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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내 고려 시대의 흔적을 담아낸 온라인 전자 지도이다. 인천 강화도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부를 만큼 유물자원이 풍부하다. 고려 시대의 강화(강도)의 지명, 궁궐, 사찰, 사적지 등과 관련된 위치정보 및 설명을 찾을 수 있다.
박재궁 묘역은 경기도 고양시 주교동 박재궁 마을에 있다. 고려 때부터 조성되어 광해군 때까지 300년 간 53위의 묘소와 11위의 제단을 모슨 밀양 박씨 가문의 정신적 뿌리 역할을 하는 장소이다. 이 곳에 묻힌 사람 중 박충원과 박심문은 단종에 대한 충절로 유명한 위인이다. 현재 박재궁 마을은 화려한 묘역과 주택가가 섞여 있다.
경기도 일산의 전원주택 단지 한 가운데 짚으로 지붕을 얹고 황토로 벽을 쌓은 작고 소박한 집 한 채가 있다. 1990년대 초반까지 사람이 살았다는 밤가시 초가다. 밤가시 초가는 조선 후기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전통적인 서민 농촌 주택으로, 드물게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집이다. 약 150년 전 지어진 건축물로 경기도 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집은 웅덩이 모양의 안마당이 특징이다.
아름다운 하귀해안도로로 유명한 하귀2리에는 아직도 오래되고 소박한 옛 가게와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주민센터, 경찰서도 옛 건물 그대로라 그림 같은 곳이다. 하귀2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제주 안에서 시내와 가깝지만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라 산책하고 구경하다 보면 마음이 느긋해지고 편안해진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이 있다. 연립주택 3채를 리모델링하여 만들어진 이 도서관은 시작부터 운영까지 주민들이 한번도 배제된 적 없는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도서관이다. 도시재생건축으로 연립주택의 뼈대가 남아있고, 그 건물 이야기도 전시되어 있다. 이 도서관이 다른 도서관과 다른 점이라면 열람실과 자료실이 나뉘어져 있지 않고 모든 곳이 열람실이면서 자료실이라는 점이다. 주민들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구산동도서관마을은 민관 협치의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라북도 고창 해리면 월봉마을의 '고창 책마을해리'는 출판계에 몸 담았던 이대건 촌장이 나성초등학교를 개조하여 만든 곳이다. 나성초등학교는 1933년 광승 간이학교로 문을 열어 2001년에 폐교가 된 이후 2006년에 '고창 책마을 해리'로 다시 문을 열었다. 바람언덕(야외강연장), 암벽타기벽이 있는 동학평화도서관, 책숲 시간숲(마을신문과 지역책 도서관), 버들눈 도서관(어린이청소년 도서관), 직접 책을 찍어낼 수 있는 누리책공방 등 볼거리와 할거리가 넘치는 곳이다.
조선이 개항하고 인천 만석동 일대에 포구를 열었다. 남쪽은 각국의 묘지로, 북쪽에는 조선인 마을을 만들었다. 이때 만들어진 북성포구는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몰려와 똥마당이라는 오명을 덮어 쓰기도 했지만 1960년대부터 좋은 생선과 새우젓을 구입할 수 있는 파시가 열렸다. 지금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선상파시가 남아있는 곳이다. 만석부두 역시 피란민들이 만든 굴막으로 유명했으며, 1970년대 초반까지도 인천 앞바다 여러 섬을 오가는 여객선들의 출발지였다.
유명 관광지로서의 제주가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생활상을 품고 있는 곳이 제주 원도심이다. 관덕정과 제주목관아가 있던 곳으로 제주의 행정, 상업중심지이다. 이 곳에 300년 넘은 초가가 한 채 있다. 안순생 할머니가 7대째 살고 있는 그 집을 사람들은 박판사네라고 부른다. 박영수 특검의 아버지 고 박창택 판사네 집이기 때문이다. 창호는 흰색 샤시로 바뀌었지만 초가지붕을 이고 있는 그곳과 관덕정, 제주목관아터 등을 방문하면 그 옛날 제주의 속살을 볼 수 있다.
강원도 화천읍 신대리는 토고미마을로 불린다. 농사일에 품을 팔면 쌀로 품삯을 받았다고 하여 토고미(土雇米)라 불렸다. 현재 토고미마을에는 토고미자연학교가 있는데, 연 2~3만명이 농촌체험을 하기 위해 온다. 원래 초등학교였다 폐교된 곳을 리모델링하여 운영하고 있다. 강아지와 당나귀가 있는 이 곳에서 소 여물주기, 고구마 캐기 등을 체험하고, 인절미를 만들어 먹고 밤에는 반딧불이와 놀면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베트남 종전 후 부상을 입고 돌아온 군인들이 파월전상자 자립회를 만들고 기금을 마련하여 1974년 천호동에 마을공동체를 만들었다. 그 후 십자성마을은 '서울시의 원전 하나 줄이기'에 동참하여 2012년부터 에너지 자립마을로 변신했다. 주택 태양광을 설치, 환경운동과 에너지절감을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여러 모습을 갖고 있는 성수동. 그 안의 작은 마을 ‘새촌’은 일제강점기 때 건양사를 운영했던 정세권 선생이 개량한옥 지구로 개발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 백석 시인과 정현웅 화가가 이사와 살기도 했다. 지금 새촌마을의 골목엔 백석의 시와 정현웅의 그림이 벽화로 다시 그려져 있는데, 이는 시니어 골목재생단 ‘떴다 할매’단의 작품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촌마을은 지역 주민들의 참여로 더 활기차고 소박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동네로 바뀌고 있다.
인천 동구 배다리마을은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와 배와 배를 연결하여 다리를 만들어 건너다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복 이후 40여 개의 헌책방이 성업한 헌책방 골목이기도 하다. 이곳에 산업도로가 마을 중간을 관통해 지나가려는 국책사업이 시작되었고, 마을주민들의 저항이 시작되었다. 동네 주민에 지역 문화예술단체와 활동가들이 합세해 도시재생이 시작되었고, 결국 산업도로는 지하로 지나가게 되었고, 배다리마을은 큰 위기를 넘겼다.
장록마을의 또 다른 이름은 ‘녹촌(錄村)'이라고도 하였으며 430여년 전에 김해김씨, 인동장씨, 장수황씨 등 3성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하여 ‘3정자마을(三亭子)’이라고도 한다. 장록마을은 평구부곡이 자리했던 곳이기도 하며 당시 평동과 송정에 이르는 황룡강변은 뱃길이 있어서 조선시대 이곳을 선도면(船道面)이라고도 했다. 조선시대 장록마을은 교통의 요충지였기에 여행객이나 관리들이 이곳에서 숙박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숙식을 제공하는 오늘날의 여관 같은 원(院)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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