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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를 올리고 죽은 오두인의 고향에 세워진 덕봉서원
    덕봉서원은 숙종 대의 문신인 오두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오두인은 장희빈을 왕후의 자리에 앉히기 위해 인현왕후를 폐위하려는 숙종의 명을 거스르는 상소를 올렸다. 부모가 화평하지 않으면 자식이 화평할 수 없듯 선비들과 백성들이 모두 슬퍼하니 사심을 버리고 인심과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유교적 논리로 임금의 명에 반대한 것이다. 상소를 보고 격노한 숙종은 상소문을 작성한 이들을 불러 가혹한 심문을 하였고, 다음날 유배를 가던 길에 오두인은 숨을 거두었다. 서원과 멀리 않은 곳에 오두인의 종갓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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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안성시

    상소에 진노한 숙종의 친국
    오두인을 비롯해 80명이 함께 올린 상소를 보고 숙종은 격노한다. 왕후의 폐출이 부당하다는 상소는 자신을 폐출시키려는 배후의 짓이라는 논리였다. 숙종은 친히 국문하면서 그 배후가 누구냐고 물었다. 오두인은 배후가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그럴수록 국문은 더욱 가혹해졌다. 제신들의 만료에도 불구하고 국문은 밤새 계속되었다. 다음날 유배길에 생을 마감한 오두인은 절의를 지키다 죽은 사육신처럼 임금에게 충심 어린 간언을 하다 형벌의 화를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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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영남지역에 세워진 기호학파의 서원, 흥암서원
    흥암서원은 영남지역에 세워진 대표적인 서인 노론계 서원이다. 갑술환국과 병신처분 이후 서인과 노론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남인 중심의 영남에도 서인계 서원들이 많아졌다. 흥암서원은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예학에 조예가 깊었던 정경세는 김장생과 교유하다가 송준길을 사위로 들이게 되었다. 서원이 위치한 상주는 송준길의 처가가 있는 곳이었고 이후 송준길이 동국18현이 되어 문묘에 모셔지면서 흥암서원의 입지는 더욱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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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예송논쟁의 한 가운데, 송준길
    송준길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은진(恩津). 자는 명보(明甫), 호는 동춘당(同春堂)이다. 어려서부터 이이(李珥)를 사숙(私淑)했고, 20세 때 김장생(金長生)의 문하생이 되었다. 송시열과 동종(同宗)이면서 학문 경향을 같이한 성리학자로 이이의 학설을 지지하였다. 특히 예학(禮學)에 밝아 일찍이 김장생이 예학의 종장(宗匠)이 될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는데 윤휴 등과 대립하여 예송논쟁을 일으켰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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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상주시

    예의 실천으로 문화국가를 이루고자 했던 동춘당 송준길
    흥암서원은 송시열과 함께 김장생의 문하에서 예학을 배운 동춘당 송준길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송준길은 덕과 예가 정치의 기본이고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덕목이라 여겼다. 병자호란으로 혼란해진 국제질서와 사회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도 예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17세기 조선 사회를 지배하는 선비들의 사고방식이기도 하였다. 송시열과 함께 동국18현으로 문묘에 종사된 송준길은 도덕률을 강조하는 예학사상으로 조선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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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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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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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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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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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고 자란 곳 장성
    필암서원이 있는 장성은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1590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672년에 지금의 위치에 이건 되었데, 대원군 대의 서원훼철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모두 피해 옛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인후의 생가와 그가 머물던 백화정이 있는데 김인후와 인종과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배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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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김인후와 함께 배향된 제자이자 사위, 양자징
    필암서원에 함께 배향된 양자징은 김인후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다가 나중에 사위가 된 인물이다. 양자징의 부친 양산보는 한양에서 조광조의 제자로 있다가 1년 후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은둔하였다. 김인후는 화순에 유배와 있는 최산두에게 배우러 가는 길에 항상 소쇄원을 들러 쉬어가면서 양산보와 교유하였다. 그의 아들인 양자징은 김인후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다가 후에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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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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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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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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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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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게’ 그림으로 장원급제를 꿈꾸던, 함양 남계서원 풍영루
    정여창을 향사하는 남계서원(灆溪書院)은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로 지어진 서원이다. 남계서원은 소수서원과 달리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으로 우리나라 서원 건축구조의 기틀을 세웠다. 남계서원은 1552년(명종 7) 창건하여 1566년 ‘남계서원’ 사액을 받았다. 누각인 풍영루는 1847년 불에 탔다가 1849년 다시 중건한 것이다. 누각 정면에는 ‘풍영루(風咏樓)’, 반대편에는 ‘준도문(遵道門)’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누각 천정에는 도배하듯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가운데 장원급제를 상징하는 두 마리 ‘게’ 그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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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함양군

    산림처사로 영남의 학통을 이어간 개암 강익
    조선의 선비들은 출사하지 않고 산 중에 은거해 자기를 수양하는 것을 군자 됨의 하나로 여겼다.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을 은일지사 혹은 산림처사라 하는데, 이들은 관직을 얻어 남을 다스리는 치인(治人)을 마다하고 자신을 수향하는 위기지학에 몰두하였다. 개암 강익도 고향 함양에서 정여창의 도를 후대에 전하며 성리학에만 뜻을 두고 산림처사로 지냈다. 당시 영남에는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남명 조식이 은일지사로 지역의 학풍을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강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을 배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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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남 >논산시

    가족, 친구, 사제간의 유교적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돈암서원과 함께 충청도 지역에서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로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조광조, 서경덕, 이황, 김인후, 기대승, 이이, 성혼, 송익필 등의 영향을 받은 기호유학은 경기도와 호남,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영남유학과 구분되는 성리논변을 만들어간다.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1) 윤황과 윤선거를 배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1682년(숙종 8) 윤문거가, 1723년(경종 3) 윤증이 추가 배향되었다. 노강서원은 가족, 친구, 사제관계로 이어진 기호유학의 인맥도를 보여주는 서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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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의 강도 사건으로 벼슬에 나가지 않은 윤증
    윤선거와 윤증은 출사하지 않고 논산에 은둔해 평생을 살았다. 두 부자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강도 사건’ 때문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피난 갔다가 강화도가 함락되면 자결을 하자는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문제였다. 자결을 한 사람 중에 윤선거의 부인이자 윤증의 어머니인 이씨도 포함되어 있어 강화도 사건은 두 부자에게 상처이자 큰 멍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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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에게 권면하는 친구 간의 도리 붕우책선
    유교문화에는 책선이 있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면하고 충고하는 것이다. 윤선거가 친구인 송시열에게 남긴 마지막 책선이 ‘기유의서’이다. 아들 윤증이 부친의 편지를 스승인 송시열에게 전하면서 회니시비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충고가 노소붕당의 쟁점이 될 정도로 조선 시대 책선은 선비들의 친구관계에서 중요한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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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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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예를 익히지 않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의 광주 포충사
    광주광역시의 포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이끈 제봉 고경명을 배향하는 사우이다. 고경명은 문과에 장원급제해 관료 생활을 하다가 파직되어 광주에 내려와 있다가 왜군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모아 진군하였다. 비록 승전한 전투는 없었지만, 고경명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의병이 그렇듯 고경명도 병법을 알지 못하고 무예를 익히지 않은 선비에 불과했지만, 임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다짐 하나만으로 의병들을 모으고 그들을 이끌어 전장에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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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군포시

    ‘진짜 유학자’의 모범이 된 중봉 조헌
    주자성리학의 다른 이름은 도학(道學)이다. 성리학의 가르침이 ‘인간이 마땅히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 인간의 도리가 무엇인지 깨우치고 실천하도록 가르치기 때문이다. 조선의 도학은 여기에 의리와 절의, 그리고 실천이 더 강조된다. 의리를 위해 죽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의’만을 생각하며 전장에 나선 중봉은 유학자들 사이에서 도의를 실천한 ‘진유(眞儒)’로 평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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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충북 >옥천군

    조헌의병장의 표충사
    표충사는 조헌의병장의 묘 아래쪽으로 영모재와 함께 있는 사당으로 조헌의병장 순절 후 1608년에 처음 옥천군 이원면 원동리에 세워 이듬해 조정에서 편액을 받았다. 조헌의병장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천, 홍성, 청주 등지에서 의병을 모아 청주성 탈환에 큰 공을 세웠으며 왜군들이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하여 금산으로 쳐들어올 때 의병장으로 왜적에 맞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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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기 >김포시

    중봉 조헌의 비범한 이야기
    중봉 조헌의 비범한 언행에 대해 내려오는 야사들이 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어떤 고관이 떠들썩하게 행차할 때, 조헌 만이 유일하게 아버님의 분부를 따라 책 읽는 것에 집중하여 고관이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또한 조헌이 자신의 앞에서 의붓어머니를 질책하는 외할머니의 말을 듣고 외할머니를 멀리하여 효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조헌이 어른이 되어 왜군이 침략할 것을 알고 미리 대비하도록 한 이야기들은 조헌의 비범함을 전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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