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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시를 6가지의 테마를 따라 관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지도이다. 선구점 거리, 건어물 젓갈 거리, 음식의 거리, 일제 건축물과 서화의 거리, 해운산업, 세월호와 평화의 거리라는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보통 전통과 다양함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한다. 허나 전통의 멸치 국수 가게가 서로 어울러져 경쟁하며, 저마다의 특징과 맛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공릉동 국수거리에 오면 다양함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전통이 이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1980년 후반 시작한 「원조 멸치국수」를 시작으로 이 일대에는 많은 국수가게들이 성업하고 있으며, 나름 칼국수나 왕만두, 비빔국수, 전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오랜 강동구 주민이자 유명 웹툰작가인 강풀의 작품 속 명장면들을 오래된 주택이 밀집돼있는 천호대로 168가길 일대에 꾸민 만화 특화거리이다. 강풀 작가의 여러 작품 중 「순정만화」 시리즈 (‘순정만화’, ‘바보’, ‘그대를 사랑합니다’, ‘당신의 모든 순간’, ‘마녀’)를 주테마로 삼았다.
대구 최대의 공구거리인 ‘북성로 공구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폐공구를 수집하던 주민 몇몇이 이곳에서 공구를 판매하며 시작되었다. 1950~60년대 철물과 기계를 취급하는 공구 상점들이 하나둘 모여 들더니 1970~80년대는 점포 수가 600여 개에 이르며 전국의 모든 공구가 이곳에 있다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쇠락했고, 수십 개의 공구 상가들이 남아 ‘북성로 공구거리’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 순종황제 어가길이 조성되면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는데, 특색 있는 카페, 갤러리, 독립서점 등이 들어섰다. 그 중에서도 북성로 공구박물관과 모루는 장인 작업장과 수많은 공구를 볼 수 있고, 직접 체험도 해볼 수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다.
천호동 재래시장인 구시장 거리에 30년 넘는 역사의 족발집들이 모여있는 좁다란 족발골목이 있다. 십년 단위의 단골고객들을 가진 동네의 명물 골목이었다. 한국 전쟁 후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시작되어 70년대 들어서며 지금의 모습으로 점차 완성되어 갔다. 좁은 골목이기에 더 극대화되던 족발골목만의 소리와 냄새는 동네 사람들에게 익숙한 풍경이었다. ‘족발’이라는 음식 자체는 대한민국 대표 야식, 배달 음식이기에 인기가 여전하다. 하지만 이제 족발골목은 강동구 재개발의 일부가 되어 텅 비어버렸다. 코 닿을 듯 붙어있던 가게들은 이제 일대 여러 건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렇게 족발골목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종로 예지동에서 시작된 시계골목은 주변 봉익동 등지로 이동하며 6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30여년 넘는 장인 시계공들이 오래된 시계방을 지키고 있지만, 점점 이 곳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과 발길은 줄어들고 있다. 한 때는 100여 개의 가게가 귀금속, 자재, 각인 등 각각의 분야에 따라 골목을 이루던 이 주변은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가게들이 한골목 안에 모여 있다. 그렇지만 시계 장인들의 시계를 향한 열정과 애착, 잊지 않고 찾아주는 사람들로 인해 이곳은 여전히 따듯한 에너지가 흐른다.
마포먹자 골목 하면 으레 갈비를 떠올리지만 특이하게도 오래된 떡볶이 골목이 있다. 오랫동안 사랑 받고, 지금도 성황리에 영업중인 떡볶이 골목에는 놀랍게도 평균 30년 이상, 합이 100년이 넘은 전통을 자랑하는 떡볶이 가게 세 곳이 한 골목에서 성업 중이다. 바로 마포구 도화2길에 위치한 코끼리분식, 마포원조떡볶이, 다락이다.
전라남도 목포시 동본원사 목포별원 건물은 일본 불교 사찰에서 한국 사찰로, 다시 한국의 교회로, 문화센터로 운명이 바뀐 흔치 않은 사례다. 일본 정토진종의 동본원사는 목포 개항 이듬해인 1898년 목포에 지원을 설치했다. 목포지원은 곧 목포별원으로 승격했고, 1905년 현재의 위치에 목조 법당을 지었다가, 1930년대 초 석조 법당을 건립했다. 지붕이 높고, 일본 전통 사찰의 외양을 간직한 동본원사 목포별원은 해방 후 정광사라는 한국 불교의 사찰이 되었다. 정광사는 정광중학교를 탄생시키는 등 교육에 힘썼다. 목포역 인근이라 주요 법회가 열리는 공간이기도 했다. 1957년 정광사는 목포중앙교회에 넘어갔다. 불교 사찰이 기독교 예배당이 되는 희귀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목포중앙교회는 유신 시절부터 5·18,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목포 민주화 운동의 중요 거점 가운데 하나였다. 목포중앙교회가 2008년 이전한 뒤 2010년 지역의 문화센터로 다시 태어났다.
‘구 목포부청 서고’는 1932년 건축된 석조 건물이다. 거칠게 다음은 돌과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21단 높이로 쌓아 올린 2층이며, 정면 상단에는 그리스 신전처럼 삼각형의 페디먼트를 설치했다. ‘구 목포부청 서고’는 유달산 노적봉 남쪽 사면에 있는 옛 목포부청 청사 뒤편에 있다. 목포부청 청사는 1900년 지어져 일본영사관이 사용하다가, 1914년 목포가 부(府)로 지정되자 목포부청으로 쓰였다. 목포부청은 붉은 벽돌건물이고 서고는 미색 석조여서 대조적이다. 목포부청 청사는 해방 후 목포시청, 목포시립 도서관, 목포문화원으로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목포근대역사관 1관이다. 목포부청 청사는 사적 제289호다. 목포부청 뒤에는 일제강점기 말에 판 방공호도 있다. 방공호는 미군의 조선 상륙에 대비하기 위해 일본군 제150사단이 설치한 길이 90m의 동굴 형태다. 조선인들을 강제동원해 방공호를 팠을 것으로 보인다. ‘구 목포부청 서고 및 방공호’는 2014년 등록문화재 제588호로 지정되었다.
호남은행은 지역의 대부호들이 1920년 설립했다. 호남은행은 총독부의 통합 조처에 순응하지 않고 1929년 목포지점 건물을 신축했다. 동양척식회사 목포지점을 의식하여 규모와 외관에서 손색없이 지었다. 개항 도시 목포의 산업자본 형성에 기여한 호남은행 목포지점은 일제 강점기 은행의 역사와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근대문화 유산이다.
목포 정명여학교는 1903년 미 남장로교의 선교에 일환으로 세워진 학교다.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명여학교는 1919년과 1921년 만세 시위를 벌인 학교로 유명하다. 댕기머리 소녀들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명여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 당했다가 1947년에야 재개교했다. 선교사 사택은 1905~1910년 사이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목포 산지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2채다. 현재 정명여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쓰이는 사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1897년 개항한 전라남도 목포시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조선 4대 항구이자 6대 도시로 꼽히는 근대도시로 성장했다. 현재 유달동, 만호동에 해당하는 목포의 구 도심은 일본 등 외국자본에 의해서 간척된 계획도시였다. 만호동과 유달동 일대의 번영로에 근대건축 유산이 집중되어 있다. 문화재청은 2018년 8월 6일 이 일대 11만4,038㎡(602필지)를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 제718호로 지정했다. 기존 ‘점’(點) 단위 개별 문화재 중심의 보존에서 탈피해 문화재청이 ‘선(線)‧면(面)’ 단위 문화재 등록제도를 도입한 첫 사례이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개별 건축물은 15개로, 일본식 가옥 4곳, 구 목포부립병원 관사, 구 목포 일본기독교회, 상가주택 6곳, 구 동아부인상회 목포지점, 목포 해안로 붉은 벽돌창고, 구 목포 화신연쇄점이 포함되어 있다.
배설향은 전라북도 남원 출신의 판소리 여성 명창이다. 장판개의 제자이자 부인으로, 여류 명창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풍부한 성량과 굵직한 음성을 지니고 있어 남성적인 소리를 잘했다. 「흥보가」 중 ‘박타령’이 장기였고, 「심청가」 중 ‘추월만정’도 절창으로 꼽힌다. 당대의 여류 명창들인 김초향(金楚香)·김녹주(金綠珠)·이화중선(李花中仙) 등과 어깨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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