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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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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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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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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주시

    불을 밝히고 손을 씻으며 제향(祭享)을 준비하다, 소수서원 정료대·관세대
    소수서원은 우리나라의 최초의 서원이다. 처음에는 백운동 서원으로 설립되었으나 신광한에 의해 소수서원이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으며, 명종이 직접 “소수서원”이라는 편액 글씨를 써서 하사하기도 하였다. 지난 2018년 7월에는 소수서원을 비롯한 우리나라의 서원 9곳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소수서원에 남아있는 정료대와 관세대는 제향을 하기 전 불을 밝히고, 손을 씻는 곳으로 서원에서 머물며 공부했던 옛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생활 모습이 담겨있는 석조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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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에서의 다짐. 도봉서원 각석군
    1573년에 건립된 도봉서원은 그 주변 각석군과 함께 2009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도봉서원은 양주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조광조는 당시 모든 사림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도봉서원의 위상은 대단하였다. 도봉서원으로 들어서는 도봉산 길목에는 이곳에 출입했던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남겨져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글씨는 모두 11개로 도봉서원터를 중심으로 계곡 700m 내에 산재해 있다. 이 글씨들은 17~18세기에 주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사람들이 도봉산과 도봉서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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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고양시

    시끌벅적한 먹거리 골목 끝에서 만나는 선비, 행주서원지
    행주서원은 권율 장군(1537~1599)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헌종 8년에 세운 곳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았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고, 1985년 경기도문화재자료 제71호로 지정된 뒤 점차 복원되는 중이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관람을 허용하고 있지 않지만, 매년 제례의식과 체험 수업으로 시민과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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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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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유교적 향촌문화를 만들어간 태인의 선비들
    무성서원은 장성의 필암서원, 광주의 포충사와 함께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 무성서원에는 7명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데 최치원과 신잠은 이곳에 수령으로 와 선정을 베푼 외지인이고 이를 제외한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은 모두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선비들이다. 정극인이 향학당을 만들어 강학을 하고 향약을 운영해 향촌문화를 이끌었다면 송세림은 향학당을 정비해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전라도 유생 200여 명이 서원의 사액을 청한 것도 향촌문화에 기여한 이들의 공헌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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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한국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류성룡(柳成龍)을 모신 안동 병산서원은 우리나라 서원 건축의 백미로 평가된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晩對樓)이다. 만대루는 두보의 시 “푸른 절벽은 오후 늦게 대할 만하다(翠屛宜晩對)”에서 따온 이름이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누각인 만대루는 자연과 하나 되는 건물이다. 아래층 주춧돌과 기둥도 그렇고, 만대루에서 바라보는 낙동강과 하얀 모래톱, 그 너머의 병산 풍경은 가히 무릉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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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풍악서당에서 병산서원으로
    병산서원은 풍산현의 유림이 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세운 풍악서당을 모체로 하고 있다. 류성룡은 풍악서당이 있던 곳이 사람의 왕래가 잦아 학문에 방해가 된다 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후에 류성룡의 문인들이 그의 학문과 덕행을 기려 풍산서당 안에 존덕사를 세워 배향하였고 이것이 지금의 병산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의 교육 활동은 꾸준히 이어졌고 해방 이후에는 학교법인을 설립해 서원의 교육철학은 현대에까지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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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인간 마음에 대한 서애 류성룡의 관심과 탐구
    병산서원에서 배향하고 있는 서애 류성룡은 임진왜란 때 임금을 수행하고 왜군을 물리치는데 기여한 명재상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가르침을 받았던 류성룡은 누구보다 인간의 마음과 도리에 관심이 많았던 유학자였다. 탄핵을 받아 관직이 삭탈 된 후에 고향인 하회마을에 은거한 류성룡은 남은 생애 동안 인간 마음에 대한 성찰과 탐구에 집중한다. 그가 남긴 편지와 시, 저술에서 우리가 알지 못했던 류성룡의 유학자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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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 노강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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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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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박태보, 임금에게 도리를 간언하다
    박태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상소였다. 상소에 참여한 86명의 관료를 대표해 박태보는 숙종이 인현왕후를 폐출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기록하였다. 비록 임금의 명령일지라도 그것이 유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도리에 맞지 않는다면 그리하면 아니 된다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임금의 명령을 반대하는 목숨을 건 상소였지만 임금이 하늘의 뜻을 거스르게 하지 않으려는 신하의 도리로 간언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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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이야기로 기록되고 기억된 박태보
    「기사민절록(己巳愍節錄)」은 기사환국을 배경으로 일어난 박태보의 행적과 추승을 36편의 기사로 기록한 것이다. 실록을 볼 수 없었던 당대의 선비들과 백성들은 「기사민절록」을 통해 박태보의 이야기를 접했다. 이후 박태보의 이야기는 여러 개의 이본으로 만들어져 널리 읽히면서 한 선비의 충절이 백성들과 임금, 선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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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의정부시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의연한 정신
    상소를 아뢰고 나자 혹독한 국문이 시작되었다. 숙종은 왕후의 폐서인을 반대하는 신료들을 역적으로 여기며 배후가 누구냐고 집요하게 추궁하였다. 박태보는 중전의 편에서 절의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미를 소박하려는 아비를 막으려는 자식 된 도리로 상소를 올린 것이라 말한다. 형신이 가혹해졌지만, 박태보의 대답은 의연하였다. 마음의 중심에 거짓됨이 없기 때문이었고 상소를 올리는 것이 신하 된 도리, 즉 충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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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곡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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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Pick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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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철학의 오래된 미래, 추곡 정제두

    출처 :경기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기 >시흥시

    한국 철학의 오래된 미래, 추곡 정제두
    경기도 시흥에 남겨진 유학자 추곡 정제두의 자취와 함께 양명학을 대중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양명학은 이(理)를 중요시하던 주류 성리학과 달리 마음(心)의 작용을 우선시한다. 정제두는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이 이론적 학문에 치우쳐 임진왜란이라는 국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실천적 지식을 강조하는 양명학을 주장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벽진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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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광주 >북구

    충장공 김덕령의 충절을 기리는 충장사
    충장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의병장 충장공 김덕령의병장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과 묘역이다. 김덕령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 김덕홍과 함께 의병활동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던 명장이다. 충장사 경내에는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충장사와 내삼문, 외삼문과 동제, 서제, 은륜비각, 유물관 그리고 연못 등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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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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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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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경북 >안동시

    임진왜란 때 의병활동을 지원한 김성일의 안동 임천서원
    경상북도 안동시 송현동 호암마을에 있는 임천서원(臨川書院)은 2010년 3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6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던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년)을 추모하기 위해서 지은 건물이다. 1618년(광해군 10)에 임천(臨川)이라 사액 되어서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해 왔다. 1868년(고종 5)에 ᄒᆊ철되었다가 1908년 다시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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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영천시

    영천지역 의병들을 기리는 고천서원
    고천서원(古川書院)은 2003년 8월 경상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다. 이 서원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절한 10명의 의사를 기리기 위해서 1705년(숙종 31)에 건립하였다. 이 서원은 그 후 지방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너무 많은 서원이 생겨 그 폐단이 생기자 1868년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려 고천서원도 철거 되었다. 1940년 다시 건립하고, 1949년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향사를 지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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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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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고 자란 곳 장성
    필암서원이 있는 장성은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1590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672년에 지금의 위치에 이건 되었데, 대원군 대의 서원훼철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모두 피해 옛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인후의 생가와 그가 머물던 백화정이 있는데 김인후와 인종과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배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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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김인후와 함께 배향된 제자이자 사위, 양자징
    필암서원에 함께 배향된 양자징은 김인후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다가 나중에 사위가 된 인물이다. 양자징의 부친 양산보는 한양에서 조광조의 제자로 있다가 1년 후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은둔하였다. 김인후는 화순에 유배와 있는 최산두에게 배우러 가는 길에 항상 소쇄원을 들러 쉬어가면서 양산보와 교유하였다. 그의 아들인 양자징은 김인후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다가 후에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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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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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화의 화근이라 불린 조선 선비들의 필독서 『소학』
    『소학』은 『대학』과 함께 유교의 필독서이다. 8, 9세의 아동들이 읽는 기초서적이지만 오륜을 바탕으로 가정과 공동체에서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주자와 공자는 『소학』을 학문의 시작으로 삼았다. 『소학』으로 인간의 도리와 의리를 깨달은 선비들은 왕실과 조정, 백성들이 행하는 고금의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 과정에서 훈구파와 왕권의 견제를 받아 사화에 희생양이 되곤 하였다. 사화로 꺼질 것 같던 『소학』의 불꽃은 후대 유학자들에 의해 다시 살아났고 사림이 정치적 주도권을 갖게 되는 16세기 후반에는 누구나 즐겨보는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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