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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경기도 중심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의 중심 동두천을 홍보하는 영상이다. 동두천 곳곳에 산재한 문화유산 중에서 국가지정보물, 경기도 지정 유·무형 문화재, 동두천시 지정 유·무형 향토문화재와 아직 지정되지 않았지만 익히 알려진 향토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한반도 경기도 중심에 위치한, 역사와 문화의 중심 경기도 동두천을 홍보하는 영상의 요약본(9분)이다. 동두천 곳곳에 있는 문화유산 중에서 국가지정보물, 경기도 지정 유·무형 문화재, 동두천시 지정 유·무형 향토문화재와 아직 지정되지 않았지만 익히 알려진 향토문화유산을 소개한다.
경기도 동두천의 경양식집 56하우스는 1969년 문을 열었다. 현 오충호 대표의 부친이 미군부대에서 셰프로 근무했던 경험을 살려 개점한 이 식당은 2대째 운영하는 중이다. 56하우스는 '오'씨 가족 '6'식구가 운영한다는 의미로 지은 이름이다. 랍스터 요리와 스테이크, 햄버거 등이 유명하며 스파게티, 라이스 등 다양한 메뉴가 있는데, 제 각각 고루 맛있다.
동두천역은 경기도에 위치하며 서울과 북한 원산을 잇고 있는 곳이다. 6.25 전에는 우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우시장이 남아있지 않지만 떡갈비 식당만이 자리를 지키며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경기, 서울지방을 중심으로 떡갈비는 지역마다 다양한 조리법을 가지고 있다. 30년이나 지났지만 동두천만의 떡갈비 맛을 보존하기 위해 한결같은 조리법을 유지하고 있다.
혜곡 최순우는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이다. 박물관 전시, 유물 수집과 보존처리, 조사, 연구는 물론 교육, 홍보, 박물관 외곽 단체의 활성화, 인재양성에 많은 노력과 애정을 기울였다. 또한 뛰어난 안목을 지닌 미술사학자로서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지키며, 한국미술의 이해와 보존, 진흥에 크게 이바지했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의 민족 문화 말살정책에 맞서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수장가이다. 전형필은 자신의 전 재산을 바쳐 우리 문화재가 다른 나라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 문화재의 보존과 관리, 연구와 전승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가 세운 ‘간송미술관’은 문화재에 담긴 우리 민족의 정신을 보호하고 후손들에게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우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인천개항장 문화재 야행은 2016년 ‘인천 개항장 밤마실’로 시작하였다. 인천은 1883년 조일수호조규로 인해 개항되면서 개항장과 조계지를 갖게 되었다. 이곳은 근대화의 관문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수탈의 역사가 공존하고 있는 곳이다. 인천개항장 문화재 야행은 이런 근대 문화재를 밤문화로 즐길 수 있는 축제이다. 인천 가치 재창조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이 축제는 2017년부터 상반기와 하반기로 나누어 개최되고 있다.
홍성 홍주성은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에 있는 읍성으로 1972년 10월 14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31호로 지정되었다. 홍주성은 1906년 5월 20일부터 31일까지 홍주의병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룬 곳으로 의병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홍주성에서 물러났다. 홍주성은 조선 초기 성의 특성과 조선시대 관아의 구조와 형태를 살필 수 있는 읍성으로 중요하다.
소금장수가 길을 가다가 쌍분묘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마침 무덤 혼령들의 제삿날이라 제사음식을 먹으러 간다. 며느리가 추운 날에 돌아가셔서 고생이라는 말을 들은 시어머니가 손주를 불에 떠밀어 버린다. 시아버지는 불에 덴 손주의 치료에는 무슨 약이 좋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소금장수가 제사를 부정하게 지낸 집을 찾아가서 자신이 무덤가에서 들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며느리가 다시 제사음식을 차려 시부모께 잘못을 빌고, 불에 덴 자식을 치료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오죽헌의 권 노인이 서울에서 죽었다. 권 노인이 죽던 날, 한 동네에 살던 최 씨의 아버지도 죽었다. 최 씨가 진부에서 장사를 하다가 아버지의 제사 때문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죽은 권 노인의 혼령과 동행한다. 권 노인은 자식들이 제사를 늦게 지내는 바람에 집 근처에 오면 닭이 울어서 제사 음식을 받아먹지 못한다고 말했다. 권 노인은 최 씨를 통해 자식들에게 닭이 두 번 운 다음에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이천서씨가 이천을 본관으로 한 성씨로, 고려의 대표적인 문벌귀족이었다. 양경공 종가가 경주로 내려온 것은 서유의 증손자인 서석손 때이다. 양경공 종가에서는 서유의 불천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서유는 태종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인물이다. 양경공 종가의 불천위 제사는 고위와 비위를 합설해서 지내며 제기의 숫자는 40개이나 떡과 나물은 1개의 제기에 담기 때문에 제물의 종류는 그보다 훨씬 더 많다. 음력 6월 3일 자정에 제사를 지내며, 지금도 삼일재계를 지키고 있다.
진성이씨의 시조인 이석은 대대로 진보현에서 살던 토착 호족의 후예이다. 진성이씨의 안동 거주가 시작된 것은 이자수 때이다. 퇴계 이황은 이석의 7세손으로 성인이 종택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어머니가 노송정종택 안채 퇴계 태실에서 퇴계를 낳았다. 퇴계는 50세 때 토계리에 집을 짓고 살았다. 이후 퇴계의 집터는 경작지로 사용되었는데, 1715년 권두경 등이 주축이 되어 추월한수정을 건립한다. 추월한수정은 일제의 방화로 소실되고 1926년 13대 종손이 종택을 조성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퇴계 종가에서 모시는 퇴계의 불천위 제례음식은 근검절약했던 퇴계의 가르침에 따라 제물 수량이 매우 소박한 편이다.
의성김씨는 김석을 시조로, 김용비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에서 세거하던 성씨이다. 김성일이 세거한 금계리는 ‘천 년 동안 패하지 않는 땅’으로, 김성일이 안동의 검제마을을 세거지로 삼은 이후 15대에 걸쳐 종가가 이어오고 있으며,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김성일 불천위 제례에는 송기송편과 마를 올리며,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과 마늘 및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 학봉종택 내에 있는 운장각에는 보물로 지정된 문서 등을 보관․전시하고 있다.
노송정 이계양 종가는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위치해 있다. 온계의 수려한 경치에 감탄한 이계양은 스님이 잡아준 집터에 종택을 건립하여 집성촌을 형성하게 된다. 이계양은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에 뜻을 접고 예안으로 귀향하여 은둔처사의 삶을 살았다. 이계양은 단종이 승하한 10월 24일 산에 올라가 영월을 바라보며 곡을 하고 절을 했다고 한다. 노송정 불천위 제사는 음력 5월 16일 저녁 8시경에 지낸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제사 시간과 제수 장만에 있어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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