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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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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게 사색하며 성리학을 이해한 회재 이언적
    옥산서원의 배향 인물인 회재 이언적은 태극논쟁에 관한 이론적 체계를 세운 인물로 한국유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언적의 생애 동안 조선의 4대 사화가 모두 일어났고 그 역시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를 직접 경험하였다. 이언적이 남긴 학문적 사상은 수많은 저서로 남아 이황과 이이와 같은 후대에 전해졌다. 영남에서는 이언적과 이황의 호를 딴 ‘회퇴학파’가 형성될 정도로 이황의 학문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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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동마을 독락당에 세워진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안강은 이언적의 고향이다. 이언적은 을사사화로 유배 간 강계에서 죽음을 맞았고, 19년이 지난 후에 마을의 사림들이 지방관의 도움을 받아 그가 거처하던 독락당 근처에 덕행과 학업을 기리는 서원을 세웠다. 16세기 말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의 피해를 입지 않아 건물과 소장 유물들이 잘 보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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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언적이 낙향과 유배 기간 동안 이룬 학문적 성취
    이언적이 조선 도학의 이론적 사상을 세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남긴 글들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언적이 27세에 쓴 망기당 조한보와의 태극논쟁은 한국 유학사에서 현존하는 최초의 태극논쟁으로 평가된다. 이 외에도 예학의 선구가 되는 저술과 『대학』과 『중용』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을 담은 글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주요 저술들은 유배지인 강계에서 쓰인 것이었는데, 유배지를 따라온 서자 이전인이 부친과 생사를 함께 하며 이언적의 학문을 지키고 후대에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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