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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남도 >해남군

    징용 노동자 귀향길에 집단 수몰 – 전남 해남 옥매광산 자리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 있었던 ‘울돌목’이 내려다보이는 전라남도 해남군 옥매산 정상에는 노천광산의 흔적이 있다. 일제는 조선시대부터 광물 생산지로 알려졌던 옥매산에 광산을 설치하고 알루미늄 원료인 명반석(明礬石)을 수탈했다. 명반석은 전투기 등 많은 군수품의 원료였다. 일제는 1916년부터 1945년까지 1,000여 명이 넘는 조선인을 옥매광산에 강제동원 해 중노동을 시켰다. 또 일제는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 3월 옥매광산 노동자들을 제주도 모슬포로 끌고 가 송악산, 산방산 등지에서 해안 동굴이나 방어진지를 파는 일을 시켰다. 해방이 되자 끌려갔던 노동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슬포항에서 배를 탔지만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에서 기관실 화재로 침몰하고 말았다. 배에 탔던 한국인 222명 중 118명이 수몰됐다. ‘옥매광산 광부집단 수몰사건’은 일제가 옥매산 정상에 박아놨던 쇠말뚝을 뽑아냈던 2012년 광복절이 돼서야 비로소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옥매광산의 흔적은 두 곳의 광물저장고와 다이너마이트 저장창고, 선착장 등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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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민주주의가 자라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은 1935년 인천 공립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졌다. 화강석 기단 위에 적벽돌을 쌓아 지은 건물이다. 지하 1층, 지상 1층인 외관은 간결하며 기능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내부는 너비가 15m에 이르지만, 중간 기둥 없이 하나의 공간을 이루도록 했다. 일본인 학교였던 인천 공립학교는 해방 후 학제 변경으로 1954년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이 되었다. 제물포고등학교 설립을 주도했고 초대 교장이었던 교육자 길영희 선생은 ‘성덕당’이라고 불리는 강당에서 전교생에게 양심적인 나라의 일꾼이 되라고 열변을 토했다고 한다. 성덕당은 당대 인사들의 특강 장소이자 학생들의 자유로운 토론의 장으로 활용되었다. 1930년대 세워졌던 옛 학교 건물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성덕당은 남아 제물포고등학교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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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인천광역시 >중구

    일본의,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구 인천부 청사
    1933년 지어진 인천부 청사는 당시 러시를 이루던 도 청사, 부 청사 건축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근대 모더니즘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증기난방과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최신 건물이라고 선전되었다. 신축 논의 과정에서 인천의 도시화가 진전된 만큼 시가지 중심 쪽에 지어야 한다는 여론이 팽배했지만, 옛 인천조계지의 끝자락 자리를 고수했다. 인천부 청사는 1980년대 중반까지 인천 행정의 중심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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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진안군

    숨은 물고기를 보호하사…, 진안성당 어은공소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진안성당 어은공소는 1909년 어은동 본당으로 건립된 한옥 성당이다. 어은동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충청도와 경기도 등에서 피신한 천주교 신자들이 교우촌을 이룬 곳이다. ‘물고기가 안전하게 숨는 땅’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말해주듯 어은동은 환란을 피해 온 사람들이 숨기 좋은 위치였다. 하지만 외진 골짜기라 1952년 이후엔 공소로 남아 있다. 물고기는 서양의 기독교 박해 시절에도 그리스도교를 상징하는 표식이었다. 어은공소는 한옥으로 서양의 바실리카 식 성당 공간 연출을 시도한 사례로써 중요한 근대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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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완주군

    수탈의 아픔을 딛고 문화예술촌이 되다 - 완주 구 삼례 양곡창고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은 조선 시대 삼남대로와 통영대로가 갈라지는 교통 요충지였다. 삼례읍은 또한 만경강 주변 평야의 수확물이 집산되는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일본 식민주의자들은 1900년대부터 전라북도 곡창지대에 진출해 다양한 방식으로 농토를 헐값에 사들였다. 삼례에도 이등농장, 이엽사 등의 일본인 지주의 농장이 여러 곳 있었다. 1914년 삼례역이 생겨 쌀을 철도로 군산으로 실어낼 수 있게 되자 1920년대 초 삼례역 앞에 양곡창고가 들어섰다. 당시 세워진 삼례 양곡창고는 목조 3개 동에, 벽돌조 2개 동, 목조 관사 1개 동 등 6개 동이었다. 일본식 창고 건축의 전형을 보여주는 삼례 양곡창고는 해방 후 농협이 사용했다. 1970년대 말에는 철근 콘크리트 창고가 1개 동 더 건축되었다. 삼례 양곡창고는 2010년까지 활용되다가 완주군으로 넘어갔다. 완주군은 옛 양곡창고를 ‘삼례 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시켰다. ‘삼례 문화예술촌’은 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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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라북도 >완주군

    수묵화 같은 풍경에 어린 농민의 눈물 – 전북 완주 구 만경강 철교
    전라북도 완주군 원등산에서 발원한 만경강은 만경평야의 젖줄이다. 만경강은 너른 곡창지대를 적시며 전주, 익산, 군산 등을 거쳐 황해로 흘러간다. 만경강에는 구 만경강 철교가 놓여있다. 전북 전주시 덕진구 화전동과 완주군 삼례읍 후정리를 잇는 교량이다. 구 만경강 철교는 구 삼례 양곡창고와 더불어 일제의 미곡수탈을 증언하는 완주의 대표적 근대문화유산이다. 일제강점기 때 만경평야 일대의 미곡이 삼례역을 통해 철도로 군산까지 운송되어 일본으로 실려 갔다. 이곳에 철도를 처음 놓은 것은 한국인 강제징용으로 악명을 떨친 미쓰비시(三菱) 계열의 동산농장이었다. 동산농장이 경편철도를 부설하면서 나무로 만경강 교량을 지었는데 나중에 조선총독부가 이를 국유화하면서 구 만경강 철교로 바꾸었다. 풍요로운 들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제로부터 무자비한 수탈을 당했던 호남의 농민들은 땅을 잃고 고향을 떠나 화전민으로 전락하거나 만주로 이주해 가야 했다. 그래서 수묵화처럼 아름다운 만경강 철교 주변의 풍경에는 농민의 눈물과 한숨이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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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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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부산광역시 >동구

    이 보게 출세하면 오자 했던 그곳, 전통차 마시러 오게
    부산광역시 동구 수정동에는 1943년에 건축된 일본식 목조 2층 건물이 있다. 기와를 얹은 예스러운 대문, 잔디가 깔린 마당, 나무로 만든 미닫이문과 윤기가 흐르는 마루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이 건물은 일본의 건축 양식인 쇼인즈쿠리(書院造)로 지어졌다. 한때 유명한 요릿집 정란각이었던 이 건물을 문화재청에서 구입해 동네 이름에 맞게 문화공감 수정으로 바꾸었다. 문화공감 수정은 2007년에 등록문화재 330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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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밭의 백합화 향기 날리니, 구 군위성결교회
    구 군위성결교회 예배당은 1937년에 지어졌다. 교회의 역사는 192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이전 예배당은 1927년에 건립되었으나, 10년 만에 헐고 같은 자리에 새로운 교회를 지어 봉헌했다. 정면에 포치가 달린 남녀 출입구를 따로 두었고, 출입구 가운데에 아치형 포인티드 창을 설치했다. 출입구와 아치창은 단순 정갈하면서도 정감 있는 교회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구 군위성결교회 예배당은 1954년 새 본관이 지어진 뒤 유치원 건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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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충청남도 >공주시

    곰나루 근현대사를 품다, 공주제일교회 구 예배당
    공주 제일 교회의 연원은 19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청도 3.1만세운동의 중심지였던 공주 제일 교회는 1931년 현재의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다. 공주 제일 교회는 일제강점기 말에는 교회가 폐쇄되는 비운을 겪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폭격으로 상당 부분 파괴되었다. 교인들은 1956년 개축을 하면서 옛 모습을 최대한 살려 예배당을 복원하였다. 그 파란만장했던 예배당은 현재 공주 제일 교회 기독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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