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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베 짜는 소녀를 기리는 일본 고치현 가미카와구치 마을을 찾아 “조선국녀묘(朝鮮國女墓)”에 얽힌 기록과 이야기를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상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는 베 짜는(직공) 소녀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그림책.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고치현 가미카와 구치 마을에 소녀를 기리는 “朝鮮國女墓”에 얽힌 이야기를 삽화와 함께 누구나 쉽게 읽어 볼 수 있도록 제작한 콘텐츠
옛날에 놀부와 흥부 형제가 살았는데, 형 놀부는 부모님의 유산을 혼자 가로채고 동생 흥부를 내쫓았다. 흥부는 우연히 다리가 부러진 제비를 치료해주고 박씨를 받게 된다. 그 박씨를 심어 박을 타보니 재물이 쏟아져 나와 부자가 되었다. 이를 알게 된 놀부가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리고 치료해주었다. 놀부도 박씨를 받았는데 그 박씨를 심은 박에서는 괴물들이 나타나서 집안을 망하게 하였다. 흥부가 놀부에게 재산을 나누어주고 정성껏 형을 보살피자, 놀부는 그제서야 지난 일을 뉘우치고 흥부와 함께 화목하게 살았다고 한다.
전라북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리에는 양대박과 양경우 부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부자충의문(梁大撲父子忠義門)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대박은 남원에서 의병을 모아 고경명과 합세하여 운암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그후 양대박은 진산을 지키다 세상을 떠났고, 양경우는 군량미 7천석을 모아 명나라 군대를 지원한 공으로 벼슬길에 올랐다. 1796년 양대박과 양경우 부자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정려각과 비석이 세워졌다.
척문리산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52호로 전라북도 남원시 이백면 척문리 244번지의 요천과 백암천이 만나는 삼각주지역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척문리산성은 전라북도 남원과 경상남도 함양을 연결하는 운봉고원의 서쪽 끝에 축성하여 백제와 가야·신라의 경계지역에 있다. 이 산성은 백제의 남원지역 확보로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길목이며 백제의 군사적 전초기지이자 교통로의 요충지이다.
남원읍 평지에 쌓은 네모난 석축성이다. 돌축대의 길이는 2.4km가 넘고, 높이 약 4m에 이르며 성 안에는 70여 개의 우물이 있었다. 성 내에는 남북과 동서로 직선대로가 교차하고, 그 사이에도 너비가 좁은 직선도로가 교차하여 바둑판 모양의 도로구성을 볼 수 있다. 남원읍성은 초축 연대에 관해서는 대체로 통일신라시대로 보고 있으며, 고려 및 조선시대까지 경영되었다가 일제강점기 전후까지 남아 있었다.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축조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백두대간의 말단 부근에 자리한 여원재는 오래전부터 고개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길목이었다. 전라도 남원에서 경상도 함양으로 이어지는 주요 통로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는 전국을 연결하는 간선도로 가운데 통영로가 통과하던 구간이며, 공공업무를 수행하러 다니던 사람들이 이용했던 역로인 오수도의 한 구간이었다. 동학혁명 당시 동학군이 경상도로 진출하기 위해 여원재를 넘다가 관군과 전투를 벌였지만 크게 패하고 말았다. 여원재의 서쪽을 흐르는 물은 섬진강으로 흐르고, 고개의 동쪽을 흐르는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변사정(邊士貞, 1529(중종24)~1596(선조29))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2,0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싸웠다. 권율을 돕기도 하고, 동서로 다니면서 적을 무찔렀다. 진주성의 함락을 보고 선조에게 중흥책의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의병장 양한규(梁漢奎, 1844~1907)는 1905년 을사늑약이 일어나자 사재를 털어 무기를 사들여 의거를 준비했으며, 1907년 2월 12일 남원성을 습격해서 점령했으나, 도망가는 일본군을 추격하다가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발우는 불교 사찰에서 스님들의 식사에 사용되는 식기로 우리나라에서는 네 개의 발우를 하나로 합해서 사용한다. 발우는 옛날부터 전라북도 남원지역에서 생산된 것이 유명했다. 남원은 풍족한 목재 공급과 실상사 승려들에게 전수된 발우 제작기술, 그리고 안정적인 수요가 더해져 우수한 품질의 발우를 생산할 수 있었다.
남원지역은 목기 생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제기류와 발우 등의 불교용품이 생산되었다. 조선 왕조 500년 간 궁궐에서 쓴 제기는 모두 남원산이었으며, 일제강점기까지 남원 목기의 전통 기술은 학교를 통해 이어졌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주거형태와 생활문화가 변하자 목기산업은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남원에서는 장인정신을 계승하여 꾸준히 목기를 생산해와 잃어버린 명성을 되찾았다.
제기는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 그릇과 도구이다. 재질에 따라 나무·도자기·놋쇠로 만든 것이 있는데 묘소에서는 가볍고 운반이 편리한 나무 제기를 사용하였으며, 조선후기에는 송시열의 말에 따라 집에서도 사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나무제기의 생산지로 유명한 곳은 전북 남원이다. 남원 제기는 옻칠을 하여 색상과 내구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오래도록 사용하여도 변색되지 않아 전국에서도 가장 품질이 좋다는 평판을 얻어왔다.
아막성은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 33번지 일원으로 장수군 번암면과 남원시 아영면의 경계를 이루는 시리봉 줄기의 북쪽 끝 해발 697m의 봉우리에서 북쪽으로 흘러내린 골짜기를 감싸고 축성된 포곡식 산성이다. 아막성은 운봉고원의 치재·복성이재·복성이뒷재의 가운데에 위치하여 고갯길을 통제할 수 있는 유리한 지역으로 백제와 신라의 경계 요충지였다.
남원시 금동에 자리한 남원공설시장은 남원을 대표하는 전통시장이다. 임진왜란 이후 개설된 남원읍내장의 전통을 잇고 있으며, 상설시장과 매월 4일과 9일에 열리는 오일장이 함께 운영되고 있다. 주로 남원의 특산품인 목공예품, 약초, 식도 등을 비롯하여 다양한 물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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