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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순창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을 개괄하고, 순창군 각 읍·면별로 상세한 전쟁사를 담아낸 책이다. 전북 순창의 근·현대사는 아픔의 연속이었다. 심각했던 일제의 수탈과 6·25동란을 중심으로 개항기부터 현대까지 순창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을 다룬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되는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는 경북 안동 출신이다. '내 고장'이 바로 안동이었다. 안동의 저항정신을 체득하고 자라난 그는 17번이나 투옥을 당할 정도로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한글 사용이 규제받자 한시만 발표할 정도로 의지가 굳은 독립운동가였다. 이육사라는 필명도 수인번호 264에서 따온 것이다. 「청포도」 외에 「절정」, 「광인의 태양」 등의 작품이 있다. 안동에는 이육사 시비, 생가, 문학관이 있다.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대구 최대의 공구거리인 ‘북성로 공구거리’는 한국전쟁 이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폐공구를 수집하던 주민 몇몇이 이곳에서 공구를 판매하며 시작되었다. 1950~60년대 철물과 기계를 취급하는 공구 상점들이 하나둘 모여 들더니 1970~80년대는 점포 수가 600여 개에 이르며 전국의 모든 공구가 이곳에 있다 할 만큼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IMF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쇠락했고, 수십 개의 공구 상가들이 남아 ‘북성로 공구거리’라는 이름을 지키고 있다. 이곳에 순종황제 어가길이 조성되면서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는데, 특색 있는 카페, 갤러리, 독립서점 등이 들어섰다. 그 중에서도 북성로 공구박물관과 모루는 장인 작업장과 수많은 공구를 볼 수 있고, 직접 체험도 해볼 수 있는 특색있는 공간이다.
전라남도 순창은 천혜의 자연환경과 장류문화의 역사가 살아있는 고장이다. 순창장류축제는 매년 10월에 순창고추장민속마을 일원에서 개최된다. 다같이 순찬고추장 만들기에 도전하고, 순창고추장으로 만든 떡볶이 파티를 열며, 요리경연도 벌인다. 그 외에도 쿠킹쇼, 장담그기 체험 행사, 국제포럼 등이 열린다. 순창장류축제는 지역특산물인 장류를 축제 콘텐츠로 활용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신풍리 남석 윤우식 선생의 생가는 16세기에 지어진 고택이다. 1922년 화재로 예전 집은 불탔고, 같은 자리에 규모를 줄여 지은 집이 현재 남아있는 기와집이다. 안채와 사랑채가 튼 입구 자로 배치되어 있고, 옆에는 사당(죽호당)이 있다. 윤우식은 1920년대 후반부터 농민운동을 벌였고, 1934년 ‘예천 무명당’이 결성될 때 참여하여 지보면의 조직을 책임졌다. ‘예천 무명당’은 농민을 넘어 각계각층의 조직을 통해 항일 독립운동을 벌이려 했던 조직이다. 예천 무명당은 1934년 초 일경에 발각되어 무더기로 체포되었고, 윤우식은 지도부 11인으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순국했다. 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윤우식 생가는 등록문화재 제571호다.
부산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한국전쟁 기간 동안 총 1,023일간 피란 내려온 대한민국 정부의 청사로 쓰였다. 원래 1925년 경상남도 도청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경상남도 도청의 체육관 격인 무덕관은 임시수도의 국회로 사용되었다. 피란 수도 부산은 급격히 늘어난 인구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으나 임시수도 정부청사와 국회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둘러싼 정치 소용돌이[부산 정치파동]로 들끓었다. 임시수도 정부청사는 현재 동아대학교 박물관으로 쓰인다.
딱지치기는 종이를 접어서 만드는 종이접이 딱지나 인쇄된 종이를 오려서 노는 인쇄그림 딱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다. 어떤 딱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놀이 방법이 다르다. 종이접이 딱지는 바닥에 딱지를 놓고 다른 딱지로 내려쳐서 뒤집는 놀이고, 인쇄그림 딱지는 딱지에 그려진 계급, 숫자, 별의 개수 등을 겨루는 놀이다. 한국전쟁 이후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제국 탁지부 관리였던 김종숙은 을사늑약 이후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척곡리에 내려가 척곡교회와 명동서숙을 세웠다. 명동서숙은 1907년 문을 열었고, 척곡교회 예배당은 1909년 건립되었다. 산골 교회인 척곡교회는 개신교 전파와 더불어 독립운동의 근거지였다. 봉화의병장과 독립투사들이 비밀 회합을 가지는 장소였고, 간도로 보내는 독립운동 자금을 전달하는 통로였다. 명동서숙은 북간도의 명동학교와 명칭이 같다. 척곡교회를 세울 당시 김종숙은 평신도였다. 척곡교회는 처음부터 일제의 삼엄한 감시 아래 놓여 있었다. 김종숙은 1920년대에 일경에 끌려가 고초를 겪었고, 해방 직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옥에 갇혔다. 김종숙의 처남인 봉화의병장 석태산은 소백산에서 잡혀 현장에서 처형됐다. 명동서숙은 정식 학교가 되지 못한 채 운영되다가 1943년 폐교되었다. 미음 자 형태로 지어진 척곡교회와 초가집 명동서숙은 산골 오지에서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2006년에야 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척곡교회가 소장하고 있는 문서들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장흥리와 갈말읍 내대리 사이로 흐르는 한탄강에는 승일교라는 다리가 있다. 승일교는 남과 북이 절반씩 지은 남북합작품이다. 철원군은 한국전쟁 이전에는 북한 지역이었다가 전쟁 이후에 대한민국의 땅이 된 수복지구다. 승일교는 철원이 북한의 관할이던 1948년 공사가 시작되어 절반쯤 지었으나 전쟁으로 중단되었고 10년이 지난 1958년 남한 정부가 못 다 지었던 다리의 반쪽을 완공했다. '한국의 콰이강의 다리'라는 별명을 가진 120m, 높이 35m, 너비 8m의 철근콘크리트 다리이다. 다리의 명칭은 당시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 이승만(李承晩)과 김일성(金日成)의 가운데 자인 ‘승(承)’과 ‘일(日)’을 따와서 지었다고도 하고, 후일 한국전쟁의 영웅 박승일(朴昇日) 대령을 기리기 위해 승일교(昇日橋)로 바꿨다고도 한다.
경기도 여주시에는 일제강점기 금광의 흔적이 두 군데 남아 있다. 이포나루 근처인 금사면과 옥녀봉 금광이 그곳이다. 지질학상으로 강원도 홍천군, 횡성군, 경기도 양평군과 함께 홍천지구 금광상에 속하는 두 금광은 일제강점기부터 금을 캐내기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 흥성했던 금광이었다. 1989년 판 <여주군지>에 따르면 ‘옥녀봉 금광’의 금 매장량은 한반도 전체에서 8위에 이를 정도로 큰 광산이었다고 한다. 금사면 역시 금모래가 많아 사금업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에 금사(金沙)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지명유래담이 있을 정도로 유명했다. 여주의 두 금광 자리에는 아직도 갱도의 형태가 뚜렷하며, 금 채취 시설의 흔적들이 확인된다. 이른바 ‘황금광 시대’라 불렸던 1930년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1919년 3·1 운동을 촉발시킨 2·8 독립선언의 주역 중에 나용균이 있다. 동경 와세다 대학에 재학 중이던 나용균은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발표한 후 중국으로 망명해 상해 임시정부 요원으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광복 후 야당 정치인을 하며 국회 부의장 등을 지냈다. 평생 독립투사 및 정치 지도자로 국가에 공헌한 나용균은 건국포장과 애국장을 받았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나용균의 생가와 사당이 있다. 사랑채, 문간채, 고방, 사당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특히 사당 건축은 호남의 유명한 목수 중 한 명인 심사일이 담당했다.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읍에 순창시장이 있다. 조선 중기부터 문헌에 보이며, 1923년경 상설시장이 조성되어 매월 1일과 6일에 열리는 5일장이 상설 시장화가 되었다. 순천시장은 고추전과 밤·대추전이 별도로 구분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또한, 1970년대까지 순창에서 만든 자수품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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