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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포스트

우리 지역의  효(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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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역의 효(孝) 이야기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알아보는 지역의 효(孝)와 관련된 장소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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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오산시

    정조의 효심이 어린 곳, 독산성
    독산성은 경기도 오산시 지곶동에 있는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현재 세마대지와 함께 사적 1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시대의 산성이지만 통일신라와 고려시대까지 계속 이용되어 왔고,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말을 쌀로 씻어 왜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영조, 사도세자, 정조 3대의 애증이 묻어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망이 좋고 독산성 산림욕장과 주변 먹거리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많은 오산 시민들이 방문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 >화성시

    아버지 사도세자를 찾아 정조가 다니던 화성효행길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지금의 경기도 화성시로 옮기고 매년 능을 찾았다. 도성에서 무덤이 있는 현륭원까지 이르는 길은 정조효행길 또는 화성효행길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배다리를 이용해 한강을 건넌 후 과천에서 수원으로 이동했지만, 1795년부터는 한강을 건넌 후 시흥(지금의 서울특별시 금천구)을 지나 수원으로 향했다. 과천길을 버리고 시흥길을 택한 것이다. 시흥행궁에서 머무른 뒤 지지대고개를 넘어 수원화성에 도착했으며, 화성행궁을 출발해 대황교를 지나 현륭원으로 이동했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남 >장흥군

    효심으로 지어진 탐진강, 장흥 용호정
    정남진의 고장 장흥에는 탐진강을 따라 이름난 누정들이 들어서있다. 사인정, 부춘정, 용호정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용호정(龍湖亭)은 탐진강 상류 깊은 용소(龍沼)가 있는 암벽 위에 자리한다. 아래로는 맑은 탐진강이 휘돌아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는 우뚝 솟은 기역산이 탐진강과 조화를 이룬다. 용호정은 ‘용호정 원림’으로 불리기도 한다. 용호정은 최규문(崔奎文) 형제들이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1827년 지은 효심의 정자이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경주시

    이언괄의 효심을 칭송하는,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심수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8-5(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1호이다.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1491~1553)의 아우 이언괄(1494~1553)을 추모하여 1560년(명종 15)경에 여강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철종 때의 화재 이후 1917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여강이씨 파종가인 향단의 부속 정자라고도 한다. 심수정이라는 정자명은 ‘고요함이란 자는 마음 가운데 있는 물에서 나온다[靜之字 心中之水].”라는 글에서 유래하며,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고요함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힌다.
  • 지역문화이야기 울산 >동구

    오누이가 삼을 캐어 부모님의 병을 고쳤다는 울산 삼밭골
    옛날 울산의 어느 마을에 오누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눕고 말았다.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해보았지만 부모님의 병은 깊어지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탁발 온 스님이 오누이에게 산삼을 캐어 부모님께 드려보라고 조언을 해주었다. 오누이는 눈 덮인 산에 올랐지만 산삼을 발견하지 못하고 무를 캐서 부모님께 뭇국을 끓여드렸다. 그랬더니 부모님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알고보니 그것이 산삼이었다. 이후 오누이가 산삼을 캔 곳을 삼밭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음성군

    효자를 위해 잉어가 스스로 뛰쳐나온 음성 이양골
    충청북도 음성에 효자로 이름난 권국화가 살았다. 어느 해 부친의 약을 구하러 한밤중에 장호원을 가려고 하니 호랑이 태워다 줬다. 그리고 한 겨울에 부친이 잉어회를 먹고 싶다고 해 성미저수지에 가서 도끼로 얼음을 깨려 했으나 깨지지 않았다. 권국화는 무릎을 꿇어 하늘에 기도를 드렸고, 무릎의 체온에 얼음이 녹아 뚫힌 구멍으로 잉어가 뛰쳐나왔다. 덕분에 아버지는 잉어회를 먹고 천수를 누렸다. 권국화가 잉어를 잡았던 성미저수지가 있는 들판을 잉어가 올라온 곳이라 하여 이양골이라 불렀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영양군

    얼음 구멍으로 잉어가 날아 나온 영양 비릿골
    경북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에는 비릿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소문난 효자인 조금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병이 들어 누워있던 아버지가 잉어가 먹고 싶다고 했다. 조금은 잉어를 구하기 위해 강으로 갔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강물도 꽁꽁 얼어있었다. 조금이 잉어를 잡기 위해 얼음을 깨기 시작했다. 얼음 구멍으로 잉어 한 마리가 날아오르듯 튀어 나왔다. 조금이 잡은 잉어를 먹은 아버지는 병이 싹 나았다. 이후 사람들은 조금이 살던 마을을 잉어가 날아오른 곳이라 하여 비리골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남 >거제시

    한겨울 숭어를 구해온 효자 이돌대, 거제시 효촌
    옛날 거제시 연초면에 이돌대라는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어느 날, 병든 어머니가 숭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이돌대는 숭어를 구하기 위해 통영까지 갔다가 빈손으로 배에 올랐다. 그때 숭어 한 마리가 갑판에 떨어졌다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돌대는 겨울 바다로 헤엄쳐 들어가 숭어를 잡았다. 마침 배에 타고 있던 통제사가 이를 나라에 알려 이돌대에게는 벼슬이 내려졌으며 정려문도 세워졌다. 정려문이 세워진 마을이라 하여 효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 지역문화이야기 전북 >진안군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잡은 효자, 진안 범바위
    옛날 진안군 용담면 범바위 마을에 김효자가 살았다. 하루는 노모가 개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다. 집에 개가 없는 김효자는 친구의 둔갑술 책을 빌려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왔다. 이후 노모가 개고기를 다 먹을 즈음이면 김효자는 어김없이 호랑이로 둔갑하여 개를 잡아왔다. 이를 의심한 부인이 어느 날 밤 몰래 따라갔다가 김효자가 둔갑술 책을 보고 광에서 호랑이로 둔갑한 것을 봤다. 부인은 놀라서 김효자가 개를 잡으러 간 사이에 책을 불태웠다. 김효자는 책이 없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마을 주변을 맴돌다 죽어서 바위가 되었다. 이후 사람들은 마을 이름을 범바위라 불렀다.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 >춘천시

    효자가 살았던 춘천시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
    강원도 춘천시 효자동(孝子洞)과 거두리(擧頭里)에 얽힌 지명유래이다. 춘천의 지명에 효자동과 거두리와 대룡산이 있다. '효자동과 산삼 캔 거두리'는 이 지명이 생긴 유래를 담고 있는 지명유래담이다. 효자는 조선조 때 춘천에 살던 반희언이라는 사람 이야기라고도 한다. 효자 반희언(潘希彦)은 임진왜란 때 용감했던 장군 반처량(潘處良)의 아들로서 희언은 1554년 5월 18일 춘천 퇴계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를 임진왜란에 잃고 홀로 어머니를 돌보면서 효자노릇을 했다. 그의 효성을 표창하여 나라에서 효자문을 내렸는데, 그 때문에 효자동이 생겼다고 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경북 >포항시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가 살았던 포항 효자동
    옛날 경북 포항 한 마을에 홀어머니와 효자 아들이 살았다. 하루는 병에 걸린 어머니가 홍시가 먹고 싶어 했다. 아들은 대구로 시집 간 누나를 찾아가기로 했다. 밤중에 산길을 가는데 호랑이가 나타났다. 사정을 들은 호랑이는 아들을 태워 순식간에 누나에게 데려다 주었다. 마침 누나의 집에 홍시가 있어 아들은 그것을 어머니에게 드릴 수 있었다. 이후 효자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이름을 효자동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 지역문화이야기 충북 >옥천군

    한양 양반이 세 자녀의 효도를 받으며 여생을 보낸 옥천군 삼형제골
    자식을 연년생으로 여럿 둔 한양 양반이 있었다. 자식이 많아 가진 재산으로는 감당이 안되어 양반의 체면을 상관하지 않고 아무 일이나 했다. 한번은 부산에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맡아 부산을 왔다 올라가는 길에 옥천에서 한 부자를 만난다. 부자는 한양 양반이 연년생의 자식을 여럿 두었다는 말을 듣고 자기 집에도 자식을 낳아달라 부탁하며, 세 소실과의 잠자리를 주선한다. 20년이 흘러 한양 양반 댁에 세 사내가 오더니, 자기들이 아들들이라며, 세 어머니가 계신 마을로 함께 가기를 권했다. 이에 한양 양반은 식솔들을 데리고 옥천으로 내려왔다. 이후부터 사람들은 삼형제가 태어나 자란 마을이라고 하여 삼형제골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