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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서남부 끝자락 강진의 마을 이름을 이야기로 풀어낸 책자. 강진읍과 성전면의 73개 마을을 찾아가 마을과 땅 이름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고 당대의 삶 이야기를 채록해서 현대적 스토리텔링으로 담았다. 마을 이름을 넘어 도로명까지 탐색한 강진군 연혁 콘텐츠
강진 땅뺏기놀이는 칠월 백중날 김매기를 모두 끝내놓고, 서로 덕석기(폭이 큰 깃발)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두레놀이다. 진 편에서는 논밭을 몇 마지기 내놓아야 하므로 사뭇 치열하게 벌어진다. 노동의 고단함을 잊고 농촌 사회의 결속을 다지는 것은 물론 생산력에 대한 의지를 높이는 기능을 한다.
전라남도 강진군 작천면에는 강진 병영 박약국(朴藥局) 문적이 있다. 박약국 문적은 조선 후기 전라도 강진에 거주하였던 강재(剛齋) 박기현(朴冀鉉) 선생의 가문에서 운영한 약국 문서이다. 약재 매입 및 판매 기록과 외상 장부, 처방전 및 『동의보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후기 민간 지역 의약업의 실태와 강진 일원 약국 경영의 전모를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정약용은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경상도 장기현으로 유배되었다가, 이후 백서사건이 일어나자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정약용은 형 정약전과 함께 삼남대로를 따라 남도로 유배를 갔으며, 전라도 나주에서 형 정약전과 이별했다. 나주에서 영암군을 거쳐 강진군으로 이동했던 구간이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로 조성되었다. 남도 유배길은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에 있는 다산초당 근처의 다산수련원에서부터 영암군에 이르는 65.7㎞ 구간이다.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유배 생활을 하던 정약용이 머물렀던 거처이다.
강진군 용면 화방마을 주민들은 정월대보름이면 마을에 모셔진 신에게 제의를 지낸다. 당산제라 부르는데 신격은 당산과 입석이다. 마을주민들은 당산을 매우 영험하게 생각한다. 제의 비용은 마을의 공동 기금으로 충당하며 돼지머리 등의 제물이 올라간다. 과거에는 제의가 끝나면 줄다리기를 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는다. 제의를 지내는 제관이 별도로 있다.화방마을주민들의 당산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준비하는 부분이 적다. 금줄을 치지 않을 뿐만아니라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이 지켜야 하는 부분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되며 제의 과정에서는 축관이 축을 읽는다. 마을의 안녕과 함께 주민들이 한 해 동안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이 주요 내용이다.
강진 전라병영성은 사적 제397호이며 전라남도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75번지 일대에 위치하는 평지성으로 전라도 53주 6진을 관할하던 군사 총 지휘부였다. 전라병영성은 ‘설성’ 혹은 ‘세류성’이라고도 하는데, 조선시대들어 1417년 첫 병마도절제사로 임명된 마천목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는 1997년 사적으로 지정됨에 따라 1998년부터 전체적인 정비사업이 시작되어 성곽전체와 동서남북 4문이 복원되어 있다.
강진읍의 지형은 풍수지리학상으로 ‘황소’가 누워있는 와우형국이라 한다. 읍의 형국을 유심히 보면 흡사 엎드린 황소가 그 턱을 목야에 걸고 콧김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인지 강진 사람들은 황소와 연관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즉, 주령을 우두봉이라 부르는 것은 황소의 머리를 뜻함이요, 성곽(강진읍성)은 소의 얼굴을 말함인데 큼직한 황소가 양편 귓전을 넌지시 펼치고 엎드린 모양은 천만년의 풍우에도 굽힘이 없는 의연함과 말없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성실히 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강진읍에서 병영으로 넘나들던 까치내고개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강진 출신의 양씨(梁氏)라는 선비가 한양에 과거보러 올라가 객주집에 신세를 졌다. 그러나 그는 과거에 떨어져 귀향할 생각에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러자 객주주인이 사정이 생겨 그동안의 숙식비와 왕복 노자까지 후하게 주겠다고 꾀어 강진을 동행하자고 제안한다. 그들은 병영을 거쳐 강진읍이 내려다 보이는 까치내고개(鵲川峙)에 올라섰다. 양씨는 탐진만을 내려다보며 대성통곡을 하면서 물에 뛰어 들었다. 한양 객주주인은 돈받으러 왔다 살인의 죄까지 뒤집어쓰게 생겨 서울로 도망가버리고 강에 뛰어든 젊은이는 죽은 시늉만 하고 잠수를 해 건너 강가에 도착해 살아났다고 한다.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에서 동남쪽으로 10리 거리에 군동면 쌍덕리(雙德里)란 마을이 있다. 이곳은 마량(馬良)으로 가는 길목마을로 평덕(平德)과 관덕의 두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이 평덕마을에 전설의 굴레바위가 있다. 주민들은 ‘굴레바위’라 하며 ‘구유바위’ 혹은 ‘구시바위’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이 바위가 맞붙어 하나였다고 한다. 풍수지리상 이 바위는 소가 죽을 먹는 구유로 1백m가량 뒤에 있는 배씨(袞氏)들 선산이 소머리형국이며, 부근을 흐르는 냇가가 소고삐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 굴레바위에 대한 두가지 전설이 전해져 오고있다.
전라북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고려청자 재현사업소에서 동북쪽으로 약 6km쯤 떨어진 용운리(龍雲里) 항동(항골)에는 정수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다. 이곳 천계산 중턱에 묘적사와 쌍계사가 있었는데 묘적사에는 천불(千佛)을 모셨으며, 쌍계사에는 북과 종을 소장하고 있었다. 위의 절들은 조선초기 왜구의 침략으로 모두 불에 타 버렸는데 만력(萬曆) 2년 갑술년(1574)에 산인(山人) 사민(思敏)이 옛절 그대로 중수하였다고 한다.
용소(龍沼)는 군동면 용소리(龍沼里) 안지마을 앞에 있는 큰 늪(沼)이다. 이 용소를 앞에 놓고 자리 잡은 안지마을에는 아름드리 고목과 울창한 대나무숲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늪의 북쪽 언덕에는 낭떠러지 절벽이 있고 이 절벽에 굴이 있는데 용소의 물이 잠겨 있어 아무도 그 깊이를 모른다. 이 굴은 옛날에 용이 살았던 굴이라고 하며 용 관련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강진읍에서 23번 지방도로를 따라 마량으로 가는 도중에 칠량면을 바로 지나 바닷가에 저두리(猪頭里)란 마을이 있다. 이 마을에 가난한 정(鄭) 총각이 있었는데 그의 지극한 효성과 착한 마음이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복이 내렸다는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의 만덕산에는 백련사(白蓮社)라는 절이 있다. 이곳 대웅전에는 이곳 대웅전에는 지금도 김생(711~791년 사람, 海東書聖으로 불리움)의 글씨라는 “백연사(白蓮寺)”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임진왜란때 왜병이 이 절에 불을 질러 놓고 살펴보니 현판이 김생의 글씨라 왜병들도 이 서성(書聖)의 글씨가 중함을 알았던지 불에 타지 않도록 떼어놓아 오늘날까지 전해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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