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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하구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자 사상공단 노동자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재첩국을 소재로 1970~1980년대 생활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재첩 재취, 유통, 판매 등에 종사했던 '재첩 아지매'들과 사상공단 노동자들의 애환을 생생히 담았다.
알프스하동섬진강문화재첩축제는 섬진강 전체를 아우르는 하동만의 색깔을 입힌 종합관광 축제이다. 2015년 처음 개최된 알프스하동섬진강문화재첩축제는 매년 7월경 하동읍 송림공원과 섬진강 일원에서 열린다. 대한민국 대표 여름 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황금 재첩 모형을 찾으면 금 1돈짜리 황금 재첩으로 바꿔주는 프로그램, 전통 방식의 섬진강 재첩잡이 체험 등이 대표 행사이다.
자염은 옛날부터 만들어오던 소금이다. 바닷물을 어느 정도 갯벌에서 증발시킨 후 남은 액을 솥에 끓여 만든다. 1908년 인천 주안 등지에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천일염전을 대규모로 만들었지만,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자염이 곧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염은 일제시대를 지나 1950년까지 생산되었다. 그러나 경제성이 낮아 일제시대부터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었다. 일제시대부터 1950년까지 자염을 생산했던 대표적인 지역이 낙동강 하구의 김해군 명지·녹산 염전이었다. 이 일대에 자염이 생산된 것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들어와 일본식 전통소금인 자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동시장은 바다와 산, 강이 어우러져 물자가 풍부한 경상남도 하동군에 오래전부터 개설된 시장이다. 하동시장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단연‘재첩국’이다. 재첩은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역 중에서 염분이 적고 물의 오염이 적은 깨끗한 곳에서 서식한다.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재첩을 조개류 중의 ‘보약’으로 여겼다. 재첩에는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들어 있어 간장의 활동을 도와주고, 타우린이 담즙 분비를 활발하게 해서 해독 작용을 하기도 한다.
하동 재첩국은 섬진강 하구에서 채취한 재첩을 부추와 함께 끓인 경상남도 하동군의 향토음식이다. 하동군에서는 재첩을 ‘강에서 나온 조개’라 하여 ‘갱조개’, 재첩국도 ‘갱조개국’으로 부른다. 경상남도 하동군에는 재첩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명소가 두 군데나 있다.
백두대간의 말단 부근에 자리한 여원재는 오래전부터 고개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가운데 통영로가 통과하던 구간이며, 공공업무를 수행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이용했던 역로인 오수도의 한 구간이었다.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이 경상도로 진출하기 위해 여원재를 넘다가 관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여원재의 서쪽을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고개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문경새재는 조선 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오가던 사람들의 주요 통행로였던 영남대로에 있는 고개이다. 새재는 예로부터 백두대간 북쪽의 한강과 백두대간 남쪽의 낙동강을 연결하는 영남대로에서 가장 높고 험준한 고개로 알려져 있으며 영남지방의 선비들이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이었다. 지금 우리가 걸을 수 있는 고갯길은 자동차의 통행이 가능할 정도로 폭이 넓지만, 조선 시대에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면서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었던 과거 길도 일부 남아 있다. 새재에 설치된 3개의 관문을 비롯해 고갯길 주변에는 옛날의 모습이 잘 간직되고 있다.
유곡도는 조선시대 경상도 문경에 있던 유곡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다. 경상북도의 문경시, 예천군, 상주시 등지를 통과하던 역로이며, 조선시대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어지던 영남대로의 일부 구간에 해당한다. 유곡도를 통과하던 영남대로는 문경새재를 사이에 두고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시켜주는 최단 구간이었기에, 영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이동하던 조세의 육로 이동 구간이었다. 또한 유곡도는 일본과 교역하던 항구인 부산포를 드나들던 물자가 한양으로 이동할 때에도 통과하던 구간이었다.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발원한 금강은 전라북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지를 거쳐 서해로 흘러든다. 서해에서 진입한 선박은 금강 하구에서 110㎞ 떨어진 부강 포구까지 항해가 가능했으며, 부강에서 하역된 수산물은 멀리 충청북도 및 경상북도, 강원도의 내륙지방으로까지 육로를 따라 운송되었다. 내륙지방에서 특히 필요로 했던 소금이 운송되던 소금길은 강원도 영월까지 이어지기도 했고 경상북도 상주까지 펼쳐지기도 했다. 금강의 소금길은 육지의 육상 교통로를 따라 사방으로 형성되었다. 소백산맥을 넘은 내륙지방으로까지 금강을 통해 소금이 운송되었다.
경상북도 봉화군과 안동시의 낙동강변에 걸쳐 있는 예던길은 이황이 학문을 배우기 위해 숙부가 청량산 중턱에 지은 오산당(지금의 청량정사)까지 낙동강변을 오르내리던 길이다. ‘퇴계오솔길’로 불리기도 한다.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봉화의 청량산까지 50리 길을 거닐었기 때문에, 예던길의 구간은 안동에서부터 낙동강을 따라 봉화의 청량산 자락까지 이어진다. 봉화군 명호면의 구간이 보통 낙동강 예던길로 알려져 있으며, 그보다 남쪽의 안동시 도산면 구간은 퇴계오솔길로 나뉘어 불리기도 한다. 경상북도에서는 낙동강 프로젝트 사업의 일환으로 낙동강을 따라 옛 선비들이 걷던 예던길을 복원하여 낙동강의 생태경관 자원과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체험 코스를 조성했다.
강원도 태백시에 있는 피재는 삼수령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동해안의 삼척에서 난리가 나면 삼척에 살던 사람들이 이상향으로 인식하던 황지 연못 방향으로 피난 가는 길에 이용했던 고개라는 데에서 피재라 부른다. 이 고개는 한강, 낙동강, 오십천의 물줄기가 시작하는 곳이라는 데에서 삼수령이라 불린다. 삼수령 터널이 개통하면서 삼수령을 넘어가는 길은 옛길이 되어 버렸다.
김해평야(金海平野)는 낙동강 하류의 낙동강과 서낙동강 사이의 삼각주와 그 인근의 평야지대를 가리킨다. 낙동강 삼각주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삼각주이다. 퇴적이 계속되어 삼각주는 매년 바다로 향해 늘어 가고 있다. 기후는 해양성 기후로서 온난하며, 남해산맥(南海山脈)을 등지고 바다에 면한 배산임해지(背山臨海地)는 동난하량(冬暖夏凉)하여 뛰어난 보양지대를 이룬다. 평야의 대부분은 벼농사지대이나 북부에서는 과수, 중남부에서는 채소 재배지로 이용된다.
1927년 7월 『조선지광』에 발표된 조명희의 단편소설이다. 낙동강 하구 구포에서 태어난 박성운은 못배운 것을 한으로 여긴 조부와 부친의 영향으로 근대교육을 받고, 군청 농업 조수로 생활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독립운동에 뛰어들어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 연해주,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며, 사회주의자가 된다. 고향으로 돌아온 성운은 고향사람들이 공동 경작을 하고 지내던 낙동강변의 갈대밭이 일본인의 소유로 넘어가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이다가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받고 병보석으로 풀려난다. 그러나 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의 연인이자 동지인 로사는 성운의 뜻을 이을 것을 결심하며 대륙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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