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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의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신라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에 있는 서원이다. 1560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한 이정이 당시 황폐되어 있던 두 영웅의 묘소를 보고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서원이 만들어지고 사액을 받으면서 경주 지역의 선현인 설총과 최치원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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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꿈에 나타난 김유신 장군의 호통
    경주의 유림들이 서악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위패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예록』에는 김유신 위패를 빼자고 했다가 꿈에 김유신이 나와 호통을 듣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업(儒業)을 이루는 것은 문인과 무인의 신분에 있지 않고 충과 효를 실현하느냐에 달렸음을 보여주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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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유교를 들여와 공부하였다. 고구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는 유교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유학을 전했다. 신라인 중에서는 설총과 최치원이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우리나라 유교는 도학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훼철서원 중에는 설총과 최치원을 배향하는 서악서원과 무성서원이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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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사육신과 함께 배향된 생육신 남효온
    창절서원에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사육신이 죽음으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다했다면, 생육신은 살아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특히 남효온은 폐위된 단종의 생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사육신을 소개하는 『육신전』을 저술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무너진 도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기에 생육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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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단종의 장릉 옆에 있던 사육신의 사당, 육신사
    창절서원은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육신사를 모체로 하고 있다. 육신사는 원래 노산군의 묘역 옆에 있었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신위가 복원되고 묘역이 장릉으로 만들어지면서 육신사를 장릉 밖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임금과 신하는 일체이고 제사도 같다”라는 말에 따라 장릉 안에 계속 남아 있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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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중이 되어 산에 은둔한 천재 김시습
    사육신과 함께 창절서원에 배향된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이 ‘신동’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정에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재주를 감추고 잘 가르치라”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당대 유명한 천재였다. 하지만 21세가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한 김시습은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을 조롱하며 방랑자로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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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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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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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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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의 명재상들을 모신 용연서원
    용연서원은 이덕형과 조경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한 포천은 이덕형이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가 있는 곳이었고, 조경이 자란 곳이었다.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알려진 한음으로 오성인 이항복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었다. 용연서원이 서원훼철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당시 세운 이항복의 공이 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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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외교로 임진왜란의 공을 세운 한음 이덕형
    용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이덕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원사로 명나라에 가 파병을 성사시키고 명나라 장수와 함께 한양을 되찾았다. 전란 중에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관계와 상황을 조정하였고 전후에는 전란 수습에 힘을 다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내려온 후 은거해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 용연서원은 임진왜란의 전란 중에 보여준 이덕형의 리더십과 업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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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기로소에 들어간 강직하고 바른 신하, 조경
    이덕형과 함께 배향된 조경은 유교의 가치관에 따라 출처의 의리를 보인 강직한 문신이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언관직을 주로 맡았던 조경은 인조와 효종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했다가 유배되기도 하였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도 바른말을 감추지 않았던 조경은 임금의 신임을 잃지 않아 만년에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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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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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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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산림처사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간 개암 강익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하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해 자기를 수양하는 것을 군자 됨의 하나로 여겼다.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을 은일지사 혹은 산림처사라 하는데, 이들은 관직을 얻어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마다하고 자신을 수향하는 위기지학에 몰두하였다. 개암 강익도 고향 함양에서 정여창의 도를 후대에 전하며 성리학에만 뜻을 두고 산림처사로 지냈다. 당시 영남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남명 조식이 은일지사로 지역의 학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강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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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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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예(禮)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고증한 김장생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성리학적 이해가 깊어진 조선의 유학은 인간의 마음을 형식적으로 드러내는 예학의 이론과 실천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문란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예는 천리와 인륜의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왕실은 물론 모든 백성이 가례를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을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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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학파 예학의 체계를 완성한 김집
    김집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그는 사계 김장생을 학문적으로 계승하여 일상 속에서 예를 실천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김장생을 비롯해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등과 함께 기호 예학의 체계를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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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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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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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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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워진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조광조는 사화로 사사된 이후 포은 정몽주와 함께 배향되어 오다가 관작이 회복되면서 선영 근처의 서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조광조를 배향하는 서원 설립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도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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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병산서원 만대루와 자웅을 겨루는,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無邊樓)는 건축미가 뛰어난 병산서원 만대루와 견줄 수 있는 누각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정면 5칸, 측면 2칸 단층처럼 보인다. 옥산서원의 네 건물이 서로 처마를 맞대어 양 끝 2칸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무변루는 다른 누각과 달리 숙식을 할 수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누각의 대청 안쪽에 걸려있는 ‘무변루’ 편액은 석봉 한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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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한 시대의 사림(士林)들이 겪은 화,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조선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인간의 도리와 의리, 실천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기묘사화로 올곧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성리학의 가르침과 실천을 경시하거나 도외시하였다. 조광조의 신원회복과 서원 건립을 통해 조선의 선비들이 바로 세우고자 했던 것은 조광조가 상징하는 유교의 정신과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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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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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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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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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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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광주 포충사
    광주광역시의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끈 제봉 고경명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고경명은 문과에 장원급제해 관료 생활을 하다가 파직되어 광주에 내려와 있다가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진군하였다. 비록 승전한 전투는 없었지만, 고경명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의병이 그렇듯 고경명도 병법을 알지 못하고 무예를 익히지 않은 선비에 불과했지만,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의병들을 모으고 그들을 이끌어 전장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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