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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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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고 자란 곳 장성
    필암서원이 있는 장성은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1590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672년에 지금의 위치에 이건 되었데, 대원군 대의 서원훼철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모두 피해 옛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인후의 생가와 그가 머물던 백화정이 있는데 김인후와 인종과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배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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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김인후와 함께 배향된 제자이자 사위, 양자징
    필암서원에 함께 배향된 양자징은 김인후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다가 나중에 사위가 된 인물이다. 양자징의 부친 양산보는 한양에서 조광조의 제자로 있다가 1년 후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은둔하였다. 김인후는 화순에 유배와 있는 최산두에게 배우러 가는 길에 항상 소쇄원을 들러 쉬어가면서 양산보와 교유하였다. 그의 아들인 양자징은 김인후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다가 후에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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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사육신과 함께 배향된 생육신 남효온
    창절서원에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사육신이 죽음으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다했다면, 생육신은 살아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특히 남효온은 폐위된 단종의 생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사육신을 소개하는 『육신전』을 저술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무너진 도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기에 생육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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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단종의 장릉 옆에 있던 사육신의 사당, 육신사
    창절서원은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육신사를 모체로 하고 있다. 육신사는 원래 노산군의 묘역 옆에 있었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신위가 복원되고 묘역이 장릉으로 만들어지면서 육신사를 장릉 밖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임금과 신하는 일체이고 제사도 같다”라는 말에 따라 장릉 안에 계속 남아 있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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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중이 되어 산에 은둔한 천재 김시습
    사육신과 함께 창절서원에 배향된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이 ‘신동’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정에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재주를 감추고 잘 가르치라”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당대 유명한 천재였다. 하지만 21세가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한 김시습은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을 조롱하며 방랑자로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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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진짜 유학자’의 모범이 된 중봉 조헌
    주자성리학의 다른 이름은 도학(道學)이다. 성리학의 가르침이 ‘인간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깨우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학은 여기에 의리와 절의, 그리고 실천이 더 강조된다. 의리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의’만을 생각하며 전장에 나선 중봉은 유학자들 사이에서 도의를 실천한 ‘진유(眞儒)’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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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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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중봉 조헌의 비범한 이야기
    중봉 조헌의 비범한 언행에 대해 내려오는 야사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고관이 떠들썩하게 행차할 때, 조헌 만이 유일하게 아버님의 분부를 따라 책 읽는 것에 집중하여 고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또한 조헌이 자신의 앞에서 의붓어머니를 질책하는 외할머니의 말을 듣고 외할머니를 멀리하여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조헌이 어른이 되어 왜군이 침략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하도록 한 이야기들은 조헌의 비범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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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워진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조광조는 사화로 사사된 이후 포은 정몽주와 함께 배향되어 오다가 관작이 회복되면서 선영 근처의 서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조광조를 배향하는 서원 설립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도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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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병산서원 만대루와 자웅을 겨루는,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無邊樓)는 건축미가 뛰어난 병산서원 만대루와 견줄 수 있는 누각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정면 5칸, 측면 2칸 단층처럼 보인다. 옥산서원의 네 건물이 서로 처마를 맞대어 양 끝 2칸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무변루는 다른 누각과 달리 숙식을 할 수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누각의 대청 안쪽에 걸려있는 ‘무변루’ 편액은 석봉 한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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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한 시대의 사림(士林)들이 겪은 화,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조선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인간의 도리와 의리, 실천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기묘사화로 올곧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성리학의 가르침과 실천을 경시하거나 도외시하였다. 조광조의 신원회복과 서원 건립을 통해 조선의 선비들이 바로 세우고자 했던 것은 조광조가 상징하는 유교의 정신과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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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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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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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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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의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신라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에 있는 서원이다. 1560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한 이정이 당시 황폐되어 있던 두 영웅의 묘소를 보고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서원이 만들어지고 사액을 받으면서 경주 지역의 선현인 설총과 최치원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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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꿈에 나타난 김유신 장군의 호통
    경주의 유림들이 서악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위패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예록』에는 김유신 위패를 빼자고 했다가 꿈에 김유신이 나와 호통을 듣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업(儒業)을 이루는 것은 문인과 무인의 신분에 있지 않고 충과 효를 실현하느냐에 달렸음을 보여주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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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유교를 들여와 공부하였다. 고구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는 유교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유학을 전했다. 신라인 중에서는 설총과 최치원이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우리나라 유교는 도학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훼철서원 중에는 설총과 최치원을 배향하는 서악서원과 무성서원이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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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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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예(禮)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고증한 김장생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성리학적 이해가 깊어진 조선의 유학은 인간의 마음을 형식적으로 드러내는 예학의 이론과 실천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문란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예는 천리와 인륜의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왕실은 물론 모든 백성이 가례를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을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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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호학파 예학의 체계를 완성한 김집
    김집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그는 사계 김장생을 학문적으로 계승하여 일상 속에서 예를 실천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김장생을 비롯해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등과 함께 기호 예학의 체계를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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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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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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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김해시

    임진왜란 최초 의병의 얼을 기린 사충단
    사충단은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김해부성을 지키다 전사한 송빈‧이대형‧김득기‧류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1871년에 왕명으로 건립한 묘단이다. 이들은 김해부에 일본군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김해성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김해성에 들어간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이었다. 이미 김해부사는 성을 버리고 도망간 후였지만 4명의 의병장은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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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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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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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산림처사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간 개암 강익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하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해 자기를 수양하는 것을 군자 됨의 하나로 여겼다.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을 은일지사 혹은 산림처사라 하는데, 이들은 관직을 얻어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마다하고 자신을 수향하는 위기지학에 몰두하였다. 개암 강익도 고향 함양에서 정여창의 도를 후대에 전하며 성리학에만 뜻을 두고 산림처사로 지냈다. 당시 영남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남명 조식이 은일지사로 지역의 학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강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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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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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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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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