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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노량진 사육신 사당 옆에 세워졌던 사충신의 사당, 사충서원
    사충서원은 원래 사육신묘가 있는 노량진에 창건되었다. 서원에는 경종 재위기에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시킨 노론의 사대신(四大臣)이 배향되어 있다. 경종의 뒤를 이어 연잉군이 즉위해 영조가 되면서 충신으로 서원에 배향되었다. 하지만 1년 뒤 소론이 집권하면서 이들은 경종에 대한 역신으로 간주되어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이후 다시 설립된다. 충신에서 역신으로, 그리고 다시 충신이 되어 서원에 배향된 이들의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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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임금이 규정한 군신분의(君臣分義)
    군신분의(君臣分義)는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다움’을 요구하는 군신 간의 윤리로, 공자의 ‘군신지의(君臣之義)’, 맹자의 ‘군신유의(君臣有義)’와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붕당으로 인한 정치적 혼란을 탕평책으로 해결하고자 했던 영조는 신하들이 충역 논란을 그만두고 임금에게 복종하는 것이 신하 된 도리라고 군신분의를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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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하남시

    사대신이 겪은 두 번의 옥사, 신임옥사
    사충서원은 창건 당시 사육신묘 옆에 세워졌다. 사육신이 단종을 위해 죽은 것처럼 사대신도 연잉군을 위해 죽은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대신은 연잉군의 세제 책봉과 대리청정을 주도하다가 역신으로 몰려 신축옥사를 겪었고, 이후 역모 사건에 연루된 임인옥사로 처형을 당하였다. 경종 재위기에 이복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세운 사대신을 역모죄로 단죄한 두 개의 옥사를 역사에서는 신임옥사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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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진짜 유학자’의 모범이 된 중봉 조헌
    주자성리학의 다른 이름은 도학(道學)이다. 성리학의 가르침이 ‘인간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깨우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학은 여기에 의리와 절의, 그리고 실천이 더 강조된다. 의리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의’만을 생각하며 전장에 나선 중봉은 유학자들 사이에서 도의를 실천한 ‘진유(眞儒)’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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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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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중봉 조헌의 비범한 이야기
    중봉 조헌의 비범한 언행에 대해 내려오는 야사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고관이 떠들썩하게 행차할 때, 조헌 만이 유일하게 아버님의 분부를 따라 책 읽는 것에 집중하여 고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또한 조헌이 자신의 앞에서 의붓어머니를 질책하는 외할머니의 말을 듣고 외할머니를 멀리하여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조헌이 어른이 되어 왜군이 침략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하도록 한 이야기들은 조헌의 비범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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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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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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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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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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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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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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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도봉서원을 세운 양주목사 남언경
    도봉서원을 건립한 남언경은 조선시대 최초의 양명학자로 평가되는 개성적인 인물이다. 남언경은 양주목사로 부임했을 당시 도봉산 자락에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사림의 정신적 지주였던 조광조를 모셨다. 이후 사액을 받기위해 조정에 들어가기도 하고 당시 임금이었던 선조를 만나 국정 운영에 대한 시무를 건의하기도 했다. 남언경은 그가 살고 있던 조선을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도봉서원의 건립은 그러한 실천의 갈래로 유학의 이상향을 지역사회에 구현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양주, 양평, 가평, 여주 등 경기 지역에서 주로 활동했던 남언경의 흔적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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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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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유교적 향촌문화를 만들어간 태인의 선비들
    무성서원은 장성의 필암서원, 광주의 포충사와 함께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 무성서원에는 7명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데 최치원과 신잠은 이곳에 수령으로 와 선정을 베푼 외지인이고 이를 제외한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은 모두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선비들이다. 정극인이 향학당을 만들어 강학을 하고 향약을 운영해 향촌문화를 이끌었다면 송세림은 향학당을 정비해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전라도 유생 200여 명이 서원의 사액을 청한 것도 향촌문화에 기여한 이들의 공헌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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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포천의 명재상들을 모신 용연서원
    용연서원은 이덕형과 조경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서원이 위치한 포천은 이덕형이 어린 시절을 보낸 외가가 있는 곳이었고, 조경이 자란 곳이었다. 이덕형은 오성과 한음 이야기로 알려진 한음으로 오성인 이항복과는 절친한 친구 사이었다. 용연서원이 서원훼철령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당시 세운 이항복의 공이 컸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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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외교로 임진왜란의 공을 세운 한음 이덕형
    용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이덕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청원사로 명나라에 가 파병을 성사시키고 명나라 장수와 함께 한양을 되찾았다. 전란 중에는 조선과 명나라 간의 관계와 상황을 조정하였고 전후에는 전란 수습에 힘을 다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인목대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내려온 후 은거해 있다가 숨을 거두었다. 용연서원은 임진왜란의 전란 중에 보여준 이덕형의 리더십과 업적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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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포천시

    기로소에 들어간 강직하고 바른 신하, 조경
    이덕형과 함께 배향된 조경은 유교의 가치관에 따라 출처의 의리를 보인 강직한 문신이다. 임금에게 바른말을 하는 언관직을 주로 맡았던 조경은 인조와 효종의 뜻에 거스르는 말을 했다가 유배되기도 하였다. 민감하고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도 바른말을 감추지 않았던 조경은 임금의 신임을 잃지 않아 만년에 기로소에 들어가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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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워진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조광조는 사화로 사사된 이후 포은 정몽주와 함께 배향되어 오다가 관작이 회복되면서 선영 근처의 서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조광조를 배향하는 서원 설립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도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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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병산서원 만대루와 자웅을 겨루는,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無邊樓)는 건축미가 뛰어난 병산서원 만대루와 견줄 수 있는 누각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정면 5칸, 측면 2칸 단층처럼 보인다. 옥산서원의 네 건물이 서로 처마를 맞대어 양 끝 2칸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무변루는 다른 누각과 달리 숙식을 할 수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누각의 대청 안쪽에 걸려있는 ‘무변루’ 편액은 석봉 한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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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시대의 사림(士林)들이 겪은 화,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조선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인간의 도리와 의리, 실천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기묘사화로 올곧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성리학의 가르침과 실천을 경시하거나 도외시하였다. 조광조의 신원회복과 서원 건립을 통해 조선의 선비들이 바로 세우고자 했던 것은 조광조가 상징하는 유교의 정신과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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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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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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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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