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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문화콘텐츠를 다양한 해시태그(#) 키워드로 검색할 수 있는 서비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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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김장생이 예학을 가르치던 곳에 세워졌던 돈암서원
    돈암서원은 조선의 예학을 학문적으로 자리매김한 김장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김장생이 후학을 가르치던 양성당 옆에 세워졌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서원에는 김장생의 뒤를 이어 학문과 강학을 이어간 아들 김집과 제자인 송시열과 송준길이 함께 배향되어 있어 조선 예학을 이끌었던 주요 선현들을 만날 수 있다. 19세기 들어 주변 지형이 변하고 서원 앞에 흐르는 사계천이 범람하면서 침수피해가 커지자 1880년(고종 17)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워졌다. 건물이 웅장했던 강당 응도당은 1971년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이건 과정에서 당초의 건물배치와는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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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예(禮)의 보편성을 탐구하고 고증한 김장생
    인간의 본성과 심성에 대한 성리학적 이해가 깊어진 조선의 유학은 인간의 마음을 형식적으로 드러내는 예학의 이론과 실천으로 발전하였다. 여기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문란해진 사회 질서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식도 크게 작용하였다. 예는 천리와 인륜의 도를 실천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에 왕실은 물론 모든 백성이 가례를 지켜야 한다고 여겼던 당시 유학자들의 생각을 지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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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기호학파 예학의 체계를 완성한 김집
    김집은 서울 출신으로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호는 신독재(愼獨齋)이고 김장생(金長生)의 아들이다. 그는 사계 김장생을 학문적으로 계승하여 일상 속에서 예를 실천해야할 것을 강조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김장생을 비롯해 송시열, 송준길, 윤선거 등과 함께 기호 예학의 체계를 완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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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사육신과 함께 배향된 생육신 남효온
    창절서원에는 사육신과 생육신이 함께 배향되어 있다. 사육신이 죽음으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다했다면, 생육신은 살아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특히 남효온은 폐위된 단종의 생모를 복위시켜야 한다는 상소를 올리고, 사육신을 소개하는 『육신전』을 저술하는 등 위험을 무릅쓰고 무너진 도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기에 생육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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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단종의 장릉 옆에 있던 사육신의 사당, 육신사
    창절서원은 단종복위를 꾀하다 죽임을 당한 사육신의 육신사를 모체로 하고 있다. 육신사는 원래 노산군의 묘역 옆에 있었다. 노산군이 단종으로 신위가 복원되고 묘역이 장릉으로 만들어지면서 육신사를 장릉 밖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임금과 신하는 일체이고 제사도 같다”라는 말에 따라 장릉 안에 계속 남아 있다가 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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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중이 되어 산에 은둔한 천재 김시습
    사육신과 함께 창절서원에 배향된 매월당 김시습은 세종이 ‘신동’이라는 소문을 듣고 조정에 불러 재주를 시험하고, “재주를 감추고 잘 가르치라”라는 명을 내릴 정도로 당대 유명한 천재였다. 하지만 21세가 되던 해에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한 김시습은 책을 모두 불태우고 머리를 깎아 중이 되어 산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후 충청남도 부여의 무량사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세상을 조롱하며 방랑자로 살아가다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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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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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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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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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의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신라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에 있는 서원이다. 1560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한 이정이 당시 황폐되어 있던 두 영웅의 묘소를 보고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서원이 만들어지고 사액을 받으면서 경주 지역의 선현인 설총과 최치원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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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꿈에 나타난 김유신 장군의 호통
    경주의 유림들이 서악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위패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예록』에는 김유신 위패를 빼자고 했다가 꿈에 김유신이 나와 호통을 듣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업(儒業)을 이루는 것은 문인과 무인의 신분에 있지 않고 충과 효를 실현하느냐에 달렸음을 보여주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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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유교를 들여와 공부하였다. 고구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는 유교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유학을 전했다. 신라인 중에서는 설총과 최치원이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우리나라 유교는 도학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훼철서원 중에는 설총과 최치원을 배향하는 서악서원과 무성서원이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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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노량진 사육신 사당 옆에 세워졌던 사충신의 사당,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원래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경종 재위기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시킨 노론의 사대신(四大臣)이 배향되어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즉위해 영조가 되면서 충신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하지만 1년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경종에 대한 역신으로 간주되어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이후 다시 설립된다. 충신에서 역신으로, 그리고 다시 충신이 되어 서원에 배향된 이들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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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임금이 규정한 군신분의(君臣分義)
    군신분의(君臣分義)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움’을 요구하는 군신 간의 윤리로, 공자의 ‘군신지의(君臣之義)’, 맹자의 ‘군신유의(君臣有義)’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붕당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탕평책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영조는 신하들이 충역 논란을 그만두고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라고 군신분의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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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사대신이 겪은 두 번의 옥사, 신임옥사
    사충서원은 창건 당시 사육신묘 옆에 세워졌다.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죽은 것처럼 사대신도 연잉군을 위해 죽은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대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주도하다가 역신으로 몰려 신축옥사를 겪었고, 이후 역모 사건에 연루된 임인옥사로 처형을 당하였다. 경종 재위기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운 사대신을 역모죄로 단죄한 두 개의 옥사를 역사에서는 신임옥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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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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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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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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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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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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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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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주시

    불을 밝히고 손을 씻으며 제향(祭享)을 준비하다, 소수서원 정료대·관세대
    소수서원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원이다. 처음에는 백운동 서원으로 설립되었으나 신광한에 의해 소수서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명종이 직접 “소수서원”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기도 하였다. 지난 2018년 7월에는 소수서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에 남아있는 정료대와 관세대는 제향을 하기 전 불을 밝히고, 손을 씻는 곳으로 서원에서 머물며 공부했던 옛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이 담겨있는 석조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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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에서의 다짐. 도봉서원 각석군
    1573년에 건립된 도봉서원은 그 주변 각석군과 함께 2009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도봉서원은 양주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조광조는 당시 모든 사림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도봉서원의 위상은 대단하였다. 도봉서원으로 들어서는 도봉산 길목에는 이곳에 출입했던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남겨져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글씨는 모두 11개로 도봉서원터를 중심으로 계곡 700m 내에 산재해 있다. 이 글씨들은 17~18세기에 주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사람들이 도봉산과 도봉서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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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끌벅적한 먹거리 골목 끝에서 만나는 선비, 행주서원지
    행주서원은 권율 장군(1537~1599)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헌종 8년에 세운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1985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된 뒤 점차 복원되는 중이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매년 제례의식과 체험 수업으로 시민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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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 유림을 대표하는 권득기와 권시의 도산서원 사적비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에는 도산서원 사적비가 건립되어 있다. 도산서원은 만회(晩悔) 권득기(權得己 1570~1622) 선생과 그의 아들인 탄옹 권시(權諰, 1604~1672) 선생을 제향한 서원이다. 도산서원은 1692년 대전의 유생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1711년에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다. 이후 흥선대원군 재위기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안동권씨 종중에 의해 복원 및 증축되었다. 도산서원 사적비는 정종로(鄭宗魯, 1738~1816)가 글을 짓고 강준흠(姜浚欽, 1768~1833)이 글씨를 써서 세운 것으로 도산서원의 건립 배경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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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예론에 밝았던 기호학파, 권시
    권시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기호학파로서 특히 예론에 밝았다. “매사에 옳은 것을 구하고 차선을 취하지 말라”아버지 권득기의 가르침을 중시하고, 자신과 타인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융화정신을 받아들여 바른 삶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저서로 『탄옹집』이 있으며 물오리나무로 만들어진 목판에는 당론과 예학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어 유교사상 연구를 위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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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계의 교육이념, 위기지학
    퇴계 이황이 만들었던 이산서원 원규에는 성리학과 서원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이 잘 담겨 있다. 이황은 서원에서 ‘몸으로 행하고 마음으로 깨달으며 본체를 밝혀 올바로 실천하는’ 학문을 가르치기 원했다. 도산서원도 이러한 이황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학문의 목적과 방법을 설정하고 꾸준히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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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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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산에 유풍을 일으킨 현자들의 발자취
    대부분의 서원이 민가와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지역민이 주축이 돼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태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수령으로 왔던 최치원과 신잠의 공덕을 기려 생사당을 지었고 둘을 함께 합사해 ‘태산사’라 이름하였다. 무성서원은 태산사가 지역민의 향학당 자리로 옮겨져 서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성서원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지역민과 수령들이 서원을 통해 어떻게 유교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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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호남의병 의병장 임병찬 창의기념비
    임병찬창의유적지는 한말에 임병찬이 호남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훈련하던 곳이다. 임병찬은 이곳에서 흥학제라는 학당을 지어 놓고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단순한 학문만을 공부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예를 익히게 하여 후일을 대비하였다. 현재는 유적의 잔재와 후손들이 세운 기념비 등만 남아있지만 의병들의 의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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