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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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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대전 >서구

    대전 유림을 대표하는 권득기와 권시의 도산서원 사적비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에는 도산서원 사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도산서원은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 1570~1622) 선생과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權諰, 1604~1672) 선생을 제향한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1692년 대전의 유생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1711년에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이후 흥선대원군 재위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안동권씨 종중에 의해 복원 및 증축되었다. 도산서원 사적비는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글을 짓고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 글씨를 써서 세운 것으로 도산서원의 건립 배경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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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서구

    조선 후기 예론에 밝았던 기호학파, 권시
    권시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기호학파로서 특히 예론에 밝았다. “매사에 옳은 것을 구하고 차선을 취하지 말라”아버지 권득기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융화정신을 받아들여 바른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저서로 『탄옹집』이 있으며 물오리나무로 만들어진 목판에는 당론과 예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어 유교사상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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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의 교육이념, 위기지학
    퇴계 이황이 만들었던 이산서원 원규에는 성리학과 서원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이 잘 담겨 있다. 이황은 서원에서 ‘몸으로 행하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본체를 밝혀 올바로 실천하는’ 학문을 가르치기 원했다. 도산서원도 이러한 이황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문의 목적과 방법을 설정하고 꾸준히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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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향교

연관자료

  • 지역문화 Pick (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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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 디지털 융합 향토민속관 사업 (태안향교)

    출처 :충청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충남 >태안군

    태안 디지털 융합 향토민속관 사업 (태안향교)
    태안의 전통 소금 생산방식인 자염과 관련된 자료를 모아 구축한 '디지털 융합 향토민속관'이다. 자염 관련 도구와 지역 주민의 기증 유물, 기타 향토사료 이미지와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본 영상에서는 유물 기증자가 기증한 유물과 기증하게 된 배경을 이야기한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과천 뿌리찾기 프로젝트 '토리의 시간여행'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과천시

    과천 뿌리찾기 프로젝트 '토리의 시간여행'
    과천 관아를 포함한 경기도 과천지역의 역사, 문화유산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홍보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실사 영상과 함께 애니메이션을 결합해서 아이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판줄타기, 과천무동답교놀이 같은 전통문화와 과천향교, 가자우물, 객사 등 문화재를 소개한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성주지역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자료집 '별고을 이야기속으로'

    출처 :경상북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북 >성주군

    성주지역 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자료집 '별고을 이야기속으로'
    성주지역의 중요문화재별로 인물, 전설, 설화를 99개 이야기로 엮어낸 책이다. 경북 영남지역의 큰 고을이었던 성주는 '별고을'이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성산가야에 속했고, 역사적으로 많은 문화유산을 배출한 지역이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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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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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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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주시

    불을 밝히고 손을 씻으며 제향(祭享)을 준비하다, 소수서원 정료대·관세대
    소수서원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원이다. 처음에는 백운동 서원으로 설립되었으나 신광한에 의해 소수서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명종이 직접 “소수서원”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기도 하였다. 지난 2018년 7월에는 소수서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에 남아있는 정료대와 관세대는 제향을 하기 전 불을 밝히고, 손을 씻는 곳으로 서원에서 머물며 공부했던 옛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이 담겨있는 석조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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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에서의 다짐. 도봉서원 각석군
    1573년에 건립된 도봉서원은 그 주변 각석군과 함께 2009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도봉서원은 양주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조광조는 당시 모든 사림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도봉서원의 위상은 대단하였다. 도봉서원으로 들어서는 도봉산 길목에는 이곳에 출입했던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남겨져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글씨는 모두 11개로 도봉서원터를 중심으로 계곡 700m 내에 산재해 있다. 이 글씨들은 17~18세기에 주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사람들이 도봉산과 도봉서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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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시끌벅적한 먹거리 골목 끝에서 만나는 선비, 행주서원지
    행주서원은 권율 장군(1537~1599)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헌종 8년에 세운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1985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된 뒤 점차 복원되는 중이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매년 제례의식과 체험 수업으로 시민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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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노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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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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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박태보, 임금에게 도리를 간언하다
    박태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상소였다. 상소에 참여한 86명의 관료를 대표해 박태보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기록하였다. 비록 임금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리하면 아니 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임금의 명령을 반대하는 목숨을 건 상소였지만 임금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게 하지 않으려는 신하의 도리로 간언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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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이야기로 기록되고 기억된 박태보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은 기사환국을 배경으로 일어난 박태보의 행적과 추승을 36편의 기사로 기록한 것이다. 실록을 볼 수 없었던 당대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기사민절록」을 통해 박태보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박태보의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본으로 만들어져 널리 읽히면서 한 선비의 충절이 백성들과 임금, 선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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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의연한 정신
    상소를 아뢰고 나자 혹독한 국문이 시작되었다. 숙종은 왕후의 폐서인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역적으로 여기며 배후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박태보는 중전의 편에서 절의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미를 소박하려는 아비를 막으려는 자식 된 도리로 상소를 올린 것이라 말한다. 형신이 가혹해졌지만, 박태보의 대답은 의연하였다. 마음의 중심에 거짓됨이 없기 때문이었고 상소를 올리는 것이 신하 된 도리, 즉 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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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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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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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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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사육신과 함께 배향된 생육신 남효온
    창절서원에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사육신이 죽음으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다했다면, 생육신은 살아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특히 남효온은 폐위된 단종의 생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사육신을 소개하는 『육신전』을 저술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무너진 도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기에 생육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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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단종의 장릉 옆에 있던 사육신의 사당, 육신사
    창절서원은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육신사를 모체로 하고 있다. 육신사는 원래 노산군의 묘역 옆에 있었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신위가 복원되고 묘역이 장릉으로 만들어지면서 육신사를 장릉 밖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임금과 신하는 일체이고 제사도 같다”라는 말에 따라 장릉 안에 계속 남아 있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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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중이 되어 산에 은둔한 천재 김시습
    사육신과 함께 창절서원에 배향된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이 ‘신동’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정에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재주를 감추고 잘 가르치라”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당대 유명한 천재였다. 하지만 21세가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한 김시습은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을 조롱하며 방랑자로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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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를 올리고 죽은 오두인의 고향에 세워진 덕봉서원
    덕봉서원은 숙종 대의 문신인 오두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오두인은 장희빈을 왕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하려는 숙종의 명을 거스르는 상소를 올렸다. 부모가 화평하지 않으면 자식이 화평할 수 없듯 선비들과 백성들이 모두 슬퍼하니 사심을 버리고 인심과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유교적 논리로 임금의 명에 반대한 것이다. 상소를 보고 격노한 숙종은 상소문을 작성한 이들을 불러 가혹한 심문을 하였고, 다음날 유배를 가던 길에 오두인은 숨을 거두었다. 서원과 멀리 않은 곳에 오두인의 종갓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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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에 진노한 숙종의 친국
    오두인을 비롯해 80명이 함께 올린 상소를 보고 숙종은 격노한다. 왕후의 폐출이 부당하다는 상소는 자신을 폐출시키려는 배후의 짓이라는 논리였다. 숙종은 친히 국문하면서 그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다. 오두인은 배후가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럴수록 국문은 더욱 가혹해졌다. 제신들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국문은 밤새 계속되었다. 다음날 유배길에 생을 마감한 오두인은 절의를 지키다 죽은 사육신처럼 임금에게 충심 어린 간언을 하다 형벌의 화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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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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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
    안향은 경상북도 흥주(興州: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 출신이다. 호는 회헌(晦軒)이고 초명은 안유(安裕)였으나 뒤에 안향(安珦)으로 고쳤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문종의 이름이 같은 글자였으므로, 이를 피해 초명인 안유로 다시 고쳐 부르게 되었다. 회헌이라는 호는 만년에 송나라의 주자(朱子)를 추모하여 그의 호인 회암(晦庵)을 모방한 것이다. 고려 후기 정치적 불안정과 몽골의 침략 종교적으로는 불교의 부패 등으로 국내외적으로 위기가 가중되었다. 안향은 이러한 때에 불교보다 한층 주지적인 특성을 지닌 주자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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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고려 시대 유학을 진흥시킨 안향
    소수서원은 고려 시대 문신인 안향을 배향하고 있다. 안향은 원나라에서 성리학 서적을 들여와 이를 탐독하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당시는 무신 집권기를 이은 원나라 간섭기로, 안향은 성리학을 중심으로 국학을 진흥하고 인재를 양성해 고려를 문치 사회로 만들고자 하였다. 안향이 들여온 송나라의 성리학은 이후 조선이 세워지는 토대가 되었고 교육의 근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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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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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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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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