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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도천서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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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산청군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
    문익점은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구해 온 인물이다. 문익점이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목화씨를 들여왔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한반도에 정착시켜 대량으로 재배하고, 실을 잣는 방법을 보급하여 면직 생산에 기여했다는 것, 그로부터 헐벗은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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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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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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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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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여행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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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을 세운 양주목사 남언경
    도봉서원을 건립한 남언경은 조선시대 최초의 양명학자로 평가되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남언경은 양주목사로 부임했을 당시 도봉산 자락에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광조를 모셨다. 이후 사액을 받기위해 조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를 만나 국정 운영에 대한 시무를 건의하기도 했다. 남언경은 그가 살고 있던 조선을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도봉서원의 건립은 그러한 실천의 갈래로 유학의 이상향을 지역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양주, 양평, 가평, 여주 등 경기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남언경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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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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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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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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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의 명재상들을 모신 용연서원
    용연서원은 이덕형과 조경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한 포천은 이덕형이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가 있는 곳이었고, 조경이 자란 곳이었다.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알려진 한음으로 오성인 이항복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었다. 용연서원이 서원훼철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당시 세운 이항복의 공이 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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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외교로 임진왜란의 공을 세운 한음 이덕형
    용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이덕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원사로 명나라에 가 파병을 성사시키고 명나라 장수와 함께 한양을 되찾았다. 전란 중에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관계와 상황을 조정하였고 전후에는 전란 수습에 힘을 다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내려온 후 은거해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 용연서원은 임진왜란의 전란 중에 보여준 이덕형의 리더십과 업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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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기로소에 들어간 강직하고 바른 신하, 조경
    이덕형과 함께 배향된 조경은 유교의 가치관에 따라 출처의 의리를 보인 강직한 문신이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언관직을 주로 맡았던 조경은 인조와 효종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했다가 유배되기도 하였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도 바른말을 감추지 않았던 조경은 임금의 신임을 잃지 않아 만년에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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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가족, 친구, 사제간의 유교적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돈암서원과 함께 충청도 지역에서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로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조광조, 서경덕, 이황, 김인후, 기대승, 이이, 성혼, 송익필 등의 영향을 받은 기호유학은 경기도와 호남,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영남유학과 구분되는 성리논변을 만들어간다.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1) 윤황과 윤선거를 배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1682년(숙종 8) 윤문거가, 1723년(경종 3) 윤증이 추가 배향되었다. 노강서원은 가족, 친구, 사제관계로 이어진 기호유학의 인맥도를 보여주는 서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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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부친의 강도 사건으로 벼슬에 나가지 않은 윤증
    윤선거와 윤증은 출사하지 않고 논산에 은둔해 평생을 살았다. 두 부자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강도 사건’ 때문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피난 갔다가 강화도가 함락되면 자결을 하자는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문제였다. 자결을 한 사람 중에 윤선거의 부인이자 윤증의 어머니인 이씨도 포함되어 있어 강화도 사건은 두 부자에게 상처이자 큰 멍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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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에게 권면하는 친구 간의 도리 붕우책선
    유교문화에는 책선이 있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면하고 충고하는 것이다. 윤선거가 친구인 송시열에게 남긴 마지막 책선이 ‘기유의서’이다. 아들 윤증이 부친의 편지를 스승인 송시열에게 전하면서 회니시비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충고가 노소붕당의 쟁점이 될 정도로 조선 시대 책선은 선비들의 친구관계에서 중요한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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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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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禮)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고증한 김장생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성리학적 이해가 깊어진 조선의 유학은 인간의 마음을 형식적으로 드러내는 예학의 이론과 실천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문란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예는 천리와 인륜의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왕실은 물론 모든 백성이 가례를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을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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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기호학파 예학의 체계를 완성한 김집
    김집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그는 사계 김장생을 학문적으로 계승하여 일상 속에서 예를 실천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김장생을 비롯해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등과 함께 기호 예학의 체계를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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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조선 선비들이 인정한 명재상 황희 정승의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조선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황희는 고려의 문신이었지만 조선이 개국하면서 태조를 비롯해 태종과 세종 재위기에 재상의 위치에 있으면서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황희는 임금에게뿐 아니라 선비들과 백성들도 인정하는 명재상이었다. 임금의 명에 복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도리를 다하도록 간언을 잘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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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서는 시비를 가리지 않은 황희
    조정에서 황희는 크고 작은 일에 시비를 가리고 간언을 하였지만, 집안에서는 관대하고 시비조차 가리지 않았다. 황희가 집안의 노비와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가 신분제 사회였음을 감안할 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관대하였다. 이런 황희의 이야기들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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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은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교적 이상 정치에서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은 자로서, 이때 임금을 받든다는 것은 임금을 바르게 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간언하는 것이었다. 유교적 관점에서 황희 정승은 왕권을 견제하는 신권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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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유학자’의 모범이 된 중봉 조헌
    주자성리학의 다른 이름은 도학(道學)이다. 성리학의 가르침이 ‘인간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깨우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학은 여기에 의리와 절의, 그리고 실천이 더 강조된다. 의리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의’만을 생각하며 전장에 나선 중봉은 유학자들 사이에서 도의를 실천한 ‘진유(眞儒)’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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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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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중봉 조헌의 비범한 이야기
    중봉 조헌의 비범한 언행에 대해 내려오는 야사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고관이 떠들썩하게 행차할 때, 조헌 만이 유일하게 아버님의 분부를 따라 책 읽는 것에 집중하여 고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또한 조헌이 자신의 앞에서 의붓어머니를 질책하는 외할머니의 말을 듣고 외할머니를 멀리하여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조헌이 어른이 되어 왜군이 침략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하도록 한 이야기들은 조헌의 비범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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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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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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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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