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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건설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지역문화이야기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화성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수는?
    정조는 1793년 12월 6일에 영의정을 역임한 채제공(蔡濟恭)을 총리대신으로, 훈련대장을 역임한 조심태(趙心泰)를 감동당상으로 임명하면서 화성건설을 본격화하였다. 이어 12월 8일에 화성성역소를 설치하고 낭관(郎官)의 우두머리인 도청에 이유경(李儒敬)을 임명하였다. 그 하위 단위는 작업관리 및 현장감독 분야와 사무관리 및 지원부서로 나누었다.화성 성역에 동원된 기술자는 석수, 목수, 미장이, 와벽장이, 대장장이, 개와장이, 수레장이, 화공, 가칠장이, 큰끌톱장이, 작은끌톱장이, 기거장이, 걸톱장이, 조각장이, 마조장이, 선장, 나막신장이, 안자장이, 병풍장이, 박배장이, 부계장이, 회장이 등 549명이었다.기술자를 제외한 모군(품팔이)은 화성 성역 현장에서는 자재를 운반하는 담군과 허드렛일을 하는 모군으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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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성 축조를 위한 재료는 어디서 왔을까?
    화성 건설에서 돌은 숙지산과 여기산 두 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그리고 팔달산 등 모두 여섯 군데에서 채취하였다. 모두 28만 7,600여 덩이가 축성에 소요되었다. 목재는 국가에서 관리하던 재목을 베어 오거나 사오는 두 가지 방식으로 조달하였다. 먼저 국가에서 관리하던 안면도 · 장산곶 · 강원도 지역에서의 조달은 직접 베어내어 운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기와와 벽돌은 왕륜면 백운동 성역소에서 땔나무를 마련하여 조달하였다. 기와가마는 왕륜과 서봉동에 설치하였다. 화성 성역에서 철물은 그 사용 용도가 다양하였다. 철물은 해서(황해도), 호서(전라도), 관동(강원도), 서울, 수원부 등 각처에서 사왔다. 다산 정약용의 발명품인 거중기는 왕실에서 1부를 내려주었다. 유형거는 왕실에서 1량을 내려주고 10량을 새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숯, 석회, 장기산 뇌록, 종이, 붓, 먹, 벼룻돌, 숙마, 느릅나무 껍질인 유피, 쇠가죽, 빈 가마니, 숫돌 등이 조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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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한만큼 받는 화성건설의 성과급제
    화성 건설에서 특별히 강조해야 할 사항은 임금 지불 방식에서 날품팔이들에게 짐을 옮긴 거리와 크기 그리고 회수에 따라 차등 지급한 성과급제를 시행한 것이다.그러나 대부분 하루에 2전 5푼 정도 일당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불하였다. 한양도성을 쌓을 때는 사람들이 강제로 동원되었다. 조선 초기 강제로 동원되어 일을 하던 방식에서 화성 건설 시 돈을 주는 방식으로 변화된 것은 보다 세상이 발전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며 ‘자본주의적’인 사회로 변화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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