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색
고급검색
관리번호
발행년도
시 대
연 대
선택조건
지역N문화 포털은 콘텐츠 생산자 및 연구자들을 위해 서지정보 내보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지관리 프로그램은 문헌 및 온라인 콘텐츠 등 자료를 관리하고 공유하는데 사용됩니다.
※ 해당 프로그램은 소속기관 또는 개인 가입이 필요할 수 있으며, 지역N문화 포털은 링크만 제공하고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관심지역 :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지역N문화 시작하기
마지막으로 로그인한 계정입니다.
지역N문화는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사용중인 SNS로로그인하여 간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조선의 명재상 고형산에 대한 책이다. 강원도 횡성 출신인 고형산(高荊山)은 성종 14년(1483) 과거에 합격하고 무려 46년간 관료로 활동했으나 행적이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고형산의 발자취를 조사하여 그의 생애와 관료 활동, 관련 유적과 설화를 수록했다.
강원도 횡성지역에서는 1995년부터 한우의 명품화 작업을 시작하여, 횡성한우는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우 브랜드가 되었다. 횡성한우축제는 횡성한우의 우수성을 널리 홍보하기 위해 2004년부터 기존의 ‘횡성태풍문화제’의 명칭을 변경하여 새로운 목표와 주제를 가지고 개최되고 있다. 횡성한우축제의 주요행사는 크게 ‘먹을거리마당, 즐길 거리마당, 볼거리마당, 지역홍보마당’ 등으로 나뉘는데, 핵심은 ‘먹을거리마당’이다.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에 ‘마산(馬山)’이라는 곳이 있다. 고려시대 무렵 횡성군에 살던 황장군이 용마(龍馬) 한필을 길렀다. 용마의 훈련이 끝나갈 무렵, 황장군은 용마의 실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황장군이 말 등에 올라탄 후 화살을 당겼다. 그리고 용마와 함께 달렸다. 황장군이 고갯마루에 도착하였을 때, 화살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지 않아, 화살이 먼저 왔다고 생각하고 용마의 목을 쳤다. 그러자 화살 한 개가 날아와 땅에 꽂혔다.
강원도 횡성군에는 태기산(泰岐山)이 있다. 진한의 마지막 왕이었던 태기왕이 신라의 박혁거세에게 패해 북쪽으로 가던 중 덕고산에 이르러서 신라와 대항하기 위해 성을 쌓았는데 그것이 현재의 태기산성이라고 한다. 태기왕은 산성을 쌓고 정예병을 훈련시켰다. 산성 안 평지를 개간해서 군량미를 보충하고, 산채를 채취해 부식물로 이용하였다. 군사들을 최강의 병사로 만드는데 주력하였다. 태기왕은 신라군이 올 수 있는 남쪽을 주로 경계하였다. 그러나 신라군은 남쪽을 경계한다는 것을 알고 반대편으로 공격해 결국 태기왕은 참패한다.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중금리 대문동(大門洞)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옛날에 진앙이라는 큰 부자가 살았다. 그는 놀잇배를 띄우고 밤낮 주연을 베풀었고, 복성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힘써 공부를 하였다. 어느 날 어떤 관리가 이를 시기하여 진앙을 진왕으로 부르며 이름으로 무고하여 죽었다. 그 부자가 살던 곳을 큰 부자가 살던 곳이라 하여 대문동이라 불렀다.
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입석리(立石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옛날 박수인이라는 큰 부자가 살았다. 그런데 손님이 너무 많아 며느리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느 날 낯선 스님이 손님으로 오자 며느리는 손님이 적게 오는 방도를 구하였다. 스님은 망설이다가 며느리가 하도 졸라대 마을 앞에 있는 선돌에 갓을 해 씌우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했더니 손님이 안 드는 것은 물론 재산도 없어져서 망했다.
강원도 횡성군 서운면 유현리 풍수원 성당은 강원도 최초의 서양식 성당이자 전국에서 7번째로 지어진 서양식 성당이다. 벽돌을 쌓아 건축한 서양식 성당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됐다. 로마네스크 양식인 풍수원 성당 건물은 단아하고 아름다운 건축물로 손꼽힌다. 정규하 신부는 성당에 이어 1912년 사제관을 지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인 풍수원 성당 사제관은 서양식 생활방식의 사제관으로는 전국에서 세 번째로 오래되었다. 정규하 신부는 성당으로 숨어든 의병들을 숨겨주기도 했고, 침술로 유명해 다른 고장에서도 환자가 찾아왔다고 한다. 정규하 신부는 50년 가까이 풍수원성당에서 사목하면서, 강원도 내 주요 공소들을 본당으로 승격하도록 도왔다. 정규하 신부는 한국인으로는 4번째 서품을 받은 사제다. 풍수원성당 건물은 강원도 지방 유형문화재이며, 사제관은 등록문화재 제163호다.
횡성장은 강원도 서남부 지역에 있는 횡성군 읍소재지에서 열리며, 횡성시장과 5일장으로 구분된다. 횡성시장은 상설시장이고, 횡성5일장은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정기시장이다. 횡성장 가운데 ‘신토불이장’은 횡성군 관내의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팔거나 살 수 있는 공간이다.
요즘에는 고속도로 휴게소가 많아지고, 그 음식도 다양해져서 언제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식품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지만, 1971년 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울과 강릉을 오가던 사람들의 허기를 채우던 것은 휴게소 핫바나 옥수수도 아니오, 찐빵이었다.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부풀려서 속을 팥으로 채운 안흥찐빵은 그 쫄깃하고도 보드라운 맛 때문에 서울과 강릉을 오가던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기나긴 영동고속도로의 여정에서 허기를 달랠 수 있는 별미로 자리잡아갔다.
횡성읍 모평리 앞뜰의 밤나무 숲과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들어차 있었다. 언제부턴가 이 숲에 많은 황새와 왜가리들이 둥지를 짓고 번식을 하기 시작했고, 마을 사람들은 둥지를 튼 새들을 아끼고 보살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개혁이 일기 시작했고, 일제에 의해 숲들이 하루 아침에 잘리우고, 보금자리를 잃은 황새와 왜가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후 마을에는 불미스러운 일들과 열병이 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마을 회관에 모여 동네 굿을 한달 반 동안이나 벌였고, 오늘날까지도 그루터기만 남은 이곳을 신성히 여기고 있다.
횡성읍 마산리 쇠절이에는 구씨성을 가진 중년 사내가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내가 행방을 감추었고, 온 마을 사람이 구씨를 찾으러 다녔다. 구씨를 찾기 위해 송하석이라 하는 곳에 이르렀을 때 낯익은 구씨의 목소리가 들렸고, 구씨는 도리깨를 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씨름을 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여럿이 합세하여 구씨 손에서 도리깨 장치를 떼어놓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구씨는 밖에서 웬 덩치가 큰 거인이 부르길래 따라나섰는데, 자기를 놔주지 않더라고 얘기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큰 거인은 사라지고, 자기는 집에 있던 도리깨 장치를 붙들고 있었다고 한다.
태종대왕이 와서 쉬어 갔다고 하는 자리로 그 자리를 아주 대단히 기념하기 위해 세워 놓은 태종대가 있었다. 태종대왕은 그곳에 자신에게 글을 가르치던 원천석 선생님을 만나러 왔다. 그러나,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보았던 고려 충신 원천석 선생님은 숨기로 했다. 미리 태종이 올 것을 알았던 선생님은 노고소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가는 방향과 반대 방향을 알려주라고 이야기한다. 이후 할머니는 임금의 행차가 왔을 때 선생님이 시킨대로 방향을 반대로 알려주고, 임금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 자신 스스로 큰 죄라고 생각해 물에 빠져 죽었다.
냉동 기술 같은 것이 없던 겨울에 자신의 어머니가 병환에 홍시를 찾았다. 그래서 효자는 감나무밭에 가서 감을 찾았다. 날이 어두워지자 호랑이를 타고 한 산골 집에 갔는데, 그 집이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그 집에서 마침 제사음식을 내왔는데 거기에 감이 있었다. 그래서 어머니께 홍시를 갖다 드릴 수 있었다. 홍시는 효자의 효성이 지극해 한 겨울에도 찾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고 모두들 말한다.
종교와 문화 / 문화예술
지방의 역사
지방의 역사 / 일제강점기
생활과 민속 / 민속
문화유산
SNS에 공유해보세요.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QR코드를 스캔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