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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진짜 유학자’의 모범이 된 중봉 조헌
    주자성리학의 다른 이름은 도학(道學)이다. 성리학의 가르침이 ‘인간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깨우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학은 여기에 의리와 절의, 그리고 실천이 더 강조된다. 의리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의’만을 생각하며 전장에 나선 중봉은 유학자들 사이에서 도의를 실천한 ‘진유(眞儒)’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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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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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중봉 조헌의 비범한 이야기
    중봉 조헌의 비범한 언행에 대해 내려오는 야사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고관이 떠들썩하게 행차할 때, 조헌 만이 유일하게 아버님의 분부를 따라 책 읽는 것에 집중하여 고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또한 조헌이 자신의 앞에서 의붓어머니를 질책하는 외할머니의 말을 듣고 외할머니를 멀리하여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조헌이 어른이 되어 왜군이 침략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하도록 한 이야기들은 조헌의 비범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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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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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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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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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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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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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구미시

    절의의 상징이 된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조선시대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의 「충신도」에 그려진 이야기는 불사이군의 충절의 상징인 야은 길재를 그린 것이다. 고려 말의 문신이었던 길재는 정국이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둔하였다. 조선조에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금오산 아래에서 평생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쳤다. 군신의리(君臣義理)의 상징이 된 길재의 절의 사상과 실천은 사림들의 학풍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조광조에게까지 이어져 조선 도통의 계보를 이루는 중요한 한 지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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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노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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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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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박태보, 임금에게 도리를 간언하다
    박태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상소였다. 상소에 참여한 86명의 관료를 대표해 박태보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기록하였다. 비록 임금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리하면 아니 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임금의 명령을 반대하는 목숨을 건 상소였지만 임금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게 하지 않으려는 신하의 도리로 간언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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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이야기로 기록되고 기억된 박태보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은 기사환국을 배경으로 일어난 박태보의 행적과 추승을 36편의 기사로 기록한 것이다. 실록을 볼 수 없었던 당대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기사민절록」을 통해 박태보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박태보의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본으로 만들어져 널리 읽히면서 한 선비의 충절이 백성들과 임금, 선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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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의연한 정신
    상소를 아뢰고 나자 혹독한 국문이 시작되었다. 숙종은 왕후의 폐서인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역적으로 여기며 배후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박태보는 중전의 편에서 절의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미를 소박하려는 아비를 막으려는 자식 된 도리로 상소를 올린 것이라 말한다. 형신이 가혹해졌지만, 박태보의 대답은 의연하였다. 마음의 중심에 거짓됨이 없기 때문이었고 상소를 올리는 것이 신하 된 도리, 즉 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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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워진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조광조는 사화로 사사된 이후 포은 정몽주와 함께 배향되어 오다가 관작이 회복되면서 선영 근처의 서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조광조를 배향하는 서원 설립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도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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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병산서원 만대루와 자웅을 겨루는,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無邊樓)는 건축미가 뛰어난 병산서원 만대루와 견줄 수 있는 누각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정면 5칸, 측면 2칸 단층처럼 보인다. 옥산서원의 네 건물이 서로 처마를 맞대어 양 끝 2칸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무변루는 다른 누각과 달리 숙식을 할 수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누각의 대청 안쪽에 걸려있는 ‘무변루’ 편액은 석봉 한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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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한 시대의 사림(士林)들이 겪은 화,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조선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인간의 도리와 의리, 실천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기묘사화로 올곧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성리학의 가르침과 실천을 경시하거나 도외시하였다. 조광조의 신원회복과 서원 건립을 통해 조선의 선비들이 바로 세우고자 했던 것은 조광조가 상징하는 유교의 정신과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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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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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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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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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의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신라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에 있는 서원이다. 1560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한 이정이 당시 황폐되어 있던 두 영웅의 묘소를 보고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서원이 만들어지고 사액을 받으면서 경주 지역의 선현인 설총과 최치원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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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에 나타난 김유신 장군의 호통
    경주의 유림들이 서악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위패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예록』에는 김유신 위패를 빼자고 했다가 꿈에 김유신이 나와 호통을 듣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업(儒業)을 이루는 것은 문인과 무인의 신분에 있지 않고 충과 효를 실현하느냐에 달렸음을 보여주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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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유교를 들여와 공부하였다. 고구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는 유교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유학을 전했다. 신라인 중에서는 설총과 최치원이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우리나라 유교는 도학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훼철서원 중에는 설총과 최치원을 배향하는 서악서원과 무성서원이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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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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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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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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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룬 약봉 서성 이야기
    약봉 서성의 대구 서씨는 문과 합격자 10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6대에 걸쳐 최고위직 관리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서성은 3조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대구 서씨가 포천 선단동에 입향 한것은 서고(1489-1550)의 묘와 아들 서해 (1537-1559), 손자인 서성(1558-1631) 3대의 묘를 쓰면서 포천 설운동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후 5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서성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맹인(盲人)이면서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자식교육을 위한 결단력으로 대구 서씨 가문을 조선 최고의 인재 산실로 만든 약봉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의 자녀 교육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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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사육신과 함께 배향된 생육신 남효온
    창절서원에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사육신이 죽음으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다했다면, 생육신은 살아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특히 남효온은 폐위된 단종의 생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사육신을 소개하는 『육신전』을 저술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무너진 도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기에 생육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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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종의 장릉 옆에 있던 사육신의 사당, 육신사
    창절서원은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육신사를 모체로 하고 있다. 육신사는 원래 노산군의 묘역 옆에 있었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신위가 복원되고 묘역이 장릉으로 만들어지면서 육신사를 장릉 밖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임금과 신하는 일체이고 제사도 같다”라는 말에 따라 장릉 안에 계속 남아 있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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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이 되어 산에 은둔한 천재 김시습
    사육신과 함께 창절서원에 배향된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이 ‘신동’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정에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재주를 감추고 잘 가르치라”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당대 유명한 천재였다. 하지만 21세가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한 김시습은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을 조롱하며 방랑자로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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