‘소사’라는 두 글자는 여전히 부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이어주는 살아 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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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흥사와 소사공단 이야기
    소사에서 벌응절리로 넘어가던 옛길이 지나던 현재의 소사구청 일대는 약 100여 년 전만 해도 임야가 펼쳐진 야트막한 언덕이었다. 이 지역에 철 관련 공장이 처음 들어선 것은 일제강점기인 1939년, 제국주의 침략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군수용품 생산을 목적으로 일흥사(日興社) 소사공장이 설립되면서부터였다. 해방 이후 일흥사 소사공장이 있던 자리에 서울기계제작소와 서울주철제작소가 차례로 들어섰고, 이후 이들 공장은 각각 신한주철과 서울주철공업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73년에는 이천중기(삼양중기)가 입주하면서 이 일대는 소사공단으로 완성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 공장 건물은 모두 철거되었고, 현재 해당 지역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였다. 한때 소사공단에서 쇠를 녹이고 달구어 기계를 만들던 공장들은 이제 흔적만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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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사골을 아시나요, 소사 복숭아
    복숭아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자랐는데 팔기위해 재배한 것은 아니었다. 팔기위해 복숭아를 기르기 시작한 시기는 개항기 이후이다. 개항기 상품으로 팔기 위해 복숭아 나무를 심은 곳이 부천 소사이다. 부천 소사 복숭아는 일제강점기부터 많이 생산되고 질이 좋기로 유명하였다. 해방 후에도 유명했는데 1980년대 부천이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면서 대형 복숭아 과수원이 아파트와 공장으로 바뀌어버린다. 그러나 지금도 복숭아 과수원이 약간 남아 있어 과거의 영광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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