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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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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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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산림처사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간 개암 강익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하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해 자기를 수양하는 것을 군자 됨의 하나로 여겼다.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을 은일지사 혹은 산림처사라 하는데, 이들은 관직을 얻어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마다하고 자신을 수향하는 위기지학에 몰두하였다. 개암 강익도 고향 함양에서 정여창의 도를 후대에 전하며 성리학에만 뜻을 두고 산림처사로 지냈다. 당시 영남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남명 조식이 은일지사로 지역의 학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강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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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학으로 도와 의를 세우고자 한 예송논쟁
    17세기는 병자호란 이후 동아시아의 질서와 조선 내부의 사회질서가 혼란한 시기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무너진 유교적 세계관과 가치관을 예법으로 다시 세우고자 하였다. 유교 사상을 기초한 예법의 해석과 적용을 두고 사림들 간의 견해차가 생기면서 서인 세력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졌다. 김장생과 김집으로부터 예학의 이론과 실제를 배운 송시열은 유교의 예법을 임금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지켜야 하는 보편적인 법칙으로 만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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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조의 어명으로 창건된 대로서원
    대로사는 서원 건립이 제한되어 있던 시기에 정조의 명으로 특별히 설립되었다. 대로(大老)는 덕이 높고 학식이 풍부하여 존경할 만한 노인에게 붙이는 존호였는데, 실제로 송시열과 이하응만 이 존칭을 사용하였다. 그래서 ‘대로’라는 이름에도 송시열에 대한 존중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흥선대원군이 스스로를 ‘대로’라 칭하면서 대로사는 강한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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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자학과 율곡학의 정통을 세운 우암 송시열
    동방의 주자로 비유되는 송시열은 어린 시절부터 ‘주자는 후대의 공자요, 율곡은 후대의 주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주자와 율곡에 대한 절대적인 신념이 있었던 송시열은 주자에 대한 비판을 철저히 배격하는 한편 율곡의 학문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퇴계학파와 함께 율곡학파가 조선의 유학계에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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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비들이 인정한 명재상 황희 정승의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조선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황희는 고려의 문신이었지만 조선이 개국하면서 태조를 비롯해 태종과 세종 재위기에 재상의 위치에 있으면서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황희는 임금에게뿐 아니라 선비들과 백성들도 인정하는 명재상이었다. 임금의 명에 복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도리를 다하도록 간언을 잘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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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서는 시비를 가리지 않은 황희
    조정에서 황희는 크고 작은 일에 시비를 가리고 간언을 하였지만, 집안에서는 관대하고 시비조차 가리지 않았다. 황희가 집안의 노비와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가 신분제 사회였음을 감안할 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관대하였다. 이런 황희의 이야기들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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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은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교적 이상 정치에서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은 자로서, 이때 임금을 받든다는 것은 임금을 바르게 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간언하는 것이었다. 유교적 관점에서 황희 정승은 왕권을 견제하는 신권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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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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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태산에 유풍을 일으킨 현자들의 발자취
    대부분의 서원이 민가와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지역민이 주축이 돼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태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수령으로 왔던 최치원과 신잠의 공덕을 기려 생사당을 지었고 둘을 함께 합사해 ‘태산사’라 이름하였다. 무성서원은 태산사가 지역민의 향학당 자리로 옮겨져 서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성서원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지역민과 수령들이 서원을 통해 어떻게 유교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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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한말 호남의병 의병장 임병찬 창의기념비
    임병찬창의유적지는 한말에 임병찬이 호남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훈련하던 곳이다. 임병찬은 이곳에서 흥학제라는 학당을 지어 놓고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단순한 학문만을 공부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예를 익히게 하여 후일을 대비하였다. 현재는 유적의 잔재와 후손들이 세운 기념비 등만 남아있지만 의병들의 의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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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자운서원 옆 파산서원
    파산서원은 율곡 이이를 배향하는 자운서원과 함께 파주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파산서원은 청송 성수침을 배향하기 위해 처음 세워졌는데, 후에 아들인 우계 성혼이 함께 배향되었다. 우계 성혼과 율곡 이이는 함께 파주에서 수학하며 자신들의 학파를 이루었다. 파평산을 사이에 두고 있는 자운서원과 파산서원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처럼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적 위업을 이룬 이이와 성혼, 두 거장을 만날 수 있는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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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파주시

    은둔의 삶을 택한 조광조의 제자 성수침
    파산서원이 위치한 곳은 성수침이 은거하던 죽우당이 있던 곳이었다. 성수침은 정암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기묘사화가 일어나기 전까지 대업의 꿈을 가지고 과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출사의 꿈을 접고 은둔한 성수침은 천거로 내려진 관직을 모두 사양하고 고향인 파주에서 자기를 수양하며 평생 산림처사로 살았다. 성수침과 같은 위기지학의 학풍은 기묘사화 이후 도학을 지향하는 조선 선비들의 학풍으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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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를 지켜 문화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조선의 선비들
    예의 기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하늘과 땅, 선조, 선왕과 스승에게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나와 공동체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의례와 규범이 곧 예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예를 지켜야 하는 이유와 방법을 유교의 예학에서 찾았다. 예학을 탐구하며 예가 인간과 자연의 보편 진리임을 알게 된 유학자들은 왕실 사람들에게도 일반 백성과 같은 보편 윤리를 적용해 예를 행하려 하였다. 17세기의 국내외 상황으로 인해 조선의 선비들은 예에 더욱 집착하였고 시간이 지나면서 예의 형식이 강조되었다.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나라에서 예는 여전히 유효한 유교사상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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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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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남구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광주 포충사
    광주광역시의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끈 제봉 고경명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고경명은 문과에 장원급제해 관료 생활을 하다가 파직되어 광주에 내려와 있다가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진군하였다. 비록 승전한 전투는 없었지만, 고경명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의병이 그렇듯 고경명도 병법을 알지 못하고 무예를 익히지 않은 선비에 불과했지만,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의병들을 모으고 그들을 이끌어 전장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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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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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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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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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담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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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김해시

    임진왜란 최초 의병의 얼을 기린 사충단
    사충단은 임진왜란 때 처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김해부성을 지키다 전사한 송빈‧이대형‧김득기‧류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1871년에 왕명으로 건립한 묘단이다. 이들은 김해부에 일본군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김해성을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김해성에 들어간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이었다. 이미 김해부사는 성을 버리고 도망간 후였지만 4명의 의병장은 끝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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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사화의 두려움을 이기고 세워진 심곡서원
    심곡서원은 기묘사화로 희생된 조광조와 양팽손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조광조의 선산이 있는 곳에 세워졌다. 조광조는 사화로 사사된 이후 포은 정몽주와 함께 배향되어 오다가 관작이 회복되면서 선영 근처의 서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조광조를 배향하는 서원 설립은 정몽주로부터 시작되는 조선의 도통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조선 선비들의 노력의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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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병산서원 만대루와 자웅을 겨루는,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無邊樓)는 건축미가 뛰어난 병산서원 만대루와 견줄 수 있는 누각이다.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을 향사하는 서원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이층 누각이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면 정면 5칸, 측면 2칸 단층처럼 보인다. 옥산서원의 네 건물이 서로 처마를 맞대어 양 끝 2칸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무변루는 다른 누각과 달리 숙식을 할 수 있는 두 개의 방이 있는 특이한 구조이다. 누각의 대청 안쪽에 걸려있는 ‘무변루’ 편액은 석봉 한호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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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용인시

    한 시대의 사림(士林)들이 겪은 화, 기묘사화
    기묘사화는 조선의 사화 중에서 선비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화이다. 기묘사화 이후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은 인간의 도리와 의리, 실천을 강조하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심지어 두려워하기까지 하였다. 기묘사화로 올곧은 선비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들뿐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성리학의 가르침과 실천을 경시하거나 도외시하였다. 조광조의 신원회복과 서원 건립을 통해 조선의 선비들이 바로 세우고자 했던 것은 조광조가 상징하는 유교의 정신과 실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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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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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산청군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
    문익점은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구해 온 인물이다. 문익점이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목화씨를 들여왔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한반도에 정착시켜 대량으로 재배하고, 실을 잣는 방법을 보급하여 면직 생산에 기여했다는 것, 그로부터 헐벗은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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