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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미군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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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두천 미군과 함께 74년, 그 흔적을 찾아서_양복점
    동두천시는 전체 면적의 42%가 미군기지로 사용되었고, 시의 산업 구조 역시 미군기지를 대상으로 한 2차 산업과 서비스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미군 대상 서비스업 중 하나가 바로 양복점이었다. 미 2사단이 주둔하던 시절에는 미군기지와 가장 가까운 곳에 크고 작은 양복점이 30곳이 넘었다. 주 고객은 미군 장교와 부사관, 일반 병사, 그리고 지역 유지 등이었으며, 판매 방식은 대부분 맞춤 제작이나 맞춤 재단이었다. 업자들은 동대문에서 직접 군산 원단을 사 와 미군 제복은 물론 정장, 코트, 재킷 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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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미국의 공존, 부산과 미군의 공존
    하야리아(Hialeah)는 무슨 뜻일까. 미국 인디언 언어로 아름다운 ‘아름다운 초원’이란 뜻이다. 2차대전 당시 유명했던 미국 플로리다주의 하야리아 경마장에서 따왔다고 한다. 미군이 처음 부산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16일이었다. 해방되고 나서 한 달 후였다. 정부 수립 후 미군은 일부 군사고문단만 남기고 철수했다. 미군이 다시 돌아온 건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면서다. 연합군으로 참전한 미군은 서면경마장 자리에 기존 조성했던 주둔 기지를 캠프 하야리아로 명명하고, 군수물자 보급과 후방 기지 지휘 임무를 맡았다. 캠프 하야리아는 이후 반세기 넘게 군사 기능을 위한 독립적 공간으로, 그리고 한국과 미국의 문화가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으로 부산과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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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면경마장, 광복 후에도 이어지다
    서면경마장은 개장 초기부터 말썽거리였지만, 광복 후에도 명맥을 이어갔다. 1946년 봄에는 국군을 위한 경마장으로, 1956년에는 미군 하야리아 부대 동쪽 범전동 산2번지 골짝을 깎아 경마장으로 썼다. 360m 미니 트랙이었지만 명맥은 ‘300번지’와 함께 오래오래 이어졌다. “경마장’ 가자” 또는 “300번지 가자” 그러면 엔간한 기사는 알아들을 정도로, ‘경마장’과 ‘300번지’는 일대를 대표하는 지명이었다. ‘범전동 300번지’는 1950년 6·25전쟁 이후 생긴 집창촌이었다. 캠프 하야리아가 건재하던 시절엔 300번지가 범전동의 중심이었다. 인근에 포장마차, 미용실, 주점 등 다양한 업종이 몰려들어 큰 호황을 맞았고, 서구 완월동, 해운대 609번지와 함께 부산의 3대 집창촌으로 꼽혔다. 2004년 성매매방지특별법 시행 이후부터는 대대적인 단속으로 서서히 사라졌다. 부산 대표 시민공원이 들어선 지금은 ‘부산 1번지’로 부상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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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진구 미군기지’ 그 역사의 굴곡과 비하인드 스토리
    캠프 하야리아는 부산진구 범전동과 연지동 일원에 주둔했던 미군기지의 애칭이다. 해방을 맞은 1945년부터 기지를 폐쇄하던 2006년까지 60년 넘게 주둔했다. 기지가 있던 자리에는 지금 부산시민공원이 들어섰다.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부산시민의 염원이 담긴 부산 대표 공원이다. 미군기지가 들어서기 전에는 논과 밭이 있던 마을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상설 경마장이 있었다. 부산시민공원의 일제강점기 이전과 직후에 대해 개괄적으로 조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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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클럽과 한국음악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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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크린에 비친 아메리카 타운, 군산의 또 다른 역사
    1969년 군산 산북동에 조성된 ‘아메리카타운’은 정부가 외화벌이를 목적으로 만든 미군 전용 위락시설 단지였다. 이곳은 100여 채의 가옥과 상가, 클럽, 환전소 등이 들어선 기지촌이었다. 이후 ‘실버타운’, ‘국제문화마을’로 이름을 바꿨으며, 수많은 문학·르포·영화의 배경이 되었다. 영화 <황무지>는 이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극과 5·18의 상처를 그렸고, 독립영화 <아메리카타운>은 미군 기지촌을 배경으로 한 소년과 여성의 애틋한 삶을 담으며 기지촌 현실과 인권 문제를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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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비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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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미군들 태권도 교육, 'LA 국제태권도 페스티벌'로 발전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정식종목이 되며 세계 스포츠로 성장했다. 전라북도에서 태권도가 처음 뿌리내린 곳은 군산으로, 1947년 장미동에 개관한 ‘군산체육관’이 전북 최초 태권도 지도관이었다. 김혁래·김혁종 사범은 군산비행장과 통신기지의 미군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며 세계 보급에 기여했고, 많은 제자가 해외에 도장을 세우며 군산 태권도의 명성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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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시절에는 그랬지
    요즘 세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외국 거리 곳곳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간판과 상품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불과 5~60년 전과 오늘날 우리나라 경제 상황을 비교해 보면 천지개벽을 한 느낌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참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벽계리 미군 부대에서 버려지는 음식물도 외부로 나오면 귀한 대접을 받았다. 음식물 쓰레기 중에서 고기가 많이 붙어있는 뼈나, 깡통에 남아 있는 햄 등을 팔팔 끓여서 배고픔을 해결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얘기 같지만, 정말로 그 시절에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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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장은 미국에 갔을까?
    우리나라 기지촌에서 미군을 상대하던 양색시(기지촌 여성)들의 꿈은 대개 비슷했다. 사귀는 미군과 결혼하여 경제가 풍요로운 미국으로 건너가 사는 것이었다. 벽계리 미군 부대 주변에서 미군과 살림을 차린 양색시들의 꿈도 대부분 미국으로 건너가 부유하게 사는 것이었다. 미국으로 건너가기 위해 한국 애인을 배신하고 미군과 사귀는 양색시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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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억척스런 벽계리 여인들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도 미군 부대는 벽계리의 상징이었다. 벽계리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지기산 꼭대기에는 우람한 레이더가 항상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의 벽계리는 전형적인 농촌일 뿐이다. 옛 시절 미군이 주둔했던 흔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곳 벽계리에서 마을 아낙네들은 미군 부대와 모여든 사람을 상대로 억척같이 일하며 자식을 키우고 살림을 일으켰다. 소설 몇 권으로 써도 부족할 숱한 사연들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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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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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자의 습지 일기, ‘냉면공장과 클럽’
    벽계리 미군 부대가 철수한 이후, 마을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먼저 미군들을 상대하던 클럽의 영업 대상이 미군에서 내국인으로 바뀌었다. 클럽은 미군이 철수한 후에도 상당히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클럽에 드나들며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도 생겨났다. 시간이 지나 클럽은 사라졌고, 냉면 공장이 들어섰다. 일거리가 없던 마을 여성들이 냉면 공장에 취업하면서 남편들이 집을 지키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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