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다양한 주제로 구성한 지역문화콘텐츠 큐레이션 서비스

오색 매력의 출구 없는 도시, 경주

7월에 가면 '인스타 감성' 폭발하는 경주, 휴가철 많은 사람들이 몰려 벌써 기차가 매진되었는데요.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을 끄는 경주만의 매력은 무엇일지 함께 알아볼까요! 여름 감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가족과 연인과 함께 나란히 걷기 좋은 황리단길과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야경으로 눈이 즐거운 동궁과 월지를 즐길 수 있답니다. 또한 더위로 인해 한없이 올라가는 불쾌 지수를 한순간에 낮춰주는 탁 트인 바다 전망과 시원한 파도 소리가 들려오는 주상절리 출렁다리까지. 웰니스 여행지로도 손꼽힐만 하겠지요? 더하여,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고즈넉함과 신비로움이 가득한 대릉원과 불국사, 동양 최고의 천문대인 첨성대, 천년의 숲 계림 등 남녀노소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는 볼거리가 많아 사계절 내내 발길이 끊이질 않는답니다~ 올여름 누구보다 여름휴가를 잘 보냈다고 소문내고 싶다면 경주에서 천년의 역사가 지닌 남다른 감성 바이브를 느끼며 매력 만점 핫플레이스로 지금 바로 출발해보세요!
더보기
  • 경북 >경주시

    자연을 정원 삼아 홀로 즐기는, 경주 독락당 계정
    독락당 계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옥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조선시대 동방사현이라 불린 성리학자 이언적이 관직에서 물러나 학문에 전념하고자 1533년(중종 28)에 지은 정자이다. 자계천이라는 시냇가의 암반 위에 지어진 계정은 ‘홀로 즐긴다.’는 의미의 독락당의 별채로서 자연을 정원 삼아 지어진 정자이다.
  • 경북 >경주시

    월성손씨의 강학처, 경주 양동마을 안락정
    안락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92-19(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2호이다. 월성손씨 문중의 서당과 같은 역할을 하였다. 같은 마을에 있는 여강이씨의 서당인 강학당과 쌍벽을 이룬다. 1776년(영조 52)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안락정이라는 정자명은 ‘분수를 편히 하고 소신한 바를 즐기는 것이 의이다[安吾分樂吾志之義也].’라는 의미이다.
  • 경북 >경주시

    이언괄의 효심을 칭송하는, 경주 양동마을 심수정
    심수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38-5(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1호이다. 형을 위해 벼슬을 마다하고 평생 노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이언적(1491~1553)의 아우 이언괄(1494~1553)을 추모하여 1560년(명종 15)경에 여강이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철종 때의 화재 이후 1917년에 원래 모습대로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여강이씨 파종가인 향단의 부속 정자라고도 한다. 심수정이라는 정자명은 ‘고요함이란 자는 마음 가운데 있는 물에서 나온다[靜之字 心中之水].”라는 글에서 유래하며, 마음의 평안을 이루는 고요함은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양동마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정자로 손꼽힌다.
  • 경북 >경주시

    임진왜란의 애환이 서려 있는, 경주 양동마을 수운정
    수운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안길 45-20(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80호이다. 청허재(淸虛齋) 손엽(孫曄:1544~1600)이 벼슬의 뜻을 접고 학문 연구를 위하여 1582년(선조 15)에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집경전에 보관되어 있던 태조의 어영을 잠시 보관하기도 한 곳이었다. 수운정의 정자의 의미는 ‘동도(東都)의 산수가 맑고 운연(雲煙)이 허공에 떠 있다[水淸而雲虛]’라는 의미이다.
  • 경북 >경주시

    양동마을의 부잣집, 경주 이향정
    이향정은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2-1(양동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가옥형 정자이다. 국가민속문화재 제79호이다. 조선후기의 문신 이범중(1708~?)이 살던 집으로, 그의 호 이향정을 따서 집의 이름을 붙였다. 그의 맏아들 이헌유(1733~?)가 살면서 집의 규모를 더욱 넓혔다고 한다. 이들이 살았던 1700년대 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구성은 사랑채, 안채, 아래채, 방앗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사랑채가 정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 경북 >경주시

    요산요수의, 경주 서출지 이요당
    이요당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1길 17(남산동)에 있는 서출지에 세워져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서출지 일대가 사적 제138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후기의 학자 이요당(二樂堂) 임적(任勣:1612~1672)이 1664년(현종 5)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서출지는 사금갑(射琴匣) 설화가 전해져 오는 곳으로, 백련과 홍련의 연지와 연못 주변에 심어 놓은 배롱나무의 절경으로 경주에서도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 경북 >경주시

    경주 첨성대 앞마당에서 열리는 '신라소리축제 에밀레전'
    신라소리축제 에밀레전은 천년고도 경주에서 개최되는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을 주제로 소리축제이다. 불교방송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와 경주시, 그리고 불국사 등이 후원한다. 신라소리축제 에밀레전은 경주 첨성대 잔디광장에서 6톤 규모의 에밀레종의 모형을 타종할 수 있으며, 신라문화 체험과 신라 간등회 재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 경북 >경주시

    천년고도의 대명사가 된 음식, 경주 황남빵
    황남빵은 1939년 고(故) 최영화 씨가 경주시 황남동에서 동명(同名)의 빵 제품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이래 8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노포이다. 황남빵은 경주 향토음식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이바지한 바가 커서 경주시와 경상북도로부터 전통음식과 경북 명물로 지정되었고, 2002년에는 철탑산업훈장을 수여받았다. 1979년 최영화 씨의 차남 최상은 씨가 가업에 참여하여 1987년부터 지금까지 황남빵의 2대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는 최상은 씨의 장남 최진환 씨가 제빵 기술을 전수하여 3대째 가업을 이을 준비를 하고 있다.
  • 경북 >경주시

    경주를 지키는 경주읍성
    경상북도의 중심도시인 경주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다. 완전한 평지성으로 방형이며 성벽 양쪽을 돌로 쌓아 올리는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다. 성의 둘레는 2,412m에 이른다. 경주읍성은 전형적인 조선시대 읍성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경상도에서 가장 크고 격식을 갖춘 행정읍성이었다. 특히 성벽 주위에 너비 3m의 해자를 둘렀는데 지금도 북쪽은 하수구로 이용되며 동쪽에도 일제강점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읍성의 남문은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 경북 >경주시

    경주의 핫플레이스는 황리단길!
    이태원에 경리단길이 있다면 경주에는 황리단길이 있다. 경주 황리단길은 자칭 ‘경주 여행코스’의 메카이다. 이곳에서는 경주의 옛스러움과 현대의 모던함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황리단길에서 맛있는 음식과 카페를 즐길 수 있고 바로 옆의 대릉원과 첨성대를 산책하며 고즈넉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황리단길의 묘미는 이렇게 트렌디한 감성과 오래된 역사의 향기를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뉴트로 감성이 스며든 다방에서 커피 한 잔

줄줄이 우거진 빌딩들 사이로 오래된 다방 하나가 있습니다. 좁은 계단 끝의 나무문을 열면 종업원이 "어서 오세요!"하며 반갑게 맞아주곤 하는데요.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황토색 쇼파와 낡은 테이블, 손때 묻은 카운터, 훈훈한 석유난로의 냄새까지. 시간이 멈춘 이 공간에서 잠시, 정겨운 그 시절을 회상하곤 합니다. 검은 빛 쌍화차 사이로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고소하게 입안에 퍼질 때쯤, 변하지 않은 맛과 향기에 황홀함을 감추지 못한답니다.

"한국전쟁 이후 그 시절이 어렵긴 했어도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운 곳이 다방이였어요." - 을지다방 내용 中
"그땐 단순하게 차를 파는 게 아니라, 약속을 하고 만나는 장소, 전화 연락을 기다리는 장소, 선을 보는 장소로 소통의 공간이었지요." - 봉다방 내용 中

지금의 다방은 세월의 변화 속에서 옛 손님들에게는 추억을 마실 수 있는 공간, 주인은 그러한 추억을 전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하여, 요즘 뉴트로 열풍이 불자 MZ세대들도 하나 둘씩 다방문화를 즐기곤 하는데요. 한 번이라도 다녀간 이들이라면 감성 충만한 이곳의 분위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을 수밖에 없게 하는 매력의 공간, 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실래요?
더보기
  •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학생들의 아지트였던 학림다방
    학림다방은 1956년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에 이양숙이 개업했고, 1975년에는 강준혁·신선희가 운영하였다. 그리고 1987년 이충렬이 학림다방을 인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학림다방은 가업으로 이어져 오지는 않았지만, 처음의 이름을 바꾸지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하면서 학림을 기억하는 이를 기다리고 있다. 학림다방은 대학 문화의 산실이며, 저항문화와 대중문화의 산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학림다방은 2013년 서울특별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 인천 >부평구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만남의 장소, 봉다방
    봉다방은 1974년 최정숙이 개업했고,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다방이다. 최정숙은 처음부터 다방을 개업했던 것은 아니고 세탁소를 15년 동안 운영하였다. 오산 출신의 최정숙은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생계의 기반을 다지기는 했지만 직업병으로 손목이 안 좋아지면서 현재의 자리에 다방을 개업하였다. 산곡동은 백마장으로 더 알려져 있는데 ‘제2의 명동’이라 불릴 정도로 유행에 민감했고, 주변에는 군부대와 산곡시장 등이 있는 번화한 거리였다.
  • 인천 >중구

    지식인들의 쉼터였던 레트로 다방, 인천 국제다방
    국제다방은 1972년에 처음 '마음다방'이라는 상호로 윤석례가 신포시장 입구에서 시작하였다. 1979년, 현재 자리의 국제다방을 인수하고 현재까지 영업중이다. 국제다방은 인천 문화예술인들에게는 안식처였고, 그 시대의 다방문화를 간직하며 원래 위치와 간판을 지키고 있는 가게이다. 1980년대 당시 신포동은 40군데가 넘는 다방이 있었다. 지금은 이 국제다방이 유일하다.
  • 대구 >중구

    대구 약전골목의 미도다방
    대구 진골목의 명소 미도다방은 ‘아름다운 도시(美都)’ 속의 다방(美都)이라는 뜻이다. ‘정 여사’로 불리는 정인숙 대표가 지인의 다방을 넘겨받아 1982년부터 30년이 넘도록 운영 중이고, 두 번의 이사 후 지금의 위치인 진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것은 2013년이었다. 미도다방은 대구·경북 지역 출신의 대통령부터 정치인과 유림, 문인, 화가들이 다녀가는 명소였고, 지금도 매일 출근 도장을 찍는 단골들이 많다. 커피값 2500원, 대구 약령시의 좋은 약재로 직접 달인 약차와 쌍화차도 3~4천원에 마실 수 있다.
  • 서울 >서대문구

    ‘독방’·‘수방’·‘리방’으로 거듭난 독다방
    독수리다방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에 김정희가 1971년 음악다방으로 개업한 찻집이다. 2004년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업을 했다가 2013년 김정희의 손자인 손영득이 재개업하였다. 독다방은 재개업을 하면서 두 가지의 컨셉을 설정하였다. 독다방이 독수리다방으로 개업했을 때부터 들렀던 세대들을 위해서는 그 시절 향수와 추억을 재생할 수 있는 공간으로, 1970·80년대 문화를 알지 못하는 20대들에게는 그 시절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였다. 독수리다방이 독다방으로 상호를 바꾸어 재개업하자 언론에서 개업소식을 알릴 정도로 의미가 있는 다방이다.
  • 서울 >중구

    “쌍화차의 노른자는 터뜨리면 안 돼”
    근대의 다방은 예술인들이 모여 시대를 이야기하고 문화를 꽃피웠던 장소였다. 지금은 자판기가 골목마다 서 있고 입맛에 따른 다양한 커피믹스를 쉽게 살 수 있다. 게다가 정수기가 사무실마다 설치되어 있어 사람들은 다방을 찾지 않고, 커피 배달문화가 사라졌다. 이런 시대에 을지로에서 35년간 쌍화차를 끓이는 집이 있다. 끓인 쌍화액 위에 달걀 노른자를 띄우고 잣과 대추를 쏭쏭 썰어 올리는 쌍화차는 하루 치의 건강이다.
  • 경남 >창원시

    창원(진해) 흑백다방, 문화예술공간으로 재탄생한 노포(老鋪)
    진해 흑백다방은 1955년 서양화가 유택렬 화백이 친구가 운영하던 칼멘다방을 인수하여 ‘흑백’이라는 상호로 영업을 시작한 다방이다. 흑백다방은 화가와 문인, 시인 등 수많은 예술인이 출입하는 사랑방 역할을 하면서 문화의 불모지였던 진해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매김하였다. 흑백다방은 1999년 유택렬 화백이 작고하면서 피아니스트로 유학 중이었던 둘째 딸 유경아 씨가 2대 주인을 맡으면서 본격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였다. 2011년에는 지역의 예술가들과 시민단체가 ‘흑백운영협의회’를 결성하면서 흑백다방은 ‘시민 문화공간 흑백’으로 재탄생하였다. 2013년에는 1912년에 건축된 흑백다방 건물이 ‘창원시 근대건조물 4호 흑백다방’으로 지정되었다. 2020년 유경아 씨가 지병으로 별세하면서 흑백다방의 운영은 부녀 2대에서 그치게 되었으나 흑백다방을 사랑하는 시민과 예술가들이 3대 대표로 ‘문화공간 흑백’으로 거듭난 흑백다방을 지키고 있다.

진주, 천년의 멋을 지니다

유서 깊은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지닌 도시, 진주는 임진왜란 때 공적을 세운 김시민 장군과 논개의 순국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임진왜란 중, 왜군은 선조를 잡기 위해 전라도로 통하는 길목인 진주를 점령해야 했는데요. 이때, 김시민 장군은 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에서 약 3,800명의 군사로 2만 여명의 왜군을 물리쳐 기적의 승리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전투 중, 칠흑같이 어두운 밤 남강에 유등을 띄워, 강을 건너려는 왜군을 교란시켰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러한 전통에서 시작한 것이 바로 10월마다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랍니다. 이렇듯 진주대첩은 전라도를 지키고 임진왜란의 판도를 바꾼 상징적인 전투였습니다. 그로부터 9개월 후 2차 진주성 전투 때는 6만여 명의 조선 민관군이 희생당하면서 왜군이 승기를 잡게 됩니다. 왜군은 '촉석루'에서 축하연을 벌였고, 그때 논개가 술에 취한 왜장을 절벽 근처로 유인해 끌어안고 남강으로 투신하게 됩니다. 끝까지 나라를 지키고자 한 논개의 충절이 촉석루에 우아하고 위엄있는 자태 속에 숨겨져 있답니다. 이 밖에도 촉석루 아래, 논개가 뛰어내린 장소로 추정되는 의암, 경상남도의 유일한 인공 호수로 장관을 선사한 진양호 등 탁 트인 풍경과 함께 지친 몸을 어루만져 주고 마음까지 편안하게 하고 싶다면 진주로 떠나보는 거 어떠세요?
더보기
  • 경남 >진주시

    관군과 백성이 함께 싸운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의 진주 창열사
    진주의 창열사는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 전사자들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진주성은 부산포와 한양을 잇는 일본군의 보급로였고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요충지였기에 진주성 함락은 왜군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1차 진주성전투에서는 김시민의 리더십으로 왜군을 물리쳤지만 2차 진주성전투는 패전하였다. 하지만 진주성전투로 세력이 약해진 왜군이 호남 진출을 포기하게 했고, 전라도와 경상도의 의병들이 관군과 함께 나라를 지키는 마지막 전투지가 되었다.
  • 경남 >진주시

    남강에 유유히 떠있는 아름다운 등의 향연 '진주남강유등축제'
    진주 남강의 유등놀이는 임진왜란의 진주성 전투에 비롯된 것이다. 1592년 10월 김시민 장군이 3,800여 명의 병력으로 진주성을 침공한 2만 명의 왜군을 물리친 진주대첩에서 유등은 군사신호와 가족의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또한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우기도 했다.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진주의 ‘개천예술제’의 특별 행사로 운영되던 유등놀이를 2000년에 별도의 축제로 발전시킨 것이다.
  • 경남 >진주시

    논개의 얼이 서려 있는 조선 삼대 누각, 진주 촉석루
    촉석루(矗石樓)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본성동)에 있는 누각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주 남강(南江)가 바위 벼랑 위에 장엄하게 자리 잡고 있는 촉석루는 규모가 크고 건물이 아름다우며 주변 풍경도 절경이어서 예로부터 명루(名樓)로 꼽혔다. 경복궁의 경회루(慶會樓),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으로 불리었고, 부벽루와 밀양의 영남루(嶺南樓), 삼척의 죽서루(竹西樓)와 함께 ‘한국의 4대 누각’, 영남루와 남원의 광한루(廣寒樓)와 함께 ‘남도의 3대 누각’, 영남루와 안동 영호루(映湖樓)와 함께 ‘영남의 3대 누각’ 등으로 꼽혀왔다. 촉석루라는 정자명은 고려말의 문신인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1303~1374)가 “강 가운데 돌이 삐죽 삐죽 나온 것이 있어서 촉석(矗石)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 경남 >진주시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제2진주성 전투
    영남의 왜적이 1593년(선조 26) 6월 22일에 와서 진주를 공략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분탕질을 쳤다. 이보다 앞서 성안에서는 적이 오려 한다는 것을 듣고서 여러 가지 방비를 해 두었다.23일부터 수많은 적이 와서 일진일퇴를 거듭하였으나 드디어 성이 함락되었다.성이 함락되자 좌우가 김천일을 부축해 일으켜서 피하기를 권하였으나, 천일은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서 좌우를 돌아보며 “나는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하고, 마침내 아들 김상건과 더불어 서로 끌어안고서 강으로 몸을 던져 죽었다.적이 성을 함락하고 모두 허물고 평지를 만들었는데 성안에 죽은 자가 6만여 인이었다.
  • 경남 >진주시

    용맹하게 성을 지킨 제1진주성 전투
    1592년 10월 5일에 적이 1만 명을 셋으로 나누어 곧바로 진주를 침범하였다. 처음 전투에서 수많은 장수들이 전사하고, 진주 목사 김시민과 지역의 관리들이 성을 지킬 계책을 세우고 여러 장수와 함께 각 문을 나누어 지켰다. 7일부터 시작된 전투는 밤낮 5일간을 버티면서 목사 김시민을 비롯하여 곤양 군수 이광악, 성수경, 최덕량 등이 죽기를 각오하고 모든 군사들과 함께 용맹을 떨치며 힘껏 싸워 마침내 한 성을 온전하게 지켜내었다.
  • 경남 >진주시

    김시민 장군의 3대첩이 이루어진 진주성
    남강변 절벽위에 세워진 진주성은 본시 토성이던 것을 고려조 1379년(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金仲光)이 석축하였다. 둘레는 1.7㎞이다. 원래 백제의 거열성지였다고 전하며 고려 말에는 왜구 방비의 기지였으며 임진왜란 때에는 김시민장군이 왜군을 대파하여 임진란 3대첩의 전승을 이룬 곳이다. 촉석성(矗石城), 진주읍성이라고도 불린다.
  • 경남 >진주시

    진주 촉석루, 임란 의병과 '논개'가 떠오르는 누정
    우리나라의 3대 누각 중 하나인 진주 촉석루(矗石樓)하면 먼저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바로 ‘논개’다.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 전투에 속하는 진주대첩의 장소로,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었고, 승전을 자축하는 연회에서 ‘논개’가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다. 그래서 진주하면 ‘임진왜란-촉석루-논개’가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촉석루를 노래했던 문인들의 감흥도 임진왜란이 발발한 전후로 크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 경남 >진주시

    진주성의 성돌이 되려고 직접 굴러간 진주 명석 자웅석
    진주 명석 자웅석은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신기리에 있다. 자웅석은 신기리 동전마을의 동편 명석각 안에 “남자돌”과 “여자돌”이라는 이름으로 남근석 1기, 여근석 1기가 세워져 있다.신기리 마을주민들은 자웅석을 보국충석(輔國忠石)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고려때 원나라가 침략한다는 소리에 자웅석이 스스로 굴러가 진주성 돌이 되려고 했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신기리 주민들은 매년 음력 정월 보름과 음력 7월 15일에 자웅석에 제사를 지냈는데,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명석면 주민들이 다함께 지내는 제사로 바뀌어 음력 3월 3일에 지내고 있다.
  • 경남 >진주시

    의로운 기녀 논개의 이야기가 담긴 진주 의암 사적비
    경상남도 진주시 본선동 진주성에는 진주 의암 사적비가 있다. 진주 의암 사적비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 장수를 끌어안고 함께 남강에 빠져 죽은 논개의 사연이 새겨져 있다. 진주 선비 정식이 어우야담의 기사와 시를 지어 새겼다. 당시 진주 사람들이 논개의 의로운 희생을 기념하기 위해 수차례 건의하여 진주 의암 사적비와 의기사가 세워지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진주논개제가 개최되면서 논개의 희생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 경남 >함양군

    진주성을 찾은 한말의병장 노응규
    노응규(盧應奎, 1861~1907)는 한말의병장으로 정한용 진주의병장과 힘을 모아 진주성을 되찾고, 영호남 일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다 1907년 일본군에 체포되어 경성감옥소에서 고문으로 숨졌다.

남해에서 일상을 리프레쉬하다

해가 길어지고, 사람들의 옷차림이 가벼워진 걸 보니 어느덧 여름이 성큼 다가왔나 봅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지루한 나의 일상을 리프레쉬 할 수 있는 여행지를 찾다 보니 대한민국의 숨은 보석, 남해로 목적지를 정하였는데요. 남해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단연 살랑이는 바람 사이로 걸을 수 있는 해안가와 이국적인 경관이었습니다. 남해는 동해, 서해와는 달리, 수많은 섬을 지나가면서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으로 그 자태가 멋을 선물하고, 울창한 숲 사이로 자연 속에서 힐링을 마음껏 누리게 한답니다. 남해에 가면 꼭 들려야 하는 독일마을은 여기가 마치 한국이 아닌, 독일을 여행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요. 이곳에서 이국적인 정취와 특색있는 요리도 맛보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해파독전시관을 방문하여 독일로 가야만 했던 그들의 이야기도 생생히 살펴보면 좋을 듯합니다. 독일마을을 즐기고 난 후에는 울창한 숲의 모습을 보여주는 물건리방조어부림에서 피톤치드를 온몸 가득 담아보세요.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우거진 숲은 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새소리와 바람 소리는 마음에 평안을 가져다준답니다. 일상 속에서 지쳐가는 심신에 리프레쉬가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남해로 떠나보아요~♬
더보기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래길 돌아 맛보는 쫄깃한 죽방멸치”
    '바래'는 남해의 옛 단어로, 남해 바래길은 어민들이 일을 나가고 들어오던 남해의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남해 바다에는 아직 죽방렴이 남아있다. 죽방렴은 좁은 바다의 물목에 대나무 발 그물을 V자로 세워 멸치를 잡는 어업방식을 뜻한다. 죽방렴 멸치가 맛있는 이유는 사람도 운동을 많이 하면 건강하듯, 남해 물목의 거센 조류에서 헤엄치며 살기 때문이다. 죽방렴 멸치는 살이 탄력있어 쫄깃하고 맛있다. 
  • 경남 >남해군

    현령의 꿈에 나타나 세워줄 것을 요구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홍현리에 세워져 있다. 홍현리는 마을의 지형이 무지개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암수바위를 ’미륵불‘로 여기며, 각각 ’암미륵‘, ’숫미륵‘이라고 부르고 있다. 가천 암수바위는 1752년에 남해 현령 조광진의 현몽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천마을 주민들은 가천 암수바위에 지내는 미륵제와 마을 내 밥무덤에 지내는 ‘동제’를 전승하고 있다. 암수바위에 제를 지내는 미륵제는 바위를 캐낸 날인 음력 10월 23일에 지내고 있다.
  • 경남 >남해군

    죽방멸치 쌈밥의 명가(名家), 남해 우리식당
    우리식당은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지족리에 있는 향토음식 전문점이다. 1978년 류원찬∙이순심 씨 부부가 현 위치에 멸치쌈밥과 멸치회무침을 전문으로 하는 점포를 낸 지 43년이되는 식당이다. 우리식당 메뉴의 주된 재료인 멸치는 식당 앞 바다인 지족해협에서 죽방렴(竹防簾)이라는 전통어로 방식으로 잡은 신선한 멸치만을 사용한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모든 식자재는 국산을 사용한다. 음식의 양념도 인공감미료로 일절 맛을 내지 않고 식당에서 직접 담근 된장과 간장만을 사용하므로 담백한 감칠맛이 도는 음식이 특징이다.
  • 경남 >남해군

    남해 바다의 향긋함을 마신다, 유자차와 유자화채
    유자차와 유자화채는 옛날부터 만들어 마셨던 우리나라 전통 음료로서 『산림경제』, 『증보산림경제』, 『규합총서』, 『임원경제지』 등 조선 후기에 저술된 여러 전통 조리서에도 제조법이 소개되어 있다. 두 전통 음료의 주요 재료인 유자는 남해안 지방과 제주에서 주로 생산되었으나 예로부터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에서 나는 유자가 유명하였다.
  • 경남 >남해군

    파독 노동자들이 돌아와 정착한 경상남도 남해 독일마을
    경상남도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인 독일마을은 파독 간호사와 광부들이 귀국해서 정착한 이후에 생겨난 곳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독일마을에는 대략 70여 명 정도의 주민이 모여 살고 있다. 마을에 있는 가게를 비롯해 다양한 시설이 모두 독일풍으로 꾸며져 있으며, 전시관과 전망대,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어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열리는 축제를 비롯해 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독일식 포장마차 또한 독일마을의 자랑거리다.
  • 경남 >남해군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서불이 지나간 남해 상주리 석각
    남해군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도서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남해 금산 서남쪽에는 거북바위라고도 불리는 상주리 석각이 있다. 거북바위의 엉덩이 부근에는 알 수 없는 형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읽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그 내용은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이다. 서불은 진시황의 지시로 불로초를 찾는 여정을 떠난 인물인데, 그가 이곳 남해 금산을 지나며 거북바위에 글을 새겼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선사시대의 그림 또는 거란의 문자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 경남 >사천시

    리미술관, 남해 바닷냄새로 코끝 찡한 유쾌한 예술의 집
    리미술관은 사천에 생긴 ‘1호 미술관’이다. 항공 우주 산업의 도시로, 문화예술 인프라가 많지 않은 사천을 문화와 감동이 넘치는, 삶 속에 예술이 살아있는 고장으로 만들기 위해 2015년에 세워졌다. 지역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사천의 문화와 교육을 이끄는 기관으로써 자리매김했을 뿐만 아니라, 사천에 여러 미술관이 들어서게 한 계기를 마련한 곳이기도 하다. 매년 사천과 남해 출신의 작가를 초대하여 수십 차례의 기획전시를 열고, 레지던시 ‘MOVE IN’을 운영 중이며, 어린이는 물론 성인을 위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민과 소통하고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유배문학관, 글이 절로 써지는 아름다운 남해를 즐길 수 있는 곳
    남해유배문학관은 유배와 유배 문학을 주제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배지였던 남해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네 개의 전시실에서 주제별로 남해의 유배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먼저 ‘향토역사실’에는 남해의 자연과 역사, 문화, 죽방렴 멸치잡이 등에 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유배문학실’은 국내외 유배의 역사와 문학을 살펴볼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선시대 형벌의 종류에 대해 알고, 대나무 숲처럼 꾸민 벽면에 적힌 아름다운 시를 감상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유배체험실’은 관람객들이 유배객이 되어 유배 생활을 경험할 수 있는 전시실인데, 전자 상소문 쓰기와 VR 체험이 준비돼 있다. 마지막으로 ‘남해유배문학실’에서는 남해로 유배해 온 대표적인 문인과 그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 경남 >남해군

    남해에서 열리는 옥토버 페스트 '독일마을 맥주축제'
    독일마을은 남해군에서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을 제공함과 동시에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조성된 곳이다. 독일마을 맥주축제는 2010년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를 모태로 개최된 축제로, 이색적인 독일문화를 체험할 수 있으며 정통 독일맥주를 맛볼 수 있다. 독일마을 주변에 다양한 관광지들이 산재해 있다.
  • 경남 >남해군

    정월 대보름날 즐기는 특별한 민속놀이, 남해 선구 줄끗기
    남해 선구 줄끗기는 정월 대보름날 벌이는 줄다리기로, 풍농과 풍어를 함께 기원하기 위해 행해진다. 남해 선구 줄끗기의 특이한 점은 암고(여성 상징)와 수고(남성 상징)가 따로 나뉘어 있지 않고, 양편이 힘겨루기를 해서 이긴 쪽이 수고를 맡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줄다리기에서는 여성 편이 이겨야 풍요가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암고에게 승리가 돌아간다. 결국 암고와 수고가 한 번씩 승자가 되는 것이다.

삼복(三伏) 더위를 부탁해!

초복과 중복 그리고 말복이 되면 여름 더위를 이겨낼 보양식을 먹고 몸보신을 하는데요. 오늘은 삼복의 유래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삼복의 복(伏)은 "뜨거운 여름 기운에 무너진다"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사람이 더위에 지쳐 무기력해질 정도로 무더운 날씨를 의미한 한자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더운 복날이 되면 민간에서는 식욕이 떨어지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제철 과일을 섭취하고 각종 보양식을 먹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해의 더위를 물리친다고 하여 개장국이나 백숙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복날 음식을 섭취하는 풍습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어, 우리는 복날엔 "삼계탕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이지요. 물론 삼계탕뿐만 아니라 각 지역마다 풍습이 달라 장어탕, 용봉탕 등 먹는 음식도 제각각이었다고 하는데요. 올여름도 맛있는 음식 잘 챙겨 먹고, 수분 섭취도 충분히 하여 건강하고 행복한 여름을 보낼 수 있도록 합시다!
더보기
  • 경북 >청송군

    “눈에 보이지 않는 물의 차이, 약수로 만든 백숙”
    달기약수터 주변에는 약수백숙을 하는 집이 30여 곳이나 된다. 재료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모두 약수로 조리한 백숙이다. 철분이 많은 약수로 밥을 하면 밥알이 푸르고 찰지다. 쫄깃한 다리 부위는 부드럽고 퍽퍽한 가슴은 쫄깃해진다. 맛은 담백(淡白)하고, 함께 나오는 닭죽은 녹두를 갈았음에도 텁텁함이 없다. 이 모두를 먹고 나면 그 정성에 앓던 병도 낫는다고 한다.
  • 경북 >청송군

    철분약수로 삶아 푸른색이 감도는, 청송 달기약수백숙
    달기약수백숙은 경상북도 청송의 달기약수를 이용하여 조리한 닭백숙 요리이다. 약수의 철분과 탄산성분으로 인해 푸른 색이 감돌며, 닭고기의 지방성분이 분해되면서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육질과 담백하고 쌉쌀한 맛이 특징이다.
  • 경기 >고양시

    "고추장 한 스푼과 채소를 탈탈 넣어 끓인 미꾸라지 털레기"
    고양의 미꾸라지 털레기는 통째로 요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미꾸라지를 넣고 끓이다가 고추장을 푼 물에 채소를 탈탈 털어 넣는다. 그래서 ‘미꾸라지 털레기’라고 부른다. 미꾸라지는 여름뿐만 아니라 봄, 가을에도 잡았다. 겨울에는 논두렁의 진흙을 파서 잠자던 미꾸라지를 꺼내 먹기도 했다.
  • 광주 >광산구

    용과 봉황의 기운으로 더위를 물리친다, 광산 용봉탕
    용봉탕은 상상의 동물인 용(龍)을 상징하는 자라와 봉황(鳳凰)을 상징하는 닭을 재료로 하여 끓여낸 여름철 보양식으로 광주광역시 광산구의 향토 음식이다. 용봉탕은 이름 자체만으로 길하고 복된 음식이며 궁중음식에서 유래되었다.
  • 경기 >목포시

    최고의 여름 보양식, 민어탕
    민어탕은 맑은장국에 민어 토막을 넣고 끓인 국이다. 여름에 가장 맛이 오르는 민어로 끓인 민어탕은 복날 보신탕 대신 먹었던 보양식으로도 유명한 향토 음식이다. 옛날에는 인천 앞바다가 민어의 주요 산지였지만 현재 민어는 북상하는 어군이 많지 않아 대부분 전남 해안에 머물고 있다.
  • 서울 >중구

    서울 최초의 전문 삼계탕집, 고려삼계탕
    고려삼계탕은 1960년 이상림이 명동에 개업한 삼계탕 가게이다. 삼계탕 전문의 고려삼계탕은 서울특별시 최초의 전문점으로, 2005년부터 아들인 이준희가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고려삼계탕은 1976년 서소문으로 장소를 옮겼다가 1978년 현재의 위치로 터를 옮겼다.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연속으로 미쉐린가이드에 등재된 맛집인 고려삼계탕은 프리미엄 한식 HMR 브랜드 ‘진지(Jin-ji)’의 상품으로 개발되어 온라인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다.
  • 경남 >거창군

    거창 장씨의 터전에 세운 가게, 거창 건계정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의 건계정 식당은 거창장씨의 시조 장종행(章宗行)과 아들 장두민(章斗民)을 기리기 위해 1905년에 건립한 건계정(建溪亭)이라는 누정 옆에 있는 한식당이다. 건계정 식당은 식당 자리에서 선조 대대로 살아온 거창장씨의 후손 장성석 씨가 아내 김종녀 씨와 함께 1979년 닭찜을 만들어 팔면서 시작하였다. 이후 2009년 무렵에는 30년간 지켜온 가게를 딸 장경아 씨와 사위 박종구 씨 부부가 계승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전남 >순천시

    청정 갯벌 순천만에서 맛볼 수 있는 순천 짱뚱어탕
    짱뚱어탕은 청정 갯벌인 순천만에서 잡은 짱뚱어에 시래기와 애호박, 대파 등을 넣고 끓인 전라남도 순천시의 향토음식이다. 짱뚱어는 탕 이외에도 구이나 전골 등의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되는데, 비린내가 적고 맛이 고소하고 담백한 데다가 영양가도 많아 인기가 높다.
  •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세계인이 좋아하는 전통 보양음식 삼계탕
    삼계탕은 어린 닭의 뱃속에 찹쌀과 마늘, 대추, 인삼을 넣고 물을 부어 오래 끓인 음식으로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여름철 대표적인 보양 음식의 하나로 초복, 중복, 말복에 주로 애용된다. 
  • 경남 >김해시

    배산임수의 백숙촌, 김해 평지마을
    김해 평지마을은 비음산 산자락에 있는 마을로,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마을은 평지라 평지마을이라고 불린다. 뒤로는 비음산, 앞으로는 넓은 호수같은 진례저수지가 있어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토속음식점이 모여들어 백숙촌으로도 불리는데, 이곳의 물맛과 요리솜씨가 좋아 부산, 창원, 김해시내 등지에서 한해 20만 명 이상 다녀간다.

경상도 별미,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고아 푹 우려낸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어 만든 것으로 경상도 지역에서 즐겨 먹는 별미입니다. 모두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 누구보다 발 빠르게 새벽의 문을 여는 사람들이 여기 있습니다. 국밥의 풍미를 더할 육수를 몇 시간 동안 펄펄 끓이며 재료를 준비하는 가게 사장님의 정성은 국밥의 깊은 맛을 더하곤 하지요. 이러한 돼지국밥이 경상도 지역의 별미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의식주생활사전'에 따르면 돼지국밥은 북한 음식이지만 월남하여 부산으로 피난온 사람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경상도 고유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국밥 한 그릇에 담긴 저마다의 인생과 정성은 오늘도 모락모락 김이 새어 나오는 국밥집 주변을 맴돌게 하는데요. 이번 주는 든든한 한 끼, 국밥 한 그릇 어떠세요?
더보기
  • 전북 >군산시

    군산공설시장 형성과 함께한 돼지국밥
    일제강점기 때부터 군산공설시장은 군산을 대표하는 시장이었다. 군산의 돼지국밥은 군산공설시장과 옹기전 사이를 흐르는 ‘샛강’ 주변에서 식당 4~5개가 영업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샛강의 돼지국밥은 1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원래는 ‘순댓국’이라 하였으나 1970년대 이후 ‘돼지국밥’으로 바뀌었다. 돼지국밥은 푸짐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물이 진하고 얼큰해서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다.
  • 경남 >창녕군

    창녕 이방식당, 제대로 된 수구레국밥의 명품식당
    경상남도 거창군 이방면 거남리의 이방식당은 1977년 문정자 씨가 이방시장에서 난전(亂廛)으로 시작하여 1980년 현 위치에 점포를 매입하여 이방식당의 간판을 열고 개업한 지 41년이 되는 노포식당이다. 이방식당은 시장에서 좌판 장사할 때부터 팔았던 수구레국밥과 수구레국수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다. 소의 가죽과 살코기 사이에 있는 특수부위인 수구레를 가공하여 선지와 함께 사골육수에 얼큰하게 끓여낸 수구렛국이 이방식당에서 차리는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된다. 2018년부터 1대 문정자 씨의 며느리 최은영 씨가 대물림하여 운영하고 있다.
  • 울산 >중구

    푸짐함과 투박함이 가득한 토렴식 돼지국밥, 울산 '산전식당'
    산전식당은 김영생이 방영시장에서 1967년 개업한 돼지국밥 전문식당이다. 김영생이 처음 가게를 혼자 운영하다 식구들이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부터는 며느리인 박주애가 가게를 이어가고 있다. 산전식당의 돼지국밥은 돼지국밥에 국물을 붓고 다시 국물을 덜어내는 토렴 방식의 조리법을 택하고 있다. 이 같은 토렴방식은 우리나라 국밥에서 사용하는 전통 방식이다.
  • 부산 >연제구

    부산시가 선정한 향토음식 돼지국밥, 경주 박가 국밥
    경주 박가 국밥은 경주 박가(慶州 朴家)가 운영하는 국밥집이다. 경주 박가 국밥은 1951년 박주호의 어머니가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개업하였다. 박주호는 어머니에게서 국밥 일을 배운 후, 1993년 금정구 서동에 경주 박가 국밥 분점을 열었다. 1997년 박주호의 경주 박가 국밥 분점은 지금의 연제구 연산동으로 가게를 옮겼다. 서동의 국밥집은 주방장이 인수하였다.
  • 부산 >부산진구

    피난살이의 고달픔과 허기를 달래주었던 부산 돼지국밥
    부산 돼지국밥은 돼지 사골을 진하게 우려낸 뜨거운 육수를 돼지고기와 밥에 여러 차례 부었다 따랐다 하여 덥게 만든 다음 국물을 부어내는 부산광역시의 향토음식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이 전한 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부산광역시는 부산향토음식의 하나로 돼지국밥을 지정하였다.
  • 경남 >밀양시

    소뼈국물과 돼지수육이 어우러진 깊은 맛, 밀양 무안돼지국밥
    밀양돼지국밥은 소뼈를 오랜 시간 고아낸 국물에 쌀밥을 토렴한 다음 뜨거운 국물을 붓고 돼지고기를 푸짐하게 얹어내는 국밥으로 경상남도 밀양시의 향토음식이다. 밀양돼지국밥은 1938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무안장 인근에 ‘양산식당’을 연 최성달 씨가 처음 개발하여 판매하기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3대에 걸쳐 원조 밀양돼지국밥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 부산 >남구

    피난지에서 만든 탕반, 돼지국밥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곤 육수에 편육과 밥을 넣고 간을 해서 먹는 부산광역시 향토 음식이자 전쟁음식이다. 돼지국밥의 유래에 관해서는 설렁탕을 변형했다는 설과 북한 지역 순대국이 변형됐다는 설이 있다. 둘 다 물자가 귀한 전쟁시 피난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돼지뼈와 부속물로 대체하여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2009년 부산 시내 3군데 국밥집이 향토 음식점으로 지정되었고, 범일동과 서면에 돼지국밥 골목이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