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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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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선비의 고장 예안의 명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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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안동시

    숨바꼭질하듯 찾아가는, 안동 부나원루
    안동 예안의 부라원루(浮羅院樓)는 전통시대 교통수단이었던 역원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부나원루는 조선 시대 예안현에 속했던 부라원에 지어진 건물이다. 《영가지(永嘉誌)》를 보면 안동부 관내에 27개의 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운데 그 자취가 남은 곳은 부라원이 유일하다. 현재 부라원의 원사(院舍)는 없어졌지만 원루(院樓)가 남아 있어 그 의미가 남다르다. 부라원은 원래 부포리 마을 앞 들판에 있었지만 1976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로 옮겨졌다. ‘부라원루’라고 쓰여진 편액은 석봉 한호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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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인격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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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선비의 인격인 갓을 만드는 갓일
    갓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대표적인 관모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민족의 의생활에서 필수 품목 가운데 하나였던 갓은 대한제국 말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단발령을 계기로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갓을 만드는 것은 분업으로 이루어진다. 크게 양태 제작, 총모자 제작, 입자 과정의 세 부분으로 나눈다. 갓은 예로부터 선비의 인격이 배어나는 단정한 매무새의 상징이었다. 종류도 다양하고 독특한 형태적 특징과 아름다움을 지닌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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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을 실천한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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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광역시 >달성군

    성리학의 가르침은 『소학』에서부터
    사림파는 성종 재위기에 조정에 자리 잡아 성리학의 도(道)를 기준으로 대신과 임금의 잘잘못을 간언하고 지적하였다. 사화가 일어날 때마다 ‘소학의 무리’가 화를 당했다 하여 『소학』이 경시되거나 묻혔지만, 후대의 사림들에 의해 그 중요함이 다시 드러났다. 『소학』을 배우지 않아 사회가 문란해졌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소학』은 『대학』을 공부하기 전에 꼭 봐야 하는 유학의 기본서였고 인간의 도리를 깨닫고 실천하기 위한 지침서였다. 동방 오현으로 조선 도통을 계승하고 있는 ‘소학동자’ 김굉필은 유교에서 소학의 의미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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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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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안동시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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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의정부시

    이야기로 기록되고 기억된 박태보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은 기사환국을 배경으로 일어난 박태보의 행적과 추승을 36편의 기사로 기록한 것이다. 실록을 볼 수 없었던 당대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기사민절록」을 통해 박태보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박태보의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본으로 만들어져 널리 읽히면서 한 선비의 충절이 백성들과 임금, 선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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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광주광역시 >남구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광주 포충사
    광주광역시의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끈 제봉 고경명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고경명은 문과에 장원급제해 관료 생활을 하다가 파직되어 광주에 내려와 있다가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진군하였다. 비록 승전한 전투는 없었지만, 고경명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의병이 그렇듯 고경명도 병법을 알지 못하고 무예를 익히지 않은 선비에 불과했지만,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의병들을 모으고 그들을 이끌어 전장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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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대구광역시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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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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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전국

    우리 고유의 의복의 변형시킨 변복령
    1895년 3월 공사 예복을 개정하여 답호의 착용을 금하였고 입궐 때에만 사모·목화·사대를 착용케 하였으며 또한 관민이 다 같이 흑색의 두루마기를 입도록 하였다. 이러한 을미변복령은 의병봉기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전통적인 의복제도를 문화적 긍지의 한 척도로 인식하고 있던 수구적 지식인들은 변복령 반포를 심각한 정체성의 위기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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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가 된 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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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구미시

    무예와 의술이 뛰어났던 박영
    송당 박영은 무인이었다가 문인이 된 무신이자 학자로 정붕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공부하여 후에 ‘송당학파’를 이루며 영남 사림의 학맥을 이어간 인물이다. 무인 가문에서 자란 박영은 무과에 급제해 왕을 호위하는 선전관이 되었다. 무인이었지만 행동의 명분과 역사적 평가를 고민하였던 박영은 학문으로 군자가 되는 길을 택한 후 고향에 낙향해 정붕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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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의 기상을 갖춘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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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구미시

    영남의 학맥을 이은 박영의 송당학파
    정붕과 박영은 사제지간이자, 사돈지간이었다. 무엇보다 둘은 풍채가 있고 힘이 좋은 장신(長身)에 술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무엇보다 박영은 스승인 정붕이 남기지 못한 저술과 사상체계를 바탕으로 후학들을 길렀다. 박영의 제자들은 이름난 송대의 유학자 장횡거에 빗대어 박영을 조선의 장횡거라 칭송하였고 무인의 기상과 문인의 기질을 겸비한 박영의 학풍은 강한 실천 의지와 호방한 기질, 무인적 결단력을 특징으로 하는 송당학파로 발전하였다. 이들은 금오서원의 창건을 주도하기도 하였고 후에 퇴계학파에 편입되어 길재로부터 연결된 영남 사림의 학맥이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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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킨 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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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남도 >함양군

    10년 만에 이룬 남계서원의 설립
    개암 강익은 정여창과 함께 배향된 인물로, 남계서원의 건립을 주도하고 실현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고향에서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던 강익은 사림들과 친교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데 힘을 쏟았다. 특히 함양의 유학자인 정여창을 존숭하여 그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는 데 뜻을 두고 실천하였다. 남계서원은 지역민의 의견으로 건립이 논의되고 완공이 되기까지는 10년이 걸렸다. 강익은 중단된 공사를 재개해 마침내 서원이 건립될 수 있도록 하였고 이런 그의 노력으로 정여창을 배향하는 서원이 세워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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