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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경기도 중심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의 중심 동두천을 홍보하는 영상이다. 동두천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 중에서 국가지정보물, 경기도 지정 유·무형 문화재, 동두천시 지정 유·무형 향토문화재와 아직 지정되지 않았지만 익히 알려진 향토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한반도 경기도 중심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의 중심 경기도 동두천을 홍보하는 영상의 요약본(9분)이다. 동두천 곳곳에 있는 문화유산 중에서 국가지정보물, 경기도 지정 유·무형 문화재, 동두천시 지정 유·무형 향토문화재와 아직 지정되지 않았지만 익히 알려진 향토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경기도 동두천의 경양식집 56하우스는 1969년 문을 열었다. 현 오충호 대표의 부친이 미군부대에서 셰프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개점한 이 식당은 2대째 운영하는 중이다. 56하우스는 '오'씨 가족 '6'식구가 운영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랍스터 요리와 스테이크, 햄버거 등이 유명하며 스파게티, 라이스 등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제 각각 고루 맛있다.
동두천역은 경기도에 위치하며 서울과 북한 원산을 잇고 있는 곳이다. 6.25 전에는 우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우시장이 남아있지 않지만 떡갈비 식당만이 자리를 지키며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서울지방을 중심으로 떡갈비는 지역마다 다양한 조리법을 가지고 있다. 30년이나 지났지만 동두천만의 떡갈비 맛을 보존하기 위해 한결같은 조리법을 유지하고 있다.
6·25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과 동고동락해 온 이 지역은, 동두천 기지촌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했다. 또한 한국 록 음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양공주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74년 동안 주한 미군과 얽힌 수많은 애환이 켜켜이 쌓인 이곳에서, 나는 그곳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기록했다.
동두천에는 미군기지가 동서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그중 동쪽 지역에는 미군 부대 호비기지가 있다. 광암동은 호비기지 정문이 위치한 곳으로, 한때는 보산동 못지않게 미군들로 인해 성시를 이루었던 지역이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의 철수로 그 흔적만 군데군데 남아있다. 나는 그 흔적을 찾아보았다.
미군 2사단을 중심으로 동두천의 지역경제가 활성화되었던 1960년대, 미군 부대 보급품과 수입품을 주로 판매하는 상점과 유흥업소가 양키시장에 밀집하면서 오랫동안 호황을 누렸다. 1950년대부터 각종 미군용품과 식품을 판매해 온 애신시장(당시 표현으로 양키시장)은 한때 40여 개 점포가 성업했으나, 경기 침체와 인구 공동화로 2025년 현재 20여 개 점포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동두천시는 양키시장을 1950~60년대 ‘추억의 거리’이자 특화거리 조성의 역사적 자원으로 활용해 관광상품을 발전시키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1960년대~1980년대는 미국영화가 한국 대중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던 시기였다. 동광극장은 동두천 시민들에게 근대식 문화생활 공간이었고, 1979년에는 동두천 경제활동 인구의 36%가 미군을 대상으로 한 생업에 종사할 정도로 지역의 경제와 일상이 미군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다. 그만큼 주말이면 상점가와 유흥가, 영화관은 늘 붐볐다. 또한 미군기지 용역과 관련된 상인들의 생활리듬은 주말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고, 급여일인 미군 ‘페이데이’(격주 금요일) 전후로 상권이 더욱 활발해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이런 흐름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 패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동두천의 특색 있고 역사 깊은 음식점 가운데, 식재료가 귀하던 시절 미군부대에서 나온 재료로 만든 햄버거는 ‘정통 미국 음식’으로 미군들이 즐겨 찾던 대표 음식 중 하나였다. 지금도 그 정통을 고수하면서, 시대의 변천에 맞춰 조금씩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동두천은 6·25전쟁 이후 제7사단이 동두천에 주둔하면서부터 미군을 대상으로 한 외식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치킨 바비큐는 비교적 낮은 가격에 쉽게 접할 수 있는 먹거리였고, 기지 주변에는 미군을 상대로 참숯을 이용한 훈연·그릴 방식의 가게들이 인기를 끌었다. 치킨 바비큐는 미군들의 향수병을 달레는 데 최고의 먹거리로 여겨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의 음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특히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기지촌 상권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시기여서, 바비큐 업소의 매출이 다른 음식점보다 높았다고 한다. 보산동에는 바비큐로 유명한 업소 두 곳이 있어,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동두천의 부대찌개는 6·25 전쟁 직후 굶주림과 영양실조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잔반이 동네 구멍가게 등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그 햄, 소시지, 스팸, 베이컨 등을 김치와 고추장, 고춧가루로 양념해 한국식으로 볶아 먹었고, 이것이 부대찌개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군부대 식재료가 이른바 ‘블랙마켓’ 경로를 통해 양키시장(양키라는 명칭은 당시의 사회적 언어환경을 반영한 표현)으로 유통되면서 부대찌개가 더 널리 퍼졌고, 한때는 ‘존슨탕’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다만 ‘존슨’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필요해 보이며, 글에서는 “아마도 미군 취사병의 이름이 아닐까” 정도로 조심스럽게 추정하는 표현이 적절하다.
수제구두의 양화점들이 양복점과 같이 성수기를 맞은 이유는 미군들이 군화 외에 즐겨 신는 경우가 많았고 핼러윈, 크리스마스, 송년회 등 잦은 파티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수제화는 가격 면에서도 저렴하고, 다양한 디자인과 좋은 품질로 인기가 좋아 미군들이 본국으로 선물로 보내거나 한 사람이 대여섯 켤레를 맞추는 것이 기본이었을 정도로 수요가 높았다. 그러나 2004년, 주둔미군의 이라크 파병 등 미군 감축과 평택 이전을 계기로 지역 경제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양화점의 숫자도 줄어들었고, 현재는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추세다.
동두천은 우리나라 록음악의 발상지이자 팝음악의 태동지로, 초기 현대 대중음악의 주요 배후지 역할을 했다. 특히 동두천 락 페스티벌은 종전 이후 미2사단이 주둔하며 서구문화의 창구 역할을 담당했던 도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1999년, ‘쾌락지수 99’로 처음 시작한 이 축제는 2025년 현재 제25회를 맞아, 지역문화 특성을 기반으로 한 록 뮤직페스티벌이자 록밴드 등용문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또한 4년 연속 ‘경기관광축제‘로 선정되는 등 성과를 이어왔으며, 202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지역문화매력 로컬100’에도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동두천 보산동(당시 보산리)은 6·25 전쟁 이후 미군이 주둔하면서, 이른바 ‘기지촌’이라 불리는 지역적 특수성을 안고 살아온 곳이다. 그중에서도 서구 문화가 가장 먼저 밀려들고, 미군을 위한 위락시설로 클럽들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음악 장르가 이곳을 통해 퍼져 나갔다. 그 흐름 속에서 동두천은 ‘록’의 발원지로, 나아가 한국 팝의 시원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 영향으로 가수와 코미디언, 연극인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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