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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북 >단양군

    평강공주와 바보온달을 만날 수 있는 단양 온달 산성
    온달산성은 남한강변의 해발 427m의 성산에 축성된 둘레 683m, 높이 3m의 반월형 소규모 석축산성이다. 고구려 장군 온달이 실지 회복을 위해 결사의 서약과 각오로 출진하여 와서 전사한 아단성에 비정되는 산성으로, 고구려 평원왕(재위 559∼590)의 사위인 온달장군의 이야기가 이 지방에 전해오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신라 사이의 치열한 영유권 분쟁이 있던 곳으로 성안에서 삼국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제천 및 단양으로 가는 길을 단속하여 적을 막기 위해 요충에 쌓은 아주 견고한 금성철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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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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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경주와 밀양을 잇는 부산성
    663년(문무왕 3)에 쌓은 신라 산성으로 주사산성(朱砂山城)이라고도 한다. 주사산·오봉산·오로봉산·닭벼슬산이라고도 불리는 부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세 줄기의 골짜기를 따라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석축성이다. 골짜기 3곳을 감싸고 축성되어 있는데 체성 길이는 약 7.5k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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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골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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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북한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에 활약한 정봉수
    정봉수(鄭鳳壽, 1572~1645)는 후금군이 쳐들어오자 평안북도 용골산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적을 막고 백성들을 구하였다. 1627년 1월 8일 후금이 조선을 침략한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이해 1월부터 2월에 걸쳐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해서 활약했다. 이때 의병장 정봉수가 이끄는 의병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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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부여군

    백제도성 방위의 중요산성, 석성산성
    해발 200m의 파진산에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2개의 골짜기를 둘러싼 포곡식(包谷式) 외성 1,600m를 축조하고, 그 안에 테뫼식으로 주위 580m의 내성을 축조하였다. 6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으로 둘레 약 1,5㎞, 폭 약 5m, 높이 4m 정도로, 바깥쪽은 돌을 쌓아 올리고 안쪽은 흙을 파서 도랑(호)처럼 만들어 놓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산성은 부소산성에서 남으로 약 10km 떨어진 백제도성 방위의 중요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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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광주시

    세계가 인정한 산성도시, 남한산성
    남한산성은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기원은 672년 통일신라 문무왕 때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6년(인조 4)에 대대적으로 구축하였다.둘레가 12km에 이르며 산위에 도시가 있을 수 있을 만큼 넓은 분지이기 때문에 백성과 함께 임금과 조정이 대피할 수 있는 조선 왕실의 보장처(保障處)였다. 남한산성은 자연지세, 건축구조,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성곽과 산성도시는 모두 진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민속 경관 요소에 해당하는 제례, 불교 의식, 전통 음식과 가양주, 비석, 누정, 자연환경 등은 주민들이 대대로 전승하여 오고 있고 전체적으로 보호책을 마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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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양산시

    전쟁이 일어나면 가장 먼저 지키는 신기리 산성
    양산시의 중심부 북동쪽 해발 325.6m의 산성봉에 위치하는데 북서쪽으로는 산의 정상 약간 아래 부분을 둘러싸고 동남쪽 계곡을 포함하는 둘레 약 2.6km의 석축 복합식산성이다. 양산을 비롯하여 기장, 울산, 언양, 동래의 군민이 전쟁이 일어나면 들어가서 지키는 입보(入保)산성이다. 성황산성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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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양산시

    신기리 산성의 쌍둥이, 북부동 산성
    양산의 시가지를 발 밑에 두고 멀리 낙동강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해발 195m의 동산의 꼭대기 부근에 만들어진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신라 때 낙동강을 따라 수도 경주로 침입하려는 왜구를 막기 위해서 처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성곽과 성벽 모두 파괴되고 허물어진 상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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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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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고구려의 방어 산성인 덕진산성
    해발 85m인 야트막한 산 정상부에 축조되었으나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넓은 지역이 잘 조망된다. 동쪽으로는 초평도와 임진나루 일대, 남쪽으로는 수내나루와 문산읍 장산리 일대의 조망이 매우 용이하여 북진을 막고 남진에 필요한 교도부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에 매우 좋은 고구려 방어 산성이다. 둘레는 481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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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무주군

    장군들이 인정한 무주 적상산성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 위의 분지를 에워싼 대표적인 방어산성이다. 전체 길이 8,134m로 분지 주변의 능선을 감싸고 있는 포곡식 석성이다. 무주읍에서 남쪽으로 국도를 따라 약 10km쯤 거리에 이르면 적상면면사무소가 있고 그 동편의 험준한 해발 1,034m의 적상산에 있다. 해발 1,025m의 향로봉과 해발 1,034m의 기봉이 마주보며 주봉을 이루고 동쪽에는 분지가 발달하였다. 조선시대까지는 천험요새로서 산성을 축조하고 국가의 귀중한 사료들을 보장하는 최적지로서 산성과 수호군 승병들이 이곳을 지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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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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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괴산군

    유일한 특징을 갖고 있는 괴산 미륵산성
    해발 650.1m의 도명산에 위치하고 있어 일명 ‘도명산성’이라 불린다. 사방이 산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어 중앙부가 오목한 지형에 축조된 고로봉형의 대형 석축산성으로 전형적인 입보용 산성이다. 성벽의 전체 둘레는 5.1km로 인공으로 축조된 구간은 내성 2.7km, 외성 350m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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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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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강화와 서울을 지키는 요새, 김포 문수산성
    해발 376m의 문수산에 쌓은 문수산성은 1694년(숙종 20)에 축성된 석축 산성이다. 강화도와 연결되는 길목인 통진의 갑곶나루에 대한 군사적인 방비 필요성이 제기되어 산성을 쌓게 되었다. 산성의 둘레는 6,201m로 문수산 정상부와 해안 쪽으로 뻗은 능선을 이용한 남·북 성벽과 강화수로와 같은 방향으로 해안과 접하여 축조된 서성벽으로 나누어진다. 그 후 1866년(고종 3) 일어난 병인양요에서 프랑스군 120명이 9월 18일 문수산성을 공격해와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으며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해협의 입구를 지키며 수도 서울을 방호하던 요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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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돌로 일본군을 몰아낸 행주대첩
    1593년 1월 9일 평양성이 탈환되자 권율은 그의 군사의 수를 반으로 갈라 절도사 선거이로 하여금 양천강 언덕에 진을 치게 하고, 자신도 군사들과 함께 고양군 행주성산으로 옮겨 진을 쳤다. 약 3만 명의 적들이 들판을 뒤덮고 일시에 바로 돌격해 왔다. 우리 군사들은 활을 쏘고 돌을 던지며, 크고 작은 승자총통 및 진천뢰 등 각종 화기를 연달아 쏘았는데도 물러가지 않고, 부대를 나누어 번갈아 진격했다. 특히 행주산성에는 돌이 많았기 때문에 모든 군사들이 죽을 각오로 돌을 던져 왜적을 크게 무찌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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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전투를 이끈 권율의 행주대첩
    행주대첩은 한민족 4대첩의 하나로 여겨질 정도로 중요한 전투였다. 행주대첩의 승전이 있었기에 왜군은 한양 도성 함락을 포기하고 후퇴하였다. 행주산성을 지킨 군사들은 7부대로 나누어 끊임없이 진격해오는 왜군의 공격에 끝까지 맞섰다. 선조에게 승전보를 전한 신경희는 계속해 진격해오는 왜군을 마지막까지 방어한 것은 칼과 화살이 아니라 권율 장군의 독전이었다고 아뢰었다. 조선의 군사들은 권율의 독려에 힘입어 의지 하나로 10배가 넘는 왜군을 물리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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