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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으로 검색한 지역문화자료입니다.

#강원도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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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화천군

    김수증이 지은 성리학의 이상향, 화천 화음동정사지 각석
    강원도 화천군 화악산과 동쪽의 매봉 사이에 흐르는 화음동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조선후기 문인인 김수증(金壽增)이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을 위해 지은 화음동정사의 터가 남아있다. 김수증은 이곳에 정사를 지었는데, 기사환국을 계기로 낙향하여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썼다. 현재 건축물은 모두 소멸되고 그 터와 자연석, 바위에 새겨진 글자와 그림만이 남아 있다. 김수증은 건물지 주변 바위에 성리학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태극도(太極圖)·하도낙서(河圖洛書)·선후천입궤도(先後天入卦圖) 등을 새겼다. 바위에 새겨진 태극도나 팔괘 등을 통해 성리학의 본질에 다가가고픈 학자 김수증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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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강원 >영월군

    아들 순조가 세운 영월 정조대왕 태실비
    강원도 영월군 영월제읍에 위치한 정조대왕 태실은 조성될 당시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정조의 아들 순조(1790-1834, 재위1800-1834)가 아버지를 위해 석조물을 조성하였다. 이 자리는 원래 사도세자의 첫째 아들이었던 ‘의소세손(懿昭世孫)’의 태실을 만들 곳이었으나, 그가 요절하고 같은 해 정조가 태어나자 정조의 태실을 그 위치에 조성하였다. 당시 태실을 정하는 세부적인 논의, 담당관리의 임명, 석물의 마련과 폐단에 대한 문제 등 태실을 갖추는 데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아있어 당시 왕실에서 이를 얼마나 중요한 문제로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전국의 태실을 경기 고양시의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겼는데, 이때 정조의 태항아리도 이전하였다. 태실과 태실비는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되었는데, 이후 영월군 종합개발위원회에서 수습하여 본래의 태실 위치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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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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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인천 >강화군

    고분의 주인을 알수 없는 강화 능내리 석실분
    능내리 석실분은 피장자가 알려지지 않은 왕릉급 고분으로, 강화도의 왕릉급 고분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능내리 석실분은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 발굴 당시 능내리석실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으나, 석실 내부에서 대접, 접시, 잔 등 다양한 청자류와 봉황문과 당초문이 타출된 은제도금장식과 동곳, 호박구슬 등의 장신구류, 개원통보(開元通寶(621)) 등의 동전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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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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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창원시

    신라 최치원의 이름이 남아 있는 청룡대 각석
    신라의 유명한 학자 최치원의 글씨가 새겨진 청룡대 각석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가주동에 위치한다. 청룡대 각석에는 “청룡대 치원서(靑龍臺 致遠書)”라는 여섯 글자가 남아 있어 바위의 이름과 글자를 새긴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명한 학자이자 문장가였는데 40세의 나이로 관직을 내려놓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 중 청룡대 각석은 최치원이 낚시를 했던 바위라고 전해진다. 바위에 새겨진 글자는 수려하면서도 강직한 힘이 느껴지는 필체다. 최치원의 친필로 보이는 여러 각석 중에서 ‘치원’이라는 이름이 직접 남아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따라서 청룡대 각석은 최치원의 행적과 필체에 대해 알 수 있어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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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남 >남해군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아 서불이 지나간 남해 상주리 석각
    남해군은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도서지역이며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기도 하다. 남해 금산 서남쪽에는 거북바위라고도 불리는 상주리 석각이 있다. 거북바위의 엉덩이 부근에는 알 수 없는 형태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씨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서불과차(徐市過此)’라고 읽는다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그 내용은 ‘서불이 이곳을 지나갔다’라는 뜻이다. 서불은 진시황의 지시로 불로초를 찾는 여정을 떠난 인물인데, 그가 이곳 남해 금산을 지나며 거북바위에 글을 새겼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선사시대의 그림 또는 거란의 문자라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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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도봉구

    풍전등화(風前燈火) 속에서의 다짐. 도봉서원 각석군
    1573년에 건립된 도봉서원은 그 주변 각석군과 함께 2009년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다. 도봉서원은 양주목사로 부임한 남언경이 조광조를 기리기 위해 설립하였는데, 조광조는 당시 모든 사림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기에 도봉서원의 위상은 대단하였다. 도봉서원으로 들어서는 도봉산 길목에는 이곳에 출입했던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글씨가 바위에 남겨져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글씨는 모두 11개로 도봉서원터를 중심으로 계곡 700m 내에 산재해 있다. 이 글씨들은 17~18세기에 주로 새겨진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사람들이 도봉산과 도봉서원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것은 무엇인지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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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관심지역 서울 >종로구

    신선이 사는 동네 부암동 백석동천 별서유적지
    백석동천(白石洞天)은 종로구 부암동 홍제천 지류의 상류 부근에 건물지와 지당(池塘), 육각정 터가 위치하고 있는 별서 터이다. 그러나 누가 처음 별서를 조영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2005년 사적 제462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명승 제36호로 변경되었다. 1800년대 도성 가까이에 조성되었던 별서 관련 유적으로, 지정면적은 50,86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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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서울 >관악구

    관악산 호수공원과 석구상
    관악산 제1광장에 위치한 호수공원은 1997년에 준공된 인공호수이다. 주위에는 정자, 분수, 파고라, 시비, 화계 등이 있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호수공원 입구에는 석구상이 세워져 있다. 이는 관악산 줄기인 호암산 정상 부근에 있는 한우물터 인근에서 확인된 석구상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한우물과 함께 화재 예방 목적으로 만들어진 석구상에 대한 기록은 시흥읍지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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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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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진군

    임금의 관을 만드는 소나무를 보호하라, 울진 소광리 황장봉계표석
    조선시대에 소나무는 국가적으로 중요한 자원이었는데, 대규모 토목건축이나 조선(造船)사업에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소나무 중에서 특히 황장목(黃腸木)은 연륜이 오래된 양질의 소나무로 왕실의 관을 제작하는 재료였다. 이를 위해 조정에서는 소나무의 벌목을 통제하고 황장목을 확보하기 위해 금산·봉산을 지정하였고 이를 표시하는 표석을 세워 확인할 수 있게 했다. 울진 소광리 황장봉표계석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래된 표계석으로 강원도 보다 이른 시기에 경상도에서도 황장목이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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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 석조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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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울진군

    1000년 전의 동굴 낙서, 울진 성류굴 신라 석각
    울진 성류굴 신라 석각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에 있는 선유산 서북쪽 성류굴에 자리한다. 이 석각은 2015년 위덕대학교 박물관장 박홍국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성류굴 입구 근처에 새겨져 있는 “계해년3월8일(癸亥年三月八日)”의 기록으로 보아 신라시대의 석각으로 추정하였으며, 이후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성류굴 내부 곳곳에서 석각을 추가로 발견했다. 2019년에 이르러 울진 성류굴 내에 경진년(庚辰年), 신라 화랑과 승려의 이름, 신라 관직 이름과 같은 신라와 관련된 내용이 알려졌다. 특히 경진년에 진흥왕(眞興王)이 울진 성류굴에 다녀갔다는 글자가 새겨져있어 신라역사를 새롭게 해석하는 중요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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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불상을 모시던 작은 돌 집, 경주 남산동 석조 감실
    신라 천 년의 수도였던 경주 남산에는 약 100여곳의 절터가 있고, 80여 기의 석불이 남아 있다. 경주 남산 북동쪽에는 석조 감실이 하나 있다. 감실은 원래 집이나 방에 특정한 공간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감실을 만들어 불상이나 신주를 모신다. 경주 남산동 석조 감실은 건축형태 감실의 초기 형태로 추정된다. 석조 감실 안에 모셔져있던 불상은 현재 전하지 않지만 석조 감실은 그 모습을 유지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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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경북 >경주시

    흐르는 물길에 잔을 띄우고 시를 짓다, 포석정터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 서쪽에는 포석정터가 남아있다. 포석정터에는 현재 정자와 같은 건물시설은 남아있지 않고 돌로 만들어진 물길인 유배거(流盃渠)만 남아있다. 유배거의 총 길이는 약 22m에 이르며 굴곡진 전복모양 타원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물길에 잔을 띄웠던 것으로 보이는데, 굴곡진 형태 덕분에 물에 띄워진 잔이 매번 다른 모습으로 흘렀다. 포석정은 신라시대 왕과 신하들이 모여 연회를 즐겼던 장소로 추측되기도 하며,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헌강왕이 포석정에서 남산 신을 보고 춤을 추었다는 기사를 통해 왕실이 의례를 지내던 곳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포석정은 왕실과 밀접한 연관이 있던 장소로 통일신라시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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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부안군

    두 마리의 새가 내려앉은 돌기둥 부안 쌍조석간
    쌍조석간은 전라북도 부안군 계화면 궁안리 대벌마을에 있다. 쌍조석간은 대벌마을 입구에 서 있는 돌기둥 형태의 서낭대로 2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 모양이다. 쌍조석간의 기둥 중간에 조선 영조 25년(1749) 정월 9일 한밤중에 세웠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대벌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사흗날 밤에 당산제를 지냈으나, 1978년 이후 어업이 쇠퇴하면서 당산제의 전승이 중단되었다. 쌍조석간 당산제에서는 베다리기와 머리얹기를 하는데, 이는 당산제에서 ‘당산 옷입히기’와 유사한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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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전북 >남원시

    몽룡과 춘향을 이어준 남원 오작교(烏鵲橋)
    오작교는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는 광한루원(廣寒樓苑)의 부속 돌다리이다. 광한루 앞 연못은 장방형 구조로 1:2 비율로 이루어져 있고, 이 연못 위에 놓여있는 다리가 오작교이다. 1963년, 1990년 광한루원 확장시 두 차례에 걸쳐 남쪽으로 다리를 연장하여 현재 오작교의 길이는 58m 정도이다. 광한루원은 2008년 명승 제33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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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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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문화 Pick (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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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원의 고인돌

    출처 :경상남도문화원연합회

    지역문화Pick 경남 >창원시

    창원의 고인돌
    창원의 3개 구에 산재한 고인돌의 현황조사와 함께 사진 자료를 담은 책이다. 경남 창원 지역에는 2005년 조사 당시, 31개소 68기의 고인돌(청동기시대 지도층의 무덤)이 분포한 것으로 조사되었으나, 제대로 보존 및 관리되지 않았었다. 이에 창원 지역의 선사 유적을 보호하고 정비하고자 책을 발간했다.
    • 자료유형 : 도서간행물 > 단행본
    • 소장문화원 : 마포문화원
  • 테마스토리 제주 >서귀포시

    횃불에서 도대불로
    도대불 또는 등명대(燈明臺)라고 불리는 등대는 현대식 등대가 도입되기 전에 제주 지역에서 야간에 배들이 무사히 귀항할 수 있도록 항구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하던 민간 등대이다. 도내에 현존하는 도대불은 1910년대부터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도대불은 현존하는 것 가운데 북촌리 도대불 가장 오래된 것으로 1915년에 만들어졌다. 주민들 대부분은 이 등대를 도대불이라 불렀지만 등명대나 관망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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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말이 끄는 연자방아, 제주 애월 말방아
    말방아는 말을 이용하여 곡식을 찧는 연자방의 제주도 말이다. 제주도 말방아는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잣동네 말방아’와 신엄리에 있는 ‘당거리동네 말방아’가 대표적이다. 잣동네 말방아는 ‘도깨비 수덕’에서 돌을 채취하여 가공한 후 마을까지 굴려서 왔다. 당거리동네 말방아는 ‘도들왓’에서 채취한 돌을 마을로 가져와 마을주민들이 직접 만들었다. 당거리동네에는 말방아계와 관련된 문서가 있었으나 현재는 행방을 알 수 없다. 말방아와 관련된 구비문학으로는 「ᄆᆞᆯ방이소리」 또는 「연자방아노래」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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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마스토리 제주 >제주시

    천연 에너지 태양열을 이용한 제주 구엄리 돌염전
    구엄리 돌염전은 암석해안 암반을 이용하여 해수를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던 곳이었다. 육지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소금을 검고 평평한 천연암반 위에서 생산하였고, 이 돌염전을 제주도 말로 '소금빌레'라 하였다. ‘소금빌레’는 ‘소금을 만드는 밭’이라는 의미이다. 소금빌레는 명맥이 1950년대까지 이어졌고, 여기에서 생산되는 소금의 양은 1년에 28,800금(17톤) 정도 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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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군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강화 마니산 참성단
    인천광역시 강화군 마니산 정상에는 돌로 만든 제단인 참성단이 있다. 참성단은 그 위치와 형태를 통해 제법 큰 규모의 제사를 지냈던 중요한 장소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단은 하부가 원형이고 그 위에 정방형의 단을 쌓았는데, 전통적으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고 생각한 것과 비교해보면 반전된 이 모양이 색다르게 느껴진다. 이곳은 고조선의 초대 군주인 단군왕검이 제사를 지냈던 곳이라는 전설이 있다. 참성단을 찾는 발길은 오랫동안 끊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보수되었다는 기록을 찾아볼 수 있으며, 현재도 성화를 채화하고, 개천절에 제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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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분의 주인을 알수 없는 강화 능내리 석실분
    능내리 석실분은 피장자가 알려지지 않은 왕릉급 고분으로, 강화도의 왕릉급 고분 가운데 최대 규모이다.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된 능내리 석실분은 2006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하였다. 발굴 당시 능내리석실분은 이미 도굴된 상태였으나, 석실 내부에서 대접, 접시, 잔 등 다양한 청자류와 봉황문과 당초문이 타출된 은제도금장식과 동곳, 호박구슬 등의 장신구류, 개원통보(開元通寶(621)) 등의 동전이 출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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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찜질방 교동 고구리 한증막
    고구리 한증막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고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교동에는 한증막이 고구리 외에도 봉소리, 서한리에도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고구리 한증막은 1960년대 말까지 주민들이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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