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경상도 별미,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고아 푹 우려낸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만든 것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즐겨 먹는 별미입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 누구보다 발 빠르게 새벽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국밥의 풍미를 더할 육수를 몇 시간 동안 펄펄 끓이며 재료를 준비하는 가게 사장님의 정성은 국밥의 깊은 맛을 더하곤 하지요. 이러한 돼지국밥이 경상도 지역의 별미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의식주생활사전'에 따르면 돼지국밥은 북한 음식이지만 월남하여 부산으로 피난온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경상도 고유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저마다의 인생과 정성은 오늘도 모락모락 김이 새어 나오는 국밥집 주변을 맴돌게 하는데요. 이번 주는 든든한 한 끼, 국밥 한 그릇 어떠세요?
더보기
  • 전북 >군산시

    군산공설시장 형성과 함께한 돼지국밥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산공설시장은 군산을 대표하는 시장이었다. 군산의 돼지국밥은 군산공설시장과 옹기전 사이를 흐르는 ‘샛강’ 주변에서 식당 4~5개가 영업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샛강의 돼지국밥은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원래는 ‘순댓국’이라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돼지국밥’으로 바뀌었다. 돼지국밥은 푸짐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물이 진하고 얼큰해서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다.
  • 경남 >창녕군

    창녕 이방식당, 제대로 된 수구레국밥의 명품식당
    경상남도 거창군 이방면 거남리의 이방식당은 1977년 문정자 씨가 이방시장에서 난전(亂廛)으로 시작하여 1980년 현 위치에 점포를 매입하여 이방식당의 간판을 열고 개업한 지 41년이 되는 노포식당이다. 이방식당은 시장에서 좌판 장사할 때부터 팔았던 수구레국밥과 수구레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에 있는 특수부위인 수구레를 가공하여 선지와 함께 사골육수에 얼큰하게 끓여낸 수구렛국이 이방식당에서 차리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된다. 2018년부터 1대 문정자 씨의 며느리 최은영 씨가 대물림하여 운영하고 있다.
  • 울산 >중구

    푸짐함과 투박함이 가득한 토렴식 돼지국밥, 울산 '산전식당'
    산전식당은 김영생이 방영시장에서 1967년 개업한 돼지국밥 전문식당이다. 김영생이 처음 가게를 혼자 운영하다 식구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부터는 며느리인 박주애가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산전식당의 돼지국밥은 돼지국밥에 국물을 붓고 다시 국물을 덜어내는 토렴 방식의 조리법을 택하고 있다. 이 같은 토렴방식은 우리나라 국밥에서 사용하는 전통 방식이다.
  • 부산 >연제구

    부산시가 선정한 향토음식 돼지국밥, 경주 박가 국밥
    경주 박가 국밥은 경주 박가(慶州 朴家)가 운영하는 국밥집이다. 경주 박가 국밥은 1951년 박주호의 어머니가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개업하였다. 박주호는 어머니에게서 국밥 일을 배운 후, 1993년 금정구 서동에 경주 박가 국밥 분점을 열었다. 1997년 박주호의 경주 박가 국밥 분점은 지금의 연제구 연산동으로 가게를 옮겼다. 서동의 국밥집은 주방장이 인수하였다.
  • 부산 >부산진구

    피난살이의 고달픔과 허기를 달래주었던 부산 돼지국밥
    부산 돼지국밥은 돼지 사골을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육수를 돼지고기와 밥에 여러 차례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만든 다음 국물을 부어내는 부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부산광역시는 부산향토음식의 하나로 돼지국밥을 지정하였다.
  • 경남 >밀양시

    소뼈국물과 돼지수육이 어우러진 깊은 맛, 밀양 무안돼지국밥
    밀양돼지국밥은 소뼈를 오랜 시간 고아낸 국물에 쌀밥을 토렴한 다음 뜨거운 국물을 붓고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얹어내는 국밥으로 경상남도 밀양시의 향토음식이다. 밀양돼지국밥은 1938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무안장 인근에 ‘양산식당’을 연 최성달 씨가 처음 개발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3대에 걸쳐 원조 밀양돼지국밥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 부산 >남구

    피난지에서 만든 탕반,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곤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고 간을 해서 먹는 부산광역시 향토 음식이자 전쟁음식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설렁탕을 변형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형됐다는 설이 있다. 둘 다 물자가 귀한 전쟁시 피난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뼈와 부속물로 대체하여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9년 부산 시내 3군데 국밥집이 향토 음식점으로 지정되었고, 범일동과 서면에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6.25전쟁과 피난민의 삶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산업생산 시설은 잿더미가 되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고, 철도를 비롯한 도로와 교량 등 간접자본의 훼손 역시도 피해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한국전쟁은 많은 전쟁고아와 전쟁미망인을 파생시켰고, 초토화된 국가 경제난에서 고향을 등지고 피난을 가야만 했던 사람들만 수백만 명의 다다랐다고 하는데요. 이러한 전쟁 속에서 고향을 떠나 현재에 머무르기까지 피난을 가야 했던 피난민들과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한국전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봅시다.
더보기
  • 전남 >진도군

    진도 안농마을
    6·25전쟁 이후 분단으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황해도 장연, 송화, 옹진 사람들을 수용하면서 진도에 실향민촌이 생겼다. 2005년 진도 내에는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실향민 350가구가 있으며, 실향민회가 있다. 집단 이주가 이루어진 안농마을이 최근 농촌마을 리모델링 사업과 농촌재능나눔 공모사업으로 알려지면서, 피난민의 생활이 재조명되고 있다.
  • 부산 >부산진구

    당감동 아바이마을
    당감동 아바이마을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당감동에 있는 피란민들의 정착한 마을을 이르는 말이다. 당감동은 6·25전쟁으로 부산으로 들어온 피난민 정착촌 중 하나였다. 휴전이 되자 거제도로 피난 온 함경도 피난민들이 당감동으로 이주해 오면서 지금의 ‘구 시장 골목’에 정착하게 되었다.
  • 광주 >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
    광주서구 양동 청춘발산마을은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의 정착한 달동네로 1970년대에는 방직공장 여공의 집단 거주 지역이었으나 방직공장이 이전하고 도시개발에서 소외된 지역으로 남아 빈집은 늘어만 갔다. 그러던 2014년 지역재생산업의 일환으로 시작된 ‘볕이 뜨는 발산마을’로 ‘청춘의 발산’ 마을 만들기에 주민과 뜻있는 사람들의 많은 참여가 지금까지 이어져 ‘발산창조문화마을’이란 새로운 마을이 탄생했다.
  •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부산 피난민 마을의 색다른 변신
    감천문화마을은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에 위치한 자연 마을이다. 1950년대 6·25 전쟁 피난민들과 태극도 신도들이 모여 살면서 이루어졌다. 그동안 태극도마을이라는 이름의 낙후된 곳으로 알려져 왔으나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부산지역의 예술가와 주민들이 합심해 환경정비를 하고 담장이나 건물 벽에 벽화 등을 그리는 '마을미술 프로젝트'와 '콘텐츠 융합형 관광 협력 사업'이 진행되어 부산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 경남 >창녕군

    부산까지 소를 몰고 피란 갔다 왔다 (이완종 수기)
    6·25전쟁이 터진 해 대구 수창국민학교의 5학년생이었던 이완종은 소등에 짐을 싣고 창녕 이모 댁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을 간 창녕읍에도 포탄이 떨어져 부산을 목표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피난길에서 돌아오니, 마을 주변에는 지뢰, 수류탄 등 위험한 폭발물이 곳곳에 있어 마을 사람들이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 경남 >창녕군

    만삭이 된 몸으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하여 장사를 하였다 (이한식 수기)
    전쟁 당시 임신 중이었던 이한식은  시모님, 남편, 세 살짜리 딸과 피난을 떠났다. 부북면 신촌 다리 밑에서 자리를 잡고, 남편은 밖에 나가면 방위병에게 끌려가기 때문에 숨어다니고 이한식은 만삭이 된 몸으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입소문을 따라 고향에 돌아가니, 담만 남아있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 그래도 방이었던 자리에 청소하여 바닥에 풀을 깔고 그 위에 누웠으니 우리 집이 제일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경남 >창녕군

    나는 보도연맹으로 끌려가신 아버지의 시체없는 무덤 앞에 묘사를 올리고 있다 (정인규 수기)
    정인규의 아버지는 함안에서 농민을 돕는 농민운동을 하였는데 6.25전쟁이 일어나자 보도연맹이란 명분으로 평상에 쉬고 있는 아버지를 설순경이란 사람이 와서 잡아갔다. 잡아갈 때는 아버지의 허리띠를 순경이 풀어버리고 끌려가시면서 평상 밑에 떨어진 자그마한 공을 주어 나에게 주면서 잘 놀아라 며칠 있으면 돌아올 것이다 한 것이 마지막 말씀이었다.
  • 경남 >창녕군

    총알이 귀 옆으로 날아가는 듯하였다 (신용찬 수기)
    창녕군 남지읍 홍포동에 살던 신용찬은 13살이 되던 해 전쟁이 나,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올랐다.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많은 피란민이 죽어가는 것을 보았고 피난을 갔던 수용소에서는 배급이 적어 굶주려야 했다. 신용찬과 가족들은 창녕에서 밀양으로 다시 거제도 장승포 수용소로 피난을 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 경남 >창녕군

    피란 중 모병에 붙잡혔는데 명함 한 장으로 모면했다 (김외식 수기)
    김외식은 1950년 5월 마산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6.25 전쟁이 일어났다. 인민군이 낙동강까지 내려왔을 때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사가 마을마다 배치되어 피란 나가도록 독려하였는데 영어가 통하지 않아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니 마을에 불을 질러 빨리 피란 나가도록 독려하였다. 피란 중, 강제모병에 징집될 뻔했으나 부산부두노동조합 위원장이었던 당숙의 명함 덕분에 모면할 수 있었다.
  • 경남 >창녕군

    교량폭파로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이틀이 걸렸다 (윤혁근 수기)
    1950년 7월, 윤혁근은 열 살 초등학교 4학년으로 길곡면 오호리에 살았다. 어느 날 멀리서 쿵쿵하는 대포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지 며칠 지나 소를 먹이러 가던 중 제트기비행기 2대가 쌩쌩 소리 내며 길곡면 오호리 상공을 돌고 있다가 100m 앞 전방 함안군 칠북면 득남리 어느 집을 폭격하여 초토화되었다. 그다음 날부터 낙동강 변 백사장과 온 들판이 피란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격변의 조선을 살아간 의병의 삶

호국보훈의 달, 첫째 날인 6월 1일은 '의병의 날'입니다. 애국애족정신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 때마다 자발적으로 모여 외세에 대항한 민군을 의병이라고 하는데요. 이러한 의병은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조선후기엔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의병을 떠올릴 때면, 역사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곽재우 장군과 신돌석 의병장의 이름이 익숙하게 다가오지요.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의병들에 대해서도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호국정신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도 의병이 주요 소재로 다뤄지며, 의병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도 하였는데요. 전국에는 의병의 주요 봉기지와 활동지 등을 사적과 문화재로 지정하여, 그들의 호국정신을 기록하고 기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의병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 지역의 의병 이야기를 찾아보고, 의병의 역사적 의의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까요?
더보기
  • 경남 >의령군

    홍의장군 곽재우
    곽재우(1552~1617)는 임진왜란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물리쳤고, 왜군의 호남진출을 저지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천강홍의대장군의 깃발을 들고 붉은 옷을 입고 흰 말을 타고 다녀 홍의장군으로 불렸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활동하였다.
  • 전남 >나주시

    전라도의 의병장 김천일
    김천일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전라·충청·경기·경상 4도에서 많은 활약을 했다. 김천일은 유교경전을 몸소 실천했으며, 선비의 풍습을 바로잡고 수령을 잘 임명해야 한다는 등 당시 폐단을 개혁하는 방안을 건의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서울이 일본군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경명·박광옥·최경회 등에게 의병을 일으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키고 서울 수복을 목표로 북으로 향했다. 강화도를 중심으로 양화도전투, 선유봉 및 사현전투, 행주산성전투 등에 참가하여 공을 세웠다. 1593년 10만에 달하는 적군의 공세로 성이 함락되자 아들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 경남 >창원시

    8척의 멋진 의병 제말
    제말(諸沫)[1567~1593]은 1583년 무과에 급제하고 총부수문장(摠府守門長)을 역임하였다. 조카 제홍록과 함께 사재를 털어 의병을 일으켰다. 웅천, 김해, 정암 등지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성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경남 >함양군

    황석산성에서 전사한 곽준
    곽준(郭䞭, 1551년(명종6)~1597(선조30))은 안음 현감을 지낸 인물로 조종도와 함께 황석산성에서 정유재란 때 최후를 맞았다.
  • 충남 >금산군

    칠백의병의 의로운 죽음, 조헌 의병장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격문을 띄우고 의병을 모아 차령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후 다시 의병을 모아, 8월 1일 영규의 승군과 같이 청주성을 수복했다. 왜적이 충청도와 전라도를 빼앗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금산으로 향했으나, 충청도순찰사 윤국형과의 의견대립과 전공을 시기하는 관군의 방해로 의병이 흩어지고 700여 명만이 남게 되었다. 이들을 이끌고 금산으로 가서 8월 18일 왜장 고바야가와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나, 인원과 무기의 열세로 모두 전사했다.
  • 강원 >춘천시

    춘천의 한말의병장 이소응
    이소응(李昭應, 1861~1928)은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큰 학자이며 춘천에서 창의한 한말의병장으로 여러 전투에서 승전보를 올렸던 인물이다.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의 문집을 정리하기도 했다.
  • 강원 >춘천시

    의병가사를 지었던 춘천의 의병장 류홍석
    류홍석(柳弘錫, 1841~1913)은 화서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였으며, 1895년 을미사변 후 55세의 나이로 의병에 가담하였다. 처음 춘천의진에 있다가 제천의진에 가담하였으며, 류인석을 따라 중국에 가 있다가 1913년 7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 충남 >홍성군

    충남 홍주의 의병장 김복한
    김복한(金福漢, 1860~1924)은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승정원 승지를 지냈다. 1894년 갑오경장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왔다. 1895년 단발령과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다시 1906년 의병을 일으켰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 강원 >춘천시

    13도의군도총재 류인석
    류인석(柳麟錫, 1842~1915)은 한말의병장이며 13도의군도총재로서 나이 53세에 의병을 시작해서 결국 독립을 보지 못하고 해외에서 한 많은 평생을 끝맺었다.
  • 강원 >춘천시

    한국최초의 여성의병 윤희순의 의병가사
    윤희순(尹熙順, 1860~1935)은 현 구리시 출신으로 춘천시 남면 발산리에 출가하여 시아버지 류홍석을 비롯해서 남편과 아들들까지 모두 의병활동에 참여한 의병집안이다. 윤희순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으로 평생을 의병활동에 바친 인물이다. 그는 의병가사를 써서 남녀모두 의병활동을 할 것을 독려하였다.

랜선으로 떠나는 세계여행

매년 5월 20일은 '세계인의 날'로 다양한 민족과 문화권의 사람들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제정한 국가기념일입니다. 사는 환경이 서로 다르기에 서로의 문화를 완전히 이해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그 문화를 직접 방문하여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데요. 그러나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면서, 해외여행을 선뜻 가기 어려워졌습니다. 삶의 활력소 중 하나가 준 것 같아 아쉬움도 큰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쉽게 여행을 가지 못하는 여러분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랜선 세계여행을 준비해보았습니다! 지역N문화에서 소개하는 각국의 여행지를 통해 잠시나마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랜선 여행을 떠나볼까요?
더보기
  • 경기 >고양시

    고양 (재)중남미문화원병설박물관, 발 딛는 순간 '여기는 중남미'
    중남미문화원은 30여 년 동안 중남미 국가의 외교관을 지낸 이복형, 홍갑표 부부가 해외 체류 시절 어렵게 구한 유물을 모으고, 퇴직금을 포함한 사비를 털어 마련한 문화 복합 공간이다. 중남미 여러 부족의 고대 유물에서부터 민속품, 근현대 중남미 예술가의 조각 등이 전시돼 있다. 중남미 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중남미 전문 박물관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방문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중남미문화원은 1994년에 비영리 문화재단으로 인가를 받고, 1994년 박물관을 시작으로 미술관(1997년), 조각 공원(2011년), 종교전시관과 연구소(2011년)를 차례로 설립했다.
  • 제주 >서귀포시

    미지의 세계 아프리카를 경험할 수 있는 제주아프리카미술박물관
    미디어로 부정적인 인식이 많은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진짜 아프리카 문화를 보여주고자 서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있는 젠네 대사원을 모티브로 만든 이색적인 건물의 박물관이다. 아프리카의 과거와 현재, 자연환경, 예술문화를 전시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미디어 파사드, 영상을 통해 현대적인 아프리카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이색적인 기념품으로 제주도에 여행을 간다면 한 번쯤 들려볼만한 박물관이다.
  • 강원 >영월군

    폐교에 400여 점의 인도 미술품을 전시한 인도미술박물관
    카레와 요가로 익숙해졌지만,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인도의 예술품과 문화에 매료되었던 우리나라 화가인 박여송 씨와 인도지역연구가 백좌흠 씨는 인도의 특색있고 매력적인 예술을 우리나라에 알리고 싶었다. 인도를 여행하고 생활하며 35년간 인도에서 모은 400여점의 수집품들과 영월의 작은 폐교 공간을 활용해서 2012년 인도미술박물관을 개관했다.
  •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안동 하회세계탈박물관,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은 탈의 세상
    안동 하회세계탈박물관은 김동표 하회탈 전문 제작 장인이 세운 박물관이다. 박물관 옆에는 김동표 관장이 운영하는 하회동 탈방이 위치한다. 소장품은 김동표 관장이 국내는 물론 세계 전역을 다니며 수집한 다양한 탈로 이루어져 있다. 제1전시실에는 한국의 탈을, 제2부터 5전시실까지는 각국의 독특한 탈을 볼수 있다. 하회탈은 조형적으로도 재미있고, 춤과 함께 쓰이는 까닭에 문화 예술사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또한 민중의 소리를 대변하고 사회를 풍자하는 면에서 정치적이기도 하다. 하회세계탈박물관을 방문하면 탈 하나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와 의미를 알고, 신명 나는 흥을 즐길 수 있다.
  • 경북 >경주시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 멋짐 백만볼트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은 2017년 경주 보문단지에 세워진 자동차 전문 박물관이다. 모형이나 사진이 아닌, 실물 자동차를 전시하는 곳으로, 1800년대부터 지금까지 자동차가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경주세계자동차박물관의 소장품은 설립자인 구승회 회장의 개인 수집품과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어렵게 구한[때로는 수리와 정비까지 거친] 자동차들로, 세계적인 명차를 한자리에서 관람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 제주 >서귀포시

    놀라운 자연의 색을 보여주는 세계 조가비 박물관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가비(조개)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는 곳이 ‘세계 조가비 박물관’이다. 세계조가비 박물관은 40여년 간 수집한 1만5천여종의 조가비와 산호를 아름다운 받침대 위에 조화롭게 배치하여 다양한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전시되어 있는 조개의 다양한 색감들을 보며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얼마나 모르는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 제주 >서귀포시

    클래식카와 세계에 한대 뿐인 피아노를 볼 수 있는 세계 자동차&피아노 박물관
    3만여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자동차와 8천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피아노는 각각 기술과 예술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이 놀라운 발명품들은 기술과 예술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변화가 미래 세대까지 전달될 수 있도록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고, 교육의 현장이 되는 박물관이 개인 소장품으로 운영되고 있다. 바로 제주도에 있는 ‘세계 자동차&피아노박물관’이다.
  • 제주 >서귀포시

    세계의 술을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세계 술 박물관
    술은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주몽신화에 처음 등장해 다양한 술이 개발되었다. 하지만 술의 주된 재료가 곡식이다 보니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법적으로 술을 금지하는 금주령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전통 술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며 거의 그 명맥이 끊어졌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확정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의 필요성을 느끼며 민속주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민속주를 비롯해 프랑스 꼬냑, 러시아의 보드카, 독일의 맥주 등 세계 각국의 술을 모아놓은 세계 술박물관이 제주도에 있다.
  • 충북 >충주시

    택견의 고장에서 만나는 세계무술, ‘충주세계무술박물관’
    “익크 엑크 익크 엑크.......” 충주세계무술박물관이 있는 충주세계무술공원에서는 무술인들의 구령에 맞춘 움직임이 보인다.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택견은 부드럽고 유연한 동작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우리의 전통무예이다. 택견을 중심으로 열리는 세계무술축제에 참여했던 세계 무술인들이 기증한 무기, 공예품, 도복 등 전 세계의 무술관련 유물이 수집되어 전시된 곳이 ‘충주세계무술박물관’이다. 베는 무기, 쏘는 무기, 찌르는 무기 등 세계 무술의 무기 등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무술체험실에서는 택견 동작을 따라해 보고, 격파와 대련게임도 체험할 수 있다.
  • 강원 >영월군

    이색적인 아프리카 문화를 체험하는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
    우리에게 아프리카는 아직 미지의 세계이다. 이러한 미지의 세계에 대해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정보가 ‘구호단체 홍보’라면 그 인식이 바뀌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고 아프리카 다양한 종족의 문화와 예술을 알리고자 하는 곳이 강원도 영월에 있다. 영월 아프리카미술박물관은 아프리카 다양한 종족의 조각상과 가면, 예술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2021년 6월부터 캠핑장을 운영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리카에 대해 알리고자 노력하고 있다.

<오징어게임>속 추억의 놀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고 있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은 우리나라 작품 최초로 미국 넷플릭스와 글로벌 랭킹 1위를 차지한 드라마입니다. 특히 드라마 속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놀이는 세대를 불문하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여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에 드라마 속 전통놀이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즐겨보는건 어떨까요?
더보기
  • 전국

    알록달록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구슬치기
    구슬치기는 구슬을 맞혀서 상대편의 구슬을 따먹거나, 상대의 손에 구슬이 몇 개인지 알아 맞히는 놀이다. 예전부터 전해온 전통놀이라는 설과 일제 강점기 때 일본으로부터 전해진 놀이라는 주장이 있다. 연원은 불확실하나 일제 강점기 이후에 널리 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 전국

    '뒤집어라 엎어라', 다채로운 딱지치기
    딱지치기는 종이를 접어서 만드는 종이접이 딱지나 인쇄된 종이를 오려서 노는 인쇄그림 딱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다. 어떤 딱지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놀이 방법이 다르다. 종이접이 딱지는 바닥에 딱지를 놓고 다른 딱지로 내려쳐서 뒤집는 놀이고, 인쇄그림 딱지는 딱지에 그려진 계급, 숫자, 별의 개수 등을 겨루는 놀이다. 한국전쟁 이후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 전국

    나선형의 달팽이집을 그려 놓고 편을 나눠 겨루는 달팽이놀이
    달팽이놀이는 바닥에 나선형의 달팽이집을 그려 놓고 편을 나눠 겨루는 놀이다. 지역에 따라 ‘골뱅이놀이’, ‘돌아잡기’, ‘마주치기놀이’라고도 부른다. 놀이 방법은 간단해서, 상대방 진영을 먼저 차지하는 쪽이 이긴다. 떡(돌멩이)을 지키고 훔치는 놀이 방법도 있다.
  • 전국

    힘과 기술, 균형감각으로 겨루는 깨금발싸움
    깨금발싸움은 한쪽 발을 들어 올려 손으로 잡은 후 상대방을 밀어붙이면서 제압하는 놀이다. 힘과 기술, 균형감각이 필요하다.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민속놀이로, 일대일로 붙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나와 겨루기도 한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는 놀이다.
  • 전국

    '숨는자, 찾으려는 자!' 숨막힌 긴장 속에 깡통차기
    깡통차기는 기존의 숨바꼭질놀이에 깡통차기라는 요소를 더한 놀이다. 술래는 원 안의 깡통을 지키면서 숨은 사람들을 찾아야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술래에게 들키지 않게 숨어 있다가 깡통을 몰래 차야 한다. 원래는 빈 두레박을 사용했으나 미군의 영향으로 놀이의 소재가 깡통으로 바뀌었다.
  • 경남 >창녕군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기 위한 영산 줄다리기
    영산 줄다리기는 작은줄당기기에서 큰줄당기기로 발전하는 대동놀이다. 원래 정월 대보름에 벌이는 세시풍속이었으나 지금은 3.1민속문화제 때 당긴다. 경상남도 3.1 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된 까닭에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서다. 줄다리기가 끝난 후 줄을 끊어가면 풍년이 들고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속설이 있다. 
  • 광주 >서구

    광주천과 광주의 줄다리기
    광주가 호남의 중심도시로 자리 잡은 일제 초기 지금의 임동 유동을 관통하는 큰길가에는 버드나무 노거수의 숲으로 빽빽이 우거져 있었다. 광주천이 거의 일직선으로 정리되기 이전에는 학동 동쪽 끝에서 임동천변 끝까지 꼬불꼬불 구곡양장을 이루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광주의 민속놀이 가운데 줄다리기가 무척이나 성행했었다.
  • 강원 >삼척시

    나쁜 기운과 귀신을 쫓는 삼척 기줄다리기
    삼척 기줄다리기는 줄이 게(사투리 '기')의 발을 닮았다고 해서 ‘기줄다리기’라고 부른다. 삼척에서는 게가 나쁜 기운과 귀신을 쫓는다고 믿었다. 그래서 옛날에 죄인을 처형하던 곳인 사대광장에서 줄다리기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풍년도 풍년이지만 줄다리기에서 지면 마을 공사에 동원됐기 때문에 이기기 위해 매우 치열하게 했다. 줄은 쌍줄로 만들어서 두 줄을 비녀목으로 연결하는데, 이 힘겨운 줄 꼬기 작업을 달래주는 '술비통노래'가 지금까지 불리고 있어 주목된다.
  • 경기 >성남시

    과거와 현재의 문화 공존, 판교 쌍용거줄다리기
    성남시 판교 지역에서 행해지는 판교 쌍용거줄다리기는 과거 판교 지역이 전형적인 농업 지역이었음을 보여주는 문화자원이라 할 수 있다. 한동안 중단된 이 놀이를 성남시와 성남문화원에서 복원하여 최근까지도 행해지고 있는데 줄을 당기는 시기는 정월대보름이다. 줄은 암줄과 숫줄로 구분되는 쌍줄이며, 세 차례의 줄을 당기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암줄이 이겨야 한다. 줄을 당긴 뒤에는 승패에 상관없이 줄을 당긴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대동놀이를 펼쳤다. 현재의 판교쌍용거줄다리기는 줄을 당기는 장소가 바뀌면서 구청이나 주민센터 앞에서 행해지고 있다. 비록 장소의 변화가 있긴 하나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인 이 놀이를 오늘날까지 행해지고 있는 것만으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 전국

    땅을 소유하고 싶은 염원을 담은 땅따먹기
    땅따먹기는 말(돌)을 손으로 튕기거나 재어서 땅을 차지하는 경쟁 놀이다. 지역에 따라 놀이 방법이 다양하지만, 말을 3번 튕겨서 집 밖으로 내보냈다가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놀이 형태가 일반적이다. 놀이의 연원은 불분명하지만, 농경사회에서 땅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유희라는 이야기가 있다.

충의로 바친 일생, 이순신을 기리다

1545년 4월 28일은 충무공 이순신의 탄신일을 기념하여 제정한 날입니다. 이날은 후손들에게 충무공의 높은 충의를 길이 빛내고, 그를 기리기 위한 날인데요. 이순신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는 위인에 손꼽히는 분입니다.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을 맞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다시 살펴보고, 그의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보기
  • 충남 >아산시

    이순신의 마음이 아로새겨진 충무공 장검
    충무공 장검은 길이 196.8㎝와 197.2㎝의 2점이며, 보물 326호로 지정되었다. 두 자루의 장검은 이순신이 1594년 4월 한산도 진중(陣中)에 있을 때 스스로 만든 칼이다. 전장에서 실제로 쓴 것이 아니라 곁에 두고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칼날에 삼척서천 산하동색 일휘소탕 혈염산하(三尺誓天 山河動色 一揮掃蕩 血染山河)라는 친필 검명(劍銘)이 새겨져 있고, 칼자루 속에 甲午四月日造太貴連李戊生(갑오년 4월에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 전남 >여수시

    거북선이 탄생한 곳, 여수 선소유적(船所遺跡)
    사적 제392호로 지정된 여수선소유적(麗水船所遺跡)은 이순신이 거북선을 건조했던 곳이다. 이곳과 더불어 전라좌수영의 본영 선소, 방답진 선소 등 3곳의 선소에서 거북선이 건조되었다. 거북선은 이름 그대로 거북 모양의 배다. 당시 운용되고 있었던 판옥선과는 달리 철갑으로 덮개를 덮은 것이 특징이다. 여수선소유적은 여수 가막만에 위치해 있다. 유적이 위치한 가막만 앞 바다에는 가덕도와 장도가 자리하는데, 이 때문에 해상에서는 유적의 내부가 보이지 않는다. 조선 상황과 전력을 감출 수 있는 천혜의 요새인 것이다. 총 3차에 걸친 발굴조사를 통해 유적의 규모와 유구의 구성이 드러났다. 거북선을 만들고 수리했던 ‘굴강’, 지휘소인 ‘선소창’을 비롯하여 대장간, 훈련소, 망루 등이 남아있다.
  • 전남 >여수시

    이순신 장군을 추모하며 좌수영 군사들이 세운 여수 타루비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 고소대 비각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여수 타루비가 있다. 여수 타루비는 이순신이 세상을 떠난지 6년 후인 1603년 이순신의 수하였던 좌수영의 군사들이 이순신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여수에 있던 타루비를 서울로 빼돌리고 해방 후에 경복궁에 묻어둔 채 가버렸다. 여수 시민들이 수소문 끝에 타루비를 찾아내 여수로 옮겨와 고소대에 비각을 짓고 통제이공 수군대첩비와 함께 보전하여 현재에 이른다.
  • 경남 >고성군

    이순신의 수군들이 들었다는 경남 고성군 좌부천 마을의 들돌
    경남 고성군 동해면 좌부천마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시기, 이순신 장군의 수군이 머무르며 들돌들기를 했다는 들돌이 느티나무 아래에 놓여 있다. 들돌들기란 예전에 남자들이 무거운 돌을 들어 올려 힘을 겨루던 놀이를 말한다. 지방에 따라 들돌을 들독 · 등돌 · 진쇠돌 · 당산돌 · 신돌 · 차돌백이돌이라고도 하고, 이 들돌 때문에 마을의 명칭이 거석거리 · 들돌거리 · 거석마을인 곳도 있다. 좌부천 마을의 들돌이 여럿 있었으나 현재는 어른 머리 크기 정도의 들돌이 민속자료로 남아 있다.
  • 전남 >순천시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내려온 순천의 백의종군로
    전남 순천시의 백의종군로는 선평삼거리에서 구례읍에 이르는 약 25km의 길이다. 송치재에서 황전면까지의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국도 17호선과 나란한 뚝방길로 이어져 있다. 백의종군로는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걸어내려온 총 640.4Km의 길 중 25Km의 길로 명량대전의 승리를 준비하는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었다. 계절별로 물길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를 보며 자전거도 탈 수 있고, 걸을 수도 있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길이다.
  • 경남 >통영시

    명나라 장수도 감동하고 따른 충무공 이순신의 통영 충렬사
    통영의 충렬사는 이순신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임진왜란의 영웅인 이순신에 대해서는 해전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 있다. 전장에서의 모습이 아닌 숨겨진 이야기들은 이순신의 리더십을 잘 보여준다. 특히 명나라 도독 진린과의 일화는 이순신이 얼마나 용의주도하고 대범하게 상황을 주도해가면서 신망을 얻었는지 잘 보여준다.
  • 전남 >여수시

    전라좌수영에서 벌이는 여수거북선축제
    여수거북선축제는 1967년 여수진남제에서 시작된 전통있는 축제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사령부 건물이었던 진해루 터에 지은 건물이다. '남쪽을 진압하라' 즉, 왜군을 진압하라는 의미를 붙여 진남관이라 불렀다. 여수거북선축제에서는 전야제로 영당 고유제가 열리고, 가장행렬, 선박 해상 햇불놀이, 불꽃놀이, 축등행렬을 진행하며 소년 이순신도 뽑는다. 그중 통제영길놀이는 인기가 많다.
  • 경남 >통영시

    세계 4대 해전 한산대첩이 일어났던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
    임진왜란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이다. 한산도 앞바다에서 임진왜란 당시 가장 유명한 싸움인 한산도대첩이 일어났다. 이런 연유로 한산도에는 이순신 장군과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와 관련된 흔적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진두마을, 하포마을, 역졸마을 등 지명을 비롯해, 제승당, 한산정 등은 이순신의 군대가 머물던 장소이다. 통영에서 배를 타고 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거북선 조형물도 볼거리다.
  • 충남 >아산시

    1등 공신으로 책훈하는 이순신 선무공신교서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에 있는 현충사에는 이순신 선무공신교서가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 싸워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공로를 치하하기 위하여 선조 37년인 1604년에 내린 교서이다. 교서의 내용은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책훈에 따른 여러 포상 내역이 주를 이룬다. 특히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이전 북방 오랑캐 방비에 활약한 사실부터, 전란 당시 수군을 통솔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정황 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소개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 충남 >아산시

    이순신 탄신일에 개최되는 아산 성웅이순신축제
    아산 성웅이순신축제는 처음 1964년 온양문화제로 시작하였고, 2004년 이래 아산성웅이순신축제로 명칭을 바꾸어 개최되고 있다. 매년 4월 28일 이순신 탄신일을 전후하여 개최된다. 온양온천과 이순신을 결합한 문화제는 존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지금은 이순신 위주의 축제를 꾸리고 있다. 학술세미나, 토크콘서트 등이 열리고 이순신을 주제로한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이순신은 본가가 충남 아산 염치면 백암리이고, 묘가 아산시 음봉면 어라산에 있다.

강화로 떠나는 웰니스 추천 여행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몸은 정원이요, 우리 의지는 정원사'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올해는 쉬지 않고 무작정 달려가기 보단, 자신의 속도 대로 충분히 쉬어가며,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드는 행복한 정원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할 수 있는 이곳, 강화도에서 여러분의 정원을 가꾸어보세요.
더보기
  • 인천 >강화군

    ‘깨달음의 배’와 ‘구원의 방주’가 만나다 - 성공회 강화성당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성공회 강화성당은 1900년(광무 4년)에 지어졌다.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차별성을 가지는 제3의 선교 방식을 추구한 성공회는 강화도를 선교 거점으로 삼았다. 불교 가람과 유교 사당을 닮은 성공회 강화성당은 조선의 토착 종교를 반영해 기독교를 전파하고자 한 영국 성공회 선교사들의 토착화 노력을 보여준다. 사찰의 대웅전처럼 성당의 형태를 한옥 양식에 배 형상으로 건축함으로써, ‘깨달음의 배’라는 반야용선의 사상을 ‘구원의 방주’라는 기독교 사상에 접목시켰다. 본당 앞에는 불교를 상징하는 보리수와 유교의 선비를 상징하는 회화나무를 심었다. 성당 곳곳에 연꽃 문양 등 불교의 전통적 무늬와 태극 문양 등 유교의 무늬를 기독교 십자가 문양과 함께 배치했다. 성당을 지을 때 경복궁 중건에 참여했던 도목수를 초빙하고, 백두산 목재를 가져오는 등 정성을 기울였다. 성공회 강화성당은 사적 424호이며, 성당 내부 제대 및 세례대는 등록문화재 705호다.
  • 인천 >강화군

    갑옷을 쌓아 배를 타러 갔던 인천 강화 갑곶나루
    강화군 갑곶리와 김포시 월곶면을 오가는 나룻배를 운영하던 나루인데, 강화도와 뭍을 연결하는 중요 통로였다. 정묘호란(1627년)이 발발하자 인조가 후금을 피해 건넜던 나루이며, 그의 아들 봉림대군도 병자호란 때 갑곶나루를 통해 강화로 들어왔다. 청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여러 신하들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병인양요(1866년)에 프랑스군이 강화읍으로 진입한 곳이다. 세종대에 박신(朴信)이 경비를 부담하고, 주민들 노역하여 14년간 선착장 석축로를 쌓았으며, 그 후로 1920년에 김포 성동리와 강화 용정리 사이에 나루터를 신설하기 이전까지 중요 나루로 활용되었다. 1970년에 강화대교가 생기면서 나루터는 제 기능을 잃었고, 제방 공사로 인해 나루터 시설이 사라졌다.
  • 인천 >강화군

    지하 난방시설과 목욕시설이 있는 강화 고대섭 가옥
    강화 고대섭 가옥은 ‘미음(ㅁ)’자 형태의 반가(班家)로, 집의 크기는 99칸〔間〕이다. 일반 사대부가 지을 수 있는 최대의 집 크기다. 강화 고려인삼을 경작하고 인삼무역을 했던 고대섭은 개성의 집을 본 따 황해도의 자재로 전통 한옥과 일식을 결합한 집을 지었다. 그래서 이 집에는 지하 난방시설, 쇠솥이 있는 목욕시설 등 독특한 시설들이 있다. 2020년부터는 한옥스테이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 인천 >강화군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 인천 >강화군

    강화의병 전투지 전등사
    전등사는 1907년 7월 강화진위대장 출신 이동휘가 김동수·허성경 등의 기독교인을 비롯하여 해산군인 400여 명을 모아 ‘합성친목회’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반일집회를 열어 일반 군중을 고무시켰던 곳이다. 또 1908년 강화 출신 시위대 장교였던 이능권이 의병을 일으켜 ‘대동창의진’이라 하고 전등사를 근거지로 일제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 인천 >강화군

    화문석으로 유명했던 강화읍장과 강화풍물시장
    인천광역시 강화군 갑곳리에는 강화풍물시장이 있다. 강화풍물시장은 강화도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상설시장뿐만 아니라 매월 2일과 7일 오일장도 함께 열린다. 장날이면 풍물시장 공터와 도로변에 300여 개의 노점들이 조성되며, 지역의 농민들뿐만 아니라 인근지역에서 모인 상인들은 각종 농산물과 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인천 >강화군

    주민들이 직접 지은 한옥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
    강화 온수리 성당은 110년을 지켜온 한옥 구조의 성당이다. 1900년 강화에는 선교본부인 영국교회의 지원 하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함께 온수리 성당이 세워졌다. 민초들이 세운 성당이라 그 의미가 더 깊은 공간이다. 아담하고 단아한 한옥의 양식이 잘 보존된 교회건축양식으로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1997년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15호로 지정받았다.
  • 인천 >강화군

    고려 왕조의 생명선, 강화외성
    강화외성은 고려 23대 고종이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강화도로 천도한 뒤 1233년(고종 20) 해안 방어를 위해 23km에 걸쳐 쌓은 성이다. 강화성은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외성은 동쪽 해안을 따라 쌓았는데 몽고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다. 이 성은 벽돌로 개축한 전축성(塼築城)이 오두돈 주변 남측에 남아 있어 수원 화성과 더불어 전축성 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준다.
  • 인천 >강화군

    오랑캐의 침입에 죽음을 택한 순절자들의 배향, 강화도 충렬사
    강화도의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정신으로 죽음을 선택한 39인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물살이 거세 적군이 들어올 수 없다는 철옹성이라 여기던 강화도에 청나라군이 들이닥치자 도성의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오랑캐 여진족에게 굴복하기보다 자결로 절의를 지키고자 한 것이었다. 김상용을 포함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순절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충렬사에 배향된 인물들 외에도 자결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 인천 >강화군

    수많은 외국과의 전투가 이루어진 강화산성
    이 산성은 몽고의 침입으로 서울을 개경에서 강화로 1232년 6월 천도하면서 축성한 내·중·외 3성중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다.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성에는 봉림대군을 위시한 빈궁들과 일부 신하들이 들어갔다. 그러나 청군은 1637년 1월 각도의 근왕병을 패전시키고, 1월22일 홍이포를 쏘면서 강화성을 유린하였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3.1절,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선언하다

1919년 4월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인 충남 천안의 독립운동 터전, 아우내장터.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서울 탑골공원 '팔각정'. 3.1운동에 앞장섰던 철원 제일 교회. 1919년 학생들의 적극적인 만세 시위로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던 전주 신흥학교. 모두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장소입니다. 반면, 구 나주 경찰서와 같이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을 억압하고 민족 운동가들을 고문한 가슴아픈 흔적도 남아있습니다. 3.1절을 맞아 일제탄압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사람들의 역사적 순간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요?
더보기
  • 전남 >목포시

    댕기머리 소녀들의 야무진 만세 함성, 목포 정명여자중학교 구 선교사 사택
    목포 정명여학교는 1903년 미 남장로교의 선교에 일환으로 세워진 학교다. 전라남도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명여학교는 1919년과 1921년 만세 시위를 벌인 학교로 유명하다. 댕기머리 소녀들은 비밀리에 거사를 준비하고 실행에 옮겼다. 정명여학교는 1937년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 당했다가 1947년에야 재개교했다. 선교사 사택은 1905~1910년 사이 지어진 석조 건물이다. 목포 산지의 화강암으로 지어진 선교사 사택은 2채다. 현재 정명여학교 100주년 기념관으로 쓰이는 사택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 전북 >전주시

    새로운 여명을 열다, 전주 신흥고등학교 강당과 본관 포치
    전주 신흥학교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1900년부터 근대학문의 요람으로 출발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조선 시대 학당 희현당 자리에 1928년 세워졌다. 강당은 1936년 준공되었다. 신흥학교 본관과 강당은 미국의 리차드슨 부인이 거금을 기부해 건립되었다. 신흥학교의 본관은 광주 수피아여학교의 윈즈브로우 홀과 규모와 형태, 구조가 똑같은 쌍둥이 건물이다. 신흥학교는 1919년 3.1 만세운동, 1930년 광주 학생 항일운동 동조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80년에도 항의 시위에 나서는 기개를 보여주었다. 신흥학교 옛 본관은 아쉽게도 1982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으나, 다행히 현관 포치만은 화마를 피했다.
  • 대전 >유성구

    유성의병 봉기지 유성장터
    유성장터는 1895년 9월 18일 문석봉이 유성의병을 일으킨 곳으로 3.1운동때에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던 곳이다. 문석봉 의병장이 일으킨 유성의병은 명성황후시해사건 후 전국에서 최초로 일어난 의병 투쟁이었다. 문석봉은 1,000여명의 의병을 모아 유성의병을 결성하고 1895년 12월 공주를 공격하였으나 관군과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물러났다.
  • 강원 >철원군

    평화를 묵상하는 유허(遺墟), 구 철원 제일교회
    강원도 철원군 구 철원읍의 철원 제일 교회는 1905년 장로교회로 출발하여 1907년 감리교회가 되었다.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교인이 계속 늘어 1937년 교회 창립 30주년에 맞추어 새 예배당을 건립했다. 일본 근대 건축에 큰 영향을 준 윌리엄 보리스가 직접 설계한 교회는 “동대문 밖 최고의 건축물”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화강암과 대리석, 화산암이 조화를 이룬 지하 1층, 지상 3층의 아름다운 성전이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발발 1개월 만에 미군의 폭격을 받아 벽체 일부만 남기고 무너져 내렸다. 수난의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철원 제일 교회의 유허는 평화를 일깨우는 소중한 근대유산이다.
  • 윤희순과 관전현 고령지와 청산구 소아하구의 독립운동근거지
    관전현은 요녕성 동남부 압록강 변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며 류인석, 윤희순, 이진룡 등이 의병활동 및 독립운동을 활발하게 했던 지역이다.
  • 충남 >천안시

    독립운동의 터전 아우내장
    아우내장은 충청남도 천안시 병천면에서 매월 1일과 6일 열리는 오일장이다. 문헌상의 기록에는 1779년부터 개설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또한 유관순 열사가 만세운동을 벌렸던 곳으로 인근에는 유관순 열사의 생가와 기념관이 있다. 
  • 인천 >동구

    3.1 독립운동 발상지, 인천 창영초등학교 앞 문구점
    인천 창영초등학교는 3.1운동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조진만 대법원장, 고유섭 선생 등 다양한 인물을 배출해낸 창영초등학교 옛교사는 인천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창영초등학교 앞에는 작은 문구점이 하나 있는데, 40년 넘게 이 앞을 지킨 문구점 사장 할머니께서 이 학교의 역사와 동네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 경남 >고성군

    경남 고성의 첫 3⋅1 독립만세운동터 100주년 기념탑
    서울에서 시작된 3‧1독립만세운동이 물결처럼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져가던 1919년 3월 20일, 고성에서도 맨 처음으로 구만면에서 유림들을 중심으로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 이웃 배둔 장터까지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고성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00주년을 맞아 구만면 국내다리 터에 기념탑을 세우고 “비를 세우며”란 시를 새겨 놓았다.
  • 강원 >춘천시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남긴 노래들, 윤희순 의병 가사집
    『윤희순 의병 가사집』은 여성 독립운동가 윤희순이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지은 노래를 모아 만든 가사집이다. 「안사람 의병가」, 「병정의 노래」 등 수십 수의 가사가 수록되어 있다. 윤희순은 당시 사대부 아녀자의 신분으로 의병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대중들에게도 항일 의식을 고취시키는 등 구국활동에 전념한 인물이다. 특히, 일제에 저항하거나 의병들을 적극적으로 돕자는 내용의 가사를 지어 사람들에게 부르게 함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데 일조하였다.
  • 전북 >임실군

    오수도의 중심 오수역
    오수역은 조선시대 전라도 임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오수도의 중심이 되는 찰방역이었으며, 전라북도 동남부와 전라남도 동부지방으로 뻗어 있던 교통로를 관할했다. 오수역이 관할하던 역은 모두 11개였다. 오수역은 일찍부터 주변 지역의 중심지로 기능하면서, 1894년 역제가 폐지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만남의 장소로 기능했다. 1919년 3.1운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뒤에 주변 지역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오수역터에 모여 만세운동을 벌였다고 한다. 2017년에는 오수역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표지석이 세워졌다. 오수는 주인을 위험으로부터 구한 개의 사연을 담은 오수의견으로도 유명하다.

첫 보름달이 뜨는 날, 정월대보름

새해 들어 처음 만월이 되는 정월대보름은 예로부터 한 해의 생명력과 생산력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로 여겼습니다. 대보름 아침에는 나이만큼 부럼을 깨서 액운을 쫒고 만사형통과 무사태평을 기원하였고, 마을사람들은 모여 달집태우기, 지신밟기 등의 놀이를 하며 풍년을 빌었습니다. 우리 지역에는 어떤 풍습이 있는지 찾아보며 함께 좋은 한 해가 되길 빌어볼까요?
더보기
  • 정월대보름에 풍년을 기원하며 달집태우기
    일년 중 가장 먼저 만월이 떠오르는 날인 정월대보름을 기념하기 위해 짚이나 나뭇가지 등으로 움막을 만들어 달집을 만든다. 달집태우기는 이 달집을 불로 태움으로써 모든 부정과 근심을 함께 태워 없애는 대보름의 주술적 행위이다.
  • 강원 >강릉시

    전국 유일의 점성 민속, 강릉 사천하평 답교놀이
    강릉 사천하평 답교놀이는 매년 음력 2월 6일의 좀상날에 마을에 있는 다리를 밟으며 한 해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 형태이다. 원래 다리밟기는 사람의 다리가 튼튼하게 해 달라는 의미에서 정월대보름 전후에 이루어지는 세시풍속인데, 강릉은 시기와 목적이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이날 횃불놀이도 함께 이루어진다.
  • 경기 >광명시

    매해 풍년을 기원하는 광명 아방리줄다리기
    아방리줄다리기는 경기도 광명시의 노온사동 아방리 마을에서 정월대보름에 암줄과 수줄을 엮어서 서로 당기던 집단적 세시놀이 형태였다. 이곳은 쌍줄이며, 남녀로 편을 나누고, 목적은 마을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는 데에 있다.
  •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정월대보름 놀이 지신밟기
    지신밟기는 마을굿(당굿)을 한 다음 각 집을 차례로 돌면서 풍물을 치며 집터 곳곳의 지신(地神)을 밟아서 달램으로써 한 해의 안녕과 복덕을 기원하는 마을 민속의례이다. 집터에 있는 지신을 말 그대로 밟는다는 것이 아니라 집 안의 신들이 있는 터에 들어가 풍물을 치며 놀면서 신을 즐겁게 해준다는 의미가 있다. 새해가 시작되는 정초에 가족과 집안의 안녕과 한 해의 무사함을 빌며 한 해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며 올리는 제의이다.
  • 경남 >창원시

    진동 큰 줄에 염원을 담아 당기던 창원 진동큰줄다리기
    진동큰줄다리기는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진동면 동촌 냇가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에 동서로 나뉘어 줄을 당기는 세시성 집단놀이 형태이다. 줄은 암수줄로 구분하는 쌍줄 형태이며, 승부에 따라 상여를 만들고 상복을 입으며 곡하는 모습이 특이하다.
  • 전북 >고창군

    고창오거리 당산제
    고창군 고창 읍내에서 행해지는 오거리 당산제는 읍내에 자리한 여섯 곳의 당산에서 지내는 제의를 일컫는다. 그런 점에서 복합형태의 마을신앙이라 하겠다. 제의는 정월 대보름날 행해진다. 지역마다 각자의 당산제를 지낸 다음 읍내로 나와 동부와 서부로 나눠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한다. 그리고 이들 놀이가 끝나면 줄을 당산의 신체에 감아놓는다. 연등놀이도 함께 진행된다.
  • 광주 >남구

    광주 칠석동 당산제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은 상칠석과 하칠석으로 나뉘어 있는데 두 마을주민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각 마을에 모셔진 당산 신에게 제의를 지낸 다음 두 팀으로 나눠 고싸움놀이를 한다. 흔히 공주 칠석 고싸움놀이로 널리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무형문화재이다. 제관으로 선정이 되면 집마다 다니며 쌀을 걷는다. 화주는 제관에게 받은 쌀을 판 돈으로 제물을 준비한다. 제의 과정에 필요한 제물에는 과일, 고기, 채소 등이다. 본격적인 제의에 앞서 제의 당일 저녁 시간에 사돈 보기라는 행사를 한다. 사돈 보기가 끝나면 두 마을에서 뽑힌 제관들은 함께 상칠석의 당집을 찾아가 제의를 올린다. 제의는 유교식으로 진행된다. 모든 의식이 마무리되면 두 마을주민들이 모두 참가하는 고싸움놀이를 한다. 동부(상칠석마을)와 서부(하칠석마을)로 나눠 진행되는데 승부를 겨룬다. 간혹 고싸움에서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고를 해체해 줄다리기하여 승패를 결정짓는다.
  • 경기 >포천시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포천 틀무시 동홰세우기
    포천 틀무시동홰세우기는 경기도 포천시 틀무시마을에서 정월 16일에 수수깡과 나무를 세워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놀이 형태이다. 이 놀이는 마을의 남녀가 같이 참여하는 집단놀이 형태로 정월대보름 세시놀이의 성격을 지닌다. 현재도 마을 단위로 전승이 지속되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예부터 ‘동홰세운다’라고 말한다. 
  • 경기 >광주시

    400년의 전통을 지닌 광주 광지원해동화놀이
    광주 해동화놀이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중부면) 광지원리에서 해마다 정월대보름 밤에 마을 주민이 달맞이를 위해 해동홰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며 한 해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던 정초의 집단 놀이 형태이다. 해동화놀이는 지역에 따라 달집태우기(호남), 동화제(충남), 동홰놀이(경기도), 화옹이(경기도 여주)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고 있다.
  • 전남 >장흥군

    정월대보름날, 귀신을 땅에 묻어 액운을 몰아낸다
    현재 110호가 모여 살고있는 방촌마을 초입에는 주요 민속 문화재로 지정된 석장승이 세워져 있다.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이 석장승이 있는 곳에서 출발하여 온 마을을 돌며 매귀를 쳐내다가 마지막에 마을회관 앞에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제사를 지낸다. 제사의 말미에 재물의 일부와 허수아비를 싸서 허수아비 골에 버리는 것으로 제사를 비롯한 모든 의식은 마무리 된다.

순천, 자연을 품은 문화유산

다채로운 자연과 오랜 역사의 문화유산을 자랑하는 순천의 곳곳을 천천히 여유롭게 둘러본다.
더보기
  • 전남 >순천시

    숨바꼭질 하듯 꽁꽁 숨어있는, 순천 초연정
    순천의 ‘초연정(超然亭)’은 이름 그대로 ‘자연을 뛰어넘는 자연 속의 정자’이다. 초연정은 1788년 대광사 승려가 창건하여 수석정이라 부르다, 1809년 조진충이 중건하였고, 고종 때 이곳에 방문한 송병선이 초연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주위 산간 계곡이 아름다워 ‘순천 초연정 원림’은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초연정 원림은 크게 두 구역으로 구분된다. 하나는 초연정이 있는 곳으로 내원(內苑)이고, 다른 하나는 초연정 아래 계곡 일대로 외원(外苑)이다. 주암댐 건설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말 그대로 ‘속세를 벗어난 초연정’이 되었다.
  • 전남 >순천시

    성안의 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는 낙안읍성
    고려 후기부터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조선 전기에 흙으로 쌓은 성이다. 1397년(태조 6)에 처음 쌓았고, 『세종실록』에 의하면 1424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성을 쌓아 규모를 넓혔다고 한다. 읍성의 전체 모습은 4각형으로 길이는 1,410m이다. 동·서·남쪽에는 성안의 큰 도로와 연결되어 있는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성의 일부분이 성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 전남 >순천시

    신선들의 놀이터, 순천 선암사 강선루
    순천 선암사 강선루(降仙樓)는 다른 사찰과 달리 문루 기능이 큰 2층 누각이다. 강선루는 좁은 지류가 흐르는 다리 위에 지은 문루여서 다른 누각과 구조가 많이 다르다. 강선루 1층은 정면 1칸 측면 1칸이고, 2층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맑고 깊은 계곡 옆의 강선루와 보물로 지정된 무지개다리 승선교가 같이 있어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 ‘선암사(仙巖寺), 강선루(降仙樓), 승선교(昇仙橋)’ 모두 신선과 연관된 이름이다. 온통 신선들의 놀이터다.
  •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에서 열리는 낙안민속문화축제
    낙안민속문화축제는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에 있는 낙안읍성에서 1994년부터 개최되어온 민속문화축제이다. 낙안읍성은 경주 양동마을, 안동 하회마을처럼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정주형 마을이며, 성곽과 조선시대 민속 경관이 고스란이 남아 있다. 매년 10월 열리는 낙안민속문화축제에선 백중놀이, 기마장군 순라의식, 낙안읍성 성곽 쌓기 재현, 전통 향토음식 페스티벌 등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전남 >순천시

    낙안읍성 근처의 순천 뿌리깊은나무박물관
    「뿌리깊은 나무」는 1976년 창간된 최초의 순우리말 잡지이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 성벽 외곽에 '뿌리깊은 나무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 잡지를 비롯해 발행인 한창기 선생이 모은 6500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하에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을 비롯한 전시실들이 있고, 야외전시실에는 거문고 명인 김무규 선생의 고택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 전남 >순천시

    김굉필과 조위의 교유를 기념하는 순천 임청대
    전라남도 순천시 옥천동에는 임청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임청대는 무오사화 때 순천으로 유배 오게 된 조위와 김굉필이 돌을 쌓아 만든 대이다. 조위와 김굉필은 임청대 근처 계곡에서 노닐며 교유했다고 한다. 1565년 순천부사 이정은 조위와 김굉필이 교유한 임청대를 기념하기 위해 비석을 세우고 옥천서원도 건립하였다. 옥천서원 경현문 오른쪽에 임청대 비각이 세워져 있어 두 공간을 함께 둘러보며 조위와 김굉필의 학덕을 되새겨 볼 수 있다.
  • 전남 >순천시

    전남 평야지대 양반집의 전형, 순천 승주 조순탁 가옥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에 위치한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반가(班家)로, 옥천 조씨 상호정파의 종가이다. 조선후기 경기도 지역 전통 ㅁ자형의 양반집의 영향을 받았지만 안마당이 넓고 개방적인 것이 특징이다. 2,651㎡의 넓은 대지에 건립된 가옥으로, 사랑채 상량문에 ‘태세갑술(太歲甲戌)…’의 기록으로 보아 갑술년인 1934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와 별채, 안마당으로 이루어진 안공간은 사랑채의 바깥공간과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공간과 바깥공간을 잇는 기타공간인 마당이 두 공간을 연결한다. 5칸의 솟을대문에서 웅장한 가옥의 멋이 드러난다.
  • 전남 >순천시

    망자의 영혼을 씻는 전남 순천 송광사 척주당과 세월각 현판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에는 삼보 사찰 중에서도 승보 사찰에 속하는 송광사라는 절이 있다. 송광사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목욕 의식을 치르는 공간인 척주당과 세월각이라는 건물이 있다. 척주당은 남자 영혼이, 세월각은 여자 영혼이 목욕 의례를 치르는 곳으로 남녀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이 두 건물은 송광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건축적, 종교적으로 독특한 공간이다.
  • 충북 >청주시

    192통의 편지에 담긴 사대부 여성의 삶, 순천김씨 한글 편지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에 소재한 충북대학교 박물관에는 순천김씨 한글 편지가 소장되어 있다. 1977년 청원군 석병산 일원에서 채무이와 부인의 묘를 이장할 때 의복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192건의 한글 편지는 16세기 생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면서 동시에 임진왜란 이전 국어 생활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어사적 가치가 대단히 큰 자료이다.
  • 전남 >순천시

    신선이 거닐던 선암사 승선교
    보물 제400호 순천 선암사 승선교 (順天 仙巖寺 昇仙橋)는 선암사 입구 부도군을 지나 경내에 이르기 전, 주산인 조계산에서 유출되는 계곡물이 선암사 앞으로 흐르는 곳에 세워진 다리다. 이곳에서 대소 규모의 다리가 2개소에 설치되어 있는데, 상류 쪽 다리를 상승선교, 하류 쪽 다리를 하승선교라고 부른다. 이중 상승선교가 보물 제400호로 지정된 선암사 승선교다. 숙종(肅宗) 33년(1707) 12월 처음 가설되었다가 숙종 38년(1712) 홍수로 인한 수재를 만나, 숙종 39년(1713) 중수 하였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으나 대규모의 중수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강릉, 바다내음 즐기며 커피 한잔

깨끗한 동해바다를 자랑하는 강릉, 청정한 자연을 감상하며 커피를 마시고 강릉의 특색이 묻어있는 장소에서 식사를 하는 여행코스를 즐겨봅니다
더보기
  • 강원 >강릉시

    경포대와 승경을 다투던, 강릉 호해정
    강릉 호해정은 경포대와 자웅을 겨루던 정자였다. ‘호해정(湖海亭)’은 말 그대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는 정자’였다. 옛 선인들은 경포대와 호해정의 호수를 ‘내호’와 ‘외호’라 부르면서 그 승경을 칭송하였다. 관동팔경의 절경을 화첩으로 담은 단원 김홍도의〈금강사군첩〉에도 경포대와 호해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단원의 그림을 보면 송림으로 둘러싸인 호수에 돛단배 떠있고, 호수와 바다를 내려다보는 구릉에 호해정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호수가 흙으로 메워져 농경지로 변했다. ‘상전벽해(桑田碧海)’가 아니라 ‘벽해상전(碧海桑田)’이 되었다.
  • 강원 >강릉시

    강릉선교장의 별서, 강릉 방해정
    방해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로 449(저동 8번지)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강원도유형문화재 제50호이다. 원래 이 자리는 삼국시대 때 화랑들이 모여 심신을 단련했던 고찰 인월사(印月寺) 터였는데, 1859년(철종 10)에 강릉선교장의 주인인 이봉구(李鳳九)가 선교장의 객사 건물을 뜯어다 지금의 자리에 별서 건물로 지었다. 경포대 가는 길가에 있으며, 정원이 잘 꾸며져 있으며 단아하고 아기자기한 가옥형 정자이다.
  • 강원 >강릉시

    고상하고 단아한 명가의 사랑채, 강릉 활래정
    활래정은 강원도 강릉시 경포동 운정길 63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후기 전형적인 상류 주택인 선교장에 부속된 정자이다. 1816년(순조 16)에 이후가 지었다. 온돌방과 마루가 같이 있는 정자로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활래정이라는 정자명은 ‘맑은 물은 근원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군자의 꽃이라는 연꽃이 만발한 연못 위에 위치한 활래정은 고아하고 단아한 기품을 풍기는 정자이다.
  • 강원 >강릉시

    우암 송시열의 쌍둥이 편액, 강릉 해운정
    강릉 해운정(海雲亭)은 1531년(중종 26) 어촌 심언광(沈彦光)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 지은 별당이다. 강릉에서 멀지 않은 동해에도 심언광과 관련되는 누정이 또 있다. ‘해암정(海巖亭)’이다. 해암정은 삼척 심씨의 시조인 심동로가 1361년 창건한 후, 1531년 심언광이 강원도관찰사로 재임 중에 중건하였다. 심언광은 심동로의 7대손이다. 강릉의 해운정과 동해의 해암정 편액 모두가 우암 송시열의 글씨여서 이채롭다. 해운정은 강릉에서 오죽헌 다음으로 오래된 건물이다.
  • 강원 >강릉시

    푸른 바다를 보며 갓 볶은 커피를 음미하는 '강릉커피축제'
    강릉은 우리나라 커피 문화 1번지다. 강릉 대부분의 커피집이 로스팅을 하며, 1세대 바리스타들이 포진하고 있다. 강릉커피축제는 2009년에 시작되었으며 매년 10월 강릉시 전역에서 개최된다. 가을 바다를 바라보며 갓 볶은 고급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감성 문화 축제로, 커피집을 다니며 스탬프 랠리를 하고, 100인의 바리스타들이 제각각 다른 맛의 커피를 내려준다.
  • 강원 >강릉시

    시장 상인들에 의해 명맥을 이은 강릉단오제
    음력 5월 5일은 단오(端午) 명절이다. 단오 무렵에 강릉시에서는 단오제를 지낸다. 강릉단오제에서 대상 신격은 대관령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다. 강릉 사람들은 유교식 제례와 굿으로 대관령국사성황신을 모시고 지역의 평안과 개인의 소원을 빈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서 선정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1909년 무렵에 중단될 위기도 있었으나, 강릉 시내에 있는 중앙시장 상인들의 추렴으로 비용을 마련하여 그 명맥을 잇는다.
  • 강원 >강릉시

    “강릉에서 두부를 먹는다면 ‘초두부 주세요’라고”
    강릉을 대표하는 초당두부는 조선시대에 시작되었다. 삼척부사를 역임한 허엽 선생이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초당(草堂)’이라는 허엽의 호를 붙여 그 이름이 탄생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면서 초당 마을의 남자들은 줄어들고 여인들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비용이 적게 드는 두부를 만들어 팔게 되었다. 관광객의 증가와 함께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강릉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유명하다. 두부를 만들 때 거품을 거둔 따듯한 콩물을 ‘촛물’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바닷물을 넣으면 촛물이 몽글몽글 뭉친다. 이것이 ‘초두부’로, 처음 만들어진 두부라는 뜻이다. 
  • 강원 >강릉시

    거울같이 맑은 물에 비치는, 강릉 경포대
    대관령 너머 관동 땅에는 명승지가 많다. 통천 총석정에서 시작되어 평해 월송정까지 해안을 따라 늘어선 절경들을 관동 팔경이라 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강릉 경포대이다. 경포대는 고려 때 창건되었지만 조선 중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경포대와 경포 호수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다. ‘경포대’라는 명칭은 ‘경포’, 즉 ‘유리같이 맑은 호수’에서 따온 말이다.
  • 강원 >강릉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강릉 오죽헌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태어난 역사적인 건축물인 오죽헌은 강릉시 죽헌동에 있다. 주변에 검은 대나무가 많이 자란다고 하여 오죽헌이라 불렀다. 안채 온돌방이 신사임당이 이이를 낳은 몽룡실이다.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중에서 역사가 오래된 건축물로 1938년부터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었다. 가장 오래된 익공집으로 추정되며 주심포 양식이 익공 양식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 강원 >강릉시

    초가지붕을 기와집으로 개조한 강릉 반송댁
    강릉 반송댁이 있는 초당동은 바닷물을 이용해서 만든 ‘초당두부’와 강문 ‘진또베기굿’이 유명한 곳이다. 강릉 반송댁은 2017년 11월 「강원도 지정문화재(전통가옥) 지정명칭 변경고시」에 따라 ‘강릉 최상순 가옥’에서 ‘강릉 반송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본래 초가지붕을 1940년대에 기와집으로 고쳤다고 한다.

을지로-동대문의 뉴트로 바이브

과거의 것은 흔적을 남기고 흔적은 새로운 변화를 이어가는 새로운 복고를 뜻하는 '뉴트로'. 을지로와 동대문이 21C 트렌드를 장식하는 이유를 찾아가봅니다.
더보기
  • 서울 >중구

    을지로의 소울푸드, 을지로골뱅이
    여름철 시원한 안주가 생각날 때, 고된 하루 끝에 매콤한 것이 당길 때면 골뱅이무침만한 것이 없다. 매콤, 새콤 입맛을 돌게 하는 골뱅이무침은 서울 청계천 남쪽을 따라 길게 형성되어 있는 을지로 거리에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였다. 왜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하필 서울 을지로였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을지로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이를 통해서만 공구, 타일, 인쇄 상인과 노동자들부터 지금의 사무직 직원들에게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지역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을지로 골뱅이의 정체성을 바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서울 >동대문구

    한약재의 집산지 경동시장
    서울특별시 제기동과 용두동 일대에는 한약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상설시장인 '경동시장'이 있다. 원래 농산물과 임산물을 판매했지만, 1960년대 후반 을지로와 종로에 있던 상인들이 이주하면 한국을 대표하는 약재시장이 되었다. 또한 경동시장은 '서울약령시 한방축제 개최'를 통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2017년 10월 서울한방진흥센터를 개관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 서울 >중구

    서울 미래유산에 등재된 서울풍물시장
    '서울풍물시장'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신설동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래는황학동에 있었던 ‘벼룩시장’에서 유래한 시장이다. 2004년에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했다가 동대문운동장이 공원화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공식 명칭을 서울풍물시장으로 변경하였다. 주로 옛 풍물과 일생생활용품, 관광, 토속상품, 민속 먹거리 등을 판매하고 있다. 또한, 서울풍물시장은 2013년에 서울 미래유산으로 등록되었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23년된 와인바 겸 카페 대학로 나무요일
    나무요일은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 위치한 카페 겸 펍(pub)으로, 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명륜동을 포함한 대학로 일대는 단순하게 한가지 색깔로 정의하기 어려울 만큼 역사·문화적으로 많은 가치를 지닌 곳이다. 많은 예술가가 대학로 일대의 다방, 술집 등을 아지트 삼아 작품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나무요일도 단골을 넉넉하게 품어주는 숨은 진주 같은 가게이다.
  • 서울 >중구

    “생맥주 집은 생맥주가 맛있어야 하고 노가리는 천 원에 파는 게 예의”
    우리나라에 최초의 맥주공장이 들어선 것은 1933년이다. 일본의 자본으로 조선맥주회사와 소화기린맥주회사가 설립된다. 광복이 되고 미 군정이 관리했을 때에는 미군이 마실 맥주를 판매했다. 맥주회사의 민간 경영은 1952년부터 시작됐다. 을지로 3가 인쇄골목의 또다른 이름은 노가리골목인데, 노가리골목을 만든 가게가 을지오비베어다. 1980년 12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영업했고, 지금은 2대째 딸이 물려받아 영업하고 있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조선시대 배오개장을 계승한 광장시장
    '광장시장'은 1905년 한국인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상설시장으로 조선후기 종로 지역에 있던 배오개장의 전통을 계승한 시장이다. 주요품목은 직물과 한복 등이며, 먹거리와 구제 상품 등을 중심으로 활성화되어 하루에 6만 5천여 명이 방문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대형 종합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