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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명재상 고형산에 대한 책이다. 강원도 횡성 출신인 고형산(高荊山)은 성종 14년(1483) 과거에 합격하고 무려 46년간 관료로 활동했으나 행적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고형산의 발자취를 조사하여 그의 생애와 관료 활동, 관련 유적과 설화를 수록했다.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 ‘마산(馬山)’이라는 곳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횡성군에 살던 황장군이 용마(龍馬) 한필을 길렀다. 용마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황장군은 용마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황장군이 말 등에 올라탄 후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용마와 함께 달렸다. 황장군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용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화살 한 개가 날아와 땅에 꽂혔다.
한 마을에 고을 영감이 있었는데, 잔소리가 심하고 욕심이 많아 가난한 사람이 있어도 도와주지 않았다. 하루는 스님이 나타나 시주를 하라고 했는데, 고을 영감은 시주를 하지 않았다. 영감은 모래를 한 바가지 퍼다 주었고, 스님은 그것을 받아서 절에 갔다. 스님은 시주받은 모래 한 바구니를 부처님께 시주했다. 이를 받은 부처님은 이후 죽은 영감을 혼을 내었고, 영감은 살려달라고 빌었다. 스님은 영감에게 좋은 곳으로 보내줄테니 앞으로 잘하라고 했다.
횡성군 서운면 유현리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자 전국에서 7번째로 지어진 서양식 성당이다. 벽돌을 쌓아 건축한 서양식 성당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됐다. 로마네스크 양식인 풍수원 성당 건물은 단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정규하 신부는 성당에 이어 1912년 사제관을 지었다. 정규하 신부는 50년 가까이 풍수원성당에서 사목하면서, 강원도 내 주요 공소들을 본당으로 승격하도록 도왔다. 정규하 신부는 한국인으로는 4번째 서품을 받은 사제다. 풍수원성당 건물은 강원도 지방 유형문화재이며, 사제관은 등록문화재 제163호다.
어느 날 노인이 밖에 나가니 물살이 갈라지고 있었다. 그러더니 용이 솟더니 하늘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노인은 용이 올라간다는 말 대신 구렁이가 올라간다고 했다. 결국 용은 올라가지 못하고 할아버지에게 떨어졌다. 꼬리를 흔들면서 글자를 썼는데, 할아버지가 구렁이 올라간다고 해서 못 올라 갔다고 적었다고 한다.
옛날엔 바위 밑에 호랑이가 많았다. 어느 날 나물 뜯으러 어느 골짜기를 가니까 아주 예쁜 새끼 호랑이 두 마리가 있어서 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 후 둥지를 틀어놓고 막아 놓았다. 밤이 되자 호랑이가 와서 자기 새끼를 모두 데려갔다. 이튿날 다시 그 바위를 찾아가자 바위 꼭대기에서 호랑이가 어흥 소리를 내며 새끼들을 지키고 있었다.
여름철 베옷을 입고 쇠갓을 쓰고 뻘건 행장을 치고 제절밑으로 지나가면 지관사는 하관을 하라고 했다. 그러나 뻘건 행장에 쇠갓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해가 너울질 때 쯤 하늘에 구름이 모여들고 천둥가 번개가 치니 가난한 집 부인이 솥뚜껑을 머리에 썼다. 그걸 본 지관사는 부인에게 하관을 했다고 한다.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던 두 노인이 있었다.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지만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연세도 많았던 두 노인은 어느 날 몸이 아파 약을 지으러 가려 했으나 돈이 없었다. 쌀도 없고, 몸도 아팠던 두 노인은 목숨을 끊으려고 시도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 두 노인을 구해줬다. 이후 두 노인은 넉넉히 생활을 할 수 있었고, 그들이 살던 집을 되살이 집, 그들의 묘를 되살이 묘 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 노부부가 있었다. 노부부는 너무나 가난해서 나무를 해서 팔아서 살아나갔다. 어느 날 두 노인이 누워 있으니 까치가 깍깍 울더니 갑자기 노루가 한 마리 나타났다. 노루를 따라가 보니 노루가 한 골짜기에서 땅을 파라고 알려주었다. 그 안에서는 구슬같은 주머니가 하나 나왔다. 열어보니 패철 같은게 하나 있었다. 집으로 그 패철을 들고오니 쌀도 나오고, 돈이 오고 했다. 하루짝 꿈을 꾸니 패철을 절대 남에게 빌려주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마음 좋은 노부부는 이웃에게 패철을 빌려줬고, 하루 아침에 재산은 사라지고 말았다.
한 대감집의 옆집에 어머니, 아버지, 아들이 살았다. 그 옆집의 부인은 인물이 좋았고, 대감집의 부인은 얼굴이 미웠다. 그래서 대감은 옆집의 아들과 내기를 해 부인을 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빼앗길 수 없었던 아들은 꾀를 내어 내기에서 빠져나가고, 결국 대감으로부터 어머니와 부인 모두를 빼앗기지 않고 살리게 된다.
삼한시대 마지막 왕인 태기왕은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밀려 태기산까지 올라오게 되었다. 태기왕은 갑천이라는 섬강에 성을 쌓고 진을 치고 농사를 짓고 군사를 데리고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박혁거세에게 밀려 어답산으로 가게 되었고, 그 후 악산이라는 큰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었는데, 신라군이 들어와서 전멸시켜버렸다.
한 사나이가 나무를 해서 오다가 깨금이 하나 굴러서 내려와서 가족들을 주기 위해서 하나씩 넣어서 오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그래서 한 집에 자러 들어가려고 했는데, 그 집에는 10대를 산 할아버지가 있었다. 10대를 산 할아버지는 밤이 되면 고양이처럼 자손에게 달려들어서 잠을 못 자게 한다고 했다. 밤이 되자 할아버지는 변했고, 사나이는 들어서 내던졌는데 죽어버렸다. 밤새 벌벌 떨고 있던 사나이와는 다르게 자손들은 오히려 고마워했다.
이가 흔했던 시절, 이를 죽이지 않고 나무 밑에다가 자주 가져다 넣었다. 이렇게 이를 넣은 나무는 뭉쳐서 금덩어리가 되었다. 그래서 금덩어리가 된 이것을 불난 곳, 사고가 난 장소에 갖다 붙이면 모두 멀쩡하게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죽이지 않고 복처럼 여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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