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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산업의 수도' 울산의 화려한 발전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주민들의 아픔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울산 산업화의 기반시설로 세워진 댐으로 인해 생활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국가산업의 수도' 울산의 화려한 발전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주민들의 아픔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대한민국 최대 중화공업단지이자 울산 산업화의 중심지인 온산공단의 화려한 야경 뒤에는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국가산업의 수도' 울산의 화려한 발전상과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주민들의 아픔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이다. 과거에는 미포만으로 불렸던 울산만은 산업화 이전에는 반농반어(半農半漁: 농사와 어업을 병행) 하던 전형적인 어촌이었다. 미포만의 변천사와 실향민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동 울산박물관에는 조선 후기 울산 도호부사라는 벼슬을 지낸 박명부가 지은 「울산민폐소(蔚山民弊疏)」 초고본이 소장되어 있다. 박명부는 울산 지역 백성들의 삶을 살핀 뒤 여러 폐단을 발견하고 그것을 바로잡기 바라는 내용의 「울산민폐소」를 임금께 올렸다. 「울산민폐소」를 통해 조선 후기 울산 지역의 실상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 「울산민폐소」는 울산박물관에 방문하면 관람할 수 있다.
울산 경상좌도병영성은 사적 제320호이며 울산광역시 중구 서동 149-1번지 일대의 동천 옆 낮은 구릉지 위에 축성한 포곡식성으로 경상좌도를 관할하던 병마절도사영이었다. 이 성은 조선시대들어 1415년 경주에 있던 경상좌도병영이 옮겨오면서 1417년 석축성으로 축성하였다. 울산병영성은 울산의 북쪽 황방산 자락이 동천과 만나는 구릉지위에 위치하여 북쪽으로는 경주와 통하는 길목에 해당하고 남쪽으로는 울산항을 감시할 수 있는 요충지이다.
울산광역시 언양읍 농협 옆의 적산가옥에는 울산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하나서점이 지금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방앗간 자리에 문을 연 이 서점은 이제 언양읍에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동네서점이다. 하루도 문을 닫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위해 자녀의 결혼식날에도 오후에 문을 열었다는 이 서점의 주인장 김충열 씨는 학생들의 참고서를 팔며 학생들의 선도부 역할도 했다. 지금도 명절이면 찾아와 용돈을 건네주고 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울산광역시 언양읍의 미진이용원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곳으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때 장사가 잘 될 때는 면도와 안마를 맡아주는 여자 종업원들을 많이 데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두 부부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남편이 머리손질과 면도를 하면, 아내가 머리를 감겨주고, 머리카락을 청소한다. 이젠 '이용원'이라는 명칭 자체가 낯선 시대이지만, 다리가 버텨주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용원을 운영할 것이라고 한다.
울산광역시 언양읍 알프스시장에 있는 언양 매일대장간은 40년 동안 매일 문을 연 대장간이다. 박병오 씨가 견습과정을 거쳐 마흔 넘어 차린 대장간으로, 매일 문을 연다는 의지가 들어있는 이름이다. 농사가 주된 수입원이던 1970~80년대에는 주문이 넘쳐 밤을 새기도 했지만, 요즘은 손님이 뜸하다. 그럼에도 그가 매일 문을 여는 이유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찾아왔을 때 그 자리에 자신이 없다면 피해를 주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직한 대장장이 박병오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에는 남창옹기종기장이 있다. 이 시장은 조선시대 개설되었던 남창장에서 비롯되었으며, 현재도 상설시장과 오일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2011년 기존의 남창시시장에서 ‘남창옹기종기시장’으로 시장의 이름을 변경하였고, 옹기를 특성화한 시장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울주군 온산읍에 살던 김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좋은 자리에 묘를 쓰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쉽지 않아 걱정이 많았다. 지나가던 풍수가 김 씨를 도와주었다. 김 씨의 선산이 있던 울산시 고사동에 묏자리를 잡아주며 삼 일 후에 천석부자가 될 것이라 했다. 삼우제날 묘를 돌보던 김 씨의 눈에 청어떼가 밀려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김 씨는 청어떼를 팔아 구만석 부자가 되었다. 이후 묘가 있던 마을을 흥성구만이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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