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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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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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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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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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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태산에 유풍을 일으킨 현자들의 발자취
    대부분의 서원이 민가와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지역민이 주축이 돼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태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수령으로 왔던 최치원과 신잠의 공덕을 기려 생사당을 지었고 둘을 함께 합사해 ‘태산사’라 이름하였다. 무성서원은 태산사가 지역민의 향학당 자리로 옮겨져 서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성서원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지역민과 수령들이 서원을 통해 어떻게 유교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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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한말 호남의병 의병장 임병찬 창의기념비
    임병찬창의유적지는 한말에 임병찬이 호남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훈련하던 곳이다. 임병찬은 이곳에서 흥학제라는 학당을 지어 놓고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단순한 학문만을 공부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예를 익히게 하여 후일을 대비하였다. 현재는 유적의 잔재와 후손들이 세운 기념비 등만 남아있지만 의병들의 의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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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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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의 화근이라 불린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 『소학』
    『소학』은 『대학』과 함께 유교의 필독서이다. 8, 9세의 아동들이 읽는 기초서적이지만 오륜을 바탕으로 가정과 공동체에서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주자와 공자는 『소학』을 학문의 시작으로 삼았다. 『소학』으로 인간의 도리와 의리를 깨달은 선비들은 왕실과 조정, 백성들이 행하는 고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훈구파와 왕권의 견제를 받아 사화에 희생양이 되곤 하였다. 사화로 꺼질 것 같던 『소학』의 불꽃은 후대 유학자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사림이 정치적 주도권을 갖게 되는 16세기 후반에는 누구나 즐겨보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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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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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
    안향은 경상북도 흥주(興州: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 출신이다. 호는 회헌(晦軒)이고 초명은 안유(安裕)였으나 뒤에 안향(安珦)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글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안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회헌이라는 호는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고려 후기 정치적 불안정과 몽골의 침략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부패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가중되었다. 안향은 이러한 때에 불교보다 한층 주지적인 특성을 지닌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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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고려 시대 유학을 진흥시킨 안향
    소수서원은 고려 시대 문신인 안향을 배향하고 있다. 안향은 원나라에서 성리학 서적을 들여와 이를 탐독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무신 집권기를 이은 원나라 간섭기로, 안향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국학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해 고려를 문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안향이 들여온 송나라의 성리학은 이후 조선이 세워지는 토대가 되었고 교육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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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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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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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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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룬 약봉 서성 이야기
    약봉 서성의 대구 서씨는 문과 합격자 10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6대에 걸쳐 최고위직 관리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서성은 3조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대구 서씨가 포천 선단동에 입향 한것은 서고(1489-1550)의 묘와 아들 서해 (1537-1559), 손자인 서성(1558-1631) 3대의 묘를 쓰면서 포천 설운동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후 5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서성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맹인(盲人)이면서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자식교육을 위한 결단력으로 대구 서씨 가문을 조선 최고의 인재 산실로 만든 약봉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의 자녀 교육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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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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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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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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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를 올리고 죽은 오두인의 고향에 세워진 덕봉서원
    덕봉서원은 숙종 대의 문신인 오두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오두인은 장희빈을 왕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하려는 숙종의 명을 거스르는 상소를 올렸다. 부모가 화평하지 않으면 자식이 화평할 수 없듯 선비들과 백성들이 모두 슬퍼하니 사심을 버리고 인심과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유교적 논리로 임금의 명에 반대한 것이다. 상소를 보고 격노한 숙종은 상소문을 작성한 이들을 불러 가혹한 심문을 하였고, 다음날 유배를 가던 길에 오두인은 숨을 거두었다. 서원과 멀리 않은 곳에 오두인의 종갓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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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에 진노한 숙종의 친국
    오두인을 비롯해 80명이 함께 올린 상소를 보고 숙종은 격노한다. 왕후의 폐출이 부당하다는 상소는 자신을 폐출시키려는 배후의 짓이라는 논리였다. 숙종은 친히 국문하면서 그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다. 오두인은 배후가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럴수록 국문은 더욱 가혹해졌다. 제신들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국문은 밤새 계속되었다. 다음날 유배길에 생을 마감한 오두인은 절의를 지키다 죽은 사육신처럼 임금에게 충심 어린 간언을 하다 형벌의 화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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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학으로 도와 의를 세우고자 한 예송논쟁
    17세기는 병자호란 이후 동아시아의 질서와 조선 내부의 사회질서가 혼란한 시기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무너진 유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예법으로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유교 사상을 기초한 예법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 사림들 간의 견해차가 생기면서 서인 세력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김장생과 김집으로부터 예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운 송시열은 유교의 예법을 임금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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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어명으로 창건된 대로서원
    대로사는 서원 건립이 제한되어 있던 시기에 정조의 명으로 특별히 설립되었다. 대로(大老)는 덕이 높고 학식이 풍부하여 존경할 만한 노인에게 붙이는 존호였는데, 실제로 송시열과 이하응만 이 존칭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대로’라는 이름에도 송시열에 대한 존중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스스로를 ‘대로’라 칭하면서 대로사는 강한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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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과 율곡학의 정통을 세운 우암 송시열
    동방의 주자로 비유되는 송시열은 어린 시절부터 ‘주자는 후대의 공자요, 율곡은 후대의 주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주자와 율곡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이 있었던 송시열은 주자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배격하는 한편 율곡의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퇴계학파와 함께 율곡학파가 조선의 유학계에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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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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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철학의 오래된 미래, 추곡 정제두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시흥시

    한국 철학의 오래된 미래, 추곡 정제두
    경기도 시흥에 남겨진 유학자 추곡 정제두의 자취와 함께 양명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양명학은 이(理)를 중요시하던 주류 성리학과 달리 마음(心)의 작용을 우선시한다. 정제두는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이 이론적 학문에 치우쳐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실천적 지식을 강조하는 양명학을 주장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