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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가장 큰 섬인 가덕도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이다. 가덕도는 지상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로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유적이 풍부한 곳이다. 지리상으로 군사요충지기도 했던 가덕도에 남아있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흔적을 찾아 떠나는 역사교훈 여행 다큐멘터리.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있는 현충사에는 이순신 선무공신교서가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워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선조 37년인 1604년에 내린 교서이다. 교서의 내용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책훈에 따른 여러 포상 내역이 주를 이룬다. 특히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 북방 오랑캐 방비에 활약한 사실부터, 전란 당시 수군을 통솔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정황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에 위치한 충무사(忠武祠)에는 「우수영전진도첩(右水營戰陣圖帖)」이 소장되어 있다. 전라우수영의 수군 진법의 전모를 살필 수 있는 필사본 수첩(手帖)이다. 이 수첩에 기록된 주요 진법은 예진도, 직진도, 하방영도, 도진도, 학익진도 등으로, 다양한 형태의 해상전투 대형을 묘사한 것이다. 조선시대 수군 진법에 관련한 구체적인 실태와 조선 후기 수군진의 운영 사례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높다.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 고소대 비각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여수 타루비가 있다. 여수 타루비는 이순신이 세상을 떠난지 6년 후인 1603년 이순신의 수하였던 좌수영의 군사들이 이순신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여수에 있던 타루비를 서울로 빼돌리고 해방 후에 경복궁에 묻어둔 채 가버렸다. 여수 시민들이 수소문 끝에 타루비를 찾아내 여수로 옮겨와 고소대에 비각을 짓고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와 함께 보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동외리에는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기념하는 명량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명량대첩은 1597년 이순신이 명량의 거센 물살을 이용해 왜군들에게 크게 승리한 전투이다. 비문은 1686년에 지어졌으나 비석은 2년 뒤인 1688년에 세워졌다. 현재에도 명량대첩축제와 명량대첩과 관련된 역사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이순신 장군의 공적이 기억되고 있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 좌부천마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시기,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머무르며 들돌들기를 했다는 들돌이 느티나무 아래에 놓여 있다. 들돌들기란 예전에 남자들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 힘을 겨루던 놀이를 말한다. 지방에 따라 들돌을 들독 · 등돌 · 진쇠돌 · 당산돌 · 신돌 · 차돌백이돌이라고도 하고, 이 들돌 때문에 마을의 명칭이 거석거리 · 들돌거리 · 거석마을인 곳도 있다. 좌부천 마을의 들돌이 여럿 있었으나 현재는 어른 머리 크기 정도의 들돌이 민속자료로 남아 있다.
전남 순천시의 백의종군로는 선평삼거리에서 구례읍에 이르는 약 25km의 길이다. 송치재에서 황전면까지의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도 17호선과 나란한 뚝방길로 이어져 있다. 백의종군로는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걸어내려온 총 640.4Km의 길 중 25Km의 길로 명량대전의 승리를 준비하는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계절별로 물길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를 보며 자전거도 탈 수 있고, 걸을 수도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다.
충무공 장검은 길이 196.8㎝와 197.2㎝의 2점이며, 보물 326호로 지정되었다. 두 자루의 장검은 이순신이 1594년 4월 한산도 진중(陣中)에 있을 때 스스로 만든 칼이다. 전장에서 실제로 쓴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칼날에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친필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고, 칼자루 속에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백두대간의 말단 부근에 자리한 여원재는 오래전부터 고개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가운데 통영로가 통과하던 구간이며, 공공업무를 수행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이용했던 역로인 오수도의 한 구간이었다.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이 경상도로 진출하기 위해 여원재를 넘다가 관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여원재의 서쪽을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고개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에 속싯개가 있다. 속싯개는 임진왜란 때 당항포 해전이 있었던 바닷가이다. 당시 왜군들은 이순신 장군의 계책에 속아 대패하였다고 하며, 그로 인해 주민들은 ‘왜군들이 속은 갯가’라 하여 이곳을 '속싯개'라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해전에 숨은 조력자가 있으니 그녀는 바로 무기정 곱세집의 이름 모를 기녀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 일본은 조선에 밀사를 보낸다. 밀사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곱세집에 머물고, 한 기녀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이후 밀사는 임무를 완수하고 다시 기녀를 찾아가고, 술에 취해 자신이 이 고을의 주인이 될 것이라 말한다. 이를 들은 기녀는 밀사의 품속에서 지도를 발견하고, 지도를 변조한다. 이러한 기녀의 숨은 공로로 임진왜란 때 당항포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통영삼도수군통제영(統營三道水軍統制營)은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392-2번지에 있는 사적 제 402호의 조선시대 3도 수군 통제영이다. 3도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말한다. 통영삼도수군통제영은 선조 36년(1603)에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에 세웠다. 그 후 292년간 존속해 오다가 고종 32년(1895) 각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지면서 함께 사라졌다. 그 유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헐리고 세병관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바다를 지킨 이순신 장군의 삶과 업적을 소개하는 곳이다. 충무공의 유품과 관련 유물을 모으고, 임진왜란 당시의 다양한 사료를 수집해 2011년에 문을 열었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 내에 지어졌는데, 최대한 자연과 어울리도록 지형을 그대로 살린 설계가 돋보인다. 2개의 상설 전시실과 1개의 기획전시실을 갖췄고, 4D 체험 영상실을 운영 중이다.
정경달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에 선산부사, 이순신 종사관, 남원목사, 오위장, 접반사, 영위사, 청주목사 등을 역임하며 많은 공을 세웠다. 뛰어난 지략으로 군사들을 잘 먹이고 일본군과 잘 싸웠을 뿐만 아니라 이순신을 잘 보좌해 전쟁에서 이순신이 큰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또한 그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를 생생하게 기록한 『반곡 난중일기』을 남겼다.
종교와 문화 /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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