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태그검색

태그검색

#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인기태그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조선 선비들이 인정한 명재상 황희 정승의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조선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황희는 고려의 문신이었지만 조선이 개국하면서 태조를 비롯해 태종과 세종 재위기에 재상의 위치에 있으면서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황희는 임금에게뿐 아니라 선비들과 백성들도 인정하는 명재상이었다. 임금의 명에 복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도리를 다하도록 간언을 잘하였기 때문이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집안에서는 시비를 가리지 않은 황희
    조정에서 황희는 크고 작은 일에 시비를 가리고 간언을 하였지만, 집안에서는 관대하고 시비조차 가리지 않았다. 황희가 집안의 노비와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가 신분제 사회였음을 감안할 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관대하였다. 이런 황희의 이야기들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대신은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교적 이상 정치에서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은 자로서, 이때 임금을 받든다는 것은 임금을 바르게 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간언하는 것이었다. 유교적 관점에서 황희 정승은 왕권을 견제하는 신권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벽진서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전라도3대 비훼철서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광주 >남구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광주 포충사
    광주광역시의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끈 제봉 고경명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고경명은 문과에 장원급제해 관료 생활을 하다가 파직되어 광주에 내려와 있다가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진군하였다. 비록 승전한 전투는 없었지만, 고경명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의병이 그렇듯 고경명도 병법을 알지 못하고 무예를 익히지 않은 선비에 불과했지만,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의병들을 모으고 그들을 이끌어 전장에 나갔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서원철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지원한 김성일의 안동 임천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에 있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은 2010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을 추모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임천(臨川)이라 사액 되어서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ᄒᆊ철되었다가 1908년 다시 지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영천지역 의병들을 기리는 고천서원
    고천서원(古川書院)은 2003년 8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절한 10명의 의사를 기리기 위해서 1705년(숙종 31)에 건립하였다. 이 서원은 그 후 지방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너무 많은 서원이 생겨 그 폐단이 생기자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고천서원도 철거 되었다. 1940년 다시 건립하고, 1949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룬 약봉 서성 이야기
    약봉 서성의 대구 서씨는 문과 합격자 105명, 3대 정승에 이어 3대 대제학 등 6대에 걸쳐 최고위직 관리를 배출한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이다. 서성은 3조 판서 등 요직을 거쳤고 조선 최고의 명문 가문을 이루었다. 대구 서씨가 포천 선단동에 입향 한것은 서고(1489-1550)의 묘와 아들 서해 (1537-1559), 손자인 서성(1558-1631) 3대의 묘를 쓰면서 포천 설운동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이후 500년 가까이 세거하고 있다. 서성의 어머니 이씨 부인은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맹인(盲人)이면서도 시대를 보는 안목과 자식교육을 위한 결단력으로 대구 서씨 가문을 조선 최고의 인재 산실로 만든 약봉의 어머니 고성 이씨 부인의 자녀 교육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서약서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1건)
자세히보기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신라 유학의 시작이자 우리나라 유학의 시작, 설총
    중국의 유학은 원시유학, 한당유학, 주자성리학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한당유학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통일신라 시대 인물이 설총과 최치원이다. 설총은 한당의 유교경전을 우리나라 방언인 ‘이두’로 표기해 사람들이 경전의 한문을 읽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하였다. 표기가 실제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기록은 전해지지 않았고 다만 역사서에 설총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
    안향은 경상북도 흥주(興州: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 출신이다. 호는 회헌(晦軒)이고 초명은 안유(安裕)였으나 뒤에 안향(安珦)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글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안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회헌이라는 호는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고려 후기 정치적 불안정과 몽골의 침략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부패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가중되었다. 안향은 이러한 때에 불교보다 한층 주지적인 특성을 지닌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고려 시대 유학을 진흥시킨 안향
    소수서원은 고려 시대 문신인 안향을 배향하고 있다. 안향은 원나라에서 성리학 서적을 들여와 이를 탐독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무신 집권기를 이은 원나라 간섭기로, 안향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국학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해 고려를 문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안향이 들여온 송나라의 성리학은 이후 조선이 세워지는 토대가 되었고 교육의 근간이 되었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산림처사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간 개암 강익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하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해 자기를 수양하는 것을 군자 됨의 하나로 여겼다.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을 은일지사 혹은 산림처사라 하는데, 이들은 관직을 얻어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마다하고 자신을 수향하는 위기지학에 몰두하였다. 개암 강익도 고향 함양에서 정여창의 도를 후대에 전하며 성리학에만 뜻을 두고 산림처사로 지냈다. 당시 영남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남명 조식이 은일지사로 지역의 학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강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 테마 : >
    • 이야기주제 : >
    • 관련문화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