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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봉화군 거수마을의 성황재를 재연한 영상이다. 성황제란 마을을 지키는 성황신에게 올리는 제의를 말하며, 주로 풍년, 무병장수 같은 마을 공동체의 안녕을 기원했다. 토템 신앙을 간직한 거수마을의 거북바위 서낭당에서 성황제 제의를 재연했다.
경북 봉화군 봉화읍 거수마을에 있는 거북바위에 대한 영상이다. 거수는 광산 김씨의 집성촌으로, 거북이를 닮은 바위를 수호신으로 삼아 당제를 지냈다. 거북바위는 장수를 상징하는 동물 모양 바위를 신성시한 토템 신앙을 보여주는 향토유물이다.
경북 봉화군에 산재한 보부상의 흔적을 찾아가는 다큐멘터리이다. 보부상은 전통사회에서 시장을 중심으로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행상을 하던 상인을 말한다. 천민이라는 신분적 제약에도 궂은 일을 마다치 않으며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교환경제를 이루는 중간자 역할을 했던 보부상의 변모 양상을 다룬다.
경북 봉화지역의 전통적인 벌목 과정, 도구 등을 설명하고 목도소리를 재연한 영상이다. 경북 봉화지역의 전통적인 벌목 과정, 도구 등을 설명하고 목도소리를 재연한 영상이다.
죽방울놀이란 장구 모양의 방물을 던져 올렸다가 받는 놀이다. ‘죽방울(竹-)’이라고 불리지만, 대나무로 만들면 쉽게 깨지기 때문에 밤나무, 은행나무, 박달나무 등으로 만든다. 죽방울을 손으로 던져 받거나, 끈의 탄력을 이용해 죽방울을 이리저리 놀린다. 연원은 중국의 쿵주 놀이며, 주로 유랑 연희패와 보부상들에 의해 행해졌다.
남한산성은 경기도 광주시, 성남시, 하남시를 마주하고 있다. 조선시대에 남한산성은 정기시장이 열리면서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의 통행이 많았을 뿐만 아니라 관청을 드나들던 사람들도 자주 이용하던 경로였다. 남한산성을 통과하는 길은 조선시대에 경기도 여주에 있는 왕릉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들이 이동하던 거둥길로도 이용되었다. 지방에서 과거를 치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들도 남한산성 길을 이용했다. 남한산성 옛길은 조선시대의 역사와 문화가 남아 있는 길이다.
최도환의병장은 강원도 화천 출신으로 을사늑약이후 의병투쟁에 참여하여 강원도 서북부지역에서 뛰어난 활약을 하였다. 1906년 의병을 일으킨 그는 200여 명의 의병을 이끌고 주로 양구를 중심으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국내에서의 항일투쟁이 점차 어려워지자 최도환은 한때 중국 간도지역으로 이동하여 의병의 재기를 도모하였으나 병이 들어 귀국하였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보부상들의 옷 바꿔 입기는 보부상들의 동무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풍속으로 보부상들은 같은 옷을 더불어 입음으로써 동포의 정을 나눴다. 한편 바가지 밟기는 보부상들이 즐기던 놀이로 오늘날의 이어달리기와 유사하다.
시장은 일반적으로 "판매자와 구매자 간에 상품거래가 행해지는 장소"를 말하며, 조선시대에는 장시(場市), 장(場), 향시(鄕市)라고 불렸다. 오늘날의 정기시장은 5일마다 장이 서는 오일장으로 대표되지만, 조선시대에는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서 열리는 정기시장도 있었다. 또한, 보부상은 지방의 오일장을 장악했던 전문적인 상인으로 장과 장을 이동하며 상업 활동에 종사하였다.
행상(行商)은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을 가리킨다. 한국의 대표적인 행상집단인 보부상(褓負商)은 조선 건국과 함께 전국적인 상인단체로 그 조직이 양성화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바로 백달원(白達元)이다. 백달원이 이성계를 돕는 과정은 여러 가지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백달원은 황해도 토산(兎山)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조선시대 전문 상인집단인 보부상단의 시조로 여겨지는 인물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상무동사'는 일제의 경제 침략에 맞서 우리 민족의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신민회에 의해 1908년 평안북도 용천에 만들어진 회사이다. 상무동사는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었으며, 수익금 일부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제정을 지원하였다. 또한, 시장세 납부를 거부하는 ‘백일세항세운동’을 주도하기도 하였다.
행상(行商)들은 각종 위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조직적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태백산맥이 지나는 강원도와 경상북도를 다닐 때는 고개에 산신당이나 서낭당을 지어놓고 그들의 무사안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모습이 해당 마을 주민들에 의해서 남아 있는 곳이 강원도 태백시의 ‘태백산 산령각(太白山山靈閣)’이다.
보부상들은 봇짐이나 지게를 운반도구로 이용하여 전국의 장터를 누볐다. 특히 부피가 크고 무거운 품목을 취급하던 부상들이 주로 지게를 썼으며, 지역에 따라 쪽지게나 바지게 등을 사용하였다. 쪽지게는 주로 서해 도서의 평야 지역에서 등짐장수들이 쓰던 지게이다. 바지게는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 나는 수산물을 내륙으로 팔러 다니던 등짐장수들이 쓰던 지게이다.
보부상단은 보부상들이 서로의 이권을 지키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조직이다. 보부상들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효(孝)와 상부상조(相扶相助)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들은 이를 실천하기 위해 규율을 정하고, 지키지 않는 경우 장문법(杖問法)으로 처벌하였다.
김주영의 「객주」는 조선 후기 치열하게 살았던 보부상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1979년 6월부터 1983년 2월까지, 4년 9개월 동안 1,465회에 걸쳐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다. 보부상이 떠돌면서 살아내는 치열한 삶이 인간의 삶이며, 그것이 다른 이에게 도움도 주고, 때로는 피해도 주는 것임을 보여준다.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이 전국적 조직체계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이성계와의 인연으로 가능했다. 보부상의 우두머리로 불리는 백달원은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다. 이후 조선을 개국하고서도 관계를 유지함으로 최초의 보부상 조직인 ‘부상청’을 만들었을 때 수장을 맡아 보부상을 전국적 조직을 갖춘 상단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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