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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전라도 3대 비훼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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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무성서원에서 유교적 향촌문화를 만들어간 태인의 선비들
    무성서원은 장성의 필암서원, 광주의 포충사와 함께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이다. 무성서원에는 7명의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데 최치원과 신잠은 이곳에 수령으로 와 선정을 베푼 외지인이고 이를 제외한 정극인, 송세림, 정언충, 김약묵, 김관은 모두 친인척 관계로 연결된 선비들이다. 정극인이 향학당을 만들어 강학을 하고 향약을 운영해 향촌문화를 이끌었다면 송세림은 향학당을 정비해 서원으로 발전시켰다. 전라도 유생 200여 명이 서원의 사액을 청한 것도 향촌문화에 기여한 이들의 공헌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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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의 서악서원
    서악서원은 신라의 태종무열왕릉과 김유신장군묘 사이에 있는 서원이다. 1560년 경주 부윤으로 부임한 이정이 당시 황폐되어 있던 두 영웅의 묘소를 보고 사당을 세운 것이었다. 서원이 만들어지고 사액을 받으면서 경주 지역의 선현인 설총과 최치원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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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꿈에 나타난 김유신 장군의 호통
    경주의 유림들이 서악서원의 사액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리면서 신라의 장군인 김유신의 위패를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천예록』에는 김유신 위패를 빼자고 했다가 꿈에 김유신이 나와 호통을 듣고 결국 죽음에 이르렀다는 설화가 기록되어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유업(儒業)을 이루는 것은 문인과 무인의 신분에 있지 않고 충과 효를 실현하느냐에 달렸음을 보여주는 야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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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때부터 유교를 들여와 공부하였다. 고구려의 국립교육기관인 태학에서는 유교경전을 가르쳤고 백제의 아직기와 왕인은 일본에 유학을 전했다. 신라인 중에서는 설총과 최치원이 대표적인 유학자이다. 우리나라 유교는 도학적 성격이 강했는데 이는 단군신화의 홍익인간이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훼철서원 중에는 설총과 최치원을 배향하는 서악서원과 무성서원이 삼국시대 인물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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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병자호란 전승지에 세워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병자호란의 전승지인 김화에 세워진 서원으로 전투를 이끈 평안도 감사 홍명구와 병마절도사 유림을 배향하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단 2번의 승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김화전투이다. 감사 홍명구는 패할 것을 알고도 전투를 벌여 임금의 안위를 위해 청나라군의 세력을 분산시키려 하였다. 병마절도사 유림은 지형을 이용해 김화전투를 승리를 이끈 명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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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철원군

    화살을 두려워하지 않은 백면서생, 홍명구
    평안도를 관할하고 있었던 감사 홍명구는 청나라군이 한양 도성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포병을 선발해 남하하였다. 청나라군의 진격을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서였다. 평지에서 펼쳐야 하는 불리한 전투임을 알았지만, 청나라군의 전투력을 분산시켜 임금의 안위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여기서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말과 함께 끝까지 싸운 홍명구의 투지는 김화 사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홍명구를 배향하는 서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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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전란 중에 빛난 의리사상
    비훼철서원 중에는 ‘의로운 사람’을 배향하는 서원이 많다. 유교에서 의는 올바른 것을 마땅히 행하는 것이다. 나라에 대한 충의와 나라 간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판단한 조선의 선비들은 그 상황에서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였다. 그들의 의로운 실천은 죽음으로 귀결되었지만, 불의한 삶보다 의로운 죽음을 택한 이들의 정신은 서원에 배향되었고 큰 가르침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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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고려시대 인물을 배향한 서원
    고려시대에도 유교는 국학 차원에서 교육되었다. 무신정권과 원나라 간섭기를 거치면서 유교문화와 교육이 쇠퇴하였지만, 원나라에서 들여온 송대 유학이 전해지면서 성리학을 공부하는 유학자들이 많아졌다. 안향도 그중 한 사람으로 유교경전을 들여와 유학을 진흥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주세붕은 안향의 고향인 순흥에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우면서 무너진 교학이 다시 이어지길 바랐다. 소수서원 외에도 길재를 배향하는 금오서원이 고려 시대 인물을 만날 수 있는 비훼철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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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국

    조선시대 도통의 계보를 보여주는 서원
    37개 서원 중에 금오서원, 도동서원, 남계서원, 심곡서원은 유교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인물들을 배향하고 있다. 성리학과 도학은 같은 말이지만, 성리학이 지(知)를 강조한다면 도학은 행(行)을 강조하였다. 조선의 선비들은 지행합일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도리’, ‘의리’, ‘절의’의 도학사상을 실천한 선비가 금오서원의 길재, 도동서원의 김굉필, 남계서원의 정여창, 심곡서원의 조광조였다. 이들 서원에는 도학사상을 계승하고 후대에 전한 인물들도 함께 배향하고 있어 그들의 이야기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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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구미시

    절의의 상징이 된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
    조선시대 만들어진 「삼강행실도」의 「충신도」에 그려진 이야기는 불사이군의 충절의 상징인 야은 길재를 그린 것이다. 고려 말의 문신이었던 길재는 정국이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은둔하였다. 조선조에 여러 번 관직에 제수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금오산 아래에서 평생 학문을 닦고 후학을 가르쳤다. 군신의리(君臣義理)의 상징이 된 길재의 절의 사상과 실천은 사림들의 학풍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조광조에게까지 이어져 조선 도통의 계보를 이루는 중요한 한 지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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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정읍시

    두 마리의 거북이가 지키는 남고서원
    남고서원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전라북도 정읍시 북면 보림리 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남고서원은 1577년에 창건하여 호남의 대성리학자 이항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천일을 배향하였다. 김천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곧 의병을 일으켜 수원·강화도 등지에서 큰 공을 세웠고, 진주성전투에서 순절하였다. 1685년에 ‘남고’의 사액을 받은 사액서원으로 정읍 선비들의 학문의 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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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녕군

    병자호란 의병장 양훤을 기리는 창녕 광산서당
    창녕 광산서당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병자호란 당시 창녕일대에서 의병을 조직해 싸웠던 양훤의 충의를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건립한 사당이다. 양훤은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군과 맞서 싸우고자 죽령까지 이르렀으나,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돌아왔다. 1795년 양훤의 충의를 기리고 제사하기 위하여 서원을 건립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1899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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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영광군

    의병장 강항의 얼이 서린 영광 내산서원
    전라남도 기념물 제28호는 강항의 위패를 모신 전남 영광의 내산서원이다. 강항은 유학자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 가족과 함께 포로가 되어 일본에 끌려가서 지냈으며, 돌아와서는 유학과 후진양성에 힘쓰다가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는 영광 내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이 서원은 사액서원이며, 서원철폐 때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건립되었다. 강항은 고국에 돌아와서 『간양록』을 남겨 포로의 실상과 일본의 내부 사정 및 전쟁에 임하는 준비 등 대해 기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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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호남지방 지성의 산실, 장성 필암서원 확연루
    확연루(廓然樓)는 필암서원의 문루이자 유생들의 휴식 공간이다. 필암서원은 하서 김인후를 기리는 서원이다. 필암서원은 1590년 창건된 후 정유재란 당시 소실되어 1624년 복원하였고, 1662년 ‘필암서원’ 사액을 받았다. 필암서원이 들어선 위치가 수해를 당하기 쉬운 곳이어서 1672년 지금 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재의 확연루도 1752년 화재로 전소되어 다시 중건한 건물이다. 1760년 김시찬이 「확연루기」를 지었고, ‘확연루’ 편액은 우암 송시열이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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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남 >장성군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고 자란 곳 장성
    필암서원이 있는 장성은 하서 김인후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1590년에 처음 세워졌다가 1672년에 지금의 위치에 이건 되었데, 대원군 대의 서원훼철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모두 피해 옛 모습이 많이 남겨져 있다. 멀지 않은 곳에 김인후의 생가와 그가 머물던 백화정이 있는데 김인후와 인종과 깊은 인연을 상징하는 배나무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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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후와 함께 배향된 제자이자 사위, 양자징
    필암서원에 함께 배향된 양자징은 김인후의 문하에서 글을 배우다가 나중에 사위가 된 인물이다. 양자징의 부친 양산보는 한양에서 조광조의 제자로 있다가 1년 후에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고향인 담양에 내려와 소쇄원을 짓고 은둔하였다. 김인후는 화순에 유배와 있는 최산두에게 배우러 가는 길에 항상 소쇄원을 들러 쉬어가면서 양산보와 교유하였다. 그의 아들인 양자징은 김인후의 제자로 가르침을 받다가 후에 사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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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선비들이 인정한 명재상 황희 정승의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조선의 명재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황희는 고려의 문신이었지만 조선이 개국하면서 태조를 비롯해 태종과 세종 재위기에 재상의 위치에 있으면서 깊은 신임과 총애를 받았다. 황희는 임금에게뿐 아니라 선비들과 백성들도 인정하는 명재상이었다. 임금의 명에 복종했기 때문이 아니라 임금의 도리를 다하도록 간언을 잘하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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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안에서는 시비를 가리지 않은 황희
    조정에서 황희는 크고 작은 일에 시비를 가리고 간언을 하였지만, 집안에서는 관대하고 시비조차 가리지 않았다. 황희가 집안의 노비와 어린아이들을 대하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데 당시가 신분제 사회였음을 감안할 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관대하였다. 이런 황희의 이야기들은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오래도록 회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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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신은 진실로 이와 같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교적 이상 정치에서 재상은 위로는 임금을 받들고 밑으로는 백관을 통솔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을 맡은 자로서, 이때 임금을 받든다는 것은 임금을 바르게 하고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간언하는 것이었다. 유교적 관점에서 황희 정승은 왕권을 견제하는 신권의 역할을 모범적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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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인의병 창의지 무성서원
    정읍 무성서원은 한말 을사의병기에 최익현과 임병찬 등이 태인의병 창의를 결의한 곳으로 사적 제166호이다. 무성서원은 고려시대 최치원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에서 유래하며, 조선시대 서원으로 개편되었다. 1906년 6월 4일 태인의 무성서원에 모인 유림들은 최익현의 창의선언에 동참하기로 하여 의병대열에 합류함으로써 태인의병이 결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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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산에 유풍을 일으킨 현자들의 발자취
    대부분의 서원이 민가와 떨어져 있는 것과 달리 무성서원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지역민이 주축이 돼 유학 교육과 유교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세웠기 때문이다. 서원이 위치한 곳의 옛 지명은 ‘태산’인데,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 수령으로 왔던 최치원과 신잠의 공덕을 기려 생사당을 지었고 둘을 함께 합사해 ‘태산사’라 이름하였다. 무성서원은 태산사가 지역민의 향학당 자리로 옮겨져 서원으로 발전한 것이다. 무성서원은 학문과 교육을 중시한 지역민과 수령들이 서원을 통해 어떻게 유교 문화를 발전시켜나갔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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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말 호남의병 의병장 임병찬 창의기념비
    임병찬창의유적지는 한말에 임병찬이 호남의병을 일으켜 의병을 훈련하던 곳이다. 임병찬은 이곳에서 흥학제라는 학당을 지어 놓고 모여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단순한 학문만을 공부하게 한 것이 아니라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예를 익히게 하여 후일을 대비하였다. 현재는 유적의 잔재와 후손들이 세운 기념비 등만 남아있지만 의병들의 의로운 숨결이 느껴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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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친구, 사제간의 유교적 가치관을 볼 수 있는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돈암서원과 함께 충청도 지역에서 훼철되지 않은 서원 중 하나로 기호유학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조광조, 서경덕, 이황, 김인후, 기대승, 이이, 성혼, 송익필 등의 영향을 받은 기호유학은 경기도와 호남, 충청도를 중심으로 전개되면서 영남유학과 구분되는 성리논변을 만들어간다.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1) 윤황과 윤선거를 배향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1682년(숙종 8) 윤문거가, 1723년(경종 3) 윤증이 추가 배향되었다. 노강서원은 가족, 친구, 사제관계로 이어진 기호유학의 인맥도를 보여주는 서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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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친의 강도 사건으로 벼슬에 나가지 않은 윤증
    윤선거와 윤증은 출사하지 않고 논산에 은둔해 평생을 살았다. 두 부자가 벼슬에 나아가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강도 사건’ 때문이었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도에 피난 갔다가 강화도가 함락되면 자결을 하자는 맹세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 돌아온 것이 문제였다. 자결을 한 사람 중에 윤선거의 부인이자 윤증의 어머니인 이씨도 포함되어 있어 강화도 사건은 두 부자에게 상처이자 큰 멍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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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에게 권면하는 친구 간의 도리 붕우책선
    유교문화에는 책선이 있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도록 서로 권면하고 충고하는 것이다. 윤선거가 친구인 송시열에게 남긴 마지막 책선이 ‘기유의서’이다. 아들 윤증이 부친의 편지를 스승인 송시열에게 전하면서 회니시비가 시작되었다. 친구의 충고가 노소붕당의 쟁점이 될 정도로 조선 시대 책선은 선비들의 친구관계에서 중요한 문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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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화를 들여온 문익점
    문익점은 고려 말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목화씨를 구해 온 인물이다. 문익점이 높이 평가되어야 하는 이유는 목화씨를 들여왔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장인인 정천익과 함께 목화를 한반도에 정착시켜 대량으로 재배하고, 실을 잣는 방법을 보급하여 면직 생산에 기여했다는 것, 그로부터 헐벗은 사람들을 구제했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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