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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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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길어지고 화려해진 통일신라의 치마(裳)
    치마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북아시아 전체에 걸쳐 입었던 흔적이 발견되는 의복으로 크게 상과 군으로 구분해서 입었다. 삼국시대 치마는 길이가 길고 폭이 넓어 땅에 끌리는 정도였다. 또 허리부터 치마단까지 잔주름이 있었다. 그리고 치마단에는 장식연(緣)이 붙어 있으며 단에는 선(襈)이 있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치마는 현대의 치마와 같이 위에만 주름이 잡혀 있다. 또한 속치마인 내상(內裳)를 껴입었다는 것은 복식금제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치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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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통일신라 시대의 바지, 고(袴)
    북방유목인이었던 우리 민족은 일찍이 바지를 착용하였다. 우리 민족은 상고시대(上古時代)부터 현대 한복에 이르기까지 위에는 웃옷을 입고, 아래에는 바지를 착용하는 상의하고(上衣下袴)를 기본으로 한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삼국시대에 이어 통 넓은 바지를 입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평민층의 바지는 역시 통이 좁은 바지인 궁고(窮袴)가 계속해서 입혀지고 있었다. 흥덕왕 때의 복식금제령을 통해 상하계급의 남녀가 모두 바지를 겉옷으로 입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통일신라시대에도 평상시에는 여자가 바지를 입는 풍습은 지속되었으며, 치마만 입는 일은 드물었고 의례용으로 치마를 바지 위에 덧입었으리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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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목에 둘러 길게 드리운, 표(裱)
    표(裱)는 당나라 제도에서 나온 영포(領布)를 말하는 것이다. 영포는 일종의 목도리로 여인들이 목뒤부터 가슴 앞으로 길게 장식으로 둘렀다. 표는 통일신라시대 복식의 기본 형태로 상의와 하의에 표를 두르고 표의를 입었다. 표는 상의인 단의의 소매 형태와 크기와 함께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라 흥덕왕 때의 복식금제(服飾禁制)의 내용으로 보아 표에 대한 장식이 극히 호화로웠음을 알 수 있다. 표의 형태를 볼 수 있는 유물로는 경주 용강동에서 출토된 여인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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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승리의 산성, 화왕산성
    창녕의 진산 해발 739m의 화왕산에 돌로 쌓은 산성이다. 남북 두 봉우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둘레가 2,7㎞이다. 성을 처음 쌓은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한다. 임진왜란 과 정유재란 시 의병장 성천희와 밀양부사 이영 그리고 의병장 곽재우가 이 산성에서 승전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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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순천시

    망자의 영혼을 씻는 전남 순천 송광사 척주당과 세월각 현판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에는 삼보 사찰 중에서도 승보 사찰에 속하는 송광사라는 절이 있다. 송광사에는 죽은 자의 영혼이 목욕 의식을 치르는 공간인 척주당과 세월각이라는 건물이 있다. 척주당은 남자 영혼이, 세월각은 여자 영혼이 목욕 의례를 치르는 곳으로 남녀의 공간이 분리되어 있다. 이 두 건물은 송광사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곳으로 건축적, 종교적으로 독특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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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지명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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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유성구

    별이 잘 보이는 대전광역시 유성구의 별밭마을
    대전광역시 유성구 학화동에 ‘별밭’이라는 마을이 있다. 풍수지리학에서 길지로 많이 알려져 있으며, 별이 잘 보이고, 많이 떨어지는 곳이라고 해서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 당나라에서 온 고승(高僧)이 별밭마을 지도를 그려 당나라로 돌아갔다. 당나라로 돌아간 고승이 황제에게 바치었는데, 이후에 명나라 시대의 황실까지 보관하고 있었다. 명나라 때 조선의 사신들이 명나라로 가자, 명나라 황제가 별밭지도를 사신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산신들은 별밭을 찾아 후손들을 이사시킬 생각하고 있었는데 배편으로 조선에 돌아올 때 갑자기 분 바람에 별밭지도가 날아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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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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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진군

    1000년 전의 동굴 낙서, 울진 성류굴 신라 석각
    울진 성류굴 신라 석각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선유산 서북쪽 성류굴에 자리한다. 이 석각은 2015년 위덕대학교 박물관장 박홍국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성류굴 입구 근처에 새겨져 있는 “계해년3월8일(癸亥年三月八日)”의 기록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석각으로 추정하였으며, 이후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성류굴 내부 곳곳에서 석각을 추가로 발견했다. 2019년에 이르러 울진 성류굴 내에 경진년(庚辰年), 신라 화랑과 승려의 이름, 신라 관직 이름과 같은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알려졌다. 특히 경진년에 진흥왕(眞興王)이 울진 성류굴에 다녀갔다는 글자가 새겨져있어 신라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중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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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불상을 모시던 작은 돌 집, 경주 남산동 석조 감실
    신라 천 년의 수도였던 경주 남산에는 약 100여곳의 절터가 있고, 80여 기의 석불이 남아 있다. 경주 남산 북동쪽에는 석조 감실이 하나 있다. 감실은 원래 집이나 방에 특정한 공간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감실을 만들어 불상이나 신주를 모신다. 경주 남산동 석조 감실은 건축형태 감실의 초기 형태로 추정된다. 석조 감실 안에 모셔져있던 불상은 현재 전하지 않지만 석조 감실은 그 모습을 유지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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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흐르는 물길에 잔을 띄우고 시를 짓다, 포석정터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서쪽에는 포석정터가 남아있다. 포석정터에는 현재 정자와 같은 건물시설은 남아있지 않고 돌로 만들어진 물길인 유배거(流盃渠)만 남아있다. 유배거의 총 길이는 약 22m에 이르며 굴곡진 전복모양 타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물길에 잔을 띄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굴곡진 형태 덕분에 물에 띄워진 잔이 매번 다른 모습으로 흘렀다. 포석정은 신라시대 왕과 신하들이 모여 연회를 즐겼던 장소로 추측되기도 하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남산 신을 보고 춤을 추었다는 기사를 통해 왕실이 의례를 지내던 곳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포석정은 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장소로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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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석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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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암군

    왕의 명을 받아 세운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은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433-3에 세워져 있다. 구림리라는 지명은 고려시대 도선국사의 탄생설화와 관련이 있으며, 동구림리는 국사암의 동쪽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영암 소전머리 황장승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 「불우조」에 “도갑사 사하동 입구에 두 개의 입석이 있는데, 그 하나는 국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에는 황장생 세 자가 새겨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황장생의 ‘황’은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왕의 명을 받아 세우는 장생에 붙는 말로 매우 귀한 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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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탑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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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용산구

    달빛 아래 세워진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보물 제360호 월광사지 원랑선사탑비 (堤川 月光寺址 圓朗禪師塔碑)는 진성여왕(眞聖女王) 4년(890)에 세워졌다. 원래의 위치는 충북 제원군(堤原郡) 한수면(寒水面) 월악산(月岳山) 월광사지(月光寺址)에 있었는데 1922년 3월에 경복궁으로 옮겨졌고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정원에 있다. 비문의 찬자(撰者)는 조청랑(朝請郞) 수금성군태수(守錦城郡太守) 김영(金穎)으로 그는 884년(중화(中和) 4)에 세워진 전라남도 장흥의 보림사(寶林寺) 보조선사비(普照禪師碑)도 지었는데 당시의 관직은 조청랑(朝請郞) 수정변사마(守定邊司馬)였다. 비문의 글씨는 오등산(五騰山) 보리담사(菩提潭寺)의 승려인 순몽(淳夢)이 구양순체(歐陽詢體)로 쓰고, 문하승(門下僧)인 진윤(眞胤) 등이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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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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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양산시

    적멸보궁의 상징 통도사 금강계단
    신라 선덕여왕 15년(646) 자장율사에 의해 조성된 금강계단은 통도사 창건 이후 수차례에 걸쳐 중수되었기 때문에 창건 당시의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다만 『삼국유사』 기록에 ‘계단은 2층으로 위층 가운데에는 마치 가마솥을 엎어 놓은 것과 같다’라는 기록을 통해 그 형태가 현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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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예천군

    탑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개심사지 오층석탑
    이 탑은 고려 초인 현종 1년(1010) 건립된 것으로 상층기단 갑석에 140여 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내용은 현종 1년 건립공사를 시작해 2월 1일 돌을 다듬기 시작했고, 3월 3일부터는 광군사(光軍司)와 육대차(六隊車)와 소 1,000마리 승려와 속인 10,000명이 힘을 모아 세웠다. 또 향도와 공인 등 50여 사람이 감독하여 다음 해인 1011년 4월 8일 완공했다고 한다. 기록만으로 본다면 탑을 세우는 데 14개월이 소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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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포항시

    석탑양식 변화의 시작, 법광사지 삼층석탑
    법광사지 삼층석탑은 이중기단과 3층의 탑신을 갖추고 있어 통일신라 석탑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지만, 기단의 축소와 탑신부의 세장화가 진행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를 통해 통일신라 말 석탑 양식의 형식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법광사는 828년(흥덕왕 3년)에 창건한 사원임을 알 수 있다. 창건주로 등장하는 성덕대왕은 김균정의 시호인데, 그의 사후 3년 뒤인 제45대 신무왕(?~839) 즉위 원년인 839년 4월에 추봉됐다. 김균정은 제42대 흥덕왕 사후인 836년에 왕위계승을 다투다 제43대 희강왕(?~838)으로 즉위한 김제융과 제44대 민애왕(?~839)으로 즉위한 김명 등에 의해 피살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 김우징은 장보고와 김양의 도움을 받아 제45대 신무왕으로 손자는 제46대 문성왕으로 즉위했다. 따라서 법광사는 신라 왕족인 김균정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그의 원찰로서 그의 아들과 손자의 후원으로 번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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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합천군

    무른 돌을 갈아 탑을 세우고, 해인사 청석탑
    해인사 원당암 청석탑은 9세기 후반 진성여왕 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점판암을 가공해 공예탑 성격으로 조성한 특수형식 탑이다. 기단은 무른 점판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화강석으로 제작했고, 탑신과 옥개석 모두를 점판암으로 제작했다. 원당암 석탑은 진성여왕 때에 위홍을 위한 원당으로 지목되면서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위홍을 위해 기존 석탑과 구별되는 형식으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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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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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공주시

    현존하는 유일한 통일신라시대 당간, 공주 갑사 철당간
    충남 공주시 갑사 동남쪽 기슭에 있는 당간은 현존하는 유일한 통일신라 시대에 당간이다. 네 면에 구름 문양을 조각한 기단 위로 철당간을 높게 세우고 양옆에 당간지주를 세워 지탱했다. 당간은 24개의 철통을 연결한 것으로 원래는 28개였으나 조선 고종 30년(1893) 벼락을 맞아 4개가 소실되었다고 한다. 통일신라 전기인 문무왕 20년(680)에 세워진 것이라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고 양식상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의 양식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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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간지주의 백미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진평왕릉 남쪽 논가운데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당간지주로서 높이는 146cm이다. 현재 지주의 아랫부분이 상당히 매몰되어 있어서 간대나 기단의 유무와 최하부의 구조를 확인하기 어렵다. 현재까지 원위치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 되며 동서로는 62cm의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정상부분 안쪽에 있는 너비 13cm의 큼직한 간구는 당간을 고정 시켰던 장치이다. 특히, 이 당간지주 상부와 측면에 설정된 방형구획 안에는 지름 47cm의 팔판연화문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와 같이 당간지주에 연화문을 조각하여 장식하는 예는 이곳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제작연대는 8세기 중엽 이후로 생각되며,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 중에서 가장 특수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당간지주의 원래의 소속 사원이 동남쪽에 터가 남아있는 보문사지 였는지, 아니면 별개의 사원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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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남간사지 당간지주
    남간사는 문무왕대 고승이었던 혜통이 주석했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부처님을 상징하거나 큰 법회 등의 행사를 위해 거는 그림을 공중에 매달기 위한 시설물이다. 현재까지 통일신라 이전의 당간지주 건립 사례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남간사지 당간지주는 통일신라 초 당간지주의 특징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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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양시

    중초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4호 안양 중초사지 당간지주(安養 中初寺址 幢竿支柱)는 본래 위치에 세워져 있으며 두 지주는 약 85㎝ 정도 간격을 두고 동서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 서쪽 지주의 바깥쪽에 새겨진 명문은 모두 6행 123자로 해서체로 쓰였다. 이 글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1년(826) 8월 6일에 돌을 골라서 827년 2월 30일에 건립이 끝났음을 알 수 있다. 당간지주에 문자를 새기는 것은 희귀한 예로, 만든 해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당간지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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