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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관아를 포함한 경기도 과천지역의 역사, 문화유산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실사 영상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결합해서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판줄타기, 과천무동답교놀이 같은 전통문화와 과천향교, 가자우물, 객사 등 문화재를 소개한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에 ‘문무정’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다. 동쪽에 있었던 우물을 ‘문정(文井)’, 서쪽에 있던 우물을 ‘무정(武井)’이라고 불렀다. 문정과 무정의 물이 솟아나면서부터 강화도 출신의 문관과 문관이 많이 배출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샘을 메우고 나서는 강화도와 교동도 출신의 벼슬아치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영흥도) 외리에 용마정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다. 영흥도는 옹진군 관내의 다른 섬들에 비해 어업보다는 벼농사를 비롯한 농업 비중이 큰 섬이다. 그만큼 농사를 짓기 위해서 물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용마정의 물맛이 용마 덕분에 좋아졌다고 하며, 몸이 아픈 환자나 노약자들이 용마정 물을 마시면 병을 치료하고 기력이 좋아졌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중구 인현동에 ‘용동큰우물’이라 부르는 우물이 소재해 있다. 용동큰우물은 행정구역상 인현동에 속하지만 용동과 경계에 있으며, 인천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용동큰우물이라 부른다. 용동큰우물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우물이었다가 1883년 인천항의 개방과 함께 보수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동큰우물을 중심으로 인천에서 가장 유명한 양조장이 있었고, 양조장 주변으로 유명한 술집들이 즐비했었다. 인천은 짠맛이 나지 않는 물을 식수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용동큰우물이 그 역할을 담당했다.
경기도 안양시 안양5동에 ‘찬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이 있었다. 찬우물이 있었기에 마을 이름도 ‘냉천동’이 되었다. 찬우물은 안양시와 군포시 경계에 있는 수리산에 있었던 샘물 가운데 한 곳이다. 수리산에 위치한 샘물들 가운데서 수질이 가장 좋다고 인근에서 소문 나있었다. 예전부터 수리산 주변 땅들이 비옥해 농사가 잘 되었다. 찬우물 인근에 있는 농경지에서는 찬우물에서 나오는 물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다.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찬우물의 물은 마르지 않았다고 전한다.
경기도 부천시 원종동에 ‘멧마루우물’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멧마루’는 마을 이름이다. 멧마루에서는 집집마다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다. 그러나 마을 앞까지 서해 바닷물이 거슬러 올라와 우물물에서 짠맛이 났다. 마을 사람들은 짠물이 나는 우물물을 며칠씩 가라앉혀 식수로 이용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우물물을 받아서 며칠 동안 두었다 먹는 것이 불편해 마을 사람들은 짠물이 올라오지 않는 공동 우물을 팠다. 그것이 바로 멧마루우물이다. 여전히 마을 주민들은 멧마루우물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여긴다. 맷마루도당우물제는 음력 3월과 7월 초하루에 지낸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동에 어의정이라 부르는 우물이 소재해 있다. 어의정은 조선 시대에 만든 우물로 충청남도 문화재 제3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어의정이 소재한 아산시 온천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온천지대로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실 온천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조선 세종 때에는 온양행궁(온궁)을 건립하기도 하였다. 세종은 풍질과 안질, 피부병 등에 시달렸기에 ‘온천수’를 이용한 치료를 목적으로 온양온천을 자주 찾았다. 이때 어의정의 물로 눈병을 치료하였다고 전한다.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용당4리 부두마을에 용당리 우물이 소재해 있다. 용당리는 예전부터 일만 가구 이상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만가대 등으로도 부른다. 용당리 우물은 매우 정교하게 다듬은 석재를 이용해서 만든 우물로, 백제시대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역사유적이기도 하다. 백제 시대의 수준 높은 우물 축조 양식을 보여준다. 백제시대에 만든 우물이지만 축조 당시의 상태를 유지하며 최근까지도 부두마을 주민들이 사용했기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경기도 안산시 목내동 능안에 관우물이 소재해 있었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의 어머니이자 문종의 비인 현덕왕후가 세조의 꿈에 나타나 그 잔악함을 꾸짖었는데, 이에 대한 보복으로 현덕왕후의 능을 파헤치고 관을 바다에 버렸다. 그런데 현덕왕후의 관이 떠내려가지 않고 소릉 옆 바다까지 떠밀려 왔다. 그리고 현덕왕후 관이 닿은 자리가 육지가 되어 우물이 생겼는데, 그 우물을 관우물이라 불렀다.
경기도 성남시 복정동에 복우물이라 불리는 우물이 소재해 있었다. 마을 이름도 복우물이라고 하였다. 복우물은 연일 정씨네들이 살던 기와집에 있었던 우물이다. 조선 시대 세조에 의해 단종이 왕위에서 쫓겨나고, 단종을 따르던 많은 신하들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하자, 정호라는 선비가 가족들을 데리고 현재의 복정동 일대 산중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던 중 꿈속에 세종의 일곱번째 아들인 평원대군의 혼령이 나타나 깊은 샘을 파면 십 년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자손 대대로 가문이 번창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정호는 평안대군의 말에 따라 그 자리에 집을 짓고 복우물을 팠다고 한다.
충남 논산 주곡리는 예로부터 마을 앞 큰길가에 술집이 많아서 술골, 주막거리, 주곡(酒谷)이라 하였다. 주곡리 입구의 왼쪽에 남장승, 오른쪽에 여장승이 서 있다. 이들 장승은 노표이자 수문장 역할을 한다. 주곡리에는 마을 입구에 정승이 세워진 내력에 관한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다. 주곡리에서는 음력 1월 14일 장승제를 지내며, 제의 절차는 “분향-강신-헌작-독축-음복” 순으로 진행된다. 주곡리에서는 현재도 목장승과 짐대를 손수 제작하여 모신다.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칠봉리에서는 매년 음력 3월 3일에 마을회관 옆에 있는 큰 샘에서 샘제를 지내고 있다. 제의는 '큰 샘 제의-큰 샘과 샘수골 소우물의 합치-뒤풀이' 순으로 진행된다. 주민들은 샘제를 모시면 마을의 액운이 물러가고 길운이 온다고 여긴다. 겸면에서는 칠봉리 이외에 가정리에서도 샘제를 지내는데, 곡성군 내에서는 유일하게 샘제의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전북 순창군 죽곡리 하죽마을에서는 공동우물에 우물제를 지낸다. 상수도의 보급으로 더 이상 공동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지 않지만, 주민들은 우물에 용신이 기거하며 마을을 지켜준다고 여긴다. 비록 우물제는 간소하게 거행되지만, 마을 청년들을 중심으로 제를 지낸다는 점에서 하죽마을 우물제는 앞으로도 전승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2020년 코로나19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우물제를 모셨다.
종교와 문화 / 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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