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 색
고급검색
관리번호
발행년도
시 대
연 대
선택조건
지역N문화 포털은 콘텐츠 생산자 및 연구자들을 위해 서지정보 내보내기 기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서지관리 프로그램은 문헌 및 온라인 콘텐츠 등 자료를 관리하고 공유하는데 사용됩니다.
※ 해당 프로그램은 소속기관 또는 개인 가입이 필요할 수 있으며, 지역N문화 포털은 링크만 제공하고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습니다.
관심지역 :
간편하게 로그인하고 지역N문화 시작하기
마지막으로 로그인한 계정입니다.
지역N문화는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 사용중인 SNS로로그인하여 간편하게 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방문화원이 기획하고 제작한 지역문화콘텐츠 이미지, 동영상, 오디오, 전자책 제공
육지의 음식문화와 큰 차이를 보이는 제주전통혼례의 음식문화를 담은 영상이다. 제주 음식문화의 대표인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하는 제주전통혼례음식의 제조 과정을 지역의 향토전문가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재현해서 영상으로 기록했다. 제주전통음식에 대한 의미와 스토리를 계승하며 음식관광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레시피를 보여주고 있다.
옛날에 13살 먹은 9대 독자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손자를 보고 싶어서 9대 독자 아들을 장가를 보낸다. 그런데 신부의 정부(情夫)가 나타난 죽을 뻔 한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간다. 이번에도 신부의 정부가 나타난다. 죽을 고비를 넘긴 9대 독자가 신부와 정부를 죽인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를 간다. 신부가 어린아이를 낳는다. 9대 독자는 아이를 콩밭에 숨긴다. 갓난아이를 발견하여 고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9대 독자와 신부는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
25년간 한국음식 요리를 연구하고 심삼 년간 혼례음식을 만들어 온 예빈당 김영아 대표는 혼례음식문화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한국의 디저트를 먹을 수 있는 카페를 열게 되었다. 이 곳에서는 우리 전통음식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고, 한국음식을 선물로 살 수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마을에는 500평 정도의 커다란 연못이 있다. 이곳은 제주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곳으로 ‘혼인지’라고 불린다. 이곳에는 탐라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와 관련한 신화가 전해진다. 이 신화를 활용하여 2010년에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예전에 너무나 가난하게 사는 부부가 살았다. 남편이 자신의 신세를 비관해서 연못에 빠져죽으려고 했다. 그때 산신령으로부터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는 안경을 얻었다. 아내는 ‘개’였고, 남편은 ‘닭’이었다.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끼리 살아서 비렁뱅이 생활을 면치 못했던 것이다. 부부가 어느 집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의 남편은 ‘개’, 아내는 ‘닭’이었다. 그래서 서로 아내를 바꿔 궁합을 맞춰 살았더니 두 집안 모두 잘 살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남귀여가혼(男歸女嫁婚)은 신랑이 신붓집으로 가서 혼례(婚禮)를 치르고 부부생활을 신붓집에서 시작하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혼인방식이다. 부귀부가(夫歸婦家) 또는 서류부가(壻留婦家)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붓집에서 삼일동안 혼례식이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다. 이를 삼일 잔치 혹은 삼일대반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남귀여가혼은 조선시대 성리학이 대세가 되면서 친영례의 영향을 받아 변한다. 혼례식은 그대로 신붓집에서 진행되고 신랑이 신붓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든 ‘반친영’ 방식으로 변화하여 남귀여가혼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부케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들고 입장하는 작은 꽃다발을 부르는 말이다. 부케는 서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나쁜 귀신이나 질병으로부터 신부를 보호한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서양식 결혼식이 생겨나면서부터 등장했고, 처음에는 하얀 국화를 활용하였으나 점차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는 자유연애혼과 중매혼이 혼재하던 시기이다. 나라마다 다른 혼인의 특징이 있는데, 고구려에는 '예서제'라고 하는 데릴사위제가 있었고, 일부다처제도 있었다. 백제에도 일부다처제가 있었고, 여성의 정절이 중시되었으며, 왕실에는 다른 나라와의 정략결혼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여성의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같은 시기이지만 나라별로 혼인 풍속에 차이가 나타난다.
결혼식을 거행하는 장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전통혼례의 경우는 신랑이 신붓집에 가서 혼례를 했기 때문에 결혼식장은 신붓집이었다. 개화기 이후 서구의 종교와 신사조의 영향으로 ‘예배당’이 결혼식장으로 사용되었다. 1930년대까지 결혼식을 거행한 장소는 동아․조선일보사 강당과 공회당, 부민관, 요릿집 등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예식장이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후반의 일이다.
옛날에 한 사람이 무남독녀를 두었다.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님을 수양 아버지로 삼는다. 수양 아버지가 딸의 관상을 보니 부잣집에 시집갈 팔자가 아니었다. 딸은 숯장수에게 시집을 간다. 너무 배고프게 살던 딸은 수양 아버지에게 다른 곳으로 재취시켜달라고 한다. 딸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서 세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어느 날 첫째 아들이 죽고, 이어 둘째와 셋째 아들도 죽는다. 딸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딸은 자신이 재혼해도 행복할 수 없음을 알고 숯장수와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대례는 좁은 의미로는 초례청에서 진행되는 의례를 부르는 말이지만 넓은 의미로는 신붓집에서 진행되는 모든 혼례 의식을 의미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따라서 좁은 의미로는 교배례와 합근례를 의미하지만 넓은 의미로는 전안례부터 신랑 · 신부의 첫날밤까지를 의미하는 것이다.
제주도에서는 혼례의 과정이 잔치로 이루어진다. 가문잔치는 혼례를 치르기 전날 저녁 친척들과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이다. 친척들은 이 날 모여 다음 날 혼례에 대한 의논을 한다. 일반적으로 혼롓날보다 가문잔칫날 더 축하객이 많고 바쁘다. 가문잔치는 혼인 준비에 큰 도움을 준 친척이나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의미도 있으므로 가문잔치를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잔치도 아니라며 흉보기도 하였다.
혼례를 치르기 위해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특히 혼례복부터 가마까지 다양한 물품이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은 자녀가 혼례를 치르고 나면 사용할 일이 없는 것들이다. 따라서 문중 혹은 마을 단위로 계를 모아서 용품을 구입하여 사용했고, 이 계를 ‘혼사계’라고 한다.
지방의 역사
SNS에 공유해보세요.
카카오스토리
블로그
페이스북
트위터
QR코드를 스캔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