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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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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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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달성군

    유교 전통을 이어가는, 달성 도동서원 수월루
    대구 달성의 도동서원 수월루(水月樓)는 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공간이다. 도동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9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김굉필(金宏弼)을 모신 서원으로, 1607년 도동서원이란 사액을 받았다.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라는 의미이다. 도동서원의 공간은 ‘수월루 – 환주문 – 동ㆍ서재 - 중정당 – 내삼문 – 사당’이 일렬로 이어진다. 문루인 수월루는 창건 당시에는 없다가 1849년 처음 지어졌다가 1973년 중건한 건물이다. 수월루(水月樓). 말 그대로 ‘물에 비친 달’을 의미하듯이 누각에 오르면 앞으로 낙동강의 물줄기와 주변 경관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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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구 >달성군

    김굉필의 처향에 세워진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한훤당 김굉필과 한강 정구를 배향하는 서원으로, 서원이 위치한 달성군은 김굉필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다. 김굉필은 동방 5현에 속하는 인물로, 그의 학문과 삶은 『소학』과 『대학』이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특히 스승인 김종직의 제자라는 이유로 유배를 가고 죽임을 당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그의 의연함과 단정함은 선비들의 사상과 학풍을 넘어 실천의 가르침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김굉필의 외손인 한강 정구는 도동서원 중수와 도동원규 편찬에 기여하였고 소학의 가르침을 예학으로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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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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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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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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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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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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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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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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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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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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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

연관자료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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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지원한 김성일의 안동 임천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에 있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은 2010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을 추모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임천(臨川)이라 사액 되어서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ᄒᆊ철되었다가 1908년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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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영천지역 의병들을 기리는 고천서원
    고천서원(古川書院)은 2003년 8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절한 10명의 의사를 기리기 위해서 1705년(숙종 31)에 건립하였다. 이 서원은 그 후 지방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너무 많은 서원이 생겨 그 폐단이 생기자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고천서원도 철거 되었다. 1940년 다시 건립하고, 1949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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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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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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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을 세운 양주목사 남언경
    도봉서원을 건립한 남언경은 조선시대 최초의 양명학자로 평가되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남언경은 양주목사로 부임했을 당시 도봉산 자락에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광조를 모셨다. 이후 사액을 받기위해 조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를 만나 국정 운영에 대한 시무를 건의하기도 했다. 남언경은 그가 살고 있던 조선을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도봉서원의 건립은 그러한 실천의 갈래로 유학의 이상향을 지역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양주, 양평, 가평, 여주 등 경기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남언경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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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노량진 사육신 사당 옆에 세워졌던 사충신의 사당,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원래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경종 재위기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시킨 노론의 사대신(四大臣)이 배향되어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즉위해 영조가 되면서 충신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하지만 1년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경종에 대한 역신으로 간주되어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이후 다시 설립된다. 충신에서 역신으로, 그리고 다시 충신이 되어 서원에 배향된 이들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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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임금이 규정한 군신분의(君臣分義)
    군신분의(君臣分義)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움’을 요구하는 군신 간의 윤리로, 공자의 ‘군신지의(君臣之義)’, 맹자의 ‘군신유의(君臣有義)’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붕당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탕평책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영조는 신하들이 충역 논란을 그만두고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라고 군신분의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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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사대신이 겪은 두 번의 옥사, 신임옥사
    사충서원은 창건 당시 사육신묘 옆에 세워졌다.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죽은 것처럼 사대신도 연잉군을 위해 죽은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대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주도하다가 역신으로 몰려 신축옥사를 겪었고, 이후 역모 사건에 연루된 임인옥사로 처형을 당하였다. 경종 재위기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운 사대신을 역모죄로 단죄한 두 개의 옥사를 역사에서는 신임옥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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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대전 >서구

    대전 유림을 대표하는 권득기와 권시의 도산서원 사적비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에는 도산서원 사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도산서원은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 1570~1622) 선생과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權諰, 1604~1672) 선생을 제향한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1692년 대전의 유생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1711년에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이후 흥선대원군 재위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안동권씨 종중에 의해 복원 및 증축되었다. 도산서원 사적비는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글을 짓고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 글씨를 써서 세운 것으로 도산서원의 건립 배경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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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예론에 밝았던 기호학파, 권시
    권시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기호학파로서 특히 예론에 밝았다. “매사에 옳은 것을 구하고 차선을 취하지 말라”아버지 권득기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융화정신을 받아들여 바른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저서로 『탄옹집』이 있으며 물오리나무로 만들어진 목판에는 당론과 예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어 유교사상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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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퇴계의 교육이념, 위기지학
    퇴계 이황이 만들었던 이산서원 원규에는 성리학과 서원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이 잘 담겨 있다. 이황은 서원에서 ‘몸으로 행하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본체를 밝혀 올바로 실천하는’ 학문을 가르치기 원했다. 도산서원도 이러한 이황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문의 목적과 방법을 설정하고 꾸준히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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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여주시

    예학으로 도와 의를 세우고자 한 예송논쟁
    17세기는 병자호란 이후 동아시아의 질서와 조선 내부의 사회질서가 혼란한 시기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무너진 유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예법으로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유교 사상을 기초한 예법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 사림들 간의 견해차가 생기면서 서인 세력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김장생과 김집으로부터 예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운 송시열은 유교의 예법을 임금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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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어명으로 창건된 대로서원
    대로사는 서원 건립이 제한되어 있던 시기에 정조의 명으로 특별히 설립되었다. 대로(大老)는 덕이 높고 학식이 풍부하여 존경할 만한 노인에게 붙이는 존호였는데, 실제로 송시열과 이하응만 이 존칭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대로’라는 이름에도 송시열에 대한 존중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스스로를 ‘대로’라 칭하면서 대로사는 강한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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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과 율곡학의 정통을 세운 우암 송시열
    동방의 주자로 비유되는 송시열은 어린 시절부터 ‘주자는 후대의 공자요, 율곡은 후대의 주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주자와 율곡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이 있었던 송시열은 주자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배격하는 한편 율곡의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퇴계학파와 함께 율곡학파가 조선의 유학계에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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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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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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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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