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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전라도 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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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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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유교적 향촌문화를 만들어간 태인의 선비들
    무성서원은 장성의 필암서원, 광주의 포충사와 함께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 무성서원에는 7명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데 최치원과 신잠은 이곳에 수령으로 와 선정을 베푼 외지인이고 이를 제외한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은 모두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선비들이다. 정극인이 향학당을 만들어 강학을 하고 향약을 운영해 향촌문화를 이끌었다면 송세림은 향학당을 정비해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전라도 유생 200여 명이 서원의 사액을 청한 것도 향촌문화에 기여한 이들의 공헌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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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주시

    불을 밝히고 손을 씻으며 제향(祭享)을 준비하다, 소수서원 정료대·관세대
    소수서원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원이다. 처음에는 백운동 서원으로 설립되었으나 신광한에 의해 소수서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명종이 직접 “소수서원”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기도 하였다. 지난 2018년 7월에는 소수서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에 남아있는 정료대와 관세대는 제향을 하기 전 불을 밝히고, 손을 씻는 곳으로 서원에서 머물며 공부했던 옛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이 담겨있는 석조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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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에서의 다짐. 도봉서원 각석군
    1573년에 건립된 도봉서원은 그 주변 각석군과 함께 2009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도봉서원은 양주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조광조는 당시 모든 사림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도봉서원의 위상은 대단하였다. 도봉서원으로 들어서는 도봉산 길목에는 이곳에 출입했던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남겨져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글씨는 모두 11개로 도봉서원터를 중심으로 계곡 700m 내에 산재해 있다. 이 글씨들은 17~18세기에 주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사람들이 도봉산과 도봉서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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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시끌벅적한 먹거리 골목 끝에서 만나는 선비, 행주서원지
    행주서원은 권율 장군(1537~1599)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헌종 8년에 세운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1985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된 뒤 점차 복원되는 중이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매년 제례의식과 체험 수업으로 시민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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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노량진 사육신 사당 옆에 세워졌던 사충신의 사당,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원래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경종 재위기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시킨 노론의 사대신(四大臣)이 배향되어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즉위해 영조가 되면서 충신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하지만 1년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경종에 대한 역신으로 간주되어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이후 다시 설립된다. 충신에서 역신으로, 그리고 다시 충신이 되어 서원에 배향된 이들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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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임금이 규정한 군신분의(君臣分義)
    군신분의(君臣分義)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움’을 요구하는 군신 간의 윤리로, 공자의 ‘군신지의(君臣之義)’, 맹자의 ‘군신유의(君臣有義)’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붕당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탕평책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영조는 신하들이 충역 논란을 그만두고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라고 군신분의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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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사대신이 겪은 두 번의 옥사, 신임옥사
    사충서원은 창건 당시 사육신묘 옆에 세워졌다.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죽은 것처럼 사대신도 연잉군을 위해 죽은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대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주도하다가 역신으로 몰려 신축옥사를 겪었고, 이후 역모 사건에 연루된 임인옥사로 처형을 당하였다. 경종 재위기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운 사대신을 역모죄로 단죄한 두 개의 옥사를 역사에서는 신임옥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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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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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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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지원한 김성일의 안동 임천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에 있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은 2010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을 추모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임천(臨川)이라 사액 되어서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ᄒᆊ철되었다가 1908년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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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영천지역 의병들을 기리는 고천서원
    고천서원(古川書院)은 2003년 8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절한 10명의 의사를 기리기 위해서 1705년(숙종 31)에 건립하였다. 이 서원은 그 후 지방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너무 많은 서원이 생겨 그 폐단이 생기자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고천서원도 철거 되었다. 1940년 다시 건립하고, 1949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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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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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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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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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의 명재상들을 모신 용연서원
    용연서원은 이덕형과 조경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한 포천은 이덕형이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가 있는 곳이었고, 조경이 자란 곳이었다.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알려진 한음으로 오성인 이항복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었다. 용연서원이 서원훼철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당시 세운 이항복의 공이 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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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로 임진왜란의 공을 세운 한음 이덕형
    용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이덕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원사로 명나라에 가 파병을 성사시키고 명나라 장수와 함께 한양을 되찾았다. 전란 중에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관계와 상황을 조정하였고 전후에는 전란 수습에 힘을 다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내려온 후 은거해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 용연서원은 임진왜란의 전란 중에 보여준 이덕형의 리더십과 업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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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로소에 들어간 강직하고 바른 신하, 조경
    이덕형과 함께 배향된 조경은 유교의 가치관에 따라 출처의 의리를 보인 강직한 문신이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언관직을 주로 맡았던 조경은 인조와 효종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했다가 유배되기도 하였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도 바른말을 감추지 않았던 조경은 임금의 신임을 잃지 않아 만년에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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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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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Pick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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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철학의 오래된 미래, 추곡 정제두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시흥시

    한국 철학의 오래된 미래, 추곡 정제두
    경기도 시흥에 남겨진 유학자 추곡 정제두의 자취와 함께 양명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양명학은 이(理)를 중요시하던 주류 성리학과 달리 마음(心)의 작용을 우선시한다. 정제두는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이 이론적 학문에 치우쳐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실천적 지식을 강조하는 양명학을 주장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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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소를 올리고 죽은 오두인의 고향에 세워진 덕봉서원
    덕봉서원은 숙종 대의 문신인 오두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오두인은 장희빈을 왕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하려는 숙종의 명을 거스르는 상소를 올렸다. 부모가 화평하지 않으면 자식이 화평할 수 없듯 선비들과 백성들이 모두 슬퍼하니 사심을 버리고 인심과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유교적 논리로 임금의 명에 반대한 것이다. 상소를 보고 격노한 숙종은 상소문을 작성한 이들을 불러 가혹한 심문을 하였고, 다음날 유배를 가던 길에 오두인은 숨을 거두었다. 서원과 멀리 않은 곳에 오두인의 종갓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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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에 진노한 숙종의 친국
    오두인을 비롯해 80명이 함께 올린 상소를 보고 숙종은 격노한다. 왕후의 폐출이 부당하다는 상소는 자신을 폐출시키려는 배후의 짓이라는 논리였다. 숙종은 친히 국문하면서 그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다. 오두인은 배후가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럴수록 국문은 더욱 가혹해졌다. 제신들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국문은 밤새 계속되었다. 다음날 유배길에 생을 마감한 오두인은 절의를 지키다 죽은 사육신처럼 임금에게 충심 어린 간언을 하다 형벌의 화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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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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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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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신라 유학의 시작이자 우리나라 유학의 시작, 설총
    중국의 유학은 원시유학, 한당유학, 주자성리학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한당유학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통일신라 시대 인물이 설총과 최치원이다. 설총은 한당의 유교경전을 우리나라 방언인 ‘이두’로 표기해 사람들이 경전의 한문을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표기가 실제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았고 다만 역사서에 설총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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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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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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