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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의 작은 고을 곡성이 품고 있는 정해박해의 현장을 찾아 순교의 역사를 생생히 담은 다큐멘터리. 정해박해가 갖는 역사적 위상을 재조명하고, 순교의 정신을 기리는 콘텐츠
천주교 신자들이 성지순례를 오는 미리내 성지는 안성시 양성면에 위치하고 있다.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 미리내와 인근 지역 산속에 숨어들어 교우촌을 이룬 것이 미리내 성지의 시초이다. 알면 알수록 마음이 아파지는 미리내 성지. 그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원주 흥업 성당 대안리 공소는 박해를 피해 강원도 원주 지역으로 숨어들었던 천주교인들이 1900년대에 세운 한옥 공소다.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교우들은 공소이지만 ‘참 성당’이라 칭찬받는 정갈하고 아늑한 예배 처소를 건립했다. 당시 원주 일대에 존재했던 공소들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 한국전쟁 때는 인민군 막사에서 미군 구호품 배급소로 변전하는 역사의 무게를 이겨냈다.
충청남도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에는 솔뫼성지라는 천주교 성지가 있다. 솔뫼마을에서 1821년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태어났다. 김대건은 1836년 마카오에 가서 신학을 공부하고 1845년 중국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아 귀국하였다. 사제 생활 1년여 만에 체포되어 1846년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김대건 순교 100주년을 맞으며 솔뫼성지에 대한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이후 성역화되었다. 솔뫼성지에는 김대건 신부 생가가 복원되어 있고 기념성당 및 기념관이 조성되어 있다.
전라남도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는 모현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모현관은 미암 유희춘의 유물을 보존하기 위해 1957년 후손들에 의해 지어졌다. 연못에 흙을 쌓아 언덕을 만든 후 그 위에 집을 지은 것이 특징적이다. 도난과 화재를 피하기 위해 후손들이 계획하여 세운 건물이다. 모현관에 보관되었던 유물들은 근처에 세워진 미암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에는 미암 종갓집과 사당, 연계정 등 유희춘과 관련된 장소가 많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동에는 법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법정사의 승려들은 1914년부터 신도들에게 국권 회복을 위한 교육을 진행하며 항일운동을 계획하였다. 1918년 법정사 주지 김연일을 중심으로 조직을 구성하고 격문과 무기를 준비하였다. 10월 7일 항일운동에 참여한 군중들은 중문 경찰관 주재소를 침입해 불을 질렀다. 곧이어 순사대가 들이닥쳐 군중은 뿔뿔이 흩어지고 그중 66인이 검거되었다. 법정사 항일운동은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실행되었다. 제주도 도내에서 최초로 이루어진,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으로 의의가 크다.
경기도 안성시 구포동에는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구포동성당이 있다. 안성 구포동성당은 프랑스 선교사 공베르 신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세 개의 뾰족한 종탑이 인상적인 서양식 건물이지만 측면에서 보면 지붕에 기와가 올려진 한옥 형태인 절충식 구조다. 한편 공베르 신부가 미사용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나무를 심게 된 것을 계기로 안성에 포도 농가가 많이 늘어났다. 공베르 신부의 여러 업적을 기념해 성당에 흉상이 세워져 있다.
부거리 옹기마을이라고도 불리는 김제 부거리 옹기가마는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신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천주교 신자는 이곳을 은신처로 삼아 옹기를 만들어 팔면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천주교가 박해당하던 시기, 신자들에게 옹기는 신앙과 삶을 지키기 위한 중요한 생업수단이었다. 김제 부거리 옹기가마는 가마의 형태, 옹기 제작 방식, 작업 도구 등 100년 전 방식을 따르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뛰어나다.
김범우(金範禹, ?~1786년)은 조선 최초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토마스다. 그는 중인 출신으로 역관(譯官)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역관의 특성상 비교적 잦은 해외 경험과 외국 서적이 김범우의 자유로운 사유 체계를 형성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그중 중국을 통해 조선에 유입된 서학서(西學書)는 김범우를 천주교로 이끄는 매개체였다. 김범우는 이벽을 비롯한 남인계열의 문인과 가깝게 지냈고, 이렇게 모인 사람들은 김범우의 집에서 비밀 집회를 정기적으로 가졌으나 ‘을사추조적발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었다. 양반출신의 신도들은 모두 풀려났으나 김범우는 체포되어 형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도 배교하지 않았고 결국 유배지인 단양에서 생을 마감했다. 당시 천주교 신자들이 모였던 김범우의 집터는 한국 천주교가 시작된 곳으로 현재 명동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최양업은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에 이은 조선의 두 번째 신부이다. 최양업은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독실한 신앙생활의 영향을 받아 성장하였다. 그는 김대건이 먼저 순교한 후, 1849년 상해에서 사제서품을 받아 조선인으로서 두 번째 신부가 되었다. 조선으로 귀국한 최양업은 험한 산속을 돌아다니면서 박해받는 신자들을 찾아 고해성사를 주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지은 천주가사(天主歌辭)로 널리 신앙을 전파한 ‘땀의 순교자’로 불린다.
김대건은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부로 세례명은 안드레아이며 신부가 된 지 1년만에 병오박해로 순교하였다. 김대건 가문은 충청남도 당진에 정착해 살아왔으며 4대에 걸쳐 천주교를 믿어왔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김대건은 유네스코 제40차 총회에서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되었는데, 2021년은 김대건 신부 탄생 200주년이 되던 해이다.
이존창은 초기 천주교회 창설자 중 권일신(權日身)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하였다. 충청도 지방에서 전교에 힘쓴 결과 '내포(內浦)의 사도'로 불리기까지 하였다. 1791년(정조 15)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혹심한 고문에 못 이겨 한때 배교하여 홍산으로 이사를 갔다. 이후 다시 전날의 배교를 뉘우치고는 더욱 열심히 전교하다가, 신유박해 당시에 순교하였다. 충청남도에서는 이존창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이존창 생가터’를 기념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광암 이벽(李檗, 1754~1785년)은 조선 후기에 활동했던 문인이다. 성호 이익의 제자였던 그는 성호학파의 자유로운 학풍 속에서 학업에 열중했다. 새로운 사회를 이끌어 갈 새로운 사상을 간절히 필요로 했던 조선 후기, 일부 지식인들은 새로운 학문에 대한 공부에 몰두했다. 이벽 역시 타학문에 비교적 관대했던 성호학파의 학풍에 따라 당시 새로운 학문이라 여겨졌던 서학(西學)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고, 이는 천주교 수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벽은 이승훈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하기 시작했고, 조선은 단 한 명의 선교사 파견도 없이 천주교가 뿌리내린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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