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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가 배출한 조선 시대 여성 문인 김호연재를 소재로 한 그림 동화책. 김호연재(金浩然齋, 1681~1722)의 한시는 신사임당, 허난설헌, 이매창 등에 견줄만 하지만 아직까지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의 삶과 그녀가 쓴 한시를 알기 쉽게 풀어냈다.
대전 둔산지구의 번화가에 도심 속 오아시스로 자리잡은 남선공원은 산책로에서 생태체험을 할 수도 있고, 빙상장과 축구장을 겸비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할 수도 있다. 명학소 민중봉기 기념탑과 도산서원도 있어 역사 체험에도 적격인 도심 속 공원이다.
대전광역시 지하철 갈마역 근처에 올림픽기념 국민생활관이 있다. 88올림픽 성공을 기념하는 이 건물은 1991년에 지어졌다. 이 건물을 지나면 갈마공원이 나온다. 계절별로 꽃과 나무가 번갈아 피어나고, 벼룩시장이나 동네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2019년 12월에는 월평도서관도 개관한다.
대전은 천을 따라 걷는 길을 잘 조성해놓은 도시다. 그 중 갑천에는 누리길이 있다. 누리길을 끼고 갑천을 걷다 보면 노루벌도 볼 수 있고, 가을에는 갈대숲도 볼 수 있다. 노루벌은 늦반디불의 서식지이자 최장수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다. 갑천 누리길은 시민의 공모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생태체험도 할 수 있고, 트레킹 코스도 잘 되어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세천 유원지는 대전 동구 세천동에 있는 유원지이다. 식장산을 가는 길 초입에 있는 유원지로 많은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으며, 계절별로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다. 세천유원지 초입에는 1932년에 완공된 물막이댐이 있다. 이곳은 한때 대전 시민들의 식수원으로 활용되던 곳이다. 수돗물의 역사를 알 수 있어 교육적으로,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대전역 뒤쪽의 소제동은 1904년 대전역이 생긴 이후 일본 철도공사 종사자들과 기술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철도관사촌이다. 한때 흥했던 그곳은 전쟁과 도시화로 버려졌고, 빈집이 2천채가 넘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 유현민 작가가 들어와 소제관사42호를 ‘소제창작촌’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소제창작촌 근처의 빈 집에 시울마실, 293빈집, 소호헌도 문을 열었다. 모두 사람이 떠난 지 몇 년씩 된 집이고, 마을 주민들의 배려와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공간들이다.
대전역전지하상가에 있는 해풍사는 20여년 전부터 오래된 외국 잡지와 만화책, 외국서적 등을 파는 곳이다. 과거에는 무역업자를 통해 책을 수입하고 배달해주는 식으로 운영했다. 그래서 따로 점포 없이 집에서 운영하다, 대전 은행동, 대흥동에서 서점을 운영했고, 20년 전 역전지하상가에 자리를 잡았다. 다양한 서적과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90년대 외국 잡지, 애니메이션 포스터, CD, 비디오테이프, 드로잉북, 연예인 사진, 캐릭터 문구까지 옛 물건들 구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강지덕은 정조-순조 대에 활동했던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여성 선비이며 시인으로, 경제적으로 대단히 곤궁한 형편에 5남 4녀를 낳았으나 모두 1년이 되기 전에 사망하는 불행을 겪으면서도 유교 경전을 읽으며 연구하고 홀로 암송하며 자기 수양에 힘썼다. 글쓰기를 좋아해 꾸준히 적어둔 글을 그녀의 사후 남편 윤광연이 간행해 사임당과 윤지당의 재능을 겸비했다는 평을 듣게 되었다.
허난설헌의 본명은 초희, 다른 이름은 허옥혜(許玉惠)이다. 난설헌은 사대부 집안에서 여성을 편히 부르는 당호이니 옛 법도로는 난설헌 허씨라고 부르는 게 맞다. 16세기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가의 고명딸로 오라비들 사이에서 당대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자라며 일찍부터 신동 소릴 들을 만큼 글이며 그림 솜씨가 뛰어났으나 예술가로서의 기량을 충분히 펼치지 못한 채 비극적 삶을 시로 정돈하다 요절했다.
삼의당 김씨는 몰락한 양반 댁 규방 출신으로, 조선 시대 가장 많은 한시와 문장을 남긴 여성 시인이다. 한날한시 같은 마을 남원에서 태어난 담락당 하립과 열여덟에 혼인해 서른두 살 진안으로 이사해 살았으며 가난한 살림 가운데 남편을 향한 애정과 전원의 풍치를 담은 시로 서로 화답하며 성리학에서 칭송하는 여성의 덕을 온전히 실현했다.
김호연재는 임진왜란 후 주자학의 논리로 사회가 재편되면서 여성 억압을 우주적 진리처럼 여기던 시대, 저속하고 비열한 남성 중심 가치관을 선명한 논리로 박살내며 여성들의 한숨을 통쾌하게 대변한 지식인 여성이다. 김호연재는 명문가 사대부 집안에서 자유로운 정신으로 성장했으나 곤고한 시집살이를 통해 실존적 삶의 모순을 통찰하며 이를 기록한 여성 시인이다.
바우덕이는 가난한 소작농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에 안성의 남사당패에 맡겨졌다. 노래와 풍물놀이, 살판과 줄타기 등 온갖 기예에 출중한 실력을 발휘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다 열다섯 살에는 만장일치로 남사당패 꼭두쇠의 후임으로 선출되어 최초의 여성 꼭두쇠가 되었다고 한다. 1865년 도성 대궐에도 불려가 고종과 대원군 앞에서 춤과 기예를 펼치고 극찬을 받으며 조선 최고의 예인이 되니, 그들의 공연은 남사당보다 바우덕이 이름으로 회자하였다.
일찍 고아가 되어 부안 관기로 뽑힌 매창은 송도의 전설이 된 명월의 환생인 듯, 아전 출신이었던 아비에게 배운 시문과 거문고 실력으로 당대 최고의 문사들과 어울리며 글과 음악을 겨루고 사랑과 우정을 나누었다. 그녀가 세상 떠나고 60년 후 지역에서 회자하던 시 58수가 인근 사찰 개암사에서 목판에 찍은 《매창집》으로 전해지니, 부안의 시인들은 그녀 무덤가에 ‘이화우’를 새긴 비석을 세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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