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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의 음식문화와 큰 차이를 보이는 제주전통혼례의 음식문화를 담은 영상이다. 제주 음식문화의 대표인 돼지고기를 중심으로 하는 제주전통혼례음식의 제조 과정을 지역의 향토전문가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재현해서 영상으로 기록했다. 제주전통음식에 대한 의미와 스토리를 계승하며 음식관광 분야에 있어서 새로운 레시피를 보여주고 있다.
제주도의 혼례 풍속은 의례보다 잔치가 더 중심적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문중 조직이 발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혼례는 친인척이 함께 어우러지는 잔치였다. 동시에 내혼으로 형성된 마을공동체의 결속을 위한 동네잔치이기도 했다. 따라서 제주도에서 혼인은 개인 혹은 어느 한 집안에만 한정되어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외가, 여성의 참여가 활발하였다는 점은 내륙과는 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혼례는 새로운 부부의 탄생으로 마을과 친인척들이 모이는 잔치의 의미가 강했다. 따라서 음식을 준비하고 잔치를 열고 마무리를 하기까지 길게는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한 이유로 일뤠잔치 혹은 이레잔치라고 불렀다. 잔치는 음식을 준비하는 돗 잡는 날로 시작하여, 가문잔치, 결혼식, 양 쪽 집에서 열리는 사돈잔치 순으로 치러진다. 하지만 최근에는 전문 결혼식장이 생기면서 이러한 풍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제주도에서는 혼례의 과정이 잔치로 이루어진다. 가문잔치는 혼례를 치르기 전날 저녁 친척들과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는 잔치이다. 친척들은 이 날 모여 다음 날 혼례에 대한 의논을 한다. 일반적으로 혼롓날보다 가문잔칫날 더 축하객이 많고 바쁘다. 가문잔치는 혼인 준비에 큰 도움을 준 친척이나 이웃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의미도 있으므로 가문잔치를 하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이 잔치도 아니라며 흉보기도 하였다.
‘돗 잡는 날’은 제주도에서 혼인을 준비하는 날로 쉽게 말하면 ‘돼지 잡는 날’이다. 혼인을 준비하면서 집에서 돼지를 키워 잔치음식을 대비하고, 혼인날이 정해지면 이틀 전에 친척들이 모여 돼지를 잡고 음식을 준비한다. 돗잡는 날은 신랑집과 신부집에서 각각 따로 치렀다. 요즘은 삶은 돼지고기를 사서 진행하는 등 간소해졌다.
제주도에서는 신부의 사주를 신랑에게 전달하여 궁합을 보고 날을 받는다. 이렇게 택일하면 신랑측에서 ‘막편지’를 가지고 신부집에 찾아간다. 이때에는 중매인이 전달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신랑 측 부모와 신랑이 동행하여 신부의 집에서 첫 상견례를 한다. 막편지를 주고받은 후에는 사돈 관계가 성립하여 호칭도 변했고 파혼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따라서 막편지는 부부임을 공인하는 사회적인 의미를 띤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가 주막에서 잠을 자다가 보쌈을 당한다. 처녀는 자신의 과부살 때문에 아까운 선비가 죽게 되었다고 한다. 처녀는 선비에게 금은보화를 준다. 선비를 강물에 빠트리던 사람들이 선비에게서 금은보화를 받고 살려준다. 선비는 과것길에 점을 보고, 점괘가 든 봉투를 받는다.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고, 어느 재상의 사위가 된다. 장가간 첫날밤에 신부가 죽는다. 선비는 임금에게 흰 봉투를 보여주며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한다. 선비가 보쌈을 당했던 처녀가 문제를 풀어 선비의 누명을 벗겨준다. 선비와 처녀는 결혼한다.
옛날에 13살 먹은 9대 독자가 살았다. 아버지가 일찍 손자를 보고 싶어서 9대 독자 아들을 장가를 보낸다. 그런데 신부의 정부(情夫)가 나타난 죽을 뻔 한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간다. 이번에도 신부의 정부가 나타난다. 죽을 고비를 넘긴 9대 독자가 신부와 정부를 죽인다. 일 년 후에 다시 장가를 간다. 신부가 어린아이를 낳는다. 9대 독자는 아이를 콩밭에 숨긴다. 갓난아이를 발견하여 고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9대 독자와 신부는 아들딸 낳고 잘 살았다고 한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마을에는 500평 정도의 커다란 연못이 있다. 이곳은 제주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된 곳으로 ‘혼인지’라고 불린다. 이곳에는 탐라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와 관련한 신화가 전해진다. 이 신화를 활용하여 2010년에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부케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우리나라에서는 신부가 결혼식장에서 들고 입장하는 작은 꽃다발을 부르는 말이다. 부케는 서구에서 유래된 것으로 나쁜 귀신이나 질병으로부터 신부를 보호한다는 주술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서양식 결혼식이 생겨나면서부터 등장했고, 처음에는 하얀 국화를 활용하였으나 점차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시대는 자유연애혼과 중매혼이 혼재하던 시기이다. 나라마다 다른 혼인의 특징이 있는데, 고구려에는 '예서제'라고 하는 데릴사위제가 있었고, 일부다처제도 있었다. 백제에도 일부다처제가 있었고, 여성의 정절이 중시되었으며, 왕실에는 다른 나라와의 정략결혼이 있었다. 신라에서는 여성의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같은 시기이지만 나라별로 혼인 풍속에 차이가 나타난다.
결혼식을 거행하는 장소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전통혼례의 경우는 신랑이 신붓집에 가서 혼례를 했기 때문에 결혼식장은 신붓집이었다. 개화기 이후 서구의 종교와 신사조의 영향으로 ‘예배당’이 결혼식장으로 사용되었다. 1930년대까지 결혼식을 거행한 장소는 동아․조선일보사 강당과 공회당, 부민관, 요릿집 등이었다. 오늘날과 같은 예식장이 결혼식장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 후반의 일이다.
옛날에 한 사람이 무남독녀를 두었다. 수명이 길기를 바라는 마음에 스님을 수양 아버지로 삼는다. 수양 아버지가 딸의 관상을 보니 부잣집에 시집갈 팔자가 아니었다. 딸은 숯장수에게 시집을 간다. 너무 배고프게 살던 딸은 수양 아버지에게 다른 곳으로 재취시켜달라고 한다. 딸을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서 세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산다. 어느 날 첫째 아들이 죽고, 이어 둘째와 셋째 아들도 죽는다. 딸이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딸은 자신이 재혼해도 행복할 수 없음을 알고 숯장수와 열심히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이다.
지방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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