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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베 짜는(직공) 소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책.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고치현 가미카와 구치 마을에 소녀를 기리는 “朝鮮國女墓”에 얽힌 이야기를 삽화와 함께 누구나 쉽게 읽어 볼 수 있도록 제작한 콘텐츠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베 짜는 소녀를 기리는 일본 고치현 가미카와구치 마을을 찾아 “조선국녀묘(朝鮮國女墓)”에 얽힌 기록과 이야기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상
옛날에 놀부와 흥부 형제가 살았는데, 형 놀부는 부모님의 유산을 혼자 가로채고 동생 흥부를 내쫓았다. 흥부는 우연히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주고 박씨를 받게 된다. 그 박씨를 심어 박을 타보니 재물이 쏟아져 나와 부자가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놀부가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치료해주었다. 놀부도 박씨를 받았는데 그 박씨를 심은 박에서는 괴물들이 나타나서 집안을 망하게 하였다. 흥부가 놀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정성껏 형을 보살피자, 놀부는 그제서야 지난 일을 뉘우치고 흥부와 함께 화목하게 살았다고 한다.
남원 삼동굿놀이는 백중날(음력 7월 15일) 양촌, 음촌, 개신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합굿, 당산제, 샘굿, 삼동놀이굿을 벌이는 유희다. 삼동의 동을 ‘마을(洞)’로 보기도 하고 ‘어린아이(童)’라 하기도 한다. 굿놀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놀이 전반에 매구굿 가락이 흐르고, 생산과 성장을 상징하는 기와밟기(지금은 지네밟기로 바뀜)가 행해지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는 양대박과 양경우 부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부자충의문(梁大撲父子忠義門)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대박은 남원에서 의병을 모아 고경명과 합세하여 운암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후 양대박은 진산을 지키다 세상을 떠났고, 양경우는 군량미 7천석을 모아 명나라 군대를 지원한 공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796년 양대박과 양경우 부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정려각과 비석이 세워졌다.
아막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 33번지 일원으로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를 이루는 시리봉 줄기의 북쪽 끝 해발 697m의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린 골짜기를 감싸고 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아막성은 운봉고원의 치재·복성이재·복성이뒷재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고갯길을 통제할 수 있는 유리한 지역으로 백제와 신라의 경계 요충지였다.
척문리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52호로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의 요천과 백암천이 만나는 삼각주지역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척문리산성은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을 연결하는 운봉고원의 서쪽 끝에 축성하여 백제와 가야·신라의 경계지역에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남원지역 확보로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길목이며 백제의 군사적 전초기지이자 교통로의 요충지이다.
남원읍 평지에 쌓은 네모난 석축성이다. 돌축대의 길이는 2.4km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남원읍성은 초축 연대에 관해서는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보고 있으며, 고려 및 조선시대까지 경영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전후까지 남아 있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축조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두대간의 말단 부근에 자리한 여원재는 오래전부터 고개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가운데 통영로가 통과하던 구간이며, 공공업무를 수행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이용했던 역로인 오수도의 한 구간이었다.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이 경상도로 진출하기 위해 여원재를 넘다가 관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여원재의 서쪽을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고개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남원 퇴수정은 지리산 뱀사골 입구 둘레길이 시작되는 매동 마을 냇가에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과 암벽을 뒤로 걸친 채 앞으로 맑고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멀리 봄이면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을 향하고 있다. 퇴수정은 소박하고 단아한 정자이다. 퇴수정은 1870년(고종 7) 매천 박치기(朴致箕)가 은퇴 후 여생을 보내려고 지은 정자이다. ‘퇴수정(退修亭)’. 말 그대로 ‘나이 들어 은퇴하여 자연 속에서 심신을 닦는 정자’라는 의미이다.
남원의 광한루는 평양 부벽루, 밀양 영남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우리나라 4대 누각의 하나로 꼽힌다. 광한루 하면 사람들이 먼저 떠올리는 것은 춘향과 이몽룡이다. 하지만 광한루의 가장 상징적인 것은 달이다. 광한루에 오르면 사방 천지에 여러 편액과 현판들이 걸려있는데 중요한 편액과 시문은 달과 관련되는 내용이 많다. ‘광한루((廣寒樓)’,‘계관(桂觀)’,‘청허부(淸虛府)’ 모두가 달과 관련된 명칭이다.
변사정(邊士貞, 1529(중종24)~1596(선조29))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2,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싸웠다. 권율을 돕기도 하고, 동서로 다니면서 적을 무찔렀다. 진주성의 함락을 보고 선조에게 중흥책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1844~1907)는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무기를 사들여 의거를 준비했으며, 1907년 2월 12일 남원성을 습격해서 점령했으나, 도망가는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남원시 금동에 자리한 남원공설시장은 남원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개설된 남원읍내장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상설시장과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주로 남원의 특산품인 목공예품, 약초, 식도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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