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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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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사화의 화근이라 불린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 『소학』
    『소학』은 『대학』과 함께 유교의 필독서이다. 8, 9세의 아동들이 읽는 기초서적이지만 오륜을 바탕으로 가정과 공동체에서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주자와 공자는 『소학』을 학문의 시작으로 삼았다. 『소학』으로 인간의 도리와 의리를 깨달은 선비들은 왕실과 조정, 백성들이 행하는 고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훈구파와 왕권의 견제를 받아 사화에 희생양이 되곤 하였다. 사화로 꺼질 것 같던 『소학』의 불꽃은 후대 유학자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사림이 정치적 주도권을 갖게 되는 16세기 후반에는 누구나 즐겨보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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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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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고 자란 곳 장성
    필암서원이 있는 장성은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1590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672년에 지금의 위치에 이건 되었데, 대원군 대의 서원훼철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모두 피해 옛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인후의 생가와 그가 머물던 백화정이 있는데 김인후와 인종과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배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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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김인후와 함께 배향된 제자이자 사위, 양자징
    필암서원에 함께 배향된 양자징은 김인후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다가 나중에 사위가 된 인물이다. 양자징의 부친 양산보는 한양에서 조광조의 제자로 있다가 1년 후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은둔하였다. 김인후는 화순에 유배와 있는 최산두에게 배우러 가는 길에 항상 소쇄원을 들러 쉬어가면서 양산보와 교유하였다. 그의 아들인 양자징은 김인후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다가 후에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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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노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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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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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박태보, 임금에게 도리를 간언하다
    박태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상소였다. 상소에 참여한 86명의 관료를 대표해 박태보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기록하였다. 비록 임금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리하면 아니 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임금의 명령을 반대하는 목숨을 건 상소였지만 임금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게 하지 않으려는 신하의 도리로 간언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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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이야기로 기록되고 기억된 박태보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은 기사환국을 배경으로 일어난 박태보의 행적과 추승을 36편의 기사로 기록한 것이다. 실록을 볼 수 없었던 당대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기사민절록」을 통해 박태보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박태보의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본으로 만들어져 널리 읽히면서 한 선비의 충절이 백성들과 임금, 선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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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의연한 정신
    상소를 아뢰고 나자 혹독한 국문이 시작되었다. 숙종은 왕후의 폐서인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역적으로 여기며 배후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박태보는 중전의 편에서 절의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미를 소박하려는 아비를 막으려는 자식 된 도리로 상소를 올린 것이라 말한다. 형신이 가혹해졌지만, 박태보의 대답은 의연하였다. 마음의 중심에 거짓됨이 없기 때문이었고 상소를 올리는 것이 신하 된 도리, 즉 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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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노량진 사육신 사당 옆에 세워졌던 사충신의 사당,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원래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경종 재위기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시킨 노론의 사대신(四大臣)이 배향되어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즉위해 영조가 되면서 충신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하지만 1년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경종에 대한 역신으로 간주되어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이후 다시 설립된다. 충신에서 역신으로, 그리고 다시 충신이 되어 서원에 배향된 이들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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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임금이 규정한 군신분의(君臣分義)
    군신분의(君臣分義)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움’을 요구하는 군신 간의 윤리로, 공자의 ‘군신지의(君臣之義)’, 맹자의 ‘군신유의(君臣有義)’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붕당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탕평책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영조는 신하들이 충역 논란을 그만두고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라고 군신분의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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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사대신이 겪은 두 번의 옥사, 신임옥사
    사충서원은 창건 당시 사육신묘 옆에 세워졌다.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죽은 것처럼 사대신도 연잉군을 위해 죽은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대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주도하다가 역신으로 몰려 신축옥사를 겪었고, 이후 역모 사건에 연루된 임인옥사로 처형을 당하였다. 경종 재위기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운 사대신을 역모죄로 단죄한 두 개의 옥사를 역사에서는 신임옥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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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의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신라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에 있는 서원이다. 1560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한 이정이 당시 황폐되어 있던 두 영웅의 묘소를 보고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서원이 만들어지고 사액을 받으면서 경주 지역의 선현인 설총과 최치원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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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꿈에 나타난 김유신 장군의 호통
    경주의 유림들이 서악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위패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예록』에는 김유신 위패를 빼자고 했다가 꿈에 김유신이 나와 호통을 듣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업(儒業)을 이루는 것은 문인과 무인의 신분에 있지 않고 충과 효를 실현하느냐에 달렸음을 보여주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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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유교를 들여와 공부하였다. 고구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는 유교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유학을 전했다. 신라인 중에서는 설총과 최치원이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우리나라 유교는 도학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훼철서원 중에는 설총과 최치원을 배향하는 서악서원과 무성서원이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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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가족, 친구, 사제간의 유교적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돈암서원과 함께 충청도 지역에서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로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조광조, 서경덕, 이황, 김인후, 기대승, 이이, 성혼, 송익필 등의 영향을 받은 기호유학은 경기도와 호남,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영남유학과 구분되는 성리논변을 만들어간다.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1) 윤황과 윤선거를 배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1682년(숙종 8) 윤문거가, 1723년(경종 3) 윤증이 추가 배향되었다. 노강서원은 가족, 친구, 사제관계로 이어진 기호유학의 인맥도를 보여주는 서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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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부친의 강도 사건으로 벼슬에 나가지 않은 윤증
    윤선거와 윤증은 출사하지 않고 논산에 은둔해 평생을 살았다. 두 부자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강도 사건’ 때문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피난 갔다가 강화도가 함락되면 자결을 하자는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문제였다. 자결을 한 사람 중에 윤선거의 부인이자 윤증의 어머니인 이씨도 포함되어 있어 강화도 사건은 두 부자에게 상처이자 큰 멍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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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서로에게 권면하는 친구 간의 도리 붕우책선
    유교문화에는 책선이 있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면하고 충고하는 것이다. 윤선거가 친구인 송시열에게 남긴 마지막 책선이 ‘기유의서’이다. 아들 윤증이 부친의 편지를 스승인 송시열에게 전하면서 회니시비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충고가 노소붕당의 쟁점이 될 정도로 조선 시대 책선은 선비들의 친구관계에서 중요한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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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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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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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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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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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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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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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을 세운 양주목사 남언경
    도봉서원을 건립한 남언경은 조선시대 최초의 양명학자로 평가되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남언경은 양주목사로 부임했을 당시 도봉산 자락에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광조를 모셨다. 이후 사액을 받기위해 조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를 만나 국정 운영에 대한 시무를 건의하기도 했다. 남언경은 그가 살고 있던 조선을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도봉서원의 건립은 그러한 실천의 갈래로 유학의 이상향을 지역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양주, 양평, 가평, 여주 등 경기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남언경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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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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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유교적 향촌문화를 만들어간 태인의 선비들
    무성서원은 장성의 필암서원, 광주의 포충사와 함께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 무성서원에는 7명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데 최치원과 신잠은 이곳에 수령으로 와 선정을 베푼 외지인이고 이를 제외한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은 모두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선비들이다. 정극인이 향학당을 만들어 강학을 하고 향약을 운영해 향촌문화를 이끌었다면 송세림은 향학당을 정비해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전라도 유생 200여 명이 서원의 사액을 청한 것도 향촌문화에 기여한 이들의 공헌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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