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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유·무형문화재를 보유한 ‘멋’과 ‘흥’의 문화도시인 양주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콘텐츠. 유·무형 문화재뿐 아니라 양주의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과 향토유적까지 총망라해 양주 곳곳의 문화재를 조명했다. 사진과 글을 통해 양주 문화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책자
600여 년의 역사가 숨 쉬는 양주의 역사와 문화재를 소개한 영상. 양주관아, 양주향교, 온릉, 조소앙기념관, 해유령전첩지, 회암사지 등 대표 유형문화재 6곳과 양주별산대놀이 와 양주소놀이굿 등 무형문화재를 영상으로 생생히 확인할 수 있는 콘텐츠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터에는 무학대사비가 세워져 있다. 무학대사는 조선 최초이자 마지막 왕사로 성품이 순박하고 겸손하여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무학대사의 드높은 도를 기리기 위해 1410년 태조에 의해 비석이 건립되었다. 중간에 비석이 훼손되는 수모를 겪었지만, 1828년에 순조가 비석을 다시 세웠다. 태조로부터 각별한 존경을 받았던 무학대사는 그의 일생과 업적이 비석에 담겨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에 백석읍이라는 곳이 있다. 이곳에 조선시대 성종 무렵, 우애가 깊은 두 친구가 살고 있었는데, 한 친구의 이름은 ‘바위’이고, 다른 친구의 이름은 ‘두꺼비’이다. 바위는 과거 시험을 보아 병조판서에 오르지만, 다리가 불편한 두꺼비는 점치는 것을 배워 점쟁이가 된다. 점쟁이가 된 두꺼비는 바위의 도움으로 한양에서 유명해진다. 임금의 잃어버린 옥대를 찾아주고, 임금의 시험을 통과해 부자가 되어 두 친구는 우정을 함께 나누었다고 한다.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에는 어사대비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정조는 1792년 9월에 광릉에 참배하러 가는 길에 양주관아에 3일간 머무르며 직접 양주 백성들의 삶을 보살피는 등 어진 정치를 베풀었다. 당시 양주목사였던 이민채가 정조의 양주 행차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 어사대비이다. 이 비석은 정조가 양주관아에서 활을 쏜 것을 기린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지만, 비석의 뒷면에는 정조가 양주 백성에게 베푼 은혜가 기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양주시 덕정시장은 지하철1호선 덕정역 앞에서 열리는 전통시장이다. 양주시 동부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매월 2일과 7일에 개설하며, 조선시대부터 끊임없이 열렸다. 덕정시장의 규모기 커진 것은 한국전쟁 중 영국군과 터키군이 양주에 진주하면서 부터다. 이들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물자가 덕정장에서 거래되었다. 2000년대 이후 신도시 개발 등으로 인구가 증가하면서 시장 또한 활기를 띠고 있다.
양주 서쪽 5리 떨어진 곳에 있는 대모산성은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해발 212m의 대모산 정상부를 둘러싼 둘레는 1,400m이다. 매초성(買肖城)으로 비정(比定) 되기도 하며, 조선시대 각종 사료에서 대모성산(大母城山), 대모산성(大母山城)의 기록이 확인되며 세종 시기 군사훈련지로서의 강무장으로 선정된 바 있다. 동문지 발굴 조사 결과 이 일대는 통일신라 시대 약 9-10세기 경부터 고려시대 중기까지 사용되다가 조선시대에 폐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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