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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석물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서울 왕실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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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7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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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중구

    대한제국의 시작을 하늘에 알리다, 환구단 석고
    1897년 10월 12일에 고종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황제국으로써 대한제국을 선포했다. 이를 칭제건원(稱帝建元)이라 한다. 칭제건원을 한 환구단은 대한제국의 시작을 알린 곳이며, 현재의 서울시청 남쪽 소공동에 있었다. 그러나 환구단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많은 부분 훼손되어, 남아 있는 문화재로 돌로 만든 북모형 석조물인 석고(石鼓)와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가 유일했지만, 2009년에 우이동에서 환구단 정문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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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서초구

    국외로 반출된 태항아리, 월산대군 이정 태실
    월산대군 태실은 서울특별시 서초구 태봉산에 있다. 월산대군 태실 자리에는 현재 태비와 석함만 남아있다. 태비에 새겨진 내용을 통해 월산대군의 태실이 봉안되어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으며 장태(藏胎)가 진행된 시기도 파악할 수 있다. 석함은 뚜껑이 땅 위에 노출되어 있는 형태인데, 석함 안에 봉안되어 있던 태항아리는 현재 일본 오사카 시립 동양도자미술관에 소장 중이다. 월산대군은 세조의 손자이자 성종의 형이었으나 왕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다. 정계에서 물러난 월산대군은 조선시대의 문장가로서 다수의 한시를 남겼다. 월산대군 이정 태실은 현재 서울에 남아있는 태실 중 원래 위치와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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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화재를 막고 정의를 수호하는 신수(神獸), 해태상
    오늘날에도 남아있는 광화문 앞 해태상은 큰 이목구비나 둥글둥글한 인상으로 익살스러운 이미지다. 해태는 오래 전부터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동물로 인식되었으며 화재와 같은 재앙을 막아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의 건축물은 대부분 목조건물이었기 때문에 해태상을 두어 화재를 예방하고자 하였다. 또한 법관들의 복식을 해태로 장식하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는 해태가 서울시의 상징캐릭터로 사용되며 더욱 친숙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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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왕실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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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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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구리시

    고려의 전통을 이으며 조선의 권위를 세운 태조 건원릉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묘인 건원릉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동구릉 내에 위치한다. 전체적인 형태는 고려 공민왕의 능인 현릉과 유사하나, 고려시대에는 잘 사용하지 않았던 곡장(曲墻)이 봉분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봉분은 병풍석이 감싸고 있고, 병풍석 위에는 12지신이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교대로 2쌍씩 배치되어 있다. 봉분의 앞쪽에는 혼유석(魂遊石), 고석(鼓石)이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로 문인석 1쌍, 무인석 1쌍이 있다. 태조는 죽어서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하였으나, 태종은 아버지의 묘를 가까이에 두어 자신의 권위를 높이고 싶어 했다. 때문에 태조의 건원릉은 현재의 위치에 조성되었고, 태조의 유언도 지키고자 함흥의 억새와 흙을 공수해 와서 단장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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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구리시

    이곳이 죽은 자의 집이다, 영조 원릉 망주석
    망주석은 무덤이 없어지더라도 이곳이 누구의 무덤인지를 알리기 위해 세워진 석물이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것으로,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릉뿐 아니라 일반 문인들의 무덤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영조의 릉인 원릉에도 한 쌍의 망주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주신의 높이에 비해 대석의 높이가 낮아 불균형하게 보이는 조선 후기 망주석의 특징을 보여준다. 망주석 측면에는 작은 호랑이(細虎)가 새겨져 있는데, 그 형태가 뚜렷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좌에 모란문을 장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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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기도 >여주시

    조선 후기 석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여주 영릉 문·무인석
    석인은 능묘를 수호하는 사람 형상의 석조물로 문인석과 무인석으로 구분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부터 무덤에 석인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풍습은 조선시대까지 계속되었다. 영릉은 조선의 제17대 임금인 효종과 비 인선왕후의 릉으로 동원상하릉(同園上下陵)으로 조성되었다. 효종의 영릉은 세종과 같이 천장하여 조성된 능역(陵域)이다. 따라서 영릉의 석물은 처음 능의 조성 당시 제작된 것이 아니라 후에 천장하면서 제작되었다. 영릉의 문·무인석은 17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석인상으로 도상과 양식이 더 형식화되었으나 얼굴과 손의 표현에서 세밀함이 강해졌다는 특징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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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 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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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이야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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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강원도 >영월군

    아들 순조가 세운 영월 정조대왕 태실비
    강원도 영월군 영월제읍에 위치한 정조대왕 태실은 조성될 당시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정조의 아들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가 아버지를 위해 석조물을 조성하였다. 이 자리는 원래 사도세자의 첫째 아들이었던 ‘의소세손(懿昭世孫)’의 태실을 만들 곳이었으나, 그가 요절하고 같은 해 정조가 태어나자 정조의 태실을 그 위치에 조성하였다. 당시 태실을 정하는 세부적인 논의, 담당관리의 임명, 석물의 마련과 폐단에 대한 문제 등 태실을 갖추는 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왕실에서 이를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국의 태실을 경기 고양시의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겼는데, 이때 정조의 태항아리도 이전하였다. 태실과 태실비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는데, 이후 영월군 종합개발위원회에서 수습하여 본래의 태실 위치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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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이야기 경상북도 >예천군

    국내 유일의 조선 왕비 가봉태실, 폐비윤씨 태실
    폐비윤씨 태실은 현재 경상북도 예천군에 위치한 용문사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폐비윤씨 태실에는 가봉태실비만 남아있으며 비석의 앞면에는 “왕비태실(王妃胎室)“이라는 글자가 남아있다. 뒷면에는 가봉한 날짜가 새겨져있는 것으로 보이나 훼손이 심해 알아보기 힘들다. 1930년대에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발견된 태실관련 유물을 통해 태실의 주인과 가봉 일자를 파악할 수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태항아리, 지석, 봉합천, 주칠끈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폐비윤씨 태실은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조선왕비의 태실 3곳 중 하나이며, 가봉태실로서는 유일하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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