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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북 >남원시

    호랑이의 머리를 닮아 호두산으로 불렸던 전북 견두산
    견두산(犬頭山)은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고평리와 전라북도 구례군 산동면 계천리의 경계에 위치한 높이 775m의 산으로, 개머리산이라고도 한다. 과거에는 견수산(犬首山)이라는 이름과 혼용되었다. 견두산에는 빈대로 인해 폐사된 극락사(極樂寺)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견두산은 본래 ‘호두산(虎頭山)’ 또는 ‘범머리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전라도관찰사였던 이서구(李書九)가 호랑이와 들개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산의 이름을 견두산으로 바꾸고 마을에 호석(虎石)을 세웠다고 한다. 산 정상 부근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견두산마애여래입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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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무주군

    최영 장군이 장도로 바위를 내리쳐 길을 냈다는 전북 무주군 적상산
    적상산(赤裳山)은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에 위치한 높이 1030m의 산으로, 상산(裳山)이나 상성산(裳城山), 산성산(山城山)으로도 불린다. 산 중턱이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는 데다가 산꼭대기가 평탄하고 물이 풍부하여 천혜의 요새로 여겨져 고려시대에 최영이 산성을 쌓을 것을 건의했다. 적상산의 장도바위에는 최영(崔瑩) 장군이 적상산에 오르던 중 앞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를 장도로 내리쳐 길을 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과거에는 적상산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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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남원시

    여인네의 바람기를 막는 비석이 있는 가마봉
    가마봉은 전라북도 남원시 수지면 산정리에 있는 높이 279m의 산이다. 가마솥을 닮아 가마봉이라 부르며, 설맹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며, 남근을 닮아 풍수지리와 관련된 설화가 존재한다. 산에는 가덕사라는 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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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공동체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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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나주시

    물도 나무도 마음도 푸른, 나주 벽류정
    나주는 오래도록 호남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였다. 그런 만큼 나주에는 이름난 누정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쌍계정·영모정·벽류정이다. ‘벽류정(碧流亭)’은 말 그대로 ‘시리도록 푸른빛의 맑은 물이 흐른다’는 의미이다. 우뚝 서있는 벽류정 아래에는 영산강의 지류인 금천이 흐르고, 정자를 사방으로 호위하듯 노거수가 에워싸고 있다. 발 아래로 시리도록 푸른빛의 맑은 물과 파랗게 이끼가 더해진 오래된 나무의 녹음이 ‘벽류정’ 이름과 잘 어울린다. 벽류정은 김운해(金運海)가 1640년 세운 정자로 여러 편액과 현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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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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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군산시

    군산 '이성당', 일제강점기 도시 중심가에 문 열었던 제과점
    한국의 제과점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건너왔다. 빵을 만드는 재료가 비쌌기 때문에 빵값이 비쌌고 자연스럽게 고가의 빵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 중심가에 자리잡았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제과점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군산의 이성당이다. 일제강점기 제과점은 일본인이 빵과 과자를 만들고 종업인인 조선인은 허드렛일을 하는 구조였다. 제과기술은 조선인들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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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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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용머리와 호랑이 머리가 지켜준 강경 미내다리
    강경 미내다리는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소재의 조선 후기 석교로, 강경 송만운과 황산 유승업 등이 축조했다. 1973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미내다리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인데 명칭과 관련하여 미내다리가 있는 하천을 미하(渼河)라고 불렀기 때문에 미내다리[渼奈橋]라고 하였다는 설과 ‘미내’라는 승려가 시주를 받아서 만들었다는 설의 내용이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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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부산 통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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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경상도 영천의 장수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장수도(長水道)
    장수도는 조선시대 경상도 신령(지금의 영천시 신녕면)에 있던 장수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며, 지금의 경상북도 남부 내륙과 동해안 및 경상북도 남부를 통과하는 역로를 관할했다. 1457년에 문경을 중심으로 형성된 유곡도에 통합되었다가 1462년 다시 장수도로 분리되었다. 장수도는 조선시대 한양에서 일본으로 향하던 사행단이 통과하던 구간이기도 하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를 비롯하여 경주시, 경산시, 청도군과 울산광역시를 통과하던 역로가 포함되었다. 이 일대를 운행하는 중앙선 및 대구선 철도에는 조선시대의 역 이름을 유지한 철도역이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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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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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서산시

    꽉 찬 ㅁ자형에 차양이 있는 서산 경주김씨 고택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에 위치한 경주김씨 고택은 정순왕후의 작은댁으로 알려져 있다. 경주 김씨 집성촌인 한다리 마을 중심부에 있고, 사(巳)자형 평면에 일자형 사랑채를 붙인 ㅁ자형 평면구조로 되어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지만 안채는 동향으로, 사랑채는 본체와 직각이 되도록 배치하여 남향이다. 안채 주위에 부속채를 배치하여 안마당에 틈을 두지 않아, 튼 ㅁ자형의 충청도 일반집과 달리 꽉 찬 ㅁ자형이다. 대문을 행랑채와 별도로 대지의 모서리에 배치하였고, 본체는 팔작지붕을 얹고, 부속채에는 우진각지붕을 얹어 건물 간의 위계성을 부여하였다. 사랑채 앞쪽에 차양을 설치하여 여느 살림집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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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괴산군

    교육 열망이 낳은 “돌집”, 괴산중학교 구 본관
    해방 후 분출된 충청북도 괴산군민들의 교육 열망은 괴산중학교 설립으로 나타났다. 1946년 인가를 받은 괴산중학교는 이듬해인 1947년 당대 최고의 석조 건축 회사인 서울중앙산업에 학교 건축을 맡겼다. 석재는 괴산과 음성 경계 지점의 치마바위를 깨뜨려 운반했다. 석재를 다듬기 위해 석공 20명이 3년간 인근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괴산중학교 1호관은 1949년에, 잇달아 지어진 2호관은 1951년에 준공됐다. 괴산중학교 구 본관은 공사에만 4년여 세월과 정성이 들어간 건축물이다. 충청북도 내에서 석조 교사는 괴산중학교 구 본관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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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괴산군

    70년간 군수 관사로 쓰인 100년 전통 한옥 - 괴산군수 관사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괴산군수 관사는 1910년대에 지어진 전통 한옥이다. 괴산읍 중심가는 조선총독부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괴산·연풍·청안을 통합하여 괴산군으로 설정한 이후 형성되었다. 전통 한옥도 그 무렵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통 한옥은 1950년 최 씨 성을 가진 부자가 괴산군에 기증한 이후 지금까지 군수 관사로 사용되었다. 관사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로 나뉘는데 각기 독립적인 공간이면서 동선을 고려해 유기적으로 배치되었다. 한옥 관사 근처에는 괴산의 명물인 고추 오일장이 열린다. 한옥에서 동진천 건너편에는 경술국치 당시 자결 순국한 홍범식 선생의 고택이자. 역사소설 『임꺽정』을 쓴 홍명희의 생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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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괴산군

    명나라의 멸망 이후 유학의 신념을 담은 괴산 만동묘정비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에 있는 화양서원(華陽書院)에는 만동묘정비(萬東廟庭碑)가 세워져 있다. 비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도와준 명의 신정과 의종의 위패를 모신 만동묘의 비석이다. 명나라의 멸망 이후 유가의 문명을 보존하려는 의도 아래 화양서원과 만동묘(萬東廟)를 건립한 정황을 알리고 있다. 특히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선생의 사후, 그의 수제자인 수암(遂菴) 권상하(權尙夏) 선생에 의해 만동묘가 수립된 과정과 제향 경위 등에 대해 고증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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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기 >수원시

    영화도의 중심 영화역
    영화역은 정조 때에 양재역을 수원으로 이전한 후 영화역으로 이름을 고친 역으로, 한양에서 충청도로 이어지던 영화도를 관할하던 찰방역이었다. 영화역이 가지는 의미와 중요성으로 인해 사람들은 영화역을 모든 역 가운데 우두머리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역이 자리했던 수원 화성의 북문 밖은 여전히 서울과 수원을 오가는 주요한 교통요지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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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산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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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보은군

    보은의병 전투지 삼년산성
    삼년산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는 정미의병시기였다. 1907년 고종이 강제 퇴위당하고 군대가 해산되면서 해산군인이 대거 의병으로 합류하여 격렬한 항일전이 벌어졌다. 보은의병은 삼년산성을 근거지로 항일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1907년 8월 일본군의 공격을 받았다. 이로 인해 의병은 30여 명의 사상자와 소총 4자루를 빼앗기는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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